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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는 편지] 지리산에서 보내는 펜팔
    디자인.칩코 <지리산에서 보내는 펜팔> 글. 칩코(지리산방랑단 기획단) 잘 지내시나요? 방랑단이 사라진 숲을 찾아 떠난지 두번째 겨울이 왔어요. 제가 처음 지리산으로 향했던 그 해는, 지리산을 알프스로 만들겠다는 산악열차 사업이 파도처럼 하동을 덮친 해였어요. 겨우 발등의 불을 끈 산악열차 반대 활동가들이 ‘친구를 만들러 왔다’며 아무것도 모르는 제게 손을 내민 사정도 그만큼 지쳤다는 뜻이었겠죠. 저 역시 알프스가 아니라 지리산을 찾아왔기에 손을 덥석 잡았고요. 문제는, 제가 지리산을 지키기엔 지리산과 데면데면한 뜨내기 이주민이라는 점이었어요. ‘지리산방랑단’은 그래서 생겨났어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지리산인지, 얼마나 크게 또 어떻게 흐르는 것이 지리산인지 알아야 했으니까요. 지리산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법을 궁리했어요. 그 결과 지리산의 야생동물을 스승삼아, 여섯명의 친구들이 사개월간 지리산을 무전으로 방랑했답니다. 날마다 지리산에게 얻어 먹고, 얻어 자면서요. 지리산의 사라진 숲이야기를 찾아다녔어요. 노숙도 걸식도 처음이라 ‘지리산방랑단’은 제게 장마철의 불어난 계곡물처럼 벅차기도 했지만, 저의 구석구석을 헤집고 떠났어요. 제가 방랑단 이후로 산골짜기에 부는 바람에 대고도 인사를 하게 되었다면 믿으시겠어요? 그물에 걸린 구름처럼 움직이는 하루살이 떼도, 낮에 뜬 조각달도, 솜씨좋은 수달과 물까치도, 낙하산을 타고 비행하는 꽃씨들도... 모두 귀퉁이를 접어둔 동화책을 보는 마음으로 느끼게 됐다면요. 더는 지리산이 제게 겸연쩍은 타인이 아니라, 한없이 다정한 친구가 된 거예요. 어느덧 방랑단이 사라진 숲을 찾아 떠난지 맞는 두번째 겨울. 하동의 타고 남은 불씨가 남원으로 옮겨간 올해, 매섭게 진군하는 산악열차 사업을 터진 둑을 망연히 바라보는 심정으로 발만 동동 굴렀어요. 저는 더는 스스로 뜨내기 이주민이라고 여기지 않았거든요. 지켜야할 지리산의 얼굴을 이젠 선명히 아니까요. 하루에도 몇장씩 자보를 만들고, 문화제를 열어 소란을 내고,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불쑥 서명지를 내밀면서 동분서주했어요. 안타까운 중간발표를 하자면 터진 둑은 끝내 돌이키지 못했고요. 눈물샘도 어딘가 둑이 터졌는지 울기도 많이 울었어요. 제가 베인 나무가 된 것도 아닌데... 누군가는 엄살이라 면박을 줄지 모르지만 분명 저는 힘들었어요. 수취인이 불분명한 선언문들이 왜 그토록 공허했을까요. 누가 들어줄 지도 모르는 말을 쏟아내고 아무나 붙잡고 호소하는 일이요. 환경운동은 때로 이런 기분으로 저를 이끌어요. 물 속에서 도저히 어디에도 닿지 않는 악을 지르는 기분으로. 내 편이라곤 한 줌의 모래처럼 빠져나가고 사막에 혼자 있는 기분으로. 텅 비어가는 지역의 목소리를 실감했달까요. 그렇게 올해를 보낸 소감을 자문하자면, 저는 그날로 돌아가있어요. ‘친구를 만들러 왔다’던 활동가들과 마주한 그날. 물론 그 지친 말을 이젠 제가 뱉는 장면으로요. 허우적대던 무렵, 지리산이 머릿속에서 댕-하고 경종을 울렸어요. 저는 친구를 만드는 방법을 이미 알고 있다고요. 방랑을 하면서 지리산에게 배웠더군요. 사실 수취인은 한 명이어도 충분해요. 단 한 명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문장들이면 충분해요. 허공에다 고래고래 외칠 게 아니라, 하나의 눈동자라도 반드시 마주보면서 외쳐야 한다고요. 방랑하면서 만난 바람과 새와 나무가 제게 그렇게 해주었거든요. 제가 그들을 사진 속에서만 만났다면, 두 해 전 온전히 그들 품으로 뛰어들어 마주하지 않았다면 절대 몰랐을 방법으로요. 어김없이 겨울이 돌아오는 건 기적이에요. 마고여신에게 기적을 보여달라고 하면 아마 겨울 철새들이 북쪽하늘을 뒤덮겠지요. 방랑단은 이번 겨울에 다시 떠날 거예요. 전국을 편지로 방랑하며 친구를 만드는 거예요. 첫 발자국은 서울의 환경활동가들로 향합니다. 이름하여 <지리산에서 보내는 펜팔>! 활동가들이 지치지 않는 겨울을 나면 좋겠어요. 지구를 돌보는 게 우리의 목적이라면, 그 과정마저도 돌봄이 될 수 있도록요.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네 명의 방랑단과 네 명의 서울의 환경활동가들이 각각 짝을 지어 펜팔을 나눕니다. 서울의 환경활동가들은 12월 중에 익명으로 모집했어요. <참새와 돌>, <유우야와 갈토>, <토토와가로>, <덕복희와 산달> 네 팀의 펜팔 이야기가 연재됩니다. 먼 곳에서 서로 닮은 삶을 살아가는 환경활동가들의 우정을 전할게요. 우리 삶에 자연스레 녹아든 지리산의 소식을 함께 실을게요. 텅 비어있던 수신란에 단 한 사람의 이름을 가득 채운 편지를 띄울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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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1-09
  • [2022년 동지모임 후기] 눈 내린 동짓날, 지리산동지들이 만났습니다
    눈 내린 동짓날, 지리산동지들이 만났습니다 2008년부터 동지가 되면,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지리산사람들’(이하 지리산사람들)은 구례에 계신 분들과 팥을 삶고 새알을 빚어 동지팥죽을 쑤었습니다. 팥죽을 나눠 먹으며 한해의 지치고 힘든 마음을 어루만지고, 다가올 새해를 힘차고 따뜻하게 열어가자고 다짐하였습니다. 지리산사람들은 올해(2022년) 동지에는, 지리산 산악열차 백지화 활동에 온 마음을 모았던 만큼 지리산, ‘지리산운동’ 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좋겠다고 이야기되어, 지리산자락에서 활동하는 분들을 초대하였습니다. 팥죽은 직접 쑤지 않고, 화엄사에 올라가 공양하였고요. 지리산자락에 사는 사람들에게 ‘지리산’은 어떤 의미일까요? 스스로 ‘활동가’가 말하는 분들은 지리산운동에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요?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자 만난 ‘지리산동지모임’은 동짓날인 12월 22일 12시 20분부터 14시 20분까지, 화엄사 범음료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지리산동지모임은 이렇게 흘러갔습니다. 오신 분들 모두, 어디에서 어떤 활동을 하는지 이야기한 후, 올해 마음 안에 남아있는 액(좋지 못한 일, 사건 등)을 쓰고, 박두규 시인으로부터 ‘지리산운동에 대한 생각나누기’를 위한 마중물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모인 분들은 마중물 이야기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게도 하고, 뭔지 모를 답답함이 있어, 이렇게 저렇게 움트는 생각들을 이야기하였습니다. 박두규 시인의 마중물 이야기입니다. “ ... 오늘 우리가 지리산 운동이라는 화두로 서로 이야기하는 것은 새로운 내년, 앞으로의 일들을 같이 생각해본다는 의미가 있다. ... 지리산 운동이라 하면, 일반적으로는 지리산 개발에 대한 반대운동, 지리산댐 저지 운동에서 시작해서 케이블카·산악열차 반대 등 개발에 반대하는 의미의 운동적 성격이 주를 이루어왔다. 반달곰, 수달, 구상나무와 같은 생태·환경적 문제도 지리산 운동의 범주에 넣고 그런 정도로 인식해왔다. 담론화되지는 않았다. 지리산자락에 벌어지는 문제들을 열심히 막아내고 있고 막아내려 하고 있고 당장에 불을 끄는 일들만 해왔다. 이와 함께 해야 할 일은 논의의 장이 된다면 원인에 대한 이야기를 깊게 나누고 총체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모임, 세력을 만드는 것이다. 지리산에 야기된 많은 문제들은 지자체상의 문제만이 아니다. 21세기 들어온 500년 동안에 만들어진 문제를 풀어내려면 우리의 현실적인 삶 문제와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 지리산 운동은 삶을 바꿔내는, 가치관을 바꿔내는 것과도 연결이 되어있다. 철학적인 문제도 연결돼있다. ... 자연의 순환논리가 차단된 것을 터서 지구가 순환되도록 바라는 것이다. ... 크게 보면 새로운 문화운동, 대안문명, 대안문화운동이기도 한 것이 지리산운동이다. 케이블카, 산악열차 이런 문제만이 아닌 더 심각한 기술문명, 기계문명이 가지고 있는 위기도 머지않아 우리의 현실로 당혹스럽게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거기에도 결국은 휴머니즘, 인간성의 상실이 깔려 있을 수밖에 없다. ... 이 모임이 그러한 출발에 있다고 본다. 이것을 현실로 가져오려면 이 모임이 어떻게 추동되느냐가 중요할 것이다. 이 모임이 정례적으로 이루어질 때마다 개인의 의견을 공론장으로 끌어와서 개개인들이 하나로 공론화되는 이야기들을 공유하고 또 그렇게 만들어갔으면 한다. ... 무언가 내용을 빨리 채우고 체제를 정비해서 사업을 벌이는 것보다는 일단은 서로 개개인의 삶을 소중하게 받아들이면서 그러한 이야기를 토대로 깊은 관계성, 친밀성을 유지하고 그러면서 이 모임을, 지리산 운동을 발전시켜 나가면 좋겠다.“ ‘지리산운동’이라고 하니 산악열차, 케이블카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었지요. ”지리산에 내려온 다음 해에 4개 지자체에서 케이블카를 놓겠다고 얘기했었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지리산은 하나다.’라고 얘기해왔다. 이 표현은 우리가 하난데 서로 하겠다고 하면 안된다는 이야기를 하기에 좋은 문구였다. ... 지리산에 케이블카가 올라가는 것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지리산의 케이블카를 계속 지자체장들이 이야기함으로 인해서 이 지역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 안에 케이블카와 산악열차, 짚라인, 모노레일 이런 것들이 마음 안에 들어가는 것이 더 두려웠다.“ (윤주옥) ”우리가 무언가를 막아낸다는 목적에 사로잡혀서 그 뜻에 함께 할수 있는 이웃들을 잊고 있지않았나. 그 이웃들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모임. 그러한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고민하게됐고 그런 고민들을 세분이 엮어주셔서 여기까지 오게 된 것 같다.“ (최지한) ”기본에 충실하자는 말처럼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기본만 간신히 잘하는 게 아니라 기본만 내밀어도 다 해결될 수 있을만큼 잘하는 것을 기본에 충실하다고 얘기하는 것 같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막는 게 아니라 근본적인 것을 생각해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주신 것 만으로도 감사하다. ... 산악열차도 마찬가지로 내가 이렇게 아름다운 지리산을 지키기 위해서 옆 사람에게 전해줘야하는데 ... 이 단계에서 실행할 수 있는 부분을 제시해주는 사람이 있고 차근차근 단계가 있어야 거기에 맞는 행동을 하거나 마음을 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유지선) ”산내에서 살기 시작하면서 지리산과 삶의 연결감을 찾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산악열차 이야기를 들어서 친구들과 뭐라도 해보자하고 산내삼거리에서 일인시위를 시작했다가 지리산사람들과 연결되었다. 다음해에 지리산방랑단이라는 여행을 떠나면서 지리산과 연결될 수 있는 이야기가 제 안에 들어온 것 같다. ... 구례로 오면서 산악열차 반대활동에 같이 목소리를 담고자 노력했다. 너무 어려운 활동이더라. 어디서부터 어떻게 행정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것인지 내가 연대할 수 있는 사람들이 누구인지도 알기 어려웠다. ... 그렇게 활동하다가 지치거나 되려 상처받는 제자신도 발견했다. 활동가들이 서로 마음을 나누면서 상처받지 않게끔 돌보는 시간을 보내는 것이 너무 중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오늘 이 자리가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 ... 지리산에 숨어 있는 이야기들을 삶 속에서 자신과의 연결을 찾을 수 있는 기회들이 저희 세대에게도 많이 있었으면 좋겠다.“ (상글) 지리산운동이 1시간 30분 차를 타고 움직여야만 가능할까요? 각자 사는 지역에서 좀 더 세심하게 움직여야지요. ”터지는 걸 막는게 아니라 터지는 것 막는것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인 고민들, 그게 뭐가 될지 모르겠지만 그런 생각들을 같이 가져가는게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근본적인 고민을 우리끼리 대화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야하는지 교육정책에 관심을 가져야 나중에 아이들이 컸을 때 좋은 세상에서 살지 않을까 생각한다.“ (정태준) ”... 산악열차나 큰 이슈가 있을 때에는 뭉치지만 일상적으로는 각자 자기가 발 딛고 서 있는 지역에서 사람들이 계속 같이 맞대고 이야기하고 퍼뜨리는 점조직 형태가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한다. ... 삶에서 연결됐으면 좋겠다고 여는 말씀 해주신 것처럼 어떻게 운동이 삶이 될 수 있을까 ... 그런 지혜를 가진 사람들 옆에서 조금씩 배워나가고 다음 세대들에게 전하는 삶이 그런 운동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가까이 있는 사람들을 돌보면서 살고 아이들에게도 계속 손내밀고 자연스럽게 살고. 그 방법이 장기적으로 볼 때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 우리가 군수가 되고 의회, 의원이 되면, 정치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우리가 그 자리를 선점해서 이런 짓꺼리를 못하게 막았으면 좋겠다.“ (문현경) ”지리산운동이 북극성을 바라보듯이 방향성으로 잡고 가는 것과는 별개로 우리의 삶의 태도나 가치, 철학과 관련되서는 직접 보지 않아도 공유할 수 있다. 그런데 직접 보면 더 좋을 것이다. ... 지리산의 공적인 방향, 대안적인 방향, 소외된 생명에 소홀하지 않고 내가 넘침이 없이 균형감을 가지고 살아갈수 있으되 다만 우리의 문제가 결국은 각 지역에서 안정된 바람직한 형태로 자리잡고 꽃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왔다.“ (정태연) 그래도 좀 더 확장된 ‘지리산운동’은 필요해 보입니다. ”지리산권에 사는 대안적인 삶을 지리산운동이라는 이름으로 이끌어가다 보면 산악열차가 실패했다하더라도 주변에 많은 사람들에게 지지받고 그 동력으로 함께 갈 수 있지 않을까. 지리산운동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이 참 좋다.“(박은주) ”우리 지역에서 사람모으기가 힘들어서 파이를 키워서 사람을 모으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사실 저도 지리산권 청소년들이 모여서 뭔가를 해보는 것을 기획하고 진행하고 있는데 나름대로 명분들이 있지만 모으기 힘든 청소년들을 지리산권으로 넓혀서 모으고 있는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 기대되는 것은 범위가 넓어진 만큼 다른 환경과 다른 분위기 속에서 지리산권이라는 공통점, 지향점을 상당부분 마음 속에 갖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있기 때문에 전혀 색다른 시도들을 배울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김한범) ”... 같은 지리산권에 있지만 한 시간 반 걸리는 먼 지역들은 서로 잘 모르기 때문에 서로 배우는 시간을 가지면서모임을 갖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김인호) ”구례나 산내나 지리산을 바라보고 사는 사람들과 남원 시내, 산청 읍내 등 멀찌감치 바라보는 사람들이 지리산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다는 느낌이 있다. ... 지리산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지리산의 어떤 가치를 공유하고 그 가치를 어떻게 같이 만들어가야하고 그럼으로써 지리산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비슷한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해나가는 운동이 박두규 님이 말씀하신 지리산 운동의 의미가 아닐까. 가치를 좀더 구체적이고 쉬운 언어로 보다 많은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게 하는 것을 이 모임에서 준비하면 좋겠다. ... 지리산에 살지 않더라도 애정과 관심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연대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주는 것이 필요한 것 같다.“ (임현택) ”지리산운동이라는 커다란 방향에 대해 같이 의논하고 마음을 나누는 자리라고 한다면 방향을 설정해놓고 열린 모임을 했으면 좋겠다. ... 좀더 다양한 사람들이 서로 교류하고 네트워킹할 수 있는거라면 좀더 열린 무언가로 너무 느슨하지 않게 가져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겠됐다.“ (자유) ”지리산자락에 있는 모두가 개인의 의견을 가져와서 나누고 자기 지역에서 고민하고 일했던 사안들. 사건화되지 않아도 되고 사건화된것도 있을 것이고 다양할텐데 개인적으로 고민하는 것들을 가져와서 공론화시키자는 것이다. ... 모든 가능성을 가지고 열어놓고 이야기할 수 잇는 장이었으면 좋겠다. ... 조급하게 일을 만들어 나가는 것보다도 그런 것들 하나하나 점검해나가면서 차분하게 서로 가까워질 수 있는 그러면서 개인이 어느 지역에서 하고 있는 활동들도 충분히 개인적 고민과 함께 이야기하고 상황적 문제도 고민하고. 개인의 문제도 공유하면서 개인의 문제를 공론화하고 거기에서 출발하자.“ (박두규) ”많은 이야기가 나왔다. 공유하는 자리, 개인의 이야기를 하는 자리, 꿈을 만드는 자리, 정형화된 틀을 만들지 않고 두 번째 자리를 만들어서 우리의 이야기를 이어갔으면 좋겠다.“ (신강) 눈은 계속 내리고, 산청, 함양에서 온 활동가들의 엉덩이가 들썩였습니다. 아쉽지만 오늘의 동지모임은 이쯤에서 마무리하고 다음을 기약해야 할 시간입니다. 모두 함께 새해를 맞이하는 시를 읽고, 종이에 쓴 액을 날렸습니다. 액은 누군가가 나에게 준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음을 액을 날리면서 깨달았습니다. 오늘 다하지 못한 이야기들, 개발 반대 운동을 넘어서 우리 삶을 바꾸고, 세상을 평화롭게 하는 지리산운동의 꿈을 향한 내딛음, 시작하였으니 차분히, 벅찬 마음으로 나아가야겠습니다. 내년에 다시 만날 지리산동지모임은 이 글을 읽는 그대를 포함한 모두가 초대손님입니다. 지리산 산악열차 백지화를 위해 노력하는, 농사짓고 아이들과 만나면서 좋은 세상을 꿈꾸는, 너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느끼며 돌봄과 치유를 위해 마음 쓰는, 그러한 우리가 다시 만날 그날을 기대해봅니다. 기록. 김주리 사진. 김인호 글. 윤주옥 * 박두규 시인의 마중물 글과 김주리 님이 정리한 지리산동지모임의 기록, 첨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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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2-29
  • 인간의 탐욕, 그 쓸쓸함에 대하여
    인간의 탐욕, 그 쓸쓸함에 대하여 박 두 규 (시인) 연말연시를 맞아 바쁘게 살다가 어쩌다 담배라도 하나 빼물면 ‘아, 한 해가 또 가는구나.’ 하며 나도 모르게 긴 숨을 내뱉게 된다. 무슨 큰 걱정거리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왠지 그 긴 숨은 한숨처럼 내뱉어져 스스로를 우울하게 한다. 어쩌면 그 우울함은 한 해가 가고 또 한 살을 먹고 그만큼 남은 삶이 줄었고 그만큼 죽음에 다가갔다는 무의식적인 뇌의 반응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언젠가부터 나는 이렇게 외부의 상황에 별다른 생각도 없이 반응하는 몸과 뇌의 기억에 끌려 다니는 것이 못마땅해서 자주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편이다. 그리고 그런 기억의 관성적 반응을 하는 나를 ‘들여다보는 나’의 편이 되어 다시 생각을 정리해내곤 하는 버릇이 있다. 그럴 때 시로 정리되는 경우도 간간이 있는데 올 연초에도 이런 시를 썼었다. “새해 첫 모심/ 오시는 숨, 기쁘게 모시고/ 가시는 숨, 미련 없이 여읜다./ 모든 게 고맙다./ 새해 꼭지를 따며 스스로에게 당부한다./ 허접한 일상을 살지라도/ 세상의 모진 바람에 고개 숙이지 않기를./ 이승의 궁벽한 어느 구석일지라도/ 아무런 미련 없이 처박히기를.” 지리산 자락, 섬진강 하류 기슭 어느 구석에 거처를 마련하고 처박힌 지도 벌써 10여년 세월이 흘렀다. 나는 이곳으로 들어오면서 사실은 새로운 인생살이를 꿈꾸며 들어왔다. 누구든 자신의 새로운 삶을 위해서는 그 상황과 조건을 바꿔내려고 새로운 각오를 한다. 나도 이곳에 들어오며 새 집을 짓고 상량문에 그 마음을 새겼다. 노자와 묵자에서 빌려와 無爲無不爲무위무불위와 愛人若愛身애인약애신이라는 글을 새겼는데 집이 내려앉을 때까지 얻지 못할 말을 새겨놓고 쳐다볼 때마다 후회하며 살고 있다. 無爲無不爲를 새길 때만해도 나름의 해석을 글로 정리하기도 했는데 그 일부를 보면 대충 이렇다. “......나무는 어디도 가지 않고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세상의 비와 바람을 다 맞는다. 그리고 꽃을 피워 봄이 있게 하고, 벌과 나비의 양식이 되고, 씨를 맺어 생명을 잉태한다. 평생을 한 곳에서 한 치도 움직이지 않지만, 스스로에게 또는 세상에게 하지 않은 것이 없다. 사실은 이처럼 모든 것은 그 존재 자체로 스스로 빛나는 것이다.......” 무엇을 인위적으로 하지 않으면서도 하지 않는 것이 없다(無爲無不爲)는 그 말이 당시에는 너무 매력적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일상에서 행동하고 실천하는 것이 얼마나 높은 경지의 삶이라는 것도 모르고 그냥 그 내용이 멋있어서 그렇게 나댔었나 싶다. 하지만 21세기 현대인들은 이 무위무불위의 진리를 용납하지 않는다. 저절로 운영되는 우주자연의 존재적 질서와 그 존재의 순환적 질서를 철저하게 깨며 이루어낸 것이 오늘날 현대문명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현대의 과학기술문명은 자본주의를 만나 발전된 것이기에 오늘날 우리 문명사회는 자본의 본질적 특성의 하나인 탐욕을 내장하게 된다. 성장주의나 물량주의, 물질만능주의 그리고 지독한 이기주의, 이런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는 인간의 탐욕을 그대로 실현시켜온 현대문명의 특징들이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자본의 논리는 끝없이 탐하는 인간의 탐욕이 반영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탐욕은 반드시 폭력을 유발할 수밖에 없다. 돌아보면 이러한 탐욕이 상류 기득권층의 카르텔을 자연스럽게 형성하여 보이지 않게 우리 사회를 지배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모두는 아니겠지만 법을 만드는 정치인과 법을 집행하는 검사들과 그것의 여론을 주도하는 언론인들이 결탁하면 대한민국은 이들의 나라였다. 그 중심에는 무소불위의 권력인 검찰이 있었다. 검찰의 눈으로 보면 누구든 털면 나오는 것이고, 누구든 죄인으로 만들고 안 만들고도 그들의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그러하니 골목대장 검찰의 주변에 붙은 언론인과 정치인들, 재벌들이 얼마나 많았겠는가. 검찰은 이러한 카르텔을 형성하며 지금껏 부정부패를 저질러온 곳이지만 이것을 바로잡기는 너무 어렵다. 과거 군부독재 시절의 검찰은 모든 법의 우위에 있는 중앙정보부나 안기부 같은 기관이 충분히 통제할 수 있어서 청와대의 수족 노릇을 할 수밖에 없었지만 족쇄에서 풀려난 지금은 검찰을 통제할 기관이 없으니 그야말로 최상위 포식자의 위치에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의 본질적 원인은 4,5백 년 동안 진화해온 자본주의 속에서 제어장치 없이 커온 인간의 탐욕일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탐욕이라는 것은 생존의 욕구로부터 시작되고 삶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지만 그 생존욕구가 탐욕으로 진화되는 경계선을 인간은 제어하기 힘들다. 그래서 사회적 도덕률과 법률로써 재어하려 하나 그 법률 자체가 잘못되어 있으면 그것도 어려운 일이 되고 만다. 法이라는 것이 글자처럼 물이 흐르는 것처럼 시대에 따라 변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국회라는 곳이 그러한 역할을 하는 것이지만 그곳에 소속되어 있는 자들이 자신의 이익과 파당적 이익에만 매몰되어 변화를 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온 국민들이 이들의 진영에서 휘둘리지 않고 우리사회의 바른 잣대로서의 그 몫을 해야만 한다. 하지만 현대인들이 이런 일에 참여하는 것 또한 쉬운 일은 아니다. 왜냐하면 앞서 말한 탐욕은 이미 21세기의 삶 속에서 인간의 보편적 정서로 자리 잡고 있는 것 같아서 그렇다. 이 탐욕이야말로 폭력의 근원이고 모든 순환 질서를 깨는 근본 원인이지만 이것은 오늘날 현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경제성장이라는 이름으로, 개인에게는 행복이라는 이름으로, 또는 당위적 삶이라는 이름으로, 현실이라는 이름으로, 혹은 자유라는 이름으로 스스로를 정당화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들 또한 우리사회나 다른 누구의 탐욕에는 분노하면서 자신의 탐욕에는 관대한 그런 뻔뻔스러운 삶을 잘도 살고 있기 때문이다.
    • 사람이야기
    2022-12-13
  • 국립중앙박물관 다녀왔습니다
    얼마전 국립중앙박물관 외규장각 의궤 귀환 10주년 기념 특별전 '외규장각 의궤, 그 고귀함의 의미'를 잘 살펴보고 왔습니다. 오로지 전시회를 보러 다녀왔고, 잘한 결정이었습니다. 만족스럽습니다. 의궤 가치를 모르지 않지만, 굳이 서울까지 가서 반환 받은 의궤를 실물로 본 이유가 있었습니다. 프랑스와 벌였던 외규장각 의궤 반환협상 관련 책을 읽고 후 머리속에 떠오른 의문들 때문입니다. - 형식적이지만 노략질해간 무도한 자들에게 '반환'이 아닌 '장기대여'라는 모욕을 감내하며 가져올 만큼 그 의궤는 가치 있었을까? - 오히려 그곳에 두고 프랑스와 정치, 경제 협력에 압박용 지렛대로 사용하는 것이 더 실리를 얻는 방법이 아니었을까? - 내용은 같으나 왕이 보는 '어람용 의궤'와 의정부와 예조, 춘추관과 4대사고에 보관하고 중신들이 참고하는 '분상용 의궤'의 가치는 과연 반환협상에 무리를 할 만큼 차이가 있을까? 이러한 의문에 부정적 마음 강했고 지금도 그대로 이지만, 어람용 의궤들을 살펴본 후 그 마음이 크게 흔들렸습니다. 의궤. 책으로서 그 품격과 아름다움이 주던 느낌은 아직 깊이 남아있습니다. 책의 재질, 글과 그림, 내용에 정확함과 정성. 사치스러운 아름다움이 아니라 기능적이면서도 세련된, 격조 높은 책이 보여주는 최고의 질감을 느꼈습니다. 인쇄된 의궤 도록으로 느낄 수 없는 기쁨이었습니다. 내려오는 차안에서 든 생각은 또다른 뿌듯함입니다. 지금 영국이나 일본같은 입헌군주제를 우리공동체에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자리에서 '주먹감자'를 날릴 서점주인이지만, 조선에 주인은 명실상부 왕이었습니다. 지금 기준으로 과거를 재단할 수 없습니다. 나라의 주인에게 바치고 그 체제에 권위를 보이는 책이 '어람용 의궤' 였습니다. 그럼에도 세련되나 사치스럽지 않고, 고귀하나 정확함과 기능성을 잃지 않았습니다. 나라의 주인에게 보고하고 바치는 책에서 조선 공동체의 역량을 느꼈습니다. 전부터 조선을 업수이보지 않았으나 과연 그러했습니다. 지금 우리 공동체 주인인 '민주'에게 바치고 공개되는 보고서와 자료들 그리고 언론의 글들을 생각합니다. 주인이 많으니 천박해져도 될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그저 정직하고 주인을 두려워 하는 엄격함 그리고 효율성을 바랄 뿐입니다. 틈틈히 살피고 평가해서 우리 공동체의 역량과 격을 가늠해 보겠습니다. 조금 답답합니다. 언제든 어디서든 의궤와 반환협상에 대해 많은 분들과 생각 나눌 기회가 생기면 좋겠습니다.
    • 사람이야기
    2022-12-08
  • 올무 없는 지리산, 더 나아가 올무 없는 한반도를 위하여
    올무 없는 지리산, 더 나아가 올무 없는 한반도를 위하여 겨울입니다. 겨울은 겨울잠을 자는 야생동물들이 쉼터를 구하는 시기이고, 겨울잠을 자지 않는 야생동물들은 먹이를 구하기 위해 온 힘을 집중하는 시기입니다. ‘야생생물보호및관리에관한법률’에 의하면, 국립공원(보호지역)과 관계없이 올무, 덫 등의 밀렵도구를 제작, 판매, 소지, 보관, 설치, 사용하는 것은 모두 불법입니다. 그럼에도 별 문제의식 없이 밭 주변에 올무 등을 설치하는 분들이 있으며, 간혹 야생동물을 잡아먹거나, 팔기 위해 의도적으로 올무 등을 설치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야생동물이 올무, 덫 등에 걸리면, 빠져나가기 위해 앞으로만 나아가기 때문에, 올가미는 점점 더 조여져, 결국 야생동물은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올무, 덫 등은 생명을 서서히 죽이는, 생명의 존엄성을 빼앗는 살상무기입니다. 매월 1회 이상 진행하는 올무수거활동, 12월에는 반달곰친구들, 지리산사람들, 지리산국립공원전남사무소, 국립공원연구원 등이 함께 합니다. 언제 : 12월 12일 (월) 만나는곳 : 12일 낮 1시30분, 구례버스터미널 물어보기 : 010-4686-6547
    • 고을이야기
    • 구례
    2022-12-07
  • [참여자 모집] 지리산에서 보내는 펜팔
    지리산에서 보내는 펜팔 잘지내니? 방랑단이 사라진 숲을 찾아 떠난지 두번째 겨울이 왔어
    • 사람이야기
    2022-12-07
  • [2022.12.3. ~ 12.18] 구례의 길 위에서
    구례의 길 위에서 나예심- 바느질. 민종덕- 사진. 박은주- 리스 2022년 12월 3일 (토) ~ 12월 18일 (일) 11시 ~ 17시 (수요일은 쉽니다) 느긋한쌀빵 2층 공간 (봉서산정길 61-8) + 물어보기 : 010-3351-7174
    • 사람이야기
    2022-12-05
  • 2004.04.12 생명평화 탁발 순례 남원구간 기록
    2004년도의 사진을 보다가 공유합니다. 어머니의산 지리산은 우리가 스스로 지켜내야 합니다.
    • 사람이야기
    2022-11-30
  • 시골 빵집이야기
    사실 너무 오래되어서 어떻게 인연이 되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남원 금지면에 우유와 달걀을 쓰지 않고 우리밀로 빵을 만든다는 말을 듣고 찾아 간 것 같다. 지금은 우리밀 빵을 만드는 곳이 꽤 많다. 다른 곳은 모르겠지만 구례에는 우리밀 빵집이 수입밀을 사용하는 빵집보다 많다. 아마도 우리밀 재배를 많이 하고, 가까운 곳에 우리밀 가공공장이 있다는 점도 한몫했을 것이다. 하지만 15-6년 전에는 우리밀 빵집을 보기 어려웠다 거기다가 우유와 달걀을 넣지 않고 통밀로만 빵을 만드는 곳은 정말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런 고집에 끌려서 인연이 되었을 것 같다. 건강한 빵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우리밀 통밀빵을 만든 것도 좋은 일이지만 하지만 그보다 더 좋은 일을 하고 계셨다. 어느 날 빵 공장에 갔더니 꼬맹이 아이들이 놀고 있었다. 누구예요? 우리 딸들이에요. 예쁘죠! 네…. 딸이 있었나요? 네. 이상하게 생각하자 모두 입양했다고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 집에 아들만 두 명이었고 이미 청년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학교에 다녀오면 빵 공장에서 숙제를 하고 빵을 간식으로 먹고 있던 꼬맹이 아이들은 이젠 모두 청년이 되었다. 어제 오랜만에 빵공장을 찾았다. “사장님.. 아이들은 이제 다 컸죠. 이제 대학생 고등학생쯤 되었겠네요.” 했더니 초등생 아이도 있다고 한다. 그사이 한 명을 더 입양했다고 한다. 아이가 ADHD에 지적장애가 있어 오랫동안 입양이 안 되고 있어서 입양했다고 한다. "많이 힘드시겠어요? "그러게요." "생각보다 힘들어요." 그래도 아이가 다른 사람들은 자기에게 자꾸 화를 내고 뭐라고 하는데 엄마는 나를 이해해줘서 정말 고맙다고 말할 때마다 힘이 난다고 하셨다 발달장애나 지적장애 또는 ADHD가 있는 아이를 키우는 것은 일반 아이들을 키우는 것보다 10배 이상 힘이 들 것 같다. 소통이 잘 안 되기 때문에 스트레스도 많을 것이다. 아이와 실랑이하다 보면 너무 지치고 힘들지만 그래도 아이가 농사일도 잘하고 너무 귀엽고 예쁘다고 한다.. .아무도 데려가지 않는 아이가 너무 불쌍하고 맘이 아파서 이미 세 명을 입양 했는데 또 입양한 분들이라니…. 아이들이 많다 보니 빵만 만들어서는 키우기 힘들어 농사도 짓고 있다고 한다. 직접 키운 밀로만 빵을 만들기 때문에 오래전부터 농사를 짓고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 포도 농사와 사과 대추 농사도 짓고 있다고 한다. 과일 농사를 하니 아이들이 포도와 대추도 맘껏 먹어 좋다고 한다. 착한 소비라는 말이 있다. 선한 사람들이 선한 생각으로 만든 제품을 구입하는 것이 착한 소비일 것이다. 구매는 일종의 투표 행위와 같다. 이분들의 만드는 빵이야말로 좋은 투표라는 생각이 든다.
    • 사람이야기
    2022-11-25
  • 꿘투
    꿘투 관장님께 권투는 권투가 아니라 꿘투다 20년 전과 바뀐 것 하나 없는 도장처럼 발음도 80년대 그대로다 가르침에도 변함이 없다 꿘투는 훅도 어퍼컷도 아니라 쨉이란다 관중의 함성을 한데 모으는 KO도 쨉 때문이란다 훅이나 어퍼컷을 맞고 쓰러진 것 같으냐 그 전에 이미 무수한 쨉을 맞고 허물어진 상태다 쨉을 무시하고 큰 것 한 방만 노리면 큰 선수가 되지 못한다며 왼손을 쭉쭉 뻗는다 월세 내기에도 어려운 형편이지만 20년 넘게 아침마다 도장 문을 여는 것도 그가 생에 던지는 쨉이다 멋없고 시시하게 툭툭 생의 문을 두드리는 것이다 도장 벽을 삥 둘러싼 챔피언 사진들 그의 손을 거쳐 간 큰 선수들의 포즈도 하나같이 쨉 던지기에 좋은 자세다 (이장근의 시「꿘투」전문) 요즘 TV중계 속에서 공공연하게 돈벌이 혈투를 벌이는 종합격투기에 밀려 사양길에 오른 꿘투는 묘한 향수를 불러온다. 당시 헝그리 복서들은 그래도 뭐랄까 일정부분 순정적인 면이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일제 강점기의 깡패와 요즘 조폭의 차이라고나 할까. 폭력의 상품화라는 관점으로 보면 20년 전의 복싱이나 요즘 격투기에 무슨 차이가 있을까만 그래도 영혼들까지 자본에 팔아넘기는 요즘 세태와 비교해보면 꿘투에는 가난을 극복하기 위한 서러운 살림살이의 애환이라는 스토리를 함유하고 있기도 해서 왠지 조금은 다르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이 시 속의 권투 도장 관장님도 20여 년 동안 돈벌이도 되지 않는 도장을 고집스럽게 운영하면서 권투를 버리지 못하는 것을 보면 그는 나름의 철학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그의 꿘투 철학은 ‘꿘투는 훅도 어퍼컷도 아니라 쨉이다.’ 라는 것이다. 권투의 핵심은 쨉이라는 그의 생각은 ‘일상성의 철학’을 느끼게 해주는 대목이다. 우리가 사는 하루의 삶을 생각해보자. 아침에 일어나 밥 먹고 화장실 가고 누구를 만나 수다도 떨고 직장에서 늘 하는 업무도 보고 집에 와서 텔레비전도 보고 잔다. 특별한 사건 없이 보내는 하루 일상은 대개가 이렇다. 이게 ‘쨉’이다. 사는 동안 어떤 특별한 큰 사건들을 만나는 것이 훅이나 어퍼컷일 것이다. 물리적 시간으로 봐도 일생의 팔구십 프로가 쨉이다. 다시 말하면 허접한 일상의 시간들이 내 삶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일상의 시간들이 바로 삶의 과정이다. 많은 식자들은 삶은 목표가 아니라 과정이라고 말한다. 목표를 중시하는 삶은 결과주의적 삶을 사는 것이고 그것은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무엇이 되었다거나 무엇을 이루었다는 것 자체보다는 어떻게 그것을 이루었느냐가 중요하다. 우리의 삶은 ‘어떻게’라는 그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목표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길을 걸으며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간다는 것은 방황이다. 그래서 목표는 필요하지만 결과주의적 삶을 살지는 말자는 것이다. 지리산의 어느 깊은 숲에서 홀로 피고 진 꽃은 실패한 꽃이고, 화려한 도심의 전시장에서 많은 사람이 아름답다고 칭찬받으며 전시되어 있는 꽃은 성공한 꽃일까. 날아가는 나비들에도 성공한 나비가 있고 실패한 나비가 있을 것인가. 하나의 생명이라는 본질에서 보면 생명들의 삶에는 실패나 성공은 없는 것이다. 다만 치열하게 그 생명을 발화하는 것만이 있을 뿐이다. ‘일상성의 철학’은 이러한 일상적 삶의 의미성을 중심에 놓은 생각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일상에서 늘 하게 되는 삶의 자질구레한 행위들을 자질구레하다고 말하지 말자는 것이다. 링 위에서 수없이 날리는 쨉이 결국은 경기 자체를 결정하듯 허접한 우리 일상이 결국에 가서는 우리의 인생 삶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문제는 매일 세끼 밥 먹는 일 같은 그 허접한(?) 일상을 어떻게 치열하게 살아내느냐는 이야기다. 우리가 무수히 ‘쨉’을 날리며 사는 일상에서 정말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쨉’은 그냥 시도 때도 없이 생각 없이 날려 보내는 것이 아니라 순간순간을 깨어있으려는 치열함에 닿아있는 ‘평범함’이지 않겠는가. -빗점골 가을
    • 사람이야기
    2022-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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