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6-15(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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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늘
    바늘 김 경 옥 쇠를 갈고 남은 몸이다 매끈한 은빛 몸매 뾰족한 침 끝, 더는 아무것도 없다 저 침에 닿을 때까지 사방 팔방 십이방 모서리 없어지고 이웃마저 사라질 때까지 얼마나 제 몸을 깎아냈을까 이 악물고 덜어내어 물러설 수 없는 절벽에 이르렀을까 갈고 닦는 일의 무한함이여 깎고 덜어내는 일의 은은한 아픔이여 가는 몸속에서 들리는 소리 하나에 기울이며 작은 귀 하나만 열어놓은 세월이여. --------------------------------------------------------------- 죽을 때까지 배우는 것이 사람의 일이라는 말은 그저 지식을 말하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사실 태어나면서부터 자신이 무엇이며 왜 존재하고 있으며 이 세상은 또 무엇인가 하는 궁극적 질문을 안고 사는 존재다. 세상을 살아내는 일의 첫 번째가 나의 존재와 나를 존재하게 하는 이 세상이 무엇인지를 가늠하는 일일 것이다. 느티나무의 작은 박새 한 마리도 알에서 깨어나 날개를 퍼덕이며 제가 날짐승인지 들짐승인지부터 가늠하고 바람이 불면 어디로 날아야 한다는 것을 눈치 채며 자란다. 그렇게 모든 생명은 구체적 생활세계 속에서 자기 존재와 세상을 일치시켜내는 것이 세상을 살아내는 일인 것이다. 그리고 누구든 그 답을 말하고 죽는다. 태어나 죽기까지의 삶 자체가 스스로의 답일 것이니 그렇다. 다시 말하면 삶에는 정답이 없고 우리는 스스로를 살다가 죽을 뿐이다. (박두규. 시인)
    • 지리산문화
    • 시를 찾아서
    2023-11-13
  • 안개 유감
    「섬진강 편지」 -안개 유감 2023년 10월 22일 안개, 10월 23일 안개, 10월 24일 안개, 10월 25일 안개, 10월 26일 안개, 내리 닷새 아침 안개가 점령군처럼 구례를 장악했습니다. 안개가 옅은 날은 9시쯤이면 걷히지만 독한 날은 11시가 되어서야 해를 볼 수 있습니다. 섬진강과 서시천, 그리고 지리산 골짜기 아래마다 하나씩 있는 저수지들이 봄가을이면 구례를 안개의 마을로 만듭니다. 구례로 이사를 와서 8년이 지나고 나서야 안개의 심각성을 깨닫게 되었다. 구례 사람이면 다 알고 있는 안개의 피해를 모르고 아침마다 안개 예찬론을 펼쳤으니 얼마나 철부지로 보였을까요! 봄, 가을이면 일조량이 현저히 부족하고 습도가 높아 농작물들은 병에 취약하고 강마을 노인들은 기관지, 천식 등으로 고통을 받는답니다. 오죽하면 안개를 피해 산동으로 이사를 가려고 하겠느냐는 이야기도 들립니다. 그런데 최근에 지자체가 유치 신청한 양수발전소가 건설되게 된다면 구례는 그야말로 안개공화국이 되고 말겠지요. 섬진강댐보다 큰 규모의 댐이 2개나 들어선다면 1년 내내 안개에 시달리지 않을지 걱정입니다. 거기다가 양수발전에 부족한 물은 섬진강에서 끌어 쓰게 된다니 그렇지 않아도 바닥으로 겨우 기어가는 섬진강물은 더 마를 것이고 가둬둔 물을 흘려보내게 되면 섬진강 하류의 오염은 뻔하지요. 구례는 지리산과 섬진강이 만들어 내는 때 묻지 않은 풍광들이 있어 귀촌자들이 선호하는 지역입니다. 귀촌 인구가 감소 추세인 최근에도 705명(2022년, 구례군 자료)이 귀촌했을 정도로 구례는 3년간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나를 포함한 구례지역 귀촌자들의 특성은 주로 자연환경을 중시하는 사람들로 최근 우리 마을에 7명의 젊은이가 이사를 왔는데 다들 구례의 천연 풍광에 매료되어 온 친구들입니다. 진정 애향 애민의 위정자들이라면 국비 1조 원이란 곶감으로 지역민들을 현혹하지 말고 “자연으로 가는 길, 구례”의 본심을 잊지 않도록 고심해야 할 것입니다. 댐이 들어서면 어떠한 결과를 초래하는지 알 수 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잠시만 시간을 내어 30여 년 전에 댐이 건설된 순천 주암댐 주민들의 호소를 들어보시라! "자욱한 안개에 폐암까지"‥주암댐 주민 피해 호소 https://ysmbc.co.kr/article/d4H__7afKF797La-l
    • 지리산문화
    • 섬진강 편지
    2023-10-27
  • 겨울 산에서
    ■ 시 겨울 산에서 이건청 나는 겨울 산이 엄동의 바람 속에서 꼼짝도 못하고 서서 겨울밤을 견디고 있는 줄만 알았다. 겨울 산 큰 그늘 속에 빠져 기진해 있는 줄만 알았다. 겨울 산 작은 암자에 며칠을 머물면서 나는 겨울 산이 살아 울리는 장엄한 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는 대개 자정을 넘은 시간에 시작되곤 했는데 산 아래, 한신계곡이나 칠선계곡 쪽을 지나 대원사 스쳐 남해 바다로 간다는 지리산 어느 골짜기 물들이 첫 소절을 울리면 차츰 위쪽이 그 소리를 받으면서 그 소리 속으로 섞여 들곤 하였는데 올라오면서 마천면 농협 하나로마트 지나 대나무 숲을 깨우고 산비탈, 마천 사람들의 오래된 봉분의 묘소도 흔들어 깨우면서 골짜기로 골짜기로 올라오는 것이었다. 오를수록 그 소리는 점점 더 곡진한 하모니를 이루는 것이었는데 산 중턱을 넘어서면서 홍송들이 백 년, 이 백년씩 그들의 가지로 서로의 어깨를 걸친 채 장대한 비탈을 이루고 있는 곳까지 와서는 웅장한 코러스가 되는 것이었다. 그 소리는 내가 사순절의 어느 날, 대성당에서 들었던 그레고리 찬트의 높은 소절과 낮은 소절이 번갈아 마주치는 어느 부분과 같았다. 이따금 이 산에 사는 산짐승들이 대합창의 어느 부분에 끼어들기도 하는 것 같았는데 그때마다 그레고리 찬트 속에서 짐승들의 푸른 안광이 빛나곤 하였다. 겨울 산이 울려내는 대합창이 온 산을 울리다가 서서히 함양 쪽으로 잦아들 때쯤 건너 쪽 지리산 반야봉, 제석봉의 윤곽도 밝아오는 것이었는데 날이 밝고 산의 윤곽들이 선연해지면 자작나무도 굴참나무도 그냥 추운 산의 일부로 돌아가 원래의 자리에 가지를 늘어뜨리고 서는 것이었다. 그냥 겨울 산이 되어 침묵 속으로 잠겨드는 것이었다.
    • 지리산문화
    • 시를 찾아서
    2023-02-26
  • 지리산 법화종주
    「섬진강 편지」 -지리산 법화종주 천왕봉,제석봉,연하봉,촛대봉,영신봉,칠선봉, 덕평봉,형제봉,삼각봉,명선봉,토끼봉,삼도봉 2박 3일, 지리산 품으로 출가를 했습니다 40km 지리능선 수많은 봉우리를 오르내린 수행길 절뚝이며 휘청이며 30시간을 걸으며 우리네 삶도, 사랑도 이렇게 숱한 봉우리를 오르내리며 깊어지는 것임을 온몸으로 배웠습니다. 폐절제 수술 3년이 지나고 망설이던 지리산 종주까지 무사히 마치고 나니 폐가 잘려 나간 자리에 새로운 기운이 차오르는 것 같습니다. 넘어지면 손잡아 주고 가파르면 끌어주고 카메라 짐을 나누어지어 준 지리산사람들 길동무님들이 있어 힘들다는 겨울 지리산 종주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마칠 수 있어 참 행복했습니다. 고맙습니다. 모두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섬진강 /김인호 *지리산 법화종주 ; 법계사에서 화엄사까지 오는 종주길
    • 지리산문화
    • 섬진강 편지
    2023-01-26
  •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문학의 길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문학의 길 -‘단순 소박한 삶’을 지향하는 문학 박 두 규 (시인) 1 코로나 국면을 맞고 보니 그동안 꾸준히 거론되어 오던 기후변화에 따른 전 지구적 위기라는 것이 코앞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변화의 급물살을 타고 있는 현실 세계에서 문학은 무엇인가를 다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동안 우리는 문학에 대하여 다양한 관점에서 다양한 논의를 해왔지만 지금의 현실상황을 보면 ‘지구 위기, 인류의 위기’라는 관점에서 문학을 다시 한 번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음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문학도 과학이나 기술처럼 현실에서 우선적으로 ‘지구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실천적 삶 문학에 일정 부분 복무해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래도 문학은 문학대로 지금껏 확장해온 영역이 있고 인류사 속에서 다양하게 그 역할을 해왔으며 또 어떤 특별한 상황 속에서는 그 상황에 맞게 대응해왔기 때문에 지금처럼 그렇게 하면 된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문학이 상상력의 문학이고 영적 문학이라는 점과 ‘지구의 위기, 인류의 위기’의 현실에 대한 복무를 받아들인다면 앞으로 100년의 지구, 100년의 인류를 염두에 두며 글을 통해 더 세밀하게 그려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현재의 과학과 기술보다 100년의 현실을 앞서 이야기하고 노래하며 올바른 방향의 길을 찾는 더듬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2 요즘 쏟아져 나오는 학자들의 글들을 읽어 보면 기후 환경으로 인한 지구의 위기 상황은 현실의 감도보다 훨씬 심각하다. 지금 우리가 해마다 역대 기록을 갱신하며 겪는 자연재해는 단순한 재해가 아니라 대량학살의 위기이며 재앙의 시작이라고 봐야 옳다는 것이다. 인류가 자본주의 문명의 현행 기조를 고수할 경우 2100년에는 탄소배출량으로 인해 지구의 기온이 약 4도 이상 상승한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북극의 빙상은 이미 붕괴된 지 오래고 알프스의 만년설은 70% 이상 녹으며 해수면은 최대 2.4미터 상승할 수 있다고 한다. 인구 천만의 자카르타 같은 도시가 물에 잠기며 세계의 주요도시는 거의 2/3가 해안에 위치해 있으니 그에 따른 발전소, 항구, 농경지 등 주요시설도 함께 위험해질 것이다. 그리고 적도 지방의 주요 도시들은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으로 변한다고 한다. 이미 2018년 폭염 시에 로스엔젤레스 42도, 파키스탄 50도, 알제리 51도에 이르렀다. 그리고 물 부족과 폭염으로 북위도 지역마저도 해마다 수천 명이 죽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21세기가 끝날 무렵이면 코로나와 같은 새로운 질병들, 상상을 초월하는 산불과 홍수의 증가, 수천만 명에 이르는 기후 난민, 경제 대공황과 지역 간의 기후분쟁, 농산물 생산이 크게 줄면서 일어나는 자원전쟁 등 한 해 기준 100조 달러의 세계 피해규모가 예상된다니 앞으로 80년 안에 변화될 지구의 모습을 쉽게 상상해볼 수 있다. 물론 이것은 지금의 자본주의적 개발과 소비 패턴에서 조금도 변화하지 않고 그대로 진행되었을 경우를 전제로 한 것이다. 그리고 이제 코로나19가 해결된다 해도 이전의 시절로 돌아가 예전의 일상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지구와 인류는 이미 변화의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고 새로운 문명이 일어나는 시점이 되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제 기존의 자본주의를 토대로 이루어낸 과학기술문명, 물질문명의 틀에서 벗어나 이전의 의식에서 한 단계 점핑된 도덕적 과학기술과 새로운 정신문명으로의 판짜기 변화가 절실해진 것이다. 그래서 문학은 현재 소비와 개발성장의 자본문명에서 전환하여 인간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켜 갈 것인가를 이야기해야 된다. 포스트 코로나를 맞아 변화되어야 할 의, 식, 주, 의료, 교육 그리고 정치, 경제 등 모든 분야에서까지 기존의 질서와 그 틀을 어떻게 바꿔가야 할 것인지를 이야기해야 할 것이다. 문학은 이 현실 변화의 중심에서 어떤 마음, 어떤 영혼을 가진 인간이어야 하는 것을 그려내야 하는 것이다. 3 지금껏 지구와 인류의 위기를 초래해온 자본문명을 벗어나 새로운 문명을 꿈꾼다면 먼저 기존의 자본주의적 가치관과 세계관 등 일상 속의 대중들에게도 정신적 변화가 있어야만 한다. 생각이 바뀌어야 그 삶이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본질적으로 인간의 욕망과 탐욕이 정제 없이 그대로 반영된 이데올로기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고 빠르면 빠를수록 좋고 그렇게 이익을 극대화하며 개발과 성장의 경제논리로 앞만 보고 달려온 것이 자본주의다. 자본은 배고픔과 위험한 환경 조건에서 풍요로움과 안전함과 편리함을 가져다준 것은 사실이지만 이제는 그 도를 넘어 인간의 끝없는 탐욕의 영역으로 들어선 것이다. 그렇게 인류는 풍요와 편리를 거느린 현실 자본주의를 앞세워 공존공생을 위한 사회적 도덕과 윤리의 경계를 깨고 탐욕과 욕망을 당연하고 정당한 인간 정서로 편입시켰다. 단순하게 이야기 했지만 사실 이런 인간의 욕망과 탐욕이 자본주의와 잘 어울려 끝없이 달려온 결과 현재의 지구와 인류의 위기를 맞았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한 개인의 인간도 그 탐욕이 지나치면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처럼 반성과 성찰을 통해 스스로 변화하지 않으면 인류는 21세기가 끝나는 지점부터는 지금으로는 상상하기 힘든 혹독한 대가를 지불하면서 사피엔스의 종말을 향해 추락해 갈 것이다. 그래서 문학예술은 지금의 시점에서 좀 더 집중적으로 21세기 이후의 현실을 생각하고 그것을 위한 새로운 문명, 새로운 문학예술에 복무해야 한다는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이러한 자본문명에 대응하는 문학을 생각하려면 자본주의의 속성인 탐욕을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철학, 새로운 문화를 궁구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리고 그 ‘새로움’은 어쩌면 삶의 본질과 모든 생명을 아우르는 총체적 근원으로부터 오는 것이어서 그것은 현실 자본주의를 벗어나 근본 진리의 삶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본래 모든 생명들은 함께 어울려 조화를 이루는 하나의 공존공생의 공동체적 존재라는 것과 그것을 위해 인간은 가장 경계해야 할 본성인 ‘탐욕’을 꾸준히 정제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4 나는 이것을 문학이라는 영역에서 생각한다면 ‘단순 소박한 삶을 지향하는 문학’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는 ‘단순한 삶’과 ‘소박한 삶’을 하나로 추구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은 것인데 ‘단순한 삶’의 문학은 개인 스스로를 전체의 한 부분이면서, 그렇기 때문에 전체라는, 그래서 전체를 위하는 것이 나를 위하는 것이라는, 이미 붓다나 예수 등 많은 현자들이 발견했던 동체대비, 궁극과의 합일 등 진리의 삶과 연계되어 있는 것이며 이를 현실로 가져오기 위한 문학을 말한다. 이는 ‘단순성’이라는 진리의 영역을 문학으로 가져오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덧붙이자면 진리는 우리를 자유롭게 하며, 누구나 이해할 수 있고 누구나 실현할 수 있는 ‘단순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진리의 삶은 당장 그렇게 살려는 스스로의 결단과 실천만 있으면 되는 ‘단순성’에서 시작한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진리에 의해 사는 삶’은 어떤 거창한 것은 아니고 현재의 실상을 바로보고 그것에 어긋남 없이 사는 것, 다시 말하면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삶을 사는 것이라고 말한다. 삶의 실상은 모두가 있는 그대로 어울려(연기적 관계를 가지고) 전체가 하나의 생명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며, 그렇게 있는 그대로(본질 그대로) 어울려 순환하고 진화하는 것이 바로 ‘단순한 삶’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자본주의 물질문명의 변곡점에서 문학이 주시해야 할 중요한 화두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와 함께 ‘소박한 삶’은 이런 ‘단순한 삶’을 현실로 가져오기 위한 방법이라고 볼 수 있다. 아니, 사실은 방법이면서 그 본질이기도 하다. 자본주의를 진화시켰던 인간의 탐욕은 끝없는 집착을 가져와 현재 지구의 기후재앙과 함께 모든 문제의 화근이 되었고 이 탐욕과 집착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소박한 삶’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탐욕을 충족시키기 위한 자본의 끝없는 성장 시나리오는 이제 그 한계에 왔다. 대체 에너지 등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많은 과학기술의 노력과 성과가 있다하더라도 인간의 끝없는 탐욕을 충족시킬 수는 없다. 결국은 소박한 삶으로 가지 않으면 해결 될 수 없는 것이다. ‘소박한 삶’은 스스로의 탐욕을 다스리는 삶이고 우리 사회의 대립과 갈등을 조화와 균형으로 이끄는 해답이라고 본다. 이‘소박한 삶’을 통해 모든 생명과 지구가 하나의 완결체로 존재할 수 있는 공존, 공생으로 가는 길을 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본주의 문명을 극복하고 새로운 문명의 길로 가는 길목에 이러한 물질 중심의 삶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가치관을 세우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이런 변화의 물꼬를 트기 위해 ‘단순 소박한 삶을 지향하는 문학’을 생각해 보는 것이다. 이 문학적 화두를 통해 개인의 이기(利己)를 극복하고 무아(無我)와 탈에고(脫ego)의 수준까지 의식을 확장하여 탐욕을 순치(順治)하는데 기여해야 하는 것이 현재의 문학이라고 생각하며 그것이 코로나19와 같은 새로운 질병들과 지구의 기후재앙을 막는데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첫눈이 내린 노고단
    • 지리산문화
    • 지리산 편지
    2022-12-16
  • 다퍼강
    「섬진강 편지」 - 다퍼강 진안 데미샘에서 광양 망덕포구까지 550리 맑은물길 곱디고운 모래로 유명하여 섬진강 옛 이름은 다사강(多沙江)이었다. 반짝 반짝 은빛모래를 바지게나 소달구지로 퍼내던 옛적은 그야말로 소꿉장난이었다. 요새는 *일각수가 덤프트럭을 거느리고 들어와 며칠만 퍼내도 거대한 모래산을 쌓는다. 이 고운 모래를 안 퍼가는 놈만 병신이라 앞 다투어 이 놈 퍼가고 저 놈 퍼가고 경상도 것이 퍼가고 뒤질세라 전라도 것이 퍼갔다 그래도 양심이라는게 쬐끔 남았던지 2004년에는 섬진강길 11개 시군 대표들이 ‘섬진강 환경협의회’라는 것을 만들어 섬진강 모래를 더 퍼냈다가는 큰일 나것다 인자 더 이상 섬진강 모래 퍼내지 말자고 도장을 찍었다 옛 모습은 되찾을 수는 없지만 흰모래가 조끔씩 쌓여 가는가 싶었는데 어느 손모가지가 근질거려 참을 수 없었던지 협약이고 나발이고 또 퍼내기 시작한다. 수해침수 복구 명분으로 이 놈이 먼저 퍼내기 시작하니 저놈도 달라든다. 여름에는 아랫동네서 퍼내더니 가을에는 가운데 동네서 퍼낸다. 윗동네는 가마니라서 가만히 있을까 모래가 많아 이름이 다사강이었으나 이 놈 퍼가고 저놈 퍼가서 모래 씨가 말라가는 다퍼강, 훗날 섬진강의 이름은 다사강이 아니라 다퍼강이라 불리겠구나 *일각수 : 뿔이 하나 달린 괴물이라 뜻으로 법정스님이 포크레인을 지칭한 이름
    • 지리산문화
    • 섬진강 편지
    2022-11-20

실시간 지리산문화 기사

  • 3박 4일의 긍정 에너지
    3박 4일의 긍정 에너지 한때 온 세상 사람들이 코로나19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위리안치의 벌을 받게 되었다. 누군가 그랬지. 인간의 행복감은 자기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사회적 관계성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나는 이런저런 사회적 활동이 줄어들면서 단조로운 일상 속에서 조금 따분해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두 후배의 연락을 받았다. 제주도에 함께 가자는 것이었다. 나는 앞뒤 잴 필요도 없이 숨통을 트일 수 있는 이 제안을 덥석 받았다. 그런데 문제는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자전거 라이딩이라는 거였다. 3박 4일 동안 자전거를 타고 제주도를 한 바퀴 돌자는 것인데 그 보기 민망한 복장에 헬멧을 쓰고 서툰 자전거를 타고 가는 모습을 상상하니 아찔했다. 그래도 그나마 위안이 된 것은 ‘여순 10.19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몸자보를 하고 제주 4.3과 어울려 보자는 말이었다. 이런 명분과 작금에 처한 내 심정을 생각하면 이런저런 걸 따질 이유가 없었다. 제주 4.3이나 여순항쟁은 사실 그 뿌리가 같은 사건이니 어쩌면 ‘여순 특별법 제정 촉구’를 위한 제주일주는 생각보다 큰 의미가 있는 일이었다. 제주 4.3으로 여순항쟁이 비롯되었다고는 하나 모두 분단을 거부하고 통일조국을 위해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한 봉기였으니 그 역사는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역사인 것이다. 좋다! 코로나19로 인해 막혀버린 숨통을 제주에 가서 시원하게 뚫고 오자. 그렇게 여행은 시작되었다. 첫날 제주는 내 들뜬 마음을 비바람으로 잠재워 주었다. 여수공항에서 출발할 때만 해도 괜찮던 날씨였는데 제주에 도착하여 자전거를 대여할 때부터 비가 오기 시작했다. 나름대로 비옷을 준비하기는 했으나 점심 먹고 시작한 자전거 타기는 오후 내내 맞은 비바람으로 속옷과 운동화까지 쫄딱 젖어 페달을 열심히 밟는데도 손이 저려오고 추워서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결국 당일 목표한 곳에 미치지 못하고 애월읍에서 하룻밤을 청해야 했다. 이튿날은 언제 그랬냐는 듯 날씨가 쾌청했다. 비가 내린 뒷날이어서 그런지 제주의 바다가 보여주는 청량감은 어제의 힘들었던 시간을 고스란히 보상받고도 남았다. 끝없이 펼쳐지는 바다의 수평으로부터 오는 평온함과 안정감으로 그동안 흐트러진 정신의 무게중심이 제자리를 찾는 것 같았다. 서툰 자전거 타기도 잘 적응해서 페달 밟을 때 허벅지 근육의 수축과 이완에서 오는 기분 좋은 탄력을 느낄 수 있었다. 자전거 타는 일이 힘들다는 생각보다는 바다를 바라보며 달리는 즐거움이 더 크게 와서 모든 것이 기쁨으로 왔다. 오늘 하루라는 시간의 기쁨이 극대화되어 과거나 미래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온몸에 긍정 에너지가 가득 차오르는 느낌을 오랜만에 맛보니 눈앞에 펼쳐지는 세상이 너무 아름답고 사랑스러웠다. 얼굴을 스치는 바람과 먼 수평선, 현무암에 부딪히는 하얀 파도 소리 그리고 같이 달리는 두 후배까지 나를 감싸고 있는 현재의 시간과 상황 모든 것이 너무 고맙고 소중하게 다가왔다. 마지막 날 처음 출발지였던 제주시의 용두암으로 돌아와 제주 일주 인증 센터에서 인증 수첩을 받았다. 펼쳐보니 234km를 달렸고 내가 4,083,491번째 제주도 자전거 일주를 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구체적인 기록이 주는 묘한 느낌, 무엇으론가 명확하게 분류되고 소속되어지는 느낌, 이것은 평소에 그다지 좋게 생각하는 느낌은 아니었다. 스스로가 어떤 부류로 특정하게 규정되는 것이 싫었던 것인데 이번에는 좀 달랐다. 단순히 어떤 숫자의 기록이 아니라 그 속에는 제주라는 아름다운 공간이 내준 너무나 고맙고 소중했던 시간과 상황 모든 것이 고스란히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저 3박 4일로 자전거를 탔을 뿐이지만 삶의 긍정 에너지를 몸소 체험한 한 생의 귀한 날들이었다.
    • 지리산문화
    • 지리산 편지
    2024-06-08
  • 집짓기
    집짓기 김 영 언 집을 짓는다 허공에 벽을 둘러치고 길을 막고 하늘을 가린다 바람의 길이었으나 구름의 정원이었으나 하늘을 덮고 서서 자는 벚나무의 잠자리였으나 욕망의 높이만큼 견고하게 구획을 짓고 나무의 잠을 쓰러뜨린다 이 세상 잠시 꿈의 밀실을 꾸미기 위해 층층이 벽돌을 쌓아 올린다 지상을 밀어 올려 구름 같은 삶을 세웠으나 비로소 허공을 차지하였으나 저 멀리 흰 구름 흩어지는 것도 모르고 눈을 가린다 ---------------------------------------------------------------------------- 위의 시처럼 우리는 ‘허공에 집을 짓는다.’ 바람의 길이나 구름의 정원 그리고 벚나무의 잠자리를 빼앗아 허공에 집을 짓는다. 많은 시들에 등장하는 ‘집’이라는 시어의 의미망 속에는 ‘존재의 근원’을 가리키는 것들이 많다. 우리는 ‘나’라는 존재를 짓기 위해 자연의 균형을 깨고 우주의 순환 질서를 거스른다. 하지만 그것은 허공에 집을 짓는 것처럼 존재의 거처로서는 부질없고 허망한 것일 뿐이고 시에서 말하는 것처럼 이 세상에 와서 잠시 ‘꿈의 밀실’을 꾸미기 위한 것이지 본질에서 벗어난 삶이라는 것이다. 탐욕의 본질을 참으로 적절하게 형상화하고 있다. (박두규. 시인.)
    • 지리산문화
    • 시를 찾아서
    2024-06-08
  • 사포마을 다랭이논
    「섬진강 편지」 -사포마을 다랭이논 인류 역사상 가장 뜨거운 지구, *폭염으로 인한 사망자가 5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그야말로 '폭염살인'의 시작이다. 백두대간의 숨구멍, 지리산의 숨통, 구례의 허파, 모내기가 끝나가는 산동 사포마을 다랭이논을 바라보니 큰 숨이 절로 쉬어진다. -섬진강 / 김인호
    • 지리산문화
    • 섬진강 편지
    2024-06-03
  • 5월, 지리산의 보물들
    「섬진강 편지」 -5월, 지리산의 보물들 지리주능선의 천왕봉, 반야봉, 영신봉, 노고단, 그리고 서북능선의 고리봉까지 지리산 구석구석의 꽃들을 찾아 5월에만 약 60k의 산행을 했습니다. 지난해 펴낸 '구례의 들꽃', 야생화 도감 보완을 위해 새로운 들꽃들을 찾아 나서는 길에서 꽃들을 만나는 기쁨도 좋았지만 수술 후 가졌던 장거리 산행에 대한 걱정을 덜어낸 것 같아 좋습니다. 5월에 만나 인사 나눈 지리산의 보물들입니다. -섬진강 / 김인호 #기생꽃 #지리개별꽃 #지리괴불 #지리반하 #한라새둥지란 #자주솜대 #설앵초 #약난초 #두루미천남성 #복주머니란 #나도옥잠화 #자란초 #두루미풀 #겹미나리아재비 -복주머니란 -큰앵초 -함박꽃 -지리개별꽃 -자란초 -나도옥잠화 -나도개감채 -노루삼 -두루미천남성 -금강애기나리 -꽃황새냉이 -눈개승마 -숙은처녀치마 -지리개별꽃 -동의나물 -금괭이눈 -지리괴불 -은방울 -약난초 -겹미나리아재비 -세잎종덩굴 -두루미풀 -자주솜대 -기생꽃 -지리반하 -한라새둥지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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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섬진강 편지
    2024-06-02
  • 지리산 구층암 차 따는 날 2024
    지리산 구층암 차 따는 날 2024 00:00 인트로 00:00 찻잎 수확 전 차담 00:32 지리산 야생차밭에서 찻잎 수확 00:55 음지와 양지에 있는 찻잎의 크기 비교 02:07 2024년이 예전과 다르게 느껴지는 부분 04:44 이산혜연선사 발원문 06:33 대나무 순을 먹는 멧돼지
    • 지리산문화
    2024-05-28
  • 아기새 첫 나래짓
    「섬진강 편지」 -아기새 첫나래짓 할 수 있어, 할 수 있어 어미새의 응원에 힘을 내어 오전 내내 망설이던 아기새가 한순간 플라타너스 둥지를 박차고 힘껏 날아올랐습니다. 떨어질 듯 위태로웠지만 무사히 첫 비행을 마치고 산수유나무에 앉아 숨을 고르는 아기 후투티 몸짓 하나하나 숨죽여 지켜보는 내내 생명의 신비로움이 전해옵니다. -섬진강 / 김인호 *첫 비행을 마치고 잠시 숨을 고르는 후투티아기새 표정들 #후투티 #이소 #아기후투티 #아기새 #반야원 #구례플라타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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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23
  • 두루미천남성
    「섬진강 편지」 -두루미천남성 이름을 부르면 ‘첫남성’으로 들려 들꽃 출사지에서 하하호호 웃음을 주는 천남성, 숲속에서 흔하게 만날 수 있는 천남성이지만 '두루미천남성'은 쉽게 볼수 있는 녀석은 아닙니다. '두루미천남성'은 산림청 지정 멸종위기의 희귀식물입니다. 다행히 지리산둘레길에서는 여기저기 보이니 숲길을 가면 이름을 불러보세요~~. 꽃의 모습은 뱀이 머리를 치켜든 것처럼 보여 사두초(蛇頭草)라 불리기도 하고 잎이 날개를 편 두루미를 닮았다고 해서 '두루미천남성'이라 불립니다. 옛날엔 사약으로 이용됐을 만큼 강한 독성을 가지고 있지만 독을 잘 다스려 약재로 많이 쓰이는 식물이기도 합니다. 만지면 알러지 반응을 일으킬 수도 있다니 조심하시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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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13
  • 풀냄새
    「섬진강 편지」 -풀냄새 산이와 마을 앞 들길 산책을 나갔다가 빗발에 쫓겨 서둘러 돌아오는데 현덕이네 밭에서 풀냄새가 진동한다. 감나무밭 무성했던 풀을 금방 베었나보다. 비염이 있어 냄새를 잘 맡지 못하는데도 풀냄새가 온몸 가득 번진다. 그래서 가득한 것을 ful이라 부르나 보다. 그 어느 향보다 진하게 번져오는 풀냄새, wonderful, *지리산 야생화 / 나도옥잠화 해발 1000m 이상의 고산지역에 자라는 종으로 천왕봉 오르는 길에서 뜻하지 않게 만났다. 20여 곳 이상의 자생지가 있으나 개체수는 많지 않다. 기후변화에 따른 자생지 환경의 악화가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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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11
  • 후투티 육추
    「섬진강 편지」 -후투티 육추 후투티라는 말도 육추라는 말도 처음 알았다 지난해, 구례 화엄사 가는 길목에 있는 ‘플라타너스’ 카페 그 카페의 상징인 플라타너스 나무 둥지에 인디언추장새라는 후투티가 둥지를 틀었으니 사진을 담아보라는 우두성선생님의 말을 듣고 가서 보았다 참 특이한 새였다. 머리깃이 인디언추장의 머리깃과 똑 닮았다 인디언추장새라는 애칭을 정말 잘도 지었다. 몇 번 들락거리면서 둥지 안에서 다 자란 새끼들이 날개를 펼치고 창공을 날아오르는 모습까지 보았었는데 반갑게도 올해 다시 그 자리에 알을 낳아 새끼를 키우고 있어 많은 이들에게 기쁨을 주고 있다. 이른 아침 플라타너스 나무 그늘에 카메라를 설치해 놓고 후투티 부부를 지켜보았다. 쉴 새 없이 먹이를 물어와 새끼에게 주고 가는 새들을 지켜보다 지금은 아니 계신 부모님 생각이 났다. 땅에 엎드려 한평생 자식들 뒷바라지에 허리가 굽었던 어머니아버지 날이 마침 어버이날이라 그렇겠지 새들이 다시 먹이를 찾아 날아가는 서쪽 하늘을 한참 바라다본다. * 육추育雛 : 알에서 깐 새끼를 키움 ** 후투티 : 유럽과 아프리카의 남부, 아시아의 남동부에 있는 야산에 주로 분포한다. 한국에서는 여름에 중부 이북 전역에서 발견할 수 있지만 흔하지는 않다. 길고 아래로 휜 부리를 땅속에 찔러 넣어 나비, 파리, 꿀벌, 딱정벌레, 거미와 같은 곤충류와 소형 무척추동물을 잡식으로 잡아먹는다. 낮은 위기의 멸종위기 등급에 속한 동물로 개체수 보호가 필요하다. -섬진강 / 김인호 후투티 동영상 보기 -> https://youtu.be/Bfg7MtAf0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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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9
  • 단 한 명을 위한 간이역 콘서트
    단 한 명을 위한 간이역 콘서트 ‘율촌역’이라는 곳이 있었다. 지금은 폐쇄된 율촌역은 전국의 12개 역사(驛舍)와 함께 문화재청에 의해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한다. 1930년 전라선이 개통되면서 만들어졌고 폐쇄되기 직전에는 열차가 하루에 2번 쉬었던 곳, 하루 열차 이용자가 다섯 손가락을 넘지 못했다는 초라한 간이역, 폐쇄일이 통보된 그날 그곳 역 마당에서 시노래 콘서트가 있었다. 그것은 지역의 이름 없는 가수와 시인 그리고 자발적으로 참여한 사람들이 하는 하나의 기도 같은 거였다. 작고 초라하고 소멸되어가는 것들을 위한 기도를 시와 노래로 하는 콘서트였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행사가 아니었기에 우리는 노을이 지는 주위의 편안한 시골 풍경과 잘 어우러질 수 있었다. 이 콘서트는 근대가 형성되고 현대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소멸되어 온 것들에 대한 레퀴엠에 다름 아니었다. 과학의 축적과 함께 근대가 진행되면서, 사과가 떨어지거나 강물이 흐르는 모든 자연현상을 수학적으로 계산해내고, 그 계산을 통해 자연을 착취하는 가운데 꾸준히 도태되어온 것들, 작고 힘없고 화폐가치로 환산이 안 되는 것들, 첨성산의 도롱뇽 같은 것들, 이 간이역처럼 끝내는 사라져야 할 것들, 그리고 또 그것들과 똑같은 처지의 사람들까지, 이 소외되고 소멸되는 것들을 위한 콘서트는 간이역 너머의 노을빛만큼이나 아름답고 슬펐다. 나는 이 콘서트가 진행되는 동안 우리가 삶 속에서 꾸준히 잃어온 ‘가여워하는 마음’을 생각했다. 누군가, 무엇인가 그 대상과의 관계라는 것은 그가 가지고 있는 상대방의 ‘가여움’을 볼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우리 몸의 어느 구석에 힘겹게 숨 쉬며 남아있을 사랑의 마음, 자비의 마음이 바로 그 ‘가여워하는 마음’이 아니겠는가. 나는 내게서 버려진 안쓰러운 나를 가까스로 돌아볼 수 있었다. 콘서트의 막바지에 붉은 노을이 지고 막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율촌역에 드디어 하루에 두 번 쉰다는 그 두 번째 기차가 잠깐 멈추고 떠났다. 그리고 그 열차에서 단 한 명의 손님인 작고 꼬부라진 할머니가 내리더니 작은 보따리 하나를 들고 느릿느릿 역사(驛舍)를 빠져 나왔다. 우리는 그 단 한 명의 소중한 관객을 위해 시를 읽고 노래를 불렀다. 할머니 한 명을 위해서 존재할 수 있는 열차, 할머니 한 명을 위해서 열차가 멈추는 간이역, 그리고 할머니 한 명을 위해서 노래할 수 있는 콘서트를 위해서, 근대 이후 줄곧 잃어온 그 ‘가여워하는 마음’을 위하여, 우리는 혼신을 다해 노래했다. "......세상의 작고 가여운 것들의 어머니/ 서로 욕하고 싸우며 스스로 절망하는 것들의 어머니/ 어머니, 따뜻한 저녁밥을 지어놓고 애타게 우리를 찾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노을 속으로 흩어집니다./ 하지만 나는 어머니의 그 따뜻한 목소리에 화답할 수 없습니다./ 아직은 어머니의 품으로 달려갈 수 없습니다./ 그것은 아직도 나는 강남의 아파트가 부러워 보이고/ 누군가가 앞서 나가면 질투를 하고/ 내 자식만큼은 서울대에 들어가기를 바라고/ 가진 자 앞에서는 굽실거리고, 없는 자 앞에서는 우쭐대는/ 그러한 마음 때문입니다./ 세상의 불의와 폭력에는 분노하면서도/ 나의 불의와 나의 폭력에는 한없이 너그럽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머니, 조금만 기다리세요./ 머지않아 세상의 모든 생명들 / 그리고 만나는 누구에게나 고마움의 절을 할 수 있을 만큼/ 내 마음이 충분히 가난해졌을 때/ 그 때 어머니의 부름에 대답하겠습니다./ 따뜻한 밥 한 그릇 지어놓고/ 제가 먼저 어머니를 부르겠습니다./ 저녁노을 붉은 그리움으로 /어머니를 부르겠습니다./ 어머니." (박두규 시「어머니, 때죽나무꽃이 피었습니다」부분) -때죽나무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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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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