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8-1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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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곰주옥 X 인간주옥] ⑥ 문수사를 나온 곰들, 무니와 수리 그리고 부기
    지금은 구례곰마루쉼터(이하 곰쉼터)에 있는 무니, 수리, 부기는 올해 4월 30일까지 문수사에서 살았다. 내가 이들을 처음 만난 건 2012년이었는데, 그 후로 문수사를 생각하면 곰들이 갇힌 철장이 먼저 떠올랐다. “2013년에 문수사 갔다가 갇혀 있는 곰을 보고 다시는 가지 않았습니다.” “사찰에서 철창에 갇힌 곰에게 줄 먹이를 팔다니요.”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계속 움직이는 거대한 곰의 모습에 눈물이 납니다.” “저희 아이도 오래전에 거기 곰들을 보고 너무 충격받아서 문수사 간판만 봐도 싫어합니다.” 문수사와 그곳에 사는 곰들에 대한 사람들의 댓글이다. 나 역시 문수사를 떠올리면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들었다. 그럼에도 1년에 한 번씩은 문수사에 올라가 곰들이 여전히 그렇게 살고 있는지 확인했다. 확인한다고 해도 내가 할 수 있는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우리의 질문에 매번 “그 곰들은 개인(문수사 주지)의 사유재산이라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올해는 지난 2월, 문수사 주변으로 올무 수거 활동에 갔다가 곰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여 문수사에 올라갔다. 여전히 철장 안에서, 여전히 왔다 갔다 하고, 여전히 돈을 내고 곰들에게 먹이를 주라는 안내판이 있었다. 여기에 더해 우리를 본 곰 한 마리가 철장에 머리를 부딪히며 소리를 지르는 충격적인 장면이 펼쳐졌다. 그 곰이 철장에 머리를 부딪힐 때마다 내 머리도 철장에 ‘쿵’ 부딪히는 통증이 전해졌다. 더는 그곳에 서 있을 수가 없어 일행들에게 내려가자고 이야기했다. 문수사에서 내려오면서, 가까이에 곰쉼터가 있는데 이 곰들은 왜 여전히 이곳에서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야 하는지 납득되지 않았다. ↑ 무니와 수리, 부기가 살던 문수사 철장(뜬장) 3월 초, ‘문수사 철장에 갇힌 곰들을 곰쉼터로 보내자’는 서명과 항의 전화를 요청하는 캠페인을 시작했다. 나 같은 생각을 하는 분들이 많았다. 서명은 100명에서 1천 명으로, 다시 2천 명, 3천 명으로 삽시간에 늘어났고, 항의 전화를 했다는 분들이 상황을 전해왔다. 결과적으로 문수사의 곰들은 곰쉼터로 옮겨졌다. 3월 초부터 활동을 시작했고, 곰들이 이주한 게 4월 30일이니 두 달 만에 묵은 숙제를 한 셈이다. 사람들이 함께 움직이고 실천하면 부조리한 일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한 일이었다. 무니, 수리, 부기는 4개월째 곰쉼터에서 살고 있다. 잘 살고 있겠지만, 어떻게 살고 있는지, 무더운 여름애 뭘 하며 지내는지 궁금하여 곰쉼터를 찾았다. 최신영 수의사는 무니, 수리, 부기라는 이름이 어떻게 붙여졌는지 말해줬다. “무니, 수리는 문수사에서 온 친구들이라 자연스럽게, 마지막 한 친구에게 ‘사니’라고 붙이려 하니 ‘사니?’ 이런 물음으로 들려 좀 이상해서요. 그런데 그 친구가 잘 걷지를 못하는 거예요. 걷는 모습이 거북이 같아서 ‘부기’라고 했습니다.”(2026년 8월 13일 최신영 수의사 면담) ↑ 곰쉼터로 옮겨진 후 건강을 회복한 부기 (사진제공 : 구례곰마루쉼터) 곰쉼터에 왔을 때 거북이처럼 걷던 부기는 많이 좋아졌다. 척추에 손상을 입었을 것으로 예상되어 압박이나 염증을 줄여주는 약물치료를 했고, 곰쉼터 바닥이 타일이라 미끄러우면 걷는 게 힘들 수 있으니까 청소 후에는 최대한 물기가 없도록 했다. 이제는 걷는 모습이 눈에 띄게 괜찮아졌다. 100% 완벽한 건 아니지만 다리를 질질 끌고 다니는 모습은 없다. 나는 문수사의 곰들이 ‘이사’, ‘이주’했다는 표현보다는 ‘옮겨졌다’는 말을 더 많이 쓴다. 문수사 곰들뿐 아니라 곰이 이곳에서 저곳으로 사람에 의해 이동하는 과정에는 마취를 하거나 포획틀을 사용하는 등 사람의 개입이 필요하다. 윤주옥: 문수사에서 여기는 무척 가깝잖아요. 그럼에도 여기까지 올 때, 마취를 할 수밖에 없는 거죠? 최신영: 네, 그렇습니다. 문수사 철장 안에서만 살았기 때문에 갑작스러운 이동이나 환경 변화에 예민할 수밖에 없어서요. 흥분한 상황에서 마취를 하지 않고 케이지로 이송한다면, 그 친구들에게는 공포스러울 수밖에 없거든요. 윤주옥: 더 좋은 환경으로 이동하는 거잖아요? 최신영: 친구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작은 공간에 갇혔다가 (넓어지고 깨끗해졌지만) 익숙한 환경이 아니기 때문에 흥분할 수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곰이 다칠 수 있고 또 사람도 다칠 수 있기 때문에 마취가 좀 더 안전한 거죠. (2026년 8월 13일 최신영 수의사와의 대화) 무니와 수리, 부기는 얼떨결에 옮겨졌지만, 다행히 잘 지내고 있다. 최신영 수의사는 문수사에서 매일 같이 많은 사람들을 만났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취에서 깨어났을 때 공격적이지 않았’고, ‘다른 친구들보다 빠른 시간 내에 적응을 잘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무지하게 더웠던 올여름은 어떻게 지냈을까? 지리산 자연에 사는 곰들은 계곡에서 지낼 수 있으니 어떻게든 여름을 보냈을 텐데, 털 많은 곰들에게 이 더위는 얼마나 힘든 시간이었을까? “각 방에 물 양동이를 하나씩 넣었어요. 물놀이를 좋아하는 친구들이 있거든요. 밖에 나가는 걸 좋아하던 친구들도 있었는데 햇빛이 강하니까 안 나가더라고요. 그래서 중간방사장 위쪽에 검은색 천막을 쳐줬고요. 또 방마다 선풍기를 설치하고, 과일을 얼려서 주기도 합니다. 여기 바닥이 타일이거든요. 타일이 시원하니까 최대한 몸을 펼치고 누워 있더라고요. 입추 지나면서 조금 시원해져서 다행이에요.” (2026년 8월 13일 최신영 수의사 면담) ↑ 물통에 몸을 담그고 더위를 식히는 무니 (사진제공 : 구례곰마루쉼터) ↑ 타일 바닥에 몸을 최대한 펼쳐 누워 쉬고 있는 수리 (사진제공 :구례곰마루쉼터) 최신영 수의사와의 대화 후에 무니와 수리, 부기를 만났다. 부기는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나를 봤고, 무니는 바닥에 누운 채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으며, 수리는 옆 방의 친구들이 궁금한 듯 눈과 귀가 옆 방을 향해 있었다. 최신영 수의사는 곰들을 ‘친구들’이라고 칭했고, 개별 곰에 대해 말할 때는 이름을 불렀다. ‘부기야, 뭐 하니?’, ‘무니, 많이 덥구나’ 이런 식이다. 곰들을 대하는 그의 말과 태도에서 곰을 향한 애정이 느껴졌다. 무니와 수리, 부기는 사람들의 관심과 참여 덕분에 좀 더 좋은 환경에서 살게 되었다. 최신영 수의사는 ‘계속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다’고 했다. 아직 사육농장에 남아 있는 곰들이 있고, 곰쉼터에서 살아가는 곰들도 사람들의 관심이 끊기면 지원이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곰들이 왜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 이곳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알고 기억하는 것. 그리고 계속 관심을 갖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시작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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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8-18
  • [안철환의 절기 이야기] 귀뚜라미 소리로 오는 입추
    12지지 중 음력 7월은 신申월로 가을의 시작입니다. 봄은 인(寅, 1월), 여름은 사(巳, 4월), 겨울은 해(亥, 10월)와 함께 해당 계절의 첫달이자 시작이지요. 여름의 끝달인 미未월 밑에서 열매와 이삭의 기운인 가을이 꼬물락 거리다 신월이 되어 이삭이 패고 열매가 영글어갑니다. 열매와 이삭 자체는 음 기운이지만 이삭이 패고 열매가 익어가는 형국은 양의 기운입니다. 그래서 신은 양금陽金으로 대표 동물을 원숭이로 배치했는데 이삭과 열매가 익어가는 양의 기운을 상징한 것 같습니다. 이 나무 저 나무 점프해 다니며 열매 따먹는 원숭이의 기운 보면 그럴 법도 하지요.보통은 음력 7월에 입추와 처서가 드는데 올해는 음력이 늦어 아직도 입추는 6월에 머물고 있습니다. 25일이 입추로 일진으로는 계축癸丑입니다. 전날의 일진은 임자壬子일로 물기운을 많이 담고 있어 조만간 폭염은 가실 것 같습니다. 다만 입추날이 여름의 끝인 6월 하순에 들어 가을이 금방 올 것 같지는 않네요. 적어도 말복인 다음 주까진 한 낮 폭염은 계속되다 음력 7월 15일 백중까지도 여전할 것 같습니다. 그러다 태풍이라도 들이닥치지 않을까 노파심이 드네요.어젠 입추답게 가을이 오는 걸 알리는 귀뚜라미가 울기 시작해 반가웠지만 소리에 힘은 별로더니 입추인 오늘 밤엔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네요. 작년엔 입추가 윤6월에 들어 올벼도 아닌 벼가 입추에 이삭을 패서 긴장을 했었습니다. 보름은 빠른 거였어요. 근데 대개는 이삭 패기 시작하면 정신없이 마구 패는데 몇 놈만 패곤 처서 즈음해서야 본격적으로 패는 걸 보고 윤달은 윤달이네 했었죠. 과도기라 뭔가 정상적이지 않은 일들이 생기거든요.올해는 서리 내리는 때를 알려주는 무궁화 꽃도 늦게 피고 음력 9월말 쯤 돼야 서리 내리는 상강도 9월 보름 전에 들어 이래저래 추위가 늦을 것 같네요. 벼도 처서 지나 좀 늦게 패지 않을까 싶구요.아무튼 입추는 입춘 입하 입동과 함께 해당 절기가 시작하는 입절기로 전 계절의 마지막 기운이 극성을 부릴 때 옵니다. 그러니까 그 절기가 시작되는 걸 체감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 중 특히 입추가 제일 극적입니다. 가을이 시작되는 입추가 지났는데 마지막 더위 말복이 들이닥치니 더 그렇지요. 액이 빠져나갈 때 꼬리로 뒤통수 치고 나간다는 말이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 같습니다. 춘분 지나 들이닥치는 꽃샘 추위와 비슷하죠.입추가 되어도 폭염이 여전해 요즘은 오후 5시 넘어서야 밭에 갑니다. 아내나 저나 새벽 1시쯤에나 잠이 드는 야행성 게으름뱅이라 새벽엔 못 가죠. 오후 느즈막이 가서 해질녁 시원해진 바람 쐬며 들어오는 게 참 좋거든요.대서 지나 물 뺀 논에 들어가 하는 피사리는 미안하게도 아내 몫입니다. 물 빼기 전에 해야 피사리가 덜 힘든데 요번엔 녹조가 생겨 부득이 물 빼고 하려니 힘이 더 듭니다. 온몸이 땀에 절은 모습 보고 걱정하는 내게 벼 그늘에 허리숙여 하니 덜 힘들다고 기염을 하니 안쓰럽기까지 합디다.들깨밭 제초와 북주기는 폭염 전에 마무리하고 봄 가뭄에 반밖에 올라오지 못한 생강밭 제초와 당근 심을 풀밭 다스려 파종도 끝냈으나 직파한 가지 고추밭 제초는 결국 폭염 속에서 끝냈습니다. 오후 5시여도 땀 뻘뻘 흘리며 하느라 넓지도 않은 밭 하는데 3일이나 걸렸네요.그래도 아내는 밭에 들어가면 수확을 먼저 합니다. 지주 세워주지 않은 토마토에서 숨은 보물 찾듯 열매를 수확하는 재미가 쏠쏠한 모양입니다. 작년에 쌓아둔 풀 더미 속 부엽토만 갖고 키운 토마토가 아주 싱그럽습니다. 병은커녕 열매가 아주 탱글탱글합니다. 폭염에 가물고 뜨거우면 칼슘 결핍이 일어나 열매가 갈라지거나 배꼽썩음병 같은 게 생기는데 이놈은 전혀 그럴 기세가 없네요. 넝쿨 속에 가려져 가뭄도 덜 타고 새도 열매를 쪼아놓질 못 하는 것 같습니다. 지주 세워 키우는 것보단 수량이 적겠으나 가성비 관점에서 이것저것 따지면 훨 나은 느낌입니다. 요즘 거의 매일 토마토를 먹고 있어 어째 수량도 더 많아보이더만요.토종오이와 수박 수확하는 재미도 참 쏠쏠합니다. 오이 모종을 수수 사이에 심어 수숫대 올라타는 놈보다 직파로 오이만 심어 바닥 기는 놈이 더 수확을 많이 하는 것도 재밌대요. 수수밭 오이는 깊이 뿌리내리는 수수와 경쟁할 일도 없고 햇빛 가릴만큼 수수를 밀식한 것도 아닌데 해석이 잘 안됩니다. 수숫대 타느라 넝쿨손 키우는 데 힘 써서 그런가 싶기도 한데 어쨌든 오줌을 더 주어도 별반 차이가 없네요. 수숫대가 통풍을 방해해 매개충이 적은가 싶은 의구심만 갖고 더 지켜볼 요량입니다.토종수박은 그야말로 자급농사만 주는 기쁨이 진짜 쏠쏠합니다. 잘 해야 애 머리정도밖에 크질 않고 익은 거 고르기가 쉽지 않아 냉장고에 이삼일 숙성시키고 먹는데요, 단맛은 덜하나 수박향이 끝내줍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감동은 수박속껍질 나물입니다. 오이노각 나물처럼 해먹는데 수박향 때문에 맛이 더 끝내주죠. 옛날 농서에도 덜익은 수박은 나물 해먹으면 좋다고 했는데요,이게 바로 자급농사만이 즐길 수 있는 혜택입니다. 토종수박을 비롯해 토종과일들은 저장성이 떨어져 오래 못갑니다. 그래서 사라진 것들도 많아요. 대표적인 게 해남물고구마와 소사(부천)물복숭아입니다. 먹으면 꿀물 같은 게 입안 가득할 정도로 과즙이 끝내주는데 그 때문에 저장성이 떨어져 시장에서 외면받은 거죠.그런데 저장성이 좋아 두고두고 먹는 게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그 자리에서 뚝 따먹는 게 최고죠. 토종수박도 바로 따 그 자리에서 속도 먹고 껍질은 나물 해먹어야 하니 시장에 낼 수도 없어 소비자는 먹어볼 기회가 없습니다. 자급 농부만이 즐길 수 있는 먹거리인겁니다.한번은 토종씨앗 수집하러 갔다가 텃밭에서 참외 수확하는 할아버지를 만나 얻어 먹어 본 참외맛에 모두들 놀라고 만 적이 있었어요. 생긴 건 개량참외와 똑 같은데 시장에 내다 팔진 못하고 당신과 식구들 먹을 요량으로만 한답니다."팔면 인기 있을 것 같은데요?"했더니"냉장고에 넣어도 하루 지나면 삭아버리는 걸 어떻게 팔아요?" 하시네요.생각해보면 과일이란 게 사람 먹으라고 맺혀진 게 아니잖아요. 빨리 삭아 번식하기 위한 게 목적이니 그럴 것 같습니다. 유통하기 좋으라고 저장성이 좋은 건 자연스런 건 아닐겁니다.늦게 심은 토종참외도 이제 열매맺기 시작하니 참외 얘긴 다음에 해야겠습니다.입추는 입추인가 봅니다. 기온은 별 차이가 없는데 대문 기둥이 덜 달구어져 있고요, 그늘의 시원한 보도블럭만 찾던 삽살개가 입추 하루 지났는데 흙바닥 찾아 드러누워있네요. 입추 전날부터 울던 귀뚜라미가 다시 뜨거워진 입추 다음날엔 찍 소리 하나 내지 않다 입추 이틀 지나자 뭔가 선선한 기운이 감도는 것 같더니 오늘 밤부터는 새로 울기 시작하더만요. 힘없이 울던 입추 전날보단 확실히 소리에 힘 들어가 있어 가을이 오는 건 시간문제만 남은 듯 하더이다. 글을 쓴 안철환 선생은 온순환협동조합, 전통농업연구소 대표이고 경기도 안산에서 ‘산림생태텃밭 먹거리숲 농장’을 운영한다. 남은 음식물과 똥오줌, 커피 찌꺼기를 받아 직접 거름 만들기를 실천하고 있으며, 우리 토종 종자와 전통 농업 살리기에 열중하고 있다. 25년 전, 처음으로 심은 배추 씨가 3일 만에 싹 트는 걸 보고 ‘씨 안에 누가 있었구나!’ 깨닫고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우리가 먹는 배추는 단순히 물질적인 먹을거리가 아니라 나와 별 차이 없는 생명이며, 그래서 먹는다는 것은 생명을 먹고, 생명과 소통하고, 생명과 하나 되는 일이라고 믿는다. 쓴 책으로 《시골똥 서울똥》(2009), 《24절기와 농부의 달력》(2011), 《호미 한자루 농법》(2016), 《토종농법의 시작》(2020)이 있고, 옮긴 책으로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2004)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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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8-09
  • [안철환의 절기 이야기] 무더위의 한복판, 대서
    하지 전후로 달궈진 복사열의 정점이자 복더위의 정점은 대서와 중복입니다.장마 끝무렵이자 무 더위 한복판이기도 하죠. 가끔 마른장마가 오기도 하지만 덥고 습한 무더위는 피할 수가 없어요. 동남아시아 몬순기후 지대의 특성입니다. 건기 우기로 나누는 적도 근방 열대지역도 여름인 우기에 습하고 무더운 건 비슷하죠. 반면 지중해와 유럽, 중동의 사막지대 들은 건조하고 뜨거운 여름이 옵니다. 그 밖의 아열대 고원지대와 초원지대도 비슷하죠. 덥고 습한 우리의 장마철은 만물이 극성장하고 풀도 우거져 농부에겐 아주 바쁜 농번기입니다. 우리는 춥고 건조한 겨울에 만물이 겨울잠에 들어가니 비로소 농부도 쉬어가는 농한기에 들어갑니다. 봄이 새 학기인 이유고, 유럽에선 가물고 뜨거워 작물이 자랄 수 없는 여름이 농한기라 가을이 새 학기가 되는 이유입니다. 날씨에 따라 농사도 다르고 문화도 다른 이치예요. 무더운 장마철은 물과 불이 치열하게 싸우는 현장입니다. 물이 이기면 홍수가 나고 불이 이기면 폭염과 가뭄이 듭니다. 그렇지만 이런 경우는 극단적인 거구요, 대개는 물과 불이 만나는 곳에 생명이 깃듭니다. 장마철은 물과 불의 격렬한 싸움만큼 만물의 성장에너지도 격렬하지요. 암튼 어찌 되었든 물과 불이 만나는 곳에 생명이 깃드는 것은 왜 그럴까요? 물과 불이 만나기만 하면 다 그럴까요? 아닙니다. 경우에 따라 좀 다릅니다. 가장 좋은 만남은 올라가려는 물과 내려오려는 불이 만날 때입니다. 그래야 순환이 작동해 생명이 깃들 수 있거든요. 그걸 표현한 게 태극마크입니다. 불은 양(붉은색)이라 위에 있고 물은 음(파란색)이라 아래에 있지만 불의 머리는 아래를 향하고 물의 머리는 위를 향하고 있죠. 그렇게 해서 물과 불은 지속해서 순환하며 생명을 창조하는 겁니다. 원래 물은 내려가려 하고 불은 올라가려 하지만 그러면 잘 만나지지도 않거니와 만나면 큰 싸움이 일어납니다. 그게 장마철이고 태풍이지요. 아니면 폭염과 가뭄이고요. 그러나 이게 다 나쁜 건 아닙니다. 망가진 순환 시스템을 고치고자 애쓰는 홍역일 수 있어요. 요즘의 기후변화도 그런 것일 수 있다고 봅니다. 물론 홍역 이후 더 나빠질 수도 있고 좋아질 수도 있어요. 인간의 노력에 따라 달라지겠지만요. 물과 불이 만나는 곳 중 재밌는 곳이 부엌과 밭입니다. 먼저 부엌 얘길 해볼까요. 옛날엔 집에도 신이 있다고 했어요. 그중 부엌신이 원래는 최고였지요. 나중에 성주신이 들어와 최고 자리를 차지했지만요. 신이 진짜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지금 집에 25년 살고 있는데 어쩌다 해외여행 나갔다가 집에 뭔가를 두고 온 느낌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무슨 물건 같은 건 아니고요, 굳이 말하면 나를 받쳐주는 무언가였어요. 여독에 감기 걸려 호텔에 누워 있을 때 강하게 느꼈죠. 그때는 그냥 집에 두고 온 또 다른 내 흔적이거나 타지에서 힘들 때 생기는 향수병 정도로 생각하고 말았어요. 그런데 만일 붙박이 생활이 강했던 옛날처럼 몇백 년을 조상 대대로 한 집에 살아 조상들의 흔적이 겹겹이 쌓였다면 그걸 신이라 표현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조상뿐이겠습니까? 함께 살면서 쌓인 생명들의 흔적까지 생각하면 그럴 법도 할 것 같습니다. 그중 부엌신, 부뚜막신, 조왕신은 물과 불의 조화로 생명의 먹을거리를 만들어 주었으니 최고의 신이자 어머니 신이었어요. 어머니는 새벽에 일어나 깨끗한 정화수 한 사발을 떠와 아궁이 위에 정갈하게 걸어둔 선반 위에 얹어놓고 조왕신께 빌고 나서 아궁이에 불을 붙여 밥을 짓습니다. 물과 불의 위치가 바뀐 것 같지만 올라가는 불의 기운을 내려가는 정화수의 기운으로 눌러주어 밥을 태우지 않고 잘 익게 해달라 했을 겁니다. 이런 정성으로 온 식구의 먹을거리를 지었으니 그 밥은 사랑과 정성, 나아가 신이 깃든 생명의 음식이었던 겁니다. 제가 급식과 매식을 비판하고 도시락과 집밥을 살려야 된다고 주장하는 근거입니다. 사랑과 정성과 신이 깃들지 않은 음식을 먹고 자란 아이들을 생각하면 참으로 안쓰럽지 않을 수 없어요. 소아당뇨, 비만, 알러지, 각종 소아 대사질환, 그리고 옛날엔 보기 힘들었던 우울증, 신경발달장애 들까지 생각하면 원인이야 복합적이겠으나 신이 결핍된 먹을거리 문화의 영향이 적지 않을 거라 봅니다. 그럼 밭에선 어떻게 물과 불을 만나게 해야 할까요? 먼저 말하고 싶은 건, 논에선 물을 잘 가둬두는 게 중요한 반면 밭에선 물을 잘 흘러가게끔 하는 게 중요하다는 겁니다. 논은 보수, 밭은 배수가 중요한 거죠. 배수를 강조하니 물이 필요없다고 오해하진 마세요. 물이 머물지 않고 흐르는 겁니다. 강물처럼 마냥 흐르는 게 아니라 저수지처럼 마를 때는 가둬두고 습할 때는 배출하는 거죠. 토양의 삼상구조라 해서 흙의 기본은 흙알갱이인 고상이 반이고 나머지 반을 액상과 기상이 반반씩 차지하면서 가물 때와 습할 때에 따라 들쑥날쑥 저수지 기능을 합니다. 그리고 흙알갱이 벽면에 유기물이 5% 정도 코팅되어 있는데 비중은 적지만 흙의 삼상구조를 만들고 떠받치는 주역입니다. 땅심이라고도 하고 지력이라고도 하는 게 이 유기물을 표현하는 거고 이게 잘 있어야 흙의 저수지 기능이 작동해서 물이 흐르는 거지요. 그런데 이런 땅심의 모습은 내면적인 거구요, 배수가 잘되는 외형적인 밭의 모습은 어떨까요? 가장 중요한 관건은 도랑입니다. 물을 잘 빠지게 하는 배수로이죠. 배수로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요, 가장 큰 거는 밭 둘레의 도랑입니다. 밭의 경사와 방향에 따라 다르지만 어쨌든 가장 근본이 되는 도랑이죠. 대동맥쯤 될 겁니다. 경사가 높은 쪽에서 장마 때 물이 쏟아진다면 도랑을 두 개는 파야 합니다. 이 도랑은 이웃과 경계가 되기도 해서 소홀하기 쉬워 방치하면 병해충의 숙주공간이 되고 잡초의 온상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니 바람과 물이 잘 통하도록 관리해 주어야겠지요. 다음으론 본 밭에는 도랑보다 작은 고랑들을 만드는데요, 농부가 드나드는 길이기도 합니다. 때론 밭둑이 될 수도 있어요. 이 공간이 아까워 작게 했다간 낭패 보기 십상입니다. 저도 초보 때 아까운 마음에 엉덩이도 돌리기 힘들 만큼 좁게 했다가 들락거리기 힘드니 역효과만 본 적이 있어요. 이 길은 통풍 배수에도 좋지만 작물에게도 여유 공간이 되어 줍니다. 밭 둘레보다 깊어선 안 되는 건 당연하겠죠. 그렇게 했다간 물이 빠지지 않고 고일 테니까요. 그다음 중요한 고랑은 두둑과 두둑 사이입니다. 물론 길도 되지요. 다만 융통성이 있어 해마다 바뀔 수가 있습니다. 작물을 돌려 심고(윤작), 섞어 심기(혼작)를 바꿀 때마다 달라질 수 있는 거거든요. 한 줄로 심은 작물 수확 후 두 줄로 심을 작물을 심는다면 달라지는 게 그려지죠? 이 고랑은 당연히 앞의 길로 쓰는 고랑보다 깊으면 안 됩니다. 마지막 고랑은 씨나 모종을 심는 곳입니다. 호미든 괭이든 줄뿌림할 때 골을 내고 심고는 골을 살려둡니다. 그러면 작물과 작물 사이는 두둑이 되겠죠. 그러다 작물이 자라고 두둑에도 풀이 올라오면 두둑을 뒤집어 작물에 북주기를 합니다. 그걸 한 번 내지는 두 번에 걸쳐서 하고 나면 작물은 두둑 위로 올라가고 작물 사이의 두둑은 고랑으로 바뀌게 되는 거예요. 이를 견종법이라 합니다. 고랑(견畎)에 심는다는 뜻이고 밭의 모양이 바뀐다 해서 대전(代田)법이라고도 하고 우리말로는 헛골농법이라 합니다. 골이 곧 없어지니 그렇게 이르는 것 같습니다. 저는 사인곡선이 코사인곡선으로 단면이 바뀐다 해서 사인코사인 농법이라 붙여 봤는데 다들 웃고 말대요. 암튼 이 방법은 두둑을 덮는 비닐멀칭으로 사라지고 말았지만, 제초와 북주기를 동시에 하는 첨단 농법이었어요. 게다가 작물이 어릴 때는 마르면 안 되니 골에 심고, 어느 정도 자라선 통풍이 중요하니 두둑 위로 올라가게 하는 거란 말이에요. 그것도 한방에 해결하니 얼마나 지혜로운 방법이에요? 밭이 크면 소 쟁기를 이용하는데 두둑 없애며 북주기를 할 때는 쟁기날이 쇠가 아닌 나무로 되어 있고요, 두둑을 뒤집지 않고 좌우로 훑어주기만 해서 훌치기라고도 합니다. 소 주둥이에는 작물을 못 먹게 입마개를 씌우지만, 잘 훈련된 소는 필요 없었답니다. 재밌죠? 어쨌든 이 헛골도 두둑과 두둑 사이의 골보다 깊으면 안 됩니다. 이렇게 우리 조상들은 밭에도 물길과 바람길(온화한 불의 길?)을 잘 만들었습니다. 임원경제지를 쓰신 서유구 선생은 이렇게 밭을 만들면 밭이 저수지 같은 노릇을 해, 가물 때는 습기를 내어주고(또는 물을 가둬두고), 습할 때는 물을 빼주어 농부는 또다른 수자원 관리인이라 했으니 큰 물길 잡아주는 것 못지않은 치수정책이었던 겁니다. 황하의 본류를 잡으려다 실패한 우왕의 아버지와 다르게, 황하의 지류를 잡아 치수에 성공해 왕이 된 우왕과 다르게, 본류 지류가 아닌 물의 모세혈관을 다스리는 일이니 더 근본 방책 아니었겠어요? 기후변화로 언제 들이닥칠지 모를 대가뭄을 생각하면 귀 기울여볼 만한 지혜이겠습니다. 방금 말한 도랑과 두둑 및 밭 전체 배수로와 견종법은 다음 그림을 참조해보세요. 통풍 배수가 잘 돼 작물이 건강하고 제초를 따로 하지 않고 한번에 하니 일석이조가 됩니다. 고랑 별 깊이를 잘 조절하고, 작물은 헛골에 심었다가 나중에 북주기 하면 작물은 두둑 위로 올라가고 작물 사이는 골이 되어 통풍과 배수가 잘 되니 건강하게 자랍니다. ** 대문사진 : 대서 되니 벼가 확실하게 그늘을 드리워 풀이 들어올 엄두를 못낼 때 물을 뺍니다. 처서 지나 이삭 패면 다시 물을 넣어주는데 적셔주는 정도로만 줍니다. 글을 쓴 안철환 선생은 온순환협동조합, 전통농업연구소 대표이고 경기도 안산에서 ‘산림생태텃밭 먹거리숲 농장’을 운영한다. 남은 음식물과 똥오줌, 커피 찌꺼기를 받아 직접 거름 만들기를 실천하고 있으며, 우리 토종 종자와 전통 농업 살리기에 열중하고 있다. 25년 전, 처음으로 심은 배추 씨가 3일 만에 싹 트는 걸 보고 ‘씨 안에 누가 있었구나!’ 깨닫고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우리가 먹는 배추는 단순히 물질적인 먹을거리가 아니라 나와 별 차이 없는 생명이며, 그래서 먹는다는 것은 생명을 먹고, 생명과 소통하고, 생명과 하나 되는 일이라고 믿는다. 쓴 책으로 《시골똥 서울똥》(2009), 《24절기와 농부의 달력》(2011), 《호미 한자루 농법》(2016), 《토종농법의 시작》(2020)이 있고, 옮긴 책으로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2004)이 있다.
    • 기획
    • 절기이야기
    2026-07-27
  • 항쟁의 심장
    항쟁의 심장(10.1대구항쟁) /160X130cm/콘테/2024 나는 나름 작품으로 철학적 구축을 다져나가는 중이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할아버지의 흔적을 2017년 인터넷에서 순천경찰서기록으로 발견한다. 서울경기에서 작품 활동을 하며 약 15년간 할아버지 흔적을 찾아다녔는데 못 찾고 여수로 귀향한 지 2년 만에 기록을 찾은 것이다. 그 기록은 매우 건조했다. - 활동유형: 좌익활동(우익,좌익,좌익활동) - 장소: 광천 다리 밑 - 사망유형: 총살 순천경찰서의 이 기록은 그동안 우리 가족의 괴롭고 어둡던 모든 것이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분노와 슬픔으로 그동안 그려왔던 모든 것을 버리고 여순항쟁 작품에 몸을 던진 계기가 되었다. 기록을 발견하고 일주일간 잠도 잘 못 자고 먹지도 못하며 생각했던 것은, 첫째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에게 역사적 진실을 알리자, 둘째 작품에서 지형이나 복장 무기 등은 철저히 고증하자, 셋째 피나 잔인한 장면을 서정적인 슬픔으로 승화하자(많은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 이렇게 시작한 작품들이 방대한 여순항쟁 역사에 미미하지만 조금씩 다가가고 있다. 나는 지금도 여순에 살고 있다. 여순항쟁은 대구항쟁과 제주4.3항쟁과 그 결을 같이 한다. 그래서 여순의 기원을 그려 보기로 했다. 해방이 지난 1년 후 1946년 10월1일 미군정은 친일 관리를 등용하고 토지개혁을 지연하며 식량 공출 정책을 강압적으로 시행한다. 쌀값은 폭등해서 식량난으로 굶어 죽는 사람들이 생겼다. 또한 콜레라가 창궐했는데 어린이들은 의약품이 없어 죽어가고 있는 심각한 상황이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대구시민들은 "쌀을 달라! 생필품을 달라! 어린이를 치료할 의약품을 달라! 친일경찰 물러나라!" 외치며 차라리 길에서 죽겠다는 각오로 거리로 나온다. 10월1일 대구부청 앞에서 기아 대책을 세우라는 시위 도중 민간인 황말용, 김종태 2명의 노동자가 경찰의 발포로 사망하게 된다. 다음 날 민간인 2명이 사망했다는 소식으로 대구의 굶주린 일반시민들, 노동자, 학생들까지도 시위에 합세하게 된다. 만여 명의 시민들은 대구경찰서를 포위했고 결국 경찰들은 무장해제를 한다. 대구 시민들은 질서를 지키며 경찰권을 인수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동안 참아왔던 분노로 민중들은 거리 한쪽에서 경찰과 투석전을 벌였다. 위 작품은 분노한 대구민중들이 돌을 들기 직전을 작품화한 것이다. 이후 몰리고 있던 경찰들은 발포를 해서 24명의 시민들이 사망한다. 이를 기점으로 대구항쟁은 영남일대로 번지고 나중 제주4.3항쟁, 여순항쟁까지 항쟁의 불꽃은 전국적으로 이어졌다. 대구시는 '10월 항쟁'이란 명칭을 공식적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지난 2016년 대구시가 '대구 10월 항쟁 등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위령사업 지원 등에 관한 조례'를 마련한 것이다. 이전에는 주로 '대구 10월 사건', '대구 10·1 사건' 등으로 불렸다. 일각에서는 폭동, 소요사태 등 부정적인 단어가 쓰이기도 했다. 지금도 극렬 유튜버들은 이런 용어들을 사용하며 대구항쟁의 정신을 훼손시키고 있다. <지리산人>에서 박금만 작가의 '여순그림이야기' 연재를 시작합니다. 여순항쟁을 담아 사실적인 역사화를 그려 오고 있는 박금만 작가의 이번 칼럼을 통해, 여순항쟁(여순10.19항쟁)의 역사와 아픔 나아가 항쟁에 함께한 민중들의 삶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지리산人> 드림 박금만 작가는, 여수에서 나고 자라 세종대학교 미술학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서울과 고흥, 부산과 여수 등의 개인전 및 초대전에 참여했고, 아트페어를 비롯한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작품 소장처로는 전남도립미술관, 광주시립미술관 등이 있다.
    • 기획
    • 여순그림이야기
    2026-07-24
  • [뒤웅박 씻나락] "우리가 의료사협을 시작하게 된 이야기" 김명철
    우리가 의료사협을 시작하게 된 이야기 김명철 (경남산청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사진: Unsplash의 Shane Rounce 무엇보다 내가 행복하게 살고 싶었습니다. 그러려면 제 주변 사람들도 같이 행복해야 한다고 생각했고요. 그래서 젊은 시절부터 이야기해 오던 공동체를 느슨하게라도 실현하고 싶었습니다. 만드는 게 힘이 들긴 하지만 어느 정도 형성이 되고 나면 (마치 합창처럼) 거기서 느껴지는 ‘같이하는’ 것에 대한 행복감을 맛보고 싶었던 거죠, 시작은 안솔기마을이라는 생태마을에서 했습니다. 같이 음악회도 하고 소풍도 가고 운동회도 하고.... 그러다 마을이 너무 작아 같이 하는 것에 불편해하는 분들을 봤고 그러면서 안 하고 싶은 자유가 굉장히 중요하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주변의 마을들과 합창제도 해 보고 같이 운동회도 하고 했는데 이것도 역시 쉽지는 않더군요. 그러면서 규모가 좀 커야 개인의 자유도 보장하고 좀 더 다양한 일을 할 수 있겠다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러다 12년 전 산청에 한방 엑스포가 열린다길래 군민들을 대상으로 건강 강좌를 매달 마지막 수요일에 (마수걸이)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하니 자발적으로 도와주는 분들이 있어서 운영위를 만들었고 그 운영위 중 한 분이 구례 콩장을 다녀와서는 우리도 플리 & 프리마켓을 하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저도 그게 너무 좋겠다 싶어 동의했고, 그 길로 바로 주변 사람들에게 연락해서 모임을 열고 그 해에 목화장터라는 마켓을 시작했습니다. 제 생각엔 이 마켓이 생기면 촌에서 흩어져 살고 있는 사람들이 한 번씩 모여 안부도 묻고 정보도 나누고, 재미난 공연으로 문화적 갈증을 해소하고 음악적 재능이 있는 분들에겐 그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장소 제공도 되고, 또 혼자 먹기에는 많고 시장에 내다 팔기에는 어중간한 분들의 판매처도 되고, 직접 만든 공예품이나 옷 같은 것을 팔 수도 있고, 버리기에는 아까운 물건들을 팔거나 나눔도 할 수 있을 것 같아 적극적으로 찬성을 했죠. 그리고 무엇보다 제가 기대를 했던 건 맥주나 막걸리를 같이 마시면서 소통을 하다가 집으로 갈 때는 장 본 것을 들고 가는 독일의 어느 장터를 우리도 했으면 하는 것이었죠. 그렇게 장터를 주변 사람들과 같이 열고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일들이 일어났고 재미도 있었습니다. 우리 온라인 커뮤니티(밴드) 회원이 많아지다 보니(현재 5,075명) 모임을 만드는 것이 쉬워져 합창단, 지속가능발전협의회 등 원하는 많은 일들을 할 수 있게 되었죠. 그리고 이 장터의 힘으로 만들어진 지속넷(지속가능발전네트웍)에서 주최한 100인 원탁회의에서 의료사협(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을 만들자는 제안을 했었고 많은 분의 도움으로 이 일도 진행이 되었죠. 사실 의료사협을 만들자고 했을 때 제 개인적으로는 사회적 약자를 돕고 느슨한 공동체를 형성하고 싶어서였는데 만들고 보니 정말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할 수 있는 일들이 많더군요. 시작할 때의 슬로건은 ‘함께 만드는 건강, 더불어 행복한 삶, 지속 가능한 공동체’였는데 한의원이 그런대로 안정적으로 운영되니 지역에서 일어나는 필요한 곳에 도움을 줄 수도 있게 되었고 성심원 내에 장애와 비장애, 남녀노소를 아우르는 공동체를 만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고(실제로 시작을 한 상태이긴 합니다) 제대로 된 요양원이나 호스피스 병동을 포함한 힐링센터를 만들 수도 있겠단 꿈을 꾸기도 하고요. 그리고 즐거운 일들은 같이 나누고 힘든 일은 같이 돕는 이런 일들을 어느 정도 실현 하고 있는 것 같아서 좋습니다. 실제로 목화장터에 도움을 주기도 하고 지속넷과도 같이 협력하며 도와 주기도 하고 지역의 ‘그늘과 언덕’이라는 곳과도 같이 힘을 모아 작년의 수해복구와 피해자들의 몸과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일도 했고요. 이런 일들을 의료사협이라는 곳의 조직력과 (미미하지만) 재정적인 여유로 같이 행복한 공동체를 만드는 데 역할을 하는 것 같아 좋습니다. 지금은 재택의료센터도 만들어 열심히 방문 진료를 하는 중이고 가정의학과도 열어서 한방적으로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좋은 의사 선생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국가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아서 통합돌봄을 실천 중이기도 하고요. 이렇게 어쩌면 정신없을 정도로 짧은 시간에 많은 일들을 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주변 사람들이 좋은 강좌나 지역 소모임을 통해 아프기 전에 건강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또 혹시 아프면 믿을 수 있는 의료진과 주변의 도움으로 나을 수 있도록 하며, 설령 잘 낫지 않아 사망하게 되더라도 주변의 배웅과 도움을 받으며 존엄하고 평안하게 갈 수 있는 곳을 만들고 싶습니다. 물론 이런 일들이 다 실행이 안 될 수도 있겠지만 ‘가다가 중지하면 간만큼 이익이다.’란 생각으로 ‘오늘도 어떻게 하면 같이 행복해질 수 있을까?’란 생각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글쓴이 : 김명철 _경남산청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경남산청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홈페이지 https://gscmedc.org 사무국 055-973-0407 경남 산청군 산청읍 산청대로 1381번길 17 *산청 주민이 아니어도 조합원으로 가입하실 수 있습니다. 사무국으로 문의해주세요. [뒤웅박 씻나락 칼럼] 지리산 자락 삶이 우리 사회의 대안적 삶의 모습이 되길 꿈꾸는 <지리산人>의 바람을 담아, 지리산 곳곳에 계신 씨앗 같은 이들의 삶과 생각을 싣고자 합니다. 칼럼 글쓴이의 일부 주장이 <지리산人>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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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7-12
  • [안철환의 절기 이야기] 초복과 가까운 소서
    12지지로 6월은 미(未, 양)월로 양의 달입니다. 미월은 3월의 진(辰, 용)월과 9월의 술(戌, 개)월, 12월의 축(丑, 소)월과 함께 오행 중 토(土)에 해당하는 것으로 다음 계절로 넘어가는 과도기인데요. 이럴 때는 꼭 비나 눈이 옵니다. 그런 점에서 6월이 장마철인 건 가을을 준비하는 과도기인 셈이죠. 해가 가장 높은 하지에 달궈진 복사열로 미월이 가장 무덥지만 속으론 가을을 준비하는 겁니다. 그래서 미월은 음양 중에 음에 해당합니다. 여기서 가을은 이삭과 열매를 뜻하고 준비한다는 건 이삭과 열매의 근원인 암꽃 수꽃, 곧 성별의 근원이 잉태되는 것입니다. 사춘기 같은 것이죠. 그래서 음입니다. 음 중에도 동물의 양처럼 온순하면서 부드럽되 다산의 기운을 가지고 있어요. 벼를 비롯한 곡식들이 대부분 단일성, 곧 해가 짧아지고 일조량이 적어지면 꽃을 피우는 것도 음의 기운이 작용한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일거에 많은 이삭과 열매 맺는 걸 보고 다산의 상징인 양의 기운을 닮았다 했겠지요. 보통 음력 6월엔 소서 대서라는 절기가 들지만, 소서는 5월에 들 때도 있는데 올해가 그렇습니다. 장마의 기운인 소서가 일찍 오니 장마도 일찍 오겠으나 복사열이 충분히 달궈지지 않았으니, 장마가 심하지는 않을 것 같았습니다. 보통 하지 지나 일주일 안에 장마가 시작되지만 이번엔 하지 전 이틀동안 장마비처럼 비 내린 후로 다시 가물다가 곳에 따라 소나기 오더니, 어제 소서부터 장마가 본격 시작되는 낌새네요. 소서 다음날인 오늘도 새벽부터 빗소리 요란하다가 종일 비소식입니다. 핑계로 밭 일 다 접고 이 글 쓰고는 막걸리나 한잔 할까 합니다. 그래도 다음 주에나 음력 6월이 시작해 장마 다운 장마는 그 다음 주 대서쯤 가서 본격화할지도 모르겠어요.복날은 음력도 양력도 아닌 이른바 갑자력입니다. 하지 지나 세 번째로 오는 경(庚)일이 초복으로 올해는 양력 7월 15일 경인(庚寅)일입니다. 중복은 네 번째로 오는 7월 25일 경자일인데 이는 대서 때 소개하도록 하지요.소서는 그래서 이삭과 열매의 근본이 잉태되는 첫 꼭지점 절기입니다. 하지에 심은 벼가 무더위에 무럭무럭 자라 초복에 땅 속에서 이삭을 잉태하는 거죠. 근데 왜 복날을 개고기나 닭고기 먹는 날로 이해할까요?복(伏)자를 보면 사람 인(亻) 변에 개 견(犬) 자가 있어 개고기를 뜻하는 것 같지만 그게 아니고 머리를 조아리며 주인 옆에 숨는 뜻의 복 자입니다. 그럼 대체 누가 뭐가 무서워 숨는 걸까요? 바로 하지 지나 시작된 하늘의 가을 기운이 땅에 달궈진 여름 기운이 무서워 숨는 겁니다. 갑자력의 경일은 오행 중 금(金)으로 계절로는 가을을 뜻하지만 땅에 남아 있는 여름 기운이 무서워 숨을 만큼 더위가 극성을 부릴 때지요. 문제는 이 기운에 힘입어 벼만 자라는 게 아니라 벼 옆에서 벼의 사촌인 피도 자라 올라온다는 겁니다. 벼와 비슷하게 생겨, 뙤약볕에 두 눈 부릅뜨고 살펴가며 손으로 뽑아주어야 하니 피살이가 힘들었던 거지요. 해 본 사람 아니면 벼와 피는 구별하기가 쉽지 않거든요.종일 그러고 나서 진 빠진 몸의 원기 채워줄 고기가 필요한데 개고기 닭고기가 그 철엔 가장 좋았답니다. 소고기는 한여름엔 생풀만 먹였기 때문에 노랑내 나서 먹지 않았는데 그게 질산가리라는 독이거든요. 한여름에 먹는 돼지고기는 잘해야 본전이라고 지금도 말하는 것처럼 되도록 여름엔 잘 먹지 않았답니다. 반면 개, 닭고기는 탈은커녕 기운을 북돋았으니 국민보양식이었던 겁니다. 요즘이야 반려동물 문화로 개고기는 먹지 않지만, 닭고기는 치맥문화 때문인지 참 많이 먹지요. 오랜 세월 지난 후 고고학자들이 지금 시대에 닭 뼈가 많이 발굴되어 닭이 지배했던 시대로 오인할 거라는 어처구니없는 농담이 회자될 정도라니 웃기죠. 저는 그럽니다. 365일 고기 먹으면서 복날 또 고기 찾는다고요. 복날 고기는 피살이 한 사람이나 먹을 자격 있다고 하면 좀 과할까요? 저도 개를 키우지만 반려 동물 문화에 대해서는 살짝 우려가 있습니다. 솔직히 이런 현상은 수입 사료 때문에 가능했고 또 다르게는 공동체 문화가 사라진 배경 때문에 가능했던 거거든요. 누구보다 육식을 많이 하는 사람들이 개고기 먹는다고 흉을 볼 때는 뭐 묻은 게 뭐 묻은 걸 흉보는 꼴로 보였어요. 사실 우리는 원래 개보다는 소가 더 소중한 반려동물이었습니다. ‘워낭소리’라는 영화가 잘 표현했듯이 소는 일도 잘 하고 사람 말귀도 잘 알아들을 뿐만 아니라 초식이라 잡초도 해결해주고 거름도 제공해주니 개에 비해 그 가치와 정이 몇 배나 되잖아요. 반면 개는 짓기나 해 자칫 이웃과 쌈이나 일으키고 먹는 건 사람 먹는 것과 같아 가난한 사람은 개 키우길 엄두 내기 쉽지 않았어요. 차라리 쥐 잡아 먹는 고양이가 더 고마운 동물이었지요. 그래서 백성은 단백질 보충용으로 똥개를 주로 키웠는데 정 들까 이름도 짓지 않았답니다.사실 닭도 억울한 면이 없지 않을겁니다. 닭을 반려동물로 키우는 사람에게 들었습니다. 좀 기억력 없는 사람 흉볼 때 ‘닭○가리’같다고 하지만 닭이 얼마나 똑똑한데 그런 소릴 하냐고 열을 내면서 자기가 키우는 여덟마리 닭에게 각각 지어준 이름을 부르면 다 기억한다는 거에요. 따로 양계도 하지만 여덟마리는 특별히 가족처럼 키운다 하면서요. 재밌죠?저는 채식주의는 아니지만 요즘 세태를 보면 고기를 먹어도 너무 많이 먹어요. 인간이 맹수는 아닌데 말이죠. 잡식인 돼지도 풀이나 곡식을 더 좋아한답니다. 고기가 맛있고 기운도 북돋아주는 건 맞지요. 하다못해 소도 한 여름 더위 먹어 기운 없을 때 낙지를 먹이면 잘도 먹고 원기도 금방 돌아온답니다. 그렇다고 소에게 매일 낙지를 먹일 수는 없는 일 아니겠어요? 암튼 소서의 장마철은 진짜로 풀과 전쟁을 치르는 철입니다. 입하부터 풀 매기 시작한 부지런한 농부일지라도 이 시기 풀과 전쟁을 피할 수는 없지요. 그렇지만 풀은 전쟁을 치루고서라도 말살해야 할 농부의 적이 아닙니다. 풀이 없어지면 어찌 될까요? 맞습니다. 사막이 되는 겁니다. 그럼에도 풀을 없애려고 많은 노력을 합니다. 무서운 제초제를 풀약이라는 예쁜 이름을 붙여 소화제 먹듯 거침없이 뿌립니다. 썩지 않는 검은 비닐은 또 얼마나 우리 농경지를 뒤덮고 있습니까? 그래도 비닐은 수거해 재처리할 수 있지만 제초제는 정말 문제입니다. 아무 상관 없는 길가 풀에도 뿌려요. 살충제 농약은 잘못 먹더라도 빨리 위를 세척하면 살 수 있지만 풀약은 입안에 대었다가 뱉어내기만 해도 몸에 빨려 들어가 살 수 없는 무서운 약입니다.저는 풀이 전쟁의 대상이 된 건 단작 농사의 산물이라고 봅니다. 월동농사와 그루농사 같은 윤작, 혼작 농사에선 풀을 통제할 수 있어 풀과 공생할 수 있었지요. 게다가 경축(耕畜)농사, 이른바 가축을 같이 키우는 농사를 하면 풀은 사료가 되니 얼마나 요긴했겠어요. 제가 처음 친환경농사 배울 때 경축농사는 필수였습니다. 거름도 확보하고 풀 문제도 해결하는 순환농사의 핵심이었거든요.안쓰러운 건 도시에서 잘해야 3~5평 정도 되는 텃밭에 비닐멀칭하는 일입니다. 농촌에서 전업농업인이 경제활동하느라 단작으로 큰 농사짓는 데는 비닐멀칭이 불가피할 수 있지요. 아무리 직장생활로 주말에나 텃밭에 간다 해도 그 정도 규모면 농사는 풀과 전쟁하는 게 아니라 풀 매는 맛으로 하는 겁니다. 텃밭 농사 교육 때 저는 이런 말을 해 드리곤 합니다. 농사를 망쳐 시장에서 사다 먹으려 해도 살 수 없는 게 있으니 바로 풀냄새, 흙냄새라고 말이죠. 풀냄새는 이른바 피톤치드요, 흙냄새는 흙에 별보다 많은 미생물이 뱉어내는 냄새지요.그렇다고 풀을 놔두라는 말로 오해하지 말 길 바랍니다. 풀 매는 맛이라고 했듯 풀 매는 일은 말하자면 농사의 알파이자 오메가이거든요. 저는 솔직히 수확하는 재미보다 풀 매는 일이 훨씬 재밌더만요. 풀 매고 나서 말끔해진 밭과 시원해 할 작물들 감상하는 재미가 참 쏠쏠하지요.다음 대서 꼭지 때 제가 전통농업에서 배운 풀이나 물 관리를 위한 전체 밭 관리법을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사실 전통농업에서는 개별 문제에 대한 개별 대처법보다는 전체 시스템이 중요합니다. 풀이나 물 관리만이 아니라 병해충, 작물생육 관리가 하나의 시스템으로 관통하게 하는 거지요. * 대문사진 : 작년 논. 개구리밥이 벼가 먹을 질소질을 빼앗을까 걱정했지만 큰 영향은 없어 놔두었더니 이렇게 번져 피사리를 한 번만 했네요. 혹시 해서 오줌 웃거름 한번 더 주었습니다. 글을 쓴 안철환 선생은 온순환협동조합, 전통농업연구소 대표이고 경기도 안산에서 ‘산림생태텃밭 먹거리숲 농장’을 운영한다. 남은 음식물과 똥오줌, 커피 찌꺼기를 받아 직접 거름 만들기를 실천하고 있으며, 우리 토종 종자와 전통 농업 살리기에 열중하고 있다. 25년 전, 처음으로 심은 배추 씨가 3일 만에 싹 트는 걸 보고 ‘씨 안에 누가 있었구나!’ 깨닫고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우리가 먹는 배추는 단순히 물질적인 먹을거리가 아니라 나와 별 차이 없는 생명이며, 그래서 먹는다는 것은 생명을 먹고, 생명과 소통하고, 생명과 하나 되는 일이라고 믿는다. 쓴 책으로 《시골똥 서울똥》(2009), 《24절기와 농부의 달력》(2011), 《호미 한자루 농법》(2016), 《토종농법의 시작》(2020)이 있고, 옮긴 책으로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2004)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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