• 최종편집 2026-04-22(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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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04-20 18:09
[벗자편지]함께읽기9 김정희: 바라는 삶을 살고 싶은 해바라기 벗들에게
문화예술 04-20 09:10
[반달곰1%가게유람기] 일상을 아름답게 하는 작은 미술관, 도엔효
사람이야기 04-20 09:00
생명의 젖줄, 530리 섬진강길 걷기(2일차)
문화예술 04-15 11:09
내 몸에 흐르는 지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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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환의 절기 이야기] 제비가 돌아오는 3월3짓날과 청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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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수는 지역에 이용의 우선권이 있는 공공재다. 물 이용의 생태적 원칙 (지리산 지하수 이야기 3)
고을이야기 04-10 18:22
[기후+마을] 벚꽃은 우릴 서럽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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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로 소비되는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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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거와 화엄매
문화예술 04-06 22:09
[빛나는 연대 순례하는 청명9] 냉장고와 탈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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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주옥 X 인간주옥] ③주옥이는 잠만보
기획 04-01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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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니은기역 04-20 09:10

    [벗자편지]함께읽기9 김정희: 바라는 삶을 살고 싶은 해바라기 벗들에게

    지리산인>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벗자편지>>를 펴낸 니은기역 출판사입니다. 자급을 어렵게 하는 허울을 벗어던지고 나와 둘레를 돌보며 고귀한 하루를 살려는 농부들의 편지, <<벗자편지>>를 여기 <지리산인>에 한 달에 한 번, 한 꼭지씩 들려드려, 어느덧 마지막 편에 왔습니다. 마지막까지 함께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나의 시간을, 나의 생산수단을, 나의 재주를 좀 더 아름답게 쓰고자 하는 이들에게 이 책이 용기를 주면 좋겠습니다. 바라는 삶을 살고 싶은 해바라기 벗들에게, “담대한 결론에 도달하는 일은 이미 우리 안에서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 김정희 식물을 키우면서 세상에 대해서 새삼 다시 생각해 본다. 채소와 과일은 맛이 다 다르고 특성도 다르다. 사람도 그럴 것이다. 사람마다 자기가 타고난 특성이 다 다르고, 잘할 수 있는 재능이 다 다를 텐데. 그러나 세상이 정한 잣대는 하나뿐. 능력으로만 줄을 세웠다. 사람에게 등급을 매기고 어릴 적부터 성적으로 평가하고, 어른이 되어서도 치열한 경쟁 속에 내몰려 하루하루 버텨 갔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사람들 대부분의 공통적인 삶이자 고민이다. 조금은 여유 있게, 사람다운 삶을 살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지만 좀처럼 벗어나기란 어려웠다. 모두가 경쟁 사회에 내몰려 남보다, 아니 내 옆에 가장 가까운 친구보다 한 발짝이라도 뒤떨어지면 패배자로 취급받는 게 오늘날 현대인의 삶이 아닌가. 아파트 평수에서부터 성적 순위, 직급 순위, 모든 게 경쟁으로 내몬다. 어떻게 하면 이런 사회 분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사람은 저마다 타고난 능력과 재능이 있고, 자신이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분야가 제각각인데. 이걸 인정해 주는 사회가 아니었다. 누가 인정해 주지 않아도 아랑곳하지 않고 스스로가 제 능력을 기를 마음의 여유도 없다. ‘언젠가는 이걸 하고 싶어. 언젠가는 내가 예전에 좋아했던 일, 내가 잘했던 것을 하고 싶어. 그런데 지금은 아냐. 지금은 여유가 없어. 나중에, 나중에…….’ 나도 하고 싶은 게 있었다. 그러면서 현실이라는, 나 스스로 만든 울타리에 갇혀 정작 내가 가고 싶은 길을 막았다. 물론 어릴 적부터 작가가 되고 싶은 게 꿈이어서 그 길로 쭉 걸어왔지만, 꿈이 일상이 되니까 또 다른 삶을 살고 싶은 욕망이 꿈틀거렸다. 사회가 들이미는 잣대에서 벗어나 좀 더 여유 있는 삶, 좀 더 다양한 세상에 도전해 보고 싶었다. 그렇게 50대 중반에 정해진 경로를 벗어났다. ‘실험 삼아 딱 1년만 어때?’ 도시에 살면서 언젠가는 시골로 내려가서 살고 싶다는 희망을 막연히 꿈꿨다. 꿈과 희망이지만 당장 눈앞에 놓인 현실은 만만찮았다. 나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도 늘 비슷한 넋두리를 했다. “시골에 내려가서 살고 싶지만, 당장 뭐 해서 먹고살아.” 문제는 먹고사는 문제였다. 누구나 평생 고민하는 문제. 그 문제에 매달려 꿈도 희망도 스스로 접어 가면서 현실에 매달려 하루하루 버티며 살아가는 게 대부분 사람의 삶이 아닌가. 나 역시 막연히 꿈만 꾸었다. 시골로 내려간다고 내가 여태껏 해 온 책 쓰는 일을 접어야 하는 게 아닌데도, 오랫동안 도시 생활에 익숙해서 몸이 멀리 떠나는 게 왠지 망설여졌다. 용기가 없었다. 그렇지만 도시라는 욕망과 경쟁과 치열함으로 가득한 공간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언젠가는 시골에 내려가서 텃밭을 일구며 자연과 더불어 살고 말겠다며, 아주 낭만적인 세상을 꿈꾸면서 가끔 인터넷 검색을 했다. 산과 들판과 바다가 어우러진 터전. 밤이면 하늘에 별이 반짝반짝 빛나고 푸른 들판이 펼쳐진 곳. 그저 온라인 검색으로 마음을 달랬다. 그러다 때마침 서울과 그리 멀지 않은 화성에 내 상상과 비슷한 터전, 그리고 전원주택이 셋집으로 나왔다. 화성은 반으로 갈라서 반은 동탄이라는 아파트 숲이 있고, 나머지 반인 서해 바닷가 쪽으로는 강원도권이라고 일컬을 만큼 시골 분위기가 나는 지역이라고 했다. 농촌 풍경과 바닷가가 어우러진 마을이라니, 얼른 구경이라도 해 보고 싶은 마음이 부풀었다. 옆지기에게 말하려니 좀 조심스러웠다. 그도 언젠가는 시골에 들어가서 살고 싶다며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었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미루고 미루어 왔다. 돈을 더 벌어서 가자는 뜻이었다. 대체 그 ‘때’가 언제인지, 자꾸 미루다 보면 결국은 포기하고 말 것 같았다. 신경전이 벌어졌다. 나라고 당장 모든 걸 접고 가자는 건 아닌데. 주위 사람들 조언에 따라, 어디든 정착하기 전에 일단 셋집을 구해서 살아 보고 그다음에 정착을 하든지 말든지 결정하자는 거였다. 그래야 나중에 후회가 덜하다고 하니. 당연히 처음부터 도시나 아파트 생활을 다 접고 산골짜기나 궁벽한 촌으로 가자고 하면 덜컥 겁나는 게 현실이다. 갑자기 환경이 완전히 바뀌고, 그것도 살 곳이 어떤 곳인지도 잘 모르는데 당장 내려가자 하면 거부감이 드는 게 당연하다. 왜 시골로 내려가 살고 싶다면서 안 가느냐고 따지거나 대거리를 하면 서로 싸움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게 그냥 부담 없이 가볍게 나들이 가는 마음으로 가 보자고 나름 꾀를 낸 것이다. 그럼 마음에 부담이 덜할 것 같아서. 내 제안에 옆지기는 마지못해 길을 나섰다. 찾아간 집은 인터넷 검색으로 찾아 적어 두었던 모양보다 훨씬 큰 전원주택이었다. 집을 직접 지은 옆지기가 세상을 먼저 떠난 후에 비워 둔 집이라고 했다. 나무도 많고, 전면이 유리로 된 거실과 이층 창이 갑갑한 마음을 탁 트이게 했다. 널찍하고 비교적 깨끗한 전원주택을 보면서 마음이 흡족했다.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마음에 들었지만 옆지기 반응이 어떨지 몰라서 내 의견을 먼저 꺼내지 않았다. 내 마음을 눈치챘는지 그도 극구 반대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망설였다. 여전히 우리에겐 시골에 들어와 살 용기가 부족했다. “실험 삼아 딱 1년만 살아 보자.” 시골 생활에 적응할 수 있을지 없을지 일단 한번 살아 보자고 고민 끝에 뜻을 모았다. 그러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마음을 정한 김에 계약하고 바로 이사를 준비했다. 마음만 품고 도전하지 않으면 늘 제자리에서 끙끙 앓기만 할 테니까. 때는 11월 말이어서 김장이며 이것저것 겨울 준비도 해야 하고, 너무 추워지기 전에 이사하는 게 마음이나 생활에 안정이 될 것 같아 망설임 없이 저질렀다. 그렇게 설렘 반 두려움 반으로 시골살이를 시작했다. 50대 중반에 말이다. 시골 생활은 하루가 길었다 길어도 너무 길었다. 하루 24시간이 아니라 36시간, 어쩌면 멈춰 버린 시간처럼 느껴졌다. 그래도 밤과 낮은 어김없이 바뀌었다. 그런데도 시간이 길게 느껴지는 건 아마도 마음부터 먼저 느슨해진 탓일 거라고 여겼다. 화성시는 시골이 아니라고 하지만 내가 들어간 면 소재지 마을은 바다에서 차로 10여 분 거리이고, 누가 봐도 농촌 마을 풍경이었다. 하루에 노란색 마을버스가 몇 번 오갈 정도니 승용차가 없으면 마음대로 나다닐 수도 없는 그런 마을이었다. 도시와 아파트, 빡빡하게 돌아가는 일상생활, 늘 시간에 쫓기듯 계획을 하고 일정을 마쳐야 하고, 시간이 아니라 분까지 쪼개 홀로 계획했던 생활에서 한결 벗어난 기분이 들었다. 시간뿐 아니라 공간도 넉넉했다. 드넓은 하늘과 탁 트인 시야, 넓고 끝없는 들판, 하늘을 그리며 날아다니는 새들이 비록 겨울이지만 정겹기 그지없었다. 마치 꿈꾸던 세상에 성큼 들어온 것 같아 흐뭇한 마음마저 들어 일부러 겨울 들판과 뒷산을 오르내렸다. 하루가 얼마나 긴지, 왜 이런 세상을 그동안 몰랐을까. 내가 살아온 세상에서 훨씬 벗어나 어느 곳엔가 존재하고 있었을 텐데. 시간이란 게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진 것이라 여겼는데, 얼마나 주관적인지 깨달았다. 시간 개념이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고즈넉하고 한가한 분위기에 젖어 있다가도 때로는 심심했다. 빡빡하게 돌아가는 생활에서, 싫든 좋든 서로 부딪히며 살아야 하는 공동생활에서 벗어나니까 마치 두꺼운 껍데기를 벗어 버린 것 같아 가벼웠는데, 아직은 이런 생활을 어떻게 메워야 할지 몰라 심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이런 심심함마저 즐겨야 한다는 걸 어렴풋이 깨닫게 되었다. 일명 ‘자본주의 병’이라는 병에 걸려서 살았던 걸까. 한가하게 보내는 시간을 즐기면서도 왠지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남들은 다 열심히 바쁘게 사는데 나만 한가하게 보내니까 세상에 뒤떨어지지 않을지, 지인들과 멀어지지 않을지, 책을 내는 출판사와 너무 멀리 떨어져서 뒤처지지 않을지, 온갖 잡념이 밀려들었다. 한때는 도시에 살면서 성냥갑 같은 아파트에서 평생을 보내며 살기는 싫다고 생각했는데. 자연에 가까운 삶, 조금은 여유를 부리면서 밤하늘을 쳐다보며 별을 감상하는 삶을 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낮에는 밭을 갈고 밤에는 책을 읽는 ‘주경야독’의 삶을 살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는데, 막상 그렇게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심심하고 불안하기도 했다. 사람 마음이 이래서 변덕스럽다고 했던가. 마음에서 일어나는 이 불안을 처음에는 그대로 방치하다가 다른 일을 찾아냈다. 심심할 때는 심심한 대로 그대로 멍하니 산과 들을 하염없이 바라보거나 아니면 그동안 읽지 않았던 책을 집어 읽었다. 원고 쓰는 데 매여서 책 읽기를 조금은 미루어 두곤 했는데, 심심한 시간을 메우려고 책을 읽기 시작하자 예전으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원래 책 읽는 걸 좋아했다. 내가 사는 세상을 벗어나 또 다른 세상에 들어가 볼 수 있고, 내가 알지 못했던 세계도 책을 통해서 느낄 수 있으니까. 그런데 원고를 쓰기 시작하면서 해마다 책을 내야 한다는 생각에 원고 쓰기에도 하루하루가 바빴다. 나도 모르게 책 읽는 일에 소홀했다는 걸 책을 손에 잡으면서 깨달았다. 불안한 마음이 들 때는 ‘이건 자본주의 병이야. 이제 느리게 느긋하게 사는 삶을 살아야 해.’ 하면서 마음을 다독거렸다. 이론으로만 생각하던 걸 현실에서 살려니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여태껏 습관처럼 하루에 원고 몇 매라도 써야지 마음이 놓였는데,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없었다. 하루 이틀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해결이 되었다. 농사일이 점점 커져 일이 많아지고 머리가 아닌 몸을 쓰는 삶을 사니까 피곤해서라도 깊은 잠을 잘 수 있었다. 짧은 시간 안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따뜻한 팥죽 한 냄비 겨울이어서 그런지 밖에 나다니는 사람도 좀처럼 보이지 않고, 마을에 모여 사는 집이 여덟 집뿐이었다. 다닥다닥 붙어 살아도 별로 교류도 없고 데면데면한 도시와 달리, 시골은 오랜 세월 함께 살아온 사람들끼리 정이 끈끈했고 그만큼 외지인을 낯설고 부담스러워하는 듯했다. 그런 마음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어떤 사람들이 내 마을에 들어와 사는지, 어떤 사람들이 마을에 무슨 해를 끼치지나 않을지 걱정되는 건 당연했다. 그래서 선뜻 낯선 집에 문을 두드리기가 망설여졌다. 아마도 도시에서 살아오면서 타인과 적당히 거리를 두는 게 습관이 되어 이런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마을 사람들은 대부분 나이가 많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70대가 한 분, 대부분 80대였다. 몇십 미터 뚝뚝 떨어진 아랫집이나 윗집 둘레를 산책하다가 어쩌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만나면 어색하게 인사를 하는 정도였다. 왠지 무뚝뚝하고 마뜩잖은 듯 겨우 인사만 받아 주고는 집으로 쑥 들어가 버렸다. 그러다가 어느 날 아침, 일어나니까 문 앞에 낯선 양은냄비가 놓여 있었다. 이게 뭐지, 하고 뚜껑을 열어 보다가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새어 나왔다. 팥죽이었다. 오늘이 동짓날이었다. 순간, 가슴이 울컥했다. 아직 인사 정도만 하는 사이인데 누가 팥죽을 갖다 놓은 것이다. 그것도 말도 없이 조용히 갖다 놓고 갔다. 불현듯 팥죽에 얽힌 추억이 떠올랐다. 이미 오래전에 돌아가신 엄마는 동짓날이 되면 그 전날 밤에 팥죽을 쑤었다. 경상도 풍습이었다. 그때는 오랜 관습으로 팥죽을 쑤면 사람이 먹기 전에 대문 밖으로 나가 담벼락을 돌며 팥죽을 던졌다. ‘고수레 고수레’ 하고 팥죽을 던지면서 나쁜 기운과 악귀가 물러나서 새해에는 집안을 평안하게 해 달라고 빌었다. 엄마가 살아 계실 때는 동지가 되면 어김없이 팥죽을 쑤었지만, 엄마가 돌아가신 뒤에는 한 번도 팥죽을 쑤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우리 집으로 들어온 팥죽이 까마득히 잊힌 추억을 되살린 것이다. 내가 영천에서 초등학교 다닐 때였다. 한겨울이라도 눈이 많이 오지 않는 지역인데 갑자기 눈이 펑펑 쏟아졌다. 일부러 눈을 맞으며 얼마나 좋아했던지. 엄마가 팥죽을 끓이는 동안, 우리 골목 이웃 골목 아이들까지 죄다 나와서 강가에서 눈싸움을 벌였다. 그 장면이 마치 아련한 추억처럼 떠올라 마음마저 촉촉하게 젖어 들었다. 참 아련한 시절. 오래전에 돌아가신 엄마가 떠올라 가슴 한구석이 아릿해져 왔다. 냄비에 손을 갖다 대자 따듯한 기운이 전해져 왔다. 알지 못하는 사람의 따듯한 마음이 전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일단 맛있게 먹고 나서 낡은 양은냄비의 주인을 찾기로 했다. 그분이 누구인지 모르지만 맛있게 먹는 게 팥죽을 쑤면서 고생하신 데 조금이라도 보답하는 길이라고 여겼다. 옆지기를 깨워 낡은 양은냄비를 내밀면서 팥죽이 문 앞에 놓여 있었다고 하니까, 부스스한 몰골로 감탄을 쏟아 냈다. “이게 시골 인심이야. 아직 시골은 이런 인심이 남아 있었네.” 웃음을 지으면서 흐뭇해했다. 팥죽을 맛나게 나눠 먹었다. 양은냄비 주인은 멀리서 찾을 것도 없이 윗집 할머니였다. “아무래도 도시에서 온 사람들이라 팥죽을 좋아할지 어떨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오늘 동지니까 나눠 먹고 싶어서 살짝 갖다 놨어. 맛있게 먹었다고 하니까 고마워.” 할머니가 오히려 고맙다고 했다. 이 일을 계기로 80대 부부를 모시고 외식도 하고, 서로 날마다 들여다보는 관계로 발전했다. 서로 음식도 만들어 갖다주고, 세상 사는 얘기도 나누곤 했다. 할머니가 좋게 소개해 주신 덕택이었을까. 마을에서는 한결 나한테 호의적으로 대해 주었다. 길을 가다 마주치면 먼저 웃으면서 인사를 하고, 서로 덕담을 나눌 정도였다. 마을 사람들에게 한층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한번은 가뭄이 이어지는 어느 날 허리가 반쯤 고꾸라진 할머니가 휠체어에 20ℓ나 되는 물통을 얹어서 힘겹게 오시다가 길에서 쉬고 있었다. 내가 인사를 하자 활짝 웃는 얼굴로 반겨 주면서 한마디 덧붙였다. “얘기 많이 들었어. 마을에 좋은 사람이 들어와야 하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무슨 뜻인지 알지 못했다. 내가 할머니한테 왜 집에서 힘들게 물을 가지고 오냐고, 우리 집에 지하수가 펑펑 나오니 그걸 쓰면 되잖냐고 했다. 그랬더니 우리가 이사 오기 전까지 이 집에는 마을 사람들이 발을 들이지 않아서 아예 생각도 안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지하수를 호수로 빼서 꼬부랑 할머니네 밭에 내다 주었다. 고추와 들깨 밭이 시원한 물로 흠뻑 젖어서 금세 생기를 되찾았다. 할머니는 무척 고마워했다. 그러면서 아주 조심스럽게, 넓은 밭에 듣는 사람도 없는데 작은 목소리로 일러 주었다. “그 집에는 마을 사람들이 안 가! 얼마나 인색한지 밭에 물 한 번 쓰게 해 달라고 부탁하면 자기들 한 달 사용하는 전기세를 몽땅 물으라고 했어. 그게 몇만 원이야. 사람이 그렇게 살면 안 돼! 그래서 앞집에 지하수가 잘 나오는 걸 알면서도 부탁하지 않았어. 밖에서 들어온 사람들이 어떻게 말할지도 모르고. 그런데 먼저 물을 주겠다고 해서 얼마나 고마운지. 우리 밭에 열무 나면 뽑아 가서 열무김치 담가 먹어. 들깨도 한 가지에 한 개나 두 개씩 따서 먹어. 한 가지에서 너무 많이 따면 열매가 잘 안 열리거든.” 할머니도 내가 물을 내준 데 대해서 기꺼이 마음을 내주었다. 그제야 안 일이지만 마을 사람들이 내가 세 들어 사는 집에 발을 들이기 어려웠던 것이다. 나는 원래 그런 줄 알고 지냈는데 다 까닭이 있었다. 시골 생활은 내가 막연히 상상하던 낭만이나 꿈같은 생활만을 통해서가 아니라 이웃과 소통하면서 아름다워진다는 걸 갈수록 깨달았다. 윗집 할머니가 콩과 여러 가지 씨앗을 갖다주었다. 그러면서 씨앗을 심을 시기와 어떻게 심어야 하는지, 언제쯤에 비료를 넣어 줘야 하는지 꼼꼼하게 설명해 주었다. 원주민들의 넉넉함이 농사를 짓는 데뿐 아니라 생활에도 도움이 많이 되었다. 마음을 먼저 내어 준 그 보답으로 가끔 모시고 나들이를 하면 노부부는 무척 좋아하고, 먹고살려고 일만 하느라 놀러 한번 제대로 다니지 못했다고 넋두리도 하셨다. 그렇게 다녀오고 나면 할머니는 또 밭에서 수확한 팥이며 콩이며 지인이 주었다는 액즙까지 골고루 갖다주었다. 부침개라도 부치거나 빵이라도 사 오면 약소하나마 나눠 먹으면서 서로 안부를 묻고, 제대로 잘 자라지 않는 작물에 관해 물어 조언을 받기도 했다. 모르는 걸 물으면 귀찮아할 줄 알고 조심스러웠는데, 오히려 즐거워하면서 대견해했다. 자신이 여태껏 살아온 삶을 누군가에게 가르쳐 주는 것만으로도 즐거우셨나 보다. 세대를 넘어 마음을 나눌 마을 동료가 생겼다는 데서 나 역시 평화를 느꼈다. 마트에서 고르던 채소를 내 손으로 키우면서 만난 세계 텃밭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마트에서 사 먹던 작물을 내 손으로 키워 낼 수 있었다. 그러니까 장을 보고 치르는 돈이 훨씬 적어지고 생활비 부담도 줄었다. 내 노등으로 키워서 먹는다는 사실도 신기하고 흐뭇하지만, 무엇보다도 밭에서 시간을 보내며 작물이 자라는 모습을 보는 게 무척 보람을 느끼게 했다. 작은 씨앗에서 수많은 열매가 매달리고, 푸성귀가 무럭무럭 자라나는 걸 보면 작은 씨앗 하나가 온 우주를 품고 있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이 작은 씨앗에서 어떻게 식물이 무럭무럭 자라나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작물의 성장 세계는 내가 알지 못한 무한한 세계였다. 씨앗에서 싹이 트고, 작물이 자라면 내가 반찬으로 뜯어 먹고, 밭에 남은 작물은 저 혼자 자라서 꽃을 피웠다. 그 사이에도 온갖 벌레들이 작물에 들러붙기도 하고, 나비나 벌들이 꿀을 빠느라 부지런히 날아다녔다. 식물에게는 괴로움이면서 즐거움일까. 이 시간을 보낸 덕에 열매를 맺고, 또 작은 씨앗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내 먹거리를 길러 먹는 삶을 통해 자연 순환 원리가 얼마나 위대한지,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한 세계를 경험하게 되었고 그 덕에 창작 의욕이 새롭게 일어났다. 내 마음에 창작 씨앗이 들어오고, 그 씨앗은 내 마음속에서 무럭무럭 자라 꽃을 피웠다. 물론 포기하고 싶은 순간순간이 오기도 했지만 잘 참으며 열심히 작업했다. 그러고 나니까 결국은 열매를 맺었다. 식물이 자라는 과정과 작은 생각 씨앗이 책으로 나오는 과정이 비슷하다는 걸 새삼스럽게 깨닫게 되어서일까. 글 쓰는 일이 보람되고 견딜 만했다. 흙을 맨손으로 만지면서 나도 모르게 무아의 지경에 빠지게 되었다. 흙이 손에 묻으면서 지저분해지는 게 아니라 계속 만지다 보니까 오히려 내 마음을 정화해 주었다. 살아오면서 겪은 수많은 일들, 그 가운데서도 행복했던 기억보다 속상하고 슬픈 일이 느닷없이 불쑥불쑥 떠올랐다. 나를 슬프게 속상하게 했던 사람들, 왜 그때 바로바로 문제를 제기하고 부당함을 말하지 못했는지 뒤늦게 후회가 되었다. 후회가 내 마음에 상처로 자리 잡고 있었나 보다. 그럴 때 흙을 만지면 상처도 나쁜 기억도 속상했던 일도 시나브로 치유되어 갔다. 일부러 흙을 만지고 싶어 장갑을 끼지 않곤 했는데 엉뚱한 부작용도 생겼다. 면사무소에서 무인발급기로 서류를 떼려고 했는데 기계가 내 엄지손가락 지문을 인식하지 못했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손이 거칠어서 지문이 찍히지 않는다는 말을 공무원에게서 듣고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래 비용을 두 배나 치르고 서류를 떼곤 했다. 장갑을 껴야지 했지만 흙만 보면 맨손으로 만졌다. 내 오랜 도시의 때를 벗기고 싶은 마음이 더 컸나 보다. 맨손으로 흙을 만지면 마음이 깨끗해지는 듯했다. 나중에는 손가락이 닳아서 어쩔 수 없이 장갑을 끼기 시작했다. 쓰레기, 쓰레기, 쓰레기 마을 쓰레기 버리는 요일을 정해서 같이 버리자고 제안했다. 그러면 분리배출도 할 수 있고, 쓰레기도 불에 태우는 번거로움을 피할 수 있다고 구구절절 설명했다. 그래도 시큰둥하기에 날씨와 미세먼지 이야기를 꺼냈다. “해마다 장마 아니면 가뭄이어서 농사짓기 힘들잖아요. 날씨가 언제 어떻게 될지 몰라서 늘 걱정하면서요. 미세먼지가 너무 많아서 겨울에는 밖에 나가기도 힘들고요.” “아이그, 그것 좀 태우고 버린다고 날씨가 이럴까 봐.” 어른들은 날씨와 공기와 쓰레기 분리배출 사이 관계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괜히 어른들한테 잘난 척한 건 아닐까 염려가 되기도 했다. 주거지를 완전히 농사짓는 시골로 옮기고 나서는 기후 문제와 공기 오염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공부를 했다. 언젠가는 환경문제에 대해 글을 쓰겠다고 마음먹고는 차일피일 미루었는데, 막상 시골로 오니까 피부로 눈으로 바로 느낄 수 있었다. 그 심각성도 더 절실하게 깨닫게 되고. 도시에서는 하늘이 좀 흐린 것쯤으로, 비가 좀 많이 내린다는 것쯤으로, 뉴스에서나 책으로 환경문제의 심각성을 알았다. 그런데 농사를 지어 보고 자연 속으로 들어와 보니까 환경이 얼마나 절실하게 나빠져 가는지 보여 불안하기까지 했다. 마을 할머니들은 밭에 뿌릴 종자 씨는 적어도 3년 정도는 잘 보관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해마다 장마와 가뭄이 번갈아 바뀌면서 자칫 종자도 건지지 못하는 세상이 올지도 몰랐다. 살다 보니까 여러 가지 문제와 부딪혔다. 그 가운데 하나가 쓰레기 문제다. 음식물은 텃밭에 흙을 파고 묻어서 거름으로 만들 수 있지만 다른 쓰레기는 언제 처리해야 하는지 몰랐다. 사람들에게 물어도 쓰레기 수거 차가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면사무소에 전화를 거니까 청소과가 따로 있다면서 전화번호를 가르쳐 주었다. 두 번이나 전화를 바꿔 가면서 언제 쓰레기를 거둬 가느냐고 물었는데, 뜻밖의 얘기를 들었다. 내가 사는 마을에는 쓰레기 수거차가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무도 쓰레기를 따로 버리지 않아서 차가 들어오지 않는다고. 쓰레기를 분리해서 버리는 게 여태껏 당연한 거라고 여겼는데 여기서는 번거롭게 전화를 걸어야 하고, 요일과 대충 시간을 잡아야 버릴 수 있었다. 어찌나 불편하던지 마을 할머니들한테 쓰레기는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다. 빈 병은 모아 놓으면 고물상에서 가져가고, 음식물은 밭에서 썩혀 거름으로 이용하고, 다른 비닐이나 생활 쓰레기는 통에 넣고 한꺼번에 불 질러 태운다는 것이다. 시골에서 농사지으며 사는 사람들은 과학이 아니라 몸으로 깨달으면서 자연의 변화를 더 빨리 깨닫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날씨와 쓰레기 분리배출 문제는 따로라고 여기는 데는 변함이 없었다. 환경문제를 처음 접한 게 90년대 초반이었다. 최열 선생님이 ‘공해추방위원회’를 만들어 환경문제 시민 교실을 열었다. 지금 ‘환경연합’이 생기기 전에 생긴 시민단체였다. 아직 문학 수업을 하고 있을 때였는데, 그런 시민 교실 강의가 있으니 함께 공부하러 가 보자고 여럿이 의견을 모았지만 결국은 나와 후배 둘이서만 등록을 했다. 원자력, 핵폭발, 공해 문제를 다룬 강연은 내게 큰 충격을 주었지만, 아직 우리 사회에서는 환경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마치 남의 나라에서만 일어나는 문제로 여겼다. 물론 그즈음에 대구 낙동강 페놀 사건이 한바탕 언론을 달구었지만 한 지역에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으로만 보아 넘겼다. 환경문제 공부를 하러 다닌다니까 오히려 주위에서는 쓸데없는 공부를 다닌다면서 차라리 그 돈으로 술이나 먹자고 했다. 그때는 그런 분위기였다. 그래도 환경 공부를 했다고 실천에 옮기겠다면서 샴푸와 린스를 사용하지 않고 세숫비누로 머리를 감았다. 될 수 있으면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고 물건도 전기도 물도 아껴야 한다는 걸 실천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얼마 가지 못해 세숫비누로 감은 머리는 기름기가 많아서 찝찝해 다시 샴푸를 사용하고, 일회용품도 문명의 혜택이라며 편리한 대로 썼다. 물과 전기를 아껴야 한다는 건 어릴 적부터 몸에 익은 습관이었지만, 다른 것은 대충 넘겼다. 환경문제를 강연이나 책을 통해 머리로만 느꼈지, 피부에 와 닿게 내 문제로 여기지 못한 까닭이 아니었을까. 시골로 들어오니 내가 만든 쓰레기를 온전히 다 볼 수 있었다. 더군다나 서해와 가까운 곳이라 겨울철만 되면 미세먼지가 점점 더 하늘을 잿빛으로 뒤덮는 게 눈에 띄었다. 눈에 보이니 그제야 심각성을 좀 느끼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해도 한꺼번에 모든 걸 바꾸는 건 정말 어려웠다. 아무리 텃밭에서 먹거리를 생산한다지만 여전히 마트에서도 장을 봐야 하는데, 대파 한 단, 호박 하나를 사도 비닐봉지에 포장되어 있지 않나. 고기를 사도 생선을 사도 두부를 사도 비닐이나 스티로폼 상자에 담겨 있는데 마트에서 장을 보면 어찌 쓰레기를 안 만드나. 예전에는 포장되어 나온 식품을 당연하게 생각했는데 막상 신경을 쓰니까 포장지가 많아도 너무 많았다. 그래서 줄일 수 있는 만큼 줄이려고 애썼다. 비닐봉지도 처음에는 10분의 1로 줄여 보자고 했는데, 비닐 홍수 시대에 살다 보니 금세 첫 목표는 이루었다. 그다음은 20분의 1로 줄였지만, 그래도 몽땅 줄일 수는 없었다. 대신 비닐봉지는 재활용할 수 있게 양념이나 다른 이물질이 묻었으면 깨끗이 씻어서 분리해 버렸다. 그런데 포장재를 깨끗이 씻느라 흘러간 물 역시 또 다른 쓰레기가 된다고, 하수 처리에도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쓰인다고, 게다가 분리배출한 생활폐기물이 실제 재활용되는 비율이 60%도 채 안 된다32고 하니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혼란스러웠다. 분리배출을 잘하는 일보다 덜 사고 쓰레기를 덜 만드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하게 된다. 자연스레 배달 음식을 일체 사 먹지 않게 되었다. 물론 손쉽게 사 먹을 수도 없는 조건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치킨은 두 마리 시켜야 읍내에서 배달해 준다는 것이다. 굳이 그렇게까지 아득바득 먹어야 하는지 나 자신에게 의문이 들었다. 피자, 족발, 치킨 등등 먹고 싶으면 언제든지 전화 한 통으로 배달해서 손쉽게 먹던 습관에서 이 기회에 완전히 끊어 버리자는 생각이 들었다. 여태껏 맛있게 먹던 음식을 한꺼번에 끊자니 자꾸 눈앞에서 어른거렸다. 배달을 시켜 먹던 음식에서 가끔 먹고 싶은 욕구가 솟으면 직접 찾아가서 사 왔다. 먹기가 불편해지니까 사 먹는 음식을 많이 줄일 수 있었고, 내 손으로 직접 마련해 먹기 시작했다. 밖에서 사 먹는 음식보다는 솔직히 맛이 덜했다. 온갖 양념과 사람들 입맛에 착 달라붙게 연구해서 만든 음식을 어떻게 따라가겠나 생각하고, 건강과 환경을 챙긴 대신 중독성 있는 양념을 좀 포기하자고 마음먹었다. 배달 음식을 끊고 나자 이번에는 미용실에 꼭 가서 머리카락을 잘라야 하는지 또 의문이 들었다. 머리는 미용실에 가서 해야 한다는 공식이 깨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집에서 스스로 가위로 자르고 들쭉날쭉한 뒤쪽 머리카락은 옆지기에게 부탁해서 잘랐다. 내가 미용실에 드나들지 않자 옆지기도 내게 머리카락을 정리해 달라고 부탁했다. 인터넷에서 머리 자르는 기계를 사서 앞머리 쪽은 남편이 자르고, 뒤에 보이지 않는 쪽은 내가 정리해 주었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솜씨도 늘었다. 시골에서 이렇게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늘어나니 생활비를 줄일 수 있었다. 서로 머리카락을 잘라 주면서 장난도 치고, 얼마나 예쁜지 거울을 들여다보며 킥킥거렸다. 내 존재는 내가 결정한다 2년쯤 지나자 조금씩 시골 생활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다시는 도시로 나가서 아파트에서 살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도시 집을 정리하고, 세 얻은 집에서 나와 완전히 시골집으로 이사를 했다. 이때쯤에 농사를 더 늘리면서 식량을 자급자족 형태로 바꾸었다. 세상살이는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예전에는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게 지금은 꼭 맞춰 살아야 할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사람들을 만날 때는 될 수 있으면 화장을 해야 하고, 옷과 신발을 갖춰 입어야 하고, 남에게 흠 잡히지 않겠다면서 외출을 할 때 거울이라도 한 번 더 들여다보는 도시 생활. 그게 당연한 건 줄 알았다. 그러나 내 몸에 피부처럼 배인 습관을 하나둘씩 벗어 내면서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쓸데없이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내 모습 그대로 편하게 대할 수 있어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물론 도시에 살면서 누가 억지로 그렇게 꾸미고 남에게 잘 보여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사회 분위기와 스스로 만든 굴레에 벗어나지 못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내가 생긴 대로 나를 드러내기, 외모와 옷으로 평가하는 문화에서 스스로 벗어나기, 겉을 꾸미는 일보다 내 색깔을 찾는 일에 집중하기, 그리고 화학물질로 내 몸을 망가뜨리지 않기. 내 시골살이에서 찾은 지혜들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그동안 미루어 오던 환경문제에 관한 책을 쓰기 시작했다. 나만이 알고 나만이 실천할 게 아니라, 널리 알리면서 함께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하나씩 실천해 나가면 지구 평균기온이 오르는 걸 조금이라도 더 늦출 수 있지 않을까. 도시 삶을 끊으려고 맘먹기까지 많은 핑곗거리와 제약 조건이 퐁퐁 튀어나올 거라는 걸 알고 있다. 그럴 때 나에게 진지하게 물어보자. 내 커리어가 내 옆에서 나와 함께 늙어 가는 사람들보다 중요한가? 내 식욕이 나를 지탱하는 이 지구보다 중요한가? 내 외모가 내 건강보다 중요한가? 좀 더 편리한 삶이 내 생존보다 중요한가? 우리 생존을 위협하는 기후위기 상황에서 무엇이 더 중요한지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답하기를 두려워하는 것뿐. 담대한 결론에 도달하는 일은 이미 우리 안에서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 이젠 마음으로 품고 있던 생각에서 실천을 향해 발걸음을 떼면 된다. 그러면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먼저 내 마음과 몸의 자유로움을 얻을 수 있고, 다른 생명을 덜 해칠 수 있고, 또 지구 환경 위기를 해결해 나가는 데 기꺼이 동참할 수 있다. 지금 힘들고 어렵고 세상이 막막하더라도 내 존재의 권리와 행복을 위해서 기꺼이 희망을 품어야 한다. 누가 이렇게 말한 게 내게는 큰 힘이 되었다. ‘오늘의 나는 내일의 나보다도 더 젊어서 무슨 일인가에 원하는 게 있으면 충분히 도전해 볼 수 있다’고. 도전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지금 내 현실이 막막하고 벗어날 수 없는 감옥이라고 여겨지면, 그 감옥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는 것도 용기이다. 결국은 환경도 나이도 경제적 형편도 내 모든 도전을 지배할 수는 없다. 환경이 힘들고 어렵고 막막하면 그 환경을 바꾸어 사는 삶에 도전해야 한다. 가만히 그대로 환경이 바뀌기를 바라기만 하면, 그런 행운은 좀처럼 오지 않는다.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먼저 찬찬히 살펴보아야 한다. 내가 원하는 삶이 한꺼번에 이루어지기를 바라지만 말고, 그 방향을 향해 한 발자국 먼저 내딛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나는 내 인생의 주인공이고, 내 존재는 내가 결정한다는 걸 늘 명심해야 한다. 오늘날을 사는 모든 사람에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 김정희 ◌ 귀촌해 농사를 지으며 글을 쓰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도시라는 욕망과 경쟁에서 벗어나고파 시골을 택했는데, 그동안 머리와 마음으로만 살던 삶에서 몸으로 사는 노동을 병행하는 삶을 이루었습니다. 실천하지 않고 머리로만 사는 삶은 건강할 수 없다고 늘 생각해 왔거든요. 그동안 역사에 관심이 많아 <<국화>>, <<야시골 미륵이>>, <<노근리 그 해 여름>>, <<대추리 아이들>>, <<곡계굴의 전설>> 등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다룬 작품들을 꾸준히 써 왔습니다. 농사를 짓고 살면서 환경 문제에 절실함을 느껴 <<후쿠시마의 눈물>>, <<시화호의 기적>>, <<비닐봉지가 코끼리를 잡아먹었어요>>, <<별이네 옥수수밭 손님들>>, <<아마존의 수호자 라오니 추장>> 등 여러 책을 썼습니다. ** 여러 각주가 있으나 <지리산인> 지면엔 표기하지 않았습니다. 책에서 확인해 주세요. <<벗자편지>> _자급하는 삶을 어렵게 하는 허울을 벗어던지자 • 지은이 : 김혜련, 칩코, 똥폼, 문홍현경, 풀, 상이, 아랑, 김정희 • 펴낸 곳 : 니은기역 • 펴낸 날 : 2022년 11월 22일 • 판형 120*188 / 쪽수 256쪽 • ISBN 979-11-968328-4-1 (03330) 글이 마음에 드신 분은, 동네 도서관에 신청해서 여러 사람이 볼 수 있게 해 주세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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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수진 04-20 09:00

    [반달곰1%가게유람기] 일상을 아름답게 하는 작은 미술관, 도엔효

    [반달곰1%가게유람기] 일상을 아름답게 하는 작은 미술관, 도엔효 벚꽃이 피기 시작한 3월의 어느 봄 날, 하동 화개에 자리한 작은미술관 ‘도엔효’를 찾았다. 화개초등학교와 화개중학교 사이에 자리한 이 곳은 예전 구멍가게 자리였다. 아이들의 참새 방앗간이었을 그 곳에 이제는 하동을 찾은 여행객, 지역의 예술가, 주인장과의 찻자리가 그리운 이웃들이 한가로이 드나든다. 마을 이웃과 함께 둘러앉은 도엔효의 주인장 효원님은 향긋하게 우려낸 차의 첫 잔을 만물에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한 켠에 올리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제 고향은 함양이에요. 30년 전 서울에 살 때 학교 선배가 차를 우려서 내주었는데 맛이 아주 부드럽고 향기가 순했어요. 선배에게 ‘이 차 어디서 났느냐.’ 물었더니 하동이라고 해서 그 길로 바로 하동으로 내려와 ‘도재명차’에 갔죠. 거기서 다음날 해가 뜰 때 까지 밤새 차를 마셨는데 그 이후로 어디에 살든 5월이 되면 바람결에 차 향기가 나는 것만 같았어요. 지리산과 섬진강, 그리고 차에 매료당했던 것 같아요. 봄에 이 곳에 오지 않으면 마치 상사병에 걸린 것처럼 몸이 아프곤 했기 때문에 아무리 바빠도 봄이 가기 전에 여기 와서 차 향기를 맡고 갔어요. 그러다 29살 때 짐을 싸서 하동으로 내려왔죠.” 자연스러운 재료로 만들어진 일상을 아름답게 하는 물건들 문을 연지 12년이 된 작은 미술관 도엔효는 리넨으로 만든 옷과 소품, 흙으로 빚은 도자기와 지리산 자락에 사는 작가들의 다양한 작품을 전시, 판매하고 있다. ‘수돗가나 강가에 버려도 탈이 없는 재료로 만든다.’고 소개하는 정성어린 물건들이 참 따스하고 곱다. 도엔효에 있는 리넨 옷과 소품은 주인장인 효원님이 자연스러운 소재의 원단으로 만든 것들이다. “어릴 때부터 ‘산에 살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어요. ‘산에서 뭘 해서 먹고 살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을 때 잉여적인 일을 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전쟁이 나도 옷을 짓는 일은 필요하겠더라고요. 한 글자로 되어있는 단어들이 인간의 삶에 근원적으로 닿아있다고 생각해요. 밥, 옷, 집, 몸 같은 것들이요. 이 중에서 저는 손쓰는 것을 좋아하니 옷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처음에는 천연염색 원단으로 이불을 만들다가 소품을 하게 되었고 옷도 만들게 되었어요. 옷은 인간의 ‘예’를 갖추는 수단이기도 해서 제가 살아가고자 하는 방향과 더 맞다 생각했어요. 옷을 만들 때 되도록 합성섬유가 들어가지 않는 천연 섬유를 사용해서 만들고 있어요. 이것이 버려졌을 때 어떨지 생각해요. 옷으로 인한 환경 악영향이 아주 크니까요. 겨울옷에 들어가는 털은 가끔 폴리에스테르를 쓰기도 해요. 그렇다고 동물 털을 사용하고 싶지는 않거든요.” 효원님이 직접 만든 옷과 소품들은 도엔효 공간 안에서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과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때로는 편안한 ‘배경’이 되고, 때로는 일상을 아름답게 하는 ‘주인공’이 되기도 하면서. “아무리 좋은 물건을 가지고 있어도 그것이 제 자리에 있을 때 충만하다고 느껴요. 패브릭은 ‘배경’이예요. 배경만 가지고 공간을 꾸미고 싶지 않았어요. 작품이나 조명이 주인공이 되기도 하지요. 좋아하는 것들로 조화롭게 가꾸어나가고 있어요. 컵받침은 컵 아래에 놓였을 때 조화로운 거니까요.” ‘삶’을 닦는 일터 ‘삶’과 ‘일’의 방향성이 같기를 바란다는 효원님은 일상에서 끝없이 스스로를 살피고 매 순간 올곧게 존재하는 사람처럼 평화로워 보였다. 물건을 파는 직업을 가졌지만 사용하지 않을 물건은 판매하고 싶지 않다는 말이 인상적이다. “이곳에 살아가며 자연에 온전히 녹아든다고 느껴요. 덕분에 흔들리지 않는 중심이 유지되고 있다 생각하지만 작은 어려움들은 늘 있어요. 이런 일을 하면 집에 짐이 참 많은데 그럴 때 고민이 되기도 해요. ‘이렇게 많은 짐을 짊어지고 사는 게 맞을까?’ 물건을 파는 일을 하는 것에 대해서도 늘 생각해보게 되죠. ‘손님들이 이 옷을 사가서 잘 입으실까?’ 안 입으실 거면 사지 말라고 하기도 해요. 기분 나빠하는 손님도 계시지만 저는 물건을 사서 안 입고 안 쓴다고 하면 마음이 무거워져요. 물건을 만들 때 일상에서 잘 쓰일지 늘 고민해요. 물건도 잘 써야 생기가 생기니 만물이 잘 쓰여 지면 좋겠어요. 물건에 전혀 관심이 없는 손님이 오시거나 그냥 차 한 잔만 하고 가셔도 괜찮아요. 나답게 번 적은 돈으로 나답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렇게 잘 되지 않을 때도 있겠지만 스스로 알아차리려고 매 순간 노력하고 있어요.” 반달곰을 사랑하는 1% 가게 도엔효에 들어서는 입구에는 ‘반달곰을 사랑하는 1%가게’임을 알리는 포스터가 이 공간을 찾는 사람들을 반긴다. 지리산과 섬진강을 사랑하고 누구에게든 평안을 바라며 차를 내어주는 도엔효가 ‘반달곰을 사랑하는 1%가게’가 된 것은 어쩌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지 않을까? 버려도 탈이 없는 재료로 만든 아름다운 것들로 채워진 공간에 지리산과 반달곰을 사랑하는, 그러니까 ‘자연스러운 삶’을 사랑하는 여행객들이 종종 찾아온다. “조용하게 사는 편이지만 목소리 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는 참여하기도 해요. 반달곰 가게는 구례에 사시는 윤주옥님과의 인연으로 시작하게 되었는데 고민할 것도 없이 함께 하겠다고 했죠. 이런 연대는 언제든 환영입니다. ‘깨어있다’라는 것이 어느 한 부분에만 국한될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해요. 만물에 깨어있다면 삶의 방향이 ‘생명’으로 확장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인 것 같아요. 불교의 ‘연기’라는 건 세상 만물이 연결되어 있는 거잖아요. 나 혼자만 방 안에서 깨어있을 수 없죠. 내가 마시는 물, 공기, 물건이 모두 연결되어 있으니까요. 동물권에 대해서도 자연스럽게 이르게 되는 것 같아요.” 반달곰을 사랑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단순히 ‘반달곰’을 좋아한다거나 ‘동물’의 개체를 지키고 서식 환경을 개선해야한다는 뜻만은 아닐 테다. 반달곰을 사랑한다는 것은 “필요하지 않은 물건은 사지 않아도 괜찮습니다.”라고 말하며 향긋한 차 한 잔 내어주는 평화로운 마음과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혹은 세상의 소중한 것들을 위해 크고 작은 마음을 담아 연대하고 기꺼이 자신의 공간과 이익을 나누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반달곰1%는 지리산권 가게들이 자발적으로 진행하는 공존프로그램이다. 반달곰1% 가게에 가면 반달가슴곰을 자연스럽게 만나고, 특별히 계획하지 않아도 반달가슴곰 보호활동에 참여하게 된다. 2021년 5개 가게로 시작한 반달곰1%는 2026년 현재 구례 11곳, 하동 11곳으로 늘어났다. 반달곰1%는 ‘유랑인증서’를 발행하고 있는데, 손님들이 반달곰1% 가게에 들러 물품을 먹거나 마시거나 구입하면, 반달곰1% 가게들은 수익금의 1%를 사단법인 반달곰친구들에 기부하고, 그 기부금이 모아지면 사단법인 반달곰친구들과 논의하여 올무수거 활동, 무인센서카메라 구입 등 반달곰 보전활동을 위해 쓰기로 약속하였다.] 글쓴이_ 정수진 하동으로 이주한 지 4년이 되었습니다. 겨울이 오면 남편과 함께 인도와 네팔에서 NGO 활동가로 살아가고, 꽃피는 봄이 오면 하동으로 돌아와 민박집을 엽니다. 텃밭을 가꾸고 이웃 농부들의 농산물이 잘 쓰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열심히 요리하고 나누어 먹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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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촉 04-01 15:00

    구례 곰 마루쉼터에 사는 곰을 찾아서

    구례 곰 마루쉼터에 사는 곰을 찾아서 커피박을 통한 곰의 감각 풍부화를 위하여 월요일이면 커피박을 싣고 구례 곰 마루 쉼터(이하 곰 쉼터)로 간다. 야생을 모르는 사육되던 곰의 풍부화를 위한 커피박, 커피박은 말 그대로 추출되고 남은 커피의 껍질이자 찌꺼기다. 후각이 발달한 곰에게 커피박 제공은 곰의 감각 풍부화로 후각과 촉각을 자극한다. 풍부화란 보호시설이나 동물원에 있는 곰이 자연에 가까운 행동을 하여 삶의 질을 높이고 스트레스를 줄이도록 돕는 활동이다. 쉽게 말해 본능을 자극하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철창에 갇힌 생명의 감각을 깨우고 무기력한 곰에게 활력을 주는 활동이다. 무기력한 곰을 바라보는 일은 무기력한 일이자 고통이다. 한 달 전 지리산 문수사에서 본 반달곰이 울부짖는 분노어린 발작과 철창을 부여잡은 곰의 발바닥이, 아기곰의 눈망울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커피박을 수거하는 일은 카페 주인의 마음과 그 만의 향기가 담겨있다. 커피가 제 일을 다 하고 껍질이 건조되는 과정은 곰으로 가는 기도다. 커피박에 희끗희끗한 점이 커피 일부이기를 바라며 커피박을 수거한다. 커피박을 건조하는 카페 주인의 손길은 숭고함이 전해진다. 곰에게 가는 돌봄 하나하나가 모여 커피박이 되기까지의 시간은 숨구멍을 통해 건강한 커피박이 탄생한다. 커피가 곰의 후각을 살려 숲의 냄새 따라 먼 선조의 기억을 찾아가는 것이리라. 야생에서 태어나 자라야 할 곰이, 우리나라 사육곰으로 태어나 곰 쉼터에 있는 주옥이라는 곰을 CCTV를 통해 처음 만났다. 얼굴은 보지 못했다. 아니, 그녀의 등을, 뒷모습을, 어슬렁거리며 반복되는 걸음이 또한 그녀이기에, 얼굴을 모른다고 하지 않겠다. 그렇게 그녀를 만나고 임옥주 수의사에게 그녀에 관한 얘기를 들었다. 내내 곰은 느리게 느리게 목적 없는 배회를 하고 또 하고 나는 보고 또 볼 수밖에 없었다. 곰의 풍부화를 위해 커피박을 나르며 실은 내 삶이 풍부해지고 있음을 고백한다. 곰을 알아가고 생명을 존중하는 일, 곰에게 커피박을 나르는 일은 커피가 남긴 향기처럼, 건조된 커피의 빛과 색의 순간에 감사하며, 곰도 그 순간의 감각을 체험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사진 : 곰마루쉼터 제공) 커피박을 제공한 후 커피 향을 제일 좋아하는 곰이 청심이라는 것을 영상을 통해 알게 되었다. 얼굴에 커피박이 담긴 봉지를 비비고 만지고 냄새 맡는 청심이란 곰이 사랑스러웠다. 새로운 향과 촉감에 흠뻑 취한 그녀의 기분이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청심의 감각 풍부화 과정을 한번 상상을 해보시라. 한 곰이 새로운 것을 접하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인간과 전혀 다를 바 없는 한 생명의 감정과 행동을. 이제 커피의 눈물이 남긴 껍질과 향을 곰들과 공유하는 일. 곰의 야생성을 찾아 풍부화가 이루어지는 과정을 함께 지켜보자. 지리산 아래 살면서 지리산 아래 곰 쉼터로 찾아온 곰들을 환영하며 그들에게 커피박을 나른다. 일어나 곰아! 오늘도 멀리서 날아온 흙냄새, 꽃 향, 쓴맛과 초콜릿 향을 맡으며 곰에게 간다. 차 안 가득 향기로운 바람이 분다. 곰이 산길을 숲을 헤매고 산과 함께 할 날을 상상한다. 낙엽 바스락거리는 숲을 거닐 듯 네 발로 커피박과 노는 영상을 본다. 전생에 엄마 곰이 아기곰에게 알려준 생존의 기억을 찾아 커피야, 곰과 놀다 갈래? 도도 새침한 곰을 네 향으로 유혹해봐. 자연 속 자연의 일부로 곰이 곱답게 살아가도록 우리 함께 힘을 기울이자. 곰이 커피 향에 취한 순간은 곰의 배회를 잠재운다. 곰 쉼터로 오르는 경사로처럼 남아있는 사육 농장의 곰과 문수사 곰이 곰마루 쉼터로 옮겨지는 일 또한 숙제로 남아있다. 구례 읍내의 카페 및 음식점, 지리산오여사, 둥둥, 느긋한 쌀빵, 봉서리책방, 지인카페, 호이요, 오차커피공방, 구례가, 구례자연드림시네마 카페 순으로 커피박을 수거하여 구례 곰마루 쉼터로 달린다. 달리는 길에 벚꽃이 흩날리며 꽃비를 내린다. 이처럼 행복한 일이 또 없다. 이 기분이 커피박을 제공하는 카페와 음식점에 전해지기를 바라며 또한 그들에게 고마운 마음 가득 담아 보낸다. 글쓴이 : 이촉 시인, 지리산人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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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홍현경 04-09 16:43

    [기후+마을] 벚꽃은 우릴 서럽게 한다

    벚꽃은 우릴 서럽게 한다 벚꽃은 올해도 아름답습니다. 한참 바라보았어요. 걸음을 멈추고 사진도 찍었어요. 개나리, 목련, 수선화, 산수유 다 한꺼번에 피었어요. 벌들은 혼란스럽겠지만, 풍경은 알록달록 별천지입니다. 저기 중동 땅에서는 전쟁 소식이 계속 밀려옵니다.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데도 나는 아무렇지 않게 아름다운 꽃들을 보고 있으니, 좀 민망합니다. 눈을 내리깔아요.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이에요. 아이 교복 빨고, 먼지 쓸고, 설거지하고, 냉장고 정리하고, 겨울 난 시금치 다듬고, 밥하고, 친정엄마랑 통화하고, 때 되면 돈도 벌고, 뭐 이러다 보면, 전쟁이니 기후위기니 머릿속에서 사라져요. 그러다 그렇게 일상을 아무렇지 않게 보내다가, 문득, 아주 잠깐, 생각이 납니다. 폭탄, 펑, 와르르. 그러면 또 잠시 멍해집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잠깐이에요. 나는 또 아무렇지 않게 일을 해요. 낮에 찍어 놓은 아름다운 꽃 사진을 천천히 넘겨 봐요. 세상은 아수라장인데 말이에요. 백석 시인의 시 수라가 떠오릅니다. 거미 새끼 하나 방바닥에 나린 것을 나는 아모 생각 없이 문밖으로 쓸어 버린다 / 차디찬 밤이다 어니젠가 새끼 거미 쓸려 나간 곳에 큰 거미가 왔다 / 나는 가슴이 짜릿한다 / 나는 또 큰 거미를 쓸어 문밖으로 버리며 / 찬 밖이라도 새끼 있는 데로 가라고 하며 서러워한다 이렇게 해서 아린 가슴이 싹기도 전이다 / 어데서 좁쌀 만한 알에서 가제 깨인 듯한 발이 채 서지도 못한 무척 적은 새끼 거미가 이번엔 큰 거미 없어진 곳으로 와서 아물거린다 / 나는 가슴이 메이는 듯하다 / 내 손에 오르기라도 하라고 나는 손을 내어 미나 분명히 울고불고할 이 작은 것은 나를 무서우이 달아나 버리며 나를 서럽게 한다 / 나는 이 작은 것을 고이 보드라운 종이에 받어 또 문밖으로 버리며 / 이것의 엄마와 누나나 형이 가까이 이것의 걱정을 하며 있다가 쉬이 만나기나 했으면 좋으련만 하고 슬퍼한다 -백석, 「수라(修羅)」 당장 전쟁을 막을 수 없을지라도 시 속의 화자는 추운 밤에 거미를 세 마리나 문밖으로 내보내요. 처음엔 아무 생각 없이 한 마리를 내보냈는데, 그다음으로 어미처럼 보이는 큰 거미가 나타났지 뭐예요. 자기가 아까 쓸어 내버린 거미의 어미인가 싶어 문밖으로 또 내보내요. 아까 그 새끼와 만나길 바라면서 말이죠. 죄책감을 느낀 것 같아요. 그런데 아뿔싸, 이번엔 아주 여린 새끼 거미가 나타났어요. 화자는 가슴이 메요. 밖이 춥지만, 그래도 가족 있는 곳이 좋겠다고 생각해 문밖으로 내보내려는데, 이 녀석이 자꾸 달아나요. 화자는 서러워해요. 결국 그 작고 여린 녀석을 종이에 받아 문밖으로 내버려요. 화자는 적극적으로 거미 가족을 따뜻한 방에서 살게 하지는 않았지만, 자기가 차디찬 밖으로 내버린 거미들을 생각하며 슬퍼해요. 우리가 적극적으로 전쟁을 멈추게 할 수는 없을지라도, 화자와 같은 심정으로 ‘가슴이 짜릿하고, 서럽고, 가슴이 메고, 슬퍼’하는 마음으로 전쟁이 멈추기를 바랄 수는 있을 것 같아요. 벚꽃을 보다가도, 돈을 벌다가도, 공부하다가도, 집안일을 하다가도, 잠시라도 멈춰서 ‘제발 전쟁이 멈추게 해 주세요.’ 하고 바랄 수 있어요. 그런 마음은 ‘제발, 지구 생명들이 더 사라지지 않게 해 주세요.’ 하고 비는 마음과 같을 거예요. 기후위기를 걱정하는 마음은 전쟁이 멈추길 바라는 마음과 연결될 테니까요.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는 살육과 착취가 사라지길 바라는 마음이겠지요. 우리는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보내고 있지만, 그럼에도, 잊지는 않으면 좋겠습니다. 전쟁이 멈추어야 한다는 마음,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마음, 죄 없는 생명이 죽어 나가는 이 지구 가열이 멈추길 바라는 마음, 이런 마음들을 꼭 붙들고 살면 좋겠습니다. 이 마음들이 모여 결국 전쟁을 막고, 독재자를 막고, 위법한 비상계엄을 막고, 일상의 폭력을 막을 수 있지 않겠어요? 적어도, 폭력배 무리와 한편이 되지 않겠다는, 그런 짓거리에 동조하지 않겠다는, 자기 선언은 할 수 있겠지요. 나는 나를 속이고, 그저 안도하는 걸까 그러나 때로는 이런 순간순간의 알아차림이, 고작 그것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고 헛웃음이 날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면 어느 소설 속 인물들, 예를 들면, 『몫』에 나오는 희영 같은 인물이 나와 내게 쏘아붙일 것만 같습니다. 나는 그런 사람이 되기 싫었어. 읽고 쓰는 것만으로 나는 어느 정도 내 몫을 했다, 하고 부채감 털어 버리고 사는 사람들 있잖아. 부정의를 비판하는 것만으로 자신이 정의롭다는 느낌을 얻고 영영 자신이 옳다는 생각만으로 사는 사람들. -최은영, 『몫』 나도 그런 사람인지 생각해 봅니다. 그저 읽고 쓰는 것만으로, 그저 순간순간 전쟁이 멈추길 바라는 기도를 올리는 것만으로, 그저 부정의를 비판하는 이들의 글에 좋아요를 누르는 것만으로, 마치 내가 내 몫을 다한 것처럼 안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렇게 휘청거리다가, 또 마음 한자리에서는 이런 생각이 올라옵니다. 시인 윤동주가 적극적으로 항일 투쟁에 앞장서지 않았더라도, 일제강점기 민족의 비극과 한을 제 몸에 담아 고뇌하고, 제 역할을 의심해 부끄러워하고 우리말 시를 써 온 그의 마음을 소극적이라고, 자기만족일 뿐이라고 깎아내릴 수 있겠는가 하는 물음말입니다. 날마다 하는 반성과 깨어 있음이야말로 나를, 그리고 서로를 붙들 힘이 되지 않는가, 또, 스스로 변질되지 않는 길이자, ‘자신이 옳다는 생각만으로 사는 사람’이 되지 않게 나를 닦을 수 있지 않겠는가…. 뭐, 이렇게 생각하면서 다시 종말을 늦출 이야기들에 귀를 기울이곤 합니다. 서러움과 부끄러움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다시 벚꽃을 봅니다. 여린 것에 몹쓸 짓을 한 것만 같아 느끼는 죄책감이나 고통받는 이들을 외면하여 드는 미안함과 부끄러움은 우리가 지금 이 아수라장 같은 세상에서 끝끝내 버리지 말아야 할 마음 조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런 마음을 잊지 않게 하는 것은 시 한 구절이기도 하고, 떨어지는 벚꽃잎 하나이기도 하고, 나를 사랑해 주는 한 사람이기도 하고, 학교에서 만나는 따뜻한 선생님의 손길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백석의 시 수라가 일제강점기 가족 공동체의 해체를 표현했다느니 어쩐다느니 하는 시 교육을 하고, 시험 문제로 내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국어 선생님들의 마음은 또 얼마나 서러울까요. 벚꽃이 나리는 계절에도 아름다움을 느낄 새 없이 시험 공부를 해야 하는 아이들의 마음은 어떨까요. 전쟁으로 사람이 죽는 일보다, 당장 내 주식이 떨어지는 것에 분노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어떻게 달랠 수 있을까요. 전쟁의 끔찍함과 아픔은 대체 언제 어떻게 전할 수 있을까요.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미국에도 깨어 있는 시민이 있어서, 트럼프의 전쟁을 비판하며 “노 킹”을 외치고, 전쟁에 참전하지 않겠다며 양심적 병역 거부를 신청하는 이들이 늘었다고 합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 권리 옹호를 위한 미국 시민단체인 ‘양심과 전쟁 센터’의 소장 마이크 프라이스너는 한 일간지 인터뷰에서 최근 양심적 병역 거부 문의가 무척 늘었는데, 전쟁에서 자신이 죽을까 봐 두렵다고 말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고, 모두 정당성이 없는 전쟁에서 ‘누군가를 죽이게 될까 봐’ 두려워했다고 말했습니다. 내가 누군가를 죽이게 될까 봐 드는 두려움, 그 두려운 마음이 모여 점점 커지면 좋겠습니다. 전쟁을 막는 마음은 큰 결단과 엄청난 선동에 의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날마다 느끼는 아주 작은 서러움과 서글픔과 부끄러움, 아픔, 슬픔, 두려움 같은 마음들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런 ‘서러운’ 마음을 잊지 않도록, 나 혼자만 잘 먹고 잘살면 된다는 생각에 빠지지 않도록, 나만 아니면 된다는 마음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그렇게 서로서로 붙잡을 수 있도록, 시 한 구절, 벚꽃 한 이파리, 사랑하는 이의 얼굴, 따뜻한 손길을 일상 사이사이에서 잊지 않아야겠습니다. 그리고, 생각해 봅니다. 선거철에 더러운 돈을 주고받는 사람들이 스스로 반성하지 못하는 세상에서는 전쟁이 멈추기 어렵다는 것을요. 전쟁은 마치 트럼프 같은 사람만 일으키는 것처럼 생각하지 않아야겠습니다. 내가 나날이 하는 선택들이 전쟁이 될 수 있음을, 부끄러움을 모르고 양심을 파는 일이 곧 전쟁의 씨앗임을 잊지 않아야겠습니다. 나치 군인들은 매일 1,000구가 넘는 유대인 시체를 불태우고, 집에 오면 착한 남편이자 아빠로서 가족에게 사랑이 담긴 편지를 썼다고 하지요. 아름다운 봄 사이사이 느끼는 서러움과 부끄러움이 우릴 구원하길 빌어 봅니다. 글쓴이 : 문홍현경 <자기 씨앗대로 산다>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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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달리 04-20 18:09

    [뒤웅박 씻나락] "침묵이 깨지고 다른 말이 자라는 동네책방 살롱드마고" _달리

    침묵이 깨지고 다른 말이 자라는 동네책방 살롱드마고 우리 책방 ‘살롱드마고’에는 세 가지가 없다. 입시용 참고서나 문제집, 대형서점의 베스트셀러 자리를 차지하는 자기계발서, 평생 권위를 누린 남성 문학가들의 작품집. 대신 다른 세 가지가 있다.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며 생각을 전환해 주는 인문서, 다양성과 페미니즘을 주제로 하여 소수자의 목소리가 담긴 장르별 도서들, 그리고 자기만의 언어로 세상을 한발 더 나아가게 하는 용감한 여자들의 이야기. 살롱드마고 곳곳에는 성소수자를 비롯해 누구나 있는 그대로의 존재로 환대하고 성폭력에 반대한다는 메시지가 책과 이미지로 전시되어 있다. 이곳에 방문하는 사람들이 “들어오는 순간 왠지 안전하게 느껴진다”고 말하는 이유는 아마 살롱드마고만의 북큐레이션과 지향이 공간에 그러한 색을 입히고, 힘을 더하기 때문일 것이다. 살롱드마고는 2015년 남원시 산내면에서 여성주의 문화단체 ‘문화기획달’의 활동공간이자, 마을 여성들을 위한 창작·교육 공간으로 출발했다. 이후 조직을 재구성하며 ‘협동조합마고’를 창립하고 2020년 활동지를 남원시청 옆으로 옮기면서, 살롱드마고를 지역서점이자 페미니즘 문화공간으로 다시 열게 되었다. 현재는 카페를 같이 운영하면서 책방지기들이 추천한 초대작가들의 작품과 뉴스레터를 볼 수 있는 ‘아티스트 테이블’, 기록을 테마로 하여 필사와 다꾸(다이어리 꾸미기)를 할 수 있는 ‘플레이 라운지’, CD로 청음을 하며 음악가들의 도서 큐레이션을 볼 수 있는 ‘뮤직 바’ 등 다채로운 구성으로 책방의 경험과 가능성을 확장했다. 독서와 기록, 퀴어에 관한 귀엽고 개성 있는 굿즈들도 판매해 보는 재미를 더한다. ‘살롱’은 과거 유럽에서 문학가와 예술가, 철학자들이 모여 토론하고 사교활동을 하는 장이었는데, 주로 귀족 여성이 공간의 주인이거나 모임을 주도했다고 한다. ‘마고’는 지리산 여신의 이름으로, 신성한 창조주로서의 힘을 상징한다. 우리는 살롱드마고가 그 이름들의 유래처럼 지역 여성들이 만나고, 공부하고, 각자의 재능과 창조성을 발휘하면서 함께 힘을 나누고 성장하는 곳이 되기를 바란다. 우리는 책방이 단순히 책 파는 곳을 넘어, 책을 매개로 사람들과 소통하고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가는 곳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남원 같은 농촌 마을 위주의 소도시 지역에서는 문화적 갈증과 욕구를 충분히 해소하기 어려운데, 살롱드마고에서 여는 글쓰기모임이나 독서모임, 타로 워크숍, 문화예술 프로그램은 시민들에게 일종의 해방구이자 실험무대가 된다. 특히 가부장적인 지역사회에서 성역할을 강요받는 여성들은 책방에서 같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대화하면서 잃었던 자신의 꿈과 목소리를 되찾는다. 몇 년 전 글쓰기모임 참여소감 중 “이제 주변을 배려하느라 나를 함부로 대하지 않겠다”는 말은 우리에게 큰 감동과 울림을 주었다. 공동체의 좁은 관계망 속에 ‘나’를 드러내기 힘들었던 사람들이 책방에 와 위로와 지지를 경험하고, 자신의 삶에서 다가오는 도전과 두려움에 맞설 힘을 키워가는 것이다. 미국의 장애인권여성운동가 해릴린 루소는 책 『나를 대단하다고 하지 마라』에서 “우리를 속박하는 것은 우리의 다름이 아니라 침묵”이라 했다. ‘다른’ 존재와 말을 품어주는 울타리가 넓어질수록 우리는 더 자유롭고 충만해지며 삶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살롱드마고의 고요한 서가에서, 경청을 약속하는 모임 테이블에서, 매일 침묵이 깨진다. 그곳에 ‘다른’ 말이 자란다. *한겨레신문에 기고했던 글 “지리산 여신 마고의 책방, ‘살롱드마고’에 없는 것”(2023.03.03.)을 <지리산人> 뒤웅박씻나락 칼럼에 맞게 수정한 글입니다. 글쓴이_달리 살롱드마고 책방지기 [뒤웅박 씻나락 칼럼] 지리산 자락 삶이 우리 사회의 대안적 삶의 모습이 되길 꿈꾸는 <지리산人>의 바람을 담아, 지리산 곳곳에 계신 씨앗 같은 이들의 삶과 생각을 싣고자 합니다. 칼럼 글쓴이의 일부 주장이 <지리산人>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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