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야기Home >  사람이야기
실시간 사람이야기 기사
-
-
구름도 누워 쉬는 지리산 깊은 산골 '와운마을' 이야기 - 양순자, 박금모 선생님 인터뷰
- 지리산 깊은 골짜기, 뱀사골 끝자락에 자리한 와운마을을 찾았습니다. 이번 영상에서는 와운마을 토박이 양순자 선생님과 명품마을 초대 운영위원장을 지낸 박금모 선생님 부부를 만나, 구름도 누워 쉬어간다는 '와운(臥雲)'마을의 어제와 오늘을 들어봤습니다. 화전민 시절 조릿대 열매로 죽을 쒀 먹던 보릿고개 이야기부터, 한 반에 형제자매가 뒤섞여 공부하던 와운분교의 추억, 밤새 인월장을 오가며 생선을 짊어지고 오시던 아버지의 이야기까지 — 지금은 사라진 산골 마을의 생생한 삶이 담겨 있습니다. 또한 마을을 지켜온 수호신 천년송(할아버지·할머니 나무) 당산제 이야기, 호랑이와 반달가슴곰이 출몰했던 산골살이의 기억, 그리고 지리산 국립공원 유일의 명품마을로 지정되기까지의 과정도 함께 들어봅니다. ???? 지리산 뱀사골 와운마을, 그 깊은 이야기 속으로 함께 떠나보세요. 양순자선생님 인터뷰 00:00 인트로 00:38 지리산 와운마을 어린 시절의 풍경 01:07 언니, 동생이 같은 반에서 공부한 와운분교 05:27 인월까지 장보러 가던 옛길과 추억의 샘물 09:51 민박과 식당을 시작한 유래 11:15 호랑이, 곰, 마을을 지켜준 천년송 14:50 와운마을이 이렇게 되기를 박금모선생님 인터뷰 16:39 세번을 옮겨 터를 잡은 와운마을 19:13 구름이 누워있는 마을 - 와운마을 21:37 자연환경이 가장 좋은 마을 23:12 아내의 고향으로 들어와서 살게 된 이야기 25:34 지리산 귀농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27:54 반달가슴곰과의 공존 29:42 와운마을에 오시려면 32:16 차없는 마을을 희망합니다 33:45 최고의 선물이 된 '명품마을' 36:06 국립공원공단과 마을은 한 가족이 되어야 37:19 자연이 살아있는 마을, 다시 오고싶은 마을로 만들자
-
- 사람이야기
-
구름도 누워 쉬는 지리산 깊은 산골 '와운마을' 이야기 - 양순자, 박금모 선생님 인터뷰
-
-
"내 마음대로 안 돼서 괴로우신가요?" 지리산 쌍계사에서 만난, 법제스님이 건네는 따뜻한 차 한 잔과 위로의 차담
- 안녕하세요, 지리산사람들TV 윤주옥입니다. 오늘 저희가 만난 분은 지리산 단천마을 출신이자, 현재 쌍계사 템플스테이에서 따뜻한 차담(茶談)을 통해 수많은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고 계시는 '법제스님'입니다. 평범한 대학생이자 직장인이었던 20대 후반, 과감하게 출가를 결심하게 만든 불교의 '탐진치' 가르침부터 다시 천혜의 고향 지리산 단천마을로 돌아오게 된 유쾌한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아침에 눈떠서 잠들 때까지의 모든 순간이 수행이라는 스님의 말씀처럼, 상처받고 지친 현대인들에게 '걸림돌을 디딤돌로 인식하는 법', 그리고 마음의 설정을 내려놓는 지혜를 전합니다. ???? 쌍계사 템플스테이 참여 방법 인터넷 검색창에 '쌍계사 템플스테이'를 검색하시면 체험형(티소믈리에, 선다회 다도 체험) 및 휴식형 프로그램을 간편하게 예약하실 수 있습니다. 언제나 소박하게 열려 있는 법당으로 마음 쉬어가세요. https://www.templestay.com/fe/MI000000000000000062/temple/introView.do?templeIdTmp=Ssanggyesa_hd -- 타임라인 -- 00:00 인트로 00:43 쌍계사에서 법제스님과 함께 01:31 해발 500m 아름다운 단천마을 04:13 어리석음에서 지혜로, 고뇌 끝에 선택한 출가 06:55 수행은 마주하는 나를 살피는 시간 09:53 고향으로 돌아온 쌍계사 템플스테이 지도법사 12:45 차(茶) 문화를 이어가고 있는 쌍계사 17:30 지친 현대인들을 위한 쌍계사만의 특별한 차담 20:52 100% 즐기는 쌍계사 템플스테이 22:24 지리산과 반달가슴곰 이야기 23:57 유기동물 30마리와 함께 살아가기 26:04 언제나 소박하게 열려 있는 단천마을 법당 27:07 행복해야 한다는 설정을 버리면 마음에는 평화가
-
- 사람이야기
-
"내 마음대로 안 돼서 괴로우신가요?" 지리산 쌍계사에서 만난, 법제스님이 건네는 따뜻한 차 한 잔과 위로의 차담
-
-
한국인 90% 수영을 하지 못하는 이유, 그리고 일본인 90%수영이 가능한 이유
- 수영을 못하는 사람이 한국엔 꽤 많은 편이다. 우리 집 4명 중엔 50%가 못하지만 한국인 90%는 수영을 못 할 것 같다. 공식적인 통계자료는 없지만 아마도 10~20% 정도 아닐까? 일본은 수영이 정식 과목에 있고 여름마다 수영을 가르치기 때문에, 정규 교육을 받은 사람 중에 노인들 빼고는 아마 모두 수영이 가능하다고 한다. 나는 아주 어려서 수영을 배웠다. 초등학교 1학년쯤에 동네 수로에서 놀다가 죽을 뻔한 경험을 하고, "수영을 못하면 죽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하루 종일 연습해서 수영을 배운 기억이 있다. 그 후에 물에 들어가는 것이 어렵지 않았고 재밌었다. 그렇다고 해서 수영을 아주 잘하는 것은 아니고, 정식으로 배운 것도 아니라서 초보적인 수영법에 불과했다.이른바 개수영이라고 하는 수영과 배영, 그리고 조금 변형된 자유형 정도가 가능했는데 구례에 수영장이 생겨 가보니 내가 배운 영법으로는 수영이 힘들었다. 아니, 좀 창피했다.다행히 주변에 아는 지인이 있어 그 지인에게 10분 정도 배우고 나서는 자유형을 하는 것에는 문제가 없었고, 지금도 수영장에 가면 수영을 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 세월호 사고 이후 한국에도 생존 수영을 배워야 한다는 여론이 있었고 지금도 수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수영까지 알려주지는 않는 것 같다.구례 같은 경우 수영장이 있고 요금이 매우 저렴하고 수영 강사도 있어 무료로 수영을 배울 수 있다. 시간과 관심만 있다면...물에 빠지는 경우가 사실 살면서 많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 나의 경우 중학교 1학년 무렵에 논에 갔다가 좁은 길에서 자전거가 미끄러져 물에 빠진 적이 있었다. 만약 내가 그때 수영을 하지 못했다면 어찌 되었을까? 끔찍한 결과가 나왔을지 모른다. 물에 가까이 가지 않으면 되지만 생존을 위해 수영은 기본이라는 생각을 갖는 것이 좋다. [일본인이 좋아하는 운동] 일본은 1950년대 시운마루호 침몰 사건이 있었다. 1955년 5월 11일 새벽, 일본 세토내해 우고시마 주변 해역(가가와현 다카마쓰시 앞바다)의 짙은 안개 속에서 일본 국유철도가 운영하던 여객선 '시운마루호'와 대형 화물선 '우코마루호'가 정면충돌했다. 충돌 후 시운마루호는 불과 수 분 만에 침몰했다.이 사고로 총 168명이 목숨을 잃었다. 특히 가장 큰 비극은 당시 수학여행을 가기 위해 배에 타고 있던 초등학생과 중학생들의 피해가 압도적으로 컸다는 점입니다. 수학여행 단체 학생들은 가가와현, 고치현, 에히메현, 히로시마현 등에서 온 4개 학교의 학생과 인솔 교사들이 타고 있었고, 사망자 중 학생 수는 전체 사망자 168명 중 어린 학생이 100명에 달했다. (초등학생 77명, 중학생 23명) 이들이 미처 배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거나, 바다에 빠진 후 헤엄을 치지 못해 수많은 목숨을 잃으면서 일본 전역은 엄청난 충격과 슬픔에 빠졌다.이 사건 이후 일본은 모든 학교에 수영장 건설이 기본이 되었다. 이후 초등학교에 수영장을 기본으로 만들어 초등학교를 지나면 대부분 수영을 할 줄 안다고 한다. 도쿄대학에 들어간 학생들 대부분이 수영을 기본으로 한다고 하고 공부에도 도움이 된다고 답했다고 하니, 공부 좋아하는 학부모들도 이번 여름에 학원보다는 수영장에 보내 아이들에게 수영을 배우게 하는 것은 어떨까? 어른은 배우는 데 한 달이 걸릴 줄 모르지만 아이들은 대부분 2~3주면 배운다.
-
- 사람이야기
-
한국인 90% 수영을 하지 못하는 이유, 그리고 일본인 90%수영이 가능한 이유
-
-
[반달곰1%가게유람기] "이 빵을 즐겁게 먹을 사람들을 상상해요" 파란돌 천연발효빵
- [반달곰1%가게유람기] 이 빵을 즐겁게 먹을 사람들을 상상해요. 파란돌 천연발효빵 하동 악양에 자리한 일주일에 하루만 문을 여는 빵집, ‘파란돌 천연발효빵’을 찾았다. 가게 앞에 ‘빵’이라고 큼직하게 써 둔 간판을 보며 ‘이 곳은 어떤 빵을 만드는 곳일까?’ 궁금한 마음을 안고 가게에 들어섰는데 이야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이런 마음이 들었다. ‘이 사람이 만드는 빵이라면 안심하고 먹을 수 있다.’ 가게 안에는 오븐에서 갓 나온 빵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마지막 빵을 꺼내는 건해님과 인사를 나누며 가까이 가니 빵에서 ‘타닥타닥’ 맑고도 경쾌한 소리가 났다. 빵의 뜨거운 표면이 차가운 공기와 만나 균열이 일어나는 소리일까? “빵이 나오고 2분 동안만 들을 수 있는 소리예요.”라고 건해님이 덧붙였다. 2019년에 남편, 세 아이와 함께 하동으로 이사를 왔다는 건해님은 파란돌 천연발효빵집의 두 번째 주인이다. “손님으로 이 빵집을 처음 알게 되었어요. 친구가 동네에 특이한 빵집이 생겼다고 해서 왔는데 빵이 참 맛있었어요. 아이들이 먹을 빵을 직접 만들고 싶어 사장님께 부탁해 빵을 배웠는데 그때 배운 빵이 ‘길쭉이’였어요. (바게트 모양의 길쭉한 빵.) 원래 사장님도 빵을 전문으로 하는 분이 아니었다고 해요. 수행을 하시던 분이라 들었는데 그래서인지 저는 그분이 만드신 빵이 ‘수행자의 빵’ 같았어요. 맑은 사람만이 만들 수 있는 빵이라고 할까요? 빵이 참 고요했어요. 빵을 만들며 알게 된 건데 보통 빵을 만들기 위해서는 반죽을 계속 괴롭히거나 세게 내려쳐서 만들어요. 그런데 이 빵은 살살 다뤄야 해요. 자연이 하는 일을 약간만 손보고 기다리는 게 제 일이에요. 재료도 밀가루와 물 밖에 들어가지 않는데 그럼에도 부풀리고 발효해야 하니까 보이지 않는 것들이 역할을 하죠.” 밀가루에 벌레가 생기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나요? “처음에는 호주산과 미국산 유기농 밀가루를 사용했는데 문제가 생겨 다른 밀가루를 찾다가 프랑스산이 좋다는 말을 듣고 사용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프랑스산 밀을 반쯤 쓰다 보니 벌레가 나오는 거예요. 저는 그게 이상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여태까지 사용했던 다른 밀가루에서 벌레가 나오지 않았다는 게 더 이상하게 느껴졌죠. 이곳에 살다보니 대부분의 식재료가 보관을 잘 해도 시간이 지나면 상하고 벌레가 생긴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수입 밀가루는 배를 타고 한국까지 최소 한 달 이상 습한 바다를 지나 왔을 텐데 벌레가 생기지 않는다는 게 충격이었어요. 벌레가 생기지 않게 어떤 처리를 했다는 게 아닐까요? 그 때부터 우리밀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구례에서 제분한 우리밀을 쓰다가 하동에서도 재배가 가능한지 궁금해졌죠. 어느 날 동네 할머니께 여쭤보니 “예전에는 밀농사를 다 지었지. 요즘에는 밀 수매를 안 하니 팔 곳이 없어서 안 지어.”라고 하셨어요. 이듬해 이웃 어른께 밀농사 지어주실 농부님을 소개받아 같이 농사를 지었어요. 밀은 겨울을 지나며 크는 작물이라 병충해가 없어 농사는 쉽지만 6월 수확 이후에 바로 장마가 오니 건조를 잘 하지 않으면 벌레가 생기고 보관이 까다로워요. 첫 해에 농사지은 밀은 농부님도 우리도 경험이 없어 건조를 잘못해 반도 못 쓰고 산패가 되어 그대로 밭에 모두 뿌렸어요. 다음 해는 조금 더 나았어요. 시행착오를 겪으며 건조를 얼마나 해야 할지, 어떻게 보관해야 하는지 배웠어요. 그렇지만 두 해 농사를 경험해보면서 밀농사는 전문 농가에 맡기고 나는 우리밀을 최대한 많이 사용하는 것에 집중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빵을 만들며 농사까지 짓는 것은 역부족이더라고요.” 빵을 만드는데 걸리는 시간. 3일 이곳은 일주일에 하루만 문을 연다. 매장에 와도 살 수 있는 빵이 없을지도 모른다. 오랜 시간 걸려 자연과 건해님이 함께 만드는 빵은 대부분 택배로 판매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건해님의 빵 택배 판매는 ‘무료 나눔’이라는 길고도 정성스러운 시간을 딛고 만들어졌다. “처음에는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영업을 했어요. 빵을 만들기 위해서는 3일이 필요한데 첫째 날 발효하고 둘째 날 반죽하고 셋째 날 빵을 구워요. 화요일에 문을 열기 위해서는 일요일도 나와서 발효작업을 해야 했는데 그 시기에 첫째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어 주말만큼은 가족들과 마음 편히 시간을 보내고 싶었어요. 게다가 둘째와 셋째는 아직 미취학 아동이었기 때문에 빵집을 하며 아이까지 돌보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해 영업일을 줄였어요. 그래도 일을 완전히 포기하고 싶지는 않아 조정을 하다 보니 빵이 나오는 날이 일주일에 하루가 되었죠. 빵은 대부분 택배로 판매해요. 처음 빵을 택배로 보내기 시작한 건 ‘무료 나눔’ 형태였어요. 영업을 시작한 초기에 손님이 얼마나 오실지 예측이 어려워 남은 빵을 필요한 분께 나누면 좋겠다 싶기도 했지만 빵에 대한 솔직한 평가가 듣고 싶었어요. 빵집을 한다는 것을 알리지 않고 매일 연습 삼아 빵을 구워 온라인에 ‘무료 나눔’ 소식을 올렸어요. ‘악담이라도 좋으니 진실 된 평가를 듣고 싶다.’는 문자도 빵과 함께 보냈죠. 몇몇 분들이 진심 어린 의견을 나누어주셨는데 정말 고마웠어요. 그 분들이 지금의 씨앗이 되었어요. 1년에 걸쳐서 100번의 무료나눔을 하고 난 뒤 빵집을 한다는 사실을 밝혔어요. 자신이 없었거든요. 처음 빵을 팔고 손님께 돈을 받던 순간이 아직도 기억나요. 손이 덜덜 떨렸어요. ‘이 빵은 내가 봐도 미숙한데 돈을 받아도 될까?’ 미안한 마음이 들었어요. 지금은 괜찮아요. 요즘 물가도 많이 올랐지만 빵 가격을 올리지 않았어요. 이 가격이라면 내가 당당하게 받을 수 있겠다는 마음이 있어요.” 만드는 사람을 닮은 빵 일주일에 하루 영업을 하는 것으로 수익이 충분히 나는지 궁금해 조심스레 물으니 지금으로써는 수익이 나지 않는다는 덤덤한 답변에 돌아왔다. 그럼 더 많은 사람들에게 빵을 팔게 되면 좋겠느냐고 덧붙여 물었다. “아니요. 지금 딱 좋아요. 빵에는 만드는 사람의 상태가 그대로 드러나요. 만드는 사람 기분이 좋지 않으면 빵도 나빠져요. 제가 정신없으면 빵도 정신없이 나와요. 빵은 아주 노동 집약적인 생산물인데 많이 만들면 힘이 더 들고, 그럼 그 힘듦이 빵에 드러날 수밖에 없어요. 더 많이 만들어서 더 팔고 싶지는 않아요. 수익을 더 내려면 빵을 더 많이 팔거나 재료값을 아껴야 하는데 안 좋은 재료를 단 한 번도 쓴 적이 없어요. 빵을 만들면 우리 아이들이 이 빵을 가장 많이 먹거든요. 그리고 이 빵을 식사로 매일 드시는 분들께 안 좋은 재료로 만든 빵을 드리고 싶지는 않아요. 그래야 제 마음이 편해요. 이 빵을 즐겁게 먹을 사람들을 상상해요. 수익이 거의 나지 않아도 이 일을 계속 하는 것은 빵을 통해 맺게 된 인연들이 좋아서인 것 같아요. 사실 빵은 누구나 만들 수 있잖아요. 대한민국에 빵집이 얼마나 많아요. 돈만 내면 사먹을 수 있죠. 저희 빵은 요즘 사람들의 입맛을 충족시켜주지는 못해요. 달지도 예쁘지도 않고 화려하지도 않죠. 그냥 집 밥 같은 빵이란 말이죠. 손님들 입장에서는 ‘이렇게까지 기다려서 먹어야하는 빵인가?’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먹고 있어요.’라고 말씀해주시는 손님들이 계셔서 참 고맙죠.” 소중한 것들을 지키고 싶은 마음 “‘반달곰 친구들’이라는 단체는 산악열차 반대 활동을 하면서 알게 되었어요. 그냥 ‘반달곰 지키는 사람들인가 보다.’라고 생각하다가 이 활동을 제안 받았는데 어떤 일인지 설명을 듣기도 전에 함께하겠다고 했어요. 이 일을 하고 있는 활동가들이 어떤 마음으로 하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죠. 지리산에는 다양한 생명과 존재들이 살아가고 있잖아요. 반달곰을 지키는 일이 꼭 ‘반달곰’만을 지키는 활동이 아니리라 생각해요. 지리산과 하동에 있는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들이 사라지는 것을 보며 마음이 아플 때가 많아요. 그런 것들이 오래오래 존재하도록 하는 일에 작게나마 함께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반달곰1%는 지리산권 가게들이 자발적으로 진행하는 공존프로그램이다. 반달곰1% 가게에 가면 반달가슴곰을 자연스럽게 만나고, 특별히 계획하지 않아도 반달가슴곰 보호활동에 참여하게 된다. 2021년 5개 가게로 시작한 반달곰1%는 2026년 현재 구례 11곳, 하동 11곳으로 늘어났다. 반달곰1%는 ‘유랑인증서’를 발행하고 있는데, 손님들이 반달곰1% 가게에 들러 물품을 먹거나 마시거나 구입하면, 반달곰1% 가게들은 수익금의 1%를 사단법인 반달곰친구들에 기부하고, 그 기부금이 모아지면 사단법인 반달곰친구들과 논의하여 올무수거 활동, 무인센서카메라 구입 등 반달곰 보전활동을 위해 쓰기로 약속하였다.] 글쓴이_ 정수진 하동으로 이주한 지 4년이 되었습니다. 겨울이 오면 남편과 함께 인도와 네팔에서 NGO 활동가로 살아가고, 꽃피는 봄이 오면 하동으로 돌아와 민박집을 엽니다. 텃밭을 가꾸고 이웃 농부들의 농산물이 잘 쓰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열심히 요리하고 나누어 먹습니다.
-
- 사람이야기
-
[반달곰1%가게유람기] "이 빵을 즐겁게 먹을 사람들을 상상해요" 파란돌 천연발효빵
-
-
일본 집이 20년이 지나면 0원이 되는 이유!
- 집 가격은 얼마가 적당한가? 얼마 전 일본에 사는 한국 여성분이 운영하는 유튜브를 봤다. 일본인과 결혼하여 시어머니 그리고 한국어를 유창하게 하는 딸과 함께 살고 있었다. 그중 한 에피소드에 일본 부동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일본 부동산은 20년이 지나면 집값이 0원이 된다는 것이다. 지대만 남고 집 가격은 사라진다. 그러면서 한국인 여성분은 한국은 집 가격이 오른다며 남편과 이야기를 하는데, 일본인 남편은 낡은 집이 가격이 오르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부동산을 구입하는 목적은 오르려는 지역이 아니라 삶이 편리한 곳을 구매해서 사는 것이라고 말한다. 아이들 학교가 가깝거나 직장 근처를 구입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일본이라고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그분들이 사는 곳도 도쿄였다. 한국의 부동산은 집도 오르고 지대도 오르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시골 부동산은 사실 지대는 오르지만 집 가격은 0원이 된 곳도 꽤 되지만, 대부분은 아직도 집 가격이 오른 곳이 많다. 우리 집도 이제 곧 20년이 되어간다. 2008년에 건축했다. 사실 나는 우리 집이 0원이라고 해도 별 상관이 없다. 이유는 팔 생각이 없어서다. 즉 매도 가격이 0원이지 가치가 0원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이 집을 팔아야 한다면 0원이어도 괜찮을 것 같다. 오른다면 그것이 더 이상하다. 중고차가 새 차보다 비쌀 수 없다. 중고차가 새 차보다 비싼 경우는 희소성 때문인데, 부동산에서 희소성은 입지일 것이다. 입지가 좋은 곳이라면 오를 수도 있을지도 모르겠다. 부동산이 오르면 가능성이 점점 줄어든다. 높은 부동산 가격은 새로운 시도를 막는 진입장벽이 된다. 일본은 90년 버블 붕괴 후 부동산은 오른다는 오래된 신화가 철저히 붕괴되었다. 우린 아직도 이 신화가 굳건하다. 부동산이 오르는 것은 산업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생산 활동을 하는 것도 아니며 부가가치를 생산하지도 않는다. 일본 대기업은 버블 시기에 압도적인 자금으로 해외의 부동산을 매입했다. 그리고 지금 일본 대기업은 점점 경쟁력을 상실하고 있다. 기업이 과감한 산업 혁신에 투자하지 않고 부동산에 투자한 결과다. 흔히 기존 성공에 안주해 더 이상의 기술 혁신 없이 손쉬운 자산 보유나 딴눈을 팔다 주저앉는 현상을 '중진국의 함정'이라 부른다. 그런데 일본은 이미 세계 정상에 섰던 선진국 기업들이 스스로 이런 안이한 선택을 해 함정에 빠져버렸다. 만약 모든 부동산이 저렴해진다면 지금 당장은 힘들어도 이후의 사람들에게는 기회가 될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집은 37살에 건축했는데 만약 당시 여기 지대가 지금처럼 높았다면 나는 여기에 살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 여기 지대가 과거처럼 저렴하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살 수도 있을 것이다. 글쓴이 : 조태용
-
- 사람이야기
-
일본 집이 20년이 지나면 0원이 되는 이유!
-
-
지리산의 옹달샘, 설산습지에서 만난 하동생태해설사회 정명희 대표
- 지리산의 푸른 품 속에 숨겨진 보석, '설산 습지'를 아시나요? ???? 우리나라 국토의 단 0.01%밖에 되지 않는 귀한 산지 습지이자, 목마른 야생동물들이 찾아와 목을 축이고 수많은 생명이 산란하는 지리산의 소중한 옹달샘, 설산 습지 현장을 다녀왔습니다. 학교 교실을 벗어나 자연이라는 거대한 공간에서 아이들과 온몸으로 호흡하며 생태 놀이를 이끌어가는 '하동생태해설사회' 정명희 대표님과의 깊이 있는 인터뷰! 삵과 담비가 뛰놀고 섬휘파람새 소리가 지저귀는 설산 습지의 특별한 이야기부터, 지리산의 자연을 진정으로 느끼고 보호하기 위한 올바른 탐방 에티켓, 그리고 지역 어린이들을 '어린이 해설사'로 키워내는 감동적인 활동 이야기까지 지금 영상으로 만나보세요. 00:00 인트로 00:30 설산습지를 만나는 방법 01:52 대한민국 0.01%의 귀한 보물, 산지 습지 02:46 물이 많은 산 지리산, 10곳의 규모 있는 습지들 03:25 야생동물들의 옹달샘, 생명을 품은 습지 05:25 삵부터 문수조릿대까지, 설산 습지의 생명들 07:55 "조용히 쉬어가는 공간으로" 설산 습지 탐방 에티켓 09:32 어린이 해설사와 함께 '동정호 생물다양성의 날' 12:11 하동의 자연을 사랑하는 하동생태해설사회 자연을 사랑하고 지키는 가장 아름다운 발걸음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지리산사람들TV #많은_관심_부탁드립니다 #설산습지 #지리산국립공원 #산지습지 #하동생태해설사회 #정명희대표 #생태해설 #지리산습지 #생물다양성 #동정호 #어린이해설사 #생태교육 #환경보호 #지리산여행 #하동여행 #자연다큐키는 가장 아름다운 발걸음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
- 사람이야기
-
지리산의 옹달샘, 설산습지에서 만난 하동생태해설사회 정명희 대표
-
-
사진으로 만나는 지리산 옛모습 - 우두성 선생님의 지리산 이야기 6
- “1955년, 등산복도 등산화도 없던 시절의 지리산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지리산 국립공원 지정의 역사를 다룬 우두성 회장 인터뷰, 그 마지막 3부에서는 숭고한 정신을 증명하는 귀한 사진과 기록물들을 대중 앞에 펼쳐 보입니다. 연하반 초기 멤버들이 구례읍 서시천 징검다리를 건너던 1955년의 그날부터, 등산 장비가 없어 남대문시장에서 군용 텐트와 판초를 구해 쓰던 애환, 그리고 폐자전거 흙받이로 이정표를 만들어 지리산 세석평전과 천왕봉에 붙이던 감동적인 순간까지. 시간이 흘러 빛바랜 사진 속에는 지리산을 그 누구보다 사랑했고, 아무런 욕심 없이 산을 지켰던 원로들의 순수한 '자연 애호 정신'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향후 구례의 소중한 역사 자산이 될 기록물들을 바라보며, 우두성 회장님이 오늘날 지리산을 찾는 이들에게 전하는 마지막 당부에 귀를 기울여보세요. 00:00 인트로 00:33 서시천에서 노고단으로 올라가는 첫 걸음 01:37 등산용품이라는 개념이 없었던 시절 02:33 노고단 정상에서 첫 촬영 03:08 자전거 흙받이로 만든 이정표 04:08 지리산에서 취사 04:14 최초의 지리산 안내지도 05:00 노고단 원추리 05:22 노고단 대피소가 생기기 전에 있던 집 06:28 연하굴 06:46 김원규 박사 07:27 사람들 08:38 노고단 선교사 별장 터 08:51 장터목 0858 천왕봉 성도성모상 09:20 자전거 흙밭이 안내판 10:14 쌍계사 벅수 10:58 선비샘 목공 장터 11:16 천왕봉 천주 12:24 60년대 회원들 사진 12:58 1980년 종주등반 13:34 철쭉제, 산나리축제 14:08 기록물을 어떻게 전시하는게 좋을까? 15:31 사람들 16:11 비목 17:04 지리산에 오르는 사람들에게 고함 #지리산 #국립공원 #지리산국립공원 #국립공원1호 #구례 #구례군 #지리산사람들TV #우두성 #우종수 #함태주 #연하반 #지리산역사 #아카이브 #역사사진 #희귀사진 #한국산악사 #기록물 #서시천 #노고단 #천왕봉 #천주 #세석평전 #구술사 #생애사 #역사의기록 #자연보호 #자연애호 #등산역사 #지리산박물관 #지리산사람들
-
- 사람이야기
-
사진으로 만나는 지리산 옛모습 - 우두성 선생님의 지리산 이야기 6
-
-
구례 군민 10,000가구가 10원씩 모아 만든 기적 : 지리산 국립공원의 탄생 / 장터목 고사목의 비밀 - 우두성 선생님의 지리산 이야기 5
- “가장 가난했던 시절, 구례 군민들은 왜 주머니 속 10원을 꺼냈을까요?” 대한민국 제1호 국립공원, 지리산. 정부의 주도로 당연하게 지정된 줄 알았던 지리산의 푸른 숲 뒤에는, 무분별한 도벌과 권력층의 파괴로부터 산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구례 군민 만 명의 피와 땀이 있었습니다. 이번 인터뷰 2부에서는 극빈층을 제외한 구례의 만 가구가 가구당 10원, 20원씩 마음을 모아 서울의 정부 부처를 움직였던 위대한 풀뿌리 운동의 전말을 공개합니다. 아울러 오늘날 국립공원이 마주한 보존과 지역 주민 생존권 사이의 갈등, 그리고 지리산과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지속 가능한 상생'에 대한 우두성 회장의 깊이 있는 통찰을 만나보세요. 00:00 인트로 01:03 만복대에서 씨감자 재배를? 지리산 개발 보고서 06:32 장터목 고사목의 비밀 - 장터목 제재소와 고의 방화 09:14 지리산 곳곳에서 벌어졌던 벌목 11:28 구례군민들이 10원, 20원씩 모아서 만든 기적 14:53 콘크리트 개발보다는 자연보호가 지역 소득에 도움된다 16:40 국립공원에 바란다 - 노고단 인원제한, 시간제한 18:36 국립공원에 바란다 - 지역민의 임산물 채취 21:40 국립공원에 바란다 - 여름철 계곡 통제 완화 25:27 우리에게 지리산이란 무엇일까? 30:17 기록사진을 남겨주신 함태주 선생의 자연 애호 34:36 지리산을 지키는게 주민에게 이익이 되어야 38:00 지리산과 구례 연하반 - 지리산을 알기위한 필독서 #지리산 #국립공원 #지리산국립공원 #국립공원1호 #구례 #구례군 #지리산사람들TV #우두성 #윤주옥 #10원의기적 #만명의개척자 #풀뿌리운동 #기부운동 #지리산역사 #한국환경운동사 #아카이브 #구술사 #생애사 #장터목제재소 #구상나무 #고사목군락지 #만복대 #씨감자 #고랭지재배 #탐방예약제 #임산물채취 #계곡물놀이 #지리산상생 #지역경제 #환경보전
-
- 사람이야기
-
구례 군민 10,000가구가 10원씩 모아 만든 기적 : 지리산 국립공원의 탄생 / 장터목 고사목의 비밀 - 우두성 선생님의 지리산 이야기 5
-
-
[빛나는 연대 순례하는 청명 10] 적당한 에너지 소비를
- 빛나는 연대 순례하는 청명 10 적당한 에너지 소비를 사람을 포함한 지구 생명을 해하는 온갖 일들이 여전히 벌어지고 있는 2026년 5월이 지나고 있습니다. 전쟁의 불길로 수천의 생명이 목숨을 잃거나 다치고, 연결된 세계는 후폭풍을 맞고 있습니다. 자본주의 지구에서 펼쳐지는 이러한 참혹한 사태는 어느새 일상이 되어버렸고, 끝은 좀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마냥 보고만 있어야 하는 시민의 처지로 낭패가 이만 저만이 아닙니다. 그동안 써왔던 울퉁불퉁한 글들을 다시 꺼내 읽어 보았습니다. 지난해 여름 속초방문을 시작으로, 새만금 신공항 철회 순례, 청주에서의 927 기후정의행진, 파주를 비롯한 여러 도시 방문, 영광에서의 한빛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과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규탄 집회, 신규핵발전 중단 요구 전국순례와 광화문 집회, 냉장고와 비움실천에 대한 이야기... 우리가 맞닥뜨린 현실 속에서 희망의 연대를 조금이나마 살펴보고자 했던 글도 이제 마무리하려 합니다. 부족한 글을 감내하며 읽어주신 독자님께 깊이 고마운 마음 드립니다. 간간이 드러낸 짧은 생각들이 누가 되지는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그런데 또!!^^;; 이번에는 발걸음보다는 '머리걸음'으로 마지막 연대의 소식을 전할까 합니다. 예전에 “권력주의 사회와 에너지 전환의 의미"라는 제목으로 잠시 끄적였던 단상입니다. 몇몇 지인들에게 전하기도 한 글입니다만, 무릅쓰고 연대의 마음으로 다시 내어 놓습니다. 딱딱하고 그렇습니다. “저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네!”라고 너그러이 봐 주시면...^^;; 시작합니다~ 지구에는 인간을 포함한 생명체가 살고 있습니다. 우주의 아주 작은 영역에 존재하는 생명체의 군집입니다. 그리고 저마다의 활동을 이어가며 생존과 풍요를 꿈꾸며 살아갑니다. 이는 관계라는 그물망에 기대어 이루어집니다. 생명체간의 협력과 대립을 통한 삶의 결과는 생존과 풍요의 질을 좌우합니다. 협력과 대립의 행위는 이념적 표현으로 권력주의의 유무입니다. 모든 사물과 현상은 권력이나 탈권력의 차이로 존재한다는 나름의 명제에 비추어 보면, 인류사에서 권력주의는 여전히 현 사회를 관통하고 있습니다. 비틀어진 계약에 근거한 자본주의의 착취적 구조는 사회 전반을 물질 만능과 투기적 품성이 팽배하는 왜곡된 사회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 같은 자본주의는 협력보다는 대립을 낳았으며, 강한 권력주의 사회로 자리 잡았습니다. 결국 파괴적 형국의 잔재는 생명사회에 각종위기와 재난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사회적 범위에서는 경제, 전쟁 ,핵, 기후가, 개인적 범위에서는 생활을 통해서입니다. 총체적 삶의 위기이자 재난입니다. 궁극적으로는 생명사회의 파괴를 목표로 치닫고 있는 셈입니다. 어떻게 할 것인가? 사회구성의 개체로 존재하는 인간의 행태가 어떤가에 따라 현재와 미래의 파국과 희망이 결정됩니다. 생존과 풍요의 삶은 누구나 원하는 희망입니다. 하지만 나만의 희망은 이룰 수 없는 환상입니다. 나만의 희망은 바로 권력자본주의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악순환의 길입니다. 누구나 생존과 풍요가 보장되는 생명사회로의 전환, 누구나의 희망을 바라봐야 합니다. 개체인간은 대체로 한정된 환경에서 살아갑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가치관이 형성되며, 삶의 지향점이 정해집니다. 구조적 폐해는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자본주의의 굴레는 강력합니다. 가치관 형성의 주된 영향을 끼치며 권력주의형 인간으로 변모시킵니다. 그렇게 자의든 타의든 살아가게 만듭니다. 대립은 점점 커져만 갑니다. 블랙홀 자본주의를 넘어설 행태는 어떤 것일까? 탈권력적인 인간 행태, 탈권력을 지향하는 삶입니다. 지금까지의 역사는 권력의 역사입니다. 위기와 재난으로 몰아가는 권력의 역사는 중지되어야합니다. 역사적 전환의 시대여야 합니다. 의식의 전환, 가치관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권력적 행태에 대한 반성과 성찰, 위기와 재난을 감지하며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라는 끊임없는 추구, 비록 당장은 낮은 권력 행태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환경이라도 점진적으로 바꿔나가야 합니다. 자본주의가 죄어놓은 권력적 틀을 조금씩 조금씩 끊어내어야 합니다. 그래서 생존과 풍요를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총체적 삶의 위기와 재난에 저항하는 탈권력의 길로 나서야 합니다. 자본주의 환경에서 태어나 살아가는 힘겨운 삶이지만, 비관을 넘어 누구나 자신의 삶속에서 탈권력의 꽃을 피어내어야만 합니다. 내재되어 있는 물질주의와 우리주의라는 권력행태에서도 벗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연대하고 또 연대해야 합니다. 그래야 지금의 이상 기후도, 방사능 핵도, 빈익빈 경제도, 죽음의 전쟁도, 헬 같은 생활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위기와 재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핵심 과제는 무엇일까? 바로 ‘에너지 전환’입니다. 에너지 전환은 생명사회의 존립을 좌우할 중대한 시대적 과제이자, 집약된 위기와 재난의 탈출구이기도 합니다. 과다한 생산과 소비. 이를 지탱할 에너지의 출구를 핵과 화석연료로 이어온 현대의 경제는 이제 막바지에 봉착합니다. 불평등과 지구환경의 파괴는 심각한 지경에 이르고, 성장위주의 경제는 급기야 브레이크를 밟아야만 합니다. 하지만 자본주의 경제는 성장으로 지탱하기에 제대로 밟지 못하는 모순에 빠집니다. 그렇다면 구조적 변화, 체제전환의 화두가 드러나고 이뤄져야 하지 않을까? 따라서 에너지 전환은 체제전환의 신호탄입니다. 핵과 화석연료에서 ‘태양광과 풍력을 비롯한 재생에너지’로의 질적 전환, ‘생산과 생활에서의 적당한 소비’라는 양적인 에너지 전환은 권력자본주의 체제를 바꿀 수 있는 참여형 혁신운동입니다. 공장에서, 상가에서, 사무실에서, 집에서, 이처럼 자신의 생활현장 속에서 실천하고 이웃과 연대하는 ‘적당한 에너지 소비’운동은 위기와 재난에서 벗어나고자하는 생명운동입니다. 공감과 위로의 연대가 넘치는 에너지 전환운동은 지금의 권력경제시스템을 바꾸는 막중한 역할로 자리잡을 것입니다. 누구나 즐겁게 사는 대안사회를 이뤄나갈 것입니다. 마칩니다~^^;; 지금까지 연대의 발길에 함께해 주신 독자님께 다시 한번 고마움을 전합니다. 늘 건강하고 즐거운 날들 이어가시길 희망합니다. 순례길 어느 곳에서 다시 만나 뵙겠습니다. NO WAR YES PEACE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에 대한 학살을 중단하라! 앗싸 탈핵!! 글쓴이 : 청명 연대! 나의 순례는 탈핵과 비움의 길, 그리고 연대의 길입니다. 내가 생각하는 연대는 ‘각자 할 수 있는 역량과 방법으로 참여하고, 서로의 경계를 허무는 것이다. 더하여 경계를 허문다는 것은 단절, 좁은 시야, 울타리, 권력, 불투명한 벽을 허물고 서로 공감하고 함께 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드는 여정이다.’ 한마디로 연대는 좋은 친구를 만들자는 것이라고 봅니다. 순례자 청명으로부터 지금까지 [빛나는 연대 순례하는 청명]을 연재해 준 청명, 그리고 이 글을 사랑해 주신 <지리산人> 독자님들께 두루 고마움 전합니다. 전쟁이 사라지고, 평화가 지켜지는 세상을 바라며, 날마다 청명의 발걸음에 생명평화의 기운이 가득하길 지리산人도 함께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지리산人> 드림
-
- 사람이야기
-
[빛나는 연대 순례하는 청명 10] 적당한 에너지 소비를
-
-
"길없는 지리산에 이정표를 세우다" 지리산 '연하반'의 자연 보전사 - 우두성 선생님의 지리산 이야기 4
- “지리산이 국립공원 1호가 되기 전, 그 산에는 누가 있었을까요?” 전쟁의 상처가 채 가시지 않았던 1950년대, 지리산은 단순히 헐벗은 산이 아니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치유의 공간이었고, 누군가에게는 반드시 지켜야 할 민족의 영산이었습니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지리산 보전의 뿌리인 ‘연하반(煙霞伴)’의 태동기를 다룹니다. 우두성 회장의 생생한 증언을 통해, 길도 없던 지리산 주능선에 이정표를 세우고 지도를 그리며 산을 지켰던 선구자들의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타임코드 아래에 연하반 반지문 본문이 있으니 확인해 주세요. 00:00 인트로 01:00 소개 02:40 초등학교 때 소풍으로 걸어 올라간 노고단. 08:06 연하반 - 지리산의 길을 열다 11:53 우리나라 최초의 자연 보호 선언, '연하반 반지문' 14:48 사라지는 숲을 지키기 위한 기록의 시작 19:46 지리산의 길을 만들다 - 자전거 흙받이로 만든 이정표 23:12 1962년 최초의 지리산 등반지도 제작 26:24 날라리봉? 삼도봉? 봉우리의 이름을 정리하다 29:50 군인들의 불법 벌목을 적발하다 烟 霞 伴 伴 旨 太古쩍 먼 옛날에 白頭山으로부터 뻗어나린 太白山脈의 큰 줄기가 南쪽 바다 푸른 물결이 그리워 南으로 南으로 向해 줄다름 치다가 굽이쳐 흐르는 蟾津江 푸른 가람에 가로막혀 그 精氣가 우뚝 솟아 멈추어 섯다는 由緖깊고 傳說어린 智異靈山아래 風光明媚하고 山紫水明 烟霞鄕 求禮!! 여기 烟霞人들의 모임이 있으니 烟霞伴이라 부른다. 烟霞는 元來 山水 卽 自然을 뜻하는 말이니 自古로 世俗的 富貴와 功名을 浮雲처럼 여기고 俗塵을 떠나서 閑雲野鶴을 벗삼아 樂山樂水 雅游瀁氣하는 賢人達士를 烟霞人이라 부른다 이에 烟霞人의 雅趣를 憧憬하고 또한 아름다운 自然과 더부러 짝한다는 뜻에서 烟霞伴이라 名稱하게 된것이니 따라서 烟霞伴은 情熱的으로 山水를 愛好 憧憬하는 이고장 山岳人들의 모임이다 그러므로 우리 烟霞伴은 끝없는 大地위에 펼쳐진 아름다운 山水를 향해 젊음의 浪漫과 情熱을 한껏 쏟아 삶의 보람을 느껴보자는 것이며 淸淨無垢한 大自然의 純潔한 廣場에서 無言의 感化속에 天地浩然의 英氣와 高邁한 人間情緖를 길러 心身의 修養을 쌓아보자는 것이며 또한 날로 荒廢해가는 우리 나라의 自然을 愛好하고 더욱 아름답게 가꾸어 보자는 것이다 大地를 맑게 누비며 흐르는 물줄기와 山野를 덮은 原始林의 푸른숲은 人類發生의 源泉이요, 原始文化의 發祥地이며 또한 人類의 唯一한 마음의 故鄕이 였음에 想到할때 오늘의 우리民族은 祖國江山의 荒廢로 因하여 마음 둘곳없는 精神的 失鄕民이 되어가고 있음을 自覺하고 痛歎하는바 이에 우리 烟霞伴은 잃어가는 綠地帶 마음의 푸른 故鄕을 다시 찾으려는 自然愛好運動의 先驅되어 民族的 情緖運動의 줄기찬 噴水가 되고저 自負하고 이땅에 自然愛好의 烟霞運動을 저마다 고장마다 일으켜 이름 그대로 地上의 樂園 錦繡江山을 이룩하는데 寄與하고저 함이니 이 江土위에 아름다운 自然이 蘇生되여 우리 겨례가 마음의 故鄕을 다시 찾게 되는날 槿域의 삶위에 보다 瑞光 빛나리 一九五五年 五月 五日 求禮烟霞伴 #지리산 #국립공원 #지리산국립공원 #국립공원1호 #연하반 #구례 #지리산사람들TV #우두성 #우종수 #지리산역사 #한국산악사 #기록 #아카이브 #자연보호 #자연애호 #노고단 #화엄사 #지리산지도 #구술사 #생애사 #지리산종주 #역사기록 #1955년 #개척사 #환경운동 #생태보전 #지리산탐사 #지리산사람들 질문하기
-
- 사람이야기
-
"길없는 지리산에 이정표를 세우다" 지리산 '연하반'의 자연 보전사 - 우두성 선생님의 지리산 이야기 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