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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교의 키즈의 생애 5편 "둘이 서로 좋아하나…?"
다시 봄이 되었다. 캠퍼스 안 호수에 심어진 버드나무에 새순이 나왔다. 한없이 늘어진 버드나무 가지가 봄바람에 머릿결처럼 흔들렸다. 호수에 비친 윤슬과 연두색 버드나무 가지가 눈이 부셨다. 수현은 2학년이 되었다. 신입생들이 들어왔다. 수현이 다니는 경제학과는 여학생이 많은 과는 아니었다. 한 학년에 50명인데 그중 10명 정도가 여학생이었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 만난 후배 중에 운동권이 될 만한 신입생들을 골라봤다. 수현이 나름 몇 명을 골라 이야기를 해봤지만,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세상이 바뀌었다. 관심이 없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만, 수현은 혼란스러웠다. 대학생이 되면 당연히 사회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 아닌가? 라고 수현은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 학생이 수현처럼 사회문제에 관심을 두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후배들과 이야기하면서 수현은 깨달았다. “나는 왜 모든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했을까?” 대학생이 되었으니,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져 보면 어떨까? 네. 사회문제요. 선배 제 문제도 해결 못 하는데 무슨 사회문제를 고민해요? “지금 제 앞길이 구만리에요" 취직도 해야 하고 학점 관리도 해야 하고요. 다른 일에 관심 가질 시간이 없어요. 수현이 바라보는 세상과 타인이 생각하는 세상은 다르다는 것을 신입생들과 이야기하면서 처절하게 깨달았다. 같은 것을 봐도 같은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수현은 이상하게 생각되었던 것이다. 강진도 서클에 신입회원들을 모집하고 있었다. 강진은 선배들에게 절대 후배들에게 학생운동을 한다는 이야기는 하지 말라고 했다. 그냥 편안한 선배 친절한 선배로 보여야 한다고 들었다. 그래서 후배들에게 밥과 차를 사주면서 호감을 쌓았다. 그리고 후배들과 친해지면 서클에 데려갔고 함께 저녁을 먹거나 술을 마셨다. 그렇게 지내던 후배들은 자연스럽게 강진이 있는 문학서클에 가입했다. 수현은 신입회원들에게 왜 학생운동을 해야 하는지 설득하려고 했지만, 귀담아듣는 후배들은 거의 없었다. 변혁, 혁명, 부조리, 노동 탄압, 독재, 농민들의 현실 이런 단어들은 낯설어했다. 유일하게 수현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후배는 지숙이었다. 지숙은 여수에서 올라온 후배였다 “선배 어디 가요?” 길을 걷는데 갑자기 지숙이 수현을 붙잡더니 물었다. 점심시간인데. 어디를 가겠냐? 식당에 가야지. 우리 오늘 특별한 음식을 먹어봐요? 우리 오늘 특별한… 너랑 나랑 그런 이야기를 할 만한 사이는 아닌 것 같은데…. 올해 신입생은 지숙은 평소에 수현과 친분이 있는 후배는 아니었다. 학기 초에 엠티에서 잠깐 이야기를 나눈 것이 전부였지만 다들 관심 없어 하던 수현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던 유일한 신입생이었다. 학생회관 가는 향하는 길에 두 줄로 심어진 벚꽃이 활짝 피었다. 수현과 지숙은 그 꽃길을 걸어 내려갔다. “ 그래 어디 가고 싶은데….“그냥 선배는 따라만 오세요. 그래, 특별하게 갈 곳도 없으니 함께 가보자.” 지숙은 학생 식당을 지나 더 멀리 가고 있었다. 수현이는 앞에 걸어가는 지숙이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우리 서클에 들어오려나…” “ 그냥 학생식당이나 가자. 멀리 가봐야 별것도 없는데…. “수현이 말했다. “선배 제가 뭐라고 그랬어요. 오늘 저랑 특별한 것을 먹어 보자고 했잖아요.” 지숙이 다시 딱 부러지게 말했다. “그래 알았다.” 수현은 할 수 없이 대답했다. 학생회관을 지나 조금 더 멀리 가니 멀리 교수 식당이 보였다. “너 저기 가자고 하는 거야?” “네…” “저기 뭐 특별한 것이라도 파니?” 솔직히 수현은 교수 식당엔 가본 적이 없다. 항상 돈이 모자란 수현에게 교수 식당이라는 말만 들어도 비쌀 것 같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말이 교수 식당이지 학생 식당보다 조금 더 비싼 가격에 좀 더 좋은 음식을 파는 학교 식당이라 학생이 가도 되는 식당이었다. “ 거기 가면 뭘 파는데… 가보면 알아요. 그래 알았다. 알았어…” 교수 식당 앞엔 분홍빛 꽃잔디가 가득 피어 있었다. 4월의 따스한 봄 햇살에 이제 갓 20살이 된 지숙의 볼이 분홍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지숙이가 저렇게 예쁜 아이였나 수현은 지숙을 얼굴은 멀뚱하게 쳐다봤다. “선배…. 어…. 어…. “제 얼굴에 뭐라도 묻었어요!” “뭐 그렇게 민망하게 보고 있어요?” “아. 미안…. 잠깐. 딴생각을 좀 하느라고.” ”메뉴는 제가 이미 골랐어요.“ “어 그래…” “뭔 데…” “청어요!” “ 청어…” “물고기 청어 말이야?” “네. 저는 청어구이를 좋아하거든요.” 지숙이 이야기했다. 여기 식당에서 매주 이날만 청어를 구워 주더라고요. “ 아. 그래서 근데 왜 나랑…” “오늘 여기를 특별하게 온 거야…” “ 선배 기억 안 나요?” “무슨 기억…” “그때 엠티 때 제가 선배에게 이야기했잖아요.” 지숙은 대천 바다로 엠티를 갔을 때 수현과 함께 걷던 시간이 떠올랐다. 수현 선배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몰랐지만, 함께 걷는 것이 지숙은 좋았다. 수현이 민중가요라고 불러주던 노래도 좋았다. “언제라도 힘들고 지쳤을 때 내게 전화하라고 물끄러미 바라보다 나는 눈시울이 붉어지고 고맙다는 말 그 말 한마디 다 못하고 돌아섰네 나는 그저 나의 아픔만을 생각하며 살았는데 그런 입으로 나는 늘 동지라 말했는데 오늘 난 편지를 써야겠어 전화 카드도 사야겠어 그리고 네게 전화를 해야지 줄 것이 있노라고” -전화카드한장- 지숙은 수현이 불러준 노래를 잊지 않고 있었다. 그날 밤 불어오던 저녁 바람과 바다냄새 그리고 파도 소리 모든 것이 지숙은 잊고 싶지 않았다. “무슨 이야기? 제가 청어구이를 좋아한다고요.” “그랬었나....” 수현은 기억나지 않았지만 억지로 기억해 보니 그랬던 것 같기도 했다. 엠티로 갔던 대천 바닷가에서 잠시 걸었던 기억이 났다. 그때 지숙이 자기는 푸른 바다를 닮은 청어를 좋아한다고 했었다. “ 그래…. 기억난다.” “ 너. 청어를 좋아한다고 했었지?” “맞아…” “근데 바다를 좋아하는 거야? “ “아니면 청어를 좋아하는 거야?” “선배 그만 묻고 청어를 드시는 것이 어때요?” 지숙은 어느새 청어를 먹기 좋게 살만 발라 놓았다. 야….너 이렇게까지 안 해도 된다. 네가 꼭 내 색시라도 되는 것 같잖아. 수현은 이렇게 이야기하고 깜짝 놀랐다. ”색시가 뭐예요. 여자 친구도 아니고….“” 아…. 미안“ 수현은 말을 얼버무렸다. ”그냥 제가 해주고 싶어서 그래요. 그래 알았다.“ 수현과 지숙은 이제 막 벚꽃이 피기 시작한 캠퍼스를 바라보며 청어를 먹었다. 사실 수현은 청어를 처음 먹어봤다. 먹어본 등 푸른 생선은 고등어가 다였다. 수현의 엄마는 장에 가면 항상 고등어를 사 왔다. 고등어를 김치에 넣어 끓여주거나 무와 조려주면 그렇게 맛이 좋을 수가 없었다. 수현의 아버지 석태도 고등어를 좋아했다. 청어를 보자 엄마와 아빠가 떠올랐다. 청어 구이의 맛은 나쁘지 않았다. 아니 맛은 중요하지 않았다. 지숙이랑 앉아 청어를 먹는 시간이 좋다고 수현은 생각했다. “선배..”“왜..”“저 다음에 선배랑 다시 청어 먹으러 와도 되나요?” “어.. 그래 청어 맛이 좋은데… “ 지숙과 수현은 청어를 먹고, 다시 봄이 가득한 교정을 걸었다. 교정은 새로운 신입생들로 활기가 넘쳤다. 벚꽃잎이 바람에 흔들려 속절없이 떨어지고 있었다. 꽃잎은 지숙의 머리와 어깨에도 떨어졌다. 수현은 지숙의 머리에 떨어진 벚꽃 잎을 손으로 떼어내며 수현에게 건넸다. “ 꽃이 널 좋아하나 보다?” “네.!”“ 선배 그런 달콤한 말을 자꾸 하시면 제가 좋아하는 수가 있어요.” 지숙이 하얀 잇몸을 드러내며 환하게 웃었다. 지숙과 수현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학생회실로 걸어갔다. 나경은 수현과 지숙이 함께 걸어오는 것을 봤다.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밀려왔다. 왜 그러지, 나경은 수현과 지숙의 모습을 보는 순간부터 기분이 이상했다. 떨어지는 벚꽃들을 보며 나경은 생각했다. 둘이 서로 좋아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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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인간을 어떻게 변화 시키는가!
며칠 내내 비가 내렸다. 눈이 녹기 시작했다. 한 달 전만 해도 2미터 이상이나 쌓여 있던 눈이었다. 파괴된 마을은 처음에는 까맣게 그슬린 지붕만 보였다. 며칠 밤이 지나자 눈 밖으로 차츰차츰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눈이 녹기 시작했고 마침내 시체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오래된 시체들이었다. 처음으로 드러난 것은 1월에 죽은 시체들이었다. 몸뚱이는 꽁꽁 얼어붙어 있었고 얼굴은 잿빛 밀랍 같았다. 날씨가 온화해지자 시체에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냄새가 나자 마을 사람들은 눈으로 시체들을 덮어 버렸다. 그래버는 2년 동안 휴가를 가지 못했다. 휴가는 계속 보류되었다. 과연 이번에는 휴가를 갈 수 있을까 그래버는 총탄이 쏟아지는 참호에서 휴가를 생각했다. 그들은 연장을 가지고 와서 파묻힌 사내를 파냈다. 라메르스였다. 안경을 낀 빼빼 마른 병사였다. 1미터쯤 떨어진 바닥에서 안경도 발견되었는데, 깨지지 않고 그대로였다. 하지만 라메르스는 죽었다. 전쟁에서 죽음은 일상이 된다. 매일매일 적과 아군들이 죽어간다. 죽음이 일상화되어 있다면 삶의 무게도 가벼워지는 것인가? 무엇을 위해 전쟁을 하고 있는 것인가?. 피로 물들어간 대지에도 희망이라는 것이 있는 것일까? 그래버는 10시에 라에의 호출을 받았다. "자네의 휴가 통지서가 왔어" 러시아와 독일의 전쟁이었다. 독소 전쟁의 막바지였고 독일군은 점점 후퇴하고 있었다. 매일 전선이 독일이 있는 서쪽으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래버에게 휴가증이 발급된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것이었다. 차는 서쪽으로 달렸다. 한낮이었다. 태양은 잿빛 뒤로 흐릿하게 보였고, 눈은 희미하게 반짝거렸다. 그때 갑자기 가슴속에 뜨거운 그 무엇이 솟구쳐 올랐다. 비로소 탈출했다는 느낌, 죽음로부터 멀어져 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1미터 1미터 멀어질수록 1미터 1미터의 안전이 확보되었다. 다음 날 아침, 풍경이 달라져 있었다. 옅은 새벽안갯속으로 주변 풍경이 뚜렷하게 드러났다. 옅은 새벽안갯속으로 주변 풍경이 뚜렷하게 드러났다. 그래버는 이제 창가에 앉아 유리창에 얼굴을 기대고 있었다. 한 시간 후에 낯익은 풍경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달콤하고 당황스럽게 그리고 날카로운 기억들이 가득 찬 채로, 그것은 귀향 자체라기보다는 귀향에 대한 예감 같은 것이었다. 마침내 그래버는 자기 고향에 도착했다. 하지만 고향은 자신의 기억 속에 고향은 아니었다. 공습으로 인해 그래버의 집은 파괴되었다. 그래버는 죽음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했지만 고향 역시 죽음과 1미터도 떨어지지 못했다. 그래버가 살던 하케가 18번지는 폐허가 되어 있었다. 집은 오직 정면만이 남아 있었다. 그래버는 실종자 창구에 가서 부모님의 이름을 말했지만 없다는 답만 들었을 뿐이었다. 폐허가 된 집 정문에 쪽지를 남겨 두었다. 스무 살 정도 된 처녀가 마치 강물을 따라오기라도 한 듯 불빛을 받으며 그에게 다가왔다. 그 순간 둥근 눈썹, 그리고 어깨까지 자연스럽게 흘러내린 마호가니 색 머리칼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버의 그녀는 같은 김나지움을 다녔다. "세상에… 엘리자베스 군.. 넌 줄 몰랐어. 많이 변했군" "당신도 그래요" "무엇 때문에요? 나보다 더 명랑한 여자를 찾으면 돼요" "명랑한 여자 같은 것은 필요 없어" "그럼 뭐가 필요하죠?' 그는 갑자기 그녀의 머리카락이 그의 얼굴에 그리고 입술에 와닿는 것을 느꼈다. 그것을 재빨리 사라지는 바람과도 같았다. 그래버는 폴만 선생을 찾았다. "저는 지난 십 년 동안의 범죄에 제가 어느 정도 관계되어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그리고 제가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도 알아야 합니다." "자네가 지금 한 질문이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나" "그렇습니다." "요새는 그보다 더 의미 없는 질문을 해도 목이 달아나" "자네가 말하는 범죄는 전쟁을 말하는 건가?" "전쟁을 일으킨 온갖 것들을 말합니다. 거짓과 억압, 불의와 폭력, 그리고 전쟁과 그 전쟁을 하는 방법도 범죄에 포함됩니다. 노예 수용소, 집단 수용소, 민간인에 대한 대량학살 말입니다." "공범 관계라고 하지만 자네가 무엇을 알고 있나? 자네는 너무 어렸고 스스로 판단할 수 있기도 전제 거짓으로 중독되어 던 거네. 하지만 우리는 우리는 그것을 눈앞에 보고도 그대로 내버려 두었네! 나태한 마음, 무관심, 이기주의, 혹은 절망이라고 할 것인가? 그래버는 갑자기 폴만의 눈동자가 누구를 떠오르게 하는지 알았다. 그것은 그가 총살한 러시아인의 눈이었다. 그래버는 광장으로 나왔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보리수나무 옆을 지나 폐허와 파괴된 집 사이로 걸어갔다. 그는 자신이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지 알았다. 자기 내부의 모든 것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버는 엘리자베스에게 청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엘리자베스 우린 결혼해야 해" "결혼이라고? 왜죠? 그녀가 웃었다. "너무 허무하기 때문에. 우린 서로 안 지도 며칠 안 되었고, 며칠 후면 난 다시 전선으로 돌아가야 해. "결혼해도 고독은 줄어들지 않아요. 오히려 더 고독해질 거예요" 그녀가 말했다. 알폰스가 느긋한 표정으로 웃었다. "에른스트 그래버, 게슈타포가 관연하지 않는 건 하나도 없어! 자네가 유대인 아가씨나 공산당 아가씨와 결혼하지 않을 테니까 말이야? 어쨌거나 조회는 하게 될 거야. 규칙이니까! 그래버는 깜짝 놀랐다. 조사가 시작되면 엘리자베스의 아버지가 집단 수용소에 있다는 사실이 드러날 것이다. 오늘 아침 엘리자베스는 결혼 서류를 신청하기 위해 시청에 갔다. "제기랄 무슨 일을 해버린 거야" 그래버는 엘리자베스가 게슈타포의 조사로 아버지가 집단 수용소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녀가 노출될 것이 걱정되었다. 부모님 집 문패 밑에 쪽지가 꽂혀 있었다. 어머니의 편지였다. 그래버의 부모님은 살아 있었다. 아기라고.. 우리 형편에 만일 현재와 같은 사태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모두 아이를 낳지 않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야만스러운 사람들만 아이를 낳게 된다면 어찌 되겠어요? 그리게 된다면 이 세상에서 정의를 다시 실현할 수 있겠어요? 엘리자베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가 아기에 대해 한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갑자기 벽이 뚫린 듯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새로 생긴 구멍으로 정원이 보이는 것처럼 불확실하나마 한 조각 미래가 흔들거리면 보였다. "기차는 6시에 출발해" 그래버의 3주간의 휴가가 끝났다. 역에는 나오지 마, 여기서 떠나고 싶어. 역에서 울고 있는 지치고 땀을 흘리는 여자만 머릿속에 떠 올랐거든" "알겠어요" 하지만 역에서 기차가 떠날 때 멀리 엘리자베스가 보였다. 그녀의 표정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래버는 창문으로 고개를 내밀고 마지막일 수더 있는 그녀를 보기 위해 필사적으로 창문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래버는 다시 복귀했다. 자신의 군대는 120킬로미터 나 서쪽에 자리 잡고 있었다. 러시아인 포로 4명을 그래버가 담당하게 되었다. 전투가 이어졌다. 밤새 곡사포와 폭탄들이 떨어졌다. 포로들을 데리고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래버 저 러시아 놈들을 쏴버려 슈타인 브래너가 말했다. 그래버는 러시아 포로를 죽이려고 하는 슈타인 브래너에게 총을 쐈다. 그래버는 러시아 포로를 모두 풀어 주었다. "가! 어서 가란 말이야!!" 그는 러시아인인 보았다. 남자의 손에는 뜻밖에도 총이 들려 있었다. 남자는 총을 겨누었다. 그래버는 검의 총구를 바라봤다 . 불그레한 꽃망울과 이파리가 달린 식물이 눈앞에 보였다. 그 풀은 점점 커져갔다. 그리고 그의 눈이 감겼다. 그래버는 어린 나이에 입대했습니다. 그리고 아프리카 프랑스 러시아로 6년을 전쟁터에서 보냈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행위가 정당한 것인지 고민하는 병사였죠. 2년 만에 3주간의 휴가를 얻고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거기에서 함께 김나지움에 다니던 엘리자베스를 만나 사랑하고 결혼을 합니다. 자신을 가리키던 폴만 선생님을 만나 자신의 고민을 이야기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습니다, 유럽의 모두 전쟁터였고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죽음만이 기다리고 있던 전쟁터였죠, 끝없이 포탄이 떨어지는 전쟁터, 진흙 같은 참혹함이 세상을 잿빛과 핏빛으로 물드리는 참혹함만 존재하는 곳이었습니다. 그는 러시아 게릴라를 지키는 업무를 받습니다. 그래버는 양심에 따라 그들을 풀어주죠. 하지만 그의 선행은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갑니다. 엘리자베스와의 짧은 사랑 그리고 죽음, 전쟁은 그들을 이별과 죽음으로 몰아넣습니다. 대한민국은 절 못된 선택으로 인해 계엄령이라는 초유의 사태에 빠져 있습니다. 탄핵만 되면 술술 일일 풀린 것이고 다시 안정을 얻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악은 그렇게 순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끝없이 빈틈을 찾아 작은 구멍이라도 찾게 되면 뱀처럼 빠져나와 다시 독을 가득 품은 이빨을 내밀고 민주주의를 위협합니다. 그래버는 자신의 전쟁에서 했던 전투에서 했던 행위들 살인 총살 그리고 민간인 학살 이 모든 것이 명령에 따랐지만,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고민합니다.. 결국 그의 양심은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습니다. 하지만 죽는 순간 그는 편안함을 느낍니다. 이제 더 이상 누구를 죽이지 않아도 되고 더 이상 양심의 가책 때문에 괴롭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전쟁터에서는 단 하루의 평화도 너무나 소중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죽음의 공포로부터 멀어지니까요. 우리는 지금 계엄령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불안합니다. 우리의 평화는 흔들리는 나뭇잎처럼 흔들리고, 가을의 끝 낙엽처럼 위태롭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지키는 것은 민주주의를 지키려고 노력하는 시민들일 것입니다. 양심에 따라 행동하고 노력하는 사람들! 위대한 민주주의를 지키는 시민들의 행동일 것입니다. 사랑할 때와 죽을 때는 에리히 레마르크가 1945년에 쓴 대표적인 반전소설입니다. “개선문”과 “서부전선 이상 없다”등 쓴 전쟁문학의 대가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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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살린 풍경들
절제의 아름다움이 담긴 책 "나를 살린 풍경들"의 저자 김인호님을 지리산 자락에서 몇번 뵈었다. 지리산에 걸쳐 사는 사람들이 만드는 신문에 대해 논하는 자리, 지리산 봉우리를 향해 걸음하는 자리에서. 이런 분을 보면 지리산에 오래 산 사람들은 구도자나 시인이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사진 찍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한사람'을 생각한다. 그가 설 자리는 여긴데... 많은 역경을 이겨내고 두다리로 오르 내리며 가장 세밀하고 은밀하고 깊이있는 한순간을 포착한 사진과 이야기가 이 책에 있다. 그 이름을 들으면 마치 그 옛날 사랑하는 애인을 만나러 갈 때처럼 설레는 노고단, 정령치, 만복대, 바래봉...이 나온다. 눈 앞에서 가물 거리고 뇌리에서 자꾸 떠오르는 여리고 순수한 그러나 매혹적인 지리터리풀, 남바람꽃, 대흥란...을 보기위해 밤잠을 설치고 새벽을 가른 그 마음이 이 책에 있다. 수많은 장면중에 고르고 골랐을 하나의 장면 하나의 마음이 책갈피 갈피에 있다. 지리산 자락을 다녀보면 나같은 이에겐 눈에 드는 모든 장면이 다 하나의 작품이다. 아무 곳이나 사진기를 갖다대도 그냥 다 작품이 된다. 그러나 죽음에서 생명에 이르는 절제 된 풍경은 그냥 나오지 않는다. 같은 곳을 바라 본 사람은 알수 있다. 이 책을 보시고 또 지리산에 드시라. 생명의 산 지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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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눈박이 말똥가리를 기다리며
▲ 주로 탐조를 하는 월전리 제방에서 바라본 섬진강의 모습 2022년 1월 위장막에 들어가 물새를 찍고 있을 때였습니다. 앞에는 물, 등 뒤에는 풀숲이었는데 등 뒤에서 푸드덕 소리가 났습니다. 고개를 돌려보니 말똥가리 한 마리가 가까운 거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역시 위장을 하니까 가까이 오는구나!’ 하고 서브 카메라를 꺼내 촬영을 하였습니다. 찍을 만큼 찍고 다시 물새를 관찰하였고 관찰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사진을 편집하면서 아까 촬영했던 말똥가리를 편집하는데 한쪽 눈을 감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맹급류가 가끔 한쪽 눈을 감기도 하기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모든 사진이 감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상하다 싶어서 같은 장소에서 다른 날에 찍은 말똥가리 사진들을 살펴보았고 모두 한쪽 눈을 감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고 다쳐서 외눈박이가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 2022년 처음 관찰되었던 외눈박이 말똥가리 그날 이후로는 그 지역을 지날 때면 이 말똥가리가 잘 있는가 살펴보곤 합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겨울이 가고 봄이 오고 여름이 왔습니다. 말똥가리는 번식지로 날아갔고 다시 여름을 지나 가을이 오고 겨울이 왔습니다. 2023년 겨울, 외눈박이 말똥가리는 기억 속에서 잊혀졌습니다. 양 눈으로도 살아남기 어려운 야생에서 외눈박이로 살아남기란 어렵기 때문에 당연히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 2023년 다시 돌아온 외눈박이 말똥가리, 늘 이 나무에 앉아 있어 '말똥가리 나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겨울철새를 관찰하기 위해 섬진강 제방을 지나가는데 작년에 말똥가리가 자주 앉던 나무에 앉아 있는 말똥가리가 보였습니다. 대수롭지 않게 촬영하고 초점이 잘 맞았나 당겨보니 한쪽 눈을 감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아! 외눈박이 말똥가리가 다시 돌아온 것이었습니다. 놀라웠습니다.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냉혹한 야생에서 눈이 생명인 맹급류가 외눈박이로 살아남다니 놀랍고 반가웠습니다. 그렇게 그 지역을 지나갈 때면 외눈박이 말똥가리를 찾았고 특이점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매번 같은 나무에 앉는다는 것, 이야기를 들어보니 새들은 자신들이 선호하는 특정 나무, 장소가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말똥가리도 같은 나무에서 자주 관찰이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또 겨울이 지나 봄이 오고 여름이 왔고 말똥가리는 떠났습니다. 그렇게 가을이 오고 겨울이 온 2024년 11월 이제는 여행을 떠난 친구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외눈박이 말똥가리를 기다립니다. 11월 겨울철새를 관찰하기 위해 섬진강 제방을 지날 때면 외눈박이 말똥가리가 자주 앉아 있던 나무가 보입니다. 그런데 아직 찾아오진 않았습니다. 그래도 계속 기다립니다. 다른 말똥가리들은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하고 있고 겨울 철새들도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와야 하는데 걱정이 됩니다. 혹 무슨 사고가 난 것은 아닌지.... 오늘 섬진강 제방을 지나는데 하늘에서 ‘삐이~’ 말똥가리 소리가 들립니다. 누구일까요. 외눈박이 말똥가리가 돌아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글을 작성하던 중 외눈박이 말똥가리가 다시 돌아왔고 추가된 내용입니다.] 2024년 11월 말 외눈박이 말똥가리는 다시 섬진강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번에는 말똥가리 나무에 앉지는 않고 활동반경을 넓힌 것 같습니다. 그래도 가끔 작년에 봤던 장소에 날아오곤 합니다. 12월 27일 남원에서 회의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며 섬진강 제방을 지나는데 작년에 늘 앉아 있던 말똥가리 나무에 앉아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매우 건강해 보입니다. 남은 겨울도 건강하게 보내고 번식지로 떠나 다시 2025년 겨울 다시 만날 날을 기대하며 다사다난했던 2024년을 떠나보냅니다. 굿 바이 2024년! 2025년 새해에는 좋은 소식이 가득하길 기원합니다.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복 짓는 한 해 되세요. ▲ 2024년 11월 정지비행을 하면서 먹이를 찾고 있는 모습 ▲ 2024년 12월 27일 자주 앉아 있던 나무에 다시 앉았습니다. 지금은 그 모습이 많이 변했지만 여전히 이 장소를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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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참 먹는 시간, 그녀가 만드는 한 끼
반달곰을 사랑하는 1% 가게 유람기입니다. 반달곰1%는 지리산권 가게들(현재는 구례)이 자발적으로 진행하는 공존프로그램으로 반달곰1% 가게에 가면 반달가슴곰을 자연스럽게 만나고, 특별히 계획하지 않아도 반달가슴곰 보호활동에 참여하게 됩니다. 2021년 5개 가게로 시작한 반달곰1%는 2024년 현재 10개 가게로 늘어났습니다. ‘유랑인증서’를 통해 반달곰1% 가게에 들러 물품을 먹거나, 마시거나, 구입하여 모아진 1%의 기부금은 올무수거 활동, 무인센서카메라 구입 등 반달곰 보전활동을 위해 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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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전태일
이 작은 책은 에너지-자원 낭비를 최소화하기 위해 표지와 본문 모두 검정색 하나만 사용했다. 깨끗하고 단순미가 있다. 앞부분은 민종덕, 뒷부분은 박승옥이 전태일과 관련하여 쓴 글이다. 민종덕님은 딱 한번 뵌 적이 있다. 지리산 둘레길을 걷던 중 카메라를 멘 분이 나를 추월하며 올라가고 계셨다. 나는 가뿐 숨을 몰아가며 겨우 한발 한발 떼고 있는데 이분은 마치 발바닥에 스프링이 달린듯 사푼사푼 오르며 때로 사진을 찍는 포즈를 취하더니 눈 앞에서 학이 날아가듯 사라졌다. 자세히 보진 않았지만 나는 그 모습과 얼굴을 기억했나 보았다. 그 후 한번도 만난 적은 없지만 내가 기억력이 좋아서 인지 그분의 가벼움이 부러워서 였는지 나중에 페북에서 보고 이분이 그분이었구나 알아보았다. 민종덕님은 우연히 전태일의 일기의 한부분을 보고 전태일을 자기 인생의 멘토로 삼았다고 한다. 바로 전태일 집의 주소를 외우고 그 집으로 찾아갔다고 한다. 전태일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를 만나고 그녀의 권고대로 자기의 갈 길을 정했다고 한다. 무엇이든 한 번 정하면 끝까지 직진하는 분 인 것 같다. 그렇게 전태일을 만나고 전태일 처럼 일하고 전태일을 위해 일하고 상처 받고 다시 추스리며 쓴 글이다. 뒤에 박승옥이 말한대로 전태일 어머니 이소선 여사가 잘 처신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 이분 스스로는 말하지 않았지만 박승옥씨에 의하면 큰 병으로 고생했고 혼자 산을 오르내리며 마음과 몸의 병을 다 치유하신 것 같다. 내가 둘레길에서 뵀을 때의 모습은 이미 무언가를 초월한 모습이 아니었을까. 그러기에 단 한번으로 기억에 남았으니 말이다. 나도 엄마라 불리지만 아마도 가장 힘든 역할이 아닐까 싶다. 처음도 중요하지만 잘 끝내야한다. 내가 존경하는 우리 엄마, 에수님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 그리고 성서 마카베오 하권에 나오는 일곱아들의 어머니가 떠오른다. 어디 엄마만 그럴까. 모든 역할이 다 어렵다. 책의 뒷부분은 박승옥씨가 썼다. 과거의 사건 전태일을 밟고 나아가 지금 여기 있는 전태일을 말하고 있다. 지금 전태일이 할 수 있는 그 일을 함께 하자는 것이다. 저자 박승옥은 1980년대에 돌베개출판사 편집장, 구로노동상담소 간사, 전태일노동연구자료실 대표를 거쳐 1990년대에는 10여년을 시골에서 살았다. 2000년대 초에 민주화기념사업회 수석연구원, 시민발전 대표를 거쳐 현재 한겨레두레공제조합연합회(준) 공동대표로 일하고 있다. 처음의 마음을 끝까지 가져가는 것이 가능할까? 책 "전태일평전"개정판의 발문은 장기표가 썼다. 전태일은 물론이려니와 전태일평전의 저자 조영래를 함께 찬양한다. 내가 왜 장기표를 언급하는지는 이 책을 읽어봐야 안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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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산 사진가 정길웅 초대전
- 청호미술관 전시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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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
- 지리산자락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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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산 사진가 정길웅 초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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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주능선을 조망한 겨울 하루의 여정
- 구례의 표어 '자연으로 가는 길' 구례구역은 노고단으로 향하는 지리산 등산의 출발점이다. 구례구역에서 섬진강 두꺼비다리 2.5km 오산 사성암 오르내리는 길 7.5km 섬진강 대나무 숲길과 구례구역까지 8km 오마이뉴스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091228 겨울 어느 하루의 여정 중에 백미는 오산 정상에서 조망한 지리산 주능선의 장엄함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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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
- 류요선의 지리산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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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주능선을 조망한 겨울 하루의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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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과 지리산의 흙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이곳
- [백두대간 마루금인 도로 : 사진 이완우] 남원시의 운봉읍과 주천면이 만나는 지역은 백두대간이 형성한 개성적인 지형이다. 운봉읍과 주천면이 맞닿아 있는 2km는 거의 평지 도로인데, 이 평지 도로가 지리산 자락 운봉고원의 외륜(外輪)으로 엄연한 백두대간 산맥의 마루금이다. 이 도로에서 정령치 방향을 바라보고 설 때, 이 도로의 왼쪽은 낙동강 수계이고 오른쪽은 섬진강 수계로서 이 지역은 곡중분수계(谷中分水界)를 이룬다. 백두대간 봉우리인 이곳의 수정봉 아래에 노치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을 백두대간 마루금이 관통하고 있다. 이 마을 앞의 운봉고원 곡중분수계 지역을 일제 강점기에 조선총독부는 풍수적 관점에서 백두대간의 목 부분에 해당한다고 인식한 듯하다. 일제는 무게가 100kg 정도 되는 목돌을 6개 만들어 노치마을 앞의 평지에 깊숙이 묻었다. 일제가 이렇게하여 한반도의 백두대간에 흐르는 기맥을 누르려 했다는 이야기가 이 마을에 전해온다. 이곳 노치마을 회관 옆에는 이때 묻었던 목돌 중 5개를 파내어 보관하고 있다. 곡중분수계이며 백두대간 마루금인 2km 도로 구간의 중간 지점 가까이 낙동강 수계인 곳에 남원 백두대간 생태교육장이 있다. 이곳은 백두대간의 생태와 자연을 다양하게 체험할 수 있는 의미 있는 공간이다. 이곳 전시관은 한반도 지도 형상을 본떠서 지붕을 만들었다. [백두대간 노치마을 : 사진 이완우] 백두대간은 한반도에서 생명의 나무처럼 역할을 한다. 우리나라 어느 마을의 산줄기라도 백두대간의 13정맥에서 다시 뻗어 나온 작은 가지로 볼 수 있다. 백두대간으로 이해하는 한반도는 하나의 유기체로서 우리에게 다가온다. 한반도의 등줄기인 백두대간은 자연환경과 동식물이 어우러진 생태계의 보고이다. 백두대간은 동물들의 이동통로이자 서식처이며, 여러 강의 발원지로 생명이 시작되고 이어지는 중심지이다. [백두대간 생태교육장 : 사진 이완우] 구절초가 찬 이슬을 머금은 한로(10월 8일) 절기에 백두대간 생태교육장을 방문하였다. 전시관에 입장하면, 백두대간에 우뚝 솟은 산봉우리에서 담아온 흙을 넣은 130개의 진공관으로 한반도의 조형물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위쪽의 40개 진공관은 비어 있는데, 북한 지역의 산봉우리들이다. 남한 지역 산맥의 사이에는 그 지역의 강물을 담은 진공관이 있다. 이 130개 진공관의 한반도 조형물은 한반도의 산봉우리 모든 흙과 강의 물이 한군데에 모이기를 염원하고 있다. 이 한반도 조형물에서 북한 지역은 백두산의 흙만 진공관에 소중하게 담겨 있다. 2018년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 당시 남북의 두 정상이 함께 한 기념식수 행사에 사용된 백두산 흙이라고 한다. 남원 백두대간 생태교육장은 백두대간의 시작과 끝, 백두산과 지리산의 흙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전국 최초의 곳이다. [ 한반도의 산흙과 강물 진공관 지도 조형물 : 사진 이완우] 숲은 이산화탄소의 흡수와 산소의 배출로 지구의 허파 역할을 한다. 세상의 균형을 유지하는 숲이 사라지고 있어 기후위기가 심화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숲과 공존하는 어울림은 절실하다. 우리가 행성 지구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 자연은 더 잘 알고 있다. 우리가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면 그 자연이 전하고 있는 신호와 메시지를 인식할 수 있다. 이곳 생태교육장 전시관에는 지리산 생태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동식물을 모형으로 실감 나게 연출하였다. 용모도 귀엽고 털도 아름다운 족제빗과의 담비는 자기보다 몸집이 큰 동물을 사냥할 정도로 용맹한데 멸종위기 야생동물 2급이다. 지리산 왕등재 습지는 참갈겨니, 돌고기와 쉬리가 물속을 헤엄치고 수달과 여우가 어슬렁거리며 생명력 넘치는 자연 생태계이다. 둥치 큰 은사시나무 아래 백두산 호랑이가 포효하려는 기상이다. 참매가 낮의 숲을 지배한다면 올빼미는 밤의 숲을 지배한다. 은사시나무 가지에는 올빼미과 여름 철새인 소쩍새가 앉아 있는데 개성 있는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 숲의 나무 모형 : 사진 이완우] 이곳 전시관은 백두대간의 생태 자연을 소개하면서 자연스럽게 백두대간의 환경 훼손과 기후위기의 심각성에 대한 경보로 주제를 확대한다. 백두대간은 과도한 개발과 관광이나 등산으로 멍들고 식생이 훼손되어 동식물들이 생명의 터전을 잃어가고 있다. 대규모로 지형이 변형되면서 백두대간의 단절까지 초래하기도 하며, 등산로 따라 주변 식물이 말라 죽고 등산로의 노면 침식과 토사 유출이 발생하여 동식물의 서식지가 파괴되어 종 다양성이 감소하고 있다. 일상화된 전 세계적인 폭염과 산불, 최악의 가뭄, 대규모 홍수는 기후위기를 드러내는 현상들이다. 이제는 우리가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을 인정해야 할 때이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효과적인 해결책은 숲 복원이다. 숲은 인간의 활동으로 배출되는 탄소의 3분의 2를 포획할 수 있다. 기후위기와 숲을 중심으로 하는 생태계의 파괴는 악순환의 연결고리를 계속 되풀이하고 있다.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기온이 상승하면서 숲의 나무가 폭염과 가뭄의 공격에 시달리며 내성을 잃어가고 있다. 멸종 위기에 직면한 수많은 동식물을 살려내는 것이 결국 우리 자신을 구하는 일이다. [지리산 왕등재 습지의 물고기 모형 : 사진 이완우] 이곳 전시관에서는 전 지구적인 기후위기의 경보를 게시물로써 잘 알려주고 있다. 여우가 새의 알을 물고 가서 겨울을 위해 저장하는 모습을 보면 동물의 생존을 위한 적응 변화가 처절하기까지 하다. 빙하가 녹아내리고, 동식물의 서식지가 변화하고 있다. 꼬리표가 달린 동물과 조류가 야생에서 발견되니 생물종이 감소하고 있는 반증이다. 고온 건조한 바람 등 기상 여건이 심상치 않아 재앙적인 폭염이 반복되며 심지어 겨우내 꺼지지 않는 산불이 발생하고 있다. 이곳 전시관의 포토 아크(photo ark)에는 생명의 방주를 타고 있는 동식물의 사진을 게시하고 있다. 창세기의 신화에서는 지구를 휩쓴 대홍수에 노아의 방주에 의지해 많은 생명이 멸종의 위기를 모면하였다. 현재 전 지구적인 기후위기에서 생명의 대멸종이 발생하고 있다. 그러한 지구 자체가 또한 생명의 멸종 위기를 모면하고 보호받을 수밖에 없는 생명의 방주가 되어 있는 역설적 상황이다. [숲속의 소쩍새와 올빼미 모형 : 사진 이완우] 인간의 역사 1만 년 동안에 지구상에 있는 산림의 3분의 1일이 사라졌는데, 지난 백 년 동안에 사라진 면적이 그중 절반에 달한다고 한다. 숲이 주는 혜택은 식량과 목재의 획득, 탄소 저장 등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숲을 찾으면 산림욕으로 정신적 신체적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으며, 숲과 나무뿐 아니라 우리의 삶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얻을 수도 있다. 이곳 생태교육장에서 산림청에서 제작한 25쪽 분량의 백두대간 생태지도를 홍보물로 받았다. 이 생태지도는 지리산 천왕봉에서 설악산 향로봉까지 10개 구간별로 동물, 식물, 식생, 대표 수종, 대표 동물과 대표 식물 등의 서식 위치를 지도에 표기하고 사진을 첨부한 책자였다. 백두대간 생태교육장과 전시관에서 우리가 지구와 공존하는 노둣돌은 숲과 나무임을 확인하였다. [백두대간 은사시나무와 호랑이 모형 : 사진 이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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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
- 류요선의 지리산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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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과 지리산의 흙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이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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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초 인류
- 나 같은 나이에도 나 스스로 스마트폰 중독이라 여기고 있으니 이삼십대 젊은 친구들과 스마트폰의 친밀 관계는 말 할 필요도 없다. 스마트폰 안에는 나의 모든 것이 들어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 같이 애들이 멀리 사는 경우에는 더 그렇다. 폰을 들여다 봐야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고 얼굴을 볼 수 있고 손주의 움직이며 노는 모습을 옆에서 보는 듯 볼 수 있다. 누구에게 돈을 보낼 때도 돈이 들어왔나 확인 할 때도 그것을 봐야한다. 잊어 먹을까 메모도 거기에 녹음도 거기에 뭘 몰라 물어 볼 때도 거기에 한다. 노래를 들을 때도 영상을 볼 때도 그것을 찾는다. 그것이 손에서 떨어지면 금단 증상이 온다. 어딨지? 바로 옆에 놓고 가슴이 철렁! 큰일 난 듯 두리번댄다. 사진을 찍고 올리는 일이 이것을 통해야 쉬우니 일단 이것으로 사진을 올리고 컴터에서 글을 쓰던 뭘하던 한다. 내가 아는 모든 사람이 그 안에 있고 내가 모르는 모든 것을 그것은 알고 있다. 외울 필요가 없으니 그것을 보고 있다 머리를 들면 바로 까먹는다. 지금 찾고 조금있다 찾고 내일 또 찾는다. 한 집에 살면서도 때론 문자가 더 편하다. 사진까지 같이 보내며 요런거라고 똑 부러지게 부탁한다. 내가 아는 사람은 물론 모르는 사람의 일상까지 읽으며 나 지금 뭐하지? 하며 스스로 끔찍스러워한다. 그리고 결심한다. 다시는 너와 가까이 하지 않겠다고! 그러나 마치 고기가 어항 밖으로 튀어나와 발버둥치듯 손을 덜덜 떨며 그것을 찾는다. 증상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다 비슷한 병을 앓고 있을 것이라 짐작한다. 300쪽 가까이 전문가의 이야기를 듣고 실험을 통하지 않아도 이미 다 알고 있다. 근데 왜 뭐하러 읽고 난리야. 뭐 좋은 소리라도 있을까해서? 그 병이 확실한가 오진은 아닐까 확인해 보려고? 암튼 나는 뭘 몰라서 못하기 보다 삼일을 넘기지 못해서 못한다. 이 중독 증상이 병이라면 고쳐야겠지만 미리 단언한다. 고치지 못할 거라고 아니 안 고칠거라고! 그러나 정말 꼭 필요할 때만 쓰고 싶다고! 꼭 필요할 때만 쓰는거 아니였나? 그럴때가 많을 뿐이쥥 헤헤. 20분이 지나면 이미 우리는 공부한 것의 60퍼센트만을 기억할 수 있고, 1시간이 지나면 절반이 채 안 되며, 하루가 지나면 단지 3분의 1만 기억할 수 있다. 한달이 지나면 뇌 속에는 정보의 15페센트 밖에 남지 않는다. (헤르만 에빙하우스) p15 오늘날 지구상의 이동 전화 가입자 수는 79억명이다.(2019). 전 셰계 인구는 76억 명이니 사람보다 사용중인 심카드가 더 많은 셈이다. 매년 아이들보다 더 많은 심 카드가 탄생한다는 주장은 내게 적지 않은 우려를 불러일으킨다.((생략) 자랑할 만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탈리아는 한국(삼성의 본국)과 홍콩에 이어 인구 대비 모바일 기기 수가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은 나라다. (생략) 지금 이 순간, 지구상에 집에 화장실이 있는 사람보다 주머니에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더 많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놀랍기 그지없다. 유엔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 중 3분의 1에 해당하는 약 24억 명의 사람들만 화장실을 소유하고 있으며, 약 10억 명의 사람들은 야외에서 용변을 해결한다. p41 오늘날 평균적인 사용자가 아이푠을 잠금 해제하고 사용하는 횟수가 하루에 약 80회, 1년에 거의 3만회(지금은 이미 그 이상일 것이다)에 이른다는 애플의 데이터나 하루에 스마트폰을 만지는 횟수만 해도 2,617회에 이른다는 또 다른 연구의 결과는 더 이상 놀랍지 않다. 웹 전문가 니르 이얄은 <훅>에서 스마트폰 소유자의 79퍼센트가 매일 아침, 잠에서 깬 후 15분 이내에 기기를 확인한다는 자료를 내놓았는데, 내가 보기에 이는 사실과 다른 것 같다. 실제로는 그보다 더 짧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내 경우에 는 잠이 완전히 깨기도 전에 숨 쉬는 것처럼 자동적으로 침대 옆 협탁에 놓아둔 스마트폰을 집어들 뿐만 아니라 어둠 속에서도 문자를 찍고, 눈을 제대로 뜨지 않고도 페이스북 앱을 열 수 있다. 게다가 전화나 메시지가 온 것이 없는데도 스마트폰이 주머니 속에서 진동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것은 환각의 한 형태로 10명 중 9명에게 일어나며 심지어 '팬텀진동증후군'이라는 학술명까지 가지고 있다. 팔다리를 잃은 사람이 뇌의 잘못된 재조정으로 인해 여전히 팔다리가 있다고 느끼는 현상,마치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사지의 말단 신경으로부터 계속해서 자극과 신호를 받는 것처럼 느끼는 현상인 '환각지phantom limb'에서 이름을 따왔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놀랍다. 이것은 스마트폰이 어느 정도로 우리의 일부가 되어버렸는지를 보여준다. (생략) "스마트폰 진동처럼 작고 빈번한 세포의 경련인 진동들은 감지되고 서로 교루합니다. 이를 설명하는 데는 두가지 이론이 있습니다. 하나는 기술이 우리의 두뇌를 변화시키고 있다는 주장이고 다른 하나는 단순히 우리가 불안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메일과 메시지에 답장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우리를 초조하고 과민한 상태로 만든다는 것이죠."p46 8초는 오늘날 우리가 평소에 관심을 기울이는 평균 시간이다. 기사를 읽을 때, 음악을 들을 때, 영화를 볼 때,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때, 이 시간이 지나면 우리는 집중력을 잃는다. 8초! 금붕어보다 짧은 시간이다. 단 8초의 집중력으로 인해 우리는 오해와 소통 불가능, 고독 그리고 침묵의 형을 선고받았다.p66 역사상 어느 시점에서 우리는 산만함을 '산만함'이라 부르기를 그만두었다. 이 말의 근저에 깔려 있던 모든 부정적 의미와 함께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멀티태스킹'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컴푸터의 기능에서 차용한 용어다. (생략) 안타깝게도 실제로 컴퓨터는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할 수 없다. (생략) " 완전히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몸짓이 아닌 이상, 인간은 동시에 두 가지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실제로 우리가 하는 것은 전환입니다. 굉장히 빠르게 앞뒤로 왔다갔다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은 매 순간 우리가 주의를 다시 집중시킨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하루 종일 이 업무 전환이 쌓이면 스트레스가 됩니다. 그리고 스트레스는 집중력과 두뇌에 막대한 대가를 치르게 합니다. 집중력이 낮아지는 것을 디대로 방치해서는 안 됩니다." 스마트폰은 그 물리적 존재만으로도 인지 능력을 저하시킬 수 있다. 사용하지 않고 주변에 두기만 해도 우리의 주의력은 분산된다.p91 인간의 기능을 기계가 대신할 때마다 우리의 삶에서 그리고 뇌에서 어떤 능력이 제거되는 것이다.p132 화면의 LED가 청색광을 방출하기 때문입니다. 뇌는 이것을 날이 밝은 하늘의 푸른빛으로 알고 잠이 깰 때를 알리는 신호라고 해석하는 겁니다. 바로 이것이 디지털 기기가 뇌의 기억 능력에 미치는 첫 번째 직접적인 영향입니다."p154 2017년에 노벨 의학상은 일주기 리듬(대략 하루 24시간을 기준으로 하는)을 제어하는 분자 매커니즘을 발견한 공로로 세 명의 연구자에게 수여되었다. 태양광뿐만 아니라 스마트폰에서 방출되는 청색광과 같은 단파장에 노출되면 우리의 신체는 모든 관점에서 '활성화'되어 반응한다. 반대로 양초의 빛과 같은 붉은 빛의 긴 파장에 노출되면 긴장을 풀고 휴식을 취하기 위해 잠이 들려는 성향이 있다. 24시간 주기의 리듬이 깨지면 당뇨병이나 비만, 우울증, 심부전, 천식과 같은 심각한 질병의 발병 위험이 높아진다. 특히 어두운 방에서 잠들기 전에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것은 정말 잘못된 행동이다. p155 죽었다 다시 태어나는 것 정도의 획기적인 전환이 일어나지 않는 한, '좋아요'와 '엄지 척' 사회는 계속될 것이다. 웹의 거인들에게 스스로를 개혁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빙산에서 타이타닉 호를 구하라고 요구하느느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p193 가끔은 무언가를 모른다는 것, 의심에 빠진다는 것이 참으로 위안이 되었는데, 이제 우리는 더 이상 그럴 수 없게 되었다. 단어들의 올바른 문자열을 입력하기만 하면 엄청난 양의 온라인 정보들 사이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p217 "독서는 정신의 학교입니다. 읽기 회로를 개발하면 점점 회로가 성장합니다. 깊이 읽을수록 생리학적으로 더 정교해집니다. 깊이 있는 독서는 수신하는 정보를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일고 있는 것과 생각하고 있는 것을 연결하기 위한 네트워크를 지속적으로 구축하기 때문이죠. 두뇌는 이러한 네트워크에 의해 말 그대로 장악되며, 신경학적 관점에서 이 모든 네트워크들이 모여 분석 능력을 구축합니다." 즉 깊이 있는 방식으로 더 많이 읽을스록 '정교한' 과정을 더 많이 강화하고, 읽은 내용이 기억 속에 더 많이 굳게 자리 잡을수록 더 깊이 생각하게 된다. 매이렁 울푸가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은 바로, '골똘히 생각하기think hard'였다.p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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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
- 사는이야기/책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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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초 인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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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으로 사는 일은 하나의 문제입니다
- ”인간으로 사는 일은 하나의 문제입니다“ 제목이 코믹하다. 부제는 '정치적 동물의 길'이다. ”사실 정치에 관심없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말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일단 뉴스보면 기분 나빠지고 욕 나오니 싫다. 모든 정치적인 것에서 멀어지고 싶다. 사실 별 관심도 없다. 그러나 가만 생각해보면 모든게 정치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사는게 정친데 정치가 싫다? 이 무슨 모순이고 비극인가? 그렇다면 정치가 재밌고 좋아지려면 어찌해야 하나? 뭐 내가 결론내는 건 언어도단이긴 하지만 최소한 내가 불행하지 않으려면 정치가 재밌어야 하겠지? 그런 일이 있을랑가는 몰겄지만 이런 재미있는 정치에세이는 어떤가! 이 책은 전문 정치학 책은 아니고 에세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1부 정치란 무엇인가? 로 부터 시작해 여러가지 정치 얘기를 한다. 쉽고도 재밌다. 또 영화 얘기도 많고 그림 얘기도 많다. 알고보면 이 모두가 정치라는 얘기다. 결국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고 정치 없이 인간은 없다. 뭐 그런 이야기? 당신을 위로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그 위로하는 좋은 말들처럼 평탄한 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 그의 인생 역시 어려움과 슬픔으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 당신의 인생보다 훨씬 더 뒤처져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 좋은 말들을 찾아낼 수조차 없었을 것이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중 P9 정치가 어디 있냐고? 어느 날 눈을 떠보니 이 세상에 태어나 있고, 태어난 바에야 올바르게 살고 싶고, 이것저것 따져보고 노력해보지만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없고, 다른 사람과 함께하려니 합의가 필요하고, 합의하려니 서로에 대해서 알아야 하고,합의했는데도 합의는 지켜지지 않고, 합의 이행을 위해 규제가 필요하고, 규제를 실천하려니 권력이 필요하고, 권력 남용을 막으려니 자유가 필요하고, 자유를 보장하려니 재산이 필요하고, 재산을 마련하니 빈부격차가 생기고, 빈부격차를 없애자니 자원이 필요하고, 개혁을 감행하자니 설득이 필요하고, 설득하자니 토론이 필요하고, 토론하자니 논리가 필요하고, 납득시키려니 수사학이 필요하고, 논리와 수사학을 익히려니 학교가 필요하고, 학교를 유지하려니 사람을 고용해야 하고, 일터의 사람은 노동을 해야 하고, 노동하다 죽지 않으려면 인간다운 환경이 필요하다. 이 모든 것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느닷없이 자연재해가 일어나거나 전염병이 돌거나 외국이 침략할 수도 있다. 공동의 삶을 위해 필요한 것은 많고 쉬운 일은 없다. 이 모든 것을 다 말하기가 너무 기니까, 싸잡아 간단히 정치라고 부른다. 정치는 서울에도 지방에도 국내에도 국외에도 거리에도 집 안에도 당신의 가느다란 모세혈관에도 있다. 체지방처럼 어디에나 있다, 정치라는 것은. P23-24 정치 공동체는 자연의 산물이다. 그리고 인간은 본성상 정치적 동물이다. 우연이 아니라 본성상 정치 공동체가 없어도 되는 존재는 인간 이상이거나 인간 이하다. -아리슽텔레스 "정치학" 중 p25 폴리스 시민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졌던 정치가 페리클레스는 다음과 같이 단호하게 말한다. "우리 아테네 사람들은 공적인 일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을 초탈한 사람이라고 존경하지 않고, 쓸모없는 인간으로 간주한다." p29 모든 권력을 싫어한다는 말은 모든 욕망을 무시한다는 말이며, 모든 욕망을 무시한다는 것은 삶을 혐오한다는 것이다. 권력은 권력만 없었으면 가능하지 않았을 여러 일을 가능하게 한다. 사람은 종종 목표를 지향하고, 그 목표는 권력의 향사를 통해 달성된다. 아무 것도 도모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 까. 체속을 초월하겨고 드는 선사도 해털을 도모한다. 마음의 고요를 얻기 위해서도 마음의 파도를 잠재우는 어떤 나직한 힘이 필요하다. 정말 아무것도 도모하지 않겠다면 어딘가 조용히 숨어서 자신의 멸종 소식을 기다려라.p53 근대 정치 이론의 초석을 놓은 토머스 홉스는 저서 "리바이어던"에서 그처럼 한갓 사적 인간이 정치적 존재로 변신하는 과정에 주목했다. 낱낱이 흩어져 있던 인간들이 어떻게 단일한 의지를 가진 권력체를 창출할 수 있는 것일까. 어떻게 정치적 존재로 변신하는 것일까? 그냥? 심심해서? 그렇지 않다. 그들은 죽지 못해서 변신하는 것이다. 변신하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으므로. "지속되는 두려움과 난폭한 죽음의 위협"으로 인해 인생이 고독하고, 열악하고, 고약하고ㅡ 잔인하고, 짧아질까 봐" 변신하는 것이다. 어찌해볼 도리가 없을 정더로 괴롭기 때문에 정치적 존재로 변신하는 것이다. 그 변신 덕분에 인간은 비로소 삶을 견딜 수 있게 된다. 투표는 인간이 정치적 인간으로 변신했던 그 위대한 상상을 되살리는 축제다.p109 다민족 국가를 다스리는 일의 어려움은 피터 반 더 보트의 1578년 작품에 잘 드러나 있다. 온갖 짐승들의 머리가 달려 있는 거대 괴물을 정치 및 종교 지도자들이 당혹스럽게 바라보고 잇다. 이 괴물은 다민족 제국의 여정을 시작하던 16세기 후반의 (오늘날)네덜란드를 상징한다. 그러나 다민족 국가가 반드시 통치의 어려움만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다. 잘만 소화하면 그것은 활력의 근원이 될 수 있다. 유럽 각국이 가톨릭이냐 프로테스탄트냐의 갈림길에서 탄압과 전쟁을 일삼고 있을 때, 네덜란드는 적극적으로 관용 정책을 택했다. 그에 따라 칼빈주의자뿐 아니라 가톨릭 루터교, 유대교, 재세레파 신자 등 타국에서라면 이교도로 낙인찍혀 핍박을 받았을 인재들이 네델란드에 몰려와 살게 되었다. 17세기 초 암스테르담 인구의 40퍼센트를 이민자가 차지할 정도였다. 다양해진 인구 구성을 장애물이 아니라 활력으로 승화시켰을 때, 네덜라드는 본격적인 번영을 구가하게 된다. 오늘날 많은 네덜란드 사람들은 자기 나라가 향유하고 표방해온 다양성과 자유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다. p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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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으로 사는 일은 하나의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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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봄(春/見), 루이네
- 지리산 봄(春/見), 루이네 강회진(시인, 독립연구자) 마음이 아픈 줄도 모르고 어른이 되어 앞으로 운이 좋아 80살 까지 산다고 쳤을 때 내게 남은 생은 살아온 날 보다 적다. 마음이 아픈 줄도 모르고 어른이 되었다. 무엇을 견디는지도 모른 채 인생이 지나고 있다. 나의 욕심으로 때론 너무 왔거나 지나갔거나 눈치 채지 못한 관계에 지치고 하지 않아도 될 일들까지 하느라 몸과 마음이 늘 고단했다.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살 수는 없을까? 아무것도 하지 않으나 진짜 나만을 위한 시간, 나를 위한 시간을 갖고 싶었다. 더 늦기 전에. 더 늦기 전에. 드디어 나는 짐을 싸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디로 가야하나. 오랫동안 지리산과 섬진강을 그리워했기에 구례, 하동을 꿈꾸었다. 언젠가 초여름 지리산 둘레길을 걸으며 보았던 산내의 다랭이논 일렁이는 초록 물결과 손에 잡힐 것 같던 흰 구름, 고즈넉한 실상사의 저녁 예불 모시는 풍경들이 자꾸만 나를 불렀다. 마음을 정하고 나니 모든 것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집을 구하기 어렵다는 산내에 빈 집이 나왔고 내놓은 아파트는 금방 입주자가 나타났다. 마치 오래 전부터 계획되어 있었던 일처럼. 2. 세 가지면 충분하다 사람들은 내게 왜 그 먼 곳으로 가느냐 물었다. 대체 어디에서부터 먼 곳이라는 말일까? 나에게는 가장 가까운 곳이 바로 이곳이라 말하지 못했다. 마당에서 듣는 하루 두 번 실상사 범종 소리와 수달이 살고 있다는 람천의 우렁찬 물소리,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천왕봉. 이곳으로 이사를 위한 이유로 이 세 가지면 충분했다. 게다가 이곳은 내게 완벽하게 낯선 곳. 이사를 하는 날 고속도로에 눈발이 날려 앞이 보이지 않았다. 운전기사는 “이사하는 날 눈이 오면 부자된다 안하요.”라며 애써 웃음을 보였다. 지리산 IC에 들어서는 순간 가슴이 쿵쿵 뛰었다. 저 멀리 펼쳐진 지리산 자락이, 마을이 온통 눈으로 환하게 빛났다. 지리산에 곁들어 사는 일은 지리산이 허락해야 한다던데 드디어 나도 지리산의 선택을 받았구나. 다정한 지인들은 문패를 만들어 보내주었고 마당에 심을 꽃나무와 다양한 꽃씨를 보내주거나 어여쁜 커튼을 보내 새로운 출발을 기꺼이 응원해 주었다. 이사 후 두 번의 큰 눈이 내렸다. 저 멀리 눈에 덮인 천왕봉은 감탄을 자아내기 충분했다. 실상사 저녁 범종 소리를 들으며 구들방 아궁이에 불을 넣었다. 가끔 불씨가 아까워 고구마를 구워 강아지와 나눠먹었다. 그렇게 산내의 첫 겨울이 고요히 흘러갔다. 3. 산내는 산내말로 살래 맘씨 좋은 이웃이 밭 귀퉁이를 무상으로 빌려주셨다. 또 다른 이웃은 슬며시 거름을 부려놓고 가셨다. 감자를 심고 두둑 가에는 옥수수도 심어야지. 밭을 일궈 고랑 네 개를 만들고 거름을 뿌렸다. 다음날 맞춤비가 내렸다. 나른한 햇살을 받으며 꽃씨를 담구고 씨감자 눈을 쪼개다보니 어느새 담장에 노란 개나리가 막 피어나는 춘분이 되었다. 밤마다 멀리 무논에서 개구리들이 정겹게 울어댔다. 어느 밤, 마당에 나가 올려다본 하늘, 선명하게 반짝이던 북두칠성이 말했다. 그래, 잘 찾아왔어. 너의 길. 이른 아침 단풍나무에 새가 날아와 한참을 앉았다 날아가는 흔하디흔한 그 풍경이 좋았다. 새들을 위한 모이를 뿌리고 수돗가 물을 갈아준다. 햇살이 길게 들어오는 이른 아침, 멀리 천왕봉을 게으르게 앉아 바라보는 그 시간을 놓칠까봐 아침 일찍 일어난다. 지리산에 와 매일 매일이 행복한 검은 개 루이를 데리고 산책을 나가면 이웃 어르신들이 묻는다. 어디사요? 놀러왔는가베? 아니요, 저 살래 살아요. 저 멀리 앞 산 노란 산수유 지면 대문 옆 감나무에도 반짝이는 새 잎 무성할 것이다. 마당에 정성껏 심은 모란이 피고 지는 깊은 봄이 흘러 옥수수를 따고 감자를 캐면 좋은 사람들 모아 잔치를 해야지. 지리산의 첫 봄, 살래의 첫 봄, 나의 첫 봄이 설렌다. -달궁수달래 / 김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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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봄(春/見), 루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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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교의 키즈의 생애 5편 "둘이 서로 좋아하나…?"
- 다시 봄이 되었다. 캠퍼스 안 호수에 심어진 버드나무에 새순이 나왔다. 한없이 늘어진 버드나무 가지가 봄바람에 머릿결처럼 흔들렸다. 호수에 비친 윤슬과 연두색 버드나무 가지가 눈이 부셨다. 수현은 2학년이 되었다. 신입생들이 들어왔다. 수현이 다니는 경제학과는 여학생이 많은 과는 아니었다. 한 학년에 50명인데 그중 10명 정도가 여학생이었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 만난 후배 중에 운동권이 될 만한 신입생들을 골라봤다. 수현이 나름 몇 명을 골라 이야기를 해봤지만,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세상이 바뀌었다. 관심이 없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만, 수현은 혼란스러웠다. 대학생이 되면 당연히 사회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 아닌가? 라고 수현은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 학생이 수현처럼 사회문제에 관심을 두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후배들과 이야기하면서 수현은 깨달았다. “나는 왜 모든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했을까?” 대학생이 되었으니,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져 보면 어떨까? 네. 사회문제요. 선배 제 문제도 해결 못 하는데 무슨 사회문제를 고민해요? “지금 제 앞길이 구만리에요" 취직도 해야 하고 학점 관리도 해야 하고요. 다른 일에 관심 가질 시간이 없어요. 수현이 바라보는 세상과 타인이 생각하는 세상은 다르다는 것을 신입생들과 이야기하면서 처절하게 깨달았다. 같은 것을 봐도 같은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수현은 이상하게 생각되었던 것이다. 강진도 서클에 신입회원들을 모집하고 있었다. 강진은 선배들에게 절대 후배들에게 학생운동을 한다는 이야기는 하지 말라고 했다. 그냥 편안한 선배 친절한 선배로 보여야 한다고 들었다. 그래서 후배들에게 밥과 차를 사주면서 호감을 쌓았다. 그리고 후배들과 친해지면 서클에 데려갔고 함께 저녁을 먹거나 술을 마셨다. 그렇게 지내던 후배들은 자연스럽게 강진이 있는 문학서클에 가입했다. 수현은 신입회원들에게 왜 학생운동을 해야 하는지 설득하려고 했지만, 귀담아듣는 후배들은 거의 없었다. 변혁, 혁명, 부조리, 노동 탄압, 독재, 농민들의 현실 이런 단어들은 낯설어했다. 유일하게 수현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후배는 지숙이었다. 지숙은 여수에서 올라온 후배였다 “선배 어디 가요?” 길을 걷는데 갑자기 지숙이 수현을 붙잡더니 물었다. 점심시간인데. 어디를 가겠냐? 식당에 가야지. 우리 오늘 특별한 음식을 먹어봐요? 우리 오늘 특별한… 너랑 나랑 그런 이야기를 할 만한 사이는 아닌 것 같은데…. 올해 신입생은 지숙은 평소에 수현과 친분이 있는 후배는 아니었다. 학기 초에 엠티에서 잠깐 이야기를 나눈 것이 전부였지만 다들 관심 없어 하던 수현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던 유일한 신입생이었다. 학생회관 가는 향하는 길에 두 줄로 심어진 벚꽃이 활짝 피었다. 수현과 지숙은 그 꽃길을 걸어 내려갔다. “ 그래 어디 가고 싶은데….“그냥 선배는 따라만 오세요. 그래, 특별하게 갈 곳도 없으니 함께 가보자.” 지숙은 학생 식당을 지나 더 멀리 가고 있었다. 수현이는 앞에 걸어가는 지숙이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우리 서클에 들어오려나…” “ 그냥 학생식당이나 가자. 멀리 가봐야 별것도 없는데…. “수현이 말했다. “선배 제가 뭐라고 그랬어요. 오늘 저랑 특별한 것을 먹어 보자고 했잖아요.” 지숙이 다시 딱 부러지게 말했다. “그래 알았다.” 수현은 할 수 없이 대답했다. 학생회관을 지나 조금 더 멀리 가니 멀리 교수 식당이 보였다. “너 저기 가자고 하는 거야?” “네…” “저기 뭐 특별한 것이라도 파니?” 솔직히 수현은 교수 식당엔 가본 적이 없다. 항상 돈이 모자란 수현에게 교수 식당이라는 말만 들어도 비쌀 것 같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말이 교수 식당이지 학생 식당보다 조금 더 비싼 가격에 좀 더 좋은 음식을 파는 학교 식당이라 학생이 가도 되는 식당이었다. “ 거기 가면 뭘 파는데… 가보면 알아요. 그래 알았다. 알았어…” 교수 식당 앞엔 분홍빛 꽃잔디가 가득 피어 있었다. 4월의 따스한 봄 햇살에 이제 갓 20살이 된 지숙의 볼이 분홍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지숙이가 저렇게 예쁜 아이였나 수현은 지숙을 얼굴은 멀뚱하게 쳐다봤다. “선배…. 어…. 어…. “제 얼굴에 뭐라도 묻었어요!” “뭐 그렇게 민망하게 보고 있어요?” “아. 미안…. 잠깐. 딴생각을 좀 하느라고.” ”메뉴는 제가 이미 골랐어요.“ “어 그래…” “뭔 데…” “청어요!” “ 청어…” “물고기 청어 말이야?” “네. 저는 청어구이를 좋아하거든요.” 지숙이 이야기했다. 여기 식당에서 매주 이날만 청어를 구워 주더라고요. “ 아. 그래서 근데 왜 나랑…” “오늘 여기를 특별하게 온 거야…” “ 선배 기억 안 나요?” “무슨 기억…” “그때 엠티 때 제가 선배에게 이야기했잖아요.” 지숙은 대천 바다로 엠티를 갔을 때 수현과 함께 걷던 시간이 떠올랐다. 수현 선배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몰랐지만, 함께 걷는 것이 지숙은 좋았다. 수현이 민중가요라고 불러주던 노래도 좋았다. “언제라도 힘들고 지쳤을 때 내게 전화하라고 물끄러미 바라보다 나는 눈시울이 붉어지고 고맙다는 말 그 말 한마디 다 못하고 돌아섰네 나는 그저 나의 아픔만을 생각하며 살았는데 그런 입으로 나는 늘 동지라 말했는데 오늘 난 편지를 써야겠어 전화 카드도 사야겠어 그리고 네게 전화를 해야지 줄 것이 있노라고” -전화카드한장- 지숙은 수현이 불러준 노래를 잊지 않고 있었다. 그날 밤 불어오던 저녁 바람과 바다냄새 그리고 파도 소리 모든 것이 지숙은 잊고 싶지 않았다. “무슨 이야기? 제가 청어구이를 좋아한다고요.” “그랬었나....” 수현은 기억나지 않았지만 억지로 기억해 보니 그랬던 것 같기도 했다. 엠티로 갔던 대천 바닷가에서 잠시 걸었던 기억이 났다. 그때 지숙이 자기는 푸른 바다를 닮은 청어를 좋아한다고 했었다. “ 그래…. 기억난다.” “ 너. 청어를 좋아한다고 했었지?” “맞아…” “근데 바다를 좋아하는 거야? “ “아니면 청어를 좋아하는 거야?” “선배 그만 묻고 청어를 드시는 것이 어때요?” 지숙은 어느새 청어를 먹기 좋게 살만 발라 놓았다. 야….너 이렇게까지 안 해도 된다. 네가 꼭 내 색시라도 되는 것 같잖아. 수현은 이렇게 이야기하고 깜짝 놀랐다. ”색시가 뭐예요. 여자 친구도 아니고….“” 아…. 미안“ 수현은 말을 얼버무렸다. ”그냥 제가 해주고 싶어서 그래요. 그래 알았다.“ 수현과 지숙은 이제 막 벚꽃이 피기 시작한 캠퍼스를 바라보며 청어를 먹었다. 사실 수현은 청어를 처음 먹어봤다. 먹어본 등 푸른 생선은 고등어가 다였다. 수현의 엄마는 장에 가면 항상 고등어를 사 왔다. 고등어를 김치에 넣어 끓여주거나 무와 조려주면 그렇게 맛이 좋을 수가 없었다. 수현의 아버지 석태도 고등어를 좋아했다. 청어를 보자 엄마와 아빠가 떠올랐다. 청어 구이의 맛은 나쁘지 않았다. 아니 맛은 중요하지 않았다. 지숙이랑 앉아 청어를 먹는 시간이 좋다고 수현은 생각했다. “선배..”“왜..”“저 다음에 선배랑 다시 청어 먹으러 와도 되나요?” “어.. 그래 청어 맛이 좋은데… “ 지숙과 수현은 청어를 먹고, 다시 봄이 가득한 교정을 걸었다. 교정은 새로운 신입생들로 활기가 넘쳤다. 벚꽃잎이 바람에 흔들려 속절없이 떨어지고 있었다. 꽃잎은 지숙의 머리와 어깨에도 떨어졌다. 수현은 지숙의 머리에 떨어진 벚꽃 잎을 손으로 떼어내며 수현에게 건넸다. “ 꽃이 널 좋아하나 보다?” “네.!”“ 선배 그런 달콤한 말을 자꾸 하시면 제가 좋아하는 수가 있어요.” 지숙이 하얀 잇몸을 드러내며 환하게 웃었다. 지숙과 수현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학생회실로 걸어갔다. 나경은 수현과 지숙이 함께 걸어오는 것을 봤다.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밀려왔다. 왜 그러지, 나경은 수현과 지숙의 모습을 보는 순간부터 기분이 이상했다. 떨어지는 벚꽃들을 보며 나경은 생각했다. 둘이 서로 좋아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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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교의 키즈의 생애 5편 "둘이 서로 좋아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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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녘엔 갑(甲)이 살지만 숲엔 정령이 산다
- 들녘엔 갑(甲)이 살지만 숲엔 정령이 산다 안철환(전통농업연구소 대표) 한 동안 귀농하려는 분들께 가급적 들녘보다는 숲으로 귀농하시라 했습니다. 왜냐고 물으면 농반진반으로 했던 말이지요. 인류 역사상 인간들이 꿈꾸던 유토피아는 거의 숲에 있다는 걸 뒤늦게 알았어요. 들녘의 숲이 아니라 야트막한 동산 속 숲 말이죠. 에덴동산이 그렇고 무릉도원, 샹그리라가 그렇습니다. 미국의 철학자이자 수필가로 유명한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월든(Walden, or Life in the Woods)이란 책에서 저자가 그리는 곳도 숲 속이고, 하다못해 웰컴투 동막골이란 영화에서 그리는 이상향 마을도 산 숲속에 있었습니다. 유토피아까지는 아니라도 속세를 떠나 인간다운 삶을 누리는 공간들 또한 거의 들녘보다는 숲 속 전원이었습니다. 조선 시대 낙향한 유학자가 쓴 대표적인 농사 책 “산림경제(山林經濟)”나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 책 제목에서 그리는 곳도 들녘이 아닌 숲이었습니다. 요즘 인기있는 TV 프로그램으로 “나는 자연인이다”도 대부분 산의 숲속으로 들어간 사람의 얘기인 것을 보면 숲 속의 삶은 인류 모두의 로망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마도 인류의 조상이 숲 속에서 살다 내려와 원초적 고향인 숲으로 돌아가고픈 지향이 유전자에 새겨져 있어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런 추상적인 얘기보다는 숲에는 흙이 살아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럼 왜 숲엔 흙이 살아있다는 걸까요? 그럼 숲이 아닌 곳의 흙은 살아있지 않다는 걸까요? 저는 살아있는 흙과 비옥한 흙을 구별하고자 합니다. 아마 비옥한 흙으로 치자면 당연히 들녘의 흙일겁니다. 특히 삼각주(델타)의 흙 곧 충적토가 그렇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나일강 삼각주, 유프라테스, 티그리스 강의 메소포타미아 유역, 인더스 강 유역, 황하 화북지방의 토양이 대표적이죠. 이른바 4대강 문명 발원지입니다. 그 외에도 인도차아나 반도의 메콩강, 미 서부평원의 미시시피강, 남미의 젓줄 아마존강이 대표적입니다. 이런 거대 문명을 일군 강 주변의 충적토양은 강 상류지역의 숲에서 영양물질들이 흘러내려와 강의 범람으로 생긴 땅들입니다. 그러니까 강 주변 비옥한 흙도 따지고 보면 숲 속 상류에서 흘러온 것입니다. 그럼 무슨 근거로 숲 속의 흙은 살아있고 강 주변 들녘의 흙은 그렇지 않다는 걸까요? 흙이 살아있으려면 하늘과 소통해야 합니다. 하늘과 소통하는 핵심은 앞 글에서 말한 바람이고 그로 인해 물과 불이 소통을 합니다. 바람이 세게 불면 물과 불은 소통하지 않고 싸우기만 합니다. 태풍이 불어 물이 불을 이기면 수재가 나고 건조한 바람이 불어 불이 물을 이기면 화재가 납니다. 그러나 흙을 기반으로 하면 물과 불은 소통합니다. 물과 불이 소통한다고 하니 그 말도 좀 추상적으로 들립니다. 살아있는 흙의 구조를 살펴보면 바위에서 부서져 나온 흙 알갱이 고상(固相)이 반을 구성하고 그 중 반의 반을 물이 액상(液相)을 이루며 또 그 만큼의 공기가 기상(氣相)을 차지하고 있는데 그 외에 5% 이하로 아주 일부인 유기물이 존재합니다. 이런 흙을 떼알의 흙이라고 하고 입단화된 흙이라고도 합니다. 떼알이란 낱알(홑알)의 흙들이 뭉글뭉글 뭉쳐진 흙으로 특징은 틈새(공극)가 많다는 겁니다. 이 틈새가 살아있는 흙의 본 모습이고 이 틈새를 유지해 주는 게 흙 알갱이 표면에 코팅되어 있는 유기물입니다. 여기서 액상은 물이고 기상은 하늘에서 바람이 흙에 스며든 따뜻한 불입니다. 그리고 이 물과 불이 흙에서 만나 소통한 결과가 바로 유기물입니다. 그런데 이런 흙이 숲에만 있는 건 아니죠. 숲이든 들녘이든 농경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생명수의 기원 그러나 숲에는 남다른 게 있습니다. 바로 남다른 물과 불, 물과 바람, 물과 공기입니다. 우선 물을 살펴보겠습니다. 숲의 물은 어떨까요? 금방 눈치채셨겠지만 깨끗하죠. 왜 깨끗할까요? 그것은 산의 흙과 나무와 풀들이 뱉어낸 물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물이 깨끗한 것은 각종 미네랄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지하 암반수가 깨끗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깨끗한 지하수는 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위험한 경우가 많지요. 지하수엔 중금속이 많기 때문입니다. 무겁기 때문이죠. 화강암이 많은 우리나라 지하수엔 철분이 많고 우라늄도 적지 않습니다. 겉으론 맑고 깨끗해 보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지하수 말고 맑고 깨끗한 물로 증류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아시겠지만 이런 물들은 겉만 깨끗하지 실제로는 위험한 물입니다. 반면 미네랄이 풍부한 물이야말로 살아있고 그래서 진짜로 깨끗한 물입니다. 이런 물이 생명을 살리고 기르기 때문입니다. 물은 하늘의 비로 시작되기 때문에 물 또한 하늘과 땅의 소통의 산물입니다. 그 하늘의 물이 제일 먼저 내려 모이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설산입니다. 만년설이죠. 굳이 설산이 아니라도 하늘의 물은 산으로 내려와 생명수로 재탄생합니다. 산에는 바로 흙이 있고 나무가 있기 때문이죠. 그 생명수가 산에서 내려오다 용출하는 곳에 에덴동산이 있고 무릉도원이 있고 샹그리라 동막골이 있습니다. 아마 페루의 마추픽추도 그런 곳일 겁니다. 우리의 전통 마을도 그 생명수가 용출하는 곳에 만들어집니다. 다만 다른 점은 산 속은 아니고 산 밑이죠. 들녘과 숲의 경계에 위치합니다. 마을을 동네라 했죠. 동은 한자로 동(洞)입니다. 골짜기죠. 동네는 같은 물을 먹는 사람들인셈입니다. 앞에서 말한 4대강 문명도 다 이런 설산이나 골이 깊은 산에서 기원했습니다. 그러나 국가권력이라는 거대 문명은 강에서 발원했을지는 몰라도 인류의 근본 문명은 산에서 시작했다고 봅니다. 종자학자로 유명한 바빌로프는 강이 아닌 계곡과 산악지대에서 생물학적, 문화적 다양성의 기원을 찾았습니다. (게피 폴 나브한 지음, 강경이 옮김 "세상의 모든 음식은 어디에서 오는가?" 참조) 우리 민족의 고향이라는 백두산도 이름을 보면 원래 설산이었음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머리가 하얀 산, 바로 백두(白頭)산, 설산이란 뜻입니다. 백두산과 같은 산이 알프스의 몸블랑입니다. 몽(Mont)은 프랑스 말로 "산"이고, 블랑(Blanc)은 "하얀 색"이라는 뜻이니 바로 백두산인 것이죠. 화산이 터져 천지가 만들어졌지만 물의 기원은 변함이 없지요. 반면 4대강 유역은 비옥합니다. 산에서 물만 발원한 게 아니라 물이 각종 영양물질을 실어오기 때문입니다. 물과 영양이 풍부해 농사가 아주 잘 됩니다. 그렇지만 사람이 먹는 물로 볼 때는 깨끗한 물은 아닙니다. 강물은 농업용수로는 훌륭하나 식용수로는 적당지 않아 사람은 산의 골짜기 물을 직접 받아 먹어야 합니다. 골짜기 물이 있는 산으로 들어가던가, 그 물이 용출되는 곳, 산 밑을 찾아 우물을 파 먹든가 해야 합니다. 그곳과 멀리 떨어진 들녘에서 그 물을 먹으려면 수로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 수로로 유명한 게 바로 로마의 수도교지요. 예로부터 치수정책의 핵심은 농업용수와 식용수 확보에 달려있었습니다. 비옥한 강 유역에서 발달한 거대 문명은 로마처럼 식용수를 확보하기 위해 수도교를 설치해서 먼 산의 골짜기에 빨대를 꽂아 빨아 먹었습니다. 독점한 것이죠. 중국에선 제방을 쌓아 큰 강을 다스리고 운하를 파서 지천들을 연결해 마을 곳곳에 물을 공급했습니다. 그 일에 성공해 중국 최초의 왕조를 세운 사람이 바로 우(禹)왕입니다. 수시로 범람하는 황하의 본류를 다스리려면 제방 쌓아 막아서만 될 게 아니라 강의 지류들을 소통시켜 강물을 흐르게 함으로써 범람을 근본적으로 막는 전략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지류를 다스려 본류까지 다스렸다는 것은 농업용수와 식용수 확보 둘 다에 성공했다는 뜻입니다. 지류를 통하게 해서 식용수 확보도 원활해졌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임원경제지라는 백과사전을 집필한 조선 후기 유학자 서유구는 우왕보다 더 근본을 파악한 사람입니다. 본류보다 지류의 치수를 강조한 우왕의 정책을 겨우 홍수만 억제한 것으로 보고 더 근본은 밭 도랑과 밭 주변 물길 다스리는 일이라 했지요. 강의 본류가 대동맥이라면 밭 도랑은 모세혈관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밭 도랑을 잘 다스리면 밭 사이에 물을 고르게 대어 흙과 물이 잘 섞이면 구름과 안개가 일어나 비가 내리고 가뭄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고 물을 잘 저장하면 홍수도 예방할 수 있다고 했어요. 그래서 세상 모든 사람에게 밭을 일구게 하는 것은 그 사람들 모두 다 하천을 관리하게 하는 것과 같다 했으니 치수의 근본이 무엇인지 깨우쳐 주었다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말한 모세혈관 같은 밭 도랑과 물길이 바로 강, 하천 발원지라 할 산 중턱 숲인 것입니다. 보통 땅심(지력)이라 하면 거름 또는 유기물을 떠올립니다. 그런데 서유구 선생은 거름보다 중요한 게 있으니 바로 물이라 했습니다. 아무리 땅 속에 거름이 많다 해도 물이 없으면 전혀 쓸모가 없어요. 그래서 비옥한 흙이 아니라 살아있는 흙의 관건은 바로 물에 달려 있다는 겁니다. 글을 쓴 안철환 선생은 온순환협동조합, 전통농업연구소 대표이고 경기도 안산에서 ‘산림생태텃밭 먹거리숲 농장’을 운영한다. 남은 음식물과 똥오줌, 커피 찌꺼기를 받아 직접 거름 만들기를 실천하고 있으며, 우리 토종 종자와 전통 농업 살리기에 열중하고 있다. 25년 전, 처음으로 심은 배추 씨가 3일 만에 싹 트는 걸 보고 ‘씨 안에 누가 있었구나!’ 깨닫고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우리가 먹는 배추는 단순히 물질적인 먹을거리가 아니라 나와 별 차이 없는 생명이며, 그래서 먹는다는 것은 생명을 먹고, 생명과 소통하고, 생명과 하나 되는 일이라고 믿는다. 쓴 책으로 《시골똥 서울똥》(2009), 《24절기와 농부의 달력》(2011), 《호미 한자루 농법》(2016), 《토종농법의 시작》(2020)이 있고, 옮긴 책으로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2004)이 있다. 이 글은 전국도시농업시민협의회 홈페이지에도 연재되고 있다. 지난해 5월11일에 게재한 '흙에서 나고 흙에서 살다 흙으로 돌아가는 삶 -도시농부 안철환의 땅 이야기'에 이어 쓰여졌다. 앞으로 안철환 선생의 후속 글을 2주 간격으로 연재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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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녘엔 갑(甲)이 살지만 숲엔 정령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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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인간을 어떻게 변화 시키는가!
- 며칠 내내 비가 내렸다. 눈이 녹기 시작했다. 한 달 전만 해도 2미터 이상이나 쌓여 있던 눈이었다. 파괴된 마을은 처음에는 까맣게 그슬린 지붕만 보였다. 며칠 밤이 지나자 눈 밖으로 차츰차츰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눈이 녹기 시작했고 마침내 시체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오래된 시체들이었다. 처음으로 드러난 것은 1월에 죽은 시체들이었다. 몸뚱이는 꽁꽁 얼어붙어 있었고 얼굴은 잿빛 밀랍 같았다. 날씨가 온화해지자 시체에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냄새가 나자 마을 사람들은 눈으로 시체들을 덮어 버렸다. 그래버는 2년 동안 휴가를 가지 못했다. 휴가는 계속 보류되었다. 과연 이번에는 휴가를 갈 수 있을까 그래버는 총탄이 쏟아지는 참호에서 휴가를 생각했다. 그들은 연장을 가지고 와서 파묻힌 사내를 파냈다. 라메르스였다. 안경을 낀 빼빼 마른 병사였다. 1미터쯤 떨어진 바닥에서 안경도 발견되었는데, 깨지지 않고 그대로였다. 하지만 라메르스는 죽었다. 전쟁에서 죽음은 일상이 된다. 매일매일 적과 아군들이 죽어간다. 죽음이 일상화되어 있다면 삶의 무게도 가벼워지는 것인가? 무엇을 위해 전쟁을 하고 있는 것인가?. 피로 물들어간 대지에도 희망이라는 것이 있는 것일까? 그래버는 10시에 라에의 호출을 받았다. "자네의 휴가 통지서가 왔어" 러시아와 독일의 전쟁이었다. 독소 전쟁의 막바지였고 독일군은 점점 후퇴하고 있었다. 매일 전선이 독일이 있는 서쪽으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래버에게 휴가증이 발급된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것이었다. 차는 서쪽으로 달렸다. 한낮이었다. 태양은 잿빛 뒤로 흐릿하게 보였고, 눈은 희미하게 반짝거렸다. 그때 갑자기 가슴속에 뜨거운 그 무엇이 솟구쳐 올랐다. 비로소 탈출했다는 느낌, 죽음로부터 멀어져 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1미터 1미터 멀어질수록 1미터 1미터의 안전이 확보되었다. 다음 날 아침, 풍경이 달라져 있었다. 옅은 새벽안갯속으로 주변 풍경이 뚜렷하게 드러났다. 옅은 새벽안갯속으로 주변 풍경이 뚜렷하게 드러났다. 그래버는 이제 창가에 앉아 유리창에 얼굴을 기대고 있었다. 한 시간 후에 낯익은 풍경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달콤하고 당황스럽게 그리고 날카로운 기억들이 가득 찬 채로, 그것은 귀향 자체라기보다는 귀향에 대한 예감 같은 것이었다. 마침내 그래버는 자기 고향에 도착했다. 하지만 고향은 자신의 기억 속에 고향은 아니었다. 공습으로 인해 그래버의 집은 파괴되었다. 그래버는 죽음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했지만 고향 역시 죽음과 1미터도 떨어지지 못했다. 그래버가 살던 하케가 18번지는 폐허가 되어 있었다. 집은 오직 정면만이 남아 있었다. 그래버는 실종자 창구에 가서 부모님의 이름을 말했지만 없다는 답만 들었을 뿐이었다. 폐허가 된 집 정문에 쪽지를 남겨 두었다. 스무 살 정도 된 처녀가 마치 강물을 따라오기라도 한 듯 불빛을 받으며 그에게 다가왔다. 그 순간 둥근 눈썹, 그리고 어깨까지 자연스럽게 흘러내린 마호가니 색 머리칼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버의 그녀는 같은 김나지움을 다녔다. "세상에… 엘리자베스 군.. 넌 줄 몰랐어. 많이 변했군" "당신도 그래요" "무엇 때문에요? 나보다 더 명랑한 여자를 찾으면 돼요" "명랑한 여자 같은 것은 필요 없어" "그럼 뭐가 필요하죠?' 그는 갑자기 그녀의 머리카락이 그의 얼굴에 그리고 입술에 와닿는 것을 느꼈다. 그것을 재빨리 사라지는 바람과도 같았다. 그래버는 폴만 선생을 찾았다. "저는 지난 십 년 동안의 범죄에 제가 어느 정도 관계되어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그리고 제가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도 알아야 합니다." "자네가 지금 한 질문이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나" "그렇습니다." "요새는 그보다 더 의미 없는 질문을 해도 목이 달아나" "자네가 말하는 범죄는 전쟁을 말하는 건가?" "전쟁을 일으킨 온갖 것들을 말합니다. 거짓과 억압, 불의와 폭력, 그리고 전쟁과 그 전쟁을 하는 방법도 범죄에 포함됩니다. 노예 수용소, 집단 수용소, 민간인에 대한 대량학살 말입니다." "공범 관계라고 하지만 자네가 무엇을 알고 있나? 자네는 너무 어렸고 스스로 판단할 수 있기도 전제 거짓으로 중독되어 던 거네. 하지만 우리는 우리는 그것을 눈앞에 보고도 그대로 내버려 두었네! 나태한 마음, 무관심, 이기주의, 혹은 절망이라고 할 것인가? 그래버는 갑자기 폴만의 눈동자가 누구를 떠오르게 하는지 알았다. 그것은 그가 총살한 러시아인의 눈이었다. 그래버는 광장으로 나왔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보리수나무 옆을 지나 폐허와 파괴된 집 사이로 걸어갔다. 그는 자신이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지 알았다. 자기 내부의 모든 것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버는 엘리자베스에게 청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엘리자베스 우린 결혼해야 해" "결혼이라고? 왜죠? 그녀가 웃었다. "너무 허무하기 때문에. 우린 서로 안 지도 며칠 안 되었고, 며칠 후면 난 다시 전선으로 돌아가야 해. "결혼해도 고독은 줄어들지 않아요. 오히려 더 고독해질 거예요" 그녀가 말했다. 알폰스가 느긋한 표정으로 웃었다. "에른스트 그래버, 게슈타포가 관연하지 않는 건 하나도 없어! 자네가 유대인 아가씨나 공산당 아가씨와 결혼하지 않을 테니까 말이야? 어쨌거나 조회는 하게 될 거야. 규칙이니까! 그래버는 깜짝 놀랐다. 조사가 시작되면 엘리자베스의 아버지가 집단 수용소에 있다는 사실이 드러날 것이다. 오늘 아침 엘리자베스는 결혼 서류를 신청하기 위해 시청에 갔다. "제기랄 무슨 일을 해버린 거야" 그래버는 엘리자베스가 게슈타포의 조사로 아버지가 집단 수용소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녀가 노출될 것이 걱정되었다. 부모님 집 문패 밑에 쪽지가 꽂혀 있었다. 어머니의 편지였다. 그래버의 부모님은 살아 있었다. 아기라고.. 우리 형편에 만일 현재와 같은 사태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모두 아이를 낳지 않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야만스러운 사람들만 아이를 낳게 된다면 어찌 되겠어요? 그리게 된다면 이 세상에서 정의를 다시 실현할 수 있겠어요? 엘리자베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가 아기에 대해 한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갑자기 벽이 뚫린 듯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새로 생긴 구멍으로 정원이 보이는 것처럼 불확실하나마 한 조각 미래가 흔들거리면 보였다. "기차는 6시에 출발해" 그래버의 3주간의 휴가가 끝났다. 역에는 나오지 마, 여기서 떠나고 싶어. 역에서 울고 있는 지치고 땀을 흘리는 여자만 머릿속에 떠 올랐거든" "알겠어요" 하지만 역에서 기차가 떠날 때 멀리 엘리자베스가 보였다. 그녀의 표정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래버는 창문으로 고개를 내밀고 마지막일 수더 있는 그녀를 보기 위해 필사적으로 창문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래버는 다시 복귀했다. 자신의 군대는 120킬로미터 나 서쪽에 자리 잡고 있었다. 러시아인 포로 4명을 그래버가 담당하게 되었다. 전투가 이어졌다. 밤새 곡사포와 폭탄들이 떨어졌다. 포로들을 데리고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래버 저 러시아 놈들을 쏴버려 슈타인 브래너가 말했다. 그래버는 러시아 포로를 죽이려고 하는 슈타인 브래너에게 총을 쐈다. 그래버는 러시아 포로를 모두 풀어 주었다. "가! 어서 가란 말이야!!" 그는 러시아인인 보았다. 남자의 손에는 뜻밖에도 총이 들려 있었다. 남자는 총을 겨누었다. 그래버는 검의 총구를 바라봤다 . 불그레한 꽃망울과 이파리가 달린 식물이 눈앞에 보였다. 그 풀은 점점 커져갔다. 그리고 그의 눈이 감겼다. 그래버는 어린 나이에 입대했습니다. 그리고 아프리카 프랑스 러시아로 6년을 전쟁터에서 보냈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행위가 정당한 것인지 고민하는 병사였죠. 2년 만에 3주간의 휴가를 얻고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거기에서 함께 김나지움에 다니던 엘리자베스를 만나 사랑하고 결혼을 합니다. 자신을 가리키던 폴만 선생님을 만나 자신의 고민을 이야기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습니다, 유럽의 모두 전쟁터였고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죽음만이 기다리고 있던 전쟁터였죠, 끝없이 포탄이 떨어지는 전쟁터, 진흙 같은 참혹함이 세상을 잿빛과 핏빛으로 물드리는 참혹함만 존재하는 곳이었습니다. 그는 러시아 게릴라를 지키는 업무를 받습니다. 그래버는 양심에 따라 그들을 풀어주죠. 하지만 그의 선행은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갑니다. 엘리자베스와의 짧은 사랑 그리고 죽음, 전쟁은 그들을 이별과 죽음으로 몰아넣습니다. 대한민국은 절 못된 선택으로 인해 계엄령이라는 초유의 사태에 빠져 있습니다. 탄핵만 되면 술술 일일 풀린 것이고 다시 안정을 얻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악은 그렇게 순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끝없이 빈틈을 찾아 작은 구멍이라도 찾게 되면 뱀처럼 빠져나와 다시 독을 가득 품은 이빨을 내밀고 민주주의를 위협합니다. 그래버는 자신의 전쟁에서 했던 전투에서 했던 행위들 살인 총살 그리고 민간인 학살 이 모든 것이 명령에 따랐지만,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고민합니다.. 결국 그의 양심은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습니다. 하지만 죽는 순간 그는 편안함을 느낍니다. 이제 더 이상 누구를 죽이지 않아도 되고 더 이상 양심의 가책 때문에 괴롭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전쟁터에서는 단 하루의 평화도 너무나 소중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죽음의 공포로부터 멀어지니까요. 우리는 지금 계엄령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불안합니다. 우리의 평화는 흔들리는 나뭇잎처럼 흔들리고, 가을의 끝 낙엽처럼 위태롭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지키는 것은 민주주의를 지키려고 노력하는 시민들일 것입니다. 양심에 따라 행동하고 노력하는 사람들! 위대한 민주주의를 지키는 시민들의 행동일 것입니다. 사랑할 때와 죽을 때는 에리히 레마르크가 1945년에 쓴 대표적인 반전소설입니다. “개선문”과 “서부전선 이상 없다”등 쓴 전쟁문학의 대가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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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인간을 어떻게 변화 시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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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세란 과연 어떤 세상을 말하는가
- ‘난세(亂世)’란 과연 어떤 세상을 말하는가? 박소동 지난해 8월 15일 현암사에서 출간한 번역 『맹자(孟子)』의 머리말에 내가 어릴 때 들었던 ‘난세에는 반드시 맹자를 읽어라[亂世必讀孟子]’라는 말을 썼다. 그런데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난세라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인가?”라는 것이다. 나는 고전에 나타난 난세의 판단 기준으로 3가지를 제시하고 21세기를 사는 대한민국 집단지성들의 판단을 구한다. 첫째 : ‘상벌부중(賞罰不中)’이다. 잘한 사람에게는 상을 주고 잘못한 자에게는 벌을 주는 일이 정확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바른 통치의 치세이자 통치자의 기본 덕목이다. 그래야 선을 권장하고 악을 징계하는 ‘권선징악(勸善懲惡)’이 이루어진다. 그런데 상을 주는 것과 벌을 주는 것이 그 행위에 적중하지 않고 통치자의 자의적인 집행으로 법의 기능을 웃음거리로 만들거나 작은놈은 걸리고 큰놈은 통과하는 ‘거미줄 법’이 되면 국민은 법치를 불신하게 되고 통치자를 증오하게 된다. 난세의 길로 가는 조짐이자 상징이다. 둘째 : ‘현재불거(賢才不擧)’이다. 통치자는 혼자서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모든 조직이 동원되어 통치하는 것이다. 그러니 조직에 알맞은 인재를 등용해서 맡겨야 하는 일이 통치자의 중요한 임무이자 의무이기도 하다. 그런데 조직과 임무에 알맞은 인재가 아니라 사적인 친불친과 이해관계로 관리를 등용하면 그 조직이 무너지고 그로 인한 피해는 국민의 몫이 된다. 국민은 통치자를 불신하게 되고 원망하게 된다. 시간이 갈수록 점점 회복할 수 없는 ‘시스템 붕괴’로 이어져 국가 존립의 중요 기능인 ‘국내의 치안[內治]’은 물론이고 국방과 외교마저 위태롭게 된다. 국가의 존망을 좌우했던 지난날 모든 나라들의 역사가 이를 대변해 주는 지금의 교훈이다. 셋째 : ‘언로폐색(言路閉塞)’이다. 통치자에게는, 잘한다고 칭찬하는 말은 듣기에는 달콤하지만 올바른 판단을 하고 올바른 통치를 하는 데는 독이 된다. 엄밀하게 말하면 통치자를 망치는 말이다. 그래서 ‘말[言]’이라고 하지 않고, 잘못한 것을 지적하는 바른말을 ‘말’이라고 한다. 그러나 바른말은 듣기에는 거북하다. 바른말을 할 수 있고 수용하는 통로를 ‘언로(言路)’라고 한다. 전통 군주 시대에도 통치자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었고 법으로 보장하였다. 그래서 2중 3중으로 ‘언관제도(言官制度)’를 두어서 언제든지 통치자에게 바른말을 할 수 있도록 하였다. “말이 옳지 않으면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만이지 옳지 않다고 벌을 주면 바른말 하는 사람을 천리 밖에서 거절하는 것이고 그러면 군주의 주변에는 달콤한 말만 하는 아첨배 간신배만 가득할 것이니 눈멀고 귀먹은 군주가 어떻게 국민의 마음을 알아서 바른 정치를 하겠느냐?”라고 군주에게 언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대목이 『조선왕조실록』에 종종 등장하는 이유이다. 조선왕조 시대의 군주가 모두 현명한 것은 아니었지만 500년을 유지했던 것은 실로 언로의 활성화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언로가 시스템화한 덕에 어리석은 혼군(昏君)의 전횡을 극복한 사례가 많다. 『조선왕조실록』의 한 사례를 들어 보면 얼마나 언로가 중요한지를 알 수 있다. 한 선비의 상소문 중에 ‘당신은 허수아비 같은 군주다.’라는 비유를 하는 문장까지 있었다. 왕은 이 상소에 답하면서 ‘내게도 이렇게 말할 정도면 다른 일에야 얼마나 더 강직하겠는가. 가상하다.’라고 한다. 그런데 그 답 아래에 ‘사신왈(史臣曰)’로 시작하는 댓글이 달려 있다. ‘말은 가상하다고 하지만 불쾌한 기색이 역력하니 그 말이 받아들여지겠는가.’ 임금 앞에 앉아서 사실을 기록하는 사관이 현장의 분위기를 전한 것이다. 이렇듯 군주는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역사를 의식하며 하여야 하는 시스템이었던 것이다. 국민이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 못하는 정치가 가장 말기적인 난세의 현상이라는 『춘추』의 판단이 지금도 유효하다. 현실 정치를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생각하고 판단하는 21세기를 사는 우리 민주시민의 집단지성들은 과연 이 세 가지 판단 기준에 얼마나 동의하고 동감할지 자못 궁금하다. 글을 쓴 박소동 교수는 구례에서 태어났다. 난포蘭圃 서한봉徐漢奉 선생을 사사하였다. 민족문화추진회 국역실장 · 편찬실장 · 교무처장, 한국고전번역원 한학교수, 성균관대학교 한문고전번역 석박사 통합과정 겸임교수,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원 초빙교수, 한국고전번역원 이사를 역임했다. 현재 한국고전번역원 명예한학교수이며,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훈했다. 지난해 출간한 『맹자』 외 다수의 저서가 있다. 귀향 후 구례 호양학교를 터 삼아 고전에서 길어 올린 시대의 좌표를 가르치고 있다. 호양학교는 을사늑약 이후 구례 지역의 선각자들이 망국의 한을 안고 후학 양성을 위하여 1908년 광의면에 설립하였고 1920년 폐교되었으나 2006년에 복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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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세란 과연 어떤 세상을 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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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살린 풍경들
- 절제의 아름다움이 담긴 책 "나를 살린 풍경들"의 저자 김인호님을 지리산 자락에서 몇번 뵈었다. 지리산에 걸쳐 사는 사람들이 만드는 신문에 대해 논하는 자리, 지리산 봉우리를 향해 걸음하는 자리에서. 이런 분을 보면 지리산에 오래 산 사람들은 구도자나 시인이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사진 찍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한사람'을 생각한다. 그가 설 자리는 여긴데... 많은 역경을 이겨내고 두다리로 오르 내리며 가장 세밀하고 은밀하고 깊이있는 한순간을 포착한 사진과 이야기가 이 책에 있다. 그 이름을 들으면 마치 그 옛날 사랑하는 애인을 만나러 갈 때처럼 설레는 노고단, 정령치, 만복대, 바래봉...이 나온다. 눈 앞에서 가물 거리고 뇌리에서 자꾸 떠오르는 여리고 순수한 그러나 매혹적인 지리터리풀, 남바람꽃, 대흥란...을 보기위해 밤잠을 설치고 새벽을 가른 그 마음이 이 책에 있다. 수많은 장면중에 고르고 골랐을 하나의 장면 하나의 마음이 책갈피 갈피에 있다. 지리산 자락을 다녀보면 나같은 이에겐 눈에 드는 모든 장면이 다 하나의 작품이다. 아무 곳이나 사진기를 갖다대도 그냥 다 작품이 된다. 그러나 죽음에서 생명에 이르는 절제 된 풍경은 그냥 나오지 않는다. 같은 곳을 바라 본 사람은 알수 있다. 이 책을 보시고 또 지리산에 드시라. 생명의 산 지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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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살린 풍경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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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산 사진가 정길웅 초대전
- 청호미술관 전시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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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산 사진가 정길웅 초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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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눈박이 말똥가리를 기다리며
- ▲ 주로 탐조를 하는 월전리 제방에서 바라본 섬진강의 모습 2022년 1월 위장막에 들어가 물새를 찍고 있을 때였습니다. 앞에는 물, 등 뒤에는 풀숲이었는데 등 뒤에서 푸드덕 소리가 났습니다. 고개를 돌려보니 말똥가리 한 마리가 가까운 거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역시 위장을 하니까 가까이 오는구나!’ 하고 서브 카메라를 꺼내 촬영을 하였습니다. 찍을 만큼 찍고 다시 물새를 관찰하였고 관찰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사진을 편집하면서 아까 촬영했던 말똥가리를 편집하는데 한쪽 눈을 감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맹급류가 가끔 한쪽 눈을 감기도 하기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모든 사진이 감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상하다 싶어서 같은 장소에서 다른 날에 찍은 말똥가리 사진들을 살펴보았고 모두 한쪽 눈을 감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고 다쳐서 외눈박이가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 2022년 처음 관찰되었던 외눈박이 말똥가리 그날 이후로는 그 지역을 지날 때면 이 말똥가리가 잘 있는가 살펴보곤 합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겨울이 가고 봄이 오고 여름이 왔습니다. 말똥가리는 번식지로 날아갔고 다시 여름을 지나 가을이 오고 겨울이 왔습니다. 2023년 겨울, 외눈박이 말똥가리는 기억 속에서 잊혀졌습니다. 양 눈으로도 살아남기 어려운 야생에서 외눈박이로 살아남기란 어렵기 때문에 당연히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 2023년 다시 돌아온 외눈박이 말똥가리, 늘 이 나무에 앉아 있어 '말똥가리 나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겨울철새를 관찰하기 위해 섬진강 제방을 지나가는데 작년에 말똥가리가 자주 앉던 나무에 앉아 있는 말똥가리가 보였습니다. 대수롭지 않게 촬영하고 초점이 잘 맞았나 당겨보니 한쪽 눈을 감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아! 외눈박이 말똥가리가 다시 돌아온 것이었습니다. 놀라웠습니다.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냉혹한 야생에서 눈이 생명인 맹급류가 외눈박이로 살아남다니 놀랍고 반가웠습니다. 그렇게 그 지역을 지나갈 때면 외눈박이 말똥가리를 찾았고 특이점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매번 같은 나무에 앉는다는 것, 이야기를 들어보니 새들은 자신들이 선호하는 특정 나무, 장소가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말똥가리도 같은 나무에서 자주 관찰이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또 겨울이 지나 봄이 오고 여름이 왔고 말똥가리는 떠났습니다. 그렇게 가을이 오고 겨울이 온 2024년 11월 이제는 여행을 떠난 친구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외눈박이 말똥가리를 기다립니다. 11월 겨울철새를 관찰하기 위해 섬진강 제방을 지날 때면 외눈박이 말똥가리가 자주 앉아 있던 나무가 보입니다. 그런데 아직 찾아오진 않았습니다. 그래도 계속 기다립니다. 다른 말똥가리들은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하고 있고 겨울 철새들도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와야 하는데 걱정이 됩니다. 혹 무슨 사고가 난 것은 아닌지.... 오늘 섬진강 제방을 지나는데 하늘에서 ‘삐이~’ 말똥가리 소리가 들립니다. 누구일까요. 외눈박이 말똥가리가 돌아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글을 작성하던 중 외눈박이 말똥가리가 다시 돌아왔고 추가된 내용입니다.] 2024년 11월 말 외눈박이 말똥가리는 다시 섬진강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번에는 말똥가리 나무에 앉지는 않고 활동반경을 넓힌 것 같습니다. 그래도 가끔 작년에 봤던 장소에 날아오곤 합니다. 12월 27일 남원에서 회의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며 섬진강 제방을 지나는데 작년에 늘 앉아 있던 말똥가리 나무에 앉아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매우 건강해 보입니다. 남은 겨울도 건강하게 보내고 번식지로 떠나 다시 2025년 겨울 다시 만날 날을 기대하며 다사다난했던 2024년을 떠나보냅니다. 굿 바이 2024년! 2025년 새해에는 좋은 소식이 가득하길 기원합니다.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복 짓는 한 해 되세요. ▲ 2024년 11월 정지비행을 하면서 먹이를 찾고 있는 모습 ▲ 2024년 12월 27일 자주 앉아 있던 나무에 다시 앉았습니다. 지금은 그 모습이 많이 변했지만 여전히 이 장소를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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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눈박이 말똥가리를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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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주능선을 조망한 겨울 하루의 여정
- 구례의 표어 '자연으로 가는 길' 구례구역은 노고단으로 향하는 지리산 등산의 출발점이다. 구례구역에서 섬진강 두꺼비다리 2.5km 오산 사성암 오르내리는 길 7.5km 섬진강 대나무 숲길과 구례구역까지 8km 오마이뉴스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091228 겨울 어느 하루의 여정 중에 백미는 오산 정상에서 조망한 지리산 주능선의 장엄함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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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요선의 지리산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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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주능선을 조망한 겨울 하루의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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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방송국
- 지리산방송국 “여보, 노랑이 눈이 왜 이래?” 마당 어귀 가마솥 앞에 앉아 메주콩을 삶는 아내에게 큰소리로 외쳤다. 부지깽이로 불잉걸을 툭툭 치며 손바닥만 바라보던 아내는 그러나 내 큰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또 귀에 이어폰을 꽂은 모양이다. ‘쯧쯧’ 혀를 찼다. 바깥마당 길고양이 노랑이 눈에 안약 넣어줄 궁리를 하며 아내께로 다가가 어깨를 흔들었다. 화들짝 놀란 아내가 뒤로 나자빠지는 듯했다. “엇따야, 경기하겠네. 뭘 듣기에 그리 푹 빠졌어?” “아유, 좀 가만가만 말로 하지. 지금 소설 듣고 있거든.” 지난봄 유튜브 방송 가운데 책 읽어주는 방송이 있다는 말이 퍼뜩 떠올랐다. 그때부터 아내는 유튜브 방송에 빠져 살았다. 이른 아침 정치방송에서 시작된 아내의 유튜브 사냥은 저녁때까지 계속되었다. 처음엔 그런 아내가 못마땅했다. 흥미를 끌어 돈벌이하려는 유튜버가 대부분일 거라 믿었다. 거기 나오는 정보가 옳을 리가 있나. 허접한 몸짓과 익살스런 표정으로 관심 끌기에 혈안이 된 돈벌이광기의 도가니일 거란 생각이었다. 그러나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진실은 드러나고 진정은 느껴지기 마련이다. 몇몇 좋은 방송을 만나면서부터 나 또한 유튜브 채널의 중독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국민 여러분. 지금 국회로 나와 주십시오. 이 나라 민주주의를 지켜 주십시오.” 야당 정치지도자의 다급하고 처절한 목소리가 유튜브 방송을 타고 흘러나왔다. 대통령은 비상계엄을 선포했고 무장한 경찰과 군인이 국회를 막아섰다.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국민은 국회로 나갔고 이 나라 민주주의를 지켜냈다. 그 자리를 지켜낸 국민 모두가 기자였고 기록자였다. 밤새 텔레비전을 켜두고 있었지만 정작 눈과 귀는 손바닥 속에 든 유튜브 방송에 열려있었다. 명망 있는 독점언론 독점방송의 시대가 저무는 것을 느꼈다. 누구나 방송인이 되어 주관을 밝힐 수 있는 방송국이 내 손 안에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낮은 곳에서 느리게 살자’는 맹세를 하면서 지리산에 들어온 지 스무 해가 다 되었다. 그러나 세상은 내 삶을 그렇게 내버려두지 않았다. 괭이 하나에 의존했던 농사에 관리기를 더했고 농사는 늘었다. 자꾸 위를 향하는 숨 가빠지는 세월이었다. 내 삶만 그랬을까. 곳곳이 갈라지고 파이는 국토와 이리저리 떠밀리며 착취당하는 이웃들, 서식처를 잃고 쫓기는 가녀린 생명들, 이 문명은 우리들을 느리게 살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지리산 여기저기 함성은 끊임없이 들끓었다. 누구는 ‘케이블카반대’를 외쳤고, 어디서는 ‘골프장반대’를 외쳤다. 저 언덕엔 산악열차가 저 골짜기엔 양수발전소가 들어올 거라는 말이 들렸다. 이 광란의 문명은 삶터를 지키려는 우리들 저항의 돛을 꺾고 노를 부러트리기 일쑤였다. ‘여기 와보세요. 저 아름다운 숲을 보세요. 거기 깃들어 사는 무수한 생명들 순수무구한 눈빛을 봐주세요. 저들과 함께 살아가는 길을 열어주세요. 그 길을 여럿이 함께 따박따박 걸어주세요.’ 이런 말을 해주는 방송이 있으면 좋겠다. 구상나무 떡갈나무 사이를 오가는 하늘다람쥐의 비행과 연하능선 흐드러진 범꼬리 산오이풀 현란한 춤사위를 보여주는 방송이 있으면 좋겠다. 덕산장 인월장 옹기종기 모여 앉은 사람들 살아가는 이야기가 흐르는 방송이 있으면 좋겠다. 낮은 곳에서 느리게 살아 더 아름다운 사람의 모습을 전해주는 방송이 있으면 좋겠다. 유튜브 방송채널에 아내가 즐겨 만날 ‘지리산방송국’이 더해지면 좋겠다. 지리산의 노래와 시와 함성과 소곤거림이 세상천지에 메아리치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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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방송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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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참 먹는 시간, 그녀가 만드는 한 끼
- 반달곰을 사랑하는 1% 가게 유람기입니다. 반달곰1%는 지리산권 가게들(현재는 구례)이 자발적으로 진행하는 공존프로그램으로 반달곰1% 가게에 가면 반달가슴곰을 자연스럽게 만나고, 특별히 계획하지 않아도 반달가슴곰 보호활동에 참여하게 됩니다. 2021년 5개 가게로 시작한 반달곰1%는 2024년 현재 10개 가게로 늘어났습니다. ‘유랑인증서’를 통해 반달곰1% 가게에 들러 물품을 먹거나, 마시거나, 구입하여 모아진 1%의 기부금은 올무수거 활동, 무인센서카메라 구입 등 반달곰 보전활동을 위해 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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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참 먹는 시간, 그녀가 만드는 한 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