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야기Home >  사람이야기
실시간 사람이야기 기사
-
-
네루다를 사랑했던 농부, 투쟁가가 되다.
- “최초의 탄환이 스페인 기타를 관통하고 거기서 음악 대신 피가 솟구쳐 나오자 내 시는 인간의 절망이 널브러진 길 한가운데서 유령처럼 서성거렸고, 시에서는 무수한 뿌리가 생겨나고 피가 강물처럼 흘렀다. 그때부터 내 길은 다른 사람들의 길과 합류하게 되었다. 그리고 문득 고독이라는 남쪽에서 민중이라는 북쪽으로 방향을 전환한 나 자신을 보게 되었다. 내 보잘것없는 시는 민중에게 칼이 되고 손수건이 되어, 무거운 고통으로 흘린 땀을 닦아 주고 빵을 위한 투쟁의 무기가 되기를 열망했다.” 사람들은 어떤 경험을 통해 그동안 생각했던 생각이 바뀌는 때가 있다. 칠레 시인 파블로네루다(1904~1973)의 시적 세계가 바뀐 시점은 스페인 내전이었다. 당시 마드리드 영사로 현장에 있었고, 직접 참여했던 스페인 내전은 네루다의 시를 바꾸어 놓았다. 그의 말처럼 ‘고독이라는 남쪽에서 민중이라는 북쪽으로’ 방향을 전환한 것이다. 스페인 내전의 경험은 ‘길거리의 일’ 또한 외면할 수 없게 만들었다. - 파블로 네루다 자사전 중에서- 은목서 나무의 달콤한 향기가 깊은 가을 속으로 사라지던 지난 10월 28일 김창승 서시교대책위 상임대표를 만났다. 서시교 존치를 위한 전문가 토론회가 끝난 며칠후였다. [ 10월 28일 김창승 서시교대책위 상임대표를 만났다. (왼쪽 김창승 대표)사진 김인호] 2024년 구례의 여름은 뜨거웠다. 유럽 기상청 코페르니쿠스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4년 여름은 지금까지 측정된 가장 더운 여름이었다. 이는 인류가 측정한 기온 중 가장 높은 해로 기록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하지만 구례 서시교의 여름은 이 보다 더 뜨거웠다. 서시교 철거 반대운동이 이 뜨거운 다리 위에서 103일간 이어졌기 때문이다. “2024년 7월 2일부터 2024년 10월 5일까지 103일간입니다. 구례의 대동맥이라고 할 수 있는 서시교를 지키기 위하여 구례 군민들은 매일 그 자리에 서 있었어요. 그리고 저도 그 자리를 한 번도 빠지지 않고 함께 했습니다.” [서시교 철거 반대 집회는 2024년 7월 2일부터 2024년10월5일까지 103일간 이어졌다. ] 김창승 대표는 2020년 8월 섬진강 수해 때도 주민대표로 활동했다. 그의 싸움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서시교 철거 역시 2020년 8월 구례 대홍수로 인한 것입니다. 당시 피해자가 1,914 가구에 달했어요. 국가배상이 확정되는 2년 동안 주민들과 함께했습니다. 그리고 문척교 철거에 관한 투쟁으로 이어졌어요. 아쉽게도 문척교는 철거되었지만 대신 구례와 섬진강을 상징 할만한 문척 달빛교는 올해 12월에 착공 예정입니다.” “구례 대홍수 당시 1,914 가구의 피해액 48%, 500억 정도를 국가로부터 배상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국가에서 자연재해로 국가 손해배상을 한 첫 사례로 기록되었습니다. 국가가 물관리 잘못을 인정한 첫 사례가 된 것이죠. 댐 관리를 잘못했다고 인정한 것입니다. 문척교나 서시교 역시 구례 홍수로 인한 것입니다. 서시교 철거는 수해로 인해 발생한 것이니 이것 역시 첫 싸움의 연장이라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4년간 긴 싸움을 하셨습니다. 10년 전에 귀촌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지난 4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지난 4년 동안 제 일상이 사라졌습니다. 처음 구례로 올 때는 자연인처럼 살고자 했던 목적이 사라졌죠. 가끔은 꿈에 서도 투쟁하고 있을 때가 있습니다.” [지난 4년 동안 제 일상이 사라졌습니다. 처음 구례로 올 때는 자연인처럼 살고자 했던 목적이 사라졌죠. 가끔은 꿈에 서도 투쟁하고 있을 때가 있습니다. 사진 김인호] ■본인을 투쟁가라고 생각하시나요? “투쟁가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개인적인 정치적인 목적은 없고요. 10년 전 아내의 고향인 구례에서 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구례 사람이 되었어요. 그리고 6년을 평화롭게 생활했습니다. 그리고 섬진강 대홍수가 있었죠. 구례 사람으로 당연히 구례의 어려움을 보고 외면할 수는 없었습니다. 아무런 죄없이 집과 농지 그리고 삶이 파괴된 피해자들과 함께 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 과거에도 이런 투쟁을 해본 적이 있나요? 제가 78학번입니다. 당시에 전남대를 다녔습니다. 유신 말기에 대학에 다녔고 3학년 때 5.18 광주항쟁이 있었습니다. 그 시기에, 광주에 살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함께 연대하고 싸웠습니다. 저 역시 역사의 한 지점에 있었고 함께 투쟁했었습니다. 저에게 5.18은 영원한 아픔이고 잊을 수 없는 역사입니다. “ 인간의 삶은 때로 역사의 한 지점과 정면으로 맞서야 할 때가 있다. 어떤 사람은 그 역사를 뒤로하고 다른 방향으로 달려가지만, 어떤 사람은 그 역사를 자신의 역사로 인식하고 민중과 함께하게 된다. ”그 후에 다시 시험을 봐서 경희대에 들어갔어요. 83학번으로요. 그리고 87년 대투쟁의 한가운데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역사는 그를 가만히 내두지 않았던 것 같다. ■구례에 내려오기 전에 무슨 일을 하셨나요? 직장인이었습니다. 주식회사 엘칸토에서 기획실장을 했고 그 이후에는 주식회사 GL인터 대표이사를 했습니다. 무크라는 신발을 만든 회사였습니다. 처음엔 노동운동가로 살아 볼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그러지는 못했습니다. ■회사 생활이 이번 투쟁에도 도움이 되었겠네요? ”그럼요. 대홍수도 그렇고 서시교 싸움도 그렇고 눈으로 보이는 투쟁이 있는 반면 안에서 원인을 분석하는 싸움이 있습니다. 문제의 분석이나 원인을 정리하는 것에 회사 생활의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또한 정부 기관에 대응할 수 있는 도움이 되었죠.“ ”2020년 17개 시군에서 동시에 수해 피해를 당하였습니다. 다른 지역은 변호사나 법무법인을 위임하여 진행했습니다. 보통 이런 경우 배상액의 3%를 수임료로 주는 조건으로 진행하죠. 하지만 구례는 제가 직접 진행했습니다. 구례 배상액이 500억 정도니까 변호사에 주었다면 15억 정도가 수임료로 쓰였을 것입니다. 구례는 직접 변론했기 때문에 그만큼의 돈이 피해입은 분들에게 더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공부 많이 하셨겠네요? 네, 싸움도 힘들었지만, 공부도 정말 많이 했습니다. 이번 서시교 철거 문제도 그동안 축적된 경험과 공부가 있었기 때문에 대응이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농사도 하시죠? 배추, 양파! 마늘도 심고 벼 농사도 하는데, 논 두 마지기 올해는 벼멸구를 먹어 수확량이 얼마인지 모르겠네요. (웃음) ■고향은 어디인가요? ”고향은 전라남도 무안군입니다. 고등학교는 목포에서 나왔고요. 좀 전에 이야기한 것처럼 전남대를 다니다가 휴학을 했고 다시 시험을 봐서 경희대에서 스페인어를 전공했습니다. 당시에는 외국에 나가서 살고 싶었어요. 가장 좋아하는 시인은 파블로 네루다입니다. 영화 일 포스티노를 좋아하고요. 제가 지리산에 내려온 곳도 영화에서처럼 네루다에게 편지를 전해주는 우체국 직원처럼 통신원 역할을 해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지금도 SNS에 지리산 통신원이라는 글을 쓰고 있습니다." ■직접 시를 쓰시고도 하시나요? 네. 시도 쓰고 있고 수필도 쓰고 있습니다. 5.18에 관한 시와 수필 100편 이상을 썼어요. 곧 책으로 낼 생각입니다. ■이번에 한강 작가가 노벨상을 받았습니다.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는 5.18에 관한 것인데 그 당시 전남대를 다니셨고 함께 투쟁하기도 하셨잖아요? 소년이 온다는 고등학생 문재학을 만난 적도 있으신가요? ”고등학교 1학년 이었던 문재학을 만나보지는 못했습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암울하고 너무 아픈 역사죠. 그 아픔이 문학이 되고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일 자체가 저는 희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당시에 금남로와 도청 앞에서 함께 싸웠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기억해 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소설이 많이 사람들에게 읽고 동감하게 된다면 그 시대를 살아왔던 사람들의 삶의 방향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죠. 어쩌면 광주의 자긍심이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는 증거가 될 수도 있고요.“ [ 영화 일 포스티노를 좋아하고요. 제가 지리산에 내려온 곳도 영화에서처럼 네루다에게 편지를 전해주는 우체국 직원처럼 통신원 역할을 해보고 싶었어요. 사진 김인호] ■마지막으로 서시교 전망에 관해 이야기해 주시겠어요? ”저희의 입장은 서시교는 죄가 없다는 것입니다. 죄가 없는 이유는 2020년 서시교가 수해 원인을 제공하지 않았어요. 서시천 물이 섬진강으로 가지 못하고 역류했던 것입니다. 서시천이 문제가 아니라 섬진강 역류가 문제죠. 섬진강에 문제가 있는데 서시천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맞지 않습니다. 근본적인 원인을 고려하지 않고 물이 들어온 것만 가지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죠. "서시천은 지류에 불과해요. 1.2km나 떨어진 섬진강 본류에 적용되는 법을 그대로 적용한 것도 문제지만, 당시의 하천기본계획을 적용한 것이 아니라 관계기관이 내부적으로 추진되고 있던 하천기본계획상의 여유고 2m를 소급 적용한 설계안을 주민에게 제시한 것도 문제가 있습니다. 2023. 10월 서시교 숭상 및 철거안이 완성되었으나 관련법인 하천기본계획은 2023. 12. 14에 뒤늦게 개정ㆍ고시되었습니다. 국토부익산청은 이 사안에 대하여 영산강유역환경청에서 선행 해결을 해주면 본인들은 서시교에 대한 더 이상 관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입니다. 하천 기본 계획을 만든 것은 영산강 유역 환경청이기 때문이죠. 구례군은 입장을 정리하여 영산강유역환경청에 보낼 예정입니다. 관련부처 회의를 통해 서시천 구간의 여유고와 계획홍수위에 대해 재심의 하기로 협의되었습니다." ■이번 서시교 철거 반대 투쟁이 남긴 것은 무엇일까요? 서시교는 구례의 대동맥이고 죄가 없어요. 더구나 구례에서 서시교 철거를 찬성하는 주민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구례군민이 모두 반대하는데 군에서 형식적인 주민 설명회를 하고 철거를 하겠다고 한 것이죠. 앞으로 이런 졸속 행정은 없어져야 합니다. 어떤 길이든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 당시 내가 한 일은 바로 이러한 선택이었으며, 희망과 절망이 교차하는 비극적인 시기에 내린 결정에 대해서 한 번도 후회해 본 적이 없다 . 파브로 네루다 자서전에서 - 인간은 자신의 길을 스스로 선택 할 수밖에 없다. 힘들고 어렵고 때로는 두렵지만 약자를 외면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기에 인류의 역사는 진보하는 것이다. 구례에서 자연인으로 살고 싶던 자신의 일상을 포기하고 4년을 한결같이 구례 군민을 위해 그는 노력했다. 카페 주인도 은목서 향기도 떠나 버린 찻집에서 짧지만, 긴 이야기를 마쳤다. 그는 트럭에 시동을 걸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마지막으로 지난 전문과 토론회 결과를 올려 둔다. [전문가 토론회 결과] 2024.10.25(금) 구례군 의회 주관(마산면 청마관), 서시교 문제해결을 위한 전문가 토론회 결과 1. 구례군, 구례군의회, 권향엽 의원실, 서대위는 서시교 존치에 대해 뜻을 함께하며 법ㆍ행정적 절차를 조속하게 추진한다. 2. 구례군 의회는 서시교 존치를 위한 전문가 자료를 취합하여 구례군과 관계기관에 공문 발송한다. 3. 구례군은 이른 시일 안에 2023.12.14 전라남도가 개정ㆍ고시한 하천기본계획 중 서시천 구간의 여유고와 계획홍수위에 대한 ‘재심의 요구안’을 영산강유역환경청에 발송한다. 4. 영산강유역환경청은 2024.10.15일 협의에 따라 재심의하고 이를 전라남도에 전달한다. 5, 전라남도는 영산강유역청의 재심의 된 사항을 하천기본계획 변경을 위한 심의위원회를 열어 변경 고시한다 6.영산강유역환경청 및 용역처와 전문가 심층 토론회 개최를 요구하며 구례군은 전문가를 위촉하고 당일 토론회 참여한 전문가는 적극 참여하기로 한다.
-
- 사람이야기
-
네루다를 사랑했던 농부, 투쟁가가 되다.
-
-
단편소설 “뱀사골”
- 어떻게 살 것인가를 매일 고민하던 시절이 있었다.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쉽게 그 고민을 해결할 수 없었다. 봄이면 산으로 가고 여름이면 바다에 갔다. 가을이 오면 길을 걸었고 겨울이 오면 또 산에 올랐다. 겨울 산은 오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어느 해 겨울 눈이 펑펑 내리던 날 지리산 뱀사골로 향했다. 남원에서 뱀사골에 가는 버스는 눈 내린 여원재를 겨우겨우 기어가듯 올랐다. 운봉을 지나 인월을 지난 버스는 그나마 있던 승객을 모두 내려놓았다. 뱀사골에 도착했을 때 승객이라고는 나 혼자뿐이었다. “요로코롬 추운디 산에 가시라고요” 버스 기사가 물었다. “네” “고닥새 눈이 허발라게 오게 생겼는디....위험하지 않을랑가요? 버스 기사는 내가 걱정스러운지 다시 물었다. “네” 나는 짧게 대답했다. “겨울 산에 익숙해요. 걱정하지 마세요.” 이렇게 말하고는 나는 배낭을 챙겨 버스에서 내렸다. 뱀사골계곡 옆 오솔길 따라 화개재로 올라가는 길이 보였다. 사람이 올라간 흔적이 없었다. 산길로 접어들고부터 나는 아무것도 보지 않고 고개를 숙이고 땅만 보며 산으로 향했다. 뱀사골 산장에 자면 되니까…. 그리 멀지 않을 거야…. 라고 생각했지만 길은 생각보다 멀었고 힘들었다. 눈이 내린 산길을 미끄러웠다. 나는 몇 몇번 넘어지고 나서야 겨우겨우 올라갔다. 산장에 도착했을 때는 해가 이미 산으로 넘어가 어두웠다. . 산장에는 삼십 대 산장지기와 나 이렇게 둘 뿐이었다. 늦은 저녁을 막 먹으려고 하는데 등산객 한 명이 도착했다. 그는 검은 양복 차림에 구두를 신고 있었다. “이런 눈길에 구두를 신고 올라오셨어요?” “네….” “미친놈 같죠” 이렇게 이야기하면서 그는 웃었다. “어찌 그 차림새로 여길 왔어요?” 그는 술집에서 일한다고 했다. 하던 일이 잘못되었고, 도망치든 산에 왔다고 한다. 그는 허둥지둥 뱀사골에 왔고 아무 생각 없이 산에 오르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고 한다. “그런 댁은 뭐 하러 이런 날씨에 여기까지 왔소?” “저도 별생각 없이 왔어요.” 어떻게 살아야 하나 고민도 되고…. “우리 아버지는 중이요” “중인데 결혼해서 나를 낳았잖소? ”절이 답답해서 고등학교 때 집을 나왔소. 몇 년을 대충 살다 보니 이렇게 살고 있소. 이 술집 저 술집 전전하며 웨이터도 하고 뭐 요리도 하고 그리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왜 이렇게 사나 하는 생각이 들지 뭐요? 아니 사실은 함께 술집에서 알던 여자가 있었는데…. 네가 또 순정파 아니요! 그래서요? 그래서는 뭐가 그래서요. 서로 사랑하고 뭐 그랬죠? 그런데요. 얼마 전에 헤어졌소…. 외요? 뭐 만나면 헤어지는 것이 인생 아니요! 그렇죠. 그래서 산에 갑자기 왜 오셨어요.? 어려서 내 친구가 지리산에 한번 가보라고 거기 가면 세상의 시름 반 정도는 내려놓을 수 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무작정 왔소… 근데 배가 고픈데 밥 좀 주면 안 되겠소? 우리는 그렇게 함께 밥을 먹었다. 밥을 먹고 함께 잠을 잤다. 아침에 일어나서 보니 그는 사라졌다. 밤새 함박눈이 또 내렸는데 그는 어디로 버린 것일까? 산장 문을 열고 나가 보니 그의 발자국을 확인할 수 없었다. 불현듯 그가 오기는 한 것인가? 아니면 내가 꿈을 꾼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더 이상 산장에 있을 수 없었다. 내려가다가 그가 어떻게 되어버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하산할까 하다가 다시 산으로 올랐다. 화개재에 올라가니 노고단에서 출발한 등산객이 보였다. “혹시 양복 차림에 사내 한 명을 봤나요?” “아뇨” “그런 사람은 못 봤어요?’ “다시 걷다 보니 반대쪽에서 오는 사람이 있었다. 혹시 양복 차림에 30대 남자를 봤어요? “아뇨” 나는 다시 뱀사골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뱀사골에서 올라오는 등산객이 있었다. “혹시 양복 차림의 30대 남자를 봤어요? 아뇨…. 그런 사람은 없었소? 그럼 혹시 산에 쓰러진 사람을 본 적은 없어요? 아뇨…. 그런 사람을 본 적도 없어요? 나는 갑자기 머리가 하얘지기 시작했다. 그럼, 그는 어디로 증발해 버린 것일까? 나는 다시 산으로 올랐다. 세석평전을 지나 장터목에서 하루를 묵고 다음 날 천왕봉에서 일출을 봤다. 한겨울 천왕봉은 1초도 손을 꺼내기 어려울 정도로 추웠다. 얼어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서둘러 산에서 내려왔다. 백무동에 내려와 파전에 막걸리 한 잔을 마셨다. 텔레비전에서 뉴스 속보가 나왔다. 어젯밤 대전에 한 술집에서 여종업원이 살해 당했습니다. 범인은 함께 일하던 30대 남자로 현재 도주 중이며 남자의 고향은 남원으로 .....
-
- 사람이야기
-
단편소설 “뱀사골”
-
-
백두대간 운봉고원의 돌장승 역사 문화 탐방
- 백두대간 운봉고원은 낙동강 상류이다. 운봉고원은 지리산 자락의 고원 분지이다. 이 지역에 돌장승이 밀집하여 분포한다. 운봉읍 북천리, 서천리(서림공원), 권포리와 인월면 유곡리의 10km 이내 지역에 돌장승 10기가 모여 있다. 이곳은 고남산 아래이며 황산의 둘레로서 고려말 황산대첩의 역사적인 장소이다. 돌장승의 해학성은 호랑이와 까치의 민화에 보이는 평민 정신과 상통한다. 운봉고원의 돌장승을 탐방하며 마을 어귀에 서 있는 돌장승이 외롭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옛날에는 마을마다 샘을 중심으로 살았고 그 샘물이 흘러 마을 앞에 둠벙(연못, 방죽, 웅덩이)를 이루었다. 그 작은 둠벙은 생태계의 보고로서 수많은 작은 동식물이 살았다. 옛날에는 논이 있으면 으례 가까이에 둠벙이 있었다. 그러나 경지 정리로 논밭 두렁길이 반듯해지고 저수지가 많아져서 농업 용수를 멀리서도 풍부히 공급하여 논 가까운 둠벙이 사라져 갔다. 운봉고원의 돌장승도 옛날에는 가까이에 둠벙이 있었을 것이다. 그 둠벙에는 어리연꽃도 피었을 것이다. 돌장승과 어리연꽃은 민화의 호랑이와 까치처럼 상상력과 이야기의 보고일 수 있다. 오마이뉴스 기사 (2024.10.23) 제목: 왕방울 눈, 커다란 코... 도깨비 돌장승 찾아 떠난 여행 부제: [사진] 백성들 아낀다던 석장승... 백두대간 운봉고원 돌장승 탐방 역사 문화 여행 이 기사의 인터넷 주소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072819
-
- 사람이야기
-
백두대간 운봉고원의 돌장승 역사 문화 탐방
-
-
꽃이 없는 과일이 아니라 꽃을 먹는 과일 무화과
- 무화과는 크게 두 종류가 있다. 홍무화과와 청무화과인데 내한성은 청무화과가 더 좋다. 이른 봄에 가지를 잘라주면 새 가지가 나오는데 가지에 열매가 18~20개 정도 열리면 끝을 잘라준다. 그 이상은 10월 말이나 11월 초까지 익기가 어렵다. 그리고 끝을 잘라줘야 열매가 크게 열린다. 병충해가 없는 식물이라 키우기 어렵지 않다. 또한 우리가 먹는 저 빨간 부분은 무화과의 꽃이다. 우리나라에는 무화과를 수정할 수 있는 벌이 없지만, 원산지인 중동지역에는 있다고 한다. 즉 수정하면 씨앗이 열리고 씨앗으로 번식도 가능한 나무다. 하지만 씨앗으로 번식한 나무의 열매는 맛이 없다고 한다. 단 벌이 수정한 무화과는 더 맛있다고 하는데 한국에는 수정할 수 있는 벌이 없어 그 맛을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
- 사람이야기
-
꽃이 없는 과일이 아니라 꽃을 먹는 과일 무화과
-
-
지리산 치밭목산장 산장지기30년 민병태 대장을 만났습니다
- 지리산 치밭목산장 산장지기30년 민병태 대장을 만났습니다 1971년에 만들어진 지리산의 대피소들은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채 방치되어 폐허가 되었습니다. 민병태 대장님은 1986년 직접 치밭목대피소를 수리하고 산장지기로 30년을 활동하며 대피소 운영과 많은 구조활동을 하셨습니다. 대장님이 들려주시는 반달곰 이야기, 지리산 이야기 함께 들어보시죠. 00:00 인트로 00:20 치밭목산장지기 30년 민병태 대장 01:19 치밭목대피소에 올라오기 전에는 어떤 일을 02:30 1971년에 조성된 지리산의 대피소들 04:06 관리가 안 되어 폐허가 된 대피소 04:28 당시에는 치밭목 쪽이 메인 종주코스 06:27 치밭목 이름의 유래 07:22 산장 첫 관리인은 첫 겨울을 넘기지 못하고 하산 08:42 85년도에 산악회 후원금과 사비로 대피소를 수리하다 11:05 87년도에 대피소에서 정식 근무 시작 12:24 왜 산장에 들어가신 거에요? 12:49 산장에서 아내와 함께 보낸 신혼생활 14:16 산행 문화의 변화, 조난사고의 급증과 구조활동 18:42 대피소에서 30년 어떻게 버티셨나요? 19:25 대피소에서 난방없이 침낭만으로 겨울나기 21:00 대피소에서 내려오게 된 이유와 소감 23:39 대피소의 가장 큰 기능은 어떤 것인가요? 26:18 반달가슴곰과 인간의 충돌 30:08 인간과 동식물의 공존, 기후변화 31:03 지리산에게 한마디, 사람들에게 한마디
-
- 사람이야기
-
지리산 치밭목산장 산장지기30년 민병태 대장을 만났습니다
-
-
산청 지리산 둘레길 6코스와 경호강 꺽지 설화
- 지리산 자락 산청으로 향하는 이른 아침 이슬에 흠뻑 젖은 여뀌 꽃송이에 푸른색 부전나비 한 마리가 앉아서 동터오는 아침 햇살을 받고 있었다. 나비의 날개가 이슬이 젖어 있으니 이곳에서 긴 어둠을 지샌 듯 하였다. 부전나비 날개 크기는 1.5cm로 작은 날개이고, 여뀌꽃은 한 송이가 2mm 크기의 찹쌀 쌀알 같았다. 9월의 마지막 주말에 지리산 둘레길 6코스 구간은 가을 햇살이 청량했다. 지리산 둘레길에서 산줄기는 강 물결고 쉽게 어울리고 이 길을 걷는 걸음도 어느덧 산과 강이 펼쳐내는 자연의 호흡을 닮아갔다. 산청 지리산 둘레길 6코스, 경호강 꺽지 설화 오마이뉴스 여행 기사입니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066719
-
- 사람이야기
-
산청 지리산 둘레길 6코스와 경호강 꺽지 설화
-
-
'핵과 핵발전의 모든것' 김혜정 지속가능발전연구센터 공동대표님의 강의
- '핵과 핵발전소의 모든것!' 구례에서 '속 깊은 간담회' 일정으로 김혜정 지속가능발전연구센터 공동대표님의 강의가 있었습니다. 한국과 세계의 에너지 현황,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오염수 방류, 현정부의 친원전 정책, 양수발전소 문제 등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강의 내용이 깁니다. 전체를 보시기 힘들면 아래의 타임코드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00:00 인트로 00:52 한국의 에너지 현황 - 값 싸고 효율은 낮다 03:00 세계의 에너지시장 흐름- 뒤쳐진 한국 06:24 후쿠시마 원전사고 08:24 후쿠시마 원전 사고 오염수 문제 11:09 핵종 제거는 안되는 알프스 18:13 오염수 방류가 한국에 미치는 영향 21:07 핵폐기물의 해양 방류를 반대했었던 일본 21:41 정권에 따라 입장이 바뀌는 해양수산부 23:04 적반하장 대한민국 정부 24:28 월성원전 인근 주민 소변의 방사능 검출 27:29 핵에너지시대 70년, 고준위핵폐기물처분장 운영중인 나라는 없다 30:48 기후변화와 핵발전소 31:18 냉각수 온도 기준을 높인 한국 원전 31:55 이상기후는 원전 안전을 위협한다 34:51 대한민국 친원전 에너지 정책 38:26 폐쇄 예정이었던 노후원전 수명연장 41:13 내용도 볼 수 없도록 먹칠한 방사선환경영향평가서로 의견을 수렴? 43:23 미국은 ‘알기쉬운 문서 작성에 관한 법률’을 제정, 알기쉽게 문서 작성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45:14 투명성이 핵심인 프랑스 원자력안전법 46:40 소형모듈원자로(SMR)은 일반 원전보다 더 비싸고 더 많은 핵폐기물 발생 48:08 양수발전소는 반환경적, 비경제적 시설 52:14 한국의 재생에너지 현황 53:22 원전중심 송변전설비추진계획 57:50 재생에너지 접속 차단과 신규 재생에너지설비 허가 중단 1:00:35 분산에너지 정책/기후변화 대응에 반하는 양수발전 1:01:13 공급 위주 수도권 중심 전력정책을 전환해야
-
- 사람이야기
-
'핵과 핵발전의 모든것' 김혜정 지속가능발전연구센터 공동대표님의 강의
-
-
지리산 둘레길을 1년 5개월만에 다시 걷다
- 지리산 둘레길 지리산 둘레길을 걸으면 몸과 마음이 점차 느려집니다. 그것은 걸음 속에 성찰이 깃들고, 넉넉한 지리산의 품격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둘레길에서 그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새롭게 만나고 둘레길에서 지리산 기슭의 풍경과 마을에 가깝게 다가갑니다. 지리산 둘레길 1코스에서 4코스까지 걷고 발걸음을 멈추었다가 1년 5개월만에 지리산 둘레길 5코스 동강 수철 구간을 걸었습니다. 지리산 둘레길 1코스, 2코스 지리산 둘레길 3코스 지리산 둘레길 4코스 지리산 둘레길 5코스 이들 지리산 둘레길을 걷기 탐방하고 쓴 이제까지의 기사를 펼쳐보았습니다. 지리산 둘레길 5코스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061976 지리산 둘레길 4코스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912108 지리산 둘레길 3코스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908821 지리산 둘레길 1코스, 2코스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904363 지리산 둘레길 6코스 구간은 산청 수철 마을에서 경호강 강변에 자리 잡은 성심원까지 12km의 둘레길입니다. 이 구간에서 쏘가리와 꺽지가 헤엄치는 경호강을 따라 가며 지리산 천왕봉에서 동쪽으로 힘차게 뻗어 내린 웅석봉의 산줄기가 연출하는 멋질 풍광을 기대해 봅니다.
-
- 사람이야기
-
지리산 둘레길을 1년 5개월만에 다시 걷다
-
-
죄 없는 서시교를 죽이는 이유
- 어제 엄청난 폭우가 내렸다. 브러시는 연신 유리창을 닦아 냈다. 하지만 비의 양에 비하여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앞이 잘 보이지도 않았다. 도로 위로 산에서 내려온 물이 계곡처럼 물이 쏟아져 내려 도로는 마치 계곡처럼 보였다. 더구나 왼쪽 라이트 하나도 고장이 나서 잘 보이지도 않은 상황이었다. 물이 자동차 바퀴 중간까지 올라오는 곳도 있었고 그때 경고등이 들어왔다. 경고등이 4번 들어왔고 그때마다 나는 차가 서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식은땀이 났다. 앞에 가던 승용차는 운행을 포기했는지 높은 곳에 주차했다. 다행히 고개 하나를 넘어가니 비가 그쳤고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오늘 오전에 구례 서시교 관련한 구례 군민 토론회가 있었다. 구례에는 이름도 예쁜 서시천이 있다. 2020년 구례 수해 당시 서시천으로 섬진강 물이 역류하여 구례읍이 침수되는 홍수 피해가 있었다. 보통 지류의 하천이 본류인 강에 물이 흘러 강 수위를 높이는데 서시천에 합류지점이 휘어져 있다 보니 섬진강 물이 원심력에 의해 오히려 서시천 방향으로 역류한 것이다. 거기 다가 합류지점 근처에 수중보가 설치되어 있어 수위를 높이는 데 일조했기 때문이다. 이 일로 인하여 익산지방관리청은 이 서시천에 있는 서시교를 철거하려고 하고 있다. 서시교는 구례군민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다리다. 대부분의 외지 관광객도 이 길을 통해 구례읍으로 진입한다. 구례에서 유일하게 신호등에 들어오면 차가 4-5대라도 있는 곳은 유일한 곳이다. 그 만큼 구례군민들에게는 사용 빈도가 높고 중요한 다리다. 서시교는 침수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 다리가 어찌 된 영문인지 철거 결정이 내려졌다. 더구나 이 철거 결정에 구례 군민 80%가 찬성했다고 한다. 찬성한 주민은 186명이다. 그 중대한 결정에 가장 결정적 영향을 미친 그 작은 숫자도 놀랍지만 어떤 질문을 했는지도 중요하다. 정보를 모르는 상태에서 설문조사는 질문자의 의도에 따라 원하는 답을 얻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기 때문이다. 만약 서시교를 그대로 둘 경우 다시 홍수 피해를 당하는 것이 확실하다. 그래도 서시교를 그대로 두겠습니까? 라고 묻고 1번 서시교 존치 2번 서시교 철거 후 다른 곳에 설치 이렇게 질문 한다면 당연히 2번을 선택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시교를 그대로 둘 경우 서시교로 물이 범람은 100년에 한 번 있을까 만한 일이고 그것도 댐관리를 잘하면 없을 것이다”라고 이야기 한 다음 질문 했다면 2번을 선택할 군민은 거의 없을 것이다. 실제 설문이 이렇다.고 한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이렇다는 것이다. 사실 구례군이 2020년이 수혜를 입은 것은 자연재해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댐 관리를 잘못한 것에 있다. 예비 방류를 해야 했는데 무리한 물욕심에 만든 인재다. 왜냐하면 태풍 루사때는 더 많은 양의 비가 내렸다. 당시 구례 읍에 침수가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기 위한 일이 결국 서시교 철거까지 온 것이다. 멀쩡한 다리를 철거하고 1.2km를 우회하는 도로를 만들어 구례군민에게 불편을 주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결정하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그들은 멀리 있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불편은 그들에게 닿지 않고 그들은 편리한 방식으로 결정을 하고 예산을 사용하고 집행하고 용역을 준다. 그런 일을 아무렇지 않게 결정해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기 때문이다. 물 관리를 잘못해 생긴 인재를 회피하기 위해 3천억 이상 돈을 사용했고 아직도 진행되고 있다. 인재가 아니라 자연재해임을 주장하기 위한 변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어제 그 많은 비가 내렸지만, 홍수는 없었다. 며칠 전부터 섬진강 댐은 많은 양의 물을 방류했고 홍수가 날지도 모른다고 연신 문자를 보냈다. 역시나 아무 일도 없었다. 구례군민은 불편이 없는 새로운 대책을 세워 달라고 익산청에 요구하고 있고 익산청은 답은 없는 상태다. 한 번 결정한 것을 번복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자신들이 전문가이고 전문가가 선택한 방향이니 받아드리라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가 생기면 다른 곳으로 발령을 받고 가버리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되니까... 그리고 2020년 수해 당시 서시교로 물이 범람 하지도 않았다. !!
-
- 사람이야기
-
죄 없는 서시교를 죽이는 이유
-
-
수박밭 그 사나이 " 조 승 현"을 기리며
- 농부 조승현을 만난 것은 지난 2008년 7월이었다. 그가 나를 찾아온 이유는 수박 때문이었다. 수확을 며칠 앞둔 그는 갑자기 판로가 막히게 되었다. 약속했던 업체가 수박을 가져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수소문해서 내 전화번호를 알아내 전화를 했다고 했다. 그는 통화가 연결되자마자 사무실로 찾아왔다. 수박은 출하시기를 늦추기 힘들고 보관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갈 곳 없던 유기농 수박에 나에게로 왔다. 그와 함께... 그리고 수박을 팔기 시작했다. 그의 사연을 들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수박을 모두를 판매할 수 있었다. 그는 택배를 보내면서 100g이라도 모자라면 그 안에 모자란 돈을 넣어 보냈다. 그는 신뢰를 보여준 소비자에게 다시 신뢰로 보답했다. 그의 수박덕에 유난히 더웠던 2008년 여름은 시원했다. 하얀 러닝에 검정 고무신은 그의 "교복"이었다. 이 모습이 내가 그를 기억하는 마지막 모습이다. 아이는 컸고 그는 그만큼 나이를 먹었다. 그는 하동군 횡천면에서 노모와 아이들 셋 그리고 서울에서 시집온 아내와 함께 살았다. 그의 아내는 서울에서 태어나 도자기를 만드는 일을 했다고 한다. "3년 안에 가마를 만들어 준다고 하더군요" 그렇게 말한 세월이 20년 넘게 흘렀다. 가마는 없다. 그녀는 농부가 되었다. 흙 만지는 것으로 좋아했으니 흙에서 사는 것이 좋지 않으냐? 는 조승현 씨의 말에 그녀는 미소를 짓는 것으로 답했다. 좋은 것인가? 아닌 것인가? 묻고 싶었다. "농사를 지어서는 몇 백만 원 하는 가마를 만들어 줄 수 없더군요. 한해 농사짓고 아이들 키우는 것도 힘이 들어요. 그래도 농사를 짓는 것은 좋아요." 그는 젊어서는 유럽 배낭여행을 다니기도 했고 영화에 출연하기도 했다고 했다. 그는 특허도 받았다. 벼를 이용한 액비다. " 비싼 비료를 사용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렇게 해서 농사를 짓는다. 다른 것은 넣지 않아요. 유기농에서 허용하는 자재도 쓰지 않습니다. 수박은 수박의 힘으로 크고 저는 최소한의 것을 투입합니다. 그의 수박은 정직했다. 다른 수박과 비교하면 당도가 낮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당도를 올리는 방법을 몰라서가 아니라 안 하는 것입니다. 수박 본연의 맛에 충실하게 위해서입니다." 그는 시인이다. 그가 수박을 향해 쓴 시들을 공개한다. 손 단디 잡아라 빛을 향한 목마름은 니 책임이다. 수박꽃 늘 명심하십시오 푸른 잎 속에 억센 줄기 속에는 꽃과 향기가 자라고 똠 품고 있다는 것을 꽃은 어데서 왔을까요? 애들처럼 살고 싶다. 주구 엄마는 허리가 끊어진 듯 질질 엉덩이를 끌며 속옷으로 땀을 얼마나 훔쳤는지 얼굴이 벌겄타 세상 넓고 넓은데 온 천지 꽃 중에 봄이 피는데 더워 못살겠네 말을 하면서 수박새끼튼 뭐 한다고 주워 모으느냐? 아이야 저 넓은 봄 가운데로 가라 짧고 짧은게 피는 것인걸.... 쌔가 만발이나 빠질 봄아 봄아 이 쌔빠질 봄아 피려면 혼자피지 혼자서 흔들리지 이 마음도 너 맘이더냐? 오늘도안녕 매일매일 인사해요. 녹색의 마음으로 인사를 받아주죠 파란 안녕! 으리기다 허리를 낮추어 고개를 숙이고 잎이 넘어질세라 순이 엉길세라 허리를 나추어 고개를 앞조리어 보인다. 여기도 까꿍 저기도 까꿍 현대 농업에게 난 믿는다. 사람들은 높은 당도의 맛을 원하지만 단시간에 그것이 통하겠지만 세상 가득 식물들은 수억 년 동안 동물들의 입맛을 결정해 왔다. 어디 열매가 같은 맛 나는 열매가 있더냐 적어도 나의 농법은 식물들 스스로 겪어 냈을 때 그 속의 면역된 물질의 맛이 있다고 생각하지 우리의 어릴 때 입맛을 자주 더듬어 보게 하지 어릴 땐 무엇이든 맛있었지. 왜 그럴까? 우리의 입맛도 세놰 당하고 강요당하고 있지 않을까? 묻는다. 현대 농업에게!! 우리수박맛있어요. 수박 본래의 맛입니다. 수확 앞둔 수박밭에서의 단상 잎이 누렇게 변합니다. 뿌리의 잎은 노화로 기능을 잃어 갑니다. 마지막까지 있은 힘껏 영양분을 수박에게 이동해 줍니다. 수박은 터져라 모든 영양분을 축적합니다. 수박넝쿨은 잎이 마를 때까지 씨앗을 위해 온갖 정성을 다합니다. 포기란 없습니다. 농부는 1년에 몇 번을 태어남과 죽음을 지켜봅니다. 농부는 자연의 섭리에 잘 순응합니다. 사람 만이 내리사랑이 있겠습니까? 자연의 이치나 사람의 사랑이나 참으로 고귀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몇 해 동안 연락이 없었다. 그는 평생 돈이 안 되는 유기농을 고집했다. 그는 한 번도 부자로 살아 본 적이 없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부터 연락이 없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렇게 세 번째 해가 바뀌던 어느 날 처음 그날처럼 불쑥 전화를 해서 벌을 키우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그를 만나러 갔다. 섬진강을 따라 화개, 하동을 지나고 산청 가는 도로 옆에 있는 그의 작은집을 방문했을 때 그는 오래전 그 모습 그대로라고 저는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날 불쑥 찾아와서는 암에 걸렸다고 했다. 그렇게 두 해가 지나고 그리고 올봄 첫 꿀이 나왔다고 그가 전화를 했다. 항상 도와주셔서 고맙습니데이... 한 번 놀러 오시라케도.... 막걸리라도 한 잔 합시데이... 그러게요. 곧 가볼 께요... 봄이 가기 전에 오라고 했는데 나는 가지 못했다. 바쁘지도 않았는데.. 그런데 조승연 농부의 아내분이 연락이 왔다. "조승현 씨가 6월 6일 돌아가셨어요....." "네...?" "무슨 이야기죠..."라고 물었지만 벌써 눈물이 났다. "연락을 하시지 그랬어요?" "아.. 갑작스럽고.. 그러지 못했네요. 죄송해요" " 연락처도 바꿔야 하고 꿀도 남아서.. "이렇게 전화를 했어요...... "농사는 어떻게... 하실 건가요... "어떻게 해봐야죠 "아이들이 있는데요..." 봄이 가고 여름이 오자 그는 떠났다. 착하고 순박한 농부들이 점 점 세상을 떠난다. 나도 이제 이 판에서 떠날 때가 되어간다. 내가 좋아했던 농부들이 땅에서 삶에서 떠나고 있다. 그의 가난하지만 우직하고 정직한 농사를 나는 늘 응원했다. 이제 내가 응원하고 싶은 농부들이 줄고 있다. 선하고 착하고 그래서 보면 눈물이 나던 조승현 농부의 명복을 빕니다. 함께해서 좋았어요.
-
- 사람이야기
-
수박밭 그 사나이 " 조 승 현"을 기리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