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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숲샘의 지리산통신] 지리산의 가을은 들녘에서부터...
- 참으로 힘들었던 여름은 그 꼬리를 감추고 언제나 단명인 가을이 서서히 지리산을 물들이고 있다. 이번 여름이 가장 덜 더운 여름으로 기록될 거라 했고 극한호우란 단어가 등장했던 지난 여름, 유난히 더웠고 또 비는 얼마나 오랫동안 그리고 많이 쏟아부었던가. 그럼에도 지리산의 들녘엔 알곡들이 여물면서 단순한 식량 그 이상의 무게로 벼들이 고개를 숙이기 시작했다. 초봄 모를 준비하고 논물 대면서 시작하는 벼농사, 식량은 기본이고 가장 생태적인 저수지에 청정 산소를 생산하는 초록 공장 역할을 하는 우리들의 오래된 미래다. 게다가 봄부터 가을 그리고 겨울 빈 들녘까지 논은 설치미술 그 이상의 예술작품으로 우리 곁을 지킨다. 그러니 긴 세월 논을 지켜온 우리 농부들은 자연의 예술가들임이 분명하다. 쥐꼬리만한 농민수당은 작품 감상비에 턱없이 부족하다는 게 필자의 변함없는 생각이다. 그 아름다운 가을 들녘을 감상하고 또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지리산 자락을 한 바퀴 돌 요량으로 길을 나섰다. 산청을 출발해서 하동 구례 남원 함양 찍고 다시 산청까지는 대략 300km, 구석구석 누비기엔 스쿠터가 딱 좋은데 비가 오락가락해서 차를 운전할 수밖에 없었지만 지리산 둘레길을 따라 이동하면서 둘레길 모니터링도 병행할 수가 있어 더 유익했다. 필자가 산청 안솔기마을에 살면서 날마다 만나는 외송 들녘은 규모가 크진 않지만 다랑이 논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어 더 애정이 가고 또 아름답다. 그리고 경호강 건너 저 멀리 웅석봉과 달뜨기능선이 배경이라 지리산의 의미를 더한다. 매일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외송 들녘은 바로 옆에 자리하고 있는 간디고등학교 아이들에게도 커다란 축복이리라. 하동 적량과 악양 들판에 들렀다가 섬진강을 따라 구례를 지나오면서 시간이 허락지 않아 골프장 건설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사포마을 다랑이 논을 들리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 하고 밤재를 넘어 제1회 ‘아름다운 마을 숲’ 대상을 받은 서어나무 숲이 기다리고 있는 남원 행정마을로 향했다. 지리산 둘레길 1구간인 주천-운봉 사이에 자리한 행정마을 서어나무 숲은 사시사철 언제 찾아도 감동을 주는 숲이라고 감히 말한다. 해발 400m 고원지대인 운봉 들녘은 정령치에서 바래봉까지 이어지는 지리산 서북릉이 든든한 뒷배가 되어준다. 논두렁에서 하늘거리며 피어있는 코스모스 꽃무리는 가을 들녘의 운치를 더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조연이라 할 수 있다. 운봉과 인월을 지나고 산내 실상사를 지나면서 강물은 남강 수계가 되고 남원과 함양의 경계 쯤에 자리한 함양군 마천면 도마마을은 다랑이 논으로 그 유명세를 떨치기도 했지만 벼농사의 어려움으로 면적이 많이 줄어들었는데 지금은 국가중요농업유산 등재를 위해 복원 사업을 추진하면서 다시 옛 명성을 되찾으려 하고 있다. 지리산 칠암자길로 유명한 삼정산을 배경으로 도마마을 다랑이 논 풍경을 멋지게 담기 위해서는 건너편 금대암 오르는 길에서 찍어야 제대로 된 작품을 얻을 수 있다. 지리산 자락을 한 바퀴 돌면서 돌아본 가을 들녘, 비와 바람과 햇볕 그리고 농부의 손길이 만들어 내는 그 예술작품이 지속가능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지만 과연 그 벼농사를 이어 갈 젊은 농부들이 있을지가 관건이지 싶다. 아무튼 지리산의 가을은 들녘에서부터 시작되었고 곧 온 산이 가을의 본색으로 번져 나갈 것임을... 웅석봉과 달뜨기능선을 배경으로 노을로 물들어 가는 외송 들녘 삼정산 아래 자리 잡은 도마마을 다랑이 논 평사리 부부송이 지키고 있는 악양 들녘 웅석봉과 달뜨기능선에 걸린 운무 그리고 외송 들녘 정령치에서 바래봉까지의 지리 서북릉 아래 행정마을 들녘 하동 적량 들녘을 지키는 용버들 지리산 둘레길 주천-운봉 구간 들녘을 걷는 길동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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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계절 이야기가 흐르는 지리산 풍경 여행
- - 지리산 달궁 계곡 용소 폭포 (사진 류요선, 1997.5.14) 지리산 달궁 계곡의 이른 아침부터 봄비가 내렸다. 풍족한 봄비로 부풀어 오른 용소(龍沼)의 흐름이 시원스럽다. 이곳 언저리에서 숙영(宿營)하려 했으나 빗방울이 계속 떨어져 심원마을로 내려갔다. 1998년 여름 폭우로 이 계곡 바위 옆에 자리 잡은 철쭉꽃은 대부분 사라졌다. -지리산 낙조의 억새 (사진 류요선) 억새꽃의 쓸쓸한 정서는 인생을 달관한 지혜가 엿보여 담담하고 평온하다. 황혼과 잘 어울린다. 해 질 무렵 억새꽃의 자태는 찰나가 영원처럼 멈추어진 풍경을 이룬다. 낙조의 붉은 빛을 온몸으로 흡수하는 억새는 늦가을의 서정을 간직하며 어둠 속으로 잠겨간다. -지리산 달궁 계곡 늦가을 풍경 (사진 류요선, 2001.10.29.) 지리산 달궁 계곡의 단풍 숲을 보고 와서 이레 만에 단풍 색깔에 마음이 끌려 다시 찾아갔다. 단풍잎은 많이 떨어졌고 겨울나기 준비로 숲이 물기를 내보내고 있는지 계곡물의 흐름이 조금 불어났다. 그늘은 굳이 빛이 있어야 하지 않다. 숲에서는 계곡의 물소리가 맑으면 그늘은 어둠처럼 짙어도 차분하고 평온하다. 이렇게 그늘이 짙은 계곡의 깨끗한 바위는 마음을 내려놓거나 숨겨두기 좋은 곳이다. 지리산은 예나 지금이나 그 본질은 변함이 없으며 단지 사람들의 바람에 맞추어 깊은 마음을 풍경으로 조금씩 내어 주고 있다. - 지리산 달궁 계곡 짙은 그늘 (사진 류요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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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13일~14일] 지리산1019생명평화기행
- 지리산1019생명평화기행 네 번째 치유하지 못한 역사의 진실을 찾아 지리산으로 떠나는 여순 1019 생명평화기행 네 번째 여정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70년 세월 숨죽여 지낸 유족들의 사무친 한을 풀고 더불어 사는 세상을 향한 성찰과 사색의 길입니다. 우리의 미래 세대가 진실을 이해하고 상생과 평화, 그리고 통일의 길을 걸어가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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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월23일] 923지리산기후정의행진
- 923지리산기후정의행진 케이블카, 산악열차, 골프장, 양수댐 지리산과 지리산 마을에 닥친 대규모 개발 사업들 기후위기, 기후재난시대, 지금 이대로의 지리산을 꿈꾸며 지리산에서 923기후정의행진을!! 923 지리산기후정의행진에 참여하려면 ● 지구와 지리산에 닥친 위험한 신호가 담긴 손팻말은 각자 준비합니다. ● 초가을 꽃들과 이야기 나누고, 새들의 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걷습니다. ● 낮밥과 물, 맛난 새참은 각자 가지고 옵니다. ● 성삼재주차장과 노고단에서 진행하는 퍼포먼스에 적극 참여합니다. ● 성삼재까지는 대중교통을 이용합니다. 자세한 일정은 9시30분 성삼재 주차장에서 퍼포먼스 10시 노고단대피소까지 천천히 걷기 11시30분 낮밥 (노고단대피소 앞) 12시 노고단으로 천천히 이동하기 13시 노고단에서 퍼포먼스 13시30분 소감 나눈 후 성삼재로 *대중교통을 이용할 분은 구례버스터미널에서 8시40분 버스를 타고 성삼재로 올라가고, 성삼재에서는 15시 20분 버스를 타고 구례버스터미널로 내려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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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가 사라지면 나도 사라질 거야
- 지리산-노자산-가덕도 연대 탐방 워크숍 뒷이야기 네가 사라지면 나도 사라질 거야 _문홍현경 사진1. 신비한 생명의 숲, 노자산. 혼자서는 살 수 없다고 가르치시려고 “먼저 가세요.” 결국, 내뱉고야 말았다. 정상까지는 반도 넘게 남았는데 내 체력은 벌써 바닥을 보였다. 좀처럼 유산소 운동은 안 해오던 탓도 있었겠지만, 구례에서 거제까지 두 시간 정도 차를 타고 오면서 멀미한 탓이 커 보였다. 숨이 차고 어지럽고 속이 매스꺼워서 참다 참다 멈춤 단추를 누르고야 말았다. “좀 어지러워서요, 다들 올라가시면 뒤꽁무니 보고 따라갈게요.” 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도움의 손길이 밀려왔다. “가방 이리 주세요.” “기다렸다가 같이 갈게요.” “물 좀 드릴까요?” “과자나 뭐 달곰한 거 좀 드실래요?” “이거 지팡이 쓰세요.” 짐이 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손사래를 쳤지만, 이미 내 가방은 다른 이의 어깨에 가 있었고 한 손에는 과자 몇 개가 쥐어져 있었으며 다른 한 손엔 지팡이가 들려 있었고, 이내 목구멍으로는 누군가 건넨 단물이 넘어가고 있었다. 도움 더하기 도움에 가까스로 또 발을 떼 본다. 이제 제대로 알 것 같았다. 혼자서는 살 수 없다는 사실을 가르치시려고 시련을 주셨다는 걸. “고맙습니다.” 도움이 되고 싶어 따라왔다가 도움을 받고 가려니 고맙고 미안했다. 내가 따라나선 이 길은 지리산사람들의 지리산-노자산-가덕도 연대 탐방길이었다. 지리산골프장과 구례 양수발전소 건설에 맞서는 시민들도 함께한 든든한 걸음이었다. 첫째 날엔 노자산골프장 예정지 산행을, 다음 날엔 가덕도신공항 예정지 탐방을 이어가기로 했다. 그런데 이런 저질 체력으로는 내일이 없어 보였다. 그치만 절대 그만둘 생각은 없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오르고 싶었다. 이 정도도 못 하고 포기하면 안 된다는 생각. 이 숲을 다 벗겨 골프장을 만들려는 인간들한테 지고 싶지 않은 독기. 뭐 그런 마음이었던 것 같다. 나를 혼자 남겨둘 수 없다며 옆을 지켜 준 노자산지키기시민행동 팔색조(별칭) 님을 포함하여 모두의 응원을 받아 계속 힘을 냈다. 사진2. 노자산 나무와 케이블카. 시끄럽게 오가는 케이블카를 바라보며 나무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짚을 수 있는 나무가 보이면 보이는 대로 살짝 의지했다. 굴참나무, 팥배나무, 소나무, 때죽나무, 노각나무, 소태나무, 갖가지 나무들이 나를 지지해 주었다. 지금 이 나무들 말고도 내가 기대고 선 것들이 얼마나 많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웬 나무 하나를 짚었는데 나무껍질이 마치 용의 눈처럼 신령스러운 동물의 눈을 닮아서 깜짝 놀라기도 했다. 올라갈 때는 제정신이 아니었기에 사진 찍을 겨를도 없어 그 나무를 사진에 담지는 못했지만, 내려오는 길에 비슷한 나무를 발견하고 사진에 담았다. 사진3. 까치박달나무 기둥. 껍질 무늬가 신령스러운 동물의 눈처럼 생겨 나를 바라보는 듯했다. 나중에 나무 박사님 못난이에게 물으니 까치박달나무라고 했다. “까치요? 새, 까치?” “아니, 무좀 걸린 적 있어요? 무좀 걸리거나 발에 굳은살 생겨서 살이 갈라져 터질 때가 있는데, 겉살이 실금처럼 갈라져 터지면 안에 속살이 보이잖아요. 그 까치눈 모양처럼 생겼다고 해서 까치가 붙어요.” ‘아, 용의 눈이 아니라 까치눈이었구나.’ 바보 같은 생각을 했더랬다. 아무튼 내가 정상까지 오르는 데 못난이의 나무 강의가 큰 도움이 됐다. 내 느린 걸음에 맞춰 천천히 걸으며 이건 뭣이고, 저건 뭣이고 하면서 온갖 나무들을 얘기해 주었다. 이름만큼이나 생김새도 다양하고 만졌을 때 느낌도 달랐다. 못난이의 나무 이야기에 정신을 뺏긴 덕에 힘들다는 생각을 덜 하게 됐다. 알고 보니 그러려고 못난이는 일부러 나를 붙잡고 나무 강의를 들려준 거였다. “헉.” 딱 봐도 힘들어 보이는 가파른 길이 나왔다. 또 주저앉은 나에게 못난이가 다 죽은 듯 보이는 나뭇잎 하나를 주워서 냄새를 맡아 보라고 건넸다. 신기하게 향이 났다. 나뭇잎 향을 맡으니 기운이 돋는 듯했다. 못난이가 이름을 가르쳐 주었지만 까먹었다. 다행히 그다음으로 건네준 나뭇잎은 기억하고 있다. 비목이라고 했다. 이름을 또 까먹지 않으려고 코 비(鼻)자를 생각하며 잘게 자른 비목 나뭇잎을 코에 바짝 갖다 댔다. 나뭇잎에서 다채로운 향이 나는 것도 신기했고, 그걸 또 알아보고 갖다 주는 못난이도 신기했으며, 향기만으로도 몸에 기운이 돌다니 그것 또한 신기했다. 마법의 숲이로세. 사진4. 멸종위기종 대흥란. 우리가 운이 좋았는지 이 시기에 잘 피지 않는다는 대흥란이 하나 피어 있었다. “환경영향평가서에 대흥란은 골프장 개발지 바깥 3곳에서만 95개체 발견되었다고 기술되어 있었지만, 올해 7월 낙동강유역환경청 등이 공동 조사를 벌인 결과, 대흥란은 골프장 개발지 전역에서 727개체를 확인했다.”(오마이뉴스) (사진 최상두) 나는 어느새 기어가고 있었다. 두 손으로 바위나 계단 등을 짚고 그 뒤를 다리가 따라왔다. 몇 번을 주저앉아 쉬었더니, 의도하지 않게 흙을 가까이 들여다보게 됐다. 아주 작은 생명이 쉴 새 없이 움직이는 게 보였다. 살면서 처음 보는 곤충들도 있었다. 아주 작은 버섯, 아주 작은 풀도 보였다.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 생명은 또 얼마나 많을까. 100만 평 골프장이 생기면 다 사라질 것들이었다. 대흥란, 거제외줄달팽이, 팔색조, 긴꼬리딱새 같은 멸종위기종이 발견되어도 싹 다 밀어내고 골프장을 짓겠다는 사람들에게 멸종위기종도 아니고, 천연기념물도 아닌 이 작디작은 생명들은 있어도 없는 존재들이다. 조금만 가면 된다는 말, 이제 다 왔다는 말 “누구 뒤에 더 오십니까?” 맨 앞에서 사람들을 이끌던 노자산지키기시민행동 원종태 님(생태조사담당)이 아주 커다란 바위 아래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벌써 다른 이들은 모두 전망대에 도착해 쉬고 있었고, 그는 뒤처진 우리가 길을 못 찾을까 봐 기다린 거였다. “우리가 마지막입니다.” “그래요, 이제 조금만 오르면 됩니다. 다 왔어요.” 다 왔다고. 다 왔다고! 조금만 오르면 된다는, 다 왔다는 그 말이 어찌나 반갑던지. 생태 학살에 맞선 모든 싸움도 다 왔으면 좋겠다. 이제 더는 없으면 좋겠다. 골프장이 생긴다는 노자산과 지리산을 끝으로, 신공항을 짓겠다는 가덕도를 끝으로 더는 막개발 때문에 싸울 일이 없으면 좋겠다. 아, 이제 다 왔다, 하는 생각으로 전국 아니 전 세계에서 생태 환경 운동하는 이들이 희망을 보면 좋겠다. 현실은 시궁창이다. 기후변화, 기후위기, 기후재앙으로 단어가 바뀌는 동안에도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가파르게 올랐고, 해수면 온도 역시 해마다 역대 최고치를 갈아엎고 있다. 폭염, 산불, 긴 장마, 홍수, 가뭄 같은 재해 소식은 여기저기서 너무 쉽게 들린다. 엄청난 탄소를 흡수하던 산호는 하얗게 죽어 가고, 늘 얼어 있던 영구동토층은 녹았다. 인간이 화석연료를 끄집어내 펑펑 썼는데도, 여태 지구가 남아 있을 수 있게 버텨 주던 모든 자연 순환 장치들이 다 임계치에 다다랐다고 경고를 보내고 있다. 그러면 이제 좀 정신 차려야 하지 않나. 언제까지 골프장, 케이블카, 양수발전소, 신공항 타령이나 하고 앉아 있을 건지. 어느 모로 보아도 타당하지 않은 이야기로 개발을 부추기는 사람들은 지구의 경고가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그러니 숲이 사라진다는 말에도 ‘어쩌라고’ 자세다. 기후위기가 이렇게 심해지면 결국 먹을 것도 사라질 텐데, 돈 먹고 살 참인가? 사진5. 노자산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모습. 100만 평에 골프장이 들어서면 축구장 450개 면적 숲이 벗겨지고, 나무는 최대 200만 그루가 사라진다고 한다. 겨우겨우 전망대에 올라 바라본 노자산 위아래 풍경은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여기가 다 사라질 겁니다. 저어기 끝에서 저어기까지 다요. 요 능선, 요 능선, 그다음에 지나서 저쪽 능선까지.” 100만 평이라고 했다. 인간이 만든 측량 단위로는 감이 오지 않던 넓이가 눈으로 보니 실감할 수 있었다. 거대한 면적이었다. “왜요?” 하고 묻고 싶었다. “골프장 때문에요”라고 누군가 답하겠지만, 그럼 또 “왜요”라고 묻고 싶었다. 끝없이 “왜요, 대체 왜요, 이게 왜 사라져야 해요?” 하고 묻고 싶었다. “어리석은 사람들 때문이지요”라는 답이 돌아오겠지, 저 하늘에서. 얼마 전 노자산지키기시민행동은 노자산에 골프장을 만들려는 거제남부관광단지개발 사업의 환경영향평가가 거짓 작성되었다고 해당 업체를 고발했다. 대흥란, 거제외줄달팽이 등의 개체 수가 실제보다 더 적게 쓰였고, 생태·자연도 1등급 비율도 실제보다 낮은 것처럼 보고되었다고 했다. 모두 시민의 힘으로 알아낸 결과였다. 아이들부터 시민과학자까지 힘을 모아 노자산을 지키고 있었다. 다행이다. 이들이 있어서. 사진6. 노자산에 살지도 않는 중국단풍나무 등을 케이블카 기둥 옆에 갖다 심어 놓은 꼬락서니. ‘찰칵찰칵’ 노자산에 들어선 케이블카 기둥 옆에서 못난이가 사진을 찍고 있었다. 누군가가 뭘 찍느냐고 묻자 못난이는 안타까워하며 말했다. “중국단풍. 노자산 식생을 하나도 모르고 심어 놨어. 케이블카 세운다고 나무를 다 베어 놓고, 겨우 다시 심어 놓았다는 게 이 모양이네. 노자산에 사는 나무들이 뭔지도 모르고. 쯧쯧.” 이 모양이다. 아무거나 갖다 꽂아 놓기. 골프장은 이 모양도 안 나올 거다. 숲을 파헤쳐 농약과 제초제 마구 뿌려 대고 어마어마한 물도 끌어다 쓰는데, 온갖 미사여구를 갖다 붙인다 한들 골프장은 지구에서 좋은 모양이 될 수 없다. 찬성 측에서 천연기념물이든 멸종위기종이든 골프장 짓다가 나오면 다른 데로 옮겨 주면 되지 않느냔 말이 나왔다던데, 이렇게 기발한 생각을 하는 이들이 왜 이 숲이 사라지면 안 되는지를 상상하지 못하나. 있는데, 없을 겁니다, 이러다가는 사진7. 아미산전망대에서 멀리 보이는 가덕도와 도요등 그리고 둘레 섬들. “여기도 싹 다 없어질 거예요. 저 산, 저 산 다 깎이죠. 저기 마을 다 사라지고, 이 바다도 매립되고요. 대항전망대에서 마을 봤죠? 거기도 다 사라질 겁니다.” 워크숍 둘째 날, 가덕도신공항반대시민행동 김현욱 집행위원장님과 함께 가덕도신공항이 생기면 사라질 곳들을 둘러봤다. 대항전망대 아래로 보이던 마을도, 새바지항 멀리 보이는 파도와 둥근 돌 해변도, 외양포항에서 본 포진지와 모든 역사적 증거로 남은 공간들도, 울렁울렁 이어지는 산도 다 사라질 것들이었다. 지금은 있는데 앞으로는 없을 것들이었다. 사진8. 가덕도 포진지가 있는 외양포 마을. 1904년 러일전쟁 당시 일본군이 원주민을 몰아내고 진해만 요새 사령부를 만든 마을이다. 대포 자리와 포탄 저장고가 있는 이 마을엔 일본식 가옥, 일본식 공동목욕탕, 헌병대 막사, 일본군사령부 포진지를 나타내는 ‘사령부발상지지’ 비석도 모두 그대로 남아 있다. 100여 년 전 진해만 요새 사령부 주둔 당시 침략의 역사를 간직한 이 마을 역시 신공항이 들어서면 모두 사라진다. 여기가 사라진다는데도 기어이 들어온 것들도 있었다. 새로 지은 패널 집들이 눈에 띄었다. 신공항이 생길 거라는 소식에 어중이떠중이 덤벼 대충 집처럼 생긴 것들을 박아 놓은 모양이다. 신공항이 생기면 다 사라질 마을에 으리으리한 카페들이 척척 올라갔다. 보상을 바라는 이들이 미리미리 손쓴 모양이다. 보상을 받기 위해서라도 신공항이 들어서길 바라는 사람들은 신공항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목소리 낼 수 없게 또 미리미리 손을 쓴다는데. 집행위원장님은 외롭게 싸우는 듯 보였다. “가덕도 둘레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낙동강 하류 철새도래지와 습지보호구역도 있어요. 여기 보이는 바다도 해양생태도 1등급인 지역으로 상괭이가 살아요. 아직 결정도 안 된 엑스포를 명분으로 내세워서 무리하게 공사를 강행하려고 합니다. 그런데도 무슨 상괭이가 밥 먹여 주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신공항이 생길 가덕도를 바라보기 위해 아미산전망대에 올랐을 때, 기어이 그의 눈물이 터지고야 말았다. 그가 삼킨 말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모자를 내려 그의 눈을 바라보지 않았다. 그가 맘껏 울고 엉엉 소리 내어 울고 마구마구 가슴속 응어리를 터뜨리면 좋겠다 싶었다. 그는 조용히 눈물을 훔치고는 빨개진 볼을 쓰다듬을 뿐이었다. 가덕도신공항은 다음 해인 2024년 말 착공해 2029년 12월 조기 개항을 목표로 한다고 한다. 여의도 면적의 두 배가 넘는 규모(666만 9,000㎡)라고. 초안보다 목표 개항 시점을 6년이나 앞당긴 데다가, 가장 최근 발표한 사업비만 15조 4,000억 원으로 앞으로 사업비가 늘어날 수도 있다는데. “가덕도신공항 예정지엔 멸종위기 야생동물 1·2등급인 삵과 솔개, 수달, 표범장지뱀이 살고 있어요. 생태·자연도 1등급 지역이에요. 국내에서 거의 유일하게 100년 이상 보존된 동백군락지도 있어서 전문가들도 이런 숲은 없애선 안 된다고 말해요.” 김현욱 집행위원장님은 가덕도의 생태적, 역사적 가치가 어마어마한데도 부산 엑스포를 내세워 완공 시기를 앞당기려고만 하는 정책에 한숨지었다. 우리는 100년 넘게 보존된 동백군락지를 가 보고 싶었지만 시간이 부족해 가지 못했다. 사실 나는 체력도 바닥난 상태였다. ‘다음에 갈게. 그때도 무사히 있어 줘, 제발.’ 다음엔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안 보고 싶은 건 따로 있는데. 다음에 또 만나요, 무사히 우리의 연대 탐방은 이렇게 마쳤다. 거제 노자산골프장도, 가덕도신공항도 절대 안 되는 까닭은 차고 넘친다. 그 가운데 일부를 우리가 보고 왔다. 또 우리는 사람들을 보고 왔다. 보존해야 할 존재들이 버젓이 있는데 없다고 하는 것들에 맞서는 사람들을. 때로는 유쾌하게, 때로는 열렬하게 맞서는 사람들이었다. 한 사람씩 고개를 돌려 하나, 둘, 셋 숫자를 세며 서로 안전한지 확인하듯, 우리는 고개를 돌려 서로 ‘있음’을 확인하고 왔다. 이번 지리산-노자산-가덕도 연대 탐방을 마무리하며 모두가 하나같이 공감한 생각은 바로 연대의 힘이었다. 너무 뻔한 말이지만, 진짜 연대만이 살길이라는 생각이 맨 마지막까지 남는다. “팔색조가 밥 먹여 주냐? 상괭이가 중요하냐?” 묻는 사람들이 더 생기지 못하게 하려면, 비인간-비자본 존재들 생각에 눈물 흘릴 줄 아는 이들이 손잡을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팔색조가 밥 못 먹는 세상에선 우리도 밥 못 먹는다, 상괭이가 중요하지 않은 세상에선 무엇도 소중해질 수 없다”는 당연한 소리가 묻히지 않기를 바라며 구례로 돌아왔다. 다리는 후들거리지만, 마음은 좀 더 단단해진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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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의 생명들은 자기 색깔로 꿈을 꾼다
- - 지리산 운봉목장 봄 풍경 (사진 류요선, 2000.05.) 지리산국립공원의 바래봉(1,167m) 산자락에 펼쳐진 운봉 목장의 봄날은 화려하다. 냉이꽃이 바다를 이루고 목초지인 호밀밭 너머에 산철쭉이 분홍빛으로 어울렸다. 지리산은 고요하니 지리산 봄날의 하루는 길고 길다. - 바래봉 겨울 억새 (사진 류요선) 바래봉 정상 부근의 겨울 억새는 멀리 지리산 산줄기를 배경으로 넉넉한 자태이다. 차가운 바람에 마른 억새들이 흔들리는 겨울 산에 하얀 눈이 포근하게 느껴진다. 마른 억새가 하얀 눈을 밟고 맑은 모습이 아름답다. - 반야봉 야경 (사진 류요선) 반야봉(1,728m)이 어둠의 중심에서 함축과 여운을 준다. 풍경 속에는 수많은 생명이 숨 쉬고 있다. 어둠 속에서는 산자락도 나무도 꽃도 바람도 모두 하나가 된다. 어둠의 색채는 단조롭지만, 그 어둠 속에서 꿈을 꾸는 생명들은 모두 자기의 색깔로 꿈을 꾼다. - 바래봉 철쭉 능선 (사진 류요선, 1995.05) 바래봉으로 이어지는 산마루 능선 길에 운봉목장에서 양들이 올라와서 줄지어 이동하던 추억이 남아 있다. 산에는 세월이 없다. 현재가 과거이며 미래처럼 계절마다 그러한 풍경이다. 조금씩 변한다 해도 역시 같은 풍경처럼 다가온다. 지리산의 풍경은 천의 얼굴이고 만의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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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 국립공원 운봉 목장의 이야기가 있는 과거 사진 여행
- 지리산 국립공원 운봉 목장의 이야기가 있는 과거 사진 여행 지리산 국립공원 구룡폭포 계곡의 용호정을 찾아갔다. 이곳에서 지리산 사계절의 풍경을 수십 년 동안 사진에 담아온 사진작가 류요선 씨를 만났다. 그는 수십 년 동안 지리산의 풍경을 사진으로 담았다. 그의 사진으로 지리산의 과거 풍경을 여행한다. 류요선 사진작가는 1998년 여름에 휴가를 맞아 여름철 풍경 사진을 찍으려고 단단히 마음먹고 30kg이 넘는 배낭을 메고 지리산 바래봉으로 천천히 올라갔다. 등산로를 올라가다가 운봉목장의 초원에 있는 소 떼를 보고 사진을 찍었다. 지리산 운봉목장은 1990년대 초반에 3,700 마리의 양 떼를 떠나보내고 한우 가축유전자시험장이 되어 한우를 방목하고 있었다. 초원의 소 떼를 사진에 담고 있는데 우연히 백로 무리가 날아왔고 하늘을 한 바퀴 빙 돌더니 소 떼 곁에 우아하게 내려앉았다. 소 떼에 밝게 햇빛이 비치고 있었다. 백로 무리가 소들이 움직일 때 보이는 곤충이나 개구리를 노리는 것인지 운이 좋아서 멋진 장면 세 컷을 찍을 수 있었다. 사진 제목을 ‘여름 어느 날 즐거운 목장 풍경’으로 잡았다. 비가 한 방울씩 떨어지더니 세찬 소나기가 내렸다. 2016년 봄날에 남원시 산내면 덕동리의 지리산 달궁마을에서 계곡을 탐방하며 올라갔다. 구례군 산동면 좌사리 심원계곡의 용소 폭포에 도착했다. 활짝 핀 철쭉과 폭포의 풍경이 생동감으로 어울려 아름다웠다. 벼랑 위에서 폭포 장면을 내려다보고 사진을 찍었다. 2006년 여름에 지리산 운봉고원의 바래봉 정상에서 1km 아래 지점에서 해돋이 사진을 찍으려고 전날 저녁부터 텐트 치고 있었다. 아침에 동쪽의 지리산 주능선에서 해는 안 뜨고 서쪽의 운봉고원에 구름이 바다처럼 나타났다. 백두대간 자락 운봉고원의 한복판을 흐르는 람천이 실개울처럼 보인다. 구름바다 왼쪽으로 백두대간의 고남산이 섬처럼 솟아 있고, 오른쪽에는 천황산이 자태를 드러냈다. 구름바다가 운봉고원을 포근하게 덮은 듯이 천천히 이동하고 구름바다 아래에는 들녘과 마을의 세상이 평화롭게 열려있었다. 2014년 봄에 지리산 바래봉에 산철쭉이 활짝 피는 계절이었다. 봄비가 잠깐 내리고 그친다는 일기 예보를 듣고 미리 바래봉에 올라가서 텐트를 쳤다. 봄비 그친 지리산 주능선을 조망하며 생명력 넘치는 지리산의 풍경을 사진에 담아보고 싶었다. 봄비 그친 뒤 지리산의 생명력은 산철쭉의 분홍색을 더욱 산뜻하게 하였고 지리산 주능선 아래에 산안개가 피어올랐다. 철쭉 무더기에 햇빛이 내려 꽃잎은 함초롬히 습기를 머금었고 산안개 넘어 명선봉, 토끼봉, 반야봉과 노고단으로 이어지는 지리산의 주능선은 멋진 조망을 열어주었다. 사진작가 류요선 씨는 차량 운전을 하지 않았다. 버스 정류장이 있는 마을에서 지리산의 풍경으로 한 걸음씩 구도자처럼 다가갔다. 무거운 배낭에 텐트, 사진기와 생활필수품을 챙겨 메고 지리산의 험한 산길을 천천히 걸어 올랐단다. 작품 사진 한 장을 소망하며 지리산의 품에 안겼던 그의 열정 어린 지리산 이야기와 사진 촬영 여행은 감동 어린 여운으로 오래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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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세까지 살기 블루존의 비밀
- 돈 없는 노인에게 긴 수명이란 재앙과 같다는 말이 있다. 돈이 없이 오래 사는 것이 너무 힘든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장수촌의 사람들이 부자는 아니었다. 지난 이틀간 넷플렉스에서 장수에 관한 다큐를 봤다. 이른바 블루존을 찾아 떠나는 여행에 관한 다큐였다. “100세까지 살기 블루존의 비밀” 유명한 장수촌은 이런 정보에 익숙한 사람들이라면 다 알만한 곳이다. 지중해식 식단의 이탈리아의 섬마을 그리스의 이카리아 그리고 일본의 오끼나와 같은 곳 말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장수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장수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 하지만 장수촌만의 특별한 것은 없었다.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이다. 음식,운동, 커뮤니티, 일, 기후 같은 것들 말이다. 한국에서 가장 강조하는 돈은 없다는 것을 빼면 말이다. 이 다큐에서 블루존 지역의 특징 중 기억나는 것을 적어봤다. 경사가 있는 지역이나 활동이 많은 곳 지역 음식을 먹는 곳 운동을 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운동이 되는 곳 농사나 정원 같은 정기적이 활동 채식을 하거나 육류 소비가 적은 곳 즉 적당한 체중을 유지하는 사람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외롭지 않은 것이었다. 외로움은 수명을 15년 정도 단축 시킨다고 한다. 블루존에 장수 노인들은 특징은 즐겁게 산다는 것이다. 지역에 노인들이 참여 할 수 있는 커뮤니티가 있고 노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그리고 이 지역에 없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요양원이었다. 요양원은 수명을 2-5년 단축 시킨다고 한다. 이 지역의 노인들 대부분 치매 환자가 없다. 치매 환자가 없는 이유는 스트레스가 적거나 없기 때문이며 지역의 커뮤니티를 통해 항상 이야기 하고 웃고 즐기기 때문일 것이라고 한다. 걱정이 적다는 것이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아직 오지도 않은 걱정 때문에 하루하루를 스트레스로 시작해서 스트레스로 끝을 맺는다. 스트레스는 모두가 알듯이 만병의 근원이다. 아무리 좋은 영양제보다 스트레스가 없는 것 보다 좋지 않으며 어떤 장수에 도움이 되는 제품도 외로움이 없는 삶보다 좋지 않다고 한다. 대부분 장수촌의 사람들은 소박하게 먹고 주변 사람들과 즐기며 지역의 음식으로 하루의 식사를 직접 준비한다. 90세가 되어도 하루에 3-4시간은 일을 한다. 여기서 일은 돈을 버는 일이 아니라 활동 정원 가꾸기, 바느질, 음식 만들기, 가벼운 운동을 말한다. 내가 사는 파도리에도 90세 가까운 노인들이 있다. 이들 대부분 지금도 여전히 텃밭에서 일을 한다. 우리집 뒤편에서 농사 짓은 노인 3명을 알고 있는데 이들 모두 80대 후반이다. 모두 나보다 더 일찍 일어나서 농사를 짓고 일을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장수촌을 스스로 만들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지역의 음식으로 소박하게 먹고 지역 사람들과 다정한 커뮤니티를 만들어 매일 아니면 주 2-3회 만나서 즐거운 이야기를 하거나 춤을 추거나 놀거나 하면 된다. 이건 생각해 보면 지금 시골의 노인정이 하는 일이다. 함께 즐겁게 이야기하고 놀고 수다를 떨고… 하는 일 말이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블루존의 사람들은 노인들만 함께 노는 것이 아니라 젊은 사람들과 어울려 논다는 것이다. 우리 나라 노인정엔 노인들만 있고 젊은 사람들은 없다. 하루 종일 노인은 노인과 이야기한다. 여자 노인은 여자 노인과 남자 노인은 남자 노인과말이다. 활기가 있기 어렵다. 이 다큐를 보기 전에 그리스의 섬마을 이카리아의 장수촌에 대한 댜큐를 본적이 있다. 이 동네의 100세 노인들은 아침에 일어나 2시간 정도 정원 일을 하거나 집안일을 하고 카페에 가서 차를 마시고 논다. 대부분 노인과 놀 것이라는 생각과는 다르게 젊은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고 매주 금요일엔 마을 사람들이 다 함께 놀고 한 달에 한 번 온 14세에서 100세 노인까지 동네 사람들이 모여서 새벽까지 즐기며 논다. 생각만 해도 즐거울 것 같다. 그리고 한 가지 중요한 것이 있는데 이들은 세상일에 별 관심이 없다. 중요한 것은 나의 삶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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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두규 04-02 10:19
비노바와 어머니의 차별
비노바와 어머니의 차별 박 두 규 (시인) 삶 속에서 까르마 요가의 실천을 우선했던 인도의 성인 비노바 바베에게는 훌륭한 어머니가 있었다. 비노바 바베를 세상에 널리 알리게 된 ‘부단운동’도 어린 시절 어머니로부터 배운 탁발에 대한 태도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탁발은 단순한 구걸 행위가 아니라 어렵고 힘든 자들에 대한 연민을 일으키게 하고, 자신의 소중한 것을 기꺼이 내주는 선한 마음, 그 본성을 일깨워 실천하게 하는 것이니 그렇다. 비노바 바베가 했던 탁발은 먹을 것이 아닌 토지였다. 그는 사람들이 공기와 물과 햇빛을 누릴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듯이 누구나 땅을 누릴 수 있는 권리도 가지고 있다며, 토지가 없어 고통받는 하리잔(불가촉천민)들을 위해 토지헌납 운동인 ‘부단운동’을 전개했다. 그것은 돈(토지)을 삶의 가장 중심에 두는 현재의 생활방식을 바꾸려는 것이었고, 사람들의 소유욕을 내려놓게 하기 위한 운동이었다. 이 실험이야말로 현대사회의 뿌리 그 자체를 흔들어 놓는 일이었다. 동료들에게는 이게 진짜 ‘정치’ 아니냐며 이 일에만 전념하자고 말했다. 그는 인도의 전 국토를 맨발로 걸어 다니며 토지를 탁발했는데 만일 땅을 내놓으면서 허영된 마음이나 권력을 위해서 땅을 내놓는다는 기미가 조금만 있어도 그것을 받지 않았다. 그는 인간의 마음에는 선함이 있다는 믿음, 그리고 그 선함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듯 비노바는 선한 마음의 자비롭고 온화한 인품의 소유자였는데 그것은 헌신과 소박함으로 뒷받침한 것이어서 누구나 감동을 받았다. 그러한 감동이 있었기에 인도의 지주들이 사람의 바탕에 있는 선한 마음을 낼 수 있었고 400만 에이커의 땅(영국의 스코틀랜드 넓이만 한 토지)을 자발적으로 기부할 수 있었다. 그리고 비노바 바베는 부단운동이 사회변화를 위한 혁명을 수행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혁명의 첫 번째가 마음의 변화이고 다음이 개인적인 생활 습관의 변화이며 그것이 사회구조의 변화로 이어져야 한다고 했으며 그 일의 방법으로 자비와 사랑의 길을 택하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비노바 바베는 부단운동을 통해 인도 사회의 변화를 위해 헌신했으며 자비와 사랑만이 모든 것을 끌어안을 수 있다고 믿었다. 이러한 비노바 바베는 브라만 계급의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는 자식을 위한 브라만의 사회적 역할과 품성 교육에 힘썼고 스스로는 구도적 삶을 사신 분이었다. 비노바의 집에서는 항상 할아버지를 중심으로 어머니와 함께 ‘찬드라야나’ 라고 하는 단식을 하며 달을 공경하는 의식을 했는데, 음력 초하루에는 음식을 한 입만 먹고 둘째 날에 두 입을 먹으며 그렇게 보름달이 뜨면 열다섯 입을 먹는다. 그리고 달이 기울면 반대로 매일 그만큼씩 줄어든다. 그러다 달이 뜨지 않게 되면 단식을 하는 그런 의식이었다. 어머니는 이 의식을 하는 동안 매일 달을 향해 하는 ‘푸자 예배’를 드렸는데 비노바는 어머니가 매일 올리는 이 평범한 푸자 예배에서 항상 눈물 흘리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지극한 마음이 아니고는 흘릴 수 없는 눈물이었고, 비노바에게는 어머니의 그 눈물 자체가 큰 교육이었다. 비노바 바베의 어린 시절, 햇볕 따가운 어느 날의 일이다. 육체가 건장한 거지가 집에 왔는데 어머니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의심도 없이 그에게 적선하는 걸 보며 비노바는 매우 못마땅했다. 그래서 어머니에게 말한다. ‘어머니, 저런 사람에게 적선하는 것은 게으름을 키워주는 겁니다. 바가바드기타에도 나오잖아요? 순수한 선물은 적절한 시간과 적절한 장소에서 받을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에게 주는 것이라고요.’ 하지만 어머니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무엇인데 누가 받을만한 사람이고 누가 그렇지 못한 사람인지 판단한단 말이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어떤 사람이라도 누구나 다 존중해주고 힘이 닿는 대로 베푸는 거란다.’ 그녀는 그렇게 누구에게나 도움을 주며 사는 것이 삶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한참 뒤 어느 날 무슨 일 끝에 비노바는 어머니께 말한다. ‘어머니는 모든 사람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잖아요. 그런데 어머니는 스스로 차별하십니다. 나에게는 차갑게 식은 음식을 잘도 주시면서 집에 오는 다른 사람에게는 한 번도 그렇지 않아요.’ 그러자 어머니가 말한다. ‘그래, 나는 아직도 스스로 차별하고 있다. 나는 너에게 애정을 가지고 있고 또 편애하고 있어. 왠지 아니? 나는 아직도 너를 아들로 생각하고 있고, 다른 이들은 사람의 몸을 입은 하느님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야. 내가 너마저 그렇게 볼 수 있다면 그 차별은 없어질 거다.’ 어머니는 그랬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사랑하는 자식마저도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고 모든 이와 동등하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차별을 없애는 것이라고. 그리고 어머니는 배를 채울 만큼의 음식과 몸을 가릴 만한 의복이 생활에 필요한 전부이며, 생명을 가진 모두는 동등하며 똑같이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비노바 바베는 그렇게 아무도 미워하지 않고 사는 것이 배우는 것의 전부라는 어머니의 교육 속에서 자란 것이다. -사진/김인호 -
박두규 03-08 16:17
몸 가르침 한 수
몸 가르침 한 수 절에 있을 때 이야기다. 참 오래된 이야긴데 나는 대학 입시에 떨어지고 갈 곳이 없었다. 집에 있자니 부모님 보기도 민망하고 나가 돌아다니자니 어느 대학에 갔냐는 질문이 무서워 사람 만나는 것도 겁나고, 혼자 빈둥거리는 것도 하루 이틀이어서 작은 보따리 하나 들고 무작정 절로 들어갔다. 그 길로 거의 1년을 절집에서 살았는데 그해 여름의 일이었다. 그곳은 서래선림(西來禪林)이라는 비석이 입구에 서 있는 지장암(地藏庵)이라는 절이었는데 해안(海眼) 큰스님이 돌아가시고 사부대중의 발길이 끊기고 상좌들도 밖으로 나가 있어서 말 그대로 절간처럼 조용한 절이었다. 때는 한 여름이라 녹음이 짙을 대로 짙어져 숲 그늘에 누워 잔잔한 바람에 책이라도 보고 있으면 저절로 달콤한 낮잠에 빠지곤 하던 시절이었다. 그 여름 어느 날 객승이 한 분 오셨는데 작달막한 키에 별 말이 없는 얼추 30대 후반이나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스님이었다. 대개 스님들은 객으로 묵을 때면 예의상 곧잘 예불도 드리곤 하는데, 그 스님은 아침 예불이건 저녁 예불이건 한 번도 불당에 오르는 일이 없고, 도통 방에만 틀어박혀 나올 줄을 몰랐다. 그렇다고 방에서 공부를 하거나 참선을 하는 것도 아니고 거의 종일토록 잠을 자거나 방에서 빈둥거리기만 하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언제부턴가 그 스님은 일을 하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한 낮에도 쉬지 않고 해가 질 때까지 죽어라고 일만 하였다. 특별히 할 일이 없는데도, 이를테면 아랫마당에서 법당까지 놓여 있는 돌계단을 괜히 파헤쳐 놓고 다시 하나하나 계단을 맞추어 쌓는 그런 일이었다. 내가 볼 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멀쩡한 돌계단을 부수고 쌓고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여름에는 더우니 보통 이른 아침이나 저녁나절에 강한 햇살이 죽었을 때 일을 하는 법인데 이 스님은 태양이 이글거리기 시작하는 10시쯤에야 일을 시작하여 밖에 가만히 서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그런 뙤약볕에서 일을 하다가 해가 지는 무렵이면 일을 끝냈다. 정말 온몸이 땀에 젖어 금방 물에 빠졌다 나온 사람처럼 젖은 채 하루 종일 일을 하였다. 이렇게 여러 날이 지났으나 스님은 매일매일 죽어라고 일만 했다. 그런 스님에게 나는 말 붙이기도 왠지 꺼려했는데 하도 궁금해서 언젠가 ‘스님, 왜 스님은 예불은 안 모시고 일만 한답니까?’ 하고 물었더니 스님은 별다른 표정도 없이 ‘나는 예불 드리는 거 몰라.’ 라며 마당으로 가서 또 괜한 돌계단을 허무는 것이었다. 진짜로 염불을 못하는 것인지 궁금했고, 염불도 못하면서 어떻게 스님이 되었는지도 궁금했다. 아니 무엇보다도 왜 그렇게 가장 더운 시간에 미친 듯이 일만 하는 지가 가장 궁금했다. 그 스님은 나의 이 궁금증을 풀어주지 않고 언젠가 말도 없이 훌쩍 지장암을 떠나고 말았다. 나는 30년이 지난 지금, 가끔 그 스님이 생각난다. 아니 그는 3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나를 가르치고 있는 것 같다. 모든 일에 말만 앞세우고 말로만 해결하려 들며 몸은 까딱도 않는 나에게 말이 아닌 ‘몸’을 가르쳐준 스승이라는 생각이 든다. ‘말’보다는 ‘몸의 행위’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강변하듯 그의 여름날 노동이 그의 수행법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수행은 말보다도 공부보다도, 온몸의 행위로 진실에 다가가야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기 위한 것은 아니었나 싶다. 입만 벙긋하면 거짓말이 튀어나오는 거짓 덩어리의 이 몸뚱어리, 살아온 세월만큼 두꺼워진 위선의 몸집, 거짓으로 가득 찬 비만의 몸뚱어리에게 ‘진실’이 무엇인가를 이처럼 명쾌하게 가르쳐주는 스승은 아직 없었다. 사실 요즘 현대인들은 가급적이면 모든 일을 ‘앉아서’ 처리하려고 한다. ‘몸으로 뛰는’ 일은 하지 않으려 한다. 그리고 현대 과학기술문명과 컴퓨터 문화의 일반화로 사람들의 생활이 달라지고 삶이 달라져서 몸은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치장’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사는 것 같다. 몸 자체가 이미 하나의 상품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몸을 아름답게 가꾸려고 하는 것, 그 자체는 이해할 수는 있으나 그것의 궁극적인 지향은 결국 몸의 상품성을 높이는 것으로 귀착되는듯하여 씁쓸하다. 요즘 세태를 보면 그렇다는 이야기다. 사실 인류의 역사가 자본주의의 역사로 넘어 오면서 전 지구적 시장경제를 통해 지상의 모든 것은 이미 상품이 되어 버렸으니 ‘몸’인들 그것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인가.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요즘 부쩍 더 30년 전의 그 이름조차 기억이 안 나는 스님이 자주 내 앞에 나타나 어른거린다. (박두규. 시인) -노루귀 / 김인호 -
박두규 12-16 13:29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문학의 길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문학의 길 -‘단순 소박한 삶’을 지향하는 문학 박 두 규 (시인) 1 코로나 국면을 맞고 보니 그동안 꾸준히 거론되어 오던 기후변화에 따른 전 지구적 위기라는 것이 코앞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변화의 급물살을 타고 있는 현실 세계에서 문학은 무엇인가를 다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동안 우리는 문학에 대하여 다양한 관점에서 다양한 논의를 해왔지만 지금의 현실상황을 보면 ‘지구 위기, 인류의 위기’라는 관점에서 문학을 다시 한 번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음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문학도 과학이나 기술처럼 현실에서 우선적으로 ‘지구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실천적 삶 문학에 일정 부분 복무해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래도 문학은 문학대로 지금껏 확장해온 영역이 있고 인류사 속에서 다양하게 그 역할을 해왔으며 또 어떤 특별한 상황 속에서는 그 상황에 맞게 대응해왔기 때문에 지금처럼 그렇게 하면 된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문학이 상상력의 문학이고 영적 문학이라는 점과 ‘지구의 위기, 인류의 위기’의 현실에 대한 복무를 받아들인다면 앞으로 100년의 지구, 100년의 인류를 염두에 두며 글을 통해 더 세밀하게 그려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현재의 과학과 기술보다 100년의 현실을 앞서 이야기하고 노래하며 올바른 방향의 길을 찾는 더듬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2 요즘 쏟아져 나오는 학자들의 글들을 읽어 보면 기후 환경으로 인한 지구의 위기 상황은 현실의 감도보다 훨씬 심각하다. 지금 우리가 해마다 역대 기록을 갱신하며 겪는 자연재해는 단순한 재해가 아니라 대량학살의 위기이며 재앙의 시작이라고 봐야 옳다는 것이다. 인류가 자본주의 문명의 현행 기조를 고수할 경우 2100년에는 탄소배출량으로 인해 지구의 기온이 약 4도 이상 상승한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북극의 빙상은 이미 붕괴된 지 오래고 알프스의 만년설은 70% 이상 녹으며 해수면은 최대 2.4미터 상승할 수 있다고 한다. 인구 천만의 자카르타 같은 도시가 물에 잠기며 세계의 주요도시는 거의 2/3가 해안에 위치해 있으니 그에 따른 발전소, 항구, 농경지 등 주요시설도 함께 위험해질 것이다. 그리고 적도 지방의 주요 도시들은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으로 변한다고 한다. 이미 2018년 폭염 시에 로스엔젤레스 42도, 파키스탄 50도, 알제리 51도에 이르렀다. 그리고 물 부족과 폭염으로 북위도 지역마저도 해마다 수천 명이 죽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21세기가 끝날 무렵이면 코로나와 같은 새로운 질병들, 상상을 초월하는 산불과 홍수의 증가, 수천만 명에 이르는 기후 난민, 경제 대공황과 지역 간의 기후분쟁, 농산물 생산이 크게 줄면서 일어나는 자원전쟁 등 한 해 기준 100조 달러의 세계 피해규모가 예상된다니 앞으로 80년 안에 변화될 지구의 모습을 쉽게 상상해볼 수 있다. 물론 이것은 지금의 자본주의적 개발과 소비 패턴에서 조금도 변화하지 않고 그대로 진행되었을 경우를 전제로 한 것이다. 그리고 이제 코로나19가 해결된다 해도 이전의 시절로 돌아가 예전의 일상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지구와 인류는 이미 변화의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고 새로운 문명이 일어나는 시점이 되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제 기존의 자본주의를 토대로 이루어낸 과학기술문명, 물질문명의 틀에서 벗어나 이전의 의식에서 한 단계 점핑된 도덕적 과학기술과 새로운 정신문명으로의 판짜기 변화가 절실해진 것이다. 그래서 문학은 현재 소비와 개발성장의 자본문명에서 전환하여 인간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켜 갈 것인가를 이야기해야 된다. 포스트 코로나를 맞아 변화되어야 할 의, 식, 주, 의료, 교육 그리고 정치, 경제 등 모든 분야에서까지 기존의 질서와 그 틀을 어떻게 바꿔가야 할 것인지를 이야기해야 할 것이다. 문학은 이 현실 변화의 중심에서 어떤 마음, 어떤 영혼을 가진 인간이어야 하는 것을 그려내야 하는 것이다. 3 지금껏 지구와 인류의 위기를 초래해온 자본문명을 벗어나 새로운 문명을 꿈꾼다면 먼저 기존의 자본주의적 가치관과 세계관 등 일상 속의 대중들에게도 정신적 변화가 있어야만 한다. 생각이 바뀌어야 그 삶이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본질적으로 인간의 욕망과 탐욕이 정제 없이 그대로 반영된 이데올로기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고 빠르면 빠를수록 좋고 그렇게 이익을 극대화하며 개발과 성장의 경제논리로 앞만 보고 달려온 것이 자본주의다. 자본은 배고픔과 위험한 환경 조건에서 풍요로움과 안전함과 편리함을 가져다준 것은 사실이지만 이제는 그 도를 넘어 인간의 끝없는 탐욕의 영역으로 들어선 것이다. 그렇게 인류는 풍요와 편리를 거느린 현실 자본주의를 앞세워 공존공생을 위한 사회적 도덕과 윤리의 경계를 깨고 탐욕과 욕망을 당연하고 정당한 인간 정서로 편입시켰다. 단순하게 이야기 했지만 사실 이런 인간의 욕망과 탐욕이 자본주의와 잘 어울려 끝없이 달려온 결과 현재의 지구와 인류의 위기를 맞았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한 개인의 인간도 그 탐욕이 지나치면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처럼 반성과 성찰을 통해 스스로 변화하지 않으면 인류는 21세기가 끝나는 지점부터는 지금으로는 상상하기 힘든 혹독한 대가를 지불하면서 사피엔스의 종말을 향해 추락해 갈 것이다. 그래서 문학예술은 지금의 시점에서 좀 더 집중적으로 21세기 이후의 현실을 생각하고 그것을 위한 새로운 문명, 새로운 문학예술에 복무해야 한다는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이러한 자본문명에 대응하는 문학을 생각하려면 자본주의의 속성인 탐욕을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철학, 새로운 문화를 궁구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리고 그 ‘새로움’은 어쩌면 삶의 본질과 모든 생명을 아우르는 총체적 근원으로부터 오는 것이어서 그것은 현실 자본주의를 벗어나 근본 진리의 삶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본래 모든 생명들은 함께 어울려 조화를 이루는 하나의 공존공생의 공동체적 존재라는 것과 그것을 위해 인간은 가장 경계해야 할 본성인 ‘탐욕’을 꾸준히 정제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4 나는 이것을 문학이라는 영역에서 생각한다면 ‘단순 소박한 삶을 지향하는 문학’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는 ‘단순한 삶’과 ‘소박한 삶’을 하나로 추구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은 것인데 ‘단순한 삶’의 문학은 개인 스스로를 전체의 한 부분이면서, 그렇기 때문에 전체라는, 그래서 전체를 위하는 것이 나를 위하는 것이라는, 이미 붓다나 예수 등 많은 현자들이 발견했던 동체대비, 궁극과의 합일 등 진리의 삶과 연계되어 있는 것이며 이를 현실로 가져오기 위한 문학을 말한다. 이는 ‘단순성’이라는 진리의 영역을 문학으로 가져오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덧붙이자면 진리는 우리를 자유롭게 하며, 누구나 이해할 수 있고 누구나 실현할 수 있는 ‘단순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진리의 삶은 당장 그렇게 살려는 스스로의 결단과 실천만 있으면 되는 ‘단순성’에서 시작한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진리에 의해 사는 삶’은 어떤 거창한 것은 아니고 현재의 실상을 바로보고 그것에 어긋남 없이 사는 것, 다시 말하면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삶을 사는 것이라고 말한다. 삶의 실상은 모두가 있는 그대로 어울려(연기적 관계를 가지고) 전체가 하나의 생명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며, 그렇게 있는 그대로(본질 그대로) 어울려 순환하고 진화하는 것이 바로 ‘단순한 삶’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자본주의 물질문명의 변곡점에서 문학이 주시해야 할 중요한 화두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와 함께 ‘소박한 삶’은 이런 ‘단순한 삶’을 현실로 가져오기 위한 방법이라고 볼 수 있다. 아니, 사실은 방법이면서 그 본질이기도 하다. 자본주의를 진화시켰던 인간의 탐욕은 끝없는 집착을 가져와 현재 지구의 기후재앙과 함께 모든 문제의 화근이 되었고 이 탐욕과 집착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소박한 삶’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탐욕을 충족시키기 위한 자본의 끝없는 성장 시나리오는 이제 그 한계에 왔다. 대체 에너지 등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많은 과학기술의 노력과 성과가 있다하더라도 인간의 끝없는 탐욕을 충족시킬 수는 없다. 결국은 소박한 삶으로 가지 않으면 해결 될 수 없는 것이다. ‘소박한 삶’은 스스로의 탐욕을 다스리는 삶이고 우리 사회의 대립과 갈등을 조화와 균형으로 이끄는 해답이라고 본다. 이‘소박한 삶’을 통해 모든 생명과 지구가 하나의 완결체로 존재할 수 있는 공존, 공생으로 가는 길을 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본주의 문명을 극복하고 새로운 문명의 길로 가는 길목에 이러한 물질 중심의 삶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가치관을 세우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이런 변화의 물꼬를 트기 위해 ‘단순 소박한 삶을 지향하는 문학’을 생각해 보는 것이다. 이 문학적 화두를 통해 개인의 이기(利己)를 극복하고 무아(無我)와 탈에고(脫ego)의 수준까지 의식을 확장하여 탐욕을 순치(順治)하는데 기여해야 하는 것이 현재의 문학이라고 생각하며 그것이 코로나19와 같은 새로운 질병들과 지구의 기후재앙을 막는데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첫눈이 내린 노고단 -
박두규 10-08 08:51
세석평전細石平田의 추억
☐지리산에서 온 편지 11 세석평전細石平田의 추억 잔돌평전의 저물녘 풍경 세석평전은 지리산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곳이다. 지리산의 최고봉인 천왕봉을 가는 길목이기 때문이다. 경남의 중산리에서 바로 천왕봉으로 올라가는 등산로가 하나 있기는 하지만 그곳을 제외하고는 동서남북 어느 곳에서 오르건 세석평전을 거치지 않고는 천왕봉에 오를 수 없다. 그래서 지리산에 많은 대피소가 있지만 세석평전에는 늘 사람들이 많다. 세석평전은 오래 전엔 잔돌평전이라고 불렀다. 세細가 ‘가늘다’라는 뜻으로 세석은 작은 돌들이 많은 곳이라는 뜻이고, 높은 곳에 있는 펀펀한 땅을 평전이라 하니 세석평전은 작은 돌들이 많은 높고 펀펀한 땅이라는 뜻이다. 이 평전에는 철쭉이 군락을 이루며 피어 있고 지리산맥의 많은 능선들이 굽이치며 내리벋고 있어서 그 청량한 바람과 함께 펼쳐지는 풍광은 장엄 그 자체이다. 사람들이 지리산을 타면서 굳이 주능선 종주를 고집하는 이유는 노고단으로부터 천왕봉까지 서에서 동으로 전남과 경남에 걸쳐있는 첩첩 봉우리들이 만들어내는 긴 능선과 남과 북으로 여러 갈래 벋어있는 지 능선들의 유장한 지리산맥을 걷는 내내 조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계곡과 능선을 넘나드는 구름들과 저물녘 빛을 받아 강하게 굼틀리는 산줄기들의 파노라마는 자신의 감옥에 갇혀 사는 이기적인 소인배를 벗어나 자연의 하나일 뿐인 알몸의 자신을 깊이 성찰하게 한다. 특히 겨울 산의 엄혹한 추위 속에서 수없이 죽어간 사람들을 생각하면 지리산의 저물녘 풍경은 언제나 깊게 사무쳐 온다. 오만과 편견 그리고 세석대피소 뒤에 솟아있는 봉우리가 영신봉靈神峰이다. 그 이름부터가 범상치 않아 한때는 무속적 신앙을 가진 무리가 영신대 아래 기도처를 잡고 집단생활을 하던 때도 있었다. 30년도 더 된 어느 해에 대성계곡의 작은세계골을 타고 영신대까지 오르는 계곡등반을 할 때였는데 세석평전에 텐트를 칠 요량으로(그때는 텐트 치는 것이 허용될 때여서 세석평전에 가면 울긋불긋한 텐트들이 빼곡이 들어차 있곤 했다.) 천천히 계곡을 올랐다. 그리고 어두워지기 시작할 무렵 영신대 근처에 이르러 나는 깜짝 놀랐다. 바위 틈새마다 촛불들이 켜져 있고 군데군데 사람들이 기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텐트와 작은 비닐하우스들이 좁은 공간 여기저기 있는 걸 봐서 이들은 집단 기거하면서 기도하는 사람들이었다. 말을 붙일 엄두도 나지 않아 조용히 그들을 방해하지 않고 그곳을 빠져 나왔다. 대피소 쪽으로 올라와 보니 불빛도 보이지 않은 구석진 곳이었는데 기도처로써는 참으로 명당자리였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엄격하게 관리하는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무엇을 위하여 이 높은 산에까지 올라와 무리지어 기도를 할까. 기도로 자신이 원하는 무엇인가를 이룰 수 있는 것일까. 그 원하는 무엇이라는 것이 겨우 자신이나 가족의 부富나 안위 정도의 이기적인 것은 아닐까. 젊은 치기가 앞서 있던 당시로는 순전히 자의적인 짐작만으로 그들을 재단하고 무시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니 나의 오만과 편견이 얼마나 심했었나를 알 수 있다. 요즘 세태를 보면 개인이건 단체건 기업이든 정당이든 혹은 지역과 나라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영역만을 최우선적으로 옹호하고 챙기는 것이 일반화된 정서인 듯하다. 그리고 그것은 너무 당연한 것이고 전혀 부당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법으로 위법만 아니라면 무엇이든 괜찮다는 생활정서가 이미 우리의 구체적 생활에 깊이 들어온 듯하다. 하지만 이것은 왠지 마음이 불편하다. 양심이라는 것이 불편해 하는 것이다. 사람다운 무엇인가를 팽개치는 것 같아 어떤 헛헛함이 밀려오는 것이다. 세석대피소의 추석 그 시절에는 세석 대피소도 그야말로 조그만 대피소였다. 지금은 증축하여 넓은 공간에 난방도 되어 그때에 비하면 호텔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때는 매우 좁고 한 겨울에도 난방 없이 잠을 잤다. 그리고 추석연휴가 되면 세석대피소는 만원이었다. 언젠가 그 시절 추석연휴에 지리산에 올랐다. 여러 명이 갔는데 텐트 가지고 가기 귀찮아서 대피소를 이용하려고 아무런 준비도 없이 올랐는데 예상 외로 대피소를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대피소 수용 정원이 몇 명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한 다섯 배는 많은 인원이 들이닥쳤던 것 같다. 전에 혼자 잘만한 공간에 다섯 명이 누워야 했기 때문이다. 대피소 직원들은 바로 눕지도 못하게 하고 옆으로 몸을 세운 채로 칼잠을 자듯 꼭 끼워 눕게 했다. 날이 너무 추워 밖에 재울 수는 없었던 거다. 지금은 반드시 예약을 해야 대피소를 이용할 수 있으며 예약이 안 된 사람들은 아예 하산 시간이 확보되지 않으면 산 아래 출발지점 관리소에서 올려 보내지 않고 있다. 어쨌든 화장실에라도 다녀오면 누울 공간이 없어지기 때문에 화장실에도 갈 수 없었다. 그래도 그 정도는 고마운 축에 들었다. 왜냐하면 복도 공간에도 사람들이 줄지어 앉아서 밤을 새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상상할 수 없는 진풍경이었다. 시쳇말로 육이오 때 난리는 난리도 아니었다. 그래도 밖에서 추위에 떨면서는 잠도 오지 않을 뿐 아니라 몸에 이상이 생길 수도 있어서 그냥 안에서 버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많은 인원이 좁은 공간에서 함께 자다보니 코고는 사람들도 많았고 더욱이 땀 냄새며 발 냄새가 지독해서 웬만한 사람은 잠을 들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잠을 자기 위해서는 독한 술이라도 몇 잔 마시고 떨어져야 하는데 또 그런 사람들 때문에 고약한 술 냄새까지 합세해서 여간해서 잠을 잘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어찌하다 두서너 시간 잠들 수 있다면 그것만 해도 고마운 것이었다. 하지만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도 다음 날 산행에 큰 지장은 없었다. 아침에 약간 찌뿌듯했던 몸은 한 시간 정도 산을 타며 땀을 흘리면 바로 말끔해졌기 때문이다. 한 겨울에는 그래도 괜찮았다. 겨울 산을 오르는 사람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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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마리 05-31 05:16
파과
이책은 서문도 없고 작가의 글도 없다. 같은 제목의 다른 책은 작가의 글 같은게 있는 것 같다. 책 열면 바로 시작이고 끝나면 책 껍데기다. 무슨 책이든 작가의 글을 읽는 재미가 있고 책을 쓴 의도도 있는데 도서관용인가? 설마 그런 용도가 있는 건 아니겠지. 1 파과 破瓜: 여자의 나이 16세를 이르는 말. ‘瓜’ 자를 파자(破字)하면 ‘八’이 두 개로 ‘二八’은 16이 되기 때문이다. 2 파과 破瓜: 남자의 나이 64세를 이르는 말. ‘瓜’ 자를 파자하면 ‘八’이 두 개로 두 개의 ‘八’을 곱하면 64가 되기 때문이다. 3 파과 破瓜: 성교(性交)에 의하여 처녀막이 터짐. 4 파과 破果: 흠집이 난 과실. 제목이 뭔지 참 발음하기도 힘들다고만 생각했는데 이런 뜻이 있는 줄 몰랐다. 놀라워라! 모르는 단어도 너무 많은데 아는 것 마저 생각이 안나 낑낑댄다. 어떨 땐 머리가 하얘지며 꼬투리도 잡기 힘들다. 이 책의 제목은 한글만 있으니 정확히 어떤 의미로 썼는지 모른다. 그런데 3번과 4번의 뜻은 교묘히 은유적 함의가 같지 않은가? 어렷을 적부터 집을 떠나 친척집에 살다 우연히 살인하며 킬러가 된 그녀의 삶을 의미하기도 하고 킬러로서는 한 물 간 할매를 상징하는 것 같기도하다. 나는 잘 생긴 남자(이게 중요하다)의 액션 영화를 좋아하고 허트로커 같은 전쟁영화도 좋아하고 범죄 스릴러 좋아한다. 피 줄줄 흘리는 것은 어떻게 촬영했는지 상상하고 심하면 눈을 감는다. 한방에 저격하는 스나이퍼 쥬드로의 에느미엣더게이트 enemy at the gate 같은거 정말 멋지다. 키아누리브스의 매트릭스는 물론 존윅도 다 봤다. 브루스 윌리스, 탐크루즈, 주윤발, 양조위, 견자단...의 액션에 스트레스가 다 날라간다. 중국 무술영화 좋아하고 특히 여자들의 무도와 액션엔 넋이 나간다. 양자경, 장쯔이의 무술을 보면 젊었을 때 안배우고 뭐 했는지 후회한다. 밀레니엄 시리즈 3부작을 보고 루미라파스에 반했다. 남자킬러와 여자킬러가 부부인 미스터앤미세스스미스 느무 부러운 부부다. 맷데이먼의 본 시리즈는 몇번 봤나... 왜 이렇게 책을 보고 영화 얘기를 하는가 하면 바로 이 책의 주인공은 60이 넘은 할머니 킬러다. 킬러 이야기를 읽으니 킬러 영화가 떠오르는 것이다. 70이 되보니 60은 청춘이다. 킬러 아니라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나이다. 60이 안되 본 사람들은 그나이는 너무 익어 뭉그러진 과일 파과(破果)같은 나이라 생각한다. 아니라고는 못하겠지만 꼭 그렇다고도 못하겠다. 썪은 부분을 도려내면 아직 먹을 수는 있다. 맛있는 복숭아를 먹고 남은 것을 냉장고에 보관하는 장면이 나온다. 복숭아 같은 과일은 냉장고에 넣으면 안된다. 파과破果가 된다. 환경이 중요하다. 스릴과 서스펜스와 액션을 영상이 아니라 글로 보다니. 영상의 그 긴장감과 속도감을 과연 글로 표현해 낼 수 있을까? 그런 장면이 나오긴 하지만 이 소설의 주인공 킬러의 격렬한 액션은 단 한번이다. 그녀의 이름은 '손톱'이었다가 '조각'이 되는데 마지막에 네일샵에 가서 손톱을 다듬고 메니큐어를 바른다. 죽을 고비를 넘겼지만 죽지 않았다는 뜻이고 아직도 손톱이 살아있다는 메타포란 생각이 든다. '주인공은 죽지 않는다.'는 법칙은 여기서도 통한다. 구병모란 작가가 남잔 줄 알았는데 여자다. -
홍마리 05-18 10:52
인간으로 사는 일은 하나의 문제입니다
”인간으로 사는 일은 하나의 문제입니다“ 제목이 코믹하다. 부제는 '정치적 동물의 길'이다. ”사실 정치에 관심없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말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일단 뉴스보면 기분 나빠지고 욕 나오니 싫다. 모든 정치적인 것에서 멀어지고 싶다. 사실 별 관심도 없다. 그러나 가만 생각해보면 모든게 정치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사는게 정친데 정치가 싫다? 이 무슨 모순이고 비극인가? 그렇다면 정치가 재밌고 좋아지려면 어찌해야 하나? 뭐 내가 결론내는 건 언어도단이긴 하지만 최소한 내가 불행하지 않으려면 정치가 재밌어야 하겠지? 그런 일이 있을랑가는 몰겄지만 이런 재미있는 정치에세이는 어떤가! 이 책은 전문 정치학 책은 아니고 에세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1부 정치란 무엇인가? 로 부터 시작해 여러가지 정치 얘기를 한다. 쉽고도 재밌다. 또 영화 얘기도 많고 그림 얘기도 많다. 알고보면 이 모두가 정치라는 얘기다. 결국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고 정치 없이 인간은 없다. 뭐 그런 이야기? 당신을 위로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그 위로하는 좋은 말들처럼 평탄한 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 그의 인생 역시 어려움과 슬픔으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 당신의 인생보다 훨씬 더 뒤처져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 좋은 말들을 찾아낼 수조차 없었을 것이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중 P9 정치가 어디 있냐고? 어느 날 눈을 떠보니 이 세상에 태어나 있고, 태어난 바에야 올바르게 살고 싶고, 이것저것 따져보고 노력해보지만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없고, 다른 사람과 함께하려니 합의가 필요하고, 합의하려니 서로에 대해서 알아야 하고,합의했는데도 합의는 지켜지지 않고, 합의 이행을 위해 규제가 필요하고, 규제를 실천하려니 권력이 필요하고, 권력 남용을 막으려니 자유가 필요하고, 자유를 보장하려니 재산이 필요하고, 재산을 마련하니 빈부격차가 생기고, 빈부격차를 없애자니 자원이 필요하고, 개혁을 감행하자니 설득이 필요하고, 설득하자니 토론이 필요하고, 토론하자니 논리가 필요하고, 납득시키려니 수사학이 필요하고, 논리와 수사학을 익히려니 학교가 필요하고, 학교를 유지하려니 사람을 고용해야 하고, 일터의 사람은 노동을 해야 하고, 노동하다 죽지 않으려면 인간다운 환경이 필요하다. 이 모든 것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느닷없이 자연재해가 일어나거나 전염병이 돌거나 외국이 침략할 수도 있다. 공동의 삶을 위해 필요한 것은 많고 쉬운 일은 없다. 이 모든 것을 다 말하기가 너무 기니까, 싸잡아 간단히 정치라고 부른다. 정치는 서울에도 지방에도 국내에도 국외에도 거리에도 집 안에도 당신의 가느다란 모세혈관에도 있다. 체지방처럼 어디에나 있다, 정치라는 것은. P23-24 정치 공동체는 자연의 산물이다. 그리고 인간은 본성상 정치적 동물이다. 우연이 아니라 본성상 정치 공동체가 없어도 되는 존재는 인간 이상이거나 인간 이하다. -아리슽텔레스 "정치학" 중 p25 폴리스 시민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졌던 정치가 페리클레스는 다음과 같이 단호하게 말한다. "우리 아테네 사람들은 공적인 일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을 초탈한 사람이라고 존경하지 않고, 쓸모없는 인간으로 간주한다." p29 모든 권력을 싫어한다는 말은 모든 욕망을 무시한다는 말이며, 모든 욕망을 무시한다는 것은 삶을 혐오한다는 것이다. 권력은 권력만 없었으면 가능하지 않았을 여러 일을 가능하게 한다. 사람은 종종 목표를 지향하고, 그 목표는 권력의 향사를 통해 달성된다. 아무 것도 도모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 까. 체속을 초월하겨고 드는 선사도 해털을 도모한다. 마음의 고요를 얻기 위해서도 마음의 파도를 잠재우는 어떤 나직한 힘이 필요하다. 정말 아무것도 도모하지 않겠다면 어딘가 조용히 숨어서 자신의 멸종 소식을 기다려라.p53 근대 정치 이론의 초석을 놓은 토머스 홉스는 저서 "리바이어던"에서 그처럼 한갓 사적 인간이 정치적 존재로 변신하는 과정에 주목했다. 낱낱이 흩어져 있던 인간들이 어떻게 단일한 의지를 가진 권력체를 창출할 수 있는 것일까. 어떻게 정치적 존재로 변신하는 것일까? 그냥? 심심해서? 그렇지 않다. 그들은 죽지 못해서 변신하는 것이다. 변신하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으므로. "지속되는 두려움과 난폭한 죽음의 위협"으로 인해 인생이 고독하고, 열악하고, 고약하고ㅡ 잔인하고, 짧아질까 봐" 변신하는 것이다. 어찌해볼 도리가 없을 정더로 괴롭기 때문에 정치적 존재로 변신하는 것이다. 그 변신 덕분에 인간은 비로소 삶을 견딜 수 있게 된다. 투표는 인간이 정치적 인간으로 변신했던 그 위대한 상상을 되살리는 축제다.p109 다민족 국가를 다스리는 일의 어려움은 피터 반 더 보트의 1578년 작품에 잘 드러나 있다. 온갖 짐승들의 머리가 달려 있는 거대 괴물을 정치 및 종교 지도자들이 당혹스럽게 바라보고 잇다. 이 괴물은 다민족 제국의 여정을 시작하던 16세기 후반의 (오늘날)네덜란드를 상징한다. 그러나 다민족 국가가 반드시 통치의 어려움만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다. 잘만 소화하면 그것은 활력의 근원이 될 수 있다. 유럽 각국이 가톨릭이냐 프로테스탄트냐의 갈림길에서 탄압과 전쟁을 일삼고 있을 때, 네덜란드는 적극적으로 관용 정책을 택했다. 그에 따라 칼빈주의자뿐 아니라 가톨릭 루터교, 유대교, 재세레파 신자 등 타국에서라면 이교도로 낙인찍혀 핍박을 받았을 인재들이 네델란드에 몰려와 살게 되었다. 17세기 초 암스테르담 인구의 40퍼센트를 이민자가 차지할 정도였다. 다양해진 인구 구성을 장애물이 아니라 활력으로 승화시켰을 때, 네덜라드는 본격적인 번영을 구가하게 된다. 오늘날 많은 네덜란드 사람들은 자기 나라가 향유하고 표방해온 다양성과 자유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다. p196 -
홍마리 04-30 17:39
지구의 미래
카를로 페트리니 (Carlo Petrini) 전 세계 150개국에 10만 명의 회원을 보유한 국제운동단체 ‘슬로푸드’를 설립한 인물이자, ‘테라마드레’, ‘살로네 델 구스토’ 등 슬로푸드 활동을 주도하고 있는 카를로 페트리니는 1980년대 중반 로마에 맥도날드 매장이 들어서는 것을 반대하는 데 앞장선 일로 유명해졌다. 과거에 공산주의 운동에 적극 참여했으나 현재는 이탈리아 중도좌파 사회민주주의 정당인 민주당 당원이다. 2004년에는 지속가능한 먹거리체계를 뒷받침할 새로운 미식가와 먹거리 혁신자를 양성하기 위해 미식과학대학을 설립했다. 그해에 《타임》은 그를 ‘올해의 영웅’ 중 한 명으로 선정했고, 유엔은 그를 ‘지구의 전사’라고 불렀다. 2016년 5월, 유엔은 그를 ‘FAO 기아퇴치 유럽 특별대사’로 임명했다. 지은 책으로 《슬로푸드Slow Food》, 《슬로푸드 제국Slow Food Nation》(한국에는 《슬로푸드, 맛있는 혁명》으로 소개되었다), 《슬로푸드 혁명Slow Food Revolution》 등이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 (Jorge Mario Bergoglio) 본명은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 1936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태어났다. 이탈리아 이민자 가정에서 자랐고, 대학에서 화공학을 전공했지만 신학교에 들어갔다. 1973년 예수회 최종 서원, 2001년 추기경 서임, 2005년부터 2011년까지 아르헨티나 주교회의 의장을 거쳐 2013년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로마 가톨릭 교회 역사상 첫 아메리카 대륙 출신 교황이자 첫 예수회원 교황이며, 1282년 만의 비유럽 지역 출신 교황이다. 그의 교황명은 성인 아시시의 프란치스코의 이름을 딴 것이다. 프란치스코회는 청빈한 삶을 살며 사회적 약자들의 곁에서 복음 활동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 역시 검소한 것으로 유명하다. 교황임에도 전용 관저를 쓰지 않고, 일반 사제들이 타는 셔틀버스를 이용하며, 복식 또한 화려하지 않다. 성 프란치스코는 이슬람교도와의 평화를 도모하기도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즉위 이후 해외 방문 가운데 절반 이상을 비가톨릭 지역을 방문하는 데 할애하며 전 지구적 평화를 호소하고 있다. 2019년에는 아라비아 반도를 방문한 첫 교황이 되었고, 2021년에는 최초로 이라크를 방문한 교황이 되었다. 이라크 방문에서는 시아파 최고 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알시스타니를 만났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시아파 지도자와 수니파 지도자를 모두 만난 첫 교황이다. 성 프란치스코는 동물, 자연환경의 수호성인이기도 하다. 프란치스코 교황 역시 회칙 <사랑하는 아마존>을 비롯 여러 곳에서 지구와 환경에 관한 관심을 지속적으로 촉구하고 있다. 교황: 내가 아는 훌륭한 철학 교수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아이들과 노는 능력을 통해 한 사람을 평가하고 자질을 가늠합니다."라고 말입니다. 아이들과 잘 놀지 못하는 자는 성숙한 사람이 아니라는 겁니다.p100 교황: 남자든 여자든 기혼자가 고해성사를 보러 오면 항상 자신의 아이들과잘 놀아주는지를 묻곤 합니다. 부모는 일 때문에, 피곤하다는 이유로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보다 귀찮다는 듯이 떨쳐내려고 합니다. 그러나 아이들과의 놀이는 시와 같습니다. 아버지는 감흥을 담은 시로 자녀들을 잘 교육할 수 있습니다.p100 교황: 음,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과의 일관성입니다. 일관된 사람이라면 문제 될 게 없습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일관성이 없었죠!p101 생물의 다양성 -카를로 페틀리니 우리는 1900년 이후 전체 농업에서 생물 다양성의 70%이상을 잃었고, 역사적으로 인간이 식량으로 사용한 전체 동.식물종 가운데 3분의 2이상이 사라졌다. 그 이외의 생물종도 똑같이 놀라운 속도로 소멸이 진행되고 있어 유전적 빈곤이 인류 존재의 특징이 되는 세상을 예고한다. 이런 역사적 시기에 보통 과거 지질시대를 겨냥한 '대멸종'이라는 표현이 거론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p108 교황 회칙 <찬미 받으소서>에서 광범위하게 다룬 '통합 생태론'의 개념이 대두되었다. 이 개념은 " 사회 운동 없이 환경 운동도 없다" 말로 요약될 수 있다. 요컨데 중대한 사안인 환경 보호는 사회적.경제적 불평등 문제화 밀접하게 연결시키지 않으면 단호하게 맞설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문제의 근원, 즉 문화적 다양성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는 상징적 의미뿐 아니라 새로운 패러다임을 추구하고 수용하면서 인본주의를 구축하기 위한 실질적인 정치 요소도 포함된다. p110 범아마존 지역을 구성하는 9개국에는 390개 민족, 국가를 대표하는 300만 명가량의 원주민이 살고 있다. 여기에 민족 중심적인 '문명'을 지키며 외부 세계와 접촉하지 않는 것을 선택한 사람들, 즉 자발적 고림 상태의 토착 부족이 110-130개 추가된다.p110 토착민의 우주론, 즉 지구와 자연의 일부로서 인류를 바라보는 시각은 오늘날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가장 이상적인 미래관이다. 이는 균형과 순환, 절제와 나눔, 지구의 끊임없는 진동 가운데서 신성을 볼 수 있는 영성에 기초한 접근 방식이다. p112 한편 영성은 인간의 근본적 요소이고 성, 의지, 욕망, 삶의 충동, 이성과 마찬가지로 본질을 구성한다. 그러므로 나는 새로운 인본주의를 재건하고 지구에서 형제로 살아가는 새로운 방법을 찾는 길은 열정적인 영성의 함양과 분리될 수 없다고 확신한다. 나는 특히 이 점을 진보주의와 좌파 진영에 호소한다. 오늘날 그들은 수 세기 동안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세계관을 대표한 가톨릭교회를 통해 이따금 '좌파를 초월하는' 위치에 있다. 지금 시대에 활동가가 되는 것은 영성 없이는 불가능하다. 개인과 세상을 깊이 있게 연결하고 큰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으면서 우리가 필요로 하는 사회와 인간 혁명의 중요성을 진정으로 이해하는데 영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p113 다음은 많은 사람이 과학적 사고의 상징으로 여기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한 말이다. "신비에 눈뜨지 않는 사람은 아무것도 보지 못한 채 삶을 살아갈 것이다." 우리 세계의 가장 큰 신비는 인류의 다원성과 심오함이다. p114 사랑하는 아마존: 프란치스코 교황 중요한 것은 아마존 지역의 발전입니다. 그러나 이는 아마존 지역을 문화 식민지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지역 스스로 자신의 최상 것을 이끌어내도록 돕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것이 바로 교육이 해야 하는 일입니다. 곧 뿌리 뽑지 않으면서 함양하고, 정체성을 약화시키지 않으면서 성장을 촉진하며, 침해하지 않으면서 도와주는 것입니다. 자연이 그 잠재력을 영원히 잃어버릴 수 있는 것과 같이, 아직 전달해야 할 메시지가 있는 문화도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오늘날 그 어느 때보다 문화가 위협받고 있습니다.p115-116 우루과이의 전 농민대통령 호세 페페 무히카는 어느날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것이 있기에 가난하지 않습니다.가난하다는 것은 가진게 없다는게 아니라 공동체 밖에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그렇지 않습니다. "부와 거난의 차이에 대한 그의 생각에 동의한다. 고독 속에서는 번영도 복지도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p216 -
홍마리 03-08 09:52
다섯번째 산
작가 파울로 코엘료는 전 세계 170개국 이상 83개 언어로 번역되어 3억 2천만 부가 넘는 판매고를 기록한 우리 시대 가장 사랑받는 작가. 1947년 리우데자네이루에서 태어났다. 저널리스트, 록스타, 극작가, 세계적인 음반회사의 중역 등 다양한 방면에서 활동하다, 1986년 돌연 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로 순례를 떠난다. 이때의 경험은 코엘료의 삶에 커다란 전환점이 된다. 그는 이 순례에 감화되어 첫 작품 『순례자』를 썼고, 이듬해 자아의 연금술을 신비롭게 그려낸 『연금술사』로 세계적 작가의 반열에 오른다.(출판사) 세상 모든 사람은 피하라 수 없는 일의 영향을 받는다. 어떤 이들은 극복했고 어떤 이들은 포기했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비극의 날개가 우리 인생을 스쳐지나가는 경험을 한 적 있다. 이유가 뭘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나는 엘리야를 따라 아크바르의 시간 속으로 떠났다. 파울로 코엘료p12 "인간은 선택을 내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지." 천사가 대답했다. "결정을 내리는 힘이 바로 너의 능력이다."p192 "그보다 더 어려운 건 자신의 길을 분명히 정하는 것이다. 선택을 하지 않는 자는 아직 숨을 쉬고 길을 걷고 있다 하더라도 신의 눈에는 죽은 것과 같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다. 누구도 죽지 않는다. 영원함은 모든 영혼에게 열려 있고 저마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해나갈 것이다. 태양 아래 있는 모든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p193 하느님은 인간으로 하여금 당신과 정면으로 맞서고 당신의 질문에 대답하게 하신다. "왜 너는 그토록 짧고 고통으로 가득한 존재에 그토록 매달리느나? 너의 싸움의 의미는 무엇이냐?"p279 아이들은 항상 어른에게 세 가지를 가르쳐주죠. 별 이유 없이도 행복해하기, 무언가에 항상 몰두하기, 그리고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 위해 온 힘으로 매달리기. 제가 아크바르로 돌아온 것도 저 아이 때문입니다. p276 "주님의 말씀은 네 주변의 온 세상에 쓰여 있단다. 네 삶에 일어나는 일에 주의를 기울여보면 너는 하루의 순간순간 주님께서 당신의 말씀과 뜻을 숨겨놓으신 곳을 찾을 수 있을 거야. 주님이 시키시는 일을 해내도록 노력하렴. 그것이 네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유일한 이유란다."p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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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주옥 09-18 20:04
[9월23일] 923지리산기후정의행진
923지리산기후정의행진 케이블카, 산악열차, 골프장, 양수댐 지리산과 지리산 마을에 닥친 대규모 개발 사업들 기후위기, 기후재난시대, 지금 이대로의 지리산을 꿈꾸며 지리산에서 923기후정의행진을!! 923 지리산기후정의행진에 참여하려면 ● 지구와 지리산에 닥친 위험한 신호가 담긴 손팻말은 각자 준비합니다. ● 초가을 꽃들과 이야기 나누고, 새들의 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걷습니다. ● 낮밥과 물, 맛난 새참은 각자 가지고 옵니다. ● 성삼재주차장과 노고단에서 진행하는 퍼포먼스에 적극 참여합니다. ● 성삼재까지는 대중교통을 이용합니다. 자세한 일정은 9시30분 성삼재 주차장에서 퍼포먼스 10시 노고단대피소까지 천천히 걷기 11시30분 낮밥 (노고단대피소 앞) 12시 노고단으로 천천히 이동하기 13시 노고단에서 퍼포먼스 13시30분 소감 나눈 후 성삼재로 *대중교통을 이용할 분은 구례버스터미널에서 8시40분 버스를 타고 성삼재로 올라가고, 성삼재에서는 15시 20분 버스를 타고 구례버스터미널로 내려옵니다. -
문홍현경 09-09 10:32
네가 사라지면 나도 사라질 거야
지리산-노자산-가덕도 연대 탐방 워크숍 뒷이야기 네가 사라지면 나도 사라질 거야 _문홍현경 사진1. 신비한 생명의 숲, 노자산. 혼자서는 살 수 없다고 가르치시려고 “먼저 가세요.” 결국, 내뱉고야 말았다. 정상까지는 반도 넘게 남았는데 내 체력은 벌써 바닥을 보였다. 좀처럼 유산소 운동은 안 해오던 탓도 있었겠지만, 구례에서 거제까지 두 시간 정도 차를 타고 오면서 멀미한 탓이 커 보였다. 숨이 차고 어지럽고 속이 매스꺼워서 참다 참다 멈춤 단추를 누르고야 말았다. “좀 어지러워서요, 다들 올라가시면 뒤꽁무니 보고 따라갈게요.” 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도움의 손길이 밀려왔다. “가방 이리 주세요.” “기다렸다가 같이 갈게요.” “물 좀 드릴까요?” “과자나 뭐 달곰한 거 좀 드실래요?” “이거 지팡이 쓰세요.” 짐이 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손사래를 쳤지만, 이미 내 가방은 다른 이의 어깨에 가 있었고 한 손에는 과자 몇 개가 쥐어져 있었으며 다른 한 손엔 지팡이가 들려 있었고, 이내 목구멍으로는 누군가 건넨 단물이 넘어가고 있었다. 도움 더하기 도움에 가까스로 또 발을 떼 본다. 이제 제대로 알 것 같았다. 혼자서는 살 수 없다는 사실을 가르치시려고 시련을 주셨다는 걸. “고맙습니다.” 도움이 되고 싶어 따라왔다가 도움을 받고 가려니 고맙고 미안했다. 내가 따라나선 이 길은 지리산사람들의 지리산-노자산-가덕도 연대 탐방길이었다. 지리산골프장과 구례 양수발전소 건설에 맞서는 시민들도 함께한 든든한 걸음이었다. 첫째 날엔 노자산골프장 예정지 산행을, 다음 날엔 가덕도신공항 예정지 탐방을 이어가기로 했다. 그런데 이런 저질 체력으로는 내일이 없어 보였다. 그치만 절대 그만둘 생각은 없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오르고 싶었다. 이 정도도 못 하고 포기하면 안 된다는 생각. 이 숲을 다 벗겨 골프장을 만들려는 인간들한테 지고 싶지 않은 독기. 뭐 그런 마음이었던 것 같다. 나를 혼자 남겨둘 수 없다며 옆을 지켜 준 노자산지키기시민행동 팔색조(별칭) 님을 포함하여 모두의 응원을 받아 계속 힘을 냈다. 사진2. 노자산 나무와 케이블카. 시끄럽게 오가는 케이블카를 바라보며 나무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짚을 수 있는 나무가 보이면 보이는 대로 살짝 의지했다. 굴참나무, 팥배나무, 소나무, 때죽나무, 노각나무, 소태나무, 갖가지 나무들이 나를 지지해 주었다. 지금 이 나무들 말고도 내가 기대고 선 것들이 얼마나 많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웬 나무 하나를 짚었는데 나무껍질이 마치 용의 눈처럼 신령스러운 동물의 눈을 닮아서 깜짝 놀라기도 했다. 올라갈 때는 제정신이 아니었기에 사진 찍을 겨를도 없어 그 나무를 사진에 담지는 못했지만, 내려오는 길에 비슷한 나무를 발견하고 사진에 담았다. 사진3. 까치박달나무 기둥. 껍질 무늬가 신령스러운 동물의 눈처럼 생겨 나를 바라보는 듯했다. 나중에 나무 박사님 못난이에게 물으니 까치박달나무라고 했다. “까치요? 새, 까치?” “아니, 무좀 걸린 적 있어요? 무좀 걸리거나 발에 굳은살 생겨서 살이 갈라져 터질 때가 있는데, 겉살이 실금처럼 갈라져 터지면 안에 속살이 보이잖아요. 그 까치눈 모양처럼 생겼다고 해서 까치가 붙어요.” ‘아, 용의 눈이 아니라 까치눈이었구나.’ 바보 같은 생각을 했더랬다. 아무튼 내가 정상까지 오르는 데 못난이의 나무 강의가 큰 도움이 됐다. 내 느린 걸음에 맞춰 천천히 걸으며 이건 뭣이고, 저건 뭣이고 하면서 온갖 나무들을 얘기해 주었다. 이름만큼이나 생김새도 다양하고 만졌을 때 느낌도 달랐다. 못난이의 나무 이야기에 정신을 뺏긴 덕에 힘들다는 생각을 덜 하게 됐다. 알고 보니 그러려고 못난이는 일부러 나를 붙잡고 나무 강의를 들려준 거였다. “헉.” 딱 봐도 힘들어 보이는 가파른 길이 나왔다. 또 주저앉은 나에게 못난이가 다 죽은 듯 보이는 나뭇잎 하나를 주워서 냄새를 맡아 보라고 건넸다. 신기하게 향이 났다. 나뭇잎 향을 맡으니 기운이 돋는 듯했다. 못난이가 이름을 가르쳐 주었지만 까먹었다. 다행히 그다음으로 건네준 나뭇잎은 기억하고 있다. 비목이라고 했다. 이름을 또 까먹지 않으려고 코 비(鼻)자를 생각하며 잘게 자른 비목 나뭇잎을 코에 바짝 갖다 댔다. 나뭇잎에서 다채로운 향이 나는 것도 신기했고, 그걸 또 알아보고 갖다 주는 못난이도 신기했으며, 향기만으로도 몸에 기운이 돌다니 그것 또한 신기했다. 마법의 숲이로세. 사진4. 멸종위기종 대흥란. 우리가 운이 좋았는지 이 시기에 잘 피지 않는다는 대흥란이 하나 피어 있었다. “환경영향평가서에 대흥란은 골프장 개발지 바깥 3곳에서만 95개체 발견되었다고 기술되어 있었지만, 올해 7월 낙동강유역환경청 등이 공동 조사를 벌인 결과, 대흥란은 골프장 개발지 전역에서 727개체를 확인했다.”(오마이뉴스) (사진 최상두) 나는 어느새 기어가고 있었다. 두 손으로 바위나 계단 등을 짚고 그 뒤를 다리가 따라왔다. 몇 번을 주저앉아 쉬었더니, 의도하지 않게 흙을 가까이 들여다보게 됐다. 아주 작은 생명이 쉴 새 없이 움직이는 게 보였다. 살면서 처음 보는 곤충들도 있었다. 아주 작은 버섯, 아주 작은 풀도 보였다.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 생명은 또 얼마나 많을까. 100만 평 골프장이 생기면 다 사라질 것들이었다. 대흥란, 거제외줄달팽이, 팔색조, 긴꼬리딱새 같은 멸종위기종이 발견되어도 싹 다 밀어내고 골프장을 짓겠다는 사람들에게 멸종위기종도 아니고, 천연기념물도 아닌 이 작디작은 생명들은 있어도 없는 존재들이다. 조금만 가면 된다는 말, 이제 다 왔다는 말 “누구 뒤에 더 오십니까?” 맨 앞에서 사람들을 이끌던 노자산지키기시민행동 원종태 님(생태조사담당)이 아주 커다란 바위 아래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벌써 다른 이들은 모두 전망대에 도착해 쉬고 있었고, 그는 뒤처진 우리가 길을 못 찾을까 봐 기다린 거였다. “우리가 마지막입니다.” “그래요, 이제 조금만 오르면 됩니다. 다 왔어요.” 다 왔다고. 다 왔다고! 조금만 오르면 된다는, 다 왔다는 그 말이 어찌나 반갑던지. 생태 학살에 맞선 모든 싸움도 다 왔으면 좋겠다. 이제 더는 없으면 좋겠다. 골프장이 생긴다는 노자산과 지리산을 끝으로, 신공항을 짓겠다는 가덕도를 끝으로 더는 막개발 때문에 싸울 일이 없으면 좋겠다. 아, 이제 다 왔다, 하는 생각으로 전국 아니 전 세계에서 생태 환경 운동하는 이들이 희망을 보면 좋겠다. 현실은 시궁창이다. 기후변화, 기후위기, 기후재앙으로 단어가 바뀌는 동안에도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가파르게 올랐고, 해수면 온도 역시 해마다 역대 최고치를 갈아엎고 있다. 폭염, 산불, 긴 장마, 홍수, 가뭄 같은 재해 소식은 여기저기서 너무 쉽게 들린다. 엄청난 탄소를 흡수하던 산호는 하얗게 죽어 가고, 늘 얼어 있던 영구동토층은 녹았다. 인간이 화석연료를 끄집어내 펑펑 썼는데도, 여태 지구가 남아 있을 수 있게 버텨 주던 모든 자연 순환 장치들이 다 임계치에 다다랐다고 경고를 보내고 있다. 그러면 이제 좀 정신 차려야 하지 않나. 언제까지 골프장, 케이블카, 양수발전소, 신공항 타령이나 하고 앉아 있을 건지. 어느 모로 보아도 타당하지 않은 이야기로 개발을 부추기는 사람들은 지구의 경고가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그러니 숲이 사라진다는 말에도 ‘어쩌라고’ 자세다. 기후위기가 이렇게 심해지면 결국 먹을 것도 사라질 텐데, 돈 먹고 살 참인가? 사진5. 노자산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모습. 100만 평에 골프장이 들어서면 축구장 450개 면적 숲이 벗겨지고, 나무는 최대 200만 그루가 사라진다고 한다. 겨우겨우 전망대에 올라 바라본 노자산 위아래 풍경은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여기가 다 사라질 겁니다. 저어기 끝에서 저어기까지 다요. 요 능선, 요 능선, 그다음에 지나서 저쪽 능선까지.” 100만 평이라고 했다. 인간이 만든 측량 단위로는 감이 오지 않던 넓이가 눈으로 보니 실감할 수 있었다. 거대한 면적이었다. “왜요?” 하고 묻고 싶었다. “골프장 때문에요”라고 누군가 답하겠지만, 그럼 또 “왜요”라고 묻고 싶었다. 끝없이 “왜요, 대체 왜요, 이게 왜 사라져야 해요?” 하고 묻고 싶었다. “어리석은 사람들 때문이지요”라는 답이 돌아오겠지, 저 하늘에서. 얼마 전 노자산지키기시민행동은 노자산에 골프장을 만들려는 거제남부관광단지개발 사업의 환경영향평가가 거짓 작성되었다고 해당 업체를 고발했다. 대흥란, 거제외줄달팽이 등의 개체 수가 실제보다 더 적게 쓰였고, 생태·자연도 1등급 비율도 실제보다 낮은 것처럼 보고되었다고 했다. 모두 시민의 힘으로 알아낸 결과였다. 아이들부터 시민과학자까지 힘을 모아 노자산을 지키고 있었다. 다행이다. 이들이 있어서. 사진6. 노자산에 살지도 않는 중국단풍나무 등을 케이블카 기둥 옆에 갖다 심어 놓은 꼬락서니. ‘찰칵찰칵’ 노자산에 들어선 케이블카 기둥 옆에서 못난이가 사진을 찍고 있었다. 누군가가 뭘 찍느냐고 묻자 못난이는 안타까워하며 말했다. “중국단풍. 노자산 식생을 하나도 모르고 심어 놨어. 케이블카 세운다고 나무를 다 베어 놓고, 겨우 다시 심어 놓았다는 게 이 모양이네. 노자산에 사는 나무들이 뭔지도 모르고. 쯧쯧.” 이 모양이다. 아무거나 갖다 꽂아 놓기. 골프장은 이 모양도 안 나올 거다. 숲을 파헤쳐 농약과 제초제 마구 뿌려 대고 어마어마한 물도 끌어다 쓰는데, 온갖 미사여구를 갖다 붙인다 한들 골프장은 지구에서 좋은 모양이 될 수 없다. 찬성 측에서 천연기념물이든 멸종위기종이든 골프장 짓다가 나오면 다른 데로 옮겨 주면 되지 않느냔 말이 나왔다던데, 이렇게 기발한 생각을 하는 이들이 왜 이 숲이 사라지면 안 되는지를 상상하지 못하나. 있는데, 없을 겁니다, 이러다가는 사진7. 아미산전망대에서 멀리 보이는 가덕도와 도요등 그리고 둘레 섬들. “여기도 싹 다 없어질 거예요. 저 산, 저 산 다 깎이죠. 저기 마을 다 사라지고, 이 바다도 매립되고요. 대항전망대에서 마을 봤죠? 거기도 다 사라질 겁니다.” 워크숍 둘째 날, 가덕도신공항반대시민행동 김현욱 집행위원장님과 함께 가덕도신공항이 생기면 사라질 곳들을 둘러봤다. 대항전망대 아래로 보이던 마을도, 새바지항 멀리 보이는 파도와 둥근 돌 해변도, 외양포항에서 본 포진지와 모든 역사적 증거로 남은 공간들도, 울렁울렁 이어지는 산도 다 사라질 것들이었다. 지금은 있는데 앞으로는 없을 것들이었다. 사진8. 가덕도 포진지가 있는 외양포 마을. 1904년 러일전쟁 당시 일본군이 원주민을 몰아내고 진해만 요새 사령부를 만든 마을이다. 대포 자리와 포탄 저장고가 있는 이 마을엔 일본식 가옥, 일본식 공동목욕탕, 헌병대 막사, 일본군사령부 포진지를 나타내는 ‘사령부발상지지’ 비석도 모두 그대로 남아 있다. 100여 년 전 진해만 요새 사령부 주둔 당시 침략의 역사를 간직한 이 마을 역시 신공항이 들어서면 모두 사라진다. 여기가 사라진다는데도 기어이 들어온 것들도 있었다. 새로 지은 패널 집들이 눈에 띄었다. 신공항이 생길 거라는 소식에 어중이떠중이 덤벼 대충 집처럼 생긴 것들을 박아 놓은 모양이다. 신공항이 생기면 다 사라질 마을에 으리으리한 카페들이 척척 올라갔다. 보상을 바라는 이들이 미리미리 손쓴 모양이다. 보상을 받기 위해서라도 신공항이 들어서길 바라는 사람들은 신공항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목소리 낼 수 없게 또 미리미리 손을 쓴다는데. 집행위원장님은 외롭게 싸우는 듯 보였다. “가덕도 둘레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낙동강 하류 철새도래지와 습지보호구역도 있어요. 여기 보이는 바다도 해양생태도 1등급인 지역으로 상괭이가 살아요. 아직 결정도 안 된 엑스포를 명분으로 내세워서 무리하게 공사를 강행하려고 합니다. 그런데도 무슨 상괭이가 밥 먹여 주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신공항이 생길 가덕도를 바라보기 위해 아미산전망대에 올랐을 때, 기어이 그의 눈물이 터지고야 말았다. 그가 삼킨 말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모자를 내려 그의 눈을 바라보지 않았다. 그가 맘껏 울고 엉엉 소리 내어 울고 마구마구 가슴속 응어리를 터뜨리면 좋겠다 싶었다. 그는 조용히 눈물을 훔치고는 빨개진 볼을 쓰다듬을 뿐이었다. 가덕도신공항은 다음 해인 2024년 말 착공해 2029년 12월 조기 개항을 목표로 한다고 한다. 여의도 면적의 두 배가 넘는 규모(666만 9,000㎡)라고. 초안보다 목표 개항 시점을 6년이나 앞당긴 데다가, 가장 최근 발표한 사업비만 15조 4,000억 원으로 앞으로 사업비가 늘어날 수도 있다는데. “가덕도신공항 예정지엔 멸종위기 야생동물 1·2등급인 삵과 솔개, 수달, 표범장지뱀이 살고 있어요. 생태·자연도 1등급 지역이에요. 국내에서 거의 유일하게 100년 이상 보존된 동백군락지도 있어서 전문가들도 이런 숲은 없애선 안 된다고 말해요.” 김현욱 집행위원장님은 가덕도의 생태적, 역사적 가치가 어마어마한데도 부산 엑스포를 내세워 완공 시기를 앞당기려고만 하는 정책에 한숨지었다. 우리는 100년 넘게 보존된 동백군락지를 가 보고 싶었지만 시간이 부족해 가지 못했다. 사실 나는 체력도 바닥난 상태였다. ‘다음에 갈게. 그때도 무사히 있어 줘, 제발.’ 다음엔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안 보고 싶은 건 따로 있는데. 다음에 또 만나요, 무사히 우리의 연대 탐방은 이렇게 마쳤다. 거제 노자산골프장도, 가덕도신공항도 절대 안 되는 까닭은 차고 넘친다. 그 가운데 일부를 우리가 보고 왔다. 또 우리는 사람들을 보고 왔다. 보존해야 할 존재들이 버젓이 있는데 없다고 하는 것들에 맞서는 사람들을. 때로는 유쾌하게, 때로는 열렬하게 맞서는 사람들이었다. 한 사람씩 고개를 돌려 하나, 둘, 셋 숫자를 세며 서로 안전한지 확인하듯, 우리는 고개를 돌려 서로 ‘있음’을 확인하고 왔다. 이번 지리산-노자산-가덕도 연대 탐방을 마무리하며 모두가 하나같이 공감한 생각은 바로 연대의 힘이었다. 너무 뻔한 말이지만, 진짜 연대만이 살길이라는 생각이 맨 마지막까지 남는다. “팔색조가 밥 먹여 주냐? 상괭이가 중요하냐?” 묻는 사람들이 더 생기지 못하게 하려면, 비인간-비자본 존재들 생각에 눈물 흘릴 줄 아는 이들이 손잡을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팔색조가 밥 못 먹는 세상에선 우리도 밥 못 먹는다, 상괭이가 중요하지 않은 세상에선 무엇도 소중해질 수 없다”는 당연한 소리가 묻히지 않기를 바라며 구례로 돌아왔다. 다리는 후들거리지만, 마음은 좀 더 단단해진 듯했다. -
차라 08-30 20:27
[9월 9일] 나는 왜 옷이 아니고 나인가?
나는 왜 옷이 아니고 나인가????? 석유산업 다음가는 기후악당 패스트패션! 전세계 물낭비의 20%가 패션산업이 차지한다는 사실을 아셨나요? (2019 유엔보고서) 우리가 잃은 건 깨끗한 물과 공기만이 아니에요???? 우리는 무얼 쫓아 지구에 옷무덤을 만들었고 또 무얼 잃어버렸을까요? 우리는 옷과 나를 구분하기 어려워요. 옷에 따라 기가 죽거나 우쭐해지고 삶의 모양이 달라지기도 해요???????? 옷이 그렇게나 중요한데, 나는 왜 옷이 아니고 나인가요? 지리산방랑단(@jirisan_nomad)이 패피(@papi_ecofemi)와 함께 옷이야기하는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패피는 패스트패션에 저항해 기후위기와의 연결성을 알리는 에코페미니스트 모임이에요. 패스트패션 속에 가려진 나와 옷의 이야기 나눠요. ✅ 23년 9월 9일(토) 13-15시, 지리산사람들 사무실(봉서산정길 61-3) ✅ 1부: 패스트패션과 기후위기 - 패피강연 ✅ 2부: 열려라 이야기 옷장 - 옷과 나의 관계를 돌아보는 마음나누기 - 나누고픈 나의 옷 새로운 주인 찾아주기 ✅ 준비물 추억이 가득하지만 더는 안 입는 옷, 누군가에게 선물하고 싶은 옷, 정성껏 입양보내고 싶은 옷 등 나눌 옷 한 벌을 가져와 주세요. 옷에 얽힌 이야기를 아주 간단해도 좋으니 말해주세요. (장터가 아니에요. 너무 많은 옷을 가져오지 말아주세요. 옷 하나면 충분합니다!) ✅신청: 010-8784-9003로 이름과 함께 문자 남겨주세요! 불참 시 반드시 사전 알림 주세요! -
윤주옥 08-10 06:25
[923 기후정의행진] 위기를 넘는 우리의 힘
[923 기후정의행진] 위기를 넘는 우리의 힘 2019년 9월 21일 시작된 대중들의 기후행동은 3년의 시간을 넘어, 2022년 924기후정의행진을 통해 대중의 절박성과 의지의 강력함을 확인했습니다. 이어 2023년 414 기후정의파업을 비롯하여 각 지역에서 크고 작은 기후행동이 이어졌고, 수많은 사회 의제들이 기후위기와의 강한 연결성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근본적 사회변화를 향한 기후정의운동의 힘은 아직 미약합니다.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 정책은 퇴보하고 있고, 기후위기의 주범인 기업들은 그린워싱으로 대중을 기만하고 있습니다. 기후정의행진이 있고서도 신규석탄발전소는 계속 건설되고 있으며 온갖 대규모 생명 파괴 토건 사업들은 오히려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기후위기의 최일선 당사자이자 정의로운 전환의 주체들은 더 모질게 탄압받고 더 끔찍하게 배제당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기후정의’의 기치로 다시 한 번 모여 아래로부터의 권력을 조직하고 그 거대한 힘을 확인하고 기후위기 당사자가 권력을 형성하는 행동을 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기후정의는 기후위기 시대와 사회의 모순을 체제의 문제, 권력의 문제로 인식해왔습니다. 파괴적이고 불평등한 체제를 극복하고 아래로부터의 권력을 되찾는 것이 기후정의행진임을 다시 확인해야 할 때입니다. 또한 거리에 모인 우리들의 행진이 ‘정부 비판’을 넘어 체제전환을 향한 다양한 운동의 요구를 전면화하는 자리가 되어야 합니다. 2019년 9월 기후행동 이래로 4년의 시간동안 넓어지는 동시에 응집되어 온 기후정의운동의 힘을 다시 모읍시다. 그 힘으로 선명한 싸움을 시작하고 새로운 체제, 새로운 시대로의 길을 터나갑시다. 기후위기비상행동, 기후정의동맹 -
윤주옥 08-05 10:22
[기획강좌] 지리산에서 에너지 자립의 삶은 가능할까
기획강좌 참가신청폼 : https://forms.gle/QN17Y7vFRLWd59zB9 올여름도 30도가 넘는 무더위가 계속되고 있다. 가정마다 TV, 냉장고는 물론 에어컨이 필수품이 된 지 오래고, 가스레인지나 화석연료 차 대신 전기레인지, 전기차를 쓰는 사람들도 늘어나니 그만큼 전기 소비량은 늘어날 것이다. 지리산국립공원 대피소에서 사용하는 에너지도 산 아래에서 전기선을 타고 올라가는 실정이다. 지리산권에도 전기를 생산하는 하동화력발전소, 산내소수력발전소 등이 있고, 더 많은 전기를 생산하기 위해 하동군에서는 LNG화력발전소를, 구례군은 양수발전소를 건립하겠다고 한다. 전기 생산을 화석연료에서 재생에너지로 바꿔야한다며 산을 깎고, 논을 메우며 들어선 태양광발전소는 산사태 등의 문제로 마을사람들의 원성을 낳고 있다. [기획강좌] ‘지리산에서 에너지 자립의 삶은 가능할까’는 생각하면 머리 아프지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에너지 문제를 듣는 시간이다. 에너지에 대한 기본 상식에서 지역별 에너지 전환과 자립이 필요하며, 가능하다는 희망도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제목 :[기획강좌] 지리산에서 에너지 자립의 삶은 가능할까 일정 :9월 5일 ~ 10월 24일 (매주 화요일 오전 10시 ~ 12시 10분) 4강(9월26일)은 독일과의 시차로 16시~18시 진행 장소 :구례 (강의 참가자 모집 후 추후 결정) 참가비 :5만원 (전 강좌 참여 전제 선착순) 주관 :구례섬지아이쿱생협 × 한겨레평화농장 × 지리산사람들 후원 :(재)자연드림씨앗재단 -
윤주옥 08-04 02:01
[8월 12일] 안전한 바다를 지키는 우리의 함성
안전한 바다를 지키는 우리의 함성 -일본 방사성오염수 해양투기 저지 국민행동 오염수 해양투기 시행이 임박한 가운데 오는 8월 12일 최대한 시민의 힘을 결집하고자 합니다. 당일 본 집회에 앞서 탈핵, 기후, 환경 진영이 공동으로 탈핵과 오염수저지를 함께 외치는 사전 집회도 진행합니다. 참가비 : 1만 5천원 버스출발시간 (8월 12일) : 10시 30분 구례문화예술회관 입구 큰길 11시 10분 남원의료원 옆 공터 지리산버스 참가신청폼 : https://forms.gle/yBuEFCGvMt1x3Ry36 물어보기 : 010-5634-6656 / 010-4686-6547 / 010-3413-2027 -
성염 04-22 21:21
[지리산인 칼럼] “여러분은 사회적 시인(社會的詩人)!” You are Social Poets!
“여러분은 사회적 시인(社會的詩人)!” You are Social Poets! 성염 (전 주교황청 한국대사) 지리산 자락자락에 안겨 살면서 문정댐이니 케이블카니 산악열차로부터 마고할메 치맛자락을 지켜주려고 맘고생하는 이들에게 “여러분은 시인입니다. 사회적 시인입니다(You are social poets). 인간사회의 약자들을 갈라치기하고 창조계의 생물들을 쓰고 폐기(廢棄)하는 문화 풍조 속에서 지구라는 공동주택(common home)을 지키겠다고 꿈꾸는 시인들입니다.”라는 격려를 보낸 종교지도자가 있다. 로마 교황 프란치스코다. 2021년 10월 16일, 전 세계 사회운동가, 민중운동가들에게 보낸 메시지였다. 그는 10년 전 가톨릭교회에서 성베드로의 제266대후계자로 뽑히자마자 전 지구에 충격을 가해왔다. 13억 가톨릭신도들을 지도하는 기조문서 「복음의 기쁨」에서, 그는 쇠푼께나 있다고 거들먹거리며 세계 금융시장과 대기업들과 다국적기업들을 이미 장악한 ‘신자유주의’ 경제를 ‘살인경제(殺人經濟)’라고 단언하였다. 미국 보수언론인(Rush Limbaugh)에게서 ‘순 빨갱이(pure Marxist)’라는 욕설이 나옴직했다. 그리고 ‘하나뿐인 지구’라는 자연을 파괴하지 말자고, 생명체들을 멸종시키지 말자고 호소하는 「찬미 받으소서」라는 문서를 내놓자(2015)미국 폭스뉴스가 이 교황을 ‘지구상의 가장 위험한 인물’로 단정했다. 종교는 ‘생태 복음(生態福音)’이어야 프란치스코는 지구(地球)가인류와 모든 창조물의 ‘공동주택’이니까무릇 종교는 지구상의 모든 생명이 반길 기쁜 소식, 곧‘생태 복음(生態福音)’이어야 한다고 확대한다. 그가 구상하는 그리스도교는 ‘지구에 충직하면서 모든 생명계를,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을 배려하는 종교’다. ‘타자들에 대한 개방 여부’로 개인적 집단적 구원이 결정된다는 종교적 신조를, 이제 창조계 전체로 열어 우리 다함께 구원에 이르자고 요청했다. 4세기의 인물 아우구스티누스는 이것을 ‘사회적 사랑(amor socialis)’이라고 명명했다. 교황의 문서 「찬미받으소서」는 13세기 인물 아씨시의 프란치스코(1181-1226)의 시구에서 제목을 따왔는데 ‘하느님의 어릿광대’로 자처한 저 인물이 “저의 주님, 찬미 받으소서. 누이이며 어머니인 대지로 찬미 받으소서. 저희를 돌보며 지켜주는 대지는 온갖 과일과 색색의 꽃과 풀들을 자라게 하나이다.”라고 읊은 ‘태양의 찬가’는 이탈리아 시문학의 효시로 평가된다. 지구라는 환경 체계를 위협하고 공멸을 향해 가는 인류에게 우리 공동주택을 덮치고 있는 재앙을 알리고, 누구보다도 종교인들에게 자연을 바라보는 시각의 전환, 생활양식의 변경, 그리고 생태영성(生態靈性)의 함양을 호소했던 현자였다. “우리와 함께 삶을 나누는 누이이며 두 팔 벌려 우리를 품어 주는 아름다운 어머니와 같은 지구가 지금 울부짖고 있습니다. 가난한 이들의 비명에 귀 기울이고 창조계 전체의 신음을 귀여겨 들읍시다.”라고 하소연하는 프란치스코교황은취임 후 첫 방문국으로 택한 한국에서 방한 내내 세월호 배지를 가슴에 달고 다녔고, “그것 좀 떼고 중립을 지키시오!”라던 한국인 고위성직자에게 “타인의 고통 앞에는 중립이 없소!”라는 결연한 답변을 우리 국민의 뇌리에 남겼다. 1968년 창립된‘로마클럽’ 이래로 미래학자들이 지구온난화로 인한 인류세(人類世)의 임계점이 수년밖에 안 남았다고 경고하는데도, 아마존을 불 지르고 화석연료 소비를 증대시키고 산과 강에 삽질하며 무수한 종을 말살시키고 있는 짓은 “인류의 자살이요 환경학살이요 생물 종의 학살”이라는 것이 교황의 외침이다. 한번 저지른 환경파괴는 거의 돌이킬 수 없기 때문에 인류도 국가사회도 양단간의 선택기로에 놓여 있는 현시점에서, 환경운동가들이야말로 ‘죄의 구조’, ‘죽음의 체제’에 맞서서지구상의 생명을 구하겠다고 투쟁하는, 인류의 주춧돌이라고 독려한다. 교황은 이 메시지에서 “하느님의 이름으로 요청합니다. 광산, 석유, 삼림, 부동산, 농산품을 좌우하는 대기업들에게 호소합니다. 삼림 파괴를 중단하시오! 습지 파괴를 중단하시오. 산을 훼손시키지 마시오. 강을 오염시키고 바다를 오염시키는 짓을 그만두시오, 주민들과 곡물을 [화공약품으로]중독시켜가는 짓을 그만두시오!”라고 경고한다. 그는 세계 곡물회사들, 무기장사들, 허위와 조작을 일삼는 언론재벌들, 강대국과 국제금융기관들에게도 ‘하느님의 이름으로’ 같은 호소를 보냈다. ‘잘 사는 세상’이란 ‘인류 전체와 정의롭게’, ‘창조계 전체와 조화있게’ 살아감’이라는 가르침이다. 윤정권이 두려워하는 것은 ‘꿈꾸는 사람들’ 국민의 촛불 혁명을 꺼뜨린 현정권이 한반도의 가난한 이들과 노동자와 농민, 여성에 대한 증오와 갈라치기로 뭉쳐진 집단으로 드러나면서, 설악산 케이블카 설치허가와 원전확대로 환경운동가들은허탈하다 못해 공포에 사로잡히는 듯하다. 교황은 우리에게 말한다. “기득권 수호에 앞장선 자들에게 가장 위험한 인물들은 ‘꿈꾸는 사람들’입니다. 강자들의 집단적 이기심, 약자들의 영합, 중도층의 체념을 시인들이 문제 삼으면서 심간을 편치않게 만드는 까닭입니다.” 우리의 꿈은 국민이 유일하게 권력에 접근하는 선거와 투표에서 반영되기도 한다. 한반도 남쪽의 국립공원들의 생태를 살리는 노력에 헌신하는 우리에게 프란치스코는 이런 격려를 보낸다. “무한성장의 야심으로 자연을 오로지 수탈하고 착취하고 폐기하는 사고방식으로 되돌아가지 않으려면 꿈을 꿀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꾸는 꿈은 인류라는 종족에게 자유, 평등, 정의 그리고 존엄을 그려가고실현하려는 원대한 꿈입니다. ‘보다 나은 세상(a better world)’을 만들고 보전하여 후손에게 물려주려는 꿈입니다. 우리 시인들이 꿈꾸는 이 꿈을 통해서 창조주의 꿈이 우리 모두에게 관통하고 드디어 역사로 실현되기에 이릅니다.” 이 나라의 금력과 권력을 독점적으로 누리는 자들은 국민의 1%에 불과하며, 현정권의 제반행태는 공포가 핵심이다.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등의 진보정권의 출현에서, 그동안 중국, 일본, 미국에 의존해서 영화를누려온 노론파가 그 기득권을 영구히 누리지는 못하리라는 공포심을 감추러 자기들은 무슨 파렴치도 감행할 수 있다는허세를 보인다. ‘조직’의 그 허세를 우리가 두려워하지 않으면 저자들은 허깨비다. 우리는 남북의 분단을 넘어, 그리고 우리네 금수강산이라는 창조계 전체와 더불어 조화를 이루는 삶을 꿈꾸는 까닭에 저자들이 우리를 두려워한다. 운동가들이 공포를 품을 것은 아니니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저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프란치스코는 이렇게 매듭짓는다. “우리 함께 꿈을 꿉시다! 저 참담하고 오래도 가는 체념에 우리는 절대 빠지지 맙시다.” *이곳의 사진은 4월 14일 정부세종청사 앞에서 진행된 ‘414기후정의파업’에 참가한 박두규 시인, 최상두 대표가 찍은 것입니다. -
윤주옥 04-06 20:10
지리산 화개 산불, 민간조사단 현장조사결과 발표
- 국립공원 역대 최대 규모의 산불로 기록, 낙엽활엽수림이 산불피해 낮춰 - *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지리산사람들, 하동참여자치연대, 부산대학교, 순천대학교, 백두대간숲연구소 등 ** 3월 12일(1차), 3월 22일(2차), 3월 28일(3차), 3월 29일(4차) 이번 산불로 인한 피해면적은 121ha(정부발표, 91ha)로 분석되었는데, 최근 20년간 국립공원 내 산불피해면적 총 111.8ha와 비교할 때, 역대 국립공원에서 발생한 최대 규모의 산불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Landsat-8 위성영상을 분석했을 때, 산불 지표화로 피해가 거의 없는 지역에 대해서는 산불강도가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분석되는 바, 피해면적이 Sentinel영상과는 큰 차이를 보였다. 화개 지역 산불은 전체 35ha의 피해면적을 보이는 것으로 분석되었는데, 피해강도가 낮음으로 분석된 지역은 전체 피해지역의 92%를 차지하고 있어 피해강도가 매우 낮음을 알 수 있었고, 합천산불의 경우에는 총 피해면적이 59ha로 나타났고, 이 중 높음 이상의 큰 피해를 입은 지역이 전체 피해지역의 22%를 차지하고 있었고, 피해도가 낮음으로 분석된 지역은 55%로 화개 지역과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 사진 설명_ 합천 일대 산불피해지 모습. 해당지역은 숲가꾸기 사업을 시행한 곳으로 임도 주변 대부분의 소나무림이 피해를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리산 화개 지역의 활엽수림 산불피해 유형과는 명백한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지리산 화개 지역의 산불강도가 낮았던 이유로는 해당지역의 사면부 식생 대부분이 자연적인 숲의 발달에 의해 소나무림이 쇠퇴하고 낙엽활엽수림으로 발달하는 과정의 숲으로 형성되어 있음이 원인으로 확인되었다. 인위적 간섭이 없어 활엽수의 밀도가 높아 숲 내부 바람이 세지 않아 산불이 수관화로 대형화되지 않고 지표화로 서서히 이동하다가 능선부의 소나무 토지극상림에 다다라서야 수관을 태운 것으로 확인되었고, 소나무 피해목이 발생한 지역은 빠르게 낙엽활엽수림이 발달할 것으로 판단되었다. 현장조사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인간의 간섭이 최소한으로 이루어질 때, 산불에 가장 강한 숲이 만들어지게 된다”며, “합천 산불과 비교했을 때 명확히 나타났듯이 국립공원의 산림은 인위적 간섭이 있는 산림의 산불발생 특성과는 다르게 산불로부터 이미 안전한 숲이 되어 있다. 이번 산불을 계기로 화개 지역은 능선부 까지 더욱 안전한 숲으로 빠르게 자연 스스로 복원될 것이다. 다른 지역 또한 인위적 간섭을 줄이는 것이 가속화되는 기후위기상황에서 산불에 안전한 숲이 되는 지름길이다”라고 평가했다. 산불피해지 ‘토양 특성에 대한 변화’에 대해서는, 산불피해지 대부분이 지표화로 인해 지표면의 낙엽층이 연소되어 재만 남아 있는 상태로 확인되었고, 이로 인해 유기물을 무기화하여 일시적으로 토양의 양분량이 늘어나고 빗물에 의해 일부는 용탈될 것으로 예상되었으며 지표면의 무기염류 변화는 흙 속에 매몰된 매토종자나 초본층 식생의 생육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하고, 낙엽층 아래의 토양층에는 지표화가 큰 영향을 주지 않아서 전체적으로 토양특성에 변화는 적을 것으로 판단되었다. 사진 설명_ 이번 산불은 표면의 낙엽만을 태웠기 때문에, 흙 속에 있는 씨앗들(매토종자)은 한꺼번에 공급된 무기양분에 더해 사라진 낙엽층으로 인해 활발하게 자랄 수 있는 환경이 형성되어 지표면의 생태계는 아주 빠르게 복원될 것으로 예상된다. 산불지역 내부 동물이 바닥을 헤쳐 놓은 곳은 피해가 없는 상태 그대로 안정된 토양이 드러나 있다. 산불피해지 토양침식 및 산사태 우려에 대해서는, 해당지역은 수관층이 발달하는 가운데 조릿대 등의 하층식생이 우점한 곳으로 산불 지표화로 인해 대부분의 하층식생만 피해를 보았을 뿐, 조릿대 등의 하층식생 뿌리가 살아있어 대면적의 토양침식이 우려되는 현장은 확인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식생 회복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보였다. 더불어 하층식생 뿌리가 토양 안정화 상태로 토양층을 보전하고 있어 산사태 우려도 적을 것으로 조사되었고, 수관층이 발달해 있어서 강우발생 시에도 수관우(수관층에 떨어져 흐르는 빗물)와 수간우(수목을 타고 흐르는 빗물)에 따라 대면적의 토양침식은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판단되었다. 전체적인 현장 토양 상태를 고려했을 때, 장마철의 집중호우 시에는 일부 지표면의 재와 토양이 침식될 가능성은 있겠으나, 토양침식이 우려되는 급사면에 흙막이공사 등의 응급복구사업은 오히려 토양침식을 확대할 우려가 큰 것으로 평가했다. 산불피해지 대성골 탐방로 주변 사면부 안전 우려는, 해당지역 주변은 경사가 상당히 급한 지역으로 이미 사면의 침식과 붕괴의 우려가 있는 지역으로 확인되었으나, 과거 산사태나 유실의 흔적을 확인할 수 없었기 때문에 강우 등의 외부영향이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탐방로 주변 현장의 사면 붕괴나 유실은 거의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조사되었다. 사진 설명_ 산불로 인해 바닥의 마른 낙엽이 불탔지만, 숲에서 자라고 있는 나무는 대부분 살아있는 상태이다. 이런 상태에서 토사의 유실은 진행되지 않는다. 특히 지난 3월 23일 산불피해지에 비교적 많은 봄비가 내렸으나, 현장에서 빗방울(우적)에 의한 피해는 전혀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었고, 물이 침투되지 못하고 지표를 흐르는 물의 발생흔적도 없었으며, 이로 인한 토양의 유실현상도 탐방로 주변에서는 확인되지 않았다. (참고로, 보통 우적에 의한 침식이 가장 큰 침식요인이며, 이어지는 추가 침식을 야기한다.) 또한, 이미 탐방로 주변 일부 지역에서는 초본류가 표토와 재를 뚫고 토지를 피복시키고 있으며, 생육한 활엽수에서는 잎이 나오기 시작해 강우에 의한 침식이나 피해를 보다 억제할 것으로 확인되었다. 따라서 산불피해지 내 탐방로 주변에는 산불발생 여부나 강도에 따라 정비구간을 설정할 곳이 없는 것으로 판단되었다.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지리산사람들, 하동참여자치연대, 경남녹색당(준), 경남시민환경연구소,경남환경운동연합, 사천남해하동환경운동연합, 섬진강과지리산사람들, 진주환경운동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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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30일~31일] 제2회 수달의 아우성 “수달의 길을 걷다”
세계 수달의날 기념 제2회 수달의 아우성 “수달의 길을 걷다” 수달이 걷는 길 행복의 길은 아침 저녁 먹이 찾아 나서는 길 기쁨의 길은 멀리 가지 않고 그곳에서 사는 길 아픔의 길은 서식지가 파괴되어 떠나는 길 죽음의 길은 낯선 환경에서 배회하다 떠나는 길 모든 생명이 걷는 길은 미래가 있어야 한다. ‘제2회 수달의 아우성’은 수달을 따라 수달의 길을 걷습니다. 이웃 생명과 함께 걷는 행복한 길이 되었으면 합니다. ● 일시 : 2023년 5월 30일 (화) 13시 30분 ~ 31일 (수) 9시 ● 장소 : 지리산리조트 (함양군 휴천면 천왕봉로 2257-2)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지리산사람들․ 수달친구들․ 한국수달보호협회. 함양교육지원청. 에스오일 - 물어보기 : 수달아빠 최상두 010-4740-1915최상두 05-18 12:57 -
[방구일기] 벚꽃이 져야만 하는 이유
* [방구일기]는 지리산방랑단이 구례에서 하는 일을 기록합니다. 방랑단 활동 외에 구례에서 참여하는 다양한 활동을 소개해드리려해요. 참 의미있고 재미난 활동이 많이 벌어져서 알려드리고 싶어요. 가까이 계신다면 함께하셔도 좋고, 멀리서 응원을 보내주셔도 좋고, 소개드리는 단체들에 후원하셔도 좋습니다! 벚꽃이 져야만 하는 이유 글.칩코 조만간 버스타기는 글렀다. 내가 사는 마을엔 하루에 버스가 고작 여섯 번 오는데, 지금 시기가 되면 그마저도 불투명하다. 구례는 바야흐로 벚꽃의 세상이다. 상춘객들로 도로는 주차장과 다름없는 형국이니, 나 같은 뚜벅이가 아니더라도 사정은 같을 것이다. 하염없이 버스를 기다리면서도 마음은 설렌다. 들뜬 관광객들에 덩달아 신이 나고, 꼭 내 앞마당에 사람들이 구경오는 듯이 흐뭇하기도 한다. 지난 겨울부터 나무 공부를 시작했다.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하지 않아진 것도 딱 지난 겨울부터다. 정류장 옆에는 나무가 많다. 숲이 아닌 마을이나 읍내에서도 나무는 적지 않다. 나무의 수피와 겨울눈과 수영을 이리저리 노려보다보면 오히려 버스를 놓칠 뻔도 한다. 겨울이 지나고서는 그 빨갛던 겨울눈이 연두빛으로 차오르더니 마침내 피워낸 꽃을 구경하는 참이다. 버스 안에서 눈부신 벚나무 행렬을 지나치며, ‘사람들은 나무를 참 좋아하는구나…’하고 생각한다. 그리곤 문득 이상했다. 보통이라면 ‘사람들은 꽃을 참 좋아하는구나…’하고 생각했을 텐데. 나무공부한지 고작 몇개월이라고 이제 꽃이 아니라 나무가 보인다. 사람들은 나무를 좋아한다. 봄이면 어김없이 꽃을 피워내는 나무를. 터질듯이 부푼 꽃망울을, 바람에 흩어지는 꽃비를, 그 보드랍고 가볍고 연약한 아름다움을. 꽃이 마사지를 해준 것도 아닌데 목욕탕에서 나온 사람들처럼 말갛고 해사한 얼굴들이다. 물론 꽃이 지고 나면 그게 벚나무인지도 모를 사람이 태반일 테다. 나무공부를 하기 전의 나처럼. 나무공부는 ‘지리산사람들’ 단체에서 하는 ‘겨울나무 특강’을 들으며 시작했다. 나무 전문가 못난이쌤과 나무 학도들 열 몇 명이 구례의 숲을 쏘다니며 나무를 보는 수업이다. 교재는 딱히 없다. 그저 못난이쌤은 죽은 나무를 정성스레 깎아서 만든 삼나무 지팡이만 지휘봉처럼 들고는, “쩌어기 누리끼리 뽕나무 보이시죠?”, “초리 끝이 라면처럼 꼬부라진 나무는 뭐라고 했죠?”하며 질문과 정답을 쏟아낼 뿐이셨다. 처음엔 다소 충격이었다. 내 눈은 일단 뽕나무를 식별할 줄 몰랐고, ‘쩌어기’있는 나무를 자세히 보려한 적도 없었다. 누리끼리한 건 뽕나무고, 푸르딩딩한 건 팽나무라는데 내 눈엔 그냥 다 갈색 나무기둥이었다. 초리 끝이 라면처럼 꼬부라지면 자귀나무인데, 자귀나무는 대체로 키가 나를 8명쯤 세워둔 정도의 높이다. 그렇게 높은 곳에 달린 가지 끝을 가리키는 못난이 쌤을 보자면, 마치 하루살이보다 작게 보이는 시력검사용 숫자들을 읽어보라는 안경사를 보는 기분이었다. 아, 초리는 가느다란 가지를 뜻한다. 이 말을 못알아들은 것도 당신만은 아니다. 겨울에 나무공부는 쉽지 않았다. 못난이쌤이야 교재도 없이 머릿속에 든 것을 읊으면 되지만 난 우수수 쏟아지는 나무 지식들을 머리에 넣으려면 손가락이 꽁꽁 얼도록 필기해야했다. 또 점점 몸이 데워지는 등산이 아니고, 한두 시간에 고작 1키로를 걷는 정도로 천천히 나무를 보며 숲을 걷다보니 몸도 오들오들 떨렸다. 그런데도 겨울에 나무공부를 하는 이유가 있다. 그 이유는 바로… 겨울에도 나무만은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겨울 숲엔 동물도 풀도 곤충도 숨어버리지만 나무만은 그 자리 그대로 있다. 나무는 겨울이면 나 같은 초보학도에게 더욱 매정해진다. 잎과 꽃이 사라져 누가 누구신지 알아볼 수가 없다. 그런데 반대로 겨울에 나무를 동정할 줄 알게되면, 다른 계절에 나무보기란 그야말로 식은 죽 먹기다. 겨울나무는 수피를 보고 주로 식별한다. 수피는 모든 계절 모습이 같다. 모든 계절 ‘수피가 누리끼리한 건 뽕이고 푸르딩딩한 건 팽’이라는 게다. 또 겨울눈도 좋은 힌트가 된다. 겨울눈은 가지마다 쌀알보다 작은 크기로 붙어있는데, 이 쌀알 안에 나무의 꽃과 잎과 씨앗이 모두 들어있다. 그 겨울눈이 움이 터서 봄에 새순이나 꽃이 된다. 나무는 혹독한 추위동안 그 조그만 겨울눈 주머니에 소중한 것들을 보관해둔다. 우리는 겨울 동안 같은 숲을 세 차례나 걸었다. 계속 반복학습을 해야 ‘그 나무가 그 나무’에서 벗어날 수 있다. 나 역시, 같은 나무가 틀림없어 보이는 세 명의 나무를 보고 못난이쌤이 “완전히 다르게 생겼다”고 말씀하실 때의 충격을 잊을 수 없다. 그러나 계속 같은 숲을 반복해서 걷다보면, 똑같이 하얗지만 쭉뻗은 느티나무와 구불구불 자라는 사람주나무의 차이를, 똑같이 누리끼리하지만 절대 같은 노란색이 아닌 노린재나무와 개암나무의 빛깔 차이를 구분하게 된다. 그리곤 나무수업을 처음 들은 한 친구가 “윤노리나무랑 대팻집나무랑 똑같이 생겼어”할 때, 나도 모르게 “엥! 전혀 달라!”라고 외치는 건방도 떨게 되었다. 겨울특강이 끝이 아니다. 나무 학도와 못난이쌤은 봄과 여름을 지나 가을의 나무까지, 나무의 한 해 모습을 다달이 본다. 수피보단 겨울눈으로 나무를 알아보기가 조금 더 쉬운 편인데, 겨우 외웠던 겨울눈의 모습은 새순이 트면서 다 달라져버렸다. “그래서 수피로 외우라고 한 거예요”라고 못난이쌤은 말씀하시지만, 수피로 동정하는 건 내 수준에선 거의 석사과정이라 어쩔 수 없다. 나무의 봄새순, 여름잎, 가을열매를 몽땅 외워버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지 않느냐 할지 모르겠지만, 사실 수피로 식별할만큼 나무를 들여다보면 결국 사계절 얼굴들을 안 외울래야 안 외울수가 없을 테다. 나무공부는 나무를 보는 내 시선을 완전히 뒤바꿨다. 나무는 결코 다 비슷하게 생기지 않았다. 어떤 나무는 수피가 나비날개 같기도, 다 까진 발뒤꿈치 같기도, 또 단단히 바느질한 모직코트나 바짝 마른 말의 허벅지 같기도 하다. 어떤 나무는 열매자국이 항아리 같기도, 반바지 같기도, 쥐똥이나 빗자루 같기도 하다. 별 볼일 없는 생선가시 같던 겨울의 골담초나무가 샛노랗고 통통한 꽃을 피운 것을 봤을 때는, 꼭 오랜만에 만나 몰라보게 변한 동창에게 반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또 겨울눈이 꼭 머리 위로 합장한 손 같은 작살나무는 봄에 새순이 나도 그 합장한 손이 그대로 남아있어, 꼭 조카에게 “예전 애기 때 얼굴 그대로네”하는 이모 같은 말을 뱉게 만든다. 난 나무공부가 아니었다면, 나무가 이리 다정한 줄도 몰랐을 게다. 나무가 벌레에게 집을 지어준다는 사실을 아셨는지? 나무는 벌레 때문에 죽기도 하는데, 미운 놈 떡 하나 더 주는 셈이다. 심지어 꽃눈이랑 구별이 안 갈만큼 근사하고 우아하게 지어준다. 나무 딴에는 집을 지어줄 테니, 더 퍼지지 말고 그 안에만 있으란 의미라고 한다. 아니 그래도 이렇게 지혜롭고 다정한 방식으로 벌레와 공존하다니! 나무에 벌레집만 있는게 아니다. 나무는 거의 다가구 주택이다. 소쩍새는 나무 속에 집을 짓고, 지빠귀는 가지에 집을 짓고, 버섯과 이끼도 수피에 집을 짓고, 곰은 나무 뿌리 쪽에 커다란 굴을 파기도 하고, 딱따구리가 나무 껍질 속에 벌레를 파먹은 자리 안에 거미가 집을 쳐놓은 것도 봤다. 나무는 겁이 많기도 하다. 정원사가 마구 가지치기를 해서 자신이 많이 먹혀버렸다고 생각이 들 때는 몸통에서 마구잡이로 가지를 뽑아내는데 이런 걸 ‘맹아’라고 한다. 그러나 맹아를 키우기엔 너무 에너지가 많이 들어서 결국 그 맹아는 스스로 다시 죽일 수 밖에 없는데, 그 맹아를 치료한 자리는 두툼한 딱지가 지거나 사람 눈동자 같은 흔적이 남는다. 나무는 어쩔 때는 과감해지기도 한다. 자신을 옥죄는 덩굴과 싸울 때는 그 쪽으로 모든 병력을 쏟아부어 풍선같은 혹부리를 만들기도 하고, 키 큰 주변 나무와 햇빛 경쟁을 할 때는 냅다 드러눕기도 한다. 못난이쌤의 나무수업은 나무 외형과 이름을 달달 외우는 암기 테스트가 아니다. 나는 나무와 대화하는 법을 배웠다. 나무가 아프다는 신호는 어떤 모양인지, 나무가 누구랑 싸우다 다쳤는지, 나무가 매연과 소음 가득한 도시가 아니라 건강한 숲에서는 어떤 표정으로 웃는지를 배웠다. 나무껍질의 헤진 자국만 보고도, 고양이가 발톱을 정리하고 갔는지, 다람쥐가 집을 지으려고 껍질을 긁어갔는지, 멧돼지가 가려운 몸을 비비고 갔는지를 살피면서, 나무의 하루를 상상해보는 수업이었다. 못난이쌤의 수업에 기필코 등장하지 않는 내용은 나무의 ‘효능’이었다. 이 나무는 암치료에 좋고, 이 나무는 집 지을 때 좋고… 못난이쌤은 나무의 효능을 읊는 건, ‘꼭 돼지를 세워놓고 이 돼지는 앞다리랑 뱃살이 맛있다’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는 생각이셨다. 나무를 친구처럼 알아가고 싶다던 못난이쌤의 꿈 속에는 정말로 나무들이 찾아가기도 한다. 못난이 쌤처럼 꿈조차도 나무꿈을 꿀 정도로 나무에 미치려면 나무를 얼마나 들여다 보아야할까? 그래서 ‘사람들은 나무를 참 좋아하는구나…’라는 생각이 튀어나왔는지 모르겠다. 벚나무는 꽃으로 인간을 황홀하게 만들지만, 꽃이 벚나무의 전부는 아니다. 그 벚나무의 전부가 없다면 오히려 봄에 우린 꽃을 보지 못할 수도 있겠다. 못난이쌤은 “꽃은 져야만 한다”고 하신다. 꽃은 벌과 새를 초대하기 위해, 나무가 그들이 좋아하는 향과 색으로 꾸며놓은 사랑스러운 방이다. 벌과 새와 바람 덕분에 씨앗이 만들어졌다면, 이제 나무는 씨앗을 지키는 게 가장 중요해진다. 꽃을 피워 계속 손님을 받다간 기껏 만든 씨앗까지 홀랑 먹힐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무는 필시 꽃을 지게 한다. 손님치레를 멈추고, 아기를 돌보는 방을 고요하게 만든다. 사람들은 꽃을 좋아한다. 요즘은 꽃이 더 오래 필 수 있게 나무를 개량하기도 한단다. 하지만 꽃을 오래보고 싶은 인간의 마음과는 무관하게 나무는 자신의 할 일을 해야한다. 나무는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가장 많고도 건강한 열매를 만들어서, 동물과 새와 벌레를 배불리고도 남아, 다람쥐가 씨앗마저 먹어버리고도 남아, 새싹을 틔웠지만 사람 발길에 밟혀서 몇은 죽고도 남아, 다시 당신만한 아름드리 나무로 씩씩하게 성장할 자식을 키워내야 한다. 그래서 나무는 저를 도와달라고 이웃들에게 친절을 먼저 베푸는 지도 모른다. 벌레에게 집을 내주고, 새와 벌에게 꽃과 열매를, 지렁이에게 낙엽을, 사람에게 그늘을 선물하면서. 나 역시 이 아름다운 벚꽃이 질 때면 아쉬움이 든다. 그러나 꽃은 져야만 한다는 못난이쌤의 말을 듣고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젠 나무를 축하해주고 싶다. ‘네 할 일을 한 차례 해냈구나. 이제 열매를 살찌우는 일을 응원할게. 꽃이 진 후의 너는 어떤 얼굴로 변할지 또 보러올게.’하는 마음이다. 이 많은 상춘객들이 모두 나무를 축하하는 마음도 한 움큼씩 남기고 간다면 어떨까? 꽃이 졌다는 소식을 들으면 발길을 싹둑 끊어버릴 게 아니라, ‘아무렴, 꽃은 져야지’하는 마음으로 나무의 다음 모습을 기대한다면. 다람쥐는 겨우내 먹기 위해 나무씨앗을 열심히 땅에 묻어 저장한다. 그리곤 땅 위에 떨어진 씨앗을 다 먹고나면 전에 묻어둔 곳을 기억했다가 꺼내먹는다. 그런데 다람쥐는 기억력이 썩 좋지 않아서 저장해놓은 걸 까먹기 일쑤라고 한다. 결국 다람쥐는 씨앗을 심는 나무의 일을 도와주는 셈이다. 나무가 겨울눈과 씨앗을 홀랑 먹히고도 다람쥐를 자꾸 초대하는 이유를 알겠다. 나도 다람쥐 같은 이웃이 되고 싶다. 어린 나무를 밟아 부러뜨리고, 잎과 열매를 왕창 뺏어먹는 무겁고 덩치 큰 동물이지만, 나무 곁에 계속 있고 싶으니까. 내 나름대로 나무에게 필요한 이웃이 되고 싶다. 다람쥐처럼 큰 포부없이도 담백하게 나무에게 필요한 이웃이 되는 건 어딘가 쿨해보이긴 하지만, 난 아무래도 좀 더 질척여야겠다. 나무수업 필기노트의 손때가 벌써 자글자글하다. *’목요일은 나무동무‘ 줄여서 ‘목동반’이 매달 마지막주 목요일마다 여러 숲을 다니며 나무공부를 합니다. 참여를 원하시면 ‘지리산사람들’에 문의하실 수 있습니다! 나무에 제대로 미치신 못난이쌤이 환영해주실 겁니다.칩코 03-31 20:37 -
[겨울나무교실] 겨울 낭만 " 겨울나무 곁으로"
2023 겨울나무교실 겨울 낭만 “겨울나무 곁으로” 꽃과 열매 그리고 잎마저 사라진 사뭇 가난해 보이는 겨울나무... 그러나 벌거벗은 나무에는 지난봄과 여름, 가을의 이야기가 들어있습니다. 겨울! 자신을 알아 맞춰보라며 킥킥대는 나무 앞에서 헤매도 보고 보일 듯, 말 듯한 겨울눈을 찾아도 보고 맞짱 한번 떠보자는 겨울나무의 사연을 들어도 봅니다. 언제 : 2023년 1월 26일(목), 27일(금), 28일(토), 2월 2일(목), 9일(목) (총 5일) 어디서 : 한겨레평화숲(구례 1일), 화엄사 계곡(3일), 화엄사 계곡이 아닌 지리산 숲(1일) 강사 : 못난이 참가비 : 5만원 (지리산사람들 회원 : 30,000원) 모집인원 : 10명 (선착순) 물어보기 : 윤주옥 010-4686-6547 <강의계획> 1월 26일 (목): 오전 실내교육, 오후 한겨레평화숲 1월 27일 (금): 하루종일 화엄사 계곡 1월 28일 (토) : 하루종일 화엄사 계곡 2월 2일 (목) : 하루종일 화엄사 계곡 2월 9일 (목) : 하루종일 화엄사 계곡이 아닌 숲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지리산사람들윤주옥 12-17 14:35
사는 이야기더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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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재 09-18 20:13
[10월13일~14일] 지리산1019생명평화기행
지리산1019생명평화기행 네 번째 치유하지 못한 역사의 진실을 찾아 지리산으로 떠나는 여순 1019 생명평화기행 네 번째 여정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70년 세월 숨죽여 지낸 유족들의 사무친 한을 풀고 더불어 사는 세상을 향한 성찰과 사색의 길입니다. 우리의 미래 세대가 진실을 이해하고 상생과 평화, 그리고 통일의 길을 걸어가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
이태건 09-15 19:38
지리산에서 50년. 지리산 삼일암 종설스님의 지리산 이야기
지리산에서 50년. 지리산 삼일암 종설스님의 지리산 이야기. 유튜브 체널에서 뒷 이야기가 계속 이어질 예정입니다. -
차라 08-30 20:27
[9월 9일] 나는 왜 옷이 아니고 나인가?
나는 왜 옷이 아니고 나인가????? 석유산업 다음가는 기후악당 패스트패션! 전세계 물낭비의 20%가 패션산업이 차지한다는 사실을 아셨나요? (2019 유엔보고서) 우리가 잃은 건 깨끗한 물과 공기만이 아니에요???? 우리는 무얼 쫓아 지구에 옷무덤을 만들었고 또 무얼 잃어버렸을까요? 우리는 옷과 나를 구분하기 어려워요. 옷에 따라 기가 죽거나 우쭐해지고 삶의 모양이 달라지기도 해요???????? 옷이 그렇게나 중요한데, 나는 왜 옷이 아니고 나인가요? 지리산방랑단(@jirisan_nomad)이 패피(@papi_ecofemi)와 함께 옷이야기하는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패피는 패스트패션에 저항해 기후위기와의 연결성을 알리는 에코페미니스트 모임이에요. 패스트패션 속에 가려진 나와 옷의 이야기 나눠요. ✅ 23년 9월 9일(토) 13-15시, 지리산사람들 사무실(봉서산정길 61-3) ✅ 1부: 패스트패션과 기후위기 - 패피강연 ✅ 2부: 열려라 이야기 옷장 - 옷과 나의 관계를 돌아보는 마음나누기 - 나누고픈 나의 옷 새로운 주인 찾아주기 ✅ 준비물 추억이 가득하지만 더는 안 입는 옷, 누군가에게 선물하고 싶은 옷, 정성껏 입양보내고 싶은 옷 등 나눌 옷 한 벌을 가져와 주세요. 옷에 얽힌 이야기를 아주 간단해도 좋으니 말해주세요. (장터가 아니에요. 너무 많은 옷을 가져오지 말아주세요. 옷 하나면 충분합니다!) ✅신청: 010-8784-9003로 이름과 함께 문자 남겨주세요! 불참 시 반드시 사전 알림 주세요! -
지리산방랑단 08-17 06:40
지리산 청설모 공유전시회 놀러오세요!
안녕하세요:) 지리산 다섯시군구에 귀촌귀농한 청년들이 어떤 마음으로 살고 있는지, 올 상반기에 걸쳐 인터뷰를 진행했던 <지리산청설모> 차라, 꼬리에요! 그들의 이야기 속에 담긴 고민과 행복이 서로서로 참 많이 닮았더라고요. 그것들을 공감하고 나누는 자리를 작게 마련해 보려고 해요. 열려 있는 시간에 ✨자유롭게 오시면 됩니다. 인터뷰때 진행했던 감정, 욕구카드 뽑기와 나만의 귀촌일대기 그리기 등 참여도 가능하니, 식사(채식)도 하고 전시도 구경하러 편히 놀러오세요! 식사 인원을 파악하기 위해 참석하시고 싶은 분들은 아래 신청링크를 작성해주세요. > 8월 25일(금) 10시~1시 > 귀촌 청년의 마음이 궁금한 누구나! > 전남 구례군 구례읍 중앙로 25 2층 캄다운파티✨ > 010-8784-9003 로 궁금한 점 물어보세요. > 가벼운 손과 발걸음으로 오시면 됩니다. 개인 식기나 컵을 챙겨오시면 좋아요 :) 이 프로그램은 <지리산 사람들>에서 지원을 받고 진행합니다. 신청링크 https://forms.gle/qDkGhGw5PKyo8fPk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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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섬진강 편지」 - 어머니 강물이 얼마나 불어났나 보려 섬진강 문척다리를 건너 가는데 반대 차선에서 할머니가 위험하게 보행기를 밀고 온다. 서둘러 갓길에 차를 세우고 달려가 할머니의 보행기를 인도 쪽으로 옮겨 놓고 할머니에게 이쪽으로 가야한다하니 그쪽은 좁아서 그냥 차도로 가고 싶단다. 그냥 가시라고 하면 다시 차도 쪽으로 가실 것 같아 보행기를 밀며 한참을 할머니와 함께 걸었다. 98세 나이에 십리 너머 읍내에 사는 막내딸 주려고 장맛비 잠시 그친 틈으로 수박 두 덩이와 참외 다섯 개를 싣고 가시는 길이다. 십리 길이지만 할머니 걸음으로는 두 시간은 족히 걸릴 것 같다. 장대비가 비가 쏟아지지 않은게 천만다행이었다. 딸에게 전화해서 가져가라 하지 그랬냐니까 딸은 먹고 사느라 바빠서 갔다 줘야 쓴단다. 아, 그랬지. 그랬었지요 우리는 늘 우리들 먹고 사느라 바빠서 어머니 전화도 서둘러 끊었지요 고맙소 고맙소 들릴 듯 말 듯 인사를 몇 번이나 건네며 가시는 할머니의 뒷모습을 한참 쳐다보다 돌아왔는데 마을방송에서 누구 누구 어머니의 부음이 들려온다. 장마 틈사이 능청스럽게 푸른 하늘을 올려본다. 어머니! -섬진강/ 김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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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항하는 청춘의 원더풀 라이프 “나는 반항한다 고로 존재한다"
섬진강을 따라 자전거를 타고 오고 가던 시절이 있었다. 아마도 2005년이나 2006년쯤이었을 것이다. 나는 구례에서 악양까지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왕복 60km였다. 봄이 끝날 무렵 시작한 자전거 출퇴근은 겨울이 오면서 끝났다. 그 후로 자전거 출퇴근을 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하던 일을 그만두었고 악양은 나에게서 멀어졌다. 지리산에 내려와서 살게 된 이유는 간단했지만 살아가기는 녹록하지 않았다. 구례에서 섬진강을 따라 악양으로 향하면서 그때의 기억들이 떠올랐다. <그는 올해 지리산사람들 공동집행위장이 되었는데 올해 관운이 있는 사주라고 했다. 사진 김인호> 오늘 악양에 사는 최지한씨를 만나기로 했다. 그를 지난겨울 남원의 산악열차 반대 시위장에서 본 기억이 있다. 아마도 남원시청 옆이었을 것이다. 한겨울이었는데 그는 맨발에 슬리퍼 차림이었다. 딱 봐도 보통은 아닌 사내다. 머리는 삭발이었다. 그를 악양면 소재지에 있는 카페에서 만났다. 길 건너에 악양초등학교가 보였다. <그의 첫인상은 “나는 반항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진 김인호> 오래 전에 악양에 일할 때 그 초등학교 운동회에 참가했던 기억이 난다. 아이들의 신난 함성이 가득한 운동장에 오후에 햇살이 눈 부셨다. 커다란 히말라에시더(개잎갈나무 50미터까지 자란다)가 동쪽에 있었다. 누군가는 이 나무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무라고 했었다, 나도 가끔 동의하지만, 집안에 심기에는 나무가 너무 크다. 이 나무를 키우다 보면 예상보다 너무나 커버리기 때문에 위를 잘라버린다. 주변과 어울리지 못하는 것들은 싹을 잘라 버리는 것이 사회의 일반적이 법칙이다. <그가 환경운동을 시작하게 된 이유는 공해문제연구소에서 만든 한국의 공해지도라는 책을 초등학교 3학년 때 만났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진 김인호 > 그의 첫인상은 “나는 반항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세상 사람들이 히말라야 시더의 위를 자르는 것같은 사회의 일반적인 잣대를 그는 봐줄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그가 하동에 살게 된 것은 2006년쯤이라고 한다. 내가 하동을 떠난 것이 그쯤이었다. 그는 멀리 강원도 고성 출신이라고 했다. 화진포가 가까운 강원도 산골 마을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북한을 지척으로 둔 강원도 최북단에서 태어났다. 나는 몇 해 전 화진포에 가봤다. 화진포 바다는 서해나 남해와는 다른 고독하고 외로워 보이는 진한블루였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초등학교 시절 어느 해 서울로 이사를 했다고 한다. 그 후 대학에서 양식업을 공부했다. 그리고 남해의 여러 섬마을을 전전하며 양식장에서 일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결국 여기 하동 악양에 정착했다. 그의 직업은 대바구니를 만들거나 수리하는 일과 정원관리라고 한다. 그리고 지역의 사람들과 환경을 지키는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가 환경운동을 시작하게 된 이유는 공해문제연구소에서 만든 한국의 공해지도라는 책을 초등학교 3학년 때 만났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도 고등학교 시절 그 비슷한 책을 본 적이 있다. 한국에서 가장 오염도가 높은 곳은 하동 넘어 광양이었다. 광양에는 광양제철소가 있다. 세계최대 규모의 제철소가 있고 거기서 품어져 나오는 대기 오염 물질은 한국 대기 오염 물질의 5.43%라고 한다. 나 역시 검은 역기가 품어져 나오는 그 사진을 책에서 본 기억이 난다. 그 책을 보고 열 받아서 환경운동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동기가 순수하다. 아마도 그는 순수한 남자인 것 같다. 몇 해 전부터 하동은 산악열차로 인해 갈등이 깊었다. 악양 형제봉에 산악열차를 설치하겠다는 하동군의 야심 찬 계획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산악열차 반대 운동을 했다. 그것도 열 받아서 했다고 한다. 나는 그에게 양말을 신지 않는 이유를 물었는데 대답은 간단했다. “발에 열이 많아서 답답해요.” 그는 역시 열이 많은 사람이었다. 재밌는 이야기를 해 달라고 했더니 그는 마루에서 3년을 살았던 적이 있다고 했다. 왜 그러셨나요? [어느 해 봄 비가 오는 날 구들이 고장이 나서 일산화탄소 중독이 된 적이 있어요. 마을로 기어와 동치미 국물을 얻어먹었어요. 그 후로 방에 들어가 자지 않았어요.] 방에 들어가지 않으니 마루밖에 잘 곳이 없었다고 한다. 그는 그렇게 마루에서 3년을 살았다고 한다. 보통 사람은 아니다. 카페에서 인터뷰하고 그가 일하는 대나무 공방에 가봤다. 녹색평론 읽기 모임이라는 작은 안내문이 문 앞에 붙어 있었다. 나 역시 오래전에 녹색평론 읽기 모임을 한 적이 있다.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 오래전 일이지만 말이다. <간디의 물레라는 사진을 본 적이 있는데 그가 수리하는 대바구니가 물레처럼 보였다.> 공방에는 헤진 바구니와 새로 만든 바구니 그리고 수리를 원하는 대바구니가 보였다. 그가 말한 바에 의하면 이것으로 먹고살고 약간의 잉여자본도 생긴다고 했다. 간단한 도구로 생계가 가능한 일이라서 좋다고 했다. 나는 이런 식의 밥벌이를 본 적이 없다. 그가 작업하는 모습을 한참 동안 보고 있었다. <공방에는 헤진 바구니와 새로 만든 바구니 그리고 수리를 원하는 대바구니가 보였다.> 익숙하게 대바구니를 수리했다. 능숙한 솜씨가 보기 좋았다. 간디의 물레라는 사진을 본 적이 있는데 그가 수리하는 대바구니가 물레처럼 보였다.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도 간단한 도구로 새로운 물건을 만들거나 물건을 고치는 일은 매력적이다. <간디의 상징이 된 물레> 그가 좋아하는 영화는 고레이다 히로카즈 감독의 환영의 빛이라고 했다. 섬진강을 따라 돌아오면서 오후에 햇살이 섬진강을 비추는 것을 봤다. 아마도 환영의 빛은 이런 빛일 것이다. 누군가 한 번은 자신을 끌어들이고 유혹하는 환영의 빛에 이끌려 자신도 모르는 어느 곳에서 멍하니 서 있는 자신을 경험했을 것이다. 그는 스스로는 반항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아마 그는 자본주의 주류 사회를 거스르고 싶은 환영의 빛에 어느 순간 이끌렸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는 빛이 이끄는 경로를 따라 여기까지 왔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항하는 청춘 최지한, 그의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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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을 너무나 사랑했던 사람의 지리산 사랑법
첫 수선화가 피던 봄날 함양 휴천면으로 향했다. 지리산 높은 곳에는 잔설이 남아 있었지만, 우리가 만난 그날은 여름이라도 되는 듯 따뜻했다. 만나기로 한 식당 한쪽에 노인 한 분이 앉아 있었다. [함양 휴천면 지리산 리조트 식당] 봄나물이 가득한 밥상에서 음식 이야기와 날씨 이야기 같은 상투적인 말들이 오갔다. 식사가 끝나고 카페에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야기를 시작하자 흰머리가 가득하던 그녀의 눈은 반짝이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이루지 못한 첫사랑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10대 소녀 같았다. [김종직의 유두류록 탐구의 저자 류정자 작가. 사진 김인호] 류정자 선생님은 밀양 태생으로 1948년생이다. 1965년에 산악회 활동을 하던 사촌 오빠와 처음 지리산에서 왔다고 한다. "오빠가 지리산에 한번 가보자고 하더라고요" "저는 그때만 해도 지리산에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어요." “그때는 심원마을에서 출발해서 노고단으로 갔어요." “심원마을에는 사람들이 꽤 살고 있었죠" "심원마을에서 하루 쉬고 노고단에 올랐어요." "노고단에 오르니 노고단 천지가 모두 원추리 꽃밭이었어요. “ "산을 가득 메운 원추리꽃을 보고 있으니 너무 좋았죠“ "어찌나 예쁘고 곱던지 지리산이 내 가슴에 박혀 버렸죠“ 사랑은 그렇게 시작되는 것이다. 나도 모르게 어느새 순간 번쩍이는 것이다. 그날 그 일행은 노고단에 이틀을 머물다 내려왔다고 한다. "꿈같은 시간이었어요." [지리산 모임 [우리들의 산악회]에 회원으로 참여하면서 본격적으로 지리산 골골을 누비고 다녔다. 사진 김인호] 그때만 해도 그녀도 그날 이후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지리산에 빠져서 살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는 처음에는 지리산은 노고단뿐이라고 생각했다. 지리산에 가고 싶을 때는 매번 심원마을을 거쳐 노고단에 올랐다. "제 산행 방식은 좋으면 매번 그 장소에 다시 가는 겁니다." 아마도 그런 스타일이었기 때문인지 노고단에만 가도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단다. "다른 곳을 찾을 필요도 없었죠" 하지만 곧이어 지리산 골골 여기저기를 다니게 되었다. "결혼을 일찍 했어요" "부산에서 살았는데 부산에서도 틈만 나면 산에 왔지요." 지리산 모임 [우리들의 산악회]에 회원으로 참여하면서 본격적으로 지리산 골골을 누비고 다녔다. “저는 지리산 골짜기 골짜기 안 가본 곳이 없어요." "저는 좋으면 같은 장소를 자주 가는 스타일이거든요." "결혼하고 아이 셋을 키우면서도 매번 지리산에 왔지요". "아이들은 엄마를 지리산에 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자랐어요." "아이들이 아주 어렸을 때를 빼고는 틈만 나면 지리산을 찾았습니다." 한 권의 책이 류정자씨를 탐구자로 만들었다. 하지만 그녀의 지리산 산행은 지리산이 좋아서 가는 것에서 지리산을 탐구하는 방식으로 바뀌게 된다. 그 결정적인 책이 바로 조선 시대 함양의 군수 김종직의 유두류록이다. [김종직(1431∼1492)은 조선 시대 성리학자·문신인 선생이 함양군수로 부임한 이듬해 지리산 천왕봉을 다녀와서 '유두류록(遊頭流錄)' 이란 기행문을 남겼다. 두류산(頭流山)은 '지리산'의 다른 이름이다. 1472년 8월14일부터 18일까지 4박 5일 일정으로 13.3㎞ 가운데 국립공원에 속한 노장대(함양독바위)∼상내봉(향로봉)∼미타봉∼어름터 4.5㎞ 구간이다. 옛 문헌에 김종직 선생이 올랐던 탐방로가 지리산 전체 등산길의 제1호로 알려져 있다. 이 책은 유람동기, 동행인, 날짜별 기록, 사적들, 풍경, 서정적인 감정, 당시 시대상 등을 모두 담고 있어 역사적인 가치가 매우 높다.] 사실 필자도 김종직의 유루류록을 읽은 적이 있다. 물론 읽기만 했지 거기에 나오는 지명이라든지 절터라든지 이런 것에는 일말의 궁금증도 없었다. 오래된 지리산 이야기를 읽고 싶었고 마침 도서관에서 그 책을 발견하고 재밌게 읽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녀는 달랐다. [지리산 산중에 산재 되어 있는 민가와 암자 터 등을 보면서 지리산이 품고 있는 인간의 역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우리들의 산지를 통해 김종직 선생의 ≪유두류록≫ 국역본을 접하면서 지리산의 역사를 본격적으로 천착하게 되었다. 2003년 지리산학의 정립을 꿈꾸며 결성한 [지리99] 운영진에 참여해 본격적인 [유두류록 탐구팀]을 꾸려 20여 년간 탐구산행을 이끌어 왔다. 이 책은 그 오랜 탐구의 작은 결실이다. 또한 ≪유두류록≫ 탐구와 병행하여 문헌기록에 등장하는 폐사지 탐구에도 심혈을 기울여 찾아낸 암자터가 100여 군데 이른다. 이 외에도, ‘세석의 청학연못’, ‘지리산의 시대를 연 달궁’, ‘지리산 고성탐구-추성’, ‘촛대봉 각자 高麗樂雲居士李靑蓮書를 찾아서’, ‘대궐터 탐구’, ‘문창대는 어디인가?’, ‘천왕봉 성모석상 수난의 역사’, ‘천왕봉 각자 일월대에 대하여’ 등 다수의 소고를 발표하면서 지리산학의 정립에 몰두해 왔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전을 잡고 지리산과 함께 살고 있다.] - 노컷뉴스 소개 글- [지리99라는 사이트에 류정자 작가의 다양한 글을 만날 수 있다. 사진 김인호] 그녀의 나이는 이제 75세가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지리산을 오른다. 3년 전에 김종직 선생이 산을 오르기 시작했던 마을로 이사를왔다. 류정자 선생은 두 번이나 암에 걸려 두 번의 큰 수술을 해야 했다. 하지만 그녀에게 정말 슬픈 일은 막내아들을 먼저 보낸 것이다. "그때가 가장 힘들었어요. 엄마가 지리산에 다닌다고 아들을 잘 살피지 못한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그 후 몇 년간 지리산에 오지 못했어요." 하지만 그녀는 다시 지리산으로 돌아왔다. 지금 이루고 싶은 것이 있으세요? "뭐 다른 게 있을까요?" "이제까지 발견한 폐사지(사라진 절터)가 100여 곳이 됩니다." "이제 이걸 정리하고 싶어요." "책을 묶어 두면 누구에겐가 도움이 되겠지요." "김종직 선생님이 류두류록을 남기지 않았다면 그 후세에 지리산에 오르려고 했던 분들에게 참고 자료가 되지 않았을 것이고 제게 폐사지에 관심을 두지도 못했을 겁니다“ [김종직의 유두류록 탐구 600년 전 지리산 산행기 저자류정자] "제가 얼마 전에 김종직의 유두류록 탐구을 책을 내기도 했습니다만, 제가 여러 서적과 문헌들을 참고하고 직접 수십 번을 찾아가서 발견한 지리산 폐사지 터에 대한 기록도 저 처럼 관심있는 누군가에게는 작은 도움이라도 되리라 생각 합니다." "이런 작업을 하는 사람은 없거든요." "그리고 김종직 선생님이 지리산에 올랐던 길을 복원하고 싶은 작은 소망이 있습니다." 지리산을 좋아하게 된 이유가 뭘까요? 류정자 작가는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그렇지! 사랑하는 것에는 이유가 없는 법이다. 그녀의 지리산 사랑이 60년이 되어 가고 있다. 무엇인가 사랑하게 되면 자주 보고 싶고, 더 알고 싶고,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것이 사랑의 방식일 것이다. 그녀는 지리산을 사랑하다 보니 자주 갔고, 관심이 커지다 보니 책을 냈고, 폐사지를 탐구했다. "내가 죽으면 지리산 골짜기 여기 저기에 뿌려 달라고 아이들에게 이야기 해두었어요." 그녀는 죽어서도 지리산과 함께하고 싶은 것이다. 찐 사랑은 이런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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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동지모임 후기] 눈 내린 동짓날, 지리산동지들이 만났습니다
눈 내린 동짓날, 지리산동지들이 만났습니다 2008년부터 동지가 되면,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지리산사람들’(이하 지리산사람들)은 구례에 계신 분들과 팥을 삶고 새알을 빚어 동지팥죽을 쑤었습니다. 팥죽을 나눠 먹으며 한해의 지치고 힘든 마음을 어루만지고, 다가올 새해를 힘차고 따뜻하게 열어가자고 다짐하였습니다. 지리산사람들은 올해(2022년) 동지에는, 지리산 산악열차 백지화 활동에 온 마음을 모았던 만큼 지리산, ‘지리산운동’ 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좋겠다고 이야기되어, 지리산자락에서 활동하는 분들을 초대하였습니다. 팥죽은 직접 쑤지 않고, 화엄사에 올라가 공양하였고요. 지리산자락에 사는 사람들에게 ‘지리산’은 어떤 의미일까요? 스스로 ‘활동가’가 말하는 분들은 지리산운동에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요?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자 만난 ‘지리산동지모임’은 동짓날인 12월 22일 12시 20분부터 14시 20분까지, 화엄사 범음료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지리산동지모임은 이렇게 흘러갔습니다. 오신 분들 모두, 어디에서 어떤 활동을 하는지 이야기한 후, 올해 마음 안에 남아있는 액(좋지 못한 일, 사건 등)을 쓰고, 박두규 시인으로부터 ‘지리산운동에 대한 생각나누기’를 위한 마중물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모인 분들은 마중물 이야기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게도 하고, 뭔지 모를 답답함이 있어, 이렇게 저렇게 움트는 생각들을 이야기하였습니다. 박두규 시인의 마중물 이야기입니다. “ ... 오늘 우리가 지리산 운동이라는 화두로 서로 이야기하는 것은 새로운 내년, 앞으로의 일들을 같이 생각해본다는 의미가 있다. ... 지리산 운동이라 하면, 일반적으로는 지리산 개발에 대한 반대운동, 지리산댐 저지 운동에서 시작해서 케이블카·산악열차 반대 등 개발에 반대하는 의미의 운동적 성격이 주를 이루어왔다. 반달곰, 수달, 구상나무와 같은 생태·환경적 문제도 지리산 운동의 범주에 넣고 그런 정도로 인식해왔다. 담론화되지는 않았다. 지리산자락에 벌어지는 문제들을 열심히 막아내고 있고 막아내려 하고 있고 당장에 불을 끄는 일들만 해왔다. 이와 함께 해야 할 일은 논의의 장이 된다면 원인에 대한 이야기를 깊게 나누고 총체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모임, 세력을 만드는 것이다. 지리산에 야기된 많은 문제들은 지자체상의 문제만이 아니다. 21세기 들어온 500년 동안에 만들어진 문제를 풀어내려면 우리의 현실적인 삶 문제와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 지리산 운동은 삶을 바꿔내는, 가치관을 바꿔내는 것과도 연결이 되어있다. 철학적인 문제도 연결돼있다. ... 자연의 순환논리가 차단된 것을 터서 지구가 순환되도록 바라는 것이다. ... 크게 보면 새로운 문화운동, 대안문명, 대안문화운동이기도 한 것이 지리산운동이다. 케이블카, 산악열차 이런 문제만이 아닌 더 심각한 기술문명, 기계문명이 가지고 있는 위기도 머지않아 우리의 현실로 당혹스럽게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거기에도 결국은 휴머니즘, 인간성의 상실이 깔려 있을 수밖에 없다. ... 이 모임이 그러한 출발에 있다고 본다. 이것을 현실로 가져오려면 이 모임이 어떻게 추동되느냐가 중요할 것이다. 이 모임이 정례적으로 이루어질 때마다 개인의 의견을 공론장으로 끌어와서 개개인들이 하나로 공론화되는 이야기들을 공유하고 또 그렇게 만들어갔으면 한다. ... 무언가 내용을 빨리 채우고 체제를 정비해서 사업을 벌이는 것보다는 일단은 서로 개개인의 삶을 소중하게 받아들이면서 그러한 이야기를 토대로 깊은 관계성, 친밀성을 유지하고 그러면서 이 모임을, 지리산 운동을 발전시켜 나가면 좋겠다.“ ‘지리산운동’이라고 하니 산악열차, 케이블카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었지요. ”지리산에 내려온 다음 해에 4개 지자체에서 케이블카를 놓겠다고 얘기했었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지리산은 하나다.’라고 얘기해왔다. 이 표현은 우리가 하난데 서로 하겠다고 하면 안된다는 이야기를 하기에 좋은 문구였다. ... 지리산에 케이블카가 올라가는 것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지리산의 케이블카를 계속 지자체장들이 이야기함으로 인해서 이 지역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 안에 케이블카와 산악열차, 짚라인, 모노레일 이런 것들이 마음 안에 들어가는 것이 더 두려웠다.“ (윤주옥) ”우리가 무언가를 막아낸다는 목적에 사로잡혀서 그 뜻에 함께 할수 있는 이웃들을 잊고 있지않았나. 그 이웃들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모임. 그러한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고민하게됐고 그런 고민들을 세분이 엮어주셔서 여기까지 오게 된 것 같다.“ (최지한) ”기본에 충실하자는 말처럼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기본만 간신히 잘하는 게 아니라 기본만 내밀어도 다 해결될 수 있을만큼 잘하는 것을 기본에 충실하다고 얘기하는 것 같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막는 게 아니라 근본적인 것을 생각해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주신 것 만으로도 감사하다. ... 산악열차도 마찬가지로 내가 이렇게 아름다운 지리산을 지키기 위해서 옆 사람에게 전해줘야하는데 ... 이 단계에서 실행할 수 있는 부분을 제시해주는 사람이 있고 차근차근 단계가 있어야 거기에 맞는 행동을 하거나 마음을 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유지선) ”산내에서 살기 시작하면서 지리산과 삶의 연결감을 찾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산악열차 이야기를 들어서 친구들과 뭐라도 해보자하고 산내삼거리에서 일인시위를 시작했다가 지리산사람들과 연결되었다. 다음해에 지리산방랑단이라는 여행을 떠나면서 지리산과 연결될 수 있는 이야기가 제 안에 들어온 것 같다. ... 구례로 오면서 산악열차 반대활동에 같이 목소리를 담고자 노력했다. 너무 어려운 활동이더라. 어디서부터 어떻게 행정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것인지 내가 연대할 수 있는 사람들이 누구인지도 알기 어려웠다. ... 그렇게 활동하다가 지치거나 되려 상처받는 제자신도 발견했다. 활동가들이 서로 마음을 나누면서 상처받지 않게끔 돌보는 시간을 보내는 것이 너무 중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오늘 이 자리가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 ... 지리산에 숨어 있는 이야기들을 삶 속에서 자신과의 연결을 찾을 수 있는 기회들이 저희 세대에게도 많이 있었으면 좋겠다.“ (상글) 지리산운동이 1시간 30분 차를 타고 움직여야만 가능할까요? 각자 사는 지역에서 좀 더 세심하게 움직여야지요. ”터지는 걸 막는게 아니라 터지는 것 막는것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인 고민들, 그게 뭐가 될지 모르겠지만 그런 생각들을 같이 가져가는게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근본적인 고민을 우리끼리 대화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야하는지 교육정책에 관심을 가져야 나중에 아이들이 컸을 때 좋은 세상에서 살지 않을까 생각한다.“ (정태준) ”... 산악열차나 큰 이슈가 있을 때에는 뭉치지만 일상적으로는 각자 자기가 발 딛고 서 있는 지역에서 사람들이 계속 같이 맞대고 이야기하고 퍼뜨리는 점조직 형태가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한다. ... 삶에서 연결됐으면 좋겠다고 여는 말씀 해주신 것처럼 어떻게 운동이 삶이 될 수 있을까 ... 그런 지혜를 가진 사람들 옆에서 조금씩 배워나가고 다음 세대들에게 전하는 삶이 그런 운동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가까이 있는 사람들을 돌보면서 살고 아이들에게도 계속 손내밀고 자연스럽게 살고. 그 방법이 장기적으로 볼 때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 우리가 군수가 되고 의회, 의원이 되면, 정치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우리가 그 자리를 선점해서 이런 짓꺼리를 못하게 막았으면 좋겠다.“ (문현경) ”지리산운동이 북극성을 바라보듯이 방향성으로 잡고 가는 것과는 별개로 우리의 삶의 태도나 가치, 철학과 관련되서는 직접 보지 않아도 공유할 수 있다. 그런데 직접 보면 더 좋을 것이다. ... 지리산의 공적인 방향, 대안적인 방향, 소외된 생명에 소홀하지 않고 내가 넘침이 없이 균형감을 가지고 살아갈수 있으되 다만 우리의 문제가 결국은 각 지역에서 안정된 바람직한 형태로 자리잡고 꽃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왔다.“ (정태연) 그래도 좀 더 확장된 ‘지리산운동’은 필요해 보입니다. ”지리산권에 사는 대안적인 삶을 지리산운동이라는 이름으로 이끌어가다 보면 산악열차가 실패했다하더라도 주변에 많은 사람들에게 지지받고 그 동력으로 함께 갈 수 있지 않을까. 지리산운동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이 참 좋다.“(박은주) ”우리 지역에서 사람모으기가 힘들어서 파이를 키워서 사람을 모으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사실 저도 지리산권 청소년들이 모여서 뭔가를 해보는 것을 기획하고 진행하고 있는데 나름대로 명분들이 있지만 모으기 힘든 청소년들을 지리산권으로 넓혀서 모으고 있는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 기대되는 것은 범위가 넓어진 만큼 다른 환경과 다른 분위기 속에서 지리산권이라는 공통점, 지향점을 상당부분 마음 속에 갖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있기 때문에 전혀 색다른 시도들을 배울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김한범) ”... 같은 지리산권에 있지만 한 시간 반 걸리는 먼 지역들은 서로 잘 모르기 때문에 서로 배우는 시간을 가지면서모임을 갖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김인호) ”구례나 산내나 지리산을 바라보고 사는 사람들과 남원 시내, 산청 읍내 등 멀찌감치 바라보는 사람들이 지리산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다는 느낌이 있다. ... 지리산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지리산의 어떤 가치를 공유하고 그 가치를 어떻게 같이 만들어가야하고 그럼으로써 지리산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비슷한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해나가는 운동이 박두규 님이 말씀하신 지리산 운동의 의미가 아닐까. 가치를 좀더 구체적이고 쉬운 언어로 보다 많은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게 하는 것을 이 모임에서 준비하면 좋겠다. ... 지리산에 살지 않더라도 애정과 관심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연대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주는 것이 필요한 것 같다.“ (임현택) ”지리산운동이라는 커다란 방향에 대해 같이 의논하고 마음을 나누는 자리라고 한다면 방향을 설정해놓고 열린 모임을 했으면 좋겠다. ... 좀더 다양한 사람들이 서로 교류하고 네트워킹할 수 있는거라면 좀더 열린 무언가로 너무 느슨하지 않게 가져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겠됐다.“ (자유) ”지리산자락에 있는 모두가 개인의 의견을 가져와서 나누고 자기 지역에서 고민하고 일했던 사안들. 사건화되지 않아도 되고 사건화된것도 있을 것이고 다양할텐데 개인적으로 고민하는 것들을 가져와서 공론화시키자는 것이다. ... 모든 가능성을 가지고 열어놓고 이야기할 수 잇는 장이었으면 좋겠다. ... 조급하게 일을 만들어 나가는 것보다도 그런 것들 하나하나 점검해나가면서 차분하게 서로 가까워질 수 있는 그러면서 개인이 어느 지역에서 하고 있는 활동들도 충분히 개인적 고민과 함께 이야기하고 상황적 문제도 고민하고. 개인의 문제도 공유하면서 개인의 문제를 공론화하고 거기에서 출발하자.“ (박두규) ”많은 이야기가 나왔다. 공유하는 자리, 개인의 이야기를 하는 자리, 꿈을 만드는 자리, 정형화된 틀을 만들지 않고 두 번째 자리를 만들어서 우리의 이야기를 이어갔으면 좋겠다.“ (신강) 눈은 계속 내리고, 산청, 함양에서 온 활동가들의 엉덩이가 들썩였습니다. 아쉽지만 오늘의 동지모임은 이쯤에서 마무리하고 다음을 기약해야 할 시간입니다. 모두 함께 새해를 맞이하는 시를 읽고, 종이에 쓴 액을 날렸습니다. 액은 누군가가 나에게 준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음을 액을 날리면서 깨달았습니다. 오늘 다하지 못한 이야기들, 개발 반대 운동을 넘어서 우리 삶을 바꾸고, 세상을 평화롭게 하는 지리산운동의 꿈을 향한 내딛음, 시작하였으니 차분히, 벅찬 마음으로 나아가야겠습니다. 내년에 다시 만날 지리산동지모임은 이 글을 읽는 그대를 포함한 모두가 초대손님입니다. 지리산 산악열차 백지화를 위해 노력하는, 농사짓고 아이들과 만나면서 좋은 세상을 꿈꾸는, 너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느끼며 돌봄과 치유를 위해 마음 쓰는, 그러한 우리가 다시 만날 그날을 기대해봅니다. 기록. 김주리 사진. 김인호 글. 윤주옥 * 박두규 시인의 마중물 글과 김주리 님이 정리한 지리산동지모임의 기록, 첨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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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교사 상글이 원하는 세상은?
2022년 5월 28일 구례 오일장 상설무대에서 진행된 ‘잘 뽑고 싶다구례 문화제’에서 발언한 상글의 이야기입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구례에 살며 초등학교 아이들과 텃밭에서 만나는 상글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발언할 수 있도록 초대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지리산에 깃들어 살게 된지 올해로 3년차에요. 봄이 되면 씨앗을 뿌리고 여름이면 풀도 매고, 자연의 시간에 따라 몸을 움직이며 살게 되었네요. 생태텃밭수업 덕분에 저는 올해 돌보고 있는 텃밭이 4곳이나 있어요. 하나는 저희집 마당이구요, 용방, 토지, 옆 동네 남원에도 한곳있어요. 농은 곧 생명을 돌보는 일이니, 그만큼 책임감도 느끼고 기대가 되기도 해요. 모두의 마음이 푸르러지는 올 봄, 우리는 씨앗을 싹 틔우고 모종을 길러 저마다의 소중한 기대를 담아 텃밭에 옮겨심었어요. 완두, 토마토, 가지, 고추, 파프리카 먹을거리도 풍성하게 심고, 메리골드, 한련화, 해바라기 다양한 꽃들도 어우러져 심었어요. 아이들은 매일 아침 물을 주고, 따뜻한 말을 건네고, 올해도 우리는 텃밭에서 수많은 감동의 순간들을 만날거에요. 그런데 요즘은 손끝에서 가뭄을 느끼고 있어요. 아침에 물을 준 것도 금새 말라버리고, 아이들이 직접 만들어 놓은 빗물 저금통에 물이 말라버린지는 꽤 오래되었어요. 한 없이 펑펑 쏟아져나올 것 같던 수돗물도 요즘엔 찔끔거릴 때가 있어요. 지난 주, 저희 마을에서는 이장님께서 방송을 하시더라구요. 날씨가 가물어 물이 부족하니 빨래를 자제하고, 불필요한 생활용수는 가급적 사용하지 않도록 하라. 그리고 덧붙여 텃밭에 물주는 것도 자제하라고 하셨어요. 비가 오지 않는 것도 문제이지만, 여느때보다도 날씨가 덥고 기온이 높아 땅에 있는 수분의 증발 속도도 훨씬 빠르다고 해요. 지구는 오랫동안 경고신호를 보내왔어요. 이것은 환경적 재난이고 기후위기입니다. 위기감이 우리의 삶에 점점 더 가까워 지는 것을 느끼고 있어요. 구례군은 기후위기에 대한 어떤 대안을 준비하고 있나요? 우리는 어떻게 조금이라도 기후변화의 영향을 늦출 수 있을까요? 코로나로 모든 물리적인 접촉이 제한될때, 무엇보다도 간절한 것은 다시 ‘연결’되는 것이었어요. 불안 속에서 다시 안정을 되찾고 서로에게 따뜻한 포옹을 건넬 수 있는 안전한 사회. 그 안에 있던 연결감을 되찾는 것이요. 저는 이것이 돌봄의 감각으로 온다고 믿어요. 누구나 우리 안에는 돌봄의 감각이 있겠지요. 텃밭에 찾아오는 아이들에게도 있어요. 강자에게도 약자에게도, 인간에게도 비인간동물에게도, 할머니에게도 할아버지에게도, 우리 모두에겐 돌봄의 힘이 있어요. 오로지 경제 성장 중심의 해법으로는 위기를 해결할 수 없어요. 돌봄 사회로의 전환이 기후위기의 근본적인 해법이라고 생각해요. 개인과 사회의 목표가 생명을 돌보고 살리는 노동이 중심이 되어야합니다. 우리는 돌봄을 중심에 놓고 살 수 있는 경제구조와 문화를 만들어야합니다. 생태텃밭에서는 흙의 생태계를 돌보는 일을 함께 하고 있어요. 땅을 갈아엎지않고, 자연 멀칭을 하고, 돌려짓기, 사이짓기를 하고, 퇴비를 직접 만들어 유기물을 땅에 보태줌으로써 흙의 생태계를 되살리고 흙을 지키는 농을 실천하고 있어요. 농을 업으로 삼고 살아가는 농부님들에게 화학비료를 사용하는 것, 살충제를 뿌리는 것은 오랜 시행착오 끝에 현재로서는 최선의 선택이겠지요. 지자체에서 흙을 살리는 농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체제를 구축할 수 있는 정책을 시급히 마련하기를 바랍니다. 화학비료와 살충제를 더 싼 가격에 배급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몸에도 지구에도 건강하게 순환될 수 퇴비를 생산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마련해주세요. 이제는 전 국민이 기후위기대응교육에 함께 참여해야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공교육에서 농을 만나는 일도 그 중에 하나라고 생각해요. 환경과 생태를 따로 공부할 것이 아니라 농을 통해 텃밭에서 우리는 자연을 만나고 다양한 생태계를 접할 수 있어요. 더 많은 아이들이 생태적으로 순환하는 농을 경험할 수 있도록 생태전환 교육 예산을 확보하기를 요구합니다. 수해 이후 첫 선거입니다. 이번 지방선거는 변화를 만들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기후위기대응 정책을 가지고 있는 후보를 지지하는 것. 그것이 첫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꿈을 찾는 농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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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치 없는 갈치 마을에는 갈치 신문이 있다.
2023년 1월 9일 겨울 치고는 유난히 따뜻한 날 나는 갈치 마을 이장과 만나기로 했다. 남원 산중 마을 이름이 갈치라고 하니 그 이름이 독특해서 더 끌렸는지 모른다. 함께 가는 일행들과 함께 갈치 마을로 이동하기 전에 우리는 남원 시내에 있는 갈치 집에서 갈치 조림을 먹었다. 푹 끓여진 갈치와 무가 꽤 맛이 좋았다. 갈치 마을 가는 길은 남원에서 장수로 나가는 길목에서 보절면으로 꺽어 몇 분 들어가면 나오는 초입에 있었다. 갈치 마을을 둘러보니 전형적인 산골 마을이었다. 갈치 마을은 상갈치, 중갈치, 하갈치 마을로 생선으로 비유하면 머리, 배, 꼬리라고 볼 수 있을 것같다. 물론 갈치 마을과 바다에 사는 갈치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었다. 갈치의 꼬리와 머리가 비중이 작듯 중갈치 마을이 가장 크고 상갈치 하갈치 마을에는 각각 10가구 정도가 산다고 한다. 갈치 마을의 갈은 칡을 뜻하는 한자에서 왔다. 칡차를 갈(葛)근차 라고 쓰는 그 한자다. 즉 칡이 많은 동네라는 뜻이라 한다. <갈치신문 28호 사진속의 장면은 치치페스티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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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 그리고 하동 녹차찐빵
추억 그리고 하동 녹차찐빵 추억 그리고 하동 녹차찐빵 길거리에 걷다 보면 흔하게 보이는 가게 중 하나가 찐빵가게다. 구례 같은 시골에도 스타벅스나 롯데리아는 없어도 찐빵가게는 1-2개가 있다.그만큼 흔하고 흔한 것이 찐빵이다. <찐빵은 흔하다. 하지만 제대로 만든 찐빵은 결코 흔하지 않다.> 찐빵이 흔한 이유는 뭘까? 그것은 그만큼 먹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찐빵을 먹는 이유는 뭔가? 그것은 추억 때문이 아닐까? 누구나 어렸을 때 어머니가 막걸리에 발효시켜 만들어진 찐빵의 맛을 기억할 것이다. 지금은 찐빵이 겨울에 먹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순전히 찐빵 만드는 기업의 광고 때문이고기억 속에 찐빵은 대부분은 여름에 만들어 먹었다. 딱 이때 장마철 말이다. 콩과 벼도 심고 아직 고추는 익지 않아서 따지 않아도 되는 딱 이맘때 어머니는 모처럼 농사일을 쉴 수 있었다. 그 동안 바쁜 농사일에 챙겨주지 못한 자식들을 위해 찐빵을 만드셨던 것이다. 처마에 떨어지는 낙숫물을 받던 커다란 고무 다라이에 물이 차고 넘치는 날 막걸리를 넣어 발효된 밀가루에 팥을 넣어 만들어 주던 그 찐빵 맛의 추억은 삭막한 도로를 지나다가도 찐빵만 보면 나도 모르게 어머니의 얼굴과 함께 겹쳐지곤 했다. 2005년 가을 유독 하늘이 파란 10월의 어느 날이었다. 하동에서 찐빵을 만든다는 두 분을 만났다. 박중욱씨와 양대화씨였다. 딸이 하나 있다. 박중옥씨는 천식을 앓고 있다. 그의 천식은 모든 것을 까다롭게 만들었다. < 울산에서 만나 결혼했다. 중매였다.> 울산에서 만나 결혼했고 거기서 살다가 천식 때문에 더 이상 일이 하기 힘들어 고향인 하동에 내려왔다.누나가 찐빵을 만들고 있어 거기서 빵을 배웠다. 하지만 그는 천식이 있었고 수입밀가루로 만든 빵은 그의 몸이 먼저 거부했다. 그래서 그의 우리밀로 찐빵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가 먹어도 문제가 없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찐빵에 관심이 갔다. 우리밀로 만들과 팥도 국산 팥을 쓴다고 했기 때문이다. 하동 터미널에 주차를 하고 찾아가보니 시장통 골목에 작은 가게가 있었다. 그들의 작업장이장 판매장이었다. 맛짱이라는 가게였다. 여느 시골읍내 장터골목의 찐빵집이었다. 밖에는 찐빵을 찌는 찜 솥이 있고 만두도 있었다. 부부가 빵을 찌고 만두를 만들어 파는 평범하기 그지 없는 찐빵집이었다. 하지만 이들이 다른 것이 외부가 아니라 재료에 있었다. "우린 마가린을 쓰지 않아요. 마가린을 쓰면 모든 참가제를 쓴 것과 같아요.이미 마가린 속에 참가제가 다 들어 있거든요. 통밀 만을 이용합니다.통밀이 거칠기는 하지만 밀 본연의 맛의 충실합니다. " 우리팥을 이용해요. 비싸지만 그것만 사용합니다. 우유 계란을 사용하지 않아요. 손으로만 만들어요. 만들기 어렵지만 손으로 만든 것이 훨씬 부드럽고 맛이 좋아요" 부부가 하루 종일 만들 수 있는 빵의 양의 약 600개라고 한다. 하지만 매일 이렇게 만들 수는 없다. 보통 하루에 300개 정도의 빵을 만든다. 1년에 만들 수 있는 양이 이미 정해져 있다. 109,500개다. 5개씩 포장되어 있으니 21,900봉이다. 하루에 60봉이다. 이것이 이들이 매일 팔 수 있는 찐빵의 전부다. 더는 없다. < 양대화님> 그렇다고 이들이 처음부터 완벽한 찐빵을 만든 것은 아니다.박중옥대표는 " 우리 빵의 레시피는 올해 만들어 졌어요" 매일매일 연구하고실험해서 겨우 완성했죠. 결국 8년이 걸려 완성된 레시피다. < 박중옥님> 그의 말대로 그의 빵은 처음보다 부드럽고 맛있다. “아무리 몸에 좋아도 맛이 없으면 찾지 않으니까요. 설탕을 조금 사용하고 단맛을 올렸고 통밀의 거친 맛을 빼고 부드러워졌어요.우유를 사용하지 않고 부드럽게 만들기는 쉽지 않거든요.” < 찐빵이 무겁다. 꼼수 없이 그냥 팥이 많아서다. > 하동녹차찐빵을 손에 잡으면 무게부터가 다르다.다른 찐빵들이 비싼 팥을 줄이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구사지만 이들은류현진의 돌직구처럼 그냥 팥을 많이 넣어 만든다. 다른 꼼수는 없다. 우리밀빵이라고 해서 구입했더니 알고 보니 팥은 수입 팥이고국산 팥을 사용했다고 구입했더니 마가린이 들어 있는 등의 이런 저런 꼼수가 없다. 안심하시고 드셔도 됩니다. 그렇다 그냥 믿고 드시면 된다. 그저 정직하기 때문이다. 혹시나 들어있는 꼼수가 있을까 봐 항상 신경 쓴다. 재료를 확인하고 꼼꼼히 살펴서 혹시라도 나쁜 것이 있을 까봐 먼전 살핀다.이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 아이들이 좋아한다. 맛있으니까> 현재 그들은 하동 악약으로 작업장을 옮겼다. 꽤 큰 공장이다. 하지만 여전히 두 사람이 전부다. “공장이 넓어져서 작업하기 편해서 좋아요. 깨끗하고요.” 공장개소식에 참가했을 때 어느 개업 장에 방문했을 때보다 기분이 좋았다. < 요즘은 체험행사도 한다. 찐방도 만들어 놓고 지리산 여행을 하고 오면 발효된 빵을 쪄서 가져간다.> 보통은 크게 시작하지만 작은 골목에서 시작해서 여기까지 온 두 분의 노력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손으로 만든 것은 정직하고 더 많은 가치를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지만도 않은 것이 세상이다. 손으로 직접 만들어 부드럽고 좋은 재료를 썼는데 맛도 좋다. 하나만 먹어도 배가 부르다.다른 것과 비교 할 수 없다. 좀 작게 만들어도 되지 않냐고 하지만 양심이 또 그렇지 않다. <뜨거워도 먹고 싶어한다. 왜 맛있으니까> 누가 뭐라고 해도 자기 길로 걷는 사람들이 있다. 세상은 이와 같은 사람들 때문에 변한다. 그들이 그들의 길을 가기 때문이고 그것은 곧 새로운 길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그들의 손은 바쁘고 그 손에서 새로운 빵들이 만들어진다. 어느때 먹어도 좋다. 그들이 만든 것이라면 말이다.
숲샘의 지리산 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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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샘의 지리산통신] 봄날, 하동호 둘레길에서 화양연화를...
하동군 청암면에 자리한 하동호는 1985년 1월에 착공하여 1993년 11월에 준공한 농업용 댐으로 청학동 계곡과 묵계 계곡의 물들이 흘러들어 거대한 산중호수를 만들었다. 지리산 둘레길 10구간과 11구간이 연결되는 지점에 있는 이 하동호를 한 바퀴 도는 하동호 둘레길이 새 단장을 하고 2000년 봄에 완성되었다. 전체 길이 7.5Km에 수평의 길이라 남녀노소 누구나 편안하게 걸을 수 있는 둘레길이 된 것이다. 하지만 지리산 둘레길 구간에는 포함되지는 않은 상태다. 이 하동호 둘레길이 가장 아름다운 계절은 뭐니 뭐니 해도 아름드리 왕벚나무 가로수가 꽃을 활짝 피우는 4월 초라 할 수 있다. 하동호 둘레길은 하동호 댐 주차장에서 시계 방향으로 걸음을 시작하길 권한다. 비바체리조트를 지나면 곧바로 메타세쿼이아 숲길이 나타나는데 왕벚꽃이 만개하는 4월 초쯤이면 막 돋아나기 시작하는 메타세쿼이아의 연초록의 새잎은 눈과 머리를 헹궈주고 온몸을 초록으로 물들인다. 메타세쿼이아를 만날 때마다 쉽지 않은 외래어 이름보다는 북한에서 부르는 것처럼 수삼(水杉)나무라고 하면 어떨까 생각해 보곤 한다. 예전엔 청학동으로 가는 1003번 지방도를 따라 왕벚나무 터널길로 걸었었는데 지금은 호수를 따라 데크 길이 조성되어 안전하게 걸을 수가 있어 좋다. 하동호 관리사무소 주차장에서 출발하면 시계 방향이든 반 시계 방향이든 그 중간 지점이 되는 마을이 바로 나본마을인데 나본마을 서어나무 숲에 조성된 정자와 데크는 휴식과 함께 하동호를 바라보며 물멍하기에 안성맞춤인 곳이다. (2023.04.25) 나본마을을 뒤로 하고 하동호 둘레길 나머지 반을 걷게 되는데 30분쯤 더 걸으면 만나는 상이리는 위태에서 양이터재 넘어 하동호로 이어지는 둘레길 10코스가 지나는 마을로 여기서부터는 둘레길 10코스와 하동호 둘레길이 겹치는 구간이다. 상이리에서 하동호 댐까지는 채 30분이 걸리지 않는 거리로 하동호의 비경을 만끽하기 딱 좋은 구간이기도 하다. 하동호 댐에 도착하면 망향관에 들러 하동호가 생기면서 수몰된 청암골 아홉 마을(몰랑몰, 새터, 가리점, 대밭몰, 고래실, 생방몰, 동촌, 가마소, 난전)의 옛 모습을 사진으로나마 감상해보길 권한다. 이렇게 출발점인 하동호 댐 주차장으로 원점 회귀하면 느릿느릿 걸어도 세 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그리고 산중호수길로 이름 붙여진 이 하동호 둘레길은 장애가 있는 분들도 얼마든지 동행할 수 있다. 게다가 원점 회귀할 수 있다는 것 또한 하동호 둘레길의 큰 장점이 아닐까 싶다. 왕벚꽃잎 난분분 흩날리는 4월의 하동호 둘레길을 걷는 이들은 분명 봄날의 화양연화를 만끽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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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샘의 지리산통신] 반가운 히어리
산청 성심원 둘레길에서 만난 히어리, 지리산 깃대종이기도 하지만 이 위태로운 기후 위기의 시대에도 지리산 곳곳으로 널리 퍼져 멸종위기종에서 제외되었기에 더 고맙고 대견스러운... (223.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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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샘의 지리산통신] 수라 갯벌과 지리산
참으로 감동적인 황윤 감독의 다큐멘터리 작품 '수라'를 함양에서 만났다. 바다의 허파가 갯벌이라면 육지의 허파는 숲과 강이란 생각이다. 그래서 '수라'와 '지리산'은 닿아 있음을... 그 위태로움까지 닮았다. 함양까지 한달음에 달려와 준 황윤 감독과 숨막히게 아름다운 영상 담아준 김정근 카메라 감독에게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아름다운 광경을 본 죄로 새만금을 지키고 있다’는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 오동필 님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쟁쟁하다. 마찬가지로 아름다운 둘레길을 걷는 죄로 '있는 그대로의 지리산'을 지킬 수밖에... (2023.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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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샘의 지리산통신
[숲샘의 지리산통신] 2023년, 다시 지리산이다. 올해도 눈 쌓인 천왕봉을 바라볼 수 있고 중산리 계곡물과 대원사 계곡물이 만나 이루는 덕천강이 내려다보이는 산천재에서 내 방식의 나 홀로 새해 시무식을 했다. 4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천왕봉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 산천재 앞마당의 남명매가 그 증인인 셈이다. 새해엔 ‘선택과 집중’을 화두로 내 능력 밖의 일들은 내려놓기로 했다. 닭을 보살피는 농장 일과 ‘있는 그대로의 지리산’을 위해 길동무들과 함께 지리산을 걷는 초록걸음이야 변함이 없겠지만 지난 연말부터 이런저런 자리들을 내려놓았으니 2023년엔 좀 더 홀가분하게 닭과 지리산에만 집중을 할 수 있으리라 기대를 해본다. 지리산의 품에 안긴 지도 어느새 스물세 해가 되었다. 그새 아들과 딸은 제 갈 길을 찾아 떠났고 아내도 희끗희끗한 머리칼에 60을 코앞에 둔 나이가 되어버렸다. 참으로 아득한 세월이 쏜살처럼 흘렀지만 별 탈 없이 삶터와 일터를 그대로 지키고 있으니 이 모두가 지리산 덕택이란 생각이다. 그러니 지리산 천왕봉은 내 삶의 나침반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백두대간의 시작점이자 종점인 지리산은 긴 세월 동안 힘들고 아픈 이 땅의 민중들에게 그 품을 내주어 위로와 안식의 장소이자 피난처가 되어왔음을 역사가 증명해 왔고 코로나와 기후 위기의 재난을 겪고 있는 2023년 현재도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기에 어머니의 산 지리산이 그 역할을 이어갈 수 있도록 지켜나가는 건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의 몫임을 명심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그 지리산은 그 어느 때보다 위태롭다. 하동에서는 형제봉에, 남원에서는 정령치에 산악열차를 놓겠다며 숲을 파헤치기 일보 직전이고 섬진강에는 온갖 중장비가 동원되어 그 고운 강모래를 마구잡이로 퍼내고 있는 게 작금의 지리산이다. 확실치도 않은 눈앞의 돈 몇 푼에 지리산에 깃들어 살아가고 있는 뭇 생명의 생태 그물망을 끊어 놓으려는 개발 망령들이 지리산 아흔아홉 골을 위협하고 있음에 우리 지리산 사람들은 잠시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파수꾼의 역할을 자임하기로 다짐을 했다. 지난 2018년에 20여 년 동안 찬반 논쟁을 이어오며 주민 공동체를 망가뜨려 놓았던 지리산 댐 건설 계획에 종지부를 찍고 댐 건설 완전 백지화를 정부로부터 받아냈던 것처럼 현재의 지리산 산악열차 건설 시도 역시 막아낼 수가 있고 또 막아내야만 할 충분한 당위성이 있다고 우리 지리산 사람들은 굳게 믿고 있다. 그래서 우리들은 한겨울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하동군청 앞에서, 남원 시청 앞에서 몸짓으로 노래로 시로 우리의 의지를 알리고 있다. 더불어 있는 그대로의 지리산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또 지리산의 품에 안겨 살아가는 사람들 뿐 아니라 풀 한 포기 벌레 한 마리까지 그 나름의 의미가 있음을 알려 나가는 작업도 게을리하지 않을 것이다. 2023년 새해, 지리산의 선한 영향력이 더 널리 퍼질 수 있도록 지리산 구석구석을 누비며 사진과 글로써 지리산의 참모습을 독자 여러분께 전하겠다는 약속을 눈 쌓인 천왕봉을 바라보면서 다시 한번 가슴에 새긴다.
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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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2일] 인드라망 사회연대쉼터 10주년 후원의 날
인드라망 사회연대쉼터 10주년 후원의 날 국가, 사회폭력 및 모든 차별에 맞선 이들의 위한 무료쉼터 2023년 9월 2일 (토) 14시 전북 남원 귀정사 인드라망 사회연대쉼터는 민주주의 투쟁의 현장, 저항의 현장, 새로운 모색과 실천의 현장 등에서 국가폭력, 사회폭력에 맞서다 지치거나, 아프거나, 쉼이 필요한 분들을 위한 연대의 공간입니다. 또한, 쉼이 필요한 우리사회의 모든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무료쉼터입니다. 2013년 9월 고문으로 (고)백기완, 신학철, 문정현, 이남곡, 도법스님 등을 모시고 150여명의 쉼터를 지지하고 후원하는 분들과 함께 기존 공간 1채와 쉼터 개소식에 맞춰 새로이 지은 3채로 총 4채의 1인1실의 쉼터를 마련하면서 개소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후 후원회원들 후원으로 증축하여 현재 7채의 독립적인 쉼터의 공간이 마련되었습니다. 현재는 7채의 독립적인 공간과 귀정사의 요사채 4채를 사용하여, 총 11채의 공간으로 장,단기 쉼터 이용자들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쉼터에 장기간 머무는 기간은 최대 3개월로 신청을 받고 있으며, 필요시 쉼터와 상의하여 3개월씩 연장하여 이용하고 있습니다. 단기간 쉼터를 이용하는 분들은 1박부터 자유로이 본인의 상황과 조건에 맞게 쉼터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쉼터는 그냥 쉬는 곳이 아니라 자신의 고민을 돌아보고, 자신의 건강과 마음을 회복하는 쉼의 시간을 이용하는 곳입니다. 쉼의 사회적 확장을 위해 숲치유 예술제를 비롯하여 외부와의 소통과 쉼터를 알리는 작업도 조금씩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진행해온 10년의 쉼터는 많은 것이 부족한 공간이며, 장애활동가들을 위한 준비가 되어 있지 못한 공간이며, 많은 면에서 한계를 가진 공간입니다. 9월2일(토) 10주년 후원의 날은, 쉼터의 한계를 조금이나 극복하고 좀 더 나은 쉼터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다시 한번 시작하는 날입니다. 정태춘님의 공연과 지리산과 전국에서 활동하시는 예술인들의 공연, 그리고 다양한 전시와 체험프로그램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쉼터와 10주년 후원의 날에 관심과 애정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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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치 없는 갈치 마을에는 갈치 신문이 있다.
2023년 1월 9일 겨울 치고는 유난히 따뜻한 날 나는 갈치 마을 이장과 만나기로 했다. 남원 산중 마을 이름이 갈치라고 하니 그 이름이 독특해서 더 끌렸는지 모른다. 함께 가는 일행들과 함께 갈치 마을로 이동하기 전에 우리는 남원 시내에 있는 갈치 집에서 갈치 조림을 먹었다. 푹 끓여진 갈치와 무가 꽤 맛이 좋았다. 갈치 마을 가는 길은 남원에서 장수로 나가는 길목에서 보절면으로 꺽어 몇 분 들어가면 나오는 초입에 있었다. 갈치 마을을 둘러보니 전형적인 산골 마을이었다. 갈치 마을은 상갈치, 중갈치, 하갈치 마을로 생선으로 비유하면 머리, 배, 꼬리라고 볼 수 있을 것같다. 물론 갈치 마을과 바다에 사는 갈치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었다. 갈치의 꼬리와 머리가 비중이 작듯 중갈치 마을이 가장 크고 상갈치 하갈치 마을에는 각각 10가구 정도가 산다고 한다. 갈치 마을의 갈은 칡을 뜻하는 한자에서 왔다. 칡차를 갈(葛)근차 라고 쓰는 그 한자다. 즉 칡이 많은 동네라는 뜻이라 한다. <갈치신문 28호 사진속의 장면은 치치페스티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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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4.12 생명평화 탁발 순례 남원구간 기록
2004년도의 사진을 보다가 공유합니다. 어머니의산 지리산은 우리가 스스로 지켜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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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 혼불문학관, 서도역 주민들이 시위에 나서다
남원시청의 초 대형 축산 허가는 인허가 절차상의 법적 문제를 넘어서 사회적 합의를 무시한 행정의 독선의 결과이다.
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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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30일~31일] 제2회 수달의 아우성 “수달의 길을 걷다”
세계 수달의날 기념 제2회 수달의 아우성 “수달의 길을 걷다” 수달이 걷는 길 행복의 길은 아침 저녁 먹이 찾아 나서는 길 기쁨의 길은 멀리 가지 않고 그곳에서 사는 길 아픔의 길은 서식지가 파괴되어 떠나는 길 죽음의 길은 낯선 환경에서 배회하다 떠나는 길 모든 생명이 걷는 길은 미래가 있어야 한다. ‘제2회 수달의 아우성’은 수달을 따라 수달의 길을 걷습니다. 이웃 생명과 함께 걷는 행복한 길이 되었으면 합니다. ● 일시 : 2023년 5월 30일 (화) 13시 30분 ~ 31일 (수) 9시 ● 장소 : 지리산리조트 (함양군 휴천면 천왕봉로 2257-2)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지리산사람들․ 수달친구들․ 한국수달보호협회. 함양교육지원청. 에스오일 - 물어보기 : 수달아빠 최상두 010-4740-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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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을 너무나 사랑했던 사람의 지리산 사랑법
첫 수선화가 피던 봄날 함양 휴천면으로 향했다. 지리산 높은 곳에는 잔설이 남아 있었지만, 우리가 만난 그날은 여름이라도 되는 듯 따뜻했다. 만나기로 한 식당 한쪽에 노인 한 분이 앉아 있었다. [함양 휴천면 지리산 리조트 식당] 봄나물이 가득한 밥상에서 음식 이야기와 날씨 이야기 같은 상투적인 말들이 오갔다. 식사가 끝나고 카페에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야기를 시작하자 흰머리가 가득하던 그녀의 눈은 반짝이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이루지 못한 첫사랑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10대 소녀 같았다. [김종직의 유두류록 탐구의 저자 류정자 작가. 사진 김인호] 류정자 선생님은 밀양 태생으로 1948년생이다. 1965년에 산악회 활동을 하던 사촌 오빠와 처음 지리산에서 왔다고 한다. "오빠가 지리산에 한번 가보자고 하더라고요" "저는 그때만 해도 지리산에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어요." “그때는 심원마을에서 출발해서 노고단으로 갔어요." “심원마을에는 사람들이 꽤 살고 있었죠" "심원마을에서 하루 쉬고 노고단에 올랐어요." "노고단에 오르니 노고단 천지가 모두 원추리 꽃밭이었어요. “ "산을 가득 메운 원추리꽃을 보고 있으니 너무 좋았죠“ "어찌나 예쁘고 곱던지 지리산이 내 가슴에 박혀 버렸죠“ 사랑은 그렇게 시작되는 것이다. 나도 모르게 어느새 순간 번쩍이는 것이다. 그날 그 일행은 노고단에 이틀을 머물다 내려왔다고 한다. "꿈같은 시간이었어요." [지리산 모임 [우리들의 산악회]에 회원으로 참여하면서 본격적으로 지리산 골골을 누비고 다녔다. 사진 김인호] 그때만 해도 그녀도 그날 이후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지리산에 빠져서 살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는 처음에는 지리산은 노고단뿐이라고 생각했다. 지리산에 가고 싶을 때는 매번 심원마을을 거쳐 노고단에 올랐다. "제 산행 방식은 좋으면 매번 그 장소에 다시 가는 겁니다." 아마도 그런 스타일이었기 때문인지 노고단에만 가도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단다. "다른 곳을 찾을 필요도 없었죠" 하지만 곧이어 지리산 골골 여기저기를 다니게 되었다. "결혼을 일찍 했어요" "부산에서 살았는데 부산에서도 틈만 나면 산에 왔지요." 지리산 모임 [우리들의 산악회]에 회원으로 참여하면서 본격적으로 지리산 골골을 누비고 다녔다. “저는 지리산 골짜기 골짜기 안 가본 곳이 없어요." "저는 좋으면 같은 장소를 자주 가는 스타일이거든요." "결혼하고 아이 셋을 키우면서도 매번 지리산에 왔지요". "아이들은 엄마를 지리산에 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자랐어요." "아이들이 아주 어렸을 때를 빼고는 틈만 나면 지리산을 찾았습니다." 한 권의 책이 류정자씨를 탐구자로 만들었다. 하지만 그녀의 지리산 산행은 지리산이 좋아서 가는 것에서 지리산을 탐구하는 방식으로 바뀌게 된다. 그 결정적인 책이 바로 조선 시대 함양의 군수 김종직의 유두류록이다. [김종직(1431∼1492)은 조선 시대 성리학자·문신인 선생이 함양군수로 부임한 이듬해 지리산 천왕봉을 다녀와서 '유두류록(遊頭流錄)' 이란 기행문을 남겼다. 두류산(頭流山)은 '지리산'의 다른 이름이다. 1472년 8월14일부터 18일까지 4박 5일 일정으로 13.3㎞ 가운데 국립공원에 속한 노장대(함양독바위)∼상내봉(향로봉)∼미타봉∼어름터 4.5㎞ 구간이다. 옛 문헌에 김종직 선생이 올랐던 탐방로가 지리산 전체 등산길의 제1호로 알려져 있다. 이 책은 유람동기, 동행인, 날짜별 기록, 사적들, 풍경, 서정적인 감정, 당시 시대상 등을 모두 담고 있어 역사적인 가치가 매우 높다.] 사실 필자도 김종직의 유루류록을 읽은 적이 있다. 물론 읽기만 했지 거기에 나오는 지명이라든지 절터라든지 이런 것에는 일말의 궁금증도 없었다. 오래된 지리산 이야기를 읽고 싶었고 마침 도서관에서 그 책을 발견하고 재밌게 읽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녀는 달랐다. [지리산 산중에 산재 되어 있는 민가와 암자 터 등을 보면서 지리산이 품고 있는 인간의 역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우리들의 산지를 통해 김종직 선생의 ≪유두류록≫ 국역본을 접하면서 지리산의 역사를 본격적으로 천착하게 되었다. 2003년 지리산학의 정립을 꿈꾸며 결성한 [지리99] 운영진에 참여해 본격적인 [유두류록 탐구팀]을 꾸려 20여 년간 탐구산행을 이끌어 왔다. 이 책은 그 오랜 탐구의 작은 결실이다. 또한 ≪유두류록≫ 탐구와 병행하여 문헌기록에 등장하는 폐사지 탐구에도 심혈을 기울여 찾아낸 암자터가 100여 군데 이른다. 이 외에도, ‘세석의 청학연못’, ‘지리산의 시대를 연 달궁’, ‘지리산 고성탐구-추성’, ‘촛대봉 각자 高麗樂雲居士李靑蓮書를 찾아서’, ‘대궐터 탐구’, ‘문창대는 어디인가?’, ‘천왕봉 성모석상 수난의 역사’, ‘천왕봉 각자 일월대에 대하여’ 등 다수의 소고를 발표하면서 지리산학의 정립에 몰두해 왔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전을 잡고 지리산과 함께 살고 있다.] - 노컷뉴스 소개 글- [지리99라는 사이트에 류정자 작가의 다양한 글을 만날 수 있다. 사진 김인호] 그녀의 나이는 이제 75세가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지리산을 오른다. 3년 전에 김종직 선생이 산을 오르기 시작했던 마을로 이사를왔다. 류정자 선생은 두 번이나 암에 걸려 두 번의 큰 수술을 해야 했다. 하지만 그녀에게 정말 슬픈 일은 막내아들을 먼저 보낸 것이다. "그때가 가장 힘들었어요. 엄마가 지리산에 다닌다고 아들을 잘 살피지 못한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그 후 몇 년간 지리산에 오지 못했어요." 하지만 그녀는 다시 지리산으로 돌아왔다. 지금 이루고 싶은 것이 있으세요? "뭐 다른 게 있을까요?" "이제까지 발견한 폐사지(사라진 절터)가 100여 곳이 됩니다." "이제 이걸 정리하고 싶어요." "책을 묶어 두면 누구에겐가 도움이 되겠지요." "김종직 선생님이 류두류록을 남기지 않았다면 그 후세에 지리산에 오르려고 했던 분들에게 참고 자료가 되지 않았을 것이고 제게 폐사지에 관심을 두지도 못했을 겁니다“ [김종직의 유두류록 탐구 600년 전 지리산 산행기 저자류정자] "제가 얼마 전에 김종직의 유두류록 탐구을 책을 내기도 했습니다만, 제가 여러 서적과 문헌들을 참고하고 직접 수십 번을 찾아가서 발견한 지리산 폐사지 터에 대한 기록도 저 처럼 관심있는 누군가에게는 작은 도움이라도 되리라 생각 합니다." "이런 작업을 하는 사람은 없거든요." "그리고 김종직 선생님이 지리산에 올랐던 길을 복원하고 싶은 작은 소망이 있습니다." 지리산을 좋아하게 된 이유가 뭘까요? 류정자 작가는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그렇지! 사랑하는 것에는 이유가 없는 법이다. 그녀의 지리산 사랑이 60년이 되어 가고 있다. 무엇인가 사랑하게 되면 자주 보고 싶고, 더 알고 싶고,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것이 사랑의 방식일 것이다. 그녀는 지리산을 사랑하다 보니 자주 갔고, 관심이 커지다 보니 책을 냈고, 폐사지를 탐구했다. "내가 죽으면 지리산 골짜기 여기 저기에 뿌려 달라고 아이들에게 이야기 해두었어요." 그녀는 죽어서도 지리산과 함께하고 싶은 것이다. 찐 사랑은 이런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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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샘의 지리산통신] 수라 갯벌과 지리산
참으로 감동적인 황윤 감독의 다큐멘터리 작품 '수라'를 함양에서 만났다. 바다의 허파가 갯벌이라면 육지의 허파는 숲과 강이란 생각이다. 그래서 '수라'와 '지리산'은 닿아 있음을... 그 위태로움까지 닮았다. 함양까지 한달음에 달려와 준 황윤 감독과 숨막히게 아름다운 영상 담아준 김정근 카메라 감독에게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아름다운 광경을 본 죄로 새만금을 지키고 있다’는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 오동필 님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쟁쟁하다. 마찬가지로 아름다운 둘레길을 걷는 죄로 '있는 그대로의 지리산'을 지킬 수밖에... (2023.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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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둘레길에서 만나는 옛이야기3-용유담
지리산둘레길에서 만난 옛이야기3-용유담 용유담(龍遊潭), 용이 노닐던 연못이라니...... 지리산둘레길 금계-동강 구간을 걷다가 보면, 산길에서 뚝 하니 아스팔트 도로로 떨어지고, 어리버리한 채 냅다 벅수를 따라 걷다 보면, 용유담은 그냥 지나치고 말기 일수이다. 그런데, 조금 아쉽게도 용유담 한가운데를 흉측한 콘크리트 다리가 지나간다. 태풍 루사 때 유실된 다리를 2004년 새로 만들면서, 이렇듯 용유담을 반토막 내며 만든 것이다. 쯧.... 물론, 주민들의 일상의 평온함과 관광객의 편리함을 위해 크고 튼튼한 다리는 필요하지만, 꼭 이토록 모질게 반토막을 내면서 만들어야 했을까? 하는 의문은 지워지지 않는다. 용유담의 아래쪽에 있었던 옛날 출렁다리가 새삼 그리운 건, 낡음에 대한 것이 아니라 위치선정에 대한 옛사람의 안목이다. 이 용유담에는 알 만한 사람은 알고, 모를 만한 사람은 몰라도 되는 시시껄렁한 전설 하나가 전해져 온다. 옛날, 대게 모든 전설은 년도를 알 수 없는 ‘옛날’로 시작된다. 옛날, 이 용유담에는 ‘마적도사’가 살았더랬다. 이 마적도사의 실존은 용유담 위에 있는 ‘마적사’와 ‘마적대’ ‘마적동’의 존재로 능히 증명된다. 그래도 설마 하는 사람들이 있을게다. 전설에 나오는 마적도사의 실존을 믿고 안 믿고는, 물론 각자의 몫이다. 실존했던 마적도사에게는 말 잘 듣는 당나귀 한 마리가 있어, 마적도사의 심부름을 곧잘 하곤 했더랬다. 이 당나귀가 장에 심부름 갈 적엔, 마적도사가 도술을 부려 쇠막대기로 다리를 놓아주었다. 어느 날이었다. 항상 어느 날, 사건은 발생하게 마련인지라, 이 마적도사는 장기 두기를 워낙 좋아했는데, 그 어느 날 마적도사는 장기두기에 빠져 당나귀가 장에서 돌아오는 시간을 깜빡한 게다.(항간의 소문에 의하면 장기두기의 상대는 그 유명한 천왕할매라고 한다) 장을 보고 돌아오는 당나귀는 당연히 마적도사가 도술을 부려 다리를 놓겠거니 하고 기다리는데...... 그날따라, 용유담의 아홉마리 중, 여덞마리 용이 서로 싸우는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 마적도사는 당나귀의 울음소리를 듣지 못하게 된게다. 당나귀는 짐을 싣고 서서 힘을 다해 울부짖었으나 반응이 없어 그대로 지쳐서 죽었다고 한다. 당나귀의 죽음소식을 들은 마적도사는, 아차하고 후회를 했지만, 이미 때는 늦고 말았다. 그 다음 대목은 동네 어르신의 말씀을 그대로 들어보자. “그래가지고 거서 나귀가 빠져 죽고, 말하자면 패해가 발생했다 아입니까? 장기 때문에 원인은 이리 됐다 해가지고 자기가 당나귀를 그렇게 질을 들이자면 엄청난 공을 들였을 거 아니요. 그런 당나귀가 죽어뿠으니까. 자기가 장기 때문에 그랬다 해가지고 장기판을 갖다가 돌장기판이제, 그 돌장기판을 떤지뿠는데, 하나는 길 건너에 말하자면 저 강 건너에 길에 가 떨어져 삐맀고, 현재 길, 도로 있는데... 한 쪼가리는 이 주변에 떨어져가 있는데 이 건네 떨어져있는 현재 어딨는가 몬 찾았고, 저 건너 하나는 거는 도로를 딲다가 장기판을 발견했대요, 돌장기판을. 그래 그걸 갖다가 발견을 했이먼, 그대로 보존을 했이먼 상당한 관광꺼리가 될낀데. 그 돌을 갖다가 우째 했는지 현재는 없어요. 그래가지고 당나귀가 달고 다니는 구슬방울. 방울도 일곱 개나 발견을 하고 그랬는데. 그래가지고 그기 또 이상한 일이 거기서 여 송전 사람이 도로공사 일을 했거든요. 일을 했는데, 방울을 멧 사람이 나눠가졌대요, 일하는 사람들이, 본 대로. 근데 그날 저녁에 가서 자고 나니까 전부다 없어졌대요. 이 도로 논 지 불과 십한오륙 년 전이거든요.“ 십오륙 년 전만 해도 흔적들을 찾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깜쪽같이 사라진 마적도사의 슬픈, 아니 마적도사 당나귀의 슬픈 전설은, 아직도 동리 주민들에게 그리고 용유담을 찾는 객들에게 전해져 오고 있다. 용유담엔, 용만 노니는 게 아니다. 용유담 양쪽 바위들에 빼곡하게 새겨진 각자(刻字 바위글씨)들을 보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노닐다 갔는지 알 수 있다. 그럼, 용유담의 각자에 대해 잠깐 이야기해 볼까. 용담입문(龍潭入門). 이제는 도로와 다리로 네 갈래로 나뉘어졌지만, 옛사람들의 입장에서 용유담을 한번 방문해 본다면, 마천 혹은 휴천에서 백연마을을 거쳐 용유담으로 내려섰을 것이다. 그때, 그 입구에서 ‘용담입문’ 각자를 마주하면서, 아...이제 용유담이로구나... 용유담엔 여기가 용유담이란 걸, 떡 하니 알리는 각자가 세 군데나 있다. 용유동천, 동천(洞天)이란, 말 그대로 ‘산천으로 둘러싸인 경치 좋은 곳’, 즉 놀기 좋은 곳이란 뜻이다. 게다가, 방장제일강산 이라니...방장산은 지리산의 또 다른 이름이 아닌가. 그렇다면, 지리산에서 제일 풍광이 좋은 곳이, 여기 용유담이란 말인데.... 조선 선비들의 지리산 유람록을 훑어보면, 반드시 용유담을 거쳐 가면서, 그 아름다움에 대한 찬사와 시를 한 수 씩 남겨 놓았다. 용유담 조구명 (1724년) 지세는 매우 깊고 그윽하며, 地勢陰森最 하천은 격렬하게 쏟아져 내리네 . 川流激射來 바람 불고 구름 일자 용이 솟아올랐다가, 風雲龍拔出 보금자리 찾아서 바위 뚫고 돌아오네. 巢宅石穿回 깊은 가을 날씨처럼 오싹한 느낌, 凜若深秋氣 마른 하늘에 날벼락 치는 용의 조화, 公然自日雷 위태로운 출렁다리 건너질 못하고, 危橋跨不測 바위 넘어 새 길 찾아 건너간다네. 生路渡方開 용유대, 세신대(몸을 정갈히 한다), 심진대(진리를 추구한다), 영귀대(논어의 한 대목으로, 유유자적한 삶을 꿈꾼다), 독조대(아...獨釣寒江雪), 경화대(동갑계), 강선대(신선이 내려와서 논다)....등 많은 계모임을 기념하는 각자들이 여기저기에 새겨져 있고, 그 아래에는 그 모임에 참가한 사람들의 이름이 빼곡하다. 근데, 왜? 이리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글자를 새기고, 이름을 새길까? 그 이유는, 너무 간단한다. 단체사진, 단체셀카... 모여서 논 것을 기념해야하고, 기록을 남겨야 하는데.... 서울의 돈 많고 권력 있는 양반네들은, 화가를 불러서, 그림으로 남겨, 시화첩을 만들어 각자 나눠 갖는데, 그 보다 돈이 없는 치들은, 대신, 글자를 남기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던 것이다. 용유담의 메인스트리트엔, 각자의 집대성, 아니 각자의 완결판이 모여 있다. 우선, 조선시대 유학계의 거두들의 이름이 주욱 나열되어 있다. 물론, 그 분들이 직접 새긴 것은 아니고, 후학들이 그들을 추모하는 뜻에서 새겼다. 문충공점필재김선생(文忠公佔畢齋金先生) 문정공남명조선생(文貞公南冥曺先生) 문민공탁영김선생(文愍公濯纓金先生) 문헌공일두정선생(文獻公一蠹鄭先生) 신라말에 유학이 들어왔지만 최치원은 골품제로 인해 좌절하고 신선이 되어 날아가고, 고려시대 안향이 성리학을 도입하고, 고려말 삼은(三隱, 목은(牧隱) 이색, 포은(圃隱) 정몽주, 야은(冶隱) 길재)으로 이어진다. 삼은은 고려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버티고, 삼봉이 사대부의 나라를 꿈꾸며 조선을 개국하지만, 그 역시 왕권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조선초, 왕권에 기댄 사대부, 즉 훈구가 왕과 권력을 분점, 아니 왕에 기대어 기득권을 유지한다. 안향에서 삼은으로 이어져온 사림은 조선초 야은 길재의 제자 김숙자, 김숙자의 아들 점필재 김종직으로 이어진다. 김종직(金宗直, 1431~1492)은 사후, 사관(史官)으로 있던 그의 제자 탁영 김일손(金馹孫, 1464~1498)이 스승 김종직의 조의제문(弔義帝文)을 사초(史草)에 수록하였고, 이것이 연산군 대에 필화 사건으로 이어진다. 무오사화. 김종직의 제자 일두 정여창, 탁영 김일손, 한훤당 김굉필은 사화 때 죽임을 당하고, 또 부관참시 당한다. 환훤당의 제자 정암 조광조가 중종반정 이후 훈구파와 대립하여 사림을 이끌었으나, 주초위왕(走肖爲王)의 술수로 기묘사화 때 사사된다. 선조 이후 훈구파가 쇠락하고, 사림이 재등장하여 실질적인 사대부 지배세력이 된다. 권력을 잡은 사림은 이이와 이황으로 대변되는 서인과 동인의 당파를 성립하여, 동방5현(김굉필, 정여창, 조광조, 이언적, 이황) 문묘18현(최치원,설총,안향,정몽주,정여창,김굉필,이언적,조광조,김인후,이황,이이,성혼,조헌,김장생,송시열,김집,박세채,송준길)으로 자신들의 계보를 확립하면서 정여창과 김굉필, 조광조를 복원한다 그러나 점필재는 복원되지 못한다, 그와 삼봉은 조선의 영원한 이방인일 수밖에 없다. 이황의 동인세력은 이후 남인과 북인으로 분화되고, 다시 북인은 소북과 대북으로 갈라지면서, 정조 이후 권력의 중심에서 사라진다. 이이의 서인세력은 노론과 소론으로, 노론은 다시 시파와 벽파로 분화된다 정조 사후, 사림은 당쟁이 아니라 세도정치로 치닫고, 시파의 우두머리 김조순의 안동김씨, 풍양조씨의 조선으로 전락한다. 선조 이후 당쟁은 왕권과 사대부의 정책대결이고, 당파는 학문과 정치적 입장을 가진 정치집단이며, 그런 의미에서 긍정성을 가진다. 하지만, 정조의 탕평책의 실패로, 당파는 세도정치로 변모한다. 학문과 정치적 입장을 가진 집단이 아니라, 한 가문의 권력 독점으로. 그리고, 조선은 멸망한다. 용유담 각자 이야기를 하다가, 너무 뜬금포로 빠졌다....쩝....암튼... 그런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진 각자가 용유담에 있다는 말씀. 그리고, 용유담엔,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땅문서가 있다. 인묘 은 사혜평 강공 현지지(仁廟 恩 賜惠平 姜公 顯之地) 이곳은 인종임금(재위 1544-1545)이 강현(姜顯 1486-1553)에게 하사한 땅이라는 뜻이며, 강현의 호는 신안(新安)이며 혜평(惠平)은 그의 시호이다. 벼슬은 형조판서를 지냈다. 그의 13세손의 이름이 있는 것으로 봐서 1800년 이후에 새겨진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서 그런지...이곳 용유담과 인근 지역은 진주 강씨의 세력권이었다. 여기저기 강씨들의 집안내력들이 남아있다.(그 유명한 세진대도 그들의 작품이다) 땅문서 바로 옆에, 같은 진주 강씨인 한사(寒沙) 강대수(姜大遂: 1591~1658)의 이름도 새겨져 있다. 한사 강선생 대수 영귀소(寒沙 姜先生 大遂 詠歸所) 한사(寒沙) 강대수(姜大遂: 1591~1658)는 광해군과 인조때 벼슬을 했으며, 『한사선생년보(寒沙先生年譜)』(1899)에 따르면 인조8년(1630년), 영남관찰사 재직 중 하동 섬진강에 배를 띄우고 용유담으로 거슬러 올라 천왕봉에 올랐음이 기재되어 있다는데...근데 섬진강과 용유담은 수계가 다른데, 어떻게 배를 타고 왔을까...암튼, 옛날 사람들은 대단해.... 자, 그럼 이쯤에서 각자 이야기는 그만하기로 하고, 용유담에서 뻬놓을 수 없는, 가사어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슬슬 마무리를 해야겠다. 조선의 국가 공식 지리지인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용유담을 설명하면서, 가사어에 대한 언급이 있다. “마천소(馬淺所)에 있다. 지리산 북쪽 골물이 합쳐서 임천이 되었다. 용유담(龍遊潭) 군 남쪽 40리 지점에 있으며, 임천 하류이다. 담의 양 곁에 편평한 바위가 여러 개 쌓여 있는데, 모두 갈아놓은 듯하다. 옆으로 벌려졌고 곁으로 펼쳐져서, 큰 독 같은데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기도 하고, 혹은 술 항아리 같은데 온갖 기괴한 것이 신의 조화 같다. 그 물에 물고기가 있는데 등에 가사(袈裟) 같은 무늬가 있는 까닭으로 이름을 가사어(袈裟漁)라 한다. 지방 사람이 말하기를, 지리산 서북쪽에 달공사(達空寺)가 있고, 그 옆에 저연(猪淵)이 있는데 이 고기가 여기서 살다가, 해마다 가을이면 물 따라 용유담에 내려왔다가, 봄이 되면 달공지(達空池)로 돌아간다.” 그래, 설마하니, 국가 공식 지리지에 존재하지도 않는 물고기를 언급할 리가 있겠나, 싶어, 용유담과 임천과 뱀사골을 샅샅이 뒤져 보지만, 지금까지 가사어를 발견하진 못했다. 아...조선의 지리지가 거짓말을 했구나 싶어, 실망하던 차에, 가사어에 대한 명확한 증거자료를 보게 되었다. 그래, 가사어는 실재로 있었구나.... 우선, 조선시대 여러 지도에, 가사어가 살고 있다는 반야봉 아래 저연(猪淵)이라는 표기가 명확히 나와있다. 지도에 나온 지명이 거짓일 리 없다. 그리고, 조선의 유명하고, 또 믿을만한 선비들의 글에, 가사어에 대한 이야기나 제법 나온다. 그렇다, 가사어는 존재한다, 아니 존재했다. 조선 정조 때 박제가와 함께 조선실학의 기반을 닦은 이덕무(李德懋)는 ‘듣는 대로 쓰고 보는 대로 쓰고 말하는 대로 쓰고 생각하는 대로 썼다’는 의미의 '이목구심서(耳目口心書)'를 남긴다. 그가 듣고 본 이야기 한 대목이 나의 주목을 끈다. "지리산 속에 연못이 있다. 그 위에 소나무가 죽 늘어서 있어 그 그림자가 언제나 연못에 쌓인다. 못에는 물고기가 있는데 무늬가 몹시 아롱져서 마치 스님의 가사와 같으므로 이름 하여서 가사어(袈裟魚)라고 한다.“ 조선 실학의 거두이자, 지금도 모든 정치인들이 존경한다고 입만 열면 언급하는, 다산 정약용의 스승이신, 이덕무가 사실이 아닌 것을 글로 남길 리 없겠다. 시간을 좀 더 거슬러 올라가 보자. 함양 군수를 엮임하고, 그 밑으로 일두 정여창, 탁영 김일손, 한훤당 김굉필을 길러 낸, 조선 사림의 총수, 김종직의 시 한편을 읽어보자. 達空寺下水梭花(달봉사하수사화) 紫鬣斑鱗味更嘉(자렵반린미갱희) 珍重廣文嘗不得(진중광문상부득) 却來天嶺病夫家(각래천령병부각) 달공사 아래에 있는 물고기는, 붉은 갈기 얼룩 비늘에 맛이 더욱 좋구나. 진중한 광문께서는 맛도 보지 않고서, 도리어 천령 병부의 집까지 왔네그려. 당대의 훈구파 세력에 맞서, 목숨을 걸고, 심지어 죽어서 부관참시까지 당해 가면서, 오로지 꼿꼿한 선비의 정신을 보여준, 사림의 총수 김종직이 가사어를 먹었다는 시를 거짓으로 지었다고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겠다. 중종 25년, 그러니까 서기 1530년, 왕명으로 지리지를 편찬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지금으로 치면, 국토교통부가 발행하는 일종의 종합지리지인 셈이다. 함양 편을 펼쳐보자. “봄이 되면 달공지(達空池)로 돌아간다. 그 까닭으로 엄천(嚴川) 이하에는 이 고기가 없다. 잡으려는 자는 이 고기가 오르내리는 때를 기다려서, 바위 폭포 사이에 그물을 쳐 놓으면 고기가 뛰어오르다가 그물 속에 떨어진다.’ 한다. 달공은 운봉현 지역이다.“ 조선이라는 국가가 편찬한 공식 지리지에, 가사어의 서식환경과 관측기록, 심지어 포획방법까지 자세히 서술되어 있다. 그렇다, 가사어는 실재한 어류인 것이다. 1922년, 완산 최병칠이 편찬한, 운봉의 읍지인 ‘운성지’에 주목할 만한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전래되어오는 말에 의하면 가사어라는 물고기가 있었는데, 용담에 사는 80세 노인이 그 물고기를 보았다고 하는데 그의 말에 의하면 중간에 어떤 무인(武官)이 가사어를 많이 잡고자 독약을 풀어 이 때문에 멸종되었다.” 중앙정부의 공식 지리지도 아니고, 왕명이나 김종직, 이덕무 같은 쟁쟁한 인물의 저서도 아닌, 일개 운봉읍지의 내용이어서, 그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생각을 할 순 있겠지만, 그래도 어엿한 역사사료인, 운성지는 가사어의 멸종을 육하원칙에 따라, 즉 언제 어디서 누가 왜 어떻게 했는가에 대해 정확히 기술 하고 있다. 이왕 하는 김에 조금 더 역사를 훑어보자면, 광해군 3년 1611년 남원부사 유몽인은, 근무는 안하고, 9일간 지리산을 산행하고 ‘유두류산록’이라는 산행기를 남긴다. 그 역시 인조반정이후 사형 당한다. 대게 지리산을 돌아다닌 조선의 선비들은 사형되거나, 부관참시되거나 아니면 조용히 은거하게 된다. 아무튼, 유몽인의 글에도 가사어가 등장하는데, “그 연못에 사는 물고기를 가사어(袈裟魚)라 부르는데, 이 세상에 다시없는 물고기로, 오직 이 못에서만 알을 낳고 새끼를 기른다고 한다. 이에 어부를 시켜 그물로 잡게 하였으나, 수심이 깊어 새끼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다.” 뱀사골 칠선골 한신골 맑은 물들이 모여 남강으로 가기 전, 한바탕 물의 향연을 펼치는 용유담에는 무수히 많은 역사적 사실과 자료, 그리고 그 보다 더 많은 전설과 이야기가 지리산 봉우리 숫자만큼이나 많이 고여 있다. 유몽인은 잡다가 놓치고, 국가 지리지에는 그 생태적 고찰이 있고, 김종직은 구워서 먹고, 운봉읍지는 그 멸종에 대한 세세한 기록까지 남겨 둔 가사어라는 한 어종의 이야기만도, 이렇게 무궁무진한데..... 지리산댐을 지어 수장시키려는 우리 시대의 한심한 노력들이 아직도 기웃거리고 있고, 그 욕심 때문에 용유담은 여즉 국가명승으로 지정되지 못하고 있다. 장마에 물이 불고, 계곡이 한번 뒤집어 지는 여름엔 용유담도 오랜만에 물들로 가득해 진다. 둘레길 걷다 지친 발을 담그기엔, 물이 너무 억세기에 탁족을 권하긴 어렵지만, 용유담 둘레를 찬찬히 한번 걸어보면서, 수많은 각자와 마적도사의 흔적을 발견하는 것도 색다른 즐거움일게다. 그러다, 혹시 자맥질하는 수달을 발견하시거든, 그 수달 입에 물려가는 그 물고기가 혹여 가사어가 아닐까 눈여겨 보시라.
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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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샘의 지리산통신] 반가운 히어리
산청 성심원 둘레길에서 만난 히어리, 지리산 깃대종이기도 하지만 이 위태로운 기후 위기의 시대에도 지리산 곳곳으로 널리 퍼져 멸종위기종에서 제외되었기에 더 고맙고 대견스러운... (223.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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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샘의 지리산통신
[숲샘의 지리산통신] 2023년, 다시 지리산이다. 올해도 눈 쌓인 천왕봉을 바라볼 수 있고 중산리 계곡물과 대원사 계곡물이 만나 이루는 덕천강이 내려다보이는 산천재에서 내 방식의 나 홀로 새해 시무식을 했다. 4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천왕봉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 산천재 앞마당의 남명매가 그 증인인 셈이다. 새해엔 ‘선택과 집중’을 화두로 내 능력 밖의 일들은 내려놓기로 했다. 닭을 보살피는 농장 일과 ‘있는 그대로의 지리산’을 위해 길동무들과 함께 지리산을 걷는 초록걸음이야 변함이 없겠지만 지난 연말부터 이런저런 자리들을 내려놓았으니 2023년엔 좀 더 홀가분하게 닭과 지리산에만 집중을 할 수 있으리라 기대를 해본다. 지리산의 품에 안긴 지도 어느새 스물세 해가 되었다. 그새 아들과 딸은 제 갈 길을 찾아 떠났고 아내도 희끗희끗한 머리칼에 60을 코앞에 둔 나이가 되어버렸다. 참으로 아득한 세월이 쏜살처럼 흘렀지만 별 탈 없이 삶터와 일터를 그대로 지키고 있으니 이 모두가 지리산 덕택이란 생각이다. 그러니 지리산 천왕봉은 내 삶의 나침반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백두대간의 시작점이자 종점인 지리산은 긴 세월 동안 힘들고 아픈 이 땅의 민중들에게 그 품을 내주어 위로와 안식의 장소이자 피난처가 되어왔음을 역사가 증명해 왔고 코로나와 기후 위기의 재난을 겪고 있는 2023년 현재도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기에 어머니의 산 지리산이 그 역할을 이어갈 수 있도록 지켜나가는 건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의 몫임을 명심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그 지리산은 그 어느 때보다 위태롭다. 하동에서는 형제봉에, 남원에서는 정령치에 산악열차를 놓겠다며 숲을 파헤치기 일보 직전이고 섬진강에는 온갖 중장비가 동원되어 그 고운 강모래를 마구잡이로 퍼내고 있는 게 작금의 지리산이다. 확실치도 않은 눈앞의 돈 몇 푼에 지리산에 깃들어 살아가고 있는 뭇 생명의 생태 그물망을 끊어 놓으려는 개발 망령들이 지리산 아흔아홉 골을 위협하고 있음에 우리 지리산 사람들은 잠시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파수꾼의 역할을 자임하기로 다짐을 했다. 지난 2018년에 20여 년 동안 찬반 논쟁을 이어오며 주민 공동체를 망가뜨려 놓았던 지리산 댐 건설 계획에 종지부를 찍고 댐 건설 완전 백지화를 정부로부터 받아냈던 것처럼 현재의 지리산 산악열차 건설 시도 역시 막아낼 수가 있고 또 막아내야만 할 충분한 당위성이 있다고 우리 지리산 사람들은 굳게 믿고 있다. 그래서 우리들은 한겨울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하동군청 앞에서, 남원 시청 앞에서 몸짓으로 노래로 시로 우리의 의지를 알리고 있다. 더불어 있는 그대로의 지리산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또 지리산의 품에 안겨 살아가는 사람들 뿐 아니라 풀 한 포기 벌레 한 마리까지 그 나름의 의미가 있음을 알려 나가는 작업도 게을리하지 않을 것이다. 2023년 새해, 지리산의 선한 영향력이 더 널리 퍼질 수 있도록 지리산 구석구석을 누비며 사진과 글로써 지리산의 참모습을 독자 여러분께 전하겠다는 약속을 눈 쌓인 천왕봉을 바라보면서 다시 한번 가슴에 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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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의 강들 또한 지리산이다.
[숲샘의 지리산통신 2022-06] 지리산의 강들 또한 지리산이다. 겨울 가뭄에 이어 역대급 봄 가뭄이 계속되고 있는 지리산의 6월, 오랜 세월 유장하게 흐르던 지리산의 강들도 가뭄에 몸살을 앓고 있다. 한때 지리산 댐 건설 논란으로 하마터면 수장될 뻔했던 엄천강 용유담의 거북바위도 배를 수면 위로 드러낸 채 가뭄의 심각성을 눈으로 확인하게 한다. 산은 강을 건너지 않고 강은 산을 넘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지리산 골골 계곡물들은 북쪽 엄천강과 람천, 동쪽 경호강과 덕천강, 남쪽 섬진강을 지나 바다로 바다로 향한다. 강물은 막힘 없이 흐르고 강가의 모래와 자갈 그리고 온갖 수생식물들이 어울릴 때 비로소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강으로 유지될 것이다. 하지만 지리산의 강들에서는 거의 매일 작업 중인 중장비들을 볼 수 있다. 섬진강에서는 그 고운 모래들을 퍼내고 덕천강에서는 강바닥의 자갈들을 실어내고 있는 것이다. 새로 뽑힌 지자체장들이여, 제발 눈앞의 돈 몇 푼 때문에 그 아름다운 강을 파헤치지 마시라. 지리산이 그냥 그대로 있을 때 가장 아름답듯이 지리산의 강들 또한 있는 그대로 구불구불 흐를 때 가장 아름다운 것을... -사족 : 지령 1,000호를 맞은 한국농정신문이 쉼 없이 흐르는 지리산의 강물처럼 1만 호, 10만 호까지 변함없이 이어지길 바란다. 사진1 : 경호강의 노을 적벽산 아래로 흐르는 경호강, 저 멀리 지리산의 동쪽 끝자락 웅석봉으로 이어진 달뜨기 능선이 노을로 물들고 있다. 사진2 : 꽃봉산에서 바라본 경호강 산청읍 꽃봉산 정상에서 내려다본 경호강, 운무에 쌓인 웅석봉을 필자는 한국의 마터호른이라 부른다. 사진3 : 덕천강과 구름 속 천왕봉 남명 조식 선생이 말년을 보냈던 산천재에서 바라본 덕천강, 중산리 계곡물과 대원사 계곡물이 만나서 진양호로 향한다. 남쪽에서 바라보는 천왕봉은 구름에 가려 그 모습을 좀처럼 보여주지 않고... 사진4 : 엄천강 용유담 운봉에서 발원한 람천이 실상사를 지나 백무동계곡, 칠선계곡물과 만나 엄천강이 되고 용유담을 이룬다. 그 용유담 가운데서 배까지 드러난 거북바위, 극심한 봄 가뭄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수량이 많아 물에 잠길 땐 용머리처럼 보여 용바위라고도 불린다. 사진5 : 만수천과 천왕봉 실상사 해탈교에서 바라본 만수천은 바짝 말랐다. 저 멀리 천왕봉은 좌 중봉 우 제석봉을 거느리고 그 모습을 드러냈다. 저 강물이 엄천강, 경호강 지나 남강 댐까지 가서 낙동강으로 사천만으로 흘러가야 하는데 그곳까지 갈 수나 있을지... 사진6 : 구례 서시천 구례읍을 지나 섬진강으로 향하는 서시천, 강둑을 따라 길이 만들어진 지리산 둘레길에서 강물에 비친 메타세쿼이아 가로수를 바라보다. 사진7 : 섬진강 화개장터에서 평사리로 향해서 섬진강 길을 걷고 있는 길동무들, 노랗게 핀 큰금계국의 꽃들이 발걸음을 가볍게 해 준다. 사진 8 : 아픈 섬진강 모래가 많아 다사강이라고 불리는 섬진강, 섬진강의 그 고운 모래를 퍼내서 산성처럼 쌓고는 대형 트럭으로 쉼 없이 실어낸다. 섬진강 재첩이 사라지고 강의 자정 능력이 급속도로 떨어질 것이 분명한데도 지자체는 돈 몇 푼을 위해 언제까지 모래 장사를 이어갈 것인지 참으로 답답할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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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의 젊은이를 만나다-15] 인디가수 마승우 (산청군 시천면)
산청의 젊은이를 만나다 열 다섯번째 젊은이 마승우
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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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그대로일 때 강하고 아름답다
모니터링의 두 번째 꼭지였던 탐방로(등산로) 일부 구간의 침식 우려 건은 비전문가인 내가 보기엔 아직은 인간이 끼어들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비가 제법 많이 내린 후에 이루어진 모니터링이었는데 다녀온 어느 구간에서도 탐방로(등산로)가 침식되거나 침하된 곳은 없었다. 전문가의 생각은 다를 수 있겠지만 자연에 대한 인간의 개입은 최소화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하동읍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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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항하는 청춘의 원더풀 라이프 “나는 반항한다 고로 존재한다"
섬진강을 따라 자전거를 타고 오고 가던 시절이 있었다. 아마도 2005년이나 2006년쯤이었을 것이다. 나는 구례에서 악양까지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왕복 60km였다. 봄이 끝날 무렵 시작한 자전거 출퇴근은 겨울이 오면서 끝났다. 그 후로 자전거 출퇴근을 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하던 일을 그만두었고 악양은 나에게서 멀어졌다. 지리산에 내려와서 살게 된 이유는 간단했지만 살아가기는 녹록하지 않았다. 구례에서 섬진강을 따라 악양으로 향하면서 그때의 기억들이 떠올랐다. <그는 올해 지리산사람들 공동집행위장이 되었는데 올해 관운이 있는 사주라고 했다. 사진 김인호> 오늘 악양에 사는 최지한씨를 만나기로 했다. 그를 지난겨울 남원의 산악열차 반대 시위장에서 본 기억이 있다. 아마도 남원시청 옆이었을 것이다. 한겨울이었는데 그는 맨발에 슬리퍼 차림이었다. 딱 봐도 보통은 아닌 사내다. 머리는 삭발이었다. 그를 악양면 소재지에 있는 카페에서 만났다. 길 건너에 악양초등학교가 보였다. <그의 첫인상은 “나는 반항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진 김인호> 오래 전에 악양에 일할 때 그 초등학교 운동회에 참가했던 기억이 난다. 아이들의 신난 함성이 가득한 운동장에 오후에 햇살이 눈 부셨다. 커다란 히말라에시더(개잎갈나무 50미터까지 자란다)가 동쪽에 있었다. 누군가는 이 나무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무라고 했었다, 나도 가끔 동의하지만, 집안에 심기에는 나무가 너무 크다. 이 나무를 키우다 보면 예상보다 너무나 커버리기 때문에 위를 잘라버린다. 주변과 어울리지 못하는 것들은 싹을 잘라 버리는 것이 사회의 일반적이 법칙이다. <그가 환경운동을 시작하게 된 이유는 공해문제연구소에서 만든 한국의 공해지도라는 책을 초등학교 3학년 때 만났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진 김인호 > 그의 첫인상은 “나는 반항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세상 사람들이 히말라야 시더의 위를 자르는 것같은 사회의 일반적인 잣대를 그는 봐줄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그가 하동에 살게 된 것은 2006년쯤이라고 한다. 내가 하동을 떠난 것이 그쯤이었다. 그는 멀리 강원도 고성 출신이라고 했다. 화진포가 가까운 강원도 산골 마을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북한을 지척으로 둔 강원도 최북단에서 태어났다. 나는 몇 해 전 화진포에 가봤다. 화진포 바다는 서해나 남해와는 다른 고독하고 외로워 보이는 진한블루였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초등학교 시절 어느 해 서울로 이사를 했다고 한다. 그 후 대학에서 양식업을 공부했다. 그리고 남해의 여러 섬마을을 전전하며 양식장에서 일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결국 여기 하동 악양에 정착했다. 그의 직업은 대바구니를 만들거나 수리하는 일과 정원관리라고 한다. 그리고 지역의 사람들과 환경을 지키는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가 환경운동을 시작하게 된 이유는 공해문제연구소에서 만든 한국의 공해지도라는 책을 초등학교 3학년 때 만났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도 고등학교 시절 그 비슷한 책을 본 적이 있다. 한국에서 가장 오염도가 높은 곳은 하동 넘어 광양이었다. 광양에는 광양제철소가 있다. 세계최대 규모의 제철소가 있고 거기서 품어져 나오는 대기 오염 물질은 한국 대기 오염 물질의 5.43%라고 한다. 나 역시 검은 역기가 품어져 나오는 그 사진을 책에서 본 기억이 난다. 그 책을 보고 열 받아서 환경운동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동기가 순수하다. 아마도 그는 순수한 남자인 것 같다. 몇 해 전부터 하동은 산악열차로 인해 갈등이 깊었다. 악양 형제봉에 산악열차를 설치하겠다는 하동군의 야심 찬 계획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산악열차 반대 운동을 했다. 그것도 열 받아서 했다고 한다. 나는 그에게 양말을 신지 않는 이유를 물었는데 대답은 간단했다. “발에 열이 많아서 답답해요.” 그는 역시 열이 많은 사람이었다. 재밌는 이야기를 해 달라고 했더니 그는 마루에서 3년을 살았던 적이 있다고 했다. 왜 그러셨나요? [어느 해 봄 비가 오는 날 구들이 고장이 나서 일산화탄소 중독이 된 적이 있어요. 마을로 기어와 동치미 국물을 얻어먹었어요. 그 후로 방에 들어가 자지 않았어요.] 방에 들어가지 않으니 마루밖에 잘 곳이 없었다고 한다. 그는 그렇게 마루에서 3년을 살았다고 한다. 보통 사람은 아니다. 카페에서 인터뷰하고 그가 일하는 대나무 공방에 가봤다. 녹색평론 읽기 모임이라는 작은 안내문이 문 앞에 붙어 있었다. 나 역시 오래전에 녹색평론 읽기 모임을 한 적이 있다.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 오래전 일이지만 말이다. <간디의 물레라는 사진을 본 적이 있는데 그가 수리하는 대바구니가 물레처럼 보였다.> 공방에는 헤진 바구니와 새로 만든 바구니 그리고 수리를 원하는 대바구니가 보였다. 그가 말한 바에 의하면 이것으로 먹고살고 약간의 잉여자본도 생긴다고 했다. 간단한 도구로 생계가 가능한 일이라서 좋다고 했다. 나는 이런 식의 밥벌이를 본 적이 없다. 그가 작업하는 모습을 한참 동안 보고 있었다. <공방에는 헤진 바구니와 새로 만든 바구니 그리고 수리를 원하는 대바구니가 보였다.> 익숙하게 대바구니를 수리했다. 능숙한 솜씨가 보기 좋았다. 간디의 물레라는 사진을 본 적이 있는데 그가 수리하는 대바구니가 물레처럼 보였다.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도 간단한 도구로 새로운 물건을 만들거나 물건을 고치는 일은 매력적이다. <간디의 상징이 된 물레> 그가 좋아하는 영화는 고레이다 히로카즈 감독의 환영의 빛이라고 했다. 섬진강을 따라 돌아오면서 오후에 햇살이 섬진강을 비추는 것을 봤다. 아마도 환영의 빛은 이런 빛일 것이다. 누군가 한 번은 자신을 끌어들이고 유혹하는 환영의 빛에 이끌려 자신도 모르는 어느 곳에서 멍하니 서 있는 자신을 경험했을 것이다. 그는 스스로는 반항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아마 그는 자본주의 주류 사회를 거스르고 싶은 환영의 빛에 어느 순간 이끌렸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는 빛이 이끄는 경로를 따라 여기까지 왔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항하는 청춘 최지한, 그의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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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샘의 지리산통신] 봄날, 하동호 둘레길에서 화양연화를...
하동군 청암면에 자리한 하동호는 1985년 1월에 착공하여 1993년 11월에 준공한 농업용 댐으로 청학동 계곡과 묵계 계곡의 물들이 흘러들어 거대한 산중호수를 만들었다. 지리산 둘레길 10구간과 11구간이 연결되는 지점에 있는 이 하동호를 한 바퀴 도는 하동호 둘레길이 새 단장을 하고 2000년 봄에 완성되었다. 전체 길이 7.5Km에 수평의 길이라 남녀노소 누구나 편안하게 걸을 수 있는 둘레길이 된 것이다. 하지만 지리산 둘레길 구간에는 포함되지는 않은 상태다. 이 하동호 둘레길이 가장 아름다운 계절은 뭐니 뭐니 해도 아름드리 왕벚나무 가로수가 꽃을 활짝 피우는 4월 초라 할 수 있다. 하동호 둘레길은 하동호 댐 주차장에서 시계 방향으로 걸음을 시작하길 권한다. 비바체리조트를 지나면 곧바로 메타세쿼이아 숲길이 나타나는데 왕벚꽃이 만개하는 4월 초쯤이면 막 돋아나기 시작하는 메타세쿼이아의 연초록의 새잎은 눈과 머리를 헹궈주고 온몸을 초록으로 물들인다. 메타세쿼이아를 만날 때마다 쉽지 않은 외래어 이름보다는 북한에서 부르는 것처럼 수삼(水杉)나무라고 하면 어떨까 생각해 보곤 한다. 예전엔 청학동으로 가는 1003번 지방도를 따라 왕벚나무 터널길로 걸었었는데 지금은 호수를 따라 데크 길이 조성되어 안전하게 걸을 수가 있어 좋다. 하동호 관리사무소 주차장에서 출발하면 시계 방향이든 반 시계 방향이든 그 중간 지점이 되는 마을이 바로 나본마을인데 나본마을 서어나무 숲에 조성된 정자와 데크는 휴식과 함께 하동호를 바라보며 물멍하기에 안성맞춤인 곳이다. (2023.04.25) 나본마을을 뒤로 하고 하동호 둘레길 나머지 반을 걷게 되는데 30분쯤 더 걸으면 만나는 상이리는 위태에서 양이터재 넘어 하동호로 이어지는 둘레길 10코스가 지나는 마을로 여기서부터는 둘레길 10코스와 하동호 둘레길이 겹치는 구간이다. 상이리에서 하동호 댐까지는 채 30분이 걸리지 않는 거리로 하동호의 비경을 만끽하기 딱 좋은 구간이기도 하다. 하동호 댐에 도착하면 망향관에 들러 하동호가 생기면서 수몰된 청암골 아홉 마을(몰랑몰, 새터, 가리점, 대밭몰, 고래실, 생방몰, 동촌, 가마소, 난전)의 옛 모습을 사진으로나마 감상해보길 권한다. 이렇게 출발점인 하동호 댐 주차장으로 원점 회귀하면 느릿느릿 걸어도 세 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그리고 산중호수길로 이름 붙여진 이 하동호 둘레길은 장애가 있는 분들도 얼마든지 동행할 수 있다. 게다가 원점 회귀할 수 있다는 것 또한 하동호 둘레길의 큰 장점이 아닐까 싶다. 왕벚꽃잎 난분분 흩날리는 4월의 하동호 둘레길을 걷는 이들은 분명 봄날의 화양연화를 만끽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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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화개 산불, 민간조사단 현장조사결과 발표
- 국립공원 역대 최대 규모의 산불로 기록, 낙엽활엽수림이 산불피해 낮춰 - *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지리산사람들, 하동참여자치연대, 부산대학교, 순천대학교, 백두대간숲연구소 등 ** 3월 12일(1차), 3월 22일(2차), 3월 28일(3차), 3월 29일(4차) 이번 산불로 인한 피해면적은 121ha(정부발표, 91ha)로 분석되었는데, 최근 20년간 국립공원 내 산불피해면적 총 111.8ha와 비교할 때, 역대 국립공원에서 발생한 최대 규모의 산불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Landsat-8 위성영상을 분석했을 때, 산불 지표화로 피해가 거의 없는 지역에 대해서는 산불강도가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분석되는 바, 피해면적이 Sentinel영상과는 큰 차이를 보였다. 화개 지역 산불은 전체 35ha의 피해면적을 보이는 것으로 분석되었는데, 피해강도가 낮음으로 분석된 지역은 전체 피해지역의 92%를 차지하고 있어 피해강도가 매우 낮음을 알 수 있었고, 합천산불의 경우에는 총 피해면적이 59ha로 나타났고, 이 중 높음 이상의 큰 피해를 입은 지역이 전체 피해지역의 22%를 차지하고 있었고, 피해도가 낮음으로 분석된 지역은 55%로 화개 지역과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 사진 설명_ 합천 일대 산불피해지 모습. 해당지역은 숲가꾸기 사업을 시행한 곳으로 임도 주변 대부분의 소나무림이 피해를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리산 화개 지역의 활엽수림 산불피해 유형과는 명백한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지리산 화개 지역의 산불강도가 낮았던 이유로는 해당지역의 사면부 식생 대부분이 자연적인 숲의 발달에 의해 소나무림이 쇠퇴하고 낙엽활엽수림으로 발달하는 과정의 숲으로 형성되어 있음이 원인으로 확인되었다. 인위적 간섭이 없어 활엽수의 밀도가 높아 숲 내부 바람이 세지 않아 산불이 수관화로 대형화되지 않고 지표화로 서서히 이동하다가 능선부의 소나무 토지극상림에 다다라서야 수관을 태운 것으로 확인되었고, 소나무 피해목이 발생한 지역은 빠르게 낙엽활엽수림이 발달할 것으로 판단되었다. 현장조사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인간의 간섭이 최소한으로 이루어질 때, 산불에 가장 강한 숲이 만들어지게 된다”며, “합천 산불과 비교했을 때 명확히 나타났듯이 국립공원의 산림은 인위적 간섭이 있는 산림의 산불발생 특성과는 다르게 산불로부터 이미 안전한 숲이 되어 있다. 이번 산불을 계기로 화개 지역은 능선부 까지 더욱 안전한 숲으로 빠르게 자연 스스로 복원될 것이다. 다른 지역 또한 인위적 간섭을 줄이는 것이 가속화되는 기후위기상황에서 산불에 안전한 숲이 되는 지름길이다”라고 평가했다. 산불피해지 ‘토양 특성에 대한 변화’에 대해서는, 산불피해지 대부분이 지표화로 인해 지표면의 낙엽층이 연소되어 재만 남아 있는 상태로 확인되었고, 이로 인해 유기물을 무기화하여 일시적으로 토양의 양분량이 늘어나고 빗물에 의해 일부는 용탈될 것으로 예상되었으며 지표면의 무기염류 변화는 흙 속에 매몰된 매토종자나 초본층 식생의 생육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하고, 낙엽층 아래의 토양층에는 지표화가 큰 영향을 주지 않아서 전체적으로 토양특성에 변화는 적을 것으로 판단되었다. 사진 설명_ 이번 산불은 표면의 낙엽만을 태웠기 때문에, 흙 속에 있는 씨앗들(매토종자)은 한꺼번에 공급된 무기양분에 더해 사라진 낙엽층으로 인해 활발하게 자랄 수 있는 환경이 형성되어 지표면의 생태계는 아주 빠르게 복원될 것으로 예상된다. 산불지역 내부 동물이 바닥을 헤쳐 놓은 곳은 피해가 없는 상태 그대로 안정된 토양이 드러나 있다. 산불피해지 토양침식 및 산사태 우려에 대해서는, 해당지역은 수관층이 발달하는 가운데 조릿대 등의 하층식생이 우점한 곳으로 산불 지표화로 인해 대부분의 하층식생만 피해를 보았을 뿐, 조릿대 등의 하층식생 뿌리가 살아있어 대면적의 토양침식이 우려되는 현장은 확인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식생 회복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보였다. 더불어 하층식생 뿌리가 토양 안정화 상태로 토양층을 보전하고 있어 산사태 우려도 적을 것으로 조사되었고, 수관층이 발달해 있어서 강우발생 시에도 수관우(수관층에 떨어져 흐르는 빗물)와 수간우(수목을 타고 흐르는 빗물)에 따라 대면적의 토양침식은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판단되었다. 전체적인 현장 토양 상태를 고려했을 때, 장마철의 집중호우 시에는 일부 지표면의 재와 토양이 침식될 가능성은 있겠으나, 토양침식이 우려되는 급사면에 흙막이공사 등의 응급복구사업은 오히려 토양침식을 확대할 우려가 큰 것으로 평가했다. 산불피해지 대성골 탐방로 주변 사면부 안전 우려는, 해당지역 주변은 경사가 상당히 급한 지역으로 이미 사면의 침식과 붕괴의 우려가 있는 지역으로 확인되었으나, 과거 산사태나 유실의 흔적을 확인할 수 없었기 때문에 강우 등의 외부영향이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탐방로 주변 현장의 사면 붕괴나 유실은 거의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조사되었다. 사진 설명_ 산불로 인해 바닥의 마른 낙엽이 불탔지만, 숲에서 자라고 있는 나무는 대부분 살아있는 상태이다. 이런 상태에서 토사의 유실은 진행되지 않는다. 특히 지난 3월 23일 산불피해지에 비교적 많은 봄비가 내렸으나, 현장에서 빗방울(우적)에 의한 피해는 전혀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었고, 물이 침투되지 못하고 지표를 흐르는 물의 발생흔적도 없었으며, 이로 인한 토양의 유실현상도 탐방로 주변에서는 확인되지 않았다. (참고로, 보통 우적에 의한 침식이 가장 큰 침식요인이며, 이어지는 추가 침식을 야기한다.) 또한, 이미 탐방로 주변 일부 지역에서는 초본류가 표토와 재를 뚫고 토지를 피복시키고 있으며, 생육한 활엽수에서는 잎이 나오기 시작해 강우에 의한 침식이나 피해를 보다 억제할 것으로 확인되었다. 따라서 산불피해지 내 탐방로 주변에는 산불발생 여부나 강도에 따라 정비구간을 설정할 곳이 없는 것으로 판단되었다.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지리산사람들, 하동참여자치연대, 경남녹색당(준), 경남시민환경연구소,경남환경운동연합, 사천남해하동환경운동연합, 섬진강과지리산사람들, 진주환경운동연합
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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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13일~14일] 지리산1019생명평화기행
지리산1019생명평화기행 네 번째 치유하지 못한 역사의 진실을 찾아 지리산으로 떠나는 여순 1019 생명평화기행 네 번째 여정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70년 세월 숨죽여 지낸 유족들의 사무친 한을 풀고 더불어 사는 세상을 향한 성찰과 사색의 길입니다. 우리의 미래 세대가 진실을 이해하고 상생과 평화, 그리고 통일의 길을 걸어가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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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9일] 나는 왜 옷이 아니고 나인가?
나는 왜 옷이 아니고 나인가????? 석유산업 다음가는 기후악당 패스트패션! 전세계 물낭비의 20%가 패션산업이 차지한다는 사실을 아셨나요? (2019 유엔보고서) 우리가 잃은 건 깨끗한 물과 공기만이 아니에요???? 우리는 무얼 쫓아 지구에 옷무덤을 만들었고 또 무얼 잃어버렸을까요? 우리는 옷과 나를 구분하기 어려워요. 옷에 따라 기가 죽거나 우쭐해지고 삶의 모양이 달라지기도 해요???????? 옷이 그렇게나 중요한데, 나는 왜 옷이 아니고 나인가요? 지리산방랑단(@jirisan_nomad)이 패피(@papi_ecofemi)와 함께 옷이야기하는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패피는 패스트패션에 저항해 기후위기와의 연결성을 알리는 에코페미니스트 모임이에요. 패스트패션 속에 가려진 나와 옷의 이야기 나눠요. ✅ 23년 9월 9일(토) 13-15시, 지리산사람들 사무실(봉서산정길 61-3) ✅ 1부: 패스트패션과 기후위기 - 패피강연 ✅ 2부: 열려라 이야기 옷장 - 옷과 나의 관계를 돌아보는 마음나누기 - 나누고픈 나의 옷 새로운 주인 찾아주기 ✅ 준비물 추억이 가득하지만 더는 안 입는 옷, 누군가에게 선물하고 싶은 옷, 정성껏 입양보내고 싶은 옷 등 나눌 옷 한 벌을 가져와 주세요. 옷에 얽힌 이야기를 아주 간단해도 좋으니 말해주세요. (장터가 아니에요. 너무 많은 옷을 가져오지 말아주세요. 옷 하나면 충분합니다!) ✅신청: 010-8784-9003로 이름과 함께 문자 남겨주세요! 불참 시 반드시 사전 알림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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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강좌] 지리산에서 에너지 자립의 삶은 가능할까
기획강좌 참가신청폼 : https://forms.gle/QN17Y7vFRLWd59zB9 올여름도 30도가 넘는 무더위가 계속되고 있다. 가정마다 TV, 냉장고는 물론 에어컨이 필수품이 된 지 오래고, 가스레인지나 화석연료 차 대신 전기레인지, 전기차를 쓰는 사람들도 늘어나니 그만큼 전기 소비량은 늘어날 것이다. 지리산국립공원 대피소에서 사용하는 에너지도 산 아래에서 전기선을 타고 올라가는 실정이다. 지리산권에도 전기를 생산하는 하동화력발전소, 산내소수력발전소 등이 있고, 더 많은 전기를 생산하기 위해 하동군에서는 LNG화력발전소를, 구례군은 양수발전소를 건립하겠다고 한다. 전기 생산을 화석연료에서 재생에너지로 바꿔야한다며 산을 깎고, 논을 메우며 들어선 태양광발전소는 산사태 등의 문제로 마을사람들의 원성을 낳고 있다. [기획강좌] ‘지리산에서 에너지 자립의 삶은 가능할까’는 생각하면 머리 아프지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에너지 문제를 듣는 시간이다. 에너지에 대한 기본 상식에서 지역별 에너지 전환과 자립이 필요하며, 가능하다는 희망도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제목 :[기획강좌] 지리산에서 에너지 자립의 삶은 가능할까 일정 :9월 5일 ~ 10월 24일 (매주 화요일 오전 10시 ~ 12시 10분) 4강(9월26일)은 독일과의 시차로 16시~18시 진행 장소 :구례 (강의 참가자 모집 후 추후 결정) 참가비 :5만원 (전 강좌 참여 전제 선착순) 주관 :구례섬지아이쿱생협 × 한겨레평화농장 × 지리산사람들 후원 :(재)자연드림씨앗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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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 몸살림운동을 시작합니다
구례 몸살림운동을 시작합니다 몸살림운동은 내 몸을 바로잡아 건강을 유지하고, 건강한 몸으로 이웃과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함께 하는 운동입니다. 사단법인 몸살림운동본부 만세협동조합(함양) 선생님들이 함께 합니다. - 언제 :집중운동(자세잡기, 교정) 8월 17일(목), 18일(금), 24일(목), 25일(금) 저녁7시 ~ 8시 30분 평시운동8월 31일부터 매주 목요일 저녁7시 ~ 8시 30분 - 어디서 : 그루터기 2층 (구례군 구례읍 봉동길 14) - 모집인원 : 10명 (선착순) - 회비 : 8월 10만원, 9월부터 3만원 * 물어보기 : 010-4686-65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