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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빛과 사진과 시, 그리고 지리산이 주는 것 - 이원규 시인 인터뷰 3부
- 3부에서는 무리한 순례로 얻은 병을 계기로 카메라를 들고 산으로 들어간 이원규 시인의 사진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독학으로 익힌 사진으로 15년 넘게 지리산의 야생화, 별과 은하수, 반딧불이를 기록해온 과정과 지리산학교가 만들어진 배경, 지속가능한 환경운동을 위한 '자연 분양' 아이디어, 기후위기 시대에 문학과 예술이 할 수 있는 일까지 담았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지리산을 찾는 많은 이들에게 지리산의 시인이 전하는 마지막 당부로 마무리합니다. 00:00 인트로 00:46 오체투지, 임진각까지 그리고 무너진 건강 04:36 카메라를 들고 산으로 - 김인호 작가와의 인연 06:17 지리산학교의 탄생 배경 07:44 독학으로 배운 사진, 야생화를 찍다 10:17 별과 은하수, 반딧불이를 기록하다 13:15 지속가능한 환경운동을 위한 제안 - 자연을 분양하다 17:06 지리산 국립공원, 주인의식으로 지키기 21:02 기후위기 시대, 문학과 예술은 어디로? 24:37 은하수와 별, 도시화로 잃어버린 것들 27:24 지리산문화예술학교 소개 31:35 지리산을 찾는 이들에게 전하는 당부 #이원규시인 #지리산사람들TV #지리산별빛 #지리산반딧불이 #지리산문화예술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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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빛과 사진과 시, 그리고 지리산이 주는 것 - 이원규 시인 인터뷰 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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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달곰1%가게유람기] 모두의 가게, 모두의 공간
- [반달곰1%가게유람기] 모두의 가게, 모두의 공간 봄에서 여름으로 계절이 바뀔 때 옷장을 정리했다. 아직 입을 수 있지만 손이 잘 가지 않아 따로 모아뒀던 옷들을 담아 악양에 있는 ‘모두의 가게’로 향했다. 내게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물건이 그 곳에서는 새 주인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모두의 가게’는 하동 악양에 자리한 자원순환 공간으로 품질에 이상이 없으나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다양한 물건을 기부받아 합리적인 가격으로 재판매하는 한편, 생활에 필요한 친환경 제품을 비닐포장 없이 판매하고 텃밭 농산물을 나누거나 크고 작은 소모임을 여는 곳이다. ‘모두의 가게’을 지키는 8명의 활동가 중 ‘진이’씨를 만나 가볍게 안부를 나누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모두의 가게’를 손님으로 오가며 궁금했던 것들이 많았다. 소비하지 않아도 되는 공간 수진 : ‘모두의 가게’가 생기고 운영되는 것을 보며 함께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했어요. 어떤 인연으로 모두의 가게를 함께 시작하게 됐어요? 진이 : 언제부터였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네요. ‘모두의 가게’를 시작한 지 3년이 됐는데 시작하기 몇 년 전부터 제로 웨이스트 모임을 같이 했어요. 생활에 필요한 것(세제, 밀랍랩 등)을 함께 만들기도 하고 책을 같이 읽기도 하면서 ‘아지트 같은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라고 얘기를 하곤 했었는데 이렇게 실제로 하게 될 줄은 몰랐죠. 목공방을 운영하던 자리에서 ‘모두의 가게’를 처음 시작하게 되었는데 악양면사무소 앞이라 이웃들이 오며가며 들르기 좋을 것 같기도 했고 뭔가 해보면 재밌겠다는 얘기를 나누다가 시작하게 되었어요. 이 공간을 어떻게 쓸지 고민하다가 제로웨이스트 모임을 계속 해왔으니 ‘자원을 순환할 수 있는 공간과 사람들이 자유롭게 모일 수 있는 공간을 만들면 좋겠다.’고 의견이 모였어요. 공부도 하고 놀기도 하는 공간으로요. 요즘은 어느 카페를 가든 소비를 해야 하는 구조잖아요. 소비하지 않고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수진 : 인테리어도 다 같이 한 거죠? 진이 : 맞아요. 8명이 함께 시작했어요. 그 중 시간이 되는 5명이 공간 지기를 하고 있어요. 함께 페인트칠도 하고 공방을 하던 친구가 남기고 간 가구를 활용하거나 각자 집에서 사용하지 않는 가구를 가져다놓았죠. 새로 산 것은 하나도 없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필요한 게 있으면 ‘모두의 가게’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에 올리면 누군가 가지고 있는 걸 나눠주기도 했어요. 수진 : 저도 채팅방에 들어갈 수 있어요? 진이 : 그럼요. ‘모두의 가게 악양’이라고 검색하면 나올 거예요. 100명을 채우는 게 목표였는데 벌써 110명이 넘었어요. 가게 소식도 전하지만 개인들이 ‘우리 집에 이런 게 있는데 나누고 싶다.’는 것도 많이 올리셔요. 농산물을 나누거나 판매하고요. “선풍기 필요해요.”라고 올리면 누군가 “저희 집에 있어요.” 해서 나눠주시기도 해요. 오픈 채팅방을 통해서 공유 경제라고 할까요? 그런 게 생각보다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는 것 같아요. (24년 3월에 개설 된 ‘모두의 가게’ 오픈 채팅방에 함께하는 참여자는 26년 8월 기준 114명이다.) 수진 : 제로웨이스트 동아리로 시작했다 하더라도 실제 공간을 운영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수익을 만들어야 공간 운영이 되니까요. 진이 : 그래서 고민이 되기도 해요. ‘소비하는 삶을 지양하고 있는 걸 나눠쓰자’는 취지에서 시작했는데 이 곳 물건이 저렴하니까 필요 없어 보이는데도 마구 사가는 분들이 간혹 계셔요. 그러면 ‘우리가 괜히 소비를 조장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고민이 들기도 해요. 필요한 게 아닌데 생각보다 싸고 괜찮은 물건이 있으면 갖고 싶어지잖아요. 그래서 공간 지기들은 물건을 사라고 부추기지 않아요. “필요 없으면 사지 마셔요.”라고 안내하고 있어요. 그런데 그건 뭐, 저희가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죠. 수진 : 고민이 될 것 같아요. 공간이 더 활성화 되면 좋겠지만 소비를 조장하고 싶지는 않기도 하고요. 진이 : 그러게요. 소비를 조장하고 싶지는 않지만 월세는 또 벌어야 되고. 그렇다면 이걸 어떻게 슬기롭게 해야 할까요? 한편으로는 ‘물건을 무조건 싸게 파는 게 좋은 것인가?’에 대한 논의도 몇 번 했었는데 지기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나뉘어요. ‘싸게 팔아서 필요한 사람이 쓸 수 있게 하는 게 좋다.’라는 의견이 있고, ‘그래도 물건의 가치를 어느 정도는 반영해서 가격을 책정하는 게 좋다.’라고 하는 의견도 있고요. 어떻게 생각해요? 수진 : 음... 값을 어느 정도 받는 게 좋을 것 같기도 하고.... 돈과 상관없이 필요한 사람이 물건을 잘 사용하면 좋을 것 같기도 하고요. 쉽지 않은 문제네요. 그렇지만 현실적인 문제도 있잖아요. 운영을 해야 하니까요. 그렇다고 물건값을 ‘5만원’ 이렇게 받지는 않을 거잖아요. 비싸다고 하더라도 5천원-1만원 일 것 같은데. 진이 : 논의를 하다가 허탈해지는 게 그거예요. ‘천 원 받을지 3천 원 받을지 가지고 우리가 이렇게까지 진지하게 얘기를 해야 되나.’ 싶어 좀 웃겼죠. 결국 모든 물건에 천 원을 붙이는 것은 그만하자고 의견이 모였어요. 싸서 막 사는 것을 막기 위해서요. 돈으로 환산하지 않는 노동력과 시간을 담은 공간 수진 : 이 공간을 지키는 분들 인건비는 거의 안 나올 것 같아요. 진이 : 전혀 안 나오죠. 수진 : 아이고. 그럼에도 공간을 지키고 사람들이 왔을 때 맞이하는 건 어떤 마음으로 하고 계신지 궁금해요. ‘봉사한다.’도 아닐 것 같아요. 진이 : 글쎄요. 지기들마다 다를 텐데 저는 봉사한다는 생각은 전혀 안 들어요. 우리가 조금 더 여유가 생기면 알바비 정도를 책정해서 주고 싶은 마음은 있어요. 어쨌든 자기 시간을 여기에 쓰는 거니까요. 그렇지만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 나의 노동력과 시간에 대해서 억울한 마음은 없어요. 그런 마음이라면 이 일을 할 수 없겠죠. 처음부터 그런 기대로 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글쎄, 어떤 마음으로 하는 걸까요? 나도 잘 모르겠네. 살다 보니 돈이 되는 일이 늘 재미있는 것은 아니더라고요. 돈을 벌려고 하는 일은 재미있든 재미없든 해야 되는 일인 경우가 많은데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마음 안에서 ‘하고 싶다. 이거 너무 재밌겠다.’라고 우러나와서 하게 되죠. (진이는 일주일에 하루는 ‘모두의 가게’에서 공간 지기로 일하고, 하루는 하동 이웃 5명이 함께 만든 독립서점 ‘이런책방’에서 일하고 있다.) 그런데 그런 일은 이상하게 돈과 연관이 없는 일들인 거예요. 그런가 보다 생각해요. 돈은 딴 데서 벌고 이런 일로 나의 다른 부분 채운다고 생각해요. 가치관이 맞는 사람들과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 그게 꼭 돈이 따라오지 않는다 하더라도 기꺼이 기쁜 마음으로 하고 있어요. 아마 다른 지기들도 그럴 거예요. 지금은 집 한 편을 수리해 작은 농어촌 민박(‘이런민박’)을 하고 있고 작년부터는 동네 농장에서 애호박 포장하는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아침에 3-4시간 정도 일하는데 너무 좋은 거예요. 시골에 내려올 때 ‘농사일에 품을 팔아서 먹고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애호박 농장에서 일하는 동안 머리를 비우고 몰입해서 일하게 되는데 끝나면 개운하고 좋아요. 수진 : 정말 여러 가지 일을 하시네요. 시골이라 가능한 걸까요? 진이 : 맞아요. 시골이라서 가능한 것 같기도 하고 시골에서는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것 같기도 해요. 하루 종일 일하는 직장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면 조그마한 일 하나로는 생계 유지가 안 되니까요. 그런 이유도 있지만 ‘어차피 아침에 일어나야하는데 더 누워있어서 뭐 해. 가서 일하지.’ 이런 마음이 들기도 했어요. 모두를 위한 공간 수진 : 앞으로 ‘모두의 가게’가 좀 더 해보고 싶은 일이 있나요? 진이 : 몇 가지 있는데 일단 공간을 잘 공유하면 좋을 것 같아요. ‘모두의 가게’를 이용하는 분들 중심으로 여러 모임이 활성화되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이 장소를 얼마든지 이용하실 수 있으니까요. 지금까지 ‘바느질 모임’도 해 보았고 ‘책 읽기’, ‘희극 읽기’ 같은 작은 모임들이 생겼다 사라지곤 했어요. 먹거리와 관련된 모임도 해보고 싶어요. ‘반찬 만들기’ 모임 같은 것을 하며 주기적으로 같이 ‘식사 모임’도 해보고 싶어요. 가게 한편에 공유 재봉틀이 있으니 사용하시라고 안내하는데 모임이나 공간 활용이 활발하게 잘 되지는 않은 것 같아요. 수진 : 공간을 잘 쓰이게 하는 것도 쉽지 않은 것 같아요. 계속 알리고 사람을 모으는 노력이 필요하기도 하고요. 지역사람들은 이 공간을 어떻게 보시나요? 어르신들은 좀 낯설어하셨을 것 같아요. 진이 : 처음에는 많이 낯설어하셨어요. “여기 도대체 뭐 하는 데야?” 하시거나 “왜 이렇게 싸게 팔아? 누가 입던 옷 아니야?” 이런 이야기도 하셨죠. 그런데 저희가 잘 설명 드리면 “너무 좋네. 나도 집에서 좀 찾아볼게.” 하고 가시는 분들이 대부분이에요. 면사무소가 가깝다보니 어르신들이 많이 왔다 갔다 하셔요. 들어오셔서 물 한잔 하고 쉬었다 가시기도 하고 핸드폰에 문제가 있으면 “나 이것 좀 해줘라.”하시기도 해요. 그럴 때 뭐랄까, 뿌듯하다고 해야 할까요? 작은 도움이 되는 것 같아 기분이 좋기도 하고 이웃들이 편하게 생각하고 와주시는 게 고마워요. 처음에는 들어와도 되는 데인지 안 되는 데인지 몰라 기웃거리던 분들도 이제는 편하게 들어오셔요. 뭘 사지 않더라도 들어와서 잠시 쉬었다 가시기도 하고요. 요즘도 여기 앞에 써 놨어요. “에어컨 바람 공유합시다.”라고. 서로의 믿을 구석이 되어주는 사람들 수진 : 여러 사람이 함께 일하는 것은 늘 매끄럽지만은 않을 것 같아요. 어떠세요? 함께 운영하는 분들끼리 우여곡절이 있었을 것 같아요. 진이 : 이것도 운영자들마다 생각이 다를 텐데, 생각처럼 큰 갈등이 있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의견이 안 맞을 때는 꽤나 많아요. 그래도 대부분 대화로 잘 해결이 되었어요.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쪽을 따라간다거나, 더 많은 사람들이 원하지만 한 사람이 “난 이것만큼은 절대 포기 못해.” 하면 또 그 사람 뜻을 따르기도 하면서 해 왔던 것 같아요. 최악의 상황, 그러니까 “나 더 이상 같이 못하겠어!” 이렇게 관계가 틀어질 때까지 가면 안 되죠. 수진 : 이야기를 듣다보니 ‘모두의 가게’를 함께 하는 사람들이 단순히 이웃이나 일을 같이하는 사이 이상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진이 : 그 이상이긴 하죠. 저한테는 그래요. 우리가 오래된 친구처럼 일상을 다 공유하지는 않지만 기쁜 일이나 슬픈 일이 있으면 모두들 발 벗고 나서 줄 사람들이라는 믿음 같은 것도 있고 기댈 구석이 되는 것 같아 고맙기도 해요. 여태까지 경험해 온 인간관계랑 조금 다르다고 느껴요. 그렇다고 막 엄청 끈끈하진 않아요. 어느 정도의 거리는 있는데 또 어떨 땐 되게 가깝게 느껴지기도 하고요. 사실 ‘이 사람들 없으면 여기 뭐 하러 사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생각해 보면 복 받았죠. 이렇게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서로 잘 조율하면서 재밌게, 때로는 싸우기도 하지만 함께 지낼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너무 기쁘죠. 수진 : 그런 단단한 관계가 이 공간을 자연스럽게 운영되게 만드는 것 같아 보여요. ‘반달곰 친구들’과 연대하는 마음, 지구와 함께하는 발걸음 수진 : 이번 인터뷰는 하동에 있는 ‘반달곰을 사랑하는 1% 가게’들을 찾아다니며 하고 있는데요, 어떻게 함께하게 됐는지 궁금해요. 진이 : ‘반달곰친구들’ 단체를 알고 있기도 했고, 그 활동을 지지하고 응원하고 있었어요. 그 곳에 수익금의 1%를 후원하는 가게들이 구례에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거든요. ‘반달곰친구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모두의 가게’의 관점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 조금이라도 힘이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수익이 많이 나서 후원도 많이 하면 좋을 텐데... 뒤이어 도시의 현대인보다도 바쁜 시골사람들의 일상을 넋두리하며 자연스럽게 인터뷰가 끝이 났다. 문 닫을 시간이 훌쩍 지나 새로워진 ‘모두의 가게’ 공간을 휘리릭 둘러보았다. 더 넓고 환해진 공간에 이웃들이 둘러 앉아 크고 작은 모임을 열어가는 모습을 상상했다. 지나던 이웃이 “여기로 옮겼어?”하며 문을 열고 빼꼼히 들여다보며 안부를 묻고 돌아갔다. 더 이상 입지 않는 깨끗한 옷을 ‘모두의 가게’에 두고 꼭 필요해 사려고 온라인 장바구니에 담아두었던 큰 유리병을 한 편에서 발견해 반가운 마음으로 사 왔다. ‘이런 곳이 하동에 꼭 있었으면 좋겠어.’라고 생각했던 그 모습 그대로의 공간을 기꺼이 꾸려가는 모두의 가게 공간 지기들이 참 고마웠다. 올해로 3년이 된 ‘모두의 가게’는 지난 7월 ‘악양면 악양동로 373’로 자리를 옮겨 새롭게 문을 열었다. 매주 월-금 11:00-15:00 열려있으며 매일 다른 지기들이 이웃을 맞이한다. 지리산 자락이 병풍처럼 이 공간을 둘러싸고 있다. [반달곰1%는 지리산권 가게들이 자발적으로 진행하는 공존프로그램이다. 반달곰1% 가게에 가면 반달가슴곰을 자연스럽게 만나고, 특별히 계획하지 않아도 반달가슴곰 보호활동에 참여하게 된다. 2021년 5개 가게로 시작한 반달곰1%는 2026년 현재 구례 11곳, 하동 11곳으로 늘어났다. 반달곰1%는 ‘유랑인증서’를 발행하고 있는데, 손님들이 반달곰1% 가게에 들러 물품을 먹거나 마시거나 구입하면, 반달곰1% 가게들은 수익금의 1%를 사단법인 반달곰친구들에 기부하고, 그 기부금이 모아지면 사단법인 반달곰친구들과 논의하여 올무수거 활동, 무인센서카메라 구입 등 반달곰 보전활동을 위해 쓰기로 약속하였다.] 글쓴이_ 정수진 하동으로 이주한 지 4년이 되었습니다. 겨울이 오면 남편과 함께 인도와 네팔에서 NGO 활동가로 살아가고, 꽃피는 봄이 오면 하동으로 돌아와 민박집을 엽니다. 텃밭을 가꾸고 이웃 농부들의 농산물이 잘 쓰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열심히 요리하고 나누어 먹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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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달곰1%가게유람기] 모두의 가게, 모두의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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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그리고 순례의 길 - 이원규 시인 인터뷰 2부
- 이원규 시인 인터뷰 2부에서는 지리산 댐 반대운동을 계기로 수경스님, 도법스님과 인연을 맺고 실상사에 들어가게 된 이야기부터, 낙동강 천삼백리와 지리산 850리를 걸었던 도보순례, 지리산 둘레길의 원조가 된 기획, 대운하 반대 삼천리 순례까지 활동가로서 걸어온 길을 들어봅니다. 대표시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이 탄생한 배경과 안치환의 노래 이야기, 그리고 무리한 순례 끝에 찾아온 병까지 담았습니다. 00:00 인트로 00:43 지리산댐 반대운동 - 수경스님과의 만남 04:05 실상사 합류와 낙동강 도보순례 05:44 지리산 850리 도보순례와 위령제 07:51 지리산 둘레길의 원조 기획과 한계 10:34 생명평화 탁발순례와 오체투지 14:58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창작 배경 17:01 안치환의 노래 18:11 지리산에 오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19:20 '지리산사람들' 단체 결성과 박두규 시인 21:16 이런 때 불러주시면 달려갑니다 22:46 내가 사랑한 장면 - 정령치와 만항재의 밤 24:22 섬진강 조망 1번지, 오산 사성암과 풍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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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그리고 순례의 길 - 이원규 시인 인터뷰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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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1 때 가출 겸 출가하고 간첩으로 몰린 소년 '지리산 시인'이 되다 - 이원규 시인 인터뷰 1부
- 지리산 시인 이원규 선생님을 모시고 그의 삶을 들어봤습니다. 1부에서는 문경의 가난한 산골 마을에서 태어나 우연히 만난 국어선생님(시인)을 통해 시와 인연을 맺고, 절에서 간첩으로 몰려 고초를 겪었던 젊은 시절, 그리고 서울에서의 노동운동과 기자 생활을 뒤로하고 오토바이 한 대로 지리산에 내려오기까지의 여정을 담았습니다. 00:00 인트로 00:39 시인 이원규를 만나다 02:45 가난한 산골마을 시인 국어선생님 04:35 중2때 출가하고 간첩으로 몰린 사연 06:46 절에서 만난 단 한권의 책 07:39 검정고시와 대학 진학, 시인 데뷔 09:44 시인이 된 후의 환멸과 노동운동 12:01 서울살이와 위장취업 기자 생활 13:40 오토바이 타고 지리산으로 17:11 이현상의 유품을 찾아헤멘 빗점골 20:15 지리산 정착 — 이장과의 만남, 98년 수해 23:30 오토바이로 지리산 곳곳을 홀로 탐색하다 #이원규시인 #지리산사람들TV #지리산 #시인인터뷰 #윤주옥 #지리산 #지리산시인 #행여지리산에오시려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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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1 때 가출 겸 출가하고 간첩으로 몰린 소년 '지리산 시인'이 되다 - 이원규 시인 인터뷰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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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도 누워 쉬는 지리산 깊은 산골 '와운마을' 이야기 - 양순자, 박금모 선생님 인터뷰
- 지리산 깊은 골짜기, 뱀사골 끝자락에 자리한 와운마을을 찾았습니다. 이번 영상에서는 와운마을 토박이 양순자 선생님과 명품마을 초대 운영위원장을 지낸 박금모 선생님 부부를 만나, 구름도 누워 쉬어간다는 '와운(臥雲)'마을의 어제와 오늘을 들어봤습니다. 화전민 시절 조릿대 열매로 죽을 쒀 먹던 보릿고개 이야기부터, 한 반에 형제자매가 뒤섞여 공부하던 와운분교의 추억, 밤새 인월장을 오가며 생선을 짊어지고 오시던 아버지의 이야기까지 — 지금은 사라진 산골 마을의 생생한 삶이 담겨 있습니다. 또한 마을을 지켜온 수호신 천년송(할아버지·할머니 나무) 당산제 이야기, 호랑이와 반달가슴곰이 출몰했던 산골살이의 기억, 그리고 지리산 국립공원 유일의 명품마을로 지정되기까지의 과정도 함께 들어봅니다. ???? 지리산 뱀사골 와운마을, 그 깊은 이야기 속으로 함께 떠나보세요. 양순자선생님 인터뷰 00:00 인트로 00:38 지리산 와운마을 어린 시절의 풍경 01:07 언니, 동생이 같은 반에서 공부한 와운분교 05:27 인월까지 장보러 가던 옛길과 추억의 샘물 09:51 민박과 식당을 시작한 유래 11:15 호랑이, 곰, 마을을 지켜준 천년송 14:50 와운마을이 이렇게 되기를 박금모선생님 인터뷰 16:39 세번을 옮겨 터를 잡은 와운마을 19:13 구름이 누워있는 마을 - 와운마을 21:37 자연환경이 가장 좋은 마을 23:12 아내의 고향으로 들어와서 살게 된 이야기 25:34 지리산 귀농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27:54 반달가슴곰과의 공존 29:42 와운마을에 오시려면 32:16 차없는 마을을 희망합니다 33:45 최고의 선물이 된 '명품마을' 36:06 국립공원공단과 마을은 한 가족이 되어야 37:19 자연이 살아있는 마을, 다시 오고싶은 마을로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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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도 누워 쉬는 지리산 깊은 산골 '와운마을' 이야기 - 양순자, 박금모 선생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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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대로 안 돼서 괴로우신가요?" 지리산 쌍계사에서 만난, 법제스님이 건네는 따뜻한 차 한 잔과 위로의 차담
- 안녕하세요, 지리산사람들TV 윤주옥입니다. 오늘 저희가 만난 분은 지리산 단천마을 출신이자, 현재 쌍계사 템플스테이에서 따뜻한 차담(茶談)을 통해 수많은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고 계시는 '법제스님'입니다. 평범한 대학생이자 직장인이었던 20대 후반, 과감하게 출가를 결심하게 만든 불교의 '탐진치' 가르침부터 다시 천혜의 고향 지리산 단천마을로 돌아오게 된 유쾌한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아침에 눈떠서 잠들 때까지의 모든 순간이 수행이라는 스님의 말씀처럼, 상처받고 지친 현대인들에게 '걸림돌을 디딤돌로 인식하는 법', 그리고 마음의 설정을 내려놓는 지혜를 전합니다. ???? 쌍계사 템플스테이 참여 방법 인터넷 검색창에 '쌍계사 템플스테이'를 검색하시면 체험형(티소믈리에, 선다회 다도 체험) 및 휴식형 프로그램을 간편하게 예약하실 수 있습니다. 언제나 소박하게 열려 있는 법당으로 마음 쉬어가세요. https://www.templestay.com/fe/MI000000000000000062/temple/introView.do?templeIdTmp=Ssanggyesa_hd -- 타임라인 -- 00:00 인트로 00:43 쌍계사에서 법제스님과 함께 01:31 해발 500m 아름다운 단천마을 04:13 어리석음에서 지혜로, 고뇌 끝에 선택한 출가 06:55 수행은 마주하는 나를 살피는 시간 09:53 고향으로 돌아온 쌍계사 템플스테이 지도법사 12:45 차(茶) 문화를 이어가고 있는 쌍계사 17:30 지친 현대인들을 위한 쌍계사만의 특별한 차담 20:52 100% 즐기는 쌍계사 템플스테이 22:24 지리산과 반달가슴곰 이야기 23:57 유기동물 30마리와 함께 살아가기 26:04 언제나 소박하게 열려 있는 단천마을 법당 27:07 행복해야 한다는 설정을 버리면 마음에는 평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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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대로 안 돼서 괴로우신가요?" 지리산 쌍계사에서 만난, 법제스님이 건네는 따뜻한 차 한 잔과 위로의 차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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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90% 수영을 하지 못하는 이유, 그리고 일본인 90%수영이 가능한 이유
- 수영을 못하는 사람이 한국엔 꽤 많은 편이다. 우리 집 4명 중엔 50%가 못하지만 한국인 90%는 수영을 못 할 것 같다. 공식적인 통계자료는 없지만 아마도 10~20% 정도 아닐까? 일본은 수영이 정식 과목에 있고 여름마다 수영을 가르치기 때문에, 정규 교육을 받은 사람 중에 노인들 빼고는 아마 모두 수영이 가능하다고 한다. 나는 아주 어려서 수영을 배웠다. 초등학교 1학년쯤에 동네 수로에서 놀다가 죽을 뻔한 경험을 하고, "수영을 못하면 죽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하루 종일 연습해서 수영을 배운 기억이 있다. 그 후에 물에 들어가는 것이 어렵지 않았고 재밌었다. 그렇다고 해서 수영을 아주 잘하는 것은 아니고, 정식으로 배운 것도 아니라서 초보적인 수영법에 불과했다.이른바 개수영이라고 하는 수영과 배영, 그리고 조금 변형된 자유형 정도가 가능했는데 구례에 수영장이 생겨 가보니 내가 배운 영법으로는 수영이 힘들었다. 아니, 좀 창피했다.다행히 주변에 아는 지인이 있어 그 지인에게 10분 정도 배우고 나서는 자유형을 하는 것에는 문제가 없었고, 지금도 수영장에 가면 수영을 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 세월호 사고 이후 한국에도 생존 수영을 배워야 한다는 여론이 있었고 지금도 수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수영까지 알려주지는 않는 것 같다.구례 같은 경우 수영장이 있고 요금이 매우 저렴하고 수영 강사도 있어 무료로 수영을 배울 수 있다. 시간과 관심만 있다면...물에 빠지는 경우가 사실 살면서 많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 나의 경우 중학교 1학년 무렵에 논에 갔다가 좁은 길에서 자전거가 미끄러져 물에 빠진 적이 있었다. 만약 내가 그때 수영을 하지 못했다면 어찌 되었을까? 끔찍한 결과가 나왔을지 모른다. 물에 가까이 가지 않으면 되지만 생존을 위해 수영은 기본이라는 생각을 갖는 것이 좋다. [일본인이 좋아하는 운동] 일본은 1950년대 시운마루호 침몰 사건이 있었다. 1955년 5월 11일 새벽, 일본 세토내해 우고시마 주변 해역(가가와현 다카마쓰시 앞바다)의 짙은 안개 속에서 일본 국유철도가 운영하던 여객선 '시운마루호'와 대형 화물선 '우코마루호'가 정면충돌했다. 충돌 후 시운마루호는 불과 수 분 만에 침몰했다.이 사고로 총 168명이 목숨을 잃었다. 특히 가장 큰 비극은 당시 수학여행을 가기 위해 배에 타고 있던 초등학생과 중학생들의 피해가 압도적으로 컸다는 점입니다. 수학여행 단체 학생들은 가가와현, 고치현, 에히메현, 히로시마현 등에서 온 4개 학교의 학생과 인솔 교사들이 타고 있었고, 사망자 중 학생 수는 전체 사망자 168명 중 어린 학생이 100명에 달했다. (초등학생 77명, 중학생 23명) 이들이 미처 배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거나, 바다에 빠진 후 헤엄을 치지 못해 수많은 목숨을 잃으면서 일본 전역은 엄청난 충격과 슬픔에 빠졌다.이 사건 이후 일본은 모든 학교에 수영장 건설이 기본이 되었다. 이후 초등학교에 수영장을 기본으로 만들어 초등학교를 지나면 대부분 수영을 할 줄 안다고 한다. 도쿄대학에 들어간 학생들 대부분이 수영을 기본으로 한다고 하고 공부에도 도움이 된다고 답했다고 하니, 공부 좋아하는 학부모들도 이번 여름에 학원보다는 수영장에 보내 아이들에게 수영을 배우게 하는 것은 어떨까? 어른은 배우는 데 한 달이 걸릴 줄 모르지만 아이들은 대부분 2~3주면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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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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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90% 수영을 하지 못하는 이유, 그리고 일본인 90%수영이 가능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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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달곰1%가게유람기] "이 빵을 즐겁게 먹을 사람들을 상상해요" 파란돌 천연발효빵
- [반달곰1%가게유람기] 이 빵을 즐겁게 먹을 사람들을 상상해요. 파란돌 천연발효빵 하동 악양에 자리한 일주일에 하루만 문을 여는 빵집, ‘파란돌 천연발효빵’을 찾았다. 가게 앞에 ‘빵’이라고 큼직하게 써 둔 간판을 보며 ‘이 곳은 어떤 빵을 만드는 곳일까?’ 궁금한 마음을 안고 가게에 들어섰는데 이야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이런 마음이 들었다. ‘이 사람이 만드는 빵이라면 안심하고 먹을 수 있다.’ 가게 안에는 오븐에서 갓 나온 빵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마지막 빵을 꺼내는 건해님과 인사를 나누며 가까이 가니 빵에서 ‘타닥타닥’ 맑고도 경쾌한 소리가 났다. 빵의 뜨거운 표면이 차가운 공기와 만나 균열이 일어나는 소리일까? “빵이 나오고 2분 동안만 들을 수 있는 소리예요.”라고 건해님이 덧붙였다. 2019년에 남편, 세 아이와 함께 하동으로 이사를 왔다는 건해님은 파란돌 천연발효빵집의 두 번째 주인이다. “손님으로 이 빵집을 처음 알게 되었어요. 친구가 동네에 특이한 빵집이 생겼다고 해서 왔는데 빵이 참 맛있었어요. 아이들이 먹을 빵을 직접 만들고 싶어 사장님께 부탁해 빵을 배웠는데 그때 배운 빵이 ‘길쭉이’였어요. (바게트 모양의 길쭉한 빵.) 원래 사장님도 빵을 전문으로 하는 분이 아니었다고 해요. 수행을 하시던 분이라 들었는데 그래서인지 저는 그분이 만드신 빵이 ‘수행자의 빵’ 같았어요. 맑은 사람만이 만들 수 있는 빵이라고 할까요? 빵이 참 고요했어요. 빵을 만들며 알게 된 건데 보통 빵을 만들기 위해서는 반죽을 계속 괴롭히거나 세게 내려쳐서 만들어요. 그런데 이 빵은 살살 다뤄야 해요. 자연이 하는 일을 약간만 손보고 기다리는 게 제 일이에요. 재료도 밀가루와 물 밖에 들어가지 않는데 그럼에도 부풀리고 발효해야 하니까 보이지 않는 것들이 역할을 하죠.” 밀가루에 벌레가 생기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나요? “처음에는 호주산과 미국산 유기농 밀가루를 사용했는데 문제가 생겨 다른 밀가루를 찾다가 프랑스산이 좋다는 말을 듣고 사용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프랑스산 밀을 반쯤 쓰다 보니 벌레가 나오는 거예요. 저는 그게 이상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여태까지 사용했던 다른 밀가루에서 벌레가 나오지 않았다는 게 더 이상하게 느껴졌죠. 이곳에 살다보니 대부분의 식재료가 보관을 잘 해도 시간이 지나면 상하고 벌레가 생긴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수입 밀가루는 배를 타고 한국까지 최소 한 달 이상 습한 바다를 지나 왔을 텐데 벌레가 생기지 않는다는 게 충격이었어요. 벌레가 생기지 않게 어떤 처리를 했다는 게 아닐까요? 그 때부터 우리밀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구례에서 제분한 우리밀을 쓰다가 하동에서도 재배가 가능한지 궁금해졌죠. 어느 날 동네 할머니께 여쭤보니 “예전에는 밀농사를 다 지었지. 요즘에는 밀 수매를 안 하니 팔 곳이 없어서 안 지어.”라고 하셨어요. 이듬해 이웃 어른께 밀농사 지어주실 농부님을 소개받아 같이 농사를 지었어요. 밀은 겨울을 지나며 크는 작물이라 병충해가 없어 농사는 쉽지만 6월 수확 이후에 바로 장마가 오니 건조를 잘 하지 않으면 벌레가 생기고 보관이 까다로워요. 첫 해에 농사지은 밀은 농부님도 우리도 경험이 없어 건조를 잘못해 반도 못 쓰고 산패가 되어 그대로 밭에 모두 뿌렸어요. 다음 해는 조금 더 나았어요. 시행착오를 겪으며 건조를 얼마나 해야 할지, 어떻게 보관해야 하는지 배웠어요. 그렇지만 두 해 농사를 경험해보면서 밀농사는 전문 농가에 맡기고 나는 우리밀을 최대한 많이 사용하는 것에 집중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빵을 만들며 농사까지 짓는 것은 역부족이더라고요.” 빵을 만드는데 걸리는 시간. 3일 이곳은 일주일에 하루만 문을 연다. 매장에 와도 살 수 있는 빵이 없을지도 모른다. 오랜 시간 걸려 자연과 건해님이 함께 만드는 빵은 대부분 택배로 판매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건해님의 빵 택배 판매는 ‘무료 나눔’이라는 길고도 정성스러운 시간을 딛고 만들어졌다. “처음에는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영업을 했어요. 빵을 만들기 위해서는 3일이 필요한데 첫째 날 발효하고 둘째 날 반죽하고 셋째 날 빵을 구워요. 화요일에 문을 열기 위해서는 일요일도 나와서 발효작업을 해야 했는데 그 시기에 첫째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어 주말만큼은 가족들과 마음 편히 시간을 보내고 싶었어요. 게다가 둘째와 셋째는 아직 미취학 아동이었기 때문에 빵집을 하며 아이까지 돌보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해 영업일을 줄였어요. 그래도 일을 완전히 포기하고 싶지는 않아 조정을 하다 보니 빵이 나오는 날이 일주일에 하루가 되었죠. 빵은 대부분 택배로 판매해요. 처음 빵을 택배로 보내기 시작한 건 ‘무료 나눔’ 형태였어요. 영업을 시작한 초기에 손님이 얼마나 오실지 예측이 어려워 남은 빵을 필요한 분께 나누면 좋겠다 싶기도 했지만 빵에 대한 솔직한 평가가 듣고 싶었어요. 빵집을 한다는 것을 알리지 않고 매일 연습 삼아 빵을 구워 온라인에 ‘무료 나눔’ 소식을 올렸어요. ‘악담이라도 좋으니 진실 된 평가를 듣고 싶다.’는 문자도 빵과 함께 보냈죠. 몇몇 분들이 진심 어린 의견을 나누어주셨는데 정말 고마웠어요. 그 분들이 지금의 씨앗이 되었어요. 1년에 걸쳐서 100번의 무료나눔을 하고 난 뒤 빵집을 한다는 사실을 밝혔어요. 자신이 없었거든요. 처음 빵을 팔고 손님께 돈을 받던 순간이 아직도 기억나요. 손이 덜덜 떨렸어요. ‘이 빵은 내가 봐도 미숙한데 돈을 받아도 될까?’ 미안한 마음이 들었어요. 지금은 괜찮아요. 요즘 물가도 많이 올랐지만 빵 가격을 올리지 않았어요. 이 가격이라면 내가 당당하게 받을 수 있겠다는 마음이 있어요.” 만드는 사람을 닮은 빵 일주일에 하루 영업을 하는 것으로 수익이 충분히 나는지 궁금해 조심스레 물으니 지금으로써는 수익이 나지 않는다는 덤덤한 답변에 돌아왔다. 그럼 더 많은 사람들에게 빵을 팔게 되면 좋겠느냐고 덧붙여 물었다. “아니요. 지금 딱 좋아요. 빵에는 만드는 사람의 상태가 그대로 드러나요. 만드는 사람 기분이 좋지 않으면 빵도 나빠져요. 제가 정신없으면 빵도 정신없이 나와요. 빵은 아주 노동 집약적인 생산물인데 많이 만들면 힘이 더 들고, 그럼 그 힘듦이 빵에 드러날 수밖에 없어요. 더 많이 만들어서 더 팔고 싶지는 않아요. 수익을 더 내려면 빵을 더 많이 팔거나 재료값을 아껴야 하는데 안 좋은 재료를 단 한 번도 쓴 적이 없어요. 빵을 만들면 우리 아이들이 이 빵을 가장 많이 먹거든요. 그리고 이 빵을 식사로 매일 드시는 분들께 안 좋은 재료로 만든 빵을 드리고 싶지는 않아요. 그래야 제 마음이 편해요. 이 빵을 즐겁게 먹을 사람들을 상상해요. 수익이 거의 나지 않아도 이 일을 계속 하는 것은 빵을 통해 맺게 된 인연들이 좋아서인 것 같아요. 사실 빵은 누구나 만들 수 있잖아요. 대한민국에 빵집이 얼마나 많아요. 돈만 내면 사먹을 수 있죠. 저희 빵은 요즘 사람들의 입맛을 충족시켜주지는 못해요. 달지도 예쁘지도 않고 화려하지도 않죠. 그냥 집 밥 같은 빵이란 말이죠. 손님들 입장에서는 ‘이렇게까지 기다려서 먹어야하는 빵인가?’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먹고 있어요.’라고 말씀해주시는 손님들이 계셔서 참 고맙죠.” 소중한 것들을 지키고 싶은 마음 “‘반달곰 친구들’이라는 단체는 산악열차 반대 활동을 하면서 알게 되었어요. 그냥 ‘반달곰 지키는 사람들인가 보다.’라고 생각하다가 이 활동을 제안 받았는데 어떤 일인지 설명을 듣기도 전에 함께하겠다고 했어요. 이 일을 하고 있는 활동가들이 어떤 마음으로 하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죠. 지리산에는 다양한 생명과 존재들이 살아가고 있잖아요. 반달곰을 지키는 일이 꼭 ‘반달곰’만을 지키는 활동이 아니리라 생각해요. 지리산과 하동에 있는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들이 사라지는 것을 보며 마음이 아플 때가 많아요. 그런 것들이 오래오래 존재하도록 하는 일에 작게나마 함께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반달곰1%는 지리산권 가게들이 자발적으로 진행하는 공존프로그램이다. 반달곰1% 가게에 가면 반달가슴곰을 자연스럽게 만나고, 특별히 계획하지 않아도 반달가슴곰 보호활동에 참여하게 된다. 2021년 5개 가게로 시작한 반달곰1%는 2026년 현재 구례 11곳, 하동 11곳으로 늘어났다. 반달곰1%는 ‘유랑인증서’를 발행하고 있는데, 손님들이 반달곰1% 가게에 들러 물품을 먹거나 마시거나 구입하면, 반달곰1% 가게들은 수익금의 1%를 사단법인 반달곰친구들에 기부하고, 그 기부금이 모아지면 사단법인 반달곰친구들과 논의하여 올무수거 활동, 무인센서카메라 구입 등 반달곰 보전활동을 위해 쓰기로 약속하였다.] 글쓴이_ 정수진 하동으로 이주한 지 4년이 되었습니다. 겨울이 오면 남편과 함께 인도와 네팔에서 NGO 활동가로 살아가고, 꽃피는 봄이 오면 하동으로 돌아와 민박집을 엽니다. 텃밭을 가꾸고 이웃 농부들의 농산물이 잘 쓰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열심히 요리하고 나누어 먹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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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달곰1%가게유람기] "이 빵을 즐겁게 먹을 사람들을 상상해요" 파란돌 천연발효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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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집이 20년이 지나면 0원이 되는 이유!
- 집 가격은 얼마가 적당한가? 얼마 전 일본에 사는 한국 여성분이 운영하는 유튜브를 봤다. 일본인과 결혼하여 시어머니 그리고 한국어를 유창하게 하는 딸과 함께 살고 있었다. 그중 한 에피소드에 일본 부동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일본 부동산은 20년이 지나면 집값이 0원이 된다는 것이다. 지대만 남고 집 가격은 사라진다. 그러면서 한국인 여성분은 한국은 집 가격이 오른다며 남편과 이야기를 하는데, 일본인 남편은 낡은 집이 가격이 오르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부동산을 구입하는 목적은 오르려는 지역이 아니라 삶이 편리한 곳을 구매해서 사는 것이라고 말한다. 아이들 학교가 가깝거나 직장 근처를 구입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일본이라고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그분들이 사는 곳도 도쿄였다. 한국의 부동산은 집도 오르고 지대도 오르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시골 부동산은 사실 지대는 오르지만 집 가격은 0원이 된 곳도 꽤 되지만, 대부분은 아직도 집 가격이 오른 곳이 많다. 우리 집도 이제 곧 20년이 되어간다. 2008년에 건축했다. 사실 나는 우리 집이 0원이라고 해도 별 상관이 없다. 이유는 팔 생각이 없어서다. 즉 매도 가격이 0원이지 가치가 0원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이 집을 팔아야 한다면 0원이어도 괜찮을 것 같다. 오른다면 그것이 더 이상하다. 중고차가 새 차보다 비쌀 수 없다. 중고차가 새 차보다 비싼 경우는 희소성 때문인데, 부동산에서 희소성은 입지일 것이다. 입지가 좋은 곳이라면 오를 수도 있을지도 모르겠다. 부동산이 오르면 가능성이 점점 줄어든다. 높은 부동산 가격은 새로운 시도를 막는 진입장벽이 된다. 일본은 90년 버블 붕괴 후 부동산은 오른다는 오래된 신화가 철저히 붕괴되었다. 우린 아직도 이 신화가 굳건하다. 부동산이 오르는 것은 산업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생산 활동을 하는 것도 아니며 부가가치를 생산하지도 않는다. 일본 대기업은 버블 시기에 압도적인 자금으로 해외의 부동산을 매입했다. 그리고 지금 일본 대기업은 점점 경쟁력을 상실하고 있다. 기업이 과감한 산업 혁신에 투자하지 않고 부동산에 투자한 결과다. 흔히 기존 성공에 안주해 더 이상의 기술 혁신 없이 손쉬운 자산 보유나 딴눈을 팔다 주저앉는 현상을 '중진국의 함정'이라 부른다. 그런데 일본은 이미 세계 정상에 섰던 선진국 기업들이 스스로 이런 안이한 선택을 해 함정에 빠져버렸다. 만약 모든 부동산이 저렴해진다면 지금 당장은 힘들어도 이후의 사람들에게는 기회가 될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집은 37살에 건축했는데 만약 당시 여기 지대가 지금처럼 높았다면 나는 여기에 살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 여기 지대가 과거처럼 저렴하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살 수도 있을 것이다. 글쓴이 : 조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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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집이 20년이 지나면 0원이 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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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의 옹달샘, 설산습지에서 만난 하동생태해설사회 정명희 대표
- 지리산의 푸른 품 속에 숨겨진 보석, '설산 습지'를 아시나요? ???? 우리나라 국토의 단 0.01%밖에 되지 않는 귀한 산지 습지이자, 목마른 야생동물들이 찾아와 목을 축이고 수많은 생명이 산란하는 지리산의 소중한 옹달샘, 설산 습지 현장을 다녀왔습니다. 학교 교실을 벗어나 자연이라는 거대한 공간에서 아이들과 온몸으로 호흡하며 생태 놀이를 이끌어가는 '하동생태해설사회' 정명희 대표님과의 깊이 있는 인터뷰! 삵과 담비가 뛰놀고 섬휘파람새 소리가 지저귀는 설산 습지의 특별한 이야기부터, 지리산의 자연을 진정으로 느끼고 보호하기 위한 올바른 탐방 에티켓, 그리고 지역 어린이들을 '어린이 해설사'로 키워내는 감동적인 활동 이야기까지 지금 영상으로 만나보세요. 00:00 인트로 00:30 설산습지를 만나는 방법 01:52 대한민국 0.01%의 귀한 보물, 산지 습지 02:46 물이 많은 산 지리산, 10곳의 규모 있는 습지들 03:25 야생동물들의 옹달샘, 생명을 품은 습지 05:25 삵부터 문수조릿대까지, 설산 습지의 생명들 07:55 "조용히 쉬어가는 공간으로" 설산 습지 탐방 에티켓 09:32 어린이 해설사와 함께 '동정호 생물다양성의 날' 12:11 하동의 자연을 사랑하는 하동생태해설사회 자연을 사랑하고 지키는 가장 아름다운 발걸음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지리산사람들TV #많은_관심_부탁드립니다 #설산습지 #지리산국립공원 #산지습지 #하동생태해설사회 #정명희대표 #생태해설 #지리산습지 #생물다양성 #동정호 #어린이해설사 #생태교육 #환경보호 #지리산여행 #하동여행 #자연다큐키는 가장 아름다운 발걸음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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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의 옹달샘, 설산습지에서 만난 하동생태해설사회 정명희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