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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마을] 벚꽃은 우릴 서럽게 한다
- 벚꽃은 우릴 서럽게 한다 벚꽃은 올해도 아름답습니다. 한참 바라보았어요. 걸음을 멈추고 사진도 찍었어요. 개나리, 목련, 수선화, 산수유 다 한꺼번에 피었어요. 벌들은 혼란스럽겠지만, 풍경은 알록달록 별천지입니다. 저기 중동 땅에서는 전쟁 소식이 계속 밀려옵니다.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데도 나는 아무렇지 않게 아름다운 꽃들을 보고 있으니, 좀 민망합니다. 눈을 내리깔아요.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이에요. 아이 교복 빨고, 먼지 쓸고, 설거지하고, 냉장고 정리하고, 겨울 난 시금치 다듬고, 밥하고, 친정엄마랑 통화하고, 때 되면 돈도 벌고, 뭐 이러다 보면, 전쟁이니 기후위기니 머릿속에서 사라져요. 그러다 그렇게 일상을 아무렇지 않게 보내다가, 문득, 아주 잠깐, 생각이 납니다. 폭탄, 펑, 와르르. 그러면 또 잠시 멍해집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잠깐이에요. 나는 또 아무렇지 않게 일을 해요. 낮에 찍어 놓은 아름다운 꽃 사진을 천천히 넘겨 봐요. 세상은 아수라장인데 말이에요. 백석 시인의 시 수라가 떠오릅니다. 거미 새끼 하나 방바닥에 나린 것을 나는 아모 생각 없이 문밖으로 쓸어 버린다 / 차디찬 밤이다 어니젠가 새끼 거미 쓸려 나간 곳에 큰 거미가 왔다 / 나는 가슴이 짜릿한다 / 나는 또 큰 거미를 쓸어 문밖으로 버리며 / 찬 밖이라도 새끼 있는 데로 가라고 하며 서러워한다 이렇게 해서 아린 가슴이 싹기도 전이다 / 어데서 좁쌀 만한 알에서 가제 깨인 듯한 발이 채 서지도 못한 무척 적은 새끼 거미가 이번엔 큰 거미 없어진 곳으로 와서 아물거린다 / 나는 가슴이 메이는 듯하다 / 내 손에 오르기라도 하라고 나는 손을 내어 미나 분명히 울고불고할 이 작은 것은 나를 무서우이 달아나 버리며 나를 서럽게 한다 / 나는 이 작은 것을 고이 보드라운 종이에 받어 또 문밖으로 버리며 / 이것의 엄마와 누나나 형이 가까이 이것의 걱정을 하며 있다가 쉬이 만나기나 했으면 좋으련만 하고 슬퍼한다 -백석, 「수라(修羅)」 당장 전쟁을 막을 수 없을지라도 시 속의 화자는 추운 밤에 거미를 세 마리나 문밖으로 내보내요. 처음엔 아무 생각 없이 한 마리를 내보냈는데, 그다음으로 어미처럼 보이는 큰 거미가 나타났지 뭐예요. 자기가 아까 쓸어 내버린 거미의 어미인가 싶어 문밖으로 또 내보내요. 아까 그 새끼와 만나길 바라면서 말이죠. 죄책감을 느낀 것 같아요. 그런데 아뿔싸, 이번엔 아주 여린 새끼 거미가 나타났어요. 화자는 가슴이 메요. 밖이 춥지만, 그래도 가족 있는 곳이 좋겠다고 생각해 문밖으로 내보내려는데, 이 녀석이 자꾸 달아나요. 화자는 서러워해요. 결국 그 작고 여린 녀석을 종이에 받아 문밖으로 내버려요. 화자는 적극적으로 거미 가족을 따뜻한 방에서 살게 하지는 않았지만, 자기가 차디찬 밖으로 내버린 거미들을 생각하며 슬퍼해요. 우리가 적극적으로 전쟁을 멈추게 할 수는 없을지라도, 화자와 같은 심정으로 ‘가슴이 짜릿하고, 서럽고, 가슴이 메고, 슬퍼’하는 마음으로 전쟁이 멈추기를 바랄 수는 있을 것 같아요. 벚꽃을 보다가도, 돈을 벌다가도, 공부하다가도, 집안일을 하다가도, 잠시라도 멈춰서 ‘제발 전쟁이 멈추게 해 주세요.’ 하고 바랄 수 있어요. 그런 마음은 ‘제발, 지구 생명들이 더 사라지지 않게 해 주세요.’ 하고 비는 마음과 같을 거예요. 기후위기를 걱정하는 마음은 전쟁이 멈추길 바라는 마음과 연결될 테니까요.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는 살육과 착취가 사라지길 바라는 마음이겠지요. 우리는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보내고 있지만, 그럼에도, 잊지는 않으면 좋겠습니다. 전쟁이 멈추어야 한다는 마음,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마음, 죄 없는 생명이 죽어 나가는 이 지구 가열이 멈추길 바라는 마음, 이런 마음들을 꼭 붙들고 살면 좋겠습니다. 이 마음들이 모여 결국 전쟁을 막고, 독재자를 막고, 위법한 비상계엄을 막고, 일상의 폭력을 막을 수 있지 않겠어요? 적어도, 폭력배 무리와 한편이 되지 않겠다는, 그런 짓거리에 동조하지 않겠다는, 자기 선언은 할 수 있겠지요. 나는 나를 속이고, 그저 안도하는 걸까 그러나 때로는 이런 순간순간의 알아차림이, 고작 그것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고 헛웃음이 날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면 어느 소설 속 인물들, 예를 들면, 『몫』에 나오는 희영 같은 인물이 나와 내게 쏘아붙일 것만 같습니다. 나는 그런 사람이 되기 싫었어. 읽고 쓰는 것만으로 나는 어느 정도 내 몫을 했다, 하고 부채감 털어 버리고 사는 사람들 있잖아. 부정의를 비판하는 것만으로 자신이 정의롭다는 느낌을 얻고 영영 자신이 옳다는 생각만으로 사는 사람들. -최은영, 『몫』 나도 그런 사람인지 생각해 봅니다. 그저 읽고 쓰는 것만으로, 그저 순간순간 전쟁이 멈추길 바라는 기도를 올리는 것만으로, 그저 부정의를 비판하는 이들의 글에 좋아요를 누르는 것만으로, 마치 내가 내 몫을 다한 것처럼 안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렇게 휘청거리다가, 또 마음 한자리에서는 이런 생각이 올라옵니다. 시인 윤동주가 적극적으로 항일 투쟁에 앞장서지 않았더라도, 일제강점기 민족의 비극과 한을 제 몸에 담아 고뇌하고, 제 역할을 의심해 부끄러워하고 우리말 시를 써 온 그의 마음을 소극적이라고, 자기만족일 뿐이라고 깎아내릴 수 있겠는가 하는 물음말입니다. 날마다 하는 반성과 깨어 있음이야말로 나를, 그리고 서로를 붙들 힘이 되지 않는가, 또, 스스로 변질되지 않는 길이자, ‘자신이 옳다는 생각만으로 사는 사람’이 되지 않게 나를 닦을 수 있지 않겠는가…. 뭐, 이렇게 생각하면서 다시 종말을 늦출 이야기들에 귀를 기울이곤 합니다. 서러움과 부끄러움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다시 벚꽃을 봅니다. 여린 것에 몹쓸 짓을 한 것만 같아 느끼는 죄책감이나 고통받는 이들을 외면하여 드는 미안함과 부끄러움은 우리가 지금 이 아수라장 같은 세상에서 끝끝내 버리지 말아야 할 마음 조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런 마음을 잊지 않게 하는 것은 시 한 구절이기도 하고, 떨어지는 벚꽃잎 하나이기도 하고, 나를 사랑해 주는 한 사람이기도 하고, 학교에서 만나는 따뜻한 선생님의 손길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백석의 시 수라가 일제강점기 가족 공동체의 해체를 표현했다느니 어쩐다느니 하는 시 교육을 하고, 시험 문제로 내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국어 선생님들의 마음은 또 얼마나 서러울까요. 벚꽃이 나리는 계절에도 아름다움을 느낄 새 없이 시험 공부를 해야 하는 아이들의 마음은 어떨까요. 전쟁으로 사람이 죽는 일보다, 당장 내 주식이 떨어지는 것에 분노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어떻게 달랠 수 있을까요. 전쟁의 끔찍함과 아픔은 대체 언제 어떻게 전할 수 있을까요.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미국에도 깨어 있는 시민이 있어서, 트럼프의 전쟁을 비판하며 “노 킹”을 외치고, 전쟁에 참전하지 않겠다며 양심적 병역 거부를 신청하는 이들이 늘었다고 합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 권리 옹호를 위한 미국 시민단체인 ‘양심과 전쟁 센터’의 소장 마이크 프라이스너는 한 일간지 인터뷰에서 최근 양심적 병역 거부 문의가 무척 늘었는데, 전쟁에서 자신이 죽을까 봐 두렵다고 말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고, 모두 정당성이 없는 전쟁에서 ‘누군가를 죽이게 될까 봐’ 두려워했다고 말했습니다. 내가 누군가를 죽이게 될까 봐 드는 두려움, 그 두려운 마음이 모여 점점 커지면 좋겠습니다. 전쟁을 막는 마음은 큰 결단과 엄청난 선동에 의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날마다 느끼는 아주 작은 서러움과 서글픔과 부끄러움, 아픔, 슬픔, 두려움 같은 마음들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런 ‘서러운’ 마음을 잊지 않도록, 나 혼자만 잘 먹고 잘살면 된다는 생각에 빠지지 않도록, 나만 아니면 된다는 마음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그렇게 서로서로 붙잡을 수 있도록, 시 한 구절, 벚꽃 한 이파리, 사랑하는 이의 얼굴, 따뜻한 손길을 일상 사이사이에서 잊지 않아야겠습니다. 그리고, 생각해 봅니다. 선거철에 더러운 돈을 주고받는 사람들이 스스로 반성하지 못하는 세상에서는 전쟁이 멈추기 어렵다는 것을요. 전쟁은 마치 트럼프 같은 사람만 일으키는 것처럼 생각하지 않아야겠습니다. 내가 나날이 하는 선택들이 전쟁이 될 수 있음을, 부끄러움을 모르고 양심을 파는 일이 곧 전쟁의 씨앗임을 잊지 않아야겠습니다. 나치 군인들은 매일 1,000구가 넘는 유대인 시체를 불태우고, 집에 오면 착한 남편이자 아빠로서 가족에게 사랑이 담긴 편지를 썼다고 하지요. 아름다운 봄 사이사이 느끼는 서러움과 부끄러움이 우릴 구원하길 빌어 봅니다. 글쓴이 : 문홍현경 <자기 씨앗대로 산다>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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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마을] 벚꽃은 우릴 서럽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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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로 소비되는 전쟁
- 이미지로 소비되는 전쟁 "강자는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약자는 당해야 하는 것을 당한다" 투키디데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 2차 세계대전이 1차 세계대전과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지점은 바로 민간인 사망자다. 1차 세계대전은 전쟁 자체보다 스페인 독감으로 죽어간 사람이 더 많았다는 이야기가 돌 정도였다. 특히 1차 대전의 상징인 참호전은 비위생적이고 밀집된 환경 탓에 독감이 번지기에 최적의 조건이었고, 이는 군인과 민간인 모두에게 치명적이었다. 하지만 2차 대전은 양상이 달랐다. 군인보다 민간인이 더 많이 죽어갔다. 소련과 중국의 민간인 희생자만 합쳐도 3,000만 명에 이를 정도로 참혹했다. 유대인은 홀로코스트로 600만 명이 학살당했고, 그중 절반인 300만이 폴란드계 유대인이었다. 사실 600만이라는 숫자도 거대하지만, 일본군이 난징 대학살 등을 통해 죽인 중국인의 숫자는 이를 압도한다. 중국이 일본에 대해 강한 반감을 품는 데는 다 그만한 역사적 이유가 있는 셈이다. 2차 대전 중 한국인 사망자는 약 40만 명으로 추정된다. 한국은 전쟁 당사국으로 참가하지 않았지만, 일제강점기 아래 강제징용과 위안부로 끌려가 타지에서 수많은 사람이 희생당했다.결국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나라는 소련과 중국이다. 두 나라는 압도적인 인명 피해를 입었으며, 특히 민간인 희생자 비율이 매우 높았다. 이 데이터를 보면 몇 가지 특이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일본인 피해자가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점이다. 군인과 민간인을 합쳐도 300만 명 내외다. 이는 일본이 전쟁 초기 인명 소모가 큰 지상전보다는 비행기와 함선을 이용한 기술전을 펼쳤고, 섬나라라는 지리적 이점 덕에 본토가 전장이 되는 것을 피했기 때문이다. 일본 민간인 희생 대부분은 전쟁 막바지 미군의 대대적인 공습과 원폭 투하에 집중되어 있다. 그전까지 일본인들에게 전쟁은 라디오 속 이야기였을 뿐이다. 미국 역시 비슷하다. 미국의 민간인 사망자는 약 2,000명에 불과하다. 본토에서 죽은 사람은 진주만 공습 당시 60여 명과 일본이 편서풍에 실어 보낸 풍선폭탄으로 희생된 6명 정도가 전부다. 나머지는 대부분 상선 공격에 의한 사망자였다. 미국인들에게도 전쟁은 라디오와 TV로 시청하는 스펙터클이었다. 베트남 전쟁 이후 미국이 징병제에서 모병제로 전환하면서 전쟁은 더욱 멀어졌다. 입대하는 청년들이 대개 가난한 계층이다 보니, 중산층 이상의 대중에게 전쟁은 방송으로 관람하는 오락 게임처럼 변해버렸다. 수잔 손택이 지적했듯, 현대의 전쟁은 스크린 너머의 무감각한 이미지가 되었다. 권력이 설계한 무감각과 군수산업복합체 이러한 양상은 고대 아테네에서도 발견된다. 민회에서 말을 잘하는 소피스트들은 전쟁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시민들을 선동해 자신의 입지를 키웠다. 젊고 잘생긴 알키비아데스는 시칠리아의 풍요로움을 화려하게 묘사하며 정복의 영광을 약속했고, 그 웅변에 취한 아테네는 무모한 침공을 감행했다가 군 대부분이 궤멸하는 참사를 맞았다. 대학 시절 자주 접했던 '군수산업복합체'라는 개념은 단순히 경제적 비중을 넘어선다. 이는 전쟁을 일으켜 무기를 소비하고, 성능을 전시하며 새로운 무기를 판매하는 고도의 전략을 의미한다. 『미국 민중사』를 쓴 하워드 진은 미국인들이 전쟁 영상에 무감각해진 것은 우연이 아니라 권력이 의도한 결과라고 보았다. 본토가 안전하다는 지리적 행운과 지배층의 역사 조작이 결합하여, 시민들이 타국의 학살에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번 전쟁에서도 미국은 엄청난 양의 무기를 소비했고, 군수 업체들은 다시 무기를 생산할 막대한 기회를 얻었다. 전쟁이 일상화되면 전쟁 당사국이 아닌 나라들조차 '공포' 때문에 무기를 구입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오래전부터 무기 경쟁을 제로섬 게임이라 부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누군가 핵무기를 가지면 나도 가져야 하고, 상대가 50만 대군을 유지하면 나도 그에 맞춰 준비해야 한다. 서로 무기가 없다면 쓰지 않아도 될 자원이 끝없이 소비된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전쟁 억지력이 절실한 시대다. 인류 역사상 전쟁이 없던 날은 단 하루도 없었을지도 모른다. 호모 사피엔스는 사랑으로 평화를 추구하는 보노보보다는, 폭력으로 무리를 지배하는 침팬지에 더 가까운 존재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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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를 생각하며 책을 만들 수 있을까
- 기후위기를 생각하며 책을 만들 수 있을까『새들은 우릴 기다려 주지 않아서』 편집자가 전하는 제작 이야기 한 해가 끝나기 하루 전, 책이 나왔습니다. 『새들은 우릴 기다려 주지 않아서』 는 오랜 시간 준비해 마침내 나온 책입니다. 구례 문척면에 사는 정환이 쓴 책이고, 구례에서 ‘포도시’ 책을 내는 니은기역 출판사가 만든 책입니다. 책을 펴낸 사람으로서, 구례분들께서 자부심을 느껴도 좋을 만큼 잘 만든 책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습니다. 환경 보호 같은 일에 열심히 매달리던 사람은 아니었는데, 어쩌다, 살다 보니, 저절로 스며들 듯, 기후위기를 걱정하게 되었어요. 자연스레, 편집자로서 책을 만들 때도 될 수 있으면 환경에 주는 부담을 줄이고 싶더라고요. 얼마나 환경에 도움이 될진 모르지만, 책이 사라지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한 사람으로서, 책을 안 만들 수 없다면, 덜 해롭게 만들도록 ‘노오력’은 하자고 생각했어요. 콩기름 잉크, 너, 뭐 돼? 니은기역은 2019년에 『살자편지』를 펴낼 때부터 콩기름 잉크를 쓰기 시작했어요. 휘발성 유기화합물(VOC)이 전혀 없는 ‘무용제 잉크’가 가장 친환경적 잉크이긴 하나, 국내에서 선택하기가 어려워서, 그다음으로 덜 해로울 (거라고 믿는) 콩기름 잉크라도 쓰려고 했지요. 이번 책에도 콩기름 잉크를 썼습니다. 석유 용제 기반 잉크 대신 콩기름 잉크를 쓰면 인쇄, 건조 및 처리 과정에서 생기는 VOC와 스모그 현상 같은 각종 공해를 줄일 수 있다고 해요. 또, 책을 읽는 분들과 책을 만드는 작업자분들의 건강에도 좋고요. 또, 콩기름 잉크를 쓴 인쇄물은 재생 종이를 만들 때 종이에 묻은 잉크를 지워 내는 탈묵 과정이 기존 잉크보다 훨씬 쉽다고 평가받아요. 그런데 이 콩기름 잉크가 좀 더 비싸요. 또 취급하는 인쇄소도 적어요. 그러다 보니, 무용제 잉크만큼은 아니지만 콩기름 잉크도 쓰기가 쉽지 않아요. 콩기름 잉크로 인쇄할 수 있는 인쇄소도 제한되어 있고, 그마저도 책을 소량 찍을 땐 콩기름 잉크를 쓰기가 어려워서요. 인쇄소에 물어보니, 콩기름 잉크 찾는 분이 많지 않아서 콩기름 잉크 쓰는 기계를 따로 들이기가 어렵다고 하더라고요. 이런 상황이 5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바뀌지 않았어요. 이건, 소비자한테 ‘콩기름 잉크 쓰자’고 말할 일이기보다는, 출판문화협회나 관련 정책 기관에서 나서서 지원하고 정책을 만들어 가야 할 문제라고 생각해요. (말이 길어지니, 다음으로) 재생종이, FSC 인증 종이, 무표백 종이 (책이 왜 이렇게 비싸냐는 물음에 대한 변명을 곁들여) 『새들은 우릴 기다려 주지 않아서』는 산속에 살던 한 사람을 생태활동가로 만든, 갖가지 새와 숲 생명을 기록한 책이어서, 읽는 동안 그 생명 옆에 선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내용 구성 방식을 고려했을 뿐 아니라, 종이와 인쇄, 제본 방식도 지은이의 철학과 편집자의 의도가 담기도록 고려해 결정했습니다. 그런 까닭으로, 표지 종이와 내지 종이 모두 FSC® 인증을 받은 국내 재생종이를 썼는데, 표지는 100% 재생 펄프가, 내지는 30% 재생 펄프가 들어간 종이입니다. (참고로, FSC® 인증 종이란 산림 훼손을 막기 위해 엄격히 관리되는 숲에서 생산된 목재로 만들어진 종이를 말합니다.) 또, 양면이 ‘쫙’ 다 펼쳐지는 노출사철제본 방식을 선택해서 한 생명을 오래 바라보기 좋게 했는데요, 노출사철제본은 두꺼운 합지를 붙여야 하는 양장본보다 종이와 에너지와 풀을 덜 쓸 수 있습니다. 겉표지를 두르지 않은 덕에 책등에 보이는 매듭끈은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책의 핵심 가치를 보여 주는 장치이기도 합니다. 아쉽게도, 책을 만들 때 조금이나마 환경에 주는 부담을 줄이고 싶어서 선택할 수 있는 방식들은 대체로 ‘보통 만드는 방식’보다는 비쌉니다. (그래서 책값이 그 모양….) 농사로 따지면, 관행농과 유기농의 차이 정도라고 볼 수 있을까요? 물품으로 따지면, 대량 생산품과 수제 생산품의 차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글쎄요, 이런 말이 다른 출판인들을 불편하게 할까 봐서 조심스러워요. 그냥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책을 만들고, 다른 출판인들은 또 자기 나름으로 사회에 도움이 되는 선택을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좋은 책이야말로, 진짜 친환경 위에 말씀드린 것들 말고도 여백과 빈 종이 줄이기, 표지에 코팅하지 않기, 인쇄 규격 판형 우선하기, 잉크 적게 쓰기, 도서관 구매 북돋기 등등 여러 방식을 써 보고 있지만, 제가 항상 강조하는 건, ‘나무를 베어 만들어야 할 만큼 좋은 책인가?’ 하는 물음에 먼저 ‘그렇다’ 하고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에요. 아무리 친환경 방식을 썼다고 해도, 책 내용에서 소비와 경쟁을 부추기고, 혐오와 차별을 말한다면 그런 책은 안 만드는 게 가장 친환경적일 테니까요. 저도 늘 고민하며 책을 만들겠습니다. 또, 제가 하는 방식이 꼭 옳다는 생각도 갖지 않겠습니다. 더 나은 방식을 가르쳐 주시면 열린 마음으로 바꿔 나가고 싶어요.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에 인간만 살고 있는 건 아니라서, 급격하게 일어나는 기후변화에 빨리 적응하지 못한 채 사라지는 존재들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하루하루 내 선택이 사랑하는 존재들의 죽음을 조금이나마 늦출 수 있다는 것, 그 생각은 잊지 않고 걸어가겠습니다. 글쓴이 : 문현경 니은기역 출판사 이끄미 - 출판사 소개 니은기역 책 짓고, 농사짓고, 기후악당에겐 짖어요! 틀을 깨는 소리, 순서를 뒤엎는 몸짓을 기록합니다. 생명의 편에 선 이들의 목소리를 담고 있습니다. 기후위기를 걱정하는 아홉 농부가 생태순환의 삶을 담아 쓴 『살자편지』, 에코페미니스트 농부들이 자급하는 몸을 되찾자며 보낸 『벗자편지』, 반달가슴곰KM-53의 삶을 통해 야생동물과 한 터전에서 산다는 게 무엇인지 돌아보는 『오삼으로부터』, 지리산골프장 예정지 숲에 살던 동식물의 목소리를 담은 『집에서 쫓겨났어』, 지키고자 하는 이의 시선을 담은 사진 에세이 『새들은 우릴 기다려 주지 않아서』 등을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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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마을]기후위기 시대 ‘경자유전’의 재해석
- 기후위기 시대 ‘경자유전’의 재해석 “가짜로 (작물을) 심었다가 방치하면 매각 명령해 팔아 버리게 해야 한다.” 지난 24일, 이재명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경자유전(耕者有田) 원칙을 들어 농지 투기를 뿌리 뽑겠다는 의지를 밝혔어요. 우리나라에서는 ‘원래는’ 헌법상 농사짓는 사람만 농지를 소유한다는 경자유전 원칙에 따라 상속 등 특정 예외 요건을 빼면 직접 농사를 짓는 경우에만 농지를 소유할 수 있어요. 농지에서 농사를 짓지 않으면 1년 이내에 팔아야 해요. 그러나 다들 아시다시피 경자유전이란 말이 정말 헌법에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울 정도로, 농사짓지 않는 이들이 땅 주인 노릇을 하고 있지요. “현재 국가 통계상 임차농 비율은 이미 60%를 넘어섰으며, 현장의 농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수준은 70%에 달한다.”라고 비판한 전국농민회총연맹도 이 대통령의 경자유전 발언을 환영했어요. 땅을 투기 대상으로 삼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데 많은 이가 공감할 거예요. 그렇죠, 그러나, 다만, 기후위기 시대에 맞게 경자유전 원칙을 다르게 해석해 적용해야 하지 않을지 함께 고민하면 좋겠어요. 농사짓기만 하면 땅 소유해도 좋은 걸까 생태적, 사회적 책임지는 경작자에게 우선되어야 경자유전의 원래 취지가 무엇인가요? 지주-소작 구조를 해체하고, 농민의 생존권과 자립을 보장하며, 토지를 투기나 착취의 수단이 아니라 생계 기반으로 두겠다는 거예요. 그런데 오늘날은 상황이 좀 달라졌어요. 농업의 산업화·대규모화, 토지의 금융화·투기화, 기후위기로 인한 생태계 붕괴, 농촌 고령화와 소농 소멸이 심해지는 오늘날 상황에서 “농지는 농업인이 소유한다”는 사실만으로 경자유전이 실현되었다, 박수 짝짝짝, 하고 끝내도 될까요? 생태적으로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농사지으며, 지역 먹을거리 자급과 순환 체계를 만들어 가는 사람에게 토지 접근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속 가능한 경작과 책임’에 초점을 옮겨 경자유전을 적용하는 거죠. 그렇게 되면 현행법상 ‘농업인’에 속하지 못했던 생태적 소농(小農)들도 농사지을 땅을 얻기 쉬워질 거예요. 소농이란 보통 ‘노동력과 자본을 외부에 의존하지 않고 자기 힘으로 농사짓는 사람’을 일컫는데요, 기후위기 시대에 생태적 방식으로 농사짓는 소농이 늘어나면 생물다양성이 살아나고 땅이 탄소를 흡수할 능력을 키우며, 지역 자급 기반을 만들 가능성이 커져요. 그러니 오늘날 경자유전의 원칙은 생태적·사회적 책임을 지는 경작자에게 먼저 농지를 보장해야 한다는 원칙으로 재해석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소농은 경자(耕者)로 치지 않는 현실, 소농, 청년농, 생태농의 토지 접근권 보장 필요 지속 가능한 농사를 짓고 싶어 하는 소농들을 만나러 가면, 열에 아홉은 1천㎡(약 300평)에 못 미치는 땅에서 농사를 지어서 농지원부를 받을 수 없거나, 직불금만 가져가려는 땅 주인에 의해 임대차 계약서를 쓰지 못한 대리 농부들이었어요. 땅심을 살리기 위해 화학 물질을 적게 쓰고, 자연에 주는 부담을 줄이려고 에너지를 덜 쓰거나, 해마다 토종 씨앗을 받아 이어오고, 친환경 농법을 연구하거나, 생태텃밭 교육을 펼치는 주체로 활동하는 소농들이지만, 그들은 어디에서도 보호받을 수 없는 ‘농민 아닌 농민’이었죠. 경자유전에서 경자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보아야 할까요? 농지 전수조사를 실시하고, 농지 투기를 뿌리 뽑고, 경자유전을 실현하는 것, 너무나 환영할 일이지만, 만약 그 결과가 결국 대규모 농업인 혹은 농지원부상 농업인만을 보호하는 것이라면, 농지 투기는 막을 수 있을지 몰라도 기후위기를 막을 수는 없을 거예요. 유휴 공유지를 공공 텃밭으로 전환 공동체 기반 농지 신탁 마련 등 경자유전의 뜻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농사짓지 않는 이들이 땅을 소유하지 못하게’ 하는 제도뿐 아니라, 애초에 땅을 소유하지 않더라도 ‘생태적 책임을 갖고 농사지으려는 이들이 농사지을 수 있게’ 하는 제도가 필요해 보여요. 예를 들어, 유휴 공유지를 지자체가 도시농업용으로 임시 사용하도록 허가해서 수많은 소농이 텃밭을 무상으로 임대받거나 싸게 구할 수 있다면 좋겠죠. 또, 토지를 개인 소유물이 아니라 공공적 자산으로 묶어서 지역 공동체가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경작하도록 장기 보장하는 공동체 기반 농지 신탁 제도도 조례로 만들어 보장한다면, 기후위기 시대에 맞게 경자유전을 실현할 수 있지 않을까요. 사진 : 시민의 경작권을 법으로 인정하는 영국에서는 지자체가 시민에게 텃밭을 제공할 법적 의무가 있어, 지자체로부터 땅을 임대받아 텃밭을 운영할 수 있는 Allotment(시민텃밭, 공공텃밭) 제도가 활성화되어 있어요. 사진은 에식스주 새프런 월든에 있는 시민텃밭. (출처: 가디언 Gary Yeowell) 글쓴이 : 홍버들 독립연구자, 지리산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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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마을]기후위기 시대 ‘경자유전’의 재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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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마을] 지하수, 지킬 해법 있다
- [기후+마을] 줄어드는 지하수, 지킬 해법 있다 세계 곳곳에서 담수가 줄어들고 있다는 얘기는, 이제 너무 많이 들어서 지겨우실지도 모르겠어요. 1960년대 이후 세계 물 사용량이 두 배 이상 늘었다고 하지요. 이대로라면 2050년에는 지금보다 30억 명이 더 물 부족 상황에 놓이게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고요. 해마다 담수가 평균 4기가톤씩 사라졌다는 연구 결과나, 인류가 지하수 2조 1,500톤을 퍼 올려서 지구 자전축이 동쪽으로 80㎝ 기울어졌다는 연구 결과 같은 암울한 얘기는 인제 그만 듣고 싶으실 거예요. 담수 문제, 특히 지하수 고갈 문제에서 희망을 찾을 수는 없을까요? 다행인지, 불행인지, 전 세계 대부분 지역에서 담수가 줄고 있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지하수 고갈이 늦어지는 모습이 보였다고 해요. 물 부족 현실 속, 희망을 찾아서 미국 산타바바라 캘리포니아대 환경과학과 스콧 야세코 교수 연구팀은 40개 나라 우물 17만 개와 대수층 1,700곳에서 지하수 데이터를 모아 분석했습니다. 여기서 대수층이란, 모래와 자갈과 점토 등으로 이뤄져 지하수를 머금고 있는 지층을 말해요. 눈과 비와 녹은 얼음이 지하로 스며들어 대수층이 만들어지지요. 그들이 연구한 결과 대부분 지역에서 대수층이 줄어들었지만, 지하수가 사라지는 속도가 늦춰진 지역도 있었다고 해요. 가장 두드러진 사례를 보자면, 사우디아라비아 동부 지역 대수층은 2000년 이후 지하수 수위가 낮아지는 속도가 줄어들었어요. 또, 태국 방콕 분지의 대수층에서 벌어지던 담수 손실 현상이 21세기에 들어 역전됐다고도 해요. 이란의 압바스 에샤르기 분지 서부 지역에 있는 대수층에서도 수위가 복구되는 모습을 보였다고 하고요, 이 외에도 스페인과 미국 일부 대수층에서도 지하수 감소 속도가 늦춰졌어요. 어떻게 된 일일까요? 어떻게 지킬 수 있나 연구팀은 ‘수자원 관리’가 담수 손실을 줄이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었다고 발표했어요. 예를 들어, 사우디 정부는 물이 많이 필요한 작물을 재배하지 못하게 하는 등 지하수 관리 정책을 쓴 덕분에 지하수 수위가 낮아지는 속도를 늦췄습니다. 태국은 지하수를 퍼 올리는 사업자에 대해 수수료를 부과하여 지하수가 마구잡이로 퍼 올려지는 걸 제한했지요. 지하수 감소 속도가 역전된 사례들을 통해 지하수와 지표수 관리 정책들이 무척 중요하다는 걸 연구팀은 강조했습니다. 이제껏 함부로 뽑아 쓰던 지하수를 더는 무분별하게 퍼 올리지 못하도록 막는 정책 개입이야말로 아주 중요하고 효과적인 물 부족 해결 방안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얼마 전 산청에서 이상한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지하수 취수 증량 정책, 제정신인가? 그거 아세요? 산청군에 있는 4개 생수 공장 하루 취수 허가량은 5,264톤으로 국내 생수 시장 점유율 40%를 차지하는 제주 삼다수보다 약 1,000톤이나 많다고 해요. 여기에 하동까지 포함하면 6개 생수 공장에서 하루 6,364톤을 취수하는 셈인데요, 물 1톤은 보통 4인 가구가 약 이틀 동안 사용하는 수돗물 양이니, 6,364톤은 4인 가구가 12,728일 동안 쓸 물이고, 이를 지리산권에서 하루 만에 퍼 올리고 있다는 말입니다. 지금도 이렇게 물을 많이 뽑아 올리는데, 얼마 전 경상남도는 여기에 더해서 하루 272톤을 더 취수할 수 있게 허가해 주었습니다. 산청군 삼장면 덕교리에 본사를 둔 ㈜지리산산청샘물은 하루 취수량을 기존 용량을 포함해 1,050톤까지 늘리겠다며 ‘450톤 증량안’을 경남도에 제출한 데 대해, 경남도는 앞서 낙동강유역환경청이 진행한 환경영향심사에서 272톤 증량이 적합하다는 결과가 나왔다며 취수 증량을 허가해 주었습니다. 주민과 환경단체는 “특정 업체가 지하수를 싹쓸이하도록 허가하고, 이 과정에서 불법과 편법이 벌어졌다”며 “지하수 취수 증량 허가를 철회하라”며 경상남도에 요구했어요. 몇 해 전부터 흙탕물이 나와서 마실 물도 모자란다고 하소연하는 주민들은, 환경영향조사에 주민들이 참여할 기회가 전혀 없었고, 과정도 모두 비공개되었으며, 이 조사의 비용조차 기업이 대고 있어 객관성이 떨어진다고 주장했어요. 게다가 경남도와 낙동강유역환경청은 “주민 참여하에 동시 양수시험을 재진행하고, 최종심의 자료를 공개해 재논의하라”고 한 사회대통합위원회의 권고를 이행하지 않았으며, 환경영향조사서 심의내용에 “지하수 고갈 위험”이 분명히 지적되었는데도 이를 외면한 채 취수 증량을 허가하여 더 문제가 되고 있어요. 이미 전 세계 대수층이 고갈되는 상황에서, 물 부족 국가인 한국은 2080년에 약 300만 명이 지하수 부족을 경험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어요. 물 부족 위기가 해마다 심해지는 이때, 대체 지하수를 마구 퍼 올리게 놔두는 정책들이 쉽게 만들어져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요? 대수층이 마르는 일은 개인이 물을 절약하는 일만으로는 절대 해결할 수 없습니다. 이미 물을 돈벌이로 이용하는 이들이 계속 모두의 것을 함부로 쓸 수 없도록 막는 정책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막을 수 있을 때 막아야 합니다. 사진 : 증량 허가 결정이 나기 전, 주민과 환경단체는 여러 번 경남도청에 찾아가 ‘취수 증량을 불허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1월 29일 경남도청은 한 기업이 하루에 272톤을 더 취수하도록 허가해, ‘편법과 불법으로 지하수 싹쓸이 허가’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글쓴이 : 홍버들 지리산인 편집위원입니다. 이 글은 <봉성신문>에도 함께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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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마을] 지하수, 지킬 해법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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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영산 지리산을 파괴하는 전남광주통합특별법 독소조항 삭제하라!
- 전남광주가 통합을 하면서 만들어진 전남광주통합특별법에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는 독소조항등이 가득합니다. 자연공원법의 공원시설을 설치함에 있어 공원관리청과의 협의가 없어도 시설을 설치할 수 있는 제93,제94조는 국립공원을 보전이 아닌 유원지화 할 것이며 제264조에는 '공익사업'의 경우 특별도지사가 국립공원 해제를 요청할 수 있고 기후에너지환경부장관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이에 따라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어 과거 흑산도공항을 허가해주었던 것처럼 지리산의 일부 지역을 국립공원에서 해제하여 케이블카던 리조트, 그 무엇이든지 건설할 수 있게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 제271조는 백두대간보호법까지 무력화 시켜서 국가의 정맥인 백두대간까지 파괴할 수 있게 하는 법입니다. 이에 지리산사람들/지리산지키기연석회의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민주당과 전남, 광주 지자체장의 지리산 파괴 행위를 강하게 규탄합니다. 성명서 민족의 영산 지리산을 파괴하는 전남광주통합특별법 독소조항 삭제하라! 민주당은 민족의 영산을 파괴하려는 공작을 멈추라! 지리산은 전남도의 것이 아니라 전 국민의 영적인 존재이다. 지자체와 민주당이 마음대로 개발하고 파괴해도 되는 일부 집단의 소유가 아니다.그러나 전남,광주를 통합하며 만들어지고 있는 특별법(제264조)에는 ‘공익사업’이라는 모호한 내용으로 국립공원에 대한 해제를 요구할 수 있고 ‘기후에너지환경부장관’은 특별한 경우가 없으면 이에 따라야 한다는 기속력을 부여하고 있다.이와 연계하여 제271조(산림이용진흥지구 내 적용의 특례) 3항에 자연공원의 공원시설(제18조제2항제1호나목)로 들어가 있는 [공원자연보전지구에서 허용되는 ‘최소한의 공원시설’]까지 포함하고 있다. 이는 최소한의 공원시설에 들어가 있는 궤도,삭도(케이블카)를 포함한 것으로. 이는 지리산을 겨냥한 법 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민족의 영산에 쇠말뚝을 박기 위한 법을 만든 것이다. 민주당은 민족의 영산을 파괴하는 악법의 독소조항은 삭제되어야 한다. 여기에 더 나아가[백두대간 보호에 관한 법률]에 대한 대규모 규제 완화역시 큰 문제를 안고 있다. 산림청과 기후에너지환경부장관은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산림이용진흥사업을 적극 협조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이는 산림청과 기후에너지환경부의 규제를 원천 차단하고 지리산을 산림이용진흥지구로 지정하여 케이블카를 추진하기 위해 만들어진 특별법이다.같은 법 4항을 보면 궤도운송법이 명시된 것 역시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지리산의 그 어디든지 케이블카를 설치할 수 있도록 하는 법을 만든 것이다. 이런 악법은 독소조항을 즉각 삭제하고 이 법안을 만든 민주당은 국민 앞에 사과하여야 한다. 국립공원 유원지화 하는 제93조, 제94조에 있는 자연공원법에 대한 무력화 시도를 삭제하라! [제1장 ‘전남광주통합특별법’ 개발 계획]의 제93조, 제94를 보면 ‘개발사업을 하려는 자는 통합특별시장의 시행승인을 받아야 한다.’라고 되어있다. 같은 법 제94조를 보면 ‘개발사업을 시행하려는 자가 제93조에 따른 개발사업의 시행승인을 받거나 의견을 들은 경우’에는 ‘다음 각 호의 허가, 인가, 지정, 승인, 협의, 신고 등을 받은 것으로 본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지자체장의 행위 허가와 국가기관의 행위 허가가 나누어져 있는 것은, 무분별한 난개발을 막기 위해 이해 관계자가 아닌 제3의 기관에서 관리, 감독, 제제를 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특별법에 따라 인허가, 승인 등을 생략할 수 있다면 이는 규제 기관이 사라지는 것으로 ‘심판’ 없는 경기장으로 묻지마식 난개발이 펼쳐지게 될 것이다.여기서 더 큰 문제는 같은 법의 33항에 [자연공원법 제71조 제1항에 따른 공원관리청의 협의]가 포함되어 있다.공원구역의 행위 허가를 모두 특별시장이 가져가겠다는 것으로 이는 국립공원의 이용과 보전을 위해 최소한의 시설만 들어올 수 있도록 하는 [자연공원법]을 무력화 시키는 것이다.국립공원에 대한 난개발의 빗장을 열어주게 될 것이고. 이는 국립공원의 지정 이유를 훼손하는 것이다. 지리산에 산림을 훼손하는 태양광 난개발 조항 삭제하라! [제2장 에너지사업의 제109조 영농형 태양광 지구 지정 특례]를 보면 자연공원 안에도 제2항에 따라 통합특별시장의 허가를 받은 경우 [자연공원법]을 무시하고사업을 시행할 수 있다고 되어있다. 이는 공원구역 안에도 나무를 베어내고 생명들의 집을 파괴하여 태양광을 설치할 수 있다는 것으로 보전이 우선시되는 자연공원의 지정 이유를 훼손하는 것이다. 지리산은 그 누구의 것도 아니다. 미래 세대에게 온전히 물려줘야 하는 곳이다. 국립공원 1호 지리산은 민족의 영산으로 전 국민과 지리산에 살아가는 생명들의 쉼터이다. 그러나 지속적인 개발과 케이블카 추진으로 위협에 놓여있다. 그나마 [자연공원법]이 지리산을 지켜내고 있었으나 전남과 광주가 통합되며 만들어진 법안이 [자연공원법]을 무력화시켜 지리산에 칼을 겨누려 하고 있다. 이는 미래 세대에게 칼을 겨누는 것으로 미래 세대에게 씻을 수 없는 죄를 짓는 것이다. 지리산은 반달가슴곰, 삵, 담비, 고라니와 같은 생명들의 마지막 남은 보금자리이다.보호지역을 늘리고, 자연을 보전하자는 세계적 흐름 속에 이 흐름을 역행하는 ‘난개발 특별법’은 국가적으로 부끄러운 일이며 전남 도민으로써의 수치이다. 그리고 보호지역을 확대하겠다는 이재명 정부의 정책과도 반하는 행위이다. 하나, 민족의 영산 지리산을 훼손하기 위해 만들어진 전남광주통합특별법의 [국립공원 해제 요구] 항목 즉각 삭제하라! 하나, 특별법에 들어가 있는 행위 허가 생략에서 [자연공원법] 항목을 삭제하여 지리산을 향하는 난개발 계획을 즉각 멈추라! 하나, 자연공원법, 환경영향평가법, [백두대간 보호법]을 무력화시키는 조항을 삭제하라! 하나, 제93조, 제94조, 제109조, 제206조, 제264조, 265조, 제271조에 자연공원법을 무력화하는 난개발을 할 수 있게 하는 조항을 삭제하라! 2026년 2월 9일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지리산사람들/지리산지키기연석회의 문의 :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지리산사람들 사무국장 정정환(010-2972-33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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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영산 지리산을 파괴하는 전남광주통합특별법 독소조항 삭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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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마을] 기본소득, 못 받아서 억울한가요?
- 기본소득, 못 받아서 억울한가요? 농림축산식품부(장관 송미령)는 2026~2027년도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 지역으로 경기 연천, 강원 정선, 충남 청양과 옥천, 전북 순창과 장수, 전남 신안과 곡성, 경북 영양, 경남 남해 10개 군을 뽑았습니다. 선정된 지역은 2년 동안 달마다 15만 원을 지역사랑상품권으로 받게 됩니다. 구례군은 이번 사업에서 똑 떨어졌지요. 불만과 안타까움을 드러내는 분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습니다. 바로 옆 동네 곡성이 월 15만 원씩 받게 되자 상대적 박탈감이 더 큰 듯해요. 저도 구례군민으로서 무척 안타깝더라고요. 그러나 우리 지자체가 선정되지 못한 것보다 더 안타까운 게 있어요. 기본소득이 성장의 도구로 동원되고 있다는 점이에요. 그게 뭐가 안타깝냐고요? 기본소득은 성장이 멈춰도 괜찮은 사회를 위해 쓰여야 기본소득은 정부가 시혜적으로 주는 공짜 돈이 아니에요. 우리가 응당 받아야 할 돈이죠. 기본소득은 시민의 권리입니다. 토지를 예로 들어 볼게요. 토지는 원래 인간의 것이 아니에요. 누구의 것도 아니지요. 굳이 따진다면 모두의 것이라고 해 두죠. 누구의 것도 아니던 토지를 사유화해서 이득을 얻은 이들은 ‘모두의 것(공유부)’에서 얻은 이익을 혼자만 가져가서는 안 됩니다. 여기까지 동의하시지요? 모두의 것을 이용해서 얻은 이익을 혼자만 가져가는 구조에 이의를 제기하며 나온 게 바로 기본소득이에요. 모두의 것을 이용해서 얻은 이익을 모두에게 되돌려 주자는 기본소득은 당연히 우리가 받아야 할 권리인데, 지금까지 사유화되고 있는 거죠. 토지세든, 기후위기세든, 자본세의 형태로든, 모두의 것에서 얻은 이익을 거두어, 기본소득으로 모두에게 다시 돌려주어야 합니다. 일을 잘하든 못하든, 어디서 태어나든, 얼마나 일했든 ‘조건 없이 누구에게나 일정 기간에 나누어 현금으로 각자에게 지급하자’는 기본소득의 다섯 가지 원칙은 모두의 몫을 모두에게 돌려주는 기본소득의 철학에서 나왔습니다. 또 이러한 철학은 산업자본주의와 임금노동 중심 사회가 만들어 낸 구조적 불안정과 생태 파괴를 비판한 결과이기도 해요. 생태적 전환이 절실하게 필요한 오늘날 기후위기 시대에는 그 중요성이 더해지고 있지요. 그러나 이재명 정부는 기본소득(엄밀하게 말하면 기본소득이라고 볼 수 없지만)을 성장의 도구로 쓰려고 해요. “나쁜 성장이 아니라 좋은 성장” “불균형 성장이 아니라 균형 성장” 같은 표현을 쓰며, 이재명 정부가 말하는 성장은 신자유주의 시대 성장과는 다를 것처럼 이야기하죠. 그리고 그 균형 성장의 수단으로 기본소득을 말하고 있는데요, 이재명 정부의 기본소득이 그저 소비를 유지하고,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보완하며, 성장 동력을 안정시키려는 수단이 돼 버릴까 봐 안타깝다는 거예요. 성장은 화석연료와 자원 채굴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이는 기후위기 시대에 더 이상 지속 불가능할 뿐 아니라, 진짜 기본소득을 통해 만들 수 있는 멋진 세상을 포기하는 일이니까요. 시민들이 바라는 건 성장 아닌, 불안 없는 사회 오래전부터 기본소득에 관심 두고 기본소득을 주장해 온 이재명 대통령이 기본소득의 철학과 원칙조차 모를 리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런데도 왜 그는 기본소득을 균형 성장의 도구로서 주장하는 걸까요? 이 역시 알 만하지요.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성장은 표심과 연결되고, 사람들은 탈성장을 혐오하는 대신 성장을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죠. 그러나 더 파고들면 사람들은 성장을 사랑하기보다는 불안을 두려워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월세, 대출, 의료비, 노후, 실직을 걱정하며 불안해하는 것이지 성장을 사랑하는 게 아니잖아요. 대통령과 정치인들은 시민들이 마치 성장을 엄청나게 좋아하는 줄로만 아는 것 같아요. 성장은 사람들의 불안을 잠재우기는커녕 오히려 불안을 부추겨요. 기본소득으로 더 소비하고, 더 유연하게 일하고, 더 성장한다고 해도 우리는 계속 불안할 텐데, 대체 무엇을 위한 기본소득인지. 이렇게 성장에 매달리기만 하면 우리의 정치적 상상력은 줄어들 수밖에 없어요. 이재명 정부가 정말 애써서 풀어야 할 국정 과제가 ‘좋은 성장, 균형 성장, 진짜 성장’인가요? 시민들이 불안해하는 요소들을 없애서, 성장 없이도 살 만한 나라를 만들어 가는 것이, 더 이상 자원과 생명을 약탈하지 않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지금 우리 대통령이 해결해야 할 국정 과제여야 해요. 탈성장은 돈 없이 살자는 얘기가 아니에요. 불안을 부추기는 경쟁과 과시 소비에서 벗어나자는 거예요. 성장해야 하는 압박에서 벗어나, 성장하지 않아도 되는, 나를 갈아 넣지 않아도 되는, 일하다가 죽지 않아도 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원하는 만큼 일하며, 적게 벌고 적게 쓰는, 덜 버리고 덜 소비하는, 모두에게서 얻은 이익이 모두에게 돌아가며, 모두의 것이 누군가에 의해 독점되거나 착취되지 않는 사회에서 살자는 거예요. 그게 탈성장 사회예요. 기본소득은 바로 이 탈성장 사회를 위한 도구예요. 다른 성장을 위한 도구가 절대 아니에요. 사람들이 덜 일하고 다르게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도구여야죠. 기본소득은 성장을 더 잘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성장에 덜 의존하기 위한 제도로 사용되어야 해요. 그러니 옆 동네가 15만 원씩 받아서 배 아프시더라도, 우리는 못 받아서 억울하시더라도, 지금 우리가 열받아야 할 핵심을 헷갈리지 마세요. 지금 화내야 할 것은 물 건너간 15만 원 혜택이 아니라, 모두의 것으로부터 얻은 이익이 특정인에게 돌아가는 이 자본주의 구조입니다. 그리고, 기본소득이라는 제도를 또 하나의 성장 도구로 삼아 우리를 불평등과 불안 속에 계속 머물게 하려는 정부의 ‘눈 가리고 아웅’ 정책에 이의를 제기해야 합니다. 우리가 바라는 건 ‘진짜 성장’이 아니라 ‘진짜 기본소득’이자 ‘진짜 다른 삶’이어야 하는, 기후위기 시대니까요. 홍버들 (독립연구자) 사진 설명 : 18세기 말 『토지 정의(Agrarian Justice)』를 통해 최초로 체계적인 기본소득 개념을 제안한 토머스 페인(Thomas Paine). “내가 주장하는 것은 자선이 아니라 권리이며, 박애가 아니라 정의다.” (이미지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15269404 ) 이 글은 <봉성신문>에 연재되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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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마을] 기본소득, 못 받아서 억울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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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X설악산=케이블카절대안돼
- 지리산X설악산=케이블카절대안돼 설악산 오색케이블 사업 시행 연장 불허 촉구 천막농성장을 찾은 지리산사람들, "지리산과 설악산 어디에서도 케이블카 절대 안 된다!" 12월 26일, 강원도 원주 국립공원공단 앞에서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시행 허가 연장 불허를 촉구하며 천막농성을 펼친 이들을 찾아가 기자회견에 함께하고 피켓 시위를 벌였습니다. 유난히도 추위가 매서웠던 26일 지리산사람들은 설악산을 지키는 이들과 만나 연대했습니다. 국립공원공단은 거짓과 불법으로 얼룩진 오색케이블카 사업의 허가 연장을 즉각 불허해야 하며, 더는 설악산과 지리산 그 어디에서도 숲을 파괴하는 시설물이 들어서지 않아야 합니다. 추위에 손가락과 발가락이 떨어질 듯했지만, 우리의 목소리를 더 많은 이에게 전하고 올 수 있었습니다. "12월 31일, 국립공원공단의 '공원사업시행허가' 기간이 만료된다. 우리는 단호히 선언한다.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은 이미 회복 불가능한 '총체적 불능' 상태에 빠져 사실상 사망 선고를 받았다." "사업자 양양군은 붕괴 위험이 있다는 교통안전공단의 경고를 2개월간 은폐하며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도박을 벌였다." "사업의 핵심 전제였던 '양양관광개발공사' 설립이 최종 문산되고 숨겨온 1,419억 원 규모의 산업단지 계획까지 들통나며 운영 주체도 없는 유령사업임이 입증되었다." "완벽하다던 희귀식물 이식 공사마저 실패하여 환경을 지킬 능력조차 없음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갈등 해결을 위해 찾아온 사회원로들을 문전박대하고 불통으로 일관한 주대영 국립공원공단 이사장의 오만한 관료주의를 규탄한다."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이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까닭은 차고 넘칩니다. 국립공원공단은 케이블카 카드 그만 만지고 얼른 '시행연장불허!'를 선언해야 합니다. 이재명 정부는 책임 회피하며 내가 나설 일 아니라고 발뺌하지 말고, 국립공원공단이 오색케이블카 사업을 더 연장하지 않게 기후위기 정책을 최우선에 두어야 합니다. 또한, 최상목 대행이 앉혀 놓은 주대영 이사장의 오만과 기만 행태도 그대로 넘어가서는 안 될 일입니다. 먼 길을 다녀오며 느낀 것은 역시나 '생명의 편'에 서야 마음이 편하다는 것입니다. 돈의 편에 선 사람들 모두 발 뻗고 잘 수 없을 일입니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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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농산물 가격이 비싼 이유는 무엇일까?
- 한국 농산물은 다른 나라에 비하여 가격이 꽤 높은 편이다. 하지만 농산물만 비쌀까? 아니다. 대한민국은 식료품 및 비주류 음료 물가가 OECD 전체 2위다. 1위인 스위스를 제외하면 사실상 세계 최고 수준이다. 교통비를 제외한 다른 모든 생활비용 또한 최상위권이다. 그러니 농산물 가격이 비싼 것도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더구나 한국은 농지 가격이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축에 속한다. 일본이나 북유럽 대부분의 나라보다 비싸다. 한국보다 농지 가격이 높거나 대등한 나라는 대만, 몰타, 덴마크, 룩셈부르크 정도뿐이다. 몰타와 룩셈부르크는 국토가 아주 작아 개발 압력이 극심하고, 덴마크는 스마트팜과 유리온실 등 고부가가치 시설 농업이 집중된 세계적 물류 허브 국가이면서 국토가 좁다. 우리나라도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지대가 높으니, 높은 토지 가격이 농산물 원가에 반영될 수밖에 없다. 임대료를 비교해 보면 그 차이는 더욱 선명하다. 전남 구례의 중심지 10평 상가 임대료가 월 50만 원 수준이라면, 서울 명동 메인 로드는 월 3,500만 원에서 5,000만 원에 달한다. 명동은 전 세계 상권 임대료 순위에서 9위를 기록할 만큼 비싸다. 땅값이 세계 5위권, 핵심지 임대료가 세계 9위권인 나라에서 농산물 가격만 저렴하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일지도 모른다. 주변국인 일본, 대만과 비교해도 한국 농산물은 비싸다. 일본은 우리보다 농지 가격이 저렴하다. 반면 대만은 세계에서 지대가 가장 비싼 나라임에도 농산물 가격은 우리보다 30~50% 이상 저렴하다. 이유가 무엇일까? 우선 대만은 겨울이 없어 3모작이 가능하다. 같은 땅에서 세 번 농사를 지으니 단위 면적당 수확량이 월등히 높다. 또한, 국가가 농지 임대료 상한선을 정하고 엄격히 관리한다. 공판 가격 결정 역시 국가와 대만 농협(농회)이 주도하며 낮은 수수료 체계를 유지한다. 대만의 농산물 공판을 담당하는 타이베이 농산물운송공사는 공익성을 최우선으로 한다. 한국의 공판 수수료는 약 7% 수준이지만 대만은 3~4%에 불과하다. 심지어 한국은 농산물이 공판장에 도착하면 발생하는 하역 수수료를 농민이 부담하지만, 대만은 이 비용이 수수료에 포함되어 있다. 가장 큰 차이는 한국의 도매법인을 농업과 관련 없는 대기업들이 운영하며 수익을 챙기는 반면, 대만은 정부와 농협의 합작법인이 운영한다는 점이다. 한국 농협은 규모 면에서 대만 농협보다 6~7배 이상 크다. 하지만 한국 농협의 매출은 대부분 금융업과 수수료 장사에서 나오고, 대만 농협의 이익은 농산물 판매와 유통이라는 본연의 업무에서 발생한다. 한국 농협은 '돈 장사'에 치중하고 있고, 대만 농협은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고 있는 셈이다. 한·일·대 3국은 모두 2차 세계대전 이후 농지개혁에 성공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일본은 미군정이, 한국은 미군정이 시작한 것을 이승만 정부가 완료했다. 대만 국민당 정부는 본토에서의 패배를 거울삼아 미국의 도움으로 철저한 농지개혁을 단행했다. 세 나라의 개혁 규모가 가구당 1헥타르(3,000평)로 균일한 이유는 미군정 소속 농업 전문가 울프 라데진스키가 설계한 '성공 공식'을 이식했기 때문이다. 당시의 기술력으로 한 가구가 가장 효율적으로 경작할 수 있는 면적을 계산한 결과였다. 오늘날 이 세 나라가 아시아에서 독보적으로 번영한 기초에는 이 평등한 토지 분배가 있었다. 만약 지금까지 대지주 밑에서 소작을 하고 있었다면 한국은 결코 선진국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 농업은 지속적으로 몰락하고 있다. 지대가 워낙 높다 보니 신규로 진입하려는 젊은 농민이 없다. 우리 동네나 내 고향에서 농사짓는 가장 젊은 층이 60대 중반이다. 그 아래 세대 농민은 찾아보기 힘들다. 농산물 가격은 비싼데 농민은 부자가 되지 못한다. 높은 지대와 인건비, 자재비 상승에 기후 변화라는 변동성까지 겹쳤기 때문이다. 유통 문제 또한 심각하다. 금융업의 달콤함에 빠진 한국 농협이 농민과 진정으로 연대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대만 농협처럼 금융 수익을 농업에 재투자하도록 법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수수료 체계도 개선이 시급하다. 일본은 농협이 수거, 검품, 포장, 물류를 전담해 농민이 농사에만 전념하게 하지만, 한국은 농민이 이 모든 작업을 개별적으로 수행하며 비용을 추가로 부담한다. 결국 한국 농협은 농민에게 가장 비우호적이면서 수익은 가장 많이 챙기는 조직이 되었다. 일본은 직거래 비중을 높여 공판장 의존도를 낮췄고, 그 결과 공판 수수료가 자유화되어 점점 낮아지는 추세다. 한국 농산물 가격이 비싼 이유는 단순히 농민의 탓이 아니다. 높은 지대와 낙후된 유통 구조라는 거대한 시스템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전 세계 최고 수준의 농산물 가격을 벗어나기는 힘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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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마을} 송전선로는 싫고, 반도체 산단은 좋다? (2)
- 송전선로는 싫고, 반도체 산단은 좋다? (2) (지난 글에 이어서) 앞선 글에서 반도체 산업의 어두운 그림자를 이야기했어요. 그럼에도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반도체 산단을 우리 지역에 유치해야 한다고 생각하신다면, 정말 반도체 산단이 우리에게 장밋빛 미래를 가져다줄 수 있을지 따져보는 게 어떨까요? 반도체 산단에 나랏돈 쏟아부을 까닭 없어 반도체는 미래 먹을거리 될 수 없다 한국무역협회는 올해 9월 ‘미국을 비롯해 세계 각국 정부가 보조금을 지급하며 국가 전략 차원에서 반도체 산업을 지원하다 보니 생산량이 급격히 늘어나 출혈이 불가피하다’며 ‘막대한 보조금을 받아 건설되는 시설들의 장기적 경쟁력이 약해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 강조했어요. 국내 반도체 생산능력은 세계 수요의 21.9%(2028년 기준)에 달할 수 있으나, 국내 수요는 5.4%(2026년 기준)에 머물러서, 국내에서 만든 많은 양을 해외에 팔아야만 해요. 그러나 미국과 중국, 유럽, 일본 등 주요 경쟁국들도 국가 안보 운운하며 국내 생산을 늘리고 있죠. 정부와 반도체 기업들이 떠드는 장밋빛 미래와는 달리, 과잉생산이 반도체 산업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말이지요. 실제로 최근 5년간 한국 반도체 수출은 2018년 830억 달러에서 2023년 429억 달러로 반 토막 났다고 해요. AI 반도체 호황에도 메모리 반도체 수요는 줄어들었어요. 글로벌 투자은행도 한국 반도체 산업이 정점을 지나 내리막길로 가고 있음을 경고해요. 이렇게 시장 상황이 변하면 대기업은 어떻게 할까요? 다 지어 놓고 투자 철회하면? 지역 공동화, 경제 악화는 어쩔 건가? 만약 대기업이 투자에서 손을 뗀다면? 그 거대한 산단과 인프라는 흉물스러운 빈 껍데기로 남겠지요. 투자 계획은 언제든 조정될 수 있지만, 한 번 깔린 인프라와 지역 의존 구조는 쉽게 되돌릴 수 없어요. 멀리 볼 필요도 없이, 평택을 보세요. 최근 다시 시작하긴 했지만, 2023년 기초공사에 들어갔던 삼성전자 반도체 생산 공장 P5는 지난해 초 갑자기 공사를 멈췄어요. 적자와 업황 악화를 내세웠죠. 그래서 평택이 어떻게 됐나요? 북적거리던 주변 상권은 썰물처럼 빠져나갔고 결국 상가와 주택 등에 투자하거나 확장했던 사람들은 빈 상가와 빈방을 바라보며 한숨만 쉬는 상황이었죠. 아파트 과잉 공급에 상수원 보호 구역 해제 문제는 말할 것도 없고요. 이재명 대통령도 강조했듯, 현재 AI 시장은 시간 단위로 기술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지요. 반도체 공정 역시 기술 패러다임이 급격히 바뀌고, 지난해 기술이 올해 구형이 될 수 있는 시장이에요. 시장 판도를 예측하기 어렵죠. 최근 삼성전자가 멈췄던 공사를 다시 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생산 조건과 상황이 변하면 또 언제 공사를 멈출지 모르는 일이죠. 그럼 거대한 산단과 인프라는 텅 비고, 지역 경제는 나빠질 수밖에 없어요. “반도체 지원 30년 투자 계획 속에서 발생할 수요 변동, 산업 변동, 투자 계획 변동은 한국경제 전반에 재앙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라는 전문가들의 경고가 나오는 까닭이에요. 이익은 기업이, 피해는 주민이 재벌 특혜를 국익-지역발전으로 포장하는 짓, 인제 그만 우리나라는 특히 다른 나라보다 국가의 반도체 산업 지원이 막대해요. 미국의 칩스법, 일본의 라피더스, 대만의 TSMC 사례를 보면 사기업의 장악을 막고 공적 성격을 유지하려는 장치들이 있지만, 한국의 지원 정책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같은 민간 대기업 재벌 중심으로 공적 성격이 매우 약하다고 비판받아요. 대기업에는 막대한 세제 혜택과 보조금이 주어지지만, 공공적 통제나 이익 환수 장치는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어요. 게다가 이런 대규모 대기업 지원은 정작 당장 필요한 부분에 소홀해지게 하지요. 기후위기 대응, 복지 확대, 사회안전망 마련, 산업 다각화 등 중요한 분야는 뒷전으로 밀려나니까요. 이익은 사유화하고, 피해는 사회화하는 나쁜 구조조차 바꾸지 않은 채, AI와 반도체 산업에만 열 올리는 국정 기조와 지역 발전 몽상에 빠진 산단 유치전이 정말 올바른지 다시 생각해야 할 때예요. 이래도, 우리 지역이 반도체 산단만 먹으면 장땡? 성숙한 시민사회와 좋은 정부를 바라며 다시 묻고 싶어요. 반도체 산업을 위해 이렇게 모든 걸 다 쏟아부어 물과 전기를 대 주고, 혜택을 몰아주고, 위험과 오염을 참아 주어야 하나요? 우리 삶터를 뚫고 지나갈 초고압 송전선로를 박아 주민들을 몰아내서라도 세워야 할 만한 가치가 있을까요? 초고압 송전선로는 싫지만, 반도체 산업은 우리 지역에 들어오면 좋겠다고 생각하시나요? 일단 우리 지역에 먼저 산단 만들어 달라는 소리는 그만하기로 해요. 그보다는, 소외되는 이 없이 기후위기 시대에 대비해 나가자고 요구하면 좋겠어요. 무턱대고 재생에너지만 늘리자고 주장하지 말고, 우리 사회 전반에 드는 에너지 수요를 줄일 방안을 먼저 찾는 성숙한 시민사회가 되면 좋겠어요. 그러한 시민사회를 받들어, 에너지를 많이 쓰는 산업에서 에너지를 적게 쓰는 산업으로 정의롭게 전환할 기반을 만드는 정부가 되면 좋겠어요. 그러니, ‘우리 지역에 산단 달라’는 말이 더는 들리지 않으면 좋겠어요. 버들 (독립연구자) 사진 재벌 특혜, 불확실한 고용효과, 노동권 침해, 기후·환경적 악영향 등의 논란을 낳은 ‘반도체특별법’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해 본회의 상정을 앞두고 있어요. 사실상 반도체 대기업에 거의 모든 공공 자원을 몰아주는 구조를 만들면서까지 반도체 산업을 떠받들어야 하는지 묻고 싶어요. 사진은 반도체특별법 강행 처리에 반대하는 시민-사회단체 기자회견(11월 4일) 모습.(사진 출처:반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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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마을} 송전선로는 싫고, 반도체 산단은 좋다? (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