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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교육 키즈의 생애 11편 "운명"
- 나경은 수현이 잡혀가는 모습을 봤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경은 이 상황이 모두 자신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수현을 집회에 데리고 다니지 말았어야 했는데 나경은 자신이 고등학생인 수현을 집회에 만난 것 때문에 고통스러웠다. 지숙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자신을 원망했다. “수현 선배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나경선배 지숙은 흐르던 눈물을 감추며 말했다. 나경은 자신을 원망하면 대답했다. “구속 될 거야…. 수현은” 수현은 경찰서에 끌려가 조사를 받았다. 집시법 위반과 화염병 소지죄가 붙었다. 수현은 경찰 유치장에서 10일 보냈고 결국 검찰에 송치되었다. 그날 잡힌 학생들은 수현 말고도 50여 명이나 되었지만, 검찰에 송치된 것은 수현이 유일했다. 검찰은 수현에게 집시법 위반과 화염병 소지죄로 최고형인 3년 형을 구형했다. 법원은 초법인 점을 고려해야 징역 2년 형을 선고했다. 나경은 아버지에게 수현이 징역형을 면해 달라고 이야기 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들어주지 않았다. 대신 2년형을 1년형으로 감형 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항소심에서 수현은 감형 되었다. 그리고 다시는 수현을 만나지 말라고 이야기 했다. 나경은 수현에 감옥에 가자 도쿄로 돌아갔다. 남은 학업을 하기로 했다. 다시 한국에 돌아올 생각이 없었다. 수현을 구속하는 한국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자신도 싫었다. 자신이 수현을 그렇게 만든 것 같은 죄책감이 그녀를 더 이상 한국에 머물게 할 수 없었다. 다시는 수현을 만나지 말아야 해…. 나를 만나면 수현은 더 불행해질 것이라고 나경은 생각했다. 지숙은 군대 2년을 기다리고 만난 수현이 복학하자마자 감옥에 가 버리자 더 이상 수현을 기다리지 않기로 했다. 더는 인연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니 수현과 함께 사는 것이 힘들 것이라고 체념했다. 지숙은 이제 졸업을 해야 하고 취업해야 한다. 더 이상 수현만 바라보고 살 수도 없었다. 그녀 앞에도 해야 하고 헤쳐 나가야 할 현실이 있었기 때문이다. 강진은 그날 수현에게 머리통을 맞고 기절했다. 강진을 진압하려고 했던 신병은 강진이었다. 강진은 첫 집회를 제외하고는 한 번도 집회에 참여하지 않았다. 언제나 뒤에서 학생들을 조직하는 일을 조용히 해왔다. 그러다 군대에 갔고 전경으로 차출되었다. 그가 배치받은 곳은 자기 고향이었다. 그날 수현이 앞에 있는 것을 강진은 봤다. 강진은 어떻게든 수현을 지켜주고 싶었다. 하지만 강진의 분대가 수현을 잡으라는 명령을 받았다. 강진은 수현을 어떻게든 도망치게 하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결국 강진은 수현이 휘두르는 쇠 파이프에 맞고 기절했다. 수현은 쓰러진 전경을 끌고 가는 전경들이 강진의 화이바를 벗길 때 그 전경이 강진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수현은 그래서 더 이상 항소하지 않았다. 수현도 교도소에 나오면 노무사가 되어 볼 생각을 했다.학교에서 내가 할 일은 끝났다.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수현은 노무사 이외에는 할 것이 없었다. 지숙에서 노동법 책을 부탁했다. 책을 펼치자, 지숙이 쓴 글이 보였다. 수현 선배! 그동안 고마웠어요" 생활 잘하세요. 안녕 수현은 아버지가 산재 처리를 받았다면 후유 장애와 산재로 발생한 질병은 회복될 때 까지 병원비가 나온다는 사실을 노동법 책을 보고 알았다. 더구나 산채 처리를 받았다면 산재로 인해 일을 하지 못하는 기간 동안의 임금도 받을 수 있다는 사실도 알았다. 노동운동을 한다고 했지만 본인이 노동법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다는 것이 후회했다. 출소후 수현이 학교로 돌아 왔을 때 학교에는 수현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이제는 교수실이 되어 버린 과학생회실, 텅 빈 서클룸, 먼지 쌓인 사회과학 책들…. 주차장이 되어버린 학생회관 앞 민주 광장, 대자보 대신 붙어 있는 토익 학원 홍보안내문…. 학교엔 지숙도 나경도 강진도 없었다. 지숙은 고향 여수에서 공무원이 되었다. 나경은 일본에서 결혼했다. 강진은 여전히 전경으로 복무 중이다. 수현은 지숙이 선물해 준 노동법 책을 들고 도서관으로 향했다. 수현이 도서관에서 나오자 차가운 가을바람이 불었다. 도서관 앞엔 코스모스가 피어있었고, 하늘은 푸르렀다. “벼가 익을 때구나….” 함께 논일을 마치고 아버지와 함께 막걸리를 마시던 생각이 났다. 수현을 바라보던 아버지의 따스한 눈길이 그리웠다. 학생회관 앞 공중전화에 전화카드를 넣었다. 엄마! 저 지금 집에 가려고요. 두시 차에요. 수현이 고향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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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교육 키즈의 생애 11편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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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교육키즈의 생애 10편 마지막 전투
- 도쿄의 봄은 매화로 시작해서 벚꽃으로 이어졌다. 나경은 일본에서 생활이 즐거웠다. 해야 할 일이 없고 하고 싶은 일도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행복했다. 해야 할 일이 없다는 것만큼 좋은 것은 없었다. 학교 공부가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공부를 잘해야 할 이유도 없었다. 딱히 하고 싶었던 공부도 아니고 관심이 가는 분야도 아니었다. 그저 아버지가 가라는 과에 입학했고 그저 그런 학점을 받았다. 나경의 아버지는 나경이 도쿄에 있다는 것이 맘에 들었다. 나경은 종종 군대에 있는 수현에게 편지를 써볼까 생각했지만, 하지 않았다. 벚꽃이 피면 수현과 함께 걸었던 그길과 그시절이 생각났지만, 편지를 보내는 것은 수현에게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경은 일본에서 남자 친구를 만났다. 그도 나경처럼 학생이었다. 그들은 곧 동거를 시작했다. 도쿄에서 한 시간 정도 거리에 있은 니시하라이근처였다. 그들은 쉬는 날이면 아라강을 산책했다. 주말에는 많은 아이들이 야구를 했고 러닝을 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한국의 치열함과 다른 일본 생활의 나른함이 주는 평화가 좋았다. 역사 민중 독재 권력 해방 이런 단어들과 싸울 필요가 없었다. 역사의 흐름에서 비켜서 있는 지금이 나경은 좋았다. 아라강은 이타마현에서 발원하여 하류에서 스미다강(隅田川)과 나뉘어 도쿄만으로 흐르는 길이 173km 강이다. 일본에서는 강폭이 가장 넓은 강이었고 수도 도쿄로 흘러 태평양으로 흘러갔다. 서울의 한강 같은 강이었다. 나경은 여기서 아이를 낳고 아이가 크면 야구하는 아이를 보러 오고 자전거를 타고 장을 보고 때로는 조깅하거나 이자카야에서 남편과 술 한잔하는 평범한 생활을 꿈꿨다. 그래도 될 것 같았다. 남자 친구는 일본인이었다. 나경은 소심하지만, 배려심 많은 그가 좋았다. 하지만 나경의 아버지는 나경이 일본 사람과 결혼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아버지의 말을 거부하지 못하는 나경은 결국 그 남자와 헤어졌다. 그녀는 남자 친구와 헤어지고 나서 다시 수현이 생각났다. 한국으로 돌아가 수현을 만나야겠다고 나경은 생각했다. 군대에서 제대한 수현은 1년 동안 공사판을 전전했다. 그리고 학교로 돌아가자마자 다시 학생운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집회에 참여하는 학생들은 별로 없었다. 대부분은 집회장이 아니라 도서관을 찾아갔다. 한때 자신의 모든 것으로 생각하고 목숨이라도 버릴 수 있을 것이라는 신념이나 가치는 시간이 지나면 귀퉁이에 쌓여 있는 먼지 처럼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현은 달랐다. 노태우 정권이 끝난 학내 분위기는 더 이상 학생운동이 필요한가라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독재정권이 막을 내렸고 김영삼 정권이 들어선 시기였다. 김영삼 정권은 학생운동을 효율적으로 막기 위해 과거의 방법에서 다른 방법을 선택했다. 바로 학부제였다. 학생운동의 기본이 되는 것은 학생회였다. 신입생이 들어오면 학생회를 찾아오기 마련이고 학생회 활동이나 엠티를 통해 친해지게 되고 그러다가 집회에 참여하게 된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운동권 학생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김영삼 정부가 만든 5.31일 교육개혁안으로 학과가 사라지고 학부제로 전환되면서 신입생들에게 학생회가 사라지게 되었다. 결국 학생회 역시 힘을 잃게 만드는 효과가 있었던 것이다. 수현은 학부제를 막기 위해 투쟁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대안이 없었다. 수현이 처음 대학에 들어왔을 때 학생운동을 하지 않던 학생들도 운동권을 응원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하지만 제대하고 복귀한 학교는 더 이상 그런 응원의 분위기가 아니었다. 과거처럼 거리투쟁이 있던 것도 아니었다. 수현은 학생회실 캐비넷의 자신이 집회 때마다 들고 다녔던 쇠 파이프가 사라졌다는 것도 알았다. 더 이상 그런 것들이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선배 아직도 학생운동 같은 것을 해요?” 후배들의 이런 질문에 수현은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수현은 더 이상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느껴졌다. 그런 날들이 이어 질 때 나경이 수현을 찾아왔다. “수현아 오랜만이야" “잘 있었지!" 나경은 어제 떠났다가 돌아온 사람처럼 말했다. 수현은 오랜만에 나경을 만난 것이 좋았다. “선배 잘살았어요?” “어, 너는" “네 저도 군대 제대하고 뭐 이렇게 살고 있어요.” “지숙이도 잘 있어?” “아… 네 지숙이도 잘 있죠?” “우리 같이 술 한잔하자” 그날 밤 지숙과 나경 수현 세 사람은 함께 술을 마셨다. 그들은 끝없이 술을 마셨다. 각자 해야 할 말이 있었지만, 하지 못했다, 지숙은 나경에게 물어야 할 말이 있지만 묻지 못했다. 수현은 두 사람 사이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맥주에서 소주로 이어지는 술자리는 끝을 모를 그들의 관계처럼 길고 깊었다. 다음날 새벽 수현은 일찍 잠에서 깨었다. 오늘 오후에 집회에 있었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하는 가두집회였다. 총학생회는 다시 한번 학생운동의 불꽃을 살려보기 위해 가두 투쟁을 결정했다. 오후 1시 학생회관 앞에서 집회가 시작되었다. 대형 스피커에서 민중가요가 학교 전체에 울려 퍼졌다. 이어서 문선대의 공연이 있었다. “바위처럼 살아가 보자 모진 비바람이 몰아친대도 어떤 유혹의 손길에도 흔들림 없는 바위처럼 살자꾸나 ~~~” 문선대의 공연이 끝나자 풍물패들의 힘찬 연주가 시작되었다. 집회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학생회장과 투쟁국장의 연설이 시작되었다. “오늘 우리는 다시 투쟁의 길로 나서려고 합니다.” “그 동안 움츠렸던 우리 청년 학생들의 각오를 다시 보여줄 때입니다,” “남한 사회의 문제는 하나도 해결된 것이 없습니다" “김영삼 정부는 여전히 민주적이지 않고, 미군은 여전히 한반도에 주둔하고 있습니다.” “김영상 정부 타도하고 평화통일 이룩하자" 여기저기 집회가 그리웠던 고학년들과 처음 집회에 참가해 본 신입생들 이렇게 300여 명의 학생들이 학생회관 앞 민주 광장을 꽉 채웠다. 수현은 전날부터 집회에 사용할 화염병을 만들었다. 그리고 오후 2시 수현과 사수대 그리고 학생들은 교문을 나섰다. 경찰과 전경 그리고 백골단이 교문 앞을 지키고 있었다. 수현은 언제나처럼 제일 앞 자리를 잡았다. 점점 시들어가는 학생운동의 마지막 숨통을 끊어 버리기라도 하듯 전경과 사복 체포조, 페퍼포그까지 대동해 교문 앞을 꽉 막고 있었다. 총학생회는 여러 번 집회 신고를 했지만, 경찰은 허용하지 않았다. “학생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불법집회를 하고 있습니다,” “시민들의 안전과 교통 통제를 위해 교문 밖으로 나오지 않기를 바랍니다" “민주 경찰은 여러분과 싸우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안전한 학내에서 집회하시기를 바랍니다,” “만약 교문 밖으로 나오게 되면 경찰은 여러분을 즉각 해산시키도록 하겠습니다.” 경찰의 말이 끝나자마자 비웃듯이 사수대가 교문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노동운동 탄압하는 김영삼 정부 물러가라" 수현이 맨 앞에서 구호를 외쳤다. 지숙은 멀리서 수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선배는 언제나 같구나.. 지숙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경은 자신이 떠날 때와 변하지 않은 한국 현실이 느껴졌다. 도쿄에서 보내는 동안 나경은 학생들이 집회하는 모습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일본이라고 해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자민당 독재라고 해야 할 만큼 일본은 2차대전 패망 후 자민당 일당 독재였다. 다른 정권이 정권을 잡은 적도 없다. 일본의 정치는 자민당으로 시작해서 자민당에 의한 자민당의 정치였다. 하지만 68년 전공투 이후 일본에서 학생운동은 사라졌다. 하지만 나경은 이런 상태가 좋았다. 해야 할 일이 없고, 선택해야 할 일이 없다는 현실이 좋았다. 무엇을 선택하지 않아도 아무렇지도 않은 것, 시대의 현실을 외면해도 미안하지 않은 것이 좋았다. 한국에서 나경은 항상 선택해야 했다. 지숙은 수현이 오늘 집회에 나오지 않기를 바랐다. 전투경찰이 교문 앞에서 학생들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보통은 학생들이 교문 100미터 정도 나오는 것은 적당히 봐주고 시작했다. 이 정도 거리는 집회 신고를 하면 대부분 받아 주었다.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교문 앞에서부터 막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들만의 나름의 유효거리가 있었던 것이다. 거기서 더 나오면 전경들이 밀려오고 그렇게 되면 뒤로 갔다가 나왔다 가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다가 잠시 쉬면서 공연도 하는 패턴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전경들은 학생들이 교문을 나오자 마자 입구부터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오늘 전경들이 이상해요” 수현도 오늘 전경들의 행동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학생 지도부는 대오를 뒤로 미루어 교문 안으로 들어와 회의를 시작했다. 총학생회장 수철은 대오를 뒤로 미루자고 했다. 오늘 밀리면 내일도 없다고 투쟁국장이 말했다. 수현은 자신이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한 번 밀어 보고 적당한 선에서 오늘 집회를 마무리 하자.] 100미터가 안 된다면 50미터라도 밀고 나서 그 자리에서 집회를 이어가자고 했다. 오늘 처음 집회에 온 신입생들도 있는데 이렇게 밀린다면 체면이 서지 않는다는 것이다. “처음 집회에 나온 신입생들은 뒤로 가세요. 선배들이 앞에서 뚫어 보겠습니다.” 수현은 마이크를 잡고 학생들에게 이야기했다, 멀리서 수현을 지켜보는 눈이 있었다. 경찰 수사과장은 김충선은 학교 앞 5층 빌딩 옥상에서 수현을 망원경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야…. 오늘 저놈 좀 놈 잡아" 수사과장은 수현을 잡고 싶었다. [저놈이 오래전에 우리 전경 아이 하나를 죽일 뻔한 놈이잖아….군대 가서 안 보이더니 … 다시 쳐 나왔네. 저놈은 오늘 반드시 잡아야해..]다시 교문을 열고 사수대가 나오기 시작했다. 전경들이 바로 전과는 다르게 뒤로 살짝 빠지기 시작했다. ‘자!! 우리 한 번 쭉 밀고 나가봅시다" “통일운동 가로막는 김영삼 정권 타도하자!!” 학생들 300여 명이 전경들을 밀고 나가기 시작했다. “화염병 줘!” 전경들은 수현을 앞에 두고 쥐 앞에 고양이처럼 이야기했다. “야 신병 네가 잡아봐….”“너도 대학 때 운동권이었다며….” “잘 되었네” 신병 하나를 전경들이 수현 앞으로 밀었다. 수현은 갑자기 전경이 자신을 잡으려고 앞으로 나오자 전경의 전투모를 내리쳤다. “윽"하고 전경이 뒤로 밀려났다. “야. 이 자식아 이것도 못 해….” 그 순간 수십 명의 전경이 수현을 공격했다. 수현은 질질 끌려갔다. 수현의 하얀 티셔츠가 피로 물들기 시작했다. 매주 월요일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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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교육키즈의 생애 10편 마지막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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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바위
- 「섬진강 편지」 -소원바위 겨우내 찾지 못했던 사성암 소원바위를 찾아 소원을 한다. 한 가지 소원을 들어준다는데 욕심을 내어 두 가지 소원을 올렸다. 강 건너 숲에 들어 꽃 앞에 엎드리니 작은 개울물 소리가 크게 들린다. 언 땅을 뚫고 꿈틀대는 새싹들! 얼어붙어 풀리지 않을 것 같던 땅이 녹아내리고 뭇 생명들이 깨어나는 시간이다. 누가, 누가 천심 민심을 거스를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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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를 애도하며
- 물고기를 애도하며 제임스 테이트 스텐리는 회사를 하루 쉬면서 온종일 수족관 속의 물고기와 이야기했다. 바닥을 다니는 작은 메기에게 그가 말했다. “찌꺼기를 빨아들여. 전부 삼켜버려. 그게 네가 할 일이야.” 그리고 연필 물고기가 헤엄쳐 지나가자 그는 “휘갈겨 써. 쓰고 또 써. 나에게 한편의 소설을 써보이란 말야” 또 천사고기가 지나가자 스텐리는 말했다. “넌 천사는 아니지만 운전 하나는 잘하는구나.” 그러고 난 뒤 그는 점심을 먹기 위해 자리를 떠나 참치로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이것이 그가 벗어날 수 없는 아이러니였다. 아니, 그는 한입 한입 맛을 음미하면서 아이러니 속에서 뒹굴었다. 그리고 수족관 앞 의자에 다시 와 앉았다. 한 떼의 작은 네온 물고기가 그를 즐겁게 했다. “너희는 이 수족관이 뭐 타임스퀘어라고 생각해?” 스텐리가 소리쳤다. 그렇게 밤은 깊어 갔다. 다음 날 아침 스텐리는 어제 자신이 한 행동 때문에 무섭게 당황했고 물고기들에게 여러 번 사과했다. 그러나 물고기들은 그를 결코 용서하지 않았다. 스텐리는 바로 물고기들의 물고기다움을 조롱했던 것인데, 그렇기 때문에 용서라는 게 있을 수 없었다. ------------------------------------------- 이 시는 산문시의 형식으로 쓰여진 미국의 제임스 테이트(1943~2015)라는 시인의 시이다. 사람은 누구나 다르다. 일란성 쌍둥이라고 해도 서로 다르다. 누구나 자신만의 형상과 자신만의 생각을 가지고 자신만의 삶을 진행하는 것이 인생이다. 한 생명이 가진 자신만의 정체성은 누군가에게 조롱받거나 비판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키가 작다거나 얼굴이 못생겼다고 해서,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그것을 비난하거나 조롱하거나 배척해서는 안 된다. 다만 그가 하나의 공동체에서 전체의 룰을 어겼거나 해악을 끼쳤을 때는 당연히 제지당해야 하고 약속한 벌을 받아야 한다. 함께 산다는 것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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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독三毒
- 삼독三毒 한세상을 살며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감옥을 살다 간다. 어쩌면 죽어야만 그 감옥을 벗어날 수 있다. 한 生을 살며 오직 ‘나’라는 자신만을 살다 가는 것이다. 붓다는 모든 중생은 삼독三毒을 벗어나야 해탈에 이를 수 있다고 했는데 그 삼독이야말로 나의 감옥을 가득 채우고 있는, 아니 그것이 바로 내가 만든 그리고 스스로 갇혀 있는 나의 감옥이라고 할 수 있다. 탐貪, 진嗔, 치痴삼독三毒중에서 가장 치명적인 것은 탐이다. 잘못된 탐심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하여 대통령직 파면을 자초한, 부족해도 너무 부족한 어떤 사람을 보면 그렇다.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 살아야 한다는 존재 욕구를 본능적으로 갖는다. 사람만이 아니라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은 본능적인 존재 욕구가 있다. 그 욕구는 탐이 아니다. 탐은 이것을 이탈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나무는 싹이 튼 그 자리에서 햇볕과 물과 바람만으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며 한 생을 살다 간다. 이처럼 모든 생물은 그 한계를 넘지 않고 사는데, 인간만이 그 한계를 넘는 탐심을 가지고 있다. 작금의 자본주의가 그것을 잘 보여준다. 자본의 토대 속에서 과학기술문명이 진행되면서 많을수록 좋다는 물량주의, 빠를수록 좋다는 속도주의, 나와 나의 이익이 먼저라는 개인 이기주의 같은 자본 이데올로기가 형성되었고 그 속에서 우리는 탐욕을 자연스럽게 그리고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살고 있다. 현대인들의 탐욕은 생존경쟁의 삶 속에서 오히려 필요한 것이며 부끄러워할 무엇도 아니라는 듯 당위적인 것이 되어버렸다. 탐에 대한 반성과 성찰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그리고 탐욕은 물질적인 탐욕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탐욕이 오히려 삶의 균형감을 더 잃게 한다. 힌두의 수행 계율 중에 ‘샨토샤’라는 것이 있다. 자신에 주어진 삶의 조건과 상황이 어떠할지라도 그것에 ‘만족하라’는 계율이다. 우리는 한 생을 살면서 수없이 많은 어떤 상황에 맞닥뜨리게 되고 어떤 삶의 조건에 갇히게도 된다. 멀쩡한 사람으로 살다가 갑자기 암 환자가 되기도 하고 어느날 재산을 잃고 거리에 나앉을 수도 있는 것인데, 살아 있는 이승의 어느 순간에도 ‘만족하라’는 것이다. 살면서 나이를 먹고 어느덧 노인이 되어 있는 자신을 보며 ‘무상無常의 진리’를 조금이라도 느껴본 자라면 이 말을 수긍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숨 쉬며 존재하기만 해도 고맙다고 느끼는 만족의 순간이 있기도 할 것이다. 이것은 만족이 손에 잡히는 것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마음으로부터 오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 만족을 물질적인 것에서 찾으려면 불가능하지만, 정신적으로 접근하면 얼마든지 가능하고 손쉬운 것이다. 이것은 포기하고는 다르다. 할 수 없으니까 그냥 현실에 만족한다는 것이 아니라 끝없는 탐욕을 절제하는 높은 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기에 탐욕에 대한 집착을 놓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쉬운 일이다. 담배를 끊기가 그렇게 어려운 일이지만 또한 쉽게 한순간에 끊어버리는 사람이 있듯이 진리라는 것은 높고 어려운 것만이 아니라 단순하고 쉬운 것이기도 하다. 이 탐욕을 벗어날 수 있다면 비로소 한 생을 자유롭게 살 수 있을 것이다. 우물 안 개구리가 밖에 나와 그 넓은 새로운 세상을 살며 삶의 자유로움과 생의 기쁨과 존재의 고마움을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삼독의 하나인 탐貪을 벗는 것이다. (박두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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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독三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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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교육 키즈의 생애 9편 선배 머리 깎으니까 진짜 군인 같은데요
- 수현은 3학년에 진학하지 않았다. 수현은 나경이 떠나고 난 이후에 학교에 관심이 멀어졌다. 3학년에 진학하지 않고 군대에 가기로 했다. 논산 훈련소로 떠나는 수현을 마지막까지 바래다준 것은 지숙이었다. “선배 머리 깎으니까 진짜 군인 같은데요?” 지숙은 신나는 일이라도 생긴 것처럼 웃으면서 말했다. “너 선배가 입대하는 것이 그렇게 좋냐?” 뭐. 어차피 해야 할 일 아닌가요? “선배 좋아하는 후배들도 많고 이제 만나지도 못하니까” “저는 그게 더 좋은데요.” “선배 너무 외로워하지 마세요.” “제가 매주 편지 보낼게요.” “전 왠지 선배에게 편지 쓸 생각을 하니까 기분이 좋은데요.” “매일매일 제 편지 기다리면서 힘내세요.” 수현은 지숙의 그런 행동이 밉지 않았다. 어차피 가야 할 곳이라면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가는 것이 좋다고 수현은 생각했다. 더 이상 학교에 있으면 수현은 더 괴로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수현이 생각한 학생운동과 직접 경험해본 학생운동과는 차이가 컸다. 노동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수현은 통일운동만 하는 총학생회나 학생회가 맘에 들지 않았다. 통일이라니…. 북한은 북한대로 자신의 주체성을 가지고 살면 되고 남한은 근본 문제는 통일이 아니라 민주주의나 노동문제나 농민 문제에 있다고 수현은 생각했다. 논산 훈련소 신병교육대에 들어간 수현은 4주 훈련을 마치고 부산 69사단에 배치되었다. 나경과 함께 걷다가 본 그 부대였다. 2년 6개월의 군 생활은 수현에게 별다른 기억을 남기지 않았다. 하루하루가 지옥처럼 느껴지기도 했지만, 사회에서 격리되어 자신이 뭔가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해방감이 맘이 편해졌다. 복종의 즐거움인가? 수현의 고참이나 소대장, 중대장. 대대장 누구누구의 지시대로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하고…. 매번 시키는 대로 행동하는 군대 생활이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주는 묘한 해방감에 익숙해졌다..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은 무력감과 함께 선택의 고민이 사라지는 해방감도 준다고 수현은 생각했다. 매주 수요일쯤 도착하는 지숙의 편지도 수현의 군 생활을 위로해 줬다. 편지는 별 내용이 없었다. 현재의 학교 상황 지숙의 생활 그리고 안부, 매번 비슷한 이야기를 전해주었지만 매일 같은 일을 하는 수현에겐 편지가 오는 날에 대한 기대감과 제대할 날이 가까워지는 것만이 유일한 희망이 되어주었다. 지숙은 매주 수현에게 편지를 보내는 일을 즐겼다. 편지지를 고르는 일, 그리고 정성스럽게 글씨를 써가는 일이 지숙에게는 수현과 자신을 이어주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행위의 반복이 사랑을 키워가는 과정이라고 지숙은 생각했다. 수현은 경계근무를 서는 날이면 바다를 보며 지숙과 나경에 대해 생각했다. 나경은 일본에서 무엇을 하는 것일까?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인가? 도쿄의 생활은 어떤 것일까? 지숙은 또 어찌 보내는 것일까? 첫 휴가 때 만난 지숙은 예전과 별다르지 않았다. 강진의 문학 써클에 여전히 가입되어 있었지만 깊이 활동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강진은 여전히 집회에는 나가지 않았다. 강진은 벌써 3학년이 되었고 학내에서 신망 있는 선배가 되어 있었다. 수현은 여전히 세상이 맘에 들지 않았지만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알 수 없었다. 그날 부대에 복귀하기 전날 밤 지숙과 수현은 함께 술을 마셨고 함께 여관에 갔다. 수현이 지숙의 몸을 만졌을 때 지숙은 수현의 손을 거부하지 않았다. “선배 나 사랑하지?” “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새벽에 여관을 나와 콩나물국밥을 먹고 헤어졌다. 수현은 지숙과의 관계 이후에 지숙을 사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경과 함께 밤을 지새운 날 수현은 나경을 보내줘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아련한 마음만큼은 보내지 못했다. 그날 밤 나경과 관계했다면 수현은 나경을 사랑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나경과 자신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나경은 그날 밤 수현과 자신이 더 이상 만나지 못하리라 생각했다. 아니 더 이상 만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경은 수현은 사랑했지만, 아버지가 도쿄에 가라고 할 때 거부하지 않았다. 오히려 좋았다. 그래서 더는 수현과 자신이 더 깊은 관계가 되지는 않으리라 생각했다. 수현이 군대 있는 동안 지숙은 자주 면회를 왔다. 밥을 먹고 술을 먹고 여관에 가서 매번 두세 번 관계했다. 매일 같은 패턴이었고 지숙은 수현이 여전히 좋았다. 수현도 지숙이 좋았고 사랑한다고 생각했다. 수현이 길고 긴 군 생활을 마치고 학교로 복귀했을 때 강진은 군대에 입대했다. 매주 월요일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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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교육 키즈의 생애 9편 선배 머리 깎으니까 진짜 군인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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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노루귀 숲
- 「섬진강 편지」 -청노루귀 숲 5cm 저 여린 청노루귀 꽃밭 다녀가는 이 숲에서 유일하게 신발 신은 이기적인 동물 내 발자국이 너무 커서 미안하다 봄 숲에서는 23g 아기참새 종종종 발걸음처럼 내가 가벼워져서 가벼웠으면, -섬진강 / 김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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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노루귀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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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교육 키즈의 생애8편 나경과 수현은 모텔 앞에 멈췄다.
- 나경이 수현에게 찾아온 것은 9월의 첫 주말 아침이었다. 나경은 불안해 보였다. “수현아, 우리 여행갈까?” “여행요….” “갑자기 무슨 여행을 가요” “방학도 아닌데요.” “그냥 이 선배가 바다가 보고 싶어서 그래!” “그래요, 그럼" “잠깐 하루만 다녀와요.” “그래.”수현은 나경의 갑작스러운 모습이 이상했지만, 나경 선배의 말이라면 수현은 언제나 잘 들어주었다. 나경은 오늘 여행을 수현과의 마지막이 되리라 생각했다. 나경은 내일 다른 곳으로 떠난다. 나경은 아버지의 권유로 일본 유학을 떠나기로 했다. 나경의 아버지는 일본 동경대학을 졸업했다. 일본 문부성 장학금을 받고 동경 대학을 나온 나경의 아버지는 나경도 도쿄로 떠나기를 바라고 있었다. 나경은 아무에게도 이 사실을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동안 자신이 했던 이야기와 행동들이 모두 위선으로 보일까 두려웠다. 하지만 수현에게는 말하고 싶었다. 여름이 끝나가는 9월의 해운대 바닷가에 사람이 많지 않았다. 수현과 나경은 철이 지난 해운대와 동백섬을 말없이 걸었다. 수현은 약간 들떠 보이기는 했지만 나경의 침묵이 낯설어서인지 쉽게 말하지 않았다. “선배 무슨 일 있어요?” “일은 아무 일도 없어….” 나경은 속마음을 말하고 싶었지만 말할 수 없었다. 나경은 내일 오전 나리타공항으로 떠난다. 대한항공 오후 4시 편이었다. 이제 한국을 떠나려면 24시간도 남지 않았다. 수현과 나경은 해운대에서 광안리까지 걸었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상쾌했다. 수영만의 가득한 컨테이너와 멀리 군부대 시설들이 보였다. 수현아, 너도 곧 군대 가야겠구나? “그래야지요.” “돈도 없는데 적당한 때 갔다 오려고요" “선배는 가고 싶은 곳 없어요?” “나… 어…” 나경은 마음을 들킨 것 같았다. “우리 오늘 바다에 왔잖아….” 멀리 광안리 유원지의 바이킹 배가 보였다. “선배 우리 저거 타 볼래요?” “아. 나는 좀 무서운데" “재밌잖아요” 수현과 나경은 바이킹 배에 올라탔다. “선배 제일 끝이 제일 무서운 것 알죠?” “우리 저 끝에 앉아요?” 손님이라고는 나경과 수현 그리고 가족으로 보이는 서너 명 뿐이었다. “끼익.. 하고 배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나경은 수현의 손을 꼭 잡았다. 바이킹 배는 서서히 왕복 운동을 시작하더니 아래로 쏟아져 내리듯 떨어졌다. 아… 윽… 나경은 소리를 질렀다. 그럴 때마다 수현의 손을 더 꼭 잡았다. 수현은 이 정도로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태연해 보였다. 수현은 나경이 자기 손을 꼭 쥐고 있다는 사실이 기분이 좋았다. 나경은 거의 죽을 표정을 짓고 있었다. “선배 멀리 보지 말고 눈감고 고개를 숙이고 아래를 보세요.” “그러면 좀 나아요.” 나경은 기계가 멈추자 살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내려왔다. 어느새 어두워 지기 시작한 광안리 바닷가엔 삼삼오오 모여 술잔을 기울이거나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이 보였다. “비바람이 치던 바다.. 잔잔해져 오면~~” 수현과 나경은 광안리 해변으로 길게 뻗은 도로를 걸었다. 청새치 모양의 간판이 걸려 있는 술집이 보이자, 나경과 수현은 말없이 그 술집 안으로 쓰러지듯 들어갔다. 술집 벽면에는 커다란 청새치를 잡아 올린 사진이 보였다. 수현은 “노인과 바다"를 생각했다. 노인인 잡은 것이 청새치였을 것이라고 수현은 생각했다. 소설을 쓰는 것은 깨어있으면서도 꿈을 꾸는 것이라고 했었다. 수현은 가끔 자신이 꿈을 꾸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많은 사람들이 걱정없이 행복하게 사는 꿈, 가난 때문에 꿈을 포기하는 사람이 없는 나라, 돈 때문에 비겁하게 고개 숙이지 않아도 되는 세상, 자유나 민주 같은 것을 위해 목숨을 걸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수현은 꿈꾸고 있었다. 이것은 그냥 꿈인 것일까? 애써 밀려왔다 다시 밀려가는 파도처럼 수현의 싸움도 역사의 한 귀퉁이에서 울리는 작은 외침에 불과한 것인가? 그것을 위해 어디까지 해야 하는 것일까? 수현은 늘 고민했다. 나경은 내일 비행기에 타려면 몇 시에 부산에서 서울로 가야 하는지를 계산했다. ‘곧 떠나야 해" 지금 아니면 늦을 거야. 나경은 입에서 맴돌기만 한 말을 꺼내려다가 맥주와 함께 삼켰다. 수현에게 뭐라고 말해야 할까? 나경은 수현이 좋았다. 하지만 일본에서 공부를 마치려면 4년이 걸릴지 5년이 걸릴지 알 수 없었다. 알 수 없는 미래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만큼 허망한 것은 없다고 나경은 생각했다. 하고 싶은 말은 미궁 속으로 사라지고, 하지 않아도 되는 말들은 입으로 나와 담배 연기와 함께 허공에 맴돌았다. 테이블 위로 술병은 하나씩 하나씩 늘어나고, 감자튀김은 눅눅하게 식어갔다. “영업시간이 끝났는데요?” 식당 종업원의 말을 듣고 시계를 보니 12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술집에 나오자, 광안리 바닷물이 방파제 바로 앞까지 와있었다. 철썩철썩~~~ 파도 소리가 들려왔다. 나경은 이제 이 바다를 건너 일본으로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광안리 바다에는 술을 먹는 사람들이 술집에 들어갈 때보다 많아 보였다. 나경과 수현은 적당히 취했다. 나경은 모텔 앞에 멈췄다. “수현아 우리 많이 취했다. 우리 여기 들어가서 잠시 쉬자.”수현은 다른 말을 잠깐 생각했지만, 나경이 이끄는 데로 모텔 안으로 들어갔다. “304호입니다,” 엘리베이터 계단에서 수현과 나경은 서로의 얼굴을 보지 않았다 . 문이 열리고 딩동 소리와 함께 문이 닫혔다. 3층 버튼은 나경이 눌렀다. 나경이 모텔 키를 돌리고 문을 열었다. “수현아, 씻어" 네. 수현은 욕실로 들어갔다. “어떻게 해야 하나. “수현이 나오자, 나경이 들어갔다, 수현은 침대 밑에 이부자리를 깔고 누웠다. 나경 선배가 나오기 전에 잠들자고 생각했다. 나경이 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수현은 잠자는 척했다. “벌써 잠 들었나….” 아직 말하지 못했는데, 나경은 잠든 수현의 얼굴을 바라봤다. 고등학교 때 수현의 얼굴이 떠올라 지금 모텔에 함께 있는 둘의 모습이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수현을 만나지 말았어야 했어. 그랬다면 수현이 이 학교에 들어오지도 않았을 것이고 학생운동을 하지 않았을 것인데. 나경은 그때 일이 후회되었다. 나경은 침대에 누웠다.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았다. 수현아…. 라고 이름을 불렀지만, 수현은 잠든 척했다. 수현의 어깨를 흔들었다. 수현은 모른척 했다. 잠든 사람은 깨워도 잠든 척 하는 사람은 깨우지 못한다고 했다. “깊이 잠들었구나…. 수현아! 나…. 내일 떠나…. 나를 잊어줘" 나경은 이야기했다. 이렇게라도 이야기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수현은 나경이 하는 소리를 듣고 있었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렇구나.. 나경 선배는 내일 떠나는구나…. 나경은 수현이 잠든 옆에 자리를 폈다. 수현 옆에 나란히 누웠다. 수현은 손을 잡았다. 따뜻했다. 수현은 손을 잡아 나경은 자신의 가슴 위로 옮겼다. 수현은 나경이 하는 데로 있었다. 나경 선배 잘 떠나요. 수현은 속으로 말하며 고개를 돌려 손을 뺐다. 나경은 수현 옆에서 밤을 새웠다. 새벽이 오자 나경은 말없이 모텔을 빠져 나왔다. 그리고 그날 오후 인천에서 나리타 공항으로 나경은 먼 길을 떠났다. 수현도 잠을 자지 않았다. 나경을 붙잡고 싶은 마음과 그냥 있어야 한다는 마음 그리고 나경을 안고 싶은 마음과 그러면 안 된다는 마음이 그를 밤새 괴롭혔다. 빨리 새벽이 오기만을 수현은 기다렸다. 모텔 창문 커튼 사이로 희미한 새벽빛이 수현의 머리를 비추었다. 나경이 조용히 모텔을 빠져나가는 것을 수현은 바라보고 있었다. 수현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자신의 미래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나경에게 부담 주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수현은 88담배에 꺼냈다. 모텔방의 라이터를 찾아 불을 붙였다. 수현은 담배를 깊게 빨더니 입안에 한참을 담고 있다 '후' 하고 뱉었다. 하얀 담배 연기가 나경처럼 흩어져 사라졌다. 나경이 떠난 새벽 바다를 수현은 걸었다. 밤을 지새운 사람들이 해장술을 먹고 있었다. 떠난 나경이 벌써 그리웠다. 붙잡지 못하는 자신이 미웠다. 하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사실이 더욱 그를 비참하게 만들었다. 매주 월요일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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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교육 키즈의 생애8편 나경과 수현은 모텔 앞에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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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 산천
- 진달래 산천 신동엽 길가엔 진달래 몇 뿌리 꽃 펴 있고, 바위 모서리엔 이름 모를 나비 하나 머물고 있었어요. 잔디밭엔 장총(長銃)을 버려 던진 채 당신은 잠이 들었죠. 햇빛 맑은 그 옛날 후고구려적 장수들이 의형제를 묻던, 거기가 바로 그 바위라 하더군요. 기다림에 지친 사람들은 산으로 갔어요 뼛섬은 썩어 꽃죽 널리도록. 남햇가, 두고 온 마을에선 언제인가, 눈먼 식구들이 굶고 있다고 담배를 말으며 당신은 쓸쓸히 웃었지요. 지까다비 속에 든 누군가의 발목을 과수원 모래밭에선 보고 왔어요. 꽃 살이 튀는 산허리를 무너 온종일 탄환을 퍼부었지요. 길가엔 진달래 몇 뿌리 꽃 펴 있고, 바위 그늘 밑엔 얼굴 고운 사람 하나 서늘히 잠들어 있었어요. 꽃다운 산골 비행기가 지나다 기관포 쏟아 놓고 가 버리더군요. 기다림에 지친 사람들은 산으로 갔어요. 그리움은 회올려 하늘에 불 붙도록. 뼛섬은 썩어 꽃죽 널리도록. 바람 따신 그 옛날 후고구려적 장수들이 의형제를 묻던 거기가 바로 그 바위라 하더군요. 잔디밭에 담배갑 버려 던진 채 당신은 피 흘리고 있었어요. ---------------------------------------------------------------------- 이 시는 빨치산 사람들 이야기이다. 나는 등단하기 전 대학 1년 때나 되었을 때 이 시를 접했다. 그때만 해도 그냥 전쟁의 한 모습이려니 했는데 시를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하면서 이 시는 빨치산 이야기를 쓴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숨막힌 긴장과 처절했던 시대의 빨치산 이야기를 가장 서정적이고 아름답게 그려낸 최고의 수작이라고 스스로 평가했다. 언젠가 신동엽 문학관에서 그의 유물을 보니 시인은 암벽까지 했던 등산 마니어였던 것 같았다. 내가 3,40대에 전교조나 여순항쟁, 생명평화결사 등의 사회단체 활동을 하며 바쁘게 살던 때에도 꾸준히 지리산에 올랐던 것은 빨치산에 대한 궁금함과 인간적 연민 때문이었다. 그들의 삶에 가까이 접근하면서 그 연민은 존경으로 바뀌게 되었다. 그들은 당시의 사회적 화두였던 통일의 상징적인 전사였고 이후 옥살이 하며 20~40년의 수행을 하고 나온 장기수 어른이었기 때문이다. 그분들의 겸손한 인품을 접하며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지리산 털진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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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 산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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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바람꽃
- 「섬진강 편지」 -너도바람꽃 눈 녹은 숲이 선수들 준비운동으로 소란스런 체육관이다. 쉭쉭 잽을 날리는 바람 소리, 엇둘 엇둘 트랙을 도는 소리, 타다닥 타다닥 줄넘기 소리로 활기차다. 너도바람꽃, 안개비 내리는 숲에 별 몇 개 내려왔다. 내일이면 친구별들도 우르르 내려오겠지! ........................................................................................... 너도바람꽃(Eranthis stellata Maxim.) 학명의 Eranthis의 er은 봄(春), anthis는 꽃(花), stellata는 별 모양, 별 모양의 봄꽃입니다. 이름 앞에 접두어 '나도'나 '너도'가 붙은 꽃이름은 원래는 다른 분류군에 속하지만 비슷하게 생겼다고 붙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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