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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민으로 살아가기
    박형규 (기후위기남원시민모임 대표) 2016년 봄, 15년 간 살던 경북을 떠났다. 애초부터 딱히 정해진 곳이 있어서 움직인 건 아니었다. 산정호수 시절부터 20년이 넘게 산골생활을 한 아내는 아이들도 다 나갔으니 이젠 좀 따뜻한 남쪽나라에 가서 살자고 했다. 따뜻한 남쪽나라? 그래 그러면 아예 이참에 쿠바로 가서 살까? 했더니 그건 또 아니라 한다. 그러더니 친정인 무주 안성면에서 1시간 거리 정도면 된다면서 한계를 정해 준다. 임실, 곡성, 장수, 진안, 완주 등 몇 군데 찾아봤지만 별로 내키지 않았다. 그러던 10월 어느 날 지리산 산내 사는 후배를 보러 가는 길이었다. 강변에서 점심을 먹고 잠시 쉬고 있는 데, 흐르는 강물이 편안하면서도 묘한 매력이 느껴진다. 바로 전화를 해서 “여보, 남원은 어때요?” “시내인가요?” “응, 그래” “그럼 거기서 한번 찾아 봐요.” 이렇게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순식간에 남원으로 결정되었다. 박근혜 탄핵운동이 한창인, 11월 중순 경에 세를 얻어 요천가, 죽항동에 살기 시작했다. 이사한 그 주일 박근혜 탄핵운동 남원집행부를 찾아 갔다. 내 소개를 하고 집행부에 함께 동참하면서 남원살이가 시작되었다. 2017년 박근혜 탄핵 직후부터 <직접민주주의 시민남원회의>, <시민참여제도연구회>, <기후위기남원시민모임>의 이름으로 광치동화력발전소 반대투쟁 승리, 남원시민참여기본조례 제정운동을 해왔고, 현재는 기후위기운동과 지리산산악철도 반대운동을 진행 중에 있다. 대부분의 지역 소도시들이 그런 것처럼 남원에도 역시 ‘구체적인 민주주의’가 없다. 남원행정은 지역 주민들의 행복?을 위한 일을 한다면서 전혀 주민, 시민들에게 제대로 묻지 않는다. 남원시엔 16명의 시의원들이 있다. 그런데 이 16명 전부가 다 민주당이다. 게다가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일은 임실, 순창, 남원 지역위원장이 현 이환주 남원시장이다. 어찌 이런 파행적인 일이 있을 수 있는지 알 길이 없다. 시행정을 견제하고 감시하는 역할을 맡은 자들의 공천권, 그러니까 생사여탈권을 현직 시장이 쥐고 있는 거다. 이건 시장도, 시의원들도 남원시민을 기만하고 무시하는 처사다. 올바르게 돌아가는 지역이라면 행정과 의회, 그리고 시민들이 함께 어우러져 어떤 일이든지 정당한 ‘공론화 과정’을 통해서 진행되어야 하고, 그것은 마땅히 민주적인 사회의 바탕이 되는 기본이다. 남원의 실정이 이런데 시의회가, 시의원들이 제 직무를 잘 감당할 수 있을까? 시장도, 시의원들도 시민을 존중하기는커녕 시민의 뜻과 의사를 전혀 개의치 않는 곳이 남원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가 없다. 2주 전에 남원시 의회가 ‘기후위기조례 입법예고를 했다. 이는 매우 환영받을 고무적인 일이다. 그런 와중에도 남원시청 기획실에서는 9월 2일에 <지리산 친환경 전기열차 시험노선 유치를 위한 전략분석 및 정책성 수립용역> 심의회 결과보고 공문을 냈다. 처리기간은 1일이다. 매사가 이런 식이다. 지리산산악전기열차는 현재 여러 가지 논란이 일고 있다. 지리산은 남원사람 만의 재산이 아니다. 지리산은 전 국민뿐만 아니라 우리의 후손들까지 함께 누리고 보전해야할 소중한 공유자산이다. 이미 이웃지역 하동에서는 이른 바 ’하동알프스 프로젝트(산악열차, 케이블카, 모노레일)를 반대하는 대대적인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이 엄혹한 기후위기 시대에 개발과 토건을 중지하고 근본적인 정책전환을 도모 하지는 못할망정 이명박의 4대강과 다름이 없는 국립공원을 개발을 하겠다고 하는 망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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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6-01
  • ‘17년 지리산 살이’
    문미랑 (경상남도환경교육원) 대학을 졸업하고 빛나는 20대 시절에 나는 지리산에 살고 있었다. 구례 화엄사 황전마을 부근에서 5만 원 짜리 월세를 살면서 적은 월급이었지만 우체국의 이자율 9% 짜리 적금을 넣으면서 현재보다 더 빛나는 미래를 꿈꾸며 살고 있었다. 그 당시 나는 드라마 속 밝고 긍정적인 주인공처럼 살아갔던 것 같다. 새소리를 들으며 ‘오늘도 파이팅!’을 외치며 일어나, 어제 보았던 야생화의 꽃봉오리가 폈겠지 하는 설렘으로 카메라를 챙겨 출근을 하여, 동료들과 탐방로를 올라 식물 공부를 하면서 하루를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환상적인 직장 생활이었고 주변에는 내가 좋아하고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들과 함께 했던 시절이었던 것 같다. 지리산국립공원관리공단(현 국립공원공단)에서 근무하는 것이 행복했다. 해설을 하거나 외부 강의에 나가면 자랑처럼 나는 이야기했다. 하고 싶은 일, 내가 좋아하는 일, 내가 잘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벌고 사는 삶이 너무 감사하다고 말했다. 실로 그 시절에는 그랬다. 현재 나는 43살이다. 중년이라고 불리는 나이이고 조심하지 않으면 꼰대라고 뒷담화를 들을 수 있는 나이이다. 현재 나는 지리산국립공원 중산리에서 근무하고 있다. 나의 소속은 국립공원공단에서 경상남도 소속으로 바뀌었고 그 사이 하동군 소속으로 7년간 하동에서 생활하기도 했다. 나는 평생 지리산 부근에서 돈을 벌고 생활을 하고 사람을 사귀며 살아가고 있다. 지리산을 무대로 직장생활을 하면서 많은 일들을 했다. 그리고 나의 이름을 아는 사람들도 지리산권 마을마다 몇 명씩은 생겨났다. 지리산 어느 동네를 지나더라도 밥 먹을 사람, 차 한 잔 같이 할 사람이 생겼다. 하지만 3번의 직장을 옮기며 구례, 하동, 산청으로 다니면서 한곳에 정착을 하지 못했다. 지리산권 어디를 가더라도 아는 사람이 있고 만날 사람이 있는 나지만 나는 17년이라는 시간동안 어느 지역에도 정착하지 못했다. 이곳이 내가 사는 곳이다 고 아직 말할 곳이 없다. 지금 근무하는 산청으로 온지는 이제 일 년 하고 6개월이 지났다. 아직도 적응기이고 아직도 누군가를 사귀기에 낯을 가리고 있다. 아주 오래전 천은사에서 가졌던 모임에서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자기소개를 하는 자리가 있었다. 진행자가 유도 하지도 않았는데 사람들은 자기들이 지리산에서 살게 된 이유를 자신의 소개와 함께 이야기 하고 있었다. 나도 그때 그 모임에서 내가 지리산에서 살게 된 이야기를 소설처럼 이야기 했던 것 같다. 그런 와중 뒤에서 누군가의 삐죽거림이 들렸다. “다들 지리산 병에 걸렸구나. 와서 망치지나 말았으면” 그분은 내가 아는 누구보다 지리산을 사랑하시는 분이셨다. 그 모임 이후로 나는 그분을 볼 때 마다 주눅이 들어 은근 피하게 되었다. 그때 내 나이 30대 초반이었다. 무엇이 그렇게 내 양심을 찔리게 한 건지 나는 오랫동안 그 이유를 생각하고 또 생각했던 것 같다. 나는 작년부터 번아웃(burnout)도 왔고, 20대의 마음처럼 내가 하는 일이 마냥 즐겁지도 않고 지리산 살이가 완전히 행복하지도 않다. 그리고 나는 가끔 직장을 탓하고 나를 힘들게 하는 주변 사람들을 혼자 미워하기도 한다. 제발 좀 쉬고 싶다는 생각과 26살의 나로 돌아 갈순 없지만 43살의 지금의 나로 계속 살아가는 것은 참 슬플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이다. 나는 천은사 회의 때 이야기했던 지리산 살이 찬양을 지금까지 지켜내지 못하고 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나를 비롯해 그저 왔다갈 사람들이 영원히 살 것처럼 이야기하며 지리산을 망쳐놓고 떠나버리는 모습이 야속해서 그분은 독설을 하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양심에 그분의 독설에 눈치를 보았을지도 모르겠다. 지리산인 편집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원고 펑크도 냈었고 매번 원고마감이 다되어서야 편집자의 속을 썩이며 원고를 냈었다. 모자란 글 솜씨로 열심히 쓰려고 노력은 했지만 바쁜 직장생활 핑계를 대며 정성들여 쓰지를 못했다. 일이 바쁘고 원거리 인터뷰의 험난함을 이유로 나는 5월 편집회의에서 편집위원 자리를 내어 놓았다. 그리고 17년 동안 지리산 살이에 정착하지도 못한 내가 ‘지리산 사람들’의 이야기를 써나간다는 것도 나에겐 모순이었다. 무엇보다 나는 뭐 하나라도 들어내고 쉬고 싶다. 이제는 좀 쉬면서 내가 정착할 곳에 정을 들여야겠다. 정착할 마음의 끈을 다잡아야겠다. 글하나 안 쓴다고 내 생활이 엄청나게 편해지지 않을 것을 알지만 그래도 당분간은 일을 하나씩 줄이고 17년 지리산 살이의 결론을 좀 내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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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6-01
  • 나의 주인은 나
    문미랑 (경상남도환경교육원) 언제부턴가 차 안에서 음악을 듣는 대신 명사의 강의나, 읽어 주는 라디오 책을 듣게 되었다. 나는 음악을 참 좋아했던 사람이었다. 나는 음악을 들으며 멜로디를 통해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져 고독을 즐기기도 하고 고민의 답을 찾아내기도 했었는데 언제부턴가 이것들이 스트레스로 느껴져서 명사가 ‘이렇게 해라’, ‘저것은 틀렸다’ 하는 가르침을 받는 편이 편해져 버렸다. 예전처럼 음악을 삶에 담고 있지 않는 것이 나이듦의 시작인가 하는 씁쓸한 생각도 들지만 이제부터는 마음도 몸도 편안하게 살고 싶은 것이 나의 솔직한 마음이다. 구례에 사는 김동관씨를 만났다. 그와는 조금의 친분이 있는 사이이다. 그는 집짓는 목수, 철학을 논하는 명상가이다. 나는 명상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내가 아는 명상은 가부좌를 틀고 손을 무릎 위에 올려 눈을 감고 마음을 평온의 상태로 만드는 것이다. 오랜만에 만난 김동관씨는 무척 말라 있었다. 내 기억 속에 그는 덩치가 꽤 크고 노래를 잘불렀던 사람이었는데 왜소한 그를 만나니 조금은 낯설게 느껴졌다. 1991년에 지리산살이를 시작한 그는 구례에서 꽤 유명한 사람이다. 그를 유명하게 한 것 중 하나는 목수 일이다. 나도 그가 지은 집과 집주인을 몇 분 아는데 그가 지은 집은 대부분 그 집에 사는 사람에 대한 사랑이 담겨 있었다. 내가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그가 지은 집을 보고 느껴지는 것들의 공통점은 집이 사람과 닮아있다는 것이었다. 시인의 집은 시를 읽는 듯한 느낌이고 외로운 홀아비의 집은 사랑을 찾는 이의 쓸쓸함이 느껴졌던 것 같다. 그리고 자연속의 일부인 듯한 자연스러운 어울림이 그가 공정에 참여한 집들이 갖는 공통점이었다. 그와 ‘명상과 삶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한 시간이 지나 있었다. 솔직히 나는 간간히 그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기도 했고, 어느 부분에서는 그가 몽상가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그 혼란 속에서 한 시간이 금방 가버렸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음악듣는 것을 즐기지 않게 된 후에는 생각의 늪에 사로잡히는 것이 귀찮은 나였는데 그와 대화를 이어 갈수록 나는 내 속의 질문과 고민의 소용돌이에 빠져들고 있었다. 그리고 우연히 나온 로드킬 이야기를 하면서는 로드킬의 공포로 밤길 운전이 두려워 밤에 활동하지 않는 나의 문제도 이야기하게 되었다. 그가 했던 말 중에 기억에 남는 구절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똑바로 사는 것이 무엇인가? 사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살자. 나는 어디에서든지 명상을 한다. 일상 속에서도 명상을 하고 지금처럼 대화를 하면서도 명상을 한다. 나는 스트레스가 전혀 없어요. 생명의 본질을 깨닫고 매 순간 내 삶에 최선을 다하는 자세로 살아가면 그게 진정한 사랑입니다. 진정한 사랑을 이루면 스트레스는 자연히 없어집니다. 자신의 껍데기를 위해서 사는 사람이 많아요. 육체는 노예처럼, 감정은 하인처럼, 생각은 지나가는 바람처럼 살아 가다 보면 내 자신의 주인은 내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제 아이들에게 늘 강조했던 말은 다섯 가지입니다. 무해(無害), 남에게 절대로 해를 끼치는 일을 하지마라. 진실(眞實), 진실로 상대방을 대하라. 성실(誠實),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해라. 매순간 내 인생에 충실해야 후회가 없다. 절제(節制), 지나치지 말고 절제하라. 성찰(省察), 자신을 돌아 보고 반성하며 살아라.” 명상을 하든 일을 하거나 음악을 듣든, 로드킬이 염려되는 길을 운전해가든지 우리는 껍데기를 위해 살지 말고 내 자신의 주인으로 나를 사랑하고 살면 필요없는 염려를 버리고 진정한 사랑을 이룰 수 있다는 말을 그는 나에게 끊임없이 힘주어 강조했다. 집으로 가는 길은 어두웠다. 강 옆에 있는 시골길을 운전해 가면서 나는 음악을 틀었다. 12월 U2공연이 서울에서 있다는 소식을 얼마 전에 인터넷에서 본 것이 기억나서 U2의 음악을 들으며 운전을 했다. 나는 음악을 들으면서 너무 고민하지 않았고 운전을 하며 사고가 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을 갖고 천천히 조심스레 운전했다. 더 이상 음악은 스트레스가 아니었고 시골길 로드킬에 대한 공포도 시나브로 사라져갔다. 나는 그와 인터뷰를 하는 내내 명상으로 깨달음을 얻었음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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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6-01
  • 지리산 마루금처럼 고운 자연주의자
    문미랑 (경남환경교육원) 내가 일하는 경상남도 환경교육원은 지리산 중산리 산 속에 위치해 있다. 퇴근을 하고 인터뷰를 하기 위해 산을 내려가는 길가에 노란 꽃들이 풍성하게 피어 있다. 무슨 야생화일까 궁금하여 잠시 차를 세울까 고민하다가 피나물이겠지 하고 지나쳤다. 산청 중산리 버스주차장에서 계곡의 다리를 건너 최문옥님네 집으로 갔다. 숲길을 가다가 우연히 쉬어가고 싶은 아늑한 집을 만난 듯한 느낌의 집에서 그녀가 나왔다. 그녀의 집은 모든 소품이 이쁘고 특색 있고 아름다운 조명과 자연을 담은 창이 집과 조화를 이루어 숲속 카페에 놀러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최문옥님은 2001년 지리산 산청 고향마을에 32세의 나이에 남편과 함께 귀촌해서 지리산에 정착했다. 그녀와 남편의 집은 중산리 계곡 옆에 위치해 있는데 귀촌했을 당시 부부의 집만 있고 주변에는 아무도 살지 않았다고 한다. 지리산을 찾은 사람들이 차도 마시고 정답게 쉬어 갈 수 있는 장소를 만들어 보자는 생각을 한 부부는 ‘나무와 집’이라는 유명한 건축 회사에 가진 돈 전부를 들고 가서 본인들이 생각하는 집을 지어달라고 했다 한다. ‘나무와 집’에서는 그 돈으로는 집을 지을 수가 없으니 돈을 더 벌어오라고 했지만, 부부는 모두가 찾고 여행오고 싶어 하는 지리산에 작품같은 집을 지으면 도시 뿐만 아니라 지리산권에도 홍보가 되어 회사의 이미지에도 큰 도움이 될 거라며 회사를 설득해 집을 지었다고 한다. 30대 초반의 부부가 눈을 반짝이며 열정을 뿜어내 이야기하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그녀는 지리산국립공원의 자원활동가다. 19년째 자원활동가로 일하고 있으며 식물, 곤충, 기후모니터링, 해설활동까지 하는 다재다능한 시민과학자이기도 하다. 2014년에 지리산국립공원의 시민대학은 ‘유네스코 한국위원회’로부터 지속가능발전교육(ESD) 공식 프로젝트를 인정받았다. 이는 지리산권의 마을과 주민을 대상으로 생태, 환경, 인문학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여 국립공원관리공단과 마을주민들 간의 소통의 장을 마련하게 되었다. 아울러 환경인식 변화, 자연훼손 방지 및 복원사업 등의 성과를 낳게 된 것도 시민대학의 힘이었다. 12년동안 이어져 오고 있는 자원봉사활동과 시민대학의 중심에 그녀가 자리하고 있다. 예전에 국립공원 직원과 탐방로를 가는데 분뇨 냄새가 나니까 직원 왈, 사람들이 산에 와서 화장실이 급하니 아무데서나 볼일을 본다고 말하길래, “아니에요. 이 냄새는 금마타리라는 식물에서 나는 냄새예요. 그래서 패장이라고도 해요.”라고 알려줘서 지역의 신문에 특색 있는 식물 소개를 인터뷰하기도 했다 한다. “‘꿩의 바람’이라는 꽃을 아세요? 중태마을에만 있는 식물인데요. 봄에 꿩이 울 때 핀다고 이름을 ‘꿩의 바람’이라고 부른데요.” 둘레길에 도로공사를 한다고 중태마을에만 있는 ‘꿩의 바람꽃’이 없어질 위기에 놓여서 그녀가 ‘숲길’에 소식을 전해 다른 곳에 옮겨 복원중이라고 전한다. 식물을 전공한 나지만 그녀 앞에서 식물 이야기를 꺼낼 수가 없다. 그리고 좀 전에 산을 내려 올 때도 노란 군락의 꽃을 보며 짐작만 하고 지나쳐 온 내가 아니었던가. 자연생태사업과 환경교육이 본업인 내가 그녀의 열정 앞에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귀촌해서 지금까지 자연이 소통의 장이었고 취미생활이었으며 가장 소중하게 지켜내야 할 곳이라고 생각한다는 그녀의 지리산 사랑은 끝이 없다. 부드러운 목소리 속에 그녀가 생각하는 자연 사랑이 너무도 대단하여 만난 후 질문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한 체 대화가 이어져 나갔다. “식물 공부를 하고 자원활동을 하면서 지역의 숨은 인재들을 만나고 국립공원과 마을 주민들을 만나서 인연을 쌓아가고 소통해 가며 살아갈 수 있어서 너무나 좋아요. 제가 자원봉사활동을 하면서 고맙고 도움받은 일들이 외려 많아요.” 라고 말하는 그녀. 내면이 꽃보다 아름다운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몇 달 동안 일에 치여 개인생활도 없이 살았던 나의 현실에 위로와 힐링이 되었다. 인터뷰도 끝나지 않았는데 나는 “저 다음에 또 놀러 와도 될까요?” 하고 사적인 질문을 했다. 그녀는 본인이 없으면 뒷마당에서 책이라도 읽고 가라고 고운 미소로 웃어 준다. “해설을 처음 시작할 때는 식물 공부에 너무 심취해서 식물 위주로 했는데 요즘은 자연과 삶의 소통을 가져올 수 있는 쪽으로 하고 있어요. 지리산은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치유해주고 모든 것을 받아주잖아요. 산 중의 어른산이 지리산이잖아요. 이런 지리산이 삶의 공간이라는 것이 너무나 자랑스럽습니다.” 따뜻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가는 그녀를 보니 마치 지리산의 능선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바쁜 일상으로 모나고 각졌던 내가 그녀로 하여금 오늘은 잠시나마 부드러워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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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6-01
  • 꽃 피는 봄이 오면
    박두규 (시인) 예전에는 봄이 오면 꽃들이 그래도 순리대로 피었다고 할까, 나름의 질서를 가지고 피었다. 매화가 피면 산수유 꽃이 따라서 피었고 이어서 벚꽃이 길가에 가득 피어나면 개나리가 그리고 자두꽃 살구꽃이 피고 복숭아꽃이나 사과꽃 배꽃이 이어서 피어나면 산 위에선 산벚이 가로등처럼 꽃을 달고 군데군데 피어났다. 그렇게 2월이 지나며 피기 시작한 꽃이 3월과 4월에 걸쳐 절정을 이루고 5월까지 그 모습을 이어갔다. 그렇게 봄은 꽃들이 온 동네를 감싸니 가히 꽃대궐이라고 노래할만 했다. 하지만 이제는 거의 한꺼번에 꽃들이 피어난다. 산벚꽃 마저도 산 아래 꽃들과 함께 피니 간극의 차이로 피던 꽃들의 질서가 문란해졌다. 기후위기라는 것도 그렇지만 흡사 도리가 무너진 인간세상의 무질서를 따라오는 듯하여 마음이 그냥 즐겁지만은 않다. 몇 년 전의 이야기다. 벚꽃이 흐드러져 절정에 이른 어느 봄날 강아지 새끼 한 마리를 기르게 되었는데 뱃속에서 나와 지금껏 꽃 구렁의 세상을 두리번거렸을 것이니 꽃돌이라 이름 지었다. 사실 나는 개를 기른다는 건 생각조차 하지 않고 살고 있던 때였다. 어느 날 지인의 개가 새끼를 8마리 낳았는데 한 마리만 맡아달라고 부탁을 해서 차마 거절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개는 사람처럼 강한 에고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웬만한 일에 섭섭해 하거나 슬퍼하거나 절망하는 일도 없을 것이니, 이것도 팔자려니 하며 개 닭 보듯 그냥 데리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넘겨받았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녀석이 너무 나만 바라보고 산다는 것이었다. 나는 집을 비우는 일이 잦았는데 목줄을 안 했으니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그냥 혼자 놀았으면 했다. 그런데 내가 안에 있을 때면 문 앞에서 낑낑대고 나가면 정신없이 달려들었다. 비가 와서 땅이 젖은 날에도 그렇게 달려드니 옷이 엉망이 되곤 했다. 툇마루도 그 녀석 차지가 되어 온통 더럽혀져 있어서 그곳에 앉아 먼산바라기를 하던 즐거움도 잃게 되었다. 게다가 텃밭 일을 하면 따라다니며 밭의 작물을 온통 짓밟고 다니니 점점 귀찮은 존재가 되어 갔다. 그렇다고 목줄을 매자니 저도 한 생명인데 2~3m 정도로 행동반경을 좁혀 감옥생활을 시키는 것은 할 짓이 못되었다. 그러다보니 꽃돌이 때문에 내가 몇 년 동안 공들여 얻어낸 일상의 평화가 깨지게 되었다. 아내의 지청구를 들어가며 고집을 부려 이 집을 지었고 본가를 오가며 홀가분한 마음으로 이 ‘두텁나루 숲’의 공간을 나름대로 즐길 수 있게 되었는데 꽃돌이 녀석 때문에 이 집에서 보내는 소소한 일상의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는 것이 매우 아쉬웠다. 하지만 개를 넘겨받는 순간 모든 걸 스스로 받아들이기로 한 이상 꽃돌이에게는 잘못이 없었다. 그 녀석은 그 녀석대로 제 주어진 삶을 살고 있는 것이고 나는 나대로 이 상황을 인정하고 수용해야만 했다. 그러면서 느낀 것이 있다면 아이든 아내든 친구든 손님이든 강아지든 함께 한다는 것은 한 생명을 모시는 일이기도 해서 스스로를 그만큼 내려놓지 않고서는 도대체 해볼 도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오늘처럼 벚꽃이 절정에 이르러 꽃터널을 이루는 화사한 봄이 오면 그래도 정이 들었었는지 수년 전 우여곡절 끝에 헤어진 꽃돌이가 가끔 생각난다. 지금 어디서 살고 있는지. 살아있기는 한지. 사람이건 동물이건 사는 동안 단 한 번이라도 서로의 마음을 진정으로 주고받았다면 그것도 사랑인지. 멀지도 않은 그 옛날, 담장 너머로 주고받던 눈빛 하나, 손을 마주잡던 한 순간의 기억으로 한 생을 버티기도 했을 사람들. 그 순정이 있어 삶은 아름답다는 생각도 한번 해보는 것이다. 꽃돌이 때문에.
    • 사람이야기
    2021-06-01
  • 다시 새해
    김석봉 자문위원 밀레니엄의 종소리가 귓가에 생생한데 벌써 스무 해가 지났다. 도시의 거리에서 새로운 세기를 맞이하던 그날이 새삼 떠오른다. 무엇인가 커다란 변화가 있을 거라는 설렘과 기대에 부풀었던 날들이었다. 세상이 확 바뀔 것 같은 예감이 가득 찬 시절이었다. 그리고 한 해 두해 새해를 맞이하면서 어느새 스무 해를 꽉 채웠다. 그렇게 새해를 맞이할 때마다 무엇이 얼마만큼 달라졌나를 확인하곤 했다. 해마다 그랬듯 결과는 절망이었다. 우리네 삶의 문명은 언제나 더 높은 곳을 지향했고, 더 많은 것을 탐해 왔다. 지리산도 내내 몸살을 앓았다. 곳곳에서 케이블카를 놓겠다며 덤벼드는 모습은 참으로 가관이었다. 한 물 간 양수발전소 건설계획이 나타나 우리를 놀라게 하더니 성삼재까지 고속버스가 운행하는 상상할 수조차 없던 일이 현실이 됐다. 태풍과 폭우로 섬진강이 범람하여 주민들 삶의 터전을 할퀴는 사이 정부는 산등성을 파헤치는 산악열차 관광사업 프로젝트를 툭 던져놓았다. 주민들이 갈라서고 공동체가 너덜너덜해질 지경에 이르러서야 언제 그랬냐는 듯 그들은 발을 뺐고, 끝내 주민들만 멍든 상처를 안고 견뎌야 했다. 우리네 삶의 문명이 대개 이랬다. 이런 문명의 한복판을 코로나 바이러스가 휘젓고 있다. 벌써 한 해가 다 되었다. 점포는 문을 닫았고 사람들은 집으로 숨어들었다. 직장동료라는 이유로 한 번 만나보지도 않은 그이의 어버이 문상을 한답시고 밤 새워 달려갔고, 친척이라는 이유로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몇 촌 조카 결혼식장 찾아 다녔다. 그렇게 경조사 챙기고 상부상조하는 것을 미덕이라 여겼다. 그렇게 만나 축하하고 달래는 것이 사람 사는 정이라고 여겼다. 그런 일에 빠지면 눈 밖에 났고, 외톨이로 지낼 수밖에 없어 어떻게든 눈도장을 찍어야 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여기 지리산 구석구석도 많이 달라졌다. 명절마다 자동차로 가득 찼던 마을공터엔 추석인데도 썰렁했다. 일가친척들 다 모이던 선산벌초는 구경조차 할 수 없었다. 음력 시월 묘사를 지내는 곳도 보이지 않았다. 도시 사는 아들딸들 김치 통 들고 줄줄이 모여들던 김장철 풍경도 사라졌다. 자식들은 그저 오붓하게 온 듯 만 듯 다녀갔다. 도시의 삶에 지친 이들이 하나 둘 귀향의 보따리를 싸들고 동구 밖을 기웃거린다. 늙은 부모를 봉양하며 대대로 내려온 다랑이논에 삽질하는 낯선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필경 음식점을 하다 망했거나 실직한 아들에게 자신의 삶터를 물려주고 낙향한 중늙은이들일 것이다. 어렵고 힘든 시절이다. 인류에 기생하며 함께 진화해온 이 바이러스를 어쩌겠는가. 피해 갈 수 없으면 받아들여야하고 아픈 만큼 새로운 무엇을 창출하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이 바이러스는 우리에게 많은 변화를 강요했다. 그동안 우리가 향유해온 소비중심적인 우리네 삶의 양식에 경종을 울렸다. 마천루로 상징되는 21세기 삶의 문명, 삼천 포인트를 향해 질주하는 주가지수와 황새가랑이도 찢어놓을 듯 치솟는 집값에 매달려온 허접한 삶의 문명을 내려놓으라고 윽박질렀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그동안 만나고 모이는 일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비해 왔다. 올해는 그 많던 동창회도 송년회도 열리지 않았다. 조금도 서운하지 않았다. 그동안 경조사를 온라인으로 챙기다보니 굳이 만나야하냐는 생각이 굳어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동안 우리에게 친숙해진 많은 것들을 버리기 시작했다. 그 빈자리를 새로운 것으로 채우기 시작했다. 앞만 보며 빠른 속도로 짓쳐가던 발걸음을 멈추게 하였다. 가난한 이웃을 돌아보며 천천히 걸어가는 발걸음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였다. 가까이에 있는 것들에 온정을 쏟고 정성의 손길을 보낼 줄 아는 삶. 저 덤불 속 작은 새와 풀숲의 꽃들과 돌담 위에 오두마니 자리 잡은 길고양이와 그 담 너머 늙은 이웃들이 다 나와 같다고 여기면서 살아야 한다고 일러주고 있다. 그런 세상으로 향하는 길을 안내하고 있다. 올해는 바이러스를 넘어 그 길을 나서는 새해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
    • 사람이야기
    2021-06-01
  • 단순 소박한 삶을 위하여
    박두규 (시인) 가을이 왔다. 이번 가을은 유난히 반갑다. 지난 여름이 너무 혹독해서 그럴 것이다. 유래 없는 홍수로 섬진강이 범람하고 구례는 물속에 잠겼다. 그 피해와 슬픔, 복구와 고통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하지만 가을은 왔고 머잖아 또 계절이 바뀌고 한 해가 저물고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일상은 계속 될 것이다. 문제는 이번 재해는 구례의 재해만이 아니라 지구의 재앙이었다는 것이다. 초록별 지구는 자본주의 문명의 극점을 찍고 급격하게 그 대가를 지불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과학자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지구의 재앙을 염려하고 정치권에 호소했고 그 심각성을 인지해 교토의정서(1997)며 파리 기후변화 협약(2020) 등을 채결하지만 대부분의 나라들은 눈앞의 이익 때문에 소홀히 하고 탄소배출량이 두 번째로 많은 미국(트럼프)은 미국경제에 해가 된다고 탈퇴를 선언했다. 탄소배출량을 줄여 지구의 온도를 2℃ 이상 상승하지 못하게 하자는 세계의 약속이 깨지고 이대로 방치되면 2100년에는 4~5℃ 이상으로 오르게 될 거라는 것이 정설이다. 4℃ 이상 오르면 어떻게 될까? 그렇게 되면 해수면은 최대 2.4미터 상승하며 인구 1000만의 자카르타 같은 도시들은 2050년에 잠긴다고 한다. 북극의 빙상은 이미 붕괴된 지 오래고 알프스의 눈도 70%가 녹고 적도 지방의 주요 도시들은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으로 변하며 물 부족과 폭염으로 북위도 지역마저도 해마다 수천 명이 죽고 남부유럽은 영구적 가뭄에 시달리며 라틴아메리카에서만 뎅기열이 800만 건 이상 증가하고 전 세계의 식량 위기가 매년 닥친다는 것이다. 그리고 코로나와 같은 새로운 질병들, 상상을 초월하는 산불과 홍수의 증가, 수천만 명에 이르는 기후 난민, 경제 대공황과 지역 간의 기후분쟁, 농산물 생산이 크게 줄면서 자원전쟁 등 곳곳에서 전쟁까지 늘어나게 된다니 앞으로 80년 안에 변화될 지구의 모습을 쉽게 상상해볼 수 있다. 80년이면 사실 코앞에 온 현실이며 내 자식과 손자들의 시대다. 이번 여름 구례의 수해처럼 곳곳에서 일어나는 역대 급 재난들을 지구의 재앙과 연결해서 봐야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개인과 국가 모두가 눈앞의 이익만을 계산하고 살 수는 없는 국면에 이르렀다는 것을 실감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피해와 재앙이 구체적으로 먼저 오는 곳은 가난한 사람들과 가난한 나라들부터이며 부자들과 부자나라들이 저지른 죄가를 목숨으로 막아주게 되는 것이다. 이제는 어쩔 수 없이 공존 공멸하는 세기가 시작되었다. 지금 21세기에 전 지구적으로 기후에 대한 총체적 대응을 시작하지 않으면 인류의 멸망은 천년 안에 이루어지지 않을까. 이 불행의 씨앗은 자본주의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욕망을 그대로 이데올로기화 한 자본주의의 종말이 세상의 종말이라는 말도 있지만 이제 우리는 이 자본의 욕망과 그 구체적 일상으로부터 탈출을 시작해야 한다. 그 방법과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다르게 이야기 한다면 단순 소박한 삶의 방식을 개인과 국가들이 과학적으로 그리고 전 지구적으로 함께 만들어 가야한다.
    • 사람이야기
    2021-06-01
  • 아이고, 고만 잊어버렸구만이라....
    언재 한성수 자문위원 아이고 노고단아! 외마디 부르짖음과 더불어 서둘러 컴퓨터 앞에 앉아 이 글을 쓰면서 장탄식을 토한다. 지리산인 구례 계간지에서 부탁한 짧은 글 하나 써달라는 원고 청탁을 받고, 쉽게 대답하고 나서 그만 잊어버리기만 3차례, 13일 마감을 약속하면셔 윤주옥님의 전화에 아주 미안하게 또 헛 약속을 날렸고, 오늘 17일 오후에 문득 다시 생각이 떠올라서 드디어 컴퓨터 앞에 앉았다. 이 글이 이번 호 지리산인에 실리지 못해도 좋으나 일단 자신을 살피는 신세타령이라도 써 놓고 볼 일이다. 미국에서 나그네로 떠돈 30년 세월을 뒤로하고, 구례에 온 지 16년 반이란 세월이 지났고, 사람들이 나의 말투가 좀 다르다고 항상 되묻는 말, “고향이 어디세요?”에 똑같은 대답 “충청북도 제천요!” 여러 번 반복하다가 5년 전엔가 그만 구례로 호적을 옮겨버렸다. 이젠 여기서 살다가 전라도 사람으로 죽어갈 심산이었다. 제천에서 태어나 중학교까지, 부산에서 고등학교, 서울에서 대학교, 미국에서 대학원 공부를 하는 동안 허망한 세월을 따라 노상 이사를 다녔다. 마지막 이삿짐은 지리산에서 풀게 되겠지.... 문제는 그 좋다는 한국의 명산 지리산 자락, 산 높고 물 맑은 구례에 살아온 어즈버 지난 16년이란 세월이 내 육신을 서서히 무너뜨려온 징조가 해마다 새롭게 목록을 더해간다는 점이다. 누군가 말하기를 60대엔 매년이 다르고 70대엔 매달이 다르고, 80대엔 매일이 다르다나? 그 말이 대충 맞는다고 맞장구를 치게 생겼다. 처음 구례에 정착했을 때 너무도 흥분해서 매년 그 좋은 지리산 종주를 6차례나 거듭했고, 매 주일 거의 한 차례씩 구례 화엄 계곡을 허덕이면서도 기어올라 노고단에 가서 노고 할망구에게 절도 많이 했는데, 어느 세월에 무릎이 시큰거리더니, 등산 금지령을 내리는 의사의 입술이 얼마나 야속하던지.... 그런데 요즘 새로 생긴 증상이 아주 고약하다. 뭔가를 자꾸 잊어버린다. 가까이 지내는 벗님이 여수에 계신데, 그 양반이 병원에 입원을 했다는 전화를 받고, 곧 안타까운 마음에 문병을 가겠노라고 다짐을 하고는, 마이동풍! 그만 귀로 씹어버렸고, 두뇌 속에서 말끔히 청소를 해버렸다. 어떻게 구차한 변명을 한다? 뭔가 새로운 세월이 나를 향해 성큼 다가오는 발소리가 흉측하고 음산하게 들린다. 알츠하이머? 치매 전조? 아이고, 노고단아! 산 높고 물 맑고 바람 시원한 구례에 사는데, 웬 이상한 풍경 소리? 앞으로 살아가는 시간에 사람들 대하기가 미상불 조심스럽다 못해 끔찍스러운 짓도 거듭하고, 그러다 보면, “그 양반도 이제 그만 삭아가시네. 쯧쯧,” 하는 소리가 벌써 들려오는 것만 같다. 얼마 전에 누구와 대화를 하는 가운데, 공연히 아는 척하고 수학계의 최고 난제로 여기는 리이만 가설(Riemann)을 설명하면서, 리이만이란 이름이 가물가물 생각나지 않아 엉뚱한 사람 이름을 대면서 썰을 풀었겠다. 집에 와서 생각이 나는데, 아이고 왜 즉시 손 전화(요즘 손전화는 컴퓨터 축소판)에라도 조회를 하지, 어물쩡 저물쩡 떠들어제끼기는.... 뒤늦게 다시 전화를 걸어 온갖 변명을 해대는 나 자신이 불쌍해졌다. 정말 치매(Alzheimer's disease) 가 온거여? 아이고 노고단아! 나 이제 어떻게 해....
    • 사람이야기
    2021-06-01
  • 나의 우리, 우리 속의 나
    박두규 (시인) 현재(6월3일) 우리나라 코로나19 확진환자는 11,590명 사망자는 273명이다. 그리고 현재(6월2일) 세계의 확진자 누적 인원수는 6,330,848명이고 사망자는 376,008명이다. 그리고 국가별 사망자를 보면 미국 106,195명 영국 38,489명 이탈리아 33,415명 브라질 29,314명 프랑스 2,8802명 스페인 27,127명 중국 4,634명 일본 891명 한국 270명이다. 이 수치는 이 글을 읽게 될 즈음이면 훨씬 더 올라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코로나 국면은 앞으로 코로나보다 더 진화된 또다른 바이러스의 유사상황을 예고하는 시작일 뿐이며 단순히 죽음에 대한 공포가 아니라 사피엔스라는 종의 멸종을 예감하는 전조현상으로까지 말하는 미래학자도 있다. 이제 코로나19 이전의 시절로 돌아가 예전의 일상 삶을 살 수는 없을 것이며 지구인들의 삶은 큰 변화를 가져올 거라는, 아니 변화해야 한다는 위기의식을 충분히 느끼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자본주의를 토대로 이루어낸 과학기술문명, 물질문명의 틀에서 벗어나 한 단계 확장된 의식을 토대로 한 도덕적 과학기술과 정신문명으로의 새로운 판짜기 변화가 절실해진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포스트 코로나의 지구상황을 예견하고 인간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켜 갈 것인가를 이야기해야 된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아 변화되어야 할 의, 식, 주, 의료, 교육 그리고 정치, 경제 등 모든 분야에서까지 기존의 질서와 그 틀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를 이야기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변화의 국면에서 한국의 위상과 기대치는 매우 높게 나타나고 있다. 그것은 그동안 자본의 논리, 물질적 가치로만 삶의 모든 것을 판단하다가 코로나19를 맞아 인간 본연의 존재가치와 정신적 가치로 삶의 문제를 판단하게 되면서 드러난 것이다. 미국이라는 나라와 서구의 선진국들은 이번 코로나 국면에서 그 의식의 수준을 그대로 드러내었다. 그동안 그들을 선망하게 했던 자유주의, 개인주의적 가치가 이런 생명존재라는 근본적 문제에 있어서는 단순히 사피엔스라는 종의 욕망, 욕심, 탐욕이라는 이기적 범주 속에 있는 통속적인 것 이상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서구 석학들의 반성적 성찰은 그래서 동양의 유교적 전통과 사상, 특히 한국의 이번 코로나 대응 국면을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이 국면을 대응하기 위해서는 아니지만 다행히 이 국면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민주적 시민성과 공동체 의식, 그리고 그 속에서 형성된 수평적 개인주의, 공동체적 자유주의 등 코로나 방역 성공의 필수적 요소들을 갖추고 있었다. 그것은 식민지와 전쟁, 군부독재 등 일련의 역사적 과정 속에서 자연스레 축적된 것이며 많은 피를 흘리며 얻어낸 값진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프랑스혁명보다 더 진화된 촛불혁명이라는 인류사적 의식의 확장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이고 그 확장된 선진의식이 코로나 국면 속에서 발휘되면서 한국이 코로나 대응의 모범적인 극복모델로 부각된 것이다. 하지만 우리사회의 내면을 돌아보면 아직도 멀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번에 시사IN과 KBS가 공동기획한 대규모 웹 조사 중 하나로 한눈에 무엇인가를 짐작하게 하는 재미있는 결과가 있다. 그것은 코로나19 이후 한국사회 신뢰도를 묻는 질문이었는데 결과는 이렇게 나왔다. ‘질병관리본부(+75) 의료기관(+72) 가족(+67) 대한민국(+53) 친척(+41) 청와대(+29) 정부(+27) 한국국민(+21) 이웃 사람(+11) 지방 정부(+3) 민주당(-3) 국회(-33) 낯선 사람(-36) 언론(-45) 종교기관(-46) 미래통합당(-56)’ 이 신뢰도 결과는 단순히 신뢰만이 아닌 코로나 국면을 맞아 드러난 현재 한국사회의 삶 자체의 여러 단면을 생각하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코로나 국면에서 보여준 서구의 사회의식보다 앞선 자유로운 개인인 동시에 공동체에 기여하려는 시민의식을 잘 보여주었다. 격동의 근현대사 과정을 거치면서 개인과 사회의 내면에 축적되어졌던 ‘나의 우리, 우리의 나’인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그래서 코로나 국면에서 나타난 의료진들의 헌신성과 타인을 배려하는 시민성, 진정으로 국민을 우선했던 정부의 모습 등은 미국을 비롯한 서구 선진국들과 직접 비교되어 서양 우월주의를 탈피하는데 충분했다. 그리고 한국과 한국인의 위상이 세계의 표준으로 부상할 수 있다는 생각과 한국이라는 브랜드를 창출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리의 높은 시민의식, 민주주의 정신을 이미 세계가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 사람이야기
    2021-06-01
  • 다만 늙었어도 포기하지 않은 것뿐이다
    박 두 규 (시인) 오래 전에 읽은 고은의 소설 『선(禪)』을 보면 달마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처음 갈 때 해로를 통해 베트남으로 상륙해서 중국으로 들어가는 대목이 나오는데, 뱅골만을 벗어날 즈음에 이동 중인 수만 마리의 철새 떼들이 폭풍을 피해 달마 일행의 배로 내려앉는 일이 생긴다. 달마는 그 새떼들을 쫒거나 죽이지 말라고 지시한다. 선원들과 일행들이 그 말을 잘 따랐음에도 불구하고 상황이 종료된 후, 배에는 수백 마리의 새들이 죽어 있었다. 그것을 보고 달마는 “저 새들은 늙어서 기력이 다해 죽은 것이다. 다만 늙었어도 포기하지 않았을 뿐이다.”라고 말한다. 나는 그 대목에서 잠깐 호흡을 골라야 했다. 무언가가 깊게 마음을 질러왔기 때문이다. 우리는 나이 때문에 타자로부터 제재를 받기도 하고 스스로 포기하기도 한다. 그러는 중에 점점 무기력해지고 죽음의 그늘이 가까이 드리워진다. 이게 일반적인 일상의 ‘늙음’에 대한 인식이다. 하지만 ‘다만 늙었어도 포기하지 않았을 뿐이다’라는 말은 강한 생명력을 느끼게 하면서 늙음에 종속되지 않는 생명과 생명을 가진 한 존재의 삶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일 뿐이라는 것을 다시금 각인시켜준다. 디팩 초프라가 말한 것처럼 ‘노화’란 하나의 개념일 뿐이고 실재는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는 오로지 자신의 생명을 끝까지 발현하다가 소멸하는 것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이라는 영장류만이 유일하게 생각하는 힘이 있어 늙음이나 죽음 따위를 가지고 고민하고 두려워하며 살고 있는 것이지, 나무는 천년을 살아도 스스로 늙었다거나 죽을 때가 다 되었다거나 하는 생각 없이 그저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기만 할 것이다. 생명이 다하는 그날까지 생명을 발현하는 즐거움과 기쁨으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새들의 스스로 이상향을 향한 자유로운 날갯짓은 늙음과 무관하며 생명이 다하는 그 순간까지 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참으로 감동적이다. 우리가 그렇게 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역으로 말하면 그렇게 살 수 있고,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말이다. (졸저 『生을 버티게하는 문장들』에서)
    • 사람이야기
    2021-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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