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01-2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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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교육 키즈의 생애 4편 "우리는 무슨 사이"
    9월이 왔다. 뜨거운 더위가 살짝 물러섰다. 신입생들의 얼굴엔 고등학생 같은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대학에 돌아갔을 때 나경은 수현을 만났다. 나경이 먼저 수현을 찾아왔다. "수현아, 그동안 잘 지냈어 “너 대학생 되더니 엄청 멋있어졌다.” “너 나 찾으러 우리 과에 왔다면서. 친구들에게 들었어" "네. 수현은 짧게 대답했다.” “어디 갔다 오신 거예요. 선배” “어…. 나. 그냥 잠시 쉬었어.” “몸도 안 좋고....." 나경은 사귀던 남자와 헤어지고 방황했다. 같은 과 운동권 선배였던 남자 친구와 헤어지고 나니 다시 그 선배와 다시 만나는 것이 두려웠다. 다행히 그 선배가 가을에 졸업했다. 나경은 다시 돌아왔다. 나경과 수현은 이후 자주 만났다. 연인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경은 술을 마실 때 수현을 불렀다. 수현은 나경이 부르면 모든 일을 제쳐두고 나경을 만나러 갔고, 수현이 만나자고 하면 나경도 그랬다. 우리 무슨 사이죠? 라고 나경에게 수현이 물었을 때 나경은 친한 사이라고 말했다. 수현은 고백하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관계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나경은 수현이 좋았지만, 세살이나 어린 수현에게 먼저 고백할 수는 없었다. 벚나무의 잎들이 갈색으로 물들어 하나둘 떨어지기 시작했다. 단풍이 점점 진하게 물들었다. 교정의 학생들은 따뜻한 햇살을 찾아 잔디밭에 앉아 있었다. 떨어진 낙엽들이 바람을 타고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풋풋했던 신입생들은 이제 어엿한 대학생처럼 보였다. 학생들이 방학으로 교정은 텅 비었다. 텅 빈 교정엔 눈이 내렸다. 그렇게 가을이 가고 다시 겨울이 왔다. 수현은 겨울 방학 내게 다시 현장에서 일했다. 더운 여름보다 겨울이 수월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일은 더 힘들었다. 컴컴한 새벽에 일어나 현장에 나가면 손발이 꽁꽁 얼었다. 그럴 때면 페인트 깡통에 버려진 나무를 태워 언 발과 손을 녹였다. 연일 영하 10도가 넘나드는 추운 날이 이어졌다. 여름보다 더 힘들었다. 겨울에 수현은 고층 아파트 현장에서 일했다. 현장은 나름대로 체계가 있었다. 수현이 맞은 일은 일명 직영 잡부였다. 여기저기 청소일을 하거나 부족한 일손을 채우는 일이었다. 겨울에 시멘트 양성을 하기 위해 석탄을 가져와 불을 지피는 일도 수현이 해야 할 일이었다. 콘크리트 작업을 한 당일엔 온종일 불을 피워야 했다. 그 날은 야간이나 철야 일도 했다. 그런 날은 기본 일당에 야근 수당에 철야 수당까지 합쳐서 하루 10만 원이 넘었다. 수현을 야간 일이 있을 때마다 지원했다. 학비도 벌어야 하고 생활비도 벌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대학을 그만두어야 한다. 그나마 아침 점심 저녁을 먹는 함바집은 밥 맛이 좋았다. 마음껏 먹어도 되었고 함바집 박씨 아주머니를 수현을 아들 같다면 특별하게 달걀부침을 더 챙겨 주기도 했다. ”젊은 학생이 고생하는구먼…. 울 아들은 지금 군대 갔는데…. “강원도는 여기보다 엄청 춥겠지?“ ” 아드님이 강원도에서 있어요. 거긴 여기보다 5~6도는 더 내려갈걸요?“ ”학생은 군대 안 가나.?“”저는 졸업 하고 가려고요. "아이고. 하루라도 젊었을 때 가야 고생을 덜 하는데….” “그러게요. 세상이 저를 놓아주지를 않네요.” “근데 아주머니 아들은 몇 살이에요? “21살…. 인데…. 아, 그럼 저랑 동갑이네요.” “아…. 그려.” 그 후로 아들과 동갑이라며 아주머니는 수현을 볼 때마다 아들 생각이 난다고 했다. “학생 일 적당히 해” 직영 일은 적당히 해도 돼…. 뭐 반장이 맨날 쳐다보는 것 도 아니고… 끝내야 하는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네. 아주머니 고마워요.” 수현은 아주머니의 아들이 같은 또래라는 것을 알았을 때 혹시 같은 학교를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더 묻지 않았다. 직영이 하는 일은 매일 매일 바뀌었다. 함께 일하는 분들은 대부분 나이가 많거나 기술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같은 현장에서 일해도 철근 반이나 조적이나 목수들은 일당이 2~3배는 되었는데 직영일을 하는 사람 일당이 가장 작았다. 아무 기술도 없는 수현 같은 학생들이나 기술 없이 다른 일을 전전 하다가 현장 일을 나온 사람들이 불려 오는 일이었다. 현장에서도 가장 낮은 일자리였다. 그해 겨울 방학 내내 수현은 하루도 쉬지 못했다. 아파트 준공일이 얼마 남지 않아 현장은 쉬는 날이 없었기 때문이다. 2월 중순이 넘어가자, 아파트 현장에도 따뜻한 바람이 불었다. 수현의 길고 긴 노동일도 끝이 나고 있었다. 나경은 현장에서 일하던 수현을 찾아왔다. 일이 끝나고 수현과 나경은 밤거리를 걸었다. “수현아, 꼭 이렇게까지 일을 해야 해…” “손이 이게 뭐야….”“꽁꽁 얼고 튼 수현의 손을 잡았다.” "정 힘들면 이 누나에게 이야기해. 내가 좀 도와 줄 수도 있는데…. 수현은 별말 없이 걸었다. “선배처럼 부잣집 사람들은 우리 같은 가난한 빈민 출신들의 마음을 몰라요.” “전 빈민 프롤레타리아 출신이라고요. 가진 것도 없고요.” 둘은 함바집으로 행했다. 아주머니 여기 밥 하나 더 주실 수 있죠? 그래. 누구야? 학생 애인인가? “네” “제 여자 친구예요?” “예쁘죠?” “수현아…. 여자 친구는….” “아이고 수현 학생 여자 친구가 왔으니, 오늘은 달걀부침 네 개는 해줘야겠네” “수현이 같은 착실한 남자를 어찌 알아봤을까?” 나경은 수현이 자신을 여자 친구라고 소개했을 때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둘이 정말 사랑하는 사이가 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에서 더 이상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나이도 그렇고 환경도 그렇고 함께 할 수 없을 거라고 나경은 생각했다. “선배 방학 끝나고 봐요!” 나경은 수현과 커피 한잔을 하고 뒤로 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나경은 단 한 번도 돈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나경에게 돈은 흔하고 편한 것이었다. 자신이 사는 큰 집과 부는 어디에서 온 것인가? 수현은 온종일 일을 하고 자신은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걸까? 이런 생각을 잠시 해봤지만, 더 고민하기는 싫었다. 나경과 수현은 역까지 걸었다. 찬바람이 둘 사이를 갈라놓듯이 불었다. 수현은 나경은 손을 잡았다. 따뜻했다. 나경은 손을 놓지 않았다. 얼어붙은 수현의 손을 자신의 코드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깍지를 끼웠다. 둘은 더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다. 20분쯤 걸었을 때 역이 보였다. 역 앞에는 오래전 역 앞에 사람들이 많았을 때 이용했을 것 같은 가게들이 줄지어 있었다. 봉봉, 박카스 같은 선물 상자들이 먼지가 쌓여 있었다. 나경은 저 안에 물건이 들어있기는 한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마도 빈 껍데기겠지…. 나경은 자신이 저 빈 상자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운동권도 아니고 공부를 하는 학생도 아니고 이리저리 방황하는 자신이 먼지에 싸여 있는 빈 상자들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곧 서울행 기차가 도착하겠습니다" 안내 멘트가 나오는 것을 보고 나경은 서둘러 기차를 타기 위애 달려갔다. 수현이 손짓이 보였다. 잘 있어…. 수현아….
    • 지리산문화
    • 연재소설
    2025-01-08
  • 참교육 키즈의 생애 3편 “공사판”
    인기척도 없는 새벽, 수현은 밀려드는 잠을 밀쳐내고 새벽을 열어야 했다. 자취방에 나와 아무도 없는 텅 빈 거리를 걸었다. 아침 대신 담배 한 대를 피웠다. 하얀 연기가 수현을 몸을 돌고 돌아 다시 입으로 나왔다. 수현을 기다리는 봉고차가 멀리 보였다. “야, 뛰어” “네” 수현은 피우던 담배를 손에 쥐고 봉고차에 올랐다. 수현은 여름 내내 공사판에서 일했다. 조적 공 조수를 했다. 벽돌을 쌓으려면 시멘트가 필요하다. 수현은 여름 내내 시멘트와 모래를 비벼 조적 공에게 날랐다. 새벽 5시에 일어나 버스를 타고 집합 장소에 나가면 봉고차가 수현을 실었다. 현장에 나가면 6시 그때부터 오후 6시까지 9시간 일했다. 9시와 12시와 3시 새참과 점심을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 온종일 시멘트나 벽돌을 날랐다. 조공은 수현이 옮긴 벽돌로 벽을 만들고 담을 만들고 집을 지었다. 수현은 오차 없이 올라가는 벽돌이 신기했다. 벽돌과 시멘트처럼 “ 시간이 가면 더 단단해지는 것처럼 자기도 시간이 지나면 더 친밀해지는 누군가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름 현장은 오후가 되면 30도가 넘었다. 공사장 안으로 뜨거운 사우나 한증막처럼 변했다. 하지만 물러설 곳이 없었다. 이런 날씨라도 집회를 하고 있다면 신이 날 수현이었지만 오전 내내 땀이 폭포처럼 흘러내려 더 이상 수분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마른 송장 같은 몰골을 한 수현은 점심을 먹고 나면 현장 아무 곳에서나 쓰러져 잠을 잤다. 이렇게 낮잠이라도 자지 않으면 버틸 수 없었다. 수현은 손은 시멘트 독이 올라 매일 밤 가려웠다. 40장씩 벽돌 지게를 지어 옮기거나 그것도 아니면 지게로 모래를 퍼 날랐다. 이런 날은 일당이 조금 더 받았다. 매일 매일 허리와 다리가 부서지는 것 같았다. 그렇게 일하면 하루 일당이 4만 원에서 6만이었다. 적은 돈이 아니었다. 등록금과 생활비를 마련하려면 하루도 쉴 수 없었다. 매일 매일 땀이 비 오듯 흘렀다. 저녁에 버스를 타면 수현의 몸에서는 쉰내가 났고 땀을 절은 바지는 단단하게 굳었다. 창피했지만 수현은 어쩔 수 없었다. 현장에서 함께 일하는 분들 대부분 50~60대였다. 저분들이 평생 하는 일인데 한두 달 하는 것이 힘들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수현은 생각했다. “하다 보면 익숙해져. 나도 처음엔 정말 힘들더라. 하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고…. " 처자식과 아이들 학교도 보내야 하고…. 뭐 그러다 보니 30년이네!…. 함께 일하던 김 씨 아저씨는 수현에게 항상 이런 말을 했다. 그래도 학생은 끝나면 대학생이고 졸업하면 이런 일은 안 할 것 아니여… 수현은 여름 내내 땀과 시멘트 냄새로 시큼했다. 하지만 부모에게 손을 내밀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수현은 버텼다. 두 달간의 노동일이 끝나고 수현은 학교에 돌아갔을 때 노동에서 해방된 기쁨을 느꼈다. 노동해방이 노동에서 해방되는 것이 아니라 정당한 임금과 안전하고 노동법이 지켜지는 노동 현장이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수현은 노동 자체에서 해방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도 일하지 않고 살 수는 없을까? 이런 부질없는 생각을 수현은 하고 있었다. 이렇게 힘든 것이 노동인데 일도 하지 않고 자본을 가졌다는 이유로 더 많은 돈을 버는 것은 분명 부당한 일이다. 돈을 가졌다는 이유로 불로소득을 얻어 편하게 사는 사람들과 돈이 없다는 이유로 평생 노예처럼 힘든 일에 허우적거리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고 수현은 생각했다. “이런 잘못된 세상은 바꿔야 해….” 같은 노동 시간이라면 같은 소득을 버는 것은 정당하다고 수현은 생각했다. 노동의 가치라는 것은 차별할 수 없다. 의사와 노동자가 8시간을 일했다면 같은 수입을 얻어야 한다. 이것이 수현의 생각이었다.
    • 지리산문화
    • 연재소설
    2024-12-20
  • 지리산 첫눈 소식
    「섬진강 편지」 - 지리산 첫 눈 소식 여기저기 눈소식입니다. 지리산에도 발목까지 푹푹 빠지는 첫눈이 왔습니다. 눈은 소통의 메신저입니다. 영문자판에 한글로 '눈'을 쳐보세요. 'SNS'입니다. 소원했던 친구에게 첫눈을 핑계로 전화를 해봐야겠습니다. 눈이 오면 누나가 많이 생깁니다. 설악산 눈 와? 전화를 하면 설악산 누나가 생기고 대둔산 눈 와? 전화를 하면 대둔산 누나가 생깁니다. 새롭게 태어난 하얀 세상, 첫눈 소식을 전합시다. 아침 일찍 노고단에 올라 첫눈을 맞이했습니다. 어렵게 올랐는데 살을 에는 칼바람에 20분을 못 견디고 내려오고 말았습니다. 자연 앞에 겸손하라! 새삼 깨달으면 지리산길 설설 기어 내려온 첫눈 오는 날이었습니다. -섬진강 / 김인호
    • 지리산문화
    • 섬진강 편지
    2024-11-28
  • 인생의 가장 큰 죄
    인생의 가장 큰 죄 오래 전 일본의 명상 컨퍼런스에 다녀왔는데 그것은 아난다마르가 출가 수행자인 칫 따란잔 아난다와(칫 다다지)의 인연 때문이었다. 나는 그를 따라서 인도의 아쉬람 여행과 아르헨티나에서 열리는 국제 명상 컨퍼런스, 그리고 홍콩의 아시아권 명상 행사 등을 다녔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명상이라기보다는 명상에 대한 호기심과 함께 해외여행 하는 기분으로 따라다녔을 뿐이다. 칫 다다지는 한국 사람인데 서강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가서 경제학 박사 학위까지 받은 경제학자였다. 그리고 귀국하여 이런저런 국영 연구소를 다니며 가정을 꾸리고 잘살고 있었는데 어떤 계기로 우연처럼 인도에 가서 출가 수행자가 되신 분이다. 인도의 아난다마르가 수행공동체에서 줄곧 수행하며 지금은 아난다마르가의 다다(스승)의 단계에 올라 세계를 떠도는 지구인으로 현재는 주로 중국의 충칭을 무대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가난하다. 단체로부터 생활비를 따로 받는 것도 아니고 개인의 재산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늘 밝고 긍정적이며 아무런 걱정 없이 나름의 일만 열심히 한다. 그 나름의 일은 사람들이 명상을 통해 스스로 개체의식을 밝히도록 도와주고 사회의식을 확장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아난다마르가 사상과 철학의 핵심인 네오휴머니즘과 프라우트 사회를 실현하려는 것이기도 했다. 내가 생명평화결사에서 일할 때 이 단체에서 일하고 싶다며 스스로 찾아온 그를 만나게 되었다. 그는 인도에 있다가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되어 아난다마르가의 사회적 실천을 위해 생명평화결사의 문을 두드린 것이다. 나는 그를 통해 한 생을 살며 왜,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삶의 근본 문제를 구체적 일상과 일치시키며 살아야 한다는 배움을 얻게 되었다. 다시 말하면 자기완성을 위한 명상과 같은 구도행은 개인을 위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사회적 실천을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밥 먹고 일하며 누군가를 만나야 하는 반복적인 하루 일상도 그것이 얼마나 가치 있고 소중한 일인지를 깨닫게 해줬다. 그는 살면서 별난 하루가 아니더라도 매 순간 감동과 감격 속에서 일상을 받아들이는 듯했다. 아, 매 순간 감동과 감격으로 이어지는 일상이라면 얼마나 황홀한 일인가. 그에게 명상을 배우며 나는 조금씩 스스로를 걸러낼 수 있었다. 그러면서 겨우 현실적 에고를 극복할 수 있는 어떤 영역에 대한 그리움이 생겼다. 그리고 이 영역을 꾸준히 넓히고 다지는 것이 어쩌면 매우 중요한 일이고 인생을 낭비하지 않는 삶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당시 어떤 책을 읽으며 ‘인생의 가장 큰 죄는 인생을 낭비하는 죄다.’라는 구절이 뇌리에 깊이 박혀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무엇이 낭비인지, 무엇이 낭비가 아닌지도 잘 모르면서 우선 최선을 다해 명상 공부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길을 나서면 어디로 가는지, 어떻게 가야 하는지 알고 가는 것이 당연한데, 하물며 인생길을 가며 그런 생각을 안 하고 살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칫 다다지를 만나면서 그런 생각이 더욱 선명해지고 구체화 되었다. 그리고 ‘어디로’나 ‘어떻게’의 정답은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누구나 똑같은 길을 갈 수는 없을 테니까. 다만 본질을 놓치지 않고 스스로 얼마나 충실하게 자기 현실을 소화하는가가 문제일 것이다. 그리고 일상은 중요한 현실이지만 쉽게 그 속에 묻히게 되는 자신의 한계를 항상 조망하고 콘트롤할 수 있는 어떤 힘 또한 명상을 통해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칫 다다지에게는 그것이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더 열심히 명상을 배우며 마음속으로 그를 스승으로 모시고 세속의 예를 다하려 애썼다. 그는 수행이 깊어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순수하고 다정하며 누구에게나 격이 없고 매우 친절했다. 나는 그와 친구처럼 부담 없이 함께 지낼 수 있었다. 나는 ‘친구가 될 수 없으면 진정한 스승이 아니고 스승이 될 수 없으면 진정한 친구가 아니’라는 말을 떠올리며 그가 이 짧은 생에 친구이고 스승이 되어 함께 갈 수 있기를 소망했다. 무엇보다 인생의 가장 큰 죄를 짓고 싶지 않았다. (박두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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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9-11
  • 완벽한 당신
    완벽한 당신 역사는 대부분 권력과 부와 사랑을 중심에 두고 진행되었다고 생각한다. 인생의 행복이 그곳에 있다는 사람들의 생각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을 보면 권력은 폭력이고 부는 탐욕이며 사랑은 치유와 정화라는 생각이 든다. 이와 같은 생각은 사람마다 또 다를 것이다. 그것은 세상의 변화와 흐름 속에서 한목숨 살아내기 위해 자신에 그리고 자신의 현실에 매몰되어 사는 날이 많다 보니 똑같은 경험을 각기 다르게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늘 상대방과 그 상대가 처한 현실 상황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서로 오해가 생기고 갈등과 반목의 관계가 만들어져 살아온 것이다. 개인은 물론 가정과 가정, 국가와 국가, 나아가 인간과 자연까지도 말하자면 상대에게 마음을 쓸만한 여유도 없이 우선 바쁘게 나만 챙기며 살아온 것이다. 말은 늘 이해한다고 사랑한다고 우리는 하나라고 하면서 진정으로 그러한 마음을 품지 못하고 사는 것이 우리다. 그리고 우리는 무엇이든 자신이 모르는 것은 일단 거부하거나 인정하지 않거나 관심조차 가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달리 말하면 대부분 사람이 자신이 아는 것만으로 세상을 살아간다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한 박사나 학자라 하더라도 한 인간이 아는 것이라고는 우주라는 실제 공간의 실제 현실에 비추어 보면 허공의 먼지만큼이나 사소한 것 아니겠는가. 그래도 우리는 자신이 알고 있는 그것이 옳건 그르건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살고, 그것이 전부인 양 생각하며 산다. 많은 사람이 그러하니 어쩌면 그것이 인생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에고 의식에 매몰되어 사는 것을 불가에서는 치(痴), 어리석음이라고 한다. 세상의 실상, 그 실재(實在)를 살지 못하고 전도몽상(顚倒夢想)의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사람들은 자신의 그림자에 가려 사물과 그 이치를 바로 보지 못하고 옳고 그름을 떠나 자기 생각대로만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차라리 그편이 더 편할지도 모른다. 모르면 용감하다고, 내가 생각한 것이고 내가 그렇게 믿는 것이니 나는 그냥 이렇게 살겠다고 한다. 나아가 사람 하나하나가 모두 하나의 우주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한 생명을 하나의 우주라고 말하는 것은, 사람 하나하나가 모두 소중한 가치를 가지며 완벽한 존재라는 의미와 닿아 있는 말이다. 덧붙이면 현실은 전도몽상의 어리석음에 있지만 본래 성품은 그렇지 않고 완벽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단군 때부터 삶의 목표로 성통공완(性通功完)을 이야기해 온 것 같다. 본래면목을 꿰뚫어 알아 세상에 공덕을 쌓는 것이 삶의 완성이라는 말로 읽힌다. 붓다도 모든 사람은 다 부처라고 하지 않았는가. 하지만 이런 결과적 발언이 귀에 쏙 들어오는 것은, 어렵기 짝이 없는 그 과정이 생략되었기 때문이다. 모두가 인정하듯이 이런 경지는 결코 쉬운 것은 아니다. 우리가 어쩌다 제정신이 돌아와 잠깐 그런 상황을 수용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평생을 그렇게 살아가는 것은 성자들의 일이다. 그래서 그들은 늘 겸손을 말한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삶의 모두라고 앞세우는 순간 그것은 이미 어리석음의 대열에 가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겸손은 단순히 자신을 낮추는 행위가 아니라 이런 어리석은 자신을 알게 되었을 때 비로소 생기는 것이라 하니 겸손이야말로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 겸손의 자리는 상대방이 완벽한 존재라는 그 본성을 보고 받아들일 때 자연히 생긴다고 한다. 이러한 겸손의 경지를 몸이 알아서 할 때 소위 우주적 관점에서의 완벽한 당신, 완벽한 상황이라는 그 무엇을 우리는 겨우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내가 본래 완벽한 존재이고 그 존재가 사는 현실이 완벽한 상황이라는 것을 그대로 수용할 수 있으려면 겸손을 바르게 알고 또 언제나 놓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상황은 어떤 상황이라도 완벽하다./ 오늘밤 떠들며 술 마시는 내가/ 내일 아침 졸지에 이승을 떠난다 해도/ 사실은 완벽한 상황인 거지./ 꽃망울 주렁주렁 올라온 어느 봄날/ 느닷없는 눈사태가 설중매를 만들 듯/ 그래, 그런 거지./ 우연이라고 생각하지만 모두가 필연이고/ 세상살이가 이토록 처연하다 해도/ 사실은 완벽한 상황인 거지./ 이 완벽한 나, 완벽한 현실을/ 늘 아니라고, 아니라고 불평하는 것도/ 사실은 완벽한 것이지. (졸시 「완벽한 당신」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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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8-06
  • 숲에 들어가는 나이
    숲에 들어가는 나이 나는 좀 우울했다. 한 달만 넘기면 어느덧 50수에 이른다고 생각하니 살아온 세월이 되짚어지면서 나의‘미래’라는 것도 이내 곧 바닥이 날 것만 같은 생각에 자꾸만 마음이 심란해지는 것이었다. 아직도 내 어느 구석엔 무수한 날들의 까마득한 미래가 있고, 밤 새워 술 마시고 노래할 수 있는 20대의 열정과 치기도 다 빠져나가지 않았는데 50이라는 숫자에 의해 나는 갑자기 노인의 대열에 들어 벼랑 끝으로 내몰린 듯하였다. 12월의 하루하루가 결코 상쾌하지 않았다. 이 답답한 중압감에서 벗어날 무엇이 없나 하는 차에 지인으로부터 단식하러 가자는 전화가 왔다. 마침 잘 되었다 싶었다. 장소는 제주도라 했는데 돈 들여 따로 관광도 할런지라 오랜 술로 찌든 속도 좀 다스릴 겸, 또 다가오는 50수의 중압감도 날려 보낼 겸, 마음은 어쩔망정 가벼운 발걸음으로 제주행 연락선에 몸을 실었다. 갑판에서 쌩쌩한 겨울바람을 맞으며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옷을 잔뜩 껴입어서 그런지 춥다는 생각에서는 벗어났으나 그렇다고 무슨 상념에 잠길 것도 없이 한참을 그저 멍멍하게 수평선을 바라보며 바다를 건넜다. 추자도를 지나니 멀리 한라산의 하얀 봉우리가 눈에 들어왔다. 망망대해에 멀리 한 점의 존재가 눈에 들어오자 비로소 현실감에 몸이 가늘게 떨렸다. 제주로 향하는 나의 현재가 구체적 감각으로 다가왔다. 제주에 닿기 전에 무엇인가를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아니 제주단식이 생의 한 획을 그을 수도 있다는 막연한 설렘이 내 안에서 일렁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15일 단식 기간 내내 나의 화두는 50이라는 숫자였다. 인도에서는 50대와 60대 정도의 나이를 ‘바나플러스’라고 했다. 그 말은 ‘산을 바라보기 시작하는 나이’라는 뜻인데 나이 50이 되면 숲에 들어 명상을 해야 하는 나이가 시작된다는 것이다. 태어나서 20대 정도까지가 세상에 나갈 공부를 하는 기간이라면 3,40대 정도가 세상에 나와 가정과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기간이고 5,60대 정도가 세속의 부와 명예 등 그동안 쌓은 것들을 다 버리고 숲에 들어 명상을 하는 나이였다. 이후는 숲에서 나와 죽을 때까지 세상을 떠도는 것이다. 하지만 제주단식에서 나는 무슨 특별한 깨우침을 얻거나 삶이 달라졌다거나 하는 것은 없었다. 특별한 사건이라면 다만 스승 한 분을 만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분은 단식의 방장 어른으로 참여하여 같이 단식을 하셨는데 나의 단식은 오로지 그분을 만나기 위해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선생님은 단식 기간 내내 그냥 조용히 우리 모두의 흐름을 타고 존재하고 있을 뿐이었다. 단식 기간 중에 특별한 좋은 말씀이라거나 감동적인 무슨 사건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별다른 말씀도 없이 조용히 우리와 함께 흐름을 타고 계실 뿐이었는데 선생님과 같이 있는 동안에 나는 저절로 존경하는 마음이 일어났고 많은 감화 감동이 내 안에서 저절로 일었다. 이 특이한 체험은 나를 내내 긴장시켰고, 나의 심란했던 50수를 설렘으로 맞을 수 있도록 한 계기가 되었다. 이 선생님 같은 분이 바로‘숲의 세월’을 보낸 분이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어쨌거나 나는 50수를 맞는 단식을 통해 일단은 숲에 들어야 하는 나이라는 말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리고 퇴계를 읽으면서 그도 학생기와 출세기를 거쳐 50세에 관직을 스스로 그만두고(임금이 강하게 말렸으나 끝내 도망간다) 도산서원이라는‘숲’에 들어가 심경(心經)에 몰입했으니, 처지와 상황은 다르지만 세상에서 사는 동안 쌓았던 권력과 영화를 버리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것만은 확실했다. 나도 숲에 들고 싶었다. 그리고 퇴계가 그랬듯 나의 현실에서‘숲’은 무엇일까를 생각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교직생활을 마감하고 귀촌하여 본격적으로 창작활동을 하는 것이 나에게는‘숲’이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지인들은 시인이‘숲’에 들면 어떻게 저자거리의 번뇌와 갈등을 시에 담을 수 있겠느냐는 걱정을 했지만 나는 그동안 키워온 무절제의 욕망과 그렇게 굳은 일상의 습(習)을 도려내고 싶은 것뿐이었다. 스스로 변해야 한다는 내면의 간절함이 있었고 세상을 탓하기보다는 내가 먼저 변해야 한다는 절실함이 내 안에서 주먹처럼 올라오는 것을 어찌할 수 없었다. 그리고 문학은 어쩔 수 없이 나를 따라다니는 것이 아니던가. 내가 문학을 좇아가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사실 숲에 드는 일은 단순히 세속을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나’라는 에고를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맞이하기 위한 의식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진정한 자기 존재의 본질을 인식하는 일에 다름 아니며 생명이 가지는 우주적 균형감각을 되찾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50고개를 넘으며 숲에 들어야 하는 피할 수 없는 내면의 소리를 맞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숲에 들어 몸과 정신과 영혼까지도 자본에 절어 있는 나를 변화시키고 싶었던 것이다. (박두규. 시인.) ▣ 이 글은 산문집「生을 버티게 하는 문장들」(2017년 간행)에 수록된 것입니다.
    • 지리산문화
    • 지리산 편지
    2024-07-11

실시간 지리산문화 기사

  • 참교의 키즈의 생애 5편 "둘이 서로 좋아하나…?"
    다시 봄이 되었다. 캠퍼스 안 호수에 심어진 버드나무에 새순이 나왔다. 한없이 늘어진 버드나무 가지가 봄바람에 머릿결처럼 흔들렸다. 호수에 비친 윤슬과 연두색 버드나무 가지가 눈이 부셨다. 수현은 2학년이 되었다. 신입생들이 들어왔다. 수현이 다니는 경제학과는 여학생이 많은 과는 아니었다. 한 학년에 50명인데 그중 10명 정도가 여학생이었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 만난 후배 중에 운동권이 될 만한 신입생들을 골라봤다. 수현이 나름 몇 명을 골라 이야기를 해봤지만,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세상이 바뀌었다. 관심이 없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만, 수현은 혼란스러웠다. 대학생이 되면 당연히 사회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 아닌가? 라고 수현은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 학생이 수현처럼 사회문제에 관심을 두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후배들과 이야기하면서 수현은 깨달았다. “나는 왜 모든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했을까?” 대학생이 되었으니,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져 보면 어떨까? 네. 사회문제요. 선배 제 문제도 해결 못 하는데 무슨 사회문제를 고민해요? “지금 제 앞길이 구만리에요" 취직도 해야 하고 학점 관리도 해야 하고요. 다른 일에 관심 가질 시간이 없어요. 수현이 바라보는 세상과 타인이 생각하는 세상은 다르다는 것을 신입생들과 이야기하면서 처절하게 깨달았다. 같은 것을 봐도 같은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수현은 이상하게 생각되었던 것이다. 강진도 서클에 신입회원들을 모집하고 있었다. 강진은 선배들에게 절대 후배들에게 학생운동을 한다는 이야기는 하지 말라고 했다. 그냥 편안한 선배 친절한 선배로 보여야 한다고 들었다. 그래서 후배들에게 밥과 차를 사주면서 호감을 쌓았다. 그리고 후배들과 친해지면 서클에 데려갔고 함께 저녁을 먹거나 술을 마셨다. 그렇게 지내던 후배들은 자연스럽게 강진이 있는 문학서클에 가입했다. 수현은 신입회원들에게 왜 학생운동을 해야 하는지 설득하려고 했지만, 귀담아듣는 후배들은 거의 없었다. 변혁, 혁명, 부조리, 노동 탄압, 독재, 농민들의 현실 이런 단어들은 낯설어했다. 유일하게 수현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후배는 지숙이었다. 지숙은 여수에서 올라온 후배였다 “선배 어디 가요?” 길을 걷는데 갑자기 지숙이 수현을 붙잡더니 물었다. 점심시간인데. 어디를 가겠냐? 식당에 가야지. 우리 오늘 특별한 음식을 먹어봐요? 우리 오늘 특별한… 너랑 나랑 그런 이야기를 할 만한 사이는 아닌 것 같은데…. 올해 신입생은 지숙은 평소에 수현과 친분이 있는 후배는 아니었다. 학기 초에 엠티에서 잠깐 이야기를 나눈 것이 전부였지만 다들 관심 없어 하던 수현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던 유일한 신입생이었다. 학생회관 가는 향하는 길에 두 줄로 심어진 벚꽃이 활짝 피었다. 수현과 지숙은 그 꽃길을 걸어 내려갔다. “ 그래 어디 가고 싶은데….“그냥 선배는 따라만 오세요. 그래, 특별하게 갈 곳도 없으니 함께 가보자.” 지숙은 학생 식당을 지나 더 멀리 가고 있었다. 수현이는 앞에 걸어가는 지숙이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우리 서클에 들어오려나…” “ 그냥 학생식당이나 가자. 멀리 가봐야 별것도 없는데…. “수현이 말했다. “선배 제가 뭐라고 그랬어요. 오늘 저랑 특별한 것을 먹어 보자고 했잖아요.” 지숙이 다시 딱 부러지게 말했다. “그래 알았다.” 수현은 할 수 없이 대답했다. 학생회관을 지나 조금 더 멀리 가니 멀리 교수 식당이 보였다. “너 저기 가자고 하는 거야?” “네…” “저기 뭐 특별한 것이라도 파니?” 솔직히 수현은 교수 식당엔 가본 적이 없다. 항상 돈이 모자란 수현에게 교수 식당이라는 말만 들어도 비쌀 것 같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말이 교수 식당이지 학생 식당보다 조금 더 비싼 가격에 좀 더 좋은 음식을 파는 학교 식당이라 학생이 가도 되는 식당이었다. “ 거기 가면 뭘 파는데… 가보면 알아요. 그래 알았다. 알았어…” 교수 식당 앞엔 분홍빛 꽃잔디가 가득 피어 있었다. 4월의 따스한 봄 햇살에 이제 갓 20살이 된 지숙의 볼이 분홍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지숙이가 저렇게 예쁜 아이였나 수현은 지숙을 얼굴은 멀뚱하게 쳐다봤다. “선배…. 어…. 어…. “제 얼굴에 뭐라도 묻었어요!” “뭐 그렇게 민망하게 보고 있어요?” “아. 미안…. 잠깐. 딴생각을 좀 하느라고.” ”메뉴는 제가 이미 골랐어요.“ “어 그래…” “뭔 데…” “청어요!” “ 청어…” “물고기 청어 말이야?” “네. 저는 청어구이를 좋아하거든요.” 지숙이 이야기했다. 여기 식당에서 매주 이날만 청어를 구워 주더라고요. “ 아. 그래서 근데 왜 나랑…” “오늘 여기를 특별하게 온 거야…” “ 선배 기억 안 나요?” “무슨 기억…” “그때 엠티 때 제가 선배에게 이야기했잖아요.” 지숙은 대천 바다로 엠티를 갔을 때 수현과 함께 걷던 시간이 떠올랐다. 수현 선배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몰랐지만, 함께 걷는 것이 지숙은 좋았다. 수현이 민중가요라고 불러주던 노래도 좋았다. “언제라도 힘들고 지쳤을 때 내게 전화하라고 물끄러미 바라보다 나는 눈시울이 붉어지고 고맙다는 말 그 말 한마디 다 못하고 돌아섰네 나는 그저 나의 아픔만을 생각하며 살았는데 그런 입으로 나는 늘 동지라 말했는데 오늘 난 편지를 써야겠어 전화 카드도 사야겠어 그리고 네게 전화를 해야지 줄 것이 있노라고” -전화카드한장- 지숙은 수현이 불러준 노래를 잊지 않고 있었다. 그날 밤 불어오던 저녁 바람과 바다냄새 그리고 파도 소리 모든 것이 지숙은 잊고 싶지 않았다. “무슨 이야기? 제가 청어구이를 좋아한다고요.” “그랬었나....” 수현은 기억나지 않았지만 억지로 기억해 보니 그랬던 것 같기도 했다. 엠티로 갔던 대천 바닷가에서 잠시 걸었던 기억이 났다. 그때 지숙이 자기는 푸른 바다를 닮은 청어를 좋아한다고 했었다. “ 그래…. 기억난다.” “ 너. 청어를 좋아한다고 했었지?” “맞아…” “근데 바다를 좋아하는 거야? “ “아니면 청어를 좋아하는 거야?” “선배 그만 묻고 청어를 드시는 것이 어때요?” 지숙은 어느새 청어를 먹기 좋게 살만 발라 놓았다. 야….너 이렇게까지 안 해도 된다. 네가 꼭 내 색시라도 되는 것 같잖아. 수현은 이렇게 이야기하고 깜짝 놀랐다. ”색시가 뭐예요. 여자 친구도 아니고….“” 아…. 미안“ 수현은 말을 얼버무렸다. ”그냥 제가 해주고 싶어서 그래요. 그래 알았다.“ 수현과 지숙은 이제 막 벚꽃이 피기 시작한 캠퍼스를 바라보며 청어를 먹었다. 사실 수현은 청어를 처음 먹어봤다. 먹어본 등 푸른 생선은 고등어가 다였다. 수현의 엄마는 장에 가면 항상 고등어를 사 왔다. 고등어를 김치에 넣어 끓여주거나 무와 조려주면 그렇게 맛이 좋을 수가 없었다. 수현의 아버지 석태도 고등어를 좋아했다. 청어를 보자 엄마와 아빠가 떠올랐다. 청어 구이의 맛은 나쁘지 않았다. 아니 맛은 중요하지 않았다. 지숙이랑 앉아 청어를 먹는 시간이 좋다고 수현은 생각했다. “선배..”“왜..”“저 다음에 선배랑 다시 청어 먹으러 와도 되나요?” “어.. 그래 청어 맛이 좋은데… “ 지숙과 수현은 청어를 먹고, 다시 봄이 가득한 교정을 걸었다. 교정은 새로운 신입생들로 활기가 넘쳤다. 벚꽃잎이 바람에 흔들려 속절없이 떨어지고 있었다. 꽃잎은 지숙의 머리와 어깨에도 떨어졌다. 수현은 지숙의 머리에 떨어진 벚꽃 잎을 손으로 떼어내며 수현에게 건넸다. “ 꽃이 널 좋아하나 보다?” “네.!”“ 선배 그런 달콤한 말을 자꾸 하시면 제가 좋아하는 수가 있어요.” 지숙이 하얀 잇몸을 드러내며 환하게 웃었다. 지숙과 수현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학생회실로 걸어갔다. 나경은 수현과 지숙이 함께 걸어오는 것을 봤다.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밀려왔다. 왜 그러지, 나경은 수현과 지숙의 모습을 보는 순간부터 기분이 이상했다. 떨어지는 벚꽃들을 보며 나경은 생각했다. 둘이 서로 좋아하나…?
    • 지리산문화
    • 연재소설
    2025-01-21
  • 지리산인, 동네책방상품권 발행
    2025년 푸른 뱀의 해, ‘인터넷신문 지리산인’(지리산인)은 지리산권 5개 시군에 있는 동네책방과 협력하여 <동네책방상품권>을 발행한다. ‘지리산인’이 <동네책방상품권>을 기획, 발행, 유통하는 이유는 글과 기사를 돈이 아닌 방식으로, 돈보다 더 따뜻한 느낌으로 사례하고 싶어서다. 더불어 ‘지리산인’은 <동네책방상품권>을 통해 지리산권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분들을 만나고자 한다. <동네책방상품권> 사용 방법과 흐름은 이렇다. ‘지리산인’에 글 나눔을 한 분에게 ‘지리산인’은 <동네책방상품권>을 보낸다. <동네책방상품권>을 받은 분은 찬장과책장(남원), 오후공책(함양), 지금부터판타지(산청), 시소(하동), 봉서리서점(구례) 등 5곳에서 상품권의 금액만큼 책이나 기념물, 먹을거리 등을 구입한다. ‘지리산인’은 동네책방에 회수된 상품권 금액만큼을 동네책방에 송금한다. <동네책방상품권>을 받고(간직하고) 싶다면, 방법은 간단하다. ‘지리산인’에 기자로 등록하여 글을 쓰면 된다. ‘지리산인’이 지향하는 가치를 알고 싶다면 ‘지리산인’에 들어와 게시된 글을 읽어보면 감이 온다. ‘지리산인’은 http://jirisan-in.net으로들어오거나,구글, 다음 등에서 ‘지리산인’을 검색하면 된다.
    • 지리산문화
    • 지리산 편지
    2025-01-18
  • 깨달음의 시
    깨달음의 시 인디언들은 1월을, 눈이 천막 안으로 휘몰아치는 달, 호숫물이 어는 달, 등 부족에 따라 다르게 불렀나 보다. 우리 부족은 저마다의 해맞이로 시작하니 1월은 ‘새로운 해가 뜨는 달’이라고 할 수 있겠다. 시작만이 아니라 늘 새로움과 설렘으로 일상을 맞고 싶은 것이다. 우리는 아직도 지난해의 비상계엄 사태 이후 지축을 흔드는 엄청난 진동과 혼란이 진행 중이지만 이 또한 ‘새로움’을 창출하기 위한 시간이기도 할 것이다. 인도에서는 이 ‘새로움’을 얻기 위해 시바 신을 가장 많이 찾는다고 한다. 인도는 세상의 모든 자연과 자연의 법칙까지도 신이라고 해서 많은 신들이 있는데 그중 브라마는 창조의 신이고 비슈누는 유지의 신이며 시바는 파괴와 소멸의 신이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파괴의 신인 시바를 가장 많이 찾을까. 우리가 사는 세상은 창조되면 그것을 유지하고 또 그것이 다 하면 파괴와 소멸을 통해 다시 새로운 창조가 시작되는 자연과 우주의 순환구조 속에 있다. 사는 동안 남녀노소, 빈부와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현실의 고난과 어려움은 찾아오기 마련인데 사람들은 이런 고통스런 현실을 파괴하고 싶고 새로운 시작을 갈망하게 된다. 시바 신으로 인해 현재의 고통과 절망을 벗어나고 싶은 것이다. 그래야만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일상을 살아가는 힘은 ‘새로움’에 대한 갈망에서 나온다. 그래서 새해가 되면 백지와도 같은 깨끗한 이 한해를 어떻게 채워나갈까, 하는 새로움에 설렘까지 더해 분주해진다. 그런데 한해의 벽두에만 이 새로움과 설렘을 맞는 것은 좀 아쉽지 않은가. 똑같은 해가 매일 뜨는데 왜 새해의 벽두에만 그 맛을 봐야 하는가. 진부하기만 한 하루를 매일 새롭게 맞을 수는 없을까. 어느 선사가 쓴 ‘깨달음’이란 시가 있다. 깨닫기 전에는 나무를 하고 물을 길었다 깨달은 후에도 나무를 하고 물을 긷는다 이 시를 보면 깨달음을 얻기 전이나 얻은 후에나 아무것도 변한 게 없다. 그래서 깨달음은 물을 긷고 나무를 하는 일상의 현실에 있다는 것과 그 일상을 새롭게 보고 또 새롭게 사는 것이 깨달음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옛날에는 나무를 하고 물을 긷는 것이 먹고살기 위한 일상이요, 삶 그 자체였다. 그런데 이 지치고 힘든 현실을 새롭게 살 수만 있다면 세상은 고통이 아니라 마냥 신기하고 즐거울 것이다. 어린아이를 데리고 바깥나들이를 하면 아이들은 쉴 틈 없이 질문을 한다. 어른들에겐 진부하고 힘든 이 세상이 아이들의 눈에는 모든 게 새롭고 궁금한 것이다. 어른이 되어서도 어린아이의 천진함으로 늘 자연과 세상을 새롭게 보고, 매일 새롭게 살 수만 있다면 그것이 바로 깨달은 자의 일상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는 이런 마음의 여유도 없이 비상계엄 해제 이후 아직도 안정되지 못하고 어수선하기만 하다. 이런 정국이 얼마나 더 지나야 안정된 일상으로 돌아올지는 모르겠으나, 오래지 않아 어떻게든 진정되면 어떤 ‘새로움’이 다시 시작될 것이 분명하다. 자연의 이치가 그렇다. 국민이 원하는 새로운 대통령으로 행정부가 꾸려지고 국민을 배신하지 않은 2/3 이상의 국회의원들이 있으니 어느 정도 국민의 정서에 부응하는 많은 개혁이 이루어지리라 생각한다. 시바가 지금 우리의 혼란을 파괴하여 소멸시키고 있으니 머잖아 ‘새로움’의 세상은 시작될 것이다. (박두규. 시인)
    • 지리산문화
    • 지리산 편지
    2025-01-15
  • 너를 부른다
    너를 부른다 - 김 현 주 봄꽃들이 십일월에 피어올랐다 봄인 줄 알고 꽃망울 피어올린 처연한 것들 봄꽃이라 부르랴 겨울꽃이라 부르랴 내일이면 콧등 시린 바람 분다는데 찬서리 내려앉은 여린 꽃은 어디로 가야 하나 피자마자 지는 것도 물들지 못하고 투둑 떨어지는 것도 네 잘못이 아니야 피어나지 못한 채 져버린* 만19세 청년 윤슬 위로 흘러가는 네 어미 울음소리에 따순 십일월 햇살 받아 피어오른게지 이렇게라도 다시 한번 피어나고 싶어 네 어미 눈썹 닯은 자귀꽃으로 피어난게지 * 2024년 6월 16일 전주페이페에서 일하던만 19세 청년노동자가 입사한지 6개월만에 사망했다. 그는 순천 모 특성화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김현주┃길문학회 동인, 순천작가회의 회원, 저서 「구술생애사 ‘조곡동 철도관사마을에서 만난 사람들’ 1.2」, 「마을의가치, 학교와같이(공저)」가 있다. 청소년노동인권활동가이자 마을교육공동체 활동가이다. 현재는 우리마을교육연구소 사회적협동조합 소장이다. one61@hanmail.net
    • 지리산문화
    • 시를 찾아서
    2025-01-13
  • 섬진강 설경
    「섬진강 편지」 -섬진강 설경 남원 부절리 소나무 숲을 보고 섬진강을 거슬러 임실 진메마을까지 다녀왔다. 구담마을에서 장구목 길이 눈이 쌓여 차는 자꾸 미끄러지고 금방 날이 어두워진다. 쏟아지는 눈 속에 고립되어 하룻밤은 장구목가든에서 머물러도 좋겠다 싶었는데 사륜애마는 ‘뻘생각 말라'는 듯 어두워지는 언덕길을 박차고 올라선다. 순창을 지나 남원에 접어드니 눈발이 잦아들었다. 오늘은 섬진강 상류구간인 임실 붕어섬과 진안 데미샘까지 설경을 담고 싶었는데 순창지역 기온이 영하 15도가 넘어 엄두가 나지 않아 나사질 못했다. 한파에 가출해서 밤내 들어오지 않고 애태우던 냥이가 정 때가 지나서야 슬며시 나타나 얄밉게 밥그릇을 두들긴다. 어젯밤을 장구목에서 하룻밤 묵고 왔더라면 나도 냥이와 함께 도매금으로 넘어갈 뻔했다. -섬진강 / 김인호 -남원 부절리 솔숲 -진메 가는 길 -진메 징검다리 -구담마을 돌다리 -구담마을 -장구목 -요강바위 -장구목 -진메마을 -진메에서 천담마을 가는 길 -진메마을 -구담마을 파노라마
    • 지리산문화
    • 섬진강 편지
    2025-01-10
  • 참교육 키즈의 생애 4편 "우리는 무슨 사이"
    9월이 왔다. 뜨거운 더위가 살짝 물러섰다. 신입생들의 얼굴엔 고등학생 같은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대학에 돌아갔을 때 나경은 수현을 만났다. 나경이 먼저 수현을 찾아왔다. "수현아, 그동안 잘 지냈어 “너 대학생 되더니 엄청 멋있어졌다.” “너 나 찾으러 우리 과에 왔다면서. 친구들에게 들었어" "네. 수현은 짧게 대답했다.” “어디 갔다 오신 거예요. 선배” “어…. 나. 그냥 잠시 쉬었어.” “몸도 안 좋고....." 나경은 사귀던 남자와 헤어지고 방황했다. 같은 과 운동권 선배였던 남자 친구와 헤어지고 나니 다시 그 선배와 다시 만나는 것이 두려웠다. 다행히 그 선배가 가을에 졸업했다. 나경은 다시 돌아왔다. 나경과 수현은 이후 자주 만났다. 연인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경은 술을 마실 때 수현을 불렀다. 수현은 나경이 부르면 모든 일을 제쳐두고 나경을 만나러 갔고, 수현이 만나자고 하면 나경도 그랬다. 우리 무슨 사이죠? 라고 나경에게 수현이 물었을 때 나경은 친한 사이라고 말했다. 수현은 고백하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관계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나경은 수현이 좋았지만, 세살이나 어린 수현에게 먼저 고백할 수는 없었다. 벚나무의 잎들이 갈색으로 물들어 하나둘 떨어지기 시작했다. 단풍이 점점 진하게 물들었다. 교정의 학생들은 따뜻한 햇살을 찾아 잔디밭에 앉아 있었다. 떨어진 낙엽들이 바람을 타고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풋풋했던 신입생들은 이제 어엿한 대학생처럼 보였다. 학생들이 방학으로 교정은 텅 비었다. 텅 빈 교정엔 눈이 내렸다. 그렇게 가을이 가고 다시 겨울이 왔다. 수현은 겨울 방학 내게 다시 현장에서 일했다. 더운 여름보다 겨울이 수월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일은 더 힘들었다. 컴컴한 새벽에 일어나 현장에 나가면 손발이 꽁꽁 얼었다. 그럴 때면 페인트 깡통에 버려진 나무를 태워 언 발과 손을 녹였다. 연일 영하 10도가 넘나드는 추운 날이 이어졌다. 여름보다 더 힘들었다. 겨울에 수현은 고층 아파트 현장에서 일했다. 현장은 나름대로 체계가 있었다. 수현이 맞은 일은 일명 직영 잡부였다. 여기저기 청소일을 하거나 부족한 일손을 채우는 일이었다. 겨울에 시멘트 양성을 하기 위해 석탄을 가져와 불을 지피는 일도 수현이 해야 할 일이었다. 콘크리트 작업을 한 당일엔 온종일 불을 피워야 했다. 그 날은 야간이나 철야 일도 했다. 그런 날은 기본 일당에 야근 수당에 철야 수당까지 합쳐서 하루 10만 원이 넘었다. 수현을 야간 일이 있을 때마다 지원했다. 학비도 벌어야 하고 생활비도 벌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대학을 그만두어야 한다. 그나마 아침 점심 저녁을 먹는 함바집은 밥 맛이 좋았다. 마음껏 먹어도 되었고 함바집 박씨 아주머니를 수현을 아들 같다면 특별하게 달걀부침을 더 챙겨 주기도 했다. ”젊은 학생이 고생하는구먼…. 울 아들은 지금 군대 갔는데…. “강원도는 여기보다 엄청 춥겠지?“ ” 아드님이 강원도에서 있어요. 거긴 여기보다 5~6도는 더 내려갈걸요?“ ”학생은 군대 안 가나.?“”저는 졸업 하고 가려고요. "아이고. 하루라도 젊었을 때 가야 고생을 덜 하는데….” “그러게요. 세상이 저를 놓아주지를 않네요.” “근데 아주머니 아들은 몇 살이에요? “21살…. 인데…. 아, 그럼 저랑 동갑이네요.” “아…. 그려.” 그 후로 아들과 동갑이라며 아주머니는 수현을 볼 때마다 아들 생각이 난다고 했다. “학생 일 적당히 해” 직영 일은 적당히 해도 돼…. 뭐 반장이 맨날 쳐다보는 것 도 아니고… 끝내야 하는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네. 아주머니 고마워요.” 수현은 아주머니의 아들이 같은 또래라는 것을 알았을 때 혹시 같은 학교를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더 묻지 않았다. 직영이 하는 일은 매일 매일 바뀌었다. 함께 일하는 분들은 대부분 나이가 많거나 기술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같은 현장에서 일해도 철근 반이나 조적이나 목수들은 일당이 2~3배는 되었는데 직영일을 하는 사람 일당이 가장 작았다. 아무 기술도 없는 수현 같은 학생들이나 기술 없이 다른 일을 전전 하다가 현장 일을 나온 사람들이 불려 오는 일이었다. 현장에서도 가장 낮은 일자리였다. 그해 겨울 방학 내내 수현은 하루도 쉬지 못했다. 아파트 준공일이 얼마 남지 않아 현장은 쉬는 날이 없었기 때문이다. 2월 중순이 넘어가자, 아파트 현장에도 따뜻한 바람이 불었다. 수현의 길고 긴 노동일도 끝이 나고 있었다. 나경은 현장에서 일하던 수현을 찾아왔다. 일이 끝나고 수현과 나경은 밤거리를 걸었다. “수현아, 꼭 이렇게까지 일을 해야 해…” “손이 이게 뭐야….”“꽁꽁 얼고 튼 수현의 손을 잡았다.” "정 힘들면 이 누나에게 이야기해. 내가 좀 도와 줄 수도 있는데…. 수현은 별말 없이 걸었다. “선배처럼 부잣집 사람들은 우리 같은 가난한 빈민 출신들의 마음을 몰라요.” “전 빈민 프롤레타리아 출신이라고요. 가진 것도 없고요.” 둘은 함바집으로 행했다. 아주머니 여기 밥 하나 더 주실 수 있죠? 그래. 누구야? 학생 애인인가? “네” “제 여자 친구예요?” “예쁘죠?” “수현아…. 여자 친구는….” “아이고 수현 학생 여자 친구가 왔으니, 오늘은 달걀부침 네 개는 해줘야겠네” “수현이 같은 착실한 남자를 어찌 알아봤을까?” 나경은 수현이 자신을 여자 친구라고 소개했을 때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둘이 정말 사랑하는 사이가 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에서 더 이상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나이도 그렇고 환경도 그렇고 함께 할 수 없을 거라고 나경은 생각했다. “선배 방학 끝나고 봐요!” 나경은 수현과 커피 한잔을 하고 뒤로 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나경은 단 한 번도 돈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나경에게 돈은 흔하고 편한 것이었다. 자신이 사는 큰 집과 부는 어디에서 온 것인가? 수현은 온종일 일을 하고 자신은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걸까? 이런 생각을 잠시 해봤지만, 더 고민하기는 싫었다. 나경과 수현은 역까지 걸었다. 찬바람이 둘 사이를 갈라놓듯이 불었다. 수현은 나경은 손을 잡았다. 따뜻했다. 나경은 손을 놓지 않았다. 얼어붙은 수현의 손을 자신의 코드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깍지를 끼웠다. 둘은 더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다. 20분쯤 걸었을 때 역이 보였다. 역 앞에는 오래전 역 앞에 사람들이 많았을 때 이용했을 것 같은 가게들이 줄지어 있었다. 봉봉, 박카스 같은 선물 상자들이 먼지가 쌓여 있었다. 나경은 저 안에 물건이 들어있기는 한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마도 빈 껍데기겠지…. 나경은 자신이 저 빈 상자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운동권도 아니고 공부를 하는 학생도 아니고 이리저리 방황하는 자신이 먼지에 싸여 있는 빈 상자들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곧 서울행 기차가 도착하겠습니다" 안내 멘트가 나오는 것을 보고 나경은 서둘러 기차를 타기 위애 달려갔다. 수현이 손짓이 보였다. 잘 있어…. 수현아….
    • 지리산문화
    • 연재소설
    2025-01-08
  • 2025년 새아침
    '지리산 그림순례'를 연재하고 계신 이호신화백의 새아침 인사 올립니다.
    • 지리산문화
    • 이호신화백의 지리산 그림 순례
    2025-01-02
  • 새 아침
    「섬진강 편지」 - 새 아침 어지러운 꿈 조각들을 털어내고 새벽에 일어나 몸을 씻는다. 아이들아, 어서 일어나 떠오르는 새해를 맞이하자 지리산 능선 뻗어 내리는 맑은빛 깨어나는 섬진강 푸른빛을 담아 새봄을 준비하자 여느 봄이 아니라 삿된 기운들 걷어내고 새 맘으로 땅을 갈아엎어 새 씨를 뿌리는 새봄을 준비하자 아이들아, 어서 나아가 떠오르는 새해를 맞이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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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섬진강 편지
    2025-01-02
  • 구들방과 따오기 생각
    「섬진강 편지」 - 구들방과 따오기 생각 동짓날 산청성심원에서 ‘2024 지리산사람들 이야기 자리’, ‘지리산사람들 운영위원회’ 1박2일 모임을 마치고 돌아오니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구들방이 얼음장처럼 싸늘하다. 웬만큼 불을 때서는 방이 뎁혀질 것 같지 않다. 장작을 좀 더 밀어 넣고 불 앞에서 생각한다. 사람의 관계도 영락없다. 영원할 것 같던 사이가 작은 오해로 소원해지고 내버려두니 그만 싸늘해지고 말았다. 다시 사이를 뎁혀보자 마음 내보지만 예전 같지 않다. 구들방이나 사람이나 온기가 식지 않도록 꾸준히 군불을 때야 쓸일이다. 지난주에는 빚을 하나 갚은 것 같아 마음이 조금 가볍다. 최근에 펴낸 ‘나를 살린 풍경들’ 책표지 추천글을 써준 복효근시인에게 어떻게든 글빚을 갚아야겠는데 시간이 맞지 않았다. 그런데 마침 남원 운봉에 날아온 따오기 이야기에 마음이 맞아서 함께 운봉에 가 따오기를 보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까지 이어졌다. 따오기가 내 글빚을 갚아주기 위해 먼먼 시간으로부터 날아와 준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어릴 적 동산 너머 학교를 함께 다녔던 금옥이, 정옥이, 병옥이 .. 산골마을 친구들 이름 옥이 같은 따오기! 날개를 펼쳐 꿈속 저편에서 날아와 꿈속 이편으로 날아가며 마법처럼 핑크빛 세상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새, 따옥따옥 따오기야! 메리크리스마스!! #따오기 #구들방 #복효근시인 #글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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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12-24
  • 지리산 품에 너를
    「섬진강 편지」 - 지리산 품에 너를 오늘 노고단길은 특별하다. 실연 아픔을 안고 지리산을 찾은 조카와 함께 새벽 노고단 길을 올랐다. 동편 하늘 구름이 많아 붉덩이 일출은 만나지 못했지만 날은 차고 맑아 무등산 지척이고 남해바다 지척이여 손을 내밀면 가 닿을 것 같은 날이다. 골골 안개 어려 산그리메 고운 날이다. 겨울날 같지 않게 바람도 많지 않아 노고할미 곁에 서서 오래도록 섬진강을 바라본다. 저기 천왕봉, 저기 반야봉, 저기 무등산 가리키는 곳을 따라 고개를 끄덕이는 조카의 얼굴도 환해진다. 그래 잘했다. 지리산 품으로 달려온 것은 정말 잘한 일이다. 고단한 짐 다 부려놓고 한 사흘 지리산 품에 너를 맡겨 보거라. -섬진강 / 김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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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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