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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반달가슴곰의 짝궁, "곰짝, 곰짝"
- 우리는 반달가슴곰의 짝궁, "곰짝, 곰짝" 아이들의 마음에 비친 반달가슴곰은 어떤 모습일까? 구례 토지초 아이들이 그린 반달가슴곰을 만나러 국립공원야생생물보전원 남부복원센터의 지리산 반달가슴곰 공존센터에 다녀왔다. 이번 반달가슴곰 작품 전시회는 지난 3월 27일 전남 구례군 토지면에서 열린 ‘우리동네 곰짝! 곰짝! 공존문화행사’(이하 곰짝곰짝 행사)의 결과 가운데 하나다. 곰짝곰짝 행사는 반달가슴곰 개체 수가 늘면서 안전 우려와 공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덩달아 늘어남에 따라 곰과의 공존 문화를 지역사회 안에 퍼뜨리기 위해 열린 행사로, 지리산 자락 주민들이 함께 고민하고 참여해 만든 행사다. 곰짝곰짝 행사에서는 지역 주민의 다양한 공연과 곰을 이해하는 문화 프로그램들이 진행되었는데, 특히 구례 토지초등학교 아이들의 참여가 눈길을 끌었다고 한다. 전교생이 ‘곰과의 공존’을 주제로 글·포스터 공모전에 참여했고, 4~6학년 학생들은 ‘곰짝곰짝 반달곰’ 노래와 율동을 선보여 공존의 의미를 보여줬다. 야생생물보전원 남부복원센터의 지리산 반달가슴곰 공존센터에 가면 지난 행사 때 아이들이 만든 글·포스터 작품을 볼 수 있고, 곰짝곰짝 반달곰 노래도 들을 수 있다. 그림들을 하나하나 바라보고 있노라면, 아이들의 창의성에 놀라고,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는 지적 흡수력과 감수성에 다시 한번 더 놀라게 된다. 너무도 친근하게 표현된 반달가슴곰을 보고 있노라면 빙그레 웃음이 절로 나온다. 늘 무심했던 어른이었음이 부끄러워진다. 반달가슴곰과 인간의 공존을 바라는 지역 주민들의 뜻이 아이들의 노력을 보태 이루어졌다니 참으로 희망이 가득한 사례다. 그런데 왜 우리는 이렇게 반달가슴곰을 복원하고 보전하는 일에 함께해야 할까? 곰은 ‘생태계의 핵심종이자 우산종’이다. 말이 너무 어렵다. 쉽게 말하자면, ‘곰의 존재가 생태계 내 다른 종 다양성 유지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뜻이다. 반달가슴곰은 다래, 머루, 도토리 같은 열매와 씨앗을 주로 먹는데, 곰이 싼 똥에서 식물이 발아하는 확률이 자연 발아에 비해 2배나 높다. 생태계 유지와 확산에 큰 역할을 한다. 반달가슴곰과 곰의 서식지를 보호하면 다른 종들의 서식지도 보호할 수 있는데, 마치 우산을 펼친 듯 하위 종들을 보호할 수 있어서 반달가슴곰과 같은 종을 우산종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왜 하필 지리산에? 곰은 단군신화에도 등장할 만큼 고대부터 한반도에서 살아왔다. 어쩌면 인간보다 더 먼저 살고 있던 한반도의 토박이인지도 모른다. 지리산은 유전인자 보전을 위한 기존 야생곰이 남아 있고 안전하고 넓은 서식공간과 풍부한 먹이자원 등 충분하고 우수한 서식지 조건을 갖추고 있어 반달가슴곰이 살아가기에 좋다. 지리산을 중심으로 ‘멸종위기야생동물 1급인 반달가슴곰’을 보전하는 일을 해 온 남부보전센터는 곰짝곰짝 행사가 주민 주도로 이뤄질 수 있게 지원했다. 남부보전센터가 있는 지리산 반달가슴곰 공존센터에는 곰들이 산다. 이 곰들은 동물원처럼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닌 야생성을 잃어버린 곰이나, 치료가 필요한 곰 등 보호·보존을 위해 마련된 곰들의 집이다. 남부보전센터틑 멸종위기종 복원과 탐사, 연구 사업 외에도 반달가슴곰과 함께 공존하기 위한 사업으로 탐방프로그램과 홍보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다. 반달곰 보전 사업에 대한 우려와 반감을 없애고, 인간이 생태계 파괴자에서 벗어나 자연과 함께 공존하도록 협의체를 구성하고 간담회를 연다. 왜 반달가슴곰을 보전해야 하는지에 대한 까닭, 반달가슴곰의 생태, 반달가슴곰과 마주치지 않는 방법, 혹시 마주쳤을 때 피하는 방법 등 교육하기도 한다. 곰짝곰짝 행사도 이러한 활동의 연장선에 있다. 우리가 찾아간 날 야생생물보전원 남부보전센터 소민석 센터장님을 만나 곰짝곰짝 행사에 대한 이야기와 보전센터의 역할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소민석 센터장님은, 곰이 사람을 공격하거나 농작물에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걱정에 곰이 지리산에 사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사실 사람이 곰의 영역에 침범한 것이지, 곰이 사람의 영역으로 침범한 것은 아니라고 말하며 곰과의 공존을 위한 인간의 노력을 강조했다. “모든 동물은 본능적으로 사람을 무서워한다. 반달곰도 마찬가지여서 사람 소리나, 방울, 종소리 등을 듣게 되면 먼저 피한다. 그러나 혹시라도 마주치게 되면 시선을 피하지 말고 뒷걸음으로 곰으로부터 멀어져야 한다. 절대 혼자서 산행하면 안 된다.” 우리의 사고는 인간 위주여서, 인간이 모든 동물의 우위에 있고, 자연을 지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너무도 당연시한다. 학교에서 배운 ‘먹이 피라미드’가 떠오른다. 피라미드의 가장 우위에 있는 인간은, 먹이사슬이 무너지고 자연의 질서가 파괴되면 살아남을 수 있을까? 모두가 그 대답을 안다. 하지만 일상생활 속에서 어려움과 불편을 감수하면서 ‘생태계를 살리는 일’에는 선뜻 행동으로 동참하기 쉽지 않다. 토지초 아이들과 토지면 주민들이 곰짝곰짝 행사를 멋지게 해낸 일은 그런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이번 곰짝곰짝 행사를 마친 소감을 물었다. “아이들과 함께 프로그램을 진행한 후, 프로그램이 좋았다고 소문이 나서 그 후로도 다른 초등학교뿐 아니라 중고등학생들까지 다녀갔지요. 보전 활동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들이 많고 비협조적이어서 외롭고 힘든 일이었는데, 이 활동과 변화를 통해 직원들이 ‘아, 무언가 할 수 있구나’ 하는 활력과 힘을 얻게 되었지요.” 이어서 그는, ‘생태 보전 활동에 지리산 권역에 있는 기관들과 주민들이 더욱 관심을 갖고 함께 해 나가면 좋겠다’는 바람도 잊지 않았다. 지리산에 살고 있는 곰들은 보호 관리를 위해 추적기를 달고 있다. 야생생물보전원에서는 탐방객의 안전을 위해 반달가슴곰 목격 제보를 받고 있는데, 추적을 나갔던 한 분이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신 적이 있다. 아주 오래전에, 양봉하는 곳에서 반달곰이 벌집을 통째로 훔쳐 달아났는데 바위 뒤로 몸을 숨긴 곰이 꿀을 먹지 않고 바위 사이로 주인이 쫓아오는지를 엿보고 있더란다. 아무도 쫓아오지 않는다고 생각한 곰이 그제야 맛있게 꿀을 먹었다. 정신없이 먹고 있는 사이에 출동한 사람들이 마취총을 쏘자, 오른쪽으로 날아오면 왼쪽으로 휙, 왼쪽으로 날아오면 오른쪽으로 휙, 고개를 돌리며 피하는 모습이 하도 우스워서 모두 같이 웃고 말았다고 한다. 곰의 식별 번호를 부르며, 거기 가만히 있어, 하니 또 가만히 서서 기다리더라는 이야기도 함께. 반달가슴곰들이 살고 있는 보전원 인공 서식지에서, 바위를 뒤뚱거리며 뒤로 내려오는 곰의 귀여운 모습을 보고, 이 ‘꿀을 훔친 곰’ 이야기 속 곰의 모습과 겹쳐 떠올라 혼자 웃었다. 오늘도 해가 쨍쨍하다가 갑자기 비가 쏟아지기를 반복한다. 지구 한편에 홍수가 나고, 다른 한 편은 가뭄으로 땅이 말라간다. 기후위기로 지구가 몸살을 앓고, 많은 동식물이 사라져 간다. 인간이 더 이상 환경 파괴자가 아니라 자연과 공존하는 삶을 살아가야 함이 무엇보다 절실한 때이다. 반달가슴곰과 공존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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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을 다녀간 사람들할매와 함께 걷는 계단
- 박순남 할매와 함께 걷는 계단 보클보클한 구름이 짖는다. 노인복지센터 차가 박순남 할매 사는 이층집에 도착했다는 거다. 할매는 여든여덟이다. 뇌졸중 후유증으로 다리에 힘이 없어 부축을 받아야만 걸을 수 있다. 계단을 오르기 위해 계단까지 가야 한다, 그 전에 차에서 내리는 순서가 있다, 오른발을 먼저 차 난간에 내려주고 엉덩이를 받쳐 내린 다음 오른발을 내려서 몸을 붙잡고 한 발 한 발 걷기 시작하면 꽃님이가 꼬리치고 반긴다. 계단 앞까지 왔으니 계단에 한발 한발 옮기면 된다. 왼발을 손으로 계단에 올려준다. 그다음은 할매 스스로 오른발을 옮기면 된다. 그러다 보면 내 시선은 자연스레 아래로 간다. 그 순간 스치는 경이로움, 화강석 계단 틈 사이 자란 풀이 꽃을 피웠다. 할매, 저 풀꽃 봐요! 할매는 두 손으로 계단 난간을 잡고 오르다 아래를 본다. “잘 안 보여” “꽃이 예뻐요” 저 풀도 이름이 있을 텐데, 그러게, 우리는 한 몸이 되어 계단을 오르고 구름이 짖는 소리가 하늘로 퍼져 구름이 된다. 보클보클한 구름이는 할매집에 사는 반려견 이름이다. 드디어 문 앞, 으싸! 마음이 바빠진 할매 발걸음이 빨라지며 앞으로 넘어질 듯 걷는다. 문고리에 걸린 열쇠를 빼고 문을 연다. 문을 여는 일은 할매가 오늘 하루 잘 지냈다는 일. 오늘도 애쓰셨어요. 꽃장식 보라색 모자도 벗어두고, 내일 아침에 다시 올게요! 밖에서 문고리를 채운다. 문을 잠그지 않으면 할매가 기어서 계단에 내려와 낙상한 적이 있다. 노인들이 눈 깜빡할 사이 낙상하면 골다공증이 심해 골절될 확률이 높다. 할매와 헤어져 계단을 뛰어내린다. 살아가는 것은 계단이야. 할매가 휠체어 도움 없이 포기하지 않고 계단을 오르내리기 때문에 지금처럼 걸을 수 있다. 비 오듯 땀에 젖고 마르는 일 또한 계단이다. 나를 향해 구름이 짖고 난리다. 안녕, 구름아! 손을 흔들고 차에 오르자 우리를 차창으로 보고 있던 할매들 고생했다는 말 한마디에 금세 땀이 마르고 몸이 가벼워진다. 내 손이 박순남 할매의 발이 되는 계단. 가요! 파초길 지나 지리산을 보고 달려요. 잘 웃는 박순남 할매 목소리는 비음이 매력적이다. 키 크고 잘생긴 아들과 예쁜 며느리가 처음 만나 연애하던 이야기를 하면서 기분이 좋아진다. 체조 시간에 몸이 따라주지 않아 율동하지 못해도 콧노래 부르고 손뼉을 치며 웃는 할매 보고 나도 웃는다. 어느 날 잘생긴 아들이 밭에서 따온 호박을 건네준다. 다음날은 복지센터에서 호박전 부쳐 먹는 날이다. 달착지근한 호박전 생각에 벌써 행복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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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초가 사는 집, 어머이
- 파초가 사는 집, 어머이 파초를 처음 본 것은 무덥던 어느 여름날 불일암 마루에서다. 법정 스님이 타준 차를 마시며 파초를 바라보던 때가 있었다, 그곳에서 가져온 파초가 내게로 와 동면에 들지 못하고 얼어버렸다. 흙 위로 솟은 푸른 잎을 풀인 줄 알고 뽑아버린 뒤 늦게 찾아온 손가락만 한 파초잎에 물을 주다 불쑥 찾아온 파초가 있다. 파초가 있는 마당, 거동이 불편한 어머이를 부축하는 간호사를 두고 어서 가라고 성화다. 미안해하는 어머이를 현관 안까지 부축하여 거실로 모신다. 노인복지센터에 다녀온 어머이 보고 좋아 야단법석인 강아지. 지팡이와 신발을 가지런히 두고 스타렉스에 오른다. 갖은 풀이 녹색을 뿜어내는 사잇길을 후진하는 사회복지사의 운전실력이 오랜 경력을 말해준다. 사무실에서 말이 없는 그녀는 스타렉스에 타면 말문이 트여 비로소 동료애를 느낀다. 며느리는 집 근방에서 밭일로 바쁘네요. 전라도 말로 “어머이” 어머니 말이에요.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부르는 어머이, 호칭에 며느리 애정이 배어납니다. 어머이 그 발음과 억양을 글로 쓸 재주가 없군요. 불러야만 어머이 호칭이 완성됩니다. 불러도 부르고 싶은 어머이, 먼 기억 속을 걸어옵니다. 파초 잎처럼 너른 품, 어머이는 이제 며느리가 돌봐주어야 할 딸 같은 어머이가 된 것입니다. 어머이를 모시는 며느리는 어머이의 딸입니다. “어머이가 약을 드셔도 요실금이 좋아지지 않아 기저귀 차고 복지센터에 안 가시려고 해요. 허리가 아픈데 복지센터에 누워있으면 욕할까 봐 안 가시겠대요” 며느리 목소리와 눈빛에 걱정이 서립니다. 그 어머이의 애잔한 등, 조절되지 않은 방광, 마당에 선 커다란 파초 잎이 시어머니와 며느리를 감쌉니다. 괜찮아요, 어머이! 숱한 길 걸어 비록 노쇠해도 그 사랑 뿌리 깊이 뻗어가는 파초와 닮았습니다. 날마다 보는 들판은 어머이가 걸어온 시간입니다. 희끄무레한 구름이 물러납니다. 괜찮아, 괜찮아요, 어머이! 어머이가 참기름에 무쳐주던 쑥부쟁이나물, 그 쑥부쟁이가 바람에 살랑대는 것 봐요. 오늘도 노인복지센터를 나온 차는 파초가 사는 집에 옵니다. 희멀건 어머이 웃음. 품이 너른 파초 잎 열고 어머이! 그 어머이가 지금 가슴 속에서 옵니다. 밭일을 마친 며느리가 어머이! 하고 부릅니다. 글쓴이 : 이촉 _시인. 시집 <검은 해바라기>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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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생명평화 하지제 이야기 "벽소령을 흔들지 마라"
- 2026 생명평화 하지제 이야기 "벽소령을 흔들지 마라!" 올해도 지리산 생명이 무사하길 바라며 하지제를 함께했습니다. 지리산사람들은 난개발로 힘들어하는 지역에 찾아가 연대의 마음으로 하지제를 열곤 했는데, 올해는 벽소령에서 하지제가 열렸습니다. 산청, 하동, 함양에서 벽소령을 깎아 도로를 놓겠다는 공약들이 흘러나왔기에 벽소령을 함부로 하지 말라는 경고가 담긴 하지제였습니다. 벽소령으로 오르는 길이 두 군데가 있더군요, 함양에서 오르거나, 하동에서 오르거나. 함양에 가까이 사는 분들은 함양에서 올라왔고, 저를 포함해 하동에 가까이 사는 분들은 하동에서 올라왔지요. 함양에서 오른 분들 이야기를 들어 보니, 함양에서 벽소령 올라오는 구간은 꽤 편했다고요,,,,, 산에 좀처럼 오르지 않는 저에게 하동에서 벽소령 올라오는 구간은 정말 정말 어려웠습니다. 올라올 때는 심장이 요동쳤고요, 내려올 대는 무릎이 욱신거렸지요. 그러나 힘듦보다는 숲의 신비로움과 아름다움이 더욱 오래 남았습니다. 정말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숲의 매력에 빠졌습니다. 다만, 제 체력으로는 당분간 다시 오를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면서 아름다운 장면이 너무 많았는데, 정신이 아득하여 사진을 제대로 못 찍었습니다. 게다가 새 소리와 계곡 물 소리, 함박꽃 향기, 단당풍 향기, 나무 질감 같은 시각 아닌 감각을 자극하는 무수한 숲의 선물은 사진에도 담기 어려웠으니, 다녀오시는 분만이 알겠습니다. 발로 땅을 짚는 것조차 미안한 마음이 들더라고요..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 도로를 놓겠다는 공약은 제발 사라지면 좋겠습니다. 아니, 아름다우니까 지키자는 말보다는, 엄청나게 많은 이들이 살고 있는 곳이니 제발 지켜지면 좋겠다고 말해야겠습니다.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이미 오래 전부터 숲을 살리며 살고 계신 분들이 있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아실 테지요. 하지제를 열었습니다. 숲에 계신 분들이 놀라지 않게 조용히, 따끈하게- 저마다 하나씩 가져온 감자를 모아 쪘습니다. 아, 맛이 기가막히네요. 온 세상 모두에게 이 감자 한 알씩 맛보게 하고 싶습니다. 조금씩 갖고 온 음식도 모아 모아, 햇차도 올리고, 다례상을 차렸습니다. 벽소령을 지켜 달라는 마음을 담아 목소리도 외치고, 글도 함께 읽었습니다. 해성과 영권 샘은 노래도 불러 주셨지요- 최고! 우리의 아기자기한 하지제가 부디 벽소령을 무사히 살게 하는 큰 힘에 보태져 세월이 흘러도 이 숲과 생명이 순환하며 이어지기를 기도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함께 읽은 편지를 아래 붙이겠습니다. 벽소령이, 지리산이, 그리고 모든 생명이 무사하길 바라는 분들, 함께 읽어 주세요. 고맙습니다. 하짓날 지리산 벽소령에서 올리는 편지 하지, 여름이 이르렀다는 계절에 너무 무더운 하짓날을 맞이했습니다. 이 무더운 하짓날 우리는 지리산 벽소령에 다 함께 모였습니다. 올해 만든 첫 햇차를 올리고, 함께 모여서 감자를 삶아 먹으며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시와 노래를 나누기 위해 모였습니다. 지리산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우리의 한 해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또 모인 이유는 지리산에서 벌어지고 있는 각종 난개발 공약 때문이기도 합니다. ‘지리산을 관통하는 도로를 만들겠다. 지리산에 케이블카를 만들겠다. 지리산에 댐을 만들겠다.’ 실현 불가능한, 실현되어서는 안 되는 공약과 개발 계획들이 비 온 뒤 죽순이 나오듯 사방에서 올라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리산이 어떤 곳입니까? 국립공원 1호이고, 무수한 생명의 보금자리입니다. 이곳만은 보전하자고, 훼손하지 말자고 함께 약속한 땅입니다. 다음 세대들 또한 지리산에 올라서 지리산의 너른 품에 안기고, 지리산 속에서 위안과, 생명의 사랑과 평화를 느낄 수 있는 권리가 있기에 우리는 끊임없이 노력하여 지켜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만든 기후위기로 인해 여름은 우리가 알던 여름이 아니고, 계절의 경계가 사라지고, 절기의 기준이 모호해지고 있습니다. 너무 빠른 변화에 적응할 수 없는 종들이 계속 사라지고 있습니다. 기후 재난은 어느덧 해마다 우리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이런 심각한 기후위기 시대에, 행정가나 정책 입안자들은 난개발 공약들만 즐비하게 내놓고 있습니다. 숲을 지키고, 물이 자유롭게 흐르도록 더 노력하고, 만들어 나가야 할 기후위기 시대에 나무를 베어내고, 강을 막아 댐을 만들고, 생명의 땅인 산을 깎아 없애려 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더 많은 발전과 개발이 아닌 탈성장, 멈춤입니다. 미래 아이들에게 이런 심각한 기후 재난의 세상을 물려주지 않으려면 멈추고, 숲과 강, 산을 지켜나가는 보전의 방향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한계를 모르고 발전과 개발만을 좇는다면 미래 아이들에겐 기후위기와, 기후 재난, 재앙만을 물려주게 될 것입니다. 이래서야 되겠습니까? 우리는 이제 선택해야 합니다. 멸망으로 갈 것인지 아니면 다시 함께 살아가는 길로 나아갈 것인지, 우리 미래 아이들에게 어떤 유산을 물려줄 것인지 다시 생각하고 방향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지리산 마고신께 빕니다. 지리산 생명의 안녕을 바라며 힘겹게 마을을 지키는 이들에게 힘을 주십시오. 지하수로 싸우고 있는 삼장면 주민들을 보살펴 주십시오. 골프장으로 싸우고 있는 차황면 철수마을 주민들을 보살펴 주십시오. 온갖 난개발 공약이 실현되면 위기에 처할 벽소령을 부디 난개발로부터 지켜주십시오. 기후위기로 재난과 같은 일이 없도록 보살펴 주십시오. 우리도 올 한 해 지리산의 난개발 공약을 막아내기 위해 함께 연대하여 싸워 나가겠습니다. 2026년 6월 21일 하짓날 지리산 벽소령에서 지리산지키기연석회의,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지리산사람들, 산청난개발대책위, 함양난개발대책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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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생명평화 하지제 이야기 "벽소령을 흔들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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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다고 함부로 말하지 말라 (지리산 지하수 이야기 5)
- ‘300미터 지하 암반수’라고요? 사실은 29미터 지하 암반수입니다. ㈜지리산산청샘물의 관정(특히 5호정)과 주민관정, 국가지하수보조측정망 007이 같은 레벨에 있으며, 고갈 현상의 직접적 원인이라는 결정적인 증거가 있습니다. 바로 케이싱의 길이와 해발고도입니다.케이싱은 우물에 흙이 들어오거나 우물벽이 허물어지지 않도록 하는 플라스틱관 또는 강관을 말합니다. 케이싱이 없는 지점에서부터 암반수는 우물 속으로 스며듭니다.지리산 생수는 ‘300미터 지하 암반수’라고 홍보되지만, 그것은 우물의 최대 깊이이고, 1호정은 지하 101m, 4호정은 지하 79.6m, 5호정은 지하 29m에서부터 우물 안으로 스며드는 물을 뽑아 올릴 수 있습니다. 생수공장의 물은 사실 그리 깊은 물이 아닙니다. 특히 5호정은 지면과 굉장히 가까운 지점(지하 29m)에서부터 스며든 물을 뽑아 올리고 있습니다. 산청샘물 인근 삼장다목적캠핑장 위치한 보조측정망 007은 해발고도가 5호정 보다 약 30미터 아래에 위치하고 있으며, 5호정 케이싱 깊이와 레벨이 같습니다. 이 두 우물은 서로 영향을 받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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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다고 함부로 말하지 말라 (지리산 지하수 이야기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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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곁의 곁’ 두레공동체 마을에서 열린 생명평화연대 모임에 다녀와서
- ‘곁의 곁’ - 두레공동체 마을에서 열린 생명평화연대 모임에 다녀와서 ‘고통에 곁이 필요한 만큼 고통의 곁에도 곁이 필요하다’라는 엄기호 시인의 시 『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 중 한 구절이다. 이 문장을 ‘어두운 날의 우정과 영성’이라는 주제로 성공회대 교수 정경일 교수가 강연(5월 30일, 지리산종교연대 초청강연) 중에 인용했다. 곁은 이웃, 친구가 될 수도 있고, ‘곁의 곁’은 더 큰 차원의 종교, 교회, 공동체가 될 수도 있다. 이렇게 곁의 곁이 되고자 모인 사람들이 종교를 초월하여 지리산을 중심으로 뭉친 ‘지리산종교연대’ 사람들이다. 나는 특별한 종교를 갖지 않는다. 절에 가면 불상 앞에 엎드리는 겸손과 비움을 배우고, 교회에 가면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는 예수님의 고통과 부르심에 응답하지 못해 괴로워하며, 성당에서는 아름다운 성가에 마음을 빼앗기기도 한다. 토속신앙을 접하거나 굿판에 참여해서는 만물에 깃든 영혼들의 아우성에 마음이 쓰리다. 이런 까닭으로 종교연대 사람들이 각자의 믿음과 신앙을 초월하여 하나로 힘을 합치고 타인의 종교를 인정하는 모습을 너무도 좋아한다. 종교연대 사람들은 개신교, 가톨릭, 불교 등 각기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모이는 연대모임이다. 오늘은 그 연대의 사람들이 함양으로 모였다. 함양의 두레공동체 마을은 힘없는 사람들을 위해 개신교 목사님이 세우시고, 지금도 서로의 곁이 필요한 사람들이 모여 살아간다. 오늘 오전 모임은 두레공동체 마을의 ‘예수행전순례길’을 산책(순례)하는 프로그램으로 시작했다. ‘십자가의 길’은 두레공동체마을 뒷산에 산책로를 만들고, 그 길을 따라 14개의 기도처를 마련했다. 조각가 김익수 장로님이 직접 제작하신 예수의 행보를 나타낸 동판이 각 처마다 십자가와 함께 세워져 있다. ‘만남, 용서, 치유, 가르치심, 긍휼, 섬김, 성찬, 기도, 재판, 십자가 지심, 수난의 걸음, 쓰러지심, 도움받으심, 십자가에 달림(용서, 원망), 예수의 죽음, 부활·승천(못자국, 창자국을 보아라, 제자들을 기다림, 예수님의 승천)’ 이렇게 19개의 묵상 주제를 가지고 있다. 십자가의 길을 따라 걸으며, 하나하나의 기도처에서 묵상 주제를 겸허히 생각해 본다. 얼마나 용서하고, 얼마나 섬겼으며, 또 다른 이들을 나의 기준으로 판단하고, 비난했는가를. 마음이 무거워지려는 찰나. “오, 나뭇잎 사이로 쏟아지는 햇빛을 좀 봐요!” 하며 옆 순례자 한 분이 감탄을 한다. 눈을 들어 위를 올려다보니 나뭇잎들 사이로 파란 하늘이 빛난다. 나무들은 아래 작은 식물들이 햇빛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늘 전체를 덮지 않고 공간을 만들어 준다고 한다. 정말 그랬다. 울창하게 자란 나뭇잎들이 만들어낸 공간들 사이로 맑은 햇살들이 작은 들꽃들 위로 떨어지고 있었다. 자연의 지혜다. 숲속의 자그마한 연못이 나타났다. 연못에는 올챙이들이 까맣게 모여 살고 있었다. 그곳에 새끼 도롱뇽, 소금쟁이 등의 작은 생물들을 발견하고는 신비로운 기쁨에 탄성을 질렀다. “예수의 부활처럼 많은 생명을 품고, 잉태시키는 연못이라.” 한 불자님이 말씀하신다. 그러고 보니 그렇다. 막 깨어난 잠자리들이 은빛 투명한 날개를 퍼덕이며 파란 막대처럼 날아다닌다. 처음 보는 풍경이다. 파란 자그마한 막대들이 여기저기 날아다니는 광경이 신기하여 한참을 관찰했다. 저 작고 여린 생명이 잠자리 성충으로 자라 날아다니게 된다니 그 또한 신비롭다. 연못은 수중 생물뿐 아니라 그곳에서 자라 물 밖으로 나오는 많은 생물도 엄마 품처럼 안고 있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생명들에게도 곁이 되어준다. 이 또한 늘 당연하게 여겼던 자연의 지혜다. 허물어진 언덕에 조그마한 굴이 파였다. 물총새의 둥지라고 한다. 앞에 늘어진 나뭇가지(혹은 드러난 나무뿌리) 위에 앉아 주둥이로 흙 비탈에 굴을 파고 그곳에 알을 낳아 새끼를 기른다고 한다. 물총새는 집 밖으로 엉덩이를 내밀고 똥을 누는데, 집 밖 절벽으로 똥을 떨어뜨림으로써 둥지 안이 더러워지는 것을 방지한다고 하니, 재미있고, 지혜로운 새의 습성이다. 십자가의 길에서 다시 교회로 되돌아오는 길. 산딸기와 오디가 주렁주렁 열렸다. 난 산딸기를 따 먹느라 정신이 없는데, 나이 많으신 한 순례자분이 까맣게 익은 오디를 보고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신다. “며느리가 친정 나들이를 했다가 빈손으로 돌아오자, 이를 얄밉게 여긴 시어머니가 ‘넌 친정 다녀오면서 빈손으로 오냐?’ 하고 묻자, 며느리가 말했지, ‘갈 때 없던 오디가 올 때 있다요?’라고.” 참 현명한 며느리다. 시어머니의 얄궂은 심성에도 전혀 기죽지 않는 당당함이 느껴져서 웃었다. 공자는 세 사람만 모여도 스승이 있다고 했는데, 잠깐의 산책으로도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운다. 더군다나 늘 남의 곁이 되어주는 사람들이 모이니 모두가 나의 스승이다. 점심시간, 바람이 시원하게 부는 나무 그늘에 각자 가지고 온 도시락들을 펼쳤다. 여러 사람이 모이는 식사 자리에는 늘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난다. 난 내 먹을 것만 조금 싸 왔는데, 다들 다른 사람을 생각하여 풍성한 음식들을 준비해 왔다. 김치와 나물, 떡과 빵. 김밥과 찰밥, 채소와 과일. 이것저것 다 먹어보느라 배가 부른 데도 자꾸 손이 간다. 풍성한 점심을 먹고, 드디어 오늘의 정식 프로그램인 강연이 시작되었다. 모두 교회에 둘러앉아 ‘어두운 날의 우정과 영성’을 주제로 한 교수님의 강연을 듣는다. 한 문장이라도 놓칠세라 진지한 모습들이다. 우린 책을 읽을 때도 그렇고, 강연을 들을 때도 자신에게 필요한 말, 혹은 자신의 마음에 와닿은 말들을 주로 듣고 기억한다. 나도 그렇다. 그러기에 마음에 와닿은 강연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어둠의 성인 마더 테레사, 파국에 의한 관상가 파커 파머, 어둠의 날들을 이야기한 틱낫한. 어둠의 날들을 경험한 자가 어둠에서 나오는 길을 안내할 수 있고, 어둠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지혜를 얻을 수 있다. 알베르 카뮈는 소설 『페스트』에서 ‘(재난 속에서) 더 이상 그 무엇도 사랑하지 않는다면 투쟁은 뭐 하려 하는 겁니까?’라고 리유의 입을 통해 묻는다. 어둠 속에서 서로에게 위안이 되어주고, 신뢰를 가질 때 더 이상 어둠은 어둠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사랑을 잃어버린다면 어둠은 그 끝을 모르게 된다. 이렇게 어두움 속에서 우린 서로의 곁이 되어줄 수 있다. 비단, 인간과 인간만이 공동체를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인간과 비인간과의 우정과 협력으로 우정의 써클을 넓힘이 필요하다.” 외국 학자가 주장한 언어를 우리식으로 번역한 언어임에도 ‘비인간’이라는 말에 거부반응이 다소 일었다. 그때 옆 사람이 이렇게 말한다. “비인간이나 나무 사람이라는 말보다는 자연의 현자들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요?” 우린 만물에 이름을 붙이고, 개념 지워서 인간의 입장으로 판단하고 평하려 한다. 언어는 우리가 구별 짓는 기준이 되기도 하는데, 그러므로 늘 인간의 위치에서 생각하게 된다. 자연을 현자의 위치로 규정하고 바라보는 태도, 그 또한 겸허함이다.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지혜, ‘생명, 평화, 공존’의 사상은 늘 ‘현자’의 지혜임이 틀림없다. 십자가의 길은 무겁다. 우린 각자의 십자가를 지고 삶을 홀로 살아가야 하고, 비틀거리고 쓰러질 때 도움이 필요해진다. 꼭 십자가라고 하지 않아도 그렇다. 우린 살아가다 보면 삶이 어깨 위에 걸터앉아 무겁게 짓누를 때가 있다. 그래서 늘 곁이 필요하고, 함께함이 필요해진다. 또한 내가 좀 힘이 있을 때는 누군가의 곁이 되어주고 싶어 한다. ‘그동안 난 누구의 곁이 되어준 적이 있을까?’ ‘나는 어두움이 주는 지혜를 얼마나 깨닫고 살아왔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교회를 나와 마을 길을 내려온다. 다음 모임은 암자에서 있을 예정이라고 한다. 스님이 주관하시는 모임에서는 또 어떤 지혜를 얻을 수 있을까? 또 어떤 따뜻하고,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나게 될까? 글쓴이 : 비아(非我) _지리산을 바라보면 늘 행복해지는 마음으로 그렇게 자락 한쪽 끝에 깃들어 살아갑니다. ‘더불어 삶’이라는 말을 가장 소중히 여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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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곁의 곁’ 두레공동체 마을에서 열린 생명평화연대 모임에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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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서른아홉 번째 304 낭독회
- < 백서른아홉 번째 304 낭독회>를 다녀와서 <오늘은 여전히 4월 16일입니다> 세월호 침몰 4,428째 4월 16일이 지난 5월 30일 구례 책방 로파이에서 139회 304 낭독회가 있었다. 로파이 마루에 앉은 사람들 곁에 김태선 평론가가 내어준 자리에 앉아 낭독회를 기다렸다. 노란 천 위의 검은 세월호 리본이 앵두나무 아래 오월 바람에 무심코 펄럭였다. 오후 4시 16분, 김태선 평론가 사회로 낭독회가 시작되었다. “304 낭독회는 우리가 함께 모여 만드는 시간으로 이 시간이 떠난 이와 떠난 이를 잇고, 떠난 이와 남은 이를 잇고 남은 이와 남은 이를 잇는 자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앞으로도 사회적 참사와 안전을, 그리고 사람을 생각하는 서로의 목소리가 공명하여 더 크고 넓게 울려 퍼질 수 있도록, 지금 서 있는 시간으로부터 더 먼 시간까지 함께 읽고, 쓰고 행동하겠습니다.” 이어서 유현아 시인 시, 「그늘 옮기기」, 세월호 유품 시를 쓰고 있다는 송기역 시인의 시 「제비가 돌아왔다」, 김정규 님이 읊는 시 김현 시인의 「뷰티플 스트레인저」, 박진수 사회학자의 편지 「이름을 알지 못하는 누나에게」 , 이소연 시인 시 「개미의 몸을 빌려 占치다」 낭송이 끝나고 책방 로파이에서 꼭 한번 304 낭독회를 하고 싶었다는 시인보다 더 시인인 방성원 님이 김창완 작시 작곡 「노란 리본」을 노래하며 사회자와 다 같이 읽는 글을 끝으로 낭독회 막을 내렸다. 난 되도록 슬픈 곳에 가기를 꺼린다. 다시 직면하는 고통을 피하기 위해서다. 직업상 병에 관련 영화는 잘 보지 않는다. 5·18광주를 바로 눈앞에서 겪은 나로서는,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그 5·18 광주, 영화 <꽃잎>은 몇십 년이 지난 어느 밤 TV에서 보았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지던 날, 야간근무였다. TV로 사건을 접한 늦은 밤 헌혈을 위해 사람들이 병원 응급실로 줄을 이었다. 난생처음 헌혈한 피를 모으는 작업을 했다. 그 밤은 무너진 건물과 그 속에 갇힌 사람들과 구조된 사람들과 구조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무너져 내리는 마음이 함께 힘을 모았다. 그리고 세월호가 침몰하던 그 바다는, 우리가 제주도로 향하던 뱃길, 세월호에 탄 아이들과 선생님들처럼 직장에서 단합대회 가던 길이라 세월호 참사는 특별하게 더 기억에 남아있다. 낭독회 중 어디서 날아왔을까? 하얀 나비 한 마리가 우리 곁을 맴돌았다. 마루로 너울너울 벽에 붙은 글에 붙어 너울대다 담쪽으로 사라져갔다. 세월호를 타고 바다로 간 아이들 영혼이 찾아온 듯 우리는 하얀 나비에게 시선을 빼앗겼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가 기울면서 바다로 침몰하던 시각에 외치던 아이의 목소리가 찾아와 곁에 한참을 머물다 간다. “반쯤 잠겼는데, 바다밖에 안 보여, 나 살고 싶어요. 리얼리! 배가 기울었어요. 물이 다 찼어요. 코드블루 레드! 나 무서워 살고 싶어, 나는 꿈이 있는데, 하고 싶은 게 많은데, 하고 싶은 게 많은데, 왓캔아이두! 내가 지금 탄 세월호, 이런 길 속에 묻혀, 우리가 출발 예정 시간은 6시 30분, 우리가 출발한 시간은 8시, 지금 배는 85도, 머릿속 온도는 100도” 이 아이가 남긴 말에 아직 대답하지 못하고 있다. 세월호 침몰 이후 계속되는 대참사 앞에서 할 말을 잃는다. 솔직히 더 많은 글을 쓸 자신이 없다. 할 수 있다면 304 낭독회를 기억하면서 구례에서 다음 304 낭독회가 열리기를 희망하며, 이 글을 읽는 사람이 로파이에서 함께 한 139회 304 낭독회 <<함께 읽는 글>> 과 함께 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글을 맺는다. <<함께 읽는 글>> 사회자 오늘은 4월 16일입니다. 다 같이 4428번째 4월 16일입니다. 사회자 이렇게 모여, 우리는 사람으로 돌아가는 꿈을 꿉니다. 다 같이 목숨이 삶으로, 무덤이 세상으로, 침묵이 진실로 돌아가는 꿈을 꿉니다. 사회자 이렇게 모여, 우리는 사람의 말을 이어갑니다. 다 같이 떠오르도록, 떠오를 수 있도록, 사람이 사람에게, 사람의 말을 이어갑니다. 사회자 이유를 알고, 책임을 묻고, 참사가 반복되는 걸 막아야 합니다. 다 같이 세월호 미수습자 모두의 귀환을 염원합니다. 철저한 진상규명을 요구합니다. 모두의 이름으로 명령합니다. 사회자 함께 대답을 들어야 합니다. 다 같이 그때까지 멈추지 않겠습니다. 사회자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닙니다 다 같이 끝날 때까지 끝내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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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을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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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서른아홉 번째 304 낭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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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를 걷는다구례를 걷는다
- 봉북 샛길 가축병원 자리 골무 사태 들어 대장간 지나 왼쪽으로 꺾으면 봉남리로 나가는 샛길, 벽화 따라 걷는 봉동리 더듬어 주욱 이층집 지나 큰길 건너 읍사무소 자리 역사의 거리 지나 성당을 돌아 봉산 쪽으로 간다. 길을 접어 작은 길을 가니 소식다료. 들어서니 아는 사람이 앉아 있다. 호지차 한잔 주문하여 홀짝이는데 창밖으로 보이는 연둣빛 봉산이 금세 내 안으로 쏟아질 듯 하다. 구수하고 따듯한 호지차처럼 구례에서 만난 사람들 또한 그러하다. 찻집에서 우연히 만나는 사람은 샛길 같다. 길 안에서 길을 마시는 차의 여백, 찻잎처럼 떠다니는 여백을 떠다니는 생각에 싸여, 걷는다. 봉북샛길 접어드니 샛길이 나를 기웃대며 녹슨 파란 대문이 꿈속으로 부는 바람처럼 나를 건든다. 고양이 두 마리 쓰레기 더미를 뒤지다 후딱 피한다. 가지 마! 나도 몰래 새 나가는 말이 전봇대 아래 멈추고 야옹, 고양이 눈이 맑다. 개울 따라 접어든 구례 샛길이 살갑다. 지나는 사람은 그림이 되고 십자가 뒤로 장미슈퍼가 미소 짓는 저물녘. 장미슈퍼 와상에 메주와 우유를 내놓았다. 먼 날이 불러오는 풍경 한파가 이어지던 영하 10℃ 냉장고를 나온 두부가 손님을 기다리던 시간 위로 떠 오르는 얼굴 함께 구례를 다시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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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를 걷는다구례를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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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갑순 할매 / 서시내 가면,
- <내 마음을 다녀간 사람들> 최갑순* 할매 철쭉빛 스카프 목에 두르고 뭘 보고 있소 서시내 보요 노고단을 보요 할매 독다리 건너던 독다리 보요 꼭 다문 입술 열고 한 잎 한 잎 띄워 보내요 꽃바람에 맨발로 앉은 보따리 꼭꼭 싸맨 가슴 풀어나 봐요 할매 꽃신 어디 두었소 꽃신 따라 건넌 시간 어디 두었소 꽃 대신 울다 피다 울다 철쭉 또 오거든 함께 걸어요 쑥부쟁이 독다리 건너 건너 광의에 가요 오늘은 서시내 깔따구가 따라와 눈을 뜰 수 없어요 할매 철쭉 빛 스카프 바뀌고 또 바뀌면 어둠 머금고 봄은 언제 올까요 * 구례 평화의 소녀상 서시내 가면, 동광 사거리 지나 당산나무가 있고 서시교까지는 포플러가 즐비한 신작로였다. 고흐 사이프러스 길이 생각나는 포플러 길. 신작로, 말만 들어도 구례가 많이 변했음을 알 수 있다. 서시내는 뭇 생명과 함께 흐르는 구례 아이들 놀이터였다. 요즘은 섬진강 다슬기로 유명하지만, 구례말은 데사리나 고동이다. 서시내서 잡은 데사리 한 바구니 데쳐 가족들 함께, 옷핀으로 빼먹던 고동, 모래알 같아 퉤퉤 뱉던 그 초록 알이 아직 입안에 남아있는 듯하다. 서시내 둑방은 어린 내가 오르기에는 좁고 가파른 길이었다. 몇 해 전 수해로 둑은 더 높아져 지리산을 막고, 밤이면 가로등 번쩍이는 꽃길이 되었지만 말이다. 그 둑방 아래 조성된 공원 산책로를 걷다 보면 구례 평화의 소녀상 최갑순 할매가 바위에 앉아 있다. 항상 맨발인 할매. 어릴 적 꽃신 사준다고 해 따라나선 길은 돌아오기까지 얼마나 먼 길이었을까? 그 길 가슴에 싸맨 보따리 하나 두고 앉은 할매. 할매 곁에서, 때로는 지나는 사람이 씌워준 모자와 목도리가 바뀌고 계절이 바뀌고 지리산과 서시내도 계절을 갈아탄다. 오늘 할매 이야기 듣다 어두워지고 밤이 온다, 글쓴이 : 이촉 전남 구례에서 태어났다. 시집 『검은 해바라기』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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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갑순 할매 / 서시내 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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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땅속에서 일어나는 일 (지리산 지하수 이야기 4)
- 지하수의 형성 그림의 파란색과 갈색으로 일어날 수 있는 오해와는 달리, 지하수는 땅속의 동굴에 물이 차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하수는 바위 속의 자잘한 공극을 채우고 있는 물입니다. 개미도 살수 없는 아주 조그만 동굴에 채워져 있는 물이라고나 할까요.깊은 땅 속에는 암반의 모든 공극에 물이 가득 채워져 있는 장소가 있습니다. 이렇게 물로 포화된 상태의 지층을 ‘대수층’이라고 부릅니다. 이 대수층은 지형과 어느정도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어서, 산 아래의 대수층은 산의 모양으로 살짝 솟아 있습니다. 지표면에 있는 물과는 달리, 지하수는 암석의 조그만 결정 사이사이로 흐르기 때문에, 이동 속도가 매우 느립니다. 바위들도 성질이 저마다 달라서, 공극이 거의 없어서 물이 통과하지 못하는 바위도 있습니다. 그래서 지하에서는 물이 욕조나 바다처럼 완전히 평평하게 있을 수가 없습니다. 이런 이유로, 좀 더 높은 곳에 위치한 대수층의 압력 때문에 강물보다 높은 지표면에서 샘물이 솟아오르게 됩니다. 대수층은 사막에도 존재합니다. 다만 아주 깊은 곳에 있을 뿐이죠. 이 대수층을 발견해서 개발하면, 사막에서도 농사를 지을 수 있습니다. 땅속 깊은 곳의 저수지인 셈입니다. 미국의 캘리포니아 주 사막이기에 오래전부터 화석수로 농사를 지어왔어요. 시에라 네바다 산맥의 깊은 뿌리에서부터 흘러나오는 캘리포니아 화석수도 지나친 채수로 인해 고갈 현상이 나타난지가 꽤 되었습니다. 지리산에는 지하수가 얼마나 있고, 얼마만큼 쓸 수 있을까요? 지금 지하수가 충분할까요? 전문가들은 이것을 알아보기 위해서 여러 가지 지질학 조사를 하고, 땅에 구멍을 뚫어야 하며,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서 불가능하다고 말합니다. 대수층의 깊이와 지하수의 전체 부존량을 알기 어려운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자유대수층(비피압대수층)의 높이를 알기는 매우 쉽습니다. 근처 강물의 수위와 같기 때문입니다. 지하수는 샘물과 강물의 지속적인 공급원입니다. 비가 온 지 한참 되었는데도 계곡과 강에 계속해서 물이 흘러가는 것은 지하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에 상류에 댐이나 보가 만들어진 것도 아닌데, 몇 년 전부터 강물이 줄어들어 수위가 내려갔다면, 이것은 지하수가 줄어들었다는 증거입니다. 수백년간 일정한 양의 물이 저절로 솟아나온 마을의 참샘이 마르는 것도 지하수 고갈의 지표입니다. 이때 고갈이란, 대수층이라는 컵이 완전히 비워졌다는 뜻이 아니라, 수천년간 유지되어 오던 눈금 아래로 내려갔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은 지표면과 가까운 얕은 관정(자유대수층 우물)을 이용하고 있는 주민의 살림살이에 큰 영향을 끼칩니다. 눈뜨고 코베인 오래된 산골 마을들은 산의 압력에 의해 지하수가 저절로 땅위로 솟아오르는 참샘(피압대수층과 연결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음) 주위로 형성되었습니다. ㈜지리산산청샘물과 LK샘물이 위치한 삼장면 덕교마을의 참샘은 몇 년 전부터 전혀 물이 나오지 않게 되었습니다. 동시에 덕교와 상류의 마을에서는 가정용, 농업용 관정에 물이 나오지 않거나 흙탕물이 나오고, 계곡물이 말라서 생활용수가 없어지는 등 지하수 고갈로 주민들이 많은 불편을 겪었습니다. 삼장 주민 장씨의 아내는 생수공장에 취직해서 일하고 있었는데, 공장의 관정에서 물이 나오지 않아 집에 일찍 돌아오는 날이면 자택의 관정에서 흙탕물이 나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이런 사실을 공개하지 못하고, 생수공장에서 퇴사한 후에야 말할 수 있었습니다. 장씨 뿐 아니라, 여러 주민들의 가정용, 농업용 관정에서 흙탕물이 나와서 세탁기와 펌프 모터가 파손되었습니다. 생수공장과 환경영향조사 업체는 “마을의 지하수고갈과 생수공장의 취수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산청샘물의 관정은 깊이 300미터의 심층 암반수이고, 마을 사람들이 사용하는 것은 깊어봤자 70~100m 밖에 되지 않는 표층수이기 때문에, 다른 물이라는 것이죠. 실제로 3일 간 생수공장에서 상당량을 취수하면서 동시에 주민 관정 4곳의 수위 변화를 살폈을 때, 별다른 변화가 없더라는 검사 결과가 있습니다. 생수공장의 주장은 지하 100m와 300m사이 어딘가에 불투수층이 폭넓게 존재한다고 가정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그 가정은 검사에 의해 증명된 것처럼 보이죠. 과연 그럴까요? 검사 과정에서, ㈜지리산산청샘물은 주민 장씨의 집을 찾아와 영향을 조사 하기 위해 카메라 검층을 하겠다고 크레인으로 무리하게 펌프 모터를 빼내었고, 그 과정에서 관정이 부서지고 말았습니다. 관이 파손되었기 때문에 흙탕물이 쏟아져 나와 제대로 된 검사가 불가능해졌습니다. 산청샘물은 주민 관정 파손에 대한 피해보상조차 하지 않았고, 검사결과 아무런 영향이 없었다고 하며, 지하수증량반대운동을 하는 주민 4명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기까지 했습니다. 결국 혐의없음 처리가 되었지만, 장씨의 관정은 부서진 채 그대로 있습니다. 정말로 영향이 나타난 관정 1곳은 증거 인멸이 된 것이죠. *지리산 지하수 이야기 5 - 보이지 않는다고 함부로 말하지 말라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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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땅속에서 일어나는 일 (지리산 지하수 이야기 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