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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두규 07-02 05:09
일상 속의 계율
일상 속의 계율 오늘, 잠을 자다가 새벽 1시경에 깼는데 갑자기 발등에 통증이 심한 것을 느꼈습니다. 꿈을 꾸고 깬 것도 아니고 무엇에 물린 것도 아니고 그냥 자다가 일어난 건데 아마도 통증 때문에 깬 것 같았습니다. 화장실을 가는데 절뚝거리며 겨우 걸을 수 있는 정도였습니다. 발이 부은 것도 아니고 타박이나 외상도 없는데 너무 통증이 심한 겁니다. 원인을 알 수 없고 너무 이상해서 AI에 증세를 소상히 말하며 물어보니 근육염증이나 피로골절일 것이라는 예측을 하더군요. 처음 듣는 질환이었어요. 어제 한동안 못한 일들을 오전, 오후에 걸쳐 하루 종일 좀 심하게 했는데 그것이 원인일 거라는 답변이었습니다. 아무런 외상이 없어도 자신의 육체적 한계에 오면 피로 자체로 근육염증이나 가벼운 골절상을 입게 되는데 이것을 ‘피로골절’이라고 하더군요. 상처도 없고 붓기도 없는데 통증이 심한 겁니다. AI는 정형외과에 가서 정확히 진단을 받으라고 권하는군요. 아무렇지도 않던 멀쩡한 사람이 자다가 일어나 갑자기 통증으로 걷지 못 하니 너무 황당하더군요. 그동안 하루의 일과를 짜면서 오전이건 오후건 2시간 이상 바깥일을 하지 않으려 생각했고 그렇게 해왔는데 스스로 결정을 어긴 탓이기도 했습니다. 세상살이를 하면서 사람들은 나름대로 해야 할 일, 하지 않아야 할 일을 스스로 생각하며 정해 놓고 사는 경우가 많지요. 그것을 매우 엄격하게 지키시는 분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세상의 불의에는 분노하면서 자신의 불의에는 너그러운 편이지요. 종교나 비종교를 떠나 이런저런 계율은 많지만, 저는 힌두의 계율 중 니야마(자기완성을 위한 도덕율)의 산토셔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입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말하면 ‘만족감’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인데 금수저로 태어났든 흑수저로 태어났든, 또는 살아오는 과정에서 자신의 노력에 대한 결과와는 관계없이,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스스로 만족할 수 있어야 한다는 계율입니다. 이것은 그 상황에 대한 포기와 위로를 위한 것이 아니라 존재의 근원적인 생명력에 대한 긍정성을 말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말이야 쉽지, 실제 삶에서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지요. 출가 수행자도 아니고 가정을 꾸리며 일상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어려운 일이겠지요. 하지만 반드시 실천하고 이루어야 한다는 것보다는 사는 동안 이런저런 상처를 입거나 치유하면서도 어쨌든 크게는 어딴 상황에서라도 ‘삶의 만족’이라는 그 방향으로 흘러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
박두규 07-02 05:06
잘 가셨는지요
잘 가셨는지요 백무산 죽은 자가 따라다니는 시절이 되었는지 또 날아온 부고는 믿기지 않았다 얼마 전 저녁을 함께 했던 사람이다 전화기를 접지 않고 그의 온기를 느껴보려고 그가 보낸 메시지를 뒤져보니 아직 체온이 남아 있었다 "잘 가셨는지요. 아쉬웠습니다. 그리고 죄송했어요." 떠난 사람이 나였다는 듯이 그는 그곳에 있고 내가 멀리 가버렸다는 듯이 내 뒷모습에서 떠나는 자의 쓸쓸함을 읽었다는 듯이 살아 있다는 것이 되레 어디론가 떠나가고 있다는 듯이 수많은 죽음을 맞이하는 일과 수많은 자신의 죽음을 겪는 일로 눈물은 죽은 자가 흘린다 죽은 자의 혼은 언제나 산 사람을 붙들고 운다 두고 가는 발걸음 떨어지지 않아 산 사람이 가엾고 불쌍해서 펑펑 운다 죽은 자에게 애도를 받으러 가는 길이다 --------------------------------------------------- 부고를 받고 문상하러 가면서 쓰여진 시다. 시 속의 화자는 죽은 자와 산 자의 처지가 바뀌어 있음을 말한다. 죽은 자는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산 자가 가엾고 불쌍하다. 죽었다는 것은 이미 도착한 것이고, 살아 있다는 것은 어디론가 떠나가고 있다는 것이어서 그렇다. 산 자가 죽은 자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죽은 자가 이승을 두고 가는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산 자의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다. 죽음이 가엾고 불쌍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는 것이 그렇다는 이야기다. -
김인호 06-12 22:32
지리여명
「섬진강 편지」 -지리 여명 아직도 이리 가슴 뛰게 하다니 그 많은 계단을 단숨에 오르게 하다니 한쪽 폐를 잘라낸 반쪽의 숨으로도 어쩌지 못할 저 붉은 빛 -
김인호 06-12 22:12
사포마을 다랭이논
「섬진강 편지」 -사포마을 다랭이논 사포마을 다랭이논 모심기가 끝났습니다.먼저 심었던 논의 모들은 자리를 잡아 벌써 키를 키웁니다. 어린 모를 심고 가꾸어 벼를 수확하고 쌀을 얻기까지는 농부의 손길이 백 번은 필요하다고 합니다.그만큼 정성으로 돌봐야 풍성한 가을을 맞을 수 있다는 뜻이겠지요.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끝나고7월1일부터 민선9기 군수와 군의원들의 임기가 시작됩니다. 군민을 위해 열심히 일하겠다는 초심을 잃지 않고 논에 심어 놓은 어린 모들과 함께 풍성한 결실 맺기를 기대해 봅니다. 풍년을 위해 농부의 지극한 손길이 필요하듯 성공적인 군정을 위해서는 군민들의 관심과 응원 또한 필요하겠지요. 모내기를 마친 다랭이논의 노을을 바라보며 황금빛으로 물들 가을 사포다랭이논을 그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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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대로 안 돼서 괴로우신가요?" 지리산 쌍계사에서 만난, 법제스님이 건네는 따뜻한 차 한 잔과 위로의 차담
안녕하세요, 지리산사람들TV 윤주옥입니다. 오늘 저희가 만난 분은 지리산 단천마을 출신이자, 현재 쌍계사 템플스테이에서 따뜻한 차담(茶談)을 통해 수많은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고 계시는 '법제스님'입니다. 평범한 대학생이자 직장인이었던 20대 후반, 과감하게 출가를 결심하게 만든 불교의 '탐진치' 가르침부터 다시 천혜의 고향 지리산 단천마을로 돌아오게 된 유쾌한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아침에 눈떠서 잠들 때까지의 모든 순간이 수행이라는 스님의 말씀처럼, 상처받고 지친 현대인들에게 '걸림돌을 디딤돌로 인식하는 법', 그리고 마음의 설정을 내려놓는 지혜를 전합니다. ???? 쌍계사 템플스테이 참여 방법 인터넷 검색창에 '쌍계사 템플스테이'를 검색하시면 체험형(티소믈리에, 선다회 다도 체험) 및 휴식형 프로그램을 간편하게 예약하실 수 있습니다. 언제나 소박하게 열려 있는 법당으로 마음 쉬어가세요. https://www.templestay.com/fe/MI000000000000000062/temple/introView.do?templeIdTmp=Ssanggyesa_hd -- 타임라인 -- 00:00 인트로 00:43 쌍계사에서 법제스님과 함께 01:31 해발 500m 아름다운 단천마을 04:13 어리석음에서 지혜로, 고뇌 끝에 선택한 출가 06:55 수행은 마주하는 나를 살피는 시간 09:53 고향으로 돌아온 쌍계사 템플스테이 지도법사 12:45 차(茶) 문화를 이어가고 있는 쌍계사 17:30 지친 현대인들을 위한 쌍계사만의 특별한 차담 20:52 100% 즐기는 쌍계사 템플스테이 22:24 지리산과 반달가슴곰 이야기 23:57 유기동물 30마리와 함께 살아가기 26:04 언제나 소박하게 열려 있는 단천마을 법당 27:07 행복해야 한다는 설정을 버리면 마음에는 평화가이지민 06-23 20:50 -
[반달곰1%가게유람기] "이 빵을 즐겁게 먹을 사람들을 상상해요" 파란돌 천연발효빵
[반달곰1%가게유람기] 이 빵을 즐겁게 먹을 사람들을 상상해요. 파란돌 천연발효빵 하동 악양에 자리한 일주일에 하루만 문을 여는 빵집, ‘파란돌 천연발효빵’을 찾았다. 가게 앞에 ‘빵’이라고 큼직하게 써 둔 간판을 보며 ‘이 곳은 어떤 빵을 만드는 곳일까?’ 궁금한 마음을 안고 가게에 들어섰는데 이야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이런 마음이 들었다. ‘이 사람이 만드는 빵이라면 안심하고 먹을 수 있다.’ 가게 안에는 오븐에서 갓 나온 빵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마지막 빵을 꺼내는 건해님과 인사를 나누며 가까이 가니 빵에서 ‘타닥타닥’ 맑고도 경쾌한 소리가 났다. 빵의 뜨거운 표면이 차가운 공기와 만나 균열이 일어나는 소리일까? “빵이 나오고 2분 동안만 들을 수 있는 소리예요.”라고 건해님이 덧붙였다. 2019년에 남편, 세 아이와 함께 하동으로 이사를 왔다는 건해님은 파란돌 천연발효빵집의 두 번째 주인이다. “손님으로 이 빵집을 처음 알게 되었어요. 친구가 동네에 특이한 빵집이 생겼다고 해서 왔는데 빵이 참 맛있었어요. 아이들이 먹을 빵을 직접 만들고 싶어 사장님께 부탁해 빵을 배웠는데 그때 배운 빵이 ‘길쭉이’였어요. (바게트 모양의 길쭉한 빵.) 원래 사장님도 빵을 전문으로 하는 분이 아니었다고 해요. 수행을 하시던 분이라 들었는데 그래서인지 저는 그분이 만드신 빵이 ‘수행자의 빵’ 같았어요. 맑은 사람만이 만들 수 있는 빵이라고 할까요? 빵이 참 고요했어요. 빵을 만들며 알게 된 건데 보통 빵을 만들기 위해서는 반죽을 계속 괴롭히거나 세게 내려쳐서 만들어요. 그런데 이 빵은 살살 다뤄야 해요. 자연이 하는 일을 약간만 손보고 기다리는 게 제 일이에요. 재료도 밀가루와 물 밖에 들어가지 않는데 그럼에도 부풀리고 발효해야 하니까 보이지 않는 것들이 역할을 하죠.” 밀가루에 벌레가 생기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나요? “처음에는 호주산과 미국산 유기농 밀가루를 사용했는데 문제가 생겨 다른 밀가루를 찾다가 프랑스산이 좋다는 말을 듣고 사용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프랑스산 밀을 반쯤 쓰다 보니 벌레가 나오는 거예요. 저는 그게 이상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여태까지 사용했던 다른 밀가루에서 벌레가 나오지 않았다는 게 더 이상하게 느껴졌죠. 이곳에 살다보니 대부분의 식재료가 보관을 잘 해도 시간이 지나면 상하고 벌레가 생긴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수입 밀가루는 배를 타고 한국까지 최소 한 달 이상 습한 바다를 지나 왔을 텐데 벌레가 생기지 않는다는 게 충격이었어요. 벌레가 생기지 않게 어떤 처리를 했다는 게 아닐까요? 그 때부터 우리밀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구례에서 제분한 우리밀을 쓰다가 하동에서도 재배가 가능한지 궁금해졌죠. 어느 날 동네 할머니께 여쭤보니 “예전에는 밀농사를 다 지었지. 요즘에는 밀 수매를 안 하니 팔 곳이 없어서 안 지어.”라고 하셨어요. 이듬해 이웃 어른께 밀농사 지어주실 농부님을 소개받아 같이 농사를 지었어요. 밀은 겨울을 지나며 크는 작물이라 병충해가 없어 농사는 쉽지만 6월 수확 이후에 바로 장마가 오니 건조를 잘 하지 않으면 벌레가 생기고 보관이 까다로워요. 첫 해에 농사지은 밀은 농부님도 우리도 경험이 없어 건조를 잘못해 반도 못 쓰고 산패가 되어 그대로 밭에 모두 뿌렸어요. 다음 해는 조금 더 나았어요. 시행착오를 겪으며 건조를 얼마나 해야 할지, 어떻게 보관해야 하는지 배웠어요. 그렇지만 두 해 농사를 경험해보면서 밀농사는 전문 농가에 맡기고 나는 우리밀을 최대한 많이 사용하는 것에 집중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빵을 만들며 농사까지 짓는 것은 역부족이더라고요.” 빵을 만드는데 걸리는 시간. 3일 이곳은 일주일에 하루만 문을 연다. 매장에 와도 살 수 있는 빵이 없을지도 모른다. 오랜 시간 걸려 자연과 건해님이 함께 만드는 빵은 대부분 택배로 판매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건해님의 빵 택배 판매는 ‘무료 나눔’이라는 길고도 정성스러운 시간을 딛고 만들어졌다. “처음에는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영업을 했어요. 빵을 만들기 위해서는 3일이 필요한데 첫째 날 발효하고 둘째 날 반죽하고 셋째 날 빵을 구워요. 화요일에 문을 열기 위해서는 일요일도 나와서 발효작업을 해야 했는데 그 시기에 첫째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어 주말만큼은 가족들과 마음 편히 시간을 보내고 싶었어요. 게다가 둘째와 셋째는 아직 미취학 아동이었기 때문에 빵집을 하며 아이까지 돌보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해 영업일을 줄였어요. 그래도 일을 완전히 포기하고 싶지는 않아 조정을 하다 보니 빵이 나오는 날이 일주일에 하루가 되었죠. 빵은 대부분 택배로 판매해요. 처음 빵을 택배로 보내기 시작한 건 ‘무료 나눔’ 형태였어요. 영업을 시작한 초기에 손님이 얼마나 오실지 예측이 어려워 남은 빵을 필요한 분께 나누면 좋겠다 싶기도 했지만 빵에 대한 솔직한 평가가 듣고 싶었어요. 빵집을 한다는 것을 알리지 않고 매일 연습 삼아 빵을 구워 온라인에 ‘무료 나눔’ 소식을 올렸어요. ‘악담이라도 좋으니 진실 된 평가를 듣고 싶다.’는 문자도 빵과 함께 보냈죠. 몇몇 분들이 진심 어린 의견을 나누어주셨는데 정말 고마웠어요. 그 분들이 지금의 씨앗이 되었어요. 1년에 걸쳐서 100번의 무료나눔을 하고 난 뒤 빵집을 한다는 사실을 밝혔어요. 자신이 없었거든요. 처음 빵을 팔고 손님께 돈을 받던 순간이 아직도 기억나요. 손이 덜덜 떨렸어요. ‘이 빵은 내가 봐도 미숙한데 돈을 받아도 될까?’ 미안한 마음이 들었어요. 지금은 괜찮아요. 요즘 물가도 많이 올랐지만 빵 가격을 올리지 않았어요. 이 가격이라면 내가 당당하게 받을 수 있겠다는 마음이 있어요.” 만드는 사람을 닮은 빵 일주일에 하루 영업을 하는 것으로 수익이 충분히 나는지 궁금해 조심스레 물으니 지금으로써는 수익이 나지 않는다는 덤덤한 답변에 돌아왔다. 그럼 더 많은 사람들에게 빵을 팔게 되면 좋겠느냐고 덧붙여 물었다. “아니요. 지금 딱 좋아요. 빵에는 만드는 사람의 상태가 그대로 드러나요. 만드는 사람 기분이 좋지 않으면 빵도 나빠져요. 제가 정신없으면 빵도 정신없이 나와요. 빵은 아주 노동 집약적인 생산물인데 많이 만들면 힘이 더 들고, 그럼 그 힘듦이 빵에 드러날 수밖에 없어요. 더 많이 만들어서 더 팔고 싶지는 않아요. 수익을 더 내려면 빵을 더 많이 팔거나 재료값을 아껴야 하는데 안 좋은 재료를 단 한 번도 쓴 적이 없어요. 빵을 만들면 우리 아이들이 이 빵을 가장 많이 먹거든요. 그리고 이 빵을 식사로 매일 드시는 분들께 안 좋은 재료로 만든 빵을 드리고 싶지는 않아요. 그래야 제 마음이 편해요. 이 빵을 즐겁게 먹을 사람들을 상상해요. 수익이 거의 나지 않아도 이 일을 계속 하는 것은 빵을 통해 맺게 된 인연들이 좋아서인 것 같아요. 사실 빵은 누구나 만들 수 있잖아요. 대한민국에 빵집이 얼마나 많아요. 돈만 내면 사먹을 수 있죠. 저희 빵은 요즘 사람들의 입맛을 충족시켜주지는 못해요. 달지도 예쁘지도 않고 화려하지도 않죠. 그냥 집 밥 같은 빵이란 말이죠. 손님들 입장에서는 ‘이렇게까지 기다려서 먹어야하는 빵인가?’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먹고 있어요.’라고 말씀해주시는 손님들이 계셔서 참 고맙죠.” 소중한 것들을 지키고 싶은 마음 “‘반달곰 친구들’이라는 단체는 산악열차 반대 활동을 하면서 알게 되었어요. 그냥 ‘반달곰 지키는 사람들인가 보다.’라고 생각하다가 이 활동을 제안 받았는데 어떤 일인지 설명을 듣기도 전에 함께하겠다고 했어요. 이 일을 하고 있는 활동가들이 어떤 마음으로 하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죠. 지리산에는 다양한 생명과 존재들이 살아가고 있잖아요. 반달곰을 지키는 일이 꼭 ‘반달곰’만을 지키는 활동이 아니리라 생각해요. 지리산과 하동에 있는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들이 사라지는 것을 보며 마음이 아플 때가 많아요. 그런 것들이 오래오래 존재하도록 하는 일에 작게나마 함께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반달곰1%는 지리산권 가게들이 자발적으로 진행하는 공존프로그램이다. 반달곰1% 가게에 가면 반달가슴곰을 자연스럽게 만나고, 특별히 계획하지 않아도 반달가슴곰 보호활동에 참여하게 된다. 2021년 5개 가게로 시작한 반달곰1%는 2026년 현재 구례 11곳, 하동 11곳으로 늘어났다. 반달곰1%는 ‘유랑인증서’를 발행하고 있는데, 손님들이 반달곰1% 가게에 들러 물품을 먹거나 마시거나 구입하면, 반달곰1% 가게들은 수익금의 1%를 사단법인 반달곰친구들에 기부하고, 그 기부금이 모아지면 사단법인 반달곰친구들과 논의하여 올무수거 활동, 무인센서카메라 구입 등 반달곰 보전활동을 위해 쓰기로 약속하였다.] 글쓴이_ 정수진 하동으로 이주한 지 4년이 되었습니다. 겨울이 오면 남편과 함께 인도와 네팔에서 NGO 활동가로 살아가고, 꽃피는 봄이 오면 하동으로 돌아와 민박집을 엽니다. 텃밭을 가꾸고 이웃 농부들의 농산물이 잘 쓰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열심히 요리하고 나누어 먹습니다.정수진 06-15 11:53 -
지리산의 옹달샘, 설산습지에서 만난 하동생태해설사회 정명희 대표
지리산의 푸른 품 속에 숨겨진 보석, '설산 습지'를 아시나요? ???? 우리나라 국토의 단 0.01%밖에 되지 않는 귀한 산지 습지이자, 목마른 야생동물들이 찾아와 목을 축이고 수많은 생명이 산란하는 지리산의 소중한 옹달샘, 설산 습지 현장을 다녀왔습니다. 학교 교실을 벗어나 자연이라는 거대한 공간에서 아이들과 온몸으로 호흡하며 생태 놀이를 이끌어가는 '하동생태해설사회' 정명희 대표님과의 깊이 있는 인터뷰! 삵과 담비가 뛰놀고 섬휘파람새 소리가 지저귀는 설산 습지의 특별한 이야기부터, 지리산의 자연을 진정으로 느끼고 보호하기 위한 올바른 탐방 에티켓, 그리고 지역 어린이들을 '어린이 해설사'로 키워내는 감동적인 활동 이야기까지 지금 영상으로 만나보세요. 00:00 인트로 00:30 설산습지를 만나는 방법 01:52 대한민국 0.01%의 귀한 보물, 산지 습지 02:46 물이 많은 산 지리산, 10곳의 규모 있는 습지들 03:25 야생동물들의 옹달샘, 생명을 품은 습지 05:25 삵부터 문수조릿대까지, 설산 습지의 생명들 07:55 "조용히 쉬어가는 공간으로" 설산 습지 탐방 에티켓 09:32 어린이 해설사와 함께 '동정호 생물다양성의 날' 12:11 하동의 자연을 사랑하는 하동생태해설사회 자연을 사랑하고 지키는 가장 아름다운 발걸음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지리산사람들TV #많은_관심_부탁드립니다 #설산습지 #지리산국립공원 #산지습지 #하동생태해설사회 #정명희대표 #생태해설 #지리산습지 #생물다양성 #동정호 #어린이해설사 #생태교육 #환경보호 #지리산여행 #하동여행 #자연다큐키는 가장 아름다운 발걸음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이지민 06-01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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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환 06-17 11:05
낭비둘기가 잘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 화엄사의 낭비둘기, 지금은 화엄사에서 살아가기 어려워 졌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다양한 생명들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흔하게 참새부터, 까치, 멧비둘기 등 장소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흔하게 만날 수 있고 흔적으로라도 확인할 수 있는 존재들이 우리 주변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관심이 없다면 매일 들리는 새소리도, 집 앞을 날아다니는 새들의 모습도, 산보, 산책을 할 때 길 위에 보이는 야생동물들의 흔적도 모르고 지나치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런 생명들을 만나기 위해 멀리 나가곤 합니다. 우리 주변에서는 관심이 없어 지나치다 다른 장소에 나가 소리와 모습을 보면 ‘우리 주변에도 저런 아이들이 있었단 말이야?’ 하며 놀라기도 합니다. 그리고 한번 배우고 오게 되면 다시 그 이전의 눈과 귀로 돌아갈 수 없게 됩니다. 집 주변에서도, 산책하는 와중에도 너무 많은 흔적과 모습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까요. ▲ 우포늪 따오기 복원개체, 농사철이 아니지만 물을 담아두어 따오기가 먹이를 먹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쉽게 만나기 어려운 멸종위기종, 멸종위기까지는 아니지만 개체수가 계속해서 줄어들어 만나기 어려운 관심 단계에 있는 종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멸종위기에서 절멸되거나, 절멸 위기까지 다다른 생명들은 ‘복원’을 진행하게 됩니다. 흔하게 복원‘사업’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복원을 대표하는 종은 반달가슴곰입니다. 그리고 요즘은 황새, 따오기, 여우, 낭비둘기, 민물어류(임실납자루, 미호종개, 얼룩새코미꾸리 등)이 있습니다. 모두 복원이라는 ‘사업’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사업이다 보니 결과만 중요하게 보는 것 같습니다. ‘복원’은 하지만 서식지에 대한 ‘보전’은 뒷전인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황새를 복원하겠다고 많은 돈을 들이고 있지만 황새가 서식할 만한 서식지에 대한 보전을 하려고 적극적인 행정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미 가치가 높은 서식지도 개발로 인한 위협에 놓인 경우도 많습니다. 연어를 놓고 보아도 연어가 고향으로 돌아가 산란할 장소가 없는 이 현실에서 치어만 양식해서 풀어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임실납자루를 열심히 키워서 섬진강에 풀어주었지만 이듬해 하도정비로 그 지역을 밀어버립니다. 얼룩새코미꾸리의 복원지도 하도정비로 밀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복원 ‘사업’의 ‘본사’인 환경부(지금은 환경이 사라지고 있는 기후부)는 서식지 보전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 스스로 ‘기후에너지환경부는 규제 기관이 아니다’라고 하였으니, 그들이 가지고 있는 기본 정책 방향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복원’을 하는 기관이라면 당연하게도 ‘규제’를 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아니라고 합니다. 그럼 그들은 뭐 하는 집단이란 걸까요? 반달가슴곰은 서식지 확장에 대한 대책이 필요합니다. 여우는 생태축 단절로 인한 로드킬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습니다. 낭비둘기는 구례에 복원 개체 32마리를 풀어주었지만 구례 지역의 서식지 안전은 보장되지 않았습니다. 안전에 대한 책임은 낭비둘기의 책임이 아닌 환경부와, 지자체에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당당하게 잘 하고 있다 말할 수 있는가. 황새는 논습지, 갯벌, 자연습지가 필요하지만 영농형태양광, 갯벌 매립, 개발로 인해 서식지는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지자체장이 사진을 찍기 위해서 황새를 죽이기까지 하고 있습니다. 기본적인 생태 감수성도 사라진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지금, 과연 복원이라는 이 중대한 책임을 그저 하나의 돈벌이 ‘사업’으로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 구곡산에서 바라본 지리산 청왕봉의 모습 ‘Natural Capital’인 ‘자연자본’을 ‘Nature Positive’라는 목표로 2030년까지 자연 ‘자본’ 훼손을 멈추고 다시 역전시켜 2050년까지 원래의 상태로 되돌리겠다는(다시 사용하기 위한?) 목표....생명의 근본마저 자본으로 취급하는 이 추악한 자본주의 세상에서 생명을 이야기 한다는 것이 너무 어렵고 힘든 이야기인 걸까요? 글쓴이 : 정정환 _지리산사람들 사무국장, <새들은 우릴 기다려 주지 않아서> 지은이 -
이촉 05-27 12:48
반달곰친구들과 함께 하는 올무수거
올무수거 생초보의 하루 마지막 월요일 오후 (사)반달곰친구들과 함께 올무수거를 위해 함양 서하마을로 향한다. 짐이 될지 모르는 나는 올무수거에 관한 한 초보자다. 산에서 동물길을 더듬고 숲을 익힌다. 반달곰친구들과 함께 서하마을 산 왼쪽으로 잡목숲을 훑어간다. 잡목숲은 야생동물의 은밀한 숨구멍이자 복잡한 생태계의 결이라고 한다. 그 길은 가보지 않은 숲이다.바스락대는 숲의 호흡 따라 바스락거리며 약초 길에 들어 숨을 돌린다. 오른쪽에서 “찾았어요!” 외치는 소리. 따끔거리는 등을 타고 옷 소매에서 부러진 가지 하나가 나온다. 동물길에 불법 침입하다 들킨 기분이랄까? 순간 고요로 가슴이 철렁하다. 홀로 떨어진 적막을 지우려는 듯 새소리가 청량하다. 나뭇가지에 걸려있다는 올무. 올무를 놓은 주민과 올무를 찾는 우리 사이 파헤친 흙이 옴팍한 터를 보니 동물들이 목욕하고 지나갔구나. 기후변화로 인해 무너져가는 생태계, 먹이를 찾아 야생동물이 마을로 내려오고 주민은 피해를 막기 위해 올무를 설치해야 하는 악순환을 지속하고 있다. 올무 설치는 불법 포획이다. 올무 등 불법 도구의 피해와 죽음 없이 자연과 하나 되는 야생동물, 반달곰을 그려본다. 문득 사육되던 농장에서, 문수사에 살던 곰이, 구례 곰마루 쉼터에서 야생의 감각을 찾아 산으로 돌아가는 상상을 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인가? 올무 4개를 찾았으니 육십령을 넘어 서하마을로 달려간 수확은 있다. 올무 하나는 멧돼지 다리에 걸렸다 끊어진 것이라고 한다, 멧돼지 비명이 산을 타고 서하마을에 울려 퍼졌으리라. 울었으리라. 올무를 설치한 인간의 마음 한쪽에도 울렸으리라. 숲에서 찾은 올무와 함께 돌아가는 길, 나 역시 올무나 덫 한두 개 걸려 살고 있지 않나, 굽이굽이 육십령을 돌아 돌아가면서 길 잃은 동물들, 반달곰이 생각나는 하루, 이제 숲을 헤치고 반복해서 숲을 헤쳐나가면 되리라고, -
정태준 05-20 20:55
죽어가는 구상나무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죽어가는 구상나무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천왕봉 구상나무 고사 현황 구상나무가 죽는다. 이미 많은 구상나무가 죽었고 지금도 일부가 죽어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지리산 천왕봉을 오르면 눈으로 봐도 절반에 가까운 구상나무가 고사하고 있는 모습을 누구나 볼 수 있다. 사람들은 걱정한다. 구상나무는 덕유산, 지리산, 가야산, 한라산의 1,000m 이상 아고산대에 자생하는 한국 고유종(한반도에서만 자생하는 종)이기에 더욱 그렇다. 다시 말해서 구상나무가 계속 죽어가서 국내에서 멸종한다면, 결국 지구상에서 멸종한다는 의미다. 상황이 이러하니 환경단체 및 국가 기관에서도 ‘구상나무를 보호종으로 지정해야 한다.’, ‘복원해야 한다.’… 등의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특히나 식목일 즈음이 되면 구상나무 고사 현상에 대한 기사가 크게 보도되고 관계 기관인 국립공원공단은 대응에 바빠지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국립공원공단은 아고산대 상록침엽수 자연적응실험 사업을 추진했고, 5월 13일에 구상나무 묘목을 식재하는 사업도 실행했다. 본 사업은 구상나무 고사 지역에 대한 상반된 견해(자연천이에 맡겨 인위적 개입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과 적극적으로 복원해야 한다는 의견)에 대하여 어떤 방식이 합리적인지를 판단해 보는 시범 사업이다. 지리산국립공원 반야봉과 중봉 사이에, 세석에서 키워낸 구상나무 묘목 160주(수고 40cm 내외)를 심고, 이렇게 식재한 구상나무를 모니터링하는 것이다. 이 사업을 추진함에 있어 국립공원공단은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지리산사람들과 논의 과정을 거쳤다. 이때 가장 중요하게 논의된 부분이 ‘이 사업은 복원 사업으로 흘러가서는 안 된다’는 점이었다. 나는 이 글에서 많은 시민과 기관이 구상나무를 복원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데, 왜 복원 사업으로 가서는 안 된다고 논의했는지를 이야기하고 싶다. 생태복원이란 '저하되었거나, 훼손되었거나, 파괴된 생태계의 회복을 돕는 과정'으로 정의된다. 그렇다면 구상나무 고사 지역은, 저하되었나? 훼손되었나? 파괴되었나? 교목층(산림식생에서 가장 높은 공간을 피복하는 층위)의 우점 수종이 죽고 있기에 생태적 기능에 있어 일시적 저하가 있다고 볼 수는 있지만, 훼손되거나 파괴되었다고 말하긴 어렵다. 구상나무에 관한 다양한 연구가 진행 중인데, 현재까지의 연구 결과로 밝혀진 구상나무 고사 원인으로 기후변화에 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기후가 변한 것도 사실이다. 구상나무는 빙하기에 한반도 전체를 뒤덮으며 확장되었다. 하지만 빙하기 이후 기온이 오르면서 저지대에서 자취를 감추고 온도가 낮은 아고산대로 도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빙하기가 끝난 것은 자연적인 기후변화였고, 지금은 인간에 의해서 기후가 변했다. 어쩌면 구상나무가 살 수 없는 환경으로 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식물은 스스로 이동할 수 없고 뿌리를 내린 그 자리에서 어떻게든 성장하고, 번식하기 위해 애쓰면서 살아간다. 그렇지만 급격한 기후변화를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자, 그럼 이제 생각해 보자. 기후가 변해서 그 자리에 살던 식물이 죽었다…. 생태복원이 필요한 ‘훼손지’ 인가? 한반도의 식생은 다양하다. 난대림, 온대림, 아고산대 식생은 물론이고 염생식물군락, 습지식생, 울릉도 너도밤나무군락과 같이 고립되어 진화해 온 식생, 터주식물군락과 같이 사람이 사는 곳 가까이 살며 적응해 온 식생도 있다. 이처럼 어떤 지역의 환경에 따라 그곳에 살 수 있는 식물이 들어와서 살게 된다. 또한, 울창했던 산림도 벌채되거나, 교목층의 식물이 고사해서 틈이 생기면, 강한 광이 들어오면서 호광성 식물(양지를 좋아하는 또는 직사광선을 인내할 수 있는 특성을 지닌 식물)이 자리 잡게 된다. 환경이 변하면 사는 식물이 달라지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기후는 급격히 변했고, 식물의 서식지는 서서히 북상하고 있으며, 구상나무는 죽고 있다. 구상나무가 죽고 있는 지역에 다시 구상나무를 심을 것인가? 구상나무가 죽은 자리에는 분명 변화한 기후에 적합한 다른 식물이 들어올 것이고, 그것이 자연스러운 숲의 변화다. 그렇다면 이 글의 제목과 같이 죽어가는 구상나무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구상나무의 멸종을 막고 싶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를 생각해 본다. 대답은 간단하지만, 실행은 어렵다. 기후변화를 늦추는 것뿐. 이번 자연적응실험을 위해 공단 직원 50여 명이 전국 각지에서 모였고, 헬리콥터가 두 번 묘목을 옮겼다. 수많은 플라스틱 생수병이 버려졌고, 많은 차량이 노고단 대피소까지 이동했으며, 많은 쓰레기를 치우기 위해 헬리콥터가 또 한번 움직일 것이다. 많은 투자를 했고, 많은 노력을 했으며, 많은 비용을 치렀고, 또한 많은 탄소를 발생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이러한 사업이 꼭 필요한 보전 활동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제는 우리 노력의 방향에 대하여 질문할 때다. 우리는 정말 구상나무에게 필요한 일을 하고 있는가? 나무를 심고 과거의 모습으로 복원하려 노력하기보다, 기후변화를 늦추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 힘겨운 삶을 이어가는 구상나무를 살 수 있게 하는 근본적이면서도 유일한 방법이다. 국립공원야생생물보전원 식물보전센터에서 발아시켜 세석에서 현지 적응된 구상나무 묘목 160주 식재된 구상나무 묘목 반야봉-중봉 구간에 식재된 구상나무(빨간 표식은 추후 모니터링을 위한 식별 장치) 글쓴이 : 정태준 모두를위한생태연구소 소장(자연과 사람이 모두 조화로운 세상을 꿈꾸며) -
정정환 05-04 12:54
숲의 새소리, 지리산의 노래는 공존, 평화였다.
법계사 아래, 천왕봉이 조망되는 곳에서 요즘 숲에 들어가면 산새들의 노랫소리로 숲이 가득 찬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아침이면 숲을 울리는 되지빠귀와 흰배지빠귀의 노랫소리와 박새와 쇠박새 등 박새류의 재잘거림, 작지만 우렁찬 굴뚝새의 외침과 청아하며 숲을 느리게 만드는 큰유리새의 노랫소리와 밤이면 들리는 소쩍새와 뻐꾸기의 노랫소리는 이제 여름이 오고 있음을 느끼게 해줍니다. 지리산 아래쪽부터 초록으로 물 들어가는 숲은 산의 높이를 느낄 수 있게 하며 봄철 첫 잎은 다양한 수종들이 섞여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줍니다. 살랑살랑 부는 바람은 봄의 끝자락에서 다시 봄임을 느끼게 해주고, 논물로 인해 탁해진 강물은 봄의 모내기가 시작되고 있음을 느끼게 해줍니다. 이렇게 자연은 우리에게 다양한 느낌과 깨달음, 편안함을 줍니다. 구태여 높은 산에 올라가지 않아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경험들입니다. 이런 다양성의 숲은 우리가 인위적으로 개입하지 않았을 때 더 많은 생명을 품고, 다양한 생명들이 섞여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나무들이 첫 잎을 내보일 때 다하게 섞여서 살아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것에서 알 수 있습니다. 큰산개구리의 산란시기 변화(국립공원연구원의 Rana uenoi Matsui, 2014 논문 참고) 적산온도와 산란시기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이렇게 함께 섞여서 살아가는 지구에서 기후의 변화로 사라져갈 위기에 놓인 친구들이 있습니다. 오늘 이야기하고 싶은 두 친구는 큰산개구리와 구상나무입니다. 큰산개구리는 과거 북방산개구리로 불리던 종을 최근 개별적 종으로 분리하여 큰산개구리로 이름 지었습니다. 이 큰산개구리는 기후변화로 인한 산란 시기 변화로 산란 시기가 빨라지고 있어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산란시기가 빨라져도 기온이 올라가서 그런 것이니 적응하지 않겠는가 생각할 수 있겠지만 기후변화라는 것이 따뜻한 것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갑작스러운 온도 저하도 함께 벌어지기에 산란 이후 알들이 동사하는 일도 있을 수 있어서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큰산개구리를 지키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까요? 무엇을 할 수는 있을까요? 기후변화를 이야기하며 반도체 산단, AI센터를 이야기하며 더 많은 전기, 더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우리들을 보면 기후위기 극복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은 하는 걸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미 끝이 정해진 소설을 읽는 것 같은 기분도 들고요... 큰산개구리 다음으로 이야기할 것은 구상나무입니다. 구상나무는 아고산지대에 서식하는 상록침엽수로 지리산과 한라산, 덕유산과 같이 일부 지역에서만 서식하며 오직 한국에만 자생하는 나무입니다. 이 구상나무가 지금 기후변화로 인해 많은 수의 개체가 고사하고 있습니다. 특히 지리산 반야봉, 천왕봉 일대에서 많은 개체의 고사가 발생하고 있는데 원인으로는 기후변화로 인한 적설량의 부족으로 수분공급이 원활하지 않게 되는 것을 원인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 2023년 치밭목에서 천왕봉 가는 길에, 산 구상나무와 죽은 구상나무가 함께 서있다.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곳, 그 아래서는 다시 생명이 싹트고 있다. 이렇게 기후변화로 인한 한 종의 개체수 감소를 막아내기 위해 ‘복원’이라는 작업을 국가에서는 진행합니다. 사라져가는 생명을 지키기 위한 작업이라고 생각하면 좋은 일이겠지만...이전에 연어 기사에서 이야기했듯, 서식지에 대한 변화, 보전이 없이 특정 종의 복원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구상나무의 쇠퇴는 기후변화가 주원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은 ‘복원’이 아닌 기후변화를 막아내거나 늦추는 일 이어야 합니다. 기후변화를 막는 과정에서 최대한 살리기 위해 ‘복원’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복원’이라는 작업은 다른 종을 배제하며 진행된다는 것입니다. 특정 종을 살리기 위해 흔하다고 판단되는 종을 배제한다면 이는 올바른 길이 아닙니다. 구상나무가 고사하고 있는 지역은 빠르게 신갈나무나 사스레나무와 같이 낙엽활엽수로 대체되고 있다 합니다. 숲은 환경에 맞춰 변화하지만, 그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과거의 모습을 지향하는 종은 오직 인간입니다. 숲과 강, 산은 귀한 종만의 서식지가 아닙니다. 모든 종들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공간입니다. 어머니의 산 지리산이라면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 부모의 마음으로, 구상나무를 복원하기 위해 특정 종의 배제가 발생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기에 지리산에서 구상나무 복원은 신중해야 합니다. 아니 하지 말아야 합니다. 끝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국립공원이라는 공간은 모든 종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평화, 공존, 모두 함께 살아가는 공간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를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글쓴이 : 정정환 _<새들은 우릴 기다려 주지 않아서> 지은이, 지리산사람들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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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아 07-13 20:12
우리는 반달가슴곰의 짝궁, "곰짝, 곰짝"
우리는 반달가슴곰의 짝궁, "곰짝, 곰짝" 아이들의 마음에 비친 반달가슴곰은 어떤 모습일까? 구례 토지초 아이들이 그린 반달가슴곰을 만나러 국립공원야생생물보전원 남부복원센터의 지리산 반달가슴곰 공존센터에 다녀왔다. 이번 반달가슴곰 작품 전시회는 지난 3월 27일 전남 구례군 토지면에서 열린 ‘우리동네 곰짝! 곰짝! 공존문화행사’(이하 곰짝곰짝 행사)의 결과 가운데 하나다. 곰짝곰짝 행사는 반달가슴곰 개체 수가 늘면서 안전 우려와 공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덩달아 늘어남에 따라 곰과의 공존 문화를 지역사회 안에 퍼뜨리기 위해 열린 행사로, 지리산 자락 주민들이 함께 고민하고 참여해 만든 행사다. 곰짝곰짝 행사에서는 지역 주민의 다양한 공연과 곰을 이해하는 문화 프로그램들이 진행되었는데, 특히 구례 토지초등학교 아이들의 참여가 눈길을 끌었다고 한다. 전교생이 ‘곰과의 공존’을 주제로 글·포스터 공모전에 참여했고, 4~6학년 학생들은 ‘곰짝곰짝 반달곰’ 노래와 율동을 선보여 공존의 의미를 보여줬다. 야생생물보전원 남부복원센터의 지리산 반달가슴곰 공존센터에 가면 지난 행사 때 아이들이 만든 글·포스터 작품을 볼 수 있고, 곰짝곰짝 반달곰 노래도 들을 수 있다. 그림들을 하나하나 바라보고 있노라면, 아이들의 창의성에 놀라고,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는 지적 흡수력과 감수성에 다시 한번 더 놀라게 된다. 너무도 친근하게 표현된 반달가슴곰을 보고 있노라면 빙그레 웃음이 절로 나온다. 늘 무심했던 어른이었음이 부끄러워진다. 반달가슴곰과 인간의 공존을 바라는 지역 주민들의 뜻이 아이들의 노력을 보태 이루어졌다니 참으로 희망이 가득한 사례다. 그런데 왜 우리는 이렇게 반달가슴곰을 복원하고 보전하는 일에 함께해야 할까? 곰은 ‘생태계의 핵심종이자 우산종’이다. 말이 너무 어렵다. 쉽게 말하자면, ‘곰의 존재가 생태계 내 다른 종 다양성 유지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뜻이다. 반달가슴곰은 다래, 머루, 도토리 같은 열매와 씨앗을 주로 먹는데, 곰이 싼 똥에서 식물이 발아하는 확률이 자연 발아에 비해 2배나 높다. 생태계 유지와 확산에 큰 역할을 한다. 반달가슴곰과 곰의 서식지를 보호하면 다른 종들의 서식지도 보호할 수 있는데, 마치 우산을 펼친 듯 하위 종들을 보호할 수 있어서 반달가슴곰과 같은 종을 우산종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왜 하필 지리산에? 곰은 단군신화에도 등장할 만큼 고대부터 한반도에서 살아왔다. 어쩌면 인간보다 더 먼저 살고 있던 한반도의 토박이인지도 모른다. 지리산은 유전인자 보전을 위한 기존 야생곰이 남아 있고 안전하고 넓은 서식공간과 풍부한 먹이자원 등 충분하고 우수한 서식지 조건을 갖추고 있어 반달가슴곰이 살아가기에 좋다. 지리산을 중심으로 ‘멸종위기야생동물 1급인 반달가슴곰’을 보전하는 일을 해 온 남부보전센터는 곰짝곰짝 행사가 주민 주도로 이뤄질 수 있게 지원했다. 남부보전센터가 있는 지리산 반달가슴곰 공존센터에는 곰들이 산다. 이 곰들은 동물원처럼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닌 야생성을 잃어버린 곰이나, 치료가 필요한 곰 등 보호·보존을 위해 마련된 곰들의 집이다. 남부보전센터틑 멸종위기종 복원과 탐사, 연구 사업 외에도 반달가슴곰과 함께 공존하기 위한 사업으로 탐방프로그램과 홍보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다. 반달곰 보전 사업에 대한 우려와 반감을 없애고, 인간이 생태계 파괴자에서 벗어나 자연과 함께 공존하도록 협의체를 구성하고 간담회를 연다. 왜 반달가슴곰을 보전해야 하는지에 대한 까닭, 반달가슴곰의 생태, 반달가슴곰과 마주치지 않는 방법, 혹시 마주쳤을 때 피하는 방법 등 교육하기도 한다. 곰짝곰짝 행사도 이러한 활동의 연장선에 있다. 우리가 찾아간 날 야생생물보전원 남부보전센터 소민석 센터장님을 만나 곰짝곰짝 행사에 대한 이야기와 보전센터의 역할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소민석 센터장님은, 곰이 사람을 공격하거나 농작물에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걱정에 곰이 지리산에 사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사실 사람이 곰의 영역에 침범한 것이지, 곰이 사람의 영역으로 침범한 것은 아니라고 말하며 곰과의 공존을 위한 인간의 노력을 강조했다. “모든 동물은 본능적으로 사람을 무서워한다. 반달곰도 마찬가지여서 사람 소리나, 방울, 종소리 등을 듣게 되면 먼저 피한다. 그러나 혹시라도 마주치게 되면 시선을 피하지 말고 뒷걸음으로 곰으로부터 멀어져야 한다. 절대 혼자서 산행하면 안 된다.” 우리의 사고는 인간 위주여서, 인간이 모든 동물의 우위에 있고, 자연을 지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너무도 당연시한다. 학교에서 배운 ‘먹이 피라미드’가 떠오른다. 피라미드의 가장 우위에 있는 인간은, 먹이사슬이 무너지고 자연의 질서가 파괴되면 살아남을 수 있을까? 모두가 그 대답을 안다. 하지만 일상생활 속에서 어려움과 불편을 감수하면서 ‘생태계를 살리는 일’에는 선뜻 행동으로 동참하기 쉽지 않다. 토지초 아이들과 토지면 주민들이 곰짝곰짝 행사를 멋지게 해낸 일은 그런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이번 곰짝곰짝 행사를 마친 소감을 물었다. “아이들과 함께 프로그램을 진행한 후, 프로그램이 좋았다고 소문이 나서 그 후로도 다른 초등학교뿐 아니라 중고등학생들까지 다녀갔지요. 보전 활동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들이 많고 비협조적이어서 외롭고 힘든 일이었는데, 이 활동과 변화를 통해 직원들이 ‘아, 무언가 할 수 있구나’ 하는 활력과 힘을 얻게 되었지요.” 이어서 그는, ‘생태 보전 활동에 지리산 권역에 있는 기관들과 주민들이 더욱 관심을 갖고 함께 해 나가면 좋겠다’는 바람도 잊지 않았다. 지리산에 살고 있는 곰들은 보호 관리를 위해 추적기를 달고 있다. 야생생물보전원에서는 탐방객의 안전을 위해 반달가슴곰 목격 제보를 받고 있는데, 추적을 나갔던 한 분이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신 적이 있다. 아주 오래전에, 양봉하는 곳에서 반달곰이 벌집을 통째로 훔쳐 달아났는데 바위 뒤로 몸을 숨긴 곰이 꿀을 먹지 않고 바위 사이로 주인이 쫓아오는지를 엿보고 있더란다. 아무도 쫓아오지 않는다고 생각한 곰이 그제야 맛있게 꿀을 먹었다. 정신없이 먹고 있는 사이에 출동한 사람들이 마취총을 쏘자, 오른쪽으로 날아오면 왼쪽으로 휙, 왼쪽으로 날아오면 오른쪽으로 휙, 고개를 돌리며 피하는 모습이 하도 우스워서 모두 같이 웃고 말았다고 한다. 곰의 식별 번호를 부르며, 거기 가만히 있어, 하니 또 가만히 서서 기다리더라는 이야기도 함께. 반달가슴곰들이 살고 있는 보전원 인공 서식지에서, 바위를 뒤뚱거리며 뒤로 내려오는 곰의 귀여운 모습을 보고, 이 ‘꿀을 훔친 곰’ 이야기 속 곰의 모습과 겹쳐 떠올라 혼자 웃었다. 오늘도 해가 쨍쨍하다가 갑자기 비가 쏟아지기를 반복한다. 지구 한편에 홍수가 나고, 다른 한 편은 가뭄으로 땅이 말라간다. 기후위기로 지구가 몸살을 앓고, 많은 동식물이 사라져 간다. 인간이 더 이상 환경 파괴자가 아니라 자연과 공존하는 삶을 살아가야 함이 무엇보다 절실한 때이다. 반달가슴곰과 공존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까닭이다. -
이촉 07-09 13:17
할매와 함께 걷는 계단
박순남 할매와 함께 걷는 계단 보클보클한 구름이 짖는다. 노인복지센터 차가 박순남 할매 사는 이층집에 도착했다는 거다. 할매는 여든여덟이다. 뇌졸중 후유증으로 다리에 힘이 없어 부축을 받아야만 걸을 수 있다. 계단을 오르기 위해 계단까지 가야 한다, 그 전에 차에서 내리는 순서가 있다, 오른발을 먼저 차 난간에 내려주고 엉덩이를 받쳐 내린 다음 오른발을 내려서 몸을 붙잡고 한 발 한 발 걷기 시작하면 꽃님이가 꼬리치고 반긴다. 계단 앞까지 왔으니 계단에 한발 한발 옮기면 된다. 왼발을 손으로 계단에 올려준다. 그다음은 할매 스스로 오른발을 옮기면 된다. 그러다 보면 내 시선은 자연스레 아래로 간다. 그 순간 스치는 경이로움, 화강석 계단 틈 사이 자란 풀이 꽃을 피웠다. 할매, 저 풀꽃 봐요! 할매는 두 손으로 계단 난간을 잡고 오르다 아래를 본다. “잘 안 보여” “꽃이 예뻐요” 저 풀도 이름이 있을 텐데, 그러게, 우리는 한 몸이 되어 계단을 오르고 구름이 짖는 소리가 하늘로 퍼져 구름이 된다. 보클보클한 구름이는 할매집에 사는 반려견 이름이다. 드디어 문 앞, 으싸! 마음이 바빠진 할매 발걸음이 빨라지며 앞으로 넘어질 듯 걷는다. 문고리에 걸린 열쇠를 빼고 문을 연다. 문을 여는 일은 할매가 오늘 하루 잘 지냈다는 일. 오늘도 애쓰셨어요. 꽃장식 보라색 모자도 벗어두고, 내일 아침에 다시 올게요! 밖에서 문고리를 채운다. 문을 잠그지 않으면 할매가 기어서 계단에 내려와 낙상한 적이 있다. 노인들이 눈 깜빡할 사이 낙상하면 골다공증이 심해 골절될 확률이 높다. 할매와 헤어져 계단을 뛰어내린다. 살아가는 것은 계단이야. 할매가 휠체어 도움 없이 포기하지 않고 계단을 오르내리기 때문에 지금처럼 걸을 수 있다. 비 오듯 땀에 젖고 마르는 일 또한 계단이다. 나를 향해 구름이 짖고 난리다. 안녕, 구름아! 손을 흔들고 차에 오르자 우리를 차창으로 보고 있던 할매들 고생했다는 말 한마디에 금세 땀이 마르고 몸이 가벼워진다. 내 손이 박순남 할매의 발이 되는 계단. 가요! 파초길 지나 지리산을 보고 달려요. 잘 웃는 박순남 할매 목소리는 비음이 매력적이다. 키 크고 잘생긴 아들과 예쁜 며느리가 처음 만나 연애하던 이야기를 하면서 기분이 좋아진다. 체조 시간에 몸이 따라주지 않아 율동하지 못해도 콧노래 부르고 손뼉을 치며 웃는 할매 보고 나도 웃는다. 어느 날 잘생긴 아들이 밭에서 따온 호박을 건네준다. 다음날은 복지센터에서 호박전 부쳐 먹는 날이다. 달착지근한 호박전 생각에 벌써 행복해진다. -
문홍현경 06-22 12:16
2026 생명평화 하지제 이야기 "벽소령을 흔들지 마라"
2026 생명평화 하지제 이야기 "벽소령을 흔들지 마라!" 올해도 지리산 생명이 무사하길 바라며 하지제를 함께했습니다. 지리산사람들은 난개발로 힘들어하는 지역에 찾아가 연대의 마음으로 하지제를 열곤 했는데, 올해는 벽소령에서 하지제가 열렸습니다. 산청, 하동, 함양에서 벽소령을 깎아 도로를 놓겠다는 공약들이 흘러나왔기에 벽소령을 함부로 하지 말라는 경고가 담긴 하지제였습니다. 벽소령으로 오르는 길이 두 군데가 있더군요, 함양에서 오르거나, 하동에서 오르거나. 함양에 가까이 사는 분들은 함양에서 올라왔고, 저를 포함해 하동에 가까이 사는 분들은 하동에서 올라왔지요. 함양에서 오른 분들 이야기를 들어 보니, 함양에서 벽소령 올라오는 구간은 꽤 편했다고요,,,,, 산에 좀처럼 오르지 않는 저에게 하동에서 벽소령 올라오는 구간은 정말 정말 어려웠습니다. 올라올 때는 심장이 요동쳤고요, 내려올 대는 무릎이 욱신거렸지요. 그러나 힘듦보다는 숲의 신비로움과 아름다움이 더욱 오래 남았습니다. 정말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숲의 매력에 빠졌습니다. 다만, 제 체력으로는 당분간 다시 오를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면서 아름다운 장면이 너무 많았는데, 정신이 아득하여 사진을 제대로 못 찍었습니다. 게다가 새 소리와 계곡 물 소리, 함박꽃 향기, 단당풍 향기, 나무 질감 같은 시각 아닌 감각을 자극하는 무수한 숲의 선물은 사진에도 담기 어려웠으니, 다녀오시는 분만이 알겠습니다. 발로 땅을 짚는 것조차 미안한 마음이 들더라고요..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 도로를 놓겠다는 공약은 제발 사라지면 좋겠습니다. 아니, 아름다우니까 지키자는 말보다는, 엄청나게 많은 이들이 살고 있는 곳이니 제발 지켜지면 좋겠다고 말해야겠습니다.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이미 오래 전부터 숲을 살리며 살고 계신 분들이 있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아실 테지요. 하지제를 열었습니다. 숲에 계신 분들이 놀라지 않게 조용히, 따끈하게- 저마다 하나씩 가져온 감자를 모아 쪘습니다. 아, 맛이 기가막히네요. 온 세상 모두에게 이 감자 한 알씩 맛보게 하고 싶습니다. 조금씩 갖고 온 음식도 모아 모아, 햇차도 올리고, 다례상을 차렸습니다. 벽소령을 지켜 달라는 마음을 담아 목소리도 외치고, 글도 함께 읽었습니다. 해성과 영권 샘은 노래도 불러 주셨지요- 최고! 우리의 아기자기한 하지제가 부디 벽소령을 무사히 살게 하는 큰 힘에 보태져 세월이 흘러도 이 숲과 생명이 순환하며 이어지기를 기도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함께 읽은 편지를 아래 붙이겠습니다. 벽소령이, 지리산이, 그리고 모든 생명이 무사하길 바라는 분들, 함께 읽어 주세요. 고맙습니다. 하짓날 지리산 벽소령에서 올리는 편지 하지, 여름이 이르렀다는 계절에 너무 무더운 하짓날을 맞이했습니다. 이 무더운 하짓날 우리는 지리산 벽소령에 다 함께 모였습니다. 올해 만든 첫 햇차를 올리고, 함께 모여서 감자를 삶아 먹으며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시와 노래를 나누기 위해 모였습니다. 지리산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우리의 한 해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또 모인 이유는 지리산에서 벌어지고 있는 각종 난개발 공약 때문이기도 합니다. ‘지리산을 관통하는 도로를 만들겠다. 지리산에 케이블카를 만들겠다. 지리산에 댐을 만들겠다.’ 실현 불가능한, 실현되어서는 안 되는 공약과 개발 계획들이 비 온 뒤 죽순이 나오듯 사방에서 올라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리산이 어떤 곳입니까? 국립공원 1호이고, 무수한 생명의 보금자리입니다. 이곳만은 보전하자고, 훼손하지 말자고 함께 약속한 땅입니다. 다음 세대들 또한 지리산에 올라서 지리산의 너른 품에 안기고, 지리산 속에서 위안과, 생명의 사랑과 평화를 느낄 수 있는 권리가 있기에 우리는 끊임없이 노력하여 지켜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만든 기후위기로 인해 여름은 우리가 알던 여름이 아니고, 계절의 경계가 사라지고, 절기의 기준이 모호해지고 있습니다. 너무 빠른 변화에 적응할 수 없는 종들이 계속 사라지고 있습니다. 기후 재난은 어느덧 해마다 우리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이런 심각한 기후위기 시대에, 행정가나 정책 입안자들은 난개발 공약들만 즐비하게 내놓고 있습니다. 숲을 지키고, 물이 자유롭게 흐르도록 더 노력하고, 만들어 나가야 할 기후위기 시대에 나무를 베어내고, 강을 막아 댐을 만들고, 생명의 땅인 산을 깎아 없애려 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더 많은 발전과 개발이 아닌 탈성장, 멈춤입니다. 미래 아이들에게 이런 심각한 기후 재난의 세상을 물려주지 않으려면 멈추고, 숲과 강, 산을 지켜나가는 보전의 방향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한계를 모르고 발전과 개발만을 좇는다면 미래 아이들에겐 기후위기와, 기후 재난, 재앙만을 물려주게 될 것입니다. 이래서야 되겠습니까? 우리는 이제 선택해야 합니다. 멸망으로 갈 것인지 아니면 다시 함께 살아가는 길로 나아갈 것인지, 우리 미래 아이들에게 어떤 유산을 물려줄 것인지 다시 생각하고 방향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지리산 마고신께 빕니다. 지리산 생명의 안녕을 바라며 힘겹게 마을을 지키는 이들에게 힘을 주십시오. 지하수로 싸우고 있는 삼장면 주민들을 보살펴 주십시오. 골프장으로 싸우고 있는 차황면 철수마을 주민들을 보살펴 주십시오. 온갖 난개발 공약이 실현되면 위기에 처할 벽소령을 부디 난개발로부터 지켜주십시오. 기후위기로 재난과 같은 일이 없도록 보살펴 주십시오. 우리도 올 한 해 지리산의 난개발 공약을 막아내기 위해 함께 연대하여 싸워 나가겠습니다. 2026년 6월 21일 하짓날 지리산 벽소령에서 지리산지키기연석회의,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지리산사람들, 산청난개발대책위, 함양난개발대책위 -
이해성 06-11 17:14
보이지 않는다고 함부로 말하지 말라 (지리산 지하수 이야기 5)
‘300미터 지하 암반수’라고요? 사실은 29미터 지하 암반수입니다. ㈜지리산산청샘물의 관정(특히 5호정)과 주민관정, 국가지하수보조측정망 007이 같은 레벨에 있으며, 고갈 현상의 직접적 원인이라는 결정적인 증거가 있습니다. 바로 케이싱의 길이와 해발고도입니다.케이싱은 우물에 흙이 들어오거나 우물벽이 허물어지지 않도록 하는 플라스틱관 또는 강관을 말합니다. 케이싱이 없는 지점에서부터 암반수는 우물 속으로 스며듭니다.지리산 생수는 ‘300미터 지하 암반수’라고 홍보되지만, 그것은 우물의 최대 깊이이고, 1호정은 지하 101m, 4호정은 지하 79.6m, 5호정은 지하 29m에서부터 우물 안으로 스며드는 물을 뽑아 올릴 수 있습니다. 생수공장의 물은 사실 그리 깊은 물이 아닙니다. 특히 5호정은 지면과 굉장히 가까운 지점(지하 29m)에서부터 스며든 물을 뽑아 올리고 있습니다. 산청샘물 인근 삼장다목적캠핑장 위치한 보조측정망 007은 해발고도가 5호정 보다 약 30미터 아래에 위치하고 있으며, 5호정 케이싱 깊이와 레벨이 같습니다. 이 두 우물은 서로 영향을 받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
비아 06-07 13:20
‘곁의 곁’ 두레공동체 마을에서 열린 생명평화연대 모임에 다녀와서
‘곁의 곁’ - 두레공동체 마을에서 열린 생명평화연대 모임에 다녀와서 ‘고통에 곁이 필요한 만큼 고통의 곁에도 곁이 필요하다’라는 엄기호 시인의 시 『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 중 한 구절이다. 이 문장을 ‘어두운 날의 우정과 영성’이라는 주제로 성공회대 교수 정경일 교수가 강연(5월 30일, 지리산종교연대 초청강연) 중에 인용했다. 곁은 이웃, 친구가 될 수도 있고, ‘곁의 곁’은 더 큰 차원의 종교, 교회, 공동체가 될 수도 있다. 이렇게 곁의 곁이 되고자 모인 사람들이 종교를 초월하여 지리산을 중심으로 뭉친 ‘지리산종교연대’ 사람들이다. 나는 특별한 종교를 갖지 않는다. 절에 가면 불상 앞에 엎드리는 겸손과 비움을 배우고, 교회에 가면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는 예수님의 고통과 부르심에 응답하지 못해 괴로워하며, 성당에서는 아름다운 성가에 마음을 빼앗기기도 한다. 토속신앙을 접하거나 굿판에 참여해서는 만물에 깃든 영혼들의 아우성에 마음이 쓰리다. 이런 까닭으로 종교연대 사람들이 각자의 믿음과 신앙을 초월하여 하나로 힘을 합치고 타인의 종교를 인정하는 모습을 너무도 좋아한다. 종교연대 사람들은 개신교, 가톨릭, 불교 등 각기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모이는 연대모임이다. 오늘은 그 연대의 사람들이 함양으로 모였다. 함양의 두레공동체 마을은 힘없는 사람들을 위해 개신교 목사님이 세우시고, 지금도 서로의 곁이 필요한 사람들이 모여 살아간다. 오늘 오전 모임은 두레공동체 마을의 ‘예수행전순례길’을 산책(순례)하는 프로그램으로 시작했다. ‘십자가의 길’은 두레공동체마을 뒷산에 산책로를 만들고, 그 길을 따라 14개의 기도처를 마련했다. 조각가 김익수 장로님이 직접 제작하신 예수의 행보를 나타낸 동판이 각 처마다 십자가와 함께 세워져 있다. ‘만남, 용서, 치유, 가르치심, 긍휼, 섬김, 성찬, 기도, 재판, 십자가 지심, 수난의 걸음, 쓰러지심, 도움받으심, 십자가에 달림(용서, 원망), 예수의 죽음, 부활·승천(못자국, 창자국을 보아라, 제자들을 기다림, 예수님의 승천)’ 이렇게 19개의 묵상 주제를 가지고 있다. 십자가의 길을 따라 걸으며, 하나하나의 기도처에서 묵상 주제를 겸허히 생각해 본다. 얼마나 용서하고, 얼마나 섬겼으며, 또 다른 이들을 나의 기준으로 판단하고, 비난했는가를. 마음이 무거워지려는 찰나. “오, 나뭇잎 사이로 쏟아지는 햇빛을 좀 봐요!” 하며 옆 순례자 한 분이 감탄을 한다. 눈을 들어 위를 올려다보니 나뭇잎들 사이로 파란 하늘이 빛난다. 나무들은 아래 작은 식물들이 햇빛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늘 전체를 덮지 않고 공간을 만들어 준다고 한다. 정말 그랬다. 울창하게 자란 나뭇잎들이 만들어낸 공간들 사이로 맑은 햇살들이 작은 들꽃들 위로 떨어지고 있었다. 자연의 지혜다. 숲속의 자그마한 연못이 나타났다. 연못에는 올챙이들이 까맣게 모여 살고 있었다. 그곳에 새끼 도롱뇽, 소금쟁이 등의 작은 생물들을 발견하고는 신비로운 기쁨에 탄성을 질렀다. “예수의 부활처럼 많은 생명을 품고, 잉태시키는 연못이라.” 한 불자님이 말씀하신다. 그러고 보니 그렇다. 막 깨어난 잠자리들이 은빛 투명한 날개를 퍼덕이며 파란 막대처럼 날아다닌다. 처음 보는 풍경이다. 파란 자그마한 막대들이 여기저기 날아다니는 광경이 신기하여 한참을 관찰했다. 저 작고 여린 생명이 잠자리 성충으로 자라 날아다니게 된다니 그 또한 신비롭다. 연못은 수중 생물뿐 아니라 그곳에서 자라 물 밖으로 나오는 많은 생물도 엄마 품처럼 안고 있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생명들에게도 곁이 되어준다. 이 또한 늘 당연하게 여겼던 자연의 지혜다. 허물어진 언덕에 조그마한 굴이 파였다. 물총새의 둥지라고 한다. 앞에 늘어진 나뭇가지(혹은 드러난 나무뿌리) 위에 앉아 주둥이로 흙 비탈에 굴을 파고 그곳에 알을 낳아 새끼를 기른다고 한다. 물총새는 집 밖으로 엉덩이를 내밀고 똥을 누는데, 집 밖 절벽으로 똥을 떨어뜨림으로써 둥지 안이 더러워지는 것을 방지한다고 하니, 재미있고, 지혜로운 새의 습성이다. 십자가의 길에서 다시 교회로 되돌아오는 길. 산딸기와 오디가 주렁주렁 열렸다. 난 산딸기를 따 먹느라 정신이 없는데, 나이 많으신 한 순례자분이 까맣게 익은 오디를 보고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신다. “며느리가 친정 나들이를 했다가 빈손으로 돌아오자, 이를 얄밉게 여긴 시어머니가 ‘넌 친정 다녀오면서 빈손으로 오냐?’ 하고 묻자, 며느리가 말했지, ‘갈 때 없던 오디가 올 때 있다요?’라고.” 참 현명한 며느리다. 시어머니의 얄궂은 심성에도 전혀 기죽지 않는 당당함이 느껴져서 웃었다. 공자는 세 사람만 모여도 스승이 있다고 했는데, 잠깐의 산책으로도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운다. 더군다나 늘 남의 곁이 되어주는 사람들이 모이니 모두가 나의 스승이다. 점심시간, 바람이 시원하게 부는 나무 그늘에 각자 가지고 온 도시락들을 펼쳤다. 여러 사람이 모이는 식사 자리에는 늘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난다. 난 내 먹을 것만 조금 싸 왔는데, 다들 다른 사람을 생각하여 풍성한 음식들을 준비해 왔다. 김치와 나물, 떡과 빵. 김밥과 찰밥, 채소와 과일. 이것저것 다 먹어보느라 배가 부른 데도 자꾸 손이 간다. 풍성한 점심을 먹고, 드디어 오늘의 정식 프로그램인 강연이 시작되었다. 모두 교회에 둘러앉아 ‘어두운 날의 우정과 영성’을 주제로 한 교수님의 강연을 듣는다. 한 문장이라도 놓칠세라 진지한 모습들이다. 우린 책을 읽을 때도 그렇고, 강연을 들을 때도 자신에게 필요한 말, 혹은 자신의 마음에 와닿은 말들을 주로 듣고 기억한다. 나도 그렇다. 그러기에 마음에 와닿은 강연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어둠의 성인 마더 테레사, 파국에 의한 관상가 파커 파머, 어둠의 날들을 이야기한 틱낫한. 어둠의 날들을 경험한 자가 어둠에서 나오는 길을 안내할 수 있고, 어둠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지혜를 얻을 수 있다. 알베르 카뮈는 소설 『페스트』에서 ‘(재난 속에서) 더 이상 그 무엇도 사랑하지 않는다면 투쟁은 뭐 하려 하는 겁니까?’라고 리유의 입을 통해 묻는다. 어둠 속에서 서로에게 위안이 되어주고, 신뢰를 가질 때 더 이상 어둠은 어둠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사랑을 잃어버린다면 어둠은 그 끝을 모르게 된다. 이렇게 어두움 속에서 우린 서로의 곁이 되어줄 수 있다. 비단, 인간과 인간만이 공동체를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인간과 비인간과의 우정과 협력으로 우정의 써클을 넓힘이 필요하다.” 외국 학자가 주장한 언어를 우리식으로 번역한 언어임에도 ‘비인간’이라는 말에 거부반응이 다소 일었다. 그때 옆 사람이 이렇게 말한다. “비인간이나 나무 사람이라는 말보다는 자연의 현자들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요?” 우린 만물에 이름을 붙이고, 개념 지워서 인간의 입장으로 판단하고 평하려 한다. 언어는 우리가 구별 짓는 기준이 되기도 하는데, 그러므로 늘 인간의 위치에서 생각하게 된다. 자연을 현자의 위치로 규정하고 바라보는 태도, 그 또한 겸허함이다.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지혜, ‘생명, 평화, 공존’의 사상은 늘 ‘현자’의 지혜임이 틀림없다. 십자가의 길은 무겁다. 우린 각자의 십자가를 지고 삶을 홀로 살아가야 하고, 비틀거리고 쓰러질 때 도움이 필요해진다. 꼭 십자가라고 하지 않아도 그렇다. 우린 살아가다 보면 삶이 어깨 위에 걸터앉아 무겁게 짓누를 때가 있다. 그래서 늘 곁이 필요하고, 함께함이 필요해진다. 또한 내가 좀 힘이 있을 때는 누군가의 곁이 되어주고 싶어 한다. ‘그동안 난 누구의 곁이 되어준 적이 있을까?’ ‘나는 어두움이 주는 지혜를 얼마나 깨닫고 살아왔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교회를 나와 마을 길을 내려온다. 다음 모임은 암자에서 있을 예정이라고 한다. 스님이 주관하시는 모임에서는 또 어떤 지혜를 얻을 수 있을까? 또 어떤 따뜻하고,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나게 될까? 글쓴이 : 비아(非我) _지리산을 바라보면 늘 행복해지는 마음으로 그렇게 자락 한쪽 끝에 깃들어 살아갑니다. ‘더불어 삶’이라는 말을 가장 소중히 여기면서. -
이촉 06-02 13:36
백서른아홉 번째 304 낭독회
< 백서른아홉 번째 304 낭독회>를 다녀와서 <오늘은 여전히 4월 16일입니다> 세월호 침몰 4,428째 4월 16일이 지난 5월 30일 구례 책방 로파이에서 139회 304 낭독회가 있었다. 로파이 마루에 앉은 사람들 곁에 김태선 평론가가 내어준 자리에 앉아 낭독회를 기다렸다. 노란 천 위의 검은 세월호 리본이 앵두나무 아래 오월 바람에 무심코 펄럭였다. 오후 4시 16분, 김태선 평론가 사회로 낭독회가 시작되었다. “304 낭독회는 우리가 함께 모여 만드는 시간으로 이 시간이 떠난 이와 떠난 이를 잇고, 떠난 이와 남은 이를 잇고 남은 이와 남은 이를 잇는 자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앞으로도 사회적 참사와 안전을, 그리고 사람을 생각하는 서로의 목소리가 공명하여 더 크고 넓게 울려 퍼질 수 있도록, 지금 서 있는 시간으로부터 더 먼 시간까지 함께 읽고, 쓰고 행동하겠습니다.” 이어서 유현아 시인 시, 「그늘 옮기기」, 세월호 유품 시를 쓰고 있다는 송기역 시인의 시 「제비가 돌아왔다」, 김정규 님이 읊는 시 김현 시인의 「뷰티플 스트레인저」, 박진수 사회학자의 편지 「이름을 알지 못하는 누나에게」 , 이소연 시인 시 「개미의 몸을 빌려 占치다」 낭송이 끝나고 책방 로파이에서 꼭 한번 304 낭독회를 하고 싶었다는 시인보다 더 시인인 방성원 님이 김창완 작시 작곡 「노란 리본」을 노래하며 사회자와 다 같이 읽는 글을 끝으로 낭독회 막을 내렸다. 난 되도록 슬픈 곳에 가기를 꺼린다. 다시 직면하는 고통을 피하기 위해서다. 직업상 병에 관련 영화는 잘 보지 않는다. 5·18광주를 바로 눈앞에서 겪은 나로서는,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그 5·18 광주, 영화 <꽃잎>은 몇십 년이 지난 어느 밤 TV에서 보았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지던 날, 야간근무였다. TV로 사건을 접한 늦은 밤 헌혈을 위해 사람들이 병원 응급실로 줄을 이었다. 난생처음 헌혈한 피를 모으는 작업을 했다. 그 밤은 무너진 건물과 그 속에 갇힌 사람들과 구조된 사람들과 구조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무너져 내리는 마음이 함께 힘을 모았다. 그리고 세월호가 침몰하던 그 바다는, 우리가 제주도로 향하던 뱃길, 세월호에 탄 아이들과 선생님들처럼 직장에서 단합대회 가던 길이라 세월호 참사는 특별하게 더 기억에 남아있다. 낭독회 중 어디서 날아왔을까? 하얀 나비 한 마리가 우리 곁을 맴돌았다. 마루로 너울너울 벽에 붙은 글에 붙어 너울대다 담쪽으로 사라져갔다. 세월호를 타고 바다로 간 아이들 영혼이 찾아온 듯 우리는 하얀 나비에게 시선을 빼앗겼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가 기울면서 바다로 침몰하던 시각에 외치던 아이의 목소리가 찾아와 곁에 한참을 머물다 간다. “반쯤 잠겼는데, 바다밖에 안 보여, 나 살고 싶어요. 리얼리! 배가 기울었어요. 물이 다 찼어요. 코드블루 레드! 나 무서워 살고 싶어, 나는 꿈이 있는데, 하고 싶은 게 많은데, 하고 싶은 게 많은데, 왓캔아이두! 내가 지금 탄 세월호, 이런 길 속에 묻혀, 우리가 출발 예정 시간은 6시 30분, 우리가 출발한 시간은 8시, 지금 배는 85도, 머릿속 온도는 100도” 이 아이가 남긴 말에 아직 대답하지 못하고 있다. 세월호 침몰 이후 계속되는 대참사 앞에서 할 말을 잃는다. 솔직히 더 많은 글을 쓸 자신이 없다. 할 수 있다면 304 낭독회를 기억하면서 구례에서 다음 304 낭독회가 열리기를 희망하며, 이 글을 읽는 사람이 로파이에서 함께 한 139회 304 낭독회 <<함께 읽는 글>> 과 함께 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글을 맺는다. <<함께 읽는 글>> 사회자 오늘은 4월 16일입니다. 다 같이 4428번째 4월 16일입니다. 사회자 이렇게 모여, 우리는 사람으로 돌아가는 꿈을 꿉니다. 다 같이 목숨이 삶으로, 무덤이 세상으로, 침묵이 진실로 돌아가는 꿈을 꿉니다. 사회자 이렇게 모여, 우리는 사람의 말을 이어갑니다. 다 같이 떠오르도록, 떠오를 수 있도록, 사람이 사람에게, 사람의 말을 이어갑니다. 사회자 이유를 알고, 책임을 묻고, 참사가 반복되는 걸 막아야 합니다. 다 같이 세월호 미수습자 모두의 귀환을 염원합니다. 철저한 진상규명을 요구합니다. 모두의 이름으로 명령합니다. 사회자 함께 대답을 들어야 합니다. 다 같이 그때까지 멈추지 않겠습니다. 사회자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닙니다 다 같이 끝날 때까지 끝내지 않겠습니다 -
이촉 05-16 10:00
구례를 걷는다
봉북 샛길 가축병원 자리 골무 사태 들어 대장간 지나 왼쪽으로 꺾으면 봉남리로 나가는 샛길, 벽화 따라 걷는 봉동리 더듬어 주욱 이층집 지나 큰길 건너 읍사무소 자리 역사의 거리 지나 성당을 돌아 봉산 쪽으로 간다. 길을 접어 작은 길을 가니 소식다료. 들어서니 아는 사람이 앉아 있다. 호지차 한잔 주문하여 홀짝이는데 창밖으로 보이는 연둣빛 봉산이 금세 내 안으로 쏟아질 듯 하다. 구수하고 따듯한 호지차처럼 구례에서 만난 사람들 또한 그러하다. 찻집에서 우연히 만나는 사람은 샛길 같다. 길 안에서 길을 마시는 차의 여백, 찻잎처럼 떠다니는 여백을 떠다니는 생각에 싸여, 걷는다. 봉북샛길 접어드니 샛길이 나를 기웃대며 녹슨 파란 대문이 꿈속으로 부는 바람처럼 나를 건든다. 고양이 두 마리 쓰레기 더미를 뒤지다 후딱 피한다. 가지 마! 나도 몰래 새 나가는 말이 전봇대 아래 멈추고 야옹, 고양이 눈이 맑다. 개울 따라 접어든 구례 샛길이 살갑다. 지나는 사람은 그림이 되고 십자가 뒤로 장미슈퍼가 미소 짓는 저물녘. 장미슈퍼 와상에 메주와 우유를 내놓았다. 먼 날이 불러오는 풍경 한파가 이어지던 영하 10℃ 냉장고를 나온 두부가 손님을 기다리던 시간 위로 떠 오르는 얼굴 함께 구례를 다시 걷는다. -
이촉 05-01 19:43
최갑순 할매 / 서시내 가면,
<내 마음을 다녀간 사람들> 최갑순* 할매 철쭉빛 스카프 목에 두르고 뭘 보고 있소 서시내 보요 노고단을 보요 할매 독다리 건너던 독다리 보요 꼭 다문 입술 열고 한 잎 한 잎 띄워 보내요 꽃바람에 맨발로 앉은 보따리 꼭꼭 싸맨 가슴 풀어나 봐요 할매 꽃신 어디 두었소 꽃신 따라 건넌 시간 어디 두었소 꽃 대신 울다 피다 울다 철쭉 또 오거든 함께 걸어요 쑥부쟁이 독다리 건너 건너 광의에 가요 오늘은 서시내 깔따구가 따라와 눈을 뜰 수 없어요 할매 철쭉 빛 스카프 바뀌고 또 바뀌면 어둠 머금고 봄은 언제 올까요 * 구례 평화의 소녀상 서시내 가면, 동광 사거리 지나 당산나무가 있고 서시교까지는 포플러가 즐비한 신작로였다. 고흐 사이프러스 길이 생각나는 포플러 길. 신작로, 말만 들어도 구례가 많이 변했음을 알 수 있다. 서시내는 뭇 생명과 함께 흐르는 구례 아이들 놀이터였다. 요즘은 섬진강 다슬기로 유명하지만, 구례말은 데사리나 고동이다. 서시내서 잡은 데사리 한 바구니 데쳐 가족들 함께, 옷핀으로 빼먹던 고동, 모래알 같아 퉤퉤 뱉던 그 초록 알이 아직 입안에 남아있는 듯하다. 서시내 둑방은 어린 내가 오르기에는 좁고 가파른 길이었다. 몇 해 전 수해로 둑은 더 높아져 지리산을 막고, 밤이면 가로등 번쩍이는 꽃길이 되었지만 말이다. 그 둑방 아래 조성된 공원 산책로를 걷다 보면 구례 평화의 소녀상 최갑순 할매가 바위에 앉아 있다. 항상 맨발인 할매. 어릴 적 꽃신 사준다고 해 따라나선 길은 돌아오기까지 얼마나 먼 길이었을까? 그 길 가슴에 싸맨 보따리 하나 두고 앉은 할매. 할매 곁에서, 때로는 지나는 사람이 씌워준 모자와 목도리가 바뀌고 계절이 바뀌고 지리산과 서시내도 계절을 갈아탄다. 오늘 할매 이야기 듣다 어두워지고 밤이 온다, 글쓴이 : 이촉 전남 구례에서 태어났다. 시집 『검은 해바라기』를 펴냈다.
기후위기더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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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홍현경 05-15 18:20
종말이 오면 좋겠다고 그랬어요
종말이 오면 좋겠다고 그랬어요 우울하고 불안한 당신에게, 길가의 마거리트(마거렛) 꽃이 주는 햇살 같은 인사를 전합니다. 당신은 문제가 아닙니다, 당신만의 문제도 아닙니다. 피어나는 꽃들을 빌려 계속 안부를 묻겠습니다. 지난 4월 22일 구례에서는 지구의 날이 조용히 지나갔습니다. 2021년부터 해마다 열린 ‘구례 지구의 날 어린이·청소년 기후행동’으로 거리가 시끌벅적했던 지난 해들과 달리, 올해부터는 다른 방식으로 기후운동을 이어가기로 한 까닭입니다. 지구의 날, 다른 지역에선 무슨 일이 있었나 하고 소식을 찾아보다가 제목 하나가 눈에 띄었습니다. <지구 걱정은 시험 끝나고. 지구의 날 10분 소등도 어려운 캠퍼스>. “대학생들에게는 10분의 소등조차 허락되지 않는 ‘중간고사 기간’의 압박이 더 크게 작용하고 있었다.”라며 한 대학생 기자가 지구의 날조차 지구를 생각할 수 없는 캠퍼스 현실을 드러낸 기사였습니다. 이 기사를 읽고 대학생들이 사회 문제보다 개인 성적 따기에만 몰두한다고 쉽게 혀를 찰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듯합니다. 그들의 무관심은 지난 2022년 대선 토론회에 나와서 “알이백(RE100)이 뭐죠?”하고 묻던 후보 시절 윤석열 씨의 무책임한 무관심과는 결이 달라 보입니다. 고용 불안, 주거비 부담, 경쟁 압박, 우울, 고립과 은둔 등으로 종말보다 못한 현실을 걱정하는 청년들에게는, 어떤 권력도 믿을 구석도 없으니 말입니다. 기후위기라는 재난만큼 청년들의 희망 없는 일상은 우리 사회가 조금씩 쌓아 온 ‘느린 재난’이 된 것 같습니다. 종말을 바라거나, 이미 종말을 살고 있거나 고민실 작가의 단편소설 「쓰나미 오는 날」(『홈가드닝 블루』)에 나오는 인물 유경은 쓰나미가 올 거라는 소문에도 도시를 떠나지 않고 출근합니다. 왜 직장을 그만두지 않는지 묻는 말에 유경은 “다시 취업할 수 없을 것 같아서요.”라고 말합니다. 이 사회에서, 쓰나미보다 실업이 두려운 자들은 유경만이 아닐 것입니다. 기후재난보다 시험이 두려운 아이들처럼요. “기후위기로 학교 문 닫으면 시험 안 봐도 되겠지?” 우연히 들은 고등학생 청소년들의 대화였습니다. 이들의 어깨에는 지구보다도 무거운 짐이 들려 있는 것만 같습니다. 그런데 한편에선 기후위기를 시험 문제로 내는 ‘기후수학능력시험’이 치러졌습니다. 2025년 8월에 열린 제2회 기후수능의 점수와 1등 학생에 대한 기사들이 있었습니다. 중고등학교에서 환경 과목이 거의 외면받고, 환경을 담당하는 교사 또한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어서, 환경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최 측 의도에는 공감하지만, 들고 나온 대안이 또 다른 시험이고 줄 세우기라니…. 기후수능으로 환경에 대한 관심이 늘면, 아이들 입에서 “기후위기로 다 한꺼번에 죽으면 시험은 안 봐도 되잖아요.” 같은 말이 안 나올 수 있을까요? 쓰나미보다 실업이 두렵다는 유경이들은 환경수능에서 높은 점수를 받으면 좀 덜 불안해할 수 있을까요? 100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할 정도로 기록적인 폭우가 내린 2025년 여름 한반도에서 폭우로 사망한 이가 37명이었으며, 같은 해 폭염으로 사망한 이는 19명이었습니다. 한편, 2021년부터 2025년 6월까지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이 집계한 ‘자살 시도나 자해를 한 학생 수(자살한 학생 포함)’는 하루 평균 19.37명이었습니다. 수치만으로 어떤 죽음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려는 게 아닙니다. 기후위기를 만드는 방식으로 또 다른 재난이 가려지고 있음을 똑바로 바라봐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가 보지 못하는, 혹은 눈감는, 그러나 분명히 존재하는 ‘폐허’가 이미 재난이나 종말이라는 단어보다도 더 끔찍하게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음을 드러내야 하지 않을까요? 기후위기를 부추기는 방식이 아니라, 기후위기를 막을 생태적 전환의 목소리로 말입니다. 종말보다 못한 현실, 각자 풀어야 할 과제로 남기지 말아야 지구의 날에 열린 한 토론회에선 청년들의 ‘기후 우울’을 주목했습니다. 기후위기로 우울감이나 무기력함, 생태적 상실감에 시달리는 청년이 늘어난 현실을 사회 구조에도 영향을 미치는 심리적 위기라고 진단했습니다. 누군가에게 기후 위기는 먼 미래가 아닌 현재의 위협으로 받아들여집니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불안을 만드는 방식을 가져와 불안을 잠재우겠다고 합니다. 더 열심히 공부해라, 좋은 직장에 가라, 돈 많이 벌어라, 같은 말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꼬드깁니다. 시궁창 같은 현실을 송두리째 무너뜨릴 방법은 오직 재난뿐이라는 생각에 재난이 오기를 갈망하는 청소년·청년들, 현실이 재난보다 더 무서워서 재난에는 무감해진 무수한 유경이들 그리고 기후위기 불안에 시달려 우울한 청년들이 ‘지금 우리 옆에’ 있습니다. 이것 또한 재난입니다. 각자가 풀어야 할 문제가 아닙니다. 게다가, 이미 재난을 겪고 있는 무리에 인간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너무 뜨거워진 물속의 물살이나, 옴짝달싹할 수 없는 나무 같은 생명도 있습니다. 우리 눈에 보이거나, 보이지 않거나, 나의 역사와 ‘동시에’ 존재하는 모든 폐허를 우리는 어떻게 계속 외면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2020년 『살자편지』 『벗자편지』 책들을 기획할 때, 독자에게 이런 물음을 던지고 싶었습니다. “백번 양보해서, 똑똑한 소비자와 과학자가 정말로 기후위기를 막을 수 있다고 치자, 그럼 그 뒤엔? 빈곤과 양극화, 각종 차별과 혐오, 지나친 경쟁과 열등의식, 한계를 모르는 성장 사회의 삶은 기후위기만큼 무서운 일상 아닌가?” 우리 사회가 느린 재난을 만들어 온 방식들을 의심해 보면 어떨까요. 왜 누군가의 일상이 종말보다 끔찍해졌는지 돌아보면 어떨까요. 저는 자꾸 까먹어요. 그래서 동료 지구인들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우리 옆의 폐허와 저 너머의 폐허를, 그리고 인간 언어를 말할 수 없는 자들의 폐허를 못 본 척하지 않게 도와주세요. 글쓴이 : 문홍현경 독립출판사 니은기역 이끄미, <자기 씨앗대로 산다> 지은이 (이 글은 <봉성신문>에도 함께 싣습니다.) -
이해성 05-07 17:43
홍천 양수발전소 예정지를 다녀와서- "1년에 14.82분 가동. 오타가 아닙니다."
“야, 이 빌어먹을 개새끼들아~~~!” 저절로 쌍욕이 튀어나옵니다. 돈으로 자기 배 불리자고 수십년 동안 사람들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베풀어준 잣나무 수십만 그루를 베어내고, 산을 파헤치고, 골짜기를 수몰시키는 배은망덕한 개자식들, 인간의 탈을 쓴 짐승들, 지구 간강범, C발놈들. 이곳은 강원도 홍천 풍천리입니다. 핵발전소에서 생산되는 초과 전기의 쓰레기장으로 예정된 곳이죠. 핵전기쓰레기장을 고운말로는 ‘양수발전소’라고 합니다. 쓰레기처리장이라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만든 위선적인 이름입니다. 양수발전소는 얼마나 발전을 할까? (주)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이 공개하고 있는 자료에 따르면, 2025년 한해 전국의 양수발전소는 평균적으로 39일 가동, 수력발전소는 94일 가동되었습니다. 10% 조금 넘는 가동률입니다. (자료출처: https://www.khnp.co.kr/main/selectWebDisoffView.do?key=152&siteId=&seq=19602, 합계 발전량 ÷ 합계 발전용량 ÷ 24시간으로 계산) ‘가동’이라는 단어는 발전소가 발전목적으로 쓰이는 시간을 뜻합니다. 나머지 시간 동안, 양수발전소는 핵전력을 소모하기 위해 하부저수지에서 상부저수지로 물을 끊임없이 퍼올리고 있으며, 상부저수지에서는 끊임없이 물을 흘려보내고 있습니다. 발전기를 돌리지 않고 그냥 흘려보냅니다. 이것도 어떤 측면에서는 가동이라고 할 수 있고, 환경단체들의 ‘너무 낮은 가동률’ 주장도 오해를 일으킬 만한 지점이 있기 때문에, 좀 더 자세히 설명하겠습니다. 태양광이 24시간 발전할 수 없듯이, 양수발전소도 24시간 가동할 수는 없습니다. 물을 퍼올리는 동시에 발전하는 건 말이 안 되니까요. 남는 전기를 소모(저장)하기 위해 물을 퍼올리는 시간이 당연히 감안되어야 합니다. 한수원에 따르면, 양수발전소를 풀로 가동한다면 하루에 6시간(25%)이 한계라고 합니다. 전국의 양수발전소는 하루 평균 2시간 30분 정도 가동하고 있습니다. 가동 가능 시간의 절반이 채 안되니, 태생적 한계를 감안하여도 여전히 낮은 가동률입니다. 저기요, 오타 아닐까요? 홍천 풍천리에 건설예정인 양수발전소의 ‘가동률’은 얼마나 될까요? 기절초풍할 정도로 낮습니다. 한수원의 홍천 양수발전소 승인 신청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연간 148.2MWh의 전력을 생산할 수 있으며”(양수건설 타당성조사 용역(홍천지점), 2022, 한국수력원자력). 이 수치는 2025년 청평양수발전소 발전량의 0.059%, 예천양수발전소의 0.014%에 불과하고, 600MW용량임을 감안해 계산하면 연간 14.82분 발전에 불과합니다. 강원생명평화기도회 박성률 목사가 이설도로건설로 엉망이 된 숲속을 안내하며 말했습니다. “보통사람이 메가와트가 얼마나 되는 건지 감이 안 오잖아요. 그래서 AI에게 신청서 분석을 부탁했지요. 그런데 AI가 뭐라고 했는지 아세요? 전력 생산량이 오타가 아니냐고 묻더라고요. GWh를 MWh로 잘못 쓴 거 아니냐고. 그래서 한수원에 전화를 걸었고, 담당자가 오타가 아니라고 확인해 주었어요.” 연간 14.82분. 오타가 아닙니다. 홍천 양수발전소 건설에 드는 비용은 1조 7천억. 이 돈을 들여서 양수발전소를 짓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가동률’이라는 단어를 치워버리고 기능의 비율로 보면 모든 것이 명쾌해집니다. 국내 양수발전소는 전기 쓰레기장 기능이 9할, 발전 기능이 1할이며, 홍천 양수발전소는 쓰레기장 기능이 백프로에 가깝습니다. 양수발전소를 더 짓는 이유는 전기가 더 필요해서가 아닙니다. 밤에도 낮에도 항상 초과되는 전기를 내다버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계속해서 초과될 전기를 기존의 양수발전소로는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더 많은 쓰레기장이 필요해진다는 겁니다. 전기 쓰레기장 만든다고 풍천리 할머니들이 50년 전에 심어 가꾼 잣나무 11만 2천 그루를 베어내고 잣수확으로 살아가는 동네 사람들 생계를 박살냅니다. 쫄쫄쫄 흐르는 시냇물을 3년 동안 받아쓴다고 합니다. 그러면 풍천리에는 개천에 물도 없겠네요? 100대 명품숲 유아숲체험장도 물에 잠깁니다. 욕이 나옵니다. "썩을 놈의 개새끼들. 나쁜 새끼들. 한수원 니가 뭔데? 어? 이래도 돼는 거야? 이러고도 니들이 멀쩡할 줄 알아? 천벌 받을 놈들." 나무들은 착해서 욕을 할 줄 모릅니다. 그래서 사람인 내가 대신 욕을 해줍니다. 사람이 말을 할줄 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어요? 말없는 나무들 대신 욕이라도 시원하게 한바가지 해달라고 목소리가 있는 것 아닌지. 풍천 주민들은 젊은 시절 손수 심어 가꾼 잣나무숲을 지키기 위해 7년 동안이나 싸웠습니다. 수몰되는 지역에 들어와 펜션 사업을 하던 이들에게는 보상절차가 진행되었고, 이설도로를 만드는 작업으로 나무들이 베어지고, 산이 파헤쳐졌습니다. 재선충에 감염된 소나무들을 실어와 불법적으로 방치하는 쓰레기장이 됐습니다. 댐 예정지 바깥에 살면서 평생을 잣숲에 기대어 살아온 주민들은 어떠한 보상도 받지 않고 투쟁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분들이 이만큼 싸워온 덕분에 이만큼 숲이 지켜졌지만,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요? 자본의 폭력은 무자비합니다. 사치품과 쓰레기 사이에서 쓰레기장에 버려야 할 정도로 많은 전기는 왜 생산하는 걸까요? 조절이 어려운 ‘안정적’ 전력공급원인 원전에 모든 탓을 돌릴 수도 있지만, 태양력도 통제 불가능한 초과 전기의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원전을 줄이지 않은 채 태양력만 늘어나고 있으니까요. 태양광과 풍력이 각광을 받자, 태초에 핵전기 쓰레기장으로 지어진 양수발전소는 신재생에너지의 배터리 역할로 홍보되었습니다. 그래도 태양광이 늘어나면 원전을 폐쇄하려나 했더니 웬걸, 신규 원전을 늘이겠다고 합니다. 양수발전소는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자연 방전되는 서랍 속 비상 배터리입니다. 부피가 어마어마한 이 배터리로 인해, 상당한 면적의 동식물 서식지와 인간 거주지가 사라지게 됩니다. 피크타임에도 항상 전기가 남아도는 판국에, 더 많은 비상 배터리가 정말로 필요한지 의문입니다. 집집마다 서랍에 비상 배터리 두세 개 갖추고 있는데, “예비 배터리는 생활에 필수”라며 나라에서 또 배터리를 선물해주겠다고 합니다. 기쁠까요? 집집마다 찬장에 안 쓰는 텀블러 여러 개 있습니다. 페트병 내다 버리는 건 일입니다. 넘치는 물건은 기능이 무엇이건, 새것이건 낡았건 관계없이 쓰레기입니다. 결국 쓰레기가 되는 물건을 자꾸 만들고 강매하는 이유는 뻔합니다. 누군가가 돈을 버는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발전소와 전력망과 배터리는 국가 예산을 끌어다 쓸 그럴싸한 명분이 됩니다. “전기는 국민 생활에 필수”라고 하지요. 지나친 전기 사용으로 공급이 끊길 수 있는 전력수요 피크 어쩌고 하며 겁을 줍니다. 나라에 필수적으로 가동되어야 하는 시설들은 존재합니다. 그런데 이 시설들은 필수이기 때문에 전기가 우선적으로 공급되며, 비상용 발전시설을 갖추고 있습니다. 소위 전력수요 피크를 세계종말만큼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옛날에 사람은 전기 없이도 살았고, 전기는 인간에게 사치품이지, 필수품이 아닙니다. 필수라고 홍보되는 많은 것들이, 사실 수요를 창출하기 위한 거짓말에 불과합니다. 전기 덕분에 감사하게도 사용할 수 있게 된 여러 사치품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치품들로 세상을 채우기 위해 모든 생명의 생존에 필수품인 숲을 없애도 될까요? 과유불급이라 하였습니다. 어쩌다 정전이 되어도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집집마다, 마을마다 대비하고, 어쩌다 모자랄 수도 있는 적당한 양의 전기를 생산하는 것이 365일 초과 전기를 생산하고 국토를 실리콘과 중금속의 쓰레기장으로 만드는 것보다 안전하고 현명한 길이 아닐까 합니다. 마지막 경고 한 세기 동안 화석연료는 탄소 배출로, 우라늄은 중성자 방출로 지구 온도를 높였습니다. 자동차와 냉장고와 에어컨이 생존필수품이 되고, 연소기관과 전자제품이 지구 온도를 더더욱 높이는 악순환이 영구적으로 정착되었죠. 전기가 충분하고 남는다는 결론이 나자마자, AI를 ‘미래먹거리’로 부각시키며 데이터센터의 전력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더 많은 원전과 송전선을 지어야 한다고 떠들어댑니다. 국가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고요. 중동에 전쟁이 일어나면, 핵으로라도 에너지를 확보해야 한다고 떠듭니다. 이 반이성의 미친 짓거리를 보면 저절로 외계인 음모론이 떠오릅니다. 아름답고 푸른 지구를 질투하는 외계인이 지구를 온통 실리콘과 중금속과 아스팔트와 방사능 쓰레기로 뒤덮고, 동식물과 인간을 멸망시키거나 노예로 만들기 위해 몇몇 인간의 뇌에 침투하여 영감과 정보와 미끼를 제공하고 있는 건 아닌지. AI는 경험의 멸종을 불러오고, 인간 개체들은 생각하는 능력과 기억력, 밝은 눈을 빠르게 상실하고 있습니다. 메가와트인지 기가와트인지 오타 확인도 AI가 담당할 판이죠. ‘모든 것의 외주화’가 이 시대의 좌우명입니다. 돈에 미친 이들의 거짓말에 속지 말고, 이성을 되찾아야 합니다. 숲은 태양의 에너지를 축적하고 저장하는 천연 배터리입니다. 인체 역시 전자기장을 발생시키는 발전소이며, 배터리이고, 모터입니다. 위대한 구루들은 인체를 둘러싼 전자기장을 활성화시키고 운용하는 법을 깨달으면, 음식을 먹지 않고도 살 수 있으며, 시간과 별들 사이를 오갈 수 있으며, 육체의 모습을 영원히 유지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모든 외주화된 것들, 모든 인공적인 것들은 본래 인간과 지구가 가지고 있는 능력이라고 타이가의 잣나무숲에 사는 아나스타시아는 말합니다. 모든 것의 외주화와 금권을 신봉하는 현대인들은 이런 종류의 지식을 미신이나 사이비로 치부하고 믿지 않으며, 신비주의는 히말라야 설표만큼이나 멸종위기입니다. 그러나 전기가 빛과 열을 발생시키고, 식물이 빛과 열을 흡수하여 저장하는 것은 현대의 ‘과학적’ 상식입니다. 온난화 현상으로 인류 생존이 위협받는 시대에, 우리가 먼저 지켜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일 년에 14.82분 가동되는 양수발전소일까요? 1800ha 잣나무숲일까요? 글쓴이 : 이해성 산청 책방 "지금부터 판타지" 이끄미, 지리산사람들 운영위원, 산청난개발대책위원 -
문홍현경 04-09 16:43
벚꽃은 우릴 서럽게 한다
벚꽃은 우릴 서럽게 한다 벚꽃은 올해도 아름답습니다. 한참 바라보았어요. 걸음을 멈추고 사진도 찍었어요. 개나리, 목련, 수선화, 산수유 다 한꺼번에 피었어요. 벌들은 혼란스럽겠지만, 풍경은 알록달록 별천지입니다. 저기 중동 땅에서는 전쟁 소식이 계속 밀려옵니다.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데도 나는 아무렇지 않게 아름다운 꽃들을 보고 있으니, 좀 민망합니다. 눈을 내리깔아요.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이에요. 아이 교복 빨고, 먼지 쓸고, 설거지하고, 냉장고 정리하고, 겨울 난 시금치 다듬고, 밥하고, 친정엄마랑 통화하고, 때 되면 돈도 벌고, 뭐 이러다 보면, 전쟁이니 기후위기니 머릿속에서 사라져요. 그러다 그렇게 일상을 아무렇지 않게 보내다가, 문득, 아주 잠깐, 생각이 납니다. 폭탄, 펑, 와르르. 그러면 또 잠시 멍해집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잠깐이에요. 나는 또 아무렇지 않게 일을 해요. 낮에 찍어 놓은 아름다운 꽃 사진을 천천히 넘겨 봐요. 세상은 아수라장인데 말이에요. 백석 시인의 시 수라가 떠오릅니다. 거미 새끼 하나 방바닥에 나린 것을 나는 아모 생각 없이 문밖으로 쓸어 버린다 / 차디찬 밤이다 어니젠가 새끼 거미 쓸려 나간 곳에 큰 거미가 왔다 / 나는 가슴이 짜릿한다 / 나는 또 큰 거미를 쓸어 문밖으로 버리며 / 찬 밖이라도 새끼 있는 데로 가라고 하며 서러워한다 이렇게 해서 아린 가슴이 싹기도 전이다 / 어데서 좁쌀 만한 알에서 가제 깨인 듯한 발이 채 서지도 못한 무척 적은 새끼 거미가 이번엔 큰 거미 없어진 곳으로 와서 아물거린다 / 나는 가슴이 메이는 듯하다 / 내 손에 오르기라도 하라고 나는 손을 내어 미나 분명히 울고불고할 이 작은 것은 나를 무서우이 달아나 버리며 나를 서럽게 한다 / 나는 이 작은 것을 고이 보드라운 종이에 받어 또 문밖으로 버리며 / 이것의 엄마와 누나나 형이 가까이 이것의 걱정을 하며 있다가 쉬이 만나기나 했으면 좋으련만 하고 슬퍼한다 -백석, 「수라(修羅)」 당장 전쟁을 막을 수 없을지라도 시 속의 화자는 추운 밤에 거미를 세 마리나 문밖으로 내보내요. 처음엔 아무 생각 없이 한 마리를 내보냈는데, 그다음으로 어미처럼 보이는 큰 거미가 나타났지 뭐예요. 자기가 아까 쓸어 내버린 거미의 어미인가 싶어 문밖으로 또 내보내요. 아까 그 새끼와 만나길 바라면서 말이죠. 죄책감을 느낀 것 같아요. 그런데 아뿔싸, 이번엔 아주 여린 새끼 거미가 나타났어요. 화자는 가슴이 메요. 밖이 춥지만, 그래도 가족 있는 곳이 좋겠다고 생각해 문밖으로 내보내려는데, 이 녀석이 자꾸 달아나요. 화자는 서러워해요. 결국 그 작고 여린 녀석을 종이에 받아 문밖으로 내버려요. 화자는 적극적으로 거미 가족을 따뜻한 방에서 살게 하지는 않았지만, 자기가 차디찬 밖으로 내버린 거미들을 생각하며 슬퍼해요. 우리가 적극적으로 전쟁을 멈추게 할 수는 없을지라도, 화자와 같은 심정으로 ‘가슴이 짜릿하고, 서럽고, 가슴이 메고, 슬퍼’하는 마음으로 전쟁이 멈추기를 바랄 수는 있을 것 같아요. 벚꽃을 보다가도, 돈을 벌다가도, 공부하다가도, 집안일을 하다가도, 잠시라도 멈춰서 ‘제발 전쟁이 멈추게 해 주세요.’ 하고 바랄 수 있어요. 그런 마음은 ‘제발, 지구 생명들이 더 사라지지 않게 해 주세요.’ 하고 비는 마음과 같을 거예요. 기후위기를 걱정하는 마음은 전쟁이 멈추길 바라는 마음과 연결될 테니까요.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는 살육과 착취가 사라지길 바라는 마음이겠지요. 우리는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보내고 있지만, 그럼에도, 잊지는 않으면 좋겠습니다. 전쟁이 멈추어야 한다는 마음,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마음, 죄 없는 생명이 죽어 나가는 이 지구 가열이 멈추길 바라는 마음, 이런 마음들을 꼭 붙들고 살면 좋겠습니다. 이 마음들이 모여 결국 전쟁을 막고, 독재자를 막고, 위법한 비상계엄을 막고, 일상의 폭력을 막을 수 있지 않겠어요? 적어도, 폭력배 무리와 한편이 되지 않겠다는, 그런 짓거리에 동조하지 않겠다는, 자기 선언은 할 수 있겠지요. 나는 나를 속이고, 그저 안도하는 걸까 그러나 때로는 이런 순간순간의 알아차림이, 고작 그것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고 헛웃음이 날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면 어느 소설 속 인물들, 예를 들면, 『몫』에 나오는 희영 같은 인물이 나와 내게 쏘아붙일 것만 같습니다. 나는 그런 사람이 되기 싫었어. 읽고 쓰는 것만으로 나는 어느 정도 내 몫을 했다, 하고 부채감 털어 버리고 사는 사람들 있잖아. 부정의를 비판하는 것만으로 자신이 정의롭다는 느낌을 얻고 영영 자신이 옳다는 생각만으로 사는 사람들. -최은영, 『몫』 나도 그런 사람인지 생각해 봅니다. 그저 읽고 쓰는 것만으로, 그저 순간순간 전쟁이 멈추길 바라는 기도를 올리는 것만으로, 그저 부정의를 비판하는 이들의 글에 좋아요를 누르는 것만으로, 마치 내가 내 몫을 다한 것처럼 안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렇게 휘청거리다가, 또 마음 한자리에서는 이런 생각이 올라옵니다. 시인 윤동주가 적극적으로 항일 투쟁에 앞장서지 않았더라도, 일제강점기 민족의 비극과 한을 제 몸에 담아 고뇌하고, 제 역할을 의심해 부끄러워하고 우리말 시를 써 온 그의 마음을 소극적이라고, 자기만족일 뿐이라고 깎아내릴 수 있겠는가 하는 물음말입니다. 날마다 하는 반성과 깨어 있음이야말로 나를, 그리고 서로를 붙들 힘이 되지 않는가, 또, 스스로 변질되지 않는 길이자, ‘자신이 옳다는 생각만으로 사는 사람’이 되지 않게 나를 닦을 수 있지 않겠는가…. 뭐, 이렇게 생각하면서 다시 종말을 늦출 이야기들에 귀를 기울이곤 합니다. 서러움과 부끄러움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다시 벚꽃을 봅니다. 여린 것에 몹쓸 짓을 한 것만 같아 느끼는 죄책감이나 고통받는 이들을 외면하여 드는 미안함과 부끄러움은 우리가 지금 이 아수라장 같은 세상에서 끝끝내 버리지 말아야 할 마음 조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런 마음을 잊지 않게 하는 것은 시 한 구절이기도 하고, 떨어지는 벚꽃잎 하나이기도 하고, 나를 사랑해 주는 한 사람이기도 하고, 학교에서 만나는 따뜻한 선생님의 손길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백석의 시 수라가 일제강점기 가족 공동체의 해체를 표현했다느니 어쩐다느니 하는 시 교육을 하고, 시험 문제로 내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국어 선생님들의 마음은 또 얼마나 서러울까요. 벚꽃이 나리는 계절에도 아름다움을 느낄 새 없이 시험 공부를 해야 하는 아이들의 마음은 어떨까요. 전쟁으로 사람이 죽는 일보다, 당장 내 주식이 떨어지는 것에 분노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어떻게 달랠 수 있을까요. 전쟁의 끔찍함과 아픔은 대체 언제 어떻게 전할 수 있을까요.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미국에도 깨어 있는 시민이 있어서, 트럼프의 전쟁을 비판하며 “노 킹”을 외치고, 전쟁에 참전하지 않겠다며 양심적 병역 거부를 신청하는 이들이 늘었다고 합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 권리 옹호를 위한 미국 시민단체인 ‘양심과 전쟁 센터’의 소장 마이크 프라이스너는 한 일간지 인터뷰에서 최근 양심적 병역 거부 문의가 무척 늘었는데, 전쟁에서 자신이 죽을까 봐 두렵다고 말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고, 모두 정당성이 없는 전쟁에서 ‘누군가를 죽이게 될까 봐’ 두려워했다고 말했습니다. 내가 누군가를 죽이게 될까 봐 드는 두려움, 그 두려운 마음이 모여 점점 커지면 좋겠습니다. 전쟁을 막는 마음은 큰 결단과 엄청난 선동에 의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날마다 느끼는 아주 작은 서러움과 서글픔과 부끄러움, 아픔, 슬픔, 두려움 같은 마음들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런 ‘서러운’ 마음을 잊지 않도록, 나 혼자만 잘 먹고 잘살면 된다는 생각에 빠지지 않도록, 나만 아니면 된다는 마음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그렇게 서로서로 붙잡을 수 있도록, 시 한 구절, 벚꽃 한 이파리, 사랑하는 이의 얼굴, 따뜻한 손길을 일상 사이사이에서 잊지 않아야겠습니다. 그리고, 생각해 봅니다. 선거철에 더러운 돈을 주고받는 사람들이 스스로 반성하지 못하는 세상에서는 전쟁이 멈추기 어렵다는 것을요. 전쟁은 마치 트럼프 같은 사람만 일으키는 것처럼 생각하지 않아야겠습니다. 내가 나날이 하는 선택들이 전쟁이 될 수 있음을, 부끄러움을 모르고 양심을 파는 일이 곧 전쟁의 씨앗임을 잊지 않아야겠습니다. 나치 군인들은 매일 1,000구가 넘는 유대인 시체를 불태우고, 집에 오면 착한 남편이자 아빠로서 가족에게 사랑이 담긴 편지를 썼다고 하지요. 아름다운 봄 사이사이 느끼는 서러움과 부끄러움이 우릴 구원하길 빌어 봅니다. 글쓴이 : 문홍현경 <자기 씨앗대로 산다> 지은이 -
니은기역 03-15 15:07
기후위기를 생각하며 책을 만들 수 있을까
기후위기를 생각하며 책을 만들 수 있을까『새들은 우릴 기다려 주지 않아서』 편집자가 전하는 제작 이야기 한 해가 끝나기 하루 전, 책이 나왔습니다. 『새들은 우릴 기다려 주지 않아서』 는 오랜 시간 준비해 마침내 나온 책입니다. 구례 문척면에 사는 정환이 쓴 책이고, 구례에서 ‘포도시’ 책을 내는 니은기역 출판사가 만든 책입니다. 책을 펴낸 사람으로서, 구례분들께서 자부심을 느껴도 좋을 만큼 잘 만든 책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습니다. 환경 보호 같은 일에 열심히 매달리던 사람은 아니었는데, 어쩌다, 살다 보니, 저절로 스며들 듯, 기후위기를 걱정하게 되었어요. 자연스레, 편집자로서 책을 만들 때도 될 수 있으면 환경에 주는 부담을 줄이고 싶더라고요. 얼마나 환경에 도움이 될진 모르지만, 책이 사라지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한 사람으로서, 책을 안 만들 수 없다면, 덜 해롭게 만들도록 ‘노오력’은 하자고 생각했어요. 콩기름 잉크, 너, 뭐 돼? 니은기역은 2019년에 『살자편지』를 펴낼 때부터 콩기름 잉크를 쓰기 시작했어요. 휘발성 유기화합물(VOC)이 전혀 없는 ‘무용제 잉크’가 가장 친환경적 잉크이긴 하나, 국내에서 선택하기가 어려워서, 그다음으로 덜 해로울 (거라고 믿는) 콩기름 잉크라도 쓰려고 했지요. 이번 책에도 콩기름 잉크를 썼습니다. 석유 용제 기반 잉크 대신 콩기름 잉크를 쓰면 인쇄, 건조 및 처리 과정에서 생기는 VOC와 스모그 현상 같은 각종 공해를 줄일 수 있다고 해요. 또, 책을 읽는 분들과 책을 만드는 작업자분들의 건강에도 좋고요. 또, 콩기름 잉크를 쓴 인쇄물은 재생 종이를 만들 때 종이에 묻은 잉크를 지워 내는 탈묵 과정이 기존 잉크보다 훨씬 쉽다고 평가받아요. 그런데 이 콩기름 잉크가 좀 더 비싸요. 또 취급하는 인쇄소도 적어요. 그러다 보니, 무용제 잉크만큼은 아니지만 콩기름 잉크도 쓰기가 쉽지 않아요. 콩기름 잉크로 인쇄할 수 있는 인쇄소도 제한되어 있고, 그마저도 책을 소량 찍을 땐 콩기름 잉크를 쓰기가 어려워서요. 인쇄소에 물어보니, 콩기름 잉크 찾는 분이 많지 않아서 콩기름 잉크 쓰는 기계를 따로 들이기가 어렵다고 하더라고요. 이런 상황이 5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바뀌지 않았어요. 이건, 소비자한테 ‘콩기름 잉크 쓰자’고 말할 일이기보다는, 출판문화협회나 관련 정책 기관에서 나서서 지원하고 정책을 만들어 가야 할 문제라고 생각해요. (말이 길어지니, 다음으로) 재생종이, FSC 인증 종이, 무표백 종이 (책이 왜 이렇게 비싸냐는 물음에 대한 변명을 곁들여) 『새들은 우릴 기다려 주지 않아서』는 산속에 살던 한 사람을 생태활동가로 만든, 갖가지 새와 숲 생명을 기록한 책이어서, 읽는 동안 그 생명 옆에 선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내용 구성 방식을 고려했을 뿐 아니라, 종이와 인쇄, 제본 방식도 지은이의 철학과 편집자의 의도가 담기도록 고려해 결정했습니다. 그런 까닭으로, 표지 종이와 내지 종이 모두 FSC® 인증을 받은 국내 재생종이를 썼는데, 표지는 100% 재생 펄프가, 내지는 30% 재생 펄프가 들어간 종이입니다. (참고로, FSC® 인증 종이란 산림 훼손을 막기 위해 엄격히 관리되는 숲에서 생산된 목재로 만들어진 종이를 말합니다.) 또, 양면이 ‘쫙’ 다 펼쳐지는 노출사철제본 방식을 선택해서 한 생명을 오래 바라보기 좋게 했는데요, 노출사철제본은 두꺼운 합지를 붙여야 하는 양장본보다 종이와 에너지와 풀을 덜 쓸 수 있습니다. 겉표지를 두르지 않은 덕에 책등에 보이는 매듭끈은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책의 핵심 가치를 보여 주는 장치이기도 합니다. 아쉽게도, 책을 만들 때 조금이나마 환경에 주는 부담을 줄이고 싶어서 선택할 수 있는 방식들은 대체로 ‘보통 만드는 방식’보다는 비쌉니다. (그래서 책값이 그 모양….) 농사로 따지면, 관행농과 유기농의 차이 정도라고 볼 수 있을까요? 물품으로 따지면, 대량 생산품과 수제 생산품의 차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글쎄요, 이런 말이 다른 출판인들을 불편하게 할까 봐서 조심스러워요. 그냥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책을 만들고, 다른 출판인들은 또 자기 나름으로 사회에 도움이 되는 선택을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좋은 책이야말로, 진짜 친환경 위에 말씀드린 것들 말고도 여백과 빈 종이 줄이기, 표지에 코팅하지 않기, 인쇄 규격 판형 우선하기, 잉크 적게 쓰기, 도서관 구매 북돋기 등등 여러 방식을 써 보고 있지만, 제가 항상 강조하는 건, ‘나무를 베어 만들어야 할 만큼 좋은 책인가?’ 하는 물음에 먼저 ‘그렇다’ 하고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에요. 아무리 친환경 방식을 썼다고 해도, 책 내용에서 소비와 경쟁을 부추기고, 혐오와 차별을 말한다면 그런 책은 안 만드는 게 가장 친환경적일 테니까요. 저도 늘 고민하며 책을 만들겠습니다. 또, 제가 하는 방식이 꼭 옳다는 생각도 갖지 않겠습니다. 더 나은 방식을 가르쳐 주시면 열린 마음으로 바꿔 나가고 싶어요.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에 인간만 살고 있는 건 아니라서, 급격하게 일어나는 기후변화에 빨리 적응하지 못한 채 사라지는 존재들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하루하루 내 선택이 사랑하는 존재들의 죽음을 조금이나마 늦출 수 있다는 것, 그 생각은 잊지 않고 걸어가겠습니다. 글쓴이 : 문현경 니은기역 출판사 이끄미 - 출판사 소개 니은기역 책 짓고, 농사짓고, 기후악당에겐 짖어요! 틀을 깨는 소리, 순서를 뒤엎는 몸짓을 기록합니다. 생명의 편에 선 이들의 목소리를 담고 있습니다. 기후위기를 걱정하는 아홉 농부가 생태순환의 삶을 담아 쓴 『살자편지』, 에코페미니스트 농부들이 자급하는 몸을 되찾자며 보낸 『벗자편지』, 반달가슴곰KM-53의 삶을 통해 야생동물과 한 터전에서 산다는 게 무엇인지 돌아보는 『오삼으로부터』, 지리산골프장 예정지 숲에 살던 동식물의 목소리를 담은 『집에서 쫓겨났어』, 지키고자 하는 이의 시선을 담은 사진 에세이 『새들은 우릴 기다려 주지 않아서』 등을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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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철 07-20 12:50
[뒤웅박 씻나락] "우리가 의료사협을 시작하게 된 이야기" 김명철
우리가 의료사협을 시작하게 된 이야기 김명철 (경남산청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사진: Unsplash의 Shane Rounce 무엇보다 내가 행복하게 살고 싶었습니다. 그러려면 제 주변 사람들도 같이 행복해야 한다고 생각했고요. 그래서 젊은 시절부터 이야기해 오던 공동체를 느슨하게라도 실현하고 싶었습니다. 만드는 게 힘이 들긴 하지만 어느 정도 형성이 되고 나면 (마치 합창처럼) 거기서 느껴지는 ‘같이하는’ 것에 대한 행복감을 맛보고 싶었던 거죠, 시작은 안솔기마을이라는 생태마을에서 했습니다. 같이 음악회도 하고 소풍도 가고 운동회도 하고.... 그러다 마을이 너무 작아 같이 하는 것에 불편해하는 분들을 봤고 그러면서 안 하고 싶은 자유가 굉장히 중요하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주변의 마을들과 합창제도 해 보고 같이 운동회도 하고 했는데 이것도 역시 쉽지는 않더군요. 그러면서 규모가 좀 커야 개인의 자유도 보장하고 좀 더 다양한 일을 할 수 있겠다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러다 12년 전 산청에 한방 엑스포가 열린다길래 군민들을 대상으로 건강 강좌를 매달 마지막 수요일에 (마수걸이)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하니 자발적으로 도와주는 분들이 있어서 운영위를 만들었고 그 운영위 중 한 분이 구례 콩장을 다녀와서는 우리도 플리 & 프리마켓을 하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저도 그게 너무 좋겠다 싶어 동의했고, 그 길로 바로 주변 사람들에게 연락해서 모임을 열고 그 해에 목화장터라는 마켓을 시작했습니다. 제 생각엔 이 마켓이 생기면 촌에서 흩어져 살고 있는 사람들이 한 번씩 모여 안부도 묻고 정보도 나누고, 재미난 공연으로 문화적 갈증을 해소하고 음악적 재능이 있는 분들에겐 그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장소 제공도 되고, 또 혼자 먹기에는 많고 시장에 내다 팔기에는 어중간한 분들의 판매처도 되고, 직접 만든 공예품이나 옷 같은 것을 팔 수도 있고, 버리기에는 아까운 물건들을 팔거나 나눔도 할 수 있을 것 같아 적극적으로 찬성을 했죠. 그리고 무엇보다 제가 기대를 했던 건 맥주나 막걸리를 같이 마시면서 소통을 하다가 집으로 갈 때는 장 본 것을 들고 가는 독일의 어느 장터를 우리도 했으면 하는 것이었죠. 그렇게 장터를 주변 사람들과 같이 열고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일들이 일어났고 재미도 있었습니다. 우리 온라인 커뮤니티(밴드) 회원이 많아지다 보니(현재 5,075명) 모임을 만드는 것이 쉬워져 합창단, 지속가능발전협의회 등 원하는 많은 일들을 할 수 있게 되었죠. 그리고 이 장터의 힘으로 만들어진 지속넷(지속가능발전네트웍)에서 주최한 100인 원탁회의에서 의료사협(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을 만들자는 제안을 했었고 많은 분의 도움으로 이 일도 진행이 되었죠. 사실 의료사협을 만들자고 했을 때 제 개인적으로는 사회적 약자를 돕고 느슨한 공동체를 형성하고 싶어서였는데 만들고 보니 정말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할 수 있는 일들이 많더군요. 시작할 때의 슬로건은 ‘함께 만드는 건강, 더불어 행복한 삶, 지속 가능한 공동체’였는데 한의원이 그런대로 안정적으로 운영되니 지역에서 일어나는 필요한 곳에 도움을 줄 수도 있게 되었고 성심원 내에 장애와 비장애, 남녀노소를 아우르는 공동체를 만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고(실제로 시작을 한 상태이긴 합니다) 제대로 된 요양원이나 호스피스 병동을 포함한 힐링센터를 만들 수도 있겠단 꿈을 꾸기도 하고요. 그리고 즐거운 일들은 같이 나누고 힘든 일은 같이 돕는 이런 일들을 어느 정도 실현 하고 있는 것 같아서 좋습니다. 실제로 목화장터에 도움을 주기도 하고 지속넷과도 같이 협력하며 도와 주기도 하고 지역의 ‘그늘과 언덕’이라는 곳과도 같이 힘을 모아 작년의 수해복구와 피해자들의 몸과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일도 했고요. 이런 일들을 의료사협이라는 곳의 조직력과 (미미하지만) 재정적인 여유로 같이 행복한 공동체를 만드는 데 역할을 하는 것 같아 좋습니다. 지금은 재택의료센터도 만들어 열심히 방문 진료를 하는 중이고 가정의학과도 열어서 한방적으로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좋은 의사 선생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국가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아서 통합돌봄을 실천 중이기도 하고요. 이렇게 어쩌면 정신없을 정도로 짧은 시간에 많은 일들을 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주변 사람들이 좋은 강좌나 지역 소모임을 통해 아프기 전에 건강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또 혹시 아프면 믿을 수 있는 의료진과 주변의 도움으로 나을 수 있도록 하며, 설령 잘 낫지 않아 사망하게 되더라도 주변의 배웅과 도움을 받으며 존엄하고 평안하게 갈 수 있는 곳을 만들고 싶습니다. 물론 이런 일들이 다 실행이 안 될 수도 있겠지만 ‘가다가 중지하면 간만큼 이익이다.’란 생각으로 ‘오늘도 어떻게 하면 같이 행복해질 수 있을까?’란 생각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글쓴이 : 김명철 _경남산청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경남산청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홈페이지 https://gscmedc.org 사무국 055-973-0407 경남 산청군 산청읍 산청대로 1381번길 17 *산청 주민이 아니어도 조합원으로 가입하실 수 있습니다. 사무국으로 문의해주세요. [뒤웅박 씻나락 칼럼] 지리산 자락 삶이 우리 사회의 대안적 삶의 모습이 되길 꿈꾸는 <지리산人>의 바람을 담아, 지리산 곳곳에 계신 씨앗 같은 이들의 삶과 생각을 싣고자 합니다. 칼럼 글쓴이의 일부 주장이 <지리산人>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누리 07-06 10:36
[뒤웅박 씻나락] "히가시카와에서 상상하는 n개의 산내" 누리
히가시카와에서 상상하는 n개의 산내 누리 (지리산이음, 산내청년네트워크틈새 활동가) 반듯한 도로와 평야가 펼쳐진 히가시카와의 풍경. 네모반듯한 ‘칼각’으로 푸르고 광활하게 펼쳐진 논밭 사이를 국도가 가로지른다. 자연스럽게 시선이 이어지는 평원 너머에는 하얀 물감을 군데군데 칠해 놓은 듯이 머리가 희끗한 설산이 자리 잡고 있다. 지붕이 비스듬한, 서로 닮은 디자인의 집들이 길가에 점점이 서 있어서, 시력 검사 기계 속 언덕 위의 빨간 집이 떠오른다. 6월의 홋카이도, 일본 1호라는 다이세쓰 국립공원은 아직 눈에 덮여 있었다. 6월 첫 주를 일본 최북단 북해도의 시골마을 히가시카와정에서 보냈다. 일본의 기초잔치단체인 시, 정, 촌 중 정은 한국으로 치면 ‘읍’ 정도에 해당한다. 요즘은, 평소와 다른 풍경 속에서 쉬엄쉬엄 일하라고, 여행 대신 ‘워케이션’을 오라며 현대 도시인들에게 말을 거는 지자체들이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각지에 많다. 우리는 바다 건너 히가시카와에서 워케이션을 보냈다. 이번 여정에는 제주, 태백, 거창 등 전국 곳곳, 각자의 지역에서 작은 변화를 만들어 가고 있는 사람들 13명이 함께했다. 사람들의 말소리보다 새들의 지저귐이 훨씬 크게 들려오는, 한적한 히가시카와에서 13인의 한국인들은 서로 약속하지 않았는데도 마주쳤다. 미슐랭의 인정을 받았다는 작은 소바집에서, 행정에서 운영하는 공공도서관이자 복합 교류 공간인 ‘센토퓨어’의 서가에서, 동네에서 가장 큰 마트의 조리식품 코너 앞에서. 일행 중 누군가가 자전거를 타고 몇 번이나 다녀왔다는, 걸어가기에는 제법 먼 거리의 주먹밥집에 옹기종기 찾아가 아침 찬을 쓸어오기도 했다. 여정이 시작되기 전에 이미 먼저 다녀간 사람들의 평을 듣고 즐겨찾기 해 둔 구글 지도가 있었는데, 낯선 동네에서 동행들의 추천 멘트는 하나같이 강력했다. 한 사람이 대화 중에 ‘여기 다녀왔는데 좋더라’ 하면 사람들은 귀를 열고 열심히 들었다. 그게 재밌어서 '도장 깨기'하는 것처럼 여기저기 쏘다녔다. 내가 사는 남원시 산내면은 히가시카와에 비하면 (적어도 구글 지도에서는) 불모지에 가깝다. 일본에서 유일하게 25년 연속으로 인구가 늘어났다는 농촌 마을, 히가시카와의 성공 비결이 궁금한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구해 읽는다는 『히가시카와 스타일』 처럼 특별하고 고유한 ‘산내 스타일’ 따위를 정의한 책도 없다. “왜 여기 살고 계세요?”라는 말을 지금도 가끔 듣는다. 다른 곳으로 나가고 싶지는 않냐는 일말의 걱정 섞인 질문도 동네 어른들에게, 바깥에서 온 사람들에게 골고루 종종 듣는다. 나름대로 고민은 해 봤지만, 딱히 상대를 이해시킬 만한 뾰족한 대답도 없어서 얼버무리고 만다. 다만 몇 해 전 동네 한의원이 문을 닫고, 어린이집이 휴업을 하게 되면서 새로이 갖게 된 물음표는 이런 것이다. 여기가 없어지더라도 계속 산내에 살고 싶을까? 예를 들면, 이사 온 지 얼마 안 된 사람들이 여유 시간을 보내고 마음 맞는 커뮤니티를 찾아가는, 내 10대 시절이 담긴 품안작은도서관이 없어진 산내는 어떨까? 산내초등학교에는 4월이면 함께 추모식을 하고 노란 꽃을 심어 가꾸는 세월호 기억 꽃밭이 있는데, 꽃밭을 돌볼 어린이들이 없어진 산내는 어떨까? 지금 당장 나에게 필요 없는 옷과 물건들이 순환될 수 있도록 내어놓는 '득템'의 성지, 자원순환가게 나눔꽃이 없어진 산내는 또 어떨까? 눈인사를 건너뛰고 안부를 묻는, 서로의 맥락을 아는 이웃들이 떠난 산내라면? 그렇게 생각하면 내가 계속 산내에 살고 있는 이유, 없어지면 몹시 아쉬울 산내 고유의 아름다움이라는 건 있는 셈이다. 산내청년네트워크 틈새에서는 올해 그러한 연유로 다른 지역에 사는 또래 청년들에게 산내에 잠깐 살아보자는 초대장을 보내고 있다. 방식은 여러 가지다. '지금 도시에서 살고 있는 방식이 마음에 들어? 고민된다면 여기 와서 조금 다른 속도로 사는 마을을 경험해 보는 건 어때?'하고 말을 걸기도 하고, 산내에 사는 사람들의 삶 이야기를 거쳐서 마을을 소개하기도, 산내에서 더 예민하게 감각할 수 있는 사계절의 세계로 안내하기도 한다. 다가오는 7월의 프로그램을 위해 시도해 본 방식은 바로 함께 지도를 채워 나가는 작업이다. 산내를 가로질러 흐르는 람천과 임천의 물줄기를 따라, 지리산의 푸르른 산줄기를 따라 평면 지도 위를 짚어 나가다 보면 잊고 있던 장소 속 이야기들이 되살아난다. 산내 구석구석에 얽힌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 조각도 받았다. 내가 일하고 가꾸는 지리산문화공간 토닥은 누군가에게 카페 대신 소중한 '무대'로 의미화되었고, 물 흐르는 소리의 크기로 지금 계절이 비가 많은지, 가문지 가늠할 수 있는 해탈교는 누군가가 밤하늘 가득 총총한 별을 올려다보며 산내에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은 곳이었다. 이럴 때는 같은 산내에 살고 있는 것 같아도, 100명이 경험하는 100개의 산내가 다 각기 다를 것이라는 깨달음이 찾아와 아득해지기도 한다. 수학이든 무엇이든 정말 내가 잘 이해하고 있는지 판단하려면 다른 사람을 가르쳐 보라고 하는데, 우리는 스스로 무지를 깨닫고 열심히 공부하는 중이다. 불특정 다수의 손님에게 말을 걸어보기로 한 덕분에, 오히려 내가 산내를 많이 알게 되었다. 센토퓨어의 '너의 의자' 프로젝트 전시 코너. 주민과 여행자,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히가시카와의 복합 교류공간 '센토퓨어'의 정문으로 들어가면 이 지역이 자랑하는 '너의 의자' 프로젝트 컬렉션이 명당 자리를 차지하고 서 있다. 2006년부터 2026년까지, 히가시카와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본인의 이름과 생년월일이 새겨진 세상에 하나뿐인 수제 의자를 선물 받는다. 매년 그해만의 맞춤 디자인이 선정되고, 제작 또한 히가시카와에 위치한 목공방 중 하나에서 맡는다. 이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라는 아이들은 의자를 통해 소속감을 느낄 것이고, 학업이나 취업 등으로 다른 지역에 가게 되어도 마을에는 여전히 내 자리가 있다는 안정감을 느끼리라 어렵지 않게 짐작해 볼 수 있다. "태어나 줘서 고마워, 너의 자리는 여기에 있단다." 적어도 그런 의미를 담아 기획했다는 모양이다. '우리'라는 말에는 울타리 안의 요소들을 마법처럼 하나로 묶어 주는 힘이 있고, 동시에 그 바깥의 것들을 밀어내는 배타성도 숨어 있다. 그런 '너의 의자'의 의미가 확장된 순간이 있었다. 일본인들에게 큰 상흔으로 남은 3.11 동일본 대지진이다. 2만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죽거나 실종된 참사의 날에도 피해 지역인 도호쿠 지역에는 104명의 아이들이 태어났다. 800km 떨어진 북해도에서 보내온 '희망의 너의 의자' 104개에는 "다부지게 미래로."라고 적혀 있었다고 한다. 히가시카와 공민관 앞에 나란히 선 어린이용 자전거들. 히가시카와에서 보낸 시간 동안 먼 길을 떠나온 몸과 다르게 마음은 자꾸 고향으로 돌아가, 산내가 어떤 마을이기를 바라는지 상상하게 되었다. 숙소와 카페에 이 마을에서 만드는 가구와 잔, 소품들이 자연스레 비치되어 있었던 점, 거리낌없이 문턱을 넘고 자리 잡을 수 있는 장소가 있다는 점은 정말이지 마음에 들었고, 어딜 가든 외국에서 온 사람에게 편하고 친근하게 말 걸어 주는 점도 괜찮았다. 반면 마을버스를 타려면 전날 예약해야 하는 시스템은 잠시 다녀가는 입장에서는 높은 장벽으로 느껴졌고, 외식 메뉴를 고를 때에 채식 등 다양한 선택지가 없는 부분은 다소 아쉬웠다. 히가시카와에 함께 간 사람들은 바다를 건너가서도 참 자기다웠는데, 농사를 짓는 사람은 줄기가 아직 여린 새싹 작물을 어떻게 보호하며 키우는지 유심히 들여다보았고, 산을 타는 사람은 새벽같이 뒷산을 오르며 울창한 나무들과 새를 만나고 왔고, 일본 각지를 누비며 탐방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사람은 그곳에서도 미니 탐방 루트를 만들어서 동행들을 능숙하게 가이드했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고. 13명이 만난 13개의 히가시카와가 거기 있었다. 산내 마을 구석구석에도 방문자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시선이 더해지고, 경험이 쌓여 나갈 것이 기대된다. n명의 사람들이 만나는 n개의 산내. 지금 '우리'를 넘어 누구에게 손을 내밀고, 어떤 의자를 내어줄 수 있을까? 거창하지 않더라도 함께 궁리하고, 무턱대고 실천하고 싶다. 틈새에서 진행한 2주살이 캠프 참여자들의 그날 하루를 돌아보는 엽서들. -
김규빈 07-06 10:05
[푸른목소리] 오늘날 민주주의 안겨 준 헤아릴 수 없는 희생 기억해야
[푸른 목소리] 오늘날 민주주의 안겨 준 헤아릴 수 없는 희생 기억해야 안녕하세요? 산청 간디고 ‘역사사랑’입니다. 여러분은 6월 10일이 어떤 날인지 알고 계시는가요? 오늘은 많은 시민들이 민주주의를 위해 거리로 나섰던 6월 민주항쟁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먼저, 6월 민주항쟁이 일어나게 된 배경을 살펴보겠습니다. 1980년 5·18 민주화운동 이후에도 국민의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당시 전두환 정권 아래에서 국민은 대통령을 국민이 직접 선출하는 대통령 직선제를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1987년 4월 13일, 전두환 대통령은 개헌 논의를 중단하고 기존 헌법을 유지하겠다는 '4·13 호헌 조치'를 발표했습니다. 이에 국민의 불만은 더욱 커졌고 민주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전국으로 확산하였습니다. 그렇다면 6월 민주항쟁은 어떻게 전개되었을까요? 같은 해 1월, 서울대학교 학생 박종철이 경찰의 고문으로 사망한 사건이 알려졌습니다. 정부는 사건을 은폐하려 했지만, 진실이 밝혀지면서 국민의 분노는 더욱 커졌습니다. 이후 종교인, 노동자, 학생, 농민 등 다양한 계층이 민주화를 요구하며 시위와 집회를 이어 갔습니다. 그리고 6월 9일, 연세대학교 학생 이한열이 시위 도중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의식을 잃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 소식은 전국에 알려졌고 국민의 분노는 더욱 거세졌습니다. 결국 6월 10일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가 주도한 국민대회가 열리면서 6월 민주항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학생들뿐만 아니라 직장인, 종교인, 노동자, 시민 등 수많은 사람이 거리로 나왔고, 직장인들은 점심시간이나 퇴근 시간을 이용해 시위에 참여했습니다. 약 20일 동안 전국 곳곳에서 수많은 집회와 시위가 이어졌으며 국민은 민주주의를 위해 한목소리를 냈습니다. 이러한 국민의 노력은 결국 큰 변화를 만들어 냈습니다. 1987년 6월 29일 정부는 '6·29 민주화 선언'을 발표하였고, 대통령 직선제가 수용되었습니다. 이로써 국민은 직접 대통령을 선출할 수 있게 되었으며, 기본권 확대와 지방자치, 언론과 표현의 자유 보장 등 민주주의 발전의 중요한 계기가 마련되었습니다. 비록 이한열 열사는 7월 5일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희생과 수많은 시민의 노력은 대한민국 민주주의 발전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6월 민주항쟁은 민주주의가 당연하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의 참여, 용기를 통해 만들어지고 지켜진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습니다. 수많은 시민이 부당한 현실에 맞서 목소리를 냈기에 지금의 민주주의에 이르렀습니다. 최근 우리 사회는 12·3 비상계엄 사태를 겪으며 민주주의와 헌법의 가치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6월 항쟁에 투쟁하고 용기를 낸 시민들이 있었기에, 민주주의가 있었기에 세상은 바뀌고 있습니다. 12.3 불법 비상계엄과 내란을 막고 민주주의를 짓밟은 윤석열을 탄핵한 건 우리 민주주의의 성숙함을 보여 주었습니다. 우리는 이로써 부당한 일에 침묵하지 않는 용기, 서로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자세를 배웠습니다.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함께 행동하고, 여러 사회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연대합시다, 투쟁합시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민주주의를 당연하게 여기기보다, 그것이 많은 사람의 노력과 희생으로 이루어졌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상으로 6월 민주항쟁에 대한 간마디를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글쓴이 : 김규빈 _경남 산청 간디고등학교 2학년 안녕하세요. 저는 산청 간디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김규빈입니다. 저는 동아리 ‘역사사랑’의 부원으로서, 학교 식구들이 모두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식구총회에서 ‘간디인 한마디’, 줄여서 ‘간마디’라는 시간을 통해 6월 민주항쟁에 대해 제 생각을 더해 소개했습니다. 제가 속한 역사사랑 동아리는 5·18 민주화운동, 6월 민주항쟁 등 우리가 기억해야 할 역사적 사건들을 간마디를 통해 식구들에게 알리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4·19 혁명의 정신을 담은 4·19 마라톤을 기획하고 진행하며, 역사 기행을 통해 지역의 역사 현장을 직접 찾아가 배우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산청의 도천서원, 단성향교, 사직단 등을 방문했고, 학기 말에는 동아리 회지를 만들기도 합니다. 저는 올해 역사사랑에 신입 부원으로 들어왔습니다. 1학년 때 보경 쌤의 한국사 수업을 들으며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역사사랑 활동을 통해 그동안 잘 알지 못했던 역사적 사건들을 배우며 사회 문제를 더 깊이 이해하고 싶었습니다. 6월 민주항쟁은 많은 시민들이 민주주의를 위해 용기 있게 목소리를 낸 중요한 역사적 사건입니다. 우리는 그 과정에서 희생하고 헌신한 사람들을 기억해야 하며, 그들의 노력 덕분에 오늘날의 민주주의가 발전할 수 있었음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그래서 그 의미를 식구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 간마디에서 6월 민주항쟁을 소개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간마디가 식구들에게 6월 민주항쟁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고, 우리 사회와 역사에 더 많은 관심을 갖는 출발점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지리산人의 기획 칼럼 [푸른목소리]에는 지리산 둘레에 사는 청소년-어린이의 생태감수성이 담긴 글을 싣습니다. '이렇게 살아야 해'라고 말하는 사회에 '이런 삶도 괜찮잖아?'라든가 '난 이렇게 살고 싶어' 같은 생각거리를 주는 글, 자연의 생명들을 대신하여 그들의 목소리를 내는 글, 우리 마을의 아름다운 자연과 이를 지키는 사람들에 대한 글을 환영합니다. >> 지리산人 푸른목소리 기고 문의 : mhghg@naver.com -
윤주옥 06-23 12:36
[곰주옥 X 인간주옥] ⑤ 곰과 커피 사이, 내가 몰랐던 세계
구례곰마루쉼터(이하 곰쉼터)에 사육 농장에서 살던 곰들이 이주한 건 2025년 9월 말이다. 나는 곰들이 지리산에 살기 위한 목적이 아닌 이유로 구례에 오게 되었다는 점이 특별하게 느껴졌다. 이 곰들은 태어나서 지금까지 뜬장에 살았다고 하고, 영양 상태가 좋지 않고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눈이 보이지 않거나 귀가 들리지 않는 곰들도 있다고 했다. 나에게 곰은 원래도 관심이 가는 존재이지만, 이러한 상황을 들으니 더 마음이 쓰였다. ↑ 이가 없어서 모든 음식을 잘라서, 익혀서, 분쇄해야 먹을 수 있다는 ‘BM-22’ 방 앞 안내판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곰곰학교’(곰처럼 곰곰이 생각하는 학교, 2025년 10월 구례에서 운영)를 열었고, ‘반달곰을 사랑하는 1%’(이하 반달곰1%)를 구례뿐 아니라 하동까지 확대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다. 이 곰들의 일상을 궁금해하는 건 나만이 아니었다. 지난 1월, 구례 반달곰1% 가게 주인들과 곰쉼터를 방문했다. 곰들의 상황을 설명하던 최신영 수의사가 이런 말을 했다. “반달곰 1%에 카페들도 참여하나요? 그럼 커피박을 모아주실 수 있을까요? 여기 곰들에게 커피박은 좋은 풍부화 재료, 그러니까 사육농장에 있으면서 퇴화된 곰의 감각과 근육을 발달시키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거든요.” 곰들을 위해 할 일이 있다는 사실이 기분 좋았다. 반달곰 1% 가게 주인들도 ‘그거라면 할 수 있다’고 동참 의사를 밝혔다. 하기로 마음을 굳히자, 이왕이면 반달곰1% 가게뿐 아니라 관심 있는 카페에도 알리는 캠페인을 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캠페인 문구를 정하고, 그림과 디자인을 요청했다. 웹자보를 SNS에 올리고, 자주 가는 카페 주인들을 만나 취지를 설명하며 참여를 부탁했다. ↑ 캠페인 ‘곰에게 가는 커피향’ 웹자보 “일주일에 한 번씩 수거할게요. 커피박을 말려서 보관만 해주시면 됩니다.” 흔쾌히 해보겠다는 분도 있었지만, 커피박을 말리는 게 쉽지 않다고 주저하는 분도 있었다. 웹자보를 보고 연락한 분도 있었고, 카페를 운영하지 않지만 커피를 마신 후 나오는 커피박을 일반쓰레기로 버릴 때마다 마음이 안 좋았다며 함께 하겠다는 분도 있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모인 카페 10곳과 개인 1명이 ‘곰에게 가는 커피향’ 활동을 시작하였다. ↑ 곰쉼터에 전달된 마른 커피박 ‘곰에게 가는 커피향’ 활동은 100% 자원활동이다. 특히 매주 월요일마다 커피박을 수거해 곰쉼터에 전달하는 일에 나서준 이영숙 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한번 해볼게요’로 시작한 이영숙 님은 매우 성실하게 활동했고, 마치 곰이 된 것처럼 커피박의 상태를 점검했다. 이영숙 님은 커피박에 곰팡이가 생기는 것을 가장 경계했다. 커피박은 충분히 말린다고 해도 플라스틱 통이나 비닐에 담아두면 바닥에서 곰팡이가 피었다. 이런저런 고민 끝에 천으로 커피박 수거 가방을 만들기로 했다. ↑ 커피박 수거 가방 만들기 회의에서, 참여자 유현숙 님이 직접 만든 가방을 들어 보이며 설명하고 있다. 커피박 수거 가방을 만들기 위해 바느질할 분을 찾고, 가방 재료를 고민하고, 실크스크린 작업을 도와줄 분들을 섭외했다. 여러 사람의 정성과 수고 덕분에 재활용 천과 커피 자루로 ‘커피박 수거 가방’이 완성되었다. 6월 8일, 커피박 수거 가방을 들고 곰쉼터에 갔다. 그날 함께한 분들은 곰을 직접 본 것이 처음이라고 했다. 곰들이 얼마나 커피박 향기를 좋아하는지 커피박이 든 자루를 껴안고 뒹굴었으며, 방사장으로 나가지 않던 곰도 커피박 향기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미소를 지었다. 임옥주 수의사는 커피박 자루를 넣어주면 곰들이 냄새를 맡고 탐색하거나 껴안고 굴리는 행동이 늘어나는데, 이런 자극이 곰들의 감각과 근육을 깨우는 ‘풍부화 효과’라고 설명했다. ↑ 커피박 수거 가방 만들기 참여자들이 곰쉼터 답사를 마친 뒤 기념 촬영을 했다. 왼쪽부터 실크스크린 작업을 맡은 임산하 님, 커피 자루를 기부해 준 한지인 님, 유현숙 님과 함께 가방을 만든 이정훈 님, 필자, 곰쉼터에서 근무하는 임옥주 수의사. 곰쉼터 방문 후 커피 이야기가 나왔다. 25년째 커피와 인연을 맺고 있다는 한지인 님이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나폴레옹이 머물렀던 세인트헬레나 섬이 커피로 유명하다는 이야기, 윤리적 논쟁이 있지만 코끼리 배설 커피가 있다는 이야기까지 이어졌다. 흥미로운 이야기였지만, 나에게 더 크게 다가온 것은 따로 있었다. 커피가 콩과 식물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네? 커피가 콩과가 아니라고요? 그럼 왜 커피콩이라고 해요. 커피나무 열매가 체리와 같다고요? 브릭스가 12나 되니 단 것을 좋아하는 곰들도 좋아할 거라고요?” 내 생애에서 지금처럼 커피에 관심을 가진 적은 없었다. 나는 커피를 마시면 설사를 한다. 어떤 때는 커피 향만 맡아도 배가 아플 때가 있다. 평생 마셔본 커피는 세 모금 정도다. 그런 내가 커피박을 수거하고, 커피 향을 맡고, 커피 이야기를 흥미롭게 듣고 있다니 묘한 일이다. 나는 이제 커피를 마시지 않아도, 커피와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곰을 통해 커피를 다시 배우고 있다. 관심은 연결에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때는 아무 의미 없이 버려지던 커피박이 이제는 곰들의 감각을 깨우고 삶을 넓히는 도구가 된다. 내가 몰랐던 커피의 진실은 맛이나 향이 아니라, 이렇게 다른 생명과 이어지는 가능성이었는지도 모른다. 온통 오해뿐이던 커피에 대한 내 생각을 바로잡아준 곰주옥과 그 친구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이 작은 연결이 더 많은 생명과 사람에게 이어지기를 바란다. -
정지아 06-19 13:36
[뒤웅박 씻나락] "가식 없는 세계" 정지아
가식 없는 세계 정지아(소설가) 어린 시절에는 공부 잘한다고 소문깨나 났었다(중학교에 간 뒤로 줄곧 내리막길을 걷긴 했지만). 간혹 모르는 어른들이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아이, 니가 공부를 고로크롬 잘한담서이..., 말끝을 흐리고는 쯧쯧쯧 혀를 찼다. 어렸지만 이상하다는 건 알았다. 공부를 잘하는데 왜 혀를 찬단 말인가. 아버지가 빨갱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그 의미를 이해했다. 공부를 잘해봐야 빨갱이의 자식이라 소용도 없을 텐데 불쌍해서 어쩌냐는 한탄의 축약이라는 것을. 구례에 사는 한 빨갱이의 딸이라는 주홍글씨를 뗄 수 없을 것 같아 엄마를 졸라 서울로 떠났다. 서울서 사는 내내 나는 서울의 익명성이 참으로 좋았다. 토요일이면 하릴없이 연신내 사거리를 쏘다니기도 했다. 햇볕조차 들지 않는 단칸셋방에 있으면 나는 가난한 빨갱이의 딸이었다. 인파에 섞여든 순간, 나는 그 수많은 사람 중의 하나가 되는 듯했다. 그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그 익명성이 나를 숨 쉬게 했다. 고향에 돌아온 뒤, 우연히 옛날 작은고모 살던 집 앞을 지났다. 그곳만 시간을 피해간 듯 옛 모습 그대로였다. 팽나무 아래 평상에서 사오십 년 전 그때처럼 동네 아낙들이 모여 고구마 줄기의 껍질을 벗기고 있었다. 내가 알지 못하는 누군가의 험담을 하면서. 그 시절, 엄마가 바람나서 도망간 언니가 있었다. 친하지는 않았다. 엄마에게 버림받은 그 언니는 노상 고개를 푹 수그리고 다녔다. 언니 얼굴을 똑바로 본 기억이 없다. 어깨 축 늘어뜨린 언니 모습이 저만치 나타나면 고모나 혹은 누군가 쯧쯧 혀를 찼다. 빨갱이의 딸이었던 어린 나에게 그랬듯. “아이고, 샛서방이 암만 좋아도 글제 자석을 두고 발짝(발걸음의 구례 사투리)이 떼졌으까? 옘벵에 걸려도 땀도 못 빼고 뒤질 년!” 언니도 필시 그 말을 다 들었을 터다. 한 마디 한 마디 비수가 되어 심장을 찔렀겠지. 그래서 언니는 생각했겠지. 아무도 내 엄마가 바람나 도망간 사실을 모르는 곳으로 가고 싶다고. 그 시절의 나처럼. 그러나 공부에 목매다는 엄마가 없던 언니는, 아니 그냥 엄마도 없던 언니는, 나와 달리 도망가지 못했다. 언니는 말의 비수를 견디며 중학교까지 구례에서 졸업했다. 언니를 마지막으로 본 건 내가 전학 가기 직전, 언니의 초등학교 졸업식 날이었다. 아버지가 앞장서고 언니는 서너 발짝 뒤에서 늘 그랬듯 고개를 푹 숙인 채 뒤따르고 있었다. 언니 손에는 그 흔한 꽃다발 하나 들려있지 않았다. 아마 졸업장이 들었을 동그란 통을 가슴에 꼭 안은 채 언니는 아기새처럼 부들부들 떨며 걸었다. 나는 연탄난로가 지펴진 자전거포에서 고모가 삶아준 물고구마를 먹는 중이었다. 고모가 나지막이 언니를 불렀다. 아이, 아가, 라고. 고모는 코끝이 빨간 언니를 자전거포로 불러 고구마 하나를 쥐여주었다. “아이, 느그 어매는 왔드냐?” 고구마 껍질을 벗기다 말고 언니는 고개를 푹 수그렸다. 감청색 낡은 운동화 위로 후두둑 굵은 눈물이 쏟아졌다. 고모는 언니의 등을 따숩게 두드리며 말했다. “아매 워디 숨어서 니 얼굴이라고 보고 갔을 것이다. 하모. 지 자석 졸업날인디 워치케든 왔겄제.” 고모는 고구마 몇 개를 바구니에 담아 건넸다. “움시로 묵으먼 목 멩게 가서 동상들이랑 노나묵어라이.” 언니는 고개를 까닥하고는 바구니를 낀 채 멀어져갔다. 그 뒤에 대고 동네 아낙 누군가 푸짐한 욕설을 퍼부었다. “오기는 멋을 와. 왔으먼 새끼헌티 돈이라도 멫 푼 쥐여주고 갔겄제. 자석도 잊어불고 아조 샛서방 아랫도리에 홈빡 빠졌는갑구마. 호랭이가 칵 씹어물어갈 년!” 목소리를 줄이는 정도의 배려도 하지 않았으니 그 욕설 또한 언니는 고스란히 맞았을 것이다. 중학교를 졸업한 뒤 언니는 부산 어느 공장에 취직했다. 아무도 바람난 엄마에게 버림받은 딸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부산에서 언니는 행복해졌을까? 서울에서 중학교에 다니던 시절, 나는 친구들의 입에서 너희 아버지 뭐하냐는 말이 나올까 봐 가슴을 졸였다. 화제가 아버지에 다다르면 눈치껏 자리를 피했다. 그러나 한번은 기어코 그 질문과 마주치고 말았다. 너희 아버지는 뭐하시냐는 평범한 질문 앞에서 나는 얼어붙었다. 내 아버지는 감옥에 있다는 말을 차마 할 수 없었다. 어려서부터 눈칫밥 먹어 눈치가 백 단이었던 나는 빛의 속도로 머리를 굴렸다. 아니, 머리를 굴리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 다시는 같은 질문을 받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죽었다고 하면 그만이었다. 철없는 아이들이라도 죽은 아버지를 다시 소환하지는 않을 테니까. 열다섯, 살아있는 아버지를 죽었다고 말할 뻔뻔함까지는 장착하지 못한 나이였다. 그래서 말했다. “안 계셔.” 사실이었다. 집에 없으니까. 감옥에 있으니까. 친구들은 그 말을 아버지가 죽었다는 의미로 받아들였고, 나는 적어도 거짓말은 하지 않았으며, 다시는 그 난감한 질문을 받지 않아도 되었다. 그렇다고 나아진 건 없었다. 나아지기는커녕 나는 나날이 음울해졌다. 언니는 어땠을까? 누군가 너희 엄마는 뭐해라고 묻지 않았을까? 그때 언니는 뭐라고 대답했을까? 혹여 가슴에 쌓인 한이 넘치고 넘쳐 언니가 원했던 엄마, 평범한 주부랄지, 학교 선생님이라고 대답하지는 않았을까? 그랬다면 언니는 여전히 행복하지 않을 것만 같다. 구례 같은 작은 동네에서는 누구도 자신의 존재를 숨길 수 없다. 내가 빨갱이의 딸이라는 것을, 언니 엄마가 바람나 집 나갔다는 것을 누구나 다 안다. 다 아는 일이니 굳이 숨기지도 않는다. 호기심에서 혹은 염려에서 내뱉은 말이 비수가 되어 나나 언니의 가슴을 찔렀지만, 억울하게도 그게 나나 언니의 삶에 주어진 조건이다. 남들이 모른다고 해서 우리의 불행한 조건이 달라지지 않는다. 예쁘든 못생겼든, 똑똑하든 멍청하든, 부잣집 자식이든 가난한 집 자식이든 우리가 선택할 수 없는 조건은 받아들이고 거기서부터 출발하는 것 외에는 달리 피해갈 방법이 없다. 나이 들어 고향에 돌아와 보니 알겠다. 시골 사람들이 남의 허물을 생각 없이 들쑤시기만 한 것은 아니다. 아무리 아픈 말도 듣다 보면 둔해진다. 어쩌면 그들은 상처 위에 소금을 뿌려야 빨리 아문다는 것을 알았을지도 모른다. 그들이 소금만 뿌린 것도 아니다. 부침개를 부친 이웃의 누군가는 엄마 없는 언니가 안쓰러워 몇 장 가져다주었고, 김치를 담근 누군가는 김치를 손 크게 가져다주기도 했다. 물론 이번에도 소금을 뿌리면서. 그래도 언니는 그런 사람들과 살며 아프게 배우지 않았을까? 엄마에게 버림받아도 누군가의 사소한 도움으로 그럭저럭 살게 된다는 것을. 구례의 욕은 그저 누군가를 내치기 위한 험담이 아니다. 너의 존재를, 고달프기도 가슴 아프기도 억울하기도 한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어찌 보면 철학적인 가르침이다. 글쓴이 : 정지아 _소설가. 『아버지의 해방일지』, 『빨치산의 딸』, 『행복』, 『봄빛』, 『숲의 대화』, 『자본주의의 적』, 『하늘을 쫓는 아이: 한국 최초의 여성 비행사, 권기옥』, 『노구치 이야기』, 『임종국, 친일의 역사는 기억되어야 한다』 등을 썼으며, 만해 문학상, 이효석 문학상, 김유정 문학상, 오영수 문학상, 한무숙 문학상 등을 수상하였습니다. [뒤웅박 씻나락 칼럼] 지리산 자락 삶이 우리 사회의 대안적 삶의 모습이 되길 꿈꾸는 <지리산人>의 바람을 담아, 지리산 곳곳에 계신 씨앗 같은 이들의 삶과 생각을 싣고자 합니다. 칼럼 글쓴이의 일부 주장이 <지리산人>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전지율 06-17 15:45
[푸른목소리] 산청간디고 전지율 "환경 위한다면, 급식부터 남기지 말자"
[푸른목소리] 환경 위한다면, 급식부터 남기지 말자 안녕하세요 식당문화부입니다. 저희가 간마디에 올라온 이유는 요즘 우리 학교에 생긴 안 좋은 식당문화에 대해, 또 이번 주가 환경주간인 만큼 우리가 식당에서 할 수 있는 환경을 위한 일들을 이야기하고 싶어 이렇게 간마디를 올라오게 되었습니다. 가장 중요하게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요즘 식구들이 밥을 잘 안 먹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선생님들과 식문부가 왜 자꾸 밥을 먹으라고 하는지 아시나요? 식문부가 한 사람, 한 사람의 식수조사에 왜 이렇게까지 매달리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으신가요? 자신을 위해 만들어진 밥을 먹지 않으면 그만큼의 음식이 남고, 식당쌤들께 예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만큼은 거기서 멈추지 말고, 더 깊이 생각해 봅시다. 4월에 식문부에서 남은 식판의 개수를 세어 봤습니다. 남은 식판 14개. 어느 날은 17개가 남은 날도 있습니다. 14인분, 17인분의 음식이 먹지도 않고 버려졌습니다. 그리고 아침에는 오지 않은 사람 분의 식판을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치우게 됩니다. 식당쌤들은 항상 밥을 먹는 사람만큼의 식판을 딱 맞춰서 꺼내 두신다고 하셨는데 말이죠. 우리 학교는 환경친화적인 것들을 지향하고 다른 학교에는 없는 환경주간도 열며 환경감수성이 높은 학교라고 생각합니다. 근데 그런 학교에서 음식이 매일 이렇게나 많이 버려지고 있습니다. 그럼 도대체 우리가 한 노력들은 무슨 소용인 걸까요? 왜 모두가 환경을 지키자는 것에 동의를 하면서 한 반분 이상의 음식이 하루 만에 버려지고 있는 걸까요. 이번 환경주간 동안 많이 고민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환경친화적인 삶을 살아 보고 싶다면, 자신도 환경을 위한 일을 해 보고 싶은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어렵게 생각하지 마시고 일단 밥부터 드시기 바랍니다. 남는 식판이 없게, 남는 음식을 조금이라도 더 줄이려 노력해 봅시다. 그리고 환경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누군가의 노동권을 침해하는 행동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나라 학교의 급식은 정말 전 세계 어느 나라를 뒤져봐도 볼 수 없는 수준인 영양만점에 푸짐하고 맛도 훌륭한 급식이 제공됩니다. 그중에서도 우리 학교 식당은 자율 배식이며 심지어 채식 음식도 제공합니다. 우린 전 세계 1% 수준의 급식 안에서도 가장 훌륭한 급식을 매일 먹고 있는 겁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급식노동자들의 노동환경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안전사고에 취약하고, 명확한 기준이 없어 과도한 노동을 감내해야 하는 것이 우리나라 급식 노동자들의 현실입니다. 1990년대 이후 그동안 엄마인 여성들에게 전가해 온 ‘도시락 노동’을 사회적으로 해결하겠다고 시작된 것이 학교급식입니다. 하지만 급식 노동은 오랜 세월 제도적 무관심 속에 방치되어 왔습니다. 학교급식실의 산업재해율은 3.7%로 전체 산업 평균인 0.67%의 5배가 넘고, 매우 위험하다고 알려진 건설업보다도 높습니다. 폐암으로 산업재해 승인을 받은 조리노동자도 178명에 이르며, 그중 15명이 돌아가셨습니다. 우리 학교 식당은요? 남은 식판 개수 17개. 식당쌤들은 그날, 만들 필요도 없는 17인분의 음식을 만드셔야 했고, 치워야 했습니다. 학생들이 밥을 먹으러 오지 않더라도 그만큼의 음식까지 만들어야만 하는 것이 학교 급식입니다. 주말에 식수조사를 한 학생이 5명도 안 되더라도, 단 한 명만 신청한 날도 밥해 주려 출근하십니다. 실제로 그런 적이 있었다고도 합니다. 올해 1월이 되어서야 학교급식법 개정안이 노동자들의 힘든 투쟁 끝에 드디어 가결되었습니다. 개정된 학교급식법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급식은 교육의 일환”임이 법적 목적으로 명시되었다는 점입니다. 내 밥상에 오른 음식을 누가, 어떤 조건 속에서 만들었는지를 아는 일은 그 자체로 아주 중요한 교육이라는 이유입니다. 간디 식구분들, 이런 훌륭한 교육의 기회를 걷어차지 맙시다. 사실 이렇게까지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에 조금 의문이 듭니다. 기본적인 예의는 지키자는 정말 당연한 이야기를 너무 어렵게 한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요, 요즘 정말 기본적인 예의조차 없어져 가고 있습니다. 나를 위해 누군가가 밥을 만들어 줬는데 먹으러 오지도 않는 행동은 환경, 노동권 다 떠나서 그냥 정말 무례한 겁니다. 그런데 요즘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밥해 준 사람에게 아무런 미안한 마음도 없는 것처럼 행동하는 식구들이 정말 많습니다. 식당쌤들이 보는 앞에서 부식으로 나온 과일이나 간식, 음료만 챙겨서 식당에서 나가 버리고, 주말에 식수조사 해 놓고 먹으러 오지도 않거나, 오늘 나오는 밥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홍화원(학교와 가까운 식당)가서 먹고 오는 행동들 말입니다. 만약 사정이 있다면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행동해야 하는 거 아닐까요? 오늘 간마디가 조금 직설적이고 말이 뾰족하게 느껴졌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요즘 우리 학교에서 꼭 다뤄야만 하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앞으로 점점, 남는 식판이 줄어들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26.06.04. "식구총회 식문부 간마디" 글쓴이 : 전지율 _경남 산청 간디고등학교 3학년 안녕하세요. 경남 산청 간디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3학년 전지율입니다. 간디학교에서는 매년 6월 5일 ‘환경의 날’을 기념해 학생자치 부서인 환경부에서 ‘환경주간’을 주관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쭉 고민해 오던 것이 환경주간과 어울리는 주제였기에 우리 학교 사람들이 모두 모이는 자리인 ‘식구총회’에서 이야기하고 싶어 발표 전날 급하게 글을 써 식구총회 간마디(간디인의 한마디)시간에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저는 앞서 말한 환경부와 같이 우리 학교 학생자치 부서인 ‘식당문화부’의 장을 맡고 있습니다(줄여서 ‘식문부’라고 부릅니다). 간디학교 관계자가 아니라면 식당문화부라는 이름이 생소하게 느껴질 것 같아 조금 설명을 덧붙이자면, 식당은 학교 급식소를 말하는 것이며 우리 학교만의 좋은 급식문화를 만들고 식당쌤들(영영사, 조리사 선생님들)과 함께 식당을 관리하는 일을 하는 부서입니다. 사실 제가 사람 많은 곳에서 발표하는 걸 즐기는 성향도 아니고, 그렇다고 글 쓰는 걸 좋아하는 것도 아니라 간마디는 학교 졸업할 때까지 절대 올라가고 싶지 않은 자리였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제 주장이 담긴 글을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읽고, 그 글을 기고까지 하게 될 줄은 몰랐네요. 그만큼 어떻게든 표출하여 전하지 않고선 못 견딜 만한 마음들이 제 가슴속에 계속해서 쌓였었나 봅니다. 덕분에 전하고자 하는 것이 가장 잘 느껴지는 글은 분노가 담긴 글이라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글보단 대본에 가까운 이 글을 학교 사람들 앞에서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읽었습니다. 어딘가에 글을 기고하는 것도 처음인데요. 이 글이 읽게 될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함께 분노할 수 있는, 공감되는 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푸른목소리의 첫 주인공이 되어 준 산청 간디고 전지율 님 고맙습니다. 애써 주신 산청 간디고 최보경 선생님께도 고마움 전합니다. 지리산人의 기획 칼럼 [푸른목소리]에는 지리산 둘레에 사는 청소년-어린이의 생태감수성이 담긴 글을 싣습니다. '이렇게 살아야 해'라고 말하는 사회에 '이런 삶도 괜찮잖아?'라든가 '난 이렇게 살고 싶어' 같은 생각거리를 주는 글, 자연의 생명들을 대신하여 그들의 목소리를 내는 글, 우리 마을의 아름다운 자연과 이를 지키는 사람들에 대한 글을 환영합니다. >> 지리산人 푸른목소리 기고 문의 : mhghg@naver.com -
안철환 06-14 21:08
[안철환의 절기 이야기] 단오와 가까운 망종
망종은 보통 단오에 가깝게 드는데 올 망종은 음력 4월 21일에 드니 단오와 사이가 멀어졌습니다. 그래 재밌는 사실은 음력이 늦어 밀, 보리도 따라 늦게 익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는 겁니다. 오히려 평년보다 더 빨라요. 망종 일주일 전인 어제 그제 갑작스럽게 익더만요. 다음 주에 베려던 걸 내일 하려고 부랴부랴 품을 쓰려 합니다. 망종은 망종이더이다. 까끄라기(망) 있는 곡식을 심는 절기라는 뜻인데 우리나라 지역에선 밀, 보리 거두는 절기로 봐야죠. 물론 같은 까끄라기 있는 벼는 심는 게 맞긴 맞습니다. 단오(端午)는 오(여름)의 시작이자 끝이에요. 끝은 마지막이 아니라 머리(정점)입니다. 최고로 해가 높은 하지가 곧 오지 않습니까? 그래서 단오는 하지하고도 관련이 깊지요. 무더위는 그 다음에 오지만요. 아궁이의 불이 달군 다음에야 구들이 따뜻해지는 것과 같습니다. 단오라는 명절은 참 이상한 축제입니다. 보리고개라는 먹을 게 없는 시절인데 무슨 축제를 열까요? 그 이유도 시골 다니며 만난 할머니들에게서 들었습니다. 바로 벼 모내는 축제였어요. 한번은 도시 변두리에 논을 만들어 도시농부들과 모내기를 하고 있는데 지나가던 할머니 한분이 그러는 거에요. "모내면서 떡도 안 해먹어요?" 맞습니다. 축제니 떡 해먹으며 모를 냈던 겁니다. 그게 단오에 해먹는 수리취떡이죠. 곡식은 귀하고 풀은 많으니 취나물 많이 넣어 떡 해먹은 거겠지요. 모를 낼 땐 꼭 풍악을 펼칩니다. 그것도 이해가 잘 가지 않아 "할머니, 바쁘고 먹을 것도 없어 힘 드는데 빨리 끝내야지 풍악은 왜 울려요?"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힘드니 쉬면서 천천히 하라는 거지." 합니다. 하긴 풍악도 행진곡풍이면 그에 맞춰 일하기 좋을텐데 늘어지는 풍이니 놀면서 하기 딱 좋았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더 재밌는 얘길 해 주십니다. 모낼 때 띄우는 못줄이 원래 우리 방식이 아니라는 얘긴데요, "그거 일제 때 들어온 것이요. 각지게 빨리 심으라는 건데 일 못하는 사람 허리 망가지게 하는 못된 방식이지. 원래는 모꾼이 알아서 제각각 심었지. 막모내기, 판모내기라고 해서 일머리 적은 사람은 천천히, 일머리 있는 사람은 빨리 나가서 한소리 하며 늦은 사람들 흥도 돋우지." 얼마나 재밌게 일 했을지 눈에 그려지대요. 그렇게 제각각 심어도 오와 열이 착착 맞았다니 참 신도 났을 겁니다. 저희 농장의 조그만 논에 이맘 때면 어린이집 유치원 애들 200명 가량이 모내기 체험을 옵니다. 애들이라 못줄 띄워 모심기를 해도 들쭉날쭉 심지요. 보통은 애들 돌아가면 어른들이 다시 심곤 하는데 저는 그냥 놔두고 남은 모를 심습니다. 아이들 지도하던 선생님들이 심는데 못줄 띄우지 않고 막모내기 합니다. 그래도 벼들이 스스로 자리잡아가는데요, 사이가 좁은 데는 벼가 덜 분얼하고 넓은 데는 더 많이 분얼하는 거에요. 좁은 데는 벼가 웃자랄까 걱정했는데 전혀 그렇지가 않더만요. 신기하죠? 옛날에 허벅지까지 빠지는 수렁논의 경우 들어가질 못하니 둑에서 모를 던지는 이른바 투묘 모내기를 했답니다. 오와 열이 맞을리 없죠. 그렇게 모를 던지고 나선 한동안 논엘 가보질 않았답니다, 괜히 미리 가봤다가 어지럽게 펼쳐진 모들을 손보고 싶어 들어갔다간 더 망가뜨린다는 거죠. 그렇지만 까먹고 한참 뒤에 가보면 모들이 알아서 지들끼리 자리잡아 정리되어 있는 걸 볼 수 있었다고 하니 참 신기하죠. 어쨌든 그래서 단오는 벼 모내기 축제라는 겁니다. 모를 망종에서 하지까지 짧으면 보름, 물 사정 좋으면 입하부터 하지 지나 장마 전까지 한달 넘게 모를 내니 이렇게까지 긴 축제도 없을겁니다. 그것도 노는 축제가 아니라 일하는 축제, 배불리먹는 축제가 아니라 배곯는 축제였으니 그런 축제가 세상에 어디 있겠어요. 강릉 단오축제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것은 모내기와는 무관한 것이 유감인 이유입니다. 제례 굿 놀이 민속행사 등이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것인데 본질보단 말단이 인정된 것이라 좀 씁쓸하지요. 벼 모내기는 두레라 해서 마을 모두 나서서 니논내논 구별없이 자기 논처럼 모를 냈습니다. 물 사정 좋은 논부터 시작해 과부 장애인 등 노약자 논을 우선 모내기하는 이타적인 공동체 문화였지요. 물론 지주 논도 우선 했겠지요. 그 정도 갖고 두레의 공동체 가치나 기능이 훼손되진 않았을거라 봅니다. 지금은 이앙기로 모를 내니 모내기 공동체 문화는 싹 사라졌어요. 기계가 공동체를 대체한 것인데요, 기계로 조금 편해졌을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농부가 부자된 것도 아니고 농업농촌은 소멸의 위기에 처해있고 식량은 넘쳐나도 국민의 안전한 먹거리는 많지 않으니 농업의 기계화를 환영할 수만은 없을 겁니다. 그렇다고 기계를 없애면 공동체가 살아나는 것도 아니니 참 씁쓸 할뿐이네요. 그나마 곳곳의 도시농부들의 논에서 모내기 공동체가 살아나고 있어 미약하나마 희망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또한 농진청 유전자원센터에서 잠자고 있던 토종벼 400여종을 완전히 복구하는 데 성공한 주역이 바로 도시농부님들입니다. 그많은 종자와 작지않은 논에서 도시농부들은 주말휴식을 내팽개치고 손 모내기를 하며 토종벼도 지키고 모내기 공동체도 이어가고 있습니다.(전국토종벼농부 모임 참고 https://www.facebook.com/share/p/18yEGbU98a/" target="_blank" rel="noopener" data-mce-href=" https://www.facebook.com/share/p/18yEGbU98a/"> https://www.facebook.com/share/p/18yEGbU98a/ ) 규모로 치면 티끌에 불과하나 희망의 씨앗을 이어가고 있기에 노아의 방주가 따로 없고 언젠가 태산이 될지도 모릅니다. 우공이산이 별거겠습니까? 글을 쓴 안철환 선생은 온순환협동조합, 전통농업연구소 대표이고 경기도 안산에서 ‘산림생태텃밭 먹거리숲 농장’을 운영한다. 남은 음식물과 똥오줌, 커피 찌꺼기를 받아 직접 거름 만들기를 실천하고 있으며, 우리 토종 종자와 전통 농업 살리기에 열중하고 있다. 25년 전, 처음으로 심은 배추 씨가 3일 만에 싹 트는 걸 보고 ‘씨 안에 누가 있었구나!’ 깨닫고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우리가 먹는 배추는 단순히 물질적인 먹을거리가 아니라 나와 별 차이 없는 생명이며, 그래서 먹는다는 것은 생명을 먹고, 생명과 소통하고, 생명과 하나 되는 일이라고 믿는다. 쓴 책으로 《시골똥 서울똥》(2009), 《24절기와 농부의 달력》(2011), 《호미 한자루 농법》(2016), 《토종농법의 시작》(2020)이 있고, 옮긴 책으로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2004)이 있다. ** 대문사진 : 아이들 두레꾼입니다. 어릴 때 이런 체험을 해 본 사람 중에 큰 인물이 나올 거라 기대합니다. 시골출신 중에 인물 많은 건 오감교육의 현장에서 자랐기 때문 아닐까요? 지식교육은 전문가 키우는 데 맞지만요. -
안철환 05-27 21:45
[안철환의 절기 이야기] 보리고개 넘는 소만
음력 4월에 드는 소만은 4월을 사巳월답게 해주는 절기일 겁니다. 巳월의 상징인 뱀의 기운은 불 화火인데 음적인 화, 곧 음화입니다. 음화는 차가운 불이 아니라 서서히 올라오는 불이라 해야 합니다. 봄의 시작은 양의 호랑이 기운으로 계란의 껍질을 깨듯 땅을 쩍 갈라 시작되지만, 여름은 뱀처럼 스멀스멀 시작됩니다. 이미 봄에서 따뜻한 기운이 쌓여 여름이 시작되기 때문이거든요. 그래서 소만의 소小는 작다는 뜻이 아니라 부사로서 서서히라는 뜻으로 해석하는 거지요. 음 기운의 극인 겨울에서 봄은 양의 시작이라 겨울을 박차고 나와야 하니 그 모습도 양답다면, 여름은 봄과 같은 양의 계열이라 봄을 박차고 나오기보다 봄의 양 기운이 쌓여 서서히 시작되는 게 자연스럽죠. 올 봄은 봄스럽지 않게 겨울의 여운이 끈질기게 남아 있다가 별안간 여름 더위가 곡우 전에 잠깐 나타나더니 다시 꽃샘추위가 반복되었어요. 그리고 소만 되기 5일 전부터 비로소 더워지대요. 소만 전날인 어제는 낮부터 비가 밤새 내리더니 오늘까지 가랑비를 흩뿌렸네요. 그 참에 더위도 누그러지고 가문 날씨도 해갈을 시켜주면서 여름은 스멀스멀 우리 곁으로 기어 오는 것 같습니다. 소만에 서서히 들어오는 더위보다 더 힘들게 했던 게 있으니 바로 보리고개입니다. 지난 해 곳간에 모아 둔 곡식은 떨어지고 새로 먹을 보리는 익으려면 한달을 기다려야 하는 고개입니다. 그럼 무얼 먹고 힘든 고개를 넘어야 할까요? 맞습니다. 이때 먹을 수 있는 건 풀떼기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초봄에 많이 올라 온 냉이 같은 생풀들은 꽃피고 독이 올라 먹을 게 많지 않지요. 이를 대비해 나물을 데쳐 말려서 두고두고 먹습니다. 묵나물이라 하고 건나물이라고도 하죠. 독이 오른 쑥 같은 풀은 푹 데쳐 독을 빼고 쌀이나 밀가루로 쑥개떡, 쑥버무리를 해먹습니다. 초근목피라고 들어봤을 겁니다. 소나무의 부드러운 속 껍질(송기)을 벗겨 다져서 쌀과 섞어 죽을 쑤어먹거나 떡을 해먹기도 했죠. 하다못해 솔잎으로 김치도 담가 먹었다 하네요. 지금 생각해보면 비참해 보이기도 할겁니다. 그런데 요즘 다시 뒤돌아보니 그런 굶주림을 버티게 해준 구황먹거리들이 다 영양식이라는 게 역설입니다. 풀이야 그럴 수 있다손 쳐도 나무껍질이 어떻게 영양식이냐고 따질 겁니다. 그런데 아무 껍질이나 다 먹는 게 아니고 좀 전 소개한 소나무 속껍질 송기는 혈액순환을 돕고 염증 제거에 탁월하다고 합니다. 솔잎 김치도 비타민과 미네랄과 섬유질이 풍부했다네요. 그래도 보리고개 때 대표적인 구황식물은 역시 곤드레일겁니다. 고려엉겅퀴라고도 하는 곤드레를 밥처럼 먹을 수 있었던 건 아마도 맛이 없어서가 아닐까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맛 있으면 곧 물려 오래 못 먹잖아요. 나물 맛보단 양념 맛으로 먹는 게 요즘 식당의 곤드레밥일텐데요, 옛날엔 맛있는 양념은커녕 보리밥 한숟갈, 된장 한숟갈에 보이는 건 순 곤드레뿐이었답니다. 자극적인 맛은 없어도 구수한 맛에 담백해 물리지 않기도 했거니와 채소 중 단백질 함량이 높아 밥처럼 먹기에 손색이 없었다는 거죠. 저희는 밥으로 먹기보다 나물로 묻혀 먹거나 쌈으로 먹는 걸 즐기는데 아삭한 식감이 아주 좋습니다. 토종씨앗도 수집하고 옛날 농법도 배우려고 시골 할머니들 찾아 다닐 때 한분이 이런 말씀을 주셨어요. 여름은 거지처럼 나고 겨울은 임금처럼 나야 한다고 말이죠. 다르게 말하면 여름엔 풀떼기나 거친 보리밥을 먹어야 더위를 버틸 수 있고 겨울엔 찰지고 기름진 음식을 먹어야 추위를 이겨낼 수 있다는 거죠. 곰곰 생각해보니 베트남 같은 열대지역의 사람들은 작고 마른 체질이라면 모스크바나 북서유럽 사람들은 덩치도 크고 뚱뚱한 사람들이 많은 게 떠오르더만요. 더위와 추위를 이기는 전략이었을겁니다. 한번은 시베리아 도시로 유명한 러시아 이르쿠츠크라는 도시를 가봤는데 공원의 참새들이 뚱뚱한 거에요. 겨울이 춥고 긴 지역에 먹을 게 뭐 많다고 참새들이 뚱뚱할까요? 맞습니다. 먹을 게 많아서라기보다 추위를 이기기 위한 전략인거죠. 계절 구분 없이 찰지고 기름진 음식들만 먹는 요즘 세태가 아쉽기만 합니다. 고기를 일상적으로 먹는 것도 그렇구요, 하다못해 떡도 죄다 찰떡이에요. 고실고실한 메떡이 사라졌어요. 예전엔 겨울밤에나 찹쌀 떡 장수가 있었잖아요. 여름에 먹는 음식이 아니라는 거죠. 조선시대 임금 중에 풀떼기와 보리밥 즐겨 먹은 분이 있었는데 누굴까요? 바로 영조대왕입니다. 그래서 오래 장수했을 것으로 보지요. 대부분의 임금들이 단명한 이유 중엔 부드럽고 고소한 음식 위주의 식습관이 커요. 예를들면 왕들은 된장을 먹지 않았답니다. 엑기스 간장만 먹었지 된장은 찌꺼기로 본 겁니다. 우리가 자랑하는 세종대왕님은 사실 고기 중독자였어요. 결국 당뇨로 돌아가셨지요. 영조는 풀떼기와 보리밥이 백성들의 천한 밥상이 아니라 지혜로운 건강 밥상이란 걸 어릴 때부터 알았을 겁니다. 누구에게 배웠을까요? 맞습니다. 천하디 천한 무수리 궁녀 어머니였겠지요. 근데 제가 더 주목하는 건 영조시대는 할아버지 왕이었던 현종부터 기후위기로 살기 어려웠던 시절이라는 사실입니다. 1670 경술년 1671 신해년 2년에 걸쳐 이른바 경신대기근이 발생해 자그마치 100만명이나 굶어죽은 무서운 가뭄이 들이닥친 거에요. 당시는 소빙하기라 해서 추위와 가뭄, 역병 등으로 우리만이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난리였습니다. 이 난국을 영조는 풀과 보리밥으로 이겨내려 한 셈입니다. 말하자면 근검절약 문화를 퍼뜨리고 몸소 실천한 것이죠. 대표적인 게 강력한 금주정책이었고 농사에선 물 없으면 안되는 벼 모내기를 금하고 직파를 권장한 겁니다.(ebs 역사채널e, 조선 모내기를 금하다) 모내기 방법은 수확량도 높고 제초도 손쉬우며 보리와 이모작이 가능한 선진농법이었지만 가뭄이 들면 한방에 망해버릴 위험한 방법이기도 했거든요. 기후위기 시대에 이른바 물 없이 농사짓는 한전旱田농법이 주목받는 이유입니다. 서양이나 일본은 기후위기를 제국주의로 극복하려 한 면이 있다고 저는 봅니다. 남의 것을 빼앗아 위기를 극복하는 거죠. 반면 우리는 외부에 의존하지 않고 내부의 순환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 한 것을 저는 높이 평가합니다. 결국은 실패했지만 자체적으로 극복하기 전에 외적이 쳐들어 온 거에요. 어쨌든 기후위기를 대처할 지혜를 보리고개를 힘겹게 넘었던 조상들로부터 배웠으면 하는 마음으로 장황하게 말씀드렸음을 양해 바랍니다. 다만 물 의존도가 너무 높고 외부의 석유화학 자재를 너무 많이 사용하는 지금의 농법은 매우 위험할 수 있음을 경계하고자 함입니다. 올 봄은 늦은 음력으로 추위가 지속하여 저는 모든 지 늦게 심었습니다. 이제야 상추, 배추를 먹을 수 있고 고추 가지는 아직 모낼만큼 자라지 않아 직파도 병행하고 있지요. 다만 다년생 나물을 많이 심어 3월부터 밥상에 나물이 끊이지 않는 호사를 누리고 있네요. 굳이 심지 않더라도 야생 나물은 좀만 주위를 둘러보면 어렵지 않게 채취할 수도 있습니다. 농사와 채집을 병행했던 우리의 전통 농경문화를 되살렸으면 하는 마음으로 긴 글을 마무리합니다. 감사합니다. 글을 쓴 안철환 선생은 온순환협동조합, 전통농업연구소 대표이고 경기도 안산에서 ‘산림생태텃밭 먹거리숲 농장’을 운영한다. 남은 음식물과 똥오줌, 커피 찌꺼기를 받아 직접 거름 만들기를 실천하고 있으며, 우리 토종 종자와 전통 농업 살리기에 열중하고 있다. 25년 전, 처음으로 심은 배추 씨가 3일 만에 싹 트는 걸 보고 ‘씨 안에 누가 있었구나!’ 깨닫고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우리가 먹는 배추는 단순히 물질적인 먹을거리가 아니라 나와 별 차이 없는 생명이며, 그래서 먹는다는 것은 생명을 먹고, 생명과 소통하고, 생명과 하나 되는 일이라고 믿는다. 쓴 책으로 《시골똥 서울똥》(2009), 《24절기와 농부의 달력》(2011), 《호미 한자루 농법》(2016), 《토종농법의 시작》(2020)이 있고, 옮긴 책으로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2004)이 있다. * 대문사진 : 필자의 보리고개를 넘게 해준 고마운 곤드레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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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인 07-03 09:40
[모집] 2026 지리산人 생태전환강좌 "농생태학 틀세우기"
잃어버린 공생의 지혜를 되찾는, 2026 지리산人 생태전환강좌 첫 번째, <자연을 닮은 농사, 농생태학> 1강 / 자연의 얼개를 닮은 농사 2강 / 에너지 흐름으로 살피는 자연의 살림,농(農)의 살림 7월 11일 토요일, 오후 1:00-5:00, 구례문화원1층대회의실 강사 : 쪼 (농생태학연구소 숨 상임연구원) /농생태학 틀 세우기 /건강한 농생태계를 위한 농사는? /자연의 살림살이를 이해해 농사 짓는 방법? 참가비 : 1만 원 (지리산사람들·구례문화원 회원은 무료) 참가 신청 (아래 링크 접속) https://forms.gle/fJET7T5ipVkZqhpn9 -
지리산인 06-23 20:40
[소식] 지리산 여순10.19 생명평화기행 (강의 참여 가능)
한겨레통일문화재단이 주최하는 ‘지리산 여순 1019 생명평화기행’이 7월 3일~4일(1박2일), 구례에서 진행됩니다. 1박2일 참여할 분은 마감되었다고 하는데요. 7월 3일 저녁 7시 주철희 박사 특강 (장소_ 지리산생태탐방원) 7월 4일 낮 1시 30분 박금만 화백 특강 (장소_ 구례문화예술회관) 이렇게 두 강좌는 참여가 가능하다고 합니다. 참가비도 없고요. 관심 있는 분들은 함께 하셔도 좋겠습니다. -
지리산인 06-18 20:29
2026 생명평화 하지제 "벽소령을 흔들지 마라"
2026년 생명평화 하지제 몇 해 전부터 해마다 하지가 오면, 지리산사람들과 친구들은 지리산 난개발로 몸살 앓는 마을에 찾아가 하지제를 열었습니다. 올해는, 난개발 공약에 빠지지 않고 등장한 '벽소령'에 찾아갑니다. 6월 21일 일요일 11시 벽소령 함께 모여서 감자를 삶아먹고, 지리산이 무사하길 바라며 차를 올립니다. (저마다 감자 딱 한 알씩 들고 와요- 벽소령 지키려는 마음 담아^^) (자기 찻잔도 하나씩 가져와요, 우리 마음 모아 쭉- 찻잔 줄지어 놓고 하지다례 올려요^^) 벽소령을 포함하여 지리산권을 파헤치려는 공약을 꾸짖는 목소리도 냅니다. 시와 노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도 있습니다.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려요! 많관부 :) 준비물 : 점심, 마실물, 지리산 사랑 담은 손피켓, 감자 한 알, 찻잔 하나씩 시간과 장소 : 2026년 6월 21일 11시 벽소령 대피소 앞 지역별 문의 구례 : 010-2972-3398 하동 : 010-9049-1218 남원 : 010-4029-5910 산청 : 010-9117-4285 함양 : 010-4740-1915 ※ 11시 벽소령에 도착 하도록 오시면 됩니다. 지역별 담당자에게 연락하여 함께 오셔도 되며, 지역별 편한 코스로 직접 오셔도 됩니다. 사전 신청 링크 > https://m.site.naver.com/2alfr -
지리산인 06-16 12:13
[소식] 지리산사람들 운영위원 해성의 이야기가 경남도민일보에 나왔어요
<지리산인>을 함께 만드는 해성이 신문에 나왔어요~! 지리산사람들 운영위원이고, 산청난개발대책위원회 사무국장, '지금부터 판타지' 서점지기인 이해성 활동가의 이야기가 <경남도민일보>에 나왔어요 <경남도민일보> 김태섭 기자님의 글로 만나 보시죠~ 아래 링크 공유할게요. https://www.ido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200774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