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04-16(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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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교육 키즈의 생애 14편 엇갈린 운명
    이삭이 무거워진 벼는 점점 고개를 숙이기 시작했다. 남풍에서 북풍으로 바람의 방향이 변했다. 아침 저녁으로 찬 바람이 불었고 벼는 더 고개를 숙였다. 수현이 들판에서 익기 시작한 벼를 바라보고 있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노무사 시험을 봤지만 수현은 번번히 낙방했다. 그렇게 5년이 지났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논 농사와 밭농사를 짓기 시작한지 5년이 되었다. 이제는 그 스스로도 농부라고 생각하고 살았다. 수현이 농부가 되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수현의 아버지는 농부였고 그의 어머니도 농부였다. 수현이 돌아 갈 곳은 농촌 뿐이었다. 농민회에 가입하라는 이야기를 여러번 들었지만 농민회에 가입하지도 않았다. 한 때 그의 모든 것처럼 여겼던 민주주의 그리고 혁명 세상의 부조리 그런 모든 단어는 수현의 마음속 깊은 수렁에 빠져 다시 나오지 않았다. 수현은 근원을 알 수 없는 무력감에 빠져 살았다. 수현이 보낸 10년은 희망보다는 절망에 가까운 것이었다. 지숙이 살고 있는 여수에 수현은 딱 한 번 가본적이 있었다. 지숙은 여전히 수현을 좋아했다. 하지만 과거의 수현을 좋아했다는 것을 수현을 다시 만나 보고 알았다. 지금의 수현은 과거의 열정이 넘치는 대학때 수현이 아니었다. “선배 왜 그래?” “뭐가" “과거의 모습은 어디로 갔어?” “과거라니….” “대학때 열정이 넘치던 수현선배는 어디 갔냐고?” “그러게….” “어디로 갔을까?” “초심을 잃어버린 자의 말로라고나 할까!” 지숙은 수현이 잃어버린 초심이 무엇인지 알 고 있었지만 더이상 말을 하지는 않았다. 지숙 자신도 잃어버리는 초심을 수현이라고 가지고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선배 강진 선배 이야기 들었어?’ “무슨 이야기?” “강진선배 아직도 학교에 있던데?” “아직도?” “그래" “군 제대하고 복학하고 나서 지금까지 학교에 있더라구….” “학교에서 뭐하고 있는데?” “그것까지는 나도 모르고….” “ 뭐 하던 것 하겠지” “학교에 한 번 가봐?” 지숙과 수현은 여수 오동도를 걷다가 돌산 대교까지 걸었다. 바다는 여전히 푸르고 돌산의 다리는 여전했지만 지숙과 수현의 말을 겉돌았다. “수현 선배 저 가볼게요" “저녁에 약속이 있어서요" 지숙은 있지도 않은 약속을 핑계로 수현과 헤어졌다. 함께 있는 시간이 길어 질 수록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과거의 이야기는 가능 했지만 미래의 이야기가 불가 했다. 아무것도 없는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었고, 있지도 않을 미래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은 헛된 것이었다. 그 후로 수현은 지숙를 찾지 않았다. 지숙 역시 수현을 찾지 않았다. 하지만 벚꽃이 피고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고 눈이 올 때 마다 지숙은 수현을 생각했다. 수현은 가끔 나경 생각을 했다. 일본에서 나경은 잘 살고 있겠지.. 가끔 도쿄에 가서 나경을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결혼한 나경을 만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수현은 도쿄에 가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날 나경에게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네" “나.. 나경이야" 네….. 수현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10년 만에 걸려온 나경의 전화 한 통으로 수현은 자신이 여전히 나경을 사랑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경 선배 맞아요?” “어 그래" “우리 한 번 만나자" “아.. 그래요.” 나경이 수현을 찾은 것은 첫 눈이 내린 며칠 후였다. 도로에 그 날 내린 눈이 갓길에 쌓여 있었다. 뉴스에서 빙판을 조심하라는 안내가 있었다. 나경은 수현이 사는 남쪽으로 가는 기차에 올랐다. 수현을 만나야 할까? 아니면 그냥 말아야 할까? 한국에 돌아 오는 비행기에서 부터 고민했었다. 아이를 키우기 힘들어 한국에 가야 한다고 했을 때 남편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이혼하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날 제일 먼저 떠올린 것은 수현이었다. 잊고 싶어도 잊혀지지 않는 수현이라는 이름을 지워 버리고 싶어 일본에 도망치듯 떠난지 10년이 지났지만 그녀의 마음속엔 그 이름을 여전히 잊을 수가 없었다. 수현역시 나경을 잊지 못했다. 지숙을 사랑했지만 그녀는 떠났고 나경을 떠나 보냈지만 여전히 그리웠다. 수현은 그 후로 아무도 만나지 못했다. 봄이 오면 농사를 시작했고 가을이 오면 수확했다. 그 단순한 삶에 빠져 살았다. 어머니는 오래전에 돌아가셨다. 수현의 집엔 아무도 없었다. 들판에서 돌아오면 수현을 반기는 온기라고는 햇살에 뜨거워진 대문 손잡이 뿐이었다. 수현은 스스로를 방치했다. 그렇게 세월이 가고 수현도 나이를 먹었다. 그런데 나경이 오늘 온다는 것이었다. 기차 도착 시간은 오후 5시였다. 수현은 옷장에서 옷을 꺼내 보았다. 옷을 구입한 것이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았다. 오랜시간 동안 구입하지 않았다. 입을 만한 옷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수현이 입고 있는 옷은 그가 20대에 구입했던 옷들 뿐이었다. 옷을 구입한 기억이 없었다. 수현은 미리 읍에 나가 옷이라도 하나 구입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트럭에 시동을 걸었다. 수현이 중고 트럭을 구입한 것도 5-6년 전이었다. 구입 했을 때 이미 10년을 넘긴 차였다. 시동키를 돌렸지만 한 번에 시동이 걸리지도 않았다. 키를 돌리고 엑셀레이터를 살짝 밟았다. 그러자 시동에 걸리다가 푸드덕 하고 꺼져 버렸다. 겨울엔 항상 이랬다. “무엇하나 변변한 것이 없군" 수현은 스스로 변변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현은 마을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읍으로 나갔다. 인구 5만의 소도시, 모두가 떠나는 도시로 돌아온 수현을 반기는 것은 텅 빈 가게들 뿐이었다. 가게는 줄고 병원과 요양병원만 늘었다. 젊은 사람들은 서울로 갔다. ‘옷가게가 어디 있었더라” 토요일 오후에도 소도시엔 사람이 없었다. 겨우 찾은 옷가게에 들어가자 주인이 반색을 하며 수현을 반겼다. 겨울 잠바 하나 사려구요. 네. 주인은 수현의 얼굴을 바라봤다. 혹시… 이수현씨 아닌가요? 네.. 맞는데요. 아. 맞구나. 누구시죠? 나.. 몰라! 기억 안나? 나 최현주…. 우리 초등학교 동창인데…. 아.. 그런가… 미안해.. 기억을 못해서 그러겠지. 그때 너는 공부도 잘하고 키도 크고 너 좋아하는 우리반 아이들이 많았는데? 아. 그랬나…. 야.. 우리 다음에 한 번 보자. 어..그래 오늘 무슨 일 있어? 아.. 일은 무슨…. 그냥 옷이 없어서…. 그럼 잠바 하나 골라줘…. 내가 옷을 사본적이 없어서…. 수현은 오히려 잘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옷을 사본적이 없어 무슨 옷을 사야하는지도 몰랐다. 알았어… 초등학교 동창이니까 내가 알아서 코디 해줄께… 근데 너 결혼 안 했어? 어… 혼자 살아. 야.. 너 같은 애가 혼자 살아? 어. 뭐… 현주는 초등학교때 학교에서 가장 키가 크고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했던 수현을 떠 올렸다. 그런 수현을 현주도 좋아했지만 워낙 인기가 많아 수현을 멀리서 보기만 했었다. 말 한 마디 못했던 그 시절이 생각났다. 그런 수현이 고향으로 내려와 농사를 짓는 다는 소식을 현주도 친구들을 통해 이미 알고 있었다. 초등학교 동창들끼리 만나면 수현을 두고 안주삼아 떠들었다. 야.. 너희들 이수현 알지. 어. 야 수현이를 모르면 간첩이지. 수현이 농사짓는다고 하던데? 정말? 좋은 대학도 졸업하고 뭐 좋은 곳이라도 갔을 것 같은데 농사를 짓는다고? 그래, 그것도 벼농사 삼천평….. 벼농사 3천평 지어서 어떻게 먹고 살아… 그러니까…. 뭐.. 유기농 벼농사 짓는다고 논에 피만 잔뜩 있다고 동네 사람들이 다 욕한다고 하더라…. 너 어떻게 알아? 야.. 수현이 우리 옆 동네 살잖아.., 그럼 너 수현이 본 적 있어? 몇 번 봤지…. 그래.. 요즘은 어때 뭘 묻는 거야? 수현이 얼굴…. 그래? 여전하지 뭐.. 농사 짓는 다고 그 얼굴이 어디 가냐? 여전히 키크고 몸도 좋고 잘생겼더라….. 그치… 야.... 한 번 보고 싶다… 우리 초등학교에서 수현이가 최고 였잖아…. 그치…. 내가 결혼만 안 했어도 한 번 말이라도 걸어 보려다가.. 야.. 너는 아이만 셋이잖아 그래..히 히 현주는 얼마전 친구들과 만나 수현에 대해 이야기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옷 안 골라줘?” “ 어.. 그래" 현주는 수현에게 어울릴 만한 롱코드를 골랐다. 야.. 키큰 남자에게 롱 코트가 어울려…. 잠바 보다는… 농사짓는 놈이 무슨 롱코트냐… 그냥 잠바나 줘… 야.. 아니야.. 이게 더 잘어울려…. 바지도 하나 더 사라.. 바지가 그게 뭐냐? 10년은 넘어 보인다. 그런가…. 내가 동창 디스카운트 팍팍 해줄게… 그래. 수현은 더 이상 이야기가 하기 싫어 현주가 권하는 대로 옷을 샀다. 수현아.. 셔츠는 서비스다. 선물이라고 생각해. 수현은 평생 입어 본적이 없는 고가의 옷을 구입했다. 수현은 그동안 5만원이 넘는 옷 한 벌을 구입해 본적이 없었다. 수현은 현주가 골라준 옷을 들고 탈의실로 향했다. 헌 옷을 벗고 새 옷으로 갈아 입었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오래전 자신의 모습이 생각났다. 거울을 보며 수현은 “그래 나도 꽤 보기 좋았던 때가 있었지”라는 생각을 했다. “역시 이수현 멋지다" 현주는 수현을 보고 말했다. 봐라. 내가 골라준 옷을 입으니까 완전 달라 보인다. 그래… 고맙다. 수현은 가게를 나왔다. 어느새 밖은 다시 눈이 오기 시작했다. 수현은 가게를 나와 시내를 걸었다. 수현이 중학교때 놀던 오락실은 세탁소로 바뀌어 있었다. 엄마 아빠도 없이 혼자 먹었던 초등학교 졸업식날의 짜장면집은 여전했다. 수현이 역 앞에 도착했을때는 기차가 도착하기까지의 시간은 많은 남은 상태였다. 눈은 펑펑 쏟아졌다. “차를 가지고 오지 않기를 잘했구나.” 수현은 나경을 만나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무엇을 물어야 할지 생각했다. 결혼 생활은 어떤지… 일본 생활은 어떤지.. 잘사는지.. 행복한지 ….. 수현은 나경에게 물어보고 싶은 이야기를 머릿속으로 정리해봤다. 하지만 이런 자신의 물음이 무슨 소용이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수현이 사는 도시는 눈이 많은 곳이었다. 눈이 내리기 시작하며 며칠씩 내리곤 했다. 수현은 눈오는 날이 좋았다. 학교를 안 가도 되었고,. 이런 날은 엄마도 하루종일 집에 있었다. 엄마는 고구마 삶거나 찐빵을 만들어 주었다. 수현은 엄마 생각이 나면 찐빵을 먹곤했다. 시큼한 막걸리가 들어간 찐빵을 먹을 때면 세상에 없는 엄마 냄새가 났다. “잠시후 여수행 새마을호가 도착 하겠습니다.” “여수행 새마을호를 이용하실 고객 여러분께서는 안전한 승강장에서 기다려 주시기 바랍니다.” 역무원의 안내 방송이 끝나고 기차가 플랫폼에 도착했다. 수현은 역 창문 너머로 나경의 모습을 찾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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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4-15
  • 침교육키즈의 생애 13편 "결혼 이혼 장애"
    교문안으로 검은색 벤츠 W-124 들어왔다. 교문을 통과한 벤츠는 학생회관 앞에 도착했다. 운전기사가 뒷 문을 열자 예쁜 여학생이 내렸다. “김기사님 첫 날 부터 늦으면 어떡해요!” “죄송합니다" 나경은 학생회관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오늘은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이 있다고 했다. 나경은 대학생이 된 자신이 너무 좋았다. 이제 나의 답답한 과거와는 결별이라고 나경은 외쳤다. “새내기 여러분 반갑습니다.” “저는 총학생회장 김문술입니다.” “당당하게 대학생이 되신 새내기 여러분!! 대학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아무도 답을 하는 사람이 없자 총학생회자 문술은 다시 이야기 했다. 여러분이 열심히 공부해서 이 대학에 들어왔지만 여러분이 한 번 생각해야 될 것이 있습니다. 새내기 여러분 이제 고등학생이 아닌 대학생이 되었어요. 이제 나만 생각하지 말고 내 주변에 소외되고 고통받는 사람들의 손을 잡아 줄 수있는 당당하고 멋진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즐거운 대학생활 하세요! 나경은 학생회관 제일 뒷 자리에 앉아 총학생회장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소외되고 고통받는 사람들이라…. 방송에 나오는 가난한 사람들 이야기 하는 것일까? 열심히 살면 누구나 부자가 되는 것 아니가? 가난한 사람에게는 가난한 이유가 있고 부자인 사람에게는 부자인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나경은 생각했다. 오리엔테이션의 2부는 각 과에서 준비한 행사가 있었다. 과학생회장과 부학생회장이 나와서 인사를 했다. 총학생회장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소외되고 고통받는 사람들의 삶을 생각하는 학우 여러분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나경은 소외되고 고통받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생각해보려고 했지만 주변에서 찾기 힘들었다. 나경은 잠시 신입생 때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다. 나경은 가끔 자신이 일본에서 소외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 사는 것과 일본에서 사는 것은 많이 달랐다. 여기는 외국이고 거기다가 일본이었다. 나경의 남편은 재일교포 3세였다. “나경씨 저는 한국 이름을 지키기 위해 많은 것을 감당해야 했었요" “그래요?” “왜요?” “왜요라니요! “일본에서 한국 이름으로 사는 것은 불편하고 힘든 일입니다.” “그런가요?” “저도 한국 이름으로 살고 있고 많은 한국인이 일본에서 한국식 이름으로 살고 있는데요? “아 그거 하고 이거는 다른 문제입니다.” “저는 여기서 태어났고 학교를 다 일본인 학교에서 다녔어요" “그런데요? “ 일본에서 한국씩 이름으로 살면 왕따 당하기 쉽다구요" “ 그건 그냥 자신이 못나서 그런 것 아닌가요?’ “아.. 그것과는 다른 이유입니다.” 영진은 학교를 다니면서 자신이 한국인 이라는 것 때문에 힘들었던 이야기를 더 하려고 했지만 나경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부질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혀 다른 곳에서 살던 사람이 여기서 살던 사람의 모든 것을 이해할 수는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영진도 같았다. 나경이 한국에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 영진도 알 수 없었던 것이다. 그가 아는 것이라고는 나경의 집이 생각보다 잘 산다는 것과 나경이 한국에서 대학에 다닐 때 학생운동을 했었다는 것이었다. 나경은 가끔 자신이 대학생 시절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다. 자신이 열열투사인 것처럼 이야기 할 때도 있었고 그래도 열심히 도움을 주었다는 이야기도 했었다. 영진의 그런 이야기를 할 때 나경의 눈빛이 달라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에서 나경의 모습은 보통의 평범한 유부녀의 모습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둘은 결혼 한지 4년이 지났지만 아이가 없었다. 처음 2년은 나경이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경은 마음이 변했을 때는 생각처럼 임신이 쉽지 않았다. 1년이 지났고 여전히 아이가 찾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또 1년이 지났다. 포기하려는 순간 아이가 찾아왔다. 건강한 남자아이를 낳았다. 하지만 3년이 지난 후에도 나경의 아이는 말을 하지 못했다. 나경의 아이는 자폐아였다. 말 보다는 손짓으로 말을 했다. 눈을 마주치지도 않았다. 나경에게 “엄마”라고 불러주지도 얂았다. 무무무무…. 으으으으 나경의 아이는 세살이 되어서야 겨우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걷기 시작하자 문제는 더 악화 되었다. 산책을 하러 나가면 아이는 홀린 것처럼 뛰어 다녔다. 스미마센.. 나경은 이 말은 입에 달고 살아야 했다. 한국인이고 장애아의 엄마 나경은 강해지려고 했지만 매일 무너졌다. 아침에 일어나면 조금만 내가 더 노력하면 우리 아이도 다른 아이들 처럼 될 것이라는 희망을 불꽃을 피우지만 저녁이 되면 다시 그 희망은 더 큰 절망이 되어 나경을 무너뜨렸다. 나경은 아이와 함께 언어치료 행동치료 인지치료를 하기 위해 하루 종일 종종 거렸다. 여기를 다니면 좀 더 좋아지지 않을까? 이런 치료를 받으면 좋아지지 않을까? 발달장애아를 치료 한다는 치료실이나 상담사를 찾아 다니는 것이 나경의 하루 일과가 되었다. 나경의 삶은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영진은 나경에게 좀 더 기다려 보자고 했다. 영진은 매일같은 교회에 나가 아이가 좋아지기를 기도했다. 나경에게도 교회에 나가서 좀 더 열심히 하나님께 기도를 하자고 말했다. “나경씨 기도를 하면 예수님이 우리 아이를 구원해주실 겁니다.” 영진은 아들이 자신의 기도를 통해 좋아질 것이라고 확신했다. “하나님은 모든 병을 낳게 해주십니다.” “우리에게 석민이를 태어난 것도 하나님의 계획일 겁니다.” 영진이 이런 말을 할 때 마다 처음에 거부 했지만 자신이 무너져 내린 다고 생각 했을 때 나경도 아이와 함께 교회에 나가기로 결정했다. 영진과 나경은 매일 교회에 나가 아이가 보통의 아이처럼 살아 갈 수 있도록 해달라고 기도했다. “우리에게 시련을 주신 만큼 행복도 주실 거야 그치?” 영진이 5살이 되었을 때 나경의 아이는 처음으로 엄마라고 이야기 했다. 나경은 처음 아이가 자신을 엄마라고 이야기 했을 때 펑펑 울었다. 하지만 그것 뿐이었다. 더 이상이 언어 발달은 없었다. “엄마..무.. 어.. “ 나경은 아이에게 물을 가져다 주었다. 아이가 8살이 되었을 때 나경은 영진과 이혼했다. 나경은 길고긴 일본 생활을 정리했다. 장애가 있는 아이를 일본에서 키우는 것은 더 이상 불가능 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경은 떠나왔던 집으로 스스로 돌아갔다. 한국에 돌아온 이후 아이는 일본에서 보다 좋아졌다. 9살이 되던 어느날 한글을 읽기 시작했다. 나경은 다시 세상을 얻은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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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4-07
  • 참교육 키즈의 생애 12편 "도쿄에서의 결혼생활"
    도쿄의 8월, 뜨거운 태양이 나경의 머리위로 지나가고 있었다. 나경은 서둘러 스타벅스 안으로 들어갔다. "아메리카노 한 잔요." 나경은 역이 보이는 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긴시쵸 역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였다. 여기서 생활 한지도 5년이 지났다. 그동안 나경은 남편과 함께 도쿄에서 살았다. 남편은 긴신초 역에서 5분 거리에 있는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다. 수현과 헤어지고 다시 돌아온 일본에서 나경은 재일 한국인과 만나 결혼했다. 나경의 아버지가 한국으로 다시 돌아 오라고 했지만 나경은 가지 않았다. 한국은 그녀에게 선택과 고민, 갈등의 땅이었다. “ 한국에는 돌아가지 않을겁니다. 전 일본에서 살겠어요!” 나경의 남편은 일본에 있는 한국 벤처기업에서 일했다. 한국 회사가 일본으로 진출하고 나서 일본 담당자가 되었다.. 함께 일할 알바생을 찾았고 나경은 남편이 일하는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했다. “나경씨 퇴근 하고 술 한 잔 해요?”라고 물었을 때 나경은 좋아요. 라고 짧게 답했다. 나경은 당장 누군가라도 만나야 했다. 그것이 지금은 남편이 아니었어도 그랬을 것이다. 수현이 아닌 다른 남자가 나경은 필요했다. 남편은 수현처럼 키가 크지도 잘생기지도 않았다. 수현과는 정 반대의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랬을 까? 나경은 오히려 좋았다. 둘은 1년의 짧은 연애 끝에 결혼했다. 결혼식 조건으로 유일하게 나경이 제안 한 것은 결혼식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나경의 남편은 나경이 왜 자신을 좋아하는지 알 수 없었다. 나경은 예쁜 여자였다. 나경의 남편 영진은 스타벅스 안에 앉아 있는 나경을 바라보면 생각했다. 저 예쁜 여자가 왜 나를 선택 했을까? “영진씨!” “여기요!” 나경이 반갑게 영진을 불렀다. 당신이 무슨 일이야? 점심 시간에…. 사무실까지 찾아오고…. 집에 있기 심심하고 당신도 보고 싶어서 왔어요! 당신도 한 잔 해요? 점심 시간이 얼마 안 되어서… 이 근처 식당도 붐비고.. 밥먹으러 가자… 그래요. 밖으로 나오자 여전한 정오의 태양이 둘을 비추고 있었다. 시간이 없으니 간단하게 먹어요. 당신 카레 좋아하잖아? 여기 카레 맛집이 있는데.. 아. 그래요. 둘은 카레라이스를 먹었다. 나경은 카레를 먹는 남편의 모습을 물끄러미 봤다. 저 사람이 수현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수현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 것일까? 나경의 멍한 눈을 영진이 보고 있었다. 저 여자 또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영진은 나경이 자신을 사랑해서 결혼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고 있었다. 나경이 같은 집안에 나 같은 남자가 맞지도 않고 자신과 나경을 비교해 봐도 자신이 너무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영진은 나경이 처음 아르바이트를 하겠다고 사무실에 들어 온 날 자신이 살면서 처음 가까이해 본 예쁜 여자라고 생각했다. 그런 여자에게 술을 먹자고 한 것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지만 일을 핑계로 만나자고 했는데 나경이 흔쾌히 그 제안을 받아준 것이다. 그리고 둘은 결혼까지 했다. 영진이 교회에 가자고 했을 때도 나경은 순순히 따라 갔었다. 영진이 다니는 한인 교회는 교인이 50명이 안 되는 작은 교회였다. 영진은 절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교회에서 있을 때 영진은 평화를 얻었고 마음은 고요했다. 나경은 영진의 권유로 교회에 따라가고 있지만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교회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좋았다. 교회가 끝나면 함께 밥을 해먹거나 차를 마셨다. 함께 김치를 담기도 했다. 지루한 일본 생활에 그나마 위안이 되는 일이었던 것이다. 영진은 이런 나경을 보면 안심이 되었다. 그래서 나경이 교회에 가지 않는 다고 하면 영진은 화를 냈고 나경은 결국 다시 교회에 갔었다. 나경도 가다보니 익숙해졌다. 익숙한 것은 편안한 것이다. 편안하고 무언가 선택하지 않는 삶 그것이 나경이 일본에서 구원한 삶이었다. 한국은 선택해야 했고 선택에 책임을 져야 했다.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아도 불편하지 않는 삶이 나경이 원하는 삶이었다. 아니 지금은 그래야 했다. 수현을 떠나 일본에 왔던 것은 자신의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 선택은 선택하지 않는 삶을 위한 선택이었던 것이다. 만약 한국에서도 선택하지 않아도 되는 삶이 있었다면 나경은 일본에서 살지 않았을 것이다. 이것은 어쩌면 나경이 받아 드린 그 하나의 사상 때문 이었을 것이다. “어딘가에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혼자 행복한 진정한 행복이 아니다"라는 것 바로 이 소박하고 단순한 생각을 마음속으로 받아들인 그날 그 경험이 없었다면 나경은 부유한 집안의 딸로 편안하고 아늑한 삶을 선택 할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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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3-31
  • 참교육 키즈의 생애 11편 "운명"
    나경은 수현이 잡혀가는 모습을 봤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경은 이 상황이 모두 자신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수현을 집회에 데리고 다니지 말았어야 했는데 나경은 자신이 고등학생인 수현을 집회에 만난 것 때문에 고통스러웠다. 지숙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자신을 원망했다. “수현 선배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나경선배 지숙은 흐르던 눈물을 감추며 말했다. 나경은 자신을 원망하면 대답했다. “구속 될 거야…. 수현은” 수현은 경찰서에 끌려가 조사를 받았다. 집시법 위반과 화염병 소지죄가 붙었다. 수현은 경찰 유치장에서 10일 보냈고 결국 검찰에 송치되었다. 그날 잡힌 학생들은 수현 말고도 50여 명이나 되었지만, 검찰에 송치된 것은 수현이 유일했다. 검찰은 수현에게 집시법 위반과 화염병 소지죄로 최고형인 3년 형을 구형했다. 법원은 초법인 점을 고려해야 징역 2년 형을 선고했다. 나경은 아버지에게 수현이 징역형을 면해 달라고 이야기 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들어주지 않았다. 대신 2년형을 1년형으로 감형 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항소심에서 수현은 감형 되었다. 그리고 다시는 수현을 만나지 말라고 이야기 했다. 나경은 수현에 감옥에 가자 도쿄로 돌아갔다. 남은 학업을 하기로 했다. 다시 한국에 돌아올 생각이 없었다. 수현을 구속하는 한국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자신도 싫었다. 자신이 수현을 그렇게 만든 것 같은 죄책감이 그녀를 더 이상 한국에 머물게 할 수 없었다. 다시는 수현을 만나지 말아야 해…. 나를 만나면 수현은 더 불행해질 것이라고 나경은 생각했다. 지숙은 군대 2년을 기다리고 만난 수현이 복학하자마자 감옥에 가 버리자 더 이상 수현을 기다리지 않기로 했다. 더는 인연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니 수현과 함께 사는 것이 힘들 것이라고 체념했다. 지숙은 이제 졸업을 해야 하고 취업해야 한다. 더 이상 수현만 바라보고 살 수도 없었다. 그녀 앞에도 해야 하고 헤쳐 나가야 할 현실이 있었기 때문이다. 강진은 그날 수현에게 머리통을 맞고 기절했다. 강진을 진압하려고 했던 신병은 강진이었다. 강진은 첫 집회를 제외하고는 한 번도 집회에 참여하지 않았다. 언제나 뒤에서 학생들을 조직하는 일을 조용히 해왔다. 그러다 군대에 갔고 전경으로 차출되었다. 그가 배치받은 곳은 자기 고향이었다. 그날 수현이 앞에 있는 것을 강진은 봤다. 강진은 어떻게든 수현을 지켜주고 싶었다. 하지만 강진의 분대가 수현을 잡으라는 명령을 받았다. 강진은 수현을 어떻게든 도망치게 하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결국 강진은 수현이 휘두르는 쇠 파이프에 맞고 기절했다. 수현은 쓰러진 전경을 끌고 가는 전경들이 강진의 화이바를 벗길 때 그 전경이 강진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수현은 그래서 더 이상 항소하지 않았다. 수현도 교도소에 나오면 노무사가 되어 볼 생각을 했다.학교에서 내가 할 일은 끝났다.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수현은 노무사 이외에는 할 것이 없었다. 지숙에서 노동법 책을 부탁했다. 책을 펼치자, 지숙이 쓴 글이 보였다. 수현 선배! 그동안 고마웠어요" 생활 잘하세요. 안녕 수현은 아버지가 산재 처리를 받았다면 후유 장애와 산재로 발생한 질병은 회복될 때 까지 병원비가 나온다는 사실을 노동법 책을 보고 알았다. 더구나 산채 처리를 받았다면 산재로 인해 일을 하지 못하는 기간 동안의 임금도 받을 수 있다는 사실도 알았다. 노동운동을 한다고 했지만 본인이 노동법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다는 것이 후회했다. 출소후 수현이 학교로 돌아 왔을 때 학교에는 수현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이제는 교수실이 되어 버린 과학생회실, 텅 빈 서클룸, 먼지 쌓인 사회과학 책들…. 주차장이 되어버린 학생회관 앞 민주 광장, 대자보 대신 붙어 있는 토익 학원 홍보안내문…. 학교엔 지숙도 나경도 강진도 없었다. 지숙은 고향 여수에서 공무원이 되었다. 나경은 일본에서 결혼했다. 강진은 여전히 전경으로 복무 중이다. 수현은 지숙이 선물해 준 노동법 책을 들고 도서관으로 향했다. 수현이 도서관에서 나오자 차가운 가을바람이 불었다. 도서관 앞엔 코스모스가 피어있었고, 하늘은 푸르렀다. “벼가 익을 때구나….” 함께 논일을 마치고 아버지와 함께 막걸리를 마시던 생각이 났다. 수현을 바라보던 아버지의 따스한 눈길이 그리웠다. 학생회관 앞 공중전화에 전화카드를 넣었다. 엄마! 저 지금 집에 가려고요. 두시 차에요. 수현이 고향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 문화예술
    • 연재소설
    2025-03-25
  • 참교육키즈의 생애 10편 마지막 전투
    도쿄의 봄은 매화로 시작해서 벚꽃으로 이어졌다. 나경은 일본에서 생활이 즐거웠다. 해야 할 일이 없고 하고 싶은 일도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행복했다. 해야 할 일이 없다는 것만큼 좋은 것은 없었다. 학교 공부가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공부를 잘해야 할 이유도 없었다. 딱히 하고 싶었던 공부도 아니고 관심이 가는 분야도 아니었다. 그저 아버지가 가라는 과에 입학했고 그저 그런 학점을 받았다. 나경의 아버지는 나경이 도쿄에 있다는 것이 맘에 들었다. 나경은 종종 군대에 있는 수현에게 편지를 써볼까 생각했지만, 하지 않았다. 벚꽃이 피면 수현과 함께 걸었던 그길과 그시절이 생각났지만, 편지를 보내는 것은 수현에게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경은 일본에서 남자 친구를 만났다. 그도 나경처럼 학생이었다. 그들은 곧 동거를 시작했다. 도쿄에서 한 시간 정도 거리에 있은 니시하라이근처였다. 그들은 쉬는 날이면 아라강을 산책했다. 주말에는 많은 아이들이 야구를 했고 러닝을 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한국의 치열함과 다른 일본 생활의 나른함이 주는 평화가 좋았다. 역사 민중 독재 권력 해방 이런 단어들과 싸울 필요가 없었다. 역사의 흐름에서 비켜서 있는 지금이 나경은 좋았다. 아라강은 이타마현에서 발원하여 하류에서 스미다강(隅田川)과 나뉘어 도쿄만으로 흐르는 길이 173km 강이다. 일본에서는 강폭이 가장 넓은 강이었고 수도 도쿄로 흘러 태평양으로 흘러갔다. 서울의 한강 같은 강이었다. 나경은 여기서 아이를 낳고 아이가 크면 야구하는 아이를 보러 오고 자전거를 타고 장을 보고 때로는 조깅하거나 이자카야에서 남편과 술 한잔하는 평범한 생활을 꿈꿨다. 그래도 될 것 같았다. 남자 친구는 일본인이었다. 나경은 소심하지만, 배려심 많은 그가 좋았다. 하지만 나경의 아버지는 나경이 일본 사람과 결혼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아버지의 말을 거부하지 못하는 나경은 결국 그 남자와 헤어졌다. 그녀는 남자 친구와 헤어지고 나서 다시 수현이 생각났다. 한국으로 돌아가 수현을 만나야겠다고 나경은 생각했다. 군대에서 제대한 수현은 1년 동안 공사판을 전전했다. 그리고 학교로 돌아가자마자 다시 학생운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집회에 참여하는 학생들은 별로 없었다. 대부분은 집회장이 아니라 도서관을 찾아갔다. 한때 자신의 모든 것으로 생각하고 목숨이라도 버릴 수 있을 것이라는 신념이나 가치는 시간이 지나면 귀퉁이에 쌓여 있는 먼지 처럼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현은 달랐다. 노태우 정권이 끝난 학내 분위기는 더 이상 학생운동이 필요한가라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독재정권이 막을 내렸고 김영삼 정권이 들어선 시기였다. 김영삼 정권은 학생운동을 효율적으로 막기 위해 과거의 방법에서 다른 방법을 선택했다. 바로 학부제였다. 학생운동의 기본이 되는 것은 학생회였다. 신입생이 들어오면 학생회를 찾아오기 마련이고 학생회 활동이나 엠티를 통해 친해지게 되고 그러다가 집회에 참여하게 된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운동권 학생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김영삼 정부가 만든 5.31일 교육개혁안으로 학과가 사라지고 학부제로 전환되면서 신입생들에게 학생회가 사라지게 되었다. 결국 학생회 역시 힘을 잃게 만드는 효과가 있었던 것이다. 수현은 학부제를 막기 위해 투쟁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대안이 없었다. 수현이 처음 대학에 들어왔을 때 학생운동을 하지 않던 학생들도 운동권을 응원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하지만 제대하고 복귀한 학교는 더 이상 그런 응원의 분위기가 아니었다. 과거처럼 거리투쟁이 있던 것도 아니었다. 수현은 학생회실 캐비넷의 자신이 집회 때마다 들고 다녔던 쇠 파이프가 사라졌다는 것도 알았다. 더 이상 그런 것들이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선배 아직도 학생운동 같은 것을 해요?” 후배들의 이런 질문에 수현은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수현은 더 이상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느껴졌다. 그런 날들이 이어 질 때 나경이 수현을 찾아왔다. “수현아 오랜만이야" “잘 있었지!" 나경은 어제 떠났다가 돌아온 사람처럼 말했다. 수현은 오랜만에 나경을 만난 것이 좋았다. “선배 잘살았어요?” “어, 너는" “네 저도 군대 제대하고 뭐 이렇게 살고 있어요.” “지숙이도 잘 있어?” “아… 네 지숙이도 잘 있죠?” “우리 같이 술 한잔하자” 그날 밤 지숙과 나경 수현 세 사람은 함께 술을 마셨다. 그들은 끝없이 술을 마셨다. 각자 해야 할 말이 있었지만, 하지 못했다, 지숙은 나경에게 물어야 할 말이 있지만 묻지 못했다. 수현은 두 사람 사이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맥주에서 소주로 이어지는 술자리는 끝을 모를 그들의 관계처럼 길고 깊었다. 다음날 새벽 수현은 일찍 잠에서 깨었다. 오늘 오후에 집회에 있었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하는 가두집회였다. 총학생회는 다시 한번 학생운동의 불꽃을 살려보기 위해 가두 투쟁을 결정했다. 오후 1시 학생회관 앞에서 집회가 시작되었다. 대형 스피커에서 민중가요가 학교 전체에 울려 퍼졌다. 이어서 문선대의 공연이 있었다. “바위처럼 살아가 보자 모진 비바람이 몰아친대도 어떤 유혹의 손길에도 흔들림 없는 바위처럼 살자꾸나 ~~~” 문선대의 공연이 끝나자 풍물패들의 힘찬 연주가 시작되었다. 집회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학생회장과 투쟁국장의 연설이 시작되었다. “오늘 우리는 다시 투쟁의 길로 나서려고 합니다.” “그 동안 움츠렸던 우리 청년 학생들의 각오를 다시 보여줄 때입니다,” “남한 사회의 문제는 하나도 해결된 것이 없습니다" “김영삼 정부는 여전히 민주적이지 않고, 미군은 여전히 한반도에 주둔하고 있습니다.” “김영상 정부 타도하고 평화통일 이룩하자" 여기저기 집회가 그리웠던 고학년들과 처음 집회에 참가해 본 신입생들 이렇게 300여 명의 학생들이 학생회관 앞 민주 광장을 꽉 채웠다. 수현은 전날부터 집회에 사용할 화염병을 만들었다. 그리고 오후 2시 수현과 사수대 그리고 학생들은 교문을 나섰다. 경찰과 전경 그리고 백골단이 교문 앞을 지키고 있었다. 수현은 언제나처럼 제일 앞 자리를 잡았다. 점점 시들어가는 학생운동의 마지막 숨통을 끊어 버리기라도 하듯 전경과 사복 체포조, 페퍼포그까지 대동해 교문 앞을 꽉 막고 있었다. 총학생회는 여러 번 집회 신고를 했지만, 경찰은 허용하지 않았다. “학생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불법집회를 하고 있습니다,” “시민들의 안전과 교통 통제를 위해 교문 밖으로 나오지 않기를 바랍니다" “민주 경찰은 여러분과 싸우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안전한 학내에서 집회하시기를 바랍니다,” “만약 교문 밖으로 나오게 되면 경찰은 여러분을 즉각 해산시키도록 하겠습니다.” 경찰의 말이 끝나자마자 비웃듯이 사수대가 교문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노동운동 탄압하는 김영삼 정부 물러가라" 수현이 맨 앞에서 구호를 외쳤다. 지숙은 멀리서 수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선배는 언제나 같구나.. 지숙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경은 자신이 떠날 때와 변하지 않은 한국 현실이 느껴졌다. 도쿄에서 보내는 동안 나경은 학생들이 집회하는 모습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일본이라고 해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자민당 독재라고 해야 할 만큼 일본은 2차대전 패망 후 자민당 일당 독재였다. 다른 정권이 정권을 잡은 적도 없다. 일본의 정치는 자민당으로 시작해서 자민당에 의한 자민당의 정치였다. 하지만 68년 전공투 이후 일본에서 학생운동은 사라졌다. 하지만 나경은 이런 상태가 좋았다. 해야 할 일이 없고, 선택해야 할 일이 없다는 현실이 좋았다. 무엇을 선택하지 않아도 아무렇지도 않은 것, 시대의 현실을 외면해도 미안하지 않은 것이 좋았다. 한국에서 나경은 항상 선택해야 했다. 지숙은 수현이 오늘 집회에 나오지 않기를 바랐다. 전투경찰이 교문 앞에서 학생들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보통은 학생들이 교문 100미터 정도 나오는 것은 적당히 봐주고 시작했다. 이 정도 거리는 집회 신고를 하면 대부분 받아 주었다.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교문 앞에서부터 막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들만의 나름의 유효거리가 있었던 것이다. 거기서 더 나오면 전경들이 밀려오고 그렇게 되면 뒤로 갔다가 나왔다 가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다가 잠시 쉬면서 공연도 하는 패턴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전경들은 학생들이 교문을 나오자 마자 입구부터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오늘 전경들이 이상해요” 수현도 오늘 전경들의 행동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학생 지도부는 대오를 뒤로 미루어 교문 안으로 들어와 회의를 시작했다. 총학생회장 수철은 대오를 뒤로 미루자고 했다. 오늘 밀리면 내일도 없다고 투쟁국장이 말했다. 수현은 자신이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한 번 밀어 보고 적당한 선에서 오늘 집회를 마무리 하자.] 100미터가 안 된다면 50미터라도 밀고 나서 그 자리에서 집회를 이어가자고 했다. 오늘 처음 집회에 온 신입생들도 있는데 이렇게 밀린다면 체면이 서지 않는다는 것이다. “처음 집회에 나온 신입생들은 뒤로 가세요. 선배들이 앞에서 뚫어 보겠습니다.” 수현은 마이크를 잡고 학생들에게 이야기했다, 멀리서 수현을 지켜보는 눈이 있었다. 경찰 수사과장은 김충선은 학교 앞 5층 빌딩 옥상에서 수현을 망원경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야…. 오늘 저놈 좀 놈 잡아" 수사과장은 수현을 잡고 싶었다. [저놈이 오래전에 우리 전경 아이 하나를 죽일 뻔한 놈이잖아….군대 가서 안 보이더니 … 다시 쳐 나왔네. 저놈은 오늘 반드시 잡아야해..]다시 교문을 열고 사수대가 나오기 시작했다. 전경들이 바로 전과는 다르게 뒤로 살짝 빠지기 시작했다. ‘자!! 우리 한 번 쭉 밀고 나가봅시다" “통일운동 가로막는 김영삼 정권 타도하자!!” 학생들 300여 명이 전경들을 밀고 나가기 시작했다. “화염병 줘!” 전경들은 수현을 앞에 두고 쥐 앞에 고양이처럼 이야기했다. “야 신병 네가 잡아봐….”“너도 대학 때 운동권이었다며….” “잘 되었네” 신병 하나를 전경들이 수현 앞으로 밀었다. 수현은 갑자기 전경이 자신을 잡으려고 앞으로 나오자 전경의 전투모를 내리쳤다. “윽"하고 전경이 뒤로 밀려났다. “야. 이 자식아 이것도 못 해….” 그 순간 수십 명의 전경이 수현을 공격했다. 수현은 질질 끌려갔다. 수현의 하얀 티셔츠가 피로 물들기 시작했다. 매주 월요일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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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3-18
  • 참교육 키즈의 생애 9편 선배 머리 깎으니까 진짜 군인 같은데요
    수현은 3학년에 진학하지 않았다. 수현은 나경이 떠나고 난 이후에 학교에 관심이 멀어졌다. 3학년에 진학하지 않고 군대에 가기로 했다. 논산 훈련소로 떠나는 수현을 마지막까지 바래다준 것은 지숙이었다. “선배 머리 깎으니까 진짜 군인 같은데요?” 지숙은 신나는 일이라도 생긴 것처럼 웃으면서 말했다. “너 선배가 입대하는 것이 그렇게 좋냐?” 뭐. 어차피 해야 할 일 아닌가요? “선배 좋아하는 후배들도 많고 이제 만나지도 못하니까” “저는 그게 더 좋은데요.” “선배 너무 외로워하지 마세요.” “제가 매주 편지 보낼게요.” “전 왠지 선배에게 편지 쓸 생각을 하니까 기분이 좋은데요.” “매일매일 제 편지 기다리면서 힘내세요.” 수현은 지숙의 그런 행동이 밉지 않았다. 어차피 가야 할 곳이라면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가는 것이 좋다고 수현은 생각했다. 더 이상 학교에 있으면 수현은 더 괴로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수현이 생각한 학생운동과 직접 경험해본 학생운동과는 차이가 컸다. 노동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수현은 통일운동만 하는 총학생회나 학생회가 맘에 들지 않았다. 통일이라니…. 북한은 북한대로 자신의 주체성을 가지고 살면 되고 남한은 근본 문제는 통일이 아니라 민주주의나 노동문제나 농민 문제에 있다고 수현은 생각했다. 논산 훈련소 신병교육대에 들어간 수현은 4주 훈련을 마치고 부산 69사단에 배치되었다. 나경과 함께 걷다가 본 그 부대였다. 2년 6개월의 군 생활은 수현에게 별다른 기억을 남기지 않았다. 하루하루가 지옥처럼 느껴지기도 했지만, 사회에서 격리되어 자신이 뭔가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해방감이 맘이 편해졌다. 복종의 즐거움인가? 수현의 고참이나 소대장, 중대장. 대대장 누구누구의 지시대로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하고…. 매번 시키는 대로 행동하는 군대 생활이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주는 묘한 해방감에 익숙해졌다..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은 무력감과 함께 선택의 고민이 사라지는 해방감도 준다고 수현은 생각했다. 매주 수요일쯤 도착하는 지숙의 편지도 수현의 군 생활을 위로해 줬다. 편지는 별 내용이 없었다. 현재의 학교 상황 지숙의 생활 그리고 안부, 매번 비슷한 이야기를 전해주었지만 매일 같은 일을 하는 수현에겐 편지가 오는 날에 대한 기대감과 제대할 날이 가까워지는 것만이 유일한 희망이 되어주었다. 지숙은 매주 수현에게 편지를 보내는 일을 즐겼다. 편지지를 고르는 일, 그리고 정성스럽게 글씨를 써가는 일이 지숙에게는 수현과 자신을 이어주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행위의 반복이 사랑을 키워가는 과정이라고 지숙은 생각했다. 수현은 경계근무를 서는 날이면 바다를 보며 지숙과 나경에 대해 생각했다. 나경은 일본에서 무엇을 하는 것일까?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인가? 도쿄의 생활은 어떤 것일까? 지숙은 또 어찌 보내는 것일까? 첫 휴가 때 만난 지숙은 예전과 별다르지 않았다. 강진의 문학 써클에 여전히 가입되어 있었지만 깊이 활동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강진은 여전히 집회에는 나가지 않았다. 강진은 벌써 3학년이 되었고 학내에서 신망 있는 선배가 되어 있었다. 수현은 여전히 세상이 맘에 들지 않았지만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알 수 없었다. 그날 부대에 복귀하기 전날 밤 지숙과 수현은 함께 술을 마셨고 함께 여관에 갔다. 수현이 지숙의 몸을 만졌을 때 지숙은 수현의 손을 거부하지 않았다. “선배 나 사랑하지?” “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새벽에 여관을 나와 콩나물국밥을 먹고 헤어졌다. 수현은 지숙과의 관계 이후에 지숙을 사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경과 함께 밤을 지새운 날 수현은 나경을 보내줘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아련한 마음만큼은 보내지 못했다. 그날 밤 나경과 관계했다면 수현은 나경을 사랑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나경과 자신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나경은 그날 밤 수현과 자신이 더 이상 만나지 못하리라 생각했다. 아니 더 이상 만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경은 수현은 사랑했지만, 아버지가 도쿄에 가라고 할 때 거부하지 않았다. 오히려 좋았다. 그래서 더는 수현과 자신이 더 깊은 관계가 되지는 않으리라 생각했다. 수현이 군대 있는 동안 지숙은 자주 면회를 왔다. 밥을 먹고 술을 먹고 여관에 가서 매번 두세 번 관계했다. 매일 같은 패턴이었고 지숙은 수현이 여전히 좋았다. 수현도 지숙이 좋았고 사랑한다고 생각했다. 수현이 길고 긴 군 생활을 마치고 학교로 복귀했을 때 강진은 군대에 입대했다. 매주 월요일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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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3-10
  • 참교육 키즈의 생애8편 나경과 수현은 모텔 앞에 멈췄다.
    나경이 수현에게 찾아온 것은 9월의 첫 주말 아침이었다. 나경은 불안해 보였다. “수현아, 우리 여행갈까?” “여행요….” “갑자기 무슨 여행을 가요” “방학도 아닌데요.” “그냥 이 선배가 바다가 보고 싶어서 그래!” “그래요, 그럼" “잠깐 하루만 다녀와요.” “그래.”수현은 나경의 갑작스러운 모습이 이상했지만, 나경 선배의 말이라면 수현은 언제나 잘 들어주었다. 나경은 오늘 여행을 수현과의 마지막이 되리라 생각했다. 나경은 내일 다른 곳으로 떠난다. 나경은 아버지의 권유로 일본 유학을 떠나기로 했다. 나경의 아버지는 일본 동경대학을 졸업했다. 일본 문부성 장학금을 받고 동경 대학을 나온 나경의 아버지는 나경도 도쿄로 떠나기를 바라고 있었다. 나경은 아무에게도 이 사실을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동안 자신이 했던 이야기와 행동들이 모두 위선으로 보일까 두려웠다. 하지만 수현에게는 말하고 싶었다. 여름이 끝나가는 9월의 해운대 바닷가에 사람이 많지 않았다. 수현과 나경은 철이 지난 해운대와 동백섬을 말없이 걸었다. 수현은 약간 들떠 보이기는 했지만 나경의 침묵이 낯설어서인지 쉽게 말하지 않았다. “선배 무슨 일 있어요?” “일은 아무 일도 없어….” 나경은 속마음을 말하고 싶었지만 말할 수 없었다. 나경은 내일 오전 나리타공항으로 떠난다. 대한항공 오후 4시 편이었다. 이제 한국을 떠나려면 24시간도 남지 않았다. 수현과 나경은 해운대에서 광안리까지 걸었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상쾌했다. 수영만의 가득한 컨테이너와 멀리 군부대 시설들이 보였다. 수현아, 너도 곧 군대 가야겠구나? “그래야지요.” “돈도 없는데 적당한 때 갔다 오려고요" “선배는 가고 싶은 곳 없어요?” “나… 어…” 나경은 마음을 들킨 것 같았다. “우리 오늘 바다에 왔잖아….” 멀리 광안리 유원지의 바이킹 배가 보였다. “선배 우리 저거 타 볼래요?” “아. 나는 좀 무서운데" “재밌잖아요” 수현과 나경은 바이킹 배에 올라탔다. “선배 제일 끝이 제일 무서운 것 알죠?” “우리 저 끝에 앉아요?” 손님이라고는 나경과 수현 그리고 가족으로 보이는 서너 명 뿐이었다. “끼익.. 하고 배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나경은 수현의 손을 꼭 잡았다. 바이킹 배는 서서히 왕복 운동을 시작하더니 아래로 쏟아져 내리듯 떨어졌다. 아… 윽… 나경은 소리를 질렀다. 그럴 때마다 수현의 손을 더 꼭 잡았다. 수현은 이 정도로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태연해 보였다. 수현은 나경이 자기 손을 꼭 쥐고 있다는 사실이 기분이 좋았다. 나경은 거의 죽을 표정을 짓고 있었다. “선배 멀리 보지 말고 눈감고 고개를 숙이고 아래를 보세요.” “그러면 좀 나아요.” 나경은 기계가 멈추자 살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내려왔다. 어느새 어두워 지기 시작한 광안리 바닷가엔 삼삼오오 모여 술잔을 기울이거나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이 보였다. “비바람이 치던 바다.. 잔잔해져 오면~~” 수현과 나경은 광안리 해변으로 길게 뻗은 도로를 걸었다. 청새치 모양의 간판이 걸려 있는 술집이 보이자, 나경과 수현은 말없이 그 술집 안으로 쓰러지듯 들어갔다. 술집 벽면에는 커다란 청새치를 잡아 올린 사진이 보였다. 수현은 “노인과 바다"를 생각했다. 노인인 잡은 것이 청새치였을 것이라고 수현은 생각했다. 소설을 쓰는 것은 깨어있으면서도 꿈을 꾸는 것이라고 했었다. 수현은 가끔 자신이 꿈을 꾸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많은 사람들이 걱정없이 행복하게 사는 꿈, 가난 때문에 꿈을 포기하는 사람이 없는 나라, 돈 때문에 비겁하게 고개 숙이지 않아도 되는 세상, 자유나 민주 같은 것을 위해 목숨을 걸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수현은 꿈꾸고 있었다. 이것은 그냥 꿈인 것일까? 애써 밀려왔다 다시 밀려가는 파도처럼 수현의 싸움도 역사의 한 귀퉁이에서 울리는 작은 외침에 불과한 것인가? 그것을 위해 어디까지 해야 하는 것일까? 수현은 늘 고민했다. 나경은 내일 비행기에 타려면 몇 시에 부산에서 서울로 가야 하는지를 계산했다. ‘곧 떠나야 해" 지금 아니면 늦을 거야. 나경은 입에서 맴돌기만 한 말을 꺼내려다가 맥주와 함께 삼켰다. 수현에게 뭐라고 말해야 할까? 나경은 수현이 좋았다. 하지만 일본에서 공부를 마치려면 4년이 걸릴지 5년이 걸릴지 알 수 없었다. 알 수 없는 미래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만큼 허망한 것은 없다고 나경은 생각했다. 하고 싶은 말은 미궁 속으로 사라지고, 하지 않아도 되는 말들은 입으로 나와 담배 연기와 함께 허공에 맴돌았다. 테이블 위로 술병은 하나씩 하나씩 늘어나고, 감자튀김은 눅눅하게 식어갔다. “영업시간이 끝났는데요?” 식당 종업원의 말을 듣고 시계를 보니 12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술집에 나오자, 광안리 바닷물이 방파제 바로 앞까지 와있었다. 철썩철썩~~~ 파도 소리가 들려왔다. 나경은 이제 이 바다를 건너 일본으로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광안리 바다에는 술을 먹는 사람들이 술집에 들어갈 때보다 많아 보였다. 나경과 수현은 적당히 취했다. 나경은 모텔 앞에 멈췄다. “수현아 우리 많이 취했다. 우리 여기 들어가서 잠시 쉬자.”수현은 다른 말을 잠깐 생각했지만, 나경이 이끄는 데로 모텔 안으로 들어갔다. “304호입니다,” 엘리베이터 계단에서 수현과 나경은 서로의 얼굴을 보지 않았다 . 문이 열리고 딩동 소리와 함께 문이 닫혔다. 3층 버튼은 나경이 눌렀다. 나경이 모텔 키를 돌리고 문을 열었다. “수현아, 씻어" 네. 수현은 욕실로 들어갔다. “어떻게 해야 하나. “수현이 나오자, 나경이 들어갔다, 수현은 침대 밑에 이부자리를 깔고 누웠다. 나경 선배가 나오기 전에 잠들자고 생각했다. 나경이 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수현은 잠자는 척했다. “벌써 잠 들었나….” 아직 말하지 못했는데, 나경은 잠든 수현의 얼굴을 바라봤다. 고등학교 때 수현의 얼굴이 떠올라 지금 모텔에 함께 있는 둘의 모습이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수현을 만나지 말았어야 했어. 그랬다면 수현이 이 학교에 들어오지도 않았을 것이고 학생운동을 하지 않았을 것인데. 나경은 그때 일이 후회되었다. 나경은 침대에 누웠다.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았다. 수현아…. 라고 이름을 불렀지만, 수현은 잠든 척했다. 수현의 어깨를 흔들었다. 수현은 모른척 했다. 잠든 사람은 깨워도 잠든 척 하는 사람은 깨우지 못한다고 했다. “깊이 잠들었구나…. 수현아! 나…. 내일 떠나…. 나를 잊어줘" 나경은 이야기했다. 이렇게라도 이야기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수현은 나경이 하는 소리를 듣고 있었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렇구나.. 나경 선배는 내일 떠나는구나…. 나경은 수현이 잠든 옆에 자리를 폈다. 수현 옆에 나란히 누웠다. 수현은 손을 잡았다. 따뜻했다. 수현은 손을 잡아 나경은 자신의 가슴 위로 옮겼다. 수현은 나경이 하는 데로 있었다. 나경 선배 잘 떠나요. 수현은 속으로 말하며 고개를 돌려 손을 뺐다. 나경은 수현 옆에서 밤을 새웠다. 새벽이 오자 나경은 말없이 모텔을 빠져 나왔다. 그리고 그날 오후 인천에서 나리타 공항으로 나경은 먼 길을 떠났다. 수현도 잠을 자지 않았다. 나경을 붙잡고 싶은 마음과 그냥 있어야 한다는 마음 그리고 나경을 안고 싶은 마음과 그러면 안 된다는 마음이 그를 밤새 괴롭혔다. 빨리 새벽이 오기만을 수현은 기다렸다. 모텔 창문 커튼 사이로 희미한 새벽빛이 수현의 머리를 비추었다. 나경이 조용히 모텔을 빠져나가는 것을 수현은 바라보고 있었다. 수현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자신의 미래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나경에게 부담 주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수현은 88담배에 꺼냈다. 모텔방의 라이터를 찾아 불을 붙였다. 수현은 담배를 깊게 빨더니 입안에 한참을 담고 있다 '후' 하고 뱉었다. 하얀 담배 연기가 나경처럼 흩어져 사라졌다. 나경이 떠난 새벽 바다를 수현은 걸었다. 밤을 지새운 사람들이 해장술을 먹고 있었다. 떠난 나경이 벌써 그리웠다. 붙잡지 못하는 자신이 미웠다. 하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사실이 더욱 그를 비참하게 만들었다. 매주 월요일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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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3-04
  • 참교육 키즈의 생애 7편 선배랑 지숙이랑 사귀는 사이죠?
    강진은 더 이상 집회에서 보이지 않았다. 누나와 약속했기 때문이다. 몇 번 집회에 나갔다가 누나를 만났기 때문이다. “강진아. 너 집회 계속 나오면 누나 죽어버린다.”이 말을 듣고 더는 집회에 더 이상 나올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학생운동을 그만둔 것은 아니었다. 강진은 여전히 서클 활동을 하고 있었다. 강진은 통일운동을 하고 있었다. 강진은 남한은 미 제국주의의 신식민지에 불과하고 우리 사회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반미투쟁과 통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미국이 물러나고 통일이 되면 남한 사회의 모든 문제는 해결된다.” 이것이 백만 청년 학생이 해야 할 임무고 사명이다. 강진은 자주적 통일과 반미를 위해 최선을 다하기로 마음먹었다. 매일 후배들을 만나 친하게 지냈고 후배들과 친해지면 종종 자기 서클이나 세미나에 데리고 나갔다. 지숙은 강진과 친했다. 수현 선배가 이야기하는 것은 너무 어렵고 뭐가 뭔지 모르겠다고 지숙은 생각했다. 그래서 그런지 강진 선배가 하는 통일운동이 더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지숙은 수현 선배에게 이런 말을 하지는 않았다. 강진도 이런 지숙이 맘에 들었다. “지숙아 우리 이번에 서클 엠티가는데 함께 안 갈래” 강진이 이렇게 말했을 때 지숙은 거절하지 못했다. “네” 지숙은 강진이 속해 있는 해방문학 서클 회원들과 강촌으로 엠티를 떠났다. 2박 3일간 지숙은 써클 선배들과 함께했다. 지숙은 서클 선배들이 맘에 들었다. 저녁마다 모닥불을 피우고 새로 배운 민중가요를 불렀다. 통일운동이 이런 것인가.. 함께 어울리고 노래 부르고 통일 기원제도 지내고…. 수현은 강진과 함께 지숙이 엠티를 떠난 것을 후에 알았다. “지숙아.. 너 강진이와 함께 엠티갔다며? “네.”“좋았어…. 네.” 지숙은 쉽게 말했다. “강진 선배는 수현 선배랑 절친이잖아요.” “그런 강진 선배가 부탁해서 갔다 왔어요.” “그랬구나..”수현 선배가 강진 선배가 화상 입었을 때 매일 부축하고 다녔다고 소문이 자자 하던데요. 그런 강진선배 부탁이라 거절하기 어려웠어요. “왜요?” 가면 안 되나요? 아니야…” 수현은 지숙에서 더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더 할 수 없었다. 신입생인 지숙에게 더 이야기 해봐야 좋을 것이 없다고 수현은 생각했다. 지숙은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일까? 사실 지숙은 수현이 엠티에 갔다 왔다고 했을 때 화를 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수현의 확실한 마음을 확인하고 싶어 엠티에 따라가기는 했지만, 사실 엠티 내내 재미는 있었지만, 늘 마음 한편에 수현이 맘에 걸렸다. “수현 선배가 알면 싫어하겠지….” 싫다고 이야기하면 왜 그러냐고 물어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수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지숙은 화가 났다. 뭐라고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라고 묻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수현 선배는 우리 관계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나 혼자 짝사랑하는 것일까? 지숙은 이런저런 생각으로 마음이 불편했다. “저…. 선배 저 강진 선배랑 밥을 먹기로 했어요. 먼저 가볼게요. 어. 그래 맛있게 먹어….강진은 지숙에게 가지 말라고 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래. 연애는 무슨 연애야. 하고 수현은 마음을 다그쳤다. 수현이 경제학과 건물을 나올 때 멀리서 검은 먹구름이 밀려왔다. “비가 오겠는데 수현은 학생회실에 있는 우산을 챙겨서 다시 건물 앞을 나왔다.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건물 앞에는 후배 미정이가 보였다. 오랜만이다. 비 오는데 우산 없어? ”네“ ”그래“ 어디 가는데…. 저요, 학생회관요. 학생회관이면 여기서 20분은 걸어야 하는데 선배도 학생회관 가는데 우산 함께 받고 가자.네….비가 거세게 내렸다. 수현은 미정 쪽으로 우산을 기울였다. 수현의 어깨가 비에 젖어 있었다. “선배 다 젖겠어요. 아. 괜찮아.. 이미 한 번 젖은 사람은 두 번 젖지 않는 법이거든.. 그리고 네가 자꾸 멀어지니까. 그렇지. 선배! 선배 쪽으로 기울여야 제가 선배에게 붙어서가죠? 어…. 야. 무슨 말이야….” 선배 혹시 다음에 여자랑 함께 우산을 쓰고 갈 일이 있으면 선배 쪽으로 우산을 기울이세요. 그래야 딱 붙어서 가죠.야. 너 연애고수구나….저요. 저도 좋아하는 사람이 있지만, 그 사람은 제가 자길 좋아하는지 전혀 모르는 것 같은데요. 그래…. 아쉽겠다. 수현과 미정은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이야기를 나누면 학생회관까지 걸었다. 선배 저기 지숙인데요.? 지숙이 우산도 없이 비를 맞고 학생회관으로 뛰어가고 있었다. 어. 선배랑 지숙이랑 사귀는 사이죠? 소문이 자자 하던데요. 아.. 아니야. 그냥 친한 거지. 정말요. 아닌 것 같은데요. 정말이에요. 어…. 그럼, 지숙이에게 물어봐도 되죠. 어….그래…. 수현은 말을 맺지 못했다. 학생회관 도착하자 수현은 곧바로 2층 총학생회실로 향했다. 오늘부터 중요한 집회가 있기 때문이다. 봄부터 총학생회에서는 등록금 인상 반대 투쟁을 하고 있었다. 학생회가 정치투쟁만 한다는 학생들의 불만이 많았기 때문이다. 학교에서는 등록금을 5.9% 인상했다. 학생회에서는 등록금 납입거부 투쟁을 하고 있었다. 1만 명이 넘는 학생 중에 40%가 등록금을 납부하지 않았다. 오늘 총장실을 점거하기로 했다. 총학생회장과 지도부에서 그런 결정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 수현도 점거 행동 단에 들어가기로 했다. 소나기가 비릿한 비 냄새를 풍기면 거세게 내렸다. 쏴악… 쏴악..비가 내려서 그런지 점거 행동 단은 더 비장한 분위기였다. 기습하지 않으면 점거가 불가능하므로 소수에게만 이야기했다고 했다. 그리고 50명으로 구성된 기습팀이 총장실을 급습했다. 몇몇 학교 측 사람들이 문을 막고 약간의 몸싸움이 있었지만, 총장실 점거는 생각보다 쉬웠다. 총장실에 남은 총장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총학생회장과 투쟁국장 정책국장이 총장과 담판을 지을 생각이었다. ”저기요… 저기요… 학생 여러분 학생과 김 과장입니다.“ ”제가 있어야 합의든 뭐든 가능해요“ “학생과 김 과장이 학생들을 헤집고 들어왔다.” 능글맞게 생긴 김과장은 학내 집회나 학생회, 총학생회, 동아리연합회 들을 관리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총장 총학생회장 투쟁국장 정책국장 그리고 학생들이 총장과 김 과장을 둘러쌓고 있었다. ” 우리의 조건은 간단합니다.“ ”등록금 인상을 포기하면 됩니다. 그러면 등록금은 다시 납입 할 것입니다.“ ”학교도 사정이 있어요“ ” 인건비도 오르고 있고 좋은 교수들도 초빙해야 하고요“ ”그동안 학교가 많은 건물을 짓는 것을 보면 돈이 없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이는데요?“ ”그리고 학교를 설립했으면 재단 전입금을 늘려야죠?“ ”재단 전입금이 거의 없고 국비와 학생회비만 가지고 학교를 운영하면 됩니까?“ ” 재단 사정이 좋지 않아요.” “한 번 생각해 볼테니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물러나 주세요?” 총장이 간곡하게 이야기 했다. 총학생회장은 몇 번 옥신각신하더니 “오늘은 여기쯤에서 물러나겠습니다.” “중재안을 준비해 주세요?” “일주일입니다.” “일주일 후에 중재 안이 준비되지 않으면 다시 행동하도록 하겠습니다.” “총학생회장은 이렇게 하고 총장실을 나가자고 했다.” 수현은 이 결정이 맘에 들지 않았다. “겨우 중재안이나 받으려고 총장실을 점거한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현은 고등학교 때 참교육 선생님들이 해고되자 해고 반대 투쟁을 진행했다. 수업 거부를 하고 운동장에 모여서 집회를 했다. 그러자 선생님들은 일단 교실에 들어가 중재안을 가지고 다시 이야기해 보자고 했었다. 수현은 거부했다. 하지만 학생들은 선생님의 이야기니 일단 들어가자고 이야기했다. 다수가 그렇게 결정하자 수현도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교실에 들어가자마자 종이 울렸고 수업이 시작되었다. [학생들은 더 이상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수현이 교실을 돌아다니며 다시 운동장에 모이자고 했을 때 나온 학생들은 아무도 없었다. 수현은 그 일로 인해 학교에서 문제아로 지목되었다. 퇴학이나 정학 처분을 내리겠다는 학생주임이 씩씩거리며 말했지만, 명분이 없었는지 퇴학이나 정학도 당하지 않았다. “대학생이라고 별만 다른 것이 없구나” 수현은 그런 생각을 하면 총장실을 빠져나왔다. “이 정도 했으면 되었잖아 총회장…. 적당히 하자고…. 내가 적당히 중재안 만들어 보내 줄게… ”총학생회장은 아무 말 하지 않고 김 과장과 걷고 있었다. “적당히 중재안 받고 또 인상되겠구나.”결국 이런 식인가…. 수현은 총학생회의 투쟁방식을 대충 알 것 같았다. 학생들이 정치투쟁만 하는 학생회에 반감이 많았다. 그래서 총학생회는 봄이 되면 학교와 학내 문제를 가지고 협상하거나 투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5.18이나 5.1 노동절 행사 준비로 바빴다. 학내 문제를 가지고 지속하기는 어려웠다. 결국 중재안에 5% 인상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0.9% 인하에 총학생회가 인정한 것이다. 그리고 각 학생회실에 적당히 비품들을 지원해 주는 것으로 끝났다. 학생들도 일단 조금이라도 인한 되어서 그런지 별 불만이 없었다. 수현은 처음부터 인하해 줄 것을 생각해서 인상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다 그렇게 하는 것인가?” 수현은 분노와 함께 후회가 밀려왔다. 수현은 학생운동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 새로운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주 월요일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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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2-17
  • 참교의 키즈의 생애 7편 수현 선배 빨리 도망쳐요
    다시 봄이 왔다. 그해 봄은 치열했다. 대학생 한 명이 전경의 쇠 파이프에 맞아 사망했다. 전국의 대학생들은 들불처럼 일어났다. 그리고 몇 명의 학생들이 분신했다. 매일 정권 규탄 집회가 열렸다. 수현은 점점 더 학생운동에 몰입되었다. 집회가 있으면 언제나 최전방에 있었다. 집회를 막아서는 전경들이 아버지가 일하던 회사에서 보낸 놈처럼 보였다. 그날도 수현은 선봉에 있었다. 전투경찰이 언제나처럼 교문을 막고 있었다. 수현은 전방에서 전경과 대치하고 있었다. 전경은 방패와 진압봉을 학생들은 화염병과 쇠 파이프를 들고 있었다. 총을 들고 있지 않을 뿐 대한민국의 최전선은 학생들과 전경들의 싸움이었다. 멀리 사복을 입은 체포조 일명 백골단도 보였다. 나가려는 학생들과 지키려는 전경들과의 싸움…. 민주화의 열의에 넘치는 학생들과 강제 징집되어 차출된 전경들 누구도 원하지 않은 싸움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전경들은 지시에 따라 움직여야 하고 학생들은 자신들의 신념을 위해 그 자리에 맞서야 했다. 학생들이 교문을 열고 나가자 곧 전경들이 막았고 최루탄이 쏟아졌다. 전경들이 악 악 소리를 내며 달려오자, 뒤에 있는 학생들이 모두 교문 안으로 도망쳤다. 하지만 수현이 속해 있는 사수대는 하얀 연기 속에서도 결기 있게 서 있었다. 수현은 이 시간이 좋았다. 고립되어 있지만 동지들과 함께 서 있는 이 시간, 자신이 살아 있는 느낌이 들었던 날것의 기분이 들었다. 학생들이 뒤로 밀리지 전경들의 진압은 더 거세졌다. 전경들이 수현의 바로 앞에까지 밀려왔지만, 수현은 움직이지 않았다. “수현 선배 빨리 도망쳐요" 멀리서 지숙의 목소리가 들여왔다. 하지만 수현은 움직이지 않았다. 전경들이 수현의 타깃으로 잡았다. “저 자식 오늘은 혼내주자..”“제가 무슨 연판장의 장비라도 되는 줄 알아” 전경들은 수현을 벼르고 있었다. 매번 집회 때마다 선봉에서 쇠 파이프를 휘두르는 수현을 전경들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전경들도 물러서지 않고 덩치 큰 수현을 두려워했다. 멀리서 봐도 수현은 다른 학생들과는 전혀 달라 보였다. 수현은 185가 넘는 키에 체구가 단단하고 날렵했다. 다른 학생들의 무거워 하는 긴 쇠 파이프를 장난감 처럼 사용하는 수현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했다. 하지만 이미 일반 학생들이 모두 도망치고 교문 밖에는 수현과 50명도 안 되는 사수대뿐이라면 상황은 달랐다. 아무리 수현이라도 수백 명의 전경이 몰려들면 상황은 뻔했다. 수현은 전경들이 삼보 앞으로 다가오자 달려 나가 가장 앞에 있던 전경의 방패를 쇠 파이프로 내려쳤다. 방패가 쩍 하고 갈라졌다. “더 이상 오지 마!" “그리고 손에든 화염병에 불을 붙였다.” “오면 여기서 다 함께 죽는 거야…. 멀리 떨어져 있던 학생들이 수현과 사수대를 보고 힘을 얻어 교문 밖으로 밀려 나왔다. 학생들이 수백 명이 꽃병에 불을 붙여 다가오자, 전경들이 다시 후퇴 후퇴를 외쳤다. 수현에게 쇠 파이프로 방패를 가지고 있던 전경은 다행히 큰 부상이 없었는지 뛰어서 사라졌다. ”야 수현아“ ”너는 전경들이 네 원수라도 되냐“ ”저 친구들도 다 젊은 우리와 같은 청년들이야.“”살살하자.“”네..“ 수현은 이렇게 말했지만, 매번 집회에 나가면 선봉에 있었고 매번 싸웠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수현은 자신의 분노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수현도 전경들에게 감정이 없었다. 같은 또래들이었고 그들도 그 자리에 서고 싶어 서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수현도 잘 알고 있었다. 정권의 하수인은 저들이 아니라 정권에 빌붙어 호의호식하는 놈들이다. 저 전경들은 그저 자신들의 군복무를 채우기 위해 저 자리에 서 있을 뿐이었다.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 노동 3법이 지켜지지 않는 노동 현장, 가난한 농민들, 수현의 아버지처럼 산재를 받고도 회사의 회유에 넘어가는 나약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위해 싸우는 학생들도 죄가 없다. 수현은 늘 머릿속으로 생각했지만, 막상 집회에 나가면 자기도 모르게 과격하게 변했다. 지숙은 두려움 없는 수현이 멋있어 보이기도 했지만 언제 불행한 일이 닥칠 것 같아 매번 맘을 졸였다. “수현 선배 저러다가 뭔 일 나지… “ 나경은 수현이 저렇게 된 것이 자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이 수현이 집회 현장에 나오면 어떻게든 수현을 도우려고 애를 썼다. 매주 월요일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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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2-10
  • 참교육 키즈의 생애 6편 정직과 성실의 대가가 이런 것인가?
    수현의 아버지는 농부였다. 하지만 수현이 아홉 살 무렵 태풍으로 농사가 망하자, 공장으로 일하러 갔다. 수현에게 아버지는 일 년에 한두 번 오는 사람이었다. 그런 아버지가 사는 곳을 직접 가본 것이 수현이 초등학교 6학년쯤이었다. 수현의 아버지는 수원에 있는 공장에 다녔다. 수현의 아버지는 공장 인근에서 혼자 자취를 했다. 수현의 아버지가 자취방은 수원의 후미진 달동네 귀퉁이에 있었다. 수현이 사는 곳에서도 이런 집을 본 적이 없었다. 두 평도 안 되어 보이는 작은 방안에는 수현의 아버지 석태가 먹고 남은 소주병이 늘어져 있었다. 벽에 붙어 있는 옷걸이엔 석태가 입고 다니는 작업복과 집에 내려올 때 입는 잠바 한 개가 걸려 있었다. 낡은 작업복 사이에 흰색 와이셔츠 하나가 유난히 희게 보였다. 수현이 아버지가 자취방 방문을 열었을 때 불쾌한 냄새가 수현의 코를 찔렀다. 수현이 생각하기에 아버지는 항상 성실한 분이었다. 그런 아버지가 왜 이렇게 가난하고 힘들게 살아야 하는지 어린 수현은 알 수 없었다. 수현은 눈물이 났다. “정직과 성실의 대가가 이런 것인가?” 어린 수현은 세상의 모두 부조리하게 보였다. 학교에서는 늘 근면 성실을 강조했다. 그리고 누구나 열심히 살면 부자로 살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수현이 본 세상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어린 수현은 아버지와 아침을 함께 먹어 본 적이 없었다. 수현의 아버지는 늘 새벽이면 논과 밭으로 일을 나갔기 때문이다. “아빠 어디 갔어요. 엄마” “아빠. 일 나가셨어” “벌써요?” “응” “아빠는 매번 이렇게 새벽에 일을 나가요….”“아빤 안 힘들어” “ 야. 너희들 먹여 살리려면 우리 집 농사일로는 힘들어…. 다른 집 일도 해야 하니까 우리 집 일은 일찍 끝내야지. ” 그런 아버지가 가난하다면 세상이 문제가 있다고 수현은 생각했다. 그래. 세상은 뭔가 잘못되었다. 바꿔야 해….수현이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수현의 아버지는 집으로 돌아왔다. 다시 농사를 지었다. 아버지가 다시 집에 돌아왔을 때 수현은 아버지에게 존대해야 했다. 10여 년 만에 만난 아들이 낯설기는 석태도 마찬가지였다. 수현의 아버지는 봄 여름 가을에 농사일했다. 수현은 아버지의 함께 농사일하는 것이 즐거웠다. 아버지보다 힘이 센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아버지 무거운 것은 제가 옮길게요!" 수현의 아버지 석태는 자기보다 키가 크고 힘센 아들이 듬직했다. 석태는 겨울엔 공장에서 일했다. 공사 현장에서 일하다 석태는 트럭에서 떨어졌다. 트럭에서 떨어지면서 수현의 아버지는 부상을 입었다. 석태는 부사장이 산재 처리를 하면 공사 발주가 어렵다며 산재 처리를 하지 않아도 병원비는 모두 부담하겠다고 하자 산재 처리를 하지 않았다. 수현이 산재 처리를 해달라고 해야 한다고 했지만, 석태는 이런 수현을 말렸다. 수현의 아버지는 몇 번의 개복 수술을 해야 했다. 첫 번째 수술비는 회사에서 부담했지만, 두 번째 수술 이후에는 회사 사람들은 나와 보지도 않았다. 두 번째는 그때 사고와는 관계가 없다고 했다. 합병증으로 수현의 아버지는 방밖에 나오지도 못했다. 수현의 어머니는 아픈 아버지를 챙기고 농사까지 짓느라 힘들어했다. “내가 못나서 미안하다. 수현아..”그 후 수현의 아버지는 매일 술을 먹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수현이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길고 긴 겨울이 가고 눈 녹은 물이 지붕에서 떨어질 때 수현의 아버지는 제초제 먹었다. 농약을 먹은 석태는 수현에게 말했다. 미안하다. 못난 아비라서….수현의 아버지 석태는 쉰아홉 살 짧은 삶을 스스로 마감했다. 컴컴한 시골 밤 석태의 상갓집만이 환하게 빛났다. “수현아, 너희 아버지 같은 사람도 없다.” “일제때 부모 다 여의고 혼자서 이제까지.”니 아버지가 얼마나 고생을 많이 했는지 .“아이고…. 세상도 무심하지…. 덕산댁은 어찌하라고….장례식 내내 수현의 어머니는 말이 없었다. 정신이 나간 것인지…. 멍하니 땅만 보고 있었다. 강진과 지숙은 수현을 찾아왔다. 별말 없이 그들은 울고 있는 수현을 바라봤다. "기운 내요. 수현 선배" 귀퉁이에 남은 눈을 녹이는 봄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석태가 남긴 흔적이라도 지우는 듯이…. ”하늘도 무심하지. 비까지 내리고. 상여꾼들은 꽃샘추위에 비까지 내려 꽁꽁 온 손을 연신 문질렀다. 아버지의 관이 이윽고 땅속으로 들어가자, 수현은 세상 하나가 사라지는 것 같았다. “아빠….”수현은 이승에서 사라지는 아버지를 봤다. 수현은 흘러내리는 눈물은 훔쳐냈다. 참을 수 없는 분노가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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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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