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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들이 미쳤어요?
- 보험 많이들 가입하셨죠? 자동차 보험에, 생명보험이나 아이들의 건강에 관한 보험 등. 이 글을 읽는 분 중에도 1개 이상의 보험에 가입하셨을 거로 생각합니다. 보험은 혹시나 일어날 수 있는 여타의 일에 대해 개인적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선택한 사회적 보장제도입니다. 우리나라의 최초의 보험은 뜻밖에도 사람이 아니라 ‘소’입니다. 조선 시대에 소 한 마리에 1냥씩 강제로 보험에 가입시켰습니다. 보험 가입이 안 된 소는 매매할 수 없도록 했지만, 농가의 반발에 소 보험은 그리 오래 가지 못하고 폐기되고 맙니다. 요즘 여기저기서 봄꽃이 피었다는 얘기가 들립니다. 대표적인 봄꽃인 노란 개나리는 해마다 가을이면 꽃을 보여줍니다. 이제는 벚나무도 꽃을 보여주고, 사과도 꽃을 보여주지요. 이런 봄꽃을 가을에 만나면 반가움보다는 의아한 것이 먼저입니다. 그래서 쉽게 철없는 것들, 혹은 꽃들이 미쳤다고 말합니다. 과연 꽃들이 미쳤을까요? 봄에 피는 꽃은 춘화현상을 겪은 후에 꽃이 핍니다. 춘화현상은 겨울의 추운 자극을 받고 난 후에 꽃을 피우는 현상을 말하고 봄에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겨울의 혹한을 견디어야 합니다. 하지만 어느 드라마 제목처럼 겨울이 따뜻하면 봄꽃은 어찌 될까요? 모든 식물은 온도의 영향이 중요하지만, 햇빛의 양에도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이렇듯 햇빛의 길이에 따른 영향을 광주기성이라 합니다. 식물은 광흡수센서인 피토크롬으로 빛의 양을 측정해서 겨울눈이 꽃으로, 잎으로 피어납니다. 우리가 아는 흔한 나무 중에 느릅나무가 있습니다. 느릅나무 형제들은 비술나무, 느릅나무, 참느릅나무, 시무나무 등이 있는데 모두가 봄에 5월까지 꽃이 다 피어요. 그런데 그중에 하나 참느릅나무가 9~10월에 꽃이 핍니다. 느릅나무와 형제 종인데 꽃피는 시기가 너무 다릅니다. ‘참느릅나무는 왜 이렇게 가을에 꽃필까?’ 라는 질문은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의문이었습니다. 봄하고 가을은 많이 다른 것 같지만 비슷한 것이 있어요. 해의 길이가 비슷해서 즉, 일조량이 비슷해서 빛의 세기와 강도가 비슷합니다. 우리는 계절을 알기에 봄과 가을이 완전히 다른 것을 알지만, 식물은 온도나 일조량 등 우리와는 다른 방식으로 계절을 안답니다. 앞서 말했듯이 봄에 꽃 피는 식물은 춘화현상이라고 해서 차가운 겨울을 느껴야 봄에 꽃을 피웁니다. 그런데 빙하기와 간빙기를 넘나들었던 지질학적 시간으로 보면 지금보다 훨씬 따뜻한 겨울이 있었던 적도 있어요. 그래서 혹여 따뜻한 겨울에 대해 대비도 해야 합니다. 가을과 봄은 태양 빛의 길이가 비슷하기 때문에 여름을 따뜻한 겨울이라 판단을 내릴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일조량은 비슷한데 뭔가 다르니까 봄처럼 꽃을 많이 피우지는 않고 몇 개만 피우는 거예요. 몇 개만. 정말 따뜻한 겨울이면 몇 개는 남아서 번식해야 하니까요. 식물에 관심이 있으신 분이라면 가을철에 뽕나무가 꽃을 피워서 열매 맺히는 걸 보신 적이 있을 거예요. 처음에는 참느릅나무도 다른 느릅나무 형제들처럼 봄에만 폈겠죠. 하지만 가을에 꽃을 피우고 열매 맺었던 느릅나무가 그런 식으로 해서 참느릅이란 종이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요. 봄에 꽃 피는 식물 중에서 혹시나 따뜻한 겨울이 지난 줄 알고 가을에 피는 몇몇 식물들이 가을에 열매 달려서 떨어져 싹을 내린 애가 가을 꽃피는 애들로 이렇게 변화해서 나오지 않았겠느냐는 그런 생각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개나리, 벚나무, 우리가 봄에 핀다고 믿는 식물 중에서 이렇게 가을에 피는 애들은 우리가 생각하듯이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아는 에너지 과잉시대에 사는 인간이 생각하기에 미친 것처럼, 철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식물들 입장에서는 겨울이 따뜻했으면 어떡하지라는 보험을 든다고 본다는 거죠. 그래서 에너지 낭비가 아니라 번식할 수 없는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서 조금씩만 꽃을 피워보는 이런 식의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요. 저는. 그래서 꽃들이 미친것이 아니라, 꽃들이 철이 없는 게 아니라. 진화적으로 축적되어 온 삶의 또 다른 보험을 드는 하나의 방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멸종을 피하기 위한 전략인 거죠, 인간과 마찬가지로. 철없이 꽃 핀 아이들이 가냘프게 피운 그 삶의 몸짓은 우리와 같은 살아남으려는 치열한 삶의 현장인 듯싶어 애달프기도 하고 또 동지애도 느껴지는 이 가을입니다. * 글을 쓴 조숙경 님의 별명은 느림보입니다. 느림보는 <사단법인 숲길>에 근무하는 숲해설사입니다. 매월 마지막 목요일에 진행되는 목동반 소식을 전할 느림보는 매우 아름다운 목소리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느림보의 목소리가 궁금한 분은 매월 마지막 목요일에 떠나는 목동반 답사에 함께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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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들이 미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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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서는 두 손을 비워두세요
- 숲에서는 두 손을 비워두세요 칩코(지리산 방랑단) 사람 다섯과 개 하나가 도로 위를 걷고 있다. 차들은 그들 옆을 지날 때 구경하듯이 조금 속도를 늦춘다. 옷차림새가 비범하다. 어르신들 말을 빌리자면, '머스만줄 알았는데 가스나'거나 '가스난줄 알았는데 머스마'인 외관이다. 빡빡 머리가 둘이라 스님인 것도 같고, 인도나 태국 따위의 어디 외국에서 온 것도 같다. 개는 허스키나 늑대처럼 생겼지만 진도 믹스라고 한다. 말을 걸어보니 지리산 방랑단이라고 소개한다. 무전으로 여행하며, 지리산의 사라지는 숲 이야기를 채집한다고 한다. 요즘 같은 시대에 무전여행이라니. 코로나도 말썽인데 얻어먹고 얻어 잔다니. 그런데 어쩐지 볼살들은 통통하다. 의외로 잘 먹고 다니는 모양이다. 얼굴이 햇빛에 그을러서 활짝 웃는 이가 더 하얘보인다. 그 중 한 사람을 조명해보자. 두 빡빡머리 중에 조금 더 머리가 허옇게 밀린 사람이다. 파란색 누더기 바지를 입었다. 가시나무 한번 스쳤다가는 죽 찢어지고 말 정도로 헤졌다. 한번은 구멍을 기우러 어느 집에 실과 바늘을 동냥하러 갔다. 상냥한 주인집 어르신은 바지 꼴을 보시더니, 그냥 새 바지를 한 벌 주셨더랜다. 바지는 거절하고 반짇고리만을 받아든다. 핫핑크색이라서 그랬던가... 휴지 조각 같은 바지를 입고 다녀도 나름의 취향이랄 게 확고하다. 궁상맞은 취향의 주인은 칩코다. 칩코는 헌 옷만으로도 충분하다. 돈 벌 생각도 많지 않다. 칩코는 엄마를 좋아한다. 그러나 엄마 집에 친구를 데려갈 때면, 한 가지 꼭 해명을 해주고 마는 것이 있다. 집 현관문에 붙은 종이다. 종이엔 노란빛 오만원권 사진과 함께 "돈은 나와 하나다"라는 다소 노골적인 문구가 적혀있다. 친구가 그걸 안봤으면 좋겠지만, 그러기엔 너무 중앙에 붙어있다. 약간 부끄럽다. 오해를 여기서 풀자면, 엄마가 그 종이를 붙인 맥락을 설명해야 한다. 엄마는 칩코의 마음수련 스승이자 도반이다. 엄마는 칩코가 누군가나 어떤 것을 미워할 때면, 그와 너 자신이 결국 하나임을 알라고 했다. 둘을 분별하지 말라고 했다. 엄마를 가장 괴롭히는 것은 아마 돈이었다. 엄마는 돈과 친해지기 위해 그런 사진과 문구를 적은 것이었다. 칩코의 현관문이 있다면 무엇을 적었을까? 돈은 아닐 것 같다. 돈에 관심이 없고, 일단 돈으로 사고 싶은 게 없다. 이런 자신의 모습이 쿨해보여서 마음에 들기도 하다. 그래서 지리산 방랑단을 선뜻 시작할 수 있었다. 칩코는 평생 돈이 없는 축에 속했지만, 정말 한 푼도 없이 살아 본 적은 처음이다. 방랑은 참으로 멋졌다. 매일 기적같은 인연들을 만났다. 평소에 돈이 없어서 못 들어가 볼 식당이나 민박에서 탁발을 받기도 하고, 돈으로 환산할 수 조차 없는 호의를 경험했다. 돈 없이도 이렇게 풍요롭고 행복하다니! 당최 돈이 왜 그리 새침하고 콧대 높은지 모르겠는 나날들이었다. 자본주의의 숨겨진 빈틈을 발견한 기분이랄까. 방랑단들은 사라진 숲 이야기들을 채집하고 다닌다. 함양의 오도재는 대규모 특화 단풍숲을 조성하기 위해 축구장 80개 면적의 숲을 없애버렸다. 남원은 육모정에서 정령치를 지나 달궁까지 이르는 산악열차 사업을 추진 중이었다. 구례에서는 야생의 숲을 빼앗기고 철창에 갇혀 사는 반달가슴곰과 소들을 볼 수 있었다. 방랑단들은 기억산책에서 이 이야기들을 전하며, 많이 울기도 울었다. 우리는 베어진 나무가 되어 보기도 하고, 갇힌 동물이 되어보기도 했다. 칩코는 그러던 중 한 가지 통찰에 이르렀다! 아픈 이야기들의 공통점이 있던 것이다. 그렇다, 모든 사정이 다 돈, 돈에서 시작한 것이 아닌가? 단풍숲도, 산악열차도, 반달가슴곰과 소들도, 모두 돈을 벌기 위해서였다. 돈이 이미 있지만, 더 많이 축적하기 위해서! 칩코는 희한했다. 돈이랑 엮일 일도 없던 사람인데... 칩코가 찾아다니던 이야기들은 죄다 돈에서 비롯된 것들이었다. 칩코와 돈이 무슨 징한 인연이 있는 것인가. 칩코는 그제야 별 관심도 없던 돈이 밉다. 칩코는 엄마의 현관문에 붙은 종이를 떠올렸다. 어떤 것이 미워질 때면 그와 나 자신이 하나라는 것을 알라던 엄마의 말. 방랑을 하며 행복했던 이유가 뭐람! 돈을 바라지 않고도, 사람들은 베풀 줄 알았다. 식은 밥 주기가 미안하시다면서, 밥을 새로 지어주던 마음들. 한 데서 어떻게 자느냐며, 빈 방을 청소해 내어주시던 마음들이 있었다. 사랑도 받은 사람이 줄줄 안다고 했던가. 칩코는 분에 넘치는 베품들을 받으면서, 조건없는 베품이란 어떻게 줘야하는 것인지 배웠다. 돈을 미워하는 건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다만 돈으로부터 자유로워질 뿐! 이는 숲의 방식이기도 했다. 숲에서는 셈할 수 없는 것들이 무상으로 주어진다. 솔향을 품고 멀리서 낮게 불어오는 바람, 나뭇잎 새로 듬성듬성 쏟아지는 햇살줄기, 고요를 채우는 아름다운 새의 노랫소리. 이 모든 것들이 눈부신 선물이었다. 선물을 받아본 사람이라면, 그저 내어줘 본 사람이라면 알았다. 소유란 무용한 것. 네 것과 내 것의 구분을 없애면, 소유는 무용해진다. '내 것'을 내려놓을수록 세상은 더욱 넓어진다. 그래서 소유는 두려움의 다른 말. 더 큰 세상을 바라보는 데에 두려움은 필요하지 않으니까. 그렇게 숲은 넓어지고, 다양한 존재들을 품게 된 걸까. 저 멀리 숲 속을 걸어가는 지리산 방랑단이 보인다. 칩코는 숲을 지키기 위해, 자신이 할 일을 골똘히 생각해본다. 숲의 방식으로 방랑할 것. 두려움 없이 더 넓은 세상을 사랑할 것. 아아 숲의 선물들을 정중히 받으려면, 두 손을 언제나 비워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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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서는 두 손을 비워두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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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권에 불어오는 새바람이 되길
- 지리산권에 불어오는 새바람이 되길 임봉재 (자문위원) 『지리산人』 이 지리산의 친구로 살아 온 세월만큼이나 지리산에 기대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소통의 길잡이 역할을 해 왔을 것입니다. 이제 인터넷신문으로 탈바꿈하게 된다니 베어져 나가는 나무가 조금은 줄어들겠다는 생각이 들어 반갑기도 합니다. 그동안 지리산자락에 둥지를 틀고 저마다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서로의 얼굴은 본 적 없어도 『지리산人』이라는 신문을 통해 서로의 삶을 나누고 알아가는 좋은 소통의 길라잡이 역할을 해 왔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러기에 인터넷에 익숙하지 않은 나이 든 어르신들은 인터넷신문을 어려워하지 않을까 염려가 되기도 합니다. 코로나19로 사람들이 여러모로 많은 불편함을 겪으면서도 나름 잘 적응해 가는 우리들의 모습에서 그 같은 염려는 내려놔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멈출 줄 모르는 인간들의 끝없는 욕심으로 인해 극심한 몸살에 시달리던 지구, 결국 기후변화와 온난화에도 대응하지 않으니 코로나19가 나타나서 위기에 놓인 지구를 대신하여 그 어떤 정치권력도, 군사와 무력도 피해 가지 못하게 발을 묶어 놓는 현상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잘 사는 사람이나 못사는 사람이나 잘사는 나라나 못사는 나라나 다 같이 코로나19의 악재를 피해 가지 못하고 세계가 하나같이 어려움을 겪고 있으니까요. 거리두기와 마스크를 쓰지 않고는 바깥나들이도 할 수 없는 세상이 되어버린 지도 벌써 2년! 백신으로 답답한 마스크를 벗어버릴 날이 올 것이라는 기대를 가져 보기도 하겠지만 편리함에 길들여진 우리들의 욕심을 내려놓고 삶의 틀을 바꾸지 않는 한 쉽사리 마스크 없이 살 수 있는 날이 올까? 더구나 지금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들에서부터 이제 갓 태어나는 아이들뿐 아니라 다음세대 아이들은 마스크 쓰고 지내는 풍경이 하나의 당연한 풍속처럼 받아들여지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참 슬퍼지다 못해 미안하고 부끄러운 마음을 떨쳐 버릴 수가 없습니다. 아무튼 『지리산人』 신문이 인터넷신문으로 탈바꿈하면서 그만큼의 나무는 살아남겠다 싶어 그야말로 지리산의 좋은 친구 ‘『지리산人』이라고 하겠습니다. 어떤 것에도 장단점이 있듯이 그동안 『지리산人』 을 만드느라 원고 수집에 편집하여 인쇄소로 발로 뛰며 수고하시고 또 우편 발송까지 많은 수고를 하신 선생님들의 고충이 인터넷신문으로 전환되면 그러한 수고들은 조금이라도 덜어질 수 있을지, 그동안 자문위원이라는 이름만 달고 제대로 도와드리지 못한 죄스러움과 미안한 마음에 이런저런 생각들로 머리 숙여 용서를 빕니다. 그동안 숱한 어려움 속에서도 잘 헤쳐 오셨듯이 앞으로도 인터넷신문 『지리산人』 이 새바람을 타고 지리산의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과 반달가슴곰 이야기, 지리산의 아름다운 자연과 문화뿐 아니라 철 따라 일어나는 이야기들을 인터넷신문을 통해 지리산권의 사람들 뿐 아니라 지리산권 바깥 세계까지 널리 알려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슬쩍 얹어 인터넷신문 『지리산人』 화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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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권에 불어오는 새바람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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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지리산 성지순례(聖地巡禮)
- 그날의 지리산 성지순례(聖地巡禮) 성염 (자문위원) 지난 6월 25일, ‘지리산종교연대’가 산청함양추모공원에서 기도회를 열었다. 한국전쟁 71년을 맞아서 불교, 천주교, 개신교, 원불교가 ‘좌우 남북 대립에 스러져간 영령들을 기억하고 한반도의 영구적 평화정착을 위해 드리는 생명평화 기도문’을 함께 작성해서 종단별로 번갈아 낭송한 다음, 경건한 침묵 중에 공원을 한 바퀴 돌며 묘역에 참배하였다. 1951년 2월 7일 전쟁의 공포 속에서도 설날을 맞아 늙으신 부모님 슬하로 모인 민간인 705명이 대한민국 군인들에게 집밖으로 끌려나와 학살당한 흔적이다. 묘석에 적힌 생몰 연월일로 보아 희생자 거의 절반이 10세 미만의 어린이, 나머지 절반이 아낙네들이었다. 그런데 묘역을 참배하는 ‘종교연대’ 사람들의 양심을 더욱 참담하게 누른 것은, 국민을 지키는 국군이 산골 어린이들 머리에 방아쇠를 당기는 범죄를 자행한 용기가, 기독교 장로대통령 이승만이 “남녀 아동이라도 일일이 조사해서 불순분자는 다 제거하여 반역적 사상이 만연하지 못하게 하라”는 명령서에서 기인했다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날 하늘에 올려진 종교인들의 기도문은 “희생자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지금 여기에서 좌와 우, 남과 북의 생명평화의 길을 닦게 해주소서!”라는 염원으로 이어졌다. 죽음의 공포에 떠는 어미 품에 안겨 세상 모르던 젖먹이들, 할머니 치마폭에 싸여 벌벌 떨다 머리에 총을 맞고 쓰러진 저 아이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을 수 있다?’ 지리산의 근대사만으로도 동학운동을 일으켰다 우금치에서 패퇴하여 뱀사골로 들어왔다 관군에 몰살당한 농민들, 여수 순천에서 몰려 피아골로 들어섰다 토벌대에 총 맞아 죽은 시민들, 산청 방곡 고향집에 모여 설을 쇠다 끌려나와 국군의 손에 학살당한 아녀자들의 죽음이 무슨 보람을 낳을 수 있단 말인가? 필자도 종교를 신봉하지만 ‘선한 창조주가 선한 인간을 만들었다’는 교설보다 인생 자체가 생로병사로 엮어진 고해(苦海)라는 가르침에 더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래도 지구상에 만연한 인생고, 더구나 무죄하고 무구한 어린이들의 기아와 병고와 죽음을 목도하노라면 사찰 본존의 은은한 미소에서도 가슴을 쓸어내지 못한다. 다만 굴곡 많은 현대사에서 월남이나 한국의 스님들이 올려온 소신공양(燒身供養)이나 등신불(等身佛)의 일그러진 표정에서는, 숨 끊어진 시신으로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의 단말마에서는 언뜻 해답도 비칠 듯하다. ‘무죄한 자의 고통과 죽음’이 타인을 살리는 희생(犧牲)이라는 종교적 교설이 맞다면, ‘과거사위원회’의 추산으로 6.25 전후 대한민국 군경의 손에 학살당한 민간인이 150만이라니까, 가련한 민족사의 구비마다,지리산 능선과 골짜기마다 세워진 무수한 십자가들이 속삭이는 것 같다. “우리 혼백이 지리산 자락에서 가냘픈 몸뚱이를 벗던 순간 이 반도 속으로 우린 스며들었다오. 저기서 우린 이 땅에 살아갈 겨레의 번영을 도모하는 기운으로 되살아나고 있다오!” 그래서 노고할매 치마에서도 끝자락 방곡에 세워진 추모공원은 민족사의 성지(聖地)였고 그 작은 묘석 밑에 한 줌 흙으로나마 묻힌 어린이들은 세계 유일의 분단을 털고 일어나라고 겨레를 일으켜 세우는 순교자(殉敎者)들이었다! 그날 우리 기도회는 참 경건한 성지순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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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지리산 성지순례(聖地巡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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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찾는농부들 침수된 땅에 서다.
- <수해로 인해 망친 옥수수 > 8월8일 아침 멀리 섬진강이 넘실넘실 둑을 넘는 것이 보였다. 마을 앞 정자 넘어 까막정이뜰이 잠기기 시작했다. 이 곳은 비가 많이 오면 자주 잠기는 곳이었기에 별일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시간이 좀 더 지나고 19번 국도가 잠기기 시작했다. 논 옆에 있던 저온저장고가 잠기기 시작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배처럼 떠 오르기 시작했다. 마을 앞을 나가 보기 그 사이 마을 앞 모든 논이 물에 잠겼다. 불과 두 세 달 전에 새로 만들었던 하우스 하나가 물속으로 사라졌다. 섬진강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한 마을 사는 현근종씨 하우스가 물속으로 사라졌다. 그 안에 고추와 옥수수 그리고 아피오스가 심어져 있었다. 지금은 모두 사라졌다. 섬진강에서 넘친 물들이 점령군처럼 마을과 논 그리고 축사를 물속으로 집어넣고 있었고 갈 곳 없는 소들은 섬진강 둑에서 잠긴 축사를 그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뉴스 속보로 남원 금지면의 제방이 무너졌다는 소식을 들렸다. 남원에서 농사를 짓는 김동일 농부에게 전화를 했다. 집과 하우스가 모두 물에 잠겼다고 했다. 섬진강 하류지역인 남원 금지면 하도마을의 하우스 지붕까지 물이 찼다고 했다. 하도는 감자농사를 많이 짓고 맛도 좋은 곳이다. 김동일 농부도 하도에 비닐 하우스가 6동이 있었다. 몇 년 전부터 일이 힘들어 그만 두려고 했다면서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물에 찬 하우스는 고물상에 이야기해서 전부 철거를 해가라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가보기도 싫고 치우기도 힘들고 해서 안 가보려고요." 그게 15일 전인데 며칠 전 전화를 했더니 잠긴 하우스를 정리해서 토마토를 심었다고 했다. 겨울에 나올 딸기 모종도 다시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물에 잠겼던 하우스에는 10월이 되면 다시 붉은 토마토가 열릴 것이다. 땅은 사라지지 않았고 농부도 그대로 남았다. 구례 심문희 농부 하우스도 물에 잠겼다. 대부분 살아 남지 못했지만 다행이 몇몇 농산물은 그래도 멀쩡했다. 줄을 타고 오르는 여주나 수세미가 살았다. 죽은 것도 있지만 살아남은 것들도 있었다. 죽은 것이 더 많지만 하우스가 멀쩡하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했다. 홍수는 갑자기 농부들을 터전을 덥 쳤다.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하우스가 물에 잠기고 물은 침수당 했다. 소들은 죽어 나갔다. 죽은 소들 옆에서 농부들은 절망했다. 아직 희망을 이야기하기에는 그 피해가 너무 크다. 하지만 땅은 그대로 남았고 농부도 여전하다. 다시 시작해야 지… 별 방법이 없잖아. 전화기 넘어 한숨과 함께 말하던 그 목소리만이 유일한 희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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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찾는농부들 침수된 땅에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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툇마루 수다
- 한승명 (지리산생명연대 사무처장) 저는 지리산(산내면)에 깃들어 어머니를 모시고 두 아이를 키워내고 이제는 <지리산생명연대>에서 함께 지리산이 되자고 총총 걸음을 걷고 있는 아낙입니다. 봄볕 따사로운 툇마루에서 봄나물 다듬듯 잘 아시는 이야기 하나 풀어놓을게요. 한 농부에게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한 마리 있었습니다. 어느 날 더 많은 황금알을 갖으려고 거위배를 갈라보기로 하였습니다. 하지만 거위는 죽고 뱃속에는 창자와 똥뿐이였습니다. 농부는 울상이 되었습니다. '지리산'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의 우리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이 황금(돈)인줄 알던 때도 있었고 성공인줄 알던 때도 있었고 사랑인줄 알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리산에 깃들면서 진정 내게 소중한 것은 '생명'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지리산을 우러러 어머니의 산, 여신(마고)의 산이라고 칭송하는 것은 모든 것을 내어주고 살려주고 품어준 '생명의 산'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지리산을 나의 이기와 편리로 파헤치고 자르고 베어 거위 죽이듯 지리산을 죽이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곳에 태어나 지리산 덕분에 잘 살아왔고, 스스로 어쩔 수 없는 어려움과 직면하거나 어지러운 세상, 환란을 맞아 살아보고자 깃들은 지리산이건만 그 고마움을 망각한 채 그 지리산이 죽어가고 있는 것은 나와 상관없는 듯 침묵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내가 지금 살아있다는 것은 이 땅을 지키고자 자신의 생명을 내어 놓았으며, 모든 생명이 함께 살아야한다고 거리에서 외치고, 어린 자식들을 잃고 슬피 우는 어미들을 안아 주었고, 병든 세상에 맞서 서로를 살리기를 기꺼이 해낸 지리산 같은 이들 덕분입니다. 나는 그들을 주저 없이 '지리산'이라고 부릅니다. 지리산은 제일 높이 솟은 천왕봉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높으니 낮으니 어깨를 걸고 있는 모든 봉우리가 모두 '지리산'입니다. 자신을 내어놓고 서로 돌보고 살리면 내 자신의 생명도 건강하고 풍성하게 살수 있다는 지혜를 지리산은 가르쳐주었습니다. 오늘도 멍청이 잠을 자는 나를 흔들어 깨우는 것들이 있습니다. 기지개켜는 흙, 개구리 울음에 흔들리는 바람, 소녀의 숨소리처럼 달뜬 냇물, 온갖 생명들이 저마다 부르는 노래... 지리산이 이 봄에 내 귀를, 내 눈을, 내 온 몸을 흔들어 깨웁니다. 쑥개떡이나 빚어 이웃과 나눠 먹어야겠네요.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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툇마루 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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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아래(下)
- 김창승 (섬진강 수해극복 구례군민 대책본부 상임대표) 지리산과 함께 사는 기쁨을 아십니까. 큰산과 더불어 살고 싶다는 꿈은 누구나 꿀 수 있지만 아무나 할 수는 없습니다. 갈망하면서도 가까이 갈 수 없는 산, 누구나 어느 때나 다가갈 수 있는 산이지만 특별히 허락된 자에게만 자신의 몸 한자리를 내어주는 산이기에 쉬우면서도 어려운 것입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참배하듯 산을 보며 어떤 인연과 행운으로 지리산 아래(下)로 왔을까? 자문해봅니다. 그건 내 의지와 희망으로 선택했기 때문이 아니라 오래 전 부터 한 인간의 외로움과 허기 같은 갈증을 지켜보며 그의 자락, 어머니 같은 그의 품으로 불러준 지리산의 호명 때문은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지리산이 '김창승' 이름 석 자를 불러주었던 2014년 1월 14일, 그날은 지리산 하(下)에서 새로운 인생의 여정을 시작한 생일 같은 날입니다. 트럭에 짐을 싣고 오는 욕망의 덩어리를 지리산은 두 팔 벌려 그의 품에 안아주며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했다!' 시린 등을 토닥토닥 어루만져 주었습니다. 그날로 부터 지리산은 내 영혼의 안식처가 되었고 그의 곁으로 한 발 한 발 다가설수록 쉼표와 느낌표를 주었습니다. 산의 깊은 숨소리에 위안과 기쁨을 느꼈고 둘이서만 나누는 은밀한 대화는 달콤했습니다. 그를 떠나 멀리가면 왠지 어린아이처럼 불안했고 산이 도망가 버릴 것 같은 마음에 서둘러 돌아오곤 하였습니다. 무지개 터널을 지나 지리산과 구례가 한 눈에 보이는 언덕에 서면 나도 몰래 안도의 한숨이 나오곤 했습니다. 지리산중(中)을 돌면서 사람을 만났습니다. 마을 이름도 산을 닮은 그곳에는 야생화 같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상죽, 내죽, 상용, 중용, 하용, 상유, 중유, 하유, 상무, 하무… 산에 기대어 살며 산 하나씩을 내면에 끼고 있는 사람들은 겉으로는 무심해 보였지만 인사를 건내면 물 한 잔이라도 하고가야 한다며 옷 소매를 붙드는 속정 깊은 사람들이었습니다. 햇볕 드는 마루에 앉아 몇 시간이고 살아온 얘기, 먼저 가신 서방님 얘기, 아이들 모두 잘 됐다는 얘기를 오래된 지인처럼 하시다가 다시 꼭 오라며 손을 흔드는 고향 같은 사람들을 이었습니다. 이런 인연들을 하나씩 쌓으며 지리산 들꽃 같은 사람들 이야기를 마음속 앨범에 저장하면서 7년이란 세월을 꿈처럼 보냈습니다. 지리산 꼭대기(上)에는 흰 눈이 내렸습니다. 산에 기댄 사람들은 눈 내리는 소리를 들으며 추억을 더듬고 산짐승은 깊은 잠에 들었습니다. 백옥의 산을 올려다 봅니다. 아, 깨끗하고 때 묻지 않으며 시류에 흔들리지 않는 세상을 봅니다. 지리산으로 오기 전에는 높이 높이 올라가려는 꿈을 꾸었습니다. 아래는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고 낮은 곳으로 내려가려는 마음도 없었습니다. 그 헛된 꿈과 욕심을 내려놓고 이제는 소박한 꿈을 꿉니다. 봄이 되면 들꽃, 산꽃 가득한 마을로 가는 꿈을 꿉니다. 마당에 들어서며 '이모님, 어르신' 그간 잘 계셨는지 안부를 묻고 손을 덥석 잡는 꿈을 꿉니다. 낮은 곳에서 산을 보는 기쁨, 지극히 겸손하나 산을 닮은 옹골진 사람들을 만나는 즐거움, 목숨걸고 지켜온 그들의 깨알 같은 역사를 공유하는 특별함, 작은 꽃 하나와도 눈맞춤을 하며 대화하는 여유… 이 모두가 지리산의 선물입니다. 가장 평화롭고 생명력 넘치는 것들은 낮은 곳에 있었습니다. 하늘처럼 높고 존귀한 것들은 장엄한 산을 바라보며 기도하듯 살아가는 사람들의 가슴 속에 있었습니다. 잔잔한 평화로움이 무엇인지, 더불어 함께 가는 삶이 무엇인지, 작은 것 하나라도 함께 나누면 내가 먼저 행복해진다는 평범한 진리를 일깨워준 어머니의 산, 높지만 낮은 곳을 사랑하는 우리들의 영원한 고향 지리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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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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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아래(下)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