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7-20(월)

사람이야기
Home >  사람이야기

실시간 사람이야기 기사

  • 사라져 가는 겨울놀이
    사라져 가는 엄천강의 놀이 자연에서 이제 볼수 없는 풍경이 되었다
    • 사람이야기
    2022-02-20
  • 탐욕에 대하여
    ■ 『지리산 人』의 생각 탐욕에 대하여 지리산 자락, 섬진강 하류 기슭 어느 구석에 거처를 마련하고 처박힌 지도 벌써 10여년 세월이 흘렀다. 나는 이곳으로 들어오면서 사실은 새로운 인생살이를 꿈꾸며 들어왔다. 누구든 자신의 새로운 삶을 위해서는 그 상황과 조건을 바꿔내려고 새로운 각오를 한다. 나도 이곳에 들어오며 새 집을 짓고 상량문에 그 마음을 새겼다. 노자와 묵자에서 빌려와 無爲無不爲무위무불위와 愛人若愛身애인약애신이라는 글을 새겼는데 집이 내려앉을 때까지 얻지 못할 말을 새겨놓고 쳐다볼 때마다 후회하며 살고 있다. 無爲無不爲를 새길 때만해도 나름의 해석을 글로 정리하기도 했는데 그 일부를 보면 대충 이렇다. “......나무는 어디도 가지 않고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세상의 비와 바람을 다 맞는다. 그리고 꽃을 피워 봄이 있게 하고, 벌과 나비의 양식이 되고, 씨를 맺어 생명을 잉태한다. 평생을 한 곳에서 한 치도 움직이지 않지만, 스스로에게 또는 세상에게 하지 않은 것이 없다. 사실은 이처럼 모든 것은 그 존재 자체로 스스로 빛나는 것이다.......” 무엇을 인위적으로 하지 않으면서도 하지 않는 것이 없다(無爲無不爲)는 그 말이 당시에는 너무 매력적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일상에서 행동하고 실천하는 것이 얼마나 높은 경지의 삶이라는 것도 모르고 그냥 그 내용이 멋있어서 그렇게 나댔었나 싶다. 하지만 21세기 현대인들은 이 무위무불위의 진리를 용납하지 않는다. 저절로 운영되는 우주자연의 존재적 질서와 그 존재의 순환적 질서를 철저하게 깨며 이루어낸 것이 오늘날 현대문명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현대의 과학기술문명은 자본주의를 만나 발전된 것이기에 오늘날 우리 문명사회는 자본의 본질적 특성의 하나인 탐욕을 내장하게 된다. 성장주의나 물량주의, 물질만능주의 그리고 지독한 이기주의, 이런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는 인간의 탐욕을 그대로 실현시켜온 현대문명의 특징들이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자본의 논리는 끝없이 탐하는 인간의 탐욕이 반영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탐욕은 반드시 폭력을 유발할 수밖에 없다. 돌아보면 이러한 탐욕이 상류 기득권층의 카르텔을 자연스럽게 형성하여 보이지 않게 우리 사회를 폭력적우로 지배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모두는 아니겠지만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과 법을 집행하는 검사들과 그것의 여론을 주도하는 언론인, 그리고 재벌들이 결탁하면 대한민국은 이들의 나라였다. 그 중심에는 무소불위의 권력인 검찰이 있었다. 검찰의 눈으로 보면 누구든 털면 나오는 것이고, 누구든 죄인으로 만들고 안 만들고도 그들의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그러하니 골목대장 검찰의 주변에 붙은 언론인과 정치인들, 재벌들이 얼마나 많았겠는가. 검찰은 이러한 자연스럽게 조성된 기득권 세력의 카르텔 속에서 중심을 형성하며 지금껏 부정부패를 저질러온 곳이지만 이것을 바로잡기는 너무 어렵다. 과거 군부독재 시절의 검찰은 모든 법의 우위에 있는 중앙정보부나 안기부 같은 기관이 충분히 통제할 수 있어서 청와대의 수족 노릇을 할 수밖에 없었지만 족쇄에서 풀려난 지금은 검찰을 통제할 기관이 없으니 그야말로 최상위 포식자의 위치에 있는 것이다. 공수처 설치의 필요성은 여기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검찰개혁인데 문재인 정부가 조국을 앞세워 대대적으로 검찰을 개혁하려하자 검찰은 전쟁을 불사할 수밖에 없었다. 최상위 포식자의 권한을 내려놓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니 목숨을 건 전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전쟁이 벌어지면 도덕이나 상식과 같은 일상의 룰은 깨지게 되어 있다.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는 과정이 아니라 결론이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상대를 죽여야만 내가 살기 때문이다. 그들은 공수처라는 상위 포식자가 두려워 전 조국 장관을 반드시 죽여야만 했다. 그것을 윤석열이 진두지휘 하였으며 검찰은 이제 윤석열 이후 그냥 검찰이 아니라 정치검찰이라는 본색을 그대로 드러냈다. 대통령 선거가 진행되고 있는 지금 기득권 카르텔에 들어와 있는 언론인과 법조인과 정치인들은 자기들의 입맛에 맞는 대통령을 뽑기 위해 모두 자발적으로 참여해서 총력전을 펼치고 있는 상황이다. 사실 이 모든 것의 본질적 원인을 짚어보면 아마도 4,5백 년 동안 진화해온 자본주의 속에서 제어장치 없이 커온 인간의 탐욕에 이를 거라고 생각한다. 탐욕이라는 것은 생존의 욕구로부터 시작되고 삶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지만 그 생존욕구가 탐욕으로 탈바꿈하는 경계선을 인간은 제어하기 힘들다. 그래서 사회적 도덕률과 법률로써 재어하려 하나 그 법률 자체가 잘못되어 있으면 그것도 어려운 일이 되고 만다. 국회라는 곳이 그러한 역할을 하는 것이지만 국회의원들은 자신의 이익과 파당적 이익에만 매몰되어 필요한 법을 만들어내는 것에도 힘쓰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게 법이 만들어졌다 해도 그것을 운영하는 판검사들이 또 조화를 부린다. 그리고 언론들은 그것을 왜곡해서 보도한다. 그러면 올바른 여론은 형성되지 않고 사회적 도덕률이라는 것도 없는 것이다. 그래서 권력이라고는 1표밖에 없는 국민들이 이들에 휘둘리지 않고 올바른 투표를 해서 우리사회의 바른 잣대로서 그 몫을 해야만 한다. 하지만 현대인들이 이런 의식을 가지고 바르게 세상살이를 하기란 쉬운 일은 아니다. 왜냐하면 국민들 또한 자본 속에서 자라난 탐욕의 울타리를 벗어나서 살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먹고 사는 일’이 쉽지 않은 세상에서 탐욕은 이미 21세기의 삶 속에서 인간의 보편적 정서로 자리 잡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드는 것이다. 이 탐욕이야말로 폭력의 근원이고 모든 순환 질서를 깨는 근본 원인이지만 이것은 오늘날 현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경제성장이라는 이름으로, 개인에게는 행복이라는 이름으로, 또는 당위적 삶이라는 이름으로, 현실이라는 이름으로, 혹은 자유라는 이름으로 스스로를 정당화하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들 또한 우리사회나 다른 누구의 탐욕에는 분노하면서 자신의 탐욕에는 관대한 그런 뻔뻔스러운 삶을 잘도 살고 있기 때문이다. (글 박두규 시인) -반야봉 설경(사진 김인호)
    • 사람이야기
    2022-02-07
  • 돌담
    돌담 김기홍 발길에 걸리는 모난 돌멩이라고 마음대로 차지 마라 그대는 담을 쌓아 보았는가 큰 돌 기운 곳 작은 돌이 둥근 것 모난 돌이 낮은 곳 두꺼운 돌이 받치고 틈 메워 균형잡는 세상 뒹구는 돌이라고 마음대로 굴리지 마라 돌담을 쌓다보면 알게 되리니 저마다 누군가에게 소중하지 않은 이 하나도 없음을 *김기홍 시인(1957~2019) 전남 순천 출생, 1984년 실천문학 등단, 시집 『공친날』 『슬픈희망』 -피아골 추동마을 (사진 김인호)
    • 문화예술
    • 시를 찾아서
    2022-02-07
  • 自然스러운 사람
    自然스러운 사람 13세기 지금의 터키 지역에 나스레딘 호자라는 사람이 있었다. 어느 날 그가 당나귀를 잃어버려 울면서 하루 종일 찾으러 다니다가 갑자기 팔을 올리고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다. “신이시여. 참으로 감사드리옵나이다.” 이 모습을 본 어떤 사람이 물었다. “당나귀를 찾다 말고 웬 감사요?” 그러자 호자가 대답했다. “내가 그 당나귀 위에 올라타고 있지 않았다는 사실에 감사한다네. 만약 그랬더라면 내 자신도 잃어버렸을 것 아닌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하는 재미있는 이야기다. 당나귀는 그 지역의 특성상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고 당시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살고 있는 집 다음으로 큰 재산이었을 것이다. 나스레딘은 현자였기 때문에 재물을 잃고서도 감사할 수 있었다. 재물을 잃은 것도 슬픈데 마음마저 잃고 자신을 잃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라는 깨달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나귀 위에 올라타고 있지 않았다는’ 것은 재물에 마음을 두지 않았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자본주의 현대를 사는 사람들은 누구나 재물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서 항상 일상생활에서 손해와 이익을 따지며 산다. 그렇지 않으면 현실을 살아갈 수 없는 바보가 되고 무능력하다는 말을 듣게 된다. 하지만 나무가 손해와 이익을 따지면서 서있는 것이 아니고, 하늘의 별이 반짝이는 것 또한 손해와 이익을 계산해서 빛나는 것이 아니건만 얼마나 아름답게 잘 살고 있는가. 우리도 그런 자연이 될 수는 없는 것일까? 아니 자연自然스러운 사람이라도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언젠가부터 나는 ‘자연스러운 사람이 되어 자연스럽게 살자’는 슬로건 하나를 갖게 되었다. 옷차림이 참 자연스럽다고 하면 세련되고 멋지다는 말이고, 분위기가 자연스럽다는 것은 자유로우면서 편하다는 이야기고, 말하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것은 꾸밈이 없고 진실하다는 말일 것이다. 더 다양하게 쓰이고는 있지만 종합해보면 ‘자연스럽다’는 것은 진실하며 자유롭고 아름답다는 것이다. 그런데 ‘자연스럽다’는 말의 뿌리는 ‘자연(自然)’이니 사실은 ‘자연’이 그러하다는 것이다. 산과 바다의 일상이나 비가 오고 꽃이 피는 일 등이 자연이고 자연의 현상인데 그것들에 무슨 거짓이 있을 것인가. 그래서 성현들은 자연은 진리요 도(道)이고 법(法)이며 생명 그 자체라고 말해왔다. 그러니 인간사 모든 문제의 답도 자연에 있다는 말은 틀림이 없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요즘 사람들은 ‘자연’보다는 ‘자연산(自然産)’만 좋아한다. 너 나 할 것 없이 자연산을 찾는다. 그리고 그것은 생태환경과 함께 사회적 문제의 본원에 있는 자본주의 대량생산이 가지는 문제와 궤를 같이 하는 것이다. 어쨌든 현대인들은 그렇게 자연과 거리를 두고 있고 자연이 가진 진리와 도(道), 법(法)이며 생명 그 자체와는 떨어져 살고 있는 것이다. 어느 책에서 본 ‘호수 위를 날아가는 기러기가 제 그림자를 호수 위에 드리우되 일부러 그러지 아니하고, 호수는 기러기의 그림자를 비추되 일부러 비추려하지 않는다.’ 라는 구절이 생각난다. ‘자연스럽다’라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지 않겠는가. 흐르는 물처럼 주어진 삶의 조건과 환경 속에서 자기 본연의 삶을 충실하게 살다보면 타자와도 저절로 어울리게 되고 하나의 완성된 아름다운 그림이 되니 ‘자연’이 바로 그러하지 않은가. 그리고 그 기러기나 호수의 마음에 근접해 있는 사람이 바로 ‘자연스런 사람’ 아니겠는가. -박두규(시인)
    • 사람이야기
    2022-01-16
  • 귀농농부에게 추천하는 아피오스
    초보 농부에게 추천하는 작물 "아피오스" 귀농해서 어떤 농사를 지을까 고민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아피오스는 농약이나 특별하게 관리가 필요가 없는작물입니다. 단 판매가 힘들 수도 있으니 지인이 많은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 사람이야기
    2022-01-11
  • 노후 대책으로 심은 블랙 사파이어 포도
    구례 현근종 농부는 노후 대책으로 블랙 사파이어 포도를 심었다.
    • 사람이야기
    2021-11-03
  • 꽃들이 미쳤어요?
    보험 많이들 가입하셨죠? 자동차 보험에, 생명보험이나 아이들의 건강에 관한 보험 등. 이 글을 읽는 분 중에도 1개 이상의 보험에 가입하셨을 거로 생각합니다. 보험은 혹시나 일어날 수 있는 여타의 일에 대해 개인적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선택한 사회적 보장제도입니다. 우리나라의 최초의 보험은 뜻밖에도 사람이 아니라 ‘소’입니다. 조선 시대에 소 한 마리에 1냥씩 강제로 보험에 가입시켰습니다. 보험 가입이 안 된 소는 매매할 수 없도록 했지만, 농가의 반발에 소 보험은 그리 오래 가지 못하고 폐기되고 맙니다. 요즘 여기저기서 봄꽃이 피었다는 얘기가 들립니다. 대표적인 봄꽃인 노란 개나리는 해마다 가을이면 꽃을 보여줍니다. 이제는 벚나무도 꽃을 보여주고, 사과도 꽃을 보여주지요. 이런 봄꽃을 가을에 만나면 반가움보다는 의아한 것이 먼저입니다. 그래서 쉽게 철없는 것들, 혹은 꽃들이 미쳤다고 말합니다. 과연 꽃들이 미쳤을까요? 봄에 피는 꽃은 춘화현상을 겪은 후에 꽃이 핍니다. 춘화현상은 겨울의 추운 자극을 받고 난 후에 꽃을 피우는 현상을 말하고 봄에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겨울의 혹한을 견디어야 합니다. 하지만 어느 드라마 제목처럼 겨울이 따뜻하면 봄꽃은 어찌 될까요? 모든 식물은 온도의 영향이 중요하지만, 햇빛의 양에도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이렇듯 햇빛의 길이에 따른 영향을 광주기성이라 합니다. 식물은 광흡수센서인 피토크롬으로 빛의 양을 측정해서 겨울눈이 꽃으로, 잎으로 피어납니다. 우리가 아는 흔한 나무 중에 느릅나무가 있습니다. 느릅나무 형제들은 비술나무, 느릅나무, 참느릅나무, 시무나무 등이 있는데 모두가 봄에 5월까지 꽃이 다 피어요. 그런데 그중에 하나 참느릅나무가 9~10월에 꽃이 핍니다. 느릅나무와 형제 종인데 꽃피는 시기가 너무 다릅니다. ‘참느릅나무는 왜 이렇게 가을에 꽃필까?’ 라는 질문은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의문이었습니다. 봄하고 가을은 많이 다른 것 같지만 비슷한 것이 있어요. 해의 길이가 비슷해서 즉, 일조량이 비슷해서 빛의 세기와 강도가 비슷합니다. 우리는 계절을 알기에 봄과 가을이 완전히 다른 것을 알지만, 식물은 온도나 일조량 등 우리와는 다른 방식으로 계절을 안답니다. 앞서 말했듯이 봄에 꽃 피는 식물은 춘화현상이라고 해서 차가운 겨울을 느껴야 봄에 꽃을 피웁니다. 그런데 빙하기와 간빙기를 넘나들었던 지질학적 시간으로 보면 지금보다 훨씬 따뜻한 겨울이 있었던 적도 있어요. 그래서 혹여 따뜻한 겨울에 대해 대비도 해야 합니다. 가을과 봄은 태양 빛의 길이가 비슷하기 때문에 여름을 따뜻한 겨울이라 판단을 내릴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일조량은 비슷한데 뭔가 다르니까 봄처럼 꽃을 많이 피우지는 않고 몇 개만 피우는 거예요. 몇 개만. 정말 따뜻한 겨울이면 몇 개는 남아서 번식해야 하니까요. 식물에 관심이 있으신 분이라면 가을철에 뽕나무가 꽃을 피워서 열매 맺히는 걸 보신 적이 있을 거예요. 처음에는 참느릅나무도 다른 느릅나무 형제들처럼 봄에만 폈겠죠. 하지만 가을에 꽃을 피우고 열매 맺었던 느릅나무가 그런 식으로 해서 참느릅이란 종이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요. 봄에 꽃 피는 식물 중에서 혹시나 따뜻한 겨울이 지난 줄 알고 가을에 피는 몇몇 식물들이 가을에 열매 달려서 떨어져 싹을 내린 애가 가을 꽃피는 애들로 이렇게 변화해서 나오지 않았겠느냐는 그런 생각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개나리, 벚나무, 우리가 봄에 핀다고 믿는 식물 중에서 이렇게 가을에 피는 애들은 우리가 생각하듯이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아는 에너지 과잉시대에 사는 인간이 생각하기에 미친 것처럼, 철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식물들 입장에서는 겨울이 따뜻했으면 어떡하지라는 보험을 든다고 본다는 거죠. 그래서 에너지 낭비가 아니라 번식할 수 없는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서 조금씩만 꽃을 피워보는 이런 식의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요. 저는. 그래서 꽃들이 미친것이 아니라, 꽃들이 철이 없는 게 아니라. 진화적으로 축적되어 온 삶의 또 다른 보험을 드는 하나의 방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멸종을 피하기 위한 전략인 거죠, 인간과 마찬가지로. 철없이 꽃 핀 아이들이 가냘프게 피운 그 삶의 몸짓은 우리와 같은 살아남으려는 치열한 삶의 현장인 듯싶어 애달프기도 하고 또 동지애도 느껴지는 이 가을입니다. * 글을 쓴 조숙경 님의 별명은 느림보입니다. 느림보는 <사단법인 숲길>에 근무하는 숲해설사입니다. 매월 마지막 목요일에 진행되는 목동반 소식을 전할 느림보는 매우 아름다운 목소리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느림보의 목소리가 궁금한 분은 매월 마지막 목요일에 떠나는 목동반 답사에 함께하면 됩니다.
    • 사람이야기
    2021-11-01
  • 남원 운봉에서 비트 농사를 짓는 농부를 만나다.
    • 사람이야기
    2021-09-28
  • 숲에서는 두 손을 비워두세요
    숲에서는 두 손을 비워두세요 칩코(지리산 방랑단) 사람 다섯과 개 하나가 도로 위를 걷고 있다. 차들은 그들 옆을 지날 때 구경하듯이 조금 속도를 늦춘다. 옷차림새가 비범하다. 어르신들 말을 빌리자면, '머스만줄 알았는데 가스나'거나 '가스난줄 알았는데 머스마'인 외관이다. 빡빡 머리가 둘이라 스님인 것도 같고, 인도나 태국 따위의 어디 외국에서 온 것도 같다. 개는 허스키나 늑대처럼 생겼지만 진도 믹스라고 한다. 말을 걸어보니 지리산 방랑단이라고 소개한다. 무전으로 여행하며, 지리산의 사라지는 숲 이야기를 채집한다고 한다. 요즘 같은 시대에 무전여행이라니. 코로나도 말썽인데 얻어먹고 얻어 잔다니. 그런데 어쩐지 볼살들은 통통하다. 의외로 잘 먹고 다니는 모양이다. 얼굴이 햇빛에 그을러서 활짝 웃는 이가 더 하얘보인다. 그 중 한 사람을 조명해보자. 두 빡빡머리 중에 조금 더 머리가 허옇게 밀린 사람이다. 파란색 누더기 바지를 입었다. 가시나무 한번 스쳤다가는 죽 찢어지고 말 정도로 헤졌다. 한번은 구멍을 기우러 어느 집에 실과 바늘을 동냥하러 갔다. 상냥한 주인집 어르신은 바지 꼴을 보시더니, 그냥 새 바지를 한 벌 주셨더랜다. 바지는 거절하고 반짇고리만을 받아든다. 핫핑크색이라서 그랬던가... 휴지 조각 같은 바지를 입고 다녀도 나름의 취향이랄 게 확고하다. 궁상맞은 취향의 주인은 칩코다. 칩코는 헌 옷만으로도 충분하다. 돈 벌 생각도 많지 않다. 칩코는 엄마를 좋아한다. 그러나 엄마 집에 친구를 데려갈 때면, 한 가지 꼭 해명을 해주고 마는 것이 있다. 집 현관문에 붙은 종이다. 종이엔 노란빛 오만원권 사진과 함께 "돈은 나와 하나다"라는 다소 노골적인 문구가 적혀있다. 친구가 그걸 안봤으면 좋겠지만, 그러기엔 너무 중앙에 붙어있다. 약간 부끄럽다. 오해를 여기서 풀자면, 엄마가 그 종이를 붙인 맥락을 설명해야 한다. 엄마는 칩코의 마음수련 스승이자 도반이다. 엄마는 칩코가 누군가나 어떤 것을 미워할 때면, 그와 너 자신이 결국 하나임을 알라고 했다. 둘을 분별하지 말라고 했다. 엄마를 가장 괴롭히는 것은 아마 돈이었다. 엄마는 돈과 친해지기 위해 그런 사진과 문구를 적은 것이었다. 칩코의 현관문이 있다면 무엇을 적었을까? 돈은 아닐 것 같다. 돈에 관심이 없고, 일단 돈으로 사고 싶은 게 없다. 이런 자신의 모습이 쿨해보여서 마음에 들기도 하다. 그래서 지리산 방랑단을 선뜻 시작할 수 있었다. 칩코는 평생 돈이 없는 축에 속했지만, 정말 한 푼도 없이 살아 본 적은 처음이다. 방랑은 참으로 멋졌다. 매일 기적같은 인연들을 만났다. 평소에 돈이 없어서 못 들어가 볼 식당이나 민박에서 탁발을 받기도 하고, 돈으로 환산할 수 조차 없는 호의를 경험했다. 돈 없이도 이렇게 풍요롭고 행복하다니! 당최 돈이 왜 그리 새침하고 콧대 높은지 모르겠는 나날들이었다. 자본주의의 숨겨진 빈틈을 발견한 기분이랄까. 방랑단들은 사라진 숲 이야기들을 채집하고 다닌다. 함양의 오도재는 대규모 특화 단풍숲을 조성하기 위해 축구장 80개 면적의 숲을 없애버렸다. 남원은 육모정에서 정령치를 지나 달궁까지 이르는 산악열차 사업을 추진 중이었다. 구례에서는 야생의 숲을 빼앗기고 철창에 갇혀 사는 반달가슴곰과 소들을 볼 수 있었다. 방랑단들은 기억산책에서 이 이야기들을 전하며, 많이 울기도 울었다. 우리는 베어진 나무가 되어 보기도 하고, 갇힌 동물이 되어보기도 했다. 칩코는 그러던 중 한 가지 통찰에 이르렀다! 아픈 이야기들의 공통점이 있던 것이다. 그렇다, 모든 사정이 다 돈, 돈에서 시작한 것이 아닌가? 단풍숲도, 산악열차도, 반달가슴곰과 소들도, 모두 돈을 벌기 위해서였다. 돈이 이미 있지만, 더 많이 축적하기 위해서! 칩코는 희한했다. 돈이랑 엮일 일도 없던 사람인데... 칩코가 찾아다니던 이야기들은 죄다 돈에서 비롯된 것들이었다. 칩코와 돈이 무슨 징한 인연이 있는 것인가. 칩코는 그제야 별 관심도 없던 돈이 밉다. 칩코는 엄마의 현관문에 붙은 종이를 떠올렸다. 어떤 것이 미워질 때면 그와 나 자신이 하나라는 것을 알라던 엄마의 말. 방랑을 하며 행복했던 이유가 뭐람! 돈을 바라지 않고도, 사람들은 베풀 줄 알았다. 식은 밥 주기가 미안하시다면서, 밥을 새로 지어주던 마음들. 한 데서 어떻게 자느냐며, 빈 방을 청소해 내어주시던 마음들이 있었다. 사랑도 받은 사람이 줄줄 안다고 했던가. 칩코는 분에 넘치는 베품들을 받으면서, 조건없는 베품이란 어떻게 줘야하는 것인지 배웠다. 돈을 미워하는 건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다만 돈으로부터 자유로워질 뿐! 이는 숲의 방식이기도 했다. 숲에서는 셈할 수 없는 것들이 무상으로 주어진다. 솔향을 품고 멀리서 낮게 불어오는 바람, 나뭇잎 새로 듬성듬성 쏟아지는 햇살줄기, 고요를 채우는 아름다운 새의 노랫소리. 이 모든 것들이 눈부신 선물이었다. 선물을 받아본 사람이라면, 그저 내어줘 본 사람이라면 알았다. 소유란 무용한 것. 네 것과 내 것의 구분을 없애면, 소유는 무용해진다. '내 것'을 내려놓을수록 세상은 더욱 넓어진다. 그래서 소유는 두려움의 다른 말. 더 큰 세상을 바라보는 데에 두려움은 필요하지 않으니까. 그렇게 숲은 넓어지고, 다양한 존재들을 품게 된 걸까. 저 멀리 숲 속을 걸어가는 지리산 방랑단이 보인다. 칩코는 숲을 지키기 위해, 자신이 할 일을 골똘히 생각해본다. 숲의 방식으로 방랑할 것. 두려움 없이 더 넓은 세상을 사랑할 것. 아아 숲의 선물들을 정중히 받으려면, 두 손을 언제나 비워둘 것!
    • 사람이야기
    2021-08-26
  • 지리산권에 불어오는 새바람이 되길
    지리산권에 불어오는 새바람이 되길 임봉재 (자문위원) 『지리산人』 이 지리산의 친구로 살아 온 세월만큼이나 지리산에 기대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소통의 길잡이 역할을 해 왔을 것입니다. 이제 인터넷신문으로 탈바꿈하게 된다니 베어져 나가는 나무가 조금은 줄어들겠다는 생각이 들어 반갑기도 합니다. 그동안 지리산자락에 둥지를 틀고 저마다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서로의 얼굴은 본 적 없어도 『지리산人』이라는 신문을 통해 서로의 삶을 나누고 알아가는 좋은 소통의 길라잡이 역할을 해 왔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러기에 인터넷에 익숙하지 않은 나이 든 어르신들은 인터넷신문을 어려워하지 않을까 염려가 되기도 합니다. 코로나19로 사람들이 여러모로 많은 불편함을 겪으면서도 나름 잘 적응해 가는 우리들의 모습에서 그 같은 염려는 내려놔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멈출 줄 모르는 인간들의 끝없는 욕심으로 인해 극심한 몸살에 시달리던 지구, 결국 기후변화와 온난화에도 대응하지 않으니 코로나19가 나타나서 위기에 놓인 지구를 대신하여 그 어떤 정치권력도, 군사와 무력도 피해 가지 못하게 발을 묶어 놓는 현상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잘 사는 사람이나 못사는 사람이나 잘사는 나라나 못사는 나라나 다 같이 코로나19의 악재를 피해 가지 못하고 세계가 하나같이 어려움을 겪고 있으니까요. 거리두기와 마스크를 쓰지 않고는 바깥나들이도 할 수 없는 세상이 되어버린 지도 벌써 2년! 백신으로 답답한 마스크를 벗어버릴 날이 올 것이라는 기대를 가져 보기도 하겠지만 편리함에 길들여진 우리들의 욕심을 내려놓고 삶의 틀을 바꾸지 않는 한 쉽사리 마스크 없이 살 수 있는 날이 올까? 더구나 지금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들에서부터 이제 갓 태어나는 아이들뿐 아니라 다음세대 아이들은 마스크 쓰고 지내는 풍경이 하나의 당연한 풍속처럼 받아들여지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참 슬퍼지다 못해 미안하고 부끄러운 마음을 떨쳐 버릴 수가 없습니다. 아무튼 『지리산人』 신문이 인터넷신문으로 탈바꿈하면서 그만큼의 나무는 살아남겠다 싶어 그야말로 지리산의 좋은 친구 ‘『지리산人』이라고 하겠습니다. 어떤 것에도 장단점이 있듯이 그동안 『지리산人』 을 만드느라 원고 수집에 편집하여 인쇄소로 발로 뛰며 수고하시고 또 우편 발송까지 많은 수고를 하신 선생님들의 고충이 인터넷신문으로 전환되면 그러한 수고들은 조금이라도 덜어질 수 있을지, 그동안 자문위원이라는 이름만 달고 제대로 도와드리지 못한 죄스러움과 미안한 마음에 이런저런 생각들로 머리 숙여 용서를 빕니다. 그동안 숱한 어려움 속에서도 잘 헤쳐 오셨듯이 앞으로도 인터넷신문 『지리산人』 이 새바람을 타고 지리산의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과 반달가슴곰 이야기, 지리산의 아름다운 자연과 문화뿐 아니라 철 따라 일어나는 이야기들을 인터넷신문을 통해 지리산권의 사람들 뿐 아니라 지리산권 바깥 세계까지 널리 알려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슬쩍 얹어 인터넷신문 『지리산人』 화이팅입니다.
    • 사람이야기
    2021-08-26
비밀번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