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12-05(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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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간 하동 기사

  • 신선대에서 신선되기
    박경리 소설 '토지'로 알려진 악양의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구름다기 신선대에 있는데 직접 올라가서 보니, 구름다리도 구름다리지만 다리 입구의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일출경이 정말 형언할 수 없는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신선대'라는 지명 때문일까요? 영상을 확인하고보니 학을 타고 신선대 부근을 지나다 사람들이 구름다리를 건너며 일출을 맞이하는걸 직관하고있는 신선이 된 기분이 들었습니다 일출을 보러 가셔도 좋고 낮에 풍경을 보러 가셔도 좋고 봄여름가을겨울 겨울마다 각각 다른 감동을 준다고 하니 아무때나 가셔도 좋은 곳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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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동
    2022-01-02
  • 신선대에서 맞이한 2022년 새해 일출
    2022년 새해를 맞이하여 가까운 곳으로 일출을 보러 가기로 하였는데 하동과 구례 인근 지역 중에서 어디로 갈까 고민을 하다가 악양을 보듬고 있는 형제봉 지맥의 끝자락에 있는 신선대로 결정을 하였습니다 정확한 날짜는 기억 못하지만 최근에 해발 900m의 이곳에 길이137m, 폭 1.6m의 출렁다리가 생겼습니다 원래는 2개의 짧은 다리였었는데 철거하고 하나의 다리로 만들었는데 생각보다 무섭지않고 무엇보다 풍경이 너무 좋았습니다 저멀리 금오산과 바다까지 보이는 일출쪽 풍경부터 악양 무딤이뜰을 비롯한 동네가 한눈에 보이고 유유히 흐르는 섬진강과 무등산이 잡힐듯이 눈호강을 시켜 주더군요 1월1일 새해 첫날 지리산 자락 끝단에 올라, 지리산 기운을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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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동
    2022-01-02
  • 하동 ‘행복버스’에서 행복을 나르는 박덕미 씨
    귓볼에 살랑살랑 바람은 스치고 하늘은 드높이 파랗다. 길 옆엔 코스모스가 하늘과 서로 키재기를 하고 있다. “어디론가 슬며시 떠나볼까?” 하는 생각이 한번쯤은 머리 속을 스치는 가을이 어느새 성큼하더니 벌써 꼬리를 드러내고 있다. 큰 길에 나서보니 “행복버스”라 쓰인 버스가 눈 앞을 횡 스쳐간다. 행복? 저 버스를 타면 행복해질까? 저 버스를 타 고 가을 여행을 떠나보면 어떨까? 하는 상념이 머리를 스친다. “좋아, 오늘 행복을 한번 잡아보자!” 하동의 농어촌버스인 ‘행복버스’에 다가서면 상냥한 목소리가 먼저 귀를 훔치고 눈가에 새겨진 미소가 마스크 아래 크게 웃고 있는 이모를 만난다. 그녀는‘행복버스도우미’박덕미(54)씨다. 그녀는‘행복버스도우미’로 행복을 실어다 주는 일에 편승한지 9년차되는 ‘행복버스’ 원년멤버다. <행복버스 도우미 박덕미씨> ‘행복버스도우미’ 박덕미씨가 하는 일은 ‘어르신유모차’를 소유한 분들이 버스에 오르내릴 때 일일이 잡아주고 앉으신 후 안전벨트를 매도록 도와드리는 것이다.손님이 제일 많은 장날 큰 짐을 가진 분들을 도와드리고 버스운행 중에는 승객의 안전에 최선을 다한다. 하동소식에 밝지 못한 분들을 위해 최신 뉴스도 전해드린다. 요즘은 급히 병원을 찾아야 할 경우 새로 응급실을 갖춘‘중앙병원’위치를 알려드리며‘회남재걷기’나앞으로다가올‘하동세계차엑스포’ 같은 축제 일정도 알려드린다. 관광객이 내려야 할 목적지와 질문에 답해 주고 최참판댁, 서산대사길, 동정호 같은 주요 관광지 안내는 그녀가 즐겨 하는 일이다. 최근 팬데믹 시간을 지내며 터미널 소독에서 화장실 청소까지 그야말로 일당백 팔방미인의 역할이 그녀가 하는 주요 업무다. 무엇보다 오랜만의 나들이에 깊은 잠에 빠진 어르신이 계시면 깨워서 살고 계신 곳에 내려드리는 일도 빼 놓을 수 없다. 이 일을 오래하다 보니 어느 분이 어디서 내려야 하는지도 대충 알게 된 것이다. “이전에는 어르신들과 대화하는 것이 즐거움 중 하나였는데 지금은 코로나 땜에 못해요.”라고 아쉬움을 전한다. “예전에 아흔 넘으신 진교의 어르신 몇 몇 분이 나들이 삼아 매일 타셨는데 지금은 안 타신지 오래되고 자주 보이시던 어르신이 안 보이는 일이 제일 안타깝죠. 더운 여름엔 버스가 시원하니까 왕복2500원에 하동 한 바퀴 여행하는 분도 꽤 계셔요. 요즘 같은 계절에 버스 타고 하동 일주하면 가을여행 딱 이죠. 또 초등학생 때부터 버스 타고 다니던 아이가 이쁜 청년이 되어 알바 한다며 만날 땐 정말 반갑지요.”라며 마치 손님 한분 한분이 가족인 것 처럼 말한다. 일녀일남을 키우며 남편과 단란한 가정을 꾸리던 주부였던 그녀가 이 일을 시작한 지는 어느새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을 내다보고 있다. “아들이 장애가 좀 있는데 어렸을 땐 남들과 다르니 학교에서 체벌이 심했고 당시엔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도 많아 힘들었어요. 지금은 독립해서 경제 활동도 합니다.” 두 아이가 성인이 되어 독립할 즈음 그녀 는 우연히 군청홈피에서 모집 광고를 보고 응모 하여 이제 하루 8시간 주 5일 근무 9년 경력의 전문가가 되었다. 그러나 계약직인 것은 처음과 마찬가지다. 하동에서 나고 자란 그녀의 하동 사랑은 누구보다 특별하다. “관광 안내를 위해 하동에 대해 공부도 많이 했어요. 내 고향이지만 하동에 대해 저도 몰랐던 것을 많이 알게 됐어요.”라며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 제 성격에 꼭 맞습니다. 힘들다기보다는 즐겁고 행복합니다. 가끔 타는 외국인도 도와주고 내년에 있을 ‘ 하동세계 차엑스포’에 대비해 영어도 배 워요. 이 일은 어느새 저의 마음과 생각을 나누는 일이 되었어요. 아침에 일하러 나설 때면 콧노래가 절로나옵니다.”라며행복버스도우미박덕미씨는오늘도 행복 버스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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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동
    2021-12-27
  • 하동의 미래 먹거리는... 섬진강 모래톱!
    22년 만에 섬진강 모래톱에 굴삭기가 나타났다 하동군의 대표적인 관광지인 하동송림, 평사리공원, 섬진강100리 테마로드, 구재봉 활공장, 고소산성, 스타웨이 등은 모두 섬진강의 모래톱을 기반으로 하는 곳이다. 관광객들은 전망이 좋은 곳에 올라 백운산과 지리산 사이의 협곡에 발달한 모래톱 사이로 구불구불 흐르는 섬진강의 아름다움에 환호한다. 또한 하동송림, 평사리공원에 펼쳐진 모래톱에 내려가 고운 모래를 즐긴다. 미래 하동 100년 먹거리의 핵심이 바로 이 모래인 것이다. 전국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하동만의 관광 자원인 모래톱이 위협받고 있다. 재해예방을 명분으로 대규모 준설이 강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2004년, 섬진강 모래채취 영구금지 약속은? 1999년까지 섬진강의 모래톱에서는 굴삭기, 덤프트럭 등의 장비를 항상 볼 수 있었다. ‘열악한 지방재정 확충’이라는 명목으로 모래를 채취하여 판매하는 이른바 ‘골재채취 사업’을 각 지자체가 앞다투어 시행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2004년 12월 영산강유역 환경청과 섬진강유역 11개 지자체장이 모인 섬진강 환경행정협의회에서 ‘모래채취 휴식년제’의 연장 필요성에 동의하며 ‘섬진강에서의 모래채취를 영구적으로 금지한다’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이 결의문으로 지금까지 섬진강에서 모래채취는 금지되고, 섬진강은 점차 예전의 모습으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하천기본계획과 재해복구사업은 과연? 국토교통부는 정기적으로 하천을 관리하기 위해 하천기본계획을 세운다. 하천기본계획에는 하천 내 지구설정, 시설물 설치, 하도정비와 퇴적토 준설등의 사업이 포함된다. 이 기본계획에 따라 하천관리가 이루어지는데, 문제는 하천관리의 기본 방향이 각종 시설물의 설치와 준설이라는 ‘정비’에 있다는 것이다. 하천기본계획에서는 모래를 하천의 일부가 아닌 지장물, 즉 ‘방해가 되어 없애야 할 대상’으로 보고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문제가 된 두곡지구 재해복구사업 역시 하천기본계획을 기반으로 각 지구단위 사업이 진행된다. 하동군에서 홍보하는 두곡지구 재해복구사업의 목표는 ‘재첩서식지 복원과 홍수 예방’이다. 하지만 이 사업이 충분한 과학적 근거를 갖고 있는지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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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동
    2021-12-27
  • 랜선여행 - 악양을 소개합니다
    최참판댁으로 이름난 악양을 4k 영상으로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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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동
    2021-10-06
  • 하동 송림에서 나눈 이야기
    섬진강변의 멋짓 소나무숲. 하동송림에서 숲에 대해 나눈 이야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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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동
    2021-09-03
  • 지리산 숲속에서 불편한 실험을 시작하다
    감자 (지리산필름) 도시 생활을 정리하고 지리산에 돌아온 것은 2018년 11월이었다. 부모님이 장기 여행을 떠나며 개 두 마리와 고양이 밥을 챙겨달라는 요청 때문이었다. 3개월간 불무장등의 단풍이 지는 모습을 홀로 바라보며 안식과 위로를 얻었다. 더 이상 취업과 내집마련을 위해 고군분투하지 않기로 했다. 내가 자란 곳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늙어 죽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도 이 무렵이었다. 내가 사는 곳은 지리산 남부능선의 끝자락 하동 형제봉 아래 ‘회강골’이라는 골짜기에 있다. 2019년 2월, 이곳에 양수발전소라는 두 개의 댐을 짓는 사업설명회 일정이 알려졌다. 계획에 따르면 우리 집은 수몰위기에 처해 있었다. 억울한 마음이 들어서 댐 건설 반대활동을 시작했다. 다행히 하동의 유치계획은 철회되었다. 이 때 나는 하동의 화력발전소 인근 명덕마을 주민들을 처음 만나게 됐고, 고전면의 돈사건설에 반대하는 주민들도 만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전기의 편리함과 육류소비를 누릴 수 있는 배경에는 신규 발전소 건설과정에서의 주민갈등, 발전소인근 주민들의 암 발병, 무책임한 공장식 축산업의 팽창으로 인한 문제점이 있다는 사실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렇다면 나는 이곳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양수발전소 반대활동 이후 지역의 활동가들과 연결되면서 산내에 하무와 상이, 온빛, 상글을 만나고 교류하기 시작했고, 구례에서 새로운 삶을 준비하는 아라도 함께 만나 이야기하며 우리가 지리산에서 어떤 삶을 기대하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에 일본 미야자키 현의 ‘표주박시장’에 다녀오면서 우리의 기대는 구체화되었다. 표주박시장은 동일본 대지진을 겪은 겐고망 가족이 중심이 되어 한 달 동안 전기와 화석연료, 일회용품 없이 살아가는 캠프이자 자급적인 전망을 내놓기 위한 시장이다. 우리는 각자 ‘표주박시장’에서 만난 친구들과 경험들에 관해 이야기 하던 중 하마터면 댐 건설로 잠길 뻔 했던 회강골 계곡에서의 ‘지리산게더링(혹은 캠프)’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지리산게더링은 2020년 6월과 7월에는 2박3일씩 공간에 필요한 것들을 만드는 준비워크샵을 진행했다. 첫 번째 워크샵에서는 계곡의 돌과 흙을 이용한 화덕을 만들고, 이 화덕으로 밥을 지어먹고 요리를 해먹기로 했다. 두 번째 워크샵은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할 퇴비간과 기존에 있던 생태화장실을 리모델링 하는 작업을 함께 했고, 세 번째 워크샵은 9월19일부터 ‘코로나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모일까’라는 주제를 놓고 서클을 열면서 본 캠프를 시작했다. 8월 중순부터 코로나19 확진자가 급격하게 증가함에 따라 일정과 참가자들을 어떻게 조율할까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그래서 9월 1일부터 10월 1일까지 진행하기로 했던 일정은 미뤄졌고, 공개적인 홍보보다는 친구를 통해 초대장을 발송하는 방식으로 참가자를 모집했다. 어떤 시기에는 20명 가까운 사람이 찾아올 때도 있었고, 어느 날에는 한명, 두 명 정도 캠프를 지키는 때도 있었다. 지리산게더링은 모두가 평등하고 자유로운 모임을 추구하고 정해진 규칙이나 계획이 없었다. 하지만 초청장에 안내문을 첨부해 우리의 취지를 설명했다. 이번 캠프에는 기본적으로 비건 요리를 해먹는다던지, 성별/장애/연령 등에 기반한 혐오발언을 하지 않기로 하는 등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식사당번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았고, 자고 싶을 때 자고, 먹고 싶을 때 먹었다. 계곡에서는 수영을 즐기기도 하고 캠프장소의 뒷산인 형제봉에서 산악열차건설 이슈가 생기면서 산악열차반대활동에 참여하기도 했다. 산에 떨어진 밤을 주워 밤조림을 해먹기도 했다. 밤마다 모닥불 앞에 모여 생태적 전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계획보다는 나의 몸과, 친구들과, 자연의 흐름 속에 한번 맡겨보는 생활이었다. 현재 지리산게더링의 고민은 크게 다섯 가지인데, 장소의 관리에 관한 문제와 먹거리를 사거나 얻지 않고 자립할 수 있는 방법, 불과 전기 등의 에너지를 자립하는 것, 그리고 어떻게 하면 지리산을 기반으로 생태적인 네트워크를 만날 수 있을까, 생태적 실험의 장을 어떻게 만들어갈까에 대한 고민이다. 사실 지리산게더링의 실험은 아직 초기단계고, 고민해야 할 지점이 많지만, 해 볼만 한 실험이라고 생각하고 천천히 즐겁게 이어나가려고 한다. 사람들에게 캠프에 대해 설명할 때마다 명확하게 전달하기 어려웠다. 사람에 따라서는 지리산게더링이 ‘환경캠페인’이라거나 ‘생존캠프’라거나 ‘삼시세끼’라거나 하는 식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사실 그것보다는 자연과, 사람과, 내 몸과 조금 더 연결감을 갖고자 하는 실험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싶다. ‘더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시다면 한 번 와보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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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동
    2021-06-01
  • 옛 사람들의 흔적이 곳곳에 서린 하동군 옥종면 문화유산 답사기
    이상윤 (사단법인 숲길 상임이사) [ 사단법인 숲길이 2019년 지리산권 5개 시⋅군 ‘백의종군로’ 걷기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그 가운데 하동군 옥종편은 지역주민들과 3차례에 걸쳐 지역의 문화유적지를 둘러보고 지역의 인문학 소양을 높이는 기회를 가졌다. 앞으로 지역 역사 교육의 현장으로 자리매김할 방안을 찾기로 했다. 그 일환으로 ‘지리산人’에 답사기를 싣는다. / 편집자 주 ]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그 곳은 하동과 약간 다르다. 원래 진주목이었던 곳. 그래서일까, 지금도 옥종은 생활권으로 보면 진주가 가깝다. 행정구역으로 하동군이지만 하동읍으로 장을 보러 온다면 재를 넘어 굽이굽이 와야 한다. 황토가 유명하고 선사유적지가 있다. 아마 맨 처음 사람이 농경생활을 할 때부터 이 곳에서도 인간 문명이 태동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긴 세월을 간직한 고장답게 시대마다 걸출한 인물들이 나타났다. 지난 8월, 무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 우리는 ‘옥종 문화유적지’를 탐방했다. 이순신 백의종군로 답사가 목적이지만 옥종 곳곳에 있는 선인들의 발자취를 그 곳 분들과 함께 했다. 시골살이를 해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하우스 농사가 많은 옥종의 특성상 제일 무더울 때야말로 잠시 쉴 때여서 지역 분들과 나눔을 하려면 이 때가 적기이다. 악양 사람, 하동읍 사람, 그리고 걷기를 위해 참여한 분들과, 옥종 향토사학자, 옥종면장, 그리고 농민회 활동을 하는 분들이 모였다. 청수역(하동군 옥종면 정수리)에서 모이다. 이 곳은 이순신장군이 백의종군을 할 때 들렀고 말에게 먹이를 주고 쉬었다는 기록이 있는 곳. 백의종군로 사업으로 정자를 짓고 역사를 소환했지만 정확한 장소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고단한 여정을 이어갔을 장군의 마음을 헤아려본다. 백의종군하라는 명을 받고 길을 나서 간단치 않은 여정을 소화하고 있다. 합천에 있는 권율장군을 만나 소임을 받아야 한다. 그가 이 길을 갈 때는 없었지만 청수역 인근에는 포은 정몽주 선생을 기리는 옥산서원이 있다. 우리 일행은 옥산서원 강당에 올라 오늘의 여정을 공유하고 서로 인사를 나눈다. 이 날 우리를 안내해 주신 향토사학자 한충녕 선생은 옥종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나눠주신다. 고려 강민첨 장군, 강감찬 장군에 얽힌 이야기, 연산군의 스승이었다가 그가 왕위에 오르자 역적으로 처형된 지족당 조지서의 애환, 동학농민항쟁 최후의 결전을 위해 집결한 옥종 고성산성, 남명의 후학으로 일생을 꼿꼿한 선비로 산 겸재 하홍도. 뿐만 아니라 정몽주 선생의 손녀로 역적으로 몰려 처참하게 죽은 남편 지족당 조지서의 시신을 수습하여 고향 옥종에 모신 정씨 부인의 애절한 사연. 노인 향토사학자의 열정을 제지하지 않으면 오늘 하루 일정에 차질이 생길 것 같아 부랴부랴 갈무리하고 답사를 시작하였다. 옥산서원의 백미는 포은집 장판각 옥산서원 옆에는 정몽주의 문집판각(文集板刻) 500여 판이 보관된 장판각이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단심가를 비롯, 포은 선생의 저작들이 목판으로 보관되어 있는 곳인데... 허술하기 짝이 없다. 문화재를 대하는 태도 역시 강자의 논리를 따른다. 고려의 충신이었으나 조선으로 승계되지 않은 사람 포은. 선죽교에서 이성계의 아들이 보낸 자객의 철퇴를 맞아 숨을 거둔 비운이 장판각으로 이어지는 듯하다. 이 날 우리는 포은집 장판각 자체를 훌륭한 문화유산으로 만드는 일, 지역 문화 자산에 대한 자긍심을 높이는 저변을 만들자는 다짐을 했다. 지족당 조지서의 무덤, 태실 그리고 정씨부인 정려 겸재 하홍도와 모한재 남명 조식 선생이 지리산을 찾은 이유 가운데 한 사람이 지족당 조지서다. 그는 연산의 스승이었으나 그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다. 그 주검을 거둔 그의 아내 정씨는 낭군의 시신을 수습하여 선산에 묻었다. 지족당이 복권된 뒤에 그 부인에게 조정은 정려를 내렸다. 지족당은 옥종 위연마을에서 태어났다. 그가 장원 급제를 세 번 하여 삼장원마을로 불리게 되었다. 마을 인근 산에 그의 무덤이 있고 남명 조식이 쓴 묘비가 있다. 남명은 고려 한유한, 조선의 조지서, 일두 정여창을 보기 위해 지리산을 찾았고 지리산 유람을 옥종 정려에서 마무리 한다. 산수를 보니 세상과 인간이 보인다는 갈음과 함께 그는 지리산 사람이 된다. 그만큼 그에게 이 곳 삼장 조지서와 그 부인의 지조는 깊은 울림이었다. 옥종은 남명이 기거하며 후학을 양성했던 덕산과 강을 사이에 둔 까닭에 그의 문하에 들거나 교류하기가 자연스러웠다. 남명의 제자 가운데 선생과 같이 살고자 한 사람이 겸재 하홍도. 옥종 안계에는 그를 그리는 사당 모한재가 있다. 이 곳은 겸재 하홍도가 학문을 갈고 닦으며 후학을 가르치던 곳이며, 미수 허목을 비롯한 당대의 유학자들과 교류하던 곳이기도 하다. 겸재 하홍도는 벼슬을 단념하고 재야에서 공부하며 실천하였던 당대의 대표적인 유학자 중 한 사람이며, 특히 예학에 밝았던 인물이다. 모한재에는 하홍도의 위패가 있는데, 위패는 원래 종천서원(宗川書院)에 있었으나,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서원이 훼철되면서 모한재로 옮겨 오게 되었다. 모한재 강당 마루에는 옛 종천서원의 현판 등도 보관되어 있다. 덕천강에 자리 잡은 강정, 흥룡리 이홍훈가 백의종군, 이순신의 마음 다잡기 백의종군에 나선 이순신은 하동지역을 오고 간다. 한 번은 합천에 있는 도원수 권율을 만나러 가는 길, 또 한 번은 수군통제사 재임 이후 구례⋅여수로 가는 길에. 합천 가는 길, 옥종 청수역에 들러 말먹이를 주고 쉬었다고 한다. 합천에서 권율을 만나 조선군의 패배 소식을 접하고 전황을 살피기 위해 남해를 두루 다닌다. 조경래가에 머물다 재수임을 받은 것으로 되어 있다. 조경래가와 강정은 덕천강을 사이에 두고 있다. 조경래가 앞 들판에서 병졸을 모으고 훈련시키고, 전선을 가다듬는 전략회의를 했다는 강정. 지금은 하우스 단지로 바뀌고 기념탑만이 그날을 추억하고 있다. 재수임 이후 장군은 행장을 꾸려 남해안 곳곳을 다니며 전황을 분석한다. 그리고 하동을 지나 구례, 순천, 여수 지역을 돌며 삼군 수군을 재건한다. 백의종군 때 머물렀던 흥룡리 이홍훈가는 복원을 해 놓았다. 백의종군을 거친 이순신은 재수임 이후 조선수군을 재건하여 명랑해전으로 대승을 거둔다. 고성산성과 동학기념탑 결사항전과 최후 집결지 1894년 전라도에서 농민군의 봉기가 시작되자, 같은 해 7월 하동을 비롯한 서부 경남 농민들도 봉기에 나서 한때 진주성을 함락시키기도 했다. 일본군의 반격으로 물러나 이 곳 고성산성을 중심으로 항거했다. 10월 14일에 5천여 명으로 구성된 농민군은 이 곳으로 출병한 일본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지만 결국 패하고 말았다. 이 전투에서 농민군 186명이 전사했다. 1895년 동학농민전쟁 당시 서부경남의 동학농민군과 일본군의 전투현장인 ‘고성산성’(하동군 옥종면)과 ‘동학혁명군 추모탑’은 최후의 민중항거를 기리기 위해 옥종 사람들이 건립하여 해마다 그들의 영혼을 기린다. 고성산성은 언제 축조되었는지 모르지만 산성이 자연스럽다. 요즘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질서는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렵다. 남북관계, 한일관계, 북미관계는 물론 남남갈등이 예사롭지 않다. 하동군 옥종면 여기저기 남겨진 문화유적지는 우리나라의 고단한 역정이 물씬 묻어있다. 역사의 수레바퀴에서 자유로운 삶이 있을까? 옥종 문화유적지를 둘러보는 동안 우리는 이순신이 지키고자 했던 것, 정몽주와 조지서 등 이 땅의 선비들이 완성하고자 한 인간정신, 그리고 항쟁의 깃발아래 모인 동학 민중이 꿈꾼 세상은 결코 다르지 않다는 것을 확인했다.
    • 고을이야기
    • 하동
    2021-06-01
  • 화개골에서의 긴박했던 한 달
    배 혜 원(하동 양수발전소 반대대책위 사무국장) 오지 않을 것 같던 봄은 다시 돌아왔다. 벚꽃은 다시 피고 졌고, 무채색에 가까웠던 황장산은 꽃나무와 돋아나는 새순들로 울긋불긋 하다. 잔인한 계절이라는 4월도 마무리되어 간다. 나는 화개에서 자랐다. 네 살 때 부모님과 함께 이곳으로 이사왔고, 도시에 있는 고등학교로 유학을 떠날 때까지 줄곧 화개에 있었다. 화개는 아름다운 곳이다. 십리벚꽃길과 조영남의 <화개장터>라는 노래로 유명하고, 김동리의 소설 <역마>의 주 무대로도 알려져 있다. 여름이면 아름답고 시원한 계곡물에 발을 담그러 오는 관광객들로 붐비는 곳이고, 지리산 단풍을 보러 오는 등산객들도 많은 곳이다. 어느 날, 마을 회의에 다녀온 어머니는 우리 마을에 양수발전소 댐이 생긴다고 했다. 댐이 생기면 우리 집은 수몰 될지도 모르며, 이사를 가야한다고 했다. 애증의 공간이지만 내가 발붙이고 편히 쉴 수 있는 곳은 집이었다. 나에게 어떤 권능이 있다면, 우리 집이 수몰되는 것은 막고 싶었다. 마을사람들은 급하게 주민대책위를 만들고 반대운동에 나섰다. 마을사람들, 화개사람들 뿐 아니라 지리산 전 지역에서 반대운동에 동참하였다. 이에 하동군은 2월 21일에 예정되었던 사업설명회를 취소하고, 유치신청계획을 포기한다는 공문을 전달했다. 하동 화개 양수발전소 반대운동은 2월 21일 하동군이 백기를 들면서 마무리 되었다. 하지만 이 사건의 해명을 듣기위한 3월5일 군의회 의장 간담회와 3월 14일 하동군수 간담회까지 포함하면 한 달 정도의 시간이 걸린 셈이다. 아래는 이 문제에 대한 대응과정을 일지 형식으로 정리한 것이다. 2월 11일, 양수발전소는 무엇일까? 나는 학창시절에 산청에 있는 양수발전소를 견학한 경험을 떠올리고 검색을 시작한다. 검색을 통해 찾아낸 한국 수력 원자력(이하 한수원)의 자료에 의하면 계획된 댐의 크기는 생각보다 크다. 도심마을에 생기는 댐은 하부댐으로, 둑의 높이는 87미터, 길이는 430미터에 이르렀고, 저수량은 200만톤이었다. 부춘마을에 생기는 상부댐 또한 이와 비슷한 크기다. 아름다운 지리산, 고향산천에 거대한 댐이 두 개나 들어선다는 이야기다. 일부 주민들은 마을에 조그만한 식수댐이 생긴다는 이야기로 오해했다고 한다. 양수발전소가 만들어지면 반경 5km 내에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보상을 해준다는 이야기가 돌고, 전기를 할인해준다거나, 지역민에게 각종혜택이 주어진다는 식으로 찬성여론이 조성되는 조짐이 보인다. 받아본 사업설명회 자료는 양수발전소의 좋은 점을 이야기하는 홍보자료였다. 화개면민은 3000여명이고 도심마을 주민은 30여명이다. 홍보자료를 두고 찬반을 나누면 불리할 수도 있다. 2월 13일, 불안해진 도심마을 주민들은 반장 홍용표씨를 중심으로 주민대책위를 구성하고 행동에 나선다. 목표는 2월 21일 ‘화개면 양수발전소 유치 사업설명회’를 저지하는 것이다. 첫 번째로 군의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군의원은 주민설명회가 개최되기 전까지 찬성도 반대도 할 수 없다는 얘기를 하며, 찬성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들어봐야 한다는 얘기 또한 덧붙인다. 주민들은 당황한다, 양수발전소 문제가 과연 찬성과 반대로 나뉠 수 있을까? 첫 번째로 면사무소 방문부터 시작한다. 면에서는 친절하게도(?) 주민설명회 자료를 주민들에게 나누어주고, 주민들은 댐 건설 예정지의 도면을 보고 탄식한다. 면장은 일단 21일 사업설명회를 들어보고 결정해도 늦지 않다는 식으로 주민들을 회유한다. 하지만 주민대책위 사람들은 21일 사업설명회는 절대불가하며, 주민대책위 차원에서 저지할 것이라고 통보한다. 이어서 군청을 방문하고, 군청에서도 면사무소에서와 마찬가지로 진행된 것이 아무것도 없으며, 주민사업설명회에서 의견을 피력하라는 답변을 듣는다. 주민들은 그 길로 달려가 현수막과 유인물을 인쇄소에 맡기고, 경찰에 집회신고서를 낸다. 21일 사업설명회를 막기 위한 모든 합법적인 방법을 동원한다. 이외에도 다른 지역들과 연대할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한다. 2월 15일, 주민대책위는 같은 편을 만나기 시작한다. 하동참여자치연대는 무상급식 지키기 운동과 홍준표 전 경남도지사와 윤상기 하동군수의 주민소환운동을 앞장섰던 단체이고, 금오산환경지키미는 양보면에 대규모 돈사유치 반대에 앞장서고 금오산 일대의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결성된 단체다. 그리고 이외에도 경남 환경운동연합, 녹색당, 정의당 등에서도 연대의 뜻을 밝혀오고, 주민 대책위는 <양수발전소 반대 하동군 대책위>로 확대 개편된다. 양수발전소 반대 하동군 대책위에서는 단체 카톡방을 만들고, 화개면민, 하동군민을 포함한 지리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모두 초대해 양수발전소 반대 관련 정보를 공유하고 의사표현을 개진한다. 2월 18일, 도심마을 사람들의 반대운동은 본격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한다. 크게 세 가지 방법으로 이루어진다. 첫 번째는 현수막을 걸고 유인물 등을 배포하는 홍보운동이다. 여러 가지 현수막 문구를 생각하지만, 시간이 촉박한 관계로 한 가지 문구로만 정한다. 그리고 각종 단체들도 이름을 걸고 현수막을 게시한다. 두 번째는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설득하는 방법이다. 주민대책위 대표 홍용표씨를 필두로 화개 사람들을 잘 아는 사람들이 동네 구석구석에 있는 친지들을 찾아다니며 설득한다. 세 번째는 온라인 운동이었다. 나는 사람들을 만나고 다닌 결과 여론이 찬성쪽으로 기울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조급해지고, 청와대 국민청원 글을 올려 홍보에 적극 활용한다. 그리고 단체 톡방은 생각보다 많은 힘을 발휘한다. 심각성을 느낀 주민들이 향우회 등을 통해 사람들을 모은 톡방은 한때 450여명이 참여해서 의사를 개진하고, 서로 정보를 공유할 정도로 커진다. 이 모든 운동은 2월 21일 사업설명회를 무산시키기 위한 운동의 과정이다. 면사무소 앞마당에 천막을 치고, 화개장터 입구에 탁자를 놓고 서명운동과 확성기를 사용한 방송으로 양수발전소 문제를 홍보하기 시작한다. 이 와중에 다양한 사람을 만난다. 그래도 일단 주민설명회를 들어봐야 한다는 사람과, 한철장사가 방해되니 확성기를 꺼달라는 화개장터 상인들도 있다. 나는 다시 한번 답답해진다. 7년 가까운 공사기간동안 화개천 물이 마르고, 공사차량들이 왔다갔다 하는 동안 화개를 찾는 사람들이 있을까. 그렇다면 화개장터의 상인들도 자유롭지 않다는 것은 상인들도 모를 리 없기 때문이다. 같은 날, 화개면사무소 2층에서는 주민자치위원회가 열리고 긴급안건으로 화개면 양수발전소 반대 안건이 올라오고, 재적위원 22명중 19명의 반대로 안건이 통과된다. 이제야 정영섭 군의원은 공식적인 반대의사를 표명한다. 양수발전소 사업설명회를 추진하는 하동군 직원은 군의원을 비롯한 주민들이 직접적인 반대의사를 표명했기 때문에 사업설명회를 재검토하겠다는 이야기를 한다. 2월 21일, 아침부터 주민들은 분주하게 움직인다. 천막을 펴고, 음향장비를 점검한다. 준비한 유인물과, 몸자보를 사람들에게 나누어 준다. 추운 날씨에도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이 모인다. 150여명 정도로 모일 것을 예상한 것과는 달리 200여명 가까이 모인 것으로 추산한다. 이날 면사무소 앞 주차장에서는 군 직원들이 왔다갔다 하며 공문을 주고 받는다. 집행부 사람들은 사회를 보는 나에게 귓속말로 하동군으로부터 양수발전소 사업을 포기한다는 공문이 나왔고, 공문이 수정중이라는 이야기를 전해준다. 오전 11시, 집회가 시작된 지 2시간 만에 나는 공문을 받아들고 읽기 시작한다. ‘주민설명회를 앞두고 대다수의 주민이 양수발전소 건립을 반대한다는 의견을 표명함에 따라 우리 군에서는 양수발전소 건립사업을 한수원에 공모하지 않을 계획이며 또한, 본 사업을 더 이상 추진하지 않을 것임’이 주 내용이다. ⟪이하 중략⟫ 주민들의 힘으로 아름다운 화개동천을 지켜냈다는 자부심보다도 여덟 군데 후보지 중에 우리 동네만 빠졌을 뿐, 3군데는 반드시 지어질 것이라는 정부의 8차 전력 수급 계획은 오히려 마음을 무겁게 한다. 또한, 하동화력발전소 주변 지역 주민들의 건강문제, 양보면 폐기물 처리장 문제, 태양광 발전설비를 위한 무분별한 환경파괴 등도 함께 수면위로 떠올랐다. 하동군의 양수발전소 문제는 주민들의 승리로 끝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하동의 에너지와 환경문제는 여전히 주민들을 괴롭힌다. 부군수 기자회견에 이은 주민대책위 입장문에서도 밝힌 것처럼 금성면 광역 쓰레기 소각장 건립 문제, 양보면 폐기물처리장 문제, 무분별한 벌목과 함께 진행되는 태양광 발전설비 문제, 그리고 하동화력발전소 인근 명덕마을 주민들의 문제 등이 남아있다. 나는 내가 살고 있는 이 고장에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양수발전소 반대 투쟁을 통해 알게 되었다. 남은 7개의 후보지 중 한 곳에는 양수발전소가 지어진다는 것도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남은 숙제일 것이다. 나는 하동의 환경현황들과 신규양수발전소가 들어서는 7개의 후보지를 돌아보는 환경여행을 기획한다. 코스는 두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는 하동지역 인근을 환경이라는 주제로 돌아보는 여정이다. 지리산 둘레길 코스에는 하동군과 산청군에 걸쳐있는 산청양수발전소가 있고, 하동군 금성면에는 광역 쓰레기 소각장과 하동 화력발전소가 있다. 그리고 하동군 양보면 폐기물처리장에도 방문해 인근 주민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두 번째 코스는 신규 양수발전소 후보지로 선정된 나머지 7곳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가까운 곡성군에서는 하동처럼 양수발전소가 조기에 무산되었다는 소식이 들리고, 경북 봉화군에서는 지자체에서 적극 추진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나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봉화군부터 방문해 주민들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계획을 세운다. 양수발전소 문제는 나에게 에너지가 어떤 과정을 거쳐 생산되는지, 그리고 우리 삶이 편리해지는 만큼 피해와 불편을 겪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게 해주는 계기가 되고, 우리의 삶이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도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 촉발 원인이 되었다. 나는 계속 지리산에 살면서 영화를 만들고 사람들과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 나누면서 살아가기로 하고, 그 첫 작업으로써 ‘하동 양수발전소 반대운동’을 다큐멘터리 영화로 만들기로 하고 제작에 나섰다. 어느덧 계절은 여름으로 성큼 접어들고 있다.
    • 고을이야기
    • 하동
    2021-06-01
  • 201904 하동소식
    오지 않을 것 같던 봄은 다시 돌아왔다. 벚꽃은 다시 피고 졌고, 무채색에 가까웠던 황장산은 꽃나무와 돋아나는 새순들로 울긋불긋 하다. 잔인한 계절이라는 4월도 마무리되어 간다. 나는 화개에서 자랐다. 네 살 때 부모님과 함께 이곳으로 이사왔고, 도시에 있는 고등학교로 유학을 떠날 때까지 줄곧 화개에 있었다. 화개는 아름다운 곳이다. 십리벚꽃길과 조영남의 <화개장터>라는 노래로 유명하고, 김동리의 소설 <역마>의 주 무대로도 알려져 있다. 여름이면 아름답고 시원한 계곡물에 발을 담그러 오는 관광객들로 붐비는 곳이고, 지리산 단풍을 보러 오는 등산객들도 많은 곳이다. 어느날, 마을 회의에 다녀온 어머니는 우리 마을에 양수발전소 댐이 생긴다고 했다. 댐이 생기면 우리 집은 수몰 될지도 모르며, 이사를 가야한다고 했다. 애증의 공간이지만 내가 발붙이고 편히 쉴 수 있는 곳은 집이었다. 나에게 어떤 권능이 있다면, 우리 집이 수몰되는 것은 막고 싶었다. 마을사람들은 급하게 주민대책위를 만들고 반대운동에 나섰다. 마을사람들, 화개사람들 뿐 아니라 지리산 전 지역에서 반대운동에 동참하였다. 이에 하동군은 2월 21일에 예정되었던 사업설명회를 취소하고, 유치신청계획을 포기한다는 공문을 전달했다. 하동 화개 양수발전소 반대운동은 2월 21일 하동군이 백기를 들면서 마무리 되었다. 하지만 이 사건의 해명을 듣기위한 3월5일 군의회 의장 간담회와 3월 14일 하동군수 간담회까지 포함하면 한 달 정도의 시간이 걸린 셈이다. 주민들의 힘으로 아름다운 화개동천을 지켜냈다는 자부심보다도 여덟 군데 후보지 중에 우리동네만 빠졌을 뿐, 3군데는 반드시 지어질 것이라는 정부의 8차 전력 수급 계획은 오히려 마음을 무겁게 한다. 또한, 하동화력발전소 주변 지역 주민들의 건강문제, 양보면 폐기물 처리장 문제, 태양광 발전설비를 위한 무분별한 환경파괴 등도 함께 수면위로 떠올랐다. 이 글은 ‘하동 양수발전소 반대운동 일지’를 정리한 일부이다. 2월 11일, 양수발전소는 무엇일까? 나는 학창시절에 산청에 있는 양수발전소를 견학한 경험을 떠올리고 검색을 시작한다. 양수발전소는 상부와 하부, 두 개의 댐으로 구성된다. 원자력 발전을 포함한 발전소에서 잉여전력이 생기면, 하부 댐에 있는 물을 상부 댐으로 끌어올려 놨다가, 전력수요가 높아 전력공급이 불안정할 때 상부 댐에 있던 물을 하부 댐으로 흘려보내 긴급한 전력공급을 하는 비상용 발전소이다. 상시 전력공급 시스템도 아니고, 비상 전력공급 시스템을 지리산 계곡에 짓는다고? 이것은 백번 양보해도 상식적인 일이 아니다.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른다. 학창시절 보았던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정부의 개발논리에 맞서 싸우다 패배한 사람들의 비극적인 장면들이 떠오른다. ‘화개면 양수발전소 유치 사업 설명회’는 2월 21일 오전 10시에 예정되어 있다. 수소문 한 결과 사업설명회는 사업을 진행하기 위한 과정으로, 주민대책위를 구성하여 사업설명회를 막아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검색을 통해 찾아낸 한국 수력 원자력(이하 한수원)의 자료에 의하면 계획된 댐의 크기는 생각보다 크다. 도심마을에 생기는 댐은 하부댐으로, 둑의 높이는 87미터, 길이는 430미터에 이르렀고, 저수량은 200만톤이었다. 부춘마을에 생기는 상부댐 또한 이와 비슷한 크기다. 아름다운 지리산, 고향산천에 거대한 댐이 두 개나 들어선다는 이야기다. 일부 주민들은 마을에 조그만한 식수댐이 생긴다는 이야기로 오해했다고 한다. 양수발전소가 만들어지면 반경 5km 내에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보상을 해준다는 이야기가 돌고, 전기를 할인해준다거나, 지역민에게 각종혜택이 주어진다는 식으로 찬성여론이 조성되는 조짐이 보인다. 받아본 사업설명회 자료는 양수발전소의 좋은 점을 이야기하는 홍보자료였다. 화개면민은 3000여명이고 도심마을 주민은 30여명이다. 홍보자료를 두고 찬반을 나누면 불리할 수도 있다. 2월 13일, 불안해진 도심마을 주민들은 반장 홍용표씨를 중심으로 주민대책위를 구성하고 행동에 나선다. 목표는 2월 21일 ‘화개면 양수발전소 유치 사업설명회’를 저지하는 것이다. 첫 번째로 군의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군의원은 주민설명회가 개최되기 전까지 찬성도 반대도 할 수 없다는 얘기를 하며, 찬성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들어봐야 한다는 얘기 또한 덧붙인다. 주민들은 당황한다, 양수발전소 문제가 과연 찬성과 반대로 나뉠 수 있을까? 첫 번째로 면사무소 방문부터 시작한다. 면에서는 친절하게도(?) 주민설명회 자료를 주민들에게 나누어주고, 주민들은 댐 건설 예정지의 도면을 보고 탄식한다. 면장은 일단 21일 사업설명회를 들어보고 결정해도 늦지 않다는 식으로 주민들을 회유한다. 하지만 주민대책위 사람들은 21일 사업설명회는 절대불가하며, 주민대책위 차원에서 저지할 것이라고 통보한다. 이어서 군청을 방문하고, 군청에서도 면사무소에서와 마찬가지로 진행된 것이 아무것도 없으며, 주민사업설명회에서 의견을 피력하라는 답변을 듣는다. 주민들은 그 길로 달려가 현수막과 유인물을 인쇄소에 맡기고, 경찰에 집회신고서를 낸다. 21일 사업설명회를 막기 위한 모든 합법적인 방법을 동원한다. 이외에도 다른 지역들과 연대할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한다. 2월 15일, 주민대책위는 같은 편을 만나기 시작한다. 하동참여자치연대는 무상급식 지키기 운동과 홍준표 전 경남도지사와 윤상기 하동군수의 주민소환운동을 앞장섰던 단체이고, 금오산환경지키미는 양보면에 대규모 돈사유치 반대에 앞장서고 금오산 일대의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결성된 단체다. 그리고 이외에도 경남 환경운동연합, 녹색당, 정의당 등에서도 연대의 뜻을 밝혀오고, 주민 대책위는 <양수발전소 반대 하동군 대책위>로 확대 개편된다. 양수발전소 반대 하동군 대책위에서는 단체 카톡방을 만들고, 화개면민, 하동군민을 포함한 지리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모두 초대해 양수발전소 반대 관련 정보를 공유하고 의사표현을 개진한다. 도심마을 주민 문봉두씨와 나는 금오산환경지키미 정기모임에 참석하고, 양보면 폐기물 처리장과 고전면 돈사 유치 반대 투쟁의 과정을 이야기하는 회원들을 보고 가슴이 답답해진다. 하동군에서 추진하는 사업들에서 사업설명회는 요식행위임을 다시한번 확인한다. 나는 대책위 사무국장으로서 조계종 총림이자 댐이 생기는 바로 옆 골짜기에 있는 쌍계사에도 동참할 것을 요청한다. 세 번 만에 주지스님을 만나 주민들과 뜻을 함께할 것을 약속받는다. 도심마을 주민대책위가 활동을 시작한지 5일이 지나서야 나는 홍용표씨와 문봉두씨와 함께 부춘마을 회의에 참석한다. 부춘마을 사람들도 양수발전소 문제의 심각성에 동의하고, 동참할 것을 결의한다. 2월 18일, 도심마을 사람들의 반대운동은 본격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한다. 크게 세 가지 방법으로 이루어진다. 첫 번째는 현수막을 걸고 유인물 등을 배포하는 홍보운동이다. 여러 가지 현수막 문구를 생각하지만, 시간이 촉박한 관계로 한 가지 문구로만 정한다. 그리고 각종 단체들도 이름을 걸고 현수막을 게시한다. 현수막을 게시하는 곳은 사람들이 가장 많이 드나드는 대로변과 교차로를 중심으로 한다. 현수막이 설치되는 곳에는 공교롭게도 양수발전소 사업설명회 현수막과 나란히 하는 곳도 있고, 댐에서 가장 가까운 정금 삼거리에도 현수막을 건다. 이곳은 한국지질연구원에서 설치한 지진관측소 맞은편이다. 1936년 쌍계사를 진앙지로 한 규모 5.1의 지진이 발생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볼 때, 댐이 건설되는 과정에서 혹은 댐이 건설된 이후 지진이 발생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는 것이다. 두 번째는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설득하는 방법이다. 주민대책위 대표 홍용표씨를 필두로 화개 사람들을 잘 아는 사람들이 동네 구석구석에 있는 친지들을 찾아다니며 설득한다. 세 번째는 온라인 운동이었다. 나는 사람들을 만나고 다닌 결과 여론이 찬성쪽으로 기울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조급해지고, 청와대 국민청원 글을 올려 홍보에 적극 활용한다. 그리고 단체 톡방은 생각보다 많은 힘을 발휘한다. 심각성을 느낀 주민들이 향우회 등을 통해 사람들을 모은 톡방은 한때 450여명이 참여해서 의사를 개진하고, 서로 정보를 공유할 정도로 커진다. 이 모든 운동은 2월 21일 사업설명회를 무산하기 위한 운동의 과정이다. 면사무소 앞마당에 천막을 치고, 화개장터 입구에 탁자를 놓고 서명운동과 확성기를 사용한 방송으로 양수발전소 문제를 홍보하기 시작한다. 이 와중에 다양한 사람을 만난다. 그래도 일단 주민설명회를 들어봐야 한다는 사람과, 한철장사가 방해되니 확성기를 꺼달라는 화개장터 상인들도 있다. 나는 다시 한번 답답해진다. 7년 가까운 공사기간동안 화개천 물이 마르고, 공사차량들이 왔다갔다 하는 동안 화개를 찾는 사람들이 있을까. 그렇다면 화개장터의 상인들도 자유롭지 않다는 것은 상인들도 모를 리 없기 때문이다. 같은 날, 화개면사무소 2층에서는 주민자치위원회가 열리고 긴급안건으로 화개면 양수발전소 반대 안건이 올라오고, 재적위원 22명중 19명의 반대로 안건이 통과된다. 이제야 정영섭 군의원은 공식적인 반대의사를 표명한다. 양수발전소 사업설명회를 추진하는 하동군 직원은 군의원을 비롯한 주민들이 직접적인 반대의사를 표명했기 때문에 사업설명회를 재검토하겠다는 이야기를 한다. 2월 19일, 도심마을 주민들을 필두로 한 양수발전소 반대 하동군 대책위 사람들 20여명이 모여 군청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공식입장을 발표한다. 주민들이 반대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이다. 양수발전소는 사업비 7600억원 규모의 거대한 토목공사이기 때문에 지리산의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생태계를 훼손한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이고, 두 번째 이유는 임산물과 관광자원으로 먹고사는 주민들의 생활터전이 없어진다는 것, 세 번째는 당국의 졸속행정으로 인해 주민들은 아무런 정보도 없이 사업설명회로부터 사업추진과정이 시작된다는 사실이다. 기자회견문은 대책위 공동대표를 맡게 된 부춘 이장 김동영씨가 낭독한다. 기자들로부터 질문을 받는 시간에는 찬성하는 주민들도 있을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이 사안의 본질을 흐리는 질문을 하는 기자도 있다. 나를 비롯한 주민들은 해당 기자에게 호통을 치고, 그 기자는 얼굴을 붉히며 회견장을 떠나는 상황도 벌어진다. 기자회견이 끝난 후 주민들은 하동군청 앞에서, 화개면 사무소 앞에서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친다. 서부경남의 소식을 전하는 서경방송과 진주KBS, 경남 MBC에서는 후속취재를 요청하여 마을로 돌아온 주민들을 인터뷰 하고, 도심마을에서 다원을 오랫동안 운영하고 녹차의 명인으로 인정받은 오시영씨는 천년 차밭을 배경으로, 귀농해 펜션을 운영하고 있는 문봉두씨와 중촌에서 어린시절을 보내고 도시로 갔다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김길만씨는 계곡을 배경으로 이 사업의 문제점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사업이 예정된 지역을 가리키며 댐의 길이와 높이를 가늠해보도록 한다. 2월 20일, 반대운동은 급박하게 돌아가고, 사업설명회를 하루 앞둔 화개면 사무소 앞 천막에는 전운마저 감돈다. 서명을 하는 사람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보탠다. 화개에 양수발전소가 들어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사업을 추진하는 주체는 누구냐 등. 화개면장은 반대서명을 하고 있는 천막으로 와 오후 2시 하동군의원 두 명과 주민자치 위원, 화개면 이장단 협의회장 등과 반대주민들의 간담회에 참석할 것을 요청한다. 간담회는 면장실에서 열리고, 조금은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하동군 악양면 지역에서 당선된 손종인 의원이 입을 떼는 것으로 시작한다. ‘양수발전소는 하동군에 들어오지 않는다. 시작도 하기 전에 주민들이 너무 빨리 움직여서 의원들이 당혹스럽다’는 내용으로 이야기를 한다. 이에 주민들은 서운한 마음을 감출수가 없다. 주민 대책위가 구성될 때에는 군의원으로서 어떤 입장도 공식 표명할 수 없다며 주민들과의 만남을 거절한 사람들이, 이제 와서 주민들이 성급하게 움직였다는 반응을 보이기 때문이다. 나는 손종인 의원에게 따져 묻는다. 이 문제를 언제 처음 인지했는지, 사업 개요가 포함된 자료를 보고서도 사업설명회가 필요한 사안이라고 생각했는지, 주민들이 군의원에 대하여 어떤 마음을 갖고 있는지 전달한다. 군의원들은 주민들의 의견을 적극 수렴하여 군수로부터 사업 포기 공문을 받아낼 것을 약속한다. 공문이 일찍 도착하면, 주민들이 반대운동을 계속할 필요가 없음을 이야기한다. 협상은 일단락되고, 주민들은 천막을 걷는다. 이날 저녁 도심 주민들은 경로당에 모여 어떻게 반대집회를 진행할 것인지 이야기한다. 행정에서 사업설명회를 취소하고 공문을 보내더라도 일단 모여서 집회를 시작하는 방향으로 설정하고, 프로그램의 진행순서와 그에 따르는 준비물까지 세세하게 논의한다. 그리고 사업설명회를 강행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 설명회를 강행할 경우, 어떻게 설명회장의 입구를 봉쇄할 것인가, 입구를 봉쇄하지 못했을 경우 행동지침까지 이야기한다. 나는 서울에서 참여해본 집회들을 떠올려본다. 세월호 진상규명 촉구, 박근혜 탄핵 등 중대한 시국사안에 대한 집회들에 부담 없이 참여한 기억은 있건만 ‘양수발전소’라는 사안으로 반대 대책위 집행부로서 직접 진행하려니 걱정과 두려움이 앞선다. 급하게 추진한 집회에 사람들이 올까? 주민들은 오전 8시 30분까지 면사무소 앞 주차장에 모여 집회를 준비하기로 한다. 이날 저녁, 하동군이 사업포기 결재를 받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하지만 공문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때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고 집회는 일단 진행하기로 한다. 2월 21일, 아침부터 주민들은 분주하게 움직인다. 천막을 펴고, 음향장비를 점검한다. 준비한 유인물과, 몸자보를 사람들에게 나누어 준다. 추운 날씨에도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이 모인다. 150여명 정도로 모일 것을 예상한 것과는 달리 200여명 가까이 모인 것으로 추산한다. 도심마을에서 펜션을 운영하는 최한익씨의 ‘아름다운 강산’ 색소폰 연주와, 급하게 모인 풍물패의 사전 공연으로 집회는 시작하고, 나는 더듬더듬 진행을 한다. 진행 순서는 양수발전소에 대한 대략적인 소개와 사건의 전개 과정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대책위 공동대표 김동영씨와 홍용표씨가 한마디씩 하고, 섬진강을 지키는 사람들, 경남환경운동연합, 녹색당, 금오산 환경지키미, 명덕마을 하동화력발전소 주민대책위 등에서 연대발언을 한다. 그리고 산청양수발전소에 다녀온 신기 이장도 나와서 말을 보탠다. 가수 옥수수의 연대 공연은 흥을 돋우기도 하고, 밀양 송전탑 반대 투쟁을 떠올리는 노래를 부르기도 하여 연대의 깊이를 더한다. 양수발전소 반대 싸움을 위한 모금도 함께 진행한다. 모금의 목적은 현수막을 걸고 유인물을 작성하고, 몸자보를 주문하는데 사용된 비용을 충당하고, 싸움 이후 결과를 알리는데 사용할 비용이다. 모금은 일인당 만원을 한도로 하고, 100만원이 모이면 마감하는 것으로 원칙을 삼는다. 이날 면사무소 앞 주차장에서는 군 직원들이 왔다갔다 하며 공문을 주고 받는다. 집행부 사람들은 사회를 보는 나에게 귓속말로 하동군으로부터 양수발전소 사업을 포기한다는 공문이 나왔고, 공문이 수정중이라는 이야기를 전해준다. 나는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확실한 공문을 눈으로 확인할 때까지 해산하지 말고 자리를 지켜줄 것을 사람들에게 부탁한다. 공문 내용을 수정할 때까지 막간을 이용한 자유발언 시간에는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한마디씩 보탠다. 화개에서 더 이상 자연을 파괴하는 일을 ‘쎄(혀)도 안되게 하라, 츔(침) 삼키지 못하게 하라’는 말씀으로 집회에 모인 사람들을 북돋는다. 오전 11시, 집회가 시작된 지 2시간 만에 나는 공문을 받아들고 읽기 시작한다. ‘주민설명회를 앞두고 대다수의 주민이 양수발전소 건립을 반대한다는 의견을 표명함에 따라 우리 군에서는 양수발전소 건립사업을 한수원에 공모하지 않을 계획이며 또한, 본 사업을 더 이상 추진하지 않을 것임’이 주 내용이다. 나는 최한익씨를 불러 사랑의 박수를 제안한다. 사랑의 박수는 도심마을 저녁 회의때마다 박수를 세 번 치고 ‘사랑합니다!’ 하는 구호를 외치는 박수로, 때로는 잠 못 이루면서 걱정하고 바쁜 일정에 쫓겨 고생하는 주민들끼리 격려하는 일종의 의식이다. 이날 사랑의 박수는 집회에 모인 사람들끼리 격려와 함께 지리산과 사람간의 연대감마저 북돋는다. 초대가수 옥수수님의 축하공연이 이어지고, 급하게 구성된 풍물패의 마무리 길놀이로 집회는 마무리된다. 집회를 정리한 후 양수발전소 반대 하동군 대책위 집행부는 화개면사무소 2층 회의실에서 회의를 한다. 하동참여자치연대, 섬진강을 지키는 사람들, 녹색당 경남도당, 정의당, 금오산 환경지키미, 하동화력 발전소 명덕마을 주민대책위 등에서 모인 사람들은 이야기를 시작한다. 서로 소개를 하고 인사를 하는 수준의 회의에서 나는 명덕마을 주민들이 하동화력전소가 생기면서 싸움을 시작했고, 마을 주민의 40%가 암 투병한 사실과, 화개초등학교와 진정초등학교 아이들의 모발샘플을 분석한 결과 중금속이 검출되었다는 사실을 듣는다. 내가 누리는 모든 에너지와 문명의 이기들은 아마도 명덕마을 주민들의 고통을 담보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금오산 환경지키미 정용길씨의 양보면 폐기물처리장 관련 발언은 하동 내의 각종 환경문제들은 양수발전소가 우리 집 앞에 들어서려고 했던 것처럼 아무도 모르게 살금살금 생겨난다는 것을 증언한다. 그리고 뒤늦게 문제 삼는다면 법적으로 행정적으로 제지할 방법이 없고, 일단 만들어 진 다음에는 불법적인 일들이 벌어지는지 아닌지 주민들이 철저히 감시하는 방법 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나는 그동안 맛있는 것을 먹고, 좋은 곳에서 자고, 아무렇지 않게 각종 쓰레기를 눈앞에서 치워버리곤 했다. 그런 것들을 누림으로써 고통 받는 사람들과 환경, 생태계에 대한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는 생각을 하고 양보면 폐기물처리장 인근 주민들과 명덕마을 주민을 포함한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과 생태환경에 대한 부채감을 느낀다. 2월 22일 비 오는 날 아침, 하동군은 약속대로 부군수 기자회견을 하동군청 2층 브리핑룸에서 진행한다. 하동군은 주민의 반대에 따라 화개면 양수발전소 사업추진을 포기하고, 한수원에 공모의사가 없다는 뜻을 전한다고 발표한다. 한 기자는 주민들이 사업을 이미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오해하고(?)있다는 식으로 질문을 하자, 나는 그런 질문 하지 말라며 호통을 친다. 이에 옆에 있던 기자가 기자들만 질문하는데 방해하지 말라고 하며 주민들을 자극한다. 부군수는 기자회견을 마치자 나가려고 하고, 주민들은 주민 입장문을 발표할 테니 들어달라며 부군수를 막는 실랑이도 벌어진다. 군청직원은 ‘부군수님이 바쁘다’라며 호통을 치고 주민들도 ‘우리는 안바쁘냐’며 대응한다. 부군수는 머쓱한 표정으로 기자회견장에 남아서 홍용표씨가 낭독하는 입장문을 듣는다. 이것으로 하동 양수발전소 문제는 마무리되었지만, 기자회견이 끝난 후 주민들은 한수원측에 하동을 양수발전소 후보지에서 빼달라는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예정되었던 제윤경 국회의원과의 간담회에 참석한다. 간담회는 자연스럽게 그동안 주민들이 반대운동을 벌이며 겪었던 현황들을 포함한 주민들이 느끼는 하동군 행정의 문제점들을 이야기하는 자리가 된다. 제윤경 의원 및 더불어민주당 소속 군의원들은 그런 주민들의 이야기를 듣고, 답변한다. 주민들은 만족스러운 답변을 듣지는 못하지만, 이 문제를 해결하는 절차적인 과정으로 받아들인다. 이날 저녁, 도심마을 주민들은 마을회관에 모여 잔치를 한다. 고생한 서로를 격려하고 이야기를 나눈다. 이날 어김없이 사랑의 박수를 친다. 앞으로의 진행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형식적이나마 군의회와 간담회를 하는 일정과, 군수 간담회로 이 사건을 마무리하기로 한다. 이렇게 싸움은 승리로 끝난 것으로 보인다. 3월 5일, 양수발전소 반대 하동군 대책위는 반대 투쟁을 마무리하기 위해 군의회 간담회를 하기로 한다. 약속을 잡는 과정에서 군의회 의장은 주민들이 양수발전소 반대투쟁하는 것을 언론보도를 통해 알았다고 주장하며, 군의회는 책임이 없다는 답변을 한다. sns단체 대화방에서는 그쯤하면 됐다는 주민들의 의견도 올라온다. 나는 주민들의 피해와 불편을 책임질 사람이 없다는 사실에 분노하고, 혼란스러운 마음을 단체 대화방에 메시지로 전한다. 책임을 지는 사람이 없다면 이와 비슷한 사건은 개선되기가 어렵다는 생각도 한다. 대책위 공동대표를 맡은 홍용표씨는 화개면 지역구 군의원인 정영섭 의원을 통해 3월 5일 로 일정을 약속한다. 군의회 측에서는 장소가 협소하다는 이유로 최소인원만 참여할 것을 요구하지만, 주민 대책위에서는 최대한의 주민들이 참석해줄 것을 요청한다. 3월 5일 오전 10시 군청앞에는 30명에 가까운 주민들이 모이고, 군수 비서실을 찾아가 3월 13일로 군수 간담회도 확정한다. 오전 11시 군의회 의장 신재범 군의원, 정영섭 군의원, 손종인 군의원과 주민 30여명은 간담회를 가진다. 주민들의 요구는 간명하다. 군의회는 이 문제를 언제 최초 인지 했는지, 이 문제에 대한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지를 묻는 내용이다. 신재범 의장은 끝까지 자신들은 몰랐으니 잘못이 없고 이에 대한 책임이 없다고 답변한다. 주민들은 언성이 높아지기도 하고, 나는 군의회 의장과 실랑이도 벌인다. 신재범 의장은 ‘주민들 수준이 낮다’는 모욕적인 발언도 서슴없다. 자기의 불찰을 변명하고 군의회의 입장을 대변하는 발언을 계속하던 손종인 군의원은 한참 지나서야 자신들에게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를 하는 것으로 간담회는 마무리된다. 3월 13일로 예정되어있던 군수간담회는 군수의 일정을 고려해 3월 14일 오후 2시로 미뤄졌다. 군청에서는 집행부 인원 5~6명만 참여할 것을 요구하고, 주민대책위 공동대표 홍용표씨는 주민들이 가겠다는 것을 막을 수 없다는 뜻을 전한다. 주민들은 3월 13일 저녁 마을회관에 모여 군수의 사과를 받아내자고 결의한다. 3월 14일 오후 2시 군청 대회의실에서 주민 20여명과 군청 담당 직원들, 군수가 간담회를 진행한다. 군수 비서실장은 집행부만 와줄 것을 요청했는데, 왜 이렇게 주민들이 많이 왔냐고 묻는다. 주민들은 황당하다. 주민들이 군수를 만나러 온 것이 잘못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군청 직원이 야속하다. 나는 군수간담회를 기록하기 위해 마이크를 설치하지만, 군청 직원이 마음대로 마이크를 철수하는 등 불편한 상황들이 벌어진다. 군수는 누군가 자신을 제소하기 위해 녹음한다는 식으로 이야기한다. 윤상기 하동군수는 일전에 군수 후보 토론회에서 대송산단 위그선 계약에관한 사안을 허위로 이야기해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하동참여자치연대로부터 검찰에 고발당했으나 검찰에서 불기소 처분을 받은 적이 있다. 하동군수 윤상기는 ‘이미 끝난 이야기를, 이제와서 무슨 이야기를 듣겠다고 간담회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왔느냐’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나는 준비해간 내용을 질문한다. 군수에게 가장 궁금한 내용은 정금리 차밭을 세계 주요 농업유산으로 등재하는 것을 추진했던 사람이, 그 인접지역에 양수발전소를 짓겠다는 한수원의 계획을 아무런 사전 검토 없이 협조하겠다고 한 이유다. 군수는 이 질문에 대해 ‘습(물)이 많은 것이 녹차농사에 유리하다’는 말을 하고, 내가 ‘그것이 7600억원 규모의 댐 공사를 긍정적으로 검토한 이유냐’고 묻자, 군수는 ‘그것이 이유가 아니라 일반적인 사실을 말한 것’이라는 식으로 말을 돌린다. 군수는 나에게 ‘이상한 소리를 한다’고 말하고 나는 군수에게 호통을 친다. 진작에 막을 수 있었던 사건을 주민들이 반대운동을 하도록 내버려둔 사유가 무엇이냐고 묻는데 주민들에게 고압적인 태도로 답변을 회피하는 모습에 나는 말문이 막힌다. 나의 아버지 배윤천도 함께 호통을 친다. 옆에 있던 군청 직원들은 배윤천에게 다가가 제지한다. 배윤천은 직원들에게 내버려두라며 실랑이를 벌인다. 주민들은 군청직원들이 군수를 비호하는 모습에 위축된 분위기다. 군수는 주민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댐 건설사업을 주민들에게 알리지 않는 것이 오히려 밀실행정이라며 강변한다. 나는 주민들이 왜 이것을 알아야 하느냐며 반문한다. 애초에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사업에 대해 군수로서 판단하여 한수원에 협조하지 않았다면 주민들이 생계를 내팽개치고 고생하면서 반대할 일도 없었을 것이라고 얘기한다. 하지만 하동군수 윤상기는 주민들의 노고에 대한 사과나 유감표명을 하지 않고 ‘앞으로 잘하겠다’고만 답변한다. 주민들은 각자 군수에게 서운한 점을 한 마디씩 한다. 이 와중에 군청 직원들은 ‘3시에 군수님 일정이 있으니 간단히 말하라’고 한다. 군수의 사과와 해명을 듣고 싶었던 주민들은 잘못한 것이 없다는 군수의 뻔뻔한 태도에 아쉬움을 남긴 채 간담회를 마무리한다, 주민들은 군청앞에 모여 기념사진을 찍는다. 짝, 짝, 짝. 사랑합니다! 하동군의 양수발전소 문제는 주민들의 승리로 끝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하동의 에너지와 환경문제는 여전히 주민들을 괴롭힌다. 부군수 기자회견에 이은 주민대책위 입장문에서도 밝힌 것처럼 금성면 광역 쓰레기 소각장 건립 문제, 양보면 폐기물처리장 문제, 무분별한 벌목과 함께 진행되는 태양광 발전설비 문제, 그리고 하동화력발전소 인근 명덕마을 주민들의 문제 등이 남아있다. 나는 내가 살고 있는 이 고장에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양수발전소 반대 투쟁을 통해 알게 되었다. 남은 7개의 후보지 중 한 곳에는 양수발전소가 지어진다는 것도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남은 숙제일 것이다. 나는 하동의 환경현황들과 신규양수발전소가 들어서는 7개의 후보지를 돌아보는 환경여행을 기획한다. 코스는 두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는 하동지역 인근을 환경이라는 주제로 돌아보는 여정이다. 지리산 둘레길 코스에는 하동군과 산청군에 걸쳐있는 산청양수발전소가 있고, 하동군 금성면에는 광역 쓰레기 소각장과 하동 화력발전소가 있다. 그리고 하동군 양보면 폐기물처리장에도 방문해 인근 주민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두 번째 코스는 신규 양수발전소 후보지로 선정된 나머지 7곳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가까운 곡성군에서는 하동처럼 양수발전소가 조기에 무산되었다는 소식이 들리고, 경북 봉화군에서는 지자체에서 적극 추진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나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봉화군부터 방문해 주민들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계획을 세운다. 양수발전소 문제는 나에게 에너지가 어떤 과정을 거쳐 생산되는지, 그리고 우리 삶이 편리해지는 만큼 피해와 불편을 겪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게 해주는 계기가 되고, 우리의 삶이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도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 촉발 원인이 되었다. 나는 계속 지리산에 살면서 영화를 만들고 사람들과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 나누면서 살아가기로 하고, 그 첫 작업으로써 ‘하동 양수발전소 반대운동’을 다큐멘터리 영화로 만들기로 하고 제작에 나섰다.
    • 고을이야기
    • 하동
    2021-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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