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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의 봄
- 「섬진강 편지」 - 서울의 봄 “나는 조정에 벼슬하지 않았으므로 사직을 위해 죽어야 할 의리는 없다. 허나 나라가 오백 년간 사대부를 길렀으니, 이제 망국의 날을 맞아 죽는 선비 한 명이 없다면 그 또한 애통한 노릇 아니겠는가?” - 매천 황현 '서울의 봄' 영화를 보고 있는 구례자연드림에서 이십여 리 떨어진 곳에 매천사, 매천 황현선생의 사당이 있다. 지리산 산골까지 경술국치 소식이 전해진 1910년 9월 6일 절명시를 남기고 자결 순국한 매천의 목소리가 80여 년을 뛰어넘어 영화 속 1979년 12월 22일 반란의 밤에 울리는 한 군인 목소리와 겹쳐 들리는 전율을 느꼈다. “내 눈앞에서… 내 조국이 반란군한테 무너지고 있는데! 끝까지 항전하는 군인 하나 없다는 게… 그게 군대냐?” - 수도경비사령관 이태신 -매천 황현 - 영화 속의 수도경비사령관 이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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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1월 목동반 참여한 행아&차라의 방구일기
- <나무에 욕심생긴 차라의 방구일기>오늘은 목동반날이다. 한달에 한번이라 빠지면 더 아쉬운 날이다. 그래서 날씨가 어마무시 추워도 가야한다. 다행히 못난이쌤이 오전부터 나가면 추우니 사무실에서 피피티로 공부하겠다고 하셨다.오전수업은 기가막혔다. 숯에 대해 공부했는데 불과 친해진 인간들이 숯을 알게되고 철기시대로 입문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숯은 우리말로 ‘신성한 힘’이라는 뜻을 가졌다고...그 신성한 힘으로 총을 만들고 그 총을 쥔 자는 초능력자가 된다고 했다. 못난이쌤이 ‘사람이 염력을 쓸 수 있을까요?’라고 하니, ‘염력이 뭔데요~?’라고 질문이 나왔다. ‘움직이게 조종하는거죠.’ 여기저기서 웃었다. 나도 웃으면서 ‘제발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그냥은 못하지만 이게 있으면? 하고 손가락으로 총을 만들자 모두가 조용해졌다. 모두 나처럼 충격 먹었을까! 총을 쥔자는 염력을 쓸 수 있다는 것. 총을 들고 ‘일어나’ 하면 일어나게 할 수 있다는 것..!우린 이미 몇십키로를 단시간에 이동하는 초능력, 하늘을 나는 초능력, 몇천몇억년이 걸려 자연이 만들어놓은 물길을 몇개월만에 일자로 바꿔버리는 초능력을 부릴 수 있는 것이다. 기가 막히다. 언젠가 출근길에서 순간이동을 간절하게 원한 날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마치 개발이 충분히 된 곳에 이거저거를 더 놓는 마음과 같은 욕구라고 느껴졌다.덧붙여 이런 강한 힘을 가진 존재가 약한 존재를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헐크를 조심해야 하는게 아니라 헐크가 다른 존재를 다치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고, 그러니 우리가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숲을 해칠 수 있는 나는 경건해진 마음으로 밥을 먹고 오후에 연기암길을 걸었다. 조심스런 손길로 겨울눈을 만지고 바닥을 잘 보면서 걸었다.나무를 직접 보고 배우면 열정이 오른다. 이게 뭘까요 차라? 하시면 맞추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래도 세번째 듣는 수업이 되니 나무 이름들과는 조금 친해졌다. 난생처음듣는 나무들을 폭탄으로 들은 첫날은 내가 잘 들은게 맞나 띠용인 적이 많았는데! 못난이쌤에게 배운 방식에서 내 뇌를 거쳐 나무 특징을 안까무글라고 적어봤다.누워서 자라면 윤노리,마주나기에 가지끝이 잘린듯하면 고로쇠,근육질 서어,얇은 가로 피목에 동글동글 껍질이 벗겨지고 겨울눈이 45도각도로 탁탁탁되어있으면 느티,울렁울렁 사람주,엄마가 아이를 업은 겨울눈은 때죽,겨울눈이 닭발처럼 세개면 나도밤,겨울눈에 잎자루가 있으면 작살,콩모양으로 내려오면 자귀,지리산에 사는대도 모르겠으면 감,시멘트를 바른듯한 수피는 밤,허여멀겅 합다리,세로로 수피가 벗겨지는 푸조,겨울눈이 느티보다 짱크면 올벚,가로피목에 세로로 갈라진다는데 뭔지 모르겠으면 다 산뽕,벌집모양의 가지는 고광...성미가 급해서 섬세한 것을 관찰하는게 도무지 어려웠지만 오늘은 겨울눈도 자세히 보고 특징도 잘 외워졌다. 반복된 학습과 함께하는 분들 덕분일테다. 나무에 대한 멍충미를 발휘하며 웃고 또 웃은 하루다.1월에는 수업을 안하시니 12월에도 빠지지않고 꼭 복습해야지 또 나무를 만나러 가야지! 같이 도시락 나눠먹고 같이 춥고 같이 나무 공부해욤. <목동반 참여한 행아의 시>겨울눈 우리 모두 겨울눈 죽을 때까지 겨울눈작은 것을 오래 보고 있으면 지나친 것들이 비집고 들어 온다미꾸라지가 돌 사이를 지나가는 느낌이다 머릿속에서 소ㅑ악-~1시간 동안 다양한 겨울눈을 관찰하면서 그냥 흘려보내버렸던 것들에 대해서 생각했다겨울눈은 겨울을 나기 위해 꽃과 잎을 피우기 전에 마주 하거나 어긋나게 자리한 아주 작은 몸집들이다문득 나무의 시간과 내 삶의 시간이 같아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에스쳐 지나간 생각과 아름다움, 믿는 것들에 대한 믿음의 힘, 좋아하는 마음들을 지치지 않고 흐르는 대로 보듬고 싶다 했다.거의 모든 걸 얼어붙게 만드는 겨울에도 아주 작은 겨울눈을 지켜내는 나무와 뜨거운 흙의 운동처럼나에겐 나무의 시간과 같이 흐를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다시를 쓰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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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달레이스 다녀온 장이의 방구일기
- 지리산 코딱지들의 상냥한 안내를 통해 ‘수달레이스’라는 행사에 참여하게 되었다. 양반새라는 탐조모임에서 함께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는데 뭔가 달리기 경주를 연상시키는 이름이어서 루트를 빨리 달려야하는 것인가(?) 자신이 없어져 재차 물었더니 수달의 생태를 함께 관찰하는 것이라고 했다. 너무 신기했다. 우리에겐 ‘멸종위기종’으로 알려져있는 수달을 관찰하다니, 게다가 ‘수달아빠’가 안내해 준다니! 설레는 마음으로 레이스를 기다렸다.레이스를 기다리던 중 불현듯 떠오른 기억. 만나서는 안될 위치에서 우연히 만난 수달들이 떠올랐다. 몇 년 전 나는 엄마와 고군산열도라 불리는 섬 여행을 위해 새만금방조제를 건너고 있었고 사람의 방향을 가로지르며 건너는 한 가족이 있었다. 수달 가족이었다. 엄마로 보이는 수달과 2-3개월령 정도의 고양이 크기의 아기수달이 4-5마리 쯤 엄마를 따랐다. 방조제를 따라 주행하던 모든 차들은 일제히 속도를 줄여 수달 가족의 횡단을 가슴을 쓸어내리며 바라봤다. 길은 안전하게 건넜지만 도로 연석이 문제였다. 엄마수달은 연석을 오르는 방법 알려주려고 거의 부메랑 영상앱처럼 오르내림을 반복했지만 수달아기들에겐 그 높이가 너무 높았다. 야생동물이라 사람이 도와줄 수도 없었고 수달엄마도 어쩐일인지 목덜미를 잡고 끌고가진 않았다. 계속 오르락 내리락만 반복할뿐… 차량정체로 인해 그 자리를 빠져나갈 수 밖에 없었지만 가끔 그 수달 가족은 잘 건넜는지 건넜다면 그 다음엔 어디로 갔을지 궁금하던 차 였다.이후에 나는 귀촌을 해 구례에 정착했고, 비건이 되었고, 수라라는 영화를 보고 울었고 (그때도 그 수달 가족을 떠올렸고), 코딱지들을 포함해 자연과 동반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그리고 수달레이스를 통해 ‘안타까운 곳’에서 우연히 만나는 것이 아닌 ‘그들의 동네’에 내가 직접 방문해보게 된 것이다. 수달이 사는 곳에 내가 함부로 가도 될까… 수달에게 초대를 받은 것이 아니라 조금 걱정이 되긴 했다. 입장바꿔 생각하면 좀 싫을 것 같기도 해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수달의 생태를 관찰하고 기록하고 널리 공유하는 것이 난개발을 막을 수 있는 작은 근거라도 될 수 있을거라 생각하며 미안한 마음을 추스렸던 것 같다.과거의 기억과 복잡 미묘했던 감정이 사그러진 후 수달레이스가 시작되었다. 2일에 걸쳐 진행이 되었고 1일차는 수달의 생태에 대해 강의를 듣고 주요 수달 동네를 돌며 위치를 확인했고 2일차 새벽에 본격적인 수달 관찰을 했다. 생각보다 수달의 동네는 아주 가까웠다. 아니 우리의 동네와 다르지 않았다. 여기 이 개울에 이 저수지에 수달이 산다고!? 오, 이런~! 수달, 너를 만나면 나는 무슨 말을 해 줄까? 뭔가 잔뜩 흥분이 되었다. 우리 동네에 ‘수달학원’이 있는데 너랑은 상관없이 수학을 가르치더라… 라는 시시껄렁한 농담도 건네고 싶었다.1일차 탐색 때 수달의 동네 답게 수달의 흔적이 여기저기에서 발견되었다. 귀여운 발자국과 분변이었다. 수달아빠가 냄새를 권해 냄새를 맡았다. 똥냄새라기 보다는 국멸치 냄새였다. 신기했다. 오로지 물고기만 편식하는 수달 분변에서만 날 수 있는 냄새라고 한다. 그 다음부터 포인트에 가면 분변 먼저 찾고 냄새를 맡아 보기 시작했다. 멸치냄새가 나면 수달의 것이다.2일차 새벽에는 3-4개 조로 나누어 집중 관찰을 했다. 나는 지난 밤 분변이 많이 쌓여있던 개울의 모래톱을 담당했다. 차안에서 숨을 죽이고 수달을 기다렸지만 여명에 찰랑거리는 물멍에 빠질 뿐 수달이 나타나진 않았다. 수달아빠와 몇 가지 다른 포인트로 이동하여 관찰했지만 당일 수달의 모습은 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포인트 족족 멸치냄새가 그득한 그들의 귀여운 분변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서 아쉽거나 안타깝지 않았다. 오히려 기뻤다. 잘 살고 있구나. 안심이 되었다. 원래 밥 잘 먹고 똥 잘 싸는 것이 최고라고 생각하는지라. 흐흐흐.관찰을 마치고 내려오는 길에 흩어졌던 한 조에서 수달 두 마리를 보았다는 축전을 전달 받았다. 와! 축하드립니다. 무엇을 축하하는지는 잘 모르지만 우리는 모두 기뻤고 축하를 건넸다.모두 모두 마음을 다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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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반새 탐조 다녀온 여여의 방구일기
- 새 덕후, 수달 덕후, 그리고 이 두 덕후의 덕후들의 모임에 다녀왔다. 나는 지리산 자연 덕후들의 덕후들(@jirisan_nomad)의 덕후로서 모임에 참여했다. 수달 덕후는 수달의 똥을 추적하고, 수달 덕후의 덕후들은 수달 덕후의 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니고, 나는 수달 덕후의 덕후들의 꼬락서니를 관찰하는 식이었다. 관찰 결과는 흥미로웠다.먼저 새 관찰을 위해 섬진강 변에 모였다. 양수댐에 반대하는 새 모임_‘양반새’라는 이름으로 이미 몇 차례 탐조 모임을 했다는데, 대부분 양반이 목에 망원경 하나씩을 두르고 있었다. 어떤 양반은 새 도감을 옆구리에 끼고 왔고, 어떤 양반은 모든 새 이름을 받아 적겠다는 듯 안경을 추켜올리며 비장하게 노트를 펼쳤다.이들은 전라도 양반답게 새 이름으로 각자의 호를 만들었다. 작명 원리 설명을 듣는데 이들 학식의 깊이에 감탄해 무릎을 치지 않을 수 없었다! 우주의 이치를 깨달은 자만 이해한다는 동양 철학의 정수! 주역의 원리를 적용해 호를 지었으니! 그것은 바로 ‘뽑기’였......‘한국의 야생 새 도감’을 무작위로 펼쳐 나온 새가 그 사람의 호가 되었는데, 운명을 거스를 수 없듯, 낙장불입이라고 했다. 역시 지리산 호인들은 다르구나 싶었다. 나는 대단하고 특별하고 퐈려하디 퐈려한 새가 나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온 우주의 기운을 모아 도감을 펼쳤고! ‘참새’ 라는 호를 받았다. 다시 뽑겠다고 떼를 쓰고 싶었지만, 다른 양반이 ‘도둑 갈매기’ 호를 받는 것을 보고 입을 쏙 다물었다.본격적인 관찰을 시작했다. 새 덕후가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무엇인가를 발견하고 어마어마한 망원경을 딱 펼쳐 세우면, 새 덕후의 덕후들이 아기 새처럼 조르르 쫓아가 줄을 섰다. 관찰 결과, 이 점잖은 양반들이 고상한 평정심을 잃을 때가 두 번 있었다. 한 번은 누군가가 망원경 줄을 새치기할 때이고, 다른 한 번은 새들의 짝짓기를 목격할 때였다. 꺄르르 꺄르르 소리가 섬진강에 울려 퍼졌다.나는 양반들을 관찰하느라 그만 탐조의 하이라이트인 짝짓기 장면을 놓치고 말았다. 도무지 믿기 어려울 만큼 순식간이었다. 별똥별보다 빠른 속도로 불꽃이 튄 모양인데 나만 하이라이트를 놓친 것 같아 무척이나 속상했다. 와중에 칩코 양반은 자기는 3대가 덕을 쌓아야만 볼 수 있다는 수달의 짝짓기도 보았다며 자랑을 해댔다. 칩코는 헤어 스타일부터 옷차림까지 스님룩을 고집하고, 매일 아침저녁으로 명상하는 성실한 수행자 양반이다. 아, 저만큼 수행해야 수달의 짝짓기를 볼 수 있구나… 이런저런 핑계로 수행에 게을러진 나의 방일함을 반성했다.해가 질 무렵, 수달 동네로 이동했다. 양반들은 수달의 똥만 보고도 흥분했다. 수달의 똥을 만지작거리며, “이것은 수달이 맘 편히 쾌변한 건가요? 아니면 주변에 천적이 있어서 끊어 싸기를 한 건가요?” “똥에서 멸치젓갈 냄새가 나는데 이 하천에 멸치가 있나요?” 등등 수준 높은 질문을 했고, 양반들의 학식에 수달 덕후는 꽤 감동한 듯했다.주변이 어두워지고, 수달 똥 관찰이 끝났다. 나도 양반 관찰을 마무리하고 집에 왔다. 이 양반들은 새 덕후, 수달 덕후뿐만 아니라 나무 덕후, 풀 덕후, 지리산 덕후를 졸졸 쫓아다니고, 최근에는 지리산 개발 덕후들을 쫓아내느라 바쁘다고 한다. 양반새에 입덕한 나도 덩달아 바빠질 듯하다.여여의 방구 일기 끄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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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무수거 다녀온 밤구의 방구일기
- 나는 오늘 ’반달곰친구들‘에서 열고 ’지리산사람들‘, ’지리산국립공원전남사무소‘, ’국립공원연구원‘ 등의 단체와 자원활동가가 함께하는 올무 수거 활동에 다녀왔다!올무도 창애도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는데, 밭 근처 산에 사는 멧돼지나 고라니 같은 친구들이 밭에 내려오지 못하도록 덫을 두는 것이라고 한다. 한 번 걸리면 점점 조여오는 올무와 단번에 뼈도 잘라버릴 것 같은 창애를 시작 전 사진으로만 보았는데도 겁이 나서 잔뜩 움츠린 채 돌아다니길 시작했다.생각보다 눈을 부릅 뜨고 찾아야 보인다는 꼬리의 말에 눈에 불을 켠 채 찾으며 걷다보니 어느새 도깨비풀을 잔뜩 묻히면서 활보하고 있었고 사람들은 모두 시야에서 사라져있었다. 다들 이곳 저곳으로 흩어져 열심히 찾겠거니 싶으면서도 나 혼자 엉뚱한 곳에 와서 길을 잃나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래도 혹여 올무를 놓치게 될까 가던 길을 마저 탐색하고 되돌아갔다.올무가 없는 건 주민들이 더이상 두지 않는다는 뜻이니 좋은 일이건만, 찾고싶은 마음에 올무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나를 발견했다. 플로깅을 할 때도 쓰레기가 없으면 사람들이 버리지 않으니 좋은 거지만 왠지 허탕친 기분이 들곤 했는데. 사람 마음이 참 그렇다는 생각을 하며 미끄러운 내리막을 조심히 내려갔다.다행히 나는 빈손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올봄에도 이곳에서 수거활동을 했다고해서 이제 안 두시나보다 하고 안심했지만 집결지엔 올무 5점, 창애 2점, 그리고 농약병 2병이 수거되어 있었다.공들인 작물을 나눌 수 없어 불법임에도 계속 덫을 놓는 농부의 마음은 무슨 마음일까? 올무를 두는 농부, 밭에 내려오는 산 속 친구들, 그리고 올무를 수거하는 우리들. 꼭 이렇게 잔인하게 누군가를 죽여야 하는지, 이 밭과 나무들이 정말 누군가의 것이 될 수 있는 건지, 조금은 슬픈 마음으로 더이상 올무가 놓이지 않길 바라며 활동을 마무리했다.겨울동안 피아골에서 지내게 된 나는 구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관심을 가지고 자주 참여해야겠다고 당찬 포부를 품었다!! 감사하게도 소식을 전해주시는 선생님과 친절하게 일정을 올려주는 지리산 방랑단 덕에 조금씩 얼굴을 비추는 중이다. 방랑단의 첫 방구일기가 올무수거 활동이던데! 밤구가 방구일기를 쓸 수 있게 되어 영광이다>.<앞으로도 자주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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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 29일] 지리산국립공원 생일잔치 초대장
- 1967년 지리산은 우리나라 첫 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첫 번째 국립공원이자 백두대간의 끝점, 멸종위기종이며 천연기념물인 반달가슴곰의 삶터, 한국 근현대사의 아픔이 있는 곳.. 지리산을 생각하면 가슴 한편이 묵직하고 아립니다. 지리산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하였다는 것은 인간만이 아니라 그곳이 삶터인 야생동식물의 관점에서, 생물다양성을 우선에 두겠다는 약속입니다. 지금 시대 인간만이 아니라 미래세대, 이웃생명을 위한 공간으로 남겨두겠다는 다짐입니다. 그런데 지금 지리산에 케이블카, 산악열차, 골프장을 건설하겠다고 합니다. 지리산의 물이 모이는 곳엔 댐을 만들겠다고 합니다. 대체 무슨 일일까요? 12월 29일, 지리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날입니다. 지리산을 바라보며 지난 1년, 지리산자락에서 있었던 일들을 알립니다. 지리산 품에서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날을 열어갈 지혜를 나눕니다. - 언제: 2023년 12월 29일 (금) 지리산국립공원 생일날 - 어디로 : 지리산 형제봉으로 - 준비물 : 낮밥, 따뜻한 물과 새참, 겨울산행 차림 등 - 만나는 곳 : 8시 40분 구례버스터미널, 9시 30분 하동 악양면사무소 걷는 길 : 고소성~신성봉~신선대~형제봉(고유제)~청학사~정서마을 *물어보기 : 010-4686-6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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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 22일, 지리산 화엄사 범음료] 2023 지리산동지모임 ‘다시, 지리산’
- 2023 지리산동지모임 ‘다시, 지리산’ 밤이 가장 긴 날, 동지를 지나면 음에서 양으로 흐름이 바뀌고 태양이 다시 살아납니다.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컴컴한 시기, 지리산 이웃들 함께 붉은 팥죽 쑤어 먹으며 세상 악귀 몰아내요. 어려운 일은 나누고 서로 등을 도닥여주어요. 길가의 풀들도 숲속의 고라니도 새해를 준비하는 때, 우리들의 새 마음을 이야기해요. 2023년 12월 22일(금) 동짓날 11:30~15:30 지리산 화엄사 범음료 11시30분동지팥죽 나누어 먹어요 12시30분지리산권 5개시군 현안 공유 / 「나의 지리산 선언」 갈무리 / 2024년 나와 지리산 물어보기 010-9996-48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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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혜석의 고백
- 나혜석은 (1897-1945)은 소위 '신여성'이라 불리는 여자들의 반열에 이름을 올리고 있어 내 또래는 많이 들어본 이름이겠다. 그녀는 비구니가 되어 절에 들어간 그녀의 절친 김일엽의 이야기만큼이나 세간의 주목을 끌었다. 그 시대 여성들의 운명(이말은 싫어하지만)이라고 해야 할까? 나혜석이 화가이며 글도 쓰고 세대를 앞서간 진보적인 여성이라 알고 있지만, 그녀가 쓴 글이나 그림을 직접 보지는 못했다. 이 책은 나혜석이 여기저기 발표한 글을 모아 놓은 것이다. 이 책의 부제가 "여자도 사람이외다"인 것처럼 그녀는 여자사람의 정체성에 대해 생각하고 경험한 것을 용감하게 발표했다. 도도히 흐르는 거센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한마리 연어처럼 강물에서 튀어 올랐다. 튀어올라 다시 물을 만나지 못한 고기는 비참한 최후를 맞는 것처럼 그녀의 인생도 그러했다. 만일 나혜석이 결혼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원하는 삶을 살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결혼이 필수가 아닌 선택이 된 지금의 세상은 나혜석 같은 여자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여자도 사람이라고 외친 절규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 )도 사람이다라고 괄호에 넣을 수 있는 명사는 더욱 많아졌는지 모른다. 이조시대로 끝난 것 같은 계급사회는 겉모양만 달라졌을 뿐 계속되고 있으니 말이다. 너와 나를 구분하는 차별화된 사회 속에서 다시금 나혜석의 절규를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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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두규 12-16 13:29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문학의 길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문학의 길 -‘단순 소박한 삶’을 지향하는 문학 박 두 규 (시인) 1 코로나 국면을 맞고 보니 그동안 꾸준히 거론되어 오던 기후변화에 따른 전 지구적 위기라는 것이 코앞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변화의 급물살을 타고 있는 현실 세계에서 문학은 무엇인가를 다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동안 우리는 문학에 대하여 다양한 관점에서 다양한 논의를 해왔지만 지금의 현실상황을 보면 ‘지구 위기, 인류의 위기’라는 관점에서 문학을 다시 한 번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음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문학도 과학이나 기술처럼 현실에서 우선적으로 ‘지구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실천적 삶 문학에 일정 부분 복무해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래도 문학은 문학대로 지금껏 확장해온 영역이 있고 인류사 속에서 다양하게 그 역할을 해왔으며 또 어떤 특별한 상황 속에서는 그 상황에 맞게 대응해왔기 때문에 지금처럼 그렇게 하면 된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문학이 상상력의 문학이고 영적 문학이라는 점과 ‘지구의 위기, 인류의 위기’의 현실에 대한 복무를 받아들인다면 앞으로 100년의 지구, 100년의 인류를 염두에 두며 글을 통해 더 세밀하게 그려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현재의 과학과 기술보다 100년의 현실을 앞서 이야기하고 노래하며 올바른 방향의 길을 찾는 더듬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2 요즘 쏟아져 나오는 학자들의 글들을 읽어 보면 기후 환경으로 인한 지구의 위기 상황은 현실의 감도보다 훨씬 심각하다. 지금 우리가 해마다 역대 기록을 갱신하며 겪는 자연재해는 단순한 재해가 아니라 대량학살의 위기이며 재앙의 시작이라고 봐야 옳다는 것이다. 인류가 자본주의 문명의 현행 기조를 고수할 경우 2100년에는 탄소배출량으로 인해 지구의 기온이 약 4도 이상 상승한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북극의 빙상은 이미 붕괴된 지 오래고 알프스의 만년설은 70% 이상 녹으며 해수면은 최대 2.4미터 상승할 수 있다고 한다. 인구 천만의 자카르타 같은 도시가 물에 잠기며 세계의 주요도시는 거의 2/3가 해안에 위치해 있으니 그에 따른 발전소, 항구, 농경지 등 주요시설도 함께 위험해질 것이다. 그리고 적도 지방의 주요 도시들은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으로 변한다고 한다. 이미 2018년 폭염 시에 로스엔젤레스 42도, 파키스탄 50도, 알제리 51도에 이르렀다. 그리고 물 부족과 폭염으로 북위도 지역마저도 해마다 수천 명이 죽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21세기가 끝날 무렵이면 코로나와 같은 새로운 질병들, 상상을 초월하는 산불과 홍수의 증가, 수천만 명에 이르는 기후 난민, 경제 대공황과 지역 간의 기후분쟁, 농산물 생산이 크게 줄면서 일어나는 자원전쟁 등 한 해 기준 100조 달러의 세계 피해규모가 예상된다니 앞으로 80년 안에 변화될 지구의 모습을 쉽게 상상해볼 수 있다. 물론 이것은 지금의 자본주의적 개발과 소비 패턴에서 조금도 변화하지 않고 그대로 진행되었을 경우를 전제로 한 것이다. 그리고 이제 코로나19가 해결된다 해도 이전의 시절로 돌아가 예전의 일상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지구와 인류는 이미 변화의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고 새로운 문명이 일어나는 시점이 되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제 기존의 자본주의를 토대로 이루어낸 과학기술문명, 물질문명의 틀에서 벗어나 이전의 의식에서 한 단계 점핑된 도덕적 과학기술과 새로운 정신문명으로의 판짜기 변화가 절실해진 것이다. 그래서 문학은 현재 소비와 개발성장의 자본문명에서 전환하여 인간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켜 갈 것인가를 이야기해야 된다. 포스트 코로나를 맞아 변화되어야 할 의, 식, 주, 의료, 교육 그리고 정치, 경제 등 모든 분야에서까지 기존의 질서와 그 틀을 어떻게 바꿔가야 할 것인지를 이야기해야 할 것이다. 문학은 이 현실 변화의 중심에서 어떤 마음, 어떤 영혼을 가진 인간이어야 하는 것을 그려내야 하는 것이다. 3 지금껏 지구와 인류의 위기를 초래해온 자본문명을 벗어나 새로운 문명을 꿈꾼다면 먼저 기존의 자본주의적 가치관과 세계관 등 일상 속의 대중들에게도 정신적 변화가 있어야만 한다. 생각이 바뀌어야 그 삶이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본질적으로 인간의 욕망과 탐욕이 정제 없이 그대로 반영된 이데올로기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고 빠르면 빠를수록 좋고 그렇게 이익을 극대화하며 개발과 성장의 경제논리로 앞만 보고 달려온 것이 자본주의다. 자본은 배고픔과 위험한 환경 조건에서 풍요로움과 안전함과 편리함을 가져다준 것은 사실이지만 이제는 그 도를 넘어 인간의 끝없는 탐욕의 영역으로 들어선 것이다. 그렇게 인류는 풍요와 편리를 거느린 현실 자본주의를 앞세워 공존공생을 위한 사회적 도덕과 윤리의 경계를 깨고 탐욕과 욕망을 당연하고 정당한 인간 정서로 편입시켰다. 단순하게 이야기 했지만 사실 이런 인간의 욕망과 탐욕이 자본주의와 잘 어울려 끝없이 달려온 결과 현재의 지구와 인류의 위기를 맞았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한 개인의 인간도 그 탐욕이 지나치면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처럼 반성과 성찰을 통해 스스로 변화하지 않으면 인류는 21세기가 끝나는 지점부터는 지금으로는 상상하기 힘든 혹독한 대가를 지불하면서 사피엔스의 종말을 향해 추락해 갈 것이다. 그래서 문학예술은 지금의 시점에서 좀 더 집중적으로 21세기 이후의 현실을 생각하고 그것을 위한 새로운 문명, 새로운 문학예술에 복무해야 한다는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이러한 자본문명에 대응하는 문학을 생각하려면 자본주의의 속성인 탐욕을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철학, 새로운 문화를 궁구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리고 그 ‘새로움’은 어쩌면 삶의 본질과 모든 생명을 아우르는 총체적 근원으로부터 오는 것이어서 그것은 현실 자본주의를 벗어나 근본 진리의 삶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본래 모든 생명들은 함께 어울려 조화를 이루는 하나의 공존공생의 공동체적 존재라는 것과 그것을 위해 인간은 가장 경계해야 할 본성인 ‘탐욕’을 꾸준히 정제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4 나는 이것을 문학이라는 영역에서 생각한다면 ‘단순 소박한 삶을 지향하는 문학’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는 ‘단순한 삶’과 ‘소박한 삶’을 하나로 추구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은 것인데 ‘단순한 삶’의 문학은 개인 스스로를 전체의 한 부분이면서, 그렇기 때문에 전체라는, 그래서 전체를 위하는 것이 나를 위하는 것이라는, 이미 붓다나 예수 등 많은 현자들이 발견했던 동체대비, 궁극과의 합일 등 진리의 삶과 연계되어 있는 것이며 이를 현실로 가져오기 위한 문학을 말한다. 이는 ‘단순성’이라는 진리의 영역을 문학으로 가져오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덧붙이자면 진리는 우리를 자유롭게 하며, 누구나 이해할 수 있고 누구나 실현할 수 있는 ‘단순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진리의 삶은 당장 그렇게 살려는 스스로의 결단과 실천만 있으면 되는 ‘단순성’에서 시작한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진리에 의해 사는 삶’은 어떤 거창한 것은 아니고 현재의 실상을 바로보고 그것에 어긋남 없이 사는 것, 다시 말하면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삶을 사는 것이라고 말한다. 삶의 실상은 모두가 있는 그대로 어울려(연기적 관계를 가지고) 전체가 하나의 생명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며, 그렇게 있는 그대로(본질 그대로) 어울려 순환하고 진화하는 것이 바로 ‘단순한 삶’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자본주의 물질문명의 변곡점에서 문학이 주시해야 할 중요한 화두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와 함께 ‘소박한 삶’은 이런 ‘단순한 삶’을 현실로 가져오기 위한 방법이라고 볼 수 있다. 아니, 사실은 방법이면서 그 본질이기도 하다. 자본주의를 진화시켰던 인간의 탐욕은 끝없는 집착을 가져와 현재 지구의 기후재앙과 함께 모든 문제의 화근이 되었고 이 탐욕과 집착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소박한 삶’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탐욕을 충족시키기 위한 자본의 끝없는 성장 시나리오는 이제 그 한계에 왔다. 대체 에너지 등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많은 과학기술의 노력과 성과가 있다하더라도 인간의 끝없는 탐욕을 충족시킬 수는 없다. 결국은 소박한 삶으로 가지 않으면 해결 될 수 없는 것이다. ‘소박한 삶’은 스스로의 탐욕을 다스리는 삶이고 우리 사회의 대립과 갈등을 조화와 균형으로 이끄는 해답이라고 본다. 이‘소박한 삶’을 통해 모든 생명과 지구가 하나의 완결체로 존재할 수 있는 공존, 공생으로 가는 길을 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본주의 문명을 극복하고 새로운 문명의 길로 가는 길목에 이러한 물질 중심의 삶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가치관을 세우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이런 변화의 물꼬를 트기 위해 ‘단순 소박한 삶을 지향하는 문학’을 생각해 보는 것이다. 이 문학적 화두를 통해 개인의 이기(利己)를 극복하고 무아(無我)와 탈에고(脫ego)의 수준까지 의식을 확장하여 탐욕을 순치(順治)하는데 기여해야 하는 것이 현재의 문학이라고 생각하며 그것이 코로나19와 같은 새로운 질병들과 지구의 기후재앙을 막는데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첫눈이 내린 노고단 -
박두규 10-08 08:51
세석평전細石平田의 추억
☐지리산에서 온 편지 11 세석평전細石平田의 추억 잔돌평전의 저물녘 풍경 세석평전은 지리산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곳이다. 지리산의 최고봉인 천왕봉을 가는 길목이기 때문이다. 경남의 중산리에서 바로 천왕봉으로 올라가는 등산로가 하나 있기는 하지만 그곳을 제외하고는 동서남북 어느 곳에서 오르건 세석평전을 거치지 않고는 천왕봉에 오를 수 없다. 그래서 지리산에 많은 대피소가 있지만 세석평전에는 늘 사람들이 많다. 세석평전은 오래 전엔 잔돌평전이라고 불렀다. 세細가 ‘가늘다’라는 뜻으로 세석은 작은 돌들이 많은 곳이라는 뜻이고, 높은 곳에 있는 펀펀한 땅을 평전이라 하니 세석평전은 작은 돌들이 많은 높고 펀펀한 땅이라는 뜻이다. 이 평전에는 철쭉이 군락을 이루며 피어 있고 지리산맥의 많은 능선들이 굽이치며 내리벋고 있어서 그 청량한 바람과 함께 펼쳐지는 풍광은 장엄 그 자체이다. 사람들이 지리산을 타면서 굳이 주능선 종주를 고집하는 이유는 노고단으로부터 천왕봉까지 서에서 동으로 전남과 경남에 걸쳐있는 첩첩 봉우리들이 만들어내는 긴 능선과 남과 북으로 여러 갈래 벋어있는 지 능선들의 유장한 지리산맥을 걷는 내내 조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계곡과 능선을 넘나드는 구름들과 저물녘 빛을 받아 강하게 굼틀리는 산줄기들의 파노라마는 자신의 감옥에 갇혀 사는 이기적인 소인배를 벗어나 자연의 하나일 뿐인 알몸의 자신을 깊이 성찰하게 한다. 특히 겨울 산의 엄혹한 추위 속에서 수없이 죽어간 사람들을 생각하면 지리산의 저물녘 풍경은 언제나 깊게 사무쳐 온다. 오만과 편견 그리고 세석대피소 뒤에 솟아있는 봉우리가 영신봉靈神峰이다. 그 이름부터가 범상치 않아 한때는 무속적 신앙을 가진 무리가 영신대 아래 기도처를 잡고 집단생활을 하던 때도 있었다. 30년도 더 된 어느 해에 대성계곡의 작은세계골을 타고 영신대까지 오르는 계곡등반을 할 때였는데 세석평전에 텐트를 칠 요량으로(그때는 텐트 치는 것이 허용될 때여서 세석평전에 가면 울긋불긋한 텐트들이 빼곡이 들어차 있곤 했다.) 천천히 계곡을 올랐다. 그리고 어두워지기 시작할 무렵 영신대 근처에 이르러 나는 깜짝 놀랐다. 바위 틈새마다 촛불들이 켜져 있고 군데군데 사람들이 기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텐트와 작은 비닐하우스들이 좁은 공간 여기저기 있는 걸 봐서 이들은 집단 기거하면서 기도하는 사람들이었다. 말을 붙일 엄두도 나지 않아 조용히 그들을 방해하지 않고 그곳을 빠져 나왔다. 대피소 쪽으로 올라와 보니 불빛도 보이지 않은 구석진 곳이었는데 기도처로써는 참으로 명당자리였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엄격하게 관리하는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무엇을 위하여 이 높은 산에까지 올라와 무리지어 기도를 할까. 기도로 자신이 원하는 무엇인가를 이룰 수 있는 것일까. 그 원하는 무엇이라는 것이 겨우 자신이나 가족의 부富나 안위 정도의 이기적인 것은 아닐까. 젊은 치기가 앞서 있던 당시로는 순전히 자의적인 짐작만으로 그들을 재단하고 무시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니 나의 오만과 편견이 얼마나 심했었나를 알 수 있다. 요즘 세태를 보면 개인이건 단체건 기업이든 정당이든 혹은 지역과 나라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영역만을 최우선적으로 옹호하고 챙기는 것이 일반화된 정서인 듯하다. 그리고 그것은 너무 당연한 것이고 전혀 부당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법으로 위법만 아니라면 무엇이든 괜찮다는 생활정서가 이미 우리의 구체적 생활에 깊이 들어온 듯하다. 하지만 이것은 왠지 마음이 불편하다. 양심이라는 것이 불편해 하는 것이다. 사람다운 무엇인가를 팽개치는 것 같아 어떤 헛헛함이 밀려오는 것이다. 세석대피소의 추석 그 시절에는 세석 대피소도 그야말로 조그만 대피소였다. 지금은 증축하여 넓은 공간에 난방도 되어 그때에 비하면 호텔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때는 매우 좁고 한 겨울에도 난방 없이 잠을 잤다. 그리고 추석연휴가 되면 세석대피소는 만원이었다. 언젠가 그 시절 추석연휴에 지리산에 올랐다. 여러 명이 갔는데 텐트 가지고 가기 귀찮아서 대피소를 이용하려고 아무런 준비도 없이 올랐는데 예상 외로 대피소를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대피소 수용 정원이 몇 명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한 다섯 배는 많은 인원이 들이닥쳤던 것 같다. 전에 혼자 잘만한 공간에 다섯 명이 누워야 했기 때문이다. 대피소 직원들은 바로 눕지도 못하게 하고 옆으로 몸을 세운 채로 칼잠을 자듯 꼭 끼워 눕게 했다. 날이 너무 추워 밖에 재울 수는 없었던 거다. 지금은 반드시 예약을 해야 대피소를 이용할 수 있으며 예약이 안 된 사람들은 아예 하산 시간이 확보되지 않으면 산 아래 출발지점 관리소에서 올려 보내지 않고 있다. 어쨌든 화장실에라도 다녀오면 누울 공간이 없어지기 때문에 화장실에도 갈 수 없었다. 그래도 그 정도는 고마운 축에 들었다. 왜냐하면 복도 공간에도 사람들이 줄지어 앉아서 밤을 새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상상할 수 없는 진풍경이었다. 시쳇말로 육이오 때 난리는 난리도 아니었다. 그래도 밖에서 추위에 떨면서는 잠도 오지 않을 뿐 아니라 몸에 이상이 생길 수도 있어서 그냥 안에서 버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많은 인원이 좁은 공간에서 함께 자다보니 코고는 사람들도 많았고 더욱이 땀 냄새며 발 냄새가 지독해서 웬만한 사람은 잠을 들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잠을 자기 위해서는 독한 술이라도 몇 잔 마시고 떨어져야 하는데 또 그런 사람들 때문에 고약한 술 냄새까지 합세해서 여간해서 잠을 잘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어찌하다 두서너 시간 잠들 수 있다면 그것만 해도 고마운 것이었다. 하지만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도 다음 날 산행에 큰 지장은 없었다. 아침에 약간 찌뿌듯했던 몸은 한 시간 정도 산을 타며 땀을 흘리면 바로 말끔해졌기 때문이다. 한 겨울에는 그래도 괜찮았다. 겨울 산을 오르는 사람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
박두규 09-08 18:06
피밭마을의 골짜기
지리산에서 온 편지 10 피밭마을의 골짜기 어머니의 단풍구경 나이 80대 중반 무렵이었을까, 어머니는 바람이 쌀쌀해지는 가을이 오면 단풍구경 가자는 말씀을 하시곤 했다. 나는 그때만 해도 바쁘게 밖으로만 돌던 때여서 ‘네, 그래요. 언제 피아골에라도 한번 가게요.’ 하면서도 그냥 스쳐지나가기 일쑤였다. 구례에 살 때여서 한두 시간만 시간을 내도 금방 다녀올 수 있다는 생각에 더 소홀했던 것 같다. 막상 이제 돌아가시고 나니 가을이 오고 피아골에 단풍이 곱게 물들기라도 하면 그 말씀이 늘 밟힌다. 그래도 언젠가 한번 어머니를 모시고 피아골에 갔던 적이 있었다. 피아골 초입의 단풍잎들이 처연하리만큼 붉게 물든 나무 아래로 모시고 가면 어머니가 하시는 말씀은 고작 ‘야, 참 곱다’ 한마디였다. 그리곤 별 말씀도 없이 그냥 한참을 앉았다 돌아오시는 것이었다. 나는 그때만 해도 노인네의 짧은 한마디에는 한 생이 다 담겨있기도 하다는 것을 눈치 채지 못했다. 젊은 것들은 지금 여기의 현재를 살아내기도 바빠서 울긋불긋 현란한 색들을 보며 그저 가을이니까 하는 정도의 계절감각을 가졌었다면 어머니 같은 노인네들은 저 화려한 시절의 절정기 뒤에 있는 인생의 외로움과 쓸쓸함을 절절하게 느끼셨을 것이다. 지금 여기의 붉디붉은 절정의 단풍이지만 당신에게는 젊은 날의 과거로만 보였을까. 씁쓸한 듯 가늘게 뜬 눈빛과 오랜 풍상의 눈가 잔주름이 아직도 생생하다. 붉은 골짜기 피아골 피아골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끝 마을은 직전마을이다. 피 직(稷)에 밭 전(田)을 쓰니 그 옛날 곡식이 귀했던 시절의 이름이다. 그 피밭골이 육이오 전쟁을 거치면서 너와 나, 적군과 아군, 좌익과 우익의 갈등과 대립을 함축하고 있는 이름인 피아골로 불리게 되었다. 피아골은 전쟁 당시 한때 인민공화국의 구례 군당이 숨어들었던 곳이며 그 비트는 피아골 삼홍소에서 계곡 좌측의 지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지금도 그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전투가 잦았을 것이니 계곡이 핏빛으로 붉게 물들기도 했을 것이다. 그런 생각 때문인지 피아골의 피아는 한자로 상대방(피)과 나(아)를 뜻하는 말이건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붉은 피를 먼저 떠올리게 된다. 떠도는 말로 전쟁 이후 이 골짜기에서 한 트럭분의 유골이 나왔다고도 하니 어쨌거나 그 상처가 골짜기만큼이나 깊다고 할 것이다. 전쟁 훨씬 전에도 피아골의 붉은 골짜기 이미지는 있었다. 골짜기의 중간쯤에 있는 삼홍소가 그렇다. 삼홍소는 한자로 三紅沼라고 쓰는데 ‘셋이 붉은 물웅덩이’라는 뜻이다. 조선조의 생육신이며 선도의 맥을 이었다는 김시습이 이곳에서 시를 한 수 지었는데 단풍이 붉고, 그 빛이 물에 어려 계곡물이 붉고, 도도한 흥취에 술 한 잔 걸친 얼굴이 붉다하여 삼홍이라고 노래했다는 것이다. 온 천지가 붉은 이 삼홍소의 계곡에 앉아 있으면 당시 왕권을 둘러싸고 진행되던 피비린내의 소용돌이 속에서 고뇌하는 지식인 김시습이 보이는가 하면 한편으론 현실을 극복하고 인생을 관조하며 지혜롭게 한 생을 건너는 현자 김시습의 풍모가 그려지곤 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혹은 어느 시대라 할지라도 현실의 삶과 이상의 삶은 늘 함께 하는 것이 아니던가. 어느 한쪽에 빠져 허우적이는 것이 어리석은 삶이라면 어쩌면 김시습은 자신이 처한 현실과 자아가 추구하던 이상을 아우르며 균형 잡힌 삶을 꾸려낸 각자覺者가 아니었나 싶다. 계곡등반의 허와 실 20년도 훨씬 전이었을 젊은 시절, 한동안 계곡등반을 즐겨했는데 피아골도 계곡등반을 했던 적이 있다. 직전마을에서 피아골 대피소까지는 등산로로 가고, 대피소를 지나서 바로 등산로를 벗어나 계곡만을 타고 주능선까지 오르는 길이었다. 대피소에서 지정 등산로를 타고 오르면 주능선의 피아골 삼거리에 이르지만, 계곡을 타고 오르면 반야봉 바로 밑에 있는 주능선의 노루목 근처에 이르게 된다. 계곡등반을 하는 것은 다들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계곡의 물줄기를 거슬러 올라 그 물줄기의 시원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었다. 물줄기의 처음은 어떻게 시작될까, 어디서부터일까, 하는 일반적인 궁금증과 함께 어떤 존재의 시원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 같은 것이 강했던 것 같다. 일반적으로 모든 자연의 사물에 대한 존재의 근원은 확인하기 어려운 것이어서 설화나 전설 같은 상상력들이 포진하게 된다. 그래서 더 궁금증을 자극하고 괜한 동경이 생기는 것 아니던가. 하지만 계곡등반 같은 경우에는 반드시 분명한 그 처음을 확인할 수 있었으니 나름 후련한 맛은 있었다. 하지만 ‘처음’이라는 막연한 시원에 대한 그리움의 의미는 깨지게 된다. 계곡의 끝자락에 이르게 되면 물도 없는 그저 돌멩이 몇 개 있는 평범한 지형일 뿐이었으니 말이다. 삶의 균형감각 나의 계곡등반은 어쩌면 이런 미화되고 포장된 의미들을 깨고 싶은 심정의 발로였는지도 모른다. 한 세상을 살며 이상과 동경은 꿈과 희망이라는 단어로 치환되면서 답답한 현실을 헤쳐 나가는 힘이 되어주기도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환상과 비현실 속의 막연한 기대감으로 현실적이고 실질적 삶을 꾸려나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기도 하다. 나는 계곡등반으로 계곡의 끝 지점을 확인하며 나의 현실인식을 다그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문학의 허구적 상상을 앞세워 살며 현실을 나의 에고로 왜곡하여 인식하거나 또는 그 현실을 외면하거나 도피하지는 않고 있는가 하는 자기점검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어떤 뚜렷한 인식과 의도성을 가지고 계곡등반을 하지는 않았지만 돌아보니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우리는 실제로 얼마나 실사구시적實事求是的으로 살고 있을까. ‘실사구시’라는 말은 도법스님께서 많이 쓰시던 말씀이다. 나는 나름대로 ‘주어진 이 생生의 현실을 진리의 눈으로 바로 보고 그렇게 세상살이를 해내야 한다’는 말로 해석하며 들어왔다. 계곡등반을 그렇게 철학적으로 했다는 말은 아니고 그 행위의 저 깊은 안쪽에 그런 무의식적 발로가 있었기를 바라는 심정인 것이다. 모든 존재의 본성이 가지고 있다는 삶의 균형감각 같은 것 말이다. 어쨌거나 나는 피아골을 자주 올랐다. 구례에 있는 가까운 곳이어서 그러기도 했지만 팔구십 년대라는 시대적 격동기를 살았던 내 존재의 현실을 올바로 가늠하고 또 그렇게 살기 위한 몸짓이었는지도 모르겠다. -
박두규 06-12 12:37
불무장등不無長嶝
☐지리산에서 온 편지 9 불무장등不無長嶝 불무의 꽃들 지리산의 8월이 오면 오르고 싶은 곳이 불무장등 능선이다. 숲은 무성하게 우거지고 숲의 오솔길엔 여기저기 여름 꽃들이 피어있을 것이다. 나는 꽃에 큰 관심 없이 산을 올라 다녔지만 불무장등을 다니던 어느 때부터 그 이름들이 궁금해졌다. 꽃이라기보다는 그 녀석들이 내 마음의 어느 구석을 침탈해 왔기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가 마음에 새겨질 때면 이름부터 궁금해지는 것이 일상의 습習이어서 나는 그들의 이름을 찾아 불러주기 시작했다. 동자꽃, 솔나리, 수국, 꿩의다리, 비비추, 원추리...... 나는 평소 아름다움은 꽃이나 어떤 풍경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과 행위,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오는 깊고 그윽한 어떤 느낌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산을 오르며 특히 지리산의 여름 산을 오르며 숲을 고요히 호흡해내는 작고 여린 꽃들의 순결한 숨소리를 들었던 것일까. 그 존재 자체부터가 참으로 아름다웠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은 인간의 어떤 한계점에 있는 것이기도 해서 늘 막연한 슬픔으로 이어졌다. 그 무렵에 써졌던 시가 생각난다. 숲에 들어 비로소 나의 적막을 본다./ 저 가벼운 나비의 영혼은 숲의 적막을 날고/ 하얀 산수국, 그 고운 헛꽃이 내 적막 위에 핀다./ 기약한 세월도, 기다림이 다하는 날도 오기는 오는 걸까./ 이름도 없이 서 있던 층층나무, 때죽나무도 한꺼번에 슬퍼지던 날/ 그리운 얼굴 하나로 세상이 아득해지던 날/ 내 적막 위에 헛꽃 하나 피었다. (「헛꽃」전문) 불무장등의 이름 지리산 불무장등은 주능선의 삼도봉에서 화개 쪽으로 벋은 남쪽 능선인데 한자로는 不無長嶝이라고 쓰고 있다. 그런데 이 말이 무슨 뜻인지 그 설명도 각각이다. 불교와 관련한 설명은 ‘지리산은 문수보살의 일신인데 문수는 오로지 반야般若를 주관하며, 반야는 제불의 어머니(諸佛之母)이다.’ 라는 것에서 불모佛母가 불무不無로 정착되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불무장등 봉우리가 풀무 모양으로 생겨서 풀무잔등으로 불리다가 일제 때 국토의 우리말 지명을 한자화 시키는 과정에서 불무장등不無長嶝으로 쓰게 되었다는 것이다. 불무장등 능선을 올라가면 마지막에 주능선의 삼도봉에 이르는데 이 삼도봉도 본래는 날라리봉이라고 불렀다. 그것은 그 형상이 낫날처럼 생겼다고 낫날봉인데 발음하기 쉽게 날라리봉으로 불리다가 한자화 과정에서 3개 도(전남, 경남, 전북)가 만나는 곳이니 삼도봉三道峰이라고 공식화 되어 지도에 올랐다. 하찮은 이름의 역사가 이렇듯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게 어디 있으랴.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 것인가를 따질 새도 없이 세월은 흐르고 흐르는 시간 중에 모든 것은 그렇게 변해간다. 우리 스스로도 늘 변하여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가 아니니 10대의 나와 50대의 내가 어찌 같은 ‘나’란 말인가. 위벽은 5일이면 바뀌고 피부는 한 달, 뼈의 골격조차도 3개월이면 모두 바뀌어 1년이면 몸속 원자의 98%가 바뀐다고 하니 사실상 고정된 ‘나’라는 실체는 없는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다만 오래된 기억만이 남아 세월을 왜곡할 뿐, 늘 새로워지고 있는 ‘나’라는 존재가 있을 뿐이다. 전라도와 경상도의 도계를 이루는 능선 불무장등 능선은 전라남도와 경상남도의 도계를 이루는 능선이다. 능선의 길을 오르다보면 발 한번 띄면 경상도요 또 한 발자국 옮기면 전라도일 때가 많다. 지금도 그렇지만 오래 전부터 경상도와 전라도 동서 지역감정이 극에 있을 때 이 능선을 자주 올랐다. 전라도와 경상도를 왔다 갔다 도계의 경계를 지우며 이 능선을 오르면 마음의 지역 경계가 사라지는 듯도 하여 많은 위로를 받았던 것인데 한편으론 개인과 파당의 이익을 위해 남북으로 나뉜 나라를 다시 동서로 나누는 위정자들에 대한 분노가 증폭되기도 했었다. 내 주변에도 같이 NGO 활동을 했던 이들이 현실정치의 변화를 위해서라며 정가에 입문한 이들이 많이 있지만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는 것 같다. 물론 개인의 진정성이야 그대로 마음 속 어딘가에 있겠지만 일단 국회의원이 되었든 지방의원이 되었든 혹은 시장이 되었든 현실정치라는 것이 그리 녹록한 것은 아닌 모양이다. 사람의 신념이라는 것도 수시로 변하는 일상 삶의 상황과 조건 속에서 원형으로 보존되어 그 신념에 의해 일상을 열어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하물며 정치에 있어서야 더 그렇지 않을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의 죽음을 담보로 그 신념을 지킨 자들도 없지 않았으니 희망이라는 단어도 빛을 잃지 않고 쓰이는 것 아니겠는가. 불무의 무덤들 하지만 내가 불무장등 능선을 오르며 가장 마음에 쓰였던 것은 죽음이었다. 이 능선에는 무슨 묘들이 그렇게 많은지 오르며 수시로 만나는 것이 무덤이었다. 누군가의 삶의 종지부들이 수없이 찍혀 있는 이 무덤들을 보며 숲의 살랑이는 무수한 이파리들만큼이나 많은 생령들의 부재를 떠올리곤 했다. 누군가는 삶과 죽음이 동전의 양면처럼 하나라며 사는 것이 곧 죽어가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삶, 그 자체만 있을 뿐’이라고 말하고 싶다. 내 안의 어딘가에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또 애써 무시하려는 것도 아니지만, 늙고 병든다 해도 삶 그 자체에만 집중하면서 사는 것만이 그나마 스스로에게는 답이 아닐까 싶은 것이다. 불무장등을 오르며 많은 여름의 꽃들과 무덤들을 보면 이런저런 생각들이 무심하게 지나쳐가는 것이다. -천마꽃 / 사진 김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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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재 11-26 18:39
지금 왜 고농서인가
지금 왜 고농서인가 이선재(한겨레생명평화농장 이사) 오늘 천하의 일 가운데 하루라도 빠뜨릴 수 없는 것을 찾는다면 무엇이 으뜸인가? 곡식이다! 시공을 통틀어 신분의 귀천과 지식의 다과에 관계 없이 하루라도 몰라서는 안 되는 것을 찾는다면 무엇이 으뜸인가? 농사다! <임원경제지> 지금 왜 고농서인가? 트랙터같은 힘센 기계와 효과 좋은 비료, 농약이 넘치는 이 시대에 고농서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 우리는 기후위기라는 눈앞의 현실을 두고 생각해야 한다. 그 영향의 크고 작음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아무도 기후위기가 가져올 고통과 슬픔을 피할 수는 없다. 인류는 기후위기의 쓰나미를 물리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놓치고 있다. 물론 그 책임의 대부분은 자신의 정치적 유불리에 모든 것을 걸고 있는 정치 지도자들에게 있다. 넷플릭스 영화 ‘돈룩업’은 이것을 신랄하게 풍자하고 있다. 더욱 서글픈 사실은 기후위기의 고통은 저 기득권자들이 아니라 대다수 민중, 오랜 세월 피압박의 세월을 견뎌온 저개발 국가의 백성들이 짊어지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 곳곳에서 미래의 대안을 찾아 피땀을 흘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위기를 불러온 화석 에너지 문명을 끝내고 지구를 살리는 방법, 미래적 삶의 철학을 세우기 위한 치열한 모색과 성찰의 행진이 이미 오래 전부터 전개되고 있다. 다양한 방면의 노력들이고 그러기에 얼핏 보기에 모두 다르게 보이지만 생태주의라는 큰 흐름 안에 있다. 퍼머컬처가 그중 하나이고 개인적으로는 오늘날 가장 탁월한 생태주의 철학이자 방법론이라고 믿는다. 화석 에너지 사용을 최소화하고 사람의 노동력 역시 적게 사용하면서 효율적으로 생활하기 위한 원칙과 구체적인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세상의 그 어떤 이론도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듯이 퍼머컬처만으로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모든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서양과 다른 동양의 생활방식과 자연환경, 작물의 다름에 기인한 많은 사안들에 대해서는 스스로 세부적인 대안들을 연구하고 현실적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 다른 하나의 이유는 퍼머컬처가 농사법에 대해서 자세하게 다루고 있지는 않다는 점이다. 기계와 비닐, 농약과 비료에 의존하지 않는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고민하고 실천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많다. 고농서가 우리에게 유용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의 전통농업은 이 땅에서 아주 오랜 세월 실천해 온 농사법이다. 옛 선인들은 오늘의 농사꾼보다 훨씬 더 많이 고민하고 실험하고 자연을 가까이 들여다보았다. 비료와 농약 같은 편리한 수단이 없었기 때문이다. 오직 관찰과 경험을 토대로 한 해 한 해 새롭게 바꾸고 대를 이어 발전시킨 것이 전통농업이고 그것이 고농서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물론 완벽할 수 없고 일부 내용은 과학이 발달한 현재의 지식으로 판단했을 때 황당한 경우조차 있다. 우리가 활용할 수 있는 새로운 자원들을 고려한다면 전통농업에만 의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 수 있다. 하지만 땀과 눈물이 깊이 밴 고농서의 내용은 곱씹을수록 참맛이 우러나는 지혜의 샘이다. 나는 생태적 삶을 살고자 한다면 고농서를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
정정환 10-17 09:59
섬진강의 눈물, 구례양수댐 반대!!
안녕하십니까, 우리는 구례 양수댐 예정지에 사는 주민과 양수댐 추진을 반대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9월 4일부터 매일 아침, 구례군청 앞에서 구례 양수댐 반대를 외치고 있습니다. 거대 집단에 맞서는 우리의 외침은 양수댐이 멈출 때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구례 양수댐 추진 중단 촉구 기자회견>을 하는 이유는 구례군과 ㈜한국중부발전(중부발전)이 행정을 동원하여 반대 목소리를 억누르고, 감언이설로 주민들의 판단을 흐리게 하기 때문입니다. 1, 구례 양수댐은 주민과 공동체의 평화를 해칩니다. 중부발전과 구례군은 지난 7월 양수댐 주민설명회를 추진하였습니다. 이에 피해당사자인 중기마을 주민들은 요식 절차로 진행되는 주민설명회 추진 중단을 요구하였고, 중부발전은 주민설명회를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하지만 거짓말이었습니다. 중부발전과 구례군은 중기마을을 제외한 나머지 두 마을에서 주민설명회를 진행하였고, 주민설명회에 참석한 주민들을 모아 무주 양수댐 견학을 다녀오고, 관변단체를 동원해 찬성 현수막을 문척면 전 지역에 불법으로 걸었습니다. 평화롭던 마을은 찬반양론으로 나눠 갈등과 대립이 일상이 되고 있습니다. 중산리 주민들은 양수댐이 들어서면 안개가 심해져 농사를 망치고 건강을 해칠까 걱정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주암댐 주변 주민들은 안개로 인한 농업 손실과 폐 질환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양수댐이 만들어지면 중산리는 사람이 살기 힘들어질 것입니다. 2. 양수댐 예정지인 계족산은 생태, 경관적 가치가 매우 높습니다. 계족산은 경관이 뛰어나고, 하늘다람쥐, 담비 등 멸종위기종이 13종이나 살고 있어 생태 가치가 매우 높은 지역입니다. 생태, 경관적 가치가 높은 지역을 잘 보전하여 미래세대에게 물려주는 것은 어른들의 의무입니다. 양수댐 예정지인 중산천 하부는 ‘수달서식지 생태경관보전지역’과 맞닿아 있습니다. 2019년 한국농어촌공사는 ‘중산리 농업용 저수지’를 추진하다 환경영향평가가 부동의되어 사업을 포기했는데, 부동의의 핵심 이유가 ‘수달서식지 생태경관보전지역’과 가깝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양수댐도 환경영향평가에서 부동의될 것이 뻔한데, 갈등만 일으키는 양수댐을 추진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3, 중산천과 섬진강은 지금도 고통받고 있습니다. 중산천은 물량이 많지 않습니다. 비가 오지 않으면 보 위쪽에는 이끼가 가득합니다. 이런 곳에 양수댐을 만들면 물이 썩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입니다. 중부발전은 물이 썩는 것을 해결하기 위해 팬을 설치하겠다고 합니다. 참 어이없는 이야기입니다. 팬으로 물을 돌린다고 썩은 물이 깨끗한 물로 변합니까? 게다가 중부발전은 중산천 물이 적어 댐을 채우지 못할 경우, 섬진강 물을 끌어 올리겠다고 합니다. 모두가 아는 것처럼, 섬진강에는 섬진강댐, 보성강댐, 동복댐 등 유역변경 방식의 댐이 많습니다. 이 때문에 수량이 적어진 섬진강은 강의 기능을 잃은 지 오래고, 바닷물이 역류하여 하류 주민들은 생계를 위협받고 있는데 이러한 고통은 안중에도 없단 말입니까? 4. 양수댐 추진 이유는 전혀 현실적이지 않습니다. 중부발전과 구례군은 양수댐이 만들어지면 관광객이 찾아와 일자리가 늘어난다고 합니다. 요즘 세상에 어떤 사람들이 댐을 보러 온단 말입니까? 중부발전과 구례군이 견학을 추진하고 있는 무주 양수댐은 덕유산국립공원 안에 있고, 적상산 사고지, 안국사 등이 바로 옆에 있기에 관광객이 오는 것입니다. 썩어서 악취 풍기는 댐을 보려고 찾아올 사람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또 구례군과 중부발전은 청년 유입을 이야기합니다. 양수댐이 건설되면 청년들이 찾아온다니, 청년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물어보기는 했습니까? 지리산과 섬진강이 좋아 구례로 내려온 청년들은 집이 없어 구례를 떠나는 실정입니다. 구례군은 청년들의 거주환경을 개선하고, 청년들이 내려온 이유, 바로 지리산과 섬진강 보전을 우선에 둬야 할 것입니다. 2023년 현재 우리나라에는 7개의 양수댐이 있는데 해마다 1,600억 원씩 적자를 내고 있다고 합니다. 양수댐 1곳을 지으려면 1조 원 이상의 돈이 드는데, 적자만 나는 양수댐을 또 건설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요? 이런 세금 낭비 사업은 당장 중단해야 합니다. 5. 기후위기시대, 대규모 토목공사는 재난이 될 수도 있습니다. 구례군과 중부발전이 추진하는 구례 양수댐은 길이가 상부댐 424m, 하부댐 281m이며, 높이는 상부댐 129m, 하부댐 72m입니다. 상부댐만 보더라도 섬진강댐(길이 344.2m, 높이 64m)보다 길고 높습니다. 2020년 섬진강댐으로 물난리를 겪은 구례 사람들은 섬진강댐보다 더 큰 규모의 양수댐이 무섭습니다. 기후위기시대에 대규모 건설로 인한 피해는 경제적인 문제만이 아니라 지워지지 않을 상처가 될 수도 있습니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구례군은 군민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지 않고 행정을 동원한 압박과 여론몰이로 반대의견을 묵살하고 있습니다. 기후위기를 넘어 기후재난시대에 대규모 산림파괴, 생태환경 훼손은 어떤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지 모릅니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자연 파괴를 담보로 전기를 생산하는 방식은 멈춰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중부발전과 구례군은 피해 주민의 의견을 무시하고, 계족산 생태파괴와 섬진강 물 문제를 악화시키며, 현실을 외면하고, 대규모 재난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구례 양수댐 추진을 지금 당장 멈춰야 합니다. 중산리반내골주민연대 / 구례 양수댐 추진을 반대하는 사람들 -
칩코 10-17 05:43
[10월 23일] 양수댐 막는 구례x곡성 군민들 모여라
????양수댐 막는 구례x곡성 군민들 모여라???? 구례 계족산과 곡성 봉두산에 양수댐이 들어서려해요. 핵발전소의 부속기관과도 같은 양수발전소 건설은 우리 동네만 피하면 해결되는 일이 아니에요????섬진강이 흐르는 곳에 양수댐은 모조리 반대하는 사람들이 모여 세종시로 갑니다!???? ???? 2023년 10월 23일 (월) 11:30, 세종시 산자부 앞 ???? 모이는 곳 : 23일 아침 8시 30분, 구례군청 앞 ????세부일정 08:15 매일 아침 구례군청 앞 집회 08:30 구례군청 앞 출정식 11:30 산자부 앞 기자회견 12:10 낮밥 13:30 산자부 전력산업정책과 면담 ✅주관: 섬진강 양수댐에 반대하는 곡성구례사람들 ✅참가비: 낮밥값 1만원 ✅문의: 010-2956-8115 -
윤주옥 09-18 20:04
[9월23일] 923지리산기후정의행진
923지리산기후정의행진 케이블카, 산악열차, 골프장, 양수댐 지리산과 지리산 마을에 닥친 대규모 개발 사업들 기후위기, 기후재난시대, 지금 이대로의 지리산을 꿈꾸며 지리산에서 923기후정의행진을!! 923 지리산기후정의행진에 참여하려면 ● 지구와 지리산에 닥친 위험한 신호가 담긴 손팻말은 각자 준비합니다. ● 초가을 꽃들과 이야기 나누고, 새들의 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걷습니다. ● 낮밥과 물, 맛난 새참은 각자 가지고 옵니다. ● 성삼재주차장과 노고단에서 진행하는 퍼포먼스에 적극 참여합니다. ● 성삼재까지는 대중교통을 이용합니다. 자세한 일정은 9시30분 성삼재 주차장에서 퍼포먼스 10시 노고단대피소까지 천천히 걷기 11시30분 낮밥 (노고단대피소 앞) 12시 노고단으로 천천히 이동하기 13시 노고단에서 퍼포먼스 13시30분 소감 나눈 후 성삼재로 *대중교통을 이용할 분은 구례버스터미널에서 8시40분 버스를 타고 성삼재로 올라가고, 성삼재에서는 15시 20분 버스를 타고 구례버스터미널로 내려옵니다. -
문홍현경 09-09 10:32
네가 사라지면 나도 사라질 거야
지리산-노자산-가덕도 연대 탐방 워크숍 뒷이야기 네가 사라지면 나도 사라질 거야 _문홍현경 사진1. 신비한 생명의 숲, 노자산. 혼자서는 살 수 없다고 가르치시려고 “먼저 가세요.” 결국, 내뱉고야 말았다. 정상까지는 반도 넘게 남았는데 내 체력은 벌써 바닥을 보였다. 좀처럼 유산소 운동은 안 해오던 탓도 있었겠지만, 구례에서 거제까지 두 시간 정도 차를 타고 오면서 멀미한 탓이 커 보였다. 숨이 차고 어지럽고 속이 매스꺼워서 참다 참다 멈춤 단추를 누르고야 말았다. “좀 어지러워서요, 다들 올라가시면 뒤꽁무니 보고 따라갈게요.” 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도움의 손길이 밀려왔다. “가방 이리 주세요.” “기다렸다가 같이 갈게요.” “물 좀 드릴까요?” “과자나 뭐 달곰한 거 좀 드실래요?” “이거 지팡이 쓰세요.” 짐이 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손사래를 쳤지만, 이미 내 가방은 다른 이의 어깨에 가 있었고 한 손에는 과자 몇 개가 쥐어져 있었으며 다른 한 손엔 지팡이가 들려 있었고, 이내 목구멍으로는 누군가 건넨 단물이 넘어가고 있었다. 도움 더하기 도움에 가까스로 또 발을 떼 본다. 이제 제대로 알 것 같았다. 혼자서는 살 수 없다는 사실을 가르치시려고 시련을 주셨다는 걸. “고맙습니다.” 도움이 되고 싶어 따라왔다가 도움을 받고 가려니 고맙고 미안했다. 내가 따라나선 이 길은 지리산사람들의 지리산-노자산-가덕도 연대 탐방길이었다. 지리산골프장과 구례 양수발전소 건설에 맞서는 시민들도 함께한 든든한 걸음이었다. 첫째 날엔 노자산골프장 예정지 산행을, 다음 날엔 가덕도신공항 예정지 탐방을 이어가기로 했다. 그런데 이런 저질 체력으로는 내일이 없어 보였다. 그치만 절대 그만둘 생각은 없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오르고 싶었다. 이 정도도 못 하고 포기하면 안 된다는 생각. 이 숲을 다 벗겨 골프장을 만들려는 인간들한테 지고 싶지 않은 독기. 뭐 그런 마음이었던 것 같다. 나를 혼자 남겨둘 수 없다며 옆을 지켜 준 노자산지키기시민행동 팔색조(별칭) 님을 포함하여 모두의 응원을 받아 계속 힘을 냈다. 사진2. 노자산 나무와 케이블카. 시끄럽게 오가는 케이블카를 바라보며 나무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짚을 수 있는 나무가 보이면 보이는 대로 살짝 의지했다. 굴참나무, 팥배나무, 소나무, 때죽나무, 노각나무, 소태나무, 갖가지 나무들이 나를 지지해 주었다. 지금 이 나무들 말고도 내가 기대고 선 것들이 얼마나 많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웬 나무 하나를 짚었는데 나무껍질이 마치 용의 눈처럼 신령스러운 동물의 눈을 닮아서 깜짝 놀라기도 했다. 올라갈 때는 제정신이 아니었기에 사진 찍을 겨를도 없어 그 나무를 사진에 담지는 못했지만, 내려오는 길에 비슷한 나무를 발견하고 사진에 담았다. 사진3. 까치박달나무 기둥. 껍질 무늬가 신령스러운 동물의 눈처럼 생겨 나를 바라보는 듯했다. 나중에 나무 박사님 못난이에게 물으니 까치박달나무라고 했다. “까치요? 새, 까치?” “아니, 무좀 걸린 적 있어요? 무좀 걸리거나 발에 굳은살 생겨서 살이 갈라져 터질 때가 있는데, 겉살이 실금처럼 갈라져 터지면 안에 속살이 보이잖아요. 그 까치눈 모양처럼 생겼다고 해서 까치가 붙어요.” ‘아, 용의 눈이 아니라 까치눈이었구나.’ 바보 같은 생각을 했더랬다. 아무튼 내가 정상까지 오르는 데 못난이의 나무 강의가 큰 도움이 됐다. 내 느린 걸음에 맞춰 천천히 걸으며 이건 뭣이고, 저건 뭣이고 하면서 온갖 나무들을 얘기해 주었다. 이름만큼이나 생김새도 다양하고 만졌을 때 느낌도 달랐다. 못난이의 나무 이야기에 정신을 뺏긴 덕에 힘들다는 생각을 덜 하게 됐다. 알고 보니 그러려고 못난이는 일부러 나를 붙잡고 나무 강의를 들려준 거였다. “헉.” 딱 봐도 힘들어 보이는 가파른 길이 나왔다. 또 주저앉은 나에게 못난이가 다 죽은 듯 보이는 나뭇잎 하나를 주워서 냄새를 맡아 보라고 건넸다. 신기하게 향이 났다. 나뭇잎 향을 맡으니 기운이 돋는 듯했다. 못난이가 이름을 가르쳐 주었지만 까먹었다. 다행히 그다음으로 건네준 나뭇잎은 기억하고 있다. 비목이라고 했다. 이름을 또 까먹지 않으려고 코 비(鼻)자를 생각하며 잘게 자른 비목 나뭇잎을 코에 바짝 갖다 댔다. 나뭇잎에서 다채로운 향이 나는 것도 신기했고, 그걸 또 알아보고 갖다 주는 못난이도 신기했으며, 향기만으로도 몸에 기운이 돌다니 그것 또한 신기했다. 마법의 숲이로세. 사진4. 멸종위기종 대흥란. 우리가 운이 좋았는지 이 시기에 잘 피지 않는다는 대흥란이 하나 피어 있었다. “환경영향평가서에 대흥란은 골프장 개발지 바깥 3곳에서만 95개체 발견되었다고 기술되어 있었지만, 올해 7월 낙동강유역환경청 등이 공동 조사를 벌인 결과, 대흥란은 골프장 개발지 전역에서 727개체를 확인했다.”(오마이뉴스) (사진 최상두) 나는 어느새 기어가고 있었다. 두 손으로 바위나 계단 등을 짚고 그 뒤를 다리가 따라왔다. 몇 번을 주저앉아 쉬었더니, 의도하지 않게 흙을 가까이 들여다보게 됐다. 아주 작은 생명이 쉴 새 없이 움직이는 게 보였다. 살면서 처음 보는 곤충들도 있었다. 아주 작은 버섯, 아주 작은 풀도 보였다.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 생명은 또 얼마나 많을까. 100만 평 골프장이 생기면 다 사라질 것들이었다. 대흥란, 거제외줄달팽이, 팔색조, 긴꼬리딱새 같은 멸종위기종이 발견되어도 싹 다 밀어내고 골프장을 짓겠다는 사람들에게 멸종위기종도 아니고, 천연기념물도 아닌 이 작디작은 생명들은 있어도 없는 존재들이다. 조금만 가면 된다는 말, 이제 다 왔다는 말 “누구 뒤에 더 오십니까?” 맨 앞에서 사람들을 이끌던 노자산지키기시민행동 원종태 님(생태조사담당)이 아주 커다란 바위 아래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벌써 다른 이들은 모두 전망대에 도착해 쉬고 있었고, 그는 뒤처진 우리가 길을 못 찾을까 봐 기다린 거였다. “우리가 마지막입니다.” “그래요, 이제 조금만 오르면 됩니다. 다 왔어요.” 다 왔다고. 다 왔다고! 조금만 오르면 된다는, 다 왔다는 그 말이 어찌나 반갑던지. 생태 학살에 맞선 모든 싸움도 다 왔으면 좋겠다. 이제 더는 없으면 좋겠다. 골프장이 생긴다는 노자산과 지리산을 끝으로, 신공항을 짓겠다는 가덕도를 끝으로 더는 막개발 때문에 싸울 일이 없으면 좋겠다. 아, 이제 다 왔다, 하는 생각으로 전국 아니 전 세계에서 생태 환경 운동하는 이들이 희망을 보면 좋겠다. 현실은 시궁창이다. 기후변화, 기후위기, 기후재앙으로 단어가 바뀌는 동안에도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가파르게 올랐고, 해수면 온도 역시 해마다 역대 최고치를 갈아엎고 있다. 폭염, 산불, 긴 장마, 홍수, 가뭄 같은 재해 소식은 여기저기서 너무 쉽게 들린다. 엄청난 탄소를 흡수하던 산호는 하얗게 죽어 가고, 늘 얼어 있던 영구동토층은 녹았다. 인간이 화석연료를 끄집어내 펑펑 썼는데도, 여태 지구가 남아 있을 수 있게 버텨 주던 모든 자연 순환 장치들이 다 임계치에 다다랐다고 경고를 보내고 있다. 그러면 이제 좀 정신 차려야 하지 않나. 언제까지 골프장, 케이블카, 양수발전소, 신공항 타령이나 하고 앉아 있을 건지. 어느 모로 보아도 타당하지 않은 이야기로 개발을 부추기는 사람들은 지구의 경고가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그러니 숲이 사라진다는 말에도 ‘어쩌라고’ 자세다. 기후위기가 이렇게 심해지면 결국 먹을 것도 사라질 텐데, 돈 먹고 살 참인가? 사진5. 노자산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모습. 100만 평에 골프장이 들어서면 축구장 450개 면적 숲이 벗겨지고, 나무는 최대 200만 그루가 사라진다고 한다. 겨우겨우 전망대에 올라 바라본 노자산 위아래 풍경은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여기가 다 사라질 겁니다. 저어기 끝에서 저어기까지 다요. 요 능선, 요 능선, 그다음에 지나서 저쪽 능선까지.” 100만 평이라고 했다. 인간이 만든 측량 단위로는 감이 오지 않던 넓이가 눈으로 보니 실감할 수 있었다. 거대한 면적이었다. “왜요?” 하고 묻고 싶었다. “골프장 때문에요”라고 누군가 답하겠지만, 그럼 또 “왜요”라고 묻고 싶었다. 끝없이 “왜요, 대체 왜요, 이게 왜 사라져야 해요?” 하고 묻고 싶었다. “어리석은 사람들 때문이지요”라는 답이 돌아오겠지, 저 하늘에서. 얼마 전 노자산지키기시민행동은 노자산에 골프장을 만들려는 거제남부관광단지개발 사업의 환경영향평가가 거짓 작성되었다고 해당 업체를 고발했다. 대흥란, 거제외줄달팽이 등의 개체 수가 실제보다 더 적게 쓰였고, 생태·자연도 1등급 비율도 실제보다 낮은 것처럼 보고되었다고 했다. 모두 시민의 힘으로 알아낸 결과였다. 아이들부터 시민과학자까지 힘을 모아 노자산을 지키고 있었다. 다행이다. 이들이 있어서. 사진6. 노자산에 살지도 않는 중국단풍나무 등을 케이블카 기둥 옆에 갖다 심어 놓은 꼬락서니. ‘찰칵찰칵’ 노자산에 들어선 케이블카 기둥 옆에서 못난이가 사진을 찍고 있었다. 누군가가 뭘 찍느냐고 묻자 못난이는 안타까워하며 말했다. “중국단풍. 노자산 식생을 하나도 모르고 심어 놨어. 케이블카 세운다고 나무를 다 베어 놓고, 겨우 다시 심어 놓았다는 게 이 모양이네. 노자산에 사는 나무들이 뭔지도 모르고. 쯧쯧.” 이 모양이다. 아무거나 갖다 꽂아 놓기. 골프장은 이 모양도 안 나올 거다. 숲을 파헤쳐 농약과 제초제 마구 뿌려 대고 어마어마한 물도 끌어다 쓰는데, 온갖 미사여구를 갖다 붙인다 한들 골프장은 지구에서 좋은 모양이 될 수 없다. 찬성 측에서 천연기념물이든 멸종위기종이든 골프장 짓다가 나오면 다른 데로 옮겨 주면 되지 않느냔 말이 나왔다던데, 이렇게 기발한 생각을 하는 이들이 왜 이 숲이 사라지면 안 되는지를 상상하지 못하나. 있는데, 없을 겁니다, 이러다가는 사진7. 아미산전망대에서 멀리 보이는 가덕도와 도요등 그리고 둘레 섬들. “여기도 싹 다 없어질 거예요. 저 산, 저 산 다 깎이죠. 저기 마을 다 사라지고, 이 바다도 매립되고요. 대항전망대에서 마을 봤죠? 거기도 다 사라질 겁니다.” 워크숍 둘째 날, 가덕도신공항반대시민행동 김현욱 집행위원장님과 함께 가덕도신공항이 생기면 사라질 곳들을 둘러봤다. 대항전망대 아래로 보이던 마을도, 새바지항 멀리 보이는 파도와 둥근 돌 해변도, 외양포항에서 본 포진지와 모든 역사적 증거로 남은 공간들도, 울렁울렁 이어지는 산도 다 사라질 것들이었다. 지금은 있는데 앞으로는 없을 것들이었다. 사진8. 가덕도 포진지가 있는 외양포 마을. 1904년 러일전쟁 당시 일본군이 원주민을 몰아내고 진해만 요새 사령부를 만든 마을이다. 대포 자리와 포탄 저장고가 있는 이 마을엔 일본식 가옥, 일본식 공동목욕탕, 헌병대 막사, 일본군사령부 포진지를 나타내는 ‘사령부발상지지’ 비석도 모두 그대로 남아 있다. 100여 년 전 진해만 요새 사령부 주둔 당시 침략의 역사를 간직한 이 마을 역시 신공항이 들어서면 모두 사라진다. 여기가 사라진다는데도 기어이 들어온 것들도 있었다. 새로 지은 패널 집들이 눈에 띄었다. 신공항이 생길 거라는 소식에 어중이떠중이 덤벼 대충 집처럼 생긴 것들을 박아 놓은 모양이다. 신공항이 생기면 다 사라질 마을에 으리으리한 카페들이 척척 올라갔다. 보상을 바라는 이들이 미리미리 손쓴 모양이다. 보상을 받기 위해서라도 신공항이 들어서길 바라는 사람들은 신공항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목소리 낼 수 없게 또 미리미리 손을 쓴다는데. 집행위원장님은 외롭게 싸우는 듯 보였다. “가덕도 둘레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낙동강 하류 철새도래지와 습지보호구역도 있어요. 여기 보이는 바다도 해양생태도 1등급인 지역으로 상괭이가 살아요. 아직 결정도 안 된 엑스포를 명분으로 내세워서 무리하게 공사를 강행하려고 합니다. 그런데도 무슨 상괭이가 밥 먹여 주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신공항이 생길 가덕도를 바라보기 위해 아미산전망대에 올랐을 때, 기어이 그의 눈물이 터지고야 말았다. 그가 삼킨 말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모자를 내려 그의 눈을 바라보지 않았다. 그가 맘껏 울고 엉엉 소리 내어 울고 마구마구 가슴속 응어리를 터뜨리면 좋겠다 싶었다. 그는 조용히 눈물을 훔치고는 빨개진 볼을 쓰다듬을 뿐이었다. 가덕도신공항은 다음 해인 2024년 말 착공해 2029년 12월 조기 개항을 목표로 한다고 한다. 여의도 면적의 두 배가 넘는 규모(666만 9,000㎡)라고. 초안보다 목표 개항 시점을 6년이나 앞당긴 데다가, 가장 최근 발표한 사업비만 15조 4,000억 원으로 앞으로 사업비가 늘어날 수도 있다는데. “가덕도신공항 예정지엔 멸종위기 야생동물 1·2등급인 삵과 솔개, 수달, 표범장지뱀이 살고 있어요. 생태·자연도 1등급 지역이에요. 국내에서 거의 유일하게 100년 이상 보존된 동백군락지도 있어서 전문가들도 이런 숲은 없애선 안 된다고 말해요.” 김현욱 집행위원장님은 가덕도의 생태적, 역사적 가치가 어마어마한데도 부산 엑스포를 내세워 완공 시기를 앞당기려고만 하는 정책에 한숨지었다. 우리는 100년 넘게 보존된 동백군락지를 가 보고 싶었지만 시간이 부족해 가지 못했다. 사실 나는 체력도 바닥난 상태였다. ‘다음에 갈게. 그때도 무사히 있어 줘, 제발.’ 다음엔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안 보고 싶은 건 따로 있는데. 다음에 또 만나요, 무사히 우리의 연대 탐방은 이렇게 마쳤다. 거제 노자산골프장도, 가덕도신공항도 절대 안 되는 까닭은 차고 넘친다. 그 가운데 일부를 우리가 보고 왔다. 또 우리는 사람들을 보고 왔다. 보존해야 할 존재들이 버젓이 있는데 없다고 하는 것들에 맞서는 사람들을. 때로는 유쾌하게, 때로는 열렬하게 맞서는 사람들이었다. 한 사람씩 고개를 돌려 하나, 둘, 셋 숫자를 세며 서로 안전한지 확인하듯, 우리는 고개를 돌려 서로 ‘있음’을 확인하고 왔다. 이번 지리산-노자산-가덕도 연대 탐방을 마무리하며 모두가 하나같이 공감한 생각은 바로 연대의 힘이었다. 너무 뻔한 말이지만, 진짜 연대만이 살길이라는 생각이 맨 마지막까지 남는다. “팔색조가 밥 먹여 주냐? 상괭이가 중요하냐?” 묻는 사람들이 더 생기지 못하게 하려면, 비인간-비자본 존재들 생각에 눈물 흘릴 줄 아는 이들이 손잡을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팔색조가 밥 못 먹는 세상에선 우리도 밥 못 먹는다, 상괭이가 중요하지 않은 세상에선 무엇도 소중해질 수 없다”는 당연한 소리가 묻히지 않기를 바라며 구례로 돌아왔다. 다리는 후들거리지만, 마음은 좀 더 단단해진 듯했다. -
윤주옥 08-10 06:25
[923 기후정의행진] 위기를 넘는 우리의 힘
[923 기후정의행진] 위기를 넘는 우리의 힘 2019년 9월 21일 시작된 대중들의 기후행동은 3년의 시간을 넘어, 2022년 924기후정의행진을 통해 대중의 절박성과 의지의 강력함을 확인했습니다. 이어 2023년 414 기후정의파업을 비롯하여 각 지역에서 크고 작은 기후행동이 이어졌고, 수많은 사회 의제들이 기후위기와의 강한 연결성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근본적 사회변화를 향한 기후정의운동의 힘은 아직 미약합니다.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 정책은 퇴보하고 있고, 기후위기의 주범인 기업들은 그린워싱으로 대중을 기만하고 있습니다. 기후정의행진이 있고서도 신규석탄발전소는 계속 건설되고 있으며 온갖 대규모 생명 파괴 토건 사업들은 오히려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기후위기의 최일선 당사자이자 정의로운 전환의 주체들은 더 모질게 탄압받고 더 끔찍하게 배제당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기후정의’의 기치로 다시 한 번 모여 아래로부터의 권력을 조직하고 그 거대한 힘을 확인하고 기후위기 당사자가 권력을 형성하는 행동을 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기후정의는 기후위기 시대와 사회의 모순을 체제의 문제, 권력의 문제로 인식해왔습니다. 파괴적이고 불평등한 체제를 극복하고 아래로부터의 권력을 되찾는 것이 기후정의행진임을 다시 확인해야 할 때입니다. 또한 거리에 모인 우리들의 행진이 ‘정부 비판’을 넘어 체제전환을 향한 다양한 운동의 요구를 전면화하는 자리가 되어야 합니다. 2019년 9월 기후행동 이래로 4년의 시간동안 넓어지는 동시에 응집되어 온 기후정의운동의 힘을 다시 모읍시다. 그 힘으로 선명한 싸움을 시작하고 새로운 체제, 새로운 시대로의 길을 터나갑시다. 기후위기비상행동, 기후정의동맹 -
윤주옥 08-04 02:01
[8월 12일] 안전한 바다를 지키는 우리의 함성
안전한 바다를 지키는 우리의 함성 -일본 방사성오염수 해양투기 저지 국민행동 오염수 해양투기 시행이 임박한 가운데 오는 8월 12일 최대한 시민의 힘을 결집하고자 합니다. 당일 본 집회에 앞서 탈핵, 기후, 환경 진영이 공동으로 탈핵과 오염수저지를 함께 외치는 사전 집회도 진행합니다. 참가비 : 1만 5천원 버스출발시간 (8월 12일) : 10시 30분 구례문화예술회관 입구 큰길 11시 10분 남원의료원 옆 공터 지리산버스 참가신청폼 : https://forms.gle/yBuEFCGvMt1x3Ry36 물어보기 : 010-5634-6656 / 010-4686-6547 / 010-3413-2027 -
성염 04-22 21:21
[지리산인 칼럼] “여러분은 사회적 시인(社會的詩人)!” You are Social Poets!
“여러분은 사회적 시인(社會的詩人)!” You are Social Poets! 성염 (전 주교황청 한국대사) 지리산 자락자락에 안겨 살면서 문정댐이니 케이블카니 산악열차로부터 마고할메 치맛자락을 지켜주려고 맘고생하는 이들에게 “여러분은 시인입니다. 사회적 시인입니다(You are social poets). 인간사회의 약자들을 갈라치기하고 창조계의 생물들을 쓰고 폐기(廢棄)하는 문화 풍조 속에서 지구라는 공동주택(common home)을 지키겠다고 꿈꾸는 시인들입니다.”라는 격려를 보낸 종교지도자가 있다. 로마 교황 프란치스코다. 2021년 10월 16일, 전 세계 사회운동가, 민중운동가들에게 보낸 메시지였다. 그는 10년 전 가톨릭교회에서 성베드로의 제266대후계자로 뽑히자마자 전 지구에 충격을 가해왔다. 13억 가톨릭신도들을 지도하는 기조문서 「복음의 기쁨」에서, 그는 쇠푼께나 있다고 거들먹거리며 세계 금융시장과 대기업들과 다국적기업들을 이미 장악한 ‘신자유주의’ 경제를 ‘살인경제(殺人經濟)’라고 단언하였다. 미국 보수언론인(Rush Limbaugh)에게서 ‘순 빨갱이(pure Marxist)’라는 욕설이 나옴직했다. 그리고 ‘하나뿐인 지구’라는 자연을 파괴하지 말자고, 생명체들을 멸종시키지 말자고 호소하는 「찬미 받으소서」라는 문서를 내놓자(2015)미국 폭스뉴스가 이 교황을 ‘지구상의 가장 위험한 인물’로 단정했다. 종교는 ‘생태 복음(生態福音)’이어야 프란치스코는 지구(地球)가인류와 모든 창조물의 ‘공동주택’이니까무릇 종교는 지구상의 모든 생명이 반길 기쁜 소식, 곧‘생태 복음(生態福音)’이어야 한다고 확대한다. 그가 구상하는 그리스도교는 ‘지구에 충직하면서 모든 생명계를,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을 배려하는 종교’다. ‘타자들에 대한 개방 여부’로 개인적 집단적 구원이 결정된다는 종교적 신조를, 이제 창조계 전체로 열어 우리 다함께 구원에 이르자고 요청했다. 4세기의 인물 아우구스티누스는 이것을 ‘사회적 사랑(amor socialis)’이라고 명명했다. 교황의 문서 「찬미받으소서」는 13세기 인물 아씨시의 프란치스코(1181-1226)의 시구에서 제목을 따왔는데 ‘하느님의 어릿광대’로 자처한 저 인물이 “저의 주님, 찬미 받으소서. 누이이며 어머니인 대지로 찬미 받으소서. 저희를 돌보며 지켜주는 대지는 온갖 과일과 색색의 꽃과 풀들을 자라게 하나이다.”라고 읊은 ‘태양의 찬가’는 이탈리아 시문학의 효시로 평가된다. 지구라는 환경 체계를 위협하고 공멸을 향해 가는 인류에게 우리 공동주택을 덮치고 있는 재앙을 알리고, 누구보다도 종교인들에게 자연을 바라보는 시각의 전환, 생활양식의 변경, 그리고 생태영성(生態靈性)의 함양을 호소했던 현자였다. “우리와 함께 삶을 나누는 누이이며 두 팔 벌려 우리를 품어 주는 아름다운 어머니와 같은 지구가 지금 울부짖고 있습니다. 가난한 이들의 비명에 귀 기울이고 창조계 전체의 신음을 귀여겨 들읍시다.”라고 하소연하는 프란치스코교황은취임 후 첫 방문국으로 택한 한국에서 방한 내내 세월호 배지를 가슴에 달고 다녔고, “그것 좀 떼고 중립을 지키시오!”라던 한국인 고위성직자에게 “타인의 고통 앞에는 중립이 없소!”라는 결연한 답변을 우리 국민의 뇌리에 남겼다. 1968년 창립된‘로마클럽’ 이래로 미래학자들이 지구온난화로 인한 인류세(人類世)의 임계점이 수년밖에 안 남았다고 경고하는데도, 아마존을 불 지르고 화석연료 소비를 증대시키고 산과 강에 삽질하며 무수한 종을 말살시키고 있는 짓은 “인류의 자살이요 환경학살이요 생물 종의 학살”이라는 것이 교황의 외침이다. 한번 저지른 환경파괴는 거의 돌이킬 수 없기 때문에 인류도 국가사회도 양단간의 선택기로에 놓여 있는 현시점에서, 환경운동가들이야말로 ‘죄의 구조’, ‘죽음의 체제’에 맞서서지구상의 생명을 구하겠다고 투쟁하는, 인류의 주춧돌이라고 독려한다. 교황은 이 메시지에서 “하느님의 이름으로 요청합니다. 광산, 석유, 삼림, 부동산, 농산품을 좌우하는 대기업들에게 호소합니다. 삼림 파괴를 중단하시오! 습지 파괴를 중단하시오. 산을 훼손시키지 마시오. 강을 오염시키고 바다를 오염시키는 짓을 그만두시오, 주민들과 곡물을 [화공약품으로]중독시켜가는 짓을 그만두시오!”라고 경고한다. 그는 세계 곡물회사들, 무기장사들, 허위와 조작을 일삼는 언론재벌들, 강대국과 국제금융기관들에게도 ‘하느님의 이름으로’ 같은 호소를 보냈다. ‘잘 사는 세상’이란 ‘인류 전체와 정의롭게’, ‘창조계 전체와 조화있게’ 살아감’이라는 가르침이다. 윤정권이 두려워하는 것은 ‘꿈꾸는 사람들’ 국민의 촛불 혁명을 꺼뜨린 현정권이 한반도의 가난한 이들과 노동자와 농민, 여성에 대한 증오와 갈라치기로 뭉쳐진 집단으로 드러나면서, 설악산 케이블카 설치허가와 원전확대로 환경운동가들은허탈하다 못해 공포에 사로잡히는 듯하다. 교황은 우리에게 말한다. “기득권 수호에 앞장선 자들에게 가장 위험한 인물들은 ‘꿈꾸는 사람들’입니다. 강자들의 집단적 이기심, 약자들의 영합, 중도층의 체념을 시인들이 문제 삼으면서 심간을 편치않게 만드는 까닭입니다.” 우리의 꿈은 국민이 유일하게 권력에 접근하는 선거와 투표에서 반영되기도 한다. 한반도 남쪽의 국립공원들의 생태를 살리는 노력에 헌신하는 우리에게 프란치스코는 이런 격려를 보낸다. “무한성장의 야심으로 자연을 오로지 수탈하고 착취하고 폐기하는 사고방식으로 되돌아가지 않으려면 꿈을 꿀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꾸는 꿈은 인류라는 종족에게 자유, 평등, 정의 그리고 존엄을 그려가고실현하려는 원대한 꿈입니다. ‘보다 나은 세상(a better world)’을 만들고 보전하여 후손에게 물려주려는 꿈입니다. 우리 시인들이 꿈꾸는 이 꿈을 통해서 창조주의 꿈이 우리 모두에게 관통하고 드디어 역사로 실현되기에 이릅니다.” 이 나라의 금력과 권력을 독점적으로 누리는 자들은 국민의 1%에 불과하며, 현정권의 제반행태는 공포가 핵심이다.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등의 진보정권의 출현에서, 그동안 중국, 일본, 미국에 의존해서 영화를누려온 노론파가 그 기득권을 영구히 누리지는 못하리라는 공포심을 감추러 자기들은 무슨 파렴치도 감행할 수 있다는허세를 보인다. ‘조직’의 그 허세를 우리가 두려워하지 않으면 저자들은 허깨비다. 우리는 남북의 분단을 넘어, 그리고 우리네 금수강산이라는 창조계 전체와 더불어 조화를 이루는 삶을 꿈꾸는 까닭에 저자들이 우리를 두려워한다. 운동가들이 공포를 품을 것은 아니니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저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프란치스코는 이렇게 매듭짓는다. “우리 함께 꿈을 꿉시다! 저 참담하고 오래도 가는 체념에 우리는 절대 빠지지 맙시다.” *이곳의 사진은 4월 14일 정부세종청사 앞에서 진행된 ‘414기후정의파업’에 참가한 박두규 시인, 최상두 대표가 찍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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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그대로일 때 강하고 아름답다
모니터링의 두 번째 꼭지였던 탐방로(등산로) 일부 구간의 침식 우려 건은 비전문가인 내가 보기엔 아직은 인간이 끼어들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비가 제법 많이 내린 후에 이루어진 모니터링이었는데 다녀온 어느 구간에서도 탐방로(등산로)가 침식되거나 침하된 곳은 없었다. 전문가의 생각은 다를 수 있겠지만 자연에 대한 인간의 개입은 최소화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하동읍 거주이순경 08-18 11:09 -
[5월30일~31일] 제2회 수달의 아우성 “수달의 길을 걷다”
세계 수달의날 기념 제2회 수달의 아우성 “수달의 길을 걷다” 수달이 걷는 길 행복의 길은 아침 저녁 먹이 찾아 나서는 길 기쁨의 길은 멀리 가지 않고 그곳에서 사는 길 아픔의 길은 서식지가 파괴되어 떠나는 길 죽음의 길은 낯선 환경에서 배회하다 떠나는 길 모든 생명이 걷는 길은 미래가 있어야 한다. ‘제2회 수달의 아우성’은 수달을 따라 수달의 길을 걷습니다. 이웃 생명과 함께 걷는 행복한 길이 되었으면 합니다. ● 일시 : 2023년 5월 30일 (화) 13시 30분 ~ 31일 (수) 9시 ● 장소 : 지리산리조트 (함양군 휴천면 천왕봉로 2257-2)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지리산사람들․ 수달친구들․ 한국수달보호협회. 함양교육지원청. 에스오일 - 물어보기 : 수달아빠 최상두 010-4740-1915최상두 05-18 12:57 -
복주머니난
복주머니난 산림청에서 희귀식물로 지정한 보호대상종이다. 환경부 멸종위기 야생생물 II급, IUCN Red List 위기(EN) 복주머니란은 우리나라 각처의 산지에서 자라는 다년생 초본이다. 생육환경은 숲 속의 반그늘이나 양지쪽의 낙엽수 아래에서 자란다. 키는 30~50㎝가량이고, 잎은 3~4장이 나며 길이는 15~27㎝, 폭은 11~17㎝이다. 꽃은 붉은색 또는 백두산에는 흰색으로 피며 항아리와 같은 모양으로 달리고, 위에는 1개의 잎과 옆에는 2개의 잎이 있다. 열매는 7~8월경에 달린다. 처음에는 “개불알란”이라는 이름으로 소개되었는데, 이는 자생지 근처에 가면 마치 소변냄새와 같은 것이 진동을 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촬영일자 : 20210522 노고단김인호 05-05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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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자락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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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항하는 청춘의 원더풀 라이프 “나는 반항한다 고로 존재한다"
섬진강을 따라 자전거를 타고 오고 가던 시절이 있었다. 아마도 2005년이나 2006년쯤이었을 것이다. 나는 구례에서 악양까지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왕복 60km였다. 봄이 끝날 무렵 시작한 자전거 출퇴근은 겨울이 오면서 끝났다. 그 후로 자전거 출퇴근을 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하던 일을 그만두었고 악양은 나에게서 멀어졌다. 지리산에 내려와서 살게 된 이유는 간단했지만 살아가기는 녹록하지 않았다. 구례에서 섬진강을 따라 악양으로 향하면서 그때의 기억들이 떠올랐다. <그는 올해 지리산사람들 공동집행위장이 되었는데 올해 관운이 있는 사주라고 했다. 사진 김인호> 오늘 악양에 사는 최지한씨를 만나기로 했다. 그를 지난겨울 남원의 산악열차 반대 시위장에서 본 기억이 있다. 아마도 남원시청 옆이었을 것이다. 한겨울이었는데 그는 맨발에 슬리퍼 차림이었다. 딱 봐도 보통은 아닌 사내다. 머리는 삭발이었다. 그를 악양면 소재지에 있는 카페에서 만났다. 길 건너에 악양초등학교가 보였다. <그의 첫인상은 “나는 반항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진 김인호> 오래 전에 악양에 일할 때 그 초등학교 운동회에 참가했던 기억이 난다. 아이들의 신난 함성이 가득한 운동장에 오후에 햇살이 눈 부셨다. 커다란 히말라에시더(개잎갈나무 50미터까지 자란다)가 동쪽에 있었다. 누군가는 이 나무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무라고 했었다, 나도 가끔 동의하지만, 집안에 심기에는 나무가 너무 크다. 이 나무를 키우다 보면 예상보다 너무나 커버리기 때문에 위를 잘라버린다. 주변과 어울리지 못하는 것들은 싹을 잘라 버리는 것이 사회의 일반적이 법칙이다. <그가 환경운동을 시작하게 된 이유는 공해문제연구소에서 만든 한국의 공해지도라는 책을 초등학교 3학년 때 만났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진 김인호 > 그의 첫인상은 “나는 반항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세상 사람들이 히말라야 시더의 위를 자르는 것같은 사회의 일반적인 잣대를 그는 봐줄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그가 하동에 살게 된 것은 2006년쯤이라고 한다. 내가 하동을 떠난 것이 그쯤이었다. 그는 멀리 강원도 고성 출신이라고 했다. 화진포가 가까운 강원도 산골 마을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북한을 지척으로 둔 강원도 최북단에서 태어났다. 나는 몇 해 전 화진포에 가봤다. 화진포 바다는 서해나 남해와는 다른 고독하고 외로워 보이는 진한블루였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초등학교 시절 어느 해 서울로 이사를 했다고 한다. 그 후 대학에서 양식업을 공부했다. 그리고 남해의 여러 섬마을을 전전하며 양식장에서 일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결국 여기 하동 악양에 정착했다. 그의 직업은 대바구니를 만들거나 수리하는 일과 정원관리라고 한다. 그리고 지역의 사람들과 환경을 지키는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가 환경운동을 시작하게 된 이유는 공해문제연구소에서 만든 한국의 공해지도라는 책을 초등학교 3학년 때 만났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도 고등학교 시절 그 비슷한 책을 본 적이 있다. 한국에서 가장 오염도가 높은 곳은 하동 넘어 광양이었다. 광양에는 광양제철소가 있다. 세계최대 규모의 제철소가 있고 거기서 품어져 나오는 대기 오염 물질은 한국 대기 오염 물질의 5.43%라고 한다. 나 역시 검은 역기가 품어져 나오는 그 사진을 책에서 본 기억이 난다. 그 책을 보고 열 받아서 환경운동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동기가 순수하다. 아마도 그는 순수한 남자인 것 같다. 몇 해 전부터 하동은 산악열차로 인해 갈등이 깊었다. 악양 형제봉에 산악열차를 설치하겠다는 하동군의 야심 찬 계획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산악열차 반대 운동을 했다. 그것도 열 받아서 했다고 한다. 나는 그에게 양말을 신지 않는 이유를 물었는데 대답은 간단했다. “발에 열이 많아서 답답해요.” 그는 역시 열이 많은 사람이었다. 재밌는 이야기를 해 달라고 했더니 그는 마루에서 3년을 살았던 적이 있다고 했다. 왜 그러셨나요? [어느 해 봄 비가 오는 날 구들이 고장이 나서 일산화탄소 중독이 된 적이 있어요. 마을로 기어와 동치미 국물을 얻어먹었어요. 그 후로 방에 들어가 자지 않았어요.] 방에 들어가지 않으니 마루밖에 잘 곳이 없었다고 한다. 그는 그렇게 마루에서 3년을 살았다고 한다. 보통 사람은 아니다. 카페에서 인터뷰하고 그가 일하는 대나무 공방에 가봤다. 녹색평론 읽기 모임이라는 작은 안내문이 문 앞에 붙어 있었다. 나 역시 오래전에 녹색평론 읽기 모임을 한 적이 있다.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 오래전 일이지만 말이다. <간디의 물레라는 사진을 본 적이 있는데 그가 수리하는 대바구니가 물레처럼 보였다.> 공방에는 헤진 바구니와 새로 만든 바구니 그리고 수리를 원하는 대바구니가 보였다. 그가 말한 바에 의하면 이것으로 먹고살고 약간의 잉여자본도 생긴다고 했다. 간단한 도구로 생계가 가능한 일이라서 좋다고 했다. 나는 이런 식의 밥벌이를 본 적이 없다. 그가 작업하는 모습을 한참 동안 보고 있었다. <공방에는 헤진 바구니와 새로 만든 바구니 그리고 수리를 원하는 대바구니가 보였다.> 익숙하게 대바구니를 수리했다. 능숙한 솜씨가 보기 좋았다. 간디의 물레라는 사진을 본 적이 있는데 그가 수리하는 대바구니가 물레처럼 보였다.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도 간단한 도구로 새로운 물건을 만들거나 물건을 고치는 일은 매력적이다. <간디의 상징이 된 물레> 그가 좋아하는 영화는 고레이다 히로카즈 감독의 환영의 빛이라고 했다. 섬진강을 따라 돌아오면서 오후에 햇살이 섬진강을 비추는 것을 봤다. 아마도 환영의 빛은 이런 빛일 것이다. 누군가 한 번은 자신을 끌어들이고 유혹하는 환영의 빛에 이끌려 자신도 모르는 어느 곳에서 멍하니 서 있는 자신을 경험했을 것이다. 그는 스스로는 반항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아마 그는 자본주의 주류 사회를 거스르고 싶은 환영의 빛에 어느 순간 이끌렸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는 빛이 이끄는 경로를 따라 여기까지 왔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항하는 청춘 최지한, 그의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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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을 너무나 사랑했던 사람의 지리산 사랑법
첫 수선화가 피던 봄날 함양 휴천면으로 향했다. 지리산 높은 곳에는 잔설이 남아 있었지만, 우리가 만난 그날은 여름이라도 되는 듯 따뜻했다. 만나기로 한 식당 한쪽에 노인 한 분이 앉아 있었다. [함양 휴천면 지리산 리조트 식당] 봄나물이 가득한 밥상에서 음식 이야기와 날씨 이야기 같은 상투적인 말들이 오갔다. 식사가 끝나고 카페에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야기를 시작하자 흰머리가 가득하던 그녀의 눈은 반짝이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이루지 못한 첫사랑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10대 소녀 같았다. [김종직의 유두류록 탐구의 저자 류정자 작가. 사진 김인호] 류정자 선생님은 밀양 태생으로 1948년생이다. 1965년에 산악회 활동을 하던 사촌 오빠와 처음 지리산에서 왔다고 한다. "오빠가 지리산에 한번 가보자고 하더라고요" "저는 그때만 해도 지리산에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어요." “그때는 심원마을에서 출발해서 노고단으로 갔어요." “심원마을에는 사람들이 꽤 살고 있었죠" "심원마을에서 하루 쉬고 노고단에 올랐어요." "노고단에 오르니 노고단 천지가 모두 원추리 꽃밭이었어요. “ "산을 가득 메운 원추리꽃을 보고 있으니 너무 좋았죠“ "어찌나 예쁘고 곱던지 지리산이 내 가슴에 박혀 버렸죠“ 사랑은 그렇게 시작되는 것이다. 나도 모르게 어느새 순간 번쩍이는 것이다. 그날 그 일행은 노고단에 이틀을 머물다 내려왔다고 한다. "꿈같은 시간이었어요." [지리산 모임 [우리들의 산악회]에 회원으로 참여하면서 본격적으로 지리산 골골을 누비고 다녔다. 사진 김인호] 그때만 해도 그녀도 그날 이후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지리산에 빠져서 살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는 처음에는 지리산은 노고단뿐이라고 생각했다. 지리산에 가고 싶을 때는 매번 심원마을을 거쳐 노고단에 올랐다. "제 산행 방식은 좋으면 매번 그 장소에 다시 가는 겁니다." 아마도 그런 스타일이었기 때문인지 노고단에만 가도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단다. "다른 곳을 찾을 필요도 없었죠" 하지만 곧이어 지리산 골골 여기저기를 다니게 되었다. "결혼을 일찍 했어요" "부산에서 살았는데 부산에서도 틈만 나면 산에 왔지요." 지리산 모임 [우리들의 산악회]에 회원으로 참여하면서 본격적으로 지리산 골골을 누비고 다녔다. “저는 지리산 골짜기 골짜기 안 가본 곳이 없어요." "저는 좋으면 같은 장소를 자주 가는 스타일이거든요." "결혼하고 아이 셋을 키우면서도 매번 지리산에 왔지요". "아이들은 엄마를 지리산에 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자랐어요." "아이들이 아주 어렸을 때를 빼고는 틈만 나면 지리산을 찾았습니다." 한 권의 책이 류정자씨를 탐구자로 만들었다. 하지만 그녀의 지리산 산행은 지리산이 좋아서 가는 것에서 지리산을 탐구하는 방식으로 바뀌게 된다. 그 결정적인 책이 바로 조선 시대 함양의 군수 김종직의 유두류록이다. [김종직(1431∼1492)은 조선 시대 성리학자·문신인 선생이 함양군수로 부임한 이듬해 지리산 천왕봉을 다녀와서 '유두류록(遊頭流錄)' 이란 기행문을 남겼다. 두류산(頭流山)은 '지리산'의 다른 이름이다. 1472년 8월14일부터 18일까지 4박 5일 일정으로 13.3㎞ 가운데 국립공원에 속한 노장대(함양독바위)∼상내봉(향로봉)∼미타봉∼어름터 4.5㎞ 구간이다. 옛 문헌에 김종직 선생이 올랐던 탐방로가 지리산 전체 등산길의 제1호로 알려져 있다. 이 책은 유람동기, 동행인, 날짜별 기록, 사적들, 풍경, 서정적인 감정, 당시 시대상 등을 모두 담고 있어 역사적인 가치가 매우 높다.] 사실 필자도 김종직의 유루류록을 읽은 적이 있다. 물론 읽기만 했지 거기에 나오는 지명이라든지 절터라든지 이런 것에는 일말의 궁금증도 없었다. 오래된 지리산 이야기를 읽고 싶었고 마침 도서관에서 그 책을 발견하고 재밌게 읽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녀는 달랐다. [지리산 산중에 산재 되어 있는 민가와 암자 터 등을 보면서 지리산이 품고 있는 인간의 역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우리들의 산지를 통해 김종직 선생의 ≪유두류록≫ 국역본을 접하면서 지리산의 역사를 본격적으로 천착하게 되었다. 2003년 지리산학의 정립을 꿈꾸며 결성한 [지리99] 운영진에 참여해 본격적인 [유두류록 탐구팀]을 꾸려 20여 년간 탐구산행을 이끌어 왔다. 이 책은 그 오랜 탐구의 작은 결실이다. 또한 ≪유두류록≫ 탐구와 병행하여 문헌기록에 등장하는 폐사지 탐구에도 심혈을 기울여 찾아낸 암자터가 100여 군데 이른다. 이 외에도, ‘세석의 청학연못’, ‘지리산의 시대를 연 달궁’, ‘지리산 고성탐구-추성’, ‘촛대봉 각자 高麗樂雲居士李靑蓮書를 찾아서’, ‘대궐터 탐구’, ‘문창대는 어디인가?’, ‘천왕봉 성모석상 수난의 역사’, ‘천왕봉 각자 일월대에 대하여’ 등 다수의 소고를 발표하면서 지리산학의 정립에 몰두해 왔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전을 잡고 지리산과 함께 살고 있다.] - 노컷뉴스 소개 글- [지리99라는 사이트에 류정자 작가의 다양한 글을 만날 수 있다. 사진 김인호] 그녀의 나이는 이제 75세가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지리산을 오른다. 3년 전에 김종직 선생이 산을 오르기 시작했던 마을로 이사를왔다. 류정자 선생은 두 번이나 암에 걸려 두 번의 큰 수술을 해야 했다. 하지만 그녀에게 정말 슬픈 일은 막내아들을 먼저 보낸 것이다. "그때가 가장 힘들었어요. 엄마가 지리산에 다닌다고 아들을 잘 살피지 못한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그 후 몇 년간 지리산에 오지 못했어요." 하지만 그녀는 다시 지리산으로 돌아왔다. 지금 이루고 싶은 것이 있으세요? "뭐 다른 게 있을까요?" "이제까지 발견한 폐사지(사라진 절터)가 100여 곳이 됩니다." "이제 이걸 정리하고 싶어요." "책을 묶어 두면 누구에겐가 도움이 되겠지요." "김종직 선생님이 류두류록을 남기지 않았다면 그 후세에 지리산에 오르려고 했던 분들에게 참고 자료가 되지 않았을 것이고 제게 폐사지에 관심을 두지도 못했을 겁니다“ [김종직의 유두류록 탐구 600년 전 지리산 산행기 저자류정자] "제가 얼마 전에 김종직의 유두류록 탐구을 책을 내기도 했습니다만, 제가 여러 서적과 문헌들을 참고하고 직접 수십 번을 찾아가서 발견한 지리산 폐사지 터에 대한 기록도 저 처럼 관심있는 누군가에게는 작은 도움이라도 되리라 생각 합니다." "이런 작업을 하는 사람은 없거든요." "그리고 김종직 선생님이 지리산에 올랐던 길을 복원하고 싶은 작은 소망이 있습니다." 지리산을 좋아하게 된 이유가 뭘까요? 류정자 작가는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그렇지! 사랑하는 것에는 이유가 없는 법이다. 그녀의 지리산 사랑이 60년이 되어 가고 있다. 무엇인가 사랑하게 되면 자주 보고 싶고, 더 알고 싶고,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것이 사랑의 방식일 것이다. 그녀는 지리산을 사랑하다 보니 자주 갔고, 관심이 커지다 보니 책을 냈고, 폐사지를 탐구했다. "내가 죽으면 지리산 골짜기 여기 저기에 뿌려 달라고 아이들에게 이야기 해두었어요." 그녀는 죽어서도 지리산과 함께하고 싶은 것이다. 찐 사랑은 이런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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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치 없는 갈치 마을에는 갈치 신문이 있다.
2023년 1월 9일 겨울 치고는 유난히 따뜻한 날 나는 갈치 마을 이장과 만나기로 했다. 남원 산중 마을 이름이 갈치라고 하니 그 이름이 독특해서 더 끌렸는지 모른다. 함께 가는 일행들과 함께 갈치 마을로 이동하기 전에 우리는 남원 시내에 있는 갈치 집에서 갈치 조림을 먹었다. 푹 끓여진 갈치와 무가 꽤 맛이 좋았다. 갈치 마을 가는 길은 남원에서 장수로 나가는 길목에서 보절면으로 꺽어 몇 분 들어가면 나오는 초입에 있었다. 갈치 마을을 둘러보니 전형적인 산골 마을이었다. 갈치 마을은 상갈치, 중갈치, 하갈치 마을로 생선으로 비유하면 머리, 배, 꼬리라고 볼 수 있을 것같다. 물론 갈치 마을과 바다에 사는 갈치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었다. 갈치의 꼬리와 머리가 비중이 작듯 중갈치 마을이 가장 크고 상갈치 하갈치 마을에는 각각 10가구 정도가 산다고 한다. 갈치 마을의 갈은 칡을 뜻하는 한자에서 왔다. 칡차를 갈(葛)근차 라고 쓰는 그 한자다. 즉 칡이 많은 동네라는 뜻이라 한다. <갈치신문 28호 사진속의 장면은 치치페스티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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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교사 상글이 원하는 세상은?
2022년 5월 28일 구례 오일장 상설무대에서 진행된 ‘잘 뽑고 싶다구례 문화제’에서 발언한 상글의 이야기입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구례에 살며 초등학교 아이들과 텃밭에서 만나는 상글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발언할 수 있도록 초대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지리산에 깃들어 살게 된지 올해로 3년차에요. 봄이 되면 씨앗을 뿌리고 여름이면 풀도 매고, 자연의 시간에 따라 몸을 움직이며 살게 되었네요. 생태텃밭수업 덕분에 저는 올해 돌보고 있는 텃밭이 4곳이나 있어요. 하나는 저희집 마당이구요, 용방, 토지, 옆 동네 남원에도 한곳있어요. 농은 곧 생명을 돌보는 일이니, 그만큼 책임감도 느끼고 기대가 되기도 해요. 모두의 마음이 푸르러지는 올 봄, 우리는 씨앗을 싹 틔우고 모종을 길러 저마다의 소중한 기대를 담아 텃밭에 옮겨심었어요. 완두, 토마토, 가지, 고추, 파프리카 먹을거리도 풍성하게 심고, 메리골드, 한련화, 해바라기 다양한 꽃들도 어우러져 심었어요. 아이들은 매일 아침 물을 주고, 따뜻한 말을 건네고, 올해도 우리는 텃밭에서 수많은 감동의 순간들을 만날거에요. 그런데 요즘은 손끝에서 가뭄을 느끼고 있어요. 아침에 물을 준 것도 금새 말라버리고, 아이들이 직접 만들어 놓은 빗물 저금통에 물이 말라버린지는 꽤 오래되었어요. 한 없이 펑펑 쏟아져나올 것 같던 수돗물도 요즘엔 찔끔거릴 때가 있어요. 지난 주, 저희 마을에서는 이장님께서 방송을 하시더라구요. 날씨가 가물어 물이 부족하니 빨래를 자제하고, 불필요한 생활용수는 가급적 사용하지 않도록 하라. 그리고 덧붙여 텃밭에 물주는 것도 자제하라고 하셨어요. 비가 오지 않는 것도 문제이지만, 여느때보다도 날씨가 덥고 기온이 높아 땅에 있는 수분의 증발 속도도 훨씬 빠르다고 해요. 지구는 오랫동안 경고신호를 보내왔어요. 이것은 환경적 재난이고 기후위기입니다. 위기감이 우리의 삶에 점점 더 가까워 지는 것을 느끼고 있어요. 구례군은 기후위기에 대한 어떤 대안을 준비하고 있나요? 우리는 어떻게 조금이라도 기후변화의 영향을 늦출 수 있을까요? 코로나로 모든 물리적인 접촉이 제한될때, 무엇보다도 간절한 것은 다시 ‘연결’되는 것이었어요. 불안 속에서 다시 안정을 되찾고 서로에게 따뜻한 포옹을 건넬 수 있는 안전한 사회. 그 안에 있던 연결감을 되찾는 것이요. 저는 이것이 돌봄의 감각으로 온다고 믿어요. 누구나 우리 안에는 돌봄의 감각이 있겠지요. 텃밭에 찾아오는 아이들에게도 있어요. 강자에게도 약자에게도, 인간에게도 비인간동물에게도, 할머니에게도 할아버지에게도, 우리 모두에겐 돌봄의 힘이 있어요. 오로지 경제 성장 중심의 해법으로는 위기를 해결할 수 없어요. 돌봄 사회로의 전환이 기후위기의 근본적인 해법이라고 생각해요. 개인과 사회의 목표가 생명을 돌보고 살리는 노동이 중심이 되어야합니다. 우리는 돌봄을 중심에 놓고 살 수 있는 경제구조와 문화를 만들어야합니다. 생태텃밭에서는 흙의 생태계를 돌보는 일을 함께 하고 있어요. 땅을 갈아엎지않고, 자연 멀칭을 하고, 돌려짓기, 사이짓기를 하고, 퇴비를 직접 만들어 유기물을 땅에 보태줌으로써 흙의 생태계를 되살리고 흙을 지키는 농을 실천하고 있어요. 농을 업으로 삼고 살아가는 농부님들에게 화학비료를 사용하는 것, 살충제를 뿌리는 것은 오랜 시행착오 끝에 현재로서는 최선의 선택이겠지요. 지자체에서 흙을 살리는 농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체제를 구축할 수 있는 정책을 시급히 마련하기를 바랍니다. 화학비료와 살충제를 더 싼 가격에 배급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몸에도 지구에도 건강하게 순환될 수 퇴비를 생산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마련해주세요. 이제는 전 국민이 기후위기대응교육에 함께 참여해야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공교육에서 농을 만나는 일도 그 중에 하나라고 생각해요. 환경과 생태를 따로 공부할 것이 아니라 농을 통해 텃밭에서 우리는 자연을 만나고 다양한 생태계를 접할 수 있어요. 더 많은 아이들이 생태적으로 순환하는 농을 경험할 수 있도록 생태전환 교육 예산을 확보하기를 요구합니다. 수해 이후 첫 선거입니다. 이번 지방선거는 변화를 만들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기후위기대응 정책을 가지고 있는 후보를 지지하는 것. 그것이 첫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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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4.12 생명평화 탁발 순례 남원구간 기록
2004년도의 사진을 보다가 공유합니다. 어머니의산 지리산은 우리가 스스로 지켜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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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 혼불문학관, 서도역 주민들이 시위에 나서다
남원시청의 초 대형 축산 허가는 인허가 절차상의 법적 문제를 넘어서 사회적 합의를 무시한 행정의 독선의 결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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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를 쓰다.
2015년 12월 28일은 박근혜 정부가 한·일 일본군위안부 협상을 타결한 날이다. 피해 당사자인 할머니들은 그 누구도 원하지 않는데 국가가 임의대로 종결을 약속해버린 것이다. 전국적으로 분노의 목소리가 커졌고, 이곳 남원에서도 소녀상 건립 모금이 시작되었다. 필자도 작은 성금을 보태고 분노와 청산되지 않은 역사에 대한 서글픈 마음을 함께 실었다. 그런 마음들이 하나, 둘 모여 소녀상이 남원 춘향 테마파크 입구에 서있다. 2018년 전북과학교육원에서 진행하는 남원의 요천 생태에 대한 수업이 있었다. 전북의 학교에 재직하고 계신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수업으로 바로 현장에서 진행되었다. 선생님들과 만나는 장소는 춘향 테마파크 입구에 있는 소녀상 앞이었다. 소녀상 뒤로 키가 큰 나무 두 그루가 서 있었다. 선생님들 중 한 분이 그 나무의 이름을 물어보신다. ‘모과나무에요.’ ‘모과나무가 소녀상에 맞는 건가요? 하고 되물으셨다. 잠시 생각하다 내 생각을 말씀드렸다. ‘사실 모과나무보다는 진달래가 더 맞다고 봅니다. 모과나무는 우리나라에 예전부터 들어와 모과차로도 유명하여 굳이 외래종이다 아니다를 따지긴 그렇지만 그래도 고유종이 아닌 것은 분명하거든요. 그래서 이런 의미 있는 자리에는 어울리지 않고, 이 자리에 맞는 나무는 진달래가 좋을 듯합니다.’ 회사에 새로 입사하거나, 학교에 1학년으로 입학을 하면 옛날에는 신입사원, 신입생으로 불렸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새내기’라는 순우리말을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같은 목적을 가지고 모인 단체를 ‘동아리’라고 하는데 옛날에는 서클이라고 했다. 그리고 MT를 지금은 ‘모꼬지’라고 한다. 가난한 사람들이 달과 가까운 높은 곳에 모여 사는 곳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인 ‘달동네’라는 말과 함께 모두 고 백기완 선생이 만든 말이다. 그리고 백기완 선생께서는 ‘터널’에 대한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갖고 계시다. 1960년대 말 남산 1호 터널을 ‘터널’이라는 외래어 대신 ‘맞뚜레’라는 우리말을 사용하자고 주장하시다가 수사기관에 끌려가 고초를 당하시기도 했다고 한다. 90년대 초반에 백기완 선생의 강연을 몇 번 들은 적이 있다. 많은 이야기 중에 진달래에 대한 이야기만 뇌리에 남아있다. 아마 나도 모르게 나는 나무에 꽂힐 운명이었던 것 같다. 선생님께서 우리나라에서는 예로부터 아름다운 여인을 표현하는 말이 세 가지가 있다고 하셨다. 노을네, 여울네, 진달래가 바로 아름다운 여인을 일컫는 말이라는 것이다. 노을의 붉은 색체는 깊이가 있다. 모든 상처를 어루만지듯 아름답다. 여울의 흐름은 생명을 담아낸다. 때로는 아가씨의 맵시로, 때로는 센 물살이 생명을 채찍질하는 어머님의 모습으로도 투영된다. 그러면 진달래는 무슨 의미일까? 진달래는 시가 되어, 노래가 되어 곁에 있다. 영화가 되어 소설이 되어 곁에 있다. 그리고 어린 날의 기억이 되어 그리움으로 마음 속에 들어와 있다. 김동인의 단편소설 ‘붉은 산’은 일제의 만행을 피해 만주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설움을 담고 있다. 삵이라 불리는 주인공은 동포들이 당하는 부당함에 맞서다 죽임을 당한다. 그는 죽어가면서 붉은 산과 흰옷 입은 사람들이 보인다고 한다. 고향을 본 것이다. 전쟁과 수탈, 땔감 등으로 황폐해진 산하는 붉은 흙이 드러나 산이 붉게 보인다. 백성들이 즐겨 입은 하얀 옷은 백의민족의 상징이었고 잃어버린 나라 곳곳에서 만나는 그리움이다. 그리고 고향에는 이른 봄 지천으로 피어있는 진달래가 있다. 진달래는 해마다 붉은빛으로 피어난다. 초록의 잎이 채 나오기도 전에 꽃을 밀어 올린다. 다른 꽃보다 먼저 피운 꽃으로 이른 봄의 배고픈 곤충을 유혹하여 수정을 하기 위함이지만 겨우내 굶주리고, 겨울잠에서 깨어난 동물에게 이른 봄의 꽃은 영양이 풍부한 먹을거리가 되기도 한다. 기회는 언제나 위험을 동반하는 법이다. 그래서 진달래는 독을 품는다. 움직이지 못하는 모든 식물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항균물질을 만든다. 피톤치드(Phytoncide : ‘식물의’이라는 뜻을 가진 ‘phyton’과 ‘죽이다’를 의미하는 ‘cide’의 합성어다. ‘식물이 죽인다.’는 의미인데 이 또한 사람의 시선이다. 식물은 자신의 생존과 번식을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아갈 뿐 누구를 죽이기 위해 어떤 물질을 만들지 않는다.)라 불리며 균과 포식자에 대해 저항성을 지닌다. 그러나 피톤치드는 인간에게 이로운 물질이다. 그래서 보다 피톤치드를 손쉽게 접하고 얻기 위하여 피톤치드가 많이 나오는 나무를 상품화하고, 치유의 이름으로 사람들을 숲으로 부른다. 이 과정에서 숲과 나무가 피해를 보는 일이 많이 벌어진다. 진달래가 품은 독도 인간에게 해롭지 않다. 그래서 이른 봄의 부족한 먹거리를 보태기 위해 진달래를 딴다.(2018년 봄에 부산에서 실종된 20대 여성이 8일 만에 구조가 되었는데 산에서 진달래를 따먹으면서 견디었다고 한다.) 동무들과 어울려 진달래를 따먹으러 다닌다. 진달래는 간식이 되고, 놀이가 되어준다. 삼짇날에는 화전을 부쳐 먹는 풍습이 있다. 삼짇날은 음력 3월 3일로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고, 나비가 나타나고, 뱀이 동면에서 깨어나는 날이기도 하다. 아직 꽃샘추위가 끝나지 않은 계절이기도 하다. 이렇게 이른 봄에 이 땅의 민중들은 진달래꽃으로 꽃놀이를 즐기며 한 해 농사를 준비했다. 먹을 수 있은 꽃은 찔레꽃도 있다. 찔레는 새순도 먹을 수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먹을 수 있는 꽃 하면 제일 먼저 진달래꽃을 떠오른다. 이는 초록빛이 완연한 여름에 피는 찔레보다 삭막한 겨울 삭풍이 채 가시지 않은 척박한 시절의 붉은 진달래가 더욱 간절했기 때문이리라. 일 년 중 먹을 것이 없어 가장 절박한 순간에 꽃이 피기 때문이다. 쌀이 떨어져 굶게 생긴 저녁밥을 위해 옆집에 쌀을 꾸러 다니신 어머니처럼 전쟁통에 자식 입에 풀칠이라도 해주려 피죽을 끓여 목숨줄을 연명시켜 주었던 어머니의 모성처럼 진달래는 가장 절박한 순간에 꽃이 되어 우리 곁에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진달래를 가장 아름다운 여인네라고 표현하신 듯 하다. 진달래 꽃잎은 자신을 내어주고 사람의 목숨을 이어주었다.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지시는 모성의 절박함과 순결함을 진달래는 닮았다. 소녀상은 민족의 아픔을 온몸으로 당하시고 견디어내신 힘없는 이 땅 여인네들의 상징이다. 이러한 소녀상과 가장 어울리는 나무는 진달래가 되어야 마땅한 것이다. 진달래는 살아가는 곳도 기름진 땅이 아니다. 물 좋고 볕 좋은 땅을 싫어하지는 않겠지만 이런 곳은 모든 식물이 호시탐탐 노리는 전쟁터다. 진달래는 심한 경쟁을 힘들어한다. 그래서 다른 식물이 좋아하지 않는 흙 한 줌 없어 보이는 절벽이나 산성화된 토양, 타감 물질 가득한 소나무 사이에서 살아간다. 그곳에서 다른 식물이 살아갈 땅을 만들어 간다. 생태적으로도 진달래는 다른 식물들이 살아갈 땅을 일구는 선구자 역할을 한다. 어쩌면 이리도 자식의 앞날을 걱정하시는 어머니의 손길을 꼭 닮았을까 생각해본다. 그 어머님의 손길 덕분에 나는 이 봄날 선명한 빛깔을 올리는 저 진달래를 보면서 감탄할 수 있는 것이다. 아마 내년도 그러할지니. 사진 : 박계순 / 3월 목동반/ 구룡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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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댐 백지화 및 지리산살리기운동 돌아보기 간담회 - 12.4.토.실상사 선재집
지리산은 변하면서도 언제나 첫마음이니 <지리산댐 백지화 및 지리산살리기운동 돌아보기 간담회>2021. 12. 4. 토. 오후2시 실상사 선재집 ‘국가주도 대규모 댐 건설 중단한다’2018년 국가주도 대규모 지리산댐 에 대응하여 완전 백지화를 이끌어 낸 지 어느새 3년이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져야 할 이름 ‘지리산댐’이제는 역사로 남겨야 할 ‘지리산 운동’의 기록입니다.그리고, 언제나 품고 가야 할 푸르른 지리산 어머니의 마음... "지리산살리기운동, 시민운동의 새로운 지평을 열다""국가의 부분별한 개발정책을 백지화시킨 주민운동" ‘지리산댐 백지화 운동’ 또는 ‘지리산살리기운동’에 대해 정말 많은 자료와 평가들이 있습니다.그러나 어떠한 세간의 평가보다도 먼저“지리산은 푸르게 낙동강은 맑게‘라는 간절한 마음으로20여 년 그 길을 이어온 많은 분들의 말씀이 제일 궁금합니다. 백서 발간을 준비하면서 지나온 날들을 되돌아보니지리산을 담은 그리운 얼굴들, 더욱 보고 싶습니다.그 시간의 뜨겁고 아팠고 기쁘고 충만했던 마음을 나눠주세요. 지리산댐 백지화 기념사업회(준) / 지리산생명연대 ☎ 지리산생명연대 한승명 사무처장(010-3936-6080) 최세현 공동대표(010-2850-4858)
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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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2월 24일]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지리산사람들 2024년 회원총회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지리산사람들 2024년 회원총회 지난해를 돌아보고, 올해를 계획하는 지리산사람들 2024년 회원총회를 아래와 같이 개최합니다. - 아 래 - - 언제: 2024년 2월 24일(토) 아침 9시~10시 30분 - 어디서: 지리산리조트 (경남 함양군 휴천면 천왕봉로 2257-2) - 안건: 2023년 활동결과와 결산안 심의. 2024년 사업계획.예산안 심의. 기타 * 회원총회와 함께 2024년 2월 23일(금) ~ 24일(토), 1박 2일로 지리산국립공원 산청, 함양지역을 돌아볼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지리산사람들 대표 윤주옥. 최지한 지리산사람들 2024 총회준비위원회 위원장 이창수 *물어보기:이창수010-2693-45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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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을 너무나 사랑했던 사람의 지리산 사랑법
첫 수선화가 피던 봄날 함양 휴천면으로 향했다. 지리산 높은 곳에는 잔설이 남아 있었지만, 우리가 만난 그날은 여름이라도 되는 듯 따뜻했다. 만나기로 한 식당 한쪽에 노인 한 분이 앉아 있었다. [함양 휴천면 지리산 리조트 식당] 봄나물이 가득한 밥상에서 음식 이야기와 날씨 이야기 같은 상투적인 말들이 오갔다. 식사가 끝나고 카페에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야기를 시작하자 흰머리가 가득하던 그녀의 눈은 반짝이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이루지 못한 첫사랑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10대 소녀 같았다. [김종직의 유두류록 탐구의 저자 류정자 작가. 사진 김인호] 류정자 선생님은 밀양 태생으로 1948년생이다. 1965년에 산악회 활동을 하던 사촌 오빠와 처음 지리산에서 왔다고 한다. "오빠가 지리산에 한번 가보자고 하더라고요" "저는 그때만 해도 지리산에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어요." “그때는 심원마을에서 출발해서 노고단으로 갔어요." “심원마을에는 사람들이 꽤 살고 있었죠" "심원마을에서 하루 쉬고 노고단에 올랐어요." "노고단에 오르니 노고단 천지가 모두 원추리 꽃밭이었어요. “ "산을 가득 메운 원추리꽃을 보고 있으니 너무 좋았죠“ "어찌나 예쁘고 곱던지 지리산이 내 가슴에 박혀 버렸죠“ 사랑은 그렇게 시작되는 것이다. 나도 모르게 어느새 순간 번쩍이는 것이다. 그날 그 일행은 노고단에 이틀을 머물다 내려왔다고 한다. "꿈같은 시간이었어요." [지리산 모임 [우리들의 산악회]에 회원으로 참여하면서 본격적으로 지리산 골골을 누비고 다녔다. 사진 김인호] 그때만 해도 그녀도 그날 이후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지리산에 빠져서 살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는 처음에는 지리산은 노고단뿐이라고 생각했다. 지리산에 가고 싶을 때는 매번 심원마을을 거쳐 노고단에 올랐다. "제 산행 방식은 좋으면 매번 그 장소에 다시 가는 겁니다." 아마도 그런 스타일이었기 때문인지 노고단에만 가도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단다. "다른 곳을 찾을 필요도 없었죠" 하지만 곧이어 지리산 골골 여기저기를 다니게 되었다. "결혼을 일찍 했어요" "부산에서 살았는데 부산에서도 틈만 나면 산에 왔지요." 지리산 모임 [우리들의 산악회]에 회원으로 참여하면서 본격적으로 지리산 골골을 누비고 다녔다. “저는 지리산 골짜기 골짜기 안 가본 곳이 없어요." "저는 좋으면 같은 장소를 자주 가는 스타일이거든요." "결혼하고 아이 셋을 키우면서도 매번 지리산에 왔지요". "아이들은 엄마를 지리산에 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자랐어요." "아이들이 아주 어렸을 때를 빼고는 틈만 나면 지리산을 찾았습니다." 한 권의 책이 류정자씨를 탐구자로 만들었다. 하지만 그녀의 지리산 산행은 지리산이 좋아서 가는 것에서 지리산을 탐구하는 방식으로 바뀌게 된다. 그 결정적인 책이 바로 조선 시대 함양의 군수 김종직의 유두류록이다. [김종직(1431∼1492)은 조선 시대 성리학자·문신인 선생이 함양군수로 부임한 이듬해 지리산 천왕봉을 다녀와서 '유두류록(遊頭流錄)' 이란 기행문을 남겼다. 두류산(頭流山)은 '지리산'의 다른 이름이다. 1472년 8월14일부터 18일까지 4박 5일 일정으로 13.3㎞ 가운데 국립공원에 속한 노장대(함양독바위)∼상내봉(향로봉)∼미타봉∼어름터 4.5㎞ 구간이다. 옛 문헌에 김종직 선생이 올랐던 탐방로가 지리산 전체 등산길의 제1호로 알려져 있다. 이 책은 유람동기, 동행인, 날짜별 기록, 사적들, 풍경, 서정적인 감정, 당시 시대상 등을 모두 담고 있어 역사적인 가치가 매우 높다.] 사실 필자도 김종직의 유루류록을 읽은 적이 있다. 물론 읽기만 했지 거기에 나오는 지명이라든지 절터라든지 이런 것에는 일말의 궁금증도 없었다. 오래된 지리산 이야기를 읽고 싶었고 마침 도서관에서 그 책을 발견하고 재밌게 읽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녀는 달랐다. [지리산 산중에 산재 되어 있는 민가와 암자 터 등을 보면서 지리산이 품고 있는 인간의 역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우리들의 산지를 통해 김종직 선생의 ≪유두류록≫ 국역본을 접하면서 지리산의 역사를 본격적으로 천착하게 되었다. 2003년 지리산학의 정립을 꿈꾸며 결성한 [지리99] 운영진에 참여해 본격적인 [유두류록 탐구팀]을 꾸려 20여 년간 탐구산행을 이끌어 왔다. 이 책은 그 오랜 탐구의 작은 결실이다. 또한 ≪유두류록≫ 탐구와 병행하여 문헌기록에 등장하는 폐사지 탐구에도 심혈을 기울여 찾아낸 암자터가 100여 군데 이른다. 이 외에도, ‘세석의 청학연못’, ‘지리산의 시대를 연 달궁’, ‘지리산 고성탐구-추성’, ‘촛대봉 각자 高麗樂雲居士李靑蓮書를 찾아서’, ‘대궐터 탐구’, ‘문창대는 어디인가?’, ‘천왕봉 성모석상 수난의 역사’, ‘천왕봉 각자 일월대에 대하여’ 등 다수의 소고를 발표하면서 지리산학의 정립에 몰두해 왔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전을 잡고 지리산과 함께 살고 있다.] - 노컷뉴스 소개 글- [지리99라는 사이트에 류정자 작가의 다양한 글을 만날 수 있다. 사진 김인호] 그녀의 나이는 이제 75세가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지리산을 오른다. 3년 전에 김종직 선생이 산을 오르기 시작했던 마을로 이사를왔다. 류정자 선생은 두 번이나 암에 걸려 두 번의 큰 수술을 해야 했다. 하지만 그녀에게 정말 슬픈 일은 막내아들을 먼저 보낸 것이다. "그때가 가장 힘들었어요. 엄마가 지리산에 다닌다고 아들을 잘 살피지 못한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그 후 몇 년간 지리산에 오지 못했어요." 하지만 그녀는 다시 지리산으로 돌아왔다. 지금 이루고 싶은 것이 있으세요? "뭐 다른 게 있을까요?" "이제까지 발견한 폐사지(사라진 절터)가 100여 곳이 됩니다." "이제 이걸 정리하고 싶어요." "책을 묶어 두면 누구에겐가 도움이 되겠지요." "김종직 선생님이 류두류록을 남기지 않았다면 그 후세에 지리산에 오르려고 했던 분들에게 참고 자료가 되지 않았을 것이고 제게 폐사지에 관심을 두지도 못했을 겁니다“ [김종직의 유두류록 탐구 600년 전 지리산 산행기 저자류정자] "제가 얼마 전에 김종직의 유두류록 탐구을 책을 내기도 했습니다만, 제가 여러 서적과 문헌들을 참고하고 직접 수십 번을 찾아가서 발견한 지리산 폐사지 터에 대한 기록도 저 처럼 관심있는 누군가에게는 작은 도움이라도 되리라 생각 합니다." "이런 작업을 하는 사람은 없거든요." "그리고 김종직 선생님이 지리산에 올랐던 길을 복원하고 싶은 작은 소망이 있습니다." 지리산을 좋아하게 된 이유가 뭘까요? 류정자 작가는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그렇지! 사랑하는 것에는 이유가 없는 법이다. 그녀의 지리산 사랑이 60년이 되어 가고 있다. 무엇인가 사랑하게 되면 자주 보고 싶고, 더 알고 싶고,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것이 사랑의 방식일 것이다. 그녀는 지리산을 사랑하다 보니 자주 갔고, 관심이 커지다 보니 책을 냈고, 폐사지를 탐구했다. "내가 죽으면 지리산 골짜기 여기 저기에 뿌려 달라고 아이들에게 이야기 해두었어요." 그녀는 죽어서도 지리산과 함께하고 싶은 것이다. 찐 사랑은 이런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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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둘레길에서 만나는 옛이야기3-용유담
지리산둘레길에서 만난 옛이야기3-용유담 용유담(龍遊潭), 용이 노닐던 연못이라니...... 지리산둘레길 금계-동강 구간을 걷다가 보면, 산길에서 뚝 하니 아스팔트 도로로 떨어지고, 어리버리한 채 냅다 벅수를 따라 걷다 보면, 용유담은 그냥 지나치고 말기 일수이다. 그런데, 조금 아쉽게도 용유담 한가운데를 흉측한 콘크리트 다리가 지나간다. 태풍 루사 때 유실된 다리를 2004년 새로 만들면서, 이렇듯 용유담을 반토막 내며 만든 것이다. 쯧.... 물론, 주민들의 일상의 평온함과 관광객의 편리함을 위해 크고 튼튼한 다리는 필요하지만, 꼭 이토록 모질게 반토막을 내면서 만들어야 했을까? 하는 의문은 지워지지 않는다. 용유담의 아래쪽에 있었던 옛날 출렁다리가 새삼 그리운 건, 낡음에 대한 것이 아니라 위치선정에 대한 옛사람의 안목이다. 이 용유담에는 알 만한 사람은 알고, 모를 만한 사람은 몰라도 되는 시시껄렁한 전설 하나가 전해져 온다. 옛날, 대게 모든 전설은 년도를 알 수 없는 ‘옛날’로 시작된다. 옛날, 이 용유담에는 ‘마적도사’가 살았더랬다. 이 마적도사의 실존은 용유담 위에 있는 ‘마적사’와 ‘마적대’ ‘마적동’의 존재로 능히 증명된다. 그래도 설마 하는 사람들이 있을게다. 전설에 나오는 마적도사의 실존을 믿고 안 믿고는, 물론 각자의 몫이다. 실존했던 마적도사에게는 말 잘 듣는 당나귀 한 마리가 있어, 마적도사의 심부름을 곧잘 하곤 했더랬다. 이 당나귀가 장에 심부름 갈 적엔, 마적도사가 도술을 부려 쇠막대기로 다리를 놓아주었다. 어느 날이었다. 항상 어느 날, 사건은 발생하게 마련인지라, 이 마적도사는 장기 두기를 워낙 좋아했는데, 그 어느 날 마적도사는 장기두기에 빠져 당나귀가 장에서 돌아오는 시간을 깜빡한 게다.(항간의 소문에 의하면 장기두기의 상대는 그 유명한 천왕할매라고 한다) 장을 보고 돌아오는 당나귀는 당연히 마적도사가 도술을 부려 다리를 놓겠거니 하고 기다리는데...... 그날따라, 용유담의 아홉마리 중, 여덞마리 용이 서로 싸우는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 마적도사는 당나귀의 울음소리를 듣지 못하게 된게다. 당나귀는 짐을 싣고 서서 힘을 다해 울부짖었으나 반응이 없어 그대로 지쳐서 죽었다고 한다. 당나귀의 죽음소식을 들은 마적도사는, 아차하고 후회를 했지만, 이미 때는 늦고 말았다. 그 다음 대목은 동네 어르신의 말씀을 그대로 들어보자. “그래가지고 거서 나귀가 빠져 죽고, 말하자면 패해가 발생했다 아입니까? 장기 때문에 원인은 이리 됐다 해가지고 자기가 당나귀를 그렇게 질을 들이자면 엄청난 공을 들였을 거 아니요. 그런 당나귀가 죽어뿠으니까. 자기가 장기 때문에 그랬다 해가지고 장기판을 갖다가 돌장기판이제, 그 돌장기판을 떤지뿠는데, 하나는 길 건너에 말하자면 저 강 건너에 길에 가 떨어져 삐맀고, 현재 길, 도로 있는데... 한 쪼가리는 이 주변에 떨어져가 있는데 이 건네 떨어져있는 현재 어딨는가 몬 찾았고, 저 건너 하나는 거는 도로를 딲다가 장기판을 발견했대요, 돌장기판을. 그래 그걸 갖다가 발견을 했이먼, 그대로 보존을 했이먼 상당한 관광꺼리가 될낀데. 그 돌을 갖다가 우째 했는지 현재는 없어요. 그래가지고 당나귀가 달고 다니는 구슬방울. 방울도 일곱 개나 발견을 하고 그랬는데. 그래가지고 그기 또 이상한 일이 거기서 여 송전 사람이 도로공사 일을 했거든요. 일을 했는데, 방울을 멧 사람이 나눠가졌대요, 일하는 사람들이, 본 대로. 근데 그날 저녁에 가서 자고 나니까 전부다 없어졌대요. 이 도로 논 지 불과 십한오륙 년 전이거든요.“ 십오륙 년 전만 해도 흔적들을 찾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깜쪽같이 사라진 마적도사의 슬픈, 아니 마적도사 당나귀의 슬픈 전설은, 아직도 동리 주민들에게 그리고 용유담을 찾는 객들에게 전해져 오고 있다. 용유담엔, 용만 노니는 게 아니다. 용유담 양쪽 바위들에 빼곡하게 새겨진 각자(刻字 바위글씨)들을 보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노닐다 갔는지 알 수 있다. 그럼, 용유담의 각자에 대해 잠깐 이야기해 볼까. 용담입문(龍潭入門). 이제는 도로와 다리로 네 갈래로 나뉘어졌지만, 옛사람들의 입장에서 용유담을 한번 방문해 본다면, 마천 혹은 휴천에서 백연마을을 거쳐 용유담으로 내려섰을 것이다. 그때, 그 입구에서 ‘용담입문’ 각자를 마주하면서, 아...이제 용유담이로구나... 용유담엔 여기가 용유담이란 걸, 떡 하니 알리는 각자가 세 군데나 있다. 용유동천, 동천(洞天)이란, 말 그대로 ‘산천으로 둘러싸인 경치 좋은 곳’, 즉 놀기 좋은 곳이란 뜻이다. 게다가, 방장제일강산 이라니...방장산은 지리산의 또 다른 이름이 아닌가. 그렇다면, 지리산에서 제일 풍광이 좋은 곳이, 여기 용유담이란 말인데.... 조선 선비들의 지리산 유람록을 훑어보면, 반드시 용유담을 거쳐 가면서, 그 아름다움에 대한 찬사와 시를 한 수 씩 남겨 놓았다. 용유담 조구명 (1724년) 지세는 매우 깊고 그윽하며, 地勢陰森最 하천은 격렬하게 쏟아져 내리네 . 川流激射來 바람 불고 구름 일자 용이 솟아올랐다가, 風雲龍拔出 보금자리 찾아서 바위 뚫고 돌아오네. 巢宅石穿回 깊은 가을 날씨처럼 오싹한 느낌, 凜若深秋氣 마른 하늘에 날벼락 치는 용의 조화, 公然自日雷 위태로운 출렁다리 건너질 못하고, 危橋跨不測 바위 넘어 새 길 찾아 건너간다네. 生路渡方開 용유대, 세신대(몸을 정갈히 한다), 심진대(진리를 추구한다), 영귀대(논어의 한 대목으로, 유유자적한 삶을 꿈꾼다), 독조대(아...獨釣寒江雪), 경화대(동갑계), 강선대(신선이 내려와서 논다)....등 많은 계모임을 기념하는 각자들이 여기저기에 새겨져 있고, 그 아래에는 그 모임에 참가한 사람들의 이름이 빼곡하다. 근데, 왜? 이리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글자를 새기고, 이름을 새길까? 그 이유는, 너무 간단한다. 단체사진, 단체셀카... 모여서 논 것을 기념해야하고, 기록을 남겨야 하는데.... 서울의 돈 많고 권력 있는 양반네들은, 화가를 불러서, 그림으로 남겨, 시화첩을 만들어 각자 나눠 갖는데, 그 보다 돈이 없는 치들은, 대신, 글자를 남기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던 것이다. 용유담의 메인스트리트엔, 각자의 집대성, 아니 각자의 완결판이 모여 있다. 우선, 조선시대 유학계의 거두들의 이름이 주욱 나열되어 있다. 물론, 그 분들이 직접 새긴 것은 아니고, 후학들이 그들을 추모하는 뜻에서 새겼다. 문충공점필재김선생(文忠公佔畢齋金先生) 문정공남명조선생(文貞公南冥曺先生) 문민공탁영김선생(文愍公濯纓金先生) 문헌공일두정선생(文獻公一蠹鄭先生) 신라말에 유학이 들어왔지만 최치원은 골품제로 인해 좌절하고 신선이 되어 날아가고, 고려시대 안향이 성리학을 도입하고, 고려말 삼은(三隱, 목은(牧隱) 이색, 포은(圃隱) 정몽주, 야은(冶隱) 길재)으로 이어진다. 삼은은 고려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버티고, 삼봉이 사대부의 나라를 꿈꾸며 조선을 개국하지만, 그 역시 왕권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조선초, 왕권에 기댄 사대부, 즉 훈구가 왕과 권력을 분점, 아니 왕에 기대어 기득권을 유지한다. 안향에서 삼은으로 이어져온 사림은 조선초 야은 길재의 제자 김숙자, 김숙자의 아들 점필재 김종직으로 이어진다. 김종직(金宗直, 1431~1492)은 사후, 사관(史官)으로 있던 그의 제자 탁영 김일손(金馹孫, 1464~1498)이 스승 김종직의 조의제문(弔義帝文)을 사초(史草)에 수록하였고, 이것이 연산군 대에 필화 사건으로 이어진다. 무오사화. 김종직의 제자 일두 정여창, 탁영 김일손, 한훤당 김굉필은 사화 때 죽임을 당하고, 또 부관참시 당한다. 환훤당의 제자 정암 조광조가 중종반정 이후 훈구파와 대립하여 사림을 이끌었으나, 주초위왕(走肖爲王)의 술수로 기묘사화 때 사사된다. 선조 이후 훈구파가 쇠락하고, 사림이 재등장하여 실질적인 사대부 지배세력이 된다. 권력을 잡은 사림은 이이와 이황으로 대변되는 서인과 동인의 당파를 성립하여, 동방5현(김굉필, 정여창, 조광조, 이언적, 이황) 문묘18현(최치원,설총,안향,정몽주,정여창,김굉필,이언적,조광조,김인후,이황,이이,성혼,조헌,김장생,송시열,김집,박세채,송준길)으로 자신들의 계보를 확립하면서 정여창과 김굉필, 조광조를 복원한다 그러나 점필재는 복원되지 못한다, 그와 삼봉은 조선의 영원한 이방인일 수밖에 없다. 이황의 동인세력은 이후 남인과 북인으로 분화되고, 다시 북인은 소북과 대북으로 갈라지면서, 정조 이후 권력의 중심에서 사라진다. 이이의 서인세력은 노론과 소론으로, 노론은 다시 시파와 벽파로 분화된다 정조 사후, 사림은 당쟁이 아니라 세도정치로 치닫고, 시파의 우두머리 김조순의 안동김씨, 풍양조씨의 조선으로 전락한다. 선조 이후 당쟁은 왕권과 사대부의 정책대결이고, 당파는 학문과 정치적 입장을 가진 정치집단이며, 그런 의미에서 긍정성을 가진다. 하지만, 정조의 탕평책의 실패로, 당파는 세도정치로 변모한다. 학문과 정치적 입장을 가진 집단이 아니라, 한 가문의 권력 독점으로. 그리고, 조선은 멸망한다. 용유담 각자 이야기를 하다가, 너무 뜬금포로 빠졌다....쩝....암튼... 그런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진 각자가 용유담에 있다는 말씀. 그리고, 용유담엔,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땅문서가 있다. 인묘 은 사혜평 강공 현지지(仁廟 恩 賜惠平 姜公 顯之地) 이곳은 인종임금(재위 1544-1545)이 강현(姜顯 1486-1553)에게 하사한 땅이라는 뜻이며, 강현의 호는 신안(新安)이며 혜평(惠平)은 그의 시호이다. 벼슬은 형조판서를 지냈다. 그의 13세손의 이름이 있는 것으로 봐서 1800년 이후에 새겨진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서 그런지...이곳 용유담과 인근 지역은 진주 강씨의 세력권이었다. 여기저기 강씨들의 집안내력들이 남아있다.(그 유명한 세진대도 그들의 작품이다) 땅문서 바로 옆에, 같은 진주 강씨인 한사(寒沙) 강대수(姜大遂: 1591~1658)의 이름도 새겨져 있다. 한사 강선생 대수 영귀소(寒沙 姜先生 大遂 詠歸所) 한사(寒沙) 강대수(姜大遂: 1591~1658)는 광해군과 인조때 벼슬을 했으며, 『한사선생년보(寒沙先生年譜)』(1899)에 따르면 인조8년(1630년), 영남관찰사 재직 중 하동 섬진강에 배를 띄우고 용유담으로 거슬러 올라 천왕봉에 올랐음이 기재되어 있다는데...근데 섬진강과 용유담은 수계가 다른데, 어떻게 배를 타고 왔을까...암튼, 옛날 사람들은 대단해.... 자, 그럼 이쯤에서 각자 이야기는 그만하기로 하고, 용유담에서 뻬놓을 수 없는, 가사어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슬슬 마무리를 해야겠다. 조선의 국가 공식 지리지인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용유담을 설명하면서, 가사어에 대한 언급이 있다. “마천소(馬淺所)에 있다. 지리산 북쪽 골물이 합쳐서 임천이 되었다. 용유담(龍遊潭) 군 남쪽 40리 지점에 있으며, 임천 하류이다. 담의 양 곁에 편평한 바위가 여러 개 쌓여 있는데, 모두 갈아놓은 듯하다. 옆으로 벌려졌고 곁으로 펼쳐져서, 큰 독 같은데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기도 하고, 혹은 술 항아리 같은데 온갖 기괴한 것이 신의 조화 같다. 그 물에 물고기가 있는데 등에 가사(袈裟) 같은 무늬가 있는 까닭으로 이름을 가사어(袈裟漁)라 한다. 지방 사람이 말하기를, 지리산 서북쪽에 달공사(達空寺)가 있고, 그 옆에 저연(猪淵)이 있는데 이 고기가 여기서 살다가, 해마다 가을이면 물 따라 용유담에 내려왔다가, 봄이 되면 달공지(達空池)로 돌아간다.” 그래, 설마하니, 국가 공식 지리지에 존재하지도 않는 물고기를 언급할 리가 있겠나, 싶어, 용유담과 임천과 뱀사골을 샅샅이 뒤져 보지만, 지금까지 가사어를 발견하진 못했다. 아...조선의 지리지가 거짓말을 했구나 싶어, 실망하던 차에, 가사어에 대한 명확한 증거자료를 보게 되었다. 그래, 가사어는 실재로 있었구나.... 우선, 조선시대 여러 지도에, 가사어가 살고 있다는 반야봉 아래 저연(猪淵)이라는 표기가 명확히 나와있다. 지도에 나온 지명이 거짓일 리 없다. 그리고, 조선의 유명하고, 또 믿을만한 선비들의 글에, 가사어에 대한 이야기나 제법 나온다. 그렇다, 가사어는 존재한다, 아니 존재했다. 조선 정조 때 박제가와 함께 조선실학의 기반을 닦은 이덕무(李德懋)는 ‘듣는 대로 쓰고 보는 대로 쓰고 말하는 대로 쓰고 생각하는 대로 썼다’는 의미의 '이목구심서(耳目口心書)'를 남긴다. 그가 듣고 본 이야기 한 대목이 나의 주목을 끈다. "지리산 속에 연못이 있다. 그 위에 소나무가 죽 늘어서 있어 그 그림자가 언제나 연못에 쌓인다. 못에는 물고기가 있는데 무늬가 몹시 아롱져서 마치 스님의 가사와 같으므로 이름 하여서 가사어(袈裟魚)라고 한다.“ 조선 실학의 거두이자, 지금도 모든 정치인들이 존경한다고 입만 열면 언급하는, 다산 정약용의 스승이신, 이덕무가 사실이 아닌 것을 글로 남길 리 없겠다. 시간을 좀 더 거슬러 올라가 보자. 함양 군수를 엮임하고, 그 밑으로 일두 정여창, 탁영 김일손, 한훤당 김굉필을 길러 낸, 조선 사림의 총수, 김종직의 시 한편을 읽어보자. 達空寺下水梭花(달봉사하수사화) 紫鬣斑鱗味更嘉(자렵반린미갱희) 珍重廣文嘗不得(진중광문상부득) 却來天嶺病夫家(각래천령병부각) 달공사 아래에 있는 물고기는, 붉은 갈기 얼룩 비늘에 맛이 더욱 좋구나. 진중한 광문께서는 맛도 보지 않고서, 도리어 천령 병부의 집까지 왔네그려. 당대의 훈구파 세력에 맞서, 목숨을 걸고, 심지어 죽어서 부관참시까지 당해 가면서, 오로지 꼿꼿한 선비의 정신을 보여준, 사림의 총수 김종직이 가사어를 먹었다는 시를 거짓으로 지었다고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겠다. 중종 25년, 그러니까 서기 1530년, 왕명으로 지리지를 편찬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지금으로 치면, 국토교통부가 발행하는 일종의 종합지리지인 셈이다. 함양 편을 펼쳐보자. “봄이 되면 달공지(達空池)로 돌아간다. 그 까닭으로 엄천(嚴川) 이하에는 이 고기가 없다. 잡으려는 자는 이 고기가 오르내리는 때를 기다려서, 바위 폭포 사이에 그물을 쳐 놓으면 고기가 뛰어오르다가 그물 속에 떨어진다.’ 한다. 달공은 운봉현 지역이다.“ 조선이라는 국가가 편찬한 공식 지리지에, 가사어의 서식환경과 관측기록, 심지어 포획방법까지 자세히 서술되어 있다. 그렇다, 가사어는 실재한 어류인 것이다. 1922년, 완산 최병칠이 편찬한, 운봉의 읍지인 ‘운성지’에 주목할 만한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전래되어오는 말에 의하면 가사어라는 물고기가 있었는데, 용담에 사는 80세 노인이 그 물고기를 보았다고 하는데 그의 말에 의하면 중간에 어떤 무인(武官)이 가사어를 많이 잡고자 독약을 풀어 이 때문에 멸종되었다.” 중앙정부의 공식 지리지도 아니고, 왕명이나 김종직, 이덕무 같은 쟁쟁한 인물의 저서도 아닌, 일개 운봉읍지의 내용이어서, 그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생각을 할 순 있겠지만, 그래도 어엿한 역사사료인, 운성지는 가사어의 멸종을 육하원칙에 따라, 즉 언제 어디서 누가 왜 어떻게 했는가에 대해 정확히 기술 하고 있다. 이왕 하는 김에 조금 더 역사를 훑어보자면, 광해군 3년 1611년 남원부사 유몽인은, 근무는 안하고, 9일간 지리산을 산행하고 ‘유두류산록’이라는 산행기를 남긴다. 그 역시 인조반정이후 사형 당한다. 대게 지리산을 돌아다닌 조선의 선비들은 사형되거나, 부관참시되거나 아니면 조용히 은거하게 된다. 아무튼, 유몽인의 글에도 가사어가 등장하는데, “그 연못에 사는 물고기를 가사어(袈裟魚)라 부르는데, 이 세상에 다시없는 물고기로, 오직 이 못에서만 알을 낳고 새끼를 기른다고 한다. 이에 어부를 시켜 그물로 잡게 하였으나, 수심이 깊어 새끼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다.” 뱀사골 칠선골 한신골 맑은 물들이 모여 남강으로 가기 전, 한바탕 물의 향연을 펼치는 용유담에는 무수히 많은 역사적 사실과 자료, 그리고 그 보다 더 많은 전설과 이야기가 지리산 봉우리 숫자만큼이나 많이 고여 있다. 유몽인은 잡다가 놓치고, 국가 지리지에는 그 생태적 고찰이 있고, 김종직은 구워서 먹고, 운봉읍지는 그 멸종에 대한 세세한 기록까지 남겨 둔 가사어라는 한 어종의 이야기만도, 이렇게 무궁무진한데..... 지리산댐을 지어 수장시키려는 우리 시대의 한심한 노력들이 아직도 기웃거리고 있고, 그 욕심 때문에 용유담은 여즉 국가명승으로 지정되지 못하고 있다. 장마에 물이 불고, 계곡이 한번 뒤집어 지는 여름엔 용유담도 오랜만에 물들로 가득해 진다. 둘레길 걷다 지친 발을 담그기엔, 물이 너무 억세기에 탁족을 권하긴 어렵지만, 용유담 둘레를 찬찬히 한번 걸어보면서, 수많은 각자와 마적도사의 흔적을 발견하는 것도 색다른 즐거움일게다. 그러다, 혹시 자맥질하는 수달을 발견하시거든, 그 수달 입에 물려가는 그 물고기가 혹여 가사어가 아닐까 눈여겨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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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4일~ 25일] “제1회 수달의 아우성”
수달(Lutra lutra)은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적색목록(Red List) 멸종위기 근접종(Near Threatened)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수달은 천연기념물(제330호, 1982년 지정)이며, 멸종위기야생동물 1급에 지정되어 보호하고 있습니다. 수달은 과거에는 전국 어느 하천에서나 흔히 볼 수 있었지만 모피수(毛皮獸)로 남획되고 하천이 오염된 결과, 개체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국제수달생존기금(International Otter Survival Fund)은 모피 및 애완동물 거래를 위한 밀렵, 환경오염, 서식지 파괴 등으로 인해 위기에 직면한 수달을 대중에게 널리 알리고 보전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매년 5월 마지막 주 수요일을 ‘세계 수달의 날(World Otter Day)’로 지정하였습니다. 지리산자락, 엄천강, 섬진강 등에서 활동하는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지리산사람들, 수달친구들, 지리산생명연대 등은 2022년 ‘세계 수달의 날’을 맞이하여 <제1회 수달의 아우성>을 2022년 5월 24일 ~ 25일 (1박 2일) 개최합니다. <제1회 수달의 아우성>에서는 ‘수달의 생태적 지위와 우리나라 수달 보전운동의 역사’, ‘우리나라 수달 연구의 주요 흐름’을 듣고, 수달 보전활동을 하는 전국의 활동가들이 참여하여 우리나라 하천의 문제점과 수달과의 공존을 위한 여러 논의들을 조직할 계획입니다. 또한 2022년 세계 수달의 날인 5월 25일(수) 오전 10시에는 ‘산청 금서 소수력발전소 앞’에서 수달 보전 행동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제목 : ‘세계 수달의 날’ 기념 <제1회 수달의 아우성> 일시 : 2022년 5월 24일 (화) 14시 ~ 25일 (수) 11시 장소 : 함양군 휴천면 엄천강 지리산리조트 주최 :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지리산사람들․ 수달친구들․ 지리산생명연대 일정 프로그램 내용 24일 14:00~ 인사말 14:10~ 기조강연 수달의 생태적 지위와 우리나라 수달 보전운동의 역사 한성용 (한국수달보호협회 대표) 15:30~ 수달보전활동 공유와 토론 거제. 만경강. 섬진강. 엄천강. 오산천 17:30~ 수달관찰 엄천강 수계 수달 동시조사, 개체 수 파악 20:00~ 저녁밥 21:00~ 자유토론, 취침 25일 05:00~ 수달관찰 람천 수계 수달 동시조사, 개체 수 파악 08:00~ 아침밥 10:00~ 수달 보전 행동 산청 금서 소수력발전소 앞 11:30 마무리 마음나누기
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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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9일] 지리산국립공원 생일잔치 초대장
1967년 지리산은 우리나라 첫 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첫 번째 국립공원이자 백두대간의 끝점, 멸종위기종이며 천연기념물인 반달가슴곰의 삶터, 한국 근현대사의 아픔이 있는 곳.. 지리산을 생각하면 가슴 한편이 묵직하고 아립니다. 지리산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하였다는 것은 인간만이 아니라 그곳이 삶터인 야생동식물의 관점에서, 생물다양성을 우선에 두겠다는 약속입니다. 지금 시대 인간만이 아니라 미래세대, 이웃생명을 위한 공간으로 남겨두겠다는 다짐입니다. 그런데 지금 지리산에 케이블카, 산악열차, 골프장을 건설하겠다고 합니다. 지리산의 물이 모이는 곳엔 댐을 만들겠다고 합니다. 대체 무슨 일일까요? 12월 29일, 지리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날입니다. 지리산을 바라보며 지난 1년, 지리산자락에서 있었던 일들을 알립니다. 지리산 품에서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날을 열어갈 지혜를 나눕니다. - 언제: 2023년 12월 29일 (금) 지리산국립공원 생일날 - 어디로 : 지리산 형제봉으로 - 준비물 : 낮밥, 따뜻한 물과 새참, 겨울산행 차림 등 - 만나는 곳 : 8시 40분 구례버스터미널, 9시 30분 하동 악양면사무소 걷는 길 : 고소성~신성봉~신선대~형제봉(고유제)~청학사~정서마을 *물어보기 : 010-4686-6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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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그대로일 때 강하고 아름답다
모니터링의 두 번째 꼭지였던 탐방로(등산로) 일부 구간의 침식 우려 건은 비전문가인 내가 보기엔 아직은 인간이 끼어들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비가 제법 많이 내린 후에 이루어진 모니터링이었는데 다녀온 어느 구간에서도 탐방로(등산로)가 침식되거나 침하된 곳은 없었다. 전문가의 생각은 다를 수 있겠지만 자연에 대한 인간의 개입은 최소화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하동읍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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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항하는 청춘의 원더풀 라이프 “나는 반항한다 고로 존재한다"
섬진강을 따라 자전거를 타고 오고 가던 시절이 있었다. 아마도 2005년이나 2006년쯤이었을 것이다. 나는 구례에서 악양까지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왕복 60km였다. 봄이 끝날 무렵 시작한 자전거 출퇴근은 겨울이 오면서 끝났다. 그 후로 자전거 출퇴근을 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하던 일을 그만두었고 악양은 나에게서 멀어졌다. 지리산에 내려와서 살게 된 이유는 간단했지만 살아가기는 녹록하지 않았다. 구례에서 섬진강을 따라 악양으로 향하면서 그때의 기억들이 떠올랐다. <그는 올해 지리산사람들 공동집행위장이 되었는데 올해 관운이 있는 사주라고 했다. 사진 김인호> 오늘 악양에 사는 최지한씨를 만나기로 했다. 그를 지난겨울 남원의 산악열차 반대 시위장에서 본 기억이 있다. 아마도 남원시청 옆이었을 것이다. 한겨울이었는데 그는 맨발에 슬리퍼 차림이었다. 딱 봐도 보통은 아닌 사내다. 머리는 삭발이었다. 그를 악양면 소재지에 있는 카페에서 만났다. 길 건너에 악양초등학교가 보였다. <그의 첫인상은 “나는 반항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진 김인호> 오래 전에 악양에 일할 때 그 초등학교 운동회에 참가했던 기억이 난다. 아이들의 신난 함성이 가득한 운동장에 오후에 햇살이 눈 부셨다. 커다란 히말라에시더(개잎갈나무 50미터까지 자란다)가 동쪽에 있었다. 누군가는 이 나무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무라고 했었다, 나도 가끔 동의하지만, 집안에 심기에는 나무가 너무 크다. 이 나무를 키우다 보면 예상보다 너무나 커버리기 때문에 위를 잘라버린다. 주변과 어울리지 못하는 것들은 싹을 잘라 버리는 것이 사회의 일반적이 법칙이다. <그가 환경운동을 시작하게 된 이유는 공해문제연구소에서 만든 한국의 공해지도라는 책을 초등학교 3학년 때 만났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진 김인호 > 그의 첫인상은 “나는 반항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세상 사람들이 히말라야 시더의 위를 자르는 것같은 사회의 일반적인 잣대를 그는 봐줄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그가 하동에 살게 된 것은 2006년쯤이라고 한다. 내가 하동을 떠난 것이 그쯤이었다. 그는 멀리 강원도 고성 출신이라고 했다. 화진포가 가까운 강원도 산골 마을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북한을 지척으로 둔 강원도 최북단에서 태어났다. 나는 몇 해 전 화진포에 가봤다. 화진포 바다는 서해나 남해와는 다른 고독하고 외로워 보이는 진한블루였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초등학교 시절 어느 해 서울로 이사를 했다고 한다. 그 후 대학에서 양식업을 공부했다. 그리고 남해의 여러 섬마을을 전전하며 양식장에서 일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결국 여기 하동 악양에 정착했다. 그의 직업은 대바구니를 만들거나 수리하는 일과 정원관리라고 한다. 그리고 지역의 사람들과 환경을 지키는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가 환경운동을 시작하게 된 이유는 공해문제연구소에서 만든 한국의 공해지도라는 책을 초등학교 3학년 때 만났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도 고등학교 시절 그 비슷한 책을 본 적이 있다. 한국에서 가장 오염도가 높은 곳은 하동 넘어 광양이었다. 광양에는 광양제철소가 있다. 세계최대 규모의 제철소가 있고 거기서 품어져 나오는 대기 오염 물질은 한국 대기 오염 물질의 5.43%라고 한다. 나 역시 검은 역기가 품어져 나오는 그 사진을 책에서 본 기억이 난다. 그 책을 보고 열 받아서 환경운동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동기가 순수하다. 아마도 그는 순수한 남자인 것 같다. 몇 해 전부터 하동은 산악열차로 인해 갈등이 깊었다. 악양 형제봉에 산악열차를 설치하겠다는 하동군의 야심 찬 계획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산악열차 반대 운동을 했다. 그것도 열 받아서 했다고 한다. 나는 그에게 양말을 신지 않는 이유를 물었는데 대답은 간단했다. “발에 열이 많아서 답답해요.” 그는 역시 열이 많은 사람이었다. 재밌는 이야기를 해 달라고 했더니 그는 마루에서 3년을 살았던 적이 있다고 했다. 왜 그러셨나요? [어느 해 봄 비가 오는 날 구들이 고장이 나서 일산화탄소 중독이 된 적이 있어요. 마을로 기어와 동치미 국물을 얻어먹었어요. 그 후로 방에 들어가 자지 않았어요.] 방에 들어가지 않으니 마루밖에 잘 곳이 없었다고 한다. 그는 그렇게 마루에서 3년을 살았다고 한다. 보통 사람은 아니다. 카페에서 인터뷰하고 그가 일하는 대나무 공방에 가봤다. 녹색평론 읽기 모임이라는 작은 안내문이 문 앞에 붙어 있었다. 나 역시 오래전에 녹색평론 읽기 모임을 한 적이 있다.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 오래전 일이지만 말이다. <간디의 물레라는 사진을 본 적이 있는데 그가 수리하는 대바구니가 물레처럼 보였다.> 공방에는 헤진 바구니와 새로 만든 바구니 그리고 수리를 원하는 대바구니가 보였다. 그가 말한 바에 의하면 이것으로 먹고살고 약간의 잉여자본도 생긴다고 했다. 간단한 도구로 생계가 가능한 일이라서 좋다고 했다. 나는 이런 식의 밥벌이를 본 적이 없다. 그가 작업하는 모습을 한참 동안 보고 있었다. <공방에는 헤진 바구니와 새로 만든 바구니 그리고 수리를 원하는 대바구니가 보였다.> 익숙하게 대바구니를 수리했다. 능숙한 솜씨가 보기 좋았다. 간디의 물레라는 사진을 본 적이 있는데 그가 수리하는 대바구니가 물레처럼 보였다.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도 간단한 도구로 새로운 물건을 만들거나 물건을 고치는 일은 매력적이다. <간디의 상징이 된 물레> 그가 좋아하는 영화는 고레이다 히로카즈 감독의 환영의 빛이라고 했다. 섬진강을 따라 돌아오면서 오후에 햇살이 섬진강을 비추는 것을 봤다. 아마도 환영의 빛은 이런 빛일 것이다. 누군가 한 번은 자신을 끌어들이고 유혹하는 환영의 빛에 이끌려 자신도 모르는 어느 곳에서 멍하니 서 있는 자신을 경험했을 것이다. 그는 스스로는 반항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아마 그는 자본주의 주류 사회를 거스르고 싶은 환영의 빛에 어느 순간 이끌렸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는 빛이 이끄는 경로를 따라 여기까지 왔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항하는 청춘 최지한, 그의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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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화개 산불, 민간조사단 현장조사결과 발표
- 국립공원 역대 최대 규모의 산불로 기록, 낙엽활엽수림이 산불피해 낮춰 - *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지리산사람들, 하동참여자치연대, 부산대학교, 순천대학교, 백두대간숲연구소 등 ** 3월 12일(1차), 3월 22일(2차), 3월 28일(3차), 3월 29일(4차) 이번 산불로 인한 피해면적은 121ha(정부발표, 91ha)로 분석되었는데, 최근 20년간 국립공원 내 산불피해면적 총 111.8ha와 비교할 때, 역대 국립공원에서 발생한 최대 규모의 산불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Landsat-8 위성영상을 분석했을 때, 산불 지표화로 피해가 거의 없는 지역에 대해서는 산불강도가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분석되는 바, 피해면적이 Sentinel영상과는 큰 차이를 보였다. 화개 지역 산불은 전체 35ha의 피해면적을 보이는 것으로 분석되었는데, 피해강도가 낮음으로 분석된 지역은 전체 피해지역의 92%를 차지하고 있어 피해강도가 매우 낮음을 알 수 있었고, 합천산불의 경우에는 총 피해면적이 59ha로 나타났고, 이 중 높음 이상의 큰 피해를 입은 지역이 전체 피해지역의 22%를 차지하고 있었고, 피해도가 낮음으로 분석된 지역은 55%로 화개 지역과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 사진 설명_ 합천 일대 산불피해지 모습. 해당지역은 숲가꾸기 사업을 시행한 곳으로 임도 주변 대부분의 소나무림이 피해를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리산 화개 지역의 활엽수림 산불피해 유형과는 명백한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지리산 화개 지역의 산불강도가 낮았던 이유로는 해당지역의 사면부 식생 대부분이 자연적인 숲의 발달에 의해 소나무림이 쇠퇴하고 낙엽활엽수림으로 발달하는 과정의 숲으로 형성되어 있음이 원인으로 확인되었다. 인위적 간섭이 없어 활엽수의 밀도가 높아 숲 내부 바람이 세지 않아 산불이 수관화로 대형화되지 않고 지표화로 서서히 이동하다가 능선부의 소나무 토지극상림에 다다라서야 수관을 태운 것으로 확인되었고, 소나무 피해목이 발생한 지역은 빠르게 낙엽활엽수림이 발달할 것으로 판단되었다. 현장조사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인간의 간섭이 최소한으로 이루어질 때, 산불에 가장 강한 숲이 만들어지게 된다”며, “합천 산불과 비교했을 때 명확히 나타났듯이 국립공원의 산림은 인위적 간섭이 있는 산림의 산불발생 특성과는 다르게 산불로부터 이미 안전한 숲이 되어 있다. 이번 산불을 계기로 화개 지역은 능선부 까지 더욱 안전한 숲으로 빠르게 자연 스스로 복원될 것이다. 다른 지역 또한 인위적 간섭을 줄이는 것이 가속화되는 기후위기상황에서 산불에 안전한 숲이 되는 지름길이다”라고 평가했다. 산불피해지 ‘토양 특성에 대한 변화’에 대해서는, 산불피해지 대부분이 지표화로 인해 지표면의 낙엽층이 연소되어 재만 남아 있는 상태로 확인되었고, 이로 인해 유기물을 무기화하여 일시적으로 토양의 양분량이 늘어나고 빗물에 의해 일부는 용탈될 것으로 예상되었으며 지표면의 무기염류 변화는 흙 속에 매몰된 매토종자나 초본층 식생의 생육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하고, 낙엽층 아래의 토양층에는 지표화가 큰 영향을 주지 않아서 전체적으로 토양특성에 변화는 적을 것으로 판단되었다. 사진 설명_ 이번 산불은 표면의 낙엽만을 태웠기 때문에, 흙 속에 있는 씨앗들(매토종자)은 한꺼번에 공급된 무기양분에 더해 사라진 낙엽층으로 인해 활발하게 자랄 수 있는 환경이 형성되어 지표면의 생태계는 아주 빠르게 복원될 것으로 예상된다. 산불지역 내부 동물이 바닥을 헤쳐 놓은 곳은 피해가 없는 상태 그대로 안정된 토양이 드러나 있다. 산불피해지 토양침식 및 산사태 우려에 대해서는, 해당지역은 수관층이 발달하는 가운데 조릿대 등의 하층식생이 우점한 곳으로 산불 지표화로 인해 대부분의 하층식생만 피해를 보았을 뿐, 조릿대 등의 하층식생 뿌리가 살아있어 대면적의 토양침식이 우려되는 현장은 확인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식생 회복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보였다. 더불어 하층식생 뿌리가 토양 안정화 상태로 토양층을 보전하고 있어 산사태 우려도 적을 것으로 조사되었고, 수관층이 발달해 있어서 강우발생 시에도 수관우(수관층에 떨어져 흐르는 빗물)와 수간우(수목을 타고 흐르는 빗물)에 따라 대면적의 토양침식은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판단되었다. 전체적인 현장 토양 상태를 고려했을 때, 장마철의 집중호우 시에는 일부 지표면의 재와 토양이 침식될 가능성은 있겠으나, 토양침식이 우려되는 급사면에 흙막이공사 등의 응급복구사업은 오히려 토양침식을 확대할 우려가 큰 것으로 평가했다. 산불피해지 대성골 탐방로 주변 사면부 안전 우려는, 해당지역 주변은 경사가 상당히 급한 지역으로 이미 사면의 침식과 붕괴의 우려가 있는 지역으로 확인되었으나, 과거 산사태나 유실의 흔적을 확인할 수 없었기 때문에 강우 등의 외부영향이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탐방로 주변 현장의 사면 붕괴나 유실은 거의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조사되었다. 사진 설명_ 산불로 인해 바닥의 마른 낙엽이 불탔지만, 숲에서 자라고 있는 나무는 대부분 살아있는 상태이다. 이런 상태에서 토사의 유실은 진행되지 않는다. 특히 지난 3월 23일 산불피해지에 비교적 많은 봄비가 내렸으나, 현장에서 빗방울(우적)에 의한 피해는 전혀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었고, 물이 침투되지 못하고 지표를 흐르는 물의 발생흔적도 없었으며, 이로 인한 토양의 유실현상도 탐방로 주변에서는 확인되지 않았다. (참고로, 보통 우적에 의한 침식이 가장 큰 침식요인이며, 이어지는 추가 침식을 야기한다.) 또한, 이미 탐방로 주변 일부 지역에서는 초본류가 표토와 재를 뚫고 토지를 피복시키고 있으며, 생육한 활엽수에서는 잎이 나오기 시작해 강우에 의한 침식이나 피해를 보다 억제할 것으로 확인되었다. 따라서 산불피해지 내 탐방로 주변에는 산불발생 여부나 강도에 따라 정비구간을 설정할 곳이 없는 것으로 판단되었다.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지리산사람들, 하동참여자치연대, 경남녹색당(준), 경남시민환경연구소,경남환경운동연합, 사천남해하동환경운동연합, 섬진강과지리산사람들, 진주환경운동연합
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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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2일, 지리산 화엄사 범음료] 2023 지리산동지모임 ‘다시, 지리산’
2023 지리산동지모임 ‘다시, 지리산’ 밤이 가장 긴 날, 동지를 지나면 음에서 양으로 흐름이 바뀌고 태양이 다시 살아납니다.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컴컴한 시기, 지리산 이웃들 함께 붉은 팥죽 쑤어 먹으며 세상 악귀 몰아내요. 어려운 일은 나누고 서로 등을 도닥여주어요. 길가의 풀들도 숲속의 고라니도 새해를 준비하는 때, 우리들의 새 마음을 이야기해요. 2023년 12월 22일(금) 동짓날 11:30~15:30 지리산 화엄사 범음료 11시30분동지팥죽 나누어 먹어요 12시30분지리산권 5개시군 현안 공유 / 「나의 지리산 선언」 갈무리 / 2024년 나와 지리산 물어보기 010-9996-48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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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2일] 구례군청 앞 아침시위 100일 자축 기자회견
구례군청 앞 아침시위 100일 자축 기자회견 9월 4일 시작한 아침시위 릴레이가 벌써 100일을 앞두고 있어요. 첫날엔 민소매를 입던 날씨였는데 어느새 롱패딩을 껴입는 날씨가 되었답니다. 100일간 거의 매일 자리를 지켜주신 분들도 계시고, 소중한 하루를 채워주신 분들도 계셔요. 가능한 많은 분들이 오셔서 100일째 되는 날을 기려주셨으면 좋겠어요. ✅12월 12일(화) 구례군청 앞 8:00-9:00 붕어빵 나눠주며 피켓시위 9:00-10:30 몸 녹이며 쉼 10:30-11:00 현수막 퍼포먼스 11:00-11:30 기자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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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일 ~2일] 지리산1019생명평화기행
지리산 여순 1019 생명평화기행 다섯 번째 골짜기마다 스며있는 생명의 숨소리 일정 : 2023년 12월 1일 ~ 2일 숙소 : 지리산생태탐방원 함께 할 분은 지리산사람들로 연락주세요. 06-783-6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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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6일] 카누 수상시위할 사람 모여라!
골프장의 독한 농약도 섬진강으로 모이고, 양수댐의 담수도 섬진강물을 취수해요. 골프장과 양수댐을 모두 막아내서 섬진강을 생명의 강으로 만들어요! 구문척교 아래에서 서시천과 섬진강 합수지점까지 대형 현수막을 드는 퍼포먼스를 하며 카누로 이동해요. ❇일시: 23.11.06(월) 2~4시 ❇장소: 구례읍 양정1길 120-7에서 집합 ❇대상: 선착순 20명(2인 1카누), 전문가님이 동반해주셔서 초보자도 환영해요! ❇신청: 칩코 010-2956-팔11오(문자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