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11-1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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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방 로파이에서, 함께 책 읽는 사람들
    함께 책 읽는 사람들 장소: 구례 숲거리길 책방 로파이(Lo-fi) 언제: 격주 월요일 밤 20:00~끝나는 시간 누가: 빵, 양이, 장이, 정규, 보라, 야마, 상이, 유림, 지안, 단디, 송이 * 조응 작년 7월, 숲거리길 개천 따라 파란 양철 대문, 로파이라는 작은 서점에 들어갔다. 처음 나를 맞는 것은 벽에 걸린 바랜 종이 속 시인 허수경, 그 옆 독서 모집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아무나 책 모임 할 수 있어요?” 이렇게 시작한 독서는 팀 잉골드의 『조응』을 몇 차례 나눠 읽으면서 과제로 그림을 그리고, 짧은 글을 나누며 조응할 수 있었다. 그 후, 각자 읽고 싶은 책을 선정해, 알렉시스 폴린 검스 『떠오르는 숨』을 읽고 해양 포유류를 통해 기후 위기에 생존법을 배우고 페미니즘과 퀴어에 대해, 나희덕의 『예술의 주름들』을 읽고 여러 예술가와 그 작품을 통해 시야를 넓혀갔다. 필자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두이노의 비가』를 같이 읽고 싶었다. 사실 릴케를 읽을 수 있음은 흔쾌히 함께 읽은 사람들 덕이다. 두이노의 비가를 발음하며 웃는 일이 많아져 릴케와 친해졌다고 하면 누군가는 의아해할 것이다. 독서 하면서 웃을 일이 많아진다. 공감의 마약 같은. 감이 익어가던 계절, 우리는 마루에 앉아, 짜이를 앞에 두고 어느새 우리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서울로 떠난 단디의 영화 이야기도 기억에 남는다, 그럴 즈음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있어 우리는 『소년이 온다』를 읽었다. 1980년 5월은 필자의 오월이기도 하다. 대학 시절 동기가 도청에서 진압군의 폭격에 쓰러져갔다, 1980년 광주는 되살리고 싶지 않은 기억의 중앙에 있다. “아마 전쟁이란 이런 걸 거야” 생각하던, 유언비어와 유비통신을 광주에서 접하면서, 진실을 일기장에 적던 날들이 생생하다, 아들의 주검 앞에서 오열하던 어머니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그 즈음, 그 끔찍한 비상계엄이 선포되던 밤을 또 접하기도 했다. 어느 날, 마산의 하운팅걸즈 독서팀이 구례 로파이로 원정 와서 박솔뫼의 <미래 산책 연습>을 읽고 책을 통한 우정을 나누기도 했다. * 리스펙토르님, 좋은 밤이에요 우리는 보다 문학적인 책 읽기에 돌입했다.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의 책, 『아구아비바』 『G.H에 다른 수난』 『달걀과 닭』 『별의 시간』 을 읽으면서 리스펙토르의 원시림을 향해 걸어갔다. 끊어지는 단락이 없이 지속되는 글의 흐름을 따라 읽기가 쉽지 않았다. 읽고, 읽으면서 모르면 모르는 대로 읽었다. 『G,H에 따른 수난』을 읽고 바퀴벌레, 그녀의 세계, 무와 존재, 중립의 세계란 무엇인가 열띤 토론을 하다, 어쩌면 우리 자신을 찾아가는 시간이 아닌가 싶었다. 우리는 옆에 클라리시 사진을 두고, 클라리시와 같이 길을 잃어가며 숲을 헤쳐나갔다. 점차 그 깊이 속에 빠져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클라리시를 읽는 즐거움. 네 권의 책을 읽는 동안 사실 클라리시와 함께 살았다. 그녀의 마지막 작품 『별의 시간』에 도달했다. 책 마지막, “우리는 죽을 것이다. 하지만–하지만 나도?!” 지금이 딸기 철이라는 걸 잊어버리지 마시기를. 그래. 하고 맺는 그녀와 헤어지며, 우리 입가에는 미소가 번졌다. 의식의 흐름 속 깊은 터널을 통과한 안도의 이심전심, 그래 * 여름밤 뒤라스의 바다 뒤라스 첫 책 『여름밤 열 시 반』을 읽고 이구동성으로 리스펙토르에 비해 뒤라스의 글이 쉽다고 했다. 역시 우리 멋진 사람들. 뒤라스의 글은 호흡이 짧고 행간이 길고 침묵이 자리해 숨 쉴 여지가 있어 좋았다. 숨어 있는 의식의 흐름을 우리는 간파해야 했다. 책을 읽고 각자의 질문을 나누는 방식으로 토론해나갔다. 깊어가는 밤, 뒤라스에게 섞이는 밤, 뒤라스는 독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소설 속 인물이 과거와 현실을 오가면서 망각이나 기억 싱실로 자신의 트라우마를 극복한다. 글 사이 침묵은 독자에게 상상력을 자극하고 혼란에 빠트리는 매력이 있다. 이는 뒤라스 소설을 잘못 읽는 재미인지도 모른다. 뒤라스의 『글』은 읽으면서 글을 쓰게 한다. 마지막 독서 『사랑』은 아름다운 한 권의 시였다. 죽음과 사랑은 하나이면서, 부재나 감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서로에게 던지는 질문을 소개하면, “여러분에게 세계의 끝 같은 곳은 어디일까요” “본문에 딱 한번 나오는 사랑, 도대체 사랑은 무엇일까요?” “ 빛에 대해 얘기해 보면 좋을 것 같아요. 책에서 빛, 햇빛, 뙤약볕, 낮 등이 어두움, 밤과 대비되어 나오는데 어떻게 받아들이셨는지 궁금해요” “여행자는 그녀에게 어떤 존재일까요?” “그는 무엇일까요?” “책을 읽다보니 죽음의 의미가 모호해서, 여기서 죽음은 어떤 것을 의미할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네요.” 우리는 각자 끝이라 생각되는 장소나 심경을 토로했다. 누구는 아득한 제주의 바다 끝, 누구는 봉안당에서, 누구는 말라게따 해변을 걸으며, 누구는 계곡 수심으로 떨어지던 순간을, 누구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 속으로, 누구는 집으로 가는 길이라고. 어쩌면 죽음과 사랑은 하나이며, 감옥이나, 부재, 개가 아니었을까? 우리는 한밤 마당에 둘러앉아 뒤라스 바다, 에스탈라를 걷고 있었다. 그와 그녀, 여행자처럼, * 피 흘리던 시를 낭송하던 밤 우리는 시집을 읽기로 했다. 시집 판매금이 난민에게 전액 기부되기로 한 『팔레스타인 시선집』이 마침 출간되고, 흔쾌히 의견이 수렴되어 시낭송회를 하였다. 광주에서 대학생 송이가 합류했다. 유림과 지안이 찾아와 더 풍성한 낭송회가 되었다. 돌아가며 시를 낭송하고, 팔레스타인이란 시를 합창하고 다시, 가자를 위한 시, 팔레스타인을 위한 시를, 낭송하며 그들과 함께했다. 2023년 이스라엘 공습으로 사망한 시인 리파트 알아리르의 시가 가슴을 울렸다. “내가 죽어야 한다면/ 너는 살아서/ 내 이야기를 전해” 시가 피를 흘리는, 시를 낭송하고 한참 침묵이 흘렀다. 팔레스타인에 전쟁이 사라지기를 바란다.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휴전이 발효되어 얼마나 다행인지 팔레스타인에 평화가 찾아들기를, 산 자와 죽은 자 모두에게 기도를! * 함께 읽는 책은 우리에게 변화를 기억에 남는 책이나 독서를 통해 나에게, 또는 책 모임의 변화를 묻자, 책방지기 방성원 님은 “저는 양이 형이랑 모니카랑 셋이서 오붓하게 모였던 『유러피언』이 생각납니다. 양이 형의 미술적 지식과 분석적 시각 덕분에 두꺼운 책을 비교적 재밌게 끝낼 수 있었고, 모니카도 책 모임 후 유럽 예술사로 무장한 채 유럽대륙으로 성공적인 진출을 할 수 있었습니다.“ 라고 회상한다. 유러피안을 읽던 시간은 책 모임의 시초라고 할 수 있다. 가장 좋았던 책이 조응이었다고 밝힌 양이 님은 “나와 세상을 다양한 방식으로 바라보고, 생각하게 해주었어요. 책 모임을 통해 오랜 시간 책을 읽다 보니, 생각과 말이 풍성해지고 넓어짐을 체감하고 마치, 뇌가 스트레칭 되는 느낌이었어요.”라는 말이 넉넉하다. 늦게 합류한 보라 님은 “같은 글을 읽지만, 각자의 감상을 듣고,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 좋았어요. 결국, 책에서 내 이야기를 연결 짓게 되는 것 같아요.”라는 말에 깊이 공감한다. 수전 손택의 글이 떠오른다. “독서를 하면서 산 사람보다 죽은 사람이 더 많은 공동체, 문학공동체의 일원이 되었다.” 우리보다 앞서간 위대한 작가들을 통해 때론 기시감을 감지할 때의 희열, 읽지 않으면 알지 못할 그 순간을 읽었기 때문에 만끽하는 것이다. 책 읽기는 계속된다. 책을 통해 만나는 사람들. 우리의 소통은 가히 역동적이고 결합력이 있다. 누구는 주도적이고, 들어주고, 이끌어주고 조율하며 조응한다. 서로 간 성장을 확인하는 자리. 서로 질문하다 보면 책은 살아 우리에게 온다. 독서는 글을 쓰게 한다. 책 모임에 동참할 수 있는 구례에 책방 로파이가 있어 참 좋다. 이 자리를 빌려 책방지기 방성원 님께 깊은 감사를, 함께 읽는 우리에도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다음 책 모임 <다요다 요코와 열차를 타고>. 다요다 요코의 책을 계속 읽을 예정이다. 야간열차를 타고 자그레브로 떠날 생각을 하니 벌써 설렌다. 글쓴이 : 이촉 이촉 시인은 구례에 거주하며, 시집 『검은 해바라기』를 펴냈다.
    • 고을이야기
    • 구례
    2025-10-29
  • 지리산권 담수보 추진 중단하라!!!
    산불이후 난개발의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산불이 번지고 있을때는 '임도'와 '숲가꾸기'가 지속적으로 나왔고 지금은 잠시 주춤해 있는 상황이지만 저 지하에서는 현재 더 많은 임도와 더 많은 숲가꾸기를 추진하려 준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숲을 이용의 대상이 아닌 숲은 생명의 공간이며 생명을 지켜주는 공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생명다양성이 풍부한 숲은 사람의 삶 터도 지켜준다는 것을 이번 산불에서 확인되었지만 기득권은 그 사실을 들으려 하지 않고 자식의 이익을 위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10월 19일 산과 숲을 파괴하는 것도 모자라 이제 강까지 파괴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함양군과 산청군의 요청으로 경남도에서 소방용수 공급을 위한 담수보를 추진하겠다는 보도자료를 베포하였습니다. 그래서 지리산사람들과 지리산지키기연석회의, 경남환경운동연합은 긴급 기자회견을 진행하였습니다. 기자회견 후 경남도와의 면담에서 경남도는 '담수보 신설이 아닌 기존 낡은 보를 철거하고 가동보로 교체하는 것이다.'라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함양군과 산청군은 무슨 근거로 담수보 신설이라며 호도하고 나섰던 것인지 의문입니다. 아래는 기자회견문 전문입니다. [기자회견문] 지리산댐의 망령을 되살리려는가? 지리산권 담수보 추진 중단하라!!! 경상남도가 19일 보도자료를 통해 지리산 권역의 산청·함양 일대에 산불 대응용 다기능 담수보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해당 지역인 덕천강과 임천은 멸종위기 야생생물의 보고이자 지리산 상류 수생태계를 대표하는 하천이다. 재난대응, 수자원관리, 생태보전의 명목 아래 전혀 생태적이지도 관리되지도 않는 담수보 설치가 추진되고 있어 지역사회에 논란이 되고 있다. 이 사업은 지역사회의 협의 없이 생태적으로 건강한 하천을 인위적으로 막아 훼손하는 불필요한 공사이다. 생명의 강을 단순하게 홍수가 나면 ‘재해복구’, 산불이 나면 ‘소방용수’ 공급원으로, 토목사업의 대상으로만 보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지리산댐의 망령’을 다시 되살리는 정책 이번 사업은 과거 ‘지리산댐’ 추진 때와 다를 바 없다. 지리산댐과 규모는 다르다하지만 강의 생태적 근간을 훼손하는 것은 동일하다. 추가적인 공사나 다른 토목사업으로 변질되어 지역사회를 위협할 수도 있다. 지난 수십 년을 지리산댐 건설 추진으로 고통받았던 우리 지역사회는 강의 흐름을 영구히 바꿀 콘크리트 구조물이 아니라, 강의 생명과 자연스러운 흐름을 지키고, 또 물려주고 싶다. 소방용수 공급은 이미 충분한 상태 함양과 산청 일대에는 다수의 저수지, 농업용 댐, 소형 저수지가 존재한다. 2025년 3월 지리산 산불 당시에도 소방헬기는 하천의 자연 유수지와 저수지의 물로 진화작업을 수행했다. 이런 현황을 무시하고 담수보를 설치하는 것은 불필요한 중복사업이자 세금낭비에 불과하다. 산불 대응에는 ‘보’가 아니라 이동식 펌프, 저수지 급수장, 산림 내 간이 수조 등 효율적 용수공급체계가 훨씬 현실적이다. 산불 대응을 위한 합리적인 판단과 정책 결정이 시급한 이 시기에 조급하게 지역사회를 논란에 빠뜨리는 '보' 사업은 당장 중단해야 한다. 주민 동의 없는 일방적 추진 이 사업은 지역 주민의 공론화나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지금은 산불로 인한 재난복구라는 중차대한 시기이다. 단순히 행정 편의의 관점에서 강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 우리의 강은 지역 주민과 자연이 공유하는 공공재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행정은 토목업체의 경제 논리에 따를 게 아니라 생태적 가치와 민주적 절차를 따라야 한다. 멸종위기 생물의 보고, 덕천강과 임천 이 지역은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야생생물인 여울마자, 큰줄납자루, 얼룩새코미꾸리 등의의 핵심 서식지이다. 이들 생물들 중에는 국제사회에서 권고한 IUCN 적색목록 생물도 포함되어 있다. 담수보 설치로 강의 유속이 느려지면 퇴적·부영양화가 가속되고 하천의 홍수 위험이 증가할뿐만 아니라, 멸종위기 야생생물의 서식지 파괴로 이어진다. 한마디로 국가 보호종의 생명을 위협하는 행위이자 국제사회의 지탄을 받을 일인 것이다. ‘다기능’이라는 이름의 허구 경상남도는 ‘재난대응·수자원관리·생태보전’을 동시에 달성한다고 주장한다. 강에 보를 설치하는 순간 자연 하천은 인공 저수지로 전락한다. ‘친환경 공법’이라 주장하지만, 강을 막는 그 행위 자체가 이미 비친환경적이다. 홍수기에는 개방형이라 하지만, 하천과 불과 1~2m 높이의 도로와 마을의 홍수 위험성은 어떻게 예방할 수 있을 것인가? 겨울철 건기에는 결국 물을 가두어 강의 흐름을 인위적으로 차단하는 생태훼손을 어떻게 생태보전이라 할 수 있나?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물’이 아니라 ‘흐름’이다 하천은 살아있는 생명체이다. 물을 가두는 콘크리트가 아니라, 자연의 흐름이 강의 본질이다. 지금은 강을 통제하는 시대가 아니다. 지금은 강과 공존하는 시대로 가야 한다. 지리산의 강은 단순한 강이 아니라 수많은 생명의 터전이자, 우리 모두의 자연유산이다. 우리가 지키고 물려주어야 할 것은 ‘가둔 물’이 아니라 ‘흐르는 생명의 강’이다. 경상남도는 지리산댐의 망령을 되살리려는가? 지리산의 강을 토목 실험장으로 만들지 말고, 지금 당장 지리산권 담수보 추진을 중단하라. 우리는 지리산권의 모든 생명의 이름으로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1. 산청·함양 담수보 설치 계획을 즉각 중단하라. 2. 지역 주민·전문가·환경단체가 참여하는 공론화 절차를 마련하라. 3. 기존 댐·저수지·하천 저류지를 활용한 대체 용수체계 구축 방안을 검토하라. 2025. 10. 23.
    • 고을이야기
    • 산청
    2025-10-28
  • [지리산사람들성명서] 시민의 승리다! 지리산골프장 사업 무산을 환영하며
    시민의 승리다, 지리산골프장 사업 무산을 환영하며 구례군의 성실한 복구를 촉구한다 지리산 자락 사포마을 숲에서 추진되던 지리산골프장 사업이 사실상 무산되었다. 10월 19일 MBC 보도에 따르면 구례군은 사업자의 의지가 없어 보인다며 사업 무산을 인정했다. 2년 넘게 지리산골프장이 생기지 않도록 저항해 온 사포마을 주민들과 또 이를 지지해 준 모든 시민의 승리다. 지리산골프장은 2002년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중단과 재추진을 반복하던 사업이었다. 그러다 2023년 구례군이 골프장 예정 부지에 대한 벌목허가를 내주면서 구례군은 지리산골프장 시행사와 업무협약을 맺고 골프장 사업을 재추진하겠다 발표하였다. 이와 함께 진행되었던 벌목은 재선충 방재를 위한 모두베기라는 이름으로 추진되었지만, 실상은 원활한 사업추진을 위해 생태자연도 1등급지를 골라 베기 하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게다가 사업자는 허가받지 않은 지역까지 벌목하는 불법도 저질렀다. 1등급지 골라 베기 하였다는 것을 반증하듯 다음해 2024년 벌목지에 대한 생태자연도 등급조정 신청이 들어갔고 벌목 허가를 받은 생태자연도 1등급지에 대한 등급이 3등급(벌채지)으로 하향되었으며 불법 벌목이 있던 지역은 유지되었다. 이렇듯 편법과 불법으로 진행된 사업이 토지 소유권 문제로 무산된 것이다. 내년 2월까지 인허를 위한 절차들이 진행되어야 하는데 행정절차만 1년이 필요하기에 사실상 무산된 것이다. 이는 MBC 취재 결과 구례군도 인정한 사실이다. 이번 지리산골프장 사업 무산은 시민들이 이루어낸 결과다. 2023년 4월 ‘지리산골프장을 반대하는 구례사람들’이 처음 조직된 뒤 바로 이어 사포마을 주민들이 ‘사포마을 골프장 건설 저지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며 일주일에 한 번씩 모이는 등 주민들과 시민들이 함께 지리산골프장이 들어설 수 없도록 끈질기게 저항해 왔다. 기자회견, 보도자료 배포, 언론사 취재 조력, 감사원 공익감사 청구, 전 군민 대상 유인물 배포, 다양한 문화 축제 진행 등 그 방식도 다양했다. 특히 2023년 10월, 한국내셔널트러스트 ‘이곳만은 지키자’에 사포마을 다랭이논이 환경부장관상을 받으며 사회적, 문화적, 환경적 중요성을 알리고 지리산골프장 반대 힘에 더욱 목소리를 실을 수 있었다. 한편에선 사업주가 지대 차익을 노렸을 거라는 말도 들렸고, 실질적으로 불가능한 사업인 줄 알면서도 표심을 잡으려는 꼼수일 거라는 말도 들렸다. 우리 지리산사람들과 사포마을 주민들 그리고 이에 함께하는 시민들 모두는 어떤 말에도 휘둘리지 않고 계속 저항했다. 저들은 나무를 벴으나, 우리는 나무를 심었다. 저들은 지역 공동체를 파괴하였으나, 우리는 공동체를 더 단단히 묶으려 했다. 저들은 정치적 노림수와 자본의 이익만을 생각했지만, 우리는 지리산을 생각했고, 야생동식물이 살 곳을 걱정했고, 마을 주민들의 삶을 살폈다. 이렇게 지리산골프장 사업은 무산된 것이다. 지리산을 지키겠다는 마음 하나로 모인 주민과 시민 모두의 승리이다. 사포마을 주민들은 지금도 벌목과 작업도로를 만들기 위해 산을 절개하면서 발생하는 토사로 인해 마을 상수도에서 흙탕물이 나오는 어려움을 겪었다. 주민들은 비만 오면 산이 무너질지 걱정하며 벌채지를 돌아야 했었다. 그럼에도 구례군수는 이런 군민의 소리를 무시하고 공식적인 장소에서 ‘골프장 추진을 계속 하겠다’고 말하고 다녔다. 하지만 사업 초기부터 주민들과 지리산사람들이 문제 제기했듯, 시행사는 당해년도 자본이 1억 원도 되지 않는 종이껍데기 회사인 데다가 8년간 골프장 사업권을 인가받고도 두 차례나 연기했던 곳으로 지리산골프장은 애초 가능성이 없는 사업이었다. 그런데도 구례군은 지리산골프장 사업을 추진하려 행정력을 낭비했으며 생태자연도 1등급지에 멸종위기종인 수달과 담비, 삵 등 무수한 생명의 보금자리인 지리산 자락 숲을 불법적으로 벌채되도록 사실상 방치했다. 그뿐만 아니라, 골프장은 경제성도 없는 사업이었다. 우리나라 골프장은 이미 포화상태이고 매년 80억에서 100억의 적자를 내는 골프장까지 있는 현실이다. 그뿐인가. 구례군이 2년간 골프장 사업을 추진하면서 군민을 찬성과 반대로 갈라지게 해 지역공동체의 분열을 낳은 것은 후대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심각한 문제다. 이에 따라 군민에게 남은 것은 치유되기 어려운 마음속 상처뿐이다. 이제는 주민의 희생을 강요하는 개발사업은 그만 멈추어야 한다. 지리산을 개발의 대상으로 보는 일부 군민들의 인식은 바뀌어야 하며 난개발 정책 또한 멈추어야 한다. 지리산은 국립공원이라는 경계만큼만 보호하고 나머지는 마음대로 해도 되는 곳이 아니다. 국립공원 경계 안의 지리산도 지리산이고 경계 밖의 지리산도 지리산이다. 지리산에 기대어 살아가는 사포마을 주민들이 평화를 되찾고 더 이상 내가 사는 마을이 파괴되는 두려움 속에 살지 않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근거 없는 경제성을 운운하며 벌어지는 개발 논리를 당장 멈추어야 한다. 진짜 자연으로 가는 길로 나아가도록 새 판을 짜야 한다. 모든 것이 바뀌어야 할 것이다. 지리산의 자연림과 가까운 벌목지는 이미 기존에 있던 활엽수의 맹아와 아까시나무와 같은 속성수가 자리를 잡고 있다. 조림이 아닌 자연복원으로 스스로 회복하게 두어야 한다. 구례군이 하여야 할 것은 인공 조림이 아니라 절개지와 무너지는 지형에 대한 복구이며 주민들의 상처난 마음을 달랠 수 있는 진심 어린 사과이다. 또한 지리산골프장 추진으로 인한 행정력 낭비와 지역 공동체 분열, 환경 파괴에 대해서도 명확하게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복원 작업도 군의 단독 추진이 아닌 마을 사람들과 의논하여 복구 계획을 세워야 한다. 더 이상 주민을 속이지 말아야 할 것이다.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지리산사람들, 지리산지키기연석회의 2025년 10월 21일
    • 고을이야기
    • 구례
    2025-10-22
  • 망한 집에 피는 꽃은?
    꽃무릇이 잔뜩 또 피었다. 지난주 토지초 아이들이 학교에서 캠핑을 했다. 내 아이들은 모두 초등학교를 졸업했으니 이제는 더 이상 관심이 끊어질 만도 하지만 둘째 아이가 캠핑 행사에 참여하겠다고 이미 시동을 걸어둔 상태였다. 나는 작년까지 토지 마을학교 대표였다. 마을학교 행사 중에 가장 어려운 것이 2박 3일로 진행되는 캠핑 행사다. 80명 가까운 인원이 참가하고 유치원부터 중학생 때로는 고등학생 아이들도 한두 명씩 참가하기도 하는데다 부모들도 참가하기 때문이다. 이런 행사를 준비하려면 꽤 많은 시간 동안 준비해야 하고 혹시 모를 위험한 일들에 대한 대비도 필요하지만, 불놀이를 위한 장작을 마련하고 음향 시설을 설치하고 캠핑 동선을 짜고 각 시간별 이벤트도 만들어야 실속 있는 행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나는 아침 산책 선생님으로 초대를 받았다. 작년에 아침에 할 일이 없어서 "산책이나 한 번 합시다"라고 해서 갑작스럽게 진행했는데 생각보다 아이들이 좋아했다. 작년에도 꽃무릇이 한창 피었을 때 행사를 진행했다. 토지초 옆 구산마을 소나무 아래 붉은 꽃무릇이 아득하니 피어 있었다. "여러분, 이 꽃 이름이 뭔지 알아요?" "네, 꽃무릇이요." 아이들도 대부분 꽃 이름을 알고 있었다. "그럼 이 꽃무릇의 구근에 독이 있는 것은 모르죠?" 꽃무릇을 심으면 거의 죽지 않는데 그 이유는 구근에 독이 있기 때문이에요. 혹시 여러분, 꽃무릇 구근을 먹으면 큰일 납니다. "우와, 그래요. 헉..." 다음은 개망초네요. 나물로 먹을 수도 있는 풀이지만, 잡초 중에서도 생명력이 강해서 죽이기도 어렵죠. "집에 사람이 살지 않고 망하면 처음 피는 꽃이라서 망초라고 해요." "진짜요? 거짓말요." "하하하..." 아이들과 학교 주변 마을 길을 산책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시간이 금방 지났다. 보통 아이들과 이야기는 30분 정도 하면 그다음엔 시들해진다. 나뭇잎으로 풀잎배를 만들기도 하고 칡넝쿨 잎을 따서 엄지와 검지 사이에 넣고 소리를 내기도 했는데 역시 아이들이 재밌어했다. 모두 내가 어려서 동네 아이들과 심심할 때 하던 놀이다. 돌아가는 길에 아이들이 좀 전에 했던 놀이를 하고 있었다. '내년에도 또 산책 선생님을 해달라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 '내가 가진 이야기는 그게 전부인데...' '아이들이 기억하지 않기를 바래야 되나 아니면 오랫동안 좋은 추억으로 기억해야 하나'라는 작은 고민이 생겼다. 돌아오는 길에 보니 꽃무릇이 조금 더 많이 핀 것 같고 아이들도 조금 더 자란 것 같았다.
    • 고을이야기
    • 구례
    2025-10-02
  • 지하수 보존 주민을 위한 탄원에 함께해주세요!
    탄원에 함께해주세요! https://forms.gle/BK5sJ471JtM8Vauu7 산청군 삼장면 ㈜지리산산청샘물은 현재 1일 600톤을 취수하여 먹는샘물(생수)을 제조 판매하고 있습니다. 2024년 2월에는 600톤 취수를 증량하여 1일 1,200톤의 지하수 취수가 임시허가되었습니다. 이 중대한 사안을 주민에게 투명하게 알리지 않았으며, 일부 지역 단체장들과의 합의를 통해서만 지하수 증량 허가를 추진하고, 이에 반대한 주민들을 ‘업무방해’ ‘명예훼손’으로 고소했으나 모두 무혐의로 종결되었습니다. 그럼에도 회사는 또다시 주민 3명을 상대로 항고를 제기하여 주민들에게 심리적 부담을 주고 있습니다. 주민들의 활동은 생존권과 환경권을 지키기 위한 정당한 권리이자 지역사회의 의사 표현입니다. 부당한 항고가 기각되어 주민들의 권리와 평온이 보장되기를 간곡히 요청드립니다.
    • 고을이야기
    • 산청
    2025-09-19
  • 기억되지 못한 이장, 김길동
    오늘 나는 김길동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그는 1916년 경남 함양군 휴천면 문정리 문하마을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1959년 5월 10일 생을 마쳤다. 내가 그에 대해 처음 들은 건, 지리산종교연대가 사단법인 숲길과 공동 주관해 ‘산청‧함양사건 추모공원’에서 진행했던 <지리산생명평화기도회>에서였다. 그날 성염 선생님(전 로마 교황청 대사)은 “우리 마을에 조그만 공덕비가 있어요. 학살사건 때 동네 사람들을 전부 살렸어요.”라고 말씀하셨다. 장마가 막 시작된 날이었다. 그날 이후 ‘김길동’이라는 이름이 자주 떠올랐다. 어떤 사람이었는지, 어떤 상황에 놓였는지, 그래서 어떻게 살아갔는지가 궁금해졌다. 그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어 『지리산인』 (편집장 김인호) 편집위원들과 함께 문하마을을 찾아가 성염 선생님과 전순란 선생님을 만났다. 그날 역시 장맛비가 내렸다. ↑성염 선생님 집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지리산인』 편집위원들 문하마을은 법화산 자락에 자리해 지리산을 바라보고 있고, 앞으로는 엄천강이 흐른다. 내가 이곳을 처음 찾은 것은 2000년대 초반이다. 초등학교 아이들과 지리산을 종주한 뒤 실상사에 들러 도법스님을 뵙고, 마을청년회가 폐교를 고쳐 운영하던 숙소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그 뒤로도 성염 선생님을 뵙기 위해 몇 차례 더 찾아왔기에, 문하마을은 내게 낯설지 않다. 올 때마다 하늘에는 구름이 낮게 드리워져 있던 기억이 남아 있다. ↑하늘에서 바라본 엄천강과 문하마을 문하마을 뒷산에는 고려 말 충신 이억년의 묘가 있다. 성염 선생님은 마을 이름의 연원을 이렇게 설명했다. “고려 말 나라가 망하자 이백년, 이억년 같은 분들이 지리산으로 들어와 이 부근에 살았지요. 그래서 산골임에도 ‘문하(文下)’라는 이름이 붙은 겁니다.” 그 말처럼, 문하마을은 예로부터 바른 길을 지키며, 함께 살아가는 가치를 소중히 여겨온 곳으로 전해져 왔다. 성염 선생님의 집은 마을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해 지리산이 한눈에 펼쳐졌다. 그곳에서 우리는 김길동 이장의 이야기를 이어갔다. 성염 선생님은 마을에 살았던, 이제 아흔을 훌쩍 넘긴 아주머니로부터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고 했다. ↑논과 숲으로 둘러싸인 문하마을 이 이야기를 이해하려면, 그가 이장을 맡았던 1950년대 전후 지리산 자락에서 벌어진 일을 알아야 한다. 1951년 초, 산청·함양 일대에서 민간인 학살이 있었다. 국군은 빨치산을 도왔다는 이유로 주민들을 모아 총살했는데, 아이와 노인, 여성도 예외가 아니었다. 공식 기록만으로도 천 명이 넘는 희생자가 있었다. 전쟁 속에서 적이 아닌 자기 나라 주민이 군의 총에 쓰러진 사건이었다. 추모공원이 세워졌지만, 가족을 잃은 이들에게 그날의 상처는 여전히 생생하다. “김길동이라는 분은 당시 이장이었어요. 군인들이 ‘집에 사람이 있으면 모두 죽인다’고 해서, 중풍 걸린 시아버지를 업고 나온 며느리도 있었다고 하지요. 그날 군인들이 기관총 앞에 주민들을 세워 놓고 방아쇠를 당기려는 순간, 이장이 달려가 ‘왜 사람들을 죽이냐’며 항의하며 막아섰답니다. 목숨 걸고 총구 앞에서 버틴 겁니다. 그 덕분에 마을 사람들은 살 수 있었어요. 바로 아래 한남마을부터는 100여 명씩 세워놓고, 이장이 손가락질하면 아기든 노인이든 끌려가 총살을 당했지요. 산청·함양 추모공원에 가보면 약 1,300명의 희생자가 기록돼 있습니다. 그중 7세 이하 아이들까지 ‘공비’라 불리며 죽임을 당했고, 그걸로 훈장을 받은 사람도 있었어요.” 그 시절에 토박이가 아닌 사람이 이장이 되었다는 점은 놀라웠다. 그가 문하마을에서 태어났지만 집안의 뿌리가 순창이라, 어떻게 이장이 될 수 있었는지 궁금해하자, 전순란 선생님은 잠시 생각하더니 “아랫집 정 선생도 몇 차례 출마했지만, 토박이가 아니라는 이유로 뽑히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35년을 살아도 여전히 외지인으로 불릴 만큼, 마을에서는 토박이가 아니면 이장이 되기 어려운 분위기라고 덧붙였다. 이에 박두규 시인은, “아마도 인품과 생활 속 태도로 마을 사람들의 신뢰를 얻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보탰다. 전순란 선생님은 다시 이야기를 이어갔다. “이장이 그렇게 큰소리를 치며 막아설 수 있었던 데에는 이유가 있어요. 군인들이 들어오기 전날, 소를 잡아 장교들에게 대접하면서 ‘우리 마을은 죄 없는 사람들이니 그냥 지나쳐 달라’고 부탁했다고 합니다. 그 후에도 평생 마을을 위해 힘썼지요.” 전순란 선생님의 말대로, 그는 한평생 마을을 위해 헌신했다. 장사로 번 돈으로 땅을 사서 마을에 기증하며, “내가 평생 여기서 살았으니 마을 사람들에게 남긴다"고 했다. 그러나 이상한 것은, 정작 마을 사람 누구도 김길동 이장의 이야기를 입에 올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제는 그를 기억하는 이도 거의 없다. 마을 입구의 비석만이 그가 살았음을 전해준다. 나는 그 이유가 궁금했다. 왜 마을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이야기하지 않는 걸까. 이 질문에 대해 성염 선생님은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셨다. “그 무렵 지리산은 빨치산 토벌 작전이 이어지던 지역이었습니다. 주민들은 낮에는 군인들의 검문과 의심을, 밤에는 산에서 내려온 무장대의 요구를 동시에 겪어야 했습니다. 어느 쪽에도 피해를 입을 수 있었기에 말조심과 침묵이 일상이 되었고, 마을은 늘 불안 속에 살았습니다. 지리산은 아름다웠지만, 당시 사람들에게는 전쟁과 두려움의 공간이었지요. 그래서 주민들 마음엔 늘 복잡한 두 감정이 공존했습니다. 부모·조부모가 살아남았다는 고마움, 그러나 동시에 ‘빨갱이를 살린 빨갱이’라는 낙인이 남아 있었던 겁니다.” “빨갱이를 살린 빨갱이라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빨치산들이 와서 쌀 보급해가고, 지리산 골짜기마다 아지트가 있었거든요. 백무동의 ‘하동바위’ 부근에 빨치산 본부가 있었고, 그 근처에서 토벌대와 교전이 벌어졌어요. 그래서 주민들 인식 속에는 ‘빨갱이가 산 곳, 빨갱이가 드나든 곳’이라는 기억이 남아 있는 겁니다. 결국 부모가 살아났음에도, 의식 속에서는 ‘빨갱이 마을’이라는 딱지가 붙은 거죠. 김길동 이장은 문하마을에서 태어났지만, 집안의 뿌리가 전라도여서 외지인 취급을 받았고, 낙인도 더 무겁게 작용했습니다.” 사회학자 어빙 고프먼은 어떤 사람에게 붙은 꼬리표가 그 사람의 다른 면모를 가려버릴 때, 그것을 ‘낙인’이라 불렀다. 김길동 이장은 마을을 살린 이장이었지만, 동시에 ‘빨갱이를 살린 사람’이라는 딱지를 피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의 이름은 기억에서 멀어졌고, 이야기는 쉽게 입에 오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염 선생님은 그를 ‘의인’이라 불렀다. 잊힌 이름 뒤에 가려진 그의 용기와 희생이야말로 마을 사람들을 살린 힘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이름이 잊힌 이유는 단지 과거의 문제가 아니었다. 전쟁의 상처는 세월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았다. 성염 선생님은 버스에서 만난 한 노인의 술기운 섞인 고백을 통해, 그 기억이 여전히 사람들 마음속에 남아 있음을 전해주었다. 그리고 마을 입구에 서 있는 작은 비석만이 그날의 이야기를 짧게 기록하고 있다. “1951년 2월 8일, 군인들이 주민들을 집결시켜 총을 겨누자, 김길동 이장은 웃옷을 벗어던지며 ‘죄가 있다면 나를 죽이라, 무고한 주민들을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그의 호소 덕분에 주민들은 가까스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마을 입구의 김길동 이장 비석 김길동 이장은 본디 이곳 사람이 아니라는 한계를 넘어 마을의 신뢰를 얻었고, 목숨을 걸고 주민들을 지켜냈다. 그러나 전쟁의 시대는 그의 공적에 영광 대신 낙인을 남겼다. 그의 이야기를 다시 꺼내는 일은 한 사람의 행적을 기리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전쟁의 폭력과 그 속에서 잊힌 용기를 직면하는 일이자, 우리가 어떤 역사를 기억하고 이어가야 하는지를 되묻게 한다. 사진_ 김인호 편집장
    • 사람이야기
    2025-09-18
  • 람천-임천의 수질이 왜 계속 나빠지고 있을까요?
    람천 임천 살리기 주민 모임이 열렸습니다. 람천-임천 유역 축산시설에서 흘러나오는 오폐수가 람천 하류에 쌓여 물살이들과 주민들의 삶을 힘들게 하고 있어요. 자기가 살던 곳에서 마음놓고 살 수 있게 남원-함양 지방정부 사이 물 살리기 정책 합의와 공동 대응이 필요해 보여요. 함께 목소리 내 주세요. 자세한 내용을 전하고자 아래 발제 자료를 첨부합니다.
    • 고을이야기
    • 남원
    2025-08-29
  • 시골할아버지의 백일 선물
    백일선물 다연이
    • 문화예술
    • 섬진강 편지
    2025-08-12
  • 지리산과 섬진강을 잇는 무지개
    섬진강 무지개
    • 문화예술
    • 섬진강 편지
    2025-08-12
  • 포네의 사사로운 사토리 - 숲속의 고향집은 무사할까? 기후재난 이주시대의 서막
    7월 18일 금요일 저녁, 비가 꽤 오길래 부모님 집에 내일 가겠다고 전화를 했다. 비 많이 오는 김에 베란다 방충망 청소를 하고, 난간에 그물을 친 스파이더맨들을 대거 떨어뜨린 다음, 창문을 다 닫고 잤다. 방음 잘 되는 창문과 암막 커튼 때문에 밤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모르고 잤다. 늦잠 잘 수 있는 주말, 마구 울려대는 카톡음 때문에 깼다. 곧이어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방송을 했다. “주차장과 도로에 물이 차고 있으니, 입주민 여러분들은 통행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비옷을 입고 내려가 보니, 읍이 엉망이었다. 산사태가 나서 도로에 토사가 쌓여 있고, 물이 빠지지 않아 시장에 물이 차고 있었다. 오부면 일물리에 있는 부모님께 전화하니, 물이 끊겨서 안나오고 닭장 아래 축대가 무너졌지만 집은 괜찮다고 하셨다. 그런데 경작지가 반이 사라졌다고 했다. 여기저기서 재난의 소식들이 들려왔다. 십 년 마다 한 번 있는 수해 정도가 아닌 듯 했다. 그야말로 사상 초유의 사태. 일물의 이웃들에게 전화를 걸어봤다. 가장 험지에 사는 J 아저씨는 집 옆이 계곡이 되었지만 허리가 아파서 계곡을 넘어 탈출할 수가 없다고 했다.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아이들과 <콘크리트유토피아>를 봤다. 나무의 호흡이 통하는 숲속의 시골집에 익숙해 아파트를 좋아한 적이 없지만, 갑자기 아파트가 안전하게 여겨졌다. 곳곳에 산사태가 나서 사람이 죽기도 하고, 집이 휩쓸려가고 묻혔다. 경호강 휴게소 위에 어마어마한 산사태가 나서 국도 3호선이 끊겼다. 단계천이 범람하고, 딸기하우스들은 엉망이 되었다. 전기와 수도가 끊긴 곳이 여러 군데. 폭우가 끝나자 폭염이 시작되었다. 토사를 치운 도로에서는 뙤약볕에 구워진 흙먼지 구름이 일어났다. 큰 아이는 방학, 둘째 아이는 등교. 일물리는 올라가는 길이 양쪽으로 막혀 가 볼 수가 없고, 어딜 가서 도우고 싶어도 야외 작업이 가능한 아침과 늦은 오후에는 아이들을 돌봐야 해서 좀처럼 시간이 나지 않았다. 방학중 국어교실에 다녀온 아들이 중학교 기숙사에 이재민들이 백몇십 명 왔다고 전해주었다. 일주일 후 길이 뚫려서 아이들을 데리고 본가에 갔다. 일물마을 올라가는 급경사 도로가 시작되는 오성저수지. 제작년 12월 완공되어 물이 다 채워진 것은 1년 남짓. 저수지를 만들면서 개벌한 가파른 산비탈에서 산사태가 일어나 저수지가 메워져 버렸다. 저수지 때문에 새로 만든 도로 옆 비탈에서 어마어마한 바위들이 굴러내려왔다. 바위는 아스팔트 도로 한켠으로 치워져 있었다. 비오는 날 저녁에 일물에 갔다면 자동차 위로 바위가 떨어졌을 수도? 마을은 괜찮았지만 경작지는 반이 사라진 상태였다. 고작 1m 폭에 불과했던 도랑이 폭 15미터는 족히 되어 보이는 계곡이 되어있었고, 우리 논은 반파, 아래의 오미자밭 두 마지기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엄청난 자연의 위력 앞에 절망보다 경이로움이 느껴졌다. 손쓸 도리가 없는 상황에서는 목숨 부지에 감사할 뿐이다. 비가 올 때만 산길 위로 쫄쫄 물이 흐르던 도랑은 거대한 협곡이 되어있었다. 여기저기 다니다 보면 개벌을 한 곳에서 산사태가 일어난 경우가 많다. 무분별한 개발사업이나 임도건설, 벌목, 숲가꾸기 사업을 하지 않았더라면 이만큼 산사태가 많은 곳에서 일어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산림청의 정책을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산사태가 기후위기 탓이라는 산림청의 말도 전혀 일리가 없지는 않다. 사흘에 걸쳐, 특히 하루에 집중적으로 700mm의 호우가 내렸는데, 산사태가 안 일어날 수는 없지 않을까? 산사태는 풍화와 침식 현상의 일부다. 수십 수백 년에 걸쳐 바위틈에 물이 흘러 들어가 얼었다 녹았다 하며 쪼개진 땅속의 바위가 이처럼 큰 비가 내릴 때 떨어져 나오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다. 두려운 일이지만, 추웠다 더웠다 극단적인 날씨 변화가 잦은 기후변화 시대에 이런 재난은 일상이 될지도 모른다. 이런 일상적 재난에 적응하는 길은 무엇일까. 안전을 위해 더 많이 축적하고 소유해야 할까? 언제 사라져도 별로 아쉽지 않도록 가볍고 간소하게 살아야 할까? 사라진 산골짝의 묵은 논들은 수백년전 사람들이 들어와 계곡의 돌로 축대를 쌓고, 산에서 보드라운 흙을 긁어 채우고, 본래의 물길을 돌려서 만든 인공 구조물이다. 1~2세대 전 사람들이 도시로 떠나가 묵어버린 다락논들이 큰물에 휩쓸려 사라진 것은 인간의 흔적이 숲으로 돌아가는 자연의 과정이다. 피해가 간 모든 곳을 원상태로 돌리기는 어렵거니와,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산을 모두 콘크리트로 바를 수는 없는 일이다. 사방댐과 계류사업이 오히려 산사태를 일으킨 곳도 있다. 모든 곳을 예전의 모습으로 되돌리기보다, 복구가 어려운 장소는 숲에게 돌려주고 자연의 작용으로 변화한 지형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그런 경우에는 농경지와 거주지를 잃어버린 주민들이 안전한 곳으로 이주하고 생계를 이어갈 수 있도록 정부가 도와야 하겠다. 이번 비로 마을 전체가 침하되는 심각한 피해를 입은 생비량면 상능마을은 중앙정부에 주민 전체가 집단 이주를 건의했다. 자연 재해로 마을 전체가 집단 이주한 사례는 경남에서는 2003년 거제시 일운면 와현마을 집단 이주가 유일하다. 당시 와현마을은 태풍 ‘매미’로 큰 피해를 입어, 73가구 130여명이 거처를 옮겼다. 기후재난으로 인해 마을 하나 옮겨가는 건 미미한 시작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인류가 조만간 대이동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인간이 기후변화와 자연재해로 지형이 바뀌면서 이주를 하게 되는 것은 인류학적으로 자연스런 현상이다. 그러면서 새로운 거주지와 문화가 발생하게 되는데, 현대에 와서 토지의 소유, 재산, 경제, 자본, 법의 문제와 얽히니 땅을 포기하지 못하고 기억하던 모습대로, 지적도에 그려진 모습대로 복원하게 된다. 기후재난으로 인한 이주시대에 자칫 전쟁이나 내전으로 또 다른 희생이 일어나지 않으려면, 인간 사회의 오래된 전제 조건인 소유의 문제점을 해결하고 기후문제에 맞춤한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지구가 끝없는 인간들의 욕심과 경쟁으로 사라지고 있다. 생존경쟁이라는 말이 있다. 과거에는 생존하기 위해 경쟁해야 했다. 그러나 지금은 경쟁이 인간을 공멸로 몰고 가고 있다. AI 경쟁에서 뒤떨어지면 안된다고 아둥바둥이다. 하루종일 폰과 컴퓨터를 쳐다봐야 한다. 뭐가 그리 중하다고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을 죽이는 것일까? 한국에서 매일 1명 이상의 여성들이 남자친구나 배우자에 의해 살해 또는 살해 위협을 받는다고? 이 정도면 경쟁은 정신병이다. 제발, 안 파헤쳐도 되는 산은 파헤치지 말자. 안 만들어도 되는 댐, 안 만들어도 되는 공항은 만들지 말자. 안 먹어도 되는 고기는 먹지 말자. 안 해도 되는 일은 하지를 말자. 그리고 좀 나누고 살자. *여러 곳에서 봉사자들이 와서 산청 주민들을 도와주고 계십니다. 자원봉사센터에서는 단체 봉사를, 개인 봉사는 경남산청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에서 연결해드리고 있습니다. 재난 속에서도 도움의 손길 속에 산청 곳곳이 희망으로 피어납니다. 산청에 오셔서 나눔이라는 작은 미래의 씨앗을 심어주세요. 산청군자원봉사센터 055-970-7352 산청, 합천 수해 복구 자원봉사 연결 오픈채팅방(산청의료사협) https://open.kakao.com/o/gGKBQNIh 담당자: 010-9355-6479 송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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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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