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7-2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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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간 시를 찾아서 기사

  • 꽃무릇
    꽃무릇 박 석 면 잎이 있어야 꽃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는데 넌 잎이 없어도 꽃을 피울 수 있다지 넌 짝 없이도 사랑을 할 수 있다지 사람과 사람이 만나야 사랑할 수 있다는 말 너에게는 한낱 너스레 네 잎과 꽃은 혼자 사랑하다 혼자 죽어갈 뿐 꽃이 진 뒤 다시 잎으로 태어나 잎은 땅 위에 꽃은 하늘로 치솟아 산을 붉게 물들인다지 죽어서 꽃을 사랑하고 쓰러져 잎을 사랑하는 일 한 사람이 죽어야 한 사람이 사는 하, 그게 사랑인거지 ---------------------------------- 꽃은 꽃대로 사랑하고 잎은 잎대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꽃이 져서 잎을 피우고 잎이 져서 꽃을 피우는, 한 사람이 죽어서 한 사람을 살리는 그런 사랑, 사랑은 그런 것이리. 그립고 안타까운 일만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사랑을 본 것이리. 사람과 사람이 만나야만 사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꽃은 꽃대로 잎은 잎대로 혼자 사랑하다 혼자 죽어도 그것은 하나의 꽃무릇, 그런 꽃무릇들이 무리 지어 산사를 붉게 물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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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를 찾아서
    2026-07-20
  • 잘 가셨는지요
    잘 가셨는지요 백무산 죽은 자가 따라다니는 시절이 되었는지 또 날아온 부고는 믿기지 않았다 얼마 전 저녁을 함께 했던 사람이다 전화기를 접지 않고 그의 온기를 느껴보려고 그가 보낸 메시지를 뒤져보니 아직 체온이 남아 있었다 "잘 가셨는지요. 아쉬웠습니다. 그리고 죄송했어요." 떠난 사람이 나였다는 듯이 그는 그곳에 있고 내가 멀리 가버렸다는 듯이 내 뒷모습에서 떠나는 자의 쓸쓸함을 읽었다는 듯이 살아 있다는 것이 되레 어디론가 떠나가고 있다는 듯이 수많은 죽음을 맞이하는 일과 수많은 자신의 죽음을 겪는 일로 눈물은 죽은 자가 흘린다 죽은 자의 혼은 언제나 산 사람을 붙들고 운다 두고 가는 발걸음 떨어지지 않아 산 사람이 가엾고 불쌍해서 펑펑 운다 죽은 자에게 애도를 받으러 가는 길이다 --------------------------------------------------- 부고를 받고 문상하러 가면서 쓰여진 시다. 시 속의 화자는 죽은 자와 산 자의 처지가 바뀌어 있음을 말한다. 죽은 자는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산 자가 가엾고 불쌍하다. 죽었다는 것은 이미 도착한 것이고, 살아 있다는 것은 어디론가 떠나가고 있다는 것이어서 그렇다. 산 자가 죽은 자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죽은 자가 이승을 두고 가는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산 자의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다. 죽음이 가엾고 불쌍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는 것이 그렇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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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를 찾아서
    2026-07-02
  • 마음의 눈을 뜨니
    마음의 눈을 뜨니 구 상 이제사 나는 눈을 뜬다. 마음의 눈을 뜬다. 달라진 것이라곤 하나도 없는 이제까지 그 모습, 그대로의 만물이 그 실용적 이름에서 벗어나 저마다 총총한 별처럼 빛나서 새롭고 신기하고 오묘하기 그지없다. 무심히 보아 오던 마당의 나무, 넘보듯 스치던 잔디의 풀, 아니 발길에 차이는 조약돌 하나까지 한량없는 감동과 감격을 자아낸다. 저들은 저마다 나를 마주 반기며 티없는 미소를 보내기도 하고 신령한 밀어를 속삭이기도 하고 손을 흔들어 함성을 지르기도 한다. 한편, 한길을 오가는 사람들이 새삼 소중하고 더없이 미쁜 것은 그 은혜로움을 일일이 쳐들 바 없지만 저들의 일손과 땀과 그 정성으로 나의 목숨부터가 부지되고 있다는 사실을 이제는 너무나도 실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물의 그 始源(시원)의 빛에 눈을 뜬 나, 이제 세상 모든 것이 기적이요, 신비 아닌 것이 하나도 없으며 더구나 저 영원 속에서 나와 저들의 그 완성될 모습을 떠올리면 황홀해진다. -------------------------------------------------------- 마음의 눈을 뜬다는 것은 무엇일까? 시인은 사물의 그 모습이나 사람의 무엇이라는 그 이름이 있기 전의 ‘그 始源(시원)의 빛에 눈을 뜬’ 존재라고 말한다. 그 상태가 되면 나무나 풀이나 돌멩이 하나까지 모든 것들과 소통하게 되고 나의 목숨은 그들로부터 부지되고 있으며 그들과 하나라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그래서 존재 자체가 기적이요 신비이며 삶이 황홀해진다. 깨달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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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를 찾아서
    2026-06-19
  • 경배합니다
    경배합니다 배 재 경 기역 자로 하루를 사는 노파 집 밖 동리 마실 나간다 지팡이 쥔 손이 상수리 껍질처럼 우울하다 저물고 저물어야 가질 수 있는 기역 자 젊은이들에게는 바늘귀의 틈도 주지 않는 기역 자 그렇게 값비싼 아무나 가질 수 없는 기역 자를 싸들고 마실 나간다 노파의 등판 위로 아로새겨진 무수한 샛길들이 어서 자신의 길로 오라고 아우성이다 채마밭길의 푸르름들이며 눈보라 차디찬 들판에 늘브러진 늑대들이며 메마르고 갈라진 논두렁길도 보인다 저만치 아이들이 재잘거리는 밥짓는 연기 피어나는 집으로 가는 길이며 지아비를 떠나보낸 전쟁의 피란길도 아슴아슴하다 이 마실길을 얼마나 더 걸어갈지 기역 자 가득 햇살들이 열심히 부채질이다 =========================================== 허리가 ㄱ 자로 구부러진 노인들을 어쩌다 보게 되면 먼저 그분의 신산스런 삶을 떠올린다. 어떤 삶을 사셨을까? 그러면서 내 어머니를 떠올린다. 어머니의 살아온 길을 되집어 본다. '지팡이 쥔 손이 상수리 껍질처럼 우울'한 내 어머니를 그려보는 것이다. 모든 어머니가 고귀한 것은 자식에 대한 사랑 때문이다. '아무나 가질 수 없는 기역 자, 저물고 저물어야 가질 수 있는 기역 자' 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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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를 찾아서
    2026-06-07
  • 밥 냄새
    밥 냄새 김영춘 물밑에 안쳐놓은 밥이 끓어오른다 물이 밥을 끌어안은 것을 밥을 안친 것이라고 할 수 있나 생각하는 동안 밥이 익어서 깊숙이 온 집안에 밥 냄새 가득해서 이 세상 모든 향기가 소용없어라 저 홀로 피어나던 마음처럼 조용조용 살아 오르는 밥 냄새 누구를 기다리는가 고스란히 퍼져나가는 오래된 저녁때로다 부질없는 생각은 모두 저버린 몸이 되어 밥을 곁에 두고 앉아본다 --------------------------------------- 밥 냄새 하나로 세상의 모든 향기가 소용없다고 말할 수 있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도 전기밥솥에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밥 냄새를 맡으면 왠지 포근하고 편안한 느낌이다. 밥 한 그릇에 간장 한 종지의 단순하고 정갈한 식량이 그리운 시절이다. 이제는 차고 넘치는 자본의 밥상과 비만해진 사회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겠지만 그래도 그 시절 그 마음을 읽게 하는 시 한 편이 있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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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를 찾아서
    2026-05-25
  • 여우난골族
    여우난골族 백석 명절날 나는 엄매 아배 따라, 우리 집 개는 나를 따라, 진할머니 진할아버지가 있는 큰집으로 가면 얼굴에 별자국 솜솜 난 말수와 같이 눈도 껌벅거리는 하루에 베 한 필을 짠다는 벌 하나 건넛집엔 복숭아나무가 많은 신리(新里) 고무, 고무의 딸 이녀(李女), 작은 이녀, 열여섯에 사십이 넘은 홀아비의 후처가 된 포족족하니 성이 잘 나는 살빛이 매감탕 같은 입술과 젖꼭지는 더 까만 예수쟁이 마을 가까이 사는 토산(土山) 고무, 고무의 딸 승녀(承女), 아들 승동이, 육십 리라고 해서 파랗게 보이는 산을 넘어 있다는 해변에서 과부가 된 코끝이 빨간 언제나 흰옷이 정하던 말끝에 섧게 눈물을 짤 때가 많은 큰골 고무, 고무의 딸 홍녀(洪女), 아들 홍동이, 작은 홍동이, 배나무 접을 잘하는 주정을 하면 토방돌을 뽑는 오리치를 잘 놓는 먼 섬에 반디젓 담그러 가기를 좋아하는 삼촌, 삼촌 엄매, 사춘 누이, 사춘 동생들. 이 그득히들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는 안간에들 모여서 방안에서는 새옷의 내음새가 나고 또 인절미 송구떡 콩가루차떡의 내음새도 나고 끼때의 두부와 콩나물과 볶은 잔디와 고사리와 도야지 비계는 모두 선득선득하니 찬 것들이다 저녁술을 놓은 아이들은 외양간 섶 밭마당에 달린 배나무 동산에서 쥐잡이를 하고 숨굴막질을 하고 꼬리잡이를 하고 가마 타고 시집가는 놀음 말 타고 장가가는 놀음을 하고 이렇게 밤이 어둡도록 북적하니 논다. 밤이 깊어 가는 집 안엔 엄매는 엄매들끼리 아르간에서들 웃고 이야기하고,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웃간 한 방을 잡고 조아질하고, 쌈방이 굴리고, 바리깨돌림하고, 호박떼기하고, 제비손이구손이하고 이렇게 화디의 사기방등에 심지를 몇 번이나 돋구고, 홍게닭이 몇 번이나 울어서 졸음이 오면 아랫목싸움 자리 싸움을 하며 히드득거리다 잠이 든다. 그래서는 문창에 텅납새의 그림자가 치는 아침 시누이 동서들이 욱적하니 흥성거리는 부엌으로 샛문 틈으로 장지문 틈으로 무이징게국을 끓이는 맛있는 내음새가 올라오도록 잔다. ---------------------------------------------------------------------------------------------------------------------------------- 족(族)은 가족 친지들을 말하고 ‘여우난골’은 여우가 나온다는 곳이니 얼마나 궁벽한 곳인지 알만하다. 이 시는 명절날 여우난골 부근에 사는 일가친척들이 큰집에 모여 하루를 보내는 모습을 어린 아이의 눈을 통해 담아내고 있다. 아버지의 고향처럼 훈훈한 정취와 일가친척의 넉넉한 인정, 풍요로운 가족 공동체의 모습을 담고 있어서 나는 아버지 따라 지리산자락을 넘었던 일을 떠올리면 이 시가 생각난다. 아버지 고향집은 지금 생각하면 지리산 서북능선에 있는 만복대에서 산동으로 내려오는 지능선의 끝자락에 있는 골짝 마을이었던 것 같다. 1964년 당시엔 너무도 깊은 지리산 산골마을이었다. 하루 종일 걸려서 가야하는 험한 노정인데도 어린 아들을 지리산 고향집에 꼭 데리고 가고 싶었던 아비의 마음을 이제는 알 것도 같다. 그 뒤로 나는 대학생이 되어 지리산을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졸업 후 월급이라는 것을 받게 되면서 그렇게 갖고 싶었던 등산화와 버너, 코펠을 장만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후 2인용 텐트까지 구입해 야영하며 제대로 된 등산이라는 걸 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나는 지리산에 깊숙이 빠지기 시작했다. 지리산에 관련된 책도 찾아 읽었는데 대부분 ‘빨치산’에 관한 소설이나 실록 등이었다. 참으로 아픈 역사를 홀로 배우며 혼자서 지리산의 등산로를 섭렵했을 무렵 산행 파트너가 생겨 이후로는 주로 비등산로를 함께 다녔다. 그 친구나 나나 갓 문단에 등단한 시인이었고 무엇보다 지리산에 목말라 있던 우리는 매주 지리산에 올랐다. 당시만 해도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생기기 전후여서 비등산로에 대한 통제가 거의 없을 때였다. 그래서 우리는 오만분의 일 지도인 군사작전용 지도와 나침판을(GPS가 없을 때여서) 가지고 다니며 지리산 어느 곳이나 오를 수 있었다. 그렇게 산을 다니며 오늘에 이른 나에게 지리산은 고향이면서 아버지이고 스승이며 고락을 함께하는 벗이고 사랑스러운 연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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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를 찾아서
    2026-05-12
  • 미안한 일
    미안한 일 이상국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시인으로 살며 언제부턴가 세상은 자꾸 넓어지고 나는 작아져서 술을 마셔도 취하지 않던 시절이 있었지 어느 해 겨울 밤 아들의 주머니 속 손을 뜨겁게 잡고 마을 길을 걸으며 아버지는 가진 게 시밖에 없으니 너는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했지 지금 생각하면 아들에게도 미안하고 시에게도 미안한 일이었다 ======================================================== 시인으로 사는 일이 그렇다. 스스로 간절히 원해서 하는 일이지만 일용할 양식을 제대로 물어오지 못해 가족에게 미안하다. 그리고 가난은 나의 문제지 시의 문제가 아니어서 시에게도 미안하다. 시인이라는 존재로 사는 일만이겠는가. 세상에 태어나 무엇으로 산들 그게 가난의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무엇으로 산다는 것, 무엇이 된다는 것을 늘 돈의 문제로 경제의 문제로만 규정짓는다. 그러나 그것은 ‘어떻게 사느냐’라는 삶의 문제일 뿐이다. 돈의 문제는 알다시피 삶의 문제 중 한 부분일 뿐이다. 삶의 근원을 생각하면 그렇다는 것이다. 내가 선택한 삶은 내 인생을 창조하고 발명하는 일이지만 돈에 끌려다니는 삶은 나를 잃는 삶일 뿐이다.
    • 문화예술
    • 시를 찾아서
    2026-04-22
  • 새벽 세시시를찾아서 - 새벽 세 시
    새벽 세 시 김 해 화 새벽 세 시는 새벽이 아니그만 밥을 챙겨 묵자니 너무 이른 시간 그냥 나서자니 목숨 걸고 가야 할 길 이백 리 폭염 아래 하루 노동 천근만근 그새부터 짓눌러 오네 이러케 살아서 쓰는 거시냐고 차라리 하루 포기해버리자고 주저앉다가 다시 일어서네 하루가 쌓여 이틀이 되고 한 달이 되고 한 해가 되지 십 년 이십 년 삼십 년을 쌓아도 쌓아 올려도 밑바닥 그런다고 무너지는 삶이 일어서는 삶을 뒤덮지는 못해 악착같이 견디는 하루가 내 삶의 높이 물 한 그릇 마시고 다시 물 한 그릇 마시고 새벽 세 시 캄캄한 세상으로 나선다 새벽이 따로 있나 새벽일 가는 사람들이 나서는 때가 새벽 더듬더듬 걷다 보면 하늘이 밝아오겠지 내가 동녘을 향하지 않아도 살몃걸음으로 찾아온 아침은 등 뒤에서 세상을 밝힐 거야 ----------------------------------------------- 김해화는 젊어서부터 철근 노동을 하며 시를 써 왔다. 한때는 노동자 시인으로 문단에서 주목받기도 했으나 그는 나이 고희에 이르렀어도 먹고 살기 위해 일을 다닌다. ‘무너지는 삶이 일어서는 삶을 뒤덮지는 못’ 한다는 생활 철학이 그를 뒷받침하듯이 그는 완강하게 철근을 휘는 의지로 무너지지 않고 세상을 살아왔다. 자연스럽게 마음을 우주의 중심에 놓고 평정심을 잃지 않은 삶을 일궈낸 것이다. 새벽 세 시에 물 한 모금 마시고 이백리 일터로 나가는 칠십 노구에도 희망을 놓지 않고 노래한다. ‘새벽이 따로 있나/ 새벽일 가는 사람들이 나서는 때가 새벽/ 더듬더듬 걷다 보면 하늘이 밝아오겠지’
    • 문화예술
    • 시를 찾아서
    2026-03-27
  • 빈집2
    빈집2 김부수 이젠 낯설지도 않다 주인 보낸 괭이 발자국만 군데군데 남은 먼지 마루며 언제 손질해 둔 건지 모를 호미 한 자루 섬돌 위에 다소곳이 놓여 있더라 마저 닦지 못한 장독이며 자물쇠 덩그러니 걸린 대문 지켜야 할 것이 아직 남았을까 무너지다 만 담장 까치발로 넘겨다볼 이웃도 돌아올 살붙이 소식도 끊긴 녹슨 우편함 안부마저 끊긴 시간과 수없는 내일 없는 그리움이 마주칠 리 만무한 길 위를 슬며시 밤손님처럼 왔다 갔을까 지천으로 자란 개망초 사이 시름없이 흰나비는 나는데 얼마 남지 않은 햇살이 기울고 나면 한 집 건너 또 한 집 바뀐 도로명 주소마저 지워진 점점 서먹한 곳이 돼 가는 우리 고향 마을 낯익은 얼굴도 안부를 물어볼 이웃도 하나둘 가고 빈집만 는다 ========================================== 고향의 빈집들이 늘어만 간다. 폐가가 보여주는 몰골이 고향마을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언제부턴가 잃어온 본향本鄕의 마음이기도 할 것이다. 인간의 개체적 이성과 그 마음들, 그 의식의 확장도 꾸준히 있었지만, 구체적 삶이 그 문화와 문명이 자본에 종속되는 정점에서부터 그 마음은 휘둘리고 변화되면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커졌다. 이 시는 현실의 고향과 그에 대한 우리네 심정들을 진경산수로 그려내고 있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 문화예술
    • 시를 찾아서
    2026-03-01
  • 역류가 역류할 때 -자화상
    역류가 역류할 때 -자화상 이민숙 잠을 자야 하는데 누울 수 없을 만큼 물 한 모금도 역류한다 한 시절 하늘을 향해 엄마를 향해 하물며 죽음을 향해 받아들일 수 없다고 온몸을 쳐들었던 적이 있다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는 지경들 가슴의 뜨거운 반항만이 내 것이라고 그것만이 지겨운 중력의 억압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시, 읽고 또 읽었다 끝내 진실한 무엇 같았다 진실과 역류 사이, 시와 구름 사이 허공 한 잔과 커피 한 잔 사이 친구, 세상 사는 건 시가 전부라고 하던, 고독하게 혼자 살았던 그녀는 외로움이 기막혀 한 남자를 맞이했다고 했다 시가 뭐 별거냐고...... 시가 뭐 별거냐고, 나도 따라 웅얼거린다 역류를 몰고 온 내 몸의 시, 가만히 잠들고 싶을 때 따스하게 잠들고 싶은 몸 우리 걸었던 겨울 찬 바람 오월 숲의 나무 한 그루 꽃 아니 피울 수 없는 바람, 향기, 시. 역류에 올라타며 함박꽃 꽃이파리를 흔들고 있다 ------------------------------------------------------------------------------------------------ 역류는 정상적인 순탄한 흐름을 뒤집어 흐른다는 것이다. 시 속의 화자는 건강한 삶에서 죽음을 생각할 만큼 위중한 병을 얻은 듯하다. 그러나 그 역류를 다시 역류하게 하려는 의지를 보인다. ‘가슴의 뜨거운 반항만이 내 것이라고’ 하며 시에 매달린다. 외로움이 기막혀서 한 남자를 맞이했다는 시 쓰는 친구를 생각하며 시가 뭐 별거냐고 중얼거리지만, 그 시는 역류를 몰고 온 내 몸의 시라고 생각한다. 역류를 역류하게 한 시.
    • 문화예술
    • 시를 찾아서
    2026-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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