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
Home >  문화예술 >  책마을
실시간 책마을 기사
-
-
지혜의 숲으로
-
-
저자 한길사 대표 김언호가 세계를 다니며 도서관, 책방, 책이 있는 곳을 찍은 무겁고 두꺼운 사진집이다.
"한 도시에는고층 건물도 있어야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미술관과 박물관, 극장과 도서관과 서점입니다.
따뜻한 등불 아래 책을 읽고 있는 사람들의 그림자, 이것이 한 도시의 문화와 정신을 상징합니다. 시민들이 일상을 드나드는 서점이 없다면 그 도시는 품격을 갖추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이야기를 먹고삽니다.사람들은 이야기하면서 성장합니다.책은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사람들의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그릇이 책입니다.”
-
2023-07-24
-
-
난세일기
-
-
김용옥 도올은 워낙 유명해서 도올이란 그의 호를 못들어 본 사람은 아주 드물거라 생각한다.
나도 그의 이름은 들어보고 그의 강의도 들어보려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이유는 그의 목소리다.
쥐어짜는 듯한 목소리를 조금만 들으면 가슴이 답답해지며 왠지 모를 울화같은게 가슴에서 치민다.
그가 목소리까지 좋았다면 아마도 더 많은 팬이 생겼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혼자한다.
그런데 그는 스스로 노래를 잘 한다고 말하니 말하는 목청과 노래하는 목청이 다르긴 한가보다.
그의 저서는 100권이 넘는다.
그가 아는 것이 많아서이기도 하겠지만 이 책을 읽어보면 책은 한번 낸 사람이 자꾸 내기 마련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뭐든 처음이 어렵지 말이다.
그가 다닌 대학은 7개 대학이고 전공한 학과는 생물학, 철학, 중국철학, 동아시아언어문명학, 한의학이다.
그러니 할 말도 많을게 당연하다.
이 책은 한달 동안의 일기 형식이라 다른 전공책과는 달리 쉽고 읽을거리가 많다.
4월 24일 부터 한달간의 기록이다. 물론 매일은 아니다.
바로 엊그제 일어난 따끈따끈한 사건에 대해 말하며 그 사건을 계기로 자신의 저서와 자신의 일생에 대해 말한다.
그는 윤정권과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같은 당면한 문제, 그리고 일본과의 외교같은 이슈에 대해 제대로 소리를 낸다. 또한 역사적 사건과 인물에 대해 비교 설명하니 설득력과 재미가 함께다.
더불어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어린 시절부터 더듬으며 여지없이 그 잘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그의 유명세로 그는 각계에 걸쳐 많은 소위 유명인사들을 만났는데 그 실명이 여럿 나오고 그들에 대해 대충이 아니라 깊이 있게 적고 있다.
첫날인 4월 24일은 성균관대학교교수의 시국선언에 대해 언급한다.
"그는 놀라웁게도 명료한 지향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돈많은 사람들이 마음놓고 돈을 더 벌 수 있는 사회, 국민의 공적인 복리에 기여하는 조직을 될 수 있는 대로 사유화 시켜 경쟁구조 속으로 집어넣어 효율을 높여햐 한다는 것, 남북의 관계는 북한이 정신차릴 대까지 계속 압박해야 한다는 것, 일본과의 관계를 돈독하게 하고 일본이 과거 침략만행을 더 이상 들추지 말고 용서해야 한다는 것, 그래서 한.미, 일경제, 군사동맹을 강화함으로써 안전한 보금자리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p12)(여기서 그는 윤석열이다: 나의 설명)
이러니 지금이 난세라는 것이다.
구례 사람들은 아마도 그의 이름과 더욱 친근하지 않을까 싶다.
구례 문화원 앞에 '구례찬가'비를 그가 썼다고 하며 구례와는 인연이 깊다.
그는 지금 75세 인데 피아노를 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팔순 잔치에는 자신의 음악회를 열 계획이라고 한다.
그는 하고 싶은 것은 다 하고야 마는 사람인 것 같다.
그가 하고 싶었는데 못해 본 것이 아마도 음악인 것 같다.
5년 후의 계획을 말하는 노인의 팔팔함은 가히 존경스럽다.
-
2023-07-21
-
-
참된 문명은 사람을 죽이지 아니하고
-
-
다나카 쇼조는 제1회 일본 중의원 선거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뒤 내리 6선을 하며 ‘선거의 신’으로 불린 정치가였다. 그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최초의 공해 사건인 ‘아시오 광독 사건’과 뒤이은 ‘야나카 마을 수몰 반대 운동’에 자신을 던진 사회운동가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여정에서 ‘참된 문명’의 길을 깨우친 사상가였다.
그의 시대는 불의했고, 문명을 가장한 야만이 드리운 그늘로 선뜩했다. 다나카 쇼조는 하루하루, 자신의 모든 것을 다해, 쉼 없이 불의를 헤치며 문명이 드리운 어둠을 밝히고자 힘썼다. 그는 점점 나락으로 빠져드는 민중의 삶을 마음 아파했고, 참된 문명의 길을 거스르며 오로지 부국강병의 길로 내달리는 일본제국의 오늘과 내일을 걱정했다. 그러나 ‘오늘은 오늘’ 지금 여기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해 나가는 것. 차별과 억압에 시달리는 눈앞의 이웃을 지나치지 않고 자신의 온 힘을 다해 구하고자 애쓰는 것. 그는 죽는 날까지 자신의 말과 사상에 비추어 한 치도 흐트러짐이 없이 걸었다. 그의 생애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나날이 조금씩, 그러나 쓰러져 그칠 때까지 시대의 불의와 문명의 야만성을 걷기 위해 멈추지 않고 나아가는 싸움의 연속이었다.
21세기를 위한 사상가, “헌법 9조(평화헌법)의 선각자” 다나카 쇼조
다나카 쇼조는 동료 의원들이 “지방의 자잘한 일”이라며 내팽개친 아시오 광독을 자신의 문제로 끌어안았다. 의회에서 그 매듭을 풀기 위해 온 힘을 다했고, 그것이 여의치 않자 6선 국회의원 자리를 던지고는 목숨을 걸고 메이지 덴노에게 직소했다. 그리고 광독 피해 지역이 수몰 위기에 처하자 마을로 들어가 남은 마을 사람들에게 배우고 함께 싸우며 서슴없이 끝까지 나아갔다. 사사로움을 버리고 공공의 가치를 지키고자 애쓰는 삶. 가장 약한 것들로 가장 강한 것과 맞서는 삶. 어중간한 사람의 법이 아니라 온전한 자연의 이치를 따라 걷는 삶. 나날이 의로움을 더해 가는 삶. 그리하여 하루하루 더 완전해지는 삶.
그래서 다나카 쇼조는 아시오 광독 사건이라는 싸움터에서 끝내 패배했지만, 그의 싸움과 사상은 지금껏 살아남았다. 끝까지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던 그의 싸움은 일본의 근대적 시민운동과 환경운동의 출발점이 되었다. 쇼조가 그 전장에서 갈무리한 통찰은 근대 문명의 본질을 단숨에 꿰뚫었다.
그의 발걸음과 사유, 성찰은 사후 100년을 훌쩍 넘어 여전히 불의와 문명의 야만성과 싸우는 이들을, 우리 삶을, 우리가 꾸리고 살아가는 국가 공동체를, 위기의 동아시아를, 뒤도 옆도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앞으로 거침없이 뻗기에 급급한 근대 문명을 돌아보도록 이끈다.
분에 맞는 소국이라면 족하다 _ 새로운 일본을 위한 제언
이 책은 평생에 걸쳐 다나카 쇼조의 삶과 사상에 천착해 온 한 연구자가, 근대 문명이 낳은 대재앙이라 할 수 있는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 사고를 마주한 뒤, 크나큰 충격 속에서 서둘러 써 내려간 글이다. 다나카 쇼조가 돌아간 지 10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났음에도, 왜, 어째서, 일본 사회는 그간 쇼조가 남긴 교훈을 새기지 못했는가. 깊은 분노와 참담함이 밴 고마쓰 히로시의 문장은 쇼조의 글을 거울삼아 동시대 우리 문명의 어그러진 단면을 서늘하게 베어 낸다.
우리는 이제 대국을 우러르며, 대국을 좇는 일을 단호히 포기하자. 분에 맞는 소국이라면 족하다. 올림픽 메달 수를 다투지 않아도 좋다. 세계 정치의 주도권을 거머쥐지 않아도 된다.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따위를 노리지 않아도 상관없다. 경제 대국이라고 찬사를 받지 않아도 괜찮다. 그저 다른 나라를 방해하지 않고, 다른 나라에 폐를 끼치지 않는, 그런 깊고 그윽한 몸가짐의 나라가 되었으면 한다.
132쪽~133쪽, 고마쓰 히로시
다나카 쇼조는 풀뿌리 민중의 삶을, 자치의 뿌리인 마을을, 가없이 베풀어 주시는 자연의 은혜로움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곧 국익이고 문명이다, 우리는 국가가 아니라 자연과 하나된 삶을 살아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가 꿈꾼 것은 부국강병이 아니라, 대국 일본이 아니라, 민중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연의 은혜로움 아래에서 사람다움을 온전히 지켜 가는 삶이었다. 저자 고마쓰 히로시는 다나카 쇼조의 말과 삶을 찬찬히 더듬으며, 바른 정치와 삶, 문명의 길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그려 보인다. 다나카 쇼조의 문장과 고마쓰 히로시의 글이 교차할 때, 일본이라는 나라가 일구어 온 근대국가의 어제와 오늘이, 산과 강, 마을과 사람쯤이야 대수로이 여기지 않은 채 오로지 ‘성장’이라는 한길로만 부지런히 달려온 근대 문명의 민낯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후쿠시마는 어쩌면 그 당연한 결과로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내었을 뿐이다. 동일본 대지진 이후, 일본 사회에서 다나카 쇼조를 새롭게 재조명하는 움직임이 이어진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일본 시민운동의 아버지, 다나카 쇼조와 함께 “그때 역사가 움직였다”
NHK for School은 2014년 총 41화로 일본 역사를 정리하면서 39화 [히라쓰카 라이초·다나카 쇼조, 시민 운동이 무르익다]에서 다나카 쇼조를 비중 있게 다룬다. 일본 최초의 공해 문제, 아시오 구리 광산 광독 사건과 그 해결을 위해 힘쓴 다나카 쇼조의 저항은 일본의 역사를 분명하게 가르는 중요한 변곡점 가운데 하나다. NHK가 2002년 다나카 쇼조와 아시오 광독 사건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방영하면서 다나카 쇼조가 아시오 광독 피해 주민들의 고통을 마주한 “그때 역사가 움직였다.”고 평가했듯이, 일본의 시민 불복종 운동과 환경 운동은 그로부터 시작되었다.
아시오 구리 광산은 1880년대부터 일본 최고를 넘어 아시아 최고 생산량을 기록하며, 근대 일본의 산업과 경제 성장을 이끌었다. 제련 과정에서 엄청난 유독물질 연기가 쏟아졌고, 가까운 마을들이 곧 쑥대밭이 되기 시작했다. 피해는 이에 그치지 않았다. 아시오 구리 광산에서 유출된 광독은 와타라세 강으로 흘러들었다. 그리고 물난리가 날 때마다 광독을 머금은 물은 강과 잇닿은 논밭으로 흘러넘쳐 땅을 오염시켰다. 피해 지역은 도치기·군마·사이타마·이바라키 네 개 현, 1억 평에 이르렀다. 광독은 강에 사는 물고기와 조개를, 강가에 무성히 자라난 조릿대와 갈대를, 강과 이웃한 기름진 땅에서 나는 풍성한 곡식과 채소들을, 굶주린 어미 뱃속에서 자라던 아기와 젖먹이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와타라세 강이 베푸는 은혜로움에 기대어 살아가던 수많은 이들의 삶은 빠르게 무너져 내렸다. 마을 자치도 그와 같이 부서져 갔다.
일부 광독 피해 지역을 지역구로 두고 있던 중의원의 국회의원 다나카 쇼조는 이들의 어려움과 마주했다. 하지만 수많은 피해 주민들과 쇼조의 노력에도 정부 관료들은 무거운 허리를 들지 않았다. 대국의 꿈을 향해 부국강병으로 바삐 치닫던 일본 정부는, 이들의 고통과 눈물을 되도록 조용히 역사에서 지우고자 했다. 의회에서 아시오 광독 사건 해결을 위해 동분서주하던 6선 의원 다나카 쇼조는 결국 스스로 국회의원직을 내던진다. 그리고 아시오 광독 사건을 해결해 달라는 상소문을 메이지 덴노에게 직접 건네고자 했다. 비록 실패로 끝나고 말았지만 이는 일본 근현대사에서 유일무이한 ‘직소 사건’으로 남았다. 목숨을 건 쇼조의 직소는 그날 도쿄 일대에 호외가 발행될 정도로 엄청난 사건이었다. 일본 전역이 아시오 광독 피해에 대한 분노와 동정으로 들끓었다. 피해 주민들과 쇼조의 외침을 성가셔 하던 정부는, 목숨을 건 쇼조의 직소 사건으로 여론이 달아오르자, 더는 뭉갤 수만은 없게 되었다.
하지만 마침내 정부가 내어놓은 해결책이란 어이없는 것이었다. 자꾸만 물난리가 나는 통에 와타라세 강과 그 주변 산과 들에 기대어 사는 주민들이 광독 피해를 입으니, 하류 일대를 유수지로 만들어 광독 물난리를 막아 보겠다는 계획이었다. 다나카 쇼조는 ‘신이 만들어 내려 주신 더없이 넓고 큰 권리’인 마을과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마을 자치를 파괴하는 것은 곧 나라를 망치는 일과 같다며 강하게 맞섰다. 산을 황폐하게 만들고, 강을 더럽히고, 마을을 부수고, 사람을 죽이는 것은 문명이 아니라고 일갈했다. 그러나 정부 역시 완강했다. 결국 예순넷의 다나카 쇼조는 노구를 이끌고 수몰 예정지 가운데 하나인 야나카 마을로 들어간다. 그리고 마을을 지키고자 남은 열아홉 가구 주민들과 함께 죽을 때까지 그곳에서 싸웠다.(야나카 마을은 메이지 중반까지 2700여 명이 살던 곳으로, 유수지 건설 계획이 발표된 뒤 땅을 팔고 떠난 주민들은 대부분 먼 홋카이도로 이주했다.)
다나카 쇼조와 야나카에 남은 주민들은 마을이 물에 잠기는 것을, “법률로 사람이 본래 안전하게 생활하고 있던 터전을 빼앗아, 주린 배를 쥐고 떠돌게” 만든 국가의 폭력을, 끝내 막지 못했다. 그러나 이들이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맞선 덕분에, 피해자들이, 그 피해자들을 기억하는 이들이 모두 죽기를 기다리던 일본 정부의 바람과 달리 아시오 광독 사건은 역사에서 끝까지 지워지지 않고 남았다. 의로운 패배는 힘이 있다. 역사는 거기, 그 시공간에서 멈춰 서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후 100년이라는 시간을 훌쩍 넘어 커다란 울림으로 돌아온 다나카 쇼조의 삶과 사상은 참다운 문명, 사람다움, 생명과 같은 보편 가치를 지키기 위해 헌신한 의로운 분투가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분명하게 보여 준다.
“시대적 격류 속에서 그의 저항은 패배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으나, 그 패배의 기록은 오히려 백년도 더 지난 오늘날, 과연 참된 문명이란 무엇인지를 숙고하지 않으면 안 될 우리들에게 무엇보다도 값진 정신적 유산이 되고 있다.” - [녹색평론] 발행인 김종철
아시오 광독이라는 출발점에서 일본이라는 국가의 위기를 생각한다
아시오 구리 광산에서 뿜어져 나온 광독은 수많은 민중의 생존을 위협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시작부터 끝까지 광산 운영자의 편에 섰다. 피해 주민들이 내는 세금 총액이 아시오 광산이 내던 세금보다 더 많았음에도 그러했다. 아시오 광산에서 캐내는 구리는 대외 무역과, 무기 생산에 큰 보탬이 되는 자원이었기 때문이다. 근대적 경제 성장이란 대개 이러한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국가는 성장을 이끄는 거대 기업의 이해를 감싸고 돌며 민중의 삶을 모른 척 짓밟았다. 수많은 이들의 피해와 고통, 절규와 눈물은 “돈다발로 뺨을 후려치”며 덮었다. ‘커 나가는 일본’을 위해 필요하다면 누군가는 희생되어도 하는 수 없다, 하는 자세로 가차 없이 목숨붙이에 서열을 매겨 줄을 세워 온 역사였다. 그러고 보면 아베 정부는 느닷없이 나타난 ‘이상한’ 정부가 아니다. 근대국가 일본은 시작부터 꼬였다. 아시오 광독을 덮은 자들이 2차 대전의 책임과 전쟁 범죄를, 미나마타를, 후쿠시마의 실상을 덮었다. 근대국가 일본이 걸어온 역사 속 굵직한 어그러짐은 예외 없이 모두 연결되어 있다. 그 출발점에 바로 아시오 광독 사건이 있다.
길가에 구르는 작은 돌멩이들에게서도 눈길을 거두지 못한 사람, 다나카 쇼조에게 매혹된 지성들
다나카 쇼조는 가장 낮은 자리, 민중의 삶 그 한복판으로 들어가, 이들과 함께 싸우고 깨치면서, 근대 문명이라는 거대한 톱니바퀴에 잠재된 비인간성·반생태성·반문명성을 날카롭게 짚어낸 사상가였다. 그러한 문명관으로 동시대 일본 지식인들과 달리 동학농민운동의 가치를 알아보고 전봉준을 높이 평가하기도 했다. 그는 “물질이 모자람을 애태우거나 마다하지 않”으며 “온몸으로 공공에 이바지하는 삶”을 살았다. 끝내, 우물도 담도 남기지 않은 무소유의 삶이었다. 다나카 쇼조는 일흔을 넘긴 나이로 와타라세 강 강줄기를 걸어서 훑으며, 저항운동에 필요한 돈을 모으려 벗들의 집을 차례로 돌아 야나카 마을로 돌아오던 길에, 낯모르는 이의 집 툇마루에서 쓰러졌다. 그가 마지막까지 메고 다니던 바랑에는 [신약성서], ‘일본제국헌법’과 ‘마태복음’을 한데 묶은 책, 일기장 세 권, [와타라세 강 조사 보고서] 초고, 휴지 몇 장과 강 김, 그리고 돌멩이 세 개가 들어 있었다. 다나카 쇼조다운 마무리였다.
탈핵 운동에 헌신해 온 과학자 고이데 히로아키 교수의 연구실에는 다나카 쇼조의 사진이 놓여 있다. 세계적 음악가이자 사회운동가인 류이치 사카모토는 2018년 한국에서 자신의 특별전을 열며 “참된 문명은 산을 황폐하게 하지 않고, 강을 더럽히지 않고, 마을을 부수지 않고, 사람을 죽이지 아니한다.”라고 하는 다나카 쇼조의 말을 벽면 하나에 새겼다. 이 말은 오래전 일본 유학길에 오른 방정환 선생이 아끼는 후배 정순철 선생과 마주 앉은 자리에서 들뜬 목소리로 들려준 문장이기도 했다. [녹색평론] 발행인 김종철에서 한국 기독교계의 양심 박경미, 그리고 동학 연구의 권위자 박맹수에 이르는 걸출한 지성들의 다나카 쇼조론論에서 보듯, 다나카 쇼조의 삶과 사상은 100년이라는 시간을 훌쩍 넘어 곳곳에서 수많은 동아시아의 양심과 마주 울리고 있다. 출판사 리뷰
1904년 7월말, 쇼조는 야나카 마을이 수몰되는 것을 막기 위해 홓로 마을로 들어갔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과 함께 토지 매입을 반대하는 운동을 벌이며 야나카 마을의 자치를 지키기 위해 싸웠다. p16
"정직한 이에게 신이 깃든다. 철저히 정직한 이에게는 철두철미한 신이 깃들고 어물어물 정직한 이에게는 신도 어물어물 깃듭니다." 이처럼 쇼조는 에도시대 이후의 통속 도덕 속에 서 있으면서도, 정직이라는 것은 시대를 막론하고 보편적인 가치가 있음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p46
만일 그런 광경을 그저 지켜보고 불쌍하다 여기고, 듣기만 하며 가엾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피상일 뿐이다.1908년 6월 15일 p53
그래서 자본주의를 없애겠다는 큰 목적 앞에서 아무리 사고한 일로 여겨질지라도, 기노시타와 헨미가 야나카 마을 주민들을 '신의 백성'으로 삼아 '진정한 사람의 천국'을 야나카에 만들고자한 종교적 메시아주의의 숭고함을 잘 알면서도, "눈앞에서 보고 있자니 측은한 마음을 참을 수 없다."며, 쇼조는 현재를 구하는 쪽으로 움직이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것이 쇼조의 '오늘은 오늘 주의'였다. 그리고 이러한 쇼조의 '오늘은 오늘 주의'가 한국의 기독교인 함석헌에게서도 공통점으로 발견된다는 것을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p61
조금이라도 사람 목숨에 해가 된다면 조금쯤은 괜찮다고 말하지 말라.p62
물을 맑게 하는 데도, 먼저 자연의 정화 작용을 최대한 살릴 필요가 있다. 가령, 바지락 한마리가 한 시간에 물 1리터를 정화한다고 한다. 강가의 갈대도 물을 맑게 한다. 바다라면 거머리말도 그렇다. 무슨 일이 있어도 자연의 정화 작용을 넘어서는 지경까지 물을 더럽히지는 말아야 한다.
그런데 이번에 정부와 도쿄전력은 방사성물질이 엄청나게 든 오염수를 바다에 흘려보내는 '폭거'를 감히 실행했다. 믿을 수 없는 일이다. 미나마타병을 일으킨 것과 똑같은 원리가 작용해서, 먹이사슬에 따라 해양 생물들에게 쌓인 다음, 끝내는 인간이나 큰 물고기가 해를 입지 않는다는 보증은 어디에도 없다. 벌써, 후쿠시마 현이나 미야기 현의 바다 밑바닥이나 바닥고기에서, 기준치를 크게 웃도는 방사성물질이 확인되고 있다. 수질 오염의 영향은 오랜 세월 동안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나타날 것이다. 우리는 더 이상, 미래 세대의 '생명'을 위태롭게 해서는 안된다. p83-84
표결 결과, 국회의원 세비 증액안은 134대 125로 9표 차로 통과되었다. 하지만 쇼조는 반대 연설을 한 뜻을 지키려고 한 것일까, 의원 세비 전액을 스스로 되돌렸다. 이리하여 쇼조는 의원직을 사퇴하기까지 남은 임기 (1899년 4월부터 1901년 10월까지)중에 세비를 1엔도 받지 않았다. 다나카 쇼조가 '대단한 가난뱅이'라는 것은 온 국민에게 잘 알려진 사실이었다. 이것을 쇼조는 "때에 즈음한 덕의"라고 표현했댜. 지금이 어떤 대인지를 똑똑히 판별하고 시의적절한 덕의심을 발휘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이 걸어야 할 길이라는 것이다.p95
내려다 보시는 하늘을 우러르지 않으면 보통 사람은 타락하고 국민이 감시를 게을리하면 정치인은 도둑질을 한다. 1902년 8월 .p96
우리는 이제 대국을 우러르며, 대국을 좇는 일을 단호히 포기하자. 분에 맞는 소국이라면 족하다. 올림픽 메달 수를 다투지 않아도 좋다. 세계 정치의 주도권을 거머쥐지 않아도 된다.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 따위를 노리지 않아도 상관없다, 경제 대국이라고 찬사를 받지 않아도 괜찮다. 그저 다른 나라를 방해하지 않고, 다른 나라에 폐를 끼치지 않는, 그런 깊고 그윽한 몸가짐의 나라가 되었으면 한다. p132
아아, 인민은 어리석어도 정직하고, 항상 앞뒤를 따지며 백년대계를 세운다. 그런데 이에 반하여 오늘날 관리들은, 특히 상급 관리들은 백년대계커녕 일 년 계획도 없이 그저 짧은 한때에 몰두하는 욕심보들뿐이다. 그날그날 자리의 안전을 꾀할 뿐이다. 그러므로 늘 임시변통이다. 인민은 인민의 경험을 믿고 한 걸음도 물러서지 말라. p134
쇼조는 예수의 가르침을 '버리는'일과 '용서를 구하는'일 두가지로 요약하고, 나날이 그 실천에 힘썼다. p143
내가 항상 말하는데, 전 세계 사람들은 물론이고, 날 짐승, 길짐승, 벌레, 물고기, 조개, 산, 강, 풀, 나무에 이르기까지 무릇 이 세상 동식물은 무엇하나 나를 가르치지 않는 것이 없어, 이 모두가 나의 좋은 스승이다.p157
'듣는다'와 '들려준다'의 차이. 이것은 그저 교육의 출발점일 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의 기본 원리다. 쇼조의 야나카학은 그러한 인간 사회의 진리를 발견하기에 이른 것이다. p161
쇼조는 올해 예순일곱이 될 때까지 무엇을 했는가, 그저 남의 것을 훔지치 않고, 남의 집에 불을 지르지 않고, 감히 사람을 죽이지 않고, 새를 죽이지 않고, 벌레를 죽이지 않으려는 마음가짐이 있을 뿐, 이루지 못할지언정 사람을 도우려고 하는 됨됨이가 있을 뿐입니다.p162
이 저수 공사가 쇼조가 외친 치수론의 특징 가운데 첫 번째라면, 두 번째는 '수계일관의 사상'이다. 산에서 바다까지, 강상류에서 하류까지 모두 서로 밀접하게 하나로 얽힌 것으로 보고, 물길을 돌보는 일 뿐만 아니라 산을 돌보는 일까지 중시하는 것이다.'치산치수'라고 바꾸어 말해도 좋다. 쇼조는 "숲을 마구 베어 없애는 것은 나라를 스스로 죽이는 행위이다."라고 할 정도로, 물줄기가 시작되는 곳을 돌보는 일을 중요하게 여겼다. p166
치수는 하늘이 다스리는 것이다. 우리가 능히 잘 다룰 수 있는 바가 아니다. 오로지 삼가며 다른 존재(남)을 해치지 않으려고 할 뿐이다. 흐르는 물길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할 뿐. 적어도 흐르는 물을 더럽히지 않으려고 할 뿐, 깨끗하게 흐를 수 있도록 할 뿐, 마을마다 나라마다 지역마다 서로 이 마음으로 물을 따르면, 물은 기꺼이 바다로 갈 뿐, 우리는 그저 산을 사랑하고, 강르 사랑할 뿐이다. 하물며 사람에 있어서랴, 이것이 치수의 크나큰 핵심이다. 1909년 9월 24일 p170
산이나 강의 수명은 만억 년에 이른다. 30년이나 50년 전은 산과 강의 한순간이다. 사람의 짧은 수명이나 모자란 지식으로 생각하니 30년이나 50년을 옛날처럼 느끼는 것이다. 산은 천지와 함께 나이를 먹어 왔다. 또한 귀중한 것이다. 신이 아닌 인간의 간섭 따위는 허락하지 않습니다.p183
일본을 보라. 천연을 계발한 것은 없고 되레 천연을 망치는 일에만 급급하다. 그 동안 간신히 물질의 힘을 빌려 조그만 이익을 얻은 자가 많다. 천연이 큰 것을 모른 채, 유한한 물질에 잠시 깃든 힘을 빌려 자질구레한 이익을 챙기기에 급급하다. 그 조그만 이익조차 사사로운 것, 자연이 공공에 베푸는 크나큰 이로움을 모른다. 이것이 지금 현재의 모습.p194
'공공하며 서로 돕고 아끼는 생활'을 통해 지역 자치와 '여럿이 어울려' '두루 행복한' 사회를 이루고자 한다. '자연과 공생'하고 '자연이 모두에게 베푸는 크나큰 이로움'을 최대한 살리는 생활을 실천해 나간다. 이것이야말로 다나카 쇼조의 공공철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p224
금요일(14) 하승철 하동 군수와 인터뷰가 있었다. 군수에게 이책을 선물로 드렸다. 재미있을거라 말한다.
같은 길을 가던 가지 않던 같은 정치가로서 이름을 남긴 사람의 족적을 읽는 것은 의미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
2023-07-15
-
-
할머니, 그만 집으로 돌아가세요
-
-
책표지를 보면 놀라움과 의구심이 든다.
과연 이런 차림으로?
이런 차림으로!
그녀는 11명의 자녀와 34명의 손자, 그리고 2명의 증손자가 있었다.
남편과는 35년 살고 이혼했다.
그녀의 남편은 이혼 할 때까지 그녀를 학대하고 구타했다.
우리 가족도 아팔레치안 트레일의 일부인 스모키 마운틴에 간 적이 있다.
차에 트레일을 끌고 트레일에서 며칠을 지내고 트레일을 걸었었다.
1955년 5월 2일 봄날 엠마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트레일에 올랐다.
봄은 사람들의 마음을 부풀게 하는 바람이 부는 계절임에 틀림없다.
엠마는 조지아주 오글로트 산에서 출발해 13개 주를 통과했다.
9월 7켤레의 신발을 갈아신고 14키로가 빠진 몸으로 도착점 메인주 캐너린 산 정상에 올랐다.
엠마는 손수 만든 저 보따리에 최소한의 옷과 반창고정도의 비상약, 그리고 음식을 넣었다.
당시 아팔레치안 트레일을 완주한 사람은 많지 않았고 정비도 불량했고 쉼터도 별로 없었다.
가다 뱀에 물린 뻔도 하고 고슴도치와 잠도 자고, 큰 짐승과 곰과도 맞닥뜨렸지만 무사히 넘겼다.
어느날 무엇엔가 물려 응급실에 간 적도 있다.
끼고 있던 안경은 떨어지고 부서져 반창고로 간신히 붙여 사용했지만 나중에 안경마저 버렸다.
146일동안 폭우는 물론 그곳을 강타한 태풍도 만났다. 태풍에 계곡에 물이 불어나 목까지 잠길 정도로 위험했지만 다행히 두 청년과 양쪽으로 몸을 묶고 간신히 건너기도 했다.
중간에 먹을 것이 없어 야생 딸기로만 배를 채우고, 트레일에 잘 곳이 마땅치 않을 때는 낙엽을 깔고 맨바닥에서 잔 적도 있다. 음식이 떨어지고 잘 곳이 마땅치 않을 때 인근 마을로 내려가 도움을 청했다.
거렁뱅이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그녀에게 따뜻한 음식과 잠자리를 제공하고 트레일 시작하는 곳에 다시 데려다 준 사람도 많지만 냉정하게 대한 사람도 있다.
엠마는 초등학교만 나왔지만 가는 곳마다 일기를 썼고 나중에는 애들에게 편지도 보냈다.
종종 시도 썼고 그녀의 고향 갈리폴리스의 한신문에 기고도 했다.
집은 많은 것들로 이루어져 있지
책과 종이롸 작은 실타래들
머리를 다듬는 빗과 솔
반짇고리 바구니와 안락의자
시계와 음악, 성경책
부엌의 화덕과 먹을 거리들
작은 발들이 계단을 오르내리며
들고 나는 소리
마루 위에 널려 있는 자잘한 물건들
장난감 기차와 자동차, 그리고 예쁜 인형들
아이들의 옷과 잠자리
새끼 고양이는 밥을 어서 먹어야지
누군가 어두운 밤 우리를 괴롭히면
강아지는 멍멍거리며 우리를 지켜주지
엄마는 친절하고 다정해
참을성을 가지고 아이들을 대하지
그렇지만 가정의 중심은 역시 아빠
가족의 생활을 해결해주고
모두를 하나로 만들어주는 마음
어떤 시련이 있어도
밝은 가정이 있다면
언제나 친절함과 따뜻함도 함께 있으리
이 시를 읽으면 그렇게 맞으면서도 남편이 아빠라는 이유로 많이 참았던 것 같다.
다른 많은 여자들처럼.
내가 청소하고 단장한 나의 집
내 기운이 다할 때까지
비록 돈은 부족하더라도
모두 다 나 홀로 해내리
그녀의 강한 책임감과 가정에 대한 사랑이 읽힌다.
엠마가 어느날 사라졌지만 가족 중 아무도 그녀 걱정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엄마는 자기가 할 일을 잘 알아서 하는 사람이고 자식들에게도 늘 그렇게 말했다"고 자식들은 덤덤이 말한다.
그녀가 트레일을 걷고 있다는 것을 아무도 몰랐지만 차츰 차츰 사람들에게 알려지며 나중에는 그녀가 어디쯤 걷고 있다는 것이 신문에도 보도되었다.
마지막에는 아팔레치안 트레일을 완주한 최초의 여성으로 유명인이 되었다. 더구나 그녀의 옷차림이나 장비 나이등이 밝혀지며 점점 화재거리가 되었다.
사람들은 왜? 걷느냐는 질문에 자기는 자연을 사랑하고 트레일을 걸으면 아주 재밌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나는 언덕 너머에 뭐가 있는지 궁금했어요. 또 그 너며에는 뭐가 있는지도요." 엠마는 어떤 기자에게는 "어느 때보다도 완벽한 고독"을 찾았다고 말했다.
어디 구간이 제일 좋았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야 내려오는 길이지"라고 대답했다.
엠마는 이후 2번이나 더 아팔레치안 트레일을 완주했다.
펜실베니아 베이커트레일에서 80을 보냈고
여려곳에서 장기 야영도 여러번 했다.
일흔살이 된 엠마는 애디론덱 산맥의 여석 개 봉우리에 올랐다.
71살에는 오리건주 탄생 100주년에 맞춰 95일 동안 올드오리건 트레일을 걸었다.
그녀는 이후에도 계속 계속 걸었고 캐나다에서도 걸었고....걸어 지구 둘레 절반에 해당하는 2만 2500킬로를 걸었다.
어느 숲에서 만난 인디언은 그녀에게 "숲속에서 별의별 것을 다 보며 살았는데 그중에서 할머니가 가장 이상해요"라고 말했다.
그녀는 텃밭에서 일하고 다음날 몸이 안좋다고 아들 넬슨에게 전화했다. 평생 딱 한 번 병을 앓았던 엄마의 이런 말에 넬슨은 구급차를 불렀다.
다음날 아침 엠마는 노래를 흥얼거리다 85세로 세상과 하직했다.
그녀의 묘비명은
엠마 R. 게이트우드
할머니
-
2023-07-10
-
-
연
-
-
재밌는 책이다. 시작하면
단숨에 끝까지 읽게 하는 저력이 있다.
저자 레티샤 콜롱바니는 프랑스인으로
3권의 책을 썼는데 모두 어려운 여건에 있는 여성의 이야기다.
그녀는 특히 인도의 불가촉천민에게 관심이 있는 것 같다.
첫번째 책 '세갈래길'에도 불가촉천민이 나온다.
인도에 관련된 영화나 이야기는 가끔 보고 듣는데 그 삶이 극과 극이다.
'Lion'이란 영화에 나오는 인도의 자연은 정말 아름답다. 사람도 아름답다.
영화 'vanaja'에서
듣는 인도 음악은 우리나라 창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한다.
Born into Brothels(꿈꾸는 카메라)은 사창가에
사는 아이들 이야기인데 화면은 비현실적인데도 아름답고 내용은 너무 슬프다.
촬영 년도가 2006년이니 20년 동안 얼마나 바뀌기는 했을까?
이 영화의 음악을 엘런(당시
자원봉사로 일했던 곳의 대장)의 아들이 작곡했다.
다큐 '인도의 딸'(2015)을 보면 '여자'에
대한 그들의 인식이 어떤지 짐작한다.
인도의 23살 의대생 조티
싱(1989-2012)이 시험이 끝난 후 남자 친구와 저녁에 영화를 관람했다.
이후 버스에 탑승했으나 남자 친구는 구타당하고 여자는 6명에게 강간 당했다.
조티는 창자까지 꺼내진 채로 버스 밖으로 던져졌다.
성폭행범의 변호사는 이렇게 말한다.
"밤에 남자 친구하고 외출한 게 잘못이다.
인도 문화를 무시한거다.
여자를 음식처럼 길바닥에 놔두면 안된다.
여자는 보석보다 소중하고 다이몬드보다 소중하다.
길에 내놓으면 개가 물어간다.
남자하고 여자가 친구가 되는건 불가능하다."
이런 일이 왜 일어났는가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 남자와 여자에 교훈을 주려고-
밤에
돌아다니지 말라고 성폭행 당하는건 죽는 것보다 나쁜일이고 살아도 시체나 같다."
나 어렸을 적에는 아이들이 연을 많이 날렸다.
몇번 날려 본 것 같은데 쉽지 않았다.
바람이 잘 부는 벌판이나 언덕에 올라가야 한다. 이 영화에서는 바닷가다.
'불가촉천민'이라 불리는 사람은
아직도 존재할까?
그들의 삶은 실제로 이 소설과 비슷할까? 아마도...
알고보면 어느나라나 아직도 불가촉천민의 삶을 사는 이들은 존재한다.
주인공 레나는 학교 선생이었고 가르치는 일에 열정적이었다.
배우지 않으면 우물안 개구리가 된다.
엄마 생각이 난다.
최고의 선생님이셨으며 내 생애 최고의 스승 나의 엄마!
나도 이런 글을 쓸 수 있다면 엄마에게 바치겠다.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나 혼자 잘먹고 잘 살 궁리보다 어떻게 함께 잘
살 수 있는지
배우고 보고 겪고 나서야 한다.
궁리를 안하니 그렇지 발벗고 나설 곳이 많을텐데...
변명은 100가지나 되고
행동 할 이유는 101가지나 되는데...
-
2023-07-10
-
-
자본이 사람을 멈추기 전에, 부디 제발
-
-
저자 강수돌은 1961년 경남 마산에서 태어났다. 1985년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했고 1994년 독일 브레멘대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7년부터 2021년까지 고려대
융합경영학부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현재 고려대 명예교수. 경영학
분야는 물론, 경제, 정치,
사회, 노동, 심리, 교육, 생태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기울인다. 지행합일(知行合一)의
좌우명 아래 공부한 것을 ‘나부터’ 실천하고자 한다. 직접 텃밭을 가꾸고 생태 화장실을 사용하며 세 아이를 키웠다. 교수로
재직할 때 5년 동안 마을 이장으로 일하기도 했다.
자본과 권력에 굴종하지 말고 ‘나답게’ 살자는 원칙을 가지고 있다. 노동자와 농민, 흔히 말하는 보통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문제를 탐구해 왔다. 탈(脫) 자본, 탈 경쟁의 교육, 탈 성장의 생활,
소박한 필요의 철학을 강조한다. 무엇보다도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이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갈망한다. (알라딘)
전 법무부장관 조국 사태가 났을 때, 어떤 사람들은 분노하고 어떤
사람들은 그를 두둔했다.
그러나 그의 팬들 조차 아쉬워했던 점 한가지는 그의 말과 삶의 불일치 아니었을까 나는 생각한다.
그의 글은 좌파를 표방했지만, 그의 생활은 그가 말하는 것과 달랐다는
점이다.
말과 행동의 일치는 정말 어려운 일이다.
누구나 말로는 무엇이 옳고, 어떻게 살아야 하고, 무엇이 중요한지 알고 있다.
하지만 자기가 말한대로 실천하며 사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지도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언행이 일치해야 하는데 그러기가 힘들다.
우리의 정치를 보면 언행 불일치의 대표적인 예를 누구에게서나 볼 수 있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민을 위한 정치가 아니라 자신과 자기 가족을 위해 정치하는 사람이 더 많은 세상이다.
일상이 되어야 할 그 흔하게 말하던 도덕이나 윤리를 지키며 사는 이는 종교의 수도사 정도이다.
소위 성인이라 불린 사람들은 그 좋은 부귀영화를 쓰레기 버리듯 버린 사람들이다.
성인같은 사람을 가끔 보지만 그 스스로 그런 길을 택했다기보다 어쩔 수 없어 살다보니 그 비스름하게 된 경우가
많다.
그러나 강수돌교수는 조금 다르다.
그는 자기의 말을 그대로 실천하며 산다.
그는 미리 교수직을 퇴직하고 시골로 내려와 자기가 말했던 것을 실천하며 살려 애쓴다.
아이 셋이 있는 교수가 똥으로 퇴비를 만들며 "밥이 똥이고
똥이 밥이다"를 외친다.
더 많이 소유하고, 더 크게 생산하고, 더 빨리 소비하는 걸 잘 사는 것이라고 믿는 자본의 잠식에서 어서 벗어나야 한다고 간절히 외친다. "부디, 제발!"
멈추라고.
그가 쓴 이 책은 교과서같다.
교과서는 재미 없지만 지식이 넓혀지는 포만감이 있고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흥미가 진지하다.
한마디로 누구나 꼭 읽어야 하고 알아야 하는 책이다.
이 책은 교과서같이 제발 꼭 알아야 하는 최소한의 지식과 그리고 부디 제발 지켜야 할 상식이 들어있다.
부디 제발 누구나 한번씩 읽기를 권한다.
그는 자본주의 대안으로 '생태자본주의'를 말한다.
생태민주주의를 위한 탈자본 교육의 방향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노동력 교육이
아닌 인격체 교육
고교평등화, 대학 평등화, 직업 평등화
생태적, 사회적 위기에 대한 대응
자본주의의
본질과 구조 이해
기후 위기
극복을 위한 대전환
그는 하동 금남면에 살며 '자본주의'에
대하여, 그리고 '녹색평론 함께 읽기' 모임을 하동 주민과 함께 한다.
알아야 하기에 함께 공부하며, 알고 난 후에는 실천하는 삶을 스스로
보여주고 있다.
'몰라서' 않했다, 못했다는 변명은 달리는 기차를 멈출 수 없다.
달리는 기차의 브레이크를 밟기 위해 우리 모두는 왜 멈춰야 하는지 알아야 한다.
부디, 제발 고속으로 질주하는 자본주의 기차의 브레이크를 우리 모두
함께 밟아야 한다.
-
2023-07-07
-
-
나는 미니멀유목민입니다
-
-
물건이 아니라 경험에 돈을 쓰며 삶이 자유로워졌다!
-
2023-07-03
-
-
가부장제의 경로를 이탈하였습니다
-
-
제목만 봐도 뭘 말하고 싶은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제목이 신선하다.
말하자면 Z세대 스타일이다.
나같은 할매도 Z세대를 알고 싶은 것이다.
이 책은 2부로 되어있는데
1부는 이혼한 이유이고
2부는 이혼후의 삶이다.
이혼 후 그녀는 요즘 대세 직업인 유부버가 되었다.
있는 자리에서 있는 자기의 모습을 보여주며 가장 적은 투자로 돈버는 일이다.
물론 어떤 주제를 고르느냐에 따라 많은 투자가 필요하기도 하지만
다수가 방구석, 집구석에서 자기를 파며(dig) 파는(sell) 직업이라고 나는 이해한다.
나도 한때 유투버가 아니라 유투브에 관심을 가졌었다.
'한남자가 혼자 집을 진다길래 혹시라도 누군가 참고가 될까해서 동영상을 찍었었다.
혼자 집 짓는 사람은 많지만 '목조경량주택'이라는 원서 매뉴얼대로 짓는 사람은
드물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원래 우리세대, 즉 나는 PC 1세대다.
이메일과, 플로피 디스크 부터 시작해 빠르게도 변한 그 추이를 숨가쁘게 따라 왔다.
머리와 손은 굳어지고 전자의 발전은 미친듯이 가속화되어 이제 따라가기 포기 상태에 이르렀다.
그 모든 것을 어디서도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았기에 혼자서 이렇게 저렇게 알아온 '고학' 세대다.
이제 고학으론 따라잡기 힘들다.
그렇다고 어디서 딱 내가 필요한 고것을 가르쳐 주는데도 없다.
그래도 '지리산 자봉거 건축학개론 혼자집짓기'라는 타이틀로 엎로드에 성공했다.
그것도 몇년 전이다.
공사중단으로 유투브도 중단이다.
이제 일년이면 시력이 어마무시 저하되고 책상에 앉아있는 시간이 고통스럽다.
동영상 편집은 불가한 나이다.
지팡이가 되어 줄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앗! 이야기가 옆으로 샜다.
암튼 그녀는 왜? 결혼 1년 만에 이혼했을까?
연애도 했다는데...
1부의 제목이 "며느라기 때려치우고 엄빠집으로 돌아왔다"
인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제목은 모든 것을 말한다!)
결혼해 아내가 된 것이 아니라 며느리가 된 것이다.
요즘 풍토와 다르게 시댁과 같이,아니면 최대한 시집밀착형으로 살았던 것 같다.
그러면서 아내보다는 부모의 말씀에 순종하는 남편과 아직도
가부장제의 경로를 고집하는 시부모를 견디지 못한 것 같다.
잘했다!
난 모든 이혼에 찬성한다.
결혼도 이혼도 모두 행복하고 싶어 하는 것이지 않은가.
본인은 그 누구보다도 많이 생각하고 결정했을 것이다.
엄빠 집으로 돌아온 그녀가 찾은 일은 '아넵'이란 아디로 이혼vlog유투버가 되었다.
요즘 젊은이들은 노트북 하나만 있으면 뭐든 한다.
요즘 '해방'이 유행이다.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가 그 몫을 단단히 했다고 생각한다.
정지아 소설가의 '아버지의 해방일지',아넵의 '결혼 해방일지'...
언제나 나는, 사람은 그 무엇에선가 '해방'되어야 하고 해방된 '자유인'이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단 이야기다.
그래서 '해방'이야기는 모두 성공한다.
주위에서 해방된 자유인을 많이 본다.
60넘은 나의 지인 한 아즈매는 어느날 차에 자기 물건 몇개만 싣고 집을 나와 해방인이 되었다.
그녀는 자기 소원을 이뤘고 지금 너무 좋다고 말한다.
모든 해방인에게 박수를 보낸다. 짝짝짝!!!
나의 해방일은 지구를 떠나는 날이나 되겠지?
2023년, 개인 우주여행을 예약하는 시대에 아직도 해방을 얘기해야 하다니...
-
2023-07-03
-
-
살아있다는 건
-
-
살아있다는 건: 내게 살아있음이 무엇인지 가르쳐준 야생에 대하여
저자 김산하는 동물자원과학과를 졸업하고 인도네시아 구능할라문 국립공원에서 자바긴팔원숭이를 연구한 우리나라 최초의
야생 영장류학자다. 그는 망원경을 통해 동물을 관찰하고 그 눈으로 생태계와 자연, 그리고 그 속에 살아가는 인간을 바라본다. 모든 책의 목록을 보면
대충 무엇을 썼는지 짐작할 수 있지만, 이 책은 특히 목록이 중요하다.
이 책을 읽고 목록을 다시 보면 그 제목만 보고도 내용의 중요성을 짐작할 수 있도록 아주 세세하다.
나는 이름만 보고 이 책의 저자가 남자라 생각했는데 책을 읽으며 섬세하고 생활 밀착형 이야기에 여잔가? 하는 의문이 들고 그 유명한 영장류학자 ‘제인구달’이 떠올라 다시 한번 그의 성을 확인하였는데 남자였다. 제목 ‘살아있다는 건’같이 평범하게 시작하고 클라이맥스가 있는 소설이 아닌
에세이라 책을 덮어 버릴 뻔 하였다. 하지만 끝까지 읽으며 잘했다는 생각이 들고 나를 둘러싼 자연이
나에게 살아갈 힘을 주듯, 그 자연을 자세히 들여다 볼 때 그 속에서 나와 함께 살아가는 모든 것이
나의 스승이며 친구인 것을 다시금 되새기는 것이 참으로 즐거운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어떻게 그렇게
즐거울 수 있는지 목록을 다시 보는 것만으로도 잘 요약이 되어 있다. (단 읽어본 사람만)
도서관 매대 새로 들어온 책 칸에서 별 마땅하게 읽고 싶은 책이 눈에 띄지 않아 그저 시부지기 고르고 별 기대
없이 읽은 책이 마음을 즐겁게 해주었다. “살아있다는 건” 그렇게
사소하고 시시하고, 또 즐겁고 때론 괴롭다. 살아있기에.
목록
책을 내며 코로나19새대에 살아있음에 대하여
들어가며 살아있다는 건
1장 변하는 계절의 일부가 되기
(상모솔새의 날갯짓) 계절과 관계없이 늘 씩씩하기
(봄과 겨울눈) 봄의 꿈틀거림에 동참하기
(잠) 추울 땐 그저 평화롭게 잠들고 싶을 뿐
(지금, 여기) 비본질주의와 작별하기
-생태계의 일원이 된다는 것의 의미
2장 존재의 고유한 부분집합 찾기
(꽃가루의 가능성) 작은 기회도 묵묵히 살리기
(나무의 춤) 때가 되면 훌훌 털어버리기
(기다림의 미학) 난관이 스르륵 지나가게 하기
(애착의 발생) 존재의 빈자리를 남겨 두기
(애벌레의 속도) 각자의 보폭으로 걷기
-고유하고 다양한 삶들의 공존
3장 사랑을 몸속에 작동시키기
(잠자리의 짝짓기) 실패할지라도 발걸음을 내닫기
(다람쥐의 겨울잠) 마음이 들떠 너무 일찍 깨듯이
(부름과 화답) 두려워 않고 반응을 기대하고 기다리기
(힘과 땀) 심장에 목소리를 낼 기회를 주기
-사랑은 상태가 아니라 행동이다_ 전시 <여우기>로부터
4장 살아있음으로 채우기
(분더러스트) 괜히 이곳저곳 누비기
(마음의 범위) 열탕과 냉탕을 무한 반복하기
(휴식과 자유)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일
(놀이와 재미) 때와 장소와 재료를 가리지 않는 놀이 정신
-야생동물과 인간에 관한 미학적 시선
5장 오래 바라보고 함께 존재하기
(계산없는 환대) 일상적인 만남도 뛸 듯이 반갑게
(감응 능력) 생명에게 그냥 마음을 열 수 있다면
(우연한 만남) 별 볼 일 없는 사이라도 마주치면 응시하기
(불청객과의 소풍) 자연을 대하는 이분법 탈피하기
-동물축제 반대축제
나오며 언젠가 죽는다는 건
씩씩함. 참 좋은 단어인데도 잘 사용하지 않는다. 원인인지 결과인지 어른들은 대부분 씩씩하지 못하다. 그들은 창 밖을
잘 바라보지 않는다. 본다 한들 봐야 할 것을 잘 보지 못한다. ‘씩씩하다’는 말 앞에는 ‘주어진 조건과 상관없이’라는 수식어가 생략되어 있다. 상황이 유리할 때만 씩씩하다면 씩씩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비바람이 불건, 눈보라가 몰아치건, 뙤약볕이 내리쬐건 늘 해오던 대로 서슴없이 사는 것. 아마 이것이
씩씩하게 산다는 것의 의미일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계통과 생태가 다른 이 세상 모든 생물이 공유하는
단 하나의 기본 생활 자세다. 자연은 씩씩한 삶 외에는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p.33, 상모솔새의 날갯짓, 계절과 상관없이 늘 씩씩하기)
지금으로부터 약 5억 4,000만
년 전, 생물의 어마어마한 다양성이 시작되었다. 이전까지는
존재하지 않던, 셀 수 없이 많은 생물의 화석 기록이 이때부터 등장한다. 다양한 생명의 삼라만상이 전개되었던 이 시기를 사람들은 캄브리아 대폭발이라 명명했다. 생물을 구분할 때 쓰는 분류학적 단위로 ‘계kingdom’가 있다. 크게 동물계 또는 식물계 등으로 나눈다. 계 바로 아래 단위는 ‘문phylum’이다. 예컨대 사람은 척수동물문에 해당한다. 캄브리아 대폭발 당시에 오늘날
존재하는 주요 동물문의 대부분이 새롭게 등장했다. 즉, 각종
동물의 기본적인 삶의 양태가 바로 이때 생겨난 것이다. ‘다양성’이
자연계라는 무대에 본격적으로 나섰던 시기라고 할 수 있다.(p.71, ‘존재의 고유한 부분집합 찾기’ )
느린 승무 같은 나뭇가지의 궤적을 눈으로 따라가다 보면 한 무더기로만 여겼던 잎 하나하나가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다. 밝고 싱싱한 잎, 어둡고 주름진 잎. 유난히 맥을 못 추고 흔들리던 이파리 하나가 툭 하고 떨어진다. 한
철 동안 제 기능을 다 하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나무를 떠나는 것이리라. 톡 끊어 떨구는 저 작업은
이미 오래 전부터 시작된 과정의 결실이다. 광합성과 공기 순환의 성능이 조금씩 저하되면서, 그리고 햇빛의 길이가 점점 짧아지면서 서서히 올해 농사를 접는 순서를 밟은 것이다. (p.86, ‘나무의 춤, 때가 되면 훌훌 털어버리기’ )
소비는 무언가를 비교하고 고르는 사고를 습관화한다. 우리는 뭔가를 단순하게
보는 방법을 상실하고 말았다. 살만한지 아닌지, 가성비는
높은지 낮은지를 떠나서 사물을 대하는 법을 이제 알지 못한다. 무언가 고르는 일은 사실 상당히 특수한
행위다. 자연에서라면 먹이를 찾아야 할 때만 가동되는 상태일 것이다.
그것도 이미 익숙한 범위 내에서 다분히 반복되는 선택을 하는 것일 뿐, 엄청난 양의 상품군을
훑어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뭘 골라야 한다는 강박 없이 주변을 인지하며 사는 게 자연계의 일상일
것이다. 우리는 주변을 백화점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세계로 보며 진화한 동물이다. (p.195, ‘휴식과 자유 -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일’ )
그들에겐 '보장된 내일'이라는
개념이 없기에 매일을 마지막 날처럼 살 수 있는 것일까? 나가는 순간 그 길로 다시 돌아오지 않을 가능성이
언제나 열려있기 때문일까? 사실이다. 하루하루가 마지막이고, 모든 길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길이다. 그것은 그들에게나 우리에게나
마찬가지다. 단지 얼마나 삶에 집중하느냐의 차이다. 챙기고
신경 써야 할 게 너무 많은 우리에겐 좀 버거운 얘기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차피 삶은 갑자기 왔다가
갑자기 간다. 그래서 일상적인 만남도 실은 뛸 듯이 반가울 만한 것이다. 그 반가운 마음은 우리가 살아있다는 생생한 증거다. (p.226, ‘계산
없는 환대 - 일상적인 만남도 뛸 듯이 반갑게’ )
나는 인도네시아 밀림의 높은 나무 위에서 긴팔원숭이와 랑구르원숭이가 서로를 쳐다보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그들은 마치 “네가 여기 웬일이냐”하는
식의 눈빛을 보내는 것 같았다. 어쩌면 긴팔원숭이가 있던 나무에 잘 익은 과일이 많아, 랑구르원숭이가 그들이 떠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무
기둥에서 다람쥐와 딱따구리가 마주치는 사례도 있다. 둘 다 나무를 자유롭게 타는 전문가들이라 서로의
존재를 잠시나마 인지하는 그 순간이 흥미로웠다. 운이 좋으면 사람과 마주하기도 한다. 아마존 열대우림을 밤중에 탐험하다 만난 바위만 한 두꺼비, 덴마크의
눈 내리는 정원에서 마주친 붉은여우. 내가 영원히 기억 속에 간직할 장면들이다.(p.242. ‘우연한 만남 - 별 볼 일 없는 사이라도 마주치며
응시하기’ )
그런데 21세기인 현재 동물의 이름으로 벌어지는 웃지 못할 축제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웃지 못할 이유는 명확하다. 대부분의 동물축제는
동물에게 축제의 시간은커녕 지옥 같은 시간만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 대표적인 사례가 생태 도시, 고래 특구를 표방한 울산 고래축제다. 살아있는 고래를 구경한 후
고래 고기를 먹는 고래축제는 세계에서 이곳이 유일하다. 상업 포경이 금지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축제장과
고래연구센터 앞 수십 개 식당은 안정적으로 고래 고기를 공급받고 있다. 혼획으로 매년 정식 유통되는
고래가 80마리인 것으로 보고되는데, 그렇다면 나머지는 불법
유통이 아닐 수 없다. (p.254, ‘동물축제 반대축제’ )
언제 살았는지 죽었는지 누구도 알지 못하고 기억하지 않는 무수한 생명들. 혼자
고독하게 병치레를 하다 죽음이 가까운 걸 직감하고 어두운 굴속에 제 발로 걸어가 마지막 순간을 조용히 맞이한 많은 동물. 평생 한자리에 박혀 모진 계절의 변화와 사람의 손길을 맞다가 조금씩 시들시들해진 많은 식물. 그리고 이들보다도 더 무명으로 살다 간 곰팡이와 조류와 미생물 들. 눈물
흘리는 이 하나 없이 멋지게 살다 돌아간 생명의 장구한 행렬에 귀를 기울여본다. 나의 때는 언제인지. 그때가 오기 전까지 살아있음에 집중하련다. 생명을 살리고, 음미하고, 칭송하고, 보호하는
일에. 살아있다는 것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시간도 너무나 짧으니까.
(p.263, ‘나오며 - 언젠가 죽는다는 건’ )
-
2023-06-30
-
-
화가가 사랑한 나무들
-
-
이 책은 그림 책이다.
화가가 그린 나무들로 가득 차 있고 화가와 그림에 대한 해설도 있다.
살아있는 나무는 살아 있어서 아름답고 죽은 건 그 쓰임 대로 멋지다.
죽은 나무도 쓰러지지 않고 잎과 가지는 없지만 꼿꼿이 서 있는 것들을 산에서 가끔 본다.
죽은 나무들을 덩굴 식물들이 칭칭 감고 있고 아래쪽에는 이끼와 작은 벌레들이 오몰거리고 있다.
나무는 살아서도 죽어서도 다른 생물들에게 보탬이 되고 있다.
"동면에 들거나 죽은 나무는 결코 외롭지 않다.
나무 안에는 무척추동물과 곰팡이들이 바글거리기 때문이다."
라르스뉘베리의 그림 '고독'에
대한 해설이다.
뉘베리의 '고독'은 산에서
가끔 본다.
죽어서도 꼿꼿이 서있는 나무!
클레어캔식의 나무 그림 제목은 "온화함은 영혼을 맑게 한다"이다.
그녀의 다른 그림 제목은 "당신은 온 세상을 발아래 두었다"이고
또 다른 것은 "예술을 위한 무단 침입"이다
캔식은 나무파(arborealist)로 알려진, 나무에 집중하는 미술가 그룹의 일원이라고 한다.
클로드 모네는 센 강 지류를 떠다니는 배를 작업실 삼아
비와 날씨에 따라 시시각각 바뀌는 나무의 인상을 담은 수십 점의 작품을 그렸다.
모네는 건초 더미와 포플러 나무를 그린 작품을 판매한 돈으로 집을 샀고
그곳에서 당시로서는 혁신적이었고 오늘날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작품을 그렸다고 한다.
빈센트 반 고흐도 나무 그림을 많이 그렸다.
생레미드프로방스 지방의 정신병원에 자진 입원했던 고흐는 그곳의 나무를 그렸다.
"그것(사이프러스나무)는 햇살을 흠뻑 머금은 풍경의 어두운 조각이긴 하지만
대단히 흥미로운 짙은 분위기이자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것 중
정확하게 표현하기가 가장 어려운 것이기도 해."
라고 동생 테오에게 편지를 썼다. 또 다른 편지에서
"올리브 밭에서 나는 속삭임에는 아주 친밀한 무언가가 있어.
거기에는 엄청나게 오래된 무언가가 있지."라고 했다.
예술가는 그저 '좋다', '멋지다'는 느낌 외에 다른 무언가를 느끼고 그것을 구체화한다.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는 "나는 왜 그림의 주제로 죽음과
무상한, 무덤을 선택했을까?"라고 수사적인 질문을
던졌다.
그 답은 영원한 삶을 얻기 위해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의 그림의 풍경은 생기없는 색에 죽은 나무가 쓰러져 있다.
반면 이반 이바노비치 시시킨은 죽은 듯 보이는 나무에서 생명을 본다.
그의 그림 "황량한 북쪽에서"에는 아이스스톰으로 뒤덮인 절벽에
무거운 눈으로 덮여 축 늘어진 전나무가 서있다.
"전나무의 가지는 큰 눈이 내려 얼어붙어도 상처받지 않는다.
눈이 녹으면 가지들은 다시 새로운 싹을 틔운다." 고 그는
말한다.
폴 내쉬는 종군화가로 전쟁에 스케치북을 들고 다니며 실전을 경험했다.
그는 불탄 후 타버린 나무같이 반이 잘린 나무의 모습으로 전쟁을 보여준다.
"숲 속에서는 신의 존재를 느낄 수 있다" (안톤 체홉)
누구는 나무만 그리고, 누구는 나무 사진만 찍고 누구 나무로 만들고
누구는 나무를 심고 베어내고...
나무를 너무 사랑해서 이기도 하지만 나무가 돈을 벌어다 주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무를 보는 마음이 신을 보는 마음이다.
그림이 된 나무는 늘 같은 모양으로 볼 때마다 다른 감정을 불러 일으킨다.
종이에 새겨진 여러 색깔과 모양의 나무들 모두 하나씩 뜯어 방에 붙여 놓고 싶은 욕심은 버리자.
어렸을 적 달력 그림이 너무 좋아서 액자로 만든 적이 있다.
논이 있고 바지를 걷어 붙인 아이가 함지박을 이고 있는 엄마와 함께 걸어가는 옆에
소가 있는 시골 풍경의 동양화였다.
지금의 시골에선 그런 풍경을 만날 수 없다. 1960년대의 풍경이니까.
시골에서 살 운명인가?
시골에서 살아본 적도 없는 어린 내가 그런 그림에 꽂혔다니.
아직도 오빠 집에 그 액자가 붙어있는데 한마디로 '평화'롭다.
지금의 시골 풍경도 그리면 평화로울까? 내가 이미 그 속을 다 봤는데...
책의 그림 중 클림트의 <전나무 숲>을 내 폰의 배경으로 깔았다.
전화기 켤 때마다 전나무 숲에 한번씩 들어갔다 나온다.
숨을 들이 마시면 숲의 공기가 폐 속 깊이 들어오는 것 같다.
그 숲을 통해 들어가면 신이 있고 가족이 있고 친구가 있고 사람이 있고 뉴스와 사건이 있다.
-
2023-06-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