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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억 그리고 하동 녹차찐빵
    추억 그리고 하동 녹차찐빵 추억 그리고 하동 녹차찐빵 길거리에 걷다 보면 흔하게 보이는 가게 중 하나가 찐빵가게다. 구례 같은 시골에도 스타벅스나 롯데리아는 없어도 찐빵가게는 1-2개가 있다.그만큼 흔하고 흔한 것이 찐빵이다. <찐빵은 흔하다. 하지만 제대로 만든 찐빵은 결코 흔하지 않다.> 찐빵이 흔한 이유는 뭘까? 그것은 그만큼 먹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찐빵을 먹는 이유는 뭔가? 그것은 추억 때문이 아닐까? 누구나 어렸을 때 어머니가 막걸리에 발효시켜 만들어진 찐빵의 맛을 기억할 것이다. 지금은 찐빵이 겨울에 먹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순전히 찐빵 만드는 기업의 광고 때문이고기억 속에 찐빵은 대부분은 여름에 만들어 먹었다. 딱 이때 장마철 말이다. 콩과 벼도 심고 아직 고추는 익지 않아서 따지 않아도 되는 딱 이맘때 어머니는 모처럼 농사일을 쉴 수 있었다. 그 동안 바쁜 농사일에 챙겨주지 못한 자식들을 위해 찐빵을 만드셨던 것이다. 처마에 떨어지는 낙숫물을 받던 커다란 고무 다라이에 물이 차고 넘치는 날 막걸리를 넣어 발효된 밀가루에 팥을 넣어 만들어 주던 그 찐빵 맛의 추억은 삭막한 도로를 지나다가도 찐빵만 보면 나도 모르게 어머니의 얼굴과 함께 겹쳐지곤 했다. 2005년 가을 유독 하늘이 파란 10월의 어느 날이었다. 하동에서 찐빵을 만든다는 두 분을 만났다. 박중욱씨와 양대화씨였다. 딸이 하나 있다. 박중옥씨는 천식을 앓고 있다. 그의 천식은 모든 것을 까다롭게 만들었다. < 울산에서 만나 결혼했다. 중매였다.> 울산에서 만나 결혼했고 거기서 살다가 천식 때문에 더 이상 일이 하기 힘들어 고향인 하동에 내려왔다.누나가 찐빵을 만들고 있어 거기서 빵을 배웠다. 하지만 그는 천식이 있었고 수입밀가루로 만든 빵은 그의 몸이 먼저 거부했다. 그래서 그의 우리밀로 찐빵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가 먹어도 문제가 없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찐빵에 관심이 갔다. 우리밀로 만들과 팥도 국산 팥을 쓴다고 했기 때문이다. 하동 터미널에 주차를 하고 찾아가보니 시장통 골목에 작은 가게가 있었다. 그들의 작업장이장 판매장이었다. 맛짱이라는 가게였다. 여느 시골읍내 장터골목의 찐빵집이었다. 밖에는 찐빵을 찌는 찜 솥이 있고 만두도 있었다. 부부가 빵을 찌고 만두를 만들어 파는 평범하기 그지 없는 찐빵집이었다. 하지만 이들이 다른 것이 외부가 아니라 재료에 있었다. "우린 마가린을 쓰지 않아요. 마가린을 쓰면 모든 참가제를 쓴 것과 같아요.이미 마가린 속에 참가제가 다 들어 있거든요. 통밀 만을 이용합니다.통밀이 거칠기는 하지만 밀 본연의 맛의 충실합니다. " 우리팥을 이용해요. 비싸지만 그것만 사용합니다. 우유 계란을 사용하지 않아요. 손으로만 만들어요. 만들기 어렵지만 손으로 만든 것이 훨씬 부드럽고 맛이 좋아요" 부부가 하루 종일 만들 수 있는 빵의 양의 약 600개라고 한다. 하지만 매일 이렇게 만들 수는 없다. 보통 하루에 300개 정도의 빵을 만든다. 1년에 만들 수 있는 양이 이미 정해져 있다. 109,500개다. 5개씩 포장되어 있으니 21,900봉이다. 하루에 60봉이다. 이것이 이들이 매일 팔 수 있는 찐빵의 전부다. 더는 없다. < 양대화님> 그렇다고 이들이 처음부터 완벽한 찐빵을 만든 것은 아니다.박중옥대표는 " 우리 빵의 레시피는 올해 만들어 졌어요" 매일매일 연구하고실험해서 겨우 완성했죠. 결국 8년이 걸려 완성된 레시피다. < 박중옥님> 그의 말대로 그의 빵은 처음보다 부드럽고 맛있다. “아무리 몸에 좋아도 맛이 없으면 찾지 않으니까요. 설탕을 조금 사용하고 단맛을 올렸고 통밀의 거친 맛을 빼고 부드러워졌어요.우유를 사용하지 않고 부드럽게 만들기는 쉽지 않거든요.” < 찐빵이 무겁다. 꼼수 없이 그냥 팥이 많아서다. > 하동녹차찐빵을 손에 잡으면 무게부터가 다르다.다른 찐빵들이 비싼 팥을 줄이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구사지만 이들은류현진의 돌직구처럼 그냥 팥을 많이 넣어 만든다. 다른 꼼수는 없다. 우리밀빵이라고 해서 구입했더니 알고 보니 팥은 수입 팥이고국산 팥을 사용했다고 구입했더니 마가린이 들어 있는 등의 이런 저런 꼼수가 없다. 안심하시고 드셔도 됩니다. 그렇다 그냥 믿고 드시면 된다. 그저 정직하기 때문이다. 혹시나 들어있는 꼼수가 있을까 봐 항상 신경 쓴다. 재료를 확인하고 꼼꼼히 살펴서 혹시라도 나쁜 것이 있을 까봐 먼전 살핀다.이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 아이들이 좋아한다. 맛있으니까> 현재 그들은 하동 악약으로 작업장을 옮겼다. 꽤 큰 공장이다. 하지만 여전히 두 사람이 전부다. “공장이 넓어져서 작업하기 편해서 좋아요. 깨끗하고요.” 공장개소식에 참가했을 때 어느 개업 장에 방문했을 때보다 기분이 좋았다. < 요즘은 체험행사도 한다. 찐방도 만들어 놓고 지리산 여행을 하고 오면 발효된 빵을 쪄서 가져간다.> 보통은 크게 시작하지만 작은 골목에서 시작해서 여기까지 온 두 분의 노력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손으로 만든 것은 정직하고 더 많은 가치를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지만도 않은 것이 세상이다. 손으로 직접 만들어 부드럽고 좋은 재료를 썼는데 맛도 좋다. 하나만 먹어도 배가 부르다.다른 것과 비교 할 수 없다. 좀 작게 만들어도 되지 않냐고 하지만 양심이 또 그렇지 않다. <뜨거워도 먹고 싶어한다. 왜 맛있으니까> 누가 뭐라고 해도 자기 길로 걷는 사람들이 있다. 세상은 이와 같은 사람들 때문에 변한다. 그들이 그들의 길을 가기 때문이고 그것은 곧 새로운 길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그들의 손은 바쁘고 그 손에서 새로운 빵들이 만들어진다. 어느때 먹어도 좋다. 그들이 만든 것이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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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3-17
  • [지리산자락책방] ‘시소’의 주인장, 비성은 『빨간 머리 앤』을 좋아한다
    내가 하동에 있는 동네책방 ‘시소’의 주인장, 비성을 만난 건, ‘지리산둘레길’에서다. 그녀는 볼 때마다 분주했다. 그녀는 ‘사단법인 숲길’의 든든한 일꾼이었고, 나는 가끔 ‘지리산둘레길’을 걷거나, 간혹 어떤 행사장을 기웃거리는 손님이었다. 몇 년 전, 만나면 반가운 그녀를 구례 용호정 숲에서 만났다. 걷고, 말하는 것이 아픈 사람처럼 느껴졌기에 아무 생각 없이(나름 걱정하는 마음으로) ‘어디 아프세요?’라고 물었다. 주변 사람들이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고, 나는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실감했다. 오래지않아 그녀가 파킨슨병이라는 걸 알았다. 최비성, 그녀를 생각하면, 용호정 숲을 걷던, 그녀의 약간 기운 뒷모습이 떠오른다. 2022년 3월 14일 아침부터 비가 뿌리던 날, 그녀의 놀이터 ‘시소’를 찾았다. ‘인터넷신문 지리산인’에 책을 소개하는 글을 써달라는 요청을 겸하여, ‘시소’를 열게 된 계기, 시소의 운영상황, 뭐 이런 걸 듣겠다는 이유였으나 그 무엇보다도 그녀가 잘 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이 글은 내가 묻고, 비성이 답하고, 김인호 편집장(인터넷신문 지리산인)과 칩코가 거들며 함께 들었던 이야기를 정리한 것이다. 주옥: ‘시소’를 연지 8개월쯤 됐다고 들었는데 동네책방 ‘시소’를 열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비성: 책방을 열게 된 얘기를 하려면, 몸이 아픈 얘기부터 해야되거든요. 어렸을 때 꿈이 책방을 해보는 거였어요. 꿈을 잊고 지내다가 파킨슨병에 걸렸잖아요. “지리산둘레길(사단법인 숲길)”을 그만두고 한두 달 쉬고 있는데, 우울증이 오더라고요. 매일 출근하던 곳이 없어지니 그때는 지금 정도로 안 아팠는데도, 제 존재 자체가 무너지는 것 같드라고요. 그때 알고 지내던 시인 선생님이 시를 써보라 하더라고요. 그래서 시를 조금씩 긁적거리다보니 나만의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러다가 책방을 차리고 싶다, 이렇게 된 거예요. 그날이 벚꽃 핀 날, 저녁이었는데, 벚꽃을 보고 이 앞을 지나가는데 ‘세놓음’이라고 붙여놨더라고요. 그때가 밤 9시였거든요. 그냥 전화번호를 눌렀어요. 일주일 전쯤에 여기 세가 나갔다고 했는데 ‘세놓음’이라고 돼 있다고 했더니 계약이 성사되지 않았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럼 저 주세요.’ 그랬어요. 얼마냐고 물어보지도 않고 ‘저 주세요’라고 한 거예요. 그랬더니 주인이 ‘뭐 하고 싶어서 그러냐?’고 해서 ‘책방을 하고 싶은데요.’, 그랬어요. 제가 퇴직금을 딱 천만 원 받았거든요. 12년 일하고 받은 퇴직금이예요. 500만원은 보증금 내고, 나머지 500만원으로 준비를 하면 딱 되겠다 싶더라고요. 남편한테 손 벌리는 것도 아니고, 내가 직장생활해가지고 그동안 모았던 돈으로 내 공간을 만드니까, 그렇게 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고민도 안 하고 그 밤에 결정을 해서, 그 뒷날부터 조금씩 준비 했거든요. 주옥: 몸도 아픈데, 책방 내는 게 힘들지 않았나요? 비성: 남편이 페인트 칠해주고, 아는 목수 분과 그분의 아내가 싱크대해준 거 말고는 아무도 안 도와줬어요. 혼자서 그냥 하나씩, 싸구려 사가지고 이렇게 저렇게 했거든요. 그래서 애착이 가요. 하동이 문학의 도시라고 얘기를 하는데 책방 하나 없다는 게 좀 조금 슬프더라고요. 책방을 내겠다고 생각하고 나서 순천에 있는 ‘골목책방 서성이다’에 갔었어요. 그 사장님이 ‘몸이 아프면 하세요.’ 그러면서 ‘잘 안 될 거니, 그 공간에서 독서토론을 한다든지, 문화공간으로 생각하고 재미있게 해야지 안 그러면 오히려 건강이 나빠진다.’고 그러더라고요. ‘서성이다’는 순천의 중심가에 있고, 도서관에 납품도 하고, 명소로 알려져 있더라고요. 부러웠지만, 저는 저만의 색깔대로 해야겠다 싶어가지고, 책의 전면이 보이게 전시했어요. 책을 이렇게 전시한 이유는 돈이 부족해서이기도 하고요. 제 나름의 전략이었어요. 아는 언니는 ‘왜 사람들한테 부담을 주냐, 책을 막 강매하듯이 진열을 했다’라고 하는데, 책을 일반적인 방식으로 꽂으면 책장 한 칸을 채우는 데도 돈이 많이 들거든요. 책방에 아무리 많은 책이 갖다놔도 손님들이 원하는 찾을 다 갖출 수는 없어요. 그래서 주문 위주로 하고 있어요. 주옥: 시소라는 이름, 특별한 의미가 있을까요? 비성: 놀이터의 시소예요. 시소(see, saw), ‘보다, 보았다’는 의미도 있고요. 이곳은 나만의 놀이터인데, 저 혼자면 시소를 탈 수 없으니까 할머니라든지, 선생님들처럼 오시는 분들이 함께 시소 타러 놀러 왔다는 의미로, 제가 의미 부여를 한 거예요. 몸이 안 좋으니까, 중간에 문 닫을 때가 많아요. 마비가 오면, 말이 안 될 때도 있고요. 손발이 안 움직여지기도 하고. 저녁에는 거의 잠을 못 자다시피 해요. 근데 약을 먹고 여기 나오면 몸이 반응을 해요. 참 신기해요. 어제는 집에 있었는데 하루 종일 아팠거든요. 근데 여기 나오면 몸이 이곳을 기억하고, 또 사람들하고 이야기하면서 에너지를 주고받고 하면 약 기운이 약간 늘어나는 거 같아요. 저번에 코로나 백신 1, 2차 맞고 나서 3시간 가던 약 기운이 1시간으로 줄어들어서, 의사 선생님도 놀라고, 약이 안 들어서 일주일 동안 문을 닫은 적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약을 좀 세게 지었는데 그 대가가 커요.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 약을 먹는데 약기운 떨어졌을 때는 굉장히 아프거든요. 어떤 때는 나쁜 생각이 들고 그래요. 우울증은 아닌데, ‘그냥 목숨을 버릴까’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괴로울 때도 있고 그렇거든요. 근데 여기 나와 있으면 그런 생각이 사라져요. 책을 많이 읽는 건 아닌데, 책하고 같이 있으면 편안하고,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치유도 되고요. 주옥: 『빨간 머리 앤』을 좋아하나봐요. 앤과는 언제 만난 건가요? 비성: 중학교 때부터 『빨간 머리 앤』에 빠졌는데, 앤의 긍정적인 캐릭터가 너무 좋았어요. 저희 집에 딸이 셋인데 저는 제가 주워 온 줄 알았거든요. 어렸을 때 이웃들한테 그런 말을 많이 들어서요. 이웃들은 장난이었는데, 저한테는 상처였거든요. 그래서 엄마, 아버지가 친엄마, 친아버지가 아닐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사춘기였죠, 그때 『빨간 머리 앤』을 읽었는데 마치 앤이 나인 것처럼 빙의가 되면서 말 한마디 한마디라든지,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너무 예쁜 거예요. 그래서 그냥 그 캐릭터에 빠졌던 것 같아요. 빠지고, 보고 또 보고, 또 보고 했는데, 그 뒤에 만화가 나왔거든요. 만화도 보고, 또 보고 막 이렇게 했어요. 닮고 싶은, 내 속의 또 다른 자아가 앤을 닮고 싶다 였어요. 저뿐만 아니라 저와 비슷한 세대들은 다 『빨간 머리 앤』을 좋아하더라고요. 몽고메리라는 그 작가도 너무 매력적인 게, 평생을 『빨간 머리 앤』 하나만 썼잖아요. 그 시대에 앤을 통해서 여성의 자립된 모습이라든지, 성장 과정을 자연스럽게 쓴 책인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앤을 좋아하게 됐어요. 주옥: 시소에 있는 책 중, 책 한 권만 추천해주세요. 비성: 지금 있는 책 중에서는, 김서령 작가의 『여자전』이요. 작가가 직접 만난 사회에 알려지지 않은 여성들의 이야기거든요. ‘한 여자가 한 세상이다’ 이렇게 돼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힘이 나더라고요. ‘대단하다’ 이런 분도 계신데, 그까짓 파킨슨병에 걸렸다고, 이불 속에 누워서 눈물 흘릴 일이 아니구나. 이 책을 읽으면서 굉장히 힘을 많이 얻었어요. 주옥: 시소에 오는 사람들은 많은가요? 비성: 일부러 오는 사람들은 제 지인들이고, 아까처럼(인터뷰하려고 기다리는 동안에 할머니 한 분이 오셔서 긴 시간 대화를 나누고 가셨다.) 할머니들이 오셔요. 여름에는 제가 그냥 들어오시라고 해요. 들어오셔서 좀 쉬었다 가시라고. 오후되면 봉사 할아버지들, 초등학생들 건널목 건너게 해주고, 교통 정리하시는 할아버지들이 계시거든요. 여름에 아이들이 집에 가는 시간, 낮 2시면 엄청 덥거든요. 할아버지들에게 잠시 들어오셔서 물 한 잔 드시고 가라고 해요. 제가 사람을 좋아하거든요. 사람을 통해서, 아이들을 통해서 에너지를 받아요. ‘지리산둘레길’에서 일하기 전에 논술학원을 했었거든요. 그때는 독서 치료라는 말이 없었을 때인데, 글쓰기 치료, 독서 치료가 자동적으로 돼가지고, 정신적으로 힘든 애들이 제 덕분이 아니고, 책을 통해서 글쓰기를 통해서 치유가 됐었어요. 제가 그걸 눈으로 봤기 때문에 굉장히 보람이 컸었거든요. 학원 안에만 있는 게 아니라 밖으로 데리고 다니고, 놀이터에서 놀고, 그렇게 몸으로 익힌 걸 글로 재밌게 쓰게끔 해가지고, 다들 글쓰기 좋아하는 애들로 만들었거든요. 제 자랑이고 보람이고, 그랬어요. 주옥: 시소 운영은 어떤가요? 비성: 운영하기는 힘들어요. 인건비는 당연히 안 나오고요. 순소득이 월 6, 7만 원 될 때도 있더라고요. 책이 25% 정도 수익이 남아요. 만 원짜리 책 한권 팔면 2500원, 처음엔 이거 큰일 났다 싶었는데, 제가 만약에 요양원에 들어간다고 하면 병원비를 내야 되잖아요. 요양병원비, 비싸더라고요. 여기는 내 놀이터고, 내 ‘치료 장소다’라고 생각하면 괜찮아요. 괜히 욕심을 내면 몸이 더 아플 것 같아서 맘을 편히 갖기로 했어요. 알바 할 게 있으면, 몸 아프지 않게 일해서 월세내고 있어요. 주옥: 책방 하는 거 말고, 하고 싶은 게 더 있나요? 비성: 제가 아프고 나서 버킷리스트가 있었는데, 책방 내는 것과 타투해보는 거, 벌써 둘 다 했어요. 제 팔목에 있는 생명평화 문양, 이거 할 때 엄마한테 ‘타투하고 싶다’고 하니, 엄마가 ‘그러면 병이 낫냐?’고 하시더라고요. ‘그렇다’고 하니 ‘그러면 해, 많이 해’ 그러더라고요. 또 하고 싶은 건, 시집을 내고 싶어요. 우리나라에 파킨슨병을 앓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거든요. 그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 그런 시집을 내고 싶어요. 서울에 있는 파킨슨병에 걸린 분이 있는데, 그분이 그런 상황에서도 아이를 둘이나 낳았거든요. 굉장히 씩씩하게 살더라고요. 그 분들과 함께 하는, 시집을 냈으면 하는 거죠. 제가 하동에서 태어났거든요. 그래서 하동에 대한 자료, 사진, 어머니들의 이야기, 하동의 역사, 이런 걸 모아서 기록물을 남기고도 싶어요.‘지리산둘레길’에 있을 때, 하동의 큰 나무들을 조사해서 원고는 다 써놨었어요. 원고도 쓰고 사진도 다 찍고 했어요. 제가 하동을 좋아하는 거는 아버지 영향이 큰 것 같아요. 아버지는 자식들을 하동에 가둬서 키웠거든요. 옛날에는 공부를 조금 하는 친구들은 마산이나 진주로 중고등학교를 가거든요. 근데 오빠, 언니, 저, 동생들 모두 밖으로 못 나가게 했어요. 아버지가 굉장히 하동사랑쟁이에요. 저도 하동을 사랑하고, 그래서 하동에 대한 자료를 모으고, 책도 내고 싶은 거예요. 그녀는 잘 있었다. 시소는? 시소도 그녀만이 아니라 동네 할머니들의 놀이터가 되어, 이야기가 쌓여가고 있었다. 교과서, 자습서, 참고서말고는 읽고 싶은 책을 살 수 없는 하동, 구례, 산청 등에 동네책방이 생기고, 그곳이 그럭저럭 잘 유지되어 동네사람들의 놀이터가 된다는 건,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행복한 일이다. 그러니 나는 동네책방 ‘시소’가 잘 버텨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시소의 주인장 비성이, 파킨슨병에 당당히 맞서, 하고 싶은 일은 하는 건강한 모습으로 우리 곁에 있어주길 바란다.
    • 사람이야기
    2022-03-16
  • 진속불일불이 眞俗不一不二
    진속불일불이 眞俗不一不二 현재 이 시대의 문명이 보여주는 모순과 위기를 감지한 많은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생명평화를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의 생명평화운동은 조금씩 다른 다양한 관점을 가지고 진행되고 있다. 유기농을 매개로 또는 대안학교를 통해 혹은 종교적 관점에서 또는 과학적 관점이나 역사적 관점 등 학문적 접근에서 그리고 정치적, 사상적 관점에서 참으로 다양한 집단과 단체, 개인들이 생명평화를 말하고 있다. 이것은 역으로 이야기하자면 생명평화를 반대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생명의 존귀함을 부정하거나 평화를 반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생명평화를 얼마나 ‘나’ 개인의 구체적 삶으로 인식하느냐 이며 생활 속에서 얼마나 깊게 느끼며 얼마나 절실하게 그리고 구체적으로 살아내느냐의 문제라고 본다. 인류는 현대에 이르는 동안 꾸준히 과학과 산업을 발달시켜왔고 그 속에서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함께 일상의 편리와 물질의 풍요를 얻게 되었지만 사람들은 그러한 물량주의와 속도주의의 경쟁 속에서 인간의 ‘욕심’ 또한 꾸준히 키워왔다. 그리고 그 ‘하고자 하는 마음’을 이루는 것이 행복해지는 거라는 가치관이 형성되었고 그 가치의 옳고 그름을 떠나 그 ‘하고자 하는 마음’은 모두를 위한 것이 아니라 개인의 것으로 변질되었으며 그 개인화 된 욕심은 이미 ‘나’의 밖으로 나와 상대방을 죽이고 빼앗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리고 ‘나’는 그만큼의 ‘나’를 잃었으며 우리의 본래면목과 멀어지는 삶을 살게 되었다. 또한 현대에 이르러 그동안 인류의 삶을 지탱해오던 많은 사상들은 수식으로만 존재할 뿐이고 소유의 논리, 힘의 논리, 공격의 논리, 그 단순한 이익의 논리만이 개인과 그 집단과 그 국가를 움직이고 있을 뿐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천박한 영혼, 척박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고 인문학의 저조를 가져왔으며 자신을 성찰하지 않고 명상하지 않는 오만한 자아를 키워왔다. 그래서『생명평화결사』에서 내건 ‘세상의 평화를 원한다면 내가 먼저 평화가 되자’라는 슬로건이 대중들에게 깊이 공감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사실 이제는 ‘나’가 변화하지 않으면 세상은 변화할 수 없을 만큼 ‘나’의 오만과 욕망은 너무 비대해져 버리지 않았나 싶다. 이러한 현대문명의 모순과 위기 속에서 대안적 삶의 운동으로 시작된 생명평화운동은 궁극적으로는 나의 성찰을 통해서 우리의 존재론적 실체를 바르게 인식하자는 운동이며 나아가 공존과 조화의 운동이며 공동체 복원의 운동이다. 2004년 시작된『생명평화결사』는 이러한 의지를 로고에 담아 깃발로 올렸다. ‘나는 물고기이고 새이며 짐승이고 나무이며 달이고 해이다’ 라는 메시지 를 이미지화 시킨 것인데 덧붙이자면 이 세상에 해가 없으면 존재할 수 없으니 나는 해에 의지하여 살 수밖에 없는 존재요, 세상에 나무가 없다 면 나는 존재할 수 없으니 나는 나무에 의지하여 살 수밖에 없는 존재요, 마찬가지로 짐승이 없으면 나는 존재할 수 없으며, 네가 없으면 나는 혼자서 존재할 수 없으니 나는 그 모든 생명과 함께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이러한 존재론적 실체를 바르게 인식하는 것부터가 생명평화운동의 시작이라고 말하고 있다. 내가 저 도토리나무이고 다람쥐며 까마귀이고 갈치 한 마리라는 생각, 그리고 이것은 결코 관념이 아니고 비유도 아니며 구체적 생명현실이라고 스스로 인식하는 것, 그것이 생명평화운동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개인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공동체적 존재라는 이러한 인식 속에서 출발해야만 세상의 모든 현실적 갈등과 대립을 허물 수 있고 존재의 개별화와 고립을 막고 공존과 조화를 이룰 수 있으며 생명공동체를 복원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眞俗不一不二’는 다양하게 풀이할 수 있겠으나 眞은 자연의 질서요, 俗은 인간의 질서라고 말할 수 있으며 본래 인간의 질서는 자연의 질서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껏 인간의 질서를 만들기 위해 자연의 질서를 파괴하고 착취하며 반생명 반평화적이며 자연에 반하는 질서의 그런 문화와 문명을 일구어 왔다는 것이다. 이것은 眞의 세계가 아니며 俗의 세계 또한 아니다. 자연의 질서와 가치를 무시한 세계, 근본이 가진 가치를 망각하거나 무지한 상태의 세계, 이것은 眞도 아니고 俗도 아닌 탈근본의 세계라고나 해야 할 것이다. 생명평화운동은 이 자연의 질서와 가치를 회복하는 것이며 그와 같은 인간의 질서를 구축하는 것이리라. 하지만 이것은 ‘나’의 존재론적 실체를 바르게 인식하고 구체적 생명 현실로 구현해내야 하는 뼈저린 성찰이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사실 이것은 본래의 우리로 돌아가는 당연한 일일 것이지만 현재를 사는 우리로서는 가히 혁명적인 일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껏 추구해온 편리와 부와 욕망의 반대편에서 성찰해야 하기 때문이며 그것을 나눠야 하고 자신을 존재하게 해주는 모두를 섬겨야 하기 때문이다. 생명평화운동은 현재의 삶의 시각을 교정하고 가치관을 수정하고 삶의 구체적 생활세계를 변화시키자는 운동이며 궁극적으로 나를 변화시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생명평화운동은 도시를 떠나 시골에서 유기농을 하며 자급자족하는 소극적적인 자기 살리기이거나 자연에 묻혀 도인이 되자는 것쯤으로 치부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이것은 특정의 공간이나 사람들만의 문제가 아니며 특히 도시에서 더욱 필요한 운동이다. 철저하게 자연의 질서를 파괴한 도시 속에서도 생명의 순리인 자연의 순환성에 바르게 복무하며 살아내야 하는 것이다. 길은 내가 감으로써 생겨나듯이 이것이 스스로 절실하고 절박하다고 생각한다면 어떤 식으로든 사람들은 그 길을 갈 것이고 길은 만들어 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박두규 시인)
    • 사람이야기
    2022-03-09
  • 딸기 가격이 비싼 이유
    올해 딸기 가격이 평년 보다 70% 급등했습니다. 그 이유를 남원의 딸기 농가를 만나 확인해 봤습니다.
    • 사람이야기
    2022-02-23
  • 사라져 가는 겨울놀이
    사라져 가는 엄천강의 놀이 자연에서 이제 볼수 없는 풍경이 되었다
    • 사람이야기
    2022-02-20
  • 탐욕에 대하여
    ■ 『지리산 人』의 생각 탐욕에 대하여 지리산 자락, 섬진강 하류 기슭 어느 구석에 거처를 마련하고 처박힌 지도 벌써 10여년 세월이 흘렀다. 나는 이곳으로 들어오면서 사실은 새로운 인생살이를 꿈꾸며 들어왔다. 누구든 자신의 새로운 삶을 위해서는 그 상황과 조건을 바꿔내려고 새로운 각오를 한다. 나도 이곳에 들어오며 새 집을 짓고 상량문에 그 마음을 새겼다. 노자와 묵자에서 빌려와 無爲無不爲무위무불위와 愛人若愛身애인약애신이라는 글을 새겼는데 집이 내려앉을 때까지 얻지 못할 말을 새겨놓고 쳐다볼 때마다 후회하며 살고 있다. 無爲無不爲를 새길 때만해도 나름의 해석을 글로 정리하기도 했는데 그 일부를 보면 대충 이렇다. “......나무는 어디도 가지 않고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세상의 비와 바람을 다 맞는다. 그리고 꽃을 피워 봄이 있게 하고, 벌과 나비의 양식이 되고, 씨를 맺어 생명을 잉태한다. 평생을 한 곳에서 한 치도 움직이지 않지만, 스스로에게 또는 세상에게 하지 않은 것이 없다. 사실은 이처럼 모든 것은 그 존재 자체로 스스로 빛나는 것이다.......” 무엇을 인위적으로 하지 않으면서도 하지 않는 것이 없다(無爲無不爲)는 그 말이 당시에는 너무 매력적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일상에서 행동하고 실천하는 것이 얼마나 높은 경지의 삶이라는 것도 모르고 그냥 그 내용이 멋있어서 그렇게 나댔었나 싶다. 하지만 21세기 현대인들은 이 무위무불위의 진리를 용납하지 않는다. 저절로 운영되는 우주자연의 존재적 질서와 그 존재의 순환적 질서를 철저하게 깨며 이루어낸 것이 오늘날 현대문명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현대의 과학기술문명은 자본주의를 만나 발전된 것이기에 오늘날 우리 문명사회는 자본의 본질적 특성의 하나인 탐욕을 내장하게 된다. 성장주의나 물량주의, 물질만능주의 그리고 지독한 이기주의, 이런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는 인간의 탐욕을 그대로 실현시켜온 현대문명의 특징들이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자본의 논리는 끝없이 탐하는 인간의 탐욕이 반영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탐욕은 반드시 폭력을 유발할 수밖에 없다. 돌아보면 이러한 탐욕이 상류 기득권층의 카르텔을 자연스럽게 형성하여 보이지 않게 우리 사회를 폭력적우로 지배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모두는 아니겠지만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과 법을 집행하는 검사들과 그것의 여론을 주도하는 언론인, 그리고 재벌들이 결탁하면 대한민국은 이들의 나라였다. 그 중심에는 무소불위의 권력인 검찰이 있었다. 검찰의 눈으로 보면 누구든 털면 나오는 것이고, 누구든 죄인으로 만들고 안 만들고도 그들의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그러하니 골목대장 검찰의 주변에 붙은 언론인과 정치인들, 재벌들이 얼마나 많았겠는가. 검찰은 이러한 자연스럽게 조성된 기득권 세력의 카르텔 속에서 중심을 형성하며 지금껏 부정부패를 저질러온 곳이지만 이것을 바로잡기는 너무 어렵다. 과거 군부독재 시절의 검찰은 모든 법의 우위에 있는 중앙정보부나 안기부 같은 기관이 충분히 통제할 수 있어서 청와대의 수족 노릇을 할 수밖에 없었지만 족쇄에서 풀려난 지금은 검찰을 통제할 기관이 없으니 그야말로 최상위 포식자의 위치에 있는 것이다. 공수처 설치의 필요성은 여기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검찰개혁인데 문재인 정부가 조국을 앞세워 대대적으로 검찰을 개혁하려하자 검찰은 전쟁을 불사할 수밖에 없었다. 최상위 포식자의 권한을 내려놓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니 목숨을 건 전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전쟁이 벌어지면 도덕이나 상식과 같은 일상의 룰은 깨지게 되어 있다.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는 과정이 아니라 결론이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상대를 죽여야만 내가 살기 때문이다. 그들은 공수처라는 상위 포식자가 두려워 전 조국 장관을 반드시 죽여야만 했다. 그것을 윤석열이 진두지휘 하였으며 검찰은 이제 윤석열 이후 그냥 검찰이 아니라 정치검찰이라는 본색을 그대로 드러냈다. 대통령 선거가 진행되고 있는 지금 기득권 카르텔에 들어와 있는 언론인과 법조인과 정치인들은 자기들의 입맛에 맞는 대통령을 뽑기 위해 모두 자발적으로 참여해서 총력전을 펼치고 있는 상황이다. 사실 이 모든 것의 본질적 원인을 짚어보면 아마도 4,5백 년 동안 진화해온 자본주의 속에서 제어장치 없이 커온 인간의 탐욕에 이를 거라고 생각한다. 탐욕이라는 것은 생존의 욕구로부터 시작되고 삶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지만 그 생존욕구가 탐욕으로 탈바꿈하는 경계선을 인간은 제어하기 힘들다. 그래서 사회적 도덕률과 법률로써 재어하려 하나 그 법률 자체가 잘못되어 있으면 그것도 어려운 일이 되고 만다. 국회라는 곳이 그러한 역할을 하는 것이지만 국회의원들은 자신의 이익과 파당적 이익에만 매몰되어 필요한 법을 만들어내는 것에도 힘쓰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게 법이 만들어졌다 해도 그것을 운영하는 판검사들이 또 조화를 부린다. 그리고 언론들은 그것을 왜곡해서 보도한다. 그러면 올바른 여론은 형성되지 않고 사회적 도덕률이라는 것도 없는 것이다. 그래서 권력이라고는 1표밖에 없는 국민들이 이들에 휘둘리지 않고 올바른 투표를 해서 우리사회의 바른 잣대로서 그 몫을 해야만 한다. 하지만 현대인들이 이런 의식을 가지고 바르게 세상살이를 하기란 쉬운 일은 아니다. 왜냐하면 국민들 또한 자본 속에서 자라난 탐욕의 울타리를 벗어나서 살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먹고 사는 일’이 쉽지 않은 세상에서 탐욕은 이미 21세기의 삶 속에서 인간의 보편적 정서로 자리 잡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드는 것이다. 이 탐욕이야말로 폭력의 근원이고 모든 순환 질서를 깨는 근본 원인이지만 이것은 오늘날 현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경제성장이라는 이름으로, 개인에게는 행복이라는 이름으로, 또는 당위적 삶이라는 이름으로, 현실이라는 이름으로, 혹은 자유라는 이름으로 스스로를 정당화하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들 또한 우리사회나 다른 누구의 탐욕에는 분노하면서 자신의 탐욕에는 관대한 그런 뻔뻔스러운 삶을 잘도 살고 있기 때문이다. (글 박두규 시인) -반야봉 설경(사진 김인호)
    • 사람이야기
    2022-02-07
  • 돌담
    돌담 김기홍 발길에 걸리는 모난 돌멩이라고 마음대로 차지 마라 그대는 담을 쌓아 보았는가 큰 돌 기운 곳 작은 돌이 둥근 것 모난 돌이 낮은 곳 두꺼운 돌이 받치고 틈 메워 균형잡는 세상 뒹구는 돌이라고 마음대로 굴리지 마라 돌담을 쌓다보면 알게 되리니 저마다 누군가에게 소중하지 않은 이 하나도 없음을 *김기홍 시인(1957~2019) 전남 순천 출생, 1984년 실천문학 등단, 시집 『공친날』 『슬픈희망』 -피아골 추동마을 (사진 김인호)
    • 문화예술
    • 시를 찾아서
    2022-02-07
  • 自然스러운 사람
    自然스러운 사람 13세기 지금의 터키 지역에 나스레딘 호자라는 사람이 있었다. 어느 날 그가 당나귀를 잃어버려 울면서 하루 종일 찾으러 다니다가 갑자기 팔을 올리고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다. “신이시여. 참으로 감사드리옵나이다.” 이 모습을 본 어떤 사람이 물었다. “당나귀를 찾다 말고 웬 감사요?” 그러자 호자가 대답했다. “내가 그 당나귀 위에 올라타고 있지 않았다는 사실에 감사한다네. 만약 그랬더라면 내 자신도 잃어버렸을 것 아닌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하는 재미있는 이야기다. 당나귀는 그 지역의 특성상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고 당시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살고 있는 집 다음으로 큰 재산이었을 것이다. 나스레딘은 현자였기 때문에 재물을 잃고서도 감사할 수 있었다. 재물을 잃은 것도 슬픈데 마음마저 잃고 자신을 잃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라는 깨달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나귀 위에 올라타고 있지 않았다는’ 것은 재물에 마음을 두지 않았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자본주의 현대를 사는 사람들은 누구나 재물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서 항상 일상생활에서 손해와 이익을 따지며 산다. 그렇지 않으면 현실을 살아갈 수 없는 바보가 되고 무능력하다는 말을 듣게 된다. 하지만 나무가 손해와 이익을 따지면서 서있는 것이 아니고, 하늘의 별이 반짝이는 것 또한 손해와 이익을 계산해서 빛나는 것이 아니건만 얼마나 아름답게 잘 살고 있는가. 우리도 그런 자연이 될 수는 없는 것일까? 아니 자연自然스러운 사람이라도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언젠가부터 나는 ‘자연스러운 사람이 되어 자연스럽게 살자’는 슬로건 하나를 갖게 되었다. 옷차림이 참 자연스럽다고 하면 세련되고 멋지다는 말이고, 분위기가 자연스럽다는 것은 자유로우면서 편하다는 이야기고, 말하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것은 꾸밈이 없고 진실하다는 말일 것이다. 더 다양하게 쓰이고는 있지만 종합해보면 ‘자연스럽다’는 것은 진실하며 자유롭고 아름답다는 것이다. 그런데 ‘자연스럽다’는 말의 뿌리는 ‘자연(自然)’이니 사실은 ‘자연’이 그러하다는 것이다. 산과 바다의 일상이나 비가 오고 꽃이 피는 일 등이 자연이고 자연의 현상인데 그것들에 무슨 거짓이 있을 것인가. 그래서 성현들은 자연은 진리요 도(道)이고 법(法)이며 생명 그 자체라고 말해왔다. 그러니 인간사 모든 문제의 답도 자연에 있다는 말은 틀림이 없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요즘 사람들은 ‘자연’보다는 ‘자연산(自然産)’만 좋아한다. 너 나 할 것 없이 자연산을 찾는다. 그리고 그것은 생태환경과 함께 사회적 문제의 본원에 있는 자본주의 대량생산이 가지는 문제와 궤를 같이 하는 것이다. 어쨌든 현대인들은 그렇게 자연과 거리를 두고 있고 자연이 가진 진리와 도(道), 법(法)이며 생명 그 자체와는 떨어져 살고 있는 것이다. 어느 책에서 본 ‘호수 위를 날아가는 기러기가 제 그림자를 호수 위에 드리우되 일부러 그러지 아니하고, 호수는 기러기의 그림자를 비추되 일부러 비추려하지 않는다.’ 라는 구절이 생각난다. ‘자연스럽다’라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지 않겠는가. 흐르는 물처럼 주어진 삶의 조건과 환경 속에서 자기 본연의 삶을 충실하게 살다보면 타자와도 저절로 어울리게 되고 하나의 완성된 아름다운 그림이 되니 ‘자연’이 바로 그러하지 않은가. 그리고 그 기러기나 호수의 마음에 근접해 있는 사람이 바로 ‘자연스런 사람’ 아니겠는가. -박두규(시인)
    • 사람이야기
    2022-01-16
  • 귀농농부에게 추천하는 아피오스
    초보 농부에게 추천하는 작물 "아피오스" 귀농해서 어떤 농사를 지을까 고민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아피오스는 농약이나 특별하게 관리가 필요가 없는작물입니다. 단 판매가 힘들 수도 있으니 지인이 많은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 사람이야기
    2022-01-11
  • 노후 대책으로 심은 블랙 사파이어 포도
    구례 현근종 농부는 노후 대책으로 블랙 사파이어 포도를 심었다.
    • 사람이야기
    2021-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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