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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과 지리산의 흙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이곳
- [백두대간 마루금인 도로 : 사진 이완우] 남원시의 운봉읍과 주천면이 만나는 지역은 백두대간이 형성한 개성적인 지형이다. 운봉읍과 주천면이 맞닿아 있는 2km는 거의 평지 도로인데, 이 평지 도로가 지리산 자락 운봉고원의 외륜(外輪)으로 엄연한 백두대간 산맥의 마루금이다. 이 도로에서 정령치 방향을 바라보고 설 때, 이 도로의 왼쪽은 낙동강 수계이고 오른쪽은 섬진강 수계로서 이 지역은 곡중분수계(谷中分水界)를 이룬다. 백두대간 봉우리인 이곳의 수정봉 아래에 노치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을 백두대간 마루금이 관통하고 있다. 이 마을 앞의 운봉고원 곡중분수계 지역을 일제 강점기에 조선총독부는 풍수적 관점에서 백두대간의 목 부분에 해당한다고 인식한 듯하다. 일제는 무게가 100kg 정도 되는 목돌을 6개 만들어 노치마을 앞의 평지에 깊숙이 묻었다. 일제가 이렇게하여 한반도의 백두대간에 흐르는 기맥을 누르려 했다는 이야기가 이 마을에 전해온다. 이곳 노치마을 회관 옆에는 이때 묻었던 목돌 중 5개를 파내어 보관하고 있다. 곡중분수계이며 백두대간 마루금인 2km 도로 구간의 중간 지점 가까이 낙동강 수계인 곳에 남원 백두대간 생태교육장이 있다. 이곳은 백두대간의 생태와 자연을 다양하게 체험할 수 있는 의미 있는 공간이다. 이곳 전시관은 한반도 지도 형상을 본떠서 지붕을 만들었다. [백두대간 노치마을 : 사진 이완우] 백두대간은 한반도에서 생명의 나무처럼 역할을 한다. 우리나라 어느 마을의 산줄기라도 백두대간의 13정맥에서 다시 뻗어 나온 작은 가지로 볼 수 있다. 백두대간으로 이해하는 한반도는 하나의 유기체로서 우리에게 다가온다. 한반도의 등줄기인 백두대간은 자연환경과 동식물이 어우러진 생태계의 보고이다. 백두대간은 동물들의 이동통로이자 서식처이며, 여러 강의 발원지로 생명이 시작되고 이어지는 중심지이다. [백두대간 생태교육장 : 사진 이완우] 구절초가 찬 이슬을 머금은 한로(10월 8일) 절기에 백두대간 생태교육장을 방문하였다. 전시관에 입장하면, 백두대간에 우뚝 솟은 산봉우리에서 담아온 흙을 넣은 130개의 진공관으로 한반도의 조형물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위쪽의 40개 진공관은 비어 있는데, 북한 지역의 산봉우리들이다. 남한 지역 산맥의 사이에는 그 지역의 강물을 담은 진공관이 있다. 이 130개 진공관의 한반도 조형물은 한반도의 산봉우리 모든 흙과 강의 물이 한군데에 모이기를 염원하고 있다. 이 한반도 조형물에서 북한 지역은 백두산의 흙만 진공관에 소중하게 담겨 있다. 2018년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 당시 남북의 두 정상이 함께 한 기념식수 행사에 사용된 백두산 흙이라고 한다. 남원 백두대간 생태교육장은 백두대간의 시작과 끝, 백두산과 지리산의 흙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전국 최초의 곳이다. [ 한반도의 산흙과 강물 진공관 지도 조형물 : 사진 이완우] 숲은 이산화탄소의 흡수와 산소의 배출로 지구의 허파 역할을 한다. 세상의 균형을 유지하는 숲이 사라지고 있어 기후위기가 심화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숲과 공존하는 어울림은 절실하다. 우리가 행성 지구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 자연은 더 잘 알고 있다. 우리가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면 그 자연이 전하고 있는 신호와 메시지를 인식할 수 있다. 이곳 생태교육장 전시관에는 지리산 생태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동식물을 모형으로 실감 나게 연출하였다. 용모도 귀엽고 털도 아름다운 족제빗과의 담비는 자기보다 몸집이 큰 동물을 사냥할 정도로 용맹한데 멸종위기 야생동물 2급이다. 지리산 왕등재 습지는 참갈겨니, 돌고기와 쉬리가 물속을 헤엄치고 수달과 여우가 어슬렁거리며 생명력 넘치는 자연 생태계이다. 둥치 큰 은사시나무 아래 백두산 호랑이가 포효하려는 기상이다. 참매가 낮의 숲을 지배한다면 올빼미는 밤의 숲을 지배한다. 은사시나무 가지에는 올빼미과 여름 철새인 소쩍새가 앉아 있는데 개성 있는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 숲의 나무 모형 : 사진 이완우] 이곳 전시관은 백두대간의 생태 자연을 소개하면서 자연스럽게 백두대간의 환경 훼손과 기후위기의 심각성에 대한 경보로 주제를 확대한다. 백두대간은 과도한 개발과 관광이나 등산으로 멍들고 식생이 훼손되어 동식물들이 생명의 터전을 잃어가고 있다. 대규모로 지형이 변형되면서 백두대간의 단절까지 초래하기도 하며, 등산로 따라 주변 식물이 말라 죽고 등산로의 노면 침식과 토사 유출이 발생하여 동식물의 서식지가 파괴되어 종 다양성이 감소하고 있다. 일상화된 전 세계적인 폭염과 산불, 최악의 가뭄, 대규모 홍수는 기후위기를 드러내는 현상들이다. 이제는 우리가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을 인정해야 할 때이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효과적인 해결책은 숲 복원이다. 숲은 인간의 활동으로 배출되는 탄소의 3분의 2를 포획할 수 있다. 기후위기와 숲을 중심으로 하는 생태계의 파괴는 악순환의 연결고리를 계속 되풀이하고 있다.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기온이 상승하면서 숲의 나무가 폭염과 가뭄의 공격에 시달리며 내성을 잃어가고 있다. 멸종 위기에 직면한 수많은 동식물을 살려내는 것이 결국 우리 자신을 구하는 일이다. [지리산 왕등재 습지의 물고기 모형 : 사진 이완우] 이곳 전시관에서는 전 지구적인 기후위기의 경보를 게시물로써 잘 알려주고 있다. 여우가 새의 알을 물고 가서 겨울을 위해 저장하는 모습을 보면 동물의 생존을 위한 적응 변화가 처절하기까지 하다. 빙하가 녹아내리고, 동식물의 서식지가 변화하고 있다. 꼬리표가 달린 동물과 조류가 야생에서 발견되니 생물종이 감소하고 있는 반증이다. 고온 건조한 바람 등 기상 여건이 심상치 않아 재앙적인 폭염이 반복되며 심지어 겨우내 꺼지지 않는 산불이 발생하고 있다. 이곳 전시관의 포토 아크(photo ark)에는 생명의 방주를 타고 있는 동식물의 사진을 게시하고 있다. 창세기의 신화에서는 지구를 휩쓴 대홍수에 노아의 방주에 의지해 많은 생명이 멸종의 위기를 모면하였다. 현재 전 지구적인 기후위기에서 생명의 대멸종이 발생하고 있다. 그러한 지구 자체가 또한 생명의 멸종 위기를 모면하고 보호받을 수밖에 없는 생명의 방주가 되어 있는 역설적 상황이다. [숲속의 소쩍새와 올빼미 모형 : 사진 이완우] 인간의 역사 1만 년 동안에 지구상에 있는 산림의 3분의 1일이 사라졌는데, 지난 백 년 동안에 사라진 면적이 그중 절반에 달한다고 한다. 숲이 주는 혜택은 식량과 목재의 획득, 탄소 저장 등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숲을 찾으면 산림욕으로 정신적 신체적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으며, 숲과 나무뿐 아니라 우리의 삶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얻을 수도 있다. 이곳 생태교육장에서 산림청에서 제작한 25쪽 분량의 백두대간 생태지도를 홍보물로 받았다. 이 생태지도는 지리산 천왕봉에서 설악산 향로봉까지 10개 구간별로 동물, 식물, 식생, 대표 수종, 대표 동물과 대표 식물 등의 서식 위치를 지도에 표기하고 사진을 첨부한 책자였다. 백두대간 생태교육장과 전시관에서 우리가 지구와 공존하는 노둣돌은 숲과 나무임을 확인하였다. [백두대간 은사시나무와 호랑이 모형 : 사진 이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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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과 지리산의 흙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이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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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반야봉에서 바라본 구름 바다의 남덕유산
- 지리산 바래봉 기슭 면양 목장의 봄날 철쭉 개화 풍경이다. 면양들이 풀을 뜯어먹고 철쭉들은 군데군데 남겨 놓았다. 거친 풀섶과 관목이 면양들에 의해 정리되어 잔디를 깎은 것처럼 철쭉 핀 풍경이 단정했다. [단정한 풍경(사진 류요선). 1996년 봄] 지리산 반야봉의 중봉 정상 부근에 텐트를 치고 야영하며 덕유산의 아침 풍경을 기다렸다. 구름 바다 위에 잔잔한 색조의 아침 노을이 펼쳐졌다. 멀리 남덕유산과 무룡산이 은은하고 가까이는 함양의 삼봉산이 고요하다. [반야봉에서 바라본 남덕유산 원경(사진 류요선). 1997년 현충일 다음날] 지리산 바래봉 삼거리에서 능선을 타고 샘이 있는 방향으로 가다가 자리를 잡고 야영 텐트를 쳤다. 여름날 더위를 식히며 한가로운 산책을 하다고 이 풍경을 만났다. 얼른 텐트로 가서 사진기를 챙겨 왔다. 오른쪽 끝에 노고단이 살짝 보이고 중간에 반야봉이 높이 솟아 구름을 산록에 걸치고 있다. 지리산 주능선의 토끼봉과 명선봉 등이 구름 띠를 허리에 두르고 한가롭다. [지리산 바래봉 기슭에서 바라본 지리산 주능선의 여름 운무(사진 류요선). 199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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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반야봉에서 바라본 구름 바다의 남덕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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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계곡 바위들이 모여서 회의하는 풍경
- [대성골의 바위 모임. 1998. 4. 18.] 하동 화개면의 대성골 대성교의 콘크리트 다리 난간에서 계곡을 바라보았다. 녹음이 짙은 계곡에 흘러내리는 물소리를 들으며, 커다란 바위들이 회의하는 듯 오개오개 둘러앉아 있었다. [심원마을 용소 계곡. 1997년 5월] 심원 마을 용소 계곡의 맑은 물과 화사한 진달래꽃. 1997년 7월 29일. 1시간에 149mm의 폭우가 내려 이 계곡의 지형이 번하였고, 이런 아름다운 풍경은 다시 만날 수 없다. [벽소령 남쪽의 쿵쿵소. 1997년 봄] 벽소령 남쪽 심정 마을로 가기 전의 쿵쿵소이다. 폭포 소리가 쿵쿵 떨어진다는 의미이다. 바위 옆과 아래에 진달래꽃이 아직 활짝 피지 않았다. 햇빛을 잘 받은 곳은 꽃이 잘 피었고 그늘진 곳은 아직 덜 피었다. 그때 심정 마을에서 민박하면서 사진을 찍었다. 한 2~3일 더 기다리면 진달래꽃이 다 필 텐데, 수중에 돈도 떨어지고 더 있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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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계곡 바위들이 모여서 회의하는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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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덕유산에서 조망한 지리산 원경
- 사람주나무의 끈끈한 수액은 여름철의 작은 날벌레 곤충을 잡는 약을 만드는 데 쓰인다. 봄에 피는 이 나무의 볼품 없는 꽃이 가을에는 충실하고 유용한 열매로 변신한다. 투명한 듯 밝은색의 가을 단풍이 매혹적이다. 지리산 달궁계곡에서 소나무 등걸 앞에 가벼운 색채의 사람주나무 단풍에 이끌려서 사진에 담았다. 지리산 달궁계곡의 사람주나무 단풍잎. [사진] 류요선 (2003.10.17.) 사람주나무는 이름에 '사람'이 들어간 식물로 거의 유일하다. 이 나무의 가을 잎은 햇빛이 나뭇잎을 투과한 듯 은은한 여운이 고여 있다. 제주도에서는 쇠동백나무라는 의미의 쐬돔박낭이라고 한다. 이 사랑주나무잎은 물가에서 키 큰 나무의 아래에 자라고 있어서 단풍이 연하게 들어 더 밝고 깨끗한 모습으로 새로운 잎처럼 싱그럽다. 지리산 달궁계곡 그늘의 사람주나무 단풍잎. [사진] 류요선 (2001.10.) 덕유산은 향적봉에서 중봉, 백암봉, 동엽령, 무룡산, 삿갓봉을 거쳐 남덕유산에 이르는 든든한 산줄기이다. 겨울의 덕유산 백암봉에서 조망한 지리산 원경이다. 지리산 주능선 원경을 멀리 다른 산에서 고스란히 담아보고 싶었다. 덕유산 능선의 잔설을 밟고 올라가 무룡산에 텐트를 쳤었다. 남덕유 방향 능선에 구름이 피어오르는 풍경 넘어서 노을을 배경으로 한 지리산의 잔잔한 자태를 마음에 담았다. 덕유산에서 담은 지리산 원경. [사진] 류요선 (1995.11.29.) 지리산 서북능선의 주봉인 바래봉의 산덕마을 부근 임도에 핀 진달래꽃이다. 인공 조림한 낙엽송 숲에서, 키를 한껏 키운 진달래 관목 무리에 햇살이 한 줄기 비쳤다. 진달래꽃은 오전의 한 줄기 햇살에도 밝은 미소로 환하게 빛났다. 바래봉 능선의 진달래꽃. [사진] 류요선 (2010.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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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덕유산에서 조망한 지리산 원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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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요선 작가의 지리산 사진 이야기 [둘째 마당]
- [사진 류요선 : 운봉목장 초원 산철쭉] 1990년대 후반 어느 봄날에 운봉읍 용산 마을에서 운봉목장 초원을 거쳐서 바래봉으로 올라가는 길이었다. 당시에 운봉목장 초원은 그 가운데 길이 있어 관광객들 오고 갔다. 산철쭉이 활짝 피어 있고, 그 옆 습지 풀밭에 이름 모를 하얀 꽃이 피었다. 비가 내린 직후여서 산철쭉잎에 빗방울이 보인다. [사진 류요선 : 달궁 쟁반소 부근 밤하늘 별 사진] 하동군 화개면에서 버스를 내려 쌍계사 방향으로 걸었다. 화개 장터는 김동리의 소설 역마의 무대이다. 화개 장터는 남해안, 호남평야와 지리산 기슭의 물산이 모이는 곳이다. 지리산의 고사리 꺽느라고 1년 중에 봄이 가장 바쁘다는 칠불사 아래의 범왕 마을에서 하룻밤 자고, 토끼봉으로 올랐다. 반야봉에서 4월의 하룻밤을 지냈다. 반야봉에서 계곡을 타고 심원 마을로 내려왔다. 달궁 쟁반소 위에 즐겨 찾는 숙영 장소에 머물렀다. 지리산 높은 계곡의 4월은 진달래는 피었고, 나뭇가지는 잎이 아직 나오지 않은 때였다. 30분 정도 노출을 주고 밤하늘의 별을 사진에 담았다. 북쪽 하늘을 보고 별을 찍으면 회전을 하고, 남쪽 하늘을 보며 별을 찍으면 직선으로 떨어진다. 이 사진 아래의 별은 아마 오리온자리로 보인다. [사진 류요선 : 치밭목 산장 일출] 겨울이었다. 뱀사골로 지리산에 올라가서 치밭목산장까지 이동하여 갔다. 당시 치밭목 산장에는 수십 년을 지리산과 산장을 지킨 유명한 산지기가 있었다. 치밭목산장에서 잠을 자고 앞마당에서 아침 일찍 일출 사진을 찍었다. 사진의 가운데에 피사체를 넣으면 사진에 힘이 없다. 사진을 크게 찍을 때는 가운데에 피사체를 넣기도 하지만, 대개 3분의 1 지점에 넣는다. 역광이니까 사진이 다 까맣게 나온다. 겨울 산은 산장에서 잠을 자도 정말 춥다. 납작한 물통이 있었다. 뜨거운 물을 물통에 넣어서 침낭 마닥에 넣고 잔다. 그 당시에 저녁 9시나 10시쯤에 지리산 종주팀이 산장에 들어왔다. 새벽에 들어온 팀도 있었다. 그 사람들에게 제법 뜨거운 납작한 물통을 건네주면 환상적이라고 했다. 추운 겨울 지리산에서 밤에 산길을 얼어붙은 몸으로 헤치고 왔는데 따뜻한 물통의 온기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마움이었다. [사진 류요선 : 달궁 쟁기소 부근 계곡 느티나무] 뱀사골에서 성삼재 올라가는 지방도로에서 달궁계곡 쟁기소 부근을 내려다보고 사진에 담았다. 느티나무잎이 푸르다. 계곡에는 짙은 나무 그늘이 자리를 잡았다. 비가 와서 싱그럽게 깨끗한 나뭇잎의 색채가 드러났다. 달궁까지 첫 버스를 타고 왔다. 한참을 걷다 보면 아침 햇빛이 계곡을 비춘다. 황금빛의 화가라는 수식어가 따르는 오스트리아의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1862~1918)가 있다. 여인들의 초상화도 많이 남겼지만, 찬란한 색감의 전원적 서정성이 풍부한 풍경화는 참 좋았다. 사진을 찍는데 많은 시사점을 주었다. 달궁에서 버스를 놓치면 뱀사골까지 걸어야 했다. 달궁에서 뱀사골까지 하루에 버스가 두세 차례뿐이었다. 일부러 사진 찍기 위해서 걸어다니기도 했지만, 버스를 놓치게 되면 이제 풍경을 찾아 천천히 걷는게 다반사였다. 자작나무 숲이다. 우리나라의 자생이 아니고 산림청에서 조림하였다. 달궁 자동차야영장 건너편 화전 자리에 자작나무가 수백 그루가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었다. 이 사진에 찍은 자작나무는 작은 편이다. 일반적으로 좋은 풍경이 있다고 하면 우르르 몰려가서 유명한 장면을 찍는다. 일본 풍경 사진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마에다 신조(1922~1998)가 있다. 류요선 작가는 마에다 신조의 서정적인 풍경 사진에 영향을 받아 그냥 걸으면 사진 찍을 장소를 우연히 만났다. [사진 류요선 : 달궁 자동차 야영장 부근 자작나무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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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요선 작가의 지리산 사진 이야기 [둘째 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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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과 지리산의 흙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이곳
- [백두대간 마루금인 도로 : 사진 이완우] 남원시의 운봉읍과 주천면이 만나는 지역은 백두대간이 형성한 개성적인 지형이다. 운봉읍과 주천면이 맞닿아 있는 2km는 거의 평지 도로인데, 이 평지 도로가 지리산 자락 운봉고원의 외륜(外輪)으로 엄연한 백두대간 산맥의 마루금이다. 이 도로에서 정령치 방향을 바라보고 설 때, 이 도로의 왼쪽은 낙동강 수계이고 오른쪽은 섬진강 수계로서 이 지역은 곡중분수계(谷中分水界)를 이룬다. 백두대간 봉우리인 이곳의 수정봉 아래에 노치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을 백두대간 마루금이 관통하고 있다. 이 마을 앞의 운봉고원 곡중분수계 지역을 일제 강점기에 조선총독부는 풍수적 관점에서 백두대간의 목 부분에 해당한다고 인식한 듯하다. 일제는 무게가 100kg 정도 되는 목돌을 6개 만들어 노치마을 앞의 평지에 깊숙이 묻었다. 일제가 이렇게하여 한반도의 백두대간에 흐르는 기맥을 누르려 했다는 이야기가 이 마을에 전해온다. 이곳 노치마을 회관 옆에는 이때 묻었던 목돌 중 5개를 파내어 보관하고 있다. 곡중분수계이며 백두대간 마루금인 2km 도로 구간의 중간 지점 가까이 낙동강 수계인 곳에 남원 백두대간 생태교육장이 있다. 이곳은 백두대간의 생태와 자연을 다양하게 체험할 수 있는 의미 있는 공간이다. 이곳 전시관은 한반도 지도 형상을 본떠서 지붕을 만들었다. [백두대간 노치마을 : 사진 이완우] 백두대간은 한반도에서 생명의 나무처럼 역할을 한다. 우리나라 어느 마을의 산줄기라도 백두대간의 13정맥에서 다시 뻗어 나온 작은 가지로 볼 수 있다. 백두대간으로 이해하는 한반도는 하나의 유기체로서 우리에게 다가온다. 한반도의 등줄기인 백두대간은 자연환경과 동식물이 어우러진 생태계의 보고이다. 백두대간은 동물들의 이동통로이자 서식처이며, 여러 강의 발원지로 생명이 시작되고 이어지는 중심지이다. [백두대간 생태교육장 : 사진 이완우] 구절초가 찬 이슬을 머금은 한로(10월 8일) 절기에 백두대간 생태교육장을 방문하였다. 전시관에 입장하면, 백두대간에 우뚝 솟은 산봉우리에서 담아온 흙을 넣은 130개의 진공관으로 한반도의 조형물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위쪽의 40개 진공관은 비어 있는데, 북한 지역의 산봉우리들이다. 남한 지역 산맥의 사이에는 그 지역의 강물을 담은 진공관이 있다. 이 130개 진공관의 한반도 조형물은 한반도의 산봉우리 모든 흙과 강의 물이 한군데에 모이기를 염원하고 있다. 이 한반도 조형물에서 북한 지역은 백두산의 흙만 진공관에 소중하게 담겨 있다. 2018년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 당시 남북의 두 정상이 함께 한 기념식수 행사에 사용된 백두산 흙이라고 한다. 남원 백두대간 생태교육장은 백두대간의 시작과 끝, 백두산과 지리산의 흙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전국 최초의 곳이다. [ 한반도의 산흙과 강물 진공관 지도 조형물 : 사진 이완우] 숲은 이산화탄소의 흡수와 산소의 배출로 지구의 허파 역할을 한다. 세상의 균형을 유지하는 숲이 사라지고 있어 기후위기가 심화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숲과 공존하는 어울림은 절실하다. 우리가 행성 지구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 자연은 더 잘 알고 있다. 우리가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면 그 자연이 전하고 있는 신호와 메시지를 인식할 수 있다. 이곳 생태교육장 전시관에는 지리산 생태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동식물을 모형으로 실감 나게 연출하였다. 용모도 귀엽고 털도 아름다운 족제빗과의 담비는 자기보다 몸집이 큰 동물을 사냥할 정도로 용맹한데 멸종위기 야생동물 2급이다. 지리산 왕등재 습지는 참갈겨니, 돌고기와 쉬리가 물속을 헤엄치고 수달과 여우가 어슬렁거리며 생명력 넘치는 자연 생태계이다. 둥치 큰 은사시나무 아래 백두산 호랑이가 포효하려는 기상이다. 참매가 낮의 숲을 지배한다면 올빼미는 밤의 숲을 지배한다. 은사시나무 가지에는 올빼미과 여름 철새인 소쩍새가 앉아 있는데 개성 있는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 숲의 나무 모형 : 사진 이완우] 이곳 전시관은 백두대간의 생태 자연을 소개하면서 자연스럽게 백두대간의 환경 훼손과 기후위기의 심각성에 대한 경보로 주제를 확대한다. 백두대간은 과도한 개발과 관광이나 등산으로 멍들고 식생이 훼손되어 동식물들이 생명의 터전을 잃어가고 있다. 대규모로 지형이 변형되면서 백두대간의 단절까지 초래하기도 하며, 등산로 따라 주변 식물이 말라 죽고 등산로의 노면 침식과 토사 유출이 발생하여 동식물의 서식지가 파괴되어 종 다양성이 감소하고 있다. 일상화된 전 세계적인 폭염과 산불, 최악의 가뭄, 대규모 홍수는 기후위기를 드러내는 현상들이다. 이제는 우리가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을 인정해야 할 때이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효과적인 해결책은 숲 복원이다. 숲은 인간의 활동으로 배출되는 탄소의 3분의 2를 포획할 수 있다. 기후위기와 숲을 중심으로 하는 생태계의 파괴는 악순환의 연결고리를 계속 되풀이하고 있다.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기온이 상승하면서 숲의 나무가 폭염과 가뭄의 공격에 시달리며 내성을 잃어가고 있다. 멸종 위기에 직면한 수많은 동식물을 살려내는 것이 결국 우리 자신을 구하는 일이다. [지리산 왕등재 습지의 물고기 모형 : 사진 이완우] 이곳 전시관에서는 전 지구적인 기후위기의 경보를 게시물로써 잘 알려주고 있다. 여우가 새의 알을 물고 가서 겨울을 위해 저장하는 모습을 보면 동물의 생존을 위한 적응 변화가 처절하기까지 하다. 빙하가 녹아내리고, 동식물의 서식지가 변화하고 있다. 꼬리표가 달린 동물과 조류가 야생에서 발견되니 생물종이 감소하고 있는 반증이다. 고온 건조한 바람 등 기상 여건이 심상치 않아 재앙적인 폭염이 반복되며 심지어 겨우내 꺼지지 않는 산불이 발생하고 있다. 이곳 전시관의 포토 아크(photo ark)에는 생명의 방주를 타고 있는 동식물의 사진을 게시하고 있다. 창세기의 신화에서는 지구를 휩쓴 대홍수에 노아의 방주에 의지해 많은 생명이 멸종의 위기를 모면하였다. 현재 전 지구적인 기후위기에서 생명의 대멸종이 발생하고 있다. 그러한 지구 자체가 또한 생명의 멸종 위기를 모면하고 보호받을 수밖에 없는 생명의 방주가 되어 있는 역설적 상황이다. [숲속의 소쩍새와 올빼미 모형 : 사진 이완우] 인간의 역사 1만 년 동안에 지구상에 있는 산림의 3분의 1일이 사라졌는데, 지난 백 년 동안에 사라진 면적이 그중 절반에 달한다고 한다. 숲이 주는 혜택은 식량과 목재의 획득, 탄소 저장 등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숲을 찾으면 산림욕으로 정신적 신체적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으며, 숲과 나무뿐 아니라 우리의 삶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얻을 수도 있다. 이곳 생태교육장에서 산림청에서 제작한 25쪽 분량의 백두대간 생태지도를 홍보물로 받았다. 이 생태지도는 지리산 천왕봉에서 설악산 향로봉까지 10개 구간별로 동물, 식물, 식생, 대표 수종, 대표 동물과 대표 식물 등의 서식 위치를 지도에 표기하고 사진을 첨부한 책자였다. 백두대간 생태교육장과 전시관에서 우리가 지구와 공존하는 노둣돌은 숲과 나무임을 확인하였다. [백두대간 은사시나무와 호랑이 모형 : 사진 이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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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오선의 지리산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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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과 지리산의 흙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이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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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달궁계곡 옛길 되살리고, 성삼재 도로는 셔틀버스 전용으로 해야
- [달궁 계곡 : 사진 류요선 (1995년)] 지리산 정령치에서 백두대간의 연봉을 시야에 담고, 내리막길 도로로 4km 아래에 이르면 달궁삼거리이다. 추석 연휴인 10월 초순의 지리산 얼음골 농장은 가을 햇살이 투명하게 내리쬐고 있었고, 성삼재로 향하는 지방도로의 자동차 소리와 달궁계곡 물소리가 함께 들렸다. 달궁 계곡은 남원 산내면의 뱀사골로 물길이 이어지는 낙동강 수계로 행정구역이 백두대간을 넘어 구례 산동면에 속한다. 구례 산동에서 백두대간 묘봉치를 넘어 달궁 심원으로 오는 것이 남원 산내에서 이곳으로 오는 것보다 거리가 가깝다. 구례 산동면은 한 개의 면이 낙동강 수계와 섬진강 수계를 함께 거느리고 있는 특별한 지형인 셈이다. 달궁 계곡길은 예로부터 지리산 유람 길이었고, 지리산에 기대어 사는 민초들의 애환 어린 삶의 현장이었다. 남원 산내면에서 구례 산동면으로 보부상들과 주민들이 오가던 장길이었다. 달궁 계곡을 따라 올라가서 심원마을에서 만복대와 고리봉 사이의 묘봉치를 넘어 구례 산동으로 8km를 이어가는 지리산 역사의 한쪽이었다. 지리산에서 30년 동안 풍경과 야생화를 사진에 담은 류요선(남원시 이백면 강촌마을) 씨는 달궁 계곡 용소 바위에 칠선대(七仙臺)라는 암각서, 산동 칠선(山東 七仙) 글귀와 7인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고 말했다. 류요선 씨는 달궁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쟁기소, 쟁반소, 두꺼비소, 마당소와 용소의 굽이굽이 절경을 지나 반야봉으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 상선암 눈썹바위 : 사진 이완우] 달궁 계곡의 심원마을은 2017년에 철거되었다. 지리산 생태계를 복원하여 반달곰 등 멸종위기 야생동식물이 서식하는 보호지역을 확보하기 위한 목적이다. 달궁계곡으로의 옛길은 비법정탐방로가 되어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예로부터 하동군 의신마을을 거치는 벽소령길, 남원시 구룡폭포 육모정길, 구례군 달궁 계곡의 산동길을 지리산의 3대 옛길로 손꼽는다. 류요선 씨는 달궁 계곡 탐방로가 허용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하며, 유서 깊은 옛길은 보전해야 한다고 했다. 통행 금지된 달궁 계곡을 바라보며 어름골 농장에서 달궁 계곡의 물소리를 듣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성삼재를 향한 도로를 자동차로 올라갔다. 성삼재에서 상당히 먼 곳의 도로변까지 자동차들이 주차했고, 관광객들은 줄지어서 성삼재로 걸어 올라간다. 성삼재 주차장이 성수기 관광객들의 차량을 충분히 수용할 수 없는 것이다. 성삼재를 중심으로 남원 산내면 쪽과 구례 산동면 쪽의 도로가 길게 이어진 갓길 주차장이 되었고, 지리산은 몸살을 앓고 있었다. 성삼재 주차장을 없애고, 남원 산내면과 구례 산동면의 지리산 아래쪽에 넓은 주차장을 두 곳을 마련하고, 친환경 셔틀버스 등 대중교통 수단을 운행한다면, 지리산의 대기 오염이나 소음을 줄이고 챠량 정체도 해소하는 효율적인 방안이 될 것이다. [상선암 구절초 : 사진 이완우] 성삼재에서 천은사 방향으로 내려가다가, 시암재 휴게소를 지나고 상선암과 수도암을 찾았다. 상선암(上禪庵) 가는 길은 화강암 너덜지대이다. 둥글둥글 마모가 잘 된 바위가 소나무와 잘 어울린 오솔길도 있다. 소나무 줄기 밑동 가까이에 송진을 채취한 흔적이 있는데, 사찰에서 예전에 등화(燈火) 재료로 송진을 썼던 흔적이라고 한다. 전나무가 높이 30미터 이상이고 가슴높이 둘레가 2미터가 넘는 나무가 여러 그루 기세 좋게 성장하고 있다. 소나무와 전나무가 같은 지역에서 경쟁하면 전나무가 우점종이라고 한다. 상선암 암자의 편액은 명필 창암 이삼만(1770~1847)의 글씨라고 한다. 상선암의 8미터 높이의 커다란 눈썹바위는 처마바위라고도 하는데 기울기 20도 정도로 서 있는 암반이 빗물을 막는 지붕 역할을 한다. 이 바위 아래 석간수가 고이는 맑은 샘이 있어서 암자가 자리 잡은 터전이 되었다. 암자 마당에 핀 구절초 너머로 멀리 호남정맥의 마루금이 하늘과 맞닿았다. 광주 무등산(1,187m)이 원경의 오른쪽에 솟았고, 화순 모후산(919m)이 중앙에 보인다. 상선암은 고려 말의 나옹 화상, 조선 중기의 서산 대사가 한 때 수도했던 곳이라고 한다. 가람 규모가 소박하고 단출한 이 암자에 신라 시대의 우번(牛飜) 스님 전설이 전해온다. 스님은 젊은 시절에 이 암자에서 수도 중이었다. [수도암 구름 : 사진 이완우] 어느 날 아리따운 여인이 이 암자에 나타났다. 스님은 여인에게 정감이 생겨 선방을 차고 나섰다. 사뿐히 산속으로 올라가는 여인을 따라가던 스님은 어느덧 높은 산봉우리에 이르렀다. 홀연 여인은 간 곳이 없고, 산봉우리가 찬란히 빛나고 관세음보살이 서 있었다. 스님은 부끄러운 마음이 들어 털썩 무릎을 꿇고 참회하였다. 스님은 산봉우리 바위 아래에 암굴을 파고 들어앉아 수도에만 전념하였고 세월이 흘러 스님이 득도하였다. 스님이 득도하는 순간 암굴 위의 바위에서 종소리가 났다. 그래서 이 산봉우리를 종석대라 한다. 산봉우리 모양이 차일을 친 형상이라고 차일봉, 관음보살의 현신이 있었다고 관음대, 우번 스님이 득도한 곳이라서 우번대라고도 한다. 우번 스님의 이름 글자인 소 우(牛)와 뒤칠 번(飜)의 의미는 상징적이다. 농부의 밭에서 조 이삭 알맹이를 몰래 먹고, 소가 되어 3년 동안 농부의 밭에서 일을 한 후에 소의 너울을 벗고 깨달음을 얻은 문수보살의 길상 동자 우화가 있다. 우번 스님의 일화에서 이 길상 동자의 우화가 연상된다. 우번 스님이 여인을 따라 간 미혹한 상태는 스님이 소가 된 것이고, 스님이 바위 암굴에서 수도 정진함은 동자가 3년 동안 소가 되어 밭에서 쟁기를 끈 것과 대응하고, 스님이 깨달음을 얻음은 소의 허물을 벗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천은사 천은저수지 : 사진 이완우] 수도암(修道庵)은 승용차로 도량 주차장까지 도달한다. 큼직한 바위로 성벽처럼 쌓아 가람의 터전을 닦았다. 상선암이 소나무와 너덜 바위의 오솔길을 걸어 찾아가는 운치가 있는 가람이라면, 수도암은 수도선원 건물이 웅장하고 대웅보전 금당의 위용이 당당한 가람이다. 수도암 도량 앞 하늘의 구름 풍경이 기대 이상의 선물이었다. 맑은 가을 햇살이 내리는 숲 너머로 멀리 원산이 펼쳐지고 층운이 가볍게 하늘에서 내려와 앉았고, 하늘에는 새털구름이 가볍게 떠가고 있는 여유로운 장면이었다. 천은사(泉隱寺)는 신라시대 창건된 사찰로 원래 이름은 감로사(甘露寺)였다. 임진왜란 때 감로사가 불타서 1610년에 중창하고, 1679년에 천은사로 개명했다고 한다. 천은사 일주문 앞에 섰다. 智異山 泉隱寺, 일주문의 '지리산 천은사' 글씨는 추사 김정희(1786~1856)보다 조금 앞선 시대의 명필 이광사(1705~1777)가 썼다. 이 글씨와 관련하여 천은사에는 사찰 유래 전설이 전해온다. 감로사를 중창할 때 사찰의 우물에 구렁이가 자주 나타나서 누군가가 구렁이를 죽였다고 한다. 그 후로 우물의 물이 말라버렸으며 사찰에 화재가 빈번하였다. 이광사가 물 흐르듯 한 글씨체로 사찰 이름을 써서 편액으로 일주문을 세웠다. 이후로 사찰에 화재가 잦아들었다고 한다. 지금도 이 일주문에서 조용히 들으면 글씨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고 한다. [천은사 일주문 : 사진 이완우] 이 천은사 설화를 들으며 언뜻 수긍되지 않는 면이 있다. 지리산의 큰 계곡에는 항상 물이 흐르기 마련인데, 계곡에 자리 잡은 샘이 마를 리는 없다. 설화는 비유이고 상징이 풍부하니, 그 이야기 속에 담긴 의미를 찾아 생각해 보았다. 서산 대사(1520~1604)는 젊은 시절에 지리산에서 수도하였다. 지리산 동서남북 서산대사의 일화가 곳곳에 전해온다. 구례는 서산 대사의 오도송이 전해오는 의미 있는 지역이다. 서산 대사가 이곳 구례 감로사 가까운 곳에서 닭 우는 소리를 듣고 깨달음을 얻었을 수 있다. 서산대사가 지리산 산청의 단속사(斷俗寺)에서 삼가귀감(三家龜鑑)을 편찬하여 선가귀감, 도가귀감과 유가귀감의 순서로 출판했다. 남명 조식(1501~1572)의 문하 선비인 성여신(1546~1632)이 유가귀감이 삼가귀감 출판에서 마지막 순서인 것을 문제 삼아서 사찰에 이 판본을 불태우라고 하였다. 승려들이 따르지 않자, 성여신은 1568년에 단속사에서 삼가귀감을 새긴 목판과 사찰의 사천왕상을 불태웠다고 한다. 조선시대에 유교와 선비들에 의한 불교 탄압의 한 단면이다. [천은사 돌담 : 사진 이완우] 1610년(광해군 2)에 감로사를 중창했는데, 서산대사가 입적한 지 6년 후이다. 감로는 달콤한 샘물을 의미하는데, 부처님의 말씀이나 진리를 감로라고도 한다. 천은사의 샘 천(泉)을 감로가 솟아나는 원천으로 이해한다면, 천은사는 부처님의 지혜와 깨달음이 고요히 머문 곳으로 풀이할 수 있다. 감로사를 중창할 때 서산 대사에 대한 추모의 정과 유림에 의해 사찰이 쉽게 불타버릴 수도 있었던 시대 상황이 후대에 이 사찰의 이름이 천은사로 바뀔 때 반영되었고, 이러한 구렁이 설화가 오늘날까지 전승된 것이 아닐지 추측해 본다. 구렁이가 죽어서 샘이 말라버린 절이라는 사찰 연기 설화보다는, 지리산에서 서산 대사가 깨우친 진리와 지혜가 고요히 머문 절이라는 천은사 이야기가 더 개연성이 있다. 구례 천은사는 남방제일선원(南方第一禪院)이라고 한다. 조선 불교를 대표하는 선승(禪僧)인 서산 대사는 구례에서 깨달음을 얻고 오도송을 지었다. 상선암(上禪庵)을 말사로 거느린 천은사(泉隱寺)에서 서산 대사의 행적을 진하게 느껴 보았다. 천은사 옆의 울창한 소나무 숲 아래 야생차밭에는 차꽃이 은은하게 피어 있었다. [천은사 차나무 꽃 : 사진 이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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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달궁계곡 옛길 되살리고, 성삼재 도로는 셔틀버스 전용으로 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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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요선 작가의 지리산 사진 이야기 [첫째 마당]
- [사진 류요선 : 양귀비꽃] 지금으로부터 약 25년 전의 봄날이었다. 류요선 사진작가는 남원시 운봉읍에서 인원면으로 이어지는 화수리 소석마을 앞의 24번 도로에서 버스를 내렸다. 바래봉을 목표로 소석마을을 경유하여 덕두산 정상으로 올라 산 능선 줄기를 타고 바래봉으로 향하는 등산길을 잡았다. 소석마을의 어느 집 낮은 돌담 아래 화단에 양귀비가 몇 그루 꽃 피어 있었다. 그 당시 소석마을 집들은 대부분 돌담이었다. 양귀비꽃 사진을 찍고 있는데, 그 집에 사는 할머니가 나와서 박카스를 한 병 건네주었다. 그 집 할아버지는 매우 편찮았다고 한다. 몇 년 후 그 집 앞을 지나갔는데, 그 집은 비어 있었다. [사진 류요선 : 뚝새풀] 1990년대 후반에는 지리산 운봉목장과 초원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바래봉의 철쭉꽃을 감상하려고 찾아온 관광객들은 24번 도로변에 정차한 관광버스에서 내려서 운봉목장의 정문을 통과하고, 목장과 초원을 가로질러 바래봉으로 올라갔다. 이때 운봉목장은 면양들이 떠났고 이후에 가축 유전자 시험장이 되었다. 목장 가운데로 실개천이 흐르고 바래봉으로 올라가는 왼쪽은 소석마을 쪽인데 철조망이 허술한 곳이 있었다. 류요선 사진작가는 운봉목장의 초원에서 독새기풀이라고도 부르는 뚝새풀을 운봉목장 초원의 풍경 사진으로 담았다. [사진 류요선 : 영국병정지의(꼬마붉은열매지의)] 이 시기에 지리산의 한 산장에 머물던 사진작가 한 분이 선태류 사진을 많이 찍었는데, 그는 사진 작품 공모전에 선태류라고 출품하기도 했다. 류요선 사진작가는 겨울에 바래봉 능선을 걷다가 눈밭에서 선태류라고 하는 이 돌꽃(?)을 우연히 발견했다. 그곳은 양떼가 다니던 길의 옆 비탈에 산사태가 조금 생겼고 그곳의 흙 표면에 이 돌꽃들이 있어서 오전에 사진을 찍었다. 능선 반대편에도 이런 꽃들이 있어서 그쪽은 오후에 사진을 찍었다. 그 당시에 사진작가들은 이것을 선태류로서 이끼 종류로 알았다. 그러나 이것은 붉은색의 자실체가 끝에 달린 지의류의 한 종류로서 영국병정지의(꼬마붉은열매지의)이다. [사진 류요선 : 붓꽃] 류요선 사진작가는 지리산둘레길이 생기기 10여 년 전부터, 훗날 지리산둘레길이 될 산길을 혼자 걸었다. 어느 봄날 남원시 산내면의 실상사에서 출발하여 등구재 고개를 찾아가며 상황마을을 지나 산길을 걸을 때였다. 그늘진 산기슭의 한 무덤 벌안에 붓꽃이 피어있었다. 그 무덤은 후손이 없는지 또는 관리를 안 하는지 봉분에도 풀이 무성하였다. 해 질 무렵 무덤가에 무리지어 핀 아름다운 붓꽃을 사진에 담으며 마음은 쓸쓸하기도 하였다. 경남 함양군 삼정산의 삼불주암을 찾아가는 산길은 이웃하는 여러 암자를 차례로 답사할 수 있는 지리산 암자 순례길 코스에 속한다. 이 삼정산 자락의 한 골짜기는 견성골이라고 하는데, 까마귀나 까치도 불경을 외우며 날아간다고 한다. 류요선 사진작가는 남원시 산내면 실상사에서부터 걸어서 삼불주암을 찾아갔다. 삼불주암은 산 아래 마을에서 2시간은 걸어야 도착할 거리의 산속에 있다. 오가는 사람이 거의 없는 한적한 곳에 자리한 비구니 참선 도량이었다. 이 사찰 뜨락을 지나 정갈한 텃밭에는 금낭화가 군락을 이루고 피어 있었다. 금낭화 군락을 사진에 담은 지 20여 년 후 이 사찰은 비구의 도량이 되었다. 지금도 금낭화가 봄날에 피어나는지 삼불주암을 다시 찾아가 보고 싶다. [사진 류요선 : 금낭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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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요선 작가의 지리산 사진 이야기 [첫째 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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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달과 담비가 사는 청정 계곡이 양수력발전소 하부댐 예정지?
- 수달과 담비가 사는 청정 계곡이 양수력발전소 하부댐 예정지? -구례군 문척면 중산리 양수력발전소 하부댐 예정지 답사 구례군 문척면 중산리 계곡 ⓒ 정정환 구례군의 남부인 문척면과 간전면을 나누는 산줄기의 중심에 계족산(鷄足山, 702.8M)이 있다. 이 산은 백두대간에서 갈려서 나온 호남정맥이 400km를 용트림하여 섬진강을 마주하며 머물면서 지리산 주능선을 바라보는 회룡고조(回龍顧祖)의 풍수 지세를 형성한다. 이 산에서는 노고단에서 왕시루봉까지 지리산의 장엄한 장관이 한눈에 들어오며, 섬진강의 굽이치는 물줄기까지 볼 수 있다. 회룡고조는 근원되는 산에서 파생되어 산줄기를 타고 멀리 돌아온 산이 다시 원래의 산과 서로 마주하는 형국이니, 계족산은 이 형국에 적합하다 구례군 계족산 야생동물, 팔색조 ⓒ 정정환 이 산의 산자락과 이어지는 계곡에 양수력발전소 건설이 추진되고 있다. 백로(白露) 절기를 며칠 앞둔 9월 초순에 양수력발전소 하부댐의 예정지인 구례군 문척면 중산리를 찾아갔다. 도로 옆에는 양수력발전소 건설에 대한 찬성과 반대 표현의 현수막이 곳곳에 편을 이뤄 걸렸다. 양수력발전은 심야의 남는 전력을 이용하여 하부댐에 머무는 물을 수백 미터 높은 위치의 상부댐으로 끌어올려 저장하고, 전력수요가 증가할 때 상부댐의 수량을 하부댐으로 낙하시켜 전력을 생산하는 방식으로 신재생에너지 또는 친환경에너지로 환영받고 있다. 국내의 양수력발전소는 16기가 운영 중인데, 총용량은 4700MW로 국내 전체 발전 설비 용량의 4.4%가 된다고 한다. 탄소 중립을 지향하는 시대에 주목받는 발전이며, 전력의 백업 설비로서 에너지저장 장치(ESS)의 역할을 하여 세계적으로 양수발전소는 증가 추세에 있다. 구례군 계족산 중산천계곡 야생동물, 수달 ⓒ 정정환 양수력발전은 상부댐에서 하부댐으로 물을 내려보내 전력을 생산하는 시간은 6~8시간 정도이다. 하부댐에서 상부댐으로 물을 퍼 올릴 때는 8~10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이 발전소의 최대 가동률은 25% 정도여서, 1조 원 이상의 건설비용을 대비하면 발전단가가 높은 편이라는 지적이 있다. 또한, 양수력발전은 발전소의 건설 공사 과정에서 험한 산지에 S자형의 도로를 굽이굽이 설치하면서 상당한 산림 훼손은 피할 수 없다. 자연스러운 물의 흐름을 통제하여 하천의 생태계 파괴와 수질 오염 발생의 문제점이 있다. 자연 생태계와 환경보호 활동 ⓒ 국립공원을 지키는 사람들 모임 구례의 양수발전소 예정지인 이곳 지역에 살면서 야생동물을 탐사하며 사진을 찍고 있는 정정환(구례군 문척면 중산리)씨는 9월 초부터 구례군청 앞에서 양수력발전소 건설을 반대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정정환씨는 양수력발전소의 하부댐 예정지인 문척면 중산천에는 수달, 담비와 삵이 서식하고, 청딱따구리, 긴꼬리딱새와 멸종위기 야생생물 Ⅱ급으로 국제적인 멸종위기 조류인 팔색조 등 조류가 산다고 설명한다. 상부댐 예정지인 계족산 기슭에는 하늘다람쥐가 산다고 했다. 이 지역에는 얼레지꽃이 많이 피고 히어리 군락지도 있다. 정정환씨는 멸종위기종 야생동식물이 다수 서식하고 있는 청정 지역의 환경과 생태계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이 지역에 양수력발전소를 건설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구례군 계족산 야생동물, 청딱다구리 ⓒ 정정환 '국립공원을 지키는 사람들 모임'의 윤주옥 대표는 자연보전과 지역경제 개발의 대립하는 의견과 주장이 함께 표출될 때 소수의 목소리도 공감하고 존중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구례군에서는 양수력발전소를 건설하면 피해 주민들이 있다는 걸 알고, 그 주민들이 분명하게 반대한다는 걸 알고 있죠. 그러나 마치 반대가 없는 것처럼 추진하는 거고요. 처음에 이 개발 사업이 제기되었을 때 구례군에서는 주민들 이야기를 다 듣고, '주민들이 반대하면 추진 안 한다'고 했어요. 그러나 양수력발전소 견학도 주민들이 단체로 다녀오고, 발전소 건설 추진대회도 하고 있어요. 구례군이나 양수력발전소 측은 상당한 반대가 있어도 추진하는 과정을 진행하려 하겠지요. 그렇더라도 분명히 반대하는 주민이 있고, 반대 의견을 표현하고 이야기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구례군 문척면 계족산 ⓒ 정정환 행정 기관이나 영향력이 있는 단체에서 계획하고 추진하는 사업에 반대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지역 사회에서는 쉬운 일이 아니다. 평화로운 자연과 환경 생태계는 배려의 대상에서 제외하고, 피해를 보며 소외된 소수의 의견과 주장은 외면하고 단절하기 쉬운 현실이다. 양수력발전소는 안정적인 전력 공급에는 큰 역할을 하지만, 이 발전소를 건설하려 할 때마다 해당 지역에서는 생태계 파괴와 산림 훼손을 막으려는 발전소 반대 활동으로 사회적 갈등이 반복되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바닷물을 활용한 양수력발전도 가능성을 연구할 필요가 있겠다. 바다에 양수력발전소 설치가 가능하다면 산림 훼손이나 생태계 파괴도 발생하지 않는다. 더 나아가 열에너지 저장이나 압축공기 에너지 저장 등 새로운 기술 개발도 자연 생태계와 환경을 보전하는 미래를 위한 대안이 될 것이다. 구례군 문척면 계족산 ⓒ 정정환 -이완우 기자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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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달과 담비가 사는 청정 계곡이 양수력발전소 하부댐 예정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