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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웅박 씻나락] "침묵이 깨지고 다른 말이 자라는 동네책방 살롱드마고" _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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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이 깨지고 다른 말이 자라는 동네책방 살롱드마고
우리 책방 ‘살롱드마고’에는 세 가지가 없다. 입시용 참고서나 문제집, 대형서점의 베스트셀러 자리를 차지하는 자기계발서, 평생 권위를 누린 남성 문학가들의 작품집. 대신 다른 세 가지가 있다.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며 생각을 전환해 주는 인문서, 다양성과 페미니즘을 주제로 하여 소수자의 목소리가 담긴 장르별 도서들, 그리고 자기만의 언어로 세상을 한발 더 나아가게 하는 용감한 여자들의 이야기.
살롱드마고 곳곳에는 성소수자를 비롯해 누구나 있는 그대로의 존재로 환대하고 성폭력에 반대한다는 메시지가 책과 이미지로 전시되어 있다. 이곳에 방문하는 사람들이 “들어오는 순간 왠지 안전하게 느껴진다”고 말하는 이유는 아마 살롱드마고만의 북큐레이션과 지향이 공간에 그러한 색을 입히고, 힘을 더하기 때문일 것이다.
살롱드마고는 2015년 남원시 산내면에서 여성주의 문화단체 ‘문화기획달’의 활동공간이자, 마을 여성들을 위한 창작·교육 공간으로 출발했다. 이후 조직을 재구성하며 ‘협동조합마고’를 창립하고 2020년 활동지를 남원시청 옆으로 옮기면서, 살롱드마고를 지역서점이자 페미니즘 문화공간으로 다시 열게 되었다.
현재는 카페를 같이 운영하면서 책방지기들이 추천한 초대작가들의 작품과 뉴스레터를 볼 수 있는 ‘아티스트 테이블’, 기록을 테마로 하여 필사와 다꾸(다이어리 꾸미기)를 할 수 있는 ‘플레이 라운지’, CD로 청음을 하며 음악가들의 도서 큐레이션을 볼 수 있는 ‘뮤직 바’ 등 다채로운 구성으로 책방의 경험과 가능성을 확장했다. 독서와 기록, 퀴어에 관한 귀엽고 개성 있는 굿즈들도 판매해 보는 재미를 더한다.
‘살롱’은 과거 유럽에서 문학가와 예술가, 철학자들이 모여 토론하고 사교활동을 하는 장이었는데, 주로 귀족 여성이 공간의 주인이거나 모임을 주도했다고 한다. ‘마고’는 지리산 여신의 이름으로, 신성한 창조주로서의 힘을 상징한다. 우리는 살롱드마고가 그 이름들의 유래처럼 지역 여성들이 만나고, 공부하고, 각자의 재능과 창조성을 발휘하면서 함께 힘을 나누고 성장하는 곳이 되기를 바란다.
우리는 책방이 단순히 책 파는 곳을 넘어, 책을 매개로 사람들과 소통하고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가는 곳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남원 같은 농촌 마을 위주의 소도시 지역에서는 문화적 갈증과 욕구를 충분히 해소하기 어려운데, 살롱드마고에서 여는 글쓰기모임이나 독서모임, 타로 워크숍, 문화예술 프로그램은 시민들에게 일종의 해방구이자 실험무대가 된다.
특히 가부장적인 지역사회에서 성역할을 강요받는 여성들은 책방에서 같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대화하면서 잃었던 자신의 꿈과 목소리를 되찾는다. 몇 년 전 글쓰기모임 참여소감 중 “이제 주변을 배려하느라 나를 함부로 대하지 않겠다”는 말은 우리에게 큰 감동과 울림을 주었다. 공동체의 좁은 관계망 속에 ‘나’를 드러내기 힘들었던 사람들이 책방에 와 위로와 지지를 경험하고, 자신의 삶에서 다가오는 도전과 두려움에 맞설 힘을 키워가는 것이다.
미국의 장애인권여성운동가 해릴린 루소는 책 『나를 대단하다고 하지 마라』에서 “우리를 속박하는 것은 우리의 다름이 아니라 침묵”이라 했다. ‘다른’ 존재와 말을 품어주는 울타리가 넓어질수록 우리는 더 자유롭고 충만해지며 삶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살롱드마고의 고요한 서가에서, 경청을 약속하는 모임 테이블에서, 매일 침묵이 깨진다. 그곳에 ‘다른’ 말이 자란다.
*한겨레신문에 기고했던 글 “지리산 여신 마고의 책방, ‘살롱드마고’에 없는 것”(2023.03.03.)을 <지리산人> 뒤웅박씻나락 칼럼에 맞게 수정한 글입니다.
글쓴이_달리
살롱드마고 책방지기
[뒤웅박 씻나락 칼럼]
지리산 자락 삶이 우리 사회의 대안적 삶의 모습이 되길 꿈꾸는 <지리산人>의 바람을 담아, 지리산 곳곳에 계신 씨앗 같은 이들의 삶과 생각을 싣고자 합니다. 칼럼 글쓴이의 일부 주장이 <지리산人>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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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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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환의 절기 이야기] 제비가 돌아오는 3월3짓날과 청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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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명 즈음해 드는 명절이 한식입니다. 명절은 대부분 음력으로 따지는데 한식만 예외로 양력으로 따집니다. 동지 105일 후를 한식으로 하거든요. 근데 하필 왜 105일일까요? 맞습니다. 이게 15일 정도 간격으로 오는 절기에 맞추다보니 그리 된 거지요. 동지 이후 청명까지 7개 절기가 드니 15일 곱하기 7개하면 105일이 되거든요. 중국 춘추시대 진晉나라 때 산에 숨어살며 나오지 않는 개자추라는 충신을 끌어내기 위해 불질렀다가 그 불에 타죽어 왕이 그날만은 불을 지르지 않고 찬밥寒食을 먹었다는 고사에서 비롯된 게 한식날입니다. 근데 그 고사는 중국 얘기이니 잘 모르겠고요, 제가 볼 때는 봄에 농사 준비로 불 테우는 일을 한식과 청명 전에는 끝내고 조상 산소에 찾아가 잘 올라온 잔디를 밟아주거나 뗏장을 가져다 입혀주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산소까지 테워서도 안되지만 또 그 때되면 봄비도 오기 시작해 불 태울 일도 없을테니요.
청명과 관계된 음력 명절로는 3월3짓날이 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이날을 명절로 삼아 동네 잔치를 벌였답니다. 우리는 1월1일 설날, 3월3일 삼짓날, 5월5일 단오날, 7월7일 칠석날, 9월9일 중구절 등을 길한 날이라 해서 명절로 삼았어요. 이 날들이 전부 양(+)을 뜻하는 홀 수가 겹치는 날이라 길하게 본 겁니다. 양이 겹쳤다는 의미의 중양절이라고도 하죠.
그래 3월3짓날은 1월에 시작한 봄기운이 완연해지는 날로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온다 했습니다. 삼짓날이 그만큼 날씨가 봄답게 온화하다는 뜻도 있지만 그래서 씨앗 파종하기 딱 좋은 때라는 게 중요하죠. 말하자면 씨앗 심고 싶은 철인데요, 사람들에겐 사랑을 나누기 딱 좋은 철이기도 합니다. 아마 바람둥이 제비족이란 말도 이와 관련있을 법한데요, 그렇지만 마구 씨를 뿌려대면 쭉정이만 나올 수 있으니 제비족 같은 바람둥이는 경계하란 뜻이 담겨 있을 거라 상상해봅니다.
마찬가지로 봄과 관계된 것으로 바람이 있지요. 생각할수록 바람이란 말은 참 재밌습니다. 옛날엔 바람을 하늘님의 숨이라 했어요. 그래 하늘님이 노하시면 태풍 같은 무서운 바람이 불고 하늘님이 기분 좋으면 살랑살랑 사랑의 봄바람이 불지만 인간이 오버해 미혹한 바람을 일으키면 사단이 났던 거지요. 성경에서 하느님이 흙으로 인간을 빚은 다음 코에다 사랑의 숨을 불어넣었다 하는 것도 비슷한 얘깁니다.
청명이 되니 모든 봄꽃이 만개를 하네요. 옛날엔 순서대로 꽃이 폈는데 요즘은 경쟁하듯 한꺼번에 핍니다. 거의 제일 먼저 피는 개나리가 보통보다 일주일 늦게 피더니 곡우 즈음해서 피는 조팝꽃이 벌써 폈어요. 벗꽃은 자기 순서 기다린 듯 개나리 피기 무섭게 피네요. 올해는 음력이 늦어 개나리가 늦게 핀 듯 한데, 벗꽃 조팝꽃은 일찍 피니 늦은 음력 탓하기가 힘듭니다. 음력이 늦어 감자나 봄 채소들은 늦게 심으려는데 벗꽃 조팝꽃 일찍 핀 걸 보면 벼와 곡식들은 늦게 심는 게 능사는 아니겠어요. 문제는 서리에 약한 고추 같은 과채류들입니다. 음력이 늦은 올해 같은 경우 늦서리가 올 가능성이 농후하기에 되도록 늦게 심는 게 좋을 것 같거든요.
여전히 저희 밥상엔 나물이 끊이지 않습니다. 마늘 대용인 달래는 기본이구요, 돌나물, 씀바귀, 부지갱이도 늘 올라오는 밑반찬이지요, 잠깐잠깐 요 때만 먹을 수 있는 눈개승마 나물도 입맛을 돋구는 데 모자람이 없더만요. 제가 울릉도 미나리라 이름 붙인 전호나물도 생채로 초고추장에만 찍어 먹는데 그 맛이 그만입니다. 요즘엔 원추리 나물과, 머위나물이 핫 이슈입니다. 머위나물은 살짝 비린내 같은 게 있지만 들깨가루에 무치니 그 맛은 사라지고 머위 고유의 향과 맛이 살아나대요. 원추리 나물은 독이 있어 망설이다 작년부터 먹기 시작했는데 진짜 감동이더이다. 독을 제거하기 위해 조금 더 세게 대쳐야죠. 식감과 우러나는 단맛이 끝내주고 입맛을 돋구는 데 다른 반찬이 필요없어요.
청명이 다가오니 이젠 나무 순들이 얼굴을 내밀기 시작합니다. 제일 먼저 올라온 두릅에서부터 다음 주부터는 나무 순들을 먹을 수 있을 것 같아 또 군침이 도네요. 구 기자 순, 엄나무 순, 화살나무 순, 다래 순, 오가피 순, 가죽나무 순이 순서를 기다릴 겁니다. 나무 순 중에서 최고라는 옻나무 순만 먹어보질 못했어요. 나물을 이렇게 많이 먹는 나라도 드물지만 옻순처럼 독이 있는 나물을 즐기는 사람들은 더 없을 겁니다. 한 번은 옻닭 백숙 먹으러 갔더니 식당에서 옻독 오르지 않게 약을 주대요. 약이라면 손사래치는 체질이라 걸리면 걸리라지 하며 약 먹지 않고 먹었는데 멀쩡했어요. 아마 이것저것 나물 많이 먹으며 내성이 생긴 것 아닌가 싶었죠.
청명엔 아무거나 심어도 싹이 잘 나지만 그래도 파종하는 날은 음력 삼짓날과 양력 절기인 청명과의 관계를 잘 살펴 잡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청명과 음력 삼짓날 사이에 파종날을 잡는 게 좋다고 보시면 됩니다. 청명은 절節이고 곡우는 중中이어서 청명은 2월에 들 때도 있고 3월에 들 때도 있어요. 곡우는 중이어서 꼭 3월에 들지만요. 그래 청명이 어느 달에 드느냐에 따라 파종 시기가 달라집니다. 방금 청명과 삼짓날 사이에 심는다 했죠. 그러니까 청명이 2월에 들면 삼짓날 전에 심어야 하니 음력으론 일찍 심고, 청명이 3월에 들면 삼짓날 지나 심어야 하니 음력으론 늦게 심습니다. 그렇지만 양력으로 보면 반대에요. 음력으로 빠르면 양력으론 늦게 심고 음력으로 늦으면 양력으론 빨리 심는다는 거죠. 말로 하니 헷갈리지만 손으로 달력 메모장에 써가면서 하면 금방 파악이 되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청명 농사일정
글을 쓴 안철환 선생은 온순환협동조합, 전통농업연구소 대표이고 경기도 안산에서 ‘산림생태텃밭 먹거리숲 농장’을 운영한다. 남은 음식물과 똥오줌, 커피 찌꺼기를 받아 직접 거름 만들기를 실천하고 있으며, 우리 토종 종자와 전통 농업 살리기에 열중하고 있다.
25년 전, 처음으로 심은 배추 씨가 3일 만에 싹 트는 걸 보고 ‘씨 안에 누가 있었구나!’ 깨닫고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우리가 먹는 배추는 단순히 물질적인 먹을거리가 아니라 나와 별 차이 없는 생명이며, 그래서 먹는다는 것은 생명을 먹고, 생명과 소통하고, 생명과 하나 되는 일이라고 믿는다.
쓴 책으로 《시골똥 서울똥》(2009), 《24절기와 농부의 달력》(2011), 《호미 한자루 농법》(2016), 《토종농법의 시작》(2020)이 있고, 옮긴 책으로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2004)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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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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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주옥 X 인간주옥] ③주옥이는 잠만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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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만보’로 말하자면, 잠만보는 포켓몬스터에 등장하는 포켓몬으로 하루 대부분을 자거나 먹는 데 쓰는 ‘잠꾸러기’이다. 먹는 건 모르겠고, 자는 건 나와 겨뤄볼 만하다.
나는 말을 하다가도 잠들고, 아이스크림을 먹다가 손에 아이스크림을 든 채로 잠이 든다. 버스, 기차, 트럭, 배, 비행기 등 운송수단을 가리지 않고, 좌석에 앉으면 5분 이내 잠들고, 내려야 할 곳에선 귀신처럼 깬다. 저녁에 잠드는 건 5초면 된다. 머리가 베개에 닿자마자 잠이 든다고 봐야 한다. 사람들은 국립공원 대피소의 극상 상황에서도 잘 자는 내가 부럽다고 한다. 나는 잠에 관해서는 현존하는 절대 지존 ‘잠만보’다.
내가 언제 어디서나, 특히 저녁에 잘 자는 이유에 대해 ‘피곤해서’, ‘간이 안 좋아서’, ‘활동량이 많아서’, ‘멀미해서’, ‘잠 시간이 부족해서’ 등의 추측이 난무한다. 모두 그럴듯하지만, 확실한 한 가지는 일찍 일어나기에 일찍 자는 것이다. 나는 새벽 4시에 일어난다. 중학생 이후 몸에 밴 습관이다. 부모님께서 새벽 3시면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셨기에 어쩌다 보니 나도 그렇게 됐다.
새벽 4시에 일어나 뭘 하냐고? 빨래도 하고, 청소도 하고, 책도 읽고, 글도 쓰고, 절도 하고, 명상도 하고, 기도도 하고, 그대가 저녁에 하는 일을 새벽에 할 뿐이다. 그렇게 시작되는 평범한 하루 속에서 새벽에 일어나 어두운 창이 밝아오는 걸 바라보는 건, 삶을 풍요롭게 한다.
잠에 관하여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내가 반달가슴곰(반달곰)이 겨울잠을 잔다는 걸 알게 된 후, 그의 겨울잠에 대해 궁금한 게 많아졌다. 가을에 맘껏 먹은 곰들은 굴에 들어가 잠을 자면서 한 해를 마무리하고, 봄이 오면 굴을 나와 한 해를 시작한다. 먹지 않고 긴 겨울을 어떻게 보낼 수 있을까? 그렇게 오랜 시간 잠을 자면 잠자기 전에 있었던 일을 기억할 수는 있을까? 혹시 동지에서 춘분까지는 어디 먼 곳에 다녀오는 건 아닐까? 그렇다면 진짜 멋진 일일 텐데 말이다.
이처럼 꼬리를 무는 궁금증 속에서 알게 된 사실은, 반달곰이라고 해서 모두 겨울잠을 자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한반도에 사는 반달곰은 겨울잠을 자지만 대만 반달곰은 겨울잠을 자지 않는다. 김만우 팀장(구례곰마루쉼터)은 반달곰이 겨울잠을 자는 이유에 대해 “가장 큰 이유는 먹이 부족입니다. 먹을 게 없으니까 그걸 극복하기 위해 진화적으로 동면을 하는 거죠. 대만의 경우는 먹을 게 있어서 그렇습니다. 동면은 극한 환경에서 나타나는 행동”(2026년 3월 31일 김만우 팀장 면담)이라고 설명한다.
↑지리산 반달곰들은 화엄사 홍매가 필 즈음에 겨울잠에서 깨어난다 (그림 결)
그럼 내가 잠을 잘 자는 이유도 어떤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행동일까? 그러고 보니 나는 고민이 있거나, 화가 나거나, 일이 안 풀릴 때 잠을 더 잘 잔다. 이런 나를 두고 동료는 ‘그럴 때 잠이 오냐? 소리를 질러야지! 아니면 술을 마시든가.’라고 말하지만, 놀랍게도 잠을 자고 나면 고민도, 화도, 일도 절반은 해결되어 있다. 내가 잠을 자는 동안 누군가가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분명하다. 반달곰도 겨울잠을 자고 나면 슬프고, 아픈 기억들이 반으로 줄어들면 좋겠다.
작년 ‘구례곰마루쉼터’(곰쉼터)의 성원이 된 반달곰들, 그중에서 나와 같은 이름을 갖고 있는 ‘곰주옥도 겨울잠을 잤겠지.’ 김만우 팀장에게 물어봤다.
윤주옥: 여기 곰들도 겨울잠을 잔 거죠, 곰주옥도?(호호)
김만우: 아니에요. 지난해 24개체가 들어왔는데, 그중 7개체만 동면(겨울잠)을 시켰어요.
윤주옥: 네! 왜요?
김만우: 그게요, 여기 있는 곰들 대부분은 사육되던 농장에서 겨울잠을 자지 않았다고 합니다. 겨울잠은 곰들의 생리적인 행동이지만, 사육되던 개체들은 동면 경험이 없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검증되지 않은 개체는 사고 위험 때문에 동면을 안 시킨 거고요. (2026년 3월 31일 김만우 팀장과의 대화)
사육되던 곰들은 겨울잠을 안 잤구나! 자연에서는 당연한 겨울잠도, 농장이나 동물원, 보금자리(구례곰마루쉼터, 화천곰보금자리)처럼 인간이 규정한 환경에서는 ‘재우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어떻게 재우는 걸까?
“먹이를 조절하는 건데요, 가을에 가장 많이 먹이고, 동면 직전에 점점 줄이다가 마지막에 끊습니다. 그다음에는 빛을 차단하고 보온재를 넣고, 사람 접근을 막아서 동면 환경을 만들어줍니다”(2026년 3월 31일 김만우 팀장 면담)
↑ 겨울잠에 드는 반달곰의 눈빛
이처럼 동면은 세심한 환경 조성과 준비 과정을 거쳐 이루어지는데, 여기서 한 가지 인상적인 이야기가 더해진다. 곰쉼터의 곰들에게 짚을 넣어주었더니 스스로 탱이(낙엽이나 짚을 모아 만든 잠자리)를 만들었다고 한다. 뜬장에서 살았던 곰주옥도 태어나 한 번도 해보지 않았을 탱이를 만들었다고 하니, 기특하면서도 짠하다.
곰쉼터의 곰들을 1주일에 한 번씩 만나는 나는 3월 중순, 따뜻하고 햇살도 좋은 날인데도 움직이지 않고 땅바닥에 누워 먼 하늘만 바라보던 곰주옥이 애처로웠다. 어디 아픈지 걱정도 되었다.
김만우: 아니에요. 원래 곰은 활동을 많이 하는 동물이 아닙니다. 개처럼 뛰어다니지 않아요. 상위 포식자들은 대부분 그렇습니다. 필요할 때만 움직이고, 평소에는 쉬는 시간이 많습니다.
윤주옥: 아, 그렇군요. 상위 포식자다운 위엄이 있네요. 동면이라고 해도 계속 잠만 자는 건 아니죠?
김만우: 네, 자다 일어났다가 반복합니다. 물도 먹고, 날씨 좋으면 나와서 햇빛도 쐬고요. 다만 자는 비율이 훨씬 높아서 동면이라고 하는 겁니다. (2026년 3월 31일 김만우 팀장과의 대화)
↑ 구례곰마루쉼터에서 바라본 구례의 봄. 곰쉼터의 곰들에게 올해 봄은 어떻게 기억될까.
곰에 대해, 특히 곰주옥에 대해 관심이 많다 보니 그의 눈빛, 움직임, 소리에 민감해진다. 나의 민감함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가만히 쉬고 있는 시간을 ‘이상하다’고 여기거나, 나의 기준으로 그의 상태를 짐작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럴 때 적당한 표현이 ‘과유불급(過猶不及)’이다. 알고자 하는 마음이 앞설수록, 한 걸음 물러서는 태도 또한 필요하다. 곰주옥이 그저 곰답게, 자기의 방식대로 살아가도록 지켜보는 일, 어쩌면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거리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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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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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웅박 씻나락] "크리스천들의 손에 쥐어진 날 선 십자가" 성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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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들의 손에 쥐어진 ‘날 선 십자가(cruz espada)’
20여 년 전 필자가 한국 외교관으로 바티칸 시국에 주재할 때(2003~2007)였다. 해마다 1월이면 교황이 바티칸 주재 대사들 부부를 초빙하여 신년하례식을 가졌다. 2,000여 년 승계된 제정일치(祭政一致) 국가답게 교황이 당해 연도 국제정세를 일별하면서 정의와 평화, 인권과 환경 문제를 두고 종교적 시각에서 법적 한계를 초월하는 인도적 호소를 전세계와 수교국 국민들에게 보내는 자리였다.
대사 부부와 공관원 전부가 초빙받는 ‘신년하례회’는 바티칸 ‘왕홀(Sala Regia)’에서 열렸는데 500여 명이 들어가는 그 큰 홀의 한쪽 벽은 천정까지 거창하게 그려진 프레스코 벽화였다. 1571년 그리스도교 신성동맹의 해군이 이슬람 해군을 격파하여 오스만 제국의 서방 진출을 저지한 승리를 기리는 초대형 작품이었다(G.Vasari의 1572년작). 내 곁에 앉은 이집트 대사나 리비아 대사더러 “저 벽화에서 ‘죽는 건 조조군사’로 그려져 군대는 당신네 먼 조상들인 걸 알아요?”라며 놀려주기도 했다.
인류는 지난 20세기 중반에 ‘600만 유대인 대학살’이라는, 인류사상 가장 잔인하고 대대적인 집단 학살을 목격했고, 그 범죄가 ‘그리스도교 세계(Christentum)’를 통솔해 온 로마 교황청에 의해서 역사적으로 촉발되고 자행되고 독려되어 왔음을 다 알고 있다.
그리스도교는 로마 박해 300년을 이겨내고 ‘제국의 국교’로까지 격상되자, “사람은 하느님의 모습으로 만들어졌으니 남의 피를 흘리는 사람은 제 피도 흘리게 되리라.”(창세기 9,6)는 성서 구절이 없지 않음에도, 그리스도교 지성을 대표하는 교부(敎父)라는 위인들부터 앞장서서, ‘나자렛 사람 예수’를 처형했다는 탓으로 유대인들에게 ‘사람 백정’(요한 크리소스토무스[†407])이니, 하느님을 죽인 ‘신살자神殺者’(아우구스티누스[†430])니, 심지어 종교개혁을 부르짖던 루터(†1546)마저 ‘사악하고 독살스러운 뱀’이니 ‘악마’라는 딱지를 붙여 신도들의 증오심을 촉발했다.
가톨릭교회가 이탈리아 중부를 직접 통치하던 중세에 교황 파울루스4세가 1555년에 로마에 ‘게토(ghetto)’라는 봉쇄구역을 지정하여 유대인들을 강제 수용하자 전 유럽의 도시들이 즉각 그 제도를 채택하였다. 그곳에 수용된 유대인들은 별도 호적에 등록되어 있었으므로 훗날 히틀러 정권이 전 유럽에서 유대인들을 색출 검색하여 멸절시킬 만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었다. 히틀러의 ‘유대인 최종해결책(Endlösung der Judenfrage)’에 추축국은 물론 나치 점령하 모든 정권과 해당 지역의 신구교 교회들이 그 ‘해결책’에 동조하고 적극 협력한 사실은, 그리스도교가 1,500년간 유대인이라는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로 부마(付魔)되어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리스도교가 ‘유럽의 종교’로까지 세를 확장하자마자, 자기들이 ‘주님’이라고 숭상하는 그리스도가 못 박혀 죽은 십자가(十字架)를 장검(長劍)으로 버려내어 휘두르기 시작했다. ‘성지 탈환’이라는 명분으로 유럽 국가들을 부추겨 장장 200년에 걸친 ‘십자군 전쟁’(1095-1291)을 일으켜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를 불구대천의 원수로 만든 것도 클레르몽 공의회를 거쳐 교황 우르바누스 2세가 내린 칙령(1095)이었다.
제1차 십자군은 예루살렘을 함락하였고, 성을 방어하던 이슬람 장정들이 다 전사하자 성 안에 남은 아녀자와 노인들 7만 명을 몰살하였다. 그 학살부대 크리스천들은 전투복 가운과 방패에 붉은 십자가를 그려 넣었고, 전장에서 죽으면 연옥벌(煉獄罰)을 면제받고 천당으로 직행한다는 보장까지 받고 있었다. 위에 언급한 바티칸 ‘왕홀’의 벽화의 최상단을 보면 천계에서 예수가 이슬람 해군을 향해 제우스처럼 시뻘건 번개를 날려 보내고 예수를 옹립한 사도들은 모조리 장검을 뽑아 휘두르고 있다. 크리스천들은 예나 지금이나 그 ‘날 세운 십자가(cruz espada)’를 휘둘러 약소국을 침략하고 노예사냥을 하고 원주민들을 학살할 때 ‘하느님께 영광을 올린다’는 희열을 누려온 듯하다.
지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유럽 열강은 이슬람들이 2,000년간 살아온 팔레스티나 영토를 빼앗아 서기 70년에 추방당한 유대인 후손들에게 나라를 세워주고서, 금년 2월 28일 트럼프의 이란 침략과 이스라엘군의 무차별 폭격에 이르기까지 팔레스타인, 요르단, 아프가니스탄, 시리아, 이집트, 이라크, 리비아, 이란을 차례로 침략하여 히로시마 원폭 같은 폐허를 만들고 이슬람 시민들을 대량 학살해 왔다. 그 가증할 반인륜 범죄를 유럽인들은 ‘문화충돌’이라는 단어로 은폐해 버린다. 이란 현지 매체 <테헤란타임스>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이 아이들의 눈망울을 보라"며 1면에 실은 이란 남부 미나브 학교 폭격으로 어린이들의 얼굴 사진과, 그 어린이들을 폭사시킨 트럼프를 개신교 목사들이 에워싸고 무훈과 전승을 빌며 안수기도를 바치는 사진에 독자들은 구토했을 것이다. 21세기 신구 그리스도교가 양식 있는 인간들에게 주는 구토감이다.
작년 12.3 내란 이후 태극기에 성조기에 이스라엘기까지 흔들어대며 광화문에 모여 ‘윤어게인!’을 외쳐대는 크리스천들을 보라! 그 무리를 영도하는 목사의 입에서 “하나님도 나한테 까불면 죽어!”라는 모독이 튀어나올 만큼 추락한 종교인들의 광기라니!
필자가 우리 지리산人들의 양심을 깊이 상처 내는 작금의 국제정세를 그리스도교 역사에 비추어 상기시키는 데는 까닭이 있다. 필자가 크리스천, 더구나 구교 신자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교회다’라는 표어에 따라 필자가 몸담은 로마 가톨릭교회의 역사적 죄상을 유대인들에게, 이슬람 형제들에게, 지금은 유대인들 손에 몰살당하는 가자의 팔레스타인인들에게,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독자들께 사죄하고 싶기 때문이다, 일개 신도로서나마!
지리산 자락을 흘러내리는 휴천강 턱에 집을 짓고 30년 넘게 살아온 필자에게는 이 산 주변에서 ‘지리산 종교연대’라는 모임을 결성하고 한국불교 사회운동의 메카로 불리는 실상사를 중심으로 불교, 원불교, 개신교, 가톨릭 성직자들과 신도들이 해마다 6월 25일이면 지리산 어느 골짝엔가 모여서, 마고 할매의 치맛자락에 유골을 묻은 이들과 생사를 초월한 친교를 나누는 지성이 눈물겹게 아름다워서다. 뜻이 깊어서든 억울하게든 민초들과 의인들을 희생시킨 그 죽음들이 부디 이 겨레를 싸매주고 번영시키는 분신공양(焚身供養)으로 하늘에 거두어지기를 빌고 싶기 때문이다.
좀 멀리는 왜란 때마다, 지난 세기에는 동학혁명을 일으켰다 패해서, ‘10.19 여순 사건’에 쫓겨서, 6.25 전쟁 중 조선인민유격대를 이루어, 또는 그들을 토벌하는 군경으로서 저 험준한 능선과 깊은 계곡을 축축이 적셨던 피들이 지리산과 한반도 깊숙이 스며들어 역사의 화차를 끌어가 주기 염원하는 까닭이다. 위에 지적한로마 가톨릭의 역사적 죄상을 절감하여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을 딴 로마 교황이 아마도 교회의 죄과를 씻는 첫 순례지로 한국을 방문하고 떠나면서(2014.8.18.) “얼결에 제3차 세계대전이 이미 발발했네요.”라던 서글픈 장탄식이 필자의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는 연고다.
참조: http://donbosco.pe.kr/xe1/?document_srl=103594
글쓴이 : 성염
전 주교황청 대사·서강대 명예교수
본문 그림(나오는 순서대로) 출처
Wikimedia Commons contributors, "File:Giorgio vasari e aiuti, la battaglia di lepanto, 1572-73, 01.jpg," Wikimedia Commons,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title=File:Giorgio_vasari_e_aiuti,_la_battaglia_di_lepanto,_1572-73,_01.jpg&oldid=1163435605 (accessed March 21, 2026).
https://www.huffingtonpost.kr/article/250181 (원본 테헤란타임즈)
https://www.whitehouse.gov/gallery/president-donald-trump-joins-faith-leaders-in-prayer/
뒤웅박 씻나락 칼럼
지리산 자락 삶이 우리 사회의 대안적 삶의 모습이 되길 꿈꾸는 <지리산人>의 바람을 담아, 지리산 곳곳에 계신 씨앗 같은 이들의 삶과 생각을 싣고자 합니다. 칼럼 글쓴이의 일부 주장이 <지리산人>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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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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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환의 절기 이야기] 마늘과 함께 만물이 부활하는 춘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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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의 길이가 밤낮이 같은 춘분부터는 음보다 양이 세지는 본격적인 양의 시대가 도래합니다. 겨울을 나고 새싹, 새움들이 입춘에 꿈틀거리기 시작해 드뎌 춘분에 얼굴을 드러냅니다. 겨울 되기 전 추워 죽은 것 같던 생명들이 부활하는 겁니다. 예수님이 이 때 부활하신 것도 같은 이치입니다. 생명이 본격적으로 성장하고 활동하는 양의 시대이니 부활하시기 딱 좋은 철인거에요. 더운 여름이나 추운 겨울에 부활할 수는 없지 않겠어요? 실제로 예수님이 언제 부활했는지 기록도 없고 진짜로 부활하셨는지도 알 수는 없어요. 만물이 부활하는 춘분에 온생명을 대표하는 예수님이 부활하신 걸로 보는 건 자연스런 일이었을 겁니다.
한 번은 춘분 직전 어느 성당에서 절기 강의를 한 적이 있어요. 강의 전 여는 말씀을 하신 신부님이 곧 다가올 부활절의 의미를 얘기해주시는데, 예수님의 육체적 부활이 중요한 게 아니라 우리 모두 부활하는 삶 을 사는 게 더 중요하다 하셨지요. 맞습니다. 일일신우일신은 아니어도 적어도 춘분이 되면 부활하는 새삶을 계획하면 어떨까 싶어요. 이게 괜한 얘기가 아닌 게, 예컨대 사람도 춘분이 되어 목욕을 하면 때가 더 나옵니다. 몸이 먼저 부활하는 것이죠. 하지만 요즘은 매일 목욕하는 경우가 많아 춘분이 돼도 우리 몸에 내재된 달력이 작동하지 않는 게 안타깝기만 합니다. 저희집 마당의 삽살개도 춘분이 되면 몸에 진드기가 생기기 시작하죠. 온생명이 부활의 기지개를 켜는 겁니다.
동양에선 춘분이 되면 용이 하늘로 승천한다 했어요. 용은 하늘의 메신저로 여겨 임금은 용이 새겨진 용포를 입었지요. 임금은 천자, 곧 하늘의 아들로 여겼으니 기독교와 비슷하죠. 춘분에 승천한 용은 여의주 물고 비를 뿌려주며 만물의 성장을 돕다 추분이 되면 하늘에서 내려온다 했어요. 이젠 성장을 멈추고 이삭과 열매를 맺어 후손을 준비하게 한 것입니다. 불을 뿜으며 만물을 죽이는 서양의 드래곤과 대조되죠. 사실 이건 날씨의 차이를 닮은 겁니다. 우리의 여름은 비 많이 오는 것과 반대로 서양의 여름은 건조하고 따갑기만 하니 다 죽는 거죠. 용이 문제는 아닌 거에요.
작물 중 춘분에 부활하는 대표적인 것이 바로 마늘입니다. 우리는 마늘 먹고 인간이 된 후예답게 마늘을 세계에서 제일 많이 먹고 좋아하죠. 사실 마늘은 참 희한한 작물이에요. 한 쪽 심어 여섯쪽 수확을 하니, 한 알 심어 몇천알 이상 거두는 곡식에 비하면 한심하기까지 해 보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몇 천알의 기운이 여섯쪽에 집약된 것으로 본다면 완전히 얘기는 달라지죠. 그것도 추운 겨울을 견디며 춘분에 지 스스로 부활한 것을 보면 저는 마늘이야말로 성聖스런 기운을 품은 작물이라 봅니다. 그런 마늘을 먹고 버텼으니 곰이 인간될 만하고 드라큘라가 마늘 보고 도망 갈 만 하지 않겠어요? ㅎㅎ
근데 재밌는 것은 곰이 먹은 마늘은 지금의 마늘과 다르다는 거에요. 지금 마늘은 이집트나 중앙아시아가 원산지라 그걸 먹지는 못했을 거라는 거죠. 제 생각엔 아마 달래가 아니었을까 싶어요. 우리 땅에서 오랜 세월 자생한 원조(야생) 마늘이거든요. 아니면 산마늘이라고 하는 명이일지도 모르겠어요. 달래는 20년도 더 전에 다섯뿌리 얻어다 심은 게 지금 우리 밭엔 지천입니다. 어제부터 달래장 만들어 밥에 비벼먹으니 봄이 입안에 한 가득이더이다. 요즘은 명이가 또 한참 올라오고 있어 아내가 오늘은 명이에 달래장을 비벼 두부와 치즈를 넣어 국적 불명의 샐러드(겉절이)를 비벼 주는데 반주를 걸치지 않을 수 없었네요.
암튼 제가 사는 안산 같은 중부지방에선 겨울되기 전 씨마늘을 심고 얼지 않게 볏짚 덮어주면 춘분에 싹이 올라옵니다. 그러다 꽃샘추위가 가시는 청명 즈음해 볏짚 벗겨주고 웃거름을 줍니다.
그런데 지난 겨울 소한 전까지 따뜻한 날이 많아 마늘 싹들이 많이 올라왔어요. 그러다 소한 대한 추위, 입춘 후 꽃샘추위까지 이어져 마늘의 동해 피해가 클까봐 걱정도 컸지요. 다행히 얼어죽거나 동상을 입은 애들은 많진 않아 겉으론 그럭저럭 괜찮은 편인데 속은 안보이니 어떨지 모르겠어요. 수확해 봐야 정확한 건 알겠죠. 그냥 하던대로 웃거름 주고 남은 꽃샘추위 걱정되어 약간 흩어진 볏짚 잘 덮어주고 왔습니다. 하늘은 늘 농부를 전적으로 도와주진 않는다는 걸 떠올리면서 말이죠. 어쩌겠습니까.
* 대문 사진 : 춘분 한 참 전에 캐 본 마늘, 겨우내 잠만 잔 게 아니었습니다. 거의 뿌리 없는 마늘을 심었는데 겨우내 땅 속을 파고 들어 이만큼 뿌리가 자랐아요.
** 마늘은 우리나라에서 한지형과 난지형으로 나뉜다. 필자 안철환 선생이 농사짓는 안산은 한지형으로 겨울이 오기 전 싹을 거의 내밀지 않고 땅속에서만 성장한다. 반면에 남쪽에서 재배하는 난지형 마늘은 푸른 잎을 낸 상태로 겨울을 난다.(편집자)
글을 쓴 안철환 선생은 온순환협동조합, 전통농업연구소 대표이고 경기도 안산에서 ‘산림생태텃밭 먹거리숲 농장’을 운영한다. 남은 음식물과 똥오줌, 커피 찌꺼기를 받아 직접 거름 만들기를 실천하고 있으며, 우리 토종 종자와 전통 농업 살리기에 열중하고 있다.
25년 전, 처음으로 심은 배추 씨가 3일 만에 싹 트는 걸 보고 ‘씨 안에 누가 있었구나!’ 깨닫고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우리가 먹는 배추는 단순히 물질적인 먹을거리가 아니라 나와 별 차이 없는 생명이며, 그래서 먹는다는 것은 생명을 먹고, 생명과 소통하고, 생명과 하나 되는 일이라고 믿는다.
쓴 책으로 《시골똥 서울똥》(2009), 《24절기와 농부의 달력》(2011), 《호미 한자루 농법》(2016), 《토종농법의 시작》(2020)이 있고, 옮긴 책으로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2004)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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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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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환의 절기 이야기] 경칩, 흙일하기 딱 좋은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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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칩은 대개 음력 2월에 듭니다. 음력 2월은 12지지의 묘卯월로 절기로는 경칩과 춘분이 들지요. 인월의 호랑이가 음양에서 양인 이유는 계란의 껍질을 갑자기 갈라서 올라오듯 땅을 갑자기 갈라서 올라오는 기운이라 보았기 때문입니다. 반면 2월은 음으로 그 생명의 기운이 점점 퍼져가는 형국을 표현한 것으로 토끼의 은근하지만 빠른 번식력을 빗댄 것이죠. 토끼도 이 때가 되면 초목의 새싹들을 뜯어 먹으며 활동을 개시하기 시작하니 적당한 비유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지만 경칩이 1월에 들 때도 있습니다. 올 해 특히 일찍 들어 1월 17일이 경칩날입니다. 입춘이 아직 추운 섣달에서 시작했듯, 경칩이 됐다고 해도 너무 빨라 봄이 토끼처럼 활발하게 퍼져가긴 이를 때입니다. 그래서인지 아쉽게도 아직 냉이가 보이질 않네요. 지칭개는 벌써 나와 힘을 쓰고 있는데 말이죠. 그래도 위안이 되는 건, 명이도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고, 밀, 보리, 호밀, 시금치도 경칩을 아는지 푸른 기운을 드러내고 있다는 겁니다. 봄 꽃으로 예쁜 수선화도 싹을 올리고 있고요, 상사화도 까꿍하듯 얼굴을 내밀고 있네요. 이틀 전엔 목련 나무 잔가지를 쳤는데요, 작년 논둑 보수하면서 너무 자라 논에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놈을 죽이려다 버들강아지처럼 앙증맞게 피어있는 목련솜강아지들이 살려달라 하는 것 같아 도저히 베지 못한 나무에요.
논 옆 둠벙엔 산개구리들이 짝짓기하느라 개굴개굴(사실 산개구리 소린 다릅니다. 그 표현을 몰라 그냥 썼는데 제가 존경하는 귀농 선배가 가르쳐주네요. '호로롱호로롱~'하고 노래하는데 참 예쁜 표현이지요? ㅎ) 노래하는 소리가 참 이쁩니다. 비발디 4계의 봄 악장이 저만큼 예쁠지 생각해봤습니다. 가까이 가서 엿들으려 스쿠터 살살 몰고 가 보니 연애하느라 정신 판 놈들이 둠벙 물 텀벙텀벙 거리며 노는 게 여느 청춘남녀의 "나 잡아봐요." 희롱 못지 않네요. 짖궂은 샘일까요. 저도 괜히 헛기침 해보니 일제히 침묵으로 숨어버리더만요. ㅎ
정월 대보름이 경칩 이틀전이어서 찰밥과 나물을 먹었습니다. 설날에 고기 많이 먹어 대보름엔 고기 먹지 않고 견과류와 찰곡식과 나물을 먹는다지만 제가 볼 때는 고기보다는 찰 곡식 먹기 위해 그런 건 아닐까 상상해봤습니다. 설날에 고기 먹어봤자 얼마나 먹겠습니까. 특히 부유하지 못한 농가에서 탈 날만큼 고기 먹을 일은 없을 겁니다. 제가 보기엔 꽃샘추위가 아직 기승을 부리고 있는 시절에 농사일 시작하려면 몸도 데우고 힘도 낼 찰곡식을 먹기 위해 나물을 많이 먹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찰곡식 많이 먹으면 변비에도 좋지 않듯이 몸에 잔류해 여러 대사 장애를 일으킬 수 있어 그걸 예방하기 위해 섬유질 풍부하고 비타민, 미네랄 풍부한 나물을 먹어주는 것 아니겠냐는 거죠. 저도 허리협착증 생긴 이후 변비가 잦아 불편했는데 나물 많이 먹으니 속도 편하고 변도 좋아져 일할 맛도 나니 또 한번 우리 먹거리에 담긴 조상들의 지혜에 감사한 마음이 들더이다.
여전히 세상은 꽃샘추위의 기세가 떠르르하지만 입춘에서 일어난 봄은 우수비를 맞고 경칩을 거쳐 그 기운을 은근히 퍼뜨려 갑니다.
경칩에 밭에 가보면 땅에 금이 가 있음을 볼 수 있어요. 그 금의 정도로 지난 겨울이 어떠했는지도 알 수 있고 봄 날씨가 어떤 상태인지도 파악할 수 있지요. 금이 강하고 많이 가 있으면 겨울에 눈비가 적당히 내려 흙이 얼었다가 경칩 즈음 봄의 건조한 기운으로 갑자기 흙 표면이 녹으면서 마른 겁니다. 물 먹은 흙이 얼어 부피가 커졌다가 봄 마른 기운에 갑자기 부피가 쪼그라들면서 금이 간 거지요. 그렇지만 토양 내 유기물이 충분하면 스폰지 역할을 해 금 가는 현상은 적어요.
어쨌든 겨우내 흙이 얼었다 녹았다 하며 흙은 부드러워지는데 경칩에 흙 표면의 금이 많이 가면 봄 가뭄이 심하거나 토양 내 유기물이 부족하다는 증거입니다.
그래 예부터 경칩에 흙 일을 하면 손해가 없다 했습니다. 그만큼 겨우내 얼었던 흙이 풀리면서 부드러워졌다는 겁니다.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흙은 겨우내 만들어지고 부슬부슬해지죠. 물 먹은 돌멩이가 얼어 부피가 커져 돌이 깨지면서 흙이 되는 거거든요. 돌의 풍화작용으로 흙이 된다고 하지만 저는 빙화작용으로 흙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근거입니다. 옛 석공들이 큰 돌을 깰 때도 이 원리를 이용했다 하지요. 겨우내 땅에 박혀있던 쇠 꼬챙이가 봄이 되면 살짝 튀어올라 오는 걸 볼 수 있는데요 이것도 같은 이치 때문입니다. 흙이 얼어 부피가 커져 밀려 올라온 것이에요.
농부는 경칩이 되면 부서진 담벼락 수리를 하든가 밭을 갈기도 합니다. 흙이 부드러워져 쉽게 되거든요. 그래 이 때는 가래로 갈 일을 호미로도 갈 수 있어 이를 잘 활용하면 흙을 갈지 않고도 작물을 키울 수 있습니다. 이른바 무경운 농법입니다. 사실 무경운이란 말은 좀 어폐가 있어요, 그럼 호미질도 하지 말라는 건가? 라고 따질 수가 있잖아요. 그래 무경운의 핵심은 무거운 기계로 땅을 짓누르고 고속회전 날로 흙을 밀가루처럼 가는 일을 하지 않는 걸로 이해해야 합니다. 오히려 흙을 망가뜨리기 때문이지요.
암튼 농부는 그렇게 경칩에 밭을 갈며 농사일을 공식적으로 시작합니다.
음력 대보름이 보통은 우수 근처에 드는데 올 해는 경칩 이틀 전에 들었습니다. 이번엔 음력이 늦는 꼴이에요. 거꾸로 절기는 양력으로 볼 때 빠른 거지요. 그래 올 상반기엔 양력 기준으로 파종을 할 때는 늦출 필요가 있습니다. 음력으로 빠른 거겠지요.
올 대보름은 붉은달이었어요. 개기월식 때문인데 태양파 중 긴 파동인 붉은 색만 지구 넘어 통과해 그렇다지요. 암튼 좋은 징후는 아닙니다. 신기한 현상이라고 반길 일이 아니죠.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하늘이 하는 일인 것을요. 하늘이 하는 일에 대해선 좋다 나쁘다 탓할 수가 없어요. 다만 잘 헤아리고 겸손하게 받아들여 조심조심해야죠. 반면 흙은 뿌린대로 거둔다 했으니 농부는 경칩부터 흙 돌보는 일에 정성을 다해야 합니다. 이제 성실의 미덕을 발휘해야 할 때입니다. 홧팅!
* 대문 사진 : 흙 마르지 말라고 덮은 볏짚 사이에 가을에 심어 먹고 남은 시금치가 싱싱합니다. 물 타서 준 오줌으로만 키웠는데 최고로 맛있을 때지요. 소금간만 해도 끝내줍니다.
글을 쓴 안철환 선생은 온순환협동조합, 전통농업연구소 대표이고 경기도 안산에서 ‘산림생태텃밭 먹거리숲 농장’을 운영한다. 남은 음식물과 똥오줌, 커피 찌꺼기를 받아 직접 거름 만들기를 실천하고 있으며, 우리 토종 종자와 전통 농업 살리기에 열중하고 있다.
25년 전, 처음으로 심은 배추 씨가 3일 만에 싹 트는 걸 보고 ‘씨 안에 누가 있었구나!’ 깨닫고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우리가 먹는 배추는 단순히 물질적인 먹을거리가 아니라 나와 별 차이 없는 생명이며, 그래서 먹는다는 것은 생명을 먹고, 생명과 소통하고, 생명과 하나 되는 일이라고 믿는다.
쓴 책으로 《시골똥 서울똥》(2009), 《24절기와 농부의 달력》(2011), 《호미 한자루 농법》(2016), 《토종농법의 시작》(2020)이 있고, 옮긴 책으로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2004)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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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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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주옥×인간주옥] ② 나는 내려왔고 곰주옥은 옮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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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년 전이다. 2008년 11월 20일 새벽 3시, 나는 트럭에 몸과 짐을 싣고 지리산으로 향했다. 얼마를 달렸을까? 트럭 창문에 머리를 부딪히며 실눈을 떴다. 눈발이 날리고 있었다. 서울에서의 삶이 그렇게 고달프지 않았고, 이곳 지리산에서의 삶도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을 터인데, 눈물이 나왔다.
이경재 선생님 강의를 들은 것이 계기가 되어 ‘생태보전시민모임’ 창립에 함께했고, 오구균 선생님과 ‘한국 국립공원 정책 포럼’을 기획하면서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을 만났다. 1996년 이후 환경생태활동가로서의 삶은 충분히 의미 있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희망보다는 부담이 커졌다. 그날 트럭 안에서 흘린 눈물은 감사와 기대, 긴장 등의 감정이 뒤섞인, 정체가 분명하지는 않으나 나의 한 시대를 마감하는 눈물이었을 것이다.
지리산으로 가겠다고 하니, 주변에서 한마디씩 했다. ‘아직 젊잖아’, ‘서울에서도 할 일이 많은데’, ‘그렇게 가버리면 사무실은 어쩌라고’, ‘무책임하네’, ‘여기를 버리고 결국 가는구나’라는 말들이었다.
시골로 내려가 농사를 짓겠다는 것도, 지리산에 할 일이 많다는 것도, 적당한 이유가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나에게 서울의 삶은 힘겨웠고 답답했다. 활동 방식에 대한 스스로의 불만도 커졌고, 능력의 한계도 느껴졌다. 그렇다고 지리산으로 내려가면 다른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여러 물음과 질책에 답하지 못하며 삶터와 활동 공간을 옮겼다. 그렇게 내려온 지리산은 서울보다 따뜻했고, 북한산만큼 아름다웠다. 지리산자락 활동가들은 여유로웠고, 행사를 할 때면 부를 수 있는 시인, 가수, 작가, 화가도 많았다. 지리산은 풍요로웠고, 지리산자락의 사람들은 소박했다. 그렇게 18년이 흘렀다.
내가 지리산 곳곳을 걷고, 지리산 사람들을 만날 때, 곰주옥은 연천의 한 농장에서 태어났다. 곰들이 사는 공간은 크게 두 가지 형태이다. 하나는 시멘트 바닥이고, 다른 하나는 ‘뜬장’이라 불리는 철창이다. 뜬장은 땅에서 떨어진 철제로 설치되어 배설물이 아래로 떨어진다. 청소하지 않아도 되니 많은 곰 농장에서는 뜬장을 사용했고, 연천농장의 곰들 역시 뜬장에서 살았다.
↑ 곰주옥의 집이었던 연천농장 모습 ⓒ곰보금자리프로젝트
연천농장에 대해 궁금해하는 나에게 최태규 대표(곰보금자리프로젝트)는 연천농장에는 한때 50에서 60개체의 곰이 있었으나 그 수는 점점 줄어들었다고 했다.
윤주옥:60개체에서 30개체에서 다시 10여 개체, 이렇게 줄어든 거네요. 줄어든 이유가 뭘까요?
최태규:도살이라고 봐야죠. (2026년 2월 25일 최태규 대표와의 대화)
연천농장의 곰들은 웅담 채취용 곰이었으니, ‘도살’이라는 답은 당연하다. 그럼에도 멸종위기 야생생물이며, 국제적으로도 거래가 안 되는 보호종인 곰을 쓸개 때문에 ‘도살’했다는 사실은, 참 낯설고 놀라운 일이다.
곰주옥의 부모는 히말라야 아종으로 한반도에서 태어나지 않았다. 그들은 인간에 의해 한국으로 옮겨졌고, 그 자손들은 철창 안에서 태어나 나이 들었다. 연천농장에서 태어난 곰주옥은 지리산으로 내려오기 전까지 그곳에서 자랐다. 1980년대 한국의 곰 사육 산업으로 수입된 곰들은 각 농장에서 번식을 통해 개체 수를 늘려왔다. 연천농장의 곰들 역시 그러한 증식 과정을 통해 태어난 2세대 또는 그 이후 세대이다. 2014년부터 2016년까지 사육곰 중성화가 이루어졌다는 점을 고려하면, 연천농장에 남아 있던 곰들은 적어도 10살 이상이다.
↑ 연천농장 뜬장 안의 곰 ⓒ곰보금자리프로젝트
최태규 대표에 의하면, 연천농장 농장주는 오랫동안 다양한 동물을 키워온 사람이라고 한다. 곰뿐 아니라 사슴, 새, 오소리 등 여러 동물을 키웠다. 동물을 좋아했기에 시작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좋아함’은 함께 살아가는 방식이 아니라, 가두어 키우는 방식이었다. 새끼가 태어나면 먹이를 주며 몸집이 커지는 것을 확인했고, 그것이 이윤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곳에서 곰들은 숲을 돌아다니며 먹이를 찾지 못했고, 뜬장에서 먹이를 받아먹으며 살았다. 그 삶은 지리산에 사는 반달가슴곰들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지리산에 사는 반달가슴곰들은 도토리를 좋아한다. 산을 열심히 돌아다니면 달달한 다래를 먹을 수도 있고, 그러다가 야생 벌집을 발견한다면 달콤한 꿀을 먹는 행운도 만날 수도 있다.
“ASF 돼지열병 때문에 지금은 거의 대부분의 농장에서 개사료를 주는데, 예전에는 식당이나 군대에서 음식물 찌꺼기를 가져와서 먹이는 경우들이 많았어요. 짬밥을 주면 농장이 굉장히 지저분해지고 철창 틈에 음식물 찌꺼기가 꽉 끼고 밑에도 더러워요. 연천농장도 그런 곳이었어요.” (2026년 2월 25일 최태규 대표 면담)
↑ 뜬장 안은 음식물과 똥이 뒤범벅되어 곰팡이가 피었다 ⓒ곰보금자리프로젝트
그렇다면 연천농장의 곰들은 어떤 이유로 우리나라 최초 공립 생추어리인 ‘구례 곰 마루쉼터’로 들어오게 되었을까? 사육곰 산업은 이미 끝을 향해 가고 있었고,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는 산업이었다. 법과 제도의 변화 속에서, 농장주들은 더 이상 곰을 통해 이전과 같은 이익을 얻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연천농장 농장주는 동물자유연대 등 동물단체들이 제시한 1개체 당 5백만 원을 선택했고, 그 선택 덕분에 곰주옥은 그곳을 떠날 수 있었다.
윤주옥:연천에 있던 곰들이 지리산까지는 어떻게 이사, 아니 이동했나요?
최태규:마취해서 철로 된 운송 케이지에 넣어 트럭으로 옮깁니다. 동물의 입장에서는 ‘이사’라기보다 ‘납치’에 가깝죠. 주사를 맞고 의식을 잃었다가 깨어나니 낯선 공간이었으니까요. 탈출하려고 시도하고, 극도의 공포를 느끼는 과정입니다. 그 과정에서 죽은 개체도 있고요.
윤주옥:여기(구례 곰 마루쉼터)가 더 좋은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이 과정에서 느끼는 감정은 공포였다는 거네요.
최태규:도착해서 한동안은 공포와 혼란을 느끼는 게 자연스럽습니다. 농장에서는 열악해도 익숙한 공간이기 때문에 도망가야겠다는 생각을 못 했을 수도 있지만, 새로운 공간에서는 모든 것이 낯설고 위험하게 느껴지니까요.
윤주옥:여기 온 곰들이 간이방사장으로 나가는 데 한 달 정도 걸렸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최태규:철창만 밟고 살다가 흙바닥을 처음 밟으면 위험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바뀐 곳의 환경이 안전하다고 인식하는 과정입니다. (2026년 2월 25일 최태규 대표와의 대화)
↑ 밖을 바라보는 연천농장 철창 안의 곰 ⓒ곰보금자리프로젝트
곰들에게 ‘이사’는 인간이 이해하는 의미의 이동과는 전혀 다른 경험이다. 그것은 스스로 선택한 이동이 아니라,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강제적인 이동이며, 깨어났을 때는 자신이 평생을 살아온 공간과 완전히 단절된 낯선 세계에 놓이게 된다. 비록 더 넓고 나은 환경으로 옮겨진다 하더라도, 곰의 몸과 감각은 그것을 즉시 위험으로 인식한다. 곰들에게 이사는 새로운 삶의 시작이라기보다, 몸이 기억해 온 세계로부터 갑작스럽게 분리되는 경험이며, 이후의 적응 과정은 오랜 시간 축적된 감각과 기억을 다시 배우는 시간인 것이다.
나는 스스로 결정하여 지리산으로 내려왔다. 반면 곰주옥은 옮겨졌다. 나는 여러 복잡한 감정을 품고 이곳으로 왔지만, 곰주옥은 마취된 몸으로 이곳에 도착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같은 산 아래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곰주옥에게 지리산은, 처음으로 흙을 밟은 곳이다. 활동가인 나에게 지리산은 지리산을 지키기 위해 피켓을 들고 시위를 하는 곳만이 아니라 농사를 짓고, 된장과 김치를 담고, 장작을 만들고, 아이들에게 밥을 나누는 곳이다. 이 모든 일들은 사람들과 함께 할 때에만 비로소 힘이 난다.
↑ ‘협동농장 땅없는사람들’로 모인 사람들은 구례에 있는 한겨레숲에서 농사를 지었다
↑ 지리산사람들 회원들은 된장계, 김장계, 오미자계 등으로 모여 일상을 함께 했다
↑ 구례 사람들은 초겨울이 되면 ‘햇살 가득 장작 나누기’를 통해 만든 장작을 혼자 사는 어르신에게 전달했다
↑ ‘공간협동조합 째깐한 다락방’은 아침밥을 못 먹고 학교에 가는 아이들에게 주먹밥을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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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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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환의 절기 이야기] 언 땅이 녹기 시작하는 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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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에 봄이 일어선다지만 사실 아직은 땅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라 몸으로 체감하긴 이릅니다. 요즘 처럼 입춘 이후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릴 때는 더하죠. 그러다 땅속의 양의 기운이 체감되기 시작하는 게 바로 우수입니다. 속담에 우수비에 대동강 얼음이 풀린다 했어요. 실제로 우수에 비 오는 경우가 많지만 찔끔 오고 마는데 밭에 가보면 제법 온 것처럼 땅이 질퍽하죠. 언땅이 녹아서입니다.
그런데 올 해 우수엔 비는 오지 않았네요. 밭에 가보니 비는커녕 땅에 가뭄기가 제법 느껴집디다. 좋은 조짐이 아니에요. 날은 풀렸지만 언땅이 녹으면 흙이 좀 끈기가 있어야 되는데 그렇지가 않으니 말이죠. 흙이 가물면 산불화재도 걱정이지만 봄 농사에도 좋을 일 하나 없습니다.
우수 전 후로 대보름이 옵니다. 추석 보름과 함께 대보름은 달도 크고 밝지요. 그 달이 밝지 않다면 좋은 징후가 아니라 했어요. 대기에 습이 많거나 저기압이란 얘긴데요, 봄이 땅속에서 잘 일어나려면 대기가 맑아야 양의 기운이 많아 흙의 음기운을 더 잘 깨울텐데 말이죠.
옛말에 멀리 일 나간 자식 설엔 못 와도 대보름엔 꼭 온다 했어요. 아무리 늦어도 대보름부터는 농사일 시작해야된다는 뜻이죠. 그만큼 대보름부터는 확실히 날이 풀리니 농한기는 이제 끝이라는 거겠지요.
대보름에 하는 달집태우기, 쥐불놀이 행사는 농사 시작을 알리는 축제 놀이였습니다. 빈 깡똥으로 하는 쥐불놀이는 아마 일제 강점기 이후 통조림 통, 페인트 통이 흔해진 이후 생긴 것으로 원래는 들녘에 솔가지 횃불이나 새끼줄 등에 불씨 담아 불을 놓았답니다.
아무튼 이런 불놀이는 기본적으로 월동한 병해충 살균과 풀씨 제거의 의미가 있었을거구요, 또 불이라는 양의 기운으로 남은 겨울 기운 제압하고 봄 기운 재촉하며 농사일에 사람들 기운 북돋으려는 축제의 의미가 있었을 겁니다. 요즘은 화재 위험 때문에 엄두 못내는 일이 되고 말았지만요.
올해는 우수가 음력 1월3일이니 대보름 12일 전이네요. 그만큼 대보름이 늦으니 봄도 늦고 꽃샘추위도 기승을 부릴지 모르겠어요. 그렇다고 농한기가 늘어나는 것도 아니니 쉴 날이 연장된다고 좋아할 일도 아니에요. 이래저래 바쁠 봄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늘 하늘은 농부의 게으름을 기달려 주지 않아요. 열심히 한다고 좋은 일만 주지도 않지요. 둘은 주지 않지만 하나는 꼭 준다 하니 결과에 집착하지 않고 그냥 내 갈 길 가는 수밖에요.
* 대문사진 : 밭에 갔더니 손님이 와 있네요. 음력 2월(묘卯)이 아직 오지 않았는데 먼저 토끼님이 오셨어요. 행동이 민첩하지 않고 살이 찐 걸로 보아 집토끼 같은데 아래밭 선배에게 전화하니 당신 토끼가 달아난 것 같다 하십니다. 혹 월동 작물들 뜯어먹지 않았나 살펴 봤더니 별 문제도 없구요. 늘 제 일이라면 당신 일처럼 도와주시는 선배님의 토끼이니 좋은 소식일밖에요.
글을 쓴 안철환 선생은 온순환협동조합, 전통농업연구소 대표이고 경기도 안산에서 ‘산림생태텃밭 먹거리숲 농장’을 운영한다. 남은 음식물과 똥오줌, 커피 찌꺼기를 받아 직접 거름 만들기를 실천하고 있으며, 우리 토종 종자와 전통 농업 살리기에 열중하고 있다.
25년 전, 처음으로 심은 배추 씨가 3일 만에 싹 트는 걸 보고 ‘씨 안에 누가 있었구나!’ 깨닫고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우리가 먹는 배추는 단순히 물질적인 먹을거리가 아니라 나와 별 차이 없는 생명이며, 그래서 먹는다는 것은 생명을 먹고, 생명과 소통하고, 생명과 하나 되는 일이라고 믿는다.
쓴 책으로 《시골똥 서울똥》(2009), 《24절기와 농부의 달력》(2011), 《호미 한자루 농법》(2016), 《토종농법의 시작》(2020)이 있고, 옮긴 책으로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2004)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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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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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웅박씻나락] "구례의 효(孝) 문화유산, 어떻게 이어야 할까" 홍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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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인 기획 칼럼 - 뒤웅박 씻나락]
구례의 효(孝) 문화유산, 어떻게 이어야 할까
_홍영기
설날의 소박한 생각
설날과 한가위가 우리 민족의 2대 명절로 자리 잡은 것 같다. 며칠 전 설 명절을 지냈다. 이때가 되면 고향을 떠나 도시로 나갔던 사람들이 불원천리 마다하지 않고 사연을 간직한 선물꾸러미를 들고 부모와 친척을 뵙기 위해 귀성길에 나선다. 이른바 민족대이동, 올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만물이 움트는 봄이 다가오는 시기의 설날은 소원과 복을 빌고, 풍성한 수확을 기대하는 가을 초입의 한가위에는 감사와 기쁨으로 차례를 지낸다. 설날은 한 해의 첫걸음을 시작하는 음력 초하루이고, 한가위는 한 해의 수고로움을 마무리하는 만월의 보름이다.
이 뜻깊은 명절에 가족이 모여 서로 안부를 묻고 격려와 덕담, 위로를 나누다 보면 쌓인 오해와 갈등도 눈 녹듯 사라진다. 이렇게 1년에 한두 번이라도 함께 만나 가슴에 묻어둔 조상의 묘소를 찾거나 연로하신 부모를 만난다. 돌아가시기 전 할머니의 손톱을 깎아드렸거나, 할아버지와 함께 목욕탕에서 등을 밀어드린 추억을 되새기는 것, 이것이 효도의 소박하고 정겨운 모습 아니겠는가.
친지들과 얼굴을 마주보며 따뜻한 차 한잔, 텁텁한 막걸리 한 사발을 같이 마시는 일, 또는 팔짱을 끼고 고샅길 걸으며 마주치는 이웃의 안부를 묻는 일이 곧 효도의 시작일 것이다. <효경>에 신체와 터럭, 피부는 부모에게서 받았으니, 감히 훼상하지 않는 것이 효의 시작(身體髮膚 受之父母 不敢毁傷 孝之始也)이라 했지만 말이다.
효 문자도(<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효자도 「사립단지」(<삼강오륜행실도>)
국가가 앞장서서 효를 장려하다
효는 아주 먼 옛날부터 국가가 크게 권장하였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8세기 중반 경덕왕 때 웅천주에 살던 향덕은 굶주리고 병이 들어 사경을 헤매는 부모를 위해 자신의 넓적다리를 베어 봉양했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국가는 그에게 큰 상을 내렸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사실을 널리 알리기 위해 비석을 세우고, 마을 이름을 효가리(孝家里)로 바꿨다. 그리고 9세기 후반 진성여왕 때 효녀 지은은 자신을 부잣집 노비로 팔아 지극정성으로 맹인 어머니를 돌봤다는 일화도 실려 있다. 이 때에도 국가는 큰 포상을 내리고, 그녀가 살았던 마을을 효양방(孝養坊)이라 고쳐 부르게 했다. 향덕과 지은의 효행은 <삼국유사>에서도 확인된다.
무엇보다 압권은 경주 사람 손순(孫順) 부부의 사연이다. 이들 부부는 날마다 품팔이를 해서 늙은 어머니를 봉양하였다. 하지만 어머니의 밥을 빼앗아 먹는 아이가 문제였다. 이들은, ‘아이는 얻을 수 있으나 어머니는 다시 구할 수 없다’며, 아이를 산에 묻기로 하였다. 산중에 들어가 땅을 파던 중 석종을 발견하였다. 기이한 종을 얻음은 아이의 복이라며, 다시 아이를 들쳐업고 종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종을 기둥에 매달아 쳤더니 신비한 종소리가 대궐까지 울려 흥덕왕도 그 사연을 알게 되었다. 손순 역시 국가로부터 집과 곡식을 하사받는 등 큰 포상을 받았음은 물론이다(<삼국유사>, 「손순매아 孫順埋兒」). 이처럼 1,200여 년 전부터 국가가 적극적으로 효자와 효녀를 칭송하고 포상한 역사적 사실을 찾을 수 있다.
구례 백성 손순흥은 ‘고려 제1의 효자’
구례에서도 지명의 영향인지 모르지만 예부터 효성스러운 사람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효문화와 관련된 유적이 제법 많이 남아 있다. 역사에 전하는 구례 최초의 효자는 손순흥(孫順興)이다. 손순흥은 ‘고려 제1의 효자’로 칭송되었다. 병든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구례 백성 손순흥은 어머니의 초상화를 그려 놓고 사흘에 한 번씩 무덤을 찾아가 살아 계실 때처럼 음식을 올렸는데, 고려 성종 990년의 일이었다(<고려사> 성종 9년 9월 4일자 교서). 손순흥의 지극한 효성을 파악한 고려 성종은 관리를 파견하여 곡식과 은그릇, 비단과 포목 등을 하사하였다. 또한 ‘집안에서 효자는 나라에 충신이 될 것’이라며, 관직과 품계를 내려주었다. 손순흥이 살던 마을에 정문(旌門)을 건립하고 요역도 면제해 주었다. 당시 고려는 효를 모든 일의 실마리이자 선행의 주체라 하면서, 대대적으로 장려하는 정책을 추진하였다. 이 과정에서 구례의 손순흥의 효행이 알려지게 되었고, 국가적 포상을 받은 것이다. <고려사절요>에도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으니,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라 하겠다.
순흥화상도(順興畵像圖)](<동국신속삼강행실도>)
손순흥 정려비각(구례읍, 우)
손순흥의 효행은 구례 최초의 읍지인 <봉성지(鳳城誌)>(1800년)에도 실려 있다. 이 문헌에는 손순흥의 어머니 생전의 효행과 ‘고려 제1의 효자’로 칭송되었다는 미담이 덧붙여 있다. 1,000여 년이 지난 지금 고려 성종 때 건립한 정문(旌門)의 자취는 찾을 수 없고, 최근에 건립한 정려비각만 구례군 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을 뿐이다.
그런데 <봉성지>에는 효자(29), 효녀(3), 효부(1) 등 33명이 기록되어 있다. 고려 시대 효자로는 손순흥이 유일하고, 나머지 32명은 모두 조선시대 인물들이다. 손순흥의 모범적 효행이 조선시대에 계승되어 확대 재생산된 것이다. 이들 중에는 효자 정려를 받은 경우도 적지 않다. 현재 구례군 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효자 정려가 아홉 곳이나 된다. 고려의 손순흥을 제외하면 주로 18세기 이후 효자의 정려이다. 다만, 효녀와 효부의 정려가 전혀 없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크다.
최여진 정려(마산면 광평)
김강철 정려(광의면 수월)
김경석 정려(산동면 탑정)
오형진 정려(마산면 상사)
이처럼 효자의 비중이 압도적이나, 어찌 효자만 많았겠는가? 효녀와 효부가 더 많았을지 모르나, 가부장제 문화에 의해 효자가 양산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정려를 받은 효자들은 대체로 아동을 가르치는 동몽교관에 임명되었다. 국가의 정려를 받은 효자들의 효행을 어린이 효교육의 모범사례로 활용한 것이리라.
구례의 자랑스러운 효문화 이어가려면
지금도 효행을 기리고 포상하는 행사는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빛바랜 사진처럼 과거지사로 간주하는 사람들도 점점 늘어나는 추세이다. 언제부턴가 명절 연휴에 고향의 부모를 찾기보다는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국내 여행은 물론이고 해외로 떠나는 여행객이 수백만 명이라 한다. 그러나 전통사회에서 중시한 효문화를 이른바 K-Culture로 활용할 수 있다면 공동체문화의 회복에 도움이 될 것이다. ‘고려 제1의 효자’로 칭송된 손순흥을 비롯한 구례의 효인(孝人)들을 선양하는 다양한 방안을 도출해야 한다. 또한 전통적 효행을 현재에 걸맞은 내용으로 수정하여 남녀노소 모두가 공감하는 효도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럼으로써 구례는 지명과 더불어 효문화 1번지로서의 정체성을 확보할 수 있지 않을까.
구례의 효문화를 올바로 전승하기 위해서는 먼저 ‘고려 제1의 효자’ 손순흥의 정려비각을 효사랑 공원이나 정원으로 조성하면 좋겠다. 현재 손순흥의 이름을 아는 구례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안내판조차 없고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은 채 골목 안에 갇혀 있는 손순흥 정려각, 구례 효 문화유산의 현주소이다. 손순흥, 그를 ‘고려 제1의 효자’로 복원하는 일이 시급하다.
글쓴이 : 홍영기
국립순천대학교에서 한국근현대사를 공부하고 가르치다 일찍 퇴직하였다. 구례 순천 사람들과 조그만 공부 모임을 함께 하며, 한국학호남진흥원장을 맡고 있다. 주중 광주, 주말 구례를 오가는 중이나 머지않아 구례 문전재(文田齋)로 돌아와 텃밭 농사와 미뤄둔 공부를 계속할 예정이다.
지리산人 기획칼럼 [뒤웅박 씻나락]
'뒤웅박 씻나락'은 이듬해 종자로 쓸 귀한 볍씨를 가리키는데요,
이 칼럼의 글들이 앞으로 생명·평화·나눔·돌봄·연대의 사회를 위한 씨앗이자 마중물이 되길 기대하며 만든 칼럼입니다.
지리산 자락 삶이 우리 사회의 대안적 삶의 모습이 되길 꿈꾸는 <지리산人>의 바람을 담아, 지리산 곳곳에 계신 씨앗 같은 이들의 삶과 생각을 싣고자 합니다. 칼럼 글쓴이의 일부 주장이 <지리산人>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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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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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환의 절기 이야기] 입춘, 우리의 양력 설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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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가월령가 첫 시작인 1월령의 1월은 음력의 정월인데요 1월에 입춘과 우수가 든다 했어요. 근데 정확히 말하면 입춘은 정월 1월에 들 때도 있고 섣달 12월에 들 때도 있다 해야 합니다. 반면 우수는 꼭 1월에 들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입춘이 섣달에 들면 봄이 일찍 오지만 춥다했어요. 올해가 딱 그럴 때입니다. 입춘이 음력 12월 17일이거든요. 입춘인데도 요즘 날씨가 춥고 눈 많이 오는 걸 그렇게도 해석할 수 있겠죠.
그런데 이렇게 추운 날에 어찌 봄이 오는 입춘일 수 있을까요? 아직도 날은 한겨울인데 말이죠.
아무리 날은 추워도 입춘에 반드시 봄이 오는 걸 모르는 건 사실 흙을 떠나 콘크리트, 유리, 플라스틱 박스에 사는 사람 뿐이라고 저는 강조합니다. 흙을 밟고 사는 농부, 나아가 흙과 자연 속에 사는 미물조차도 입춘에 봄이 온 줄 알게 되어 있다는 거죠. 어떻게 알까요?
사실 입춘만이 아니고 절기 모두는 기온으로 나누는 게 아니에요. 그럼 뭐로 나누죠? 맞습니다. 절기는 태양의 각도로 나누거든요. 다르게 말하면 해 그림자로 나누는 겁니다. 그게 바로 해시계, 곧 앙부일구입니다. 그러니까 절기마다 고유의 해 각도가 있고 해 그림자 길이가 정해져 있으니 흙을 밟고 해를 등지고 사는 생명이라면 다 안다는 거죠.
실제로 아무리 날은 추워도 입춘에 밭에 가보면 봄이 온 지 느낄 수가 있답니다. 정오 근방이 좋죠. 그래서 입춘날엔 꼭 봄맞이 하러 밭에 가자고 역설합니다. 이게 진짜 새해 맞이 일지 몰라요. 동지 다음날 해보다 입춘날 해맞이가 더 새날의 기운을 받는 것이지요. 새벽 일출을 보는 것보다 한 낮 밭에 드리워진 해의 기운을 받는 게 더 새해의 첫 기운이 됩니다. 그 새날의 기운을 듬뿍 담은 게 있으니 바로 입춘 냉이입니다. 입춘 냉이는 지난 가을에 싹이 터 겨울을 난 애에요. 그래서 저는 입춘 냉이는 산삼보다 보약이라고 강조합니다.
아무튼 입춘 맞이를 새해 맞이로 본 조상들은 그 의례로 대문에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이라는 문구를 붙였습니다. 입춘첩입니다.
새해가 되면 갑자년이니 을축년이니 하고 그러죠. 거기에다 색깔로 동물을 나눠부르잖아요. 올해는 병오년, 빨간말 또는 적토마의 해라고 호들갑이지만 그건 입춘부터 시작되는 거에요. 갑자 달력에서 신정은 아직 새날이 아니거든요.
입춘 근방엔 더불어 음력 정월 설날이 옵니다. 입춘에 앞서 오기도 하고 뒤이어 오기도 하죠. 우리의 설날은 그래서 두 개입니다. 음력 정월 설날과 양력 입춘 설날이 있는 거죠. 명리학 하는 분들은 어느 게 진짜 설날이냐고 따지기도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둘 다 우리의 설날인데 다만 선후가 더 중요하다는 겁니다.
지금 서양 달력의 신정 설날은 로마에서 시작된 것으로 사실 이는 동지 설날에 근거한 것이라 보는 게 타당합니다. 당시의 천문기술 상 동지날을 정확히 특정할 수 없어 해가 길어지는 걸 육안으로 느낄 수 있는 동지 열흘 후쯤을 임의로 삼은 거죠.
그럼 왜 우린 입춘을 새날로 삼았을까요?
천문 기준으론 동지가 기준이지만 동지 이후 본격적으로 추워지니 날씨 기준으로는 봄 기운이 시작되는 날, 곧 입춘을 새날로 잡은 겁니다.
입춘은 12지지로 인寅에 해당하는데요 이를 일년이 아닌 하루에 적용하면 새벽 3시에서 5시까지가 인寅시에요. 이 인시를 하루의 시작으로 본 것이나 인월에 드는 입춘을 한해의 시작으로 본 것이나 같은 이치입니다. 입춘에 봄이 시작되듯이 인시에 하루가 시작되는 건 닭이 알려주었어요. 새벽을 알리는 알람이었죠. 사실 자시의 자정을 하루 시작으로 한건 좀 그래요. 저 같이 1시쯤에나 잠드는 야행성인 사람은 하루의 시작을 잠으로 맞이하는 꼴이니 말이죠. 오히려 일출을 알려주는 닭 우는 시간이 하루 시작인 게 자연스러울 겁니다. 소한 대한 추위 지나 인월을 정월로 삼은 게 자연스런 것처럼요. 그렇다고 제가 인시에 일어난다고 오해하진 마세요. 아직 한밤중이니 저는 여전히 섣부른 나일롱 農夫인가 봅니다.
그럼 봄은 왜 닭이 아닌 호랑이(寅)를 상징으로 표현했을까요? 곰처럼 제대로 된 겨울잠은 아니어도 겨울잠처럼 웅크리고 지내다 입춘이 되면 기지개를 켜며 질러대는 호랑이의 포효소리가 숲 속에 봄을 일깨워 준다고 했어요. 봄이 되면 언 땅이 풀리며 쩍쩍 갈라지는 금들이 마치 호랑이 포효소리로 땅이 찢어지는 것처럼 느꼈던 것 아닐까 싶어요.
아무리 추워도 농부는 입춘되면 슬슬 기지개를 켜야 하는 까닭입니다. 기지개 켜며 하는 제일 중요한 일은 종자 손질과 거름 준비에요. 씨앗과 흙의 생명을 여는 행위이니 이처럼 성스런 일도 흔하지 않을 겁니다.
글을 쓴 안철환 선생은 온순환협동조합, 전통농업연구소 대표이고 경기도 안산에서 ‘산림생태텃밭 먹거리숲 농장’을 운영한다. 남은 음식물과 똥오줌, 커피 찌꺼기를 받아 직접 거름 만들기를 실천하고 있으며, 우리 토종 종자와 전통 농업 살리기에 열중하고 있다.
25년 전, 처음으로 심은 배추 씨가 3일 만에 싹 트는 걸 보고 ‘씨 안에 누가 있었구나!’ 깨닫고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우리가 먹는 배추는 단순히 물질적인 먹을거리가 아니라 나와 별 차이 없는 생명이며, 그래서 먹는다는 것은 생명을 먹고, 생명과 소통하고, 생명과 하나 되는 일이라고 믿는다.
쓴 책으로 《시골똥 서울똥》(2009), 《24절기와 농부의 달력》(2011), 《호미 한자루 농법》(2016), 《토종농법의 시작》(2020)이 있고, 옮긴 책으로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2004)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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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