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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상실된 조국 2편" "고향이 남원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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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은 남쪽이라 서울보다는 좀 따뜻했다.
얼마쯤 걷고 나니 광한루가 보였다.
춘향전 알지? 하나야
하나도 할머니가 이야기해 주던 춘향전이 생각났다.
여기가 그곳이군요.
맞아…
여기가 춘향이와 이도령이 놀던 광한루야…
강준과 하나는 책으로만 봤던 광한루를 쳐다봤다.
너무 늦은 시간이라 광한루의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가자… 늦었어.
여관에 도착했을 때 둘은 이미 지쳐 있었기에 쉽게 잠들었다.
강준에 일어난 시간은 새벽이었다.
하나를 깨우지 않게 조심스럽게 여관을 나왔다.
요천강을 따라 강준은 걸었다.
이 강물이 어디서 흘러 오는 것일까?
강준은 지나가는 남자에게 물었을 때 그 남자는 짧게 이야기했다.
“지리산에서 흘러나와요. “ 남자는 손으로 먼 산을 가리켰다.
큰 산이 남원의 동쪽에서 시작해서 남쪽으로 가다가 다시 서쪽까지 길게 펼쳐져 있었다.
“저 산이구나….”
아버지는 가끔 지리산에 관해 이야기했었다.
할아버지 고향에 있는 산이 지리산이라고
그 산은 아버지 어머니 같은 산이라고 아버지는 말했다.
“이 물도 지리산에서 흘러오는구나!”
강준은 강으로 내려갔다.
흘러가는 물을 손으로 쥐었다.
4월의 강물은 아직 얼음처럼 차가웠다.
강준은 여관으로 돌아갔다.
하나는 잠에서 깨어 있었다.
“어디 갔다 왔어요"
“불안했어요"
“어… 앞에 강가에 가봤어"
“산책하러"
“그랬군요"
남원 시내버스 터미널에 도착해 인월 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이른 아침 버스 터미널에는 등산객들과 학생들 그리고 출근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익숙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한국말속에서 강준은 자신이 한국에 있음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그래 여기가 조국이구나! 하나는 자신이 익숙하지 않은 땅에 있음을 확인했다.
조국이라고 생각했지만, 전혀 모르는 말을 사용하는 땅
여기가 조국이 맞는 것일까? 하나는 익숙하지 않은 말들 속에서 자신이 이방인처럼 느껴졌다.
그들은 강준의 할아버지 고향 인월로 향했다.
강준과 하나를 태운 버스는 남원의 평야를 지나 가파른 산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여원재]라는 팻말이 보였다.
높은 산길 사이로 난 가파르고 구불구불한 도로를 버스는 빠른 속도로 올라갔다.
버스는 좌우로 흔들렸다. 하나는 강준의 손을 꼭 잡았다.
“무서워?”
“조금요"
그렇게 30분쯤 갔을까 고개 하나를 넘고 나니 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었다.
전혀 다른 세상처럼 느껴졌다.
이 산꼭대기에 이렇게 넓은 평야가 있다는 것이 강준은 신기했다.
버스는 인월터미널에 둘을 내려주었다.
“아저씨 산내요?”
“네 타세요" 택시 기사는 간단하게 답했다.
택시를 타자마자 기사는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 저 산이 한국에서 가장 큰 산인 지리산입니다"
“한국인에게는 어머니 같은 산이라고도 하지요"
택시 기사는 묻지도 않았는데 지리산에 대해 이것저것 신나게 떠들었다.
인월에서 택시로 20분 달리니 강준 할아버지의 고향이 나왔다.
강준은 동네 분들에게 할아버지에 관해 물었지만 아무도 기억하는 사람이 없었다.
할아버지가 이 동네를 떠난 지 50년이 지났으니 할아버지를 기억하는 분들도
모두 돌아가셨겠다고 강준은 생각했다.
“하나는 고향에 가보고 싶지 않아?”
“별로요”
아버지 고향이 제주도라고 하던데요?
“제주는 멀어서 나중에 여행이라도 한 번 가면 될 것 같아요.
강준과 하나는 남원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로 향했다.
호텔에는 밤에 도착했다.
서울의 밤은 싸늘했다. 도쿄의 뱜을 닮았지만, 전혀 다른 날씨였고
남원과도 달랐다.
아침 방송을 보던 강준은 채널을 돌리다가 멈추었다.
집회 현장이 방송에 보였다.
시위대와 경찰이 몸싸움하고 있었다.
강준은 호기심이 생겼다.
“하나! 우리 저기 가보자?”
“무서운데요.”
“싸우는 곳에 가는 것은 위험해요.”
“우리 그냥 서울 경복궁이나 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멀리서 구경만 하자.”
“일본에서는 저런 현장을 볼 기회가 없잖아.”
“무슨 일이라도 생기겠어?”
“별일 없을 거야…”
강준의 거듭된 설득에 하나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조그만 보고 돌아와요? 네?
강준과 하나는 아침밥을 대충 먹고 지하철을 타고 대학교 앞에서 내렸다.
학교에 가보니 어제와는 다르게 아무런 집회도 없었다.
캠퍼스 안에는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게 조용했다,
아무 일도 없는데
집회가 끝났나 봐!
오늘 집회는 안 하나요?
강준은 지나가는 학생에게 물었다.
총학생회의실에 가보세요. 지나는 학생이 학생회실 위치를 알려줬다.
학생회실에 가보니 한 학생이 보였다.
오늘은 집회 안 하나요?
왜요?
저희는 일본에서 왔는데 방송에서 이 학교 앞에서 집회하는 것을 봤거든요.
궁금해서요.
아. 그러세요.
저는 일본어학과 조민의라고 해요.
아 저는 강준 이쪽은 하나라고 해요.
저는 1학년 신입생이라 잘 몰라요.
선배들은 다들 다른 곳에 있나 봐요.
저도 오늘 아는 선배를 만나러 왔는데 없더라고요.
네..
강준과 하나는 기대와는 다르게 아무 일도 없자, 살짝 실망스러웠다.
캠퍼스 구경이나 하고 돌아가자
학교 안에도 아무도 없는데요.
우리 이제 호텔로 돌아가요
강준과 하나가 광화문을 지날 때 집회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저기 시위하고 있는데,
우리 잠깐 여기서 내려서 보고 가자.
강준 씨 위험해 보여요
우리 그냥 호텔로 가요!
아니야!
멀리서 잠시만 보고 가자
이제 곧 일본에 돌아가잖아
우리 이런 시위는 영원히 방송에서만 볼지 몰라
강준이 버스에서 내리자, 하나는 마지못해 따라 내렸다.
강준과 하나가 내렸을 때 몇 백 명이었던 시위대는 시간이 지나자, 수가 몇만이 넘어 버렸다.
호헌 철폐! 독재 타도!
[◆ 호헌철폐뜻 당시의 헌법을 지키는 것(호헌)을 중단하고 헌법을 개정하라는 뜻. 전두환 정권 당시의 대통령 선거는 국민이 직접 투표하는 직접선거가 아닌 대통령선거인단에 의한 간접선거였고, 국민들의 뜻과는 상관없이 군부정권이 계속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에 반발하여 민주화세력을 비롯한 다수의 국민들은 직접선거제도를 포함한 개헌을 요구했으나 전두환 정부는 1987년 4월 13일에 기존 헌법을 유지하겠다는 ‘호헌’을 선언했다. (4.13 호헌조치) 이 조치를 거두라는 것이 바로 ‘호헌철폐’호헌조치에 맞선 6월 항쟁의 구호였다. ]
시위대의 함성이 광화문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강준과 하나가 서 있던 곳은 처음 시위 시작했을 때는 몇 백 미터 거리였지만 구경하는 사이 강준가 하나는 시위대 중앙에 서 있게 되었다. 강준도 시위대가 외치는 대로 따라 외쳤다,
독재 타도 호헌 철폐
하나는 강준 옆에서 불안하게 쳐다봤다.
강준 씨 이제 돌아가요.
우리 시위대에 너무 깊숙이 있는 것 같아요.
빨리 가요!!
하지만 강준은 돌아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
강준은 그동안 일본에서 받아왔던 차별 때문일까?
시위대와 함께 구호를 외치는 것만으로도 신이 났다.
하나야 시위대와 함께 구호도 외쳐봐!!
진짜 살아있는 기분이 들어…
호헌 철폐 독채 타도, 사실 강준은 호헌 철폐가 무슨 뜻인지도 몰랐다.
사실 독재 타도 호헌 철폐가 무슨 말인지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차별금지, 차별철폐라고 마음속으로 외쳤다,
많은 사람들과 구호를 외치고 있는 이 순간이 너무 좋았다,
함께 모여 구호를 외치고 하나가 되어 가는 것
이 순간이 좋았다.
강준 씨 이제 우리 빨리 돌아가요.
그 순간 경찰들이 앞쪽에서 시위대를 향해 최루탄을 쏘기 시작했다.
빨리 뛰어요.
강준 씨 빨리 도망쳐요.
전경과 경찰이 시위대를 포위하고 무력 진압을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비명이 들렸다.
순식간에 집회 장소는 전쟁터처럼 보였다.
시위를 하는 사람들이 흩어지기 시작하자 도로는 마비 상태가 되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머릿속이 캄캄해졌다.
강준은 하나의 손을 잡고 달리기 시작했다.
사방에서 경찰과 전경이 시위대를 압박했다,
강준과 하나는 가게 사이의 좁은 골목길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헉 헉…
탁 탁 턱 턱….
탁 탁 탁 탁….
,
,
,
윽….
여기저기 도망치는 소리와 싸우는 소리와 비명이 들렸다.
몇 분을 달렸을까, 시위대도 경찰도 보이지 않았다.
강준 씨 다행이에요.
여긴 안전한 것 같아요.
그래요.
여긴 경찰이 안 보여요.
둘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였다.
퍽 퍽….
강준과 하나가 전경이 휘두른 곤봉을 맞고 쓰러졌다.
악….
야. 이놈들 차에 태워라…
강준과 하나는 호송차에 끌려갔다.
호송차에는 많은 사람들이 잡혀 있었다.
와타시와 니혼진 데스.
저희는 일본 사람입니다.
저 여자는 일본 사람이에요.
이 자식들이 뭐라고 하는 거야.
야! 봐주지 말고 끌고 가….
강준과 하나는 경찰서에 끌려갔다.
이놈들 좀 이상한데....
일본말하는 놈들이 시위대에 왜 있어?
한번 취조 좀 해봐,
일본 사람이라고 외치던데 뭔가 있는 것 같은데…
오 그러네요.
일본 사람이 한국 집회에 참여했다.
뭔가 그림이 그려지는 것 같습니다. 이 팀장님
그렇지…. 이놈들 뭔가 있는 것 같으니까 더 조사해 보라고.
일본인이 한국 집회에 참여했다.
이건 보통 일이 아닌데… 이 팀장은 좋은 건수가 생겼다고 생각했다.
일본의 조선총련과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팀장은 오늘 하루 종일 집회 현장에서 누적된 피로가 싹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건 꽤 큰 건이 되겠는데…. 빨리 조사해서 보안사에 넘겨.
강준과 하나는 경찰 취조실로 끌려갔다.
“야…. 너희들 여기는 왜 왔어?
“ 아 서울 관광 왔어요
“관광…. 근데 집회에는 왜 가담했어….
버스를 타고 오다 보니 사람들이 많아 구경했어요.
진짜야?
네. 강준은 이제야 숨이 쉬어졌다.
이제 호텔에 가면 되죠?
이 자식 아주 웃기는 놈이군…. 야 인마….
어떤 미친놈이 시위 구경을 오냐…. 그것도 일본 놈이…. 재일 조선인이라….
이 팀장님 이것 잘 엮으면 한 건 하겠는데요.
그렇지…. 김 경위
일단 상부에 이야기해 보자.
일단 말이 안 되는 저 여자는 유치장으로 보내고 남자 놈은 상부로 보내….
강준은 수갑이 채워진 채 경찰서에서 나와 기다리고 있던 검은 승용차에 태워졌다.
시동을 걸자마자 차는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이 팀장님, 이 녀석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야…. 어떻게 되긴 어떻게 돼.
이런 녀석을 콩밥을 좀 먹어야지.
제가 봤을 때는 진짜 지나가다가 참가한 것 같은데요.
야…. 이 순경 너는 그렇게 세상을 순진하게 보면 어떡하니….
이놈들이 얼마나 악질인데,
이런 자식들은 다 잡아서 유치장에 넣거나 감옥에 처넣어야 해
요즘 세상이 너무 편해졌어
오늘 집회 나온 빨갱이 놈들 좀 봐
경기가 얼마나 좋고 일도 많고 지금 얼마나 좋냐….
그런데 무슨 불만이 그렇게 많아. 씨발놈들이 다 잡아 쳐 넣어야 해
싹 잡아 가지고 정리해야 하는데,
저런 것들 옛날 같으면 다 삼청교육대에 보내서 인간개조를 해야 하는데 말이야.
우리 대통령님 너무 약해지신 것 아니야….
계엄령이라도 내려서 저것들 다 처넣어야 하는데 말이야….
안 그러냐고… 씨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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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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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상실된 조국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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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발 한국행 비행기 한 대가 김포공항 활주로에 내려앉았다.
4월인데도 찬 바람이 불었다.
꽃샘추위가 왔다며 다시 겨울이 온 것 같다는 방송을 한 그날 아침이었다.
남녘에는 벚꽃이 피었다고 했던 것이 어제였는데
오늘 아침에 눈이 올 것 같다는 예보를 했다.
강준과 하나는 이날 한국에 도착했다.
도쿄와 서울이 이렇게 다른가? 강준은 서울 추위가 낯설게 느껴졌다.
도쿄 공항을 떠날 때만 해도 강준은 반팔을 입고 있었다.
강준과 하나가 한국에 올 결심을 한 것은 곧 있을 결혼식 때문만은 아니었다.
조국이라는 곳에 한 번에 가야 겠다고 강준이 이야기했을 때
하나도 “조국”이라 단어를 머릿속에 그려 봤지만 뚜렷하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한 번은 조국이라는 곳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은 오사카에서 태어났고, 도쿄에서 만났다.
도쿄에서 대학에 다니면서 둘은 한국 유학생을 돕는 단체에서 활동했다.
그 단체에서 둘은 만났다.
같은 재일교포에 오사카 출신이라서 그런지 쉽게 친해졌다
강준은 할아버지 고향에 가볼 생각이었다.
김포공항에 내리자마자 고속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남원 가는 버스표 주세요.”
강준은 능숙한 한국말로 이야기했다.
하나는 자신의 한국말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강준의 부모님은 모두 한국인이었다.
강준의 부모는 집에서 한국어만 사용했다.
그래서 강준의 한국어는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하지만 하나의 아빠는 한국인이었지만 엄마는 일본인이었다.
아버지는 집에서 한국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하나는 자신이 한국인이라고 생각했지만, 한국말을 전혀 하지 못했다.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남원 가는 버스를 탄 강준과 하나가 남원에 도착한 것은 저녁 무렵이었다.
“일단 여기서 하루 자자"
강준과 하나는 남원 터미널 근처 여관에서 하루를 묵었다.
‘남원은 추어탕이 유명하다는데?
“하나, 너 추어탕이 뭔지 알아?
“몰라요."
“ 한 번도 먹어 본 적 없어요? 강준 씨는요?
사실 강준도 먹어 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아마도 할아버지는 좋아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강준과 하나는 여관 주인 안씨가 추천하는 식당에서 추어탕을 먹었다.
강준은 배가 고팠는지 맛있게 먹었다.
하나는 먹지 않았다.
하나는 따로 나온 밥을 조금 먹었을 뿐이었다.
그들은 남원 요천 강변을 걸었다.
강변엔 벚나무가 길게 늘어서 있었다.
벚꽃이 강 양쪽으로 등이라도 켠 것처럼 환하게 피어 있었다.
분홍색 벚꽃이 강을 따라 흘러서 강물이 분홍색처럼 보였다.
도쿄는 보름 전에 벚꽃이 졌다.
“한국에도 사쿠라가 많네요" 하나가 놀란 것처럼 말했다.
“하나야…. 왕벚나무는 한국이 원산이야. 우리 꽃이라고….”
강준은 우리 꽃이라고 말했지만 스스로 이야기하고도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하나의 얼굴 위로 벚꽃잎이 떨어졌다.
꽃처럼 예뻐 보인다고 강준은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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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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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교육 키즈의 생애 마지막편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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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가고 봄이왔다.
다시 농사철이 시작되자 수현은 매일 논으로 향했다.
아직 이른 봄이었다. 들판에는 멀리 서해에서 불어오는 바람만 윙윙 거릴뿐 사람은 없었다.
아직 동트려면 7시는 넘어야 했다. 수현은 아무도 없는 들판에 나가 자신의 논을 둘러봤다.
요즘 주변에는 콩농사를 짓는 농민들이 늘고 있었다.
오래전에는 밭을 논으로 만들려고 산비탈 밭을 개간해 다랭이 논을 만들었는데
이제 쌀이 남아돌다 보니 쌀대신 논에 콩을 심기 시작한 것이다.
콩농사가 밭농사보다 수익이 좋다 보니 논은 점점 밭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래도 수현은 항상 벼를 심었다. 벼를 심고 가꾸는 것이
아버지 어머니가 가꾼 논에 대한 예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식량이 되는 쌀이 콩보다는 더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벼가 크고 자라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수현은 땅과 더 가까워 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자신이 키운 쌀로 수지가 크고 있다는 생각, 그리고 밥을 먹을 때마다
자신이 키운 쌀로 생명을 이어간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농자는 천하지대본 이라는 말에는 인간의 생명을 이어주는 식량을 생산하는
농민이라는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지금 돈이 안 되는
쌀농사를 강요 할 수도 없는 일일 것이라고 수현은 생각했다.
수현은 논두렁이 앉아 부모가 물려준 논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조상 대대로 물려와 수현까지 온 땅이었다. 아버지와 논을 고르고,
어머니와 피를 뽑던 날들, 그리고 처음 혼자서 논두렁에 풀을 깍던 일들이 영화처럼 스쳐갔다.
수현이 고등학교 때 수현이 논에 살충제를 뿌렸던 적이 있었다.
가루로 된 살충제를 손으로 직접 뿌렸다.
그러다가 살충제 봉투가 논으로 들어가 물에 젖어 버린 것이었다,
고등학생 수현은 농약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몰랐다.
수현은 물에 젖은 살충제를 뿌리다 쓰러졌다. 농약에 중독된 것이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 까 아들이 집에 돌아오지 않자 걱정된 덕산댁이 논에 와보니
수현은 논두렁이 쓰러져 있었던 것이다. 덕산댁이 수현의 몸을 잡고 흔들자 눈을 떴다.
집에 돌아온 수현은 한참을 누워 있다가 몸을 일으켰다. 수현은
그 일로 인해 농약을 쓰는 농사는 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고향에 돌아와 농사를 시작하자 유기농으로 농사를 지었다.
수현이 유기농을 벼농사를 짓자 주변에서 편한 방법을 두고 왜 오래전의 농법으로 돌아가냐고 했다.
하지만 수현은 자신의 선택한 방법을 후회 하지 않았다.
그렇게 유기농으로 벼농사를 짓자 수현의 논에는 오랫 동안 보이지 않았던 생명들이 다시 돌아왔다.
개구리가 돌아왔고 미꾸라지가 살기 시작했다. 가끔은 붕어나 송사리가 보이기도 했다.
얼마전 부터는 살아있는 긴꼬리투구새우가 보이기 시작했다.
수현은 자신의 논의 돌아온 생물들이 자신의 선택으로 다시 돌아온 것이 좋았다.
수현은 논에서 돌아와 수지의 아침밥을 챙겼다. 매일 하는 요리지만
소질이 없는지 메뉴는 거의 같았다. 전자렌지에 돌려 만든 계란찜 아니면 후라이
그리고 돼지고기를 넣은 김치찌개 가끔 하는 카레 사실 이 것 이외에 수현이 하는 요리는 거의 없었다.
텃밭에서 수확한 상추나 가지 오이 고추를 된장에 찍어 먹는 것이 수현이 먹는 거의 모든 것이라고 해야했다.
수현아 언제까지 이렇게 살거야?
수현아 나랑 읍에서 장사라도 하자?
수지의 엄마 현주랑 함께 살 때 현주는 수지를 낳고 나서 매번 시골을 떠나 자는 말을 했었다.
하지만 수현은 고향을 떠날 생각이 없었다. 현주에게 농사는 미래가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수현에게 농사는 삶의 유일은 희망이었다.
희망을 버리고 살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것이 미래의 안정적인 삶을 보장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인간은 희망때문에 하루를 살고 버티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가난한 삶은 현주에게 어떤 희망도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가난은 가장 무서운 것이라고 현주는 생각했다. 수현은 현주의 생각이 맞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아버지 석태가 죽은 이유도 다 가난 때문이었다. 수현의 집이 부자였다면
아버지가 죽음을 선택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라고 수현은 생각했다.
가난은 죽음을 강요하고 비루한 삶을 선택을 강요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수현은 학생운동을 선택했다.
열걸음쯤 세상이 진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세상은 언제나 스무걸음 뒤걸음 칠 수도 있는 것이었다.
“수현아 나는 미래가 없는 삶을 살 수는 없어" 라고 현주가 말했을 때 수현은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미안해 현주야….” 수현은 텃밭의 상추를 보며 떠난 현주가 생각났다.
현주는 텃밭의 있는 채소만 가지고도 맛좋은 음식을 만들어 냈다.
아빠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어.. 우리 수지 무슨 반찬을 해줄까 하고 생각했지..
아빠가 요리를요.
오늘 저녁은 맛있는 것이라도 해줄거예요?
어. 아빠가 한 번 생각해 볼게.
수지는 아침을 대충 먹더니 가방을 챙겨 학교로 향했다.
수현은 수지의 뒷 모습을 보면 현주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겨울이 왔다. 눈이 많이 내리는 곳이었다. 한 번 눈이 오기 시작하면 며칠씩 내리 내렸다.
사방이 눈에 덮였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눈속으로 숨어 버렸다.
푸른 소나무는 백색의 소나무로 변했다. 검은 아스팔트는 스키장처럼 보였다.
밤새 눈을 이기지 못한 나무가지들이 아우성을 치며 쓰러졌다.
세상을 버티지 못하는 것들은 시련이 닥쳐 오면 무게를 감당하지 못한다.
각자가 버틸 수 있는 최대치를 살아가다가 어느날 툭 하고 낙하는 것이었다.
수현은 문을 열고 나갔다.
“올해도 풍년이겠구나" 라고 석태가 말을 따라했다.
수현의 아버지 석태는 매번 폭설이 내릴 때마다 “수현아 올해는 풍년이겠구나"라고 말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기대와 다르게 그 예언은 쉽게 빗나갔다.
하지만 수현도 폭설이 내릴 때마다 자신도 모르게 그 말을 따라했다.
빗자루를 챙겨 수현은 눈을 치웠다. 매일 아침마다 1-2시간씩 눈을 치우지만
다음 날이면 치운 만큼 또 내렸다. 그렇게 눈을 치우다 보면 어느 날 봄이 왔다.
“여보세요"
“네"
“나경선배"
“저녁 먹으러 가도 되요?”
“그럼" 나경은 수현의 전화를 받고 서둘러 마트에 갔다. 수현이 좋아하는 재료를 골랐다.
수현은 수지를 트럭에 태우고 눈덮인 도로로 나갔다. 오후 5시였지만 사방은 어둑했다. 늘 가던 길이었다.
수현은 눈 내린 도로를 운전하는데 익숙했다. 나경이 사는 아파트에 도착 할 때쯤 멀리 나경과 석민이 보였다.
나경이 수현에게 손을 흔들었다.
석민이도 나경을 따라 손을 흔들었다.
“수지야”
석민이 수현의 트럭을 보고 트럭 앞으로 달려갔다.
수현이 브레이크를 페달을 힘껏 눌렀다.
트럭이 빙판위를 춤추듯 빙빙 돌기 시작했다 .
쾅!!!
달려오던 차가 멈추지 못하고 수현의 차와 부딪쳤다.
빙판위를 빙빙돌던 수현의 차가 아파트 담을 들이 받았다.
수현은 마지막 순간 자신이 타고 있던 방향으로 핸들을 꺽었다.
수현아!!!
나경의 울부짖는 소리가 아파트를 가득 채웠다.
눈이 많은 곳이었고 한 번 눈이 내리면 며칠은 내리는 곳이었다.
수현아.. 수현아..
아버지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수현은 아버지와 함께 들판에 서 있었다.
수현의 논에는 벼들이 어느새 쑥쑥 자라 마음껏 포기를 늘리고 있었다.
끝이 없는 평야…. 지평선 넘어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향긋한 풀냄새가 났다.
아버지!
어머니가 새참을가지고 오시네요.
수현은 달려가 어머니의 짐을 들고 왔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과 애호박에 새우를 넣어 만든 호박국
그리고 나물과 고기반찬 상추와 고추
아버지 식사하세요.
그래 수현아…
어머니 밥이 너무 맛있어요.
그래 우리 아들 어서 먹어…
우리 아들 배고프지….
어머니…..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아련하게 들렸다.
아버지 어머니….
수현은 깨어나기 싫었다.
이대로 잠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현아.. 수현아.. 아빠…
나경과 수지가 수현을 불렀다.
수현이 눈을 떴다.
여기 어디야….
병원이야…
그랬구나….
수지랑 석민이는 괜찮아…
아빠… 수지가 울면서 수현의 손을 잡았다.
아저씨…. 석민이가 눈물을 흘렸다.
나경은 석민이가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고 놀랬다.
다행이네요.
모두 무사해서….
수현은 다행히 큰 부상을 입지 않았다.
수현은 이 동네 출신이고 눈 길 운전에 익숙했다.
이 동네 출신이 아니라면 아마도 수현은 큰 부상을 입었을 것이다.
수현이 퇴원하고 나경과 수현은 함께 살기로 결정했다.
나경은 아파트를 처분하고 수현의 시골집으로 들어왔다.
비가 내렸고 눈이 녹았다.
봄이왔다.
다시 농사가 시작되었다.
나경과 수현은 함께 들로 나갔다.
“생각나요?”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그 때 만약 우리가 만나지 않았다면 어땠을 것 같아요?” 나경이 말했다.
“그러게요. 그때 만나지 않았다면 당신처럼 예쁜 여자를 사랑하지 못했겠죠?”
수현이 웃으면서 말했다. 나경도 따라 웃었다.
나경과 수현은 아무것도 심어있지 않은 텅빈 논을 바라봤다.
수현씨 우리 여기에 뭘 심어 볼까요?
글쎄요.. 전 논농사 만 해봤어요.
그걸로 우리 식구가 다 먹고 살수 있을까요?
글쎄요. 수현이 웃으며 말했다.
나경이 수현의 손을 꼭 잡았다.
지평선 너머로 붉은 해가 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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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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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교육 키즈의 생애 19편 "응급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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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세요. 여보세요,
나경에서 전화가 온 것은 11시가 넘은 늦은 시간이었다.
“나경아주머니 저 수지데요”
“어.. 이 밤중에 무슨 일이야?
아빠가 쓰러졌어요.
뭐…
수지야
119에 전화는 했어?
네….
근데 혼자 가기는 너무 무서워요.
그래 아줌마가 바로 갈게
조금만 기다려..
나경은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나경은 차 열쇠를 찾기 시작했다. 어디 있더라….
자고 있던 아들이 깨어나 열쇠를 찾아 주었다.
엄마…
함께가.. 그래…
나경은 자다 일어나 아이와 함께 서둘러 차를 몰았다.
시골 도로는 한산했다.
차는 없었지만, 나경의 마음은 조급했다.
엄마 천천히 무서워…
어…. 그래. 천천히
나경이 수현의 집에 도착하자,
먼저 도착한 119구가수현을 차에 태우고 있었다.
보호자 되세요?
소방관이 물었다.
아….네.
어디가 아픈 것일까요?
일단 병원에 가봐야 할 것 같아요.
어디 병원이죠.
여긴 응급실은 한 곳뿐입니다.
네.
제가 아이들 데리고 따라 갈께요.
수현이 응급실에 도착하자 담당의사가 나왔다.
무슨 일인가요?
네.
아빠가 쓰러져 있었어요.
심장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요?
그럼 여기서는 할 것이 없는데요.
도시에 큰 병원으로 가봐야 할 것 같은데요.
의사는 상투적인 말로 이야기 했다.
그정도는 아닌 것 같습니다. 소방대원이 말하자 그럼 일단 검진을 해봅시다.
심장은 큰 무리가 없는 것 같고…. 빈혈 아니면 기립성 저혈압….
남자가 빈혈로 쓰러지는 경우도 있나요?
뭐 그런 사람들도 있더라구요.
아니면 스트레스든지…
의사는 수현의 팔에 영양제를 투여하라고 지시 하더니 병실을 나갔다.
한 두시간이 지나고 수현은 잠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눈을 떴다.
여긴 병원이가보네요.
야.. 너는 덩치도 산만한 사람이 자꾸 쓰러지고 그러냐….
지난번에도 그러더니….
선배 제가 키가 커서 그래요.
피가 돌기 전에 일어나서 쓰러진 것 같은데요. 라고 말하면 수현은 웃었다.
야.. 너 영양실조아니냐….
지난 번에도 그러더니 너 혼자 밥을 잘챙겨 먹고 있는거야?
남자가 혼자 사니까 그래…
나경은 순간 나랑 함께 살래!라고 말하려다 말았다. 수지는 아빠가 일어난 것을 보더니 안심이 되었는지 어느새 보호자 의자에 앉아 놀고 있었다.
“야 정말 다행이다'
얼마나 마음이 졸였는지…
미안해요. 선배… 나경이 눈물까지 흘리면서 이야기 하자 수현은 정색하면 말했다.
제가 요즘에 농사 일이 많고 땀도 많이 흘리고 그래서 그래요.
잘 챙겨 먹을게요.
그런다고 사내자식이 두 번이나 쓰러지는게 말이 되니…
큰 병원에 가서 검사 받아봐야 하는 것 아니야?
그러게요.
나경과 수현 그리고 아이들은 응급실에서 나왔다.
밤이 깊었다.
나경은 수현의 손을 이끌고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아이들은 신이 났다,
오늘은 우리집에서 자 수현아!
수현은 나경이 이렇게 말 했을 때 오래전 부산의 밤이 생각났다
만약 내가 그날 밤 나경선배와 관계를 가졌다면 우리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동안 수현은 그날 밤 생각을 여러번 했었다. 만약에 그날밤 나경 선배가 자신의 가슴에 자신의 손을 올려 놓았을 때 수현은 자는척 했던 것이 후회 되었다. 다음 날 떠날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자신이 나경을 떠나 보내지 못하리라는 것은 자신이 더 잘 알았기 때문이다. 미련이라고 생각 하기도 했지만 미련만큼 아련한 것도 없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밤 나경은 아이방에서 수현은 나경이 쓰던 방에서 잠을 잤다.
눈을 뜬 수현은 옆에서 잠든 수지의 얼굴을 봤다.
엄마없이 자란 수지는 다행이도 밝게 자랐다.
아빠 내 얼굴이 뭐라도 있어…
아니야 수지야
더 자…
아니야 일어날래.
석민오빠랑 놀거야
나경도 수현을 집으로 데려오고 나서 부산의 그날밤을 생각했지만,
부질없는 짓이라고 생각했다.
나경은 수현이 좋아할 만한 반찬과 찌개를 끓였다.
수현은 나경이 차려준 밥상을 보고 기분이 좋아졌다.
야 네가 농사지은 쌀이라 그런지 밥 맛이 두배는 좋은 것 같다.
겨우 두배요. 하하
어….그럼 열배쯤 하하
그들은 마치 한 가족이라는 되는 것처럼 밥상에 둘러 앉았다.
가족이 별 것인가 이렇게 밥을 둘러 앉아 먹으면 가족 아닐까 나경은 속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수현아 가끔 집에와 함께 밥먹자"
“그래요" 수현이 웃으면서 말했다.
“이렇게 가족이 되면 좋을 것 같아요”. 라고 나경의 아이가 말했을 때
나경은 자신의 마음이 들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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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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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교육 키즈의 생애 18편 오동도에는 오동나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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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눈이 내렸다. 꽤 이른 첫 눈이었다. 12월이 한참이나 남은 11월 초였다.
수현과 나경은 역앞에서 만났다. 지숙이 결혼식 청첩장을 보냈다.
“축 결 혼" 신랑 강진 신부 김지숙
강진과 지숙이 결혼식을 한 다는 청첩장을 받은 것은 10월이었다.
들판에 벼가 황금빛으로 변하고 막 수확을 끝낸 직후였다.
아침 저녁으로 찬 바람이 불었고 하늘은 파랬다.
가을 볕은 벼를 말리기 좋았다.
적당히 말린 벼로 첫 도정을 했다.
오늘 수확해서 도정했어
쌀가져가…. 수현은 나경에게 전화를 했다.
나경은 수현이 키운 쌀로 밥을 했다.
햅쌀엔 윤기가 흐르고 고소한 향이 퍼졌다.
나경은 수현이 키운 쌀을 먹는다고 생각하니 이제까지 먹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 들었다.
여기 안에 수현의 땀과 노력 그리고 정성이 들어 있구나.
이제까지 마트에서 사다 먹던 것과 전혀 다른 새로운 쌀이라는 생각이 나경은 들었다.
음.. 맛도 좋은데…
나경은 수현에게 고맙다는 전화를 했다.
그 때 수현은 나경게 말했다.
“ 지숙이 결혼 하나는데 함께 갈까요?’
“그래"
“석민이가 있어서 함께 가도 될까?’
“그럼요”
“수지랑 함께 가면 석민이도 좋아할 거예요?”
그것이 몇 주 전 그리고 오늘 나경과 수현 그리고 석민과 수지가 함께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 눈이 내려요"
“그래 석민아"
“나경은 석민이 손을 잡고 있었다"
“어디로 뛰어 갈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빠 또 눈이 와요"
“그래 수지야"
“수지는 눈 안 좋아"
“좋은데… 아빠가 눈 오면 새벽에 나가서 눈 치우느라 고생하잖아요"
“아이고. 우리 딸… 역시 최고야"
“근데 수지야 그런 걱정은 하지마.. “
여수행 기차가 도착하고 넷은 기차에 올랐다.
누가 봐도 가족처럼 보일 것 같다는 상상을 나경은 기차를 타기 전에 해봤다.
기차는 여수를 향해 달려 갔다.
얼마나 달렸을까 기차 옆으로 섬진강이 보였다.
오래전 수현을 만나자고 하고 내리지 못했던 날 봤던 섬진강이었다.
곡성과 구례를 잇는 전라선을 따라 섬진강이 나란희 함께 달렸었다.
나경은 그때 자신이 수현과는 나란히 함께 가지만 결코 하나가 되지 못하는
자신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늘 주변에 있었지만 함께 하지 못했다.
강과 나란히 달리던 기차는 구례구역을 지나자 헤어졌다.
강은 지리산으로 향했고 기차는 순천으로 향했다.
나경은 다시 수현과 헤어지는 것일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선배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아니야
“수현아 저기가 지리산이야?
“네”
“저기 보이는 산이 아마 노고단일 것 같은데요"
그렇구나
지리산 노고단
가보고 싶다.
뭐 가보면 되죠.
노고단은 성삼재에서 조금만 올라가면 되는데요.
금방 올라가요.
너는 가봤어?
저요
저는 많이가봤죠.
제가 산을 좋아 하잖아요.
지리산 종주도 몇 번 해봤는데요.
오.. 멋있는데
나랑도 한 번 해보자.
뭐 그래요
아이들이랑 함께 가도 좋을 것 같은데요.
“아빠 정말요!”
그래 수지야…
기차는 곧 여수 역에 도착 하겠습니다.라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석민은 규칙적인 기차 소리가 좋은지 기차를 타고 나서 조용히 그 소리를 감상하는 것 같았다.
여수역에 내리자 바다냄새가 났다.
수현은 오래전 지숙을 만나러 왔던 날이 생각났다.
그 쓸쓸했던 날들이 불쑥 올라왔다.
나경도 수현과 만나지 않고 지숙을 만났던 날이 생각났다.
지숙이 더 이상 수현을 사랑하지 않는 다는 것을 확인했던 날이었다.
“수현아 근데 이렇게 넷이 가면 다들 부부로 알지 않을까?”
“그러게요"
“뭐 어쩔 수 없죠"
결혼식장은 바다가 보이는 곳 2층이었다.
햇살이 가득 들어왔다.
신부 지숙과 신랑강진이 보였다.
지숙아 오랜 만이야…. 수현이 지숙에서 말했다. 선배 오랜 만이에요.
잘살죠? 지숙과 수현은 과거의 연인이 아니라 오랜만에 만난 선후배처럼 인사했다.
강진아 오랜만이다. 그 때 이후에 처음이지 그러네.
우리 정말 오랜만이다. 수현아…
강진이 너는 요즘 뭐해
어.. 나 여수 환경운동 연합회에서 일하고 있어.
아. 그랬구나. 지숙이 환경과에 근무해서 자주 만나다 보니 이렇게 되었다.
둘다 나이도 많고….
강진선배때문에 제가 정말 힘들어요. 근데 자꾸 만나다 보니 이렇게 되었네요.
“잘어울리는데… “수현이 말하자”두 분도 잘 어울리는데요”라고 지숙이 말했다.
“남자아이는 나경선배 아이 여자 아이는 내 딸이야”
신랑 신부님 결혼식 안 하실거예요?
나경은 강진을 손을 잡고 결혼식장으로 들어가는 지숙이 부러웠다.
자신도 수현의 손을 잡고 결혼식장에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선배 둘이 좋아 보이네요"
“그러게 잘 어울린다"
결혼식이 끝나고 나경과 수현 그리고 아이들은 오동도로 갔다.
아이들과 함께 동백열차를 타고 오동도를 돌았다.
아이들은 오동도 분수대에서 놀았다.
노을이 지고 있었다.
다시 가치를 타고 돌아왔다.
밤은 늦었고 둘이 다시 헤어졌다.
오동도에는 오동나무가 없고 둘 사이에는 아직 건너지 못하는 벽이 여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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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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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교육 키즈의 생애 17편 “다시 시작 할 수 있을까?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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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35도에 가까운 무더위가 지독했던 여름의 불볕 더위가 물러가고 아침저녁으로 찬 바람이 불었다.
수현은 논에 나가서 벼를 살폈다. 찬바람이 불자 이삭이 통통 살을 불려가고 있었다.
“이제 곧 수확을 하겠구나”
아빠.
어..
수현은 어느새 커버린 딸을 바라봤다.
현주와 자신을 닮은 아이 늘 떠난 엄마를 그리워 했지만 애써 내색도 하지 않은 착한 딸이었다.
수지야..
“이제 곧 수확 할 거야”
그러면 가을이고…
가을이 오면 우리 수지도 3학년이 멀지 않았네…
수지는 수현의 자전거 등뒤에 달라 붙었다.
아빠.
왜..
아니요. 그냥 아빠라고 부르는게 좋아서요.
그래 우리 수지….
수현은 수지를 바라보면 자신이 수지를 키우게 된 것을 감사하게 생각했다.
처음 아이를 키울 때 힘들었던 시기가 떠올랐지만, 아이는 삶의 목료를 잃고 방황하던
수현에게 목표가 되어 주었고 이제는 가장 친한 친구가 되었다.
아빠. 제가 아빠를 위해서 오늘 요리를 했어요.
수현이 논에서 일하고 돌아오면 수지는 가끔 반찬을 만들었다.
수지야 .. 수현은 네 엄마를 닮아서 요리를 잘하는 구나..라고 하려다가 말을 멈추었다.
엄마 얼굴도 기억하지 못하는 아이에게 엄마 이야기를 할 수없었다.
수현은 딸이 만든 반찬을 먹으면 떠난 현주를 생각했다.
자신이 현주를 사랑하지 않았던 것이었을까?라는
생각을 했지만 부질없는 일이었다.
“아빠 우리 학교에 석민이라는 오빠가 있는데요?”
“어”
“그래 그 새로 전학온 아이구나"
“네"
“그런데요"
“어"
“좀 엉뚱한 데 재밌어요"
“아는 것도 많고… “
“그래"
“잘해줘라 수지야"
“네"
“아빠 내일이 운동회 날이에요”
“아빠 오실거죠?’
“그래"
수지가 다니는 학교는 학생수가 40명이 되지 않은 작은 학교였다.
운동회날이 학부모 학생 교사가 모두 참가했다.
농사로 바쁜 수현도 이 날 만은 꼭 참가했다. 수현은 시골에 내려와서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았다.
그래서 학교일에 참가를 부탁해도 참가하지 않았다.
하지만 운동회는 참가하지 않으면 매일 딸에게 싫은 소리를 들어야 했고 사랑하는
딸이 맘이 아픈게 싫어 매년 운동회에 참가했다.
많은 사람들과 만나서 인사를 해야 하고 가끔은 왜 여기서 사는지
왜 그렇게 사는지 불필요한 질문을 받는 것이 싫어 수현은 운동장 귀퉁이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수지가 수현을 찾으면 겨우 손짓을 할 뿐이었다.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하게
운동장에 있다가 수지와 함께 집에 돌아왔다.
그날도 수현은 귀퉁이 자리잡고 앉아 있었다.
운동장을 뛰어 다니는 아이를 붙잡으러 다니는 학부모 한 명을 봤다. 익숙한 모습이었다.
석민아.. 석민아.. 교장 선생님 이야기 하시는데 가만히 있어야지..
아이는 엄마의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운동장을 종횡무진 달리고 있었다.
아이가 수현의 앞으로 달려 왔을 때 수현은 자신도 모르게 석민을 붙잡았다.
“아… “
수현과 나경은 눈이 마주쳤다.
“수현아"
“나경선배"
“어.. 오랜만이야"
선배가 여기 왜…
어.. 아이가 이 학교로 전학왔어…
“ 아 그러면 석민이가 선배 아이였군요"
“아.. 그래"
“어떻게 알아?”
“제 딸이 가끔 석민이 이야기를 해서요”
“수지?
“네"
“어떻게 알아요?”
“학교에 왔을 때 그 아이가 너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역시.. 수현이 네가 맞았구나.. 수지 아빠"
‘수지 엄마는 안 왔어?”
“아.. 네"
“그냥…”
한국에는 언제 왔어요?
일본 생활은 어떻게 하구요.
너에게 처음 만나자고 했던 때 나 그때 이미 이혼했어…
일본에서 아이를 키우기 너무 힘들어서…
우리 석민이 봤지..
막 뛰어 다니는 거…
우리 아이 장애가 좀 있어…
그래요..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는데요?
그렇게 봐주니 고맙다.
그래서 시골에 내려오신 거예요?
어..
내가 아는 시골이 별로 없어서….
다행이 여기 오니까 서울에서는 아무도 안 받아주던데 여긴 좋다고 하더라구,
그래서 여기 오게 되었어.
이 학교는 교육청에서 추천 하더라..
아이도 별로 없어 아마 좋아 할 것이라고 하더라구.
그랬군요.
수현이 너는 여기서 뭐해?
저요.
농사요.
농사?
네.
뭐 잘 어울린다.
힘도 좋고 농사도 잘 할 것 같은데?
그래보여요.
그래
논 농사 조금 짓고 살아요.
수현아 조금 있다가 다시 이야기 하자
나 석민이하테 가봐야 할 것 같아….
우리 아이가 좀 특별 하거든
네. 선배.
나경은 운동회의 마지막 계주 주자가 된 석민이를 향해 달려갔다.
수현은 아들을 향해 달리는 나경을 보면 오래전의 생각들이 떠올랐다.
나경이 떠나던 날의 광안리 앞바다
부산의 해운대 여관방 그리고 담배 냄새 수현은 학교밖으로 나와 담배에 불을 붙였다.
깊게 한 모금 또 한 모금 담배는 서둘러 필터까지 타들어 갔다.
수현은 갑자기 머리가 핑 돌았다. 수현은 가끔 머리가 아팠다.
논에서 피를 뽑다가 일어나면 머리가 어질했다.
병원에서는 빈혈이 있다고 했다. 수현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수현이 쿵하고 쓰러졌다. 나경은 수현이 떨어지는 것을 봤다.
석민이와 수지의 손을 잡고 수현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수현아.. 수현아!!
수현이 깨어 난 곳은 읍내 병원이었다.
아. 선배..
여기 제가 왜…
어..너 큰일 날뻔 했어
왜요.
너 쓰러졌던 거 기억 안나 아… 그랬군요.
요즘 머리가 좀 아프더라구요.
병원에서 검사했는데 빈혈에다가 먹는 것도 부실하다고…
이 좋은 시대에 영양실조가 뭐냐?
아.. 요즘 귀찮아서 밥을 안 먹고 일만 해서 그런가봐요.
수현은 부쩍 야윈 모습을 본 나경은 마음이 아팠다.
대학에 다닐때 수현은 항상 강한 모습이었다.
집회가 있어도 가장 선봉에 서 있었다. 전경이 달려와도 두려워 하지 않았다.
강철 처럼 보였던 수현이었다.
긴 세월동안 수현의 야윈 모습이 나경은 마음 아팠다.
나경은 보호자 의자 앉아 있었다. 수현의 딸과
그리고 석민과 함께 수지는 석민과 함께 놀고 있었다.
석민오빠 가위 바위 보 게임하자.. 그래..
석민오빠 끝말 잇기 하자.. 그래
수지가 이야기 하면 석민은 그래라고 답했다.
수현은 놀고 있는 수지와 석민을 봤다.
좋아 보였다.
그 사이 담당 의사가 왔고 영양제를 다 맞으면 퇴원 해도 된다고 했다.
병원 응급실 간호사가 수현의 팔에서 주사바늘을 뺐다.
우리 어디가서 저녁이라도 먹어요?
그래 수현아….
수현과 나경이 병원에 나오는 시골읍의 식당들은 거의 문을 닫은 상태였다. 시골은 밤은 도시보다 일찍 시작했고 가게들은 7시가 넘으면 문을 닫기 시작했다. 이제 갈 것이라고는 야식집 뿐이었다.
선배 이 동네에 이 시간에 갈 수 있는 가게는 야식집 뿐인데요.
그래… 그럼 우리집에 갈래
지금요?
늦었어요.
그냥 야식집에 가요?
그래
수현과 나경 그리고 아이들은 나경의 차에 탔다.
병원과 야식집이라고야 해봐야 차로 5분 거리도 되지 않았다.
야식집에서 제육볶음을 시켰다. 아이들이 먹을 만한 메뉴는 그것 뿐이었다.
수지와 석민은 같은 놀이를 반복했다.
“수지 엄마는?’
“우리 엄마요?’
“저 어렸을 때 떠났어요"
아… 그랬구나.
미안
아니에요.
전 아빠로 충분해요.
근데 아줌마
우리 아빠랑 친구에요?
어…
학교 다닐때 친구였어
아..
여자친구요?
어…..
아니….
나경은 수지의 당돌한 질문에 잠시 멈칫했다.
어쩌면 맞아라고 대답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고 스스로 생각했다.
오랜 시간 동안 수현을 좋아했지만 고백하지 못했고 이제는 고백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자신이 누군가를 사랑하게 된다면 그것은 수현뿐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픈 아이를 키우는 자신이 수현에게 부담이 갈 것이 뻔했다.
발달 장애아를 키우는 것은 일반인들이 생각 하지 못할 정도로 많은 어려움이 있었고
그런 아이를 키우는 자신이 누군가를 사랑한 다는 것은 사치일뿐이었다.
나경은 수현과 헤어지고 집에 들어와 한 참을 휴대폰을 만지작 거렸다.
수현에게 잘 들어갔어라고 문자를 남기고 싶었다. 하지만 문자를 보내는 것도 전화를 하는 것도
나경은 할 수 없었다. 이렇게 이어지면 자신이 수현을 사랑하게 되는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었다.
수현은 운동장에서 나경을 만난 이후 계속해서 나경을 생각했다.
자신이 좋아했던 유일한 사랑은 나경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수현을 담배를 챙겨 밖으로 나왔다. 아무도 없는 시골 마을 돌담길을 따라 걸었다.
하늘에 별이 가득했다. 반짝이는 별들은 모두 스스로 빛을 내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지구과학 시간에 배운 생각이 났다. 스스로 빛이 나면 항성, 그렇지 못하면 행성이었다.
스스로 빛나는 별은 아무것도 살지 못하는 뜨거운 별이고,
빛이 나지 않는 지구엔 수없이 많이 생명들이 살고 죽어간다.
수현은 자신이 했던 일들 그리고 지나온 시간들중 스스로 빛나는 시간은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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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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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교육 키즈의 생애 16편 “특수반은 뭐야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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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가 내렸다. 귀퉁이에 쌓여 있던 마지막 눈덩이들이 겨우내 있었던 일들을 지우듯 사라져갔다.
수현은 마당에 나와 떨어진 낙엽과 눈을 치웠다. 이제 다시 농사를 시작해야 했다.
수현은 머릿속으로 해야 할 일들을 떠올렸다.
작년에 준비했던 볍씨를 소독해야 하고, 모판에 흙을 채워야 하고, 벼를 키우고
또 논을 갈고 편 다음 모를 심으면 되는, 정확한 순서가 있고 거기에 맞춰 일을 하면 결과가 나오는 일이었다.
이렇게 고민 없이 순서에 따라 일이 진행되는 농사가 좋았다.
병충해라는 변수가 있었지만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안 되는 일은 포기하면 되는 것이었다.
수현이 하고 있는 유기농 벼농사는 쉬우면서 어려웠다. 풀을 잡기 위해 우렁이를 넣었고
우렁이들은 벼와 풀을 구분하는 영특함을 가져 스스로 풀만 골라 먹었다.
논 농사의 핵심은 제초였다. 벼와 풀은 농사를 시작했던 과거부터 경쟁했고 지금도 여전하다.
풀을 제거해야 벼는 맘껏 포기를 불리고 풍성한 이삭을 만들어 낸다.
제초제를 사용하면 쉽지만 수현은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우렁이가 하지 못하면 수현이 풀을 뽑았다.
부드러운 흙을 밟고 풀을 뽑는 일도 수현에게는 땅과 소통하는 방법이었다.
벼와 피는 무척 닮았다. 어려서 어머니는 수현에게 벼와 피를 구분하는 방법을 알려줬다.
“수현아, 피 뿌리는 붉고 벼와 피를 만져보며 피는 미끈해. 알았어….”
적당한 거리를 두고 벼를 심으면 벼 사이로 바람이 충분히 소통했고 병충해는 줄었다.
어떤 해는 한 번도 친환경 농약을 치지 않았는데도 수확이 충분했고, 어떤 해는 수확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수현은 그것으로 만족했다. 돈을 써야 할 것이 없었다. 모든 농사는 오직 자신의 몸으로 해결했다.
아버지 석태가 30년 전에 구입한 경운기 한 대가 수현의 유일한 농기계였다.
봄 햇살이 따스해지자 수현은 경운기에 냉각수를 채우고 시동을 걸었다.
끼릭 끼릭 텅 텅 텅 터텅텅…
시동이 걸리자 수현은 경운기를 몰고 논으로 향했다. 넓고 넓은 평야에 한 점으로 보이는 아버지가 물려준 논이 보였다.
수현은 경운기를 몰고 갔다. 익숙하게 경운기 바퀴를 쇠로 바꾸었다.
그리고 트레일러를 분리하고 쟁기를 달았다.
이른 봄 끝없이 펼쳐진 평야엔 수현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수현은 익숙한 솜씨로 논을 갈아엎었다.
녹이 슬어 있던 보습은 흙과 만나 어느새 새것처럼 반짝거렸다.
수현의 등 뒤로 아침 해가 떠올랐다. 등이 따스했다. 수현의 아버지와 어머니 생각났다.
봄볕처럼 따스했던 아버지 어머니의 손길이 생각났다.
어느 해 수현은 경운기를 운전하다 고랑에 빠진 적이 있었다.
그때도 봄이었고 모판에 채울 흙을 골랐던 날이었다. 하루 종일 붉은 황토를 체로 걸렀다.
그 흙을 경운기에 가득 싣고 수현은 집으로 향했다.
수현은 아버지와 막걸리를 한 잔 했고 수현은 취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더 취했고 경운기 운전은 수현이 했다.
수로를 따라 가다가 경운기 손잡이를 놓쳤고 경운기는 휙 돌아 수로로 돌진했다.
다행히 수현은 경운기에서 뛰어내렸고 수로에는 다행히 물이 없었다.
아직 이른 봄이었고 논에 물이 필요한 시기가 아니었다.
수현 뒤에서 자전거를 타고 오던 석태는 자전거를 버리고 달려왔다.
“수현아 괜찮아!”
“아.. 네. 아버지 죄송해요.”
“하루 종일 일했는데..”
“아니다.”
석태는 수로에 내려가 경운기 엔진을 껐다.
그리고 동네 트랙터를 빌려 경운기를 꺼냈다.
다행히 경운기는 트레일러를 연결하는 부위가 파손되었을 뿐 큰 고장은 없었다.
“그러니까 아버지가 그랬잖아…. 급할수록 천천히 하라고….”
수현은 아버지에게 경운기 운전을 배웠다.
“수현아 천천히. 빨리 하려고 하면 다친다니까….
천천히 가.. 천천히 해봐..” 아버지는 항상 수현에게 천천히 하라고 했다.
급하면 돌아가라고 수현의 아버지는 말했다.
아버지는 급하면 돌아가라 했지만 아버지는 급하게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도 급할 때 돌아가지 못했다.
그리고 수현은 이제 급할 것도 서둘러 돌아갈 곳도 없었다.
풀이 가득했던 논은 쟁기가 지나가자 뿌리째 엎어졌다.
수현은 오래전 자신이 세상을 갈아엎는 쟁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은 쟁기가 되지 못했다. 날카로운 보습도 되지 못했다.
생각이 많아지자 이랑은 삐뚤어졌다.
지평선 너머로 해가 넘어가자 수현은 경운기 쇠바퀴를 고무바퀴로 바꾸었다.
수현은 다시 경운기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수현아!” 현주가 집 앞에 수현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 무슨 일이야…”
“아니 이 동네 지나가는 길에 잠시 들렀어
. 너 혼자 산다며… 반찬은 있어.. 이거 집에 남는 반찬이 있어서 너 먹으라고.”
수현은 경운기에서 내려 현주가 주는 반찬을 받았다.
“어.. 그래 고맙다.”
현주는 잠시 멈칫하더니 다시 차를 타고 돌아갔다. 수현은 방 안으로 들어왔다.
현주가 준 반찬으로 밥을 먹었다. 솜씨가 좋았다.
이후로 현주는 가끔 수현을 찾았다. 수현은 현주가 오는 것이 싫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날부터 현주는 수현의 집에서 출퇴근을 했다.
수현과 현주가 함께 살기 시작하고 두 해가 지나자 현주는 수현의 아이를 낳았다.
수현은 그렇게 아버지가 되었다. 하지만 수현은 현주와 결혼하지 않았고,
현주는 아이가 말을 하기 시작할 때 수현을 떠났다.
집에 들어와 살 때도 떠날 때도 수현은 현주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현주는 그런 수현을 참을 수 없었다.
현주는 자신을, 수현을 사랑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처음 스스로 들어온 것처럼 스스로 수현의 집을 떠났다.
“아이는 당신이 키워…. 그러는 게 좋을 것 같아 미안해….
” 현주는 그 말을 남기고 수현이 살던 도시를 떠났다.
수현은 혼자 아이를 키웠다. 수현은 아이를 키우는 것이 싫지 않았다.
기저귀를 갈고 이유식을 먹이고 목욕을 시키고 잠을 재우고 하루하루가 아이의 생활에 맞춰야 했다.
아이를 키우는 일이 수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되었다.
그렇게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몇 번 지나고 수현의 아이는 학교에 들어갔다.
시골 학교에는 아이들이 없었다. 수현의 아이 수지가 학교에 입학했을 때 1학년에 아이가 3명뿐이었다.
수현은 어느새 40대가 되었다.
나경의 아이는 사회성이 없었다. 나경은 자신의 아이가 일반 학교에서 다닐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아니 적어도 일반 학교에 가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학교에서 나경의 아이를 받아주는 곳은 많이 없었다.
나경의 아이는 매년 이 학교 저 학교를 전전했다.
다행히 나경의 아이는 많이 좋아졌다. 나경이 보기엔 충분했다.
스스로 대소변을 처리했고 한글을 알고 오랜 언어치료를 통해 말도 제법 잘했다.
눈치 없는 아이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학교가 바라보는 나경의 아이는 일반 아이와는 전혀 다른 아이였다.
나경의 아이는 특수반에서 공부했다.
“특수반은 뭐야 엄마….”
“어. 특별한 아이들이 있는 곳이야.”
“나는 왜 아이들과 하루 종일 수업하지를 않아? 나는 왜 달라?”
나경의 아이 석민이 이런 질문을 해주기를 바랐지만 나경의 아이는 질문하지 않았다.
특수반에 자신이 왜 있는지, 왜 자신은 다른 아이들과 다른지 관심이 없었다.
자신을 다른 아이와 비교하지 않았다.
비교하지 않기 때문에 다른 아이를 통해 배우지 못했다.
다른 아이들이 웃고 있어도 따라 웃지 않았고 다른 아이들이 울고 있어도 따라 울지 않았다.
“엄마 아파요? 엄마 힘들어요?”라는 말을 하지도 묻지도 않았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묵묵히 하고 있을 뿐이었다.
“석민이 너는 참 편하겠다.
세상일에 이렇게 무관심하고 좋아하는 일만 하고 있으니….”
나경은 매일매일 지쳐갔다. 아픈 아이를 키우는 일은 일반 아이를 키우는 것에 비해 열 배 아니 그 이상 힘든 일이었다.
“발달장애 진단을 받은 30대 엄마가 아이와 함께 투신자살을 했습니다.”라는 기사가 뉴스에 나올 때
나경은 그 맘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처음 나경도 석민이가 말을 하지 못해 병원에 가서 발달장애가 있다는 진단…
아니 확정을 받던 날,
나경도 아이와 함께 도쿄 오다이바 바다에 빠져 죽어 버릴까 하는 상상을 하곤 했다.
처음 나경의 아버지가 석민을 만났을 때 나경의 아버지는 석민이를 영진에게 주고 한국으로 돌아오라고 했었다.
영진이 맘에 들지 않았던 나경의 아버지는 석민이도 싫어했다.
장애가 있는 아이는 더 싫었고 석민이가 하는 행동 모두가 맘에 들지 않았다.
할아버지를 봐도 웃지도 않았고 인사도 하지 않는 아이를 좋아하지 않았다.
발달장애는 천형과 같은 것인가? 영원히 정상 아이들과 격차가 줄여지지 않는,
좁혀지지 않는 간극! 하나를 해결하면 늘 열 가지 문제가 앞에 있는 것이라고 나경은 생각했다.
일반 아이들이 직행버스라면 발달장애가 있는 아이들은 자전거도 되지 못했다.
달리기를 할 때 걸었고 아이들이 노래를 할 때 의미 없는 소리를 질렀다.
나경은 그래도 아이를 포기하지 않았다. 포기하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그 간극이 조금씩 가까워질 것이라는 희망을 거두지 않았다.
“우리 아이도 언젠가는 일반 아이들과 같아질 날이 올 거야!!”
하지만 그 기대는 오래가지 못했다. 나경의 아이가 11살이 될 때 서울의
그 많은 학교 어디에서도 나경의 아이를 받아주지 않았다.
“석민이 어머님 죄송합니다. 아이들이 수업에 방해가 된다고 민원이 들어와서요.”
“이제 저학년이 아니고 고학년이고… 이제 아이들 공부도 해야 하고요.”
“석민이가 수업 시간에 이상한 질문을 해서 수업 진행이 안 됩니다.”
“석민이가. 석민이가……”
나경은 더 이상 자신이 살고 있는 곳에서 석민이 갈 수 있는 학교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해 봄 나경은 수현이 있는 시골로 내려왔다. 나경이 아는 시골은 수현이 살고 있던 동네뿐이었다.
수현을 만나러 여러 번 왔었고 익숙했다.
교육청에서 소개해 준 작은 시골 학교에 갔을 때 나경은 수현을 닮은 아이를 봤다.
“어머님 이 학교엔 5학년이 두 명뿐이에요.”
“그래도 괜찮으시겠어요?”
“네.”
“우리 아이도 괜찮아요?”라고 나경이 물었을 때 교사는 짧게 말했다.
“그럼요.”
“괜찮아요.”
“저희가 잘 돌볼게요.”
읍에 아파트를 구입했다. 작은 소읍이었고
마트라고는 하나로마트가 유일했다.
걸어서 20분이면 끝에서 끝에 도착했다.
나경은 이 작은 시골에서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했지만 길게 고민하지는 않았다.
이 도시에 나경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저 아이를 키우는 것뿐이었다.
“석민이 어머니 혹시 학교 운영위원을 해주실 수 있나요?”
“혹시 학부모회를 해주실 수 있나요?”
나경에게 걸려 오는 전화는 도시에서는 석민이가 문제가 있다는
전화에서 학교를 위해 나경이 할 수 있는 일을 해달라는 전화로 바뀌었다.
나경은 매일 학교에 갔고 학교 가는 일이 나경의 일이 되었다.
가끔은 학교에서 장애인 인식 교육을 하기도 했다.
일본어를 교육하거나 피아노를 알려주기도 했다.
나경은 점점 활기를 얻었다.
장애아를 키우는 엄마가 아닌 다른 삶을 시작할 수 있었다.
석민이도 시골에 친구들이 생겼다. 축구를 하면 아무도 하지 않는 골키퍼를 했고
곧잘 공을 막기도 했다. 아이들이 부족한 곳에서 석민이도 역할이 주어졌다.
나경은 그런 석민을 보며 자신도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경은 스스로 가두고 살았던 희망이나 행복을 다시 꿈꿀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순간 눈물이 흘렀다.
“엄마 왜 울어?”
석민이 엄마에게 그 말을 꺼냈을 때 나경은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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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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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교육 키즈의 생애 15편 "겨울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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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가 멈추었다.
나경은 기차가 출발하고 도착하는 세 시간 내내 수현을 생각했다.
얼마나 변했을까?
결혼은 했을까?
내가 다시 수현을 만나도 되는 것일까? 고
등학생이었던 수현을 만나던 날, 그리고 수현이 학생운동에 빠지고 교도소까지 가고
난 이후에 도망치듯 떠난 자신이 다시 수현을 만나는 것이 옳은 일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수현을 만나도 될까? 다시 수현을 망치는 것은 아닐까?
나경은 자신이 아픈 아이가 있고, 이혼을 했고, 나이가 많고, 수현을 다시 만나면
수현을 사랑해 버릴 것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경은 역안에서 서성이는 수현을 봤다.
검은색 롱코트에 잘 다려진 바지, 어디에 있어도 큰 키 때문에 한 눈에 찾을 수 있는 수현이 역 안에 있었다.
나경은 잠시 일어 섰다가 주저 앉았다.
수현은 기차가 떠나고 한 참을 역앞에서 기다렸다.
나경은 결국 나오지 않았다.
여전히 눈이 내리고 있었다.
수현은 역을 빠져 나왔다.
겨울 해는 짧게 머물다 서편으로 떠났다.
수현은 나경이 기차에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나경이 일어섰다가 다시 주저 앉는 것을 봤다.
수현은 나경이 탄 기차로 달려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자신이 나경을 만나면 나경을 사랑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혼한 나경을 사랑 할 수는 없었다.
수현은 왔던 길을 다시 걸었다.
옷가게 앞을 지날 때 현주가 나왔다.
수현아..
어.. 현주야..
잘 차려입고 어디 선이라도 보러 가나 했는데 왜 이렇게 빨리와?
어. 그냥,..
다음에 보자… 현주야
야.. 이 수 현… 잠깐만 ….
“눈도 오고 오늘은 손님도 없을 것 같은데 나랑 밥이나 함께 먹자.”
야. 기다려..
네가 오늘 매상도 올려주고
내가 초등 동창에게 옷 판 기념으로다 밥한끼 사줄께.
너 집에 가야 함께 밥 먹을 사람도 없잖아…
어… 그 그래....
눈도 오는데.
현주는 수현을 잡아 끌고 근처 식당으로 향했다.
읍에 가장 번화가 이층에 자리잡은 바나나숲이라는 경향식 집이었다.
수현은 여기서 나경과 만난 적이 있었다.
오래전 수현이 겨울에 아파트 잡부일을 하고 있을 때
나경과 함께 차를 마시러 왔던 곳이었다.
현주는 창문이 보이는 자리에 앉았다.
나경과 함께 앉았던 곳이었다.
현주는 오래전 자신이 수현을 짝사랑하던 때가 생각났다.
초등학교때 시작한 짝사랑은 수현이 교도소에 갔다는 소문이 났을 때도 여전해었다.
수현이 학생운동을 하다가 교도소에 갔다면 그럴만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현주는 생각했다.
현주는 음식과 술을 주문했다. 둘은 초등학교 친구들을 하나씩 이야기 하며 이야기 했다.
수현은 이런 이야기를 처음 해봤다. 기억나는 친구들이 있었다. 수현은 모두 잊고 살았다.
지난 10년간 아무것도 기억나는 것이 없었다.
농사를 짓고 수확하고 노무사 시험에 떨어졌고 그것이 다였다.
지숙을 만났지만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못했고 나경을 생각했지만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고향에 친구들이 있었지만 찾지 않았고 찾아와도 인사만 했을 뿐 다시 연락하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현주를 만났고 오래전 친구들 이야기를 다시 꺼냈다.
수현은 오랜만에 취했다. 현주는 취한 수현을 모텔에 데려갔다.
현주는 수현과 함께 잤다.
수현이 일어 났을 때 현주가 속옷만 입은 채 옆에 누워 있었다.
수현은 코트에서 담배를 꺼냈다.
“수현아 일어 났어?’
“어"
“어제 무슨일이…
수현은 더 말을 하려다가 참았다.
무슨일이 있었냐고 묻는 것은 현주에게 해서는
안 되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현주는 어색하게 수현을 바라보면 웃었다.
“어제 아무일도 없었어. 수현아”
너랑나랑 취해서 여기서 잤을 뿐이야.
그러니까 부담갖지마….
현주는 그렇게 서둘러 옷을 입고 모텔을 빠져 나갔다.
수현은 모텔방에서 두번째 담배에 불을 붙였다.
오래전 나경이 떠나던 밤이 생각 났다.
그 때 수현은 나경을 붙잡지 못했다.
나경이 수현의 손을 잡아 가슴에 올렸을 때 수현은 모르는 척 몸을 돌렸고 그 날 나경은 떠났다.
그때는 잠든 척했고 어제는 잠들었다.
술에 취해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었을까?
어젯밤 일을 떠올려 보려고 했지만, 수현은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나경은 기차를 타고 여수까지 갔다.
도착하니 밤이었다. 여수의 밤은 도쿄의 밤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경은 도쿄에서 지치고 힘들때 오다이바에 해변을 걸었다.
이국적인 건물들이 즐비한 오다이바의 해변에서 나경은 오래전 수현과 걸었던 부산의 바다를 생각했다.
수현과 함께 걸었던 부산의 바다도 이 바다와 연결 되어 있으므로 수현과 자신이 아직은 연결 되어 있다고
나경은 스스로 만족했다.
나경이 역에서 나왔을 때 여수의 바다는 평화로웠다.
“혼자 여행을 떠난 것이 언제였을까”라는 생각이들었다.
나경이 혼자 여행을 떠난 것은 아이를 낳고 처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온 집에는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있었고 나경의 아이는 한국에 돌아온 후 그전에 비해 눈에 띄게 좋아졌다.
스스로 밥을 먹고 화장실에 갔다.
나경은 이만큼만 해도 아이가 다른 아이와 비슷해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서 가장 단순한 일들을 하나씩 해결 하는 것이 발달장애를 가진 나경의 아이가 해야하는 유일한 공부였다.
다른 아이들이 달릴때 걸었고 다른 아이들이 말을 할 때 무무 윽 윽 소리만 냈던 아이였다.
이제 엄마…무.. 라고 이야기 했던 아이는 이제 엄마 물 이라고 말했다.
한 음절이 한 단어가 되었고 두 단어가 뭉쳐 말이 되었다.
주어와 목적어 서술어가 정확하지 않았지만, 아이는 이제 주어와 목적어를 정확히 알았다.
이제 자신의 욕구를 손가락이 아니라 말로 설명 할 수 있었다.
나경은 자신의 아이가 세상 살이의 기본은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것도 아닌 것이 가장 큰 도전이 되는 아이를 키우는 나경은 수현이 싸우려 했고 얻고자 했던 것들,
억압과 폭력, 독재, 민주주의, 평화, 인권같은 것들이 발달장애아를 키우는 것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를 해결 하면 다른 문제가 있었고 또 하나를 해결하면 또 다른 문제가 튀어 나온다.
나경의 아이도 화장실에 가면 다음은 스스로 변을 해결해야 하고 변을 해결하면 스스로 목욕을,
목욕을 해결하면 스스로 또 무언가를 해야 할 때 마다 새로운 문제가 생겼다.
끝이 없는 싸움이었다. 끝이 없는 것은 해결 할 수 없다. 오직 타협하거나 모른척 하는 길 뿐이다.
나경은 여수의 밤바다에서 자신의 아이와 수현을 생각했다.
나경은 천천히 오동도를 향해 걷다 지숙이 생각났다.
“지숙이 고향이 여수라고 했었지"
나경은 지숙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오랜만
나… 나경이야.
아. 선배 잘사셨어요?
그래
나.. 여수에 있어.
잠깐 볼래?
아. 잠시만요.
오늘은 힘들고 내일 만나면 좋을 것 같은데요?
내일은 …
내가 안 될 것 같아..
다시 돌아가야 하거든
어디로요
서울
서울에 사세요?
어..
돌아왔어…
얼마 전에…
그래요. 그럼 잠시만요.
선배 지금 어디에요
여기 오동도..
그럼 기다리세요.
제가 지금 나갈게요.
지숙은 오동도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갑자기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나경 선배는 왜 다시 한국으로 돌아 왔을까? 수현 선배가 생각나서 돌아왔을까?
지숙은 나경이 수현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았다.
자신이 사랑했던 수현이 나경을 사랑했었다는 것을 알았지만 신경쓰지 않았다.
나경은 일본에 있었고 그것은 충분히 안전한 거리였다. 하지만 다시 서울로 나경이 왔다는 이야기를 듣자 지숙은
나경이 신경쓰였다. 지숙은 왜 자신이 그런 생각을 할까. 하는 생각이 들어 웃었다.
수현과 자신이 지금 아무 사이도 아니라는 것이 생각 났기 때문이다.
자신이 몇해전 수현이 자신을 찾아왔을 때 더 이상 수현을 만나지 않겠다는 말을 했다.
“ 그래 이제 수현 선배와 나는 아무 사이도 아니야"
“미련은 없어… 아니 없어야 한다고 지숙은 생각했다.
나경은 지숙을 기다리며 수현 생각을 했다.
자신이 떠난 후 지숙과 만나는 수현을 생각 할 때 나경은 질투를 느꼈다. 자
신이 수현을 떠나왔지만 그녀는 결국 수현을 떠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카페에 앉아 있는 나경을 본 지숙은 나경이 예전의 모습 그대로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경 선배는 여전히 예쁘구나”
선배 오랜만이에요.
그래 지숙아… 잘살지
네.
공무원 생활은 어때?
뭐 그냥 매일 똑같죠.
출근하고 퇴근하고
각종 민원에….
그냥 그래요.
요즘은 여수 엑스포를 한다고 해서 엄청 바빠요.
네가 공무원이 될 것이라는 생각은 한 번 도 못했다.
갑자기 공무원은 왜 된거야?
나름 열혈투사께서..
선배 저 놀리는 거죠.
전 열혈 투사인적 없었어요.
그냥 열심히들 투쟁 하니까 옆에서 도와준 거죠.
너.. 강진이 있던 써클에 있었잖아?
그러면서 수현이랑 사귀고..
그러니까요.
지금 생각하면 저도 참 웃기죠.
수현선배 입장에서 보면 제가 웃겼을 것 같아요.
수현 선배는 강진 선배랑 방향이 다르잖아요.
그러니까..
너도 참.. ..
그러니까요.
하하….
지나고 나니 별 것도 아니지만요.
나경 선배 그거 알아요.
뭘
강진 선배 아직도 학교에 있어요.
아직도..네.
뭐 학교에서 뭘 하시는지..
수현은 뭐해?
수현 선배요.
모르세요.
수현 선배 고향에서 농사짓잖아요.
꽤 되었을걸요.
그래
나경은 어제 수현의 모습을 생각했다.
전혀 농부와 어울리지 않았다. 검은색 롱코트에 흰색 셔츠에 날선 바지까지….
농부의 모습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경은 수현이 자신을 만나기 위해 준비를 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기분이 좋아졌다. 수현이 아직 자신을 사랑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수현이 농사를 짓는다고?
그래….
너는 수현하고는?
진작에 헤어 졌어요.
수현 선배 교도소 갔을 때 이제 더는 기다리지 못하겠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먼저 헤어지자고 했어요.
그리고 공무원 준비해서 시험보고 바로 여수에 내려왔어요.
고향이 편하고 좋아요.
혼자 계신 어머니도 좋아하시구요.
저는 선배처럼 부자가 아니어서요.
전 안정적인 직장이 꼭 필요해요.
연애는 안 해?
연애요.
연애는 하고 싶은데 잘 안 되네요.
그냥 수현선배하고 자꾸 비교하게 되고 뭐 그래요.
너무 잘난 남자를 만났나봐요.
지숙은 나경을 보며 웃었다.
몇 해전에 수현 선배가 저를 찾아왔었어요.
예전 모습은 아니더라구요.
많이 변했어요.
자신도 없어 보이고, 열정도 없고
맥이 빠진 사람처럼 보이더라구요.
농사가 편해서 그런지 아니면 더 이상 투쟁할 목표가 없어서 그런지..
아무튼 그랬어요.
오래전에 그 모습은 아니더라구요.
생긴 것 빼고요.
지숙은 나경을 보며 여전히 수현에게 관심이 많은 나경이 안쓰러워 보였다.
여전히 나경이 수현을 좋아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결혼도 했고 아이도 있다고 하던데…..
“여전하구나 선배는”
어. 뭐가
여전히 수현 선배를 좋아하죠?
네가…
무슨. 아니야..
너랑 나랑 만나서 누굴 이야기 하겠니…
수현이 밖에 더있어…
나경은 지숙이 여전히 수현을 좋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숙도 역시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지숙은 더이상 수현을 사랑하지 않는다.
그것은 과거의 자신이 그랬을지 몰라도 현재는 그렇지 않다.
수현을 사랑했던 과거의 자신보다 지금의 자신이 더 좋았다.
수현을 사랑할 때 지숙은 힘들었고 늘 불안했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수현이 가장 편안한 길을 선택했고
자신을 찾아 왔을 때 그런 수현에게 지숙은 맘이 가지 않았다.
지숙은 수현의 불안한 삶 때문에 떠났지만 수현이 안전한 길을 선택하자 수현에게 미련이 사라졌다.
지숙은 자신이 사랑했던 것은 수현이 아닌 학창시절의 투사 같던 수현을 사랑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숙은 자신이 사랑한 이수현의 본질이 무엇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사랑했던 것은 수현이 본질이 아닌 자신에 눈에 비친 또다른 이수현이었다는 생각이 들자
더 이상 자신이 수현을 사랑하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나경은 지숙에게 수현의 소식을 들은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졌다.
적어도 수현이 이제는 더이상 처음 자신과 만났던 그 길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로써 나경은 한 사람의 인생에 자신이 끼친 부채에서 벗어난 기분이 들었다.
한 편으로 이제는 정말 수현을 사랑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내저었다.
자신은 이미 결혼했고 아이가 있으며 그것도 아픈 아이가 있으며… 나이가 많고..
나경은 자신의 마음과 현재의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며 수현을 향한 마을을 지우려고 노력했다.
지숙과 나경은 밤 바다를 뒤로 하고 헤어졌다.
지숙은 다시 택시를 타고 자신의 삶이 기다리고 있는 엄마의 집으로 향했다.
나경은 밤 바다를 뒤로 하고 밤 기차를 타고 아이가 있는 엄마의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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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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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교육 키즈의 생애 14편 엇갈린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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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이 무거워진 벼는 점점 고개를 숙이기 시작했다.
남풍에서 북풍으로 바람의 방향이 변했다.
아침 저녁으로 찬 바람이 불었고 벼는 더 고개를 숙였다.
수현이 들판에서 익기 시작한 벼를 바라보고 있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노무사 시험을 봤지만 수현은 번번히 낙방했다.
그렇게 5년이 지났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논 농사와 밭농사를 짓기 시작한지 5년이 되었다.
이제는 그 스스로도 농부라고 생각하고 살았다.
수현이 농부가 되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수현의 아버지는 농부였고 그의 어머니도 농부였다.
수현이 돌아 갈 곳은 농촌 뿐이었다.
농민회에 가입하라는 이야기를 여러번 들었지만 농민회에 가입하지도 않았다.
한 때 그의 모든 것처럼 여겼던 민주주의 그리고 혁명 세상의 부조리
그런 모든 단어는 수현의 마음속 깊은 수렁에 빠져 다시 나오지 않았다.
수현은 근원을 알 수 없는 무력감에 빠져 살았다.
수현이 보낸 10년은 희망보다는 절망에 가까운 것이었다.
지숙이 살고 있는 여수에 수현은 딱 한 번 가본적이 있었다.
지숙은 여전히 수현을 좋아했다. 하지만 과거의 수현을 좋아했다는 것을 수현을 다시 만나 보고 알았다.
지금의 수현은 과거의 열정이 넘치는 대학때 수현이 아니었다.
“선배 왜 그래?”
“뭐가"
“과거의 모습은 어디로 갔어?”
“과거라니….”
“대학때 열정이 넘치던 수현선배는 어디 갔냐고?”
“그러게….”
“어디로 갔을까?”
“초심을 잃어버린 자의 말로라고나 할까!”
지숙은 수현이 잃어버린 초심이 무엇인지 알 고 있었지만 더이상 말을 하지는 않았다.
지숙 자신도 잃어버리는 초심을 수현이라고 가지고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선배 강진 선배 이야기 들었어?’
“무슨 이야기?”
“강진선배 아직도 학교에 있던데?”
“아직도?”
“그래"
“군 제대하고 복학하고 나서 지금까지 학교에 있더라구….”
“학교에서 뭐하고 있는데?”
“그것까지는 나도 모르고….”
“ 뭐 하던 것 하겠지”
“학교에 한 번 가봐?”
지숙과 수현은 여수 오동도를 걷다가 돌산 대교까지 걸었다.
바다는 여전히 푸르고 돌산의 다리는 여전했지만 지숙과 수현의 말을 겉돌았다.
“수현 선배 저 가볼게요"
“저녁에 약속이 있어서요"
지숙은 있지도 않은 약속을 핑계로 수현과 헤어졌다.
함께 있는 시간이 길어 질 수록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과거의 이야기는 가능 했지만 미래의 이야기가 불가 했다.
아무것도 없는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었고,
있지도 않을 미래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은 헛된 것이었다.
그 후로 수현은 지숙를 찾지 않았다.
지숙 역시 수현을 찾지 않았다.
하지만 벚꽃이 피고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고 눈이 올 때 마다 지숙은 수현을 생각했다.
수현은 가끔 나경 생각을 했다. 일본에서 나경은 잘 살고 있겠지..
가끔 도쿄에 가서 나경을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결혼한 나경을 만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수현은 도쿄에 가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날 나경에게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네"
“나.. 나경이야"
네…..
수현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10년 만에 걸려온 나경의 전화 한 통으로 수현은 자신이 여전히 나경을 사랑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경 선배 맞아요?”
“어 그래"
“우리 한 번 만나자"
“아.. 그래요.”
나경이 수현을 찾은 것은 첫 눈이 내린 며칠 후였다.
도로에 그 날 내린 눈이 갓길에 쌓여 있었다.
뉴스에서 빙판을 조심하라는 안내가 있었다.
나경은 수현이 사는 남쪽으로 가는 기차에 올랐다.
수현을 만나야 할까? 아니면 그냥 말아야 할까?
한국에 돌아 오는 비행기에서 부터 고민했었다.
아이를 키우기 힘들어 한국에 가야 한다고 했을 때 남편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이혼하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날 제일 먼저 떠올린 것은 수현이었다.
잊고 싶어도 잊혀지지 않는 수현이라는 이름을 지워 버리고 싶어
일본에 도망치듯 떠난지 10년이 지났지만 그녀의 마음속엔 그 이름을 여전히 잊을 수가 없었다.
수현역시 나경을 잊지 못했다. 지숙을 사랑했지만 그녀는 떠났고
나경을 떠나 보냈지만 여전히 그리웠다. 수현은 그 후로 아무도 만나지 못했다.
봄이 오면 농사를 시작했고 가을이 오면 수확했다. 그 단순한 삶에 빠져 살았다.
어머니는 오래전에 돌아가셨다. 수현의 집엔 아무도 없었다.
들판에서 돌아오면 수현을 반기는 온기라고는 햇살에 뜨거워진 대문 손잡이 뿐이었다.
수현은 스스로를 방치했다.
그렇게 세월이 가고 수현도 나이를 먹었다.
그런데 나경이 오늘 온다는 것이었다.
기차 도착 시간은 오후 5시였다.
수현은 옷장에서 옷을 꺼내 보았다. 옷을 구입한 것이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았다.
오랜시간 동안 구입하지 않았다. 입을 만한 옷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수현이 입고 있는 옷은 그가 20대에 구입했던 옷들 뿐이었다.
옷을 구입한 기억이 없었다.
수현은 미리 읍에 나가 옷이라도 하나 구입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트럭에 시동을 걸었다. 수현이 중고 트럭을 구입한 것도 5-6년 전이었다. 구입 했을 때 이미 10년을 넘긴 차였다.
시동키를 돌렸지만 한 번에 시동이 걸리지도 않았다.
키를 돌리고 엑셀레이터를 살짝 밟았다. 그러자 시동에 걸리다가 푸드덕 하고 꺼져 버렸다.
겨울엔 항상 이랬다.
“무엇하나 변변한 것이 없군"
수현은 스스로 변변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현은 마을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읍으로 나갔다.
인구 5만의 소도시, 모두가 떠나는 도시로 돌아온 수현을 반기는 것은 텅 빈 가게들 뿐이었다.
가게는 줄고 병원과 요양병원만 늘었다. 젊은 사람들은 서울로 갔다.
‘옷가게가 어디 있었더라”
토요일 오후에도 소도시엔 사람이 없었다.
겨우 찾은 옷가게에 들어가자 주인이 반색을 하며 수현을 반겼다.
겨울 잠바 하나 사려구요.
네.
주인은 수현의 얼굴을 바라봤다.
혹시… 이수현씨 아닌가요?
네.. 맞는데요.
아. 맞구나.
누구시죠?
나.. 몰라!
기억 안나?
나 최현주….
우리 초등학교 동창인데….
아.. 그런가…
미안해.. 기억을 못해서
그러겠지.
그때 너는 공부도 잘하고 키도 크고 너 좋아하는 우리반 아이들이 많았는데?
아. 그랬나….
야.. 우리 다음에 한 번 보자.
어..그래
오늘 무슨 일 있어?
아.. 일은 무슨….
그냥 옷이 없어서….
그럼 잠바 하나 골라줘….
내가 옷을 사본적이 없어서…. 수현은 오히려 잘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옷을 사본적이 없어 무슨 옷을 사야하는지도 몰랐다.
알았어…
초등학교 동창이니까 내가 알아서 코디 해줄께…
근데 너 결혼 안 했어?
어… 혼자 살아.
야.. 너 같은 애가 혼자 살아?
어. 뭐…
현주는 초등학교때 학교에서 가장 키가 크고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했던 수현을 떠 올렸다.
그런 수현을 현주도 좋아했지만 워낙 인기가 많아 수현을 멀리서 보기만 했었다.
말 한 마디 못했던 그 시절이 생각났다. 그런 수현이 고향으로
내려와 농사를 짓는 다는 소식을 현주도 친구들을 통해 이미 알고 있었다.
초등학교 동창들끼리 만나면 수현을 두고 안주삼아 떠들었다.
야.. 너희들 이수현 알지.
어. 야 수현이를 모르면 간첩이지.
수현이 농사짓는다고 하던데?
정말?
좋은 대학도 졸업하고 뭐 좋은 곳이라도 갔을 것 같은데 농사를 짓는다고?
그래,
그것도 벼농사 삼천평…..
벼농사 3천평 지어서 어떻게 먹고 살아…
그러니까….
뭐.. 유기농 벼농사 짓는다고 논에 피만 잔뜩 있다고 동네 사람들이 다 욕한다고 하더라….
너 어떻게 알아?
야.. 수현이 우리 옆 동네 살잖아..,
그럼 너 수현이 본 적 있어?
몇 번 봤지….
그래.. 요즘은 어때
뭘 묻는 거야?
수현이 얼굴….
그래?
여전하지 뭐.. 농사 짓는 다고 그 얼굴이 어디 가냐?
여전히 키크고 몸도 좋고 잘생겼더라…..
그치…
야.... 한 번 보고 싶다…
우리 초등학교에서 수현이가 최고 였잖아….
그치….
내가 결혼만 안 했어도 한 번 말이라도 걸어 보려다가..
야.. 너는 아이만 셋이잖아
그래..히 히
현주는 얼마전 친구들과 만나 수현에 대해 이야기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옷 안 골라줘?”
“ 어.. 그래"
현주는 수현에게 어울릴 만한 롱코드를 골랐다.
야.. 키큰 남자에게 롱 코트가 어울려….
잠바 보다는…
농사짓는 놈이 무슨 롱코트냐… 그냥 잠바나 줘…
야.. 아니야.. 이게 더 잘어울려….
바지도 하나 더 사라..
바지가 그게 뭐냐?
10년은 넘어 보인다.
그런가….
내가 동창 디스카운트 팍팍 해줄게…
그래.
수현은 더 이상 이야기가 하기 싫어 현주가 권하는 대로 옷을 샀다.
수현아.. 셔츠는 서비스다.
선물이라고 생각해.
수현은 평생 입어 본적이 없는 고가의 옷을 구입했다.
수현은 그동안 5만원이 넘는 옷 한 벌을 구입해 본적이 없었다.
수현은 현주가 골라준 옷을 들고 탈의실로 향했다.
헌 옷을 벗고 새 옷으로 갈아 입었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오래전 자신의 모습이 생각났다.
거울을 보며 수현은 “그래 나도 꽤 보기 좋았던 때가 있었지”라는 생각을 했다.
“역시 이수현 멋지다" 현주는 수현을 보고 말했다.
봐라. 내가 골라준 옷을 입으니까 완전 달라 보인다.
그래… 고맙다.
수현은 가게를 나왔다.
어느새 밖은 다시 눈이 오기 시작했다.
수현은 가게를 나와 시내를 걸었다.
수현이 중학교때 놀던 오락실은 세탁소로 바뀌어 있었다.
엄마 아빠도 없이 혼자 먹었던 초등학교 졸업식날의 짜장면집은 여전했다.
수현이 역 앞에 도착했을때는 기차가 도착하기까지의 시간은 많은 남은 상태였다.
눈은 펑펑 쏟아졌다.
“차를 가지고 오지 않기를 잘했구나.”
수현은 나경을 만나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무엇을 물어야 할지 생각했다.
결혼 생활은 어떤지… 일본 생활은 어떤지.. 잘사는지.. 행복한지 …..
수현은 나경에게 물어보고 싶은 이야기를 머릿속으로 정리해봤다.
하지만 이런 자신의 물음이 무슨 소용이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수현이 사는 도시는 눈이 많은 곳이었다. 눈이 내리기 시작하며 며칠씩 내리곤 했다.
수현은 눈오는 날이 좋았다. 학교를 안 가도 되었고,. 이런 날은 엄마도 하루종일 집에 있었다.
엄마는 고구마 삶거나 찐빵을 만들어 주었다. 수현은 엄마 생각이 나면 찐빵을 먹곤했다.
시큼한 막걸리가 들어간 찐빵을 먹을 때면 세상에 없는 엄마 냄새가 났다.
“잠시후 여수행 새마을호가 도착 하겠습니다.”
“여수행 새마을호를 이용하실 고객 여러분께서는 안전한 승강장에서 기다려 주시기 바랍니다.”
역무원의 안내 방송이 끝나고 기차가 플랫폼에 도착했다.
수현은 역 창문 너머로 나경의 모습을 찾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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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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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교육 키즈의 생애 13편 "결혼 이혼 장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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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문안으로 검은색 벤츠 W-124 들어왔다.
교문을 통과한 벤츠는 학생회관 앞에 도착했다. 운전기사가 뒷 문을 열자 예쁜 여학생이 내렸다.
“김기사님 첫 날 부터 늦으면 어떡해요!”
“죄송합니다"
나경은 학생회관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오늘은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이 있다고 했다.
나경은 대학생이 된 자신이 너무 좋았다. 이제 나의 답답한 과거와는 결별이라고 나경은 외쳤다.
“새내기 여러분 반갑습니다.”
“저는 총학생회장 김문술입니다.”
“당당하게 대학생이 되신 새내기 여러분!!
대학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아무도 답을 하는 사람이 없자 총학생회자 문술은 다시 이야기 했다.
여러분이 열심히 공부해서 이 대학에 들어왔지만 여러분이 한 번 생각해야 될 것이 있습니다.
새내기 여러분 이제 고등학생이 아닌 대학생이 되었어요.
이제 나만 생각하지 말고 내 주변에 소외되고 고통받는 사람들의 손을 잡아 줄 수있는
당당하고 멋진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즐거운 대학생활 하세요!
나경은 학생회관 제일 뒷 자리에 앉아 총학생회장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소외되고 고통받는 사람들이라….
방송에 나오는 가난한 사람들 이야기 하는 것일까?
열심히 살면 누구나 부자가 되는 것 아니가? 가난한 사람에게는 가난한 이유가 있고
부자인 사람에게는 부자인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나경은 생각했다.
오리엔테이션의 2부는 각 과에서 준비한 행사가 있었다.
과학생회장과 부학생회장이 나와서 인사를 했다.
총학생회장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소외되고 고통받는 사람들의 삶을 생각하는 학우 여러분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나경은 소외되고 고통받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생각해보려고 했지만 주변에서 찾기 힘들었다.
나경은 잠시 신입생 때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다.
나경은 가끔 자신이 일본에서 소외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 사는 것과 일본에서 사는 것은 많이 달랐다.
여기는 외국이고 거기다가 일본이었다.
나경의 남편은 재일교포 3세였다.
“나경씨 저는 한국 이름을 지키기 위해 많은 것을 감당해야 했었요"
“그래요?”
“왜요?”
“왜요라니요!
“일본에서 한국 이름으로 사는 것은 불편하고 힘든 일입니다.”
“그런가요?”
“저도 한국 이름으로 살고 있고 많은 한국인이 일본에서 한국식 이름으로 살고 있는데요?
“아 그거 하고 이거는 다른 문제입니다.”
“저는 여기서 태어났고 학교를 다 일본인 학교에서 다녔어요"
“그런데요?
“ 일본에서 한국씩 이름으로 살면 왕따 당하기 쉽다구요"
“ 그건 그냥 자신이 못나서 그런 것 아닌가요?’
“아.. 그것과는 다른 이유입니다.”
영진은 학교를 다니면서 자신이 한국인 이라는 것 때문에 힘들었던 이야기를 더 하려고 했지만
나경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부질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혀 다른 곳에서 살던 사람이 여기서 살던 사람의 모든 것을 이해할 수는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영진도 같았다. 나경이 한국에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 영진도 알 수 없었던 것이다.
그가 아는 것이라고는 나경의 집이 생각보다 잘 산다는 것과 나경이 한국에서 대학에 다닐 때
학생운동을 했었다는 것이었다.
나경은 가끔 자신이 대학생 시절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다. 자신이 열열투사인 것처럼 이야기 할 때도 있었고
그래도 열심히 도움을 주었다는 이야기도 했었다.
영진의 그런 이야기를 할 때 나경의 눈빛이 달라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에서 나경의 모습은 보통의 평범한 유부녀의 모습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둘은 결혼 한지 4년이 지났지만 아이가 없었다. 처음 2년은 나경이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경은 마음이 변했을 때는 생각처럼 임신이 쉽지 않았다.
1년이 지났고 여전히 아이가 찾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또 1년이 지났다.
포기하려는 순간 아이가 찾아왔다. 건강한 남자아이를 낳았다.
하지만 3년이 지난 후에도 나경의 아이는 말을 하지 못했다. 나경의 아이는 자폐아였다.
말 보다는 손짓으로 말을 했다. 눈을 마주치지도 않았다.
나경에게 “엄마”라고 불러주지도 얂았다.
무무무무…. 으으으으
나경의 아이는 세살이 되어서야 겨우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걷기 시작하자 문제는 더 악화 되었다.
산책을 하러 나가면 아이는 홀린 것처럼 뛰어 다녔다.
스미마센.. 나경은 이 말은 입에 달고 살아야 했다.
한국인이고 장애아의 엄마 나경은 강해지려고 했지만 매일 무너졌다.
아침에 일어나면 조금만 내가 더 노력하면 우리 아이도 다른 아이들 처럼 될 것이라는 희망을
불꽃을 피우지만 저녁이 되면 다시 그 희망은 더 큰 절망이 되어 나경을 무너뜨렸다.
나경은 아이와 함께 언어치료 행동치료 인지치료를 하기 위해 하루 종일 종종 거렸다.
여기를 다니면 좀 더 좋아지지 않을까?
이런 치료를 받으면 좋아지지 않을까?
발달장애아를 치료 한다는 치료실이나 상담사를 찾아 다니는 것이 나경의 하루 일과가 되었다.
나경의 삶은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영진은 나경에게 좀 더 기다려 보자고 했다. 영진은 매일같은 교회에 나가 아이가 좋아지기를 기도했다.
나경에게도 교회에 나가서 좀 더 열심히 하나님께 기도를 하자고 말했다.
“나경씨 기도를 하면 예수님이 우리 아이를 구원해주실 겁니다.”
영진은 아들이 자신의 기도를 통해 좋아질 것이라고 확신했다.
“하나님은 모든 병을 낳게 해주십니다.”
“우리에게 석민이를 태어난 것도 하나님의 계획일 겁니다.”
영진이 이런 말을 할 때 마다 처음에 거부 했지만 자신이 무너져 내린 다고 생각 했을 때
나경도 아이와 함께 교회에 나가기로 결정했다.
영진과 나경은 매일 교회에 나가 아이가 보통의 아이처럼 살아 갈 수 있도록 해달라고 기도했다.
“우리에게 시련을 주신 만큼 행복도 주실 거야 그치?”
영진이 5살이 되었을 때 나경의 아이는 처음으로 엄마라고 이야기 했다.
나경은 처음 아이가 자신을 엄마라고 이야기 했을 때 펑펑 울었다. 하지만 그것 뿐이었다.
더 이상이 언어 발달은 없었다.
“엄마..무.. 어.. “
나경은 아이에게 물을 가져다 주었다.
아이가 8살이 되었을 때 나경은 영진과 이혼했다.
나경은 길고긴 일본 생활을 정리했다.
장애가 있는 아이를 일본에서 키우는 것은 더 이상 불가능 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경은 떠나왔던 집으로 스스로 돌아갔다.
한국에 돌아온 이후 아이는 일본에서 보다 좋아졌다.
9살이 되던 어느날 한글을 읽기 시작했다.
나경은 다시 세상을 얻은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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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4-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