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6-02(화)

사람이야기
Home >  사람이야기

실시간 사람이야기 기사

  • 포포나무 재배하는 구례농부
    • 사람이야기
    2024-06-11
  • [지리산방랑단] 출가는 처음이라
    시원한 바람이 부는 여름날이에요. 지리산방랑단이 여러분에게 전할 소식이 있어 찾아왔어요. 시린 가슴을 부여잡고 인터뷰를 진행해보겠습니다. Q. 칩코, 오랜만이에요. 들려줄 소식이 있다고 들었어요.안녕하세요. 방랑단 칩코입니다. 제가 맨날 파란 옷만 입고 다녔는데 이렇게 주황색 옷을 입었어요. 이게 절에서 스님 견습생이신 행자님들이 입는 옷인데요. 제가 지난 5월 15일 부처님오신날에 출가했어요.지난 5월 한달간 거창의 붓다선원이라는 곳에서 단기출가프로그램에 참여한 후 결정했어요. 속가의 일을 올해까진 마저 마치고 출가할까도 숙고하였지만, 다시 속가에 가서 ‘올해는 커녕 한달은 더 지낼 수 있을까?’하는 두려움과 막막함이 들었습니다. 이미 출가자의 마음으로 크게 전환되어, 하루라도 더 빨리 출가하지 않고는 후회심이 무거울 것 같았고, 더는 환경운동가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해낼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부디 자비를 베푸셔서 저의 상황과 판단을 양해해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방랑단 활동을 함께 하던 친구들, 들레네 친구들, 방랑단을 지켜보고 응원해주시던 분들께 갑작스러운 소식을 전하는 것이 죄송스럽고 조심스럽습니다. Q. 그렇군요. 칩코에게 지리산방랑단 활동은 어떤 의미가 있었나요?방랑단 활동 자체는 언제나 뜻깊고 즐거웠어요. 이 좋은 방랑단 활동을 더 순수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할 수 있었다면, 제가 그 활동 안에서 제 안의 자만심과 탐욕과 무지를 잘 다룰 수만 있었다면, 떠날 이유가 없었을 거예요. 제가 아직 자리이타가 어려워서, 스스로 잘 서기 위해 출가를 선택했지만요. 저는 돈이나 명예가 없어서 그런지 관계로부터의 출리가 가장 어려웠어요. 전생에 선업을 많이 쌓아야 고귀한 사람들을 곁에 둘 수 있다는데, 저의 선업을 좋은 인연을 맺는데 모조리 탕진한 게 아닌가 싶을만큼, 방랑단을 하면서 소중한 존재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Q. 방랑단 친구들은 칩코의 출가 소식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요? [상글] 사실 언젠가는 칩코가 이 길을 가게 될 것이라고 머리로는 알고 있었던 것 같아요. 마음은 아직 준비할 시간이 필요했지만요. 청년인생학교에 입학했을 때부터, 들레네 살이, 지리산방랑단, 그리고 구례로 이사오며 상사마을에 모여살기까지 4년이 넘는 시간동안 저는 늘 칩코와 함께 였어요. 지리산에 내려와 사는 삶이 이렇게나 풍요로워진 것엔 칩코의 도움이 컸어요. 재밌는 일들을 함께 기획하고, 주변 이웃들을 다정하게 보살피고, 힘든 일들이 있을 땐 따뜻한 말들로 마음을 헤아려주었어요. 지혜로운 칩코에게 배우는 점이 참 많았어요. 칩코가 보고싶을 때 바로 달려가 만날 수 없고, 칩코가 우리를 필요로할 때 가까이에 있어주지 못해 아쉽지만 칩코가 가고자 하는 길에 응원을 보내고 싶어요.출가라는 것이 이렇게 힘든 일인지 칩코 곁에서 보면서 알게 되었어요. 아직은 마음이 먹먹할 때도 있지만, 칩코가 알려준대로 우리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그 순간과 숨에 집중하며 하루 하루를 잘 보내려고 해요![차라] 기쁩니다. 칩코가 얼마나 수행에 절실한가 옆에서 봐와서 그런지 잘 선택했다고 생각해요. 지금의 칩코에게 가장 올바른 선택이었다고 느껴져요. 한달 출가체험을 다녀온 칩코는 가족, 친구가 아닌 선생, 스승의 모습이었어요. 이렇게 온화해지고 단단해져서 올수가! 하고 놀랐어요. 칩코가 속가일을 정리하러 온 열흘동안 옆에서 알려준게 있어요. 지금 당장 오염된 마음을 내려놓고 행복해지기를 선택하라는거였어요. 그 행복이 집착이나 안락함을 착각한 건 아닌지, 평정으로부터의 행복이 맞는지 구분하는 지혜가 있어야한다고도 했어요. 그리고 타인을 위해 하나의 선심을 베풀지 말고 내 모든 것을 다해 선심를 베풀어야한다고 했어요. 어릴적부터 칩코와 같이 놀고 활동했는데, 그동안 함께의 길을 걸었다면 이젠 이 칩코의 말을 가슴에 새기고 스스로의 길을 찾아볼까합니다.방랑단에게 새로운 바람이 불어왔다고 생각하고 이 바람이 저희들 마음에 큰 성장을 줄거라 믿어요. 지금까지보다 절에 방문하는 횟수도 늘겠고 언젠가 붓다선원에 공양보살로 귀의하고 싶어요.(웃음) 방랑단과 칩코는 헤어짐이 아닌 다른 방식의 만남을 이어나가볼게요. [꼬리] 처음 소식을 들었을땐 막막함이 밀려왔어요. 칩코와 함께 한 5년이 너무 행복했어서 칩코가 없는 일상에 제가 잘 적응할 수 있을지 두려웠거든요. 근데 한 달간 수행을 하고 온 칩코가 저와는 다르게 어떤 서글픔이나 원망, 고통도 없이 오직 사랑만으로 저를 위로해주는 모습을 보며 칩코가 가는 길을 응원해줄 수 밖에 없단 생각을 했어요. 만물에게 극존칭을 쓰고, 부지런히 무해한 삶을 탐구해온 칩코에게 걸맞는 관계와 생활이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칩코의 출가가 우리 방랑단에게 또 많은 귀감이 될 것 같아요. 많이 성장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고요. 그리고 언제나 그곳에 칩코가 있을테니 보고싶을때마다 가서 보면 되겠죠?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모두가! Q. 앞으로 방랑단의 행보는? 저희도 출가는 처음이라 칩코가 떠난 빈 자리를 소화하는 시간이 충분히 필요할 것 같아요. 다른 친구들도 각자의 자리에서 따로 또 같이 일상을 보내면서, 방랑단으로서의 활동은 당분간 쉼을 가질 예정이에요. 친구들과 함께 놀이처럼 시작했던 활동이라서, 우리가 또 재밌는 꿍꿍이를 하고 싶거나 놀이가 필요할 때 방랑단은 또 돌아올 수 있지 않을까요? 방랑단을 곁에서 지켜보고 응원해주셨던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상 방구룸의 혜신행자(구 쩨꾸), 구리구리, 차라투스트라, 꼬기자였습니다.
    • 사람이야기
    2024-06-11
  • 돈 벌고 싶지 않았던 그녀가 미역장시가 된 이유
    구례장터에서 그녀를 본 적이 몇 번 있다. 구례 축협하나로마트 앞에서 진도산 미역과 다시마를 팔고 있었다. 내가 관심을 가진 이유는 진도산만 판다는 것 때문이었다. 미역이나 다시마라면 다른 곳도 많을 것인데 왜 진도산만 파는 것일까? 라는 호기심 때문이었지만 따로 묻지는 않았다. [구례 축협하나로마트 앞에서 진도산 해산물을 판다 / 사진 김인호] 어느 봄날 점심시간에 장터를 갔는데 그녀는 작은 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점심을 먹고 졸렸던 것일까? 3월의 햇살이 유독 따뜻해서였을까? 햇빛이 유독 잘 비치는 곳이라 그런 것일까?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지만 따로 묻을 수 있는 질문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녀를 만나게 되었다. 그녀의 이름은 장진희이였다. 다시마 장사꾼에서 장진희라는 이름으로 그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의 또 하나의 직업도 알게 되었다. 시인… 다시마 장시와 시인은 어울리지 않았다. 시인이면서 장시가 된 그녀의 사연이 궁금해지는 것은 당연했다. 구례는 3일과 8일 장이 선다. 지난 5월 8일 어버이날 장이 끝난 시간에 그녀를 만났다. [구례 장꾼들이 즐겨 찾는 가야식당 / 사진 김인호] 구례장터에 있는 막걸리집 “가야식당”이었다. “막걸리부터 한 잔 주세요." 식당에 들어서자 마자 그녀는 막걸리를 시켰다. 그리고는 한사발을 시원하게 마셨다. “종일 장터에 있다가 끝나면 막걸리 생각이 딱 나더라구요." “힘도 들고 목도 축이고.” [그녀는 식당에 들어오자마자 막걸리 한 잔을 마셨다 / 사진 김인호] 막걸리 한 잔을 하고 나서 그녀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장사를 시작한 것은 12년전이에요.” 아들이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인데 아들이 이런 말을 하더라구요. “엄마는 돈 벌 능력이 되는데 비겁해”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아들에게 돈이 들어갈 시기가 온 것이다. 사실 그전에도 글을 쓰거나 기간제 교사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오래 일하지는 않았고 글을 써서는 밥을 먹고살 수 없었다. 그리고 교사는 맞지 않았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다시마 장사였다고 한다. 근데 어쩌다가 다시마를 팔게 되었나요? “ 제 고향이 진도입니다.” “ 진도에서 태어났고 목포에서 자랐어요." “그리고 서울로 대학을 갔죠.” “서울에서 20년을 살았구요.” “그런데 정말 서울에서 살 수가 없었어요." “경제적으로 힘들고 자본주의에 순응하며 살 자신도 없어 37살에 귀촌을 했습니다.” “그렇게 무주에서 7년을 살았어요. 농사 짓고 살았죠. 돈은 거의 벌지 않고, 농사를 지어 한 달에 6만원 7만원만 쓰면 살았어요. 나름 행복했는데 오래 살지 못했어요.” “그리고 진도로 이사를 갔어요”. 진도에서도 돈을 벌지 않았어요.” 물때 따라 물이 들어오면 산에 가고 물이 멀어지면 바다로 갔어요” 산에 가면 나물이, 바다에 가면 해산물이 있으니 끼니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어요.” 돈이 필요하면 서울에서 횟집하는 지인에게 나물이나 해산물을 챙겨 보내면 적당히 돈을 보내줘요. 그것으로 살았어요. 어떻게 보며 그녀는 돈을 벌지 않기위해 부단하게 노력했던 것 같다. 어떻게 하면 돈을 벌지 않고 살수 있을까? 나도 이런 고민을 해본 적이 있었지만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녀는 답을 찾았을까? 찾았다면 다시마 장사꾼이 되지 않았겠지…. 그녀는 자본주의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 아니면 자본주의와 타협하지 않고 끝내 살고 싶었던 사람이었던것 같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자본주의보다 무서운 아들이 있었다. 아이는 학교에 진학해야 하니까.... 오래 전에, 뭐 오래전도 아니지만 “오래된 미래”라는 책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라다크라는 마을에서 자급자족 하며 자본주의 물결을 거부하고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 이야기에 나도 매료되던 적이 있었다. 매료된 이유는 당연하게 자본주의적 삶이 싫었기 때문일 것이다. 대량생산과 대량소비 그리고 노동할 권리와 함께 노동하지 않으면 안 되는 자유를 보장받은 결코 자유롭지 못한 삶에 지쳤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은 자유를 선고받았기에 끝없이 고통 당한다. 주어진 길이 없어 방황하고 선택을 하면 그 책임도 오롯이 자신이 지기 때문이다. 그녀는 돈에서 자유로워 지고 싶었지만 끝내 그렇게 살지는 못해던 것같다. “장사꾼이 되어서 시골마을을 많이 찾았어요. 거기서 할머니들을 많이 만났죠” “그 분들을 만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오래된 미래의 그런 삶을 마지막으로 사는 사람들이 지금 시골 할머니들 아닐까? 하는 생각요. “저는 그녀들의 삶의 모습을 보면서 자본주의에 가장 적응하지 않은 마지막 세대가 아니가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녀들과 이야기하는 것이 즐겁고 좋더라구요. 장사꾼이 좋은게 바로 그 점입니다. 그냥 가면 이야기 하기 어려운데 장사꾼으로 가면 할머니들이 경계를 풀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세요. 저는 그런 이야기를 듣는 것이 좋더라구요. 3월 3일 장터 설 쇠고 대보름 쇠고 이른 매화 산수유 피고 찬비 내리는 꽃샘추위 봄을 흔들어대는 세찬 바람 매화 얼리어 색죽이는 된서리 다 지나고 봄볕 따사롭고 바람 잔잔하고 한가한 장터 양지바른 한쪽에 미역장시 해바라기로 앉아 자울자울 졸고 있다. -장진희의 시- [돈 안 벌고 안 쓰고 안 움직이고 땅에서 줏어먹고 살고 싶은 사람 세상에 떠밀려 길 위에 나섰다고 한다. / 사진 김인호] 막걸리와 함께 이야기를 하는 중에 전화가왔다, 네; 안녕하세요. 저 미역장시맞아요. 미역이 필요한데..,,, 장은 못가겠고 언제 한 번와. 네.. 날 잡아서 갈께요, 낼 모레 사이에 갈께요” 그녀는 영락없는 장사꾼이었다. “한 여름이나 한 겨울엔 장에 나가면 손님이 없어요" “그때는 동네 마을회관을 찾아요?” “마을회관에서 장사를 하면 더 잘되거든요? “사실 처음부터 마을장사를 하려던 것은 아니었어요. 어느날 파장을 하고 잠시 쉬려고 마을회관 공터에 주차하고 산책을 다녀 돌아 왔더니 동네 할머니들이 되게 궁금해 하시더라구요, 뭐하는 장시냐고요. 그래서 다시마나 미역을 판다고 하니까 그럼 여기서도 팔라고 하시더라구요. 장터가 따로 있냐고 사람있으면 그곳이 장이라고요. 그렇게 해서 마을장사를 시작하게 되었죠?” 다시마 장사는 어떻게 시작 하셨나요? “제가 진도로 이사하고 나서도 무주로 자주 놀러 갔었어요. 돈이 없어 궁리를 하다가 생각난게 있었어요. 무주장에 가보니 좋지도 않은 다시마나 미역을 삐싸게 팔더라구요. 그래서 진도산 다시마나 미역을 가지고 가서 귀촌한 지인들에게 판매를 했었죠. 그게 인연이 되어 다시마 장사를 하게 되었어요.” “12년 전에 처음 시작 할 때 정말 힘들었죠. 장터 장사꾼은 자리가 생명이니까요. 자리잡기가 쉽지 않았어요. 처음 시작 할 때 돈을 빌려 1,400만 원어치 다시마를 구입해 창고에 넣어놓고 시작했었요. 첫날 10만원어치를 팔았는데 이걸 언제 파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하지만 다행히 자리를 조금씩 잡고 장사도 그런대로 되는 편이라 아들의 학비를 마련 할 수 있었어요. 지금은 다른 장은 안가고 구례장만 나와요. 이제 좀 여유가 생겼어요. 아들이 다 컷으니까요.” 앞으로 하고 싶은 것이 있나요? “최근에 “전라도닷컴”이라는 잡지에 장터 이야기를 3년간 연재했어요. 장사를 하다 보니 하나하나 기억되는 순간들이 있거든요. 12년간 장사를 하며 느낀 점들, 그동안 살면서 기억되는 순간들을 3년간 풀어서 글을 썼어요 그러고 나니까 마음이 가벼워졌어요. 쌓여 있던 것들이 해소된 기분이 들어요.” “그리고 논개 이야기를 장편 소설로 쓰고 싶어요. 무주에 살 때 장수에 있는 논개사당에 자주 가봤어요. 동네 할머니들이 논개노래를 부르시더라구요. 논개에 관심이 생겨서 논개에 관한 자료를 조사하고 있어요. 나이가 있어서 그런지 쉽지 않지만 이제는 좀여유가 있으니 해보고 싶어요.” [자본주의 최후의 보루는 장터 아닐까요? 사진 김인호] 장사는 계속 하시나요? “장사는 팔십 먹어서까지 하고 싶어요. 재미가 있거든요, 장터에 가면 팔십 넘은 할머니들이 장사 하고 있잖아요. 저도 그렇게 늙고 싶어요.” 인터뷰를 마치고 막걸리집에 나섰다. 그녀는 남은 막걸리를 살뜰하게 챙겨 식당을 나왔다. 막걸리는 따로 쓸 용처가 있다고 했다. 파장한 장터에는 짐을 정리하는 장꾼들과 마지막 장을 기웃하는 사람들 몇몇이 보였다, 어둠과 함께 5월에 초록이 노고단에서 구례로 내려오고 있었는데 그녀의 다시마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푸른 진도 바다에서 건져져 돈없는 그녀에게 희망이 되어준 다시마와 미역들이 초록물결처럼 너울거린다. “자본주의 최후의 보루는 장터 아닐까요" “가게를 마련할 돈도 없는 가장 가난 한 사람에게도 희망이 되어 줄 수 있는게 바로 오일장이죠. 물건만 있으면 가게세도 세금도 없는 곳, 그래서 누구나 자신의 물건을 자신의 가격으로 팔 수 있는곳, 돈 없는 가난한 사람도 돈을 얻을 수 있는곳 말이죠.” 그녀는 3일과 8일 구례 농협하나로마트 앞에서 진도산 미역과 다시마를 팔고 있을 것이다. 아니면 그 자리에 앉아 자울자울 졸며 시를 쓰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미역장시 #장진희
    • 사람이야기
    2024-05-09
  • [지리산자락책방] 대지가 이끄는 길 따라 한 걸음씩
    퍼머컬처 또는 숲밭을 가꾸고자 하는 사람은 『가이아의 정원』을 멋지게 번역한 사람으로 이해성을 기억할 것이다. 책이 나온 후 십 년이 넘게 흘렀는데 그는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우리의 가이아가 신음 소리를 내며 죽어가고 있기에 이해성이 들려주는 오늘의 말을 듣고 싶었다. 그는 의외로 바로 우리 곁에 있었다. 지금은 지리산 활동가로, 그는 그 사이 한 번도 길을 벗어나지 않은 것 같다. 문 : 살아온 얘기랄까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해성 : 저는 3년 전부터 ‘지금부터 판타지’라고 하는 이 공간을 운영해요. 카페이자 서점이지요. 이 공간 운영하면서 맡고 있는 부수적인 일들이 있지요. 이를테면 지리산케이블카반대 산청주민대책위에서 사무국장 일을 하고 있고, 올해부터는 필봉문학회에서도 사무국장 일을 하고 있어요. 창원에 마을공동체협력지원센터라는 곳이 있는데 거기서 프리랜서 일을 했었어요. 기자 비슷한데 마을 공동체 활동을 취재해서 기사를 써서 보내주면 활동비로 고료를 주었거든요. 그래서 가게에 출근하지 않는 날에 그런 활동, 말하자면 취재를 하고 가게에 손님이 없으면 그걸 가지고 글을 쓰는 작업을 했었어요. 지리산케이블카반대 일은 ‘이로운 식탁’이라는 소셜다이닝 모임이 있었는데 그 회원들의 의견이 다 똑같은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한번 목소리를내어보자, 반대하는 활동을 해보자 해서 시작이 되었어요. 그렇게 흘러흘러 어떻게 직함을 가지게 되었네요. (웃음) 처음에는 그럴 줄 몰랐어요. - 총선을 앞둔 장날이라 녹색당원들의 선거운동이 있었다. 이해성씨는 비당원 지지자라고 한다. 산청지역에서 녹색정의당은 362표를 득표했다. 울어야할까 웃어야할까. 문 : 산청에서 태어났죠? 해성 : 아니요. 태어나기로는 인천 어디 산부인과에서 태어났는데 정확히는 모르고요. 산청에는 다섯 살 때 내려왔어요. 부모님이 귀농하시면서. 문 : 자라온 과정이 범상치는 않았던 것 같은데? 해성 : 평범하다고 할 수는 없죠. 문 : 책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네요. 『가이아의 정원』이라는 책과 함께 이해성이라는 이름이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게 된 것 같은데요? 물론 그 전에 번역한 책도 있지만. 이 책의 반향이 컸죠? 해성 : 이 책이 10년 전에 나왔어요. 그때 당시에는 반향이 별로 없었어요. 좀 어려운 책이라고 해야 되나, 9~10년 정도 지나니까 지금 반향이 있어요. 읽었다는 분들도 많이 있고 역자를 만나고 싶다고 찾아오는 분도 있고, 만나고 싶었는데 당신이 이 사람이야? 하면서 반가워 하고 그런 분들도 계시고 정원 프로그램에서 추천받았다거나...... 문 : 제가 책 얘기를 꺼낸 이유는, 일반적인 교육과정을 거치지 않고 부모님의 깊은 영향이나 아니면 자신의 성찰의 과정을 통해서 생태주의를 자신의 가치관, 세계관으로 받아들인 새로운 세대가 나타났구나 하는 ‘그런 사람이 다 있어?’ 하는 느낌이 있었어요. 어쨓든 다섯 살 때부터 산청에서 쭉 살고 있는 거죠? 산청을 떠난 적은 없는 거죠? 해성 : 예. 여행 차원에서 간 적은 있지만 주소는 그대로였어요. 떠난 적 없다고 봐야죠. 주옥 : 세상으로 나오기 전에 어떤 삶을 살았는지, 지리산 활동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지만 해성이라는 사람을 몰랐는데 케이블카 반대 활동 속에서 어느 날 정말 혜성처럼 등장을 한 거에요. 저는 어느 신문사 기자라고 생각을 했어요. 제가 모르는 얼굴인데 젊었고 기자처럼 막 왔다갔다 하고 회의하는 자리에도 와서 앉아있고 그래서 누굴까 실은 굉장히 궁금했어요. 그러다가 조금씩 알게 되는 과정에서 어디에 있다가 나타난 걸까 왜 이제야 나타난 거지 생각을 했어요. 문 : 청소년기나 성장기를 구체적으로 얘기해 주면 좋겠어요. 해성 : 부모님이 귀농을 해서 살게 되신 곳이 오부면 일물마을 입니다.거기가 산청에서도 오지로 소문난 곳이에요. 비탈길을 올라가면 산꼭대기에 평평한 곳이 있어서 밭과 논농사를 지을 수 있어요. 이런 산동네에 들어갔는데, 원래 부모님이 연고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후쿠오카 마사노부라는 일본분이 계시잖아요. <생명의 농업>이는 책을 쓰신. 그 책을 보고 감명을 받아가지고 직장을 때려치우고 자연주의적인 삶을 추구하겠다, 자급자족을 하겠다, 이러면서 내려오신 거예요. 진주에 집을 구해 살면서 여기저기 다녀보다가 그 동네를 선택해서 들어간 거지요. 그때 당시에는 동네에 차도 한 대도 없었고 부엌도 싱크대가 없이 부뚜막에서 밥을 해먹는... 전기는 들어왔어요. 문 : 어머니, 아버지가 의견이 완전히 일치하셔서? 해성 : 일치하셨겠죠. 저는 어렸을 때니까 속사정은 자세히 알 수 없지만 일치하셨으니까 들어오신 거죠. 그 동네는 당시 여러 가지 작물들을 심어서 주민들이 먹거리는 자급을 하고 동시에 환금작물을 재배하거나, 당시에는 양잠을 해가지고 경제를 영위하는 형태의 동네였어요. 그런 모습을 보고 부모님이 그 동네를 선택하셨나 봐요. 문 : 부모님 연세가? 해성 : 60대 후반, 70 이렇게 되셨어요. 그래서 집집마다 누에를 키우는 별채라고 해야 되나 그런 걸 지어가지고 불을 때고 했는데, 지금은 누에를 안 키우지만 그런 건물들이 남아서 창고로 사용하는 경우를 볼 수가 있죠. 잠사라고 할 수 있지요. 그 바닥을 흙으로 마감을 했는데 누에를 키우려면 거기에 시멘트를 발라가지고 불을 땔 수 있게 한 거에요. 따뜻해야 누에가 클 수가 있으니까. 어렸을 때에는 누에를 쌓아놓고 투명해지면 골라내고 그런 일들을 동네아주머니들 도와서 하고 그랬죠. 그런 기억이 있어요. 부모님은 문명의 이기를 가지고 들어가서 그게 하나씩 고장날 때마다 하나씩 안 쓰게 되었어요. 처음에 티브이 가지고 들어가서 안테나 부러지면 안 보게 되고 세탁기 고장나면 안 쓰고 냉장고 고장나면 역시 안 쓰는 식이었어요. - 지리산 케이블카 반대 논의가 시작된 이로운 식탁 모임. 왼쪽부터 영권, 해성, 한범, 경옥, 현정. 사진은 현하. 문 : 부모님이 우리나라 생태주의 1세대 이전 0세대라고 할 수 있겠네요. 후쿠오카 마사노부가 소개되자마자 여기에 심취한 경우 같아요. 해성 : 맞아요. 그분 책을 번역한 최성현 선생님과 자연학교라는 모임을 만들어서 1년에 네번 정도 모임도 하셨어요. 그 모임을 우리 집에서 하기도 했고요. 제가 어렸을 때였죠. 그 모임 회원 가운데 실제로 귀농을 하신 분들은 얼마 안 돼요. 문 : 쉬운 일은 아니었겠죠. 그 모임을 하시면서 부모님께서는 자신들이 생태주의를 실천하셨을 뿐 아니라 자식에게까지 영향을 미치셨어요. 뭐랄까 생태근본주의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해성 : 모든 것에 자급자족을 추구하셨어요. 먹거리를 자급하고 연료를 자급하고 의료, 문화, 교육까지도 자급을 해보겠다 이런 태도이셨어요. 어느 정도 성과가 있었다고 볼 수 있죠. 물론 한계도 있지만... 문 : 부모님한테 어학을 배우신 건가요? 『가이아의 정원』 책 얘기를 해볼까요? 해성 : 이 책을 제가 선정했어요. 친구 집에 가서 이 책을 발견하고 너무 마음에 들어서 소개를 받았어요. 한 챕터를 번역하고 나서 당시 들녘에서 귀농총서를 내고 있었기 때문에 원고를 보냈죠. 검토를 해달라고. 그런데 들녘에서 연락이 왔어요. 자기들이 이 책을 선정해서 옮기고 있다는 거예요. 이은주 선생님이라고, 근데 이분은 농사를 해보지 않으신 전문번역가이시잖아요. 책 내용은 농사와 관련한 전문적인 내용이고요. 농사와 관련한 경험과 지식을 가진 사람이 옮기는 게 낫죠. 그래서 이 두 개의 원고를 비교 검토를 해보고 들녘에서 저로 역자를 바꾼 거지요. 그래도 이현주 선생님이 반절을 옮겼으니까 그 부분은 제가 윤문을 했어요. - '지금부터 판타지'에는 기후위기 시대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귀한 책과 자료들이 쌓여있다. 문 : 이 책을 보자마자 매료가 되었다는 거죠? 데이비드 홀그램이 쓴 『퍼머컬처』도 비슷한 시기에 나왔는데 내용이 너무 이론적이어서 읽기가 쉽지만은 않은데 반해서 『가이아의 정원』은 이야기 전개가 흥미진진하다는 느낌입니다. 퍼머컬처에 대한 생각을 듣고 싶네요. 해성 : 저도 이 책과 같이 해보려고 노력을 했지요. 그대로 못한 부분들도 있고요. 이 책에서는 관찰 과정을 굉장히 중요시하고 있어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관찰만 하는 기간이 아주 중요하고, ‘관찰 속에 해답이 있다’라고 하는데 내가 그만큼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관찰의 시간을 보내지는 못했던 것 같아요. 뭔가 기획하는 것도 의사결정 과정이 가족 안에서도 완전히 민주적이지는 않지요.(웃음) 즉 어떤 한계가 존재한다는 말이지요. 하고 싶지만 못하는 부분들도 있어요. 이를테면 무경운으로 풀을 둔 채 관리를 하고 있어요. 방치한 게 아닌데, 아버지가 ‘왜 먹는 것도 아닌데 심어놓았냐’고 하시면서 허브를 갈아엎어버린다거나 풀을 다 뽑아버린다거나 이런 일이 발생을 하는 거죠. 그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나려고 좀 멀리 간다거나 접근이 어려운 곳에 가서 해야 하는 거에요. 왔다갔다 하는 일이 힘들잖아요. 이렇게 실제로 해보면 예상하지 못했던 장벽에 부딪히게 돼요. 문 : 꽤 독특한 교육과정을 거치셨죠? 해성 : 초등학교만 다니고 중등과정부터는 집에서 공부를 했어요. 주경야독인데 정확히는 아침, 초저녁에 일하고 한낮에는 공부를 하는 거였죠. 문 : 의무교육을 안 해도 괜찮아요? 해성 : 이유가 있으면 안 해도 돼요. 제가 중학교에 들어가는 해에 중학교가 의무교육이 됐어요. 그래서 산청중학교에 적을 두고 계속 입학유예를 했어요. 그걸 3년인가 하면 자동퇴학이 되거든요. 그때는 그렇게 했었죠. 곤란했던 게, 제가 산청중학교에 적을 두지 않으면 학교에두 개 반이 있었는데 하나가 없어져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그러니까 학교에서 간청을 하게 된거죠. 반을 유지를 해야 하니까. 그 시절에는 홈스쿨링이라는 단어가 많이 알려지지도 않았고 학교에 다니지 않으면 비행 청소년인 때였어요. 학교 안 가니까 낮에 읍에 돌아다니면 ‘너 왜 학교 안 갔어? 학교 가라’ 이렇게 잔소리가 들어오는 거죠. 그러니까 일종의 대인기피증이 생겨버려요. 설명하기도 귀찮고, 설명하면 ‘너희 부모님은 왜 그러니? 잘못하는 거야!’ 그러면 또 제가 변명을 해야 되는 게 너무 피곤한 거에요. 지금 학교 안 다니는 친구들은 겪지 않는 문제죠. 저는 정말 강력한 태클이랄까 그런 걸 겪었어요. 그래서 몇 년 동안은 거의 두문불출했었어요. 문 : 책을 세 권 번역했고, 그리고 글 쓰는 일을 많이 하시는 것 같네요. 해성 : 그렇죠. 많이 쓴다기보다는, 번역을 하다 보니까 내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문 : 앞에서 요즘 들어 책에 대해서 관심을 표현하는 일이 많아졌다고 했죠? 전반적으로 퍼머컬처를 공부하거나 시도하는 분들이 많아졌기 때문이겠죠? 해성 : 퍼머컬처도 늘었지만 그뿐 아니라 정원, 시민정원사 과정 같은 게 많이 생겼구요. 정원디자인에 관심을 가진 분들이 많아진 거 같아요. 프로그램 강사들이 이 책을 추천하는 경우가 많아요. 퍼머컬처를 먼저 알아서 찾아본다기보다는. <가이아의 정원>은 농업분야라기보다 기본적으로 조경 디자인 서적이에요. 문 : 산청케이블카반대투쟁에 대한 얘기를 해주시죠. 해성 : 작년 6월 산청군에서 케이블카 신청서류를 환경부에 제출했어요. 이에 우리가 대책위를 조직해서 기자회견을 가졌고 꾸준히 월요일 아침과 수요일 오후 피케팅을 하고 있어요. 공개 질의서를 군에 내고 거기에 대한 답변이 오면 그 내용과 우리의 입장을 기자들에게 알리는 과정에서 제가 보도자료를 작성해서 배포하는 작업을 꾸준하게 했습니다. 저로서는 이렇게 사무국장 일을 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제가 회의록을 작성한다든지 기록하고 관리하는 일을 전에 좀 해봤어요. 다른 분들보다 제가 컴퓨터로 하는 일, 디자인 작업 등을 할 줄 알다 보니까 실무를 맡게 된거죠. 그 결과 사무국장이라는 직함을 갖게 되었죠. 문 : 지역에 케이블카 이외에 생태, 환경 관련 현안은 어떤 게 있나요? 해성 : 덕산댐 관련 이슈가 있는데 지금 추진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어요. 유튜브 찾아보면 황당한 영상이 올라와 있어요. ‘산청의 천년대계 덕산댐’이라고. 덕산댐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아요. 이건 거기 사시는 분들도 반대를 해요. 생수공장 문제도 있어요. 기존에 지리산 산청샘물이라고 있는데 취소공을 더 파려고 하는 것이지요. 근데 공청회도 하지 않고 있어요. 그것 때문에 덕천강 물이 마르고 있는데요. 수위가 내려간 게 재작년부터 확연하게 보인다고 합니다. 제가 그쪽에 살고 있지 않으니까 확실하게는 모르지만 듣기에 그렇습니다. 문 : 함께 하는 사람들 얘기를 듣고 싶네요. 해성 : 케이블카 반대운동을 한다니까 후원을 많이 해주시고 그래요. 지역에 계신 분들 가운데 관청과 관련된 일을 하는 분들은 관에서 추진하는 일을 대놓고 반대하지 못하는 입장이더라구요. 그런 분들은 반대 발언은 하지 못하고 그냥 후원을 하시죠. 주옥 : 지리산을 지키는 활동 속에서 어떤 부분은 어쩔 수 없이 내주고 어떤 부분은 기필코지켜야 하는 부분이 있을텐데 그건 어떻게 생각해요? 해성 : 많은 것들이 필수적인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이를테면 일물 마을에 진입하는 도로가 얼마나 많이 바뀌었는지 몰라요. 아마 다섯 번 정도는 될 거에요. 점점 넓혀지고 지금은 아스팔트가 깔려 있으니까 이제는 상황이 종료된 것이겠죠. 근데 이것조차 한번은 우리 집 앞에 언덕을 밀어버리고 직선도로를 내겠다고 해서 반대해서 무산시킨 일이 있어요. 이 일도 지역 주민인 우리 가족이나 이웃들을 따돌리고 공청회를 진행하고 계획을 세웠었어요. 주민이고 내 곁에서 일어나는 일이니 당연히 막아야죠. 정말 불필요한 일이지만 필요하다고 말하면서 진행을 해요. 특히 도로공사 같은 경우에. 그리고 바로 아래 동네에 큰 댐을 만들었어요. 저는 몰랐어요. 근데 주민설명회, 공청회를 했대요. 제 경우 윗동네 사람이니까 아무런 영향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수몰된 부분이 생기니까 도로를 부수고 다시 내는 건데 사실은 그 저수지도 필요가 없어요. 농업용수라는 핑계가 있지만요. 그게 없어도 다 농사를 지었었거든요. 그래서 어디까지를 양보하고 어디까지 막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정말로 거기 사는 사람들 입장에서 생각을 하고 이게 무엇을 위한 것인가 파악하지 않으면 어려운거 같아요. ‘나는 이제 이 땅을 사용할 일이 없을 거야. 이 땅을 팔 수도 없을 거야. 그러니 보상을 받아야겠어’라고 생각하고 공사를 진행하는 분들이 많아요. 그런 경우에는 사실 필요가 없는데 하는 거죠. 목적이 따로 있는데 다른 핑계를 내세우기 때문에 그걸 확실히 알지 못하면 말하기가 어려워요. 그런 사건이 많이 있었어요. 문 : 자본이 굴러가고 우리 사회에 필요하지는 않지만 누군가가 돈을 벌면 하는 거죠. 해성 : 돈 번다는데 왜 반대하냐 이런 논리가 있잖아요. 먹고 살려고 하는 일이다 이런 논리. 저는 지원을 하고 싶다면 1/n로 나눠주는 게 제일 낫다고 생각해요. 이 사회는 인프라가 너무 충만합니다. 주옥 : 이렇게 전면적인 활동에 해성이 뛰어든 내적 동력이 무엇일까 궁금해요. 부모님의 영향이라든지 살아온 과정이 있지만 그래도 이렇게 적극적인 활동가로 나서게 된 데에는 또 다른 계기라든지 이유가 있을 법도 한데...... - 인터뷰에 응한 이해성님과 함께 한 주옥, 밤구, 선재 해성 : 활동가 일이 게 제 의견을 표명하는 일이잖아요? 지금으로서는 글 쓰는 활동과 접목해서 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산만하면 피곤해지거든요. 사회적 활동에 대한 관심은 제가 산속에서 가족공동체를 이루어 살고 10년 동안 아이를 키우면서 해야 할 일이 있고, 그때 할 수 있는 일이 있잖아요. 어떤 일은 못하게 되는 거죠. 아랫동네에 저수지가 만들어지는데 그것도 모르고, 소식을 못 듣고, 그렇게 됩니다. 내 주변 일들을 알고, 넓은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고, 네트워크를 확장하고 싶다는 욕구가 차츰 쌓여온 것이겠죠. 아이들도 충분히 크고 저도 마흔 가까이 되면서 폭발하듯이 전환이 된 것 같아요. 특히 이 가게를 하게 되면서. 그게 여러 층위에서 일어났고 사적인 부분들도 있어서 이 인터뷰 자리에서 다 말하기는 어렵네요. 인생이 2막이라고 한다면, 1막에서 경험하고 쌓아온 것들을 2막에서 좀 더 확장된 영역, 의미 있는 일들에 적용하고 싶어요. ‘하고 싶다’기보다는 그렇게 되도록 정해져있는 것 같아요. 문 : 『가이아의 정원』과 관련된 활동은 있을까요? 해성 : 산청에 ‘042(공간과 사는 이야기)’라는 모임이 있어요. 이 모임 후기를 매번 제가 써서 올리고 있는데, 저저번 모임에서는 이 책을 가지고 이야기를 나눴어요. 제가 강연자로 초빙된거죠. 거기서 퍼머컬처 공부하는 모임을 하자는 얘기도 나오고 그랬어요. 다만 제가 시간상 가능할지는 모르겠어요. 그리고 지역에서 자기 정원, 텃밭 좀 봐달라, 컨설팅 해달라고 하는 분들이 계셔요. 그래서 가서 살펴보고 이렇게 하면 좋겠다 저렇게 하면 좋겠다 얘기 나누고 그래요. 문 : 홍성에 가보니까 풀무학교가 처음에 만든 정원을 이웃들이 따라하면서 퍼져나가더라구요. 그렇게 생태적 삶의 모델이랄까 그런게 퍼져나가는...... 해성 : 가족 단위의 퍼머컬처를 만드는 방법도 있지만 퍼머컬처가 그런 것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니까 소읍이나 도시의 공동 농장이라든가 군데군데 게릴라 가드닝을 한다든가 또는 퇴비장 사업 같은 일에도 관심이 있어요. 제가 이 가게에서 생활을 하는데 여기에서 나오는 음식물 쓰레기를 통에 담아서 배출하지 않아요. 이 뒤쪽에 하나로마트 뒷마당이 있는데 거기가 방치가 되어 있어요. 나무들이 몇 그루 심어져 있고 여름이 되면 풀이 우거지고... 거기에서 퇴비를 만들어요. 그 퇴비를 쓰지 않아도 그 자리에 있는 나무들에게 돌려주면 좋고 해먹을 걸어서 누워있기도 하고요. 고추나 가지를 심어본 적도 있어요. 그런데 사람이 모든 걸 할 수는 없겠지요. 주옥 : 구례에 있는 한겨레생명평화공원도 함께 보고 거기서 활동하는 청년 활동가들도 만나면 좋겠어요. 해성 : 예, 갈게요. 저는 일단 이런 것들을 기사화하는 일을 하고 싶어요. 이야기를 많이 어떤 정보들이 가닿지 않는 곳에 전해지고, 그때그때 상황이 되는 사람이 적당한 일을 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해요. 『가이아의 정원』을 소개시켜준 니코라는 친구가 한국에 들어왔거든요. 그 친구는 캐나다에서 공동농장 매니저를 하고 있어요. 여기서 그 친구가 작은 강연회를 했어요. 사람들이 관심도 많고 호기심도 크더라구요. 후기를 제가 써서 올리면 사람들이 그런 곳도 있구나 인식을 하고, 상황이 되면 하겠죠. 그러면 제가 일종의 씨앗이 되는 셈이고... 문 : 조만간 구례에 오시겠군요! 해성 : 실은 지리산사람들 운영위원 함께 하자고 하셔서 거기까지는 못하겠고 그래도 같이 하기를 원하시는 것 같아서 첫 번째 월요일은 비웠어요. 가게를 하면서 1주일에 사흘은 여기 나오고 나흘은 농사를 지었어요. 작년에 5일을 여기 나오게 되면서 농사일에서는 손을 뗐어요. 병행이 불가능해요. 언젠가 이 일을 그만 두고 돌아가서 농사를 짓는 삶으로 돌아갈 수도 있지만, 지금은 경작을 할 수가 없어요. 저는 사람이 농사를 지어야 한다 자급자족적 삶을 살아야 한다고 거의 세뇌가 된 사람이라서 농사를 안 짓는 생활이 죄책감으로 다가왔어요. 머리로는 안 그래도 된다고 생각하지만 신체적으로 느끼는 반응이 있는 거죠. 지금은 많이 벗어났는데, 농사일을 여전히 좋아하긴 합니다. 문 : 예전에 어떤 강의에서 강사분이 말하길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농사짓는 사람과 안 짓는 사람’ 이렇게 말을 했는데, 저도 그때는 그 말이 아주 매력적으로 다가왔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런 식의 언술은 맞지 않는 것 같아요. 해성 : 저 역시 그런 말이 다른 사람에게 상처 주는 것 같아서 싫어요. 그런데 좀 완화해서 농사를 한번이라도 지어본 사람과 한번도 안 지어본 사람 사이에는 차이가 있겠지요. 문 : 자본주의 물질문명이 마치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벗어나 살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게 하는데 그 결과가 인간을 괴물로 만드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있어요. 문(밤구) : 영성적인 사고나 몸살림같은 거 보면서 산속에서 살면서 그런 것들을 가까이 하게된 계기나 배경이 어떤 것인지 궁금해요. 해성 : 몸살림은 아니고 10대 때 요가를 했어요. 원래 제가 몸치였거든요. 일은 해요. 오래 걷기도 해요. 그러니까 지구력은 있어요. 또 보기보다는 힘이 세요. 그런데 춤추라고 하면 못하고 정해진 동작을 따라 하는 것도 잘 못하고 그랬단 말이에요. 그래서 이걸 극복해보자, 몸치를 벗어나자, 해서 처음에는 요가를 했어요. 요가 선생님한테 거의 세 시간 강의 듣고, 그분이 추천한 『요가 디피카』라는 책을 보고, 책 내용 따라 하고 해서 다리도 일자로 찢어졌었어요. 지금은 못 하지만. 그런데 요가는 정적이잖아요. 그래서 그 다음에는 태극권을 했어요. 태극권은 꽤 오래 했죠. 밝은빛 태극권이라는 곳에서 한달의 반은 서울에 있으면서 중국 선생님이 강의한 내용 녹취해가지고 태극권 책 만드는 작업도 돕고 그랬어요. 문 : 앞으로의 계획은? 해성 : 1년 정도의 계획밖에 없어요. 1년 정도는 지금 하던 작업을 계속한다. 그 이후의 계획은 구체적으로 말할 수는 없어요. 1년 동안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될지 비전 세우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그리고 제가 타로를 해요. 한 삼년 정도 밖에 안 됐어요. 다른 사람들의 삶에 궁금함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듣는 도구로 사용했던 거에요.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은 데이터를 모으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어요.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가, 세상은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가. 그래서 이렇게 데이터를 모으는 작업을 1년은 더 할 겁니다. 문 : 그리고 지리산인에 한 달에 두 번씩 글을 올리는 것도 계획이잖아요? 5년 동안! 해성 : 5년이요? (웃음) 타로에 대한 책도 써야 돼요. 지금 70% 쓰고 있는데 그 다음에 탁 걸려가지고 안돼요. 그것도 이유가 있는 것 같아요. 올해는 될수록 그 작업을 마무리하고 싶네요. 문 : 타로의 방법론에 대한 책인가요? 아니면 인생에 대한 책? 해성 : 타로에 대한 해설서인데요 인생에 대한 책도 되겠죠. 타로 자체가 인생에 관한 것이니까. 인터뷰를 마치며 타로 또는 그가 풀어놓을 인생에 대한 이야기가 기다려진다.
    • 사람이야기
    2024-04-17
  • 지리산 화엄사 석축에 담긴 석공의 손길, 잉카의 기술인 듯
    4월 초순 한식 절기에 지리산 화엄사로 향하는 도로와 강변 둑에는 벚꽃이 만개하였다. 구례군 마산면에 있는 이 사찰은 지리산 노고단으로 올라가는 등산 코스의 출발점이다. 국보와 보물 등 많은 문화재를 보존하고 있는 사찰 도량에서 으뜸 건축물인 대웅전과 각황전은 태산처럼 드높은 위용으로 중생에 대한 자비로움을 표상하고 있다. 지리산 화엄사 일주문 (사진: 이완우) 법고루 아래 터에서 당간 지주 두 돌기둥을 살펴보다가, 잉카의 마추피추 석벽과 같은 겹쌓기 석축이 눈에 띄었다. 규모가 제법 큰 바위 표면을 평평하게 다듬고 모서리를 사각, 오각 및 육각으로 정과 망치로 균일하게 쪼아서 이웃 바위와 맞대어 촘촘히 쌓아 올렸다. 아랫돌과 윗돌을 곡면으로 쪼아 맞춘 맞댐은 곡선미가 드러났다. 이곳 석축을 쌓았을 석공의 정성과 기량에 감탄하면서, 기하학적 무늬로 퍼즐 맞추듯 이어지는 이웃 돌과 만나는 조화를 살펴보았다. 석축을 구성하는 바위 조각들의 배열에서 무생물인 바위들도 중생들처럼 얼기설기 인연을 맺고 석축으로 한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지리산 화엄사 법고루 앞 석축 (사진: 이완우) 각황전의 오른편 도량 뜰에 천연기념물 '구례 화엄사 화엄매'가 이슬비를 맞으며 활짝 피었다. 이슬비를 맞으며 꽃잎들을 떨구고 있는데도, 청아한 기상은 여전했다. 임진왜란 때 전소된 이곳 사찰의 중건과 함께 300여 년의 역사를 같이했던 홍매화 나무는 3월 중순이면 따뜻한 자비의 색채가 어린 꽃망울을 매년 어김없이 터트려 왔다. 무소유의 법정(法頂, 1931~2010) 스님은 "피어있는 것만이 꽃이 아니라, 지는 것도 또한 꽃이다."고 했다. 꽃이 피는 순간도 아름다운 절정이고, 꽃이 질 때도 역시 아름다운 절정임을 화엄사 홍매는 낙화(落花)로써 말없이 이야기했다. 지는 꽃잎을 배웅하면서 청순한 새싹을 돋우는 홍매화가 함초롬히 비에 젖었다. 지리산 화엄사 각황전 옆 홍매화 낙화 중 (사진: 이완우) 화엄사 명부전 옆 오른쪽 도량 뜰에 보리수나무가 연두색 싹을 틔우고 있었다. 연두색의 밝은 색조에 마음이 환해진다. 2천5백여 년 전에 싯다르타 태자는 출가하여 오랜 세월의 고행과 수행을 하였어도 생사에 대한 고뇌와 번민은 여전하였다. 태자는 보리수 아래에 자리 잡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새롭게 수행을 시작하였다. '깨달음에 이르지 않으면 결코 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으리라.' 태자의 희망 어린 초발심은 결국 보리수 열매 같은 굳은 깨달음에 도달하였다. 불교에서 불상이 나타나기 이전에, 보리수나무는 부처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상징물의 하나였다. 화엄사 보리수나무의 새싹에서 수행의 도구인 108 염주로 성장할 꽃눈을 찾아 보았다. 도량에서 보리수나무는 참배객들에 의미 있는 성스러운 나무인데 보리수나무를 알리는 안내판은 보이지 않아서 아쉬웠다. 지리산 화엄사 보리수 새싹 (사진: 이완우) 화엄사 입구의 산기슭 아래 후미진 곳에 앞면 3칸, 옆면 2칸의 맞배지붕 형식 건물인 남악사(南岳祠)를 찾아가 보았다. 남악(南岳)은 신라 시대 지리산을 일컫는 것으로 남악사는 삼국 시대부터 지리산 산신제를 올렸던 곳이었다. 남악사는 삼국 시대에는 지리산 천왕봉에서, 고려 시대에는 노고단에서, 조선 시대에는 남원부 산동의 갈뫼봉 아래 당동에서 성모 여신(聖母 女神)인 지리산 산신제를 올렸다. 지리산은 두류산(頭流山), 방장산(方丈山), 방호산(方壺山) 및 불복산(不伏山)이라는 여러 이름이 있다. 불복산은 고려를 무너뜨리고 조선을 건국하려는 이성계의 기도를 지리산 산신이 반대하였다는 전설에서 유래한다. 이 전설은 지리산 산신의 정체성을 상징한다고 보겠다. 신라 시대에 화랑들의 수련장이었던 노고단과 천왕봉 등 수많은 영봉을 품은 지리산은 생명력 풍부한 30대 연령의 여신이 품어주는 듯 역동적인 영산(靈山)이다. 지리산의 그 역동적인 여신이 노고단의 노고 할미 이미지로 변형된 때는 언제부터일까? 그늘진 곳에서 이끼가 잔뜩 낀 남악사는 돌길이 이슬비 내린 날씨에 미끄러워서 걷기에도 조심스러웠다. 매년 4월 중순의 '구례 군민의 날'에 남악제(약수제)가 이곳에서 거행된다. 남악사 마당에는 300년 수령으로 추정되는 느릅나뭇과의 팽나무가 밝은 새싹을 틔우고 꽃을 피웠다. 남악사가 밝게 단장되고, 노고할미가 아니라 신라 시대 원화(源花)와 같은 밝고 역동적인 지리산 산신의 이미지를 희망해 본다. 지리산 남악사 팽나무 새싹과 꽃 (사진: 이완우)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에 게재(2024.04.08) 되었습니다. 이 기사를 쓴 기자는 문화관광해설사입니다. 향토의 사회, 문화, 역사, 설화와 자연에서 사실을 확인하여 새롭게 인식하고 의미와 가치를 찾아서 스토리텔링으로 간략히 엮어갑니다.
    • 사람이야기
    2024-04-08
  • 비폭력대화 연습모임을 시작한 꼬리의 방구일기
    ‘함께 살아간다’이 말의 첫 느낌은 여전히 참 다정하다. 이 말을 들으면 왠지 의지할 구석이 생긴 것 같고, 더는 외로워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끝까지 불러본 적도 없는 ‘손에 손잡고~’로 시작되는 노랫말이 떠오르기도 한다.그러나 곱씹다 보면 전혀 상반된 기억들이 밀려온다. 한 지붕 아래 사는 가족에게 도저히 이해받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으면서, 그래서 내가 새롭게 찾아낸 공동체에서 지긋지긋하게 싸우면서, 어쩔 수 없이 마주치고마는 무례한 사람들 틈에서 ‘함께 살아간다’는 말은 무섭게 돌변한다. 그러면 상처입을까 두려워 크게 분노하거나 떠나버리곤 했다.방랑단 친구들은 한 지붕 아래 살았던 식구였다가 지붕없이 한 길을 걸었던 동료였다가 지금은 한 마을에 살고 있는 이웃이다. 그리고 방랑단 각자 저마다의 사랑과 우정을 나누며 더 많은 친구들과 연결되어가고 있다. 아무래도 우린 ‘함께 사는’ 쪽을 자꾸 선택하는 것 같다. 그래서 싸우거나 피하지 않고 대화할 수 있는 능력이 너무 필요해졌다.평생을 일궈온 습관을 단숨에 고치는 건 불가능해도 잠시 멈춰서 내 말 속에 담긴 감정과 욕구를 찬찬히 들여다보고, 그 마음을 용기있게 마주하는 시간만이라도 꾸준히 가져가고 싶었다. 내가 누군가를 가르칠 형편은 못 되어서, 다만 배웠던 걸 조금 공유하는 수준이지만 고맙게도 글쓰기 모임을 함께 했던 친구들이 마음을 내주어 연습모임을 시작했다. 서로 안전하다고 느끼는 관계 안에서 조금 더 내공이 쌓이면 더 많은 이웃들과 열린 모임으로 진행하고 싶다.
    • 사람이야기
    2024-03-27
  • ♪ 숲(에 나무가 있어야지 골프장이 있냐) 음악회♬
    작년에 구례군 산동면 사포마을 뒷산에서 21만㎡ 너비의 면적의 숲이 사라졌습니다. 마을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부터 지리산 국립공원 경계 인근까지 최소 2만 5천 그루의 나무가 베어졌습니다. 구례군과 시행사는 이 자리에 1000억원을 들여 45만 평 너비의 대형 골프장을 지을 거라고 합니다.골프장 사업을 막아내고 무단 벌목지에 봄을 돌려주기 위해 음악회를 엽니다. 음악회에 앞서 지리산골프장 개발 예정인 벌목지 답사도 준비했습니다.다시 숲으로 돌아갈 날을 위해 음악과 이야기와 마음을 모으는 시간을 가져봅니다. 2024년 4월 6일(토)▶ 오후 1시, 벌목지 답사 사포마을회관 (구례군 산동면 사포길 72)에서 시작- 지리산 난개발에 대한 소책자를 읽고나서, 주민분의 안내로 벌목지를 함께 걷습니다.▶ 오후 4시, 숲 음악회사포저수지 옆 공터 (구례군 산동면 관산리 401)♬ 공연자- 오프닝 : 캄캄밴드- 살래 재즈 트리오와 옥수수- 김목인☞ 참가비 20,000 원 이상 (카카오뱅크 3333-11-3005007 이신지원)☞ 주최 : 지리산골프장백지화연대, 지리산방랑단, 동아시아에코토피아포스터배경 사진: @phoma_photo
    • 사람이야기
    2024-03-18
  • 층층집에 나눔해주세요!
    층층집에 모실 입주자를 선정했어요. 구례에 오고 싶은 이유도, 각자의 관심사도 다양한 분들이 신청해주셨어요. 층층집을 온기로 채워주실 분들이 참 반갑고 기대되어요.층층집 프로젝트는 정부나 재단에서 지원금을 받지 않아요. 지리산사람들 시민단체에서 입주자분들의 월세를 일부 지원할 뿐입니다. 보증금 2천만원도 개인 후원자의 도움으로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그러나 층층집엔 아직 필요한 물품이 남아있어요. 자세한 품목은 웹자보에 기재해두었습니다. 지리산 곁으로 온 새 이웃들을 두 팔 벌려 환영하는 마음을 듬뿍 담아 물품을 나눔해주시길 요청드려요.기재해둔 물품목은 총총이가 생각한 최소필요물품이에요.(감사하게도 여기저기 나눔해주셔서 현재난로와 식탁 의자만 구하면 됩니다!) 이외에 물품도(예: 에어프라이어, 전기포트, 집안을 꾸밀 장식 등) 얼마든지 선물해주실 수 있어요. 다만 불필요한 물건이 너무 많아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미리 연락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물품후원 시 연락망: 칩코 010-2구5육-팔115(카톡이나 디엠 선호해요:)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틀림없이 좋은 일이 생길거예요!! 마음으로 응원해주신 분들도 모두 감사합니다.
    • 사람이야기
    2024-03-18
  • 지리산 주능선과 백두대간, 남원 천황산에서 감동적인 조망
    남원시 산동면과 보절면 경계에 있는 천황산(天皇山, 909.6m)은 일망무제의 탁 트인 시야를 자랑한다. 이 산의 정상에서 바라보는 백두대간과 지리산 능선의 조망은 벅찬 감동이다. [천황산 정상에서 조망한 백두대간과 지리산 주능선. 2024.3.10. 사진: 이완우] 천황산 정상에서 조망하면 장엄한 백두대간과 지리산 주능선의 산줄기가 펼쳐졌다. 요천수가 띠처럼 흘러내리는 낮은 지형 위로 운봉고원 외륜을 이루는 백두대간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흐르며, 가운데에 고남산(847m)이 우람하게 솟았다. 백두대간은 여원치와 수정봉을 지나 구룡계곡을 오른쪽으로 두고 고리봉으로 올라간다. 고리봉에서 지리산 서북능선이 왼쪽으로 흐르며 세걸산, 바래봉(1,165m)과 덕두산으로 이어지며 병풍을 둘렀고, 그 앞에 운봉고원이 펼쳐졌다. 천황산 정상에서 만복대로부터 노고단(1,507m), 반야봉(1,732m), 명선봉, 촛대봉, 장터목산장, 제석봉, 천왕봉(1,915m), 중봉과 하봉으로 이어지며 하늘을 떠받치는 지리산 주능선 전체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천천히 확인할 수 있다. 백두대간과 지리산 줄기가 오케스트라의 장엄한 연주처럼 힘차게 휘돌아 달리고 있어 감동적인 장면이다. [천황산 원경. 2020.2.18. 임실군 오수면 둔덕마을 천변에서 촬영, 사진: 김진영 향토역사탐구가]
    • 사람이야기
    2024-03-12
  • 캄다운파티의 두 번째 작은 콘서트
    캄다운파티의 두 번째 작은 콘서트 <흙과 바람과 별과 농부_서와콩> # 기획자, 상글로부터의 편지 달콤한 매화 향기에 마냥 설레다가도 매년 빨라지는 봄꽃의 개화 소식과 이상한 흐름이 마냥 반가울 수는 없어요. 올해도 어김없이 호미를 들고 밭에 앉았지만 예측할 수 없는 기후변화에 농사를 잘 지을 수 있을까 걱정이 밀려와요. 서와콩은 합천에서 농사지으며 자연이 들려주는 아름다움을 시와 노래로 짓는 남매(서와&수연) 듀오예요. 서와가 쓴 시집 <생강밭에서 놀다가 해가 진다>를 같이 낭송하고 노래하는 자리를 마련했어요. 흙을 만질 때 살아있음을 느끼는 사람들과 이웃들에게, 그리고 살아있는 모든 존재들에게 서와콩의 노랫말이 아직은 우리에게 할 수 있는 일이 남아 있다는 메시지를 던질 수 있기를 바래요. - 일시 : 3월 17일 일요일 오후 4시 - 장소: 캄다운파티(구례읍 중앙로 25, 2층) - 신청: 인원수와 함께 문자(010-2075-140공) 혹은 DM(@cdp.gurye) 주세요. - 참가비: 어른/ 1만 5천원, 어린이/ 5천원 (음료 포함) ——————————————————————————— *서와콩* 서와콩은 서와&수연 남매듀오로 합천 황매산 기슭에 서식하며 퍼머컬처 방식으로 숲밭을 꾸리고 있는 농부이자 음악가다.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작은 존재들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노래를 부른다. 서와는 시집 『생강밭에서 놀다가 해가 진다』를 썼다. ——————————————————————————— # 서와의 시들 “수수밭은 내 마음 같아 키우고 싶은 것만 키울 수 없는 마음 같아” - 「수수밭」 중에서 “나는 쓸모 있는 사람보다 오늘 본 밤하늘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 「오늘부터」 중에서 “그래도 괜찮아 사실 고래는 내 안에 살고 있거든 바다로 이 고래를 풀어 줄 수 있는 바다로 가기만 하면 돼” - 「바다 고래」 중에서
    • 사람이야기
    2024-03-05
비밀번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