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3-02-0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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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간뉴스
  • 구례 성삼재 버스 운행 재개
    5월27일 부터 구례 성삼재구간 버스 운행이 다시 시작 되었다. 운행 중지 되었던 성삼재행 버스가 다시 운행 하기 시작했다. 구례 터미널 첫 버스는 2시40분 성삼재발 마지막 버스는 5시30 분이다. 운행이 중지되어 불편을 격던 등산객들의 불편을 해소 할 수 있게 되었다. 운행시작일 2022.5.27 부터 공영버스터미널 061-780-2730 구례여객운수사 061-782-5151
    • 지리산정보
    • 숙박 교통
    2022-05-31
  • 하동군 소유 땅과 조계종의 나대지를 바꾼다고?
    하동군 소유 땅과 조계종의 나대지를 바꾼다고? 하동군이 소유하고 있는 화개면 탑리 742번지에는 한 켠에는 조영남갤러리가 있고 한 켠에는 통일신라삼층석탑이 있다. 이 땅을대한불교 조계종이 소유하고 있는 하동읍 알프스복지회관 옆 나대지와 맞교환하려는 움직임이 확인되었다. 최근 해당 토지와 건물에 대해 감정을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조영남 갤러리 옆의 삼층석탑 하동군에서는 알프스복지관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 주차장이 필요하고, 쌍계사에서는 신라시대 삼층석탑이 있는 조영남갤러리 부지를 여러모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맞교환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문화재와 공공건물을 민간에 넘겨주는 것이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는 일인지, 공유재산의 관리 원칙에 부합하는 일인지 신중히 따져보아야 할 것이다.
    • 지리산정보
    2022-05-03
  • 지리산 성삼재 버스 시간표
    • 지리산정보
    2021-08-20

실시간 지리산정보 기사

  • 흰 꽃으로 치장한 노고단 설경
    봄~가을엔 화려한 야생화로. 겨울엔 흰 눈꽃으로 치장하는 지리산 노고단의 설경을 감상해 보세요
    • 지리산정보
    2023-01-28
  • [2023년 1월~12월] 늘 지리산에서 새롭게 섬진강으로
    2023년 늘 지리산에서 새롭게 섬진강으로 2023년 ‘늘 지리산에서 새롭게 섬진강으로’(줄여서 늘지+새강)가 시작되었습니다. 올해 늘지는 지리산을 더 깊게 느끼는 걸음입니다. 1년 동안 늘지와 함께 하면 지리산을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고, 그러면 지리산을 더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녀남소노 누구라도 함께할 수 있는 걸음, 2023년 늘지에 회원님을 초대합니다. 2023년 섬지는 어떤 일정일지도 기대해주세요. 언제 : 매월 둘째 주 목~금요일(1박 2일의 일정일 경우), 금요일(하루 일정일 경우) 물어보기 : 061-783-6547. 010-4686-6547 일정 걷는 길 비고 1월 17~19일 남학생교육원~천왕봉~장터목대피소(6.5km/1박)~세석~벽소령~연하천대피소(13.3km/2박)~화개재~임걸령~노고단~화엄사(17.9km) 2월 17~18일 지리산사람들 총회(한려해상국립공원) 3월 10일 전북학생교육원~세동치~부운치~팔랑치~바래봉~용산리(11.7km) 산방기간 4월 14일 육모정~구룡폭포~노치마을(7km) 산방기간 5월 11~12일 거림~세석대피소(6.0km/1박)~삼신봉~청학동(10km) 6월 9일 정령치~만복대~고리봉~당동고개~성삼재(7.8km) 7월 13~14일 음정~연하천삼거리~연하천대피소(1박)~토끼봉~화개재~뱀사골(13.4km) 8월 11일 성삼재~노고단~반야봉~성삼재(14.4km) 9월 14~15일 새재~치밭목대피소(4.8km/1박)~천왕봉~장터목~중산리(11.2km) 10월 13일 삼정~벽소령~삼정(8km) 11월 9~10일 백무동~장터목대피소(5.8km/1박)~세석~한신~백무동(9.9km) 12월 16일 (토) 지리산 7암자 순례길 (일부) 산방기간을 피해서 * 2023년 늘지 일정은 불가피한 상황에 의해 변경될 수 있습니다.
    • 지리산정보
    • 산행정보
    2023-01-21
  • 12월 14일 지리산 노고단 설경~
    12월 14일 지리산 노고단 설경~ 핸드폰으로 찍은 영상입니다.
    • 지리산정보
    2022-12-17
  • 노고단에 첫눈이 왔어요~ 지리산 노고단 첫눈 설경
    노고단에 첫눈이 왔어요~ 지리산 노고단 첫눈 설경
    • 지리산정보
    2022-12-14
  • 시골 빵집이야기
    사실 너무 오래되어서 어떻게 인연이 되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남원 금지면에 우유와 달걀을 쓰지 않고 우리밀로 빵을 만든다는 말을 듣고 찾아 간 것 같다. 지금은 우리밀 빵을 만드는 곳이 꽤 많다. 다른 곳은 모르겠지만 구례에는 우리밀 빵집이 수입밀을 사용하는 빵집보다 많다. 아마도 우리밀 재배를 많이 하고, 가까운 곳에 우리밀 가공공장이 있다는 점도 한몫했을 것이다. 하지만 15-6년 전에는 우리밀 빵집을 보기 어려웠다 거기다가 우유와 달걀을 넣지 않고 통밀로만 빵을 만드는 곳은 정말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런 고집에 끌려서 인연이 되었을 것 같다. 건강한 빵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우리밀 통밀빵을 만든 것도 좋은 일이지만 하지만 그보다 더 좋은 일을 하고 계셨다. 어느 날 빵 공장에 갔더니 꼬맹이 아이들이 놀고 있었다. 누구예요? 우리 딸들이에요. 예쁘죠! 네…. 딸이 있었나요? 네. 이상하게 생각하자 모두 입양했다고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 집에 아들만 두 명이었고 이미 청년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학교에 다녀오면 빵 공장에서 숙제를 하고 빵을 간식으로 먹고 있던 꼬맹이 아이들은 이젠 모두 청년이 되었다. 어제 오랜만에 빵공장을 찾았다. “사장님.. 아이들은 이제 다 컸죠. 이제 대학생 고등학생쯤 되었겠네요.” 했더니 초등생 아이도 있다고 한다. 그사이 한 명을 더 입양했다고 한다. 아이가 ADHD에 지적장애가 있어 오랫동안 입양이 안 되고 있어서 입양했다고 한다. "많이 힘드시겠어요? "그러게요." "생각보다 힘들어요." 그래도 아이가 다른 사람들은 자기에게 자꾸 화를 내고 뭐라고 하는데 엄마는 나를 이해해줘서 정말 고맙다고 말할 때마다 힘이 난다고 하셨다 발달장애나 지적장애 또는 ADHD가 있는 아이를 키우는 것은 일반 아이들을 키우는 것보다 10배 이상 힘이 들 것 같다. 소통이 잘 안 되기 때문에 스트레스도 많을 것이다. 아이와 실랑이하다 보면 너무 지치고 힘들지만 그래도 아이가 농사일도 잘하고 너무 귀엽고 예쁘다고 한다.. .아무도 데려가지 않는 아이가 너무 불쌍하고 맘이 아파서 이미 세 명을 입양 했는데 또 입양한 분들이라니…. 아이들이 많다 보니 빵만 만들어서는 키우기 힘들어 농사도 짓고 있다고 한다. 직접 키운 밀로만 빵을 만들기 때문에 오래전부터 농사를 짓고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 포도 농사와 사과 대추 농사도 짓고 있다고 한다. 과일 농사를 하니 아이들이 포도와 대추도 맘껏 먹어 좋다고 한다. 착한 소비라는 말이 있다. 선한 사람들이 선한 생각으로 만든 제품을 구입하는 것이 착한 소비일 것이다. 구매는 일종의 투표 행위와 같다. 이분들의 만드는 빵이야말로 좋은 투표라는 생각이 든다.
    • 연재
    • 꿈을 찾는 농부들
    2022-11-25
  • 하늘에서 본 지리산 노고단 운해. 드론 촬영
    하늘에서 본 지리산 노고단 운해. 드론 촬영
    • 지리산정보
    2022-11-09
  • 지리산 노고단 단풍 드론 촬영
    지리산 노고단 단풍 드론 촬영
    • 지리산정보
    2022-10-21
  • 2000년대 초 지리산을 사랑하는 사람들 연대를 위해 애쓰신 분들
    그 당시는 카메라로 인물을 찍을 때는 거부하는 사례가 참 많았습니다. 그 나마 열린 사고를 가진 분들이 여서 편히 지리산생명연대 회의 하는 모습을 담을 수 있었습니다. 대략 20여년간 컴 속에서 잠자다가 지리산인을 통해 공개 합니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 우리마을
    • 남원
    2022-09-18
  • 지리산둘레길에서 만나는 옛이야기3-견벽청야
    지리산둘레길에서 만나는 옛이야기4-견벽청야 견벽청야 堅壁淸野 굳은 견, 바람 벽, 맑을 청, 들 야 말 그대로 하면, 성벽을 굳게 하고 곡식을 모조리 걷어 들인다는 뜻이다. 고대로부터 근세에 이르기까지 널리 사용해온 방어전술의 하나이다. 해자(垓子)를 깊이 파고 성벽의 수비를 견고히 하는 한편, 들에 있는 모든 곡식을 성내로 걷어 들여 공격해 오는 적의 군량미 조달에 타격을 입히는 전법으로, 우세한 적에 대한 수단으로 흔히 약자가 사용한다. 삼국지의 조조와 여포가 싸울 때 조조가 사용한 전법이기도 하고, 청태조 누루하치와 원숭환의 전투에서, 나폴레옹과 러시아의 전투에서 나폴레옹이 대패 당한 전법이기도, 그리고 한국전쟁 때 11사단장 최덕신 준장이 민간인을 대상으로 펼친 작전이기도 하다. 이번 이야기는 지리산둘레길 동강-수철 구간을 걷다 보면, 만나게 되는 ‘산청함양사건 추모공원’에 얽힌 이야기이다. 또한 이 이야기는 이곳에서 얼마 멀지 않은 거창군 신원면에 있는 ‘거창사건 추모공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즉, 두 사건은 같은 사건이다. 국가라는 거대한 권력기구의 폭력성은 국가의 본질적 요소이다. 그게 인민(people의 한국말은 인민이다. 이 말을 좌익들이 사용했기에 80년대엔 민중이란 말을 대체용어로 사용했다)을 법과 제도에 종속시키는 힘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그런 국가의 폭력성이 깔끔하게 드러날 때가 전쟁 혹은 내란의 시기이다. 1945년 해방 이후부터 1953년 남북전쟁이 휴전되는 9년 동안 한반도의 남과 북에선 새로운 국가를 성립하기 위해 어마어마한 폭력이 일어난다. 그 정점이 전체 인구 10%인 300만명이 사망한 남북전쟁이다. 지리산둘레길에서 문득 스쳐 지나가는 ‘산청함양사건 추모공원’은 지금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국가의 맨 얼굴을 직시할 수 있는, 아직, 살아있는 우리들의 이야기이다. 1950년 9월15일 인천상륙작전으로 북진하게 된 유엔군은 후방 안정을 목적으로 11사단을 창설한다. 11사단의 주 임무는 지리산 등 산악지대에 잔존해 있는 인민군과 빨치산 토벌이었다 이를 작전 명령 형태로 공식화시킨 것이 '적의 손에 있는 사람은 전원 총살하라'는 작명5호였다. 이는 거창·함양·산청 민간인 학살이 일개 하급 지휘관의 자의적인 판단이 아니라 사단장, 국방부장관, 대통령으로 이어지는 지휘명령체계를 갖는 국가으이 공식 행위라는 것을 말한다. 이 사건을 바라보는, 당시 국가의 시선은 매우 경악스럽다. (지리산 일대) 약 7할 이상이 공비에게 협조하여 식량보급 및 정보를 제공하는 고로 이적행위로 인하야 아군작전에 지장을 초래케 하며 현재 소각당한 각 부락은 주간에는 대한민국이며 야간에는 인민공화국이라 아니할 수 없는데, 대한민국정부에 납세 혹은 국민된 의무는 전혀 없음으로 대한민국 국민이라 간주할 수 없음으로 지리산토벌작전에 적의 이용당하는 인원 및 가옥을 파괴하지 않으면 작전수행을 도저히 기할 수 없는 고로 불가분의 조치라고 생각함. - 헌병대 보고서, "지리산 토벌작전으로 인한 민심동요에 대한 조사복명지건" 거창군 신원면 관내는 완전한 인민공화국이며 공비에게 일시적이 아니고 정신적으로 협조 충성을 다하고 있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며 특히 신원면 5개리 주민은 공비화되어 있었음으로 이적행위자로 칭할 바 아니라 완전한 적으로 간주할 수 있는 바. 차를 사살하였음은 작전상 당연한 조치로 인정됨. 숙청당한 지대의 거주민은 추호도 개전의 여지 전무한 자이며 금후 공비의 완전한 소탕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는 해당지대의 가옥 및 거주민을 처분하지 않는 한 금후 공비세력이 강화될 것이므로 당연한 처사로 인정됨 -거창경찰서 보고서(1951. 3. 8) 국민당 중앙군 출신의 11사단장 최덕신이 중국의 전통전술인 ‘견벽청야’라는 이름을 언급했지만, 실제로 연대장, 대대장 등 일본군·만주군 출신의 산하부대 지휘관들은 일본군의 삼광작전이나 초토화작전이 훨씬 더 익숙한 개념이었다. 이들은 이미 해방 후에 제주4.3사건과 여순사건, 그리고 지리산에서의 반란군 토벌작전에서 초토화 작전을 편 바 있다. 11사단은 빨치산 토벌작전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산청·함양·거창에서 일본의 삼광작전을 그대로 진행하였다. 1951년 2월 2일 11사단 9연대는 경남 진주에서 함양으로 이동하였다. 9연대 3대대는 작전회의 지침에 따라 주어진 작전지역으로 이동하여 토벌작전을 시작하였다. 한동석 3대대장은 대대병력과 경찰, 청년의용대 병력 1개중대를 이끌고 2월 7일 10시경 신원면에 도착하였다. 애초 정보로는 신원면에 약 400~500명의 공비가 잠복하고 있다고 했으나 3대대가 들어갔을 때 그곳에는 단 한 명의 공비도 없었다. 단지 부녀자와 아이들, 노인들밖에 없었다. 이에 3대대는 신원면에 경찰과 청년대 병력 약 200명을 주둔시킨 다음, 산청 쪽으로 진격해갔다. 이때부터 지리산 주변의 산청·함양·거창 20여개 산골마을에서 1,400여명이 학살되는 비극적인 상황이 벌어진다. 1951년 2월 8일부터 11일까지 나흘 동안 9연대 3대대는 산청군 금서면, 함양군 유림면, 거창군 신원면에서 대규모 학살 사건을 자행했다. 2월 8일 아침, 지리산 줄기에 자리 잡은 산청군 금서면과 함양군 유림면 관내 10여개 자연부락의 날씨는 푸근했다고 전해진다. 아침 7시쯤 9연대 3대대 1중대 병력이 가현부락에 들이쳤고, 그들은 집집마다 불을 지르기 시작했다. 삽시간에 40여 가구가 사는 마을 전체가 불길에 휩싸였다. 1중대는 놀라서 뛰쳐나온 마을사람들을 마을 앞 속칭 산제당 골짜기로 끌고 가서 집중사격을 가해 사살했다. 학살을 마친 부대는 가현부락의 소와 돼지들을 몰고 바로 아래 부락인 방곡마을로 향했다. 방곡에는 이미 2중대가 학살을 벌이고 있었다. 3대대 1중대는 2중대의 학살장면을 구경하면서 아래 점촌마을로 향했다. 당시 점촌마을에는 21가구 60명이 살고 있었는데 이들 모두 부락 앞 논에서 총살당했다. 학살은 계속되었는데 그들은 학살 방식을 바꾸었다. 마을을 하나씩 초토화시키는데 시간이 너무 걸린다고 판단한 3대대는 아예 여러 마을주민들 한 장소에 집합시켜 학살한 것이다. 함양군 유림면 손곡리의 손곡·지곡마을, 산청군 금서면 자혜리의 상촌·하촌마을, 화계리의 화계·화산·주상마을 등 7개 마을 주민들은 군인들의 총부리에 떠밀려 9시부터 유림면 서주리 동천강변에 모였다. 3대대 군인들은 장정 9명을 동원해 동천강변에 교실 넓이만한 구덩이를 두 군데 파게 했다. 주민들의 무덤이 될 곳이었다. 오후 4시쯤 300여명의 주민들을 두 개의 구덩이 속으로 몰아넣고 수류탄을 까넣은 뒤 기관총을 난사해 학살했다. 공비토벌 전공을 올리듯 박격포까지 쏘았다. 이렇게 해서 2월 8일 10시간만에 이 일대 주민 705명이 학살되었다. 2월 9일 아침 3대대는 산청군 생초국민학교를 출발해 거창 방면으로 향했다. 부대는 2월 9일 밤을 산속에서 숙영한 다음, 2월 10일 거창군 신원면 덕산리 청연마을에 도착했다. 70여명의 마을주민들이 뒷산으로 끌려가 한 명의 생존자도 없이 전원 살해되었다. 이날 오후 3대대 병력은 인근 와룡리와 대현리에서 주민들을 마을 앞 탄량 골짜기로 끌고가 학살했다. 탄량골에서 주민들을 학살한 3대대는 와룡리·과정리 일대의 주민들을 면소재의 신원국민학교로 모았다. 군은 12개 교실에 꽉 들어찬 주민 1,000여명 가운데서 현지 형사인 조용호, 박세복과 박대성 지서주임, 박영보 면장 등을 시켜 군·경 가족을 골라내게 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나머지 주민들을 근처의 박산 골짜기로 끌고가 총살하였다. 이 박산골 학살 현장에서 500여명 가운데 3명이 살아남았다. 산청과 함양에서 학살된 주민의 경우 705명 가운데 10세 미만의 어린이와 노인, 부녀자가 600여명에 달했다. 거창에서 학살된 719명 중 14세 미만의 어린이가 359명, 60세 이상의 노인이 59명으로 희생자의 75%가 어린이와 노약자였다. 민간인 학살사건이 알려지고, 정부와 군은 조직적인 은폐작전에 돌입했다. 신성모 국방장관은 현지를 방문하는 한편, 비밀회의를 통해 경남 계엄민사부장 김종원과 특무대원 계종운, 거창경찰서 사찰계 유봉순 등에게 사건의 조작과 은폐, 왜곡을 지시하였다. 게다가 이승만 대통령은 거창사건이 외신에 대서특필되는 등 문제가 되자 “치마 속 부끄러운 곳은 외국에 내보이지 말라고 했지 않아”라며 은폐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었다. 신성모 또한 이승만의 의중을 받아들여 사건의 책임자인 최덕신에게 ‘걱정하지 말고 토벌작전을 계속하라’는 지시를 내렸으며, 심지어 100만원의 격려금까지 내렸다. 이후 9연대는 유아사체의 처리, 경남도경과 거창경찰서는 여론단속과 반증수집, 국회의원 무마, 유족과 주민 협박 등의 역할 분담을 하며 조직적으로 은폐 활동을 벌였다. 인명피해 뿐만 아니라 가옥소각, 농우탈취, 교실방화 등 물적 피해에 대해서도 철저히 은폐했다. 그러나 이미 사건이 정치권과 사회적으로 널리 알려지면서 더 이상 덮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3월 30일 국회는 본회의 의결을 통해 거창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한 국회와 내무, 법무, 국방부의 합동조사단 파견을 결정하였다. 국회조사단은 4월 3일 거창에 도착하여 신원면 현장을 향해 출발했다. 계엄사령부 민사부장 김종원은 조사단이 지나갈 길목에 공비로 위장한 군병력을 매복, 배치해 총격을 가했다. 그러나 이미 알려지기 시작한 거창사건은 더 이상 막을 수 없었다. 5월 하순부터 거창사건에 대한 헌병사령부의 수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대구 고등군법회의에서 재판부(재판장 강영훈 준장)는 김종원 징역 3년, 오익경 무기, 한동석 징역 10년을 선고하였다. 김종대는 무죄였다. 이 재판은 결국 사건을 축소·은폐하기 위한 형식적 절차에 불과했던 셈이다. 재판 과정에서 거창 사건의 학살 진상을 밝히는 작업은 전혀 이뤄지지 않았고, 유죄를 선고받은 피고인들도 1년 후 줄줄이 특사로 풀려나 다시 군에 복귀하였다.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은 9연대장 오익경은 출소 후 군에 복귀해 1956년 대령으로 예편했고, 1970년대 초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10년형을 선고받은 3대대장 한동석 역시 군에 복귀하여 9사단 부관, 수도사단 군수참모, 27사단 부연대장, 육군 첩보부대 교육대장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5.16 후에는 강릉·원주 시장을 거쳐 보사부 행정서기관으로 영전하는 등 아무런 제약도 받지 않고 살았다. 김종원의 승승장구는 더욱 놀랍다. 김종원은 군에 복귀했다가 경찰로 옮겨가 자유당 정권 시절 경찰 총수까지 거치며 안하무인으로 행동하였다. 학살의 책임자 최덕신 준장은 제1군단장을 지낸 뒤 육군 중장으로 전역하였으며, 박정희 정권 하에서 외무부장관을 거쳐 1963년 주 서독 대사를 역임했다. 동백림 사건 당시 서독 대사로서 서독 정부의 반발을 무마하는 역할을 맡았으나, 결국 실패하여 외교 문제로 비화된다. 이 때문에 한국 정부는 국제적인 항의에 직면하게 되었고, 사태 수습을 위해서 박정희는 최덕신을 해임해 버렸다. 정권에서 내쳐진 최덕신은 1976년 미국으로 이주한 후 수시로 북한을 방문하고 공개적으로 6.25 전쟁 북침설을 주장하는 등 친북 활동을 벌이다가 1986년 아예 북한으로 망명하였다. 참 아이러니한 일이고 용서받지 못할 인간이다. 세월이 많이 지났다. 제주4,3사건과 여순사건의 특별법이 제정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반쪽짜리 특별법이다. 산청함양거창사건에 대한 특별법도 1996년 ‘거창사건등 관련자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조치법’이란 이름으로 제정되었다. 그러나 산청함양거창사건 관련자에 대한 피해보상 등에 대한 법률 개정 혹은 특별법 제정은 20여년이 넘도록 국회에서 계류 중이다. 지리산둘레길을 걷다 보면, 크고 작은 뭇생명들에게서, 수억년 세월을 지내 온 돌들과 물들에게서, 천년을 버팅겨 온 절집에서, 따뜻한 위안을 받는다. 그런데, 가끔 지리산에 묻혀 있는 아픔들을 바라볼 때가 있다. 그 또한 지리산의 이야기이다. 이야기를 마치며... 1951년 국가는 민간인 1424명을 학살하면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는가? “읍에서부터 우리를 참 깔보는 거에요. 거창사건을 잘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어요. 그래논께네 아까도 내가 이야기 했지만 오죽했으면 국민투표 할 때 우리가 100%했어요. 99%가 아니라 100%라. 박정희 시대 국민투표를 몇 번 했거든요. 그걸 열람해보면 우리가 100%에요. 글을 몰라서 그렇지 절대로 우리가 빨갱이가 아니라는 걸 증명하려고” 국가는 폭력을 통해 인민에게서 ‘국민됨’의 입증을 얻어 내었다.
    • 지리산문화
    2022-09-08
  • 지리산 노고단 데크 보수작업과 정상에서 맛보는 풍경맛
    이제는 가을로 접어든 느낌입니다. 지리산 노고단은 현재 10월말경까지 노고단입구~정상 구간의 데크 보수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탐방객을 위해서 한쪽 데크씩 나눠서 작업중이라 작업이 예상보다 오래 걸리고 있는데 늦어도 10월말경까지는 완료될 듯 하다고 현장관계자분이 말씀 하셨습니다. (공사기간 : 2022년 3월 ~ 2022년 11월) 아직까지 다양한 야생화가 탐방객을 반겨주고 있고, 눈 앞에 닿을듯이 가까이 있는 반야봉부터 지리산 주능선과 무등산, 덕유산 그리고 섬진강자락의 풍경이 몇번을 빙글빙글 돌면서 보게 되는 장관입니다. 날씨도 선선해서 트래킹하기 딱 좋은 이때, 노고단으로 바람쐬러 오시길 추천드립니다. ^^
    • 지리산-인 방송국
    2022-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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