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5-1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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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철환의 절기 이야기] 입춘, 우리의 양력 설날
    농가월령가 첫 시작인 1월령의 1월은 음력의 정월인데요 1월에 입춘과 우수가 든다 했어요. 근데 정확히 말하면 입춘은 정월 1월에 들 때도 있고 섣달 12월에 들 때도 있다 해야 합니다. 반면 우수는 꼭 1월에 들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입춘이 섣달에 들면 봄이 일찍 오지만 춥다했어요. 올해가 딱 그럴 때입니다. 입춘이 음력 12월 17일이거든요. 입춘인데도 요즘 날씨가 춥고 눈 많이 오는 걸 그렇게도 해석할 수 있겠죠. 그런데 이렇게 추운 날에 어찌 봄이 오는 입춘일 수 있을까요? 아직도 날은 한겨울인데 말이죠. 아무리 날은 추워도 입춘에 반드시 봄이 오는 걸 모르는 건 사실 흙을 떠나 콘크리트, 유리, 플라스틱 박스에 사는 사람 뿐이라고 저는 강조합니다. 흙을 밟고 사는 농부, 나아가 흙과 자연 속에 사는 미물조차도 입춘에 봄이 온 줄 알게 되어 있다는 거죠. 어떻게 알까요? 사실 입춘만이 아니고 절기 모두는 기온으로 나누는 게 아니에요. 그럼 뭐로 나누죠? 맞습니다. 절기는 태양의 각도로 나누거든요. 다르게 말하면 해 그림자로 나누는 겁니다. 그게 바로 해시계, 곧 앙부일구입니다. 그러니까 절기마다 고유의 해 각도가 있고 해 그림자 길이가 정해져 있으니 흙을 밟고 해를 등지고 사는 생명이라면 다 안다는 거죠. 실제로 아무리 날은 추워도 입춘에 밭에 가보면 봄이 온 지 느낄 수가 있답니다. 정오 근방이 좋죠. 그래서 입춘날엔 꼭 봄맞이 하러 밭에 가자고 역설합니다. 이게 진짜 새해 맞이 일지 몰라요. 동지 다음날 해보다 입춘날 해맞이가 더 새날의 기운을 받는 것이지요. 새벽 일출을 보는 것보다 한 낮 밭에 드리워진 해의 기운을 받는 게 더 새해의 첫 기운이 됩니다. 그 새날의 기운을 듬뿍 담은 게 있으니 바로 입춘 냉이입니다. 입춘 냉이는 지난 가을에 싹이 터 겨울을 난 애에요. 그래서 저는 입춘 냉이는 산삼보다 보약이라고 강조합니다. 아무튼 입춘 맞이를 새해 맞이로 본 조상들은 그 의례로 대문에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이라는 문구를 붙였습니다. 입춘첩입니다. 새해가 되면 갑자년이니 을축년이니 하고 그러죠. 거기에다 색깔로 동물을 나눠부르잖아요. 올해는 병오년, 빨간말 또는 적토마의 해라고 호들갑이지만 그건 입춘부터 시작되는 거에요. 갑자 달력에서 신정은 아직 새날이 아니거든요. 입춘 근방엔 더불어 음력 정월 설날이 옵니다. 입춘에 앞서 오기도 하고 뒤이어 오기도 하죠. 우리의 설날은 그래서 두 개입니다. 음력 정월 설날과 양력 입춘 설날이 있는 거죠. 명리학 하는 분들은 어느 게 진짜 설날이냐고 따지기도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둘 다 우리의 설날인데 다만 선후가 더 중요하다는 겁니다. 지금 서양 달력의 신정 설날은 로마에서 시작된 것으로 사실 이는 동지 설날에 근거한 것이라 보는 게 타당합니다. 당시의 천문기술 상 동지날을 정확히 특정할 수 없어 해가 길어지는 걸 육안으로 느낄 수 있는 동지 열흘 후쯤을 임의로 삼은 거죠. 그럼 왜 우린 입춘을 새날로 삼았을까요? 천문 기준으론 동지가 기준이지만 동지 이후 본격적으로 추워지니 날씨 기준으로는 봄 기운이 시작되는 날, 곧 입춘을 새날로 잡은 겁니다. 입춘은 12지지로 인寅에 해당하는데요 이를 일년이 아닌 하루에 적용하면 새벽 3시에서 5시까지가 인寅시에요. 이 인시를 하루의 시작으로 본 것이나 인월에 드는 입춘을 한해의 시작으로 본 것이나 같은 이치입니다. 입춘에 봄이 시작되듯이 인시에 하루가 시작되는 건 닭이 알려주었어요. 새벽을 알리는 알람이었죠. 사실 자시의 자정을 하루 시작으로 한건 좀 그래요. 저 같이 1시쯤에나 잠드는 야행성인 사람은 하루의 시작을 잠으로 맞이하는 꼴이니 말이죠. 오히려 일출을 알려주는 닭 우는 시간이 하루 시작인 게 자연스러울 겁니다. 소한 대한 추위 지나 인월을 정월로 삼은 게 자연스런 것처럼요. 그렇다고 제가 인시에 일어난다고 오해하진 마세요. 아직 한밤중이니 저는 여전히 섣부른 나일롱 農夫인가 봅니다. 그럼 봄은 왜 닭이 아닌 호랑이(寅)를 상징으로 표현했을까요? 곰처럼 제대로 된 겨울잠은 아니어도 겨울잠처럼 웅크리고 지내다 입춘이 되면 기지개를 켜며 질러대는 호랑이의 포효소리가 숲 속에 봄을 일깨워 준다고 했어요. 봄이 되면 언 땅이 풀리며 쩍쩍 갈라지는 금들이 마치 호랑이 포효소리로 땅이 찢어지는 것처럼 느꼈던 것 아닐까 싶어요. 아무리 추워도 농부는 입춘되면 슬슬 기지개를 켜야 하는 까닭입니다. 기지개 켜며 하는 제일 중요한 일은 종자 손질과 거름 준비에요. 씨앗과 흙의 생명을 여는 행위이니 이처럼 성스런 일도 흔하지 않을 겁니다. 글을 쓴 안철환 선생은 온순환협동조합, 전통농업연구소 대표이고 경기도 안산에서 ‘산림생태텃밭 먹거리숲 농장’을 운영한다. 남은 음식물과 똥오줌, 커피 찌꺼기를 받아 직접 거름 만들기를 실천하고 있으며, 우리 토종 종자와 전통 농업 살리기에 열중하고 있다. 25년 전, 처음으로 심은 배추 씨가 3일 만에 싹 트는 걸 보고 ‘씨 안에 누가 있었구나!’ 깨닫고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우리가 먹는 배추는 단순히 물질적인 먹을거리가 아니라 나와 별 차이 없는 생명이며, 그래서 먹는다는 것은 생명을 먹고, 생명과 소통하고, 생명과 하나 되는 일이라고 믿는다. 쓴 책으로 《시골똥 서울똥》(2009), 《24절기와 농부의 달력》(2011), 《호미 한자루 농법》(2016), 《토종농법의 시작》(2020)이 있고, 옮긴 책으로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2004)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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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2-15
  • [곰주옥 X 인간주옥] ① 우리는 어쩌다 ‘주옥’이란 이름을 갖게 되었을까
    [곰주옥 X 인간주옥] 우리는 어쩌다 ‘주옥’이란 이름을 갖게 되었을까 내 이름은 ‘주옥’이다. 어린 시절 나는, 주옥이란 이름이 못마땅했다. ‘ㄱ’으로 끝나는 이름은 차갑고 무뚝뚝하게 느껴졌다. 초등학교 때는 ‘천당과 지옥’이라는 놀림을 받기도 했다. 다혜, 현아, 수정 등 입안에서 굴러다니는 이름을 지어주지 않은 부모님이 원망스러웠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개명을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친구 중에 ‘언년’이가 있었고, 언년이가 이름 때문에 심한 상처를 받고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주옥’ 정도면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되었다. 주옥이란 이름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게 된 건 고등학교 1학년 때다. 1학기 첫 시간에 국어 선생님은 출석을 부르다가, “‘주옥’, 누구냐?”라고 물었다. 손을 들었는데, 수업이 끝난 후 책상 앞에 오신 선생님이 손바닥을 내밀어보라더니, 펜으로 ‘주옥’이라 쓰시고는 ‘이렇게 예쁜 이름을 누가 지어주셨냐?’고 하셨다. “네? 아버지요.” 그날 이후 나는 손바닥을 볼 때면, ‘주옥’이라고 써나가던 펜의 감각이 살아난다. 간질간질한 따뜻함이 온몸에 전해진다. 그럼에도 나는 숙, 용, 훈, 태, 명, 환, 열, 순 등을 돌림자인 ‘주(柱)’자 뒤에 붙이는 방식이었고, 세상의 모든 글자 중 하나인 ‘옥(玉)’자가 그냥 얻어걸렸다고 짐작했다. 곰들과 좀 더 가까이 지내보기로 한 2026년이 시작되었다. 2026년 1월 6일, 나는 동료들과 ‘구례 곰 마루쉼터’(곰쉼터)를 찾았다. 2025년 9월 말에 문을 연 곰쉼터는 ‘국내 1호 공립 곰 보금자리’이다. 이곳의 곰들은 열악한 사육 환경이나 농가 방치 상태에서 구조된 이후 비로소 기본적인 보살핌을 제공받고 있었다. 이곳에서 눈이 안 보이거나, 귀가 안 들리거나, 팔다리가 없는 곰들을 처음 만났던 날, 나는 이 곰들과 무엇이라도 함께 해야 한다고 다짐했다. 그 ‘무엇이라도’가 무엇인지를 찾기 위해 이곳을 자주 방문하고 있다. 우리에게 곰쉼터 곰들의 이름과 특징을 이야기하던 최신영 수의사가 “참, 이 곰의 이름은 ‘주옥’입니다.”라며 나를 바라봤다. ‘앗! 주옥이라고?’, 살면서 ’주옥‘이란 이름을 가진 사람을 만난 게 딱 한 번인데, ‘주옥’이란 이름을 가진 곰을 만나다니, 반갑고 신기하고 강한 연결감이 전해졌다. 순간 곰을 향해 손을 뻗을 뻔했다. 이 곰은 어쩌다 ‘주옥’이란 이름을 갖게 되었을까? “이곳에 곰들이 처음 들어올 때는 전부 관리번호로 불렸어요. 1번, 2번, 3번 이런 식이었죠. 그런데 평생을 이곳에서 살 친구들을 번호로만 부르는 게 너무 정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직원들끼리 이름을 붙여주자고 했어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애니까 내 이름을 붙일래’, 이런 식으로요. 저도 제가 제일 좋아하는 곰이라 ‘옥주’라고 부르고 싶었는데 제 이름이랑 헷갈릴 것 같아서 앞뒤를 바꿔 ‘주옥’, 그래서 ‘곰주옥’으로 불리게 됐어요.” (2026년 2월 2일 임옥주 수의사 면담) ↑ 관리번호 BF-08의 이름은 ‘주옥’이다 곰주옥을 만나고 나니, 내가 ‘주옥’이 된 것에도 뭔가 분명한 이유가 있을 것 같았다. 대설에 시작된 추위가 계속되던 날에 아버지를 뵙고 인간주옥이 ‘주옥’이 된 이유를 물었다. 주옥:제 이름이요, 왜 ‘주옥’이라 지은 거예요? 아버지:작명법이 있는데, 너희는 ‘주(柱)’자가 돌림이거든. 기둥 주를 쓰고. 그다음에 획수를 따져서 알맞은 글자를 찾은 거야. 주옥:작명법이요, 그런 게 있군요? 아버지:책이 있지. 주옥:구슬 옥, 이걸 찾은 게 아버지세요? 아버지:내가 찾았지. 부르기 좋고, 첫째는 그거야. 그리고 획수가 맞아야 돼. 그 책에 보면 나와. 그래서 숫자에 맞는 글자를 찾다 보니까 ‘옥’이 된 거야. (2026년 1월 24일 인간주옥과 아버지와의 대화) 그동안 나는 ‘주옥’이란 이름이 부르기에 어색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아버지는 부르기가 좋다고 하셨다. 이런 걸 ‘간극’이라고 말해야 할까? 나와의 대화를 멈추신 아버지는 서재로 가시더니 족보를 가져오셨다. 아버지:족보에는 여자들 이름은 안 올라가고, 누구의 처, 이렇게 돼 있지. 여기도 그럴 거야. 주옥:아, 할머니 이름은 없고, 할머니의 아버지와 관련된 사항은 있고. 여기에 아버지가 제 이름을 써넣은 거예요?. 아버지:그렇지, 나중에 족보를 다시 하게 된다면, 다른 집은 모르지만, 내 집안에 대한 거는 이대로 하려고 해놓은 건데. (2026년 1월 24일 인간주옥과 아버지와의 대화) ↑ 여성 ‘주옥’의 이름을 써넣은 족보 요즘은 족보를 만드는 집이 없으니 내 이름이 인쇄된 족보를 볼 일도 없고, 또 그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아버지께서 세상에 없는 족보, ‘주옥’이라는 여성의 이름이 올라간 족보를 간직하고 계시다는 게 놀라웠다. 인간주옥은 이 사실이 가슴 벅차고 여기저기 자랑하고 싶어졌다. 또 다른 주옥인 곰주옥은 그동안 관리번호로만 불렸다. 그에게 이름을 붙인 임옥주 수의사는 ‘너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곰이야, 그러니 너에게 나를 그대로 반영할게’라고 말하며, ‘주옥’이라 이름 붙였다. 태어나서 처음 경험하는 따뜻함이었을 것이다. 생각만으로도 설레는 순간이다. 곰주옥과 같은 이름을 갖은 인간주옥은 곰주옥과의 만남을 계기로 곰쉼터에서 살아가는 곰들을 기록하기로 했다. 그들이 어디에서 왔고, 그곳의 삶은 어땠는지, 그들의 몸이 기억하는 것은 무엇인지, 곰쉼터에서의 하루는 어떤지, 곰이 곰답게 살아간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지 등을 면담과 관찰, 자료 조사를 통해 쓸 예정이다. [곰주옥 X 인간주옥]은 같은 이름으로 이어진 곰과 인간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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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2-01
  • [뒤웅박씻나락] "혼자가 아닌 나, 잘 키우기보다 같이 키우기" 푸른
    혼자가 아닌 나, 잘 키우기보다 같이 키우기 _푸른 괜히 찌뿌둥한 날에는 아이들 손을 잡고 목욕탕에 간다. 돌 전부터 나와 목욕탕에 들락거렸던 우리 아이들은 목욕탕 가는 걸 놀이터 가는 것만큼이나 좋아한다. 겨우 두 살, 네 살 된 조그만 내 딸들이 탕 안에 의젓하게 앉아서 반신욕을 즐기고 있는 모습은 내가 봐도 좀 귀엽다. 동네에 내 또래 젊은이도 거의 없고, 아이 키우는 집도 별로 없는 데다, 그중에 목욕탕을 다니는 사람은 더 드물어서 목욕탕에서 우리는 언제나 시선과 사랑을 한 몸에 받는다. 신발장에 아이들 신발이 있으면, 사람들은 들어오면서부터 “아이고~ 아가야들 왔나.” 하면서 좋아해 주신다. 존재만으로 기쁨을 준다니, 이보다 더 감사한 일이 있을까. 내가 다 기억할 수도 없이 많은 동네 어른이 다 우릴 기억한다. 인사해 주시는데 못 알아 뵈어서 난감할 때도 있지만, 그만큼 많은 사람이 낯선 우리 식구에게 축복을 보낸다는 사실이 언제나 놀랍고 감사하다. 아이들이 목욕탕 가는 길에 잠이 들면, 탈의실에 털썩 눕혀놓고 나 먼저 들어가 씻는다. 아이가 깨면 누구든 아이가 옷 벗는 걸 도와주시고, 아이 손을 잡고 탕에 데려다주신다. 아이들만 탕에 두고 내가 잠시 화장실을 다녀올 때도 걱정이 없다. 누구든 내가 다녀올 때까지 아이들을 지켜봐 주신다. 이런 일상은 목욕탕뿐 아니라 동네 카페도, 길에서도, 어디에서도 마찬가지다. 내가 아이들을 온전히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면 육아는 배로 힘겨웠을 거다. 하지만 언제든 나와 아이들을 도와줄 사람들이 있다는 생각에 아이 키우는 일이 그렇게 힘들게 느껴지지만은 않는다. 시스템을 갖춘 공동육아는 아니지만, 내 일상은 공동육아 그 자체다. 공동육아 멤버는 주로 불특정 다수의 산청군민이랄까. 사람들은 내가 남편 없이 혼자서 아이 둘을 데리고 다니는 걸 보면서 ‘아이고~ 힘든데! 어떻게 여기까지 왔어.’라든지, ‘고생한다.’, ‘대단하다.’, ‘애들을 수월하게 키우는 것 같다.’라고 한다. 나는 은근히 뿌듯하면서도, 사실은 내가 아이들을 잘 키운다면 그건 다른 사람들이 내 아이들을 자연스레 돌봐주도록 육아 환경을 조성해 두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이렇게 동네에 내놓고(?) 키우는 데에 주저함과 어려움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어른들의 기준으로 아이의 존재를 납작하게 만드는 말들도 자주 듣는다. 아이는 달라고 한 적 없는데 과자를 꺼내 보이면서 "나 안 안아주면 이거 안 줄 거야."라고 한다든지, 아이 입장에서는 충분히 부당하고 불편한 상황인데도 "왜 징징거려, 울지 마! 왜 떼를 써!" 같은 말로 서둘러 아이의 정당한 감정 표현을 막아버린다든지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그런 분들 역시 아이들에게 악의가 아닌 선의로 관심을 표현한 것이니, 내가 일일이 해명하거나 대변하기도 애매한 순간들이 많다. 그럴 땐 아이들에게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든다. 냉랭하고 새침한 표정으로 아이들을 내 품에 꼭 끼고 있었다면 그런 상황 안 겪었을까 싶을 때도 있다. 그러나 아이 둘을 키우면서 배운 것이 있다면, 아이들을 키우면 키울수록 내가 첫 아이를 키울 때 가늠하고 희망했던 모든 기준에 좀 더 가까워지고 완벽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철저히 지켜가고 싶었던 그 많은 원칙과 소신들이 얼마나 예상치 못한 다양한 이유로 조정되고, 타협될 수 있는지 배웠다. 좋은 것만 취하고, (내 기준에) 해로운 것은 단 하나도 아이한테 닿지 않게 하는 게 얼마나 불가능하고 아이에게 해로울 수 있는지 배워야 했다. 부모 경력이 쌓일수록 내가 더 대단하고 완벽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얼마나 나 혼자서는 육아를 완벽하게 해낼 수 없는지 점점 더 분명히 알게 되는 것에 가까웠다. 육아는 언제나 불완전하고, 불안정한 상태를 받아들여 가는 과정이었다. 할머니들이 재미 삼아 한 주먹씩 가득 쥐여주시는 달콤한 과자들은 아직도 아찔하긴 하지만, 아이들에겐 그 사랑이 얼마나 푸근할까 싶어 나서서 막지 못한 때도 많다. SNS에 흔히 보이는 감성 육아 사진들처럼 언제나 뽀송한 환경에서 아이들을 키우고도 싶었지만, 현실을 살다 보니 늘 아이 방에 널브러져 쌓이는 빨래를 어느 날 비효율적인 시간에 걸쳐 아이들과 함께 놀이 삼아 개는 일도 큰 기쁨이었다. 이렇게 내가 완벽하지 못하기 때문에, 세상을 좀 더 믿어보고 싶은 의지로, 아이들을 좀 더 세상으로 내놓고 키우려 했다. (마땅히 그래야 하지만) 일찌감치 아이들을 삶의 주인공으로 모시고 싶었다. 그래서 아이들만의 세상(어린이집, 놀이터, 키즈카페)뿐만 아니라 목욕탕, 면사무소, 은행, 우체국, 세탁소 같은 일상생활의 세상도 함께 경험하려고 애쓰는 편이다. 웬만하면 아이들과 함께 다닌다. 아이들이 이 동네를 아주 편안하고 믿음직스럽게 느끼고, 어딜 가도 낯익은 어른이 있으면 좋겠다. 나의 자녀로서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으로서 이 동네를 경험하고 관계 맺어가면 좋겠다. 왠지 그러면 아이들이 더 단단하게 자랄 것만 같다. 아이들과 늘 함께 다니다 보니, 다른 이들의 손길이 자연스럽게 필요한 때가 생기고, 나는 기쁜 마음으로 그런 도움에 기댄다. 내게 손이 부족하면 손이 오고, 아이들을 돌볼 눈길이 부족하면 어디선가 눈길이 채워진다. 그렇게 아이들을 환대하며 어른들의 마음에도 기쁨이 자랄 거라 믿는다. 셋째를 가진 것도 마찬가지였다. 주변에서 ‘대단하다’, ‘용감하다’라며 많이 칭찬하고 응원해 주신다. 하지만 막상 내게는 ‘셋째까지 가져보겠어!’ 같은 웅장한 결심이 필요한 일은 아니었다. 새 아이와 함께 새롭게 조율해 나갈 새로운 우리 식구의 모습이 기대되는 마음이 더 컸다. 우리 집에 새 아이가 또 온다면, 얼마나 곱절로 재미있고 행복할까 하는 생각만 했다. 지난여름 무서운 수해가 산청을 휩쓸고 간 다음 날 아침, 남편이 폭삭 물에 잠겼던 딸기 하우스와 작업장을 확인하러 갔을 때, 하필 그때. 나는 임신 테스트기에서 두 줄을 확인했다. 수많은 생명이 물에 잠겨 목숨을 잃었던 그날, 내 몸에는 새 생명이 막 싹을 트고 있었다. 지난 긴 세월 동안 켜켜이 쌓인 원인으로 기후 재난이 일어났듯이, 세상은 내가 바라는 대로 되는 일보다 그렇지 않은 일이 훨씬 더 많은데, 그런 세상에서 내가 바라는 대로 이렇게 귀한 생명을 품을 수 있게 된 것은 기적과도 같이 놀라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첫째, 둘째 때는 임신 사실을 알고 너무 신이 나서 ‘야호! 오예!’를 외쳤다면, 이번엔 마음 깊이 ‘아- 감사하다.’라는 생각이 묵직하게 솟았다. 서로 도와 세상 사람 모두 다 같이 잘 살고 싶다는 남편의 인생관을 받들어 첫째, 둘째 아이 이름은 ‘서로’, ‘도와’가 됐다. 셋째 임신 소식을 들은 거의 모든 사람이 셋째(와 넷째까지) 이름을 지어주곤 했다. 그 이름들은 대부분 이런 거였다. ‘함께’, ‘사랑’, ‘마음-모아’, ‘행복’, ‘나눔’, ‘모두’, ‘기쁨’, ‘희망’, ‘평화’ … 그 이름들을 지어주는 얼굴들이 하나같이 얼마나 설레어 보이던지. 아마 모두가 그렇게 살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일 거다. 저출산, 고령화, 수도권 인구 과밀이라는 다소 씁쓸한 배경이 있긴 하지만, 한 사람을 이렇게 귀하게 여기고, 느끼고, 환대하는 마음이 살아있다는 것만큼은 이 지리산 자락의 농촌이 지켜가고 있는 순수한 마음이자 진실한 아름다움일 거다. 이런 곳에서 아이를 낳고, 모실 수 있다는 건 특혜임이 틀림없다. 지리산에 기대어, 앞으로도 아이들과 서로 도와 함께 사는 설렘과 기쁨을 맘껏 나누며 살고 싶다. 글쓴이 : 푸른 대도시에서 자랐지만, 알고 보니 시골살이가 찰떡인 30대 청년. 엄마로 태어난 지 5년 차. 두 아이와 곧 태어날 뱃속의 아이와 함께 날마다 세상을 새롭게 배우고 있다. 어린이, 농촌, 평화, 교육에 대해 늘 생각한다. (첫 번째 사진 출처 unsplash, 이후 사진은 모두 필자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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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뒤웅박 씻나락
    2026-01-30
  • [안철환의 절기 이야기] 소한 때 다 못 쓴 대한 편지
    소한 때 다 못 쓴 대한 편지 안철환(전통농업연구소 대표) 추위가 계속되니 밭에조차 가는 일이 겨우 2,3일에 한번뿐이고 가더라도 일은 아주 적고 둘러보는 것 정도만 하고 집에 오기 바쁘네요. 집에 일 있는 것도 아니고 저야말로 요증 빈둥빈둥 그 자체입니다. TV드라마나 다큐 보고 유투브 쇼츠나 음악 듣고 아니면 같지도 않은 운동이나 아니면 폰으로 게임하듯 글이나 긁적이고 있는데 시간은 왜 이리 잘 가고 밥 먹는 시간은 어떻게 그리 빨리 오는지 참 웃기게도 바쁜 겨울잠(농한기)을 보내고 있네요. 그래도 역시 먹는 일이 제일 좋습디다. 잘 숙성된 김장 김치의 감칠맛은 요즘이 절정입니다. 김치만 있으면 뭘 먹어도 맛 있지 않은 게 없지요. 그렇지만 김치 못지 않은 겨울 채소는 역시 묵나물입니다. 지금은 김치가 세계적인 채소 먹거리가 되었지만 머지않아 묵나물이 뒤를 이을거라 저는 기대하지요. 아마 묵나물처럼 건조한 채소음식을 우리만큼 많이 먹는 나라도 드물겁니다. 쳇지피티에게 물어보니 말린 채소 먹는 나라는 많은데 대부분 보조재, 첨가재, 양념으로 먹지 우리처럼 나물이라는 독립 반찬으로 해서 일상적으로 또는 제사나 명절 때 주요 음식으로 먹는 나라는 없다네요. 너무 맛있게 먹느라 봄에 올라올 것만 남겨 놓고 다 캐먹은 시금치 기운이 아직 입가에 맴돕니다. 겨울에 먹는 노지 시금치 맛을 아시는지요? 시금치는 추운 겨울에도 먹을 수 있는 푸르른 녹색의 채소거든요. 제가 심는 건 토종시금치라 겨울에 더 강합니다. 씨에 가시가 있어 뿔시금치라 하는데 크기는 작지만 담백하면서 은은한 기운, 그리고 겨울을 이기기 위해 만든 깊은 단맛이 아주 울림이 있어요. 채소 싫어하는 애들도 좋아할 맛입니다. 아이들이 채소 잘 먹지 않는 이유 중엔 질소비료를 많이 주고 키운 요즘 채소들의 찝집한 뒷맛도 클 거라 봅니다. 옛날 분들은 이런 맛을 지리다 표현했어요. 시금치는 특히 질소질 비료를 좋아해 이를 많이 시비하면 크기는 크지만 감칠맛보단 지린맛이 많아져 애들은커녕 어른들도 젓가락을 잘 내밀지 않죠. 저는 질소질이 많은 요소비료는커녕 퇴비도 주지 않고 오줌만 주고 키웁니다. 물론 이도 질소비료이긴 한데 과다시비할만큼 줄 수가 없어요. 물타서 두세번 주고마니 줬다고 하기에도 그렇죠. 다만 토종시금치는 늦가을 또는 이른 겨울과 초봄에나 먹을 수 있어 비닐하우스에서 키운 것만큼 길게 먹을 수 없는 약점이 있어요. 근데요, 제철이 아닌 건 차라리 먹지 않는 게 몸에도 좋다고 저는 믿습니다. 수박은 여름에 먹어야지 아무리 건강하게 키운 수박일지라도 겨울에 먹는 게 무에 좋을까요? 암튼 깊은 겨울의 끝자락인 대한이 되니 마음엔 벌써 입춘이 온 것 같기만 합니다. 대한이 소한 네 갔다 얼어죽었다는 뻥처럼 원래 소한보다 따뜻한데 이번엔 대한 추위가 소한 못지 않게 올 것 같습니다. 애동지 드는 겨울엔 소한 대한 추위가 약하다 했는데 이번엔 조금 모자란 듯 해도 겨울답네요. 가뭄이나 심하지 않으면 좋겠어요. 겨울이 좋은 건 애타게 기다리는 봄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농한기 절정인 소한~대한 때는 몸과 마음 다스리는 것으로 정중동 놀이라고 표현했는데요, 소한 때 다 못한 얘길 이어서 소개할까 합니다. 우선 여기에선 놀이를 운동으로 표현하겠습니다. 제가 주로 하는 몸 다스리는 운동은 이름 붙이길 이른바 '쫀쫀한 운동'입니다. 이거 진짜 남이 보면 쫀쫀하기 그지 없어요.제가 몸이 불편해서이기도 하고 또 누구나 결국엔 불편해지잖아요. 그래 저를 비롯해 누구나 아무데서나 돈 안들이고 쉽게 할 수 있는 운동을 생각한 건데요, 예컨대 애기 때 배웠던 잼잼, 곤지곤지, 도리도리 운동 같은 거에요. 참 유치하죠? 저는 이중 잼잼운동을 열심히 합니다. 그리고 진짜 열심히 하는 건 발끝부터 머리까지 온몸을 두드리는 겁니다. 손가락 끝을 이용하든가 지압봉 같은 걸로 두드립니다. 저는 나무로 만든 오십견 지압봉을 주로 씁니다. 오십견에 좋게 갈고리 모양이라 몸 어디나 두드릴 수 있구요, 특히 손가락 무릅 등 관절염에 좋아요. 하다못해 편두통에도 좋고 불면증에도 좋고, 혈액순환에 참 좋습니다. 어쨌든 저처럼 몸 불편해 유산소 운동 못하는 사람들에게 요긴할 겁니다. 사실 좋다고 추천하는 대부분 운동은 다리운동에 기반한 것들이에요. 이해는 하지만 다리 못 쓰는 사람들로서는 아쉬운 바가 없지 않지요. 근데 그 좋은 유산소 운동을 하고 나서 사람들은 으레 뒷풀이로 꼭 술을 즐기는 게 안쓰럽지요. 술 좋아하는 저로서도 이해도 가고 부럽기도 하지만 걱정은 떨칠 수 없어요. 더더욱 꼼지락 운동을 권하고 싶은 이유입니다. 다음으로 진짜 추천하고 싶은 쫀쫀한 운동은 숨쉬기 운동입니다. 앉아서도 하고 누워서도 하고 자다가도 하고 새벽에 잠이 깨 잠들기 힘들 때도 하지요. 하여간 수시로 하니 누구나 아무데서나 언제나 할 수 있는 운동입니다. 다리와 몸을 많이 쓰는 유산소 운동은 한 때나 할 수 있는 거잖아요. 반면 숨만 쉴 수 있으면 할 수 있는 게 숨쉬기 운동이다라는 거지요. 죽을 때까지 말이죠. 제게 숨쉬기 운동의 중요성을 깨우쳐 준 분 중엔 심장병으로 고생한 선배님이 계셨는데 심장을 튼튼하게 하는 건 숨쉬기라고 하셨어요. 결국 그 병으로 돌아가셨지만 그 병에 관해선 도사가 되신 것 같더라구요. 그래 비유하시길 폐는 심장(구들)의 아궁이 같은 건데 구들을 데우려면 장작도 중요하지만 공기를 잘 통하게 하는 게 더 중요하다 하셨죠. 특히 공기를 잘 통하게 하려면 잔숨을 다 빼내야 한다 했는데 폐속에 남은 잔숨은 일종의 오염된 공기로 이게 심호흡을 방해해 폐한테도 좋지 않고 심장에도 나쁘다 한겁니다. 그래서 숨은 들숨보다 날숨이 중요하다 했습니다. 폐를 쥐어 짜듯이 날숨을 하면 저절로 깊은 들숨이 들어오게 되어 있죠. 제 호흡운동 방식은 명상이나 단전호흡처럼 가만히 앉아 순전히 숨쉬기에만 집중하는 것이 있고 팔과 어깨를 이용해 근육운동을 같이 하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그러면 절로 허리근육도 강화되고 괄약근 운동 효과도 있어 대장에도 좋지요. 방귀도 잘 나오고 속도 편해지거든요. 숨쉬기 운동은 드러누워서도 할 수 있어 아닌말로 죽는 순간까지 할 수 있는 운동이 아닐까 싶어요. 운동하며 삶을 마감하는 셈이지요. 그러면 죽음이 덜 힘들지 않을까 기대해보곤 합니다. 겨울 농한기에 죽음까지 생각해보는 건 슬픈 일이 아니라 삶을 더 진지하게 살도록 하는 동력이 될거라 기대합니다. 겨울의 죽음이 봄의 희망으로 부활하는 농한기가 되길 바랍니다. 글을 쓴 안철환 선생은 온순환협동조합, 전통농업연구소 대표이고 경기도 안산에서 ‘산림생태텃밭 먹거리숲 농장’을 운영한다. 남은 음식물과 똥오줌, 커피 찌꺼기를 받아 직접 거름 만들기를 실천하고 있으며, 우리 토종 종자와 전통 농업 살리기에 열중하고 있다. 25년 전, 처음으로 심은 배추 씨가 3일 만에 싹 트는 걸 보고 ‘씨 안에 누가 있었구나!’ 깨닫고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우리가 먹는 배추는 단순히 물질적인 먹을거리가 아니라 나와 별 차이 없는 생명이며, 그래서 먹는다는 것은 생명을 먹고, 생명과 소통하고, 생명과 하나 되는 일이라고 믿는다. 쓴 책으로 《시골똥 서울똥》(2009), 《24절기와 농부의 달력》(2011), 《호미 한자루 농법》(2016), 《토종농법의 시작》(2020)이 있고, 옮긴 책으로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2004)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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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1-22
  • [이호신화백의 지리산그림순례] 지리산 산청 천왕봉의 겨울
    지리산을 사랑하고 지키는 여러분에게 새해 인사를 드립니다. 어느덧 지리산 산청으로 귀촌한지 16년째를 맞으니 감회가 큽니다. 여러모로 살펴주시고 성원해 주신 덕으로 작품생활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특별히 고맙기로는 「지리산인」에 저의 작품을 선보일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꾸준히 붓을 들 수 있었지요. 제가 5년 전에 스스로 약조한 연재 <지리산 그림순례>를 마침내 마칠 수 있어서 다행으로 여기고 지켜보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하동/구례/ 남원/함양/산청의 사계절을 그림으로 순례한 시절인연에 깊은 감회를 느낍니다. 이제 마지막회 그림으로 <지리산 산청 천왕봉의 겨울> 그림을 모아 최근작에서 초기작까지 역순으로 선 보입니다. 앞으로도 새로운 주제로 여러분과 만날 것을 희망하며 「지리산인」 편집부의 노고와 회원님들, 그리고 지리산을 사랑하는 이웃들에게 청복이 깃들기를 기원합니다. - 2026년 1월18일 산청 남사예담촌 오늘화실에서 이호신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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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1-17
  • [안철환의 절기 이야기] 긴긴 겨울의 한복판, 소한 일기
    긴긴 겨울의 한복판, 소한 일기 안철환(전통농업연구소 대표) 동지 지나자마자 온 이번 추위는 아무리 봐도 동지 추위보다는 소한 추위라 해야 맞을 것 같습니다. 따뜻한 애동지라 동지 추위라고 하기엔 어울리지가 않아서지요. 소한인 오늘 지나면 날이 잠깐은 풀릴 수 있으나 또 다시 추위가 와도 이상하진 않을 겁니다. 어쨌든 소한과 대한은 긴긴 겨울의 한복판이거든요. 다만 지난달 내내 이상하게 따뜻했듯이 온화한 겨울이 올까 걱정은 됩니다. 추위가 일찍 왔으니 일찍 갈 테니까요. 암튼 겨울답지 않은 따뜻한 겨울은 여러모로 좋을 게 없습니다. 그래도 긴긴 겨올 농한기엔 몸과 마음의 건강을 다지는 기회로 삼으면 좋겠습니다. 우선 겨울엔 따뜻한 음식을 먹어 몸에 추위를 버틸 에너지를 비축해 둡니다. 전통농업 취재차 농촌을 다닐 때 한 할머니가 이런 말을 해주었어요. “여름은 거지처럼 나고 겨울은 임금처럼 나야 한다”고 말이죠. 여름엔 배불리 먹지 말고, 겨울에나 배불리 먹으라는 얘길 텐데 왜 그럴까요? 한 번은 시베리아 도시라 불리는 러시아 이르쿠츠크를 여름에 가 봤습니다. 공원에 가서 신기한 모습을 보았는데요, 참새들이 뚱뚱한 거예요. 우리보다 훨씬 추운 겨울이 6개월이나 되는 지역인데 뭐 먹을 게 많다고 쟤들은 저리 살이 쪘지 하고 한동안 그 놈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어요. 제 괴팍한 여행 취미 중에 하나는 그 지역의 작은 동물들과 벌레들을 살펴보는 일입니다. 특히 길개, 길고양이, 참새, 파리 등에 관심이 많지요. 이 놈들은 이상하게 어디 가나 다 비슷비슷해요. 특히 참새와 파리가 비슷한 게 신기하죠. 참새는 철새도 아닌 텃새인데 왜 그럴까요? 쳇GPT에게 물어보니 제 추정과 비슷하게 이 놈들은 사람 따라 이주했기 때문이라네요. 한 종인 참새와 달리 파리는 종은 다르지만 형태가 별 차이 없어 다 비슷하게 보인답니다. 어쨌든 우리의 이웃인 거죠. 그렇지만 지역과 나라마다 약간씩 다른 점이 있어요. 그 차이를 살펴보면 그 나라를 더 재밌게 이해할 수 있답니다. 그럼 왜 이르쿠츠크 참새들은 뚱뚱할까요? 눈치챈 분들이 있을 거예요. 맞습니다. 바로 긴긴 추운 겨울을 이기기 위한 진화 전략인 거예요. 그러고 보니 사람들도 대체로 뚱뚱하고 덩치가 크더라구요. 북유럽 사람들도 마찬가지죠. 그걸 우리에 맞게 적용한 게 앞에서 말한 할머니의 말씀이지요. 여름은 거지처럼 겨울은 임금처럼..... 그래서 찰지고 기름져 맛있는 음식은 여름보다 겨울에 먹으라는 얘긴데요, 그러고 보니 찹쌀떡 장수도 긴긴 겨울밤에 팔러 다녔죠. 요즘은 떡 하면 사계절 모두 찹쌀떡이에요. 매떡이 사라졌어요. 더불어 구성진 “찹 싸~알 떠~억....” 목소리도 사라졌지요. 불과 5년여 전까지만 해도 우리 집 골목 입구에서부터 그 소리가 들리기라도 하면 얼른 뛰어나가 사 오곤 했는데 말이죠. 또 한 번은 이집트 가서 파리를 살펴보니 크기가 작아요. 똥파리 왕파리는 못 찾겠고 제가 본 것은 집파리 뿐이었어요. 그게 왜 신기하냐 하면, 그 나라는 쓰레기가 많은데요. 그러면 당연히 파리가 득실 할 텐데 그렇지가 않은 거지 뭡니까. 곰곰 살펴보니 아주 건조한 나라라 쓰레기는 많아도 썩는 냄새가 별로 없는 겁니다. 미라가 많은 것도 같은 이유일 겁니다. 거기는 습한 것보단 건조한 게 문제인 거죠. 사람들도 옷차림이 별로 깔끔하지 않은데 냄새가 거의 없어요. 향수 바르는 것 같지도 않은데 말이죠. 깔끔한 백인들한테서 노랑 내 나는 것과 비교해 보면 참 대조적이죠. 몸은 그렇고, 마음은 어떻게 다질까요? 저는 농한기답게 놀기를 권합니다. 근데 요즘 사람들 보면 노는 일도 바빠요. 매사 모든 게 바쁘죠. 가만히 놀질 못합니다. 술을 먹든, 노래방을 가든, 영화를 보든, 골프를 치든, 여행을 가든 뭔가를 바쁘게 합니다. 저도 여전히 술 좋아하고 여행도 종종 가는 입장이라 뭐라 탓할 처지는 못돼요. 다만 이 긴긴 겨울엔 빈둥빈둥 가만히 노는 재미를 권하고 싶지요. 앞 글 중 대설인가에서 말했듯 겨울잠 자듯 겉으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듯한 놀이예요. 명상을 하든, 산책을 하든, 음악을 듣든, 책을 읽든, 묵은 청소를 하든, 새해 농사 준비차 종자 정리를 하든, 맛있는 겨울 음식을 해 먹든 말이죠. 정중동(靜中動) 놀이랄까요. 겨울에 단식하는 분들도 있는데, 조심해야 하지만 이도 괜찮은 방법이에요. 에너지를 비축하라 해 놓고 단식을 권하니 이율배반 같지요. 근데 곰곰 보면 원리는 간단합니다. 이게 진짜 겨울잠 자는 거거든요. 곰이나 뱀이나 개구리처럼 겨울잠 자는 애들 보면 알 수 있지요. 에너지 비축은 잠자기 전에 충분히 해 둡니다. 그리고 단식을 하는 거예요. 잠을 자면서.... 에너지를 거의 쓰지 않는 거죠. 이게 중요한 것은 마음의 건강까지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단식을 하며 몸도 비우지만 마음도 비우는 겁니다. 일 하느라 많은 사람들 만나면서 얻은 마음의 상처와 피로를 비웁니다. ‘도 닦으라는 거군’ 하시겠지만 그리 거창한 거는 아닙니다. 우리는 세상 살면서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살잖아요. 그걸 털어내는 일은 도 닦는 일이 아니라 생존의 일인 겁니다. 근데 보통 사람들에게 단식이 쉬운 일은 아니에요. 저도 이맘 때면 단식을 몇 년 하다 결국 포기했거든요. 회복식까지는 잘했는데 꼭 끝나기 무섭게 맛있는 술 먹고 사람들 만나고 하니 도로나무타불이 되곤 했어요. 저는 그냥 외부활동을 줄이는 것으로 하고 있습니다. 2~3일에 한 번은 밭에 가서 나무 전지도 하고 마무리 못한 퇴비장 정리도 하고 그런 일마저 없으면 그냥 점검 핑계로 밭 구석구석을 살펴봅니다. 단골 길고양이에게도 아는 척하고, 산에서 가끔 먹을 것 찾아 내려오는 너구리 족제비 안 오나 살펴보고, 어쩌다 마주치면 짝사랑하는 마음으로 살금살금 다가가 보지만 금방 사라지고 말지요. 혹여 제가 좋아하는 매나 수리부엉이 오지 않나 하늘도 살펴봅니다. 며칠 전엔 수리부엉이 한 마리가 까치 떼들에게 이리저리 쫓겨 결국 도망가는 처지를 보곤 에이 깡패 같은 놈들 하곤 욕만 했어요. 도와주고 싶었지만 헛된 꿈이죠. 밤하늘 쳐다보는 것도 중요한 일인데요, 이곳도 도시라 별들이 뭐 보이겠냐 하지만 그래도 달이나 목성, 화성, 토성, 금성 정도는 잘 보입니다. 그 정도 살펴보는 재미도 그럴싸하지요. 천문 전문가는 아니지만 언제 기회 되면 별들 얘기도 소개하겠습니다. 절기도 다 별들에서 왔거든요. 그리고 점점 사람 관계보단 자연의 생명들과 더 가까워지려 노력합니다. 내 밭의 작물들과 풀들, 작은 동물들과 벌레들, 주변 숲에 사는 나무들과 짐승들에 더 관심을 갖는 거죠. 물론 나도 사람이니 사람을 어찌 만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특히 별나게 사람들 좋아하는 성미이니 더 그럴 수 없지요. 그래서 찾은 방법은 새로운 관계는 맺지 않고, 기존 관계는 더 소중히 여기지만 일은 줄이고, 만남도 술자리보다는 줌으로 만나고, 만나도 심각한 얘기보다는 덕담을 많이 합니다. 말하자면 관계도 단식만큼은 아니어도 아끼고 절약하는 거지요. 젊은 사람들은 겨울을 그렇게 보내다 봄부터는 다시 활기차게 활동해야 하겠지만 저는 환갑 지나고부터는 겨울을 핑계로 점점 일도 줄이고 모든 걸 줄여나가려 합니다. 겨울이 길고 추운 건 어쩌면 하늘이 준 특혜일 수 있습니다. 한 번은 남반구 호주의 시드니를 겨울에 가 본 적이 있어요. 희한한 건 겨울임에도 춥지 않아 온 세상이 여전히 푸르른 거였습니다. 나무들은 얼마나 크고 우람한지 우리로 치면 몇 백 년은 되었을법한 것들이 겨우 50년 정도 된 거랍디다. 함께 간 사람들 다 부러워하는 눈빛이었죠. 저도 마찬가지였지만요. 근데 좀 더 생각해 보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어요. 그곳엔 봄 되면 죽었다가 다시 땅 속에서 올라오는 새싹들의 부활 향연 같은 건 없을 테니요. 잎은 다 떨어져 가지만 남은 앙상한 나무들의 이른바 백골(白骨) 미도 볼 수 없지요. 저는 개인적으론 꽃보다 새순을 좋아하고 새순 다음으로 앙상하게 뼈만 남은 겨울나무를 좋아합니다. 나무만 보이는 게 아니에요. 맨바닥 흙도 다 보이고 능선과 계곡도, 바위들도 다 보이죠. 눈이 오면 더 멋있습니다. 그래서 땅을 살 때는 겨울에 사는 게 좋습니다. 여름엔 다 가려지기 때문이에요. 마지막으로 추운 겨울은 자연이 준 단련의 기회입니다. 생태적으론 청소의 기회이구요. 그래서 추울 때 추워야 하고 겨울은 겨울다워야 자연도 사람도 나도 모두 자기다워지니 추운 겨울을 자연의 혜택이라 한 겁니다. 그래도 추위에 감기 걸리지 않게 조심하세요. 글을 쓴 안철환 선생은 온순환협동조합, 전통농업연구소 대표이고 경기도 안산에서 ‘산림생태텃밭 먹거리숲 농장’을 운영한다. 남은 음식물과 똥오줌, 커피 찌꺼기를 받아 직접 거름 만들기를 실천하고 있으며, 우리 토종 종자와 전통 농업 살리기에 열중하고 있다. 25년 전, 처음으로 심은 배추 씨가 3일 만에 싹 트는 걸 보고 ‘씨 안에 누가 있었구나!’ 깨닫고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우리가 먹는 배추는 단순히 물질적인 먹을거리가 아니라 나와 별 차이 없는 생명이며, 그래서 먹는다는 것은 생명을 먹고, 생명과 소통하고, 생명과 하나 되는 일이라고 믿는다. 쓴 책으로 《시골똥 서울똥》(2009), 《24절기와 농부의 달력》(2011), 《호미 한자루 농법》(2016), 《토종농법의 시작》(2020)이 있고, 옮긴 책으로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2004)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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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절기이야기
    2026-01-07
  • [뒤웅박 씻나락] "토건사업시민심의제 도입을 제안하며" 이주헌
    반생태적 개발 사업의 상징, 지리산산악열차 : 토건사업시민심의제 도입을 제안하며 _이주헌(문심당한의원 원장, 남원시민) 10년 넘도록 지리산산악열차는 우리 고장의 골칫거리였다. 남원시는 지리산산악열차가 전기로 운행되기에 매연을 내뿜지 않는 친환경 운송시스템이라고 주장했다. 선로를 설치할 때도 나무 한 그루 베어내지 않고 기존 도로만을 활용하겠다고 장담했다. 남원시의 장밋빛 홍보만 보자면 산악열차는 우리 고장의 백년 먹거리요, 지리산은 한국의 융프라우였다. 정치인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숟가락을 얹기 바빴다. 시간이 흐르며 사업의 실상이 하나둘 드러나기 시작했다. 환경 훼손이 전혀 없다더니 시범 사업만 해도 나무 수백 그루를 베어내고 생태자연도 1등급 지역인 원천천 비탈에 옹벽을 무려 600m 가까이 쌓아야 했다. 공공기관이 진행한 연구에선 전혀 경제성이 없던 사업이 민간 회사가 용역을 맡더니 별안간 수익성 충분한 사업으로 돌변했다. 공사비를 축소하고 유발 수요를 부풀렸기 때문이었다. 지리산산악열차를 운행할 도로는 천연기념물인 반달가슴곰 서식지였다. 게다가 그 도로에선 단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산사태가 발생했다. 지리산산악열차 사업은 처음부터 끝까지 기만이요, 엉터리였다. 무엇보다도, 남원시는 주민들에게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고 밀실에서 사업을 진행했으며 공청회를 비롯한 주민들의 공론화 요청을 죄다 무시했기에 이 사업은 철저히 반민주적이었다. 올해 2월 전북지방환경청은 남원시가 신청한 지리산산악열차 시범사업 소규모 환경영향평가에 대해 최종적으로 부동의 결정을 내렸다. 싸움은 마침내 막을 내렸다. 지리산산악열차 사업은 지난 10년간 남원시가 허울 좋은 명분을 덮어씌워 추진해 온 반생태적 개발 사업의 상징이었다. 환경청은 그 반생태성을 통렬히 지적하여 이 사업을 좌초시킴으로써 지리산 개발 광풍에 큰 경종을 울렸다. 끝없는 개발주의의 망령 산악열차는 물러갔지만 개발주의는 여전히 우리 고장 한복판에 똬리를 틀고 있다. 지난 세월 남원시가 벌여 온 대규모 토건 사업들은 기후위기 시대에 역행하는 시대착오적 개발주의의 민낯을 보여준다. 얼추 떠오르는 것만 손에 꼽아도 기가 찰 지경이다. 작은 산을 두 개나 밀어버리고 1,000억 원을 퍼부어 조성한 사매 일반산업단지는 기업 유치에 실패하고 텅 빈 땅으로 방치되면서 잡초가 산을 이루고 있다. 1,900억 원의 민간 자본을 끌어들이기로 한 남원 드래곤 관광단지 사업은 장기간 표류하고 있으며 핵심 관광 시설은 착공될 조짐조차 보이지 않는다. 지난 20년간 1,000억 원 이상을 쏟아 부은 운봉 지리산 허브밸리 또한 기대했던 관광 효과는커녕 유지, 관리 비용만 발생시키는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함파우의 아름다운 경관을 파괴했으면서도 민간 자본을 끌어들여 세금 한 푼 안 들이고 사업을 성공시켰다고 입에 침이 마르게 자랑하던 모노레일, 짚라인 사업은 개장 몇 달 만에 파산하여 400억 원 넘는 사업비를 고스란히 혈세로 갚아야 할 처지가 됐다. 소송으로 인한 지연 이자까지 합치면 배상금은 무려 500억 원에 달한다. 지금도 매일 1,300만 원 넘는 지연 이자가 쌓이고 있다. 이렇게 처참하게 망해 버린 대규모 토건 사업들은 재정을 파탄내고 생태를 파괴하는 개발주의 망령이 여전히 남원시를 지배하고 있음을 증거한다. 이 와중에도 최경식 남원시장은 2,000억 원이 넘는 함파우 아트밸리 사업을 밀어붙이고 있다. 이토록 무분별한 토건 사업이 지속된다는 건 무얼 뜻할까? 나는 이것이 대의 민주주의의 실패를 증명했다고 생각한다. 남원시의 대규모 토건 사업들은 시대의 흐름으로 추진돼 왔다. 시민들을 대신하여 생태 파괴와 재정 낭비를 막아야 할 시의회는 걸핏하면 시청의 들러리 역할을 하며 토건 사업을 방조하거나 날개를 달아 주었다. 이 과정에서 시민들은 철저히 배제되어 집단 지성을 발휘할 기회 자체가 주어지지 않았다. 지금의 대의 민주주의 아래에서도 주민감사청구나 주민소송 등 주민들이 개입할 수 있는 수단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나 그것은 사후적 통제 수단에 불과하기에 무분별한 토건 사업을 계획 단계부터 효과적으로 막아낼 수 없다. 이제 남은 길은 하나다. '묻지마 개발'의 악순환을 끊으려면 시민들의 참여와 개입이 필요하다. 그 구체적 방안으로 토건사업시민심의제 도입을 제안하고자 한다. 토건사업시민심의제를 도입하자 내가 제안하고자 하는 토건사업시민심의제는 추정가격 고시금액 이상의 대규모 토건 사업에 대해 기획 단계부터 주권자인 시민이 참여하여 사업 타당성과 생태적 지속가능성을 심의하는 제도이다. 지자체마다 편차는 있겠지만 남원시 같은 경우 고시금액을 100억 원 정도로 정하면 될 것이다. 추첨이나 공모, 시민단체 추천을 통해 선정된 시민 대표들이 전문가, 지방의회 의원과 함께 토건사업시민심의위원회를 꾸리고, 이 위원회에서 대규모 토건 사업 계획을 검토하는 것이다. 시장, 군수는 위원회가 요청할 경우 사업 관련 정보를 공개하여 위원들의 자유로운 정보 접근을 보장해야 한다. 사회적 갈등이 예상되는 사업 계획에 대해서는 위원회가 숙의형 공론장을 열어 주민 의견을 수렴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심의 결과를 도출하면 시장, 군수는 반드시 이를 검토하고 수용 여부를 답변하게 하고, 그 답변은 모든 시민들에게 공개한다. 이 제도가 도입된다면 시민과 전문가의 집단 지성이 무분별한 토건 사업 추진에 제동을 걸 수 있는 기회가 열리게 된다. 무작위 추첨이나 시민단체 추천으로 구성된 시민 위원들은 정치인이나 관료와 다르게 정치공학 또는 상급자의 압력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울 것이며 공동체 전체의 미래를 위한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더 클 것이다. 만약 토건사업시민심의제가 존재했다면 지리산산악열차 사업은 숙의형 공론장을 통해 실상이 빨리 알려졌을 것이고 모노레일 사업은 진즉 폐기되었을지 모른다. 이제 시민의 손에 지역의 미래를 맡겨야 할 때 환경청이 지리산산악열차 시범사업 부동의 결정을 내리면서 10년을 끌어온 사회적 갈등이 종지부를 찍었을 때 남원시가 정신을 차리고 무분별한 토건 사업의 종말을 선언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여전히 추진 중인 2,000억 원대 함파우 아트밸리 사업은 남원시가 아직도 개발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낼 수 있는 유일한 힘은 주권자인 시민의 참여뿐이다. 우리는 기후위기라는 인류 공동의 심각한 위기 때문에 더 이상 무분별한 토건 개발을 용인할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전 세계가 폭염, 산불, 홍수, 태풍으로 몸살을 앓는다. 최근 사례만 살펴봐도 끔찍하다. 작년 여름엔 인도 북부의 기온이 50도 가깝게 치솟았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선 메카 순례 중 폭염이 덮쳐 1,300명 이상이 사망했다. 올해 초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대형 산불이 번져 무려 74조 원에 달하는 피해가 발생했다. 태국, 베트남, 캄보디아 등 메콩강 유역 국가들은 수십 년 만에 최악의 가뭄을 겪고 식량 안보가 흔들렸다. 사례를 찾아보자면 수도 없다. 대규모 토건 사업은 반드시 산림을 훼손하고 토양을 유린하며 막대한 양의 콘크리트와 철강재를 사용하여 탄소 배출량을 늘린다. 기후위기 시대에 토건 사업을 무분별하게 밀어붙인다는 건 끝없는 자살 시도나 다름없다. 대의 민주주의는 개발 중독을 통제하는 데 실패했다. 이제 시민들의 집단 지성이 지역의 미래를 설계하고 책임지는 시대를 열어가야 한다. 전 인류의 멸절을 걱정해야 하는 이 시대, 우리 희망은 결국 더 많은 민주주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글쓴이 이주헌 지리산산악열차반대남원대책위 집행위원장을 지냈고, 현재 남원 시민단체 시민의 숲 집행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남원에서 문심당한의원을 운영한다. 뒤웅박 씻나락 칼럼 '뒤웅박 씻나락'은 이듬해 종자로 쓸 귀한 볍씨를 가리키는데요, 이 칼럼의 글들이 뒤웅박 씻나락으로서 앞으로 생명·평화·나눔·돌봄·연대의 사회를 위한 씨앗이자 마중물이 되길 기대하며 만든 칼럼입니다. 지리산 자락 삶이 우리 사회의 대안적 삶의 모습이 되길 꿈꾸는 <지리산인>의 바람을 담아, 지리산 곳곳에 계신 씨앗 같은 이들의 삶과 생각을 싣고자 합니다. 지리산 자락에 사는 여러 살림꾼들이 돌아가며 글을 씁니다. <지리산인>의 뒤웅박 씻나락 칼럼을 기쁘게 받아 주세요.
    • 기획
    • 뒤웅박 씻나락
    2025-12-23
  • [안철환의 절기 이야기] 한 해 농사 시작은 동지부터
    새해 일출을 보려면 동지 다음날 해를 봐야 합니다. 해가 가장 짧았다가 길어지는 동지 다음날 해가 진짜 새해거든요. 그와 달리 신정 해는 새날의 의미가 없어요. 이미 새날이 온 지 열흘은 지난 거지요. 굳이 말하면 새날이 밝았다는 걸 체감할 수 있는 건 동지 지나 한 열흘쯤 되어야 느낄 수 있어서 일 겁니다. 이 신정 설날의 기원은 로마인데요, 당시 천문 수준으로는 동짓날이 딱 언제라고 확정할 수도 없었던데다 행정 입장에선 언제가 새날이 시작되는지 정해야 하니 새날의 기운을 체감할 수 있는 날을 임의로 정한 게 관습이 된 거지요. 그렇다고 저는 동지 다음날 해도 보러 가지 않습니다. 제일 먼저 뜨는 동해로 해 보러도 가질 않는데 한번은 간 적이 있어요. 한 30년 전 쯤 신정 새해 보러 속초 갔다가 다시는 해 보러 가지 않기로 한겁니다. 키가 작아서 해도 제대로 볼 수 없었지만 전날 술 먹은 사람들 냄새 감수하면서까지 안간힘을 써가며 볼 일이 아니라고 판단한 거지요. 그리고 농사짓고부터는 동해에서 뜨는 해보다는 밭에서 뜨는 해를 보는 게 훨씬 감동이라고 기염을 토하곤 합니다. 그 장관이 대단하거든요. 처음 일출을 본 그 밭이 마침 동남향이었어요. 앞에는 저 멀리 야트막한 구릉 말고는 탁 트여 일출이 괜찮겠다 싶어 밭을 얻고 봄 되자마자 동트기 전에 갔지요. 아~ 그 장면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감동은 뜨는 해 그 자체가 아니었어요. 우선 여명이 밝아오기 직전 순간의 깊은 어둠을 뚫고 곧 해가 떠오른다고 팡파레를 울리는 애들이 있었어요. 누굴까요? 맞습니다. 바로 새들이었습니다. 그 새소리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속으로 그랬지요. “어떤 오케스트라 소리가 저 소릴 흉내낼 수 있을까?” 그리고 알았습니다. 왜 새를 하늘의 메신저라 하고 천사에겐 왜 날개가 달렸는지를요. 그냥 하늘의 메신저가 아니라 태양의 메신저였던 겁니다. 태양이 하늘의 주연배우인 거죠. 배우가 등장하기 전 어두운 장막을 거둬내듯이 여명 직전의 깊은 어둠을 걷는 게 새였던 겁니다. 새벽을 알리는 닭도 새긴 새이지요. 하지만 닭소리는 너무 시끄러워요. 그 소린 들어본 사람이면 압니다. 성질 같아선 뛰쳐나가 닭 모가지를 비틀고 싶지만 그렇다고 오던 새벽이 돌아가진 않지요. 암튼 저는 그 새소리를 매일 듣고 싶어 마당 있는 집을 얻어 25년째 살고 있습니다. 낡은 집이라 단열창을 설치한 이후 날이 선선할무렵부터 창문을 닫으면 새소리도 닫히고 마는 게 제일 아쉽습니다만 한 철 외엔 아침마다 듣는 소리가 천사 소리 같기만 하지요. 팡파레 새소리와 함께 여명이 밝아오고 해의 기운이 땅에 희미하게 비추기 시작할 즈음의 장면 또한 못지않은 울림이 있어요. 흙에 비친 은은한 빛살과 흙의 요철 모양에 따라 드리워진 해 그림자가 새 소리와는 또 다른 느낌을 줍니다. 막 떠오른 해는 아직 온 세상을 밝게 비추진 못해요. 그냥 저 멀리 떠 있는 예쁜 조명 전구불 같다고 할까요. 그러다 천천히 퍼져오는 그 빛의 기운이 흙 그림자와 함께 비추는 기운은 참으로 안온해요. 벌레들도 깨어나 꼼지락 거리기 시작하고 봄 기운을 받아 움트는 새싹들의 기운도 참 싱그럽지요. 그래서 일출의 감동은 해 그 자체만이 아니라 한 것입니다. 해와 함께, 새들과 함께 온 세상의 생명들이 깨어나는 그 기운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곳이 바로 밭에서 보는 일출 장관입니다. 대설 얘기와 달리 동지는 참으로 많은 얘길 품고 있는 절기입니다. 아마 이 글도 한번에 끝나지 않고 2탄을 써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동지는 동서양 공히 새날의 전야(이브)였습니다. 사실 크리스마스도 동지에서 왔어요, 예수가 언제 태어났는지 기록은 없지요. 중요한 것은 예수의 탄생으로 새해가 시작되는 것이고 그게 크리스마스 이브이자 동지였던 겁니다. 예수와 태양을 동일시 한 셈이죠. 예수님 머리 뒤로 그려지는 빛나는 원은 바로 태양일 거에요. 그리고 좌우 위로 팡파레 부는 천사들이 있으니 그건 다름아닌 새이겠지요. 동양에서도 동짓달은 정월의 전달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12월 섣달이 있지만 섣달의 섣은 섣부르다의 말처럼 덜 익은 달, 앞과 뒤의 경계 달이라 정월로 삼기에 알맞지 않았어요. 날씨로도 섣달엔 소한 대한이라는 맹추위가 있어 새달로 삼기 적당치 않았지요. 서양엔 섣달에 맹추위가 없더라도 봄이라 할 수는 없었을 겁니다. 음력 섣달이 양력으로는 1월인데요 이름을 January라고 했어요. 이는 야누스(Janus)에서 온 것으로 정월의 뜻보다는 이중성을 지닌 경계의 의미로 이름을 단 것을 보아도 일맥상통하는 게 엿보입니다. 동양에선 동지를 12지지 중 자(子)월이라 해서 자(子)를 기점으로 삼았습니다. 일년 12달 중 자월(동지달)이 기점이듯 하루 중에도 자시(23~01시)가 기점이어서 그 중 정가운데를 자정이라 하지요. 그래서 제사를 돌아가신 날 자시에 지냈던 겁니다. 지금은 자시보다 일찍 지내는 게 자리를 잡아 돌아가시기 전날 지낸다고 알려져 있지만 따지고 보면 조상이 왔더니 지들끼리 먼저 다 먹고 잠 자고 있는 꼴입니다. 죽은 조상이 오긴 뭐 오겠어요. 남은 후손들이 조상을 기리며 그 핑계로 서로 화목하게 지내면 다지요. 그런데 우리의 설날은 절기로는 동지가 아닌 입춘이에요. 동지가 태양 기준으로는 설날에 적합하지만 날씨로는 적당치가 않아요. 동지 지나 소한 대한 맹추위가 닥치니 봄날이라 할 수 없었을겁니다. 고대 중국에선 동지 지나 설로 적당한 절기로 대한 입춘 우수 셋 중에 하나를 선택했다고 합니다. 음력 정월이 위 세 절기 중에 오기 때문이에요. 우리는 농경 국가로 알려진 고대 하夏나라 전통을 따라 입춘을 설 절기로 삼았어요. 자세한 거는 입춘 때 말씀 드리는 거로 하구요, 암튼 절기 시작을 입춘부터 읽는 게 그래서입니다. 올해 동지가 음력 11월3일, 곧 11월 초순에 드는 전형적인 애동지입니다. 이런 겨울은 대체로 따뜻하다 했지만 좀 심하다 했지요. 어디는 개나리가 꽃을 피윘다 하고요, 저희 밭에선 내년 춘분에나 싹이 틀 마늘이 벌써 올라와 버렸어요. 이거 보통 일이 아닙니다. 비도 잦고요. 가물면 산불이 걱정이라 했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인데요. 그렇다고 꼭 좋지만은 않을겁니다. 따뜻한데다 습기가 많으면 토양에 곰팡이와 병균이 많아질 수 있지요. 일진으로도 동지 전날이 갑자甲子인데요. 60갑자 중 첫날이니 봄 기운처럼 따뜻하다는 신호이긴 합니다. 애동지와 관련한 재밌는 일화가 적벽대전 영화에 나옵니다. 화공 전략을 쓰려고 제갈량이 고사를 지내 북서풍을 남동풍으로 바꾸는 장면이죠. 신통술을 부린 것 같지만 제갈량은 애동지 때 남동풍이 분다는 걸 안겁니다. 고사 지낼 때 깃발을 꽂았는데 남동풍을 부르기 위해 기에다 갑자甲子 글자를 새겨 놨답니다. 60갑자의 기점이자 따뜻한 남동풍을 부르는 주문이었지요. 아재 개그를 좋아하는 저는, 갑자기 바람의 방향이 바꼈다해서 '갑자기'라는 말이 거기에서 나온 거는 아닐까 상상해봤지만 그건 아니고, 갑작스럽다에서 온 말이라 하네요. ㅋ 암튼 애동지 때는 따뜻해 잘 쉬는 팥죽 먹지 않고 팥밥이나 팥떡을 먹습니다. 영화에도 그 장면이 나와 나름 고증을 잘 했다 했지요. 애동지 말고 동짓날이 음력 11월 중순에 들면 중동지, 하순에 들면 노동지라 했어요. 양력 달력인 절기를 음력으로 나눈 겁니다. 말하자면 절기는 양력이지만 음력과 같이 봐야 한다는 얘기이기도 하고 나아가선 절기는 양력과 음력의 통합이라 할 수도 있을겁니다. 서울 강동구 도시농업 논 썰매장:아이들을 위해 물을 담은 건 아닌데...... 동지 지나면 해가 길어지는데 날은 본격적으로 추워집니다. 이게 이상한 현상이에요. 난로 볼륨을 키운 꼴인데 왜 추워질까요? 비슷한 예가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라가면 추운 현상입니다. 태양에 8천미터나 더 가까이 갔는데 왜 더 추울까요? 맞습니다. 공기입자에 의한 복사열 때문이에요. 우리는 태양빛보다는 빛이 달군 공기 입자로 열을 느끼거든요. 동지 전에 추워진 공기가 동지 이후에 나타나는 겁니다. 이런 식으로 태양의 흐름과 그에 뒤쳐지는 지상의 공기 흐름의 관계를 이해하면 날씨 변화의 기본 특성을 이해할 수 있을 거에요. 이런 날씨의 특징은 우리가 속한 몬순기후 지대에서 전형적으로 드러나고 계절로는 한여름의 무더운 장마에서 극적으로 드러납니다. 그에 대해선 하지 때 가서 자세히 말씀드리죠. 최소한 동지 전까지 농부는 겨울 날 준비를 마쳐야 합니다. 그중 제일 중요한 거는 겨울 한랭건조한 기후로부터 토양을 마르지 않도록 지키는 일입니다. 지금은 온난화로 한랭 문제는 적지만 가뭄 문제는 여전합니다. 그럼 농부는 어떻게 토양을 지켰을까요? 몇 가지가 있는데요, 첫번째는 월동작물을 심는 겁니다. 대표적인 월동 작물, 곧 겨울을 나는 작물로는 보리, 밀, 양파, 마늘, 시금치 등이 있어요. 월동 작물이 겨울 토양을 지키는 것은 피복(멀칭) 효과입니다. 추위와 가뭄으로부터 땅을 보호하는 거지요. 땅을 놀리지 않아 토양의 생산성을 높여주기도 하고, 사계절 녹색의 농경지를 유지해 주니 탄소중립에도 기여를 할 겁니다. 저는 이걸 작물멀칭이라 이름 붙였습니다. 사실 겨우내 방치되어 있는 농지를 보면 안타깝기까지 합니다. 겨울 사막 같아서요. 겨울에만 국한되지 않고 봄까지 갑니다. 우리의 겨울농사를 높게 평가한 일제 강점기 일본 농학자가 있었어요. 다카하시 노보루高橋昇라는 사람으로 조선의 미개한 농법을 개조할 이른바 식민농학을 퍼뜨리려 왔다가 오히려 조선 농민의 지혜로운 겨울농사를 보고 감탄해 사비로 책까지 썼습니다. 조선반도의 농법과 농민이란 책으로 국내에도 번역 출간되었지요. 단작시스템을 근대농법으로 보는 식민농학이라는 선입관은 전제로 깔고 있으면서도 단작과 배치되는 겨울농사 중심의 2년3기작 윤작시스템을 높게 평가한 것만 해도 안목이 꽤 열린 농학자였습니다. 저는 기후위기 시대에 이 윤작시스템이 다시 주목받을 날이 조만간 올 것이라 봅니다, 두 번째는 동지 전까지 땅을 깊게 가는 겁니다. 대략 20센티까지 갑니다. 우리 쟁기는 속의 흙과 겉의 흙을 뒤집어주는 기능이 있습니다. 볏이라는 추가 장치가 있어서 가능하지요. 서양쟁기는 그 볏이 없어 좌우로 훑어 놓기만 했습니다. 그러다 볏 대신에 그들은 무거운 쟁기를 개발해 땅을 깊게 갈 수 있게 되었지요. 이 쟁기 개발로 서양은 점토질의 깊고 단단한 땅을 뒤집을 수 있게 되어 2년에 한번 휴경하던 2포식 농법에서 3년에 한번 휴경하는 3포식 농법으로 전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무거운 쟁기는 말 4~8마리가 끌만큼 중(重)쟁기였고 지금 트랙터의 원조였던 셈이지요. 아무튼 이렇게 깊게 갈면 갈린 표토층이 심토를 보호해줍니다. 표토와 심토를 분리시켜 표토까지 이어지는 모세관을 끊어주고 이로써 토양의 건조화를 막아주지요. 저는 이걸 흙멀칭이라 이름 붙였습니다. 그 외엔 풀로 멀칭하거나 녹비 멀칭법이 있긴 합니다. 그런데 해 본 사람은 아시겠지만 밭에 난풀로 밭을 다 덮는다는 건 양을 감당할 수 없어요. 녹비도 마찬가지에요. 반면 흙으로 흙을 덮는 건 모자람이 없지요. 세 번째는 물을 이용하는 겁니다. 이건 논의 경우인데요, 추워서 이모작이 되지 않는 중부 이북지방에서 많이 했습니다. 벼 수확 후 두 번째처럼 논을 깊게 갈고 바로 물을 담는 겁니다. 겨우내 물이 얼었다 녹았다 하면서 흙도 고와져 논의 보수력(담수력)을 높여주고 둑새풀 같은 논잡초 씨도 죽이고 벼 밑둥 같은 논 유기물 부숙도 도와주지요. 뿐입니까? 겨울 철새들이 날아와 이삭줍기도 하고 벌레도 잡아먹어 똥도 누워주고 해서 누이 좋고 매부 좋게 해주는 공생의 현장이 됩니다. 더 재밌는 것은 겨우 내 논의 얼음은 아이들에게 신나는 썰매장이 되어준다는 겁니다. 문화가 어디에서 왔는지 보여주는 Agri(땅)-culture(문화)의 생생한 현장입니다. 저는 이걸 물 멀칭이라 했지요. 땅을 가는 일이 농사의 시작이라면 농사의 시작은 봄이 아닌 동지라고 애써 역설합니다. 그러나 요즘 농촌에 가보면 겨울 되기 전에 갈아놓은 땅을 보기가 매우 힘듭니다. 물을 담아놓은 논은 눈을 뒤집고 찾아봐도 없지요. 김장 작물 수확하고 내팽개치듯 멀칭 비닐 방치해 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으니 참 안쓰럽습니다. 고령화와 지역소멸의 현장일 겁니다. 동지 지나면 이젠 바야흐로 농한기입니다. 농한기는 무조건 쉬는 건 아닙니다. 빈둥빈둥 쉬는 것 같지만 보이지 않는 정중동(靜中動)의 시기이지요. 한 해 농사를 북돋아 주고 일궈 준 하늘과 땅, 그리고 뭇 생명들에게 감사하고, 함께 하려는 이웃들이 있음에 고마워하고, 잘했든 못했든 나를 성찰하고 아무리 기후위기라 해도 한 톨의 씨앗을 즐거운 마음으로 심는 새해가 되길 기원했으면 합니다. 글을 쓴 안철환 선생은 온순환협동조합, 전통농업연구소 대표이고 경기도 안산에서 ‘산림생태텃밭 먹거리숲 농장’을 운영한다. 남은 음식물과 똥오줌, 커피 찌꺼기를 받아 직접 거름 만들기를 실천하고 있으며, 우리 토종 종자와 전통 농업 살리기에 열중하고 있다. 25년 전, 처음으로 심은 배추 씨가 3일 만에 싹 트는 걸 보고 ‘씨 안에 누가 있었구나!’ 깨닫고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우리가 먹는 배추는 단순히 물질적인 먹을거리가 아니라 나와 별 차이 없는 생명이며, 그래서 먹는다는 것은 생명을 먹고, 생명과 소통하고, 생명과 하나 되는 일이라고 믿는다. 쓴 책으로 《시골똥 서울똥》(2009), 《24절기와 농부의 달력》(2011), 《호미 한자루 농법》(2016), 《토종농법의 시작》(2020)이 있고, 옮긴 책으로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2004)이 있다.
    • 기획
    • 절기이야기
    2025-12-22
  • [안철환의 절기이야기] 겨울 나는 지혜를 생각하며, 대설에
    [안철환의 절기일기] 너무 따뜻한 올해 대설에 결구되지 않는 토종배추와 김장재료들, 평소에 비해 1/3밖에 되지 않는 양이다. 총각김치, 깍두기를 좀 많이 담긴 했지만 그래도 아쉬워 보인다. 아마 24절기 중 제일 할 얘기 없는 게 대설일 겁니다. 소설 이후 해야 할 겨울 준비의 연장 정도에요. 아무리 늦어도 동지 전까진 겨울 준비를 마쳐야 합니다. 소설에 첫 추위가 찾아온다면 대설엔 약간 포근한 편이에요. 지난 소설 전후로 영하의 날씨가 그리 매섭지 않은 정도로 왔다가 지난 주 수목금요일에 첫눈과 함께 영하 9도까지 떨어지는 매서운 추위가 왔죠. 그리고 포근한 대설답게 바로 날이 풀려 늦은 김장하는 사람들이 덜 힘들었을 겁니다. 그래도 올 겨울은 너무 따뜻해요. 애동지가 드는 겨울은 따뜻한 편이라지만 좀 심합니다. 날씨가 제 날씨답지 않으면 자연 생태에 뭔 일이 납니다. 겨울이 춥지 않으면 추위가 가져다주는 생태청소 기능이 반감되지요. 추위로 죽어야 할 병해충,균들이 월동을 많이 해 극성을 부릴 수 있구요. 겨울잠을 자거나 활동을 확 줄여 에너지를 비축해야 하는데 춥지 않으면 활동을 지속하게 되고 그러면 에너지가 고갈될 수도 있을겁니다. 음식의 참맛은 텃밭에서 시작 암튼 저희도 김장을 소설 일주일 지나 했습니다. 물론 소설 일주일 전엔 총각김치와 깍두기도 담갔지요. 오늘은 그 중에 김장배추 얘기 좀 드릴까 합니다. 우선 배추농사부터 말씀드리고 싶지만 그러면 얘기가 길어져 간단히 짚고 넘어가지요. 농사 얘길 안 할 수 없는 게 음식의 맛은 주방에서가 아니라 텃밭에서 만들어진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어서입니다. 음식의 참맛은 흙맛에서 오기 때문이에요. 배추의 진짜 맛은 속잎이 아닌 겉잎에 있는 걸 요즘 사람들은 잘 몰라요. 배추의 조상은 순무입니다. 그래서 진짜 배추의 맛은 순무처럼 쌉싸르하면서 개운한 뒷맛이 나는데 그게 겉잎에 많거든요. 요즘 결구배추라 해서 양배추 같은 속잎 위주로 키우고 먹는데 미안하게도 이건 얄팍한 맛이에요. 달고 고소하지만 깊은 배추의 맛은 아니거든요. 문제는 달고 고소한 결구배추는 매우 키우기가 어렵다는 겁니다. 벌레와 병균이 무지 많아요. 약을 많이 쳐야죠. 겉잎 위주의 배추는 강해요. 특유의 배추향과 질긴 섬유질이 병해충균을 막아주거든요. 말하자면 살아있는 흙맛이 들어있기 때문이지요. 흙에는 병해충균을 막는 유익한 미생물이 무지 많습니다. 이렇게 원재료가 살아있으면 양념이 많이 필요없어요. 배추 자체의 맛을 느끼려면 양념을 적게 넣어야 됩니다. 음식의 맛은 주방의 양념이 아닌 텃밭의 흙과 퇴비가 만든다고 생각하는 까닭입니다. 김장과 메주 쑤기 요즘 김장 담글 때 보면 얼마나 속을 많이 넣는지 기어코 만두를 만들고 말거야 하는 듯한 기세에요. 속에 들어가는 재료도 화려하고 많지요. 저희는 속에 들어가는 양념이 너무 단촐합니다. 풀도 쑤지 않아요. 풀을 쑤어 넣은 김치는 국물이 시원치 않습니다. 오래가면 묵은내 나지요. 무채에다 고춧가루, 파, 마늘, 생강 그리고 약간의 젓갈 넣는 게 다에요. 아, 풀 쑤는 대신에 다시마 북어대가리 넣고 끓인 육수를 빠뜨렸는데 그러고 보니, 저희의 비장의 무기인 고추씨 넣는 것도 빠뜨렸습니다. 소금과 젓갈만 빼곤 다 저희 텃밭에서 나온 것들이지요. 조미료도 설탕도 그 외 첨가재료 일체 없습니다. 저희는 절인배추에 속을 넣는 게 아니고 좀 과장해서 말하면 스윽 구경만 시켜줄 정도로 묻혀줍니다. 익는데 시간이 좀 걸리지만 익기 시작하면 그 개운하고 감칠맛이 끝내줍니다. 쌉싸르레 하면서 매운 고추가루 땜에 칼칼하고 개운한 그 뒷맛이란.... 이 말 하면서 뒷방에서 익고 있는 김치를 떠올리니 군침이 돕니다. ㅎ 김장 담그는 일 다음으로 중요한 일은 메주 쑤는 겁니다. 부끄럽게도 농사 경력 30년 육박할 때까지 메주를 한 번도 쑤어 보지 못했어요. ㅠㅠ 핑계를 대자면 그 쉽다던 메주콩 농사를 제대로 성공해 본 게 한 번 정도에요. 아무리 못해도 스므번은 심었을텐데 말이죠. 처음엔 고집스럽게 직파(直播)만 하다 심은 콩 쪼아먹는 새들 좋은 일만 했고요, 어느 정도 직파법에 성공할 즈음 노린재가 극성을 부려 또 실패....... 그 다음엔 날씨가 받쳐주지 않아 계속 실패하곤 했어요. 콩꽃 필 때 비가 많이 온다든가, 너무 뜨겁다든가 등 해서 수정이 되질 않아 콩 코투리가 쭉정이 투성이었죠. 정작 성공했다 싶을 때는 너무 조심하느라 조금 심는 바람에 된장 담글만큼이 되지 않았습니다. 사실 올해도 콩 농사가 잘된 편이었는데요, 제가 위탁 관리해주는 남의 농장이라 수확물은 제 것이 아니었고, 제 땅엔 아예 심질 않았으니 메주와 된장은 머나먼 얘기가 된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지금 먹고 있는 된장은 저희가 담근 것은 분명합니다. 메주 사다가 장 담근 것이긴 하지만요. ㅠㅠ 고구마를 먹으면 착해진다? 내가 고구마를 좋아하는 까닭 겨울의 별식 아닌 별식은 고구마입니다. 고구마는 겨울식량으로 참 좋습니다. 요즘 고구마는 너무 달아 군것질밖에 되질 않아요. 얼마나 달면 이름이 꿀고구마에요 참~, 그러면 꿀을 먹지 왜 고구마를 먹을까요. 저는 백고구마, 물고구마라는 토종 고구마 2종을 심는데요, 참 달지 않아요. 그래서 이게 밥이 됩니다. 물리지 않으니요. 그렇지만 그 구수한 맛은 맛을 아는 사람들에겐 그게 별미입니다. 농한기인 겨울에도 하루 세끼 밥을 먹는 게 어색해요. 세끼 밥을 먹다보면 하루가 다 밥 먹는 일 같지요. 곰곰 생각해보면 두끼 먹는 게 자연스러운 것 같은데 버릇이 되서 그게 힘들더라구요. 그럴 때 점심을 고구마로 해결하는 겁니다. 김치만 있으면 돼요. 동치미까지 있으면 환상이죠. 제 생각엔 점심은 분명 새참이었을 겁니다. 마음의 한 점을 찍는다는 점심이나 사이에 먹는 참이나 비슷하죠? 힘든 일 할 땐 점심을 꼭 먹더라도 많이 먹으면 식곤증이 와 많이 먹지 말라는 뜻이었을 겁니다. 제가 고구마 심는 이유는 고구마보다는 고구마 줄거리에 있습니다. 그 구수함의 진가는 열매보다 줄거리에 있지요. 토종 고구마일수록 더 끝내줍니다. 저희는 고구마 줄거리 다듬을 때 껍질을 벗기지 않습니다. 껍질 째 삶아 간장이나 된장에 졸여 먹지요. 껍질 째 먹어야 아삭함이 끝내줍니다. 일도 적지요. 되도록 가공을 적게 해야 좋거든요. 제가 농반진반으로 한 말인데요, 음식을 하는데 복잡하고 힘든 거는 분명 여성들을 부엌떼기로 붙잡아두려는 속셈이었을 거라고 말이죠. 음식은 쉬워야 합니다. 가공도 적고 양념도 적을수록 좋습니다. 그래야 남녀노소가 다 음식 할 수 있어요. 생명이면 누구나 스스로 밥을 해 먹을 수 있어야지 한 사람에게 의존한다는 게 얼마나 자연스럽지 않고 위험하겠어요. 그 다음에 제가 고구마 좋아하는 건 이게 농사가 아주 쉽다는 거에요. 같은 땅에 연작을 해도 아주 잘되고 거름도 아주 조금만 줘요. 저는 오줌 한 번 주는 게 다지요. 땅을 망가뜨리기는 커녕 땅을 지켜줍니다. 저는 사막화 방지해주는 미래 식량이라 극찬합니다. 또 건강에도 아주 좋아요. 고구마는 썩을 때 조용한 반면 감자는 썩을 때 시끄럽다 했어요. 보니까 감자는 단백질이 많아 썩는 내가 진동을 하는 반면 고구마는 거의 섬유질에 미네랄이라 썩는 내가 없어 썩는 질 모르거든요. 그래 제가 이런 말도 만들었지요. 고기 많이 먹으면 성질이 사나워지지만 고구마 많이 먹으면 착해진다고요. 왜 그럴까요? 고구마로 밥을 먹으면 힘이 없어 그렇다고 뻥을 치면 사람들이 재밌어 합니다. 근데 전쟁을 많이 한 서양인들은 전투에 나갈 병사들에게 전날 고기를 많이 먹였다고 합니다. 착하면 사람 죽이기 힘들테니요. 겨울을 겨울답게 나는 지혜 아무튼 별 할 얘기 없다 해놓고 말이 길어졌습니다. 마지막으로 드리고 싶은 말씀은 겨울은 겨울답게 마치 겨울잠 자듯 덜 먹고, 덜 일하고, 지난 날을 반성하고 올 날을 찬찬히 계획하는 그런 시기를 보내면 어떨까 하는 겁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도시에 사느라 일년내내 바쁘게 사니 이런 얘기가 한가해 보여 미안키도 하고 안타깝기도 합니다. 15년 전인가 겨울에 시골 구석구석을 돌며 토종씨앗 수집한 적이 있었어요. 그 때 토종박사님 따라 함께 간 후배 한 친구는 저와 나이 차이가 10년 이상 나는 것에 비해 전통에 대해 아는 것도 많고 공부도 많이 했지요. 농사지으며 저 이상으로 자연을 좋아하고 자연과 코드 맞추는 맛을 일찍부터 알았던지, 토종씨앗 때문에 돌아다닌 여독을 표현하길, “겨울잠을 자지 않았더니 몸이 무거워요.” 하는 거지 뭡니까. 참 웃기기도 하여 “겨울잠을 어떻게 자는데?” 하니 “되도록 외출도 하지 않고, 전화도 덜 하고, 일도 줄이고, 집에서 빈둥빈둥 거리는 거죠 뭐.” 나 참~ 재밌죠? 글을 쓴 안철환 선생은 온순환협동조합, 전통농업연구소 대표이고 경기도 안산에서 ‘산림생태텃밭 먹거리숲 농장’을 운영한다. 남은 음식물과 똥오줌, 커피 찌꺼기를 받아 직접 거름 만들기를 실천하고 있으며, 우리 토종 종자와 전통 농업 살리기에 열중하고 있다. 25년 전, 처음으로 심은 배추 씨가 3일 만에 싹 트는 걸 보고 ‘씨 안에 누가 있었구나!’ 깨닫고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우리가 먹는 배추는 단순히 물질적인 먹을거리가 아니라 나와 별 차이 없는 생명이며, 그래서 먹는다는 것은 생명을 먹고, 생명과 소통하고, 생명과 하나 되는 일이라고 믿는다. 쓴 책으로 《시골똥 서울똥》(2009), 《24절기와 농부의 달력》(2011), 《호미 한자루 농법》(2016), 《토종농법의 시작》(2020)이 있고, 옮긴 책으로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2004)이 있다.
    • 기획
    • 절기이야기
    2025-12-10
  • [안철환의 절기 이야기] 첫 얼음 어는 소설
    첫 얼음 어는 소설 안철환(전통농업연구소 대표) 소설(小雪)에 첫 눈 기다리지 마세요. 대설이나 크리스마스에 첫 눈이 오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함박눈이 아닌 싸리눈 정도 흩날리는 게 보통이에요. 괜히 방송 등에서 첫 눈 기다리게끔 들뜨게 만드는 건데 우리 기후를 모르고 하는 소리입니다. 24절기가 중국 화북지방에서 만들어져 우리 기후와는 맞지 않는 표현들이 있는데 소설 대설이 대표적이고 소한 대한 추위도 그렇습니다. 우리나라의 눈은 대한 입춘 즈음해서 많이 내리고 추위도 대한보다 소한이 더 매섭거든요. 눈도 영동 지방의 경우엔 오히려 봄에 많이 내리지요. 우리 소설의 대표적인 날씨 현상은 첫 눈이 아닌 첫 얼음이 언다는 겁니다. 겨울이 시작되고 있음을 알리는 알람이에요. 그래서 소설이 되면 나무는 잎을 떨어뜨리고 개구리 뱀 곰은 겨울잠 자러 들어가고 모든 생명은 겨울 날 준비에 바쁘지요. 그럼 사람은 뭘 할까요? 맞습니다. 김장과 땔감 준비를 하지요. 그렇게 겨울을 대비하라고 소설엔 반드시 추위가 찾아듭니다. 겨울을 알리는 알람이라고 한 이유에요. 예부터 소설추위는 빚을 내서라도 반드시 춥다고 했어요. 하필 이 즈음 대학 시험을 보느라 소설 추위는 다 잊고 입시추위로 착각들 하고 있는 게 안타깝습니다. 세상이 사람들을 다 철부지로 만들고 있는 꼴이에요. 철을 잊고 사는 세태는 소설추위를 잊은 것에 멈추지 않습니다. 한겨울에도 런닝바람으로 겨울 나는 게 요즘 모습이잖아요. 뿐입니까? 한여름엔 긴팔 와이셔츠에 폼나는 긴팔 양복 정도 입어주어야 가오(?)가 서는 분위기죠. 저 어릴 때 이런 표어가 있었어요. 새나라의 어린이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납니다라는 말이요. 근데 이건 순전히 철을 거스르는 철부지 어린이의 표어라는 걸 제가 존경하는 한 한의사 선배의 책에서 배웠습니다. 철 든 나라의 어린이는 여름엔 늦게 자되 일찍 일어나야 하고, 겨울엔 일찍 자되 늦게 일어나야 한다는 말이었지요. 생각해보면 참으로 기막힌 말이죠? 제가 절기 공부하고부터 늘 머리에 담아 둔 구절이었습니다. 그럼 철을 거스르면 어떻게 될까요? 예를 들면 늘 가로등에 노출되어 있는 가로수를 생각해봅시다. 사계절 밤새 빛에 노출되어 있다는 건 항상 광합성을 하라고 자극하는 것과 같죠. 잠을 못자게 하는 거에요. 겨울이 되었는데 잎을 떨어뜨리지 못하는 낙엽수도 더러 있답니다. 잠을 못자는 것도 문제이지만 맹추위가 오면 얼어죽을 수 있다는 겁니다. 겨울 얘기는 아니지만 밤새 불을 켜두어 잠을 못자게 해서 재배하는 작물이 있어요. 바로 깻잎입니다. 들깨는 단일(短日)식물이라고 해서 빛이 짧아지면 꽃을 피우는 작물이에요. 꽃피고 알곡을 맺으면 양분이 그리로 몰려 잎이 부실해집니다. 깻잎은 잎을 키우는 게 목적이니 꽃피지 못하게 조명을 비춰주는 겁니다. 그런 깻잎이 과연 정상일지 의문이에요. 벼도 단일식물이랍니다. 근데 벼는 알곡이 목적이기에 빛을 쐬어주면 안돼요. 그래서 시골에 큰 건물이 들어서면 농부님들이 싫어하는 거에요. 한번은 박원순 서울시장이 도시농업을 좋아해 광화문 광장에 논을 만들기로 했는데 서울농업기술센터 직원들이 한참 바빴답니다. 거리의 자동차 라이트가 비추는 빛이 벼 이삭 패는 걸 방해할까봐 조도(lux) 조사하느라 그랬다는군요. 다행히 이삭 패지 못하게 할만큼은 아니어서 논을 조성했고 이삭도 잘 팼답니다. 우리가 매일 먹는 밥이 쌀나무(?)에서 달리는 줄 아는 아이들에게 살아있는 교육이 되었을 겁니다. 동대구역 앞에도 벼가 익는 논이 있다니 참으로 반가운 일입니다. 철이 들면 뭐가 좋을까요? 철이 든다는 건 자연의 흐름에 맞춰 사는 건데요, 반대로 자연을 거스르면 에너지가 많이 듭니다. 가령 폭염을 이기려고 에어콘 밑에 살면 전기값이 많이 나오겠지요. 그렇다고 마냥 시원할까요? 실외기 열기로 주변을 덥게 만드니 더 에어콘 의존도를 높이죠. 이게 문명 이기의 패러독스입니다. 철이 드는 일은 자연과 가까워지거나 자연과 하나되는 일입니다. 자연에 가까워지면 에너지도 적게 들뿐더러 삶에 거슬림이 적어집니다. 적당히 더위도 받아들이고 적당히 추위도 받아들일 줄 알면 삶이 순조롭지 않겠어요? 그게 깊어지면 삶에 신명이 날 겁니다. 앞에서 말한,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보다 못하고 좋아하는 건 즐기는 것보다 못하다는 말과 통하죠. 오늘(11월 22일)이 소설인데 영하의 추위는 18일날 왔어요, 그런데 의외로 별로 춥지 않았네요. 그 추위 때문에 무가 얼까봐 이틀 전 수확해 시래기도 엮고, 김장에 쓸 것 신문지에 싸 두고 남는 건 깍두기 담고 그러고도 남는 건 무밥, 무나물 용 반찬거리로 남겨두었습니다. 물론 내년에 씨 받을 종자용 무는 제일 좋은 걸로 잘 보관해두었지요. 동치미는 놓쳤어요.ㅋ 근데 저도 이번 추위는 그리 춥지 않을거라 보기는 했어요. 일단 아직 음력으로 9월인데요, 이는 12지지 중 술(戌)월로 겨울 달인 10월(해亥月)로 넘어가는 직전이에요, 일진으로 보아도 추울 날씨 같지는 않더라구요. 그렇지만 이런 철에는 좀 호들갑을 떨어야 합니다. 자칫 한방에 공든 탑 무너질 수 있거든요. 추위 예보에도 굴하지 않고 캐지 않은 이웃의 무를 보니 역시 멀쩡하더이다. 그렇다고 방심하면 안돼요. 일단 무는 자랄만큼 자랐기에 더 놔둘 이유도 없는데다 얼진 않아도 자칫 바람들 우려가 있으니 제 때에 거두는 게 맞습니다. 소설은 음력 10월에 드는 게 정상인데요, 올해는 음력으로 10월 3일입니다, 윤6월 땜에 너무 빠른 겁니다. 일기 예보를 보니 소설 지난 다음 주 초에 비오고 추워진다는데 그게 아마 소설 추위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가을 날씨가 비도 많이 오고 따뜻해 단풍도 늦고 잎도 떨어뜨리지 못하는 나무들이 안쓰럽다고 했었지요. 늦었습니다만 다행히 단풍 들자마자 떨어지는 낙엽으로 온 세상이 정신없고 쓸쓸합니다. 그렇지만 낙엽들이 쌓이자마자 가물까 걱정입니다. 뉴스를 보니 강원도엔 가뭄이 심해 벌써 큰 산불이 났어요. 저희 동네도 걱정되어 밭 주변 산 숲에 들어가 봤습니다. 역시 예상대로 수북이 쌓인 낙엽들이 말라있는 게 한 눈에 들어오네요. 가을 비로 낙엽이 적셔져야 하는데 지난 가을 비는 따뜻하게 내려 낙엽을 못 떨어뜨리게 하더니 정작 낙엽 떨어진 후로 비가 와도 찔끔이에요. 그런데다 산의 나무들은 너무 빽빽해요. 낙엽은 불쏘시개고 빽빽한 나무들은 장작 같이 보이니 제 노파심이 너무 큰 걸까요? 그러길 바랍니다. 원래 숲의 쌓인 낙엽들은 거름이었고, 잡목들은 땔감이었어요. 그렇게 숲을 이용해야 빛도 들어가고 바람과 물이 잘 통해 나물도 잘 자라고 다람쥐가 수북한 낙엽 속에 가려져 도토리 찾지 못하는 일도 없으니 숲은 생명의 보고가 됩니다. 그런데 지금은 농부가 숲을 이용하지 않으니 숲이 너무 우거져 산불도 위험하지만 먹을 것도 없어요. 저는 이도 식품사막(Food desert)이라고 봅니다. 저희 밭은 수리산 자락 바로 밑에 있는데 겨울이 되면 산 짐승들이 저희 밭쪽으로 내려옵니다. 고라니 너구리 족제비에서부터 수리부엉이와 매도 내려와 밭 위로 날아 다니죠. 겨울이 되니 산에 먹을 게 별로 없어서 일 겁니다. 저는 수리부엉이와 매의 위용을 보면 그 포스가 주는 느낌을 참 좋아합니다. 한번은 원두막 너머에서 “끼야~”하는 매 소리가 아주 가깝게 들려 하늘을 쳐다 보았더니, 제가 있는 줄 모르고 낮게 날아오던 매가 제 눈과 마주치자 깜짝 놀라 하늘로 급상승하는 거지 뭡니까? 제가 더 놀랐을 겁니다. 저와 마주친 빛나는 눈매와 급상승하는 포스가 얼마나 대단한지 뒤로 자빠질뻔 했거든요. 근데 요즘 눈에 밟히는 씁쓸한 풍경이 있어요. 제가 매만큼 좋아하는 새로 부부가 쌍으로 날아다니는 수리부엉이입니다. 두 놈이 높은 하늘 위에서 맴도는 위세를 보면 멋있다는 탄성이 절로 나지요. 근데 이 놈이 몇년째 혼자 날아다니는거에요. 이혼을 한 건지, 짝을 못 찾은 건지 모르겠으나 삶이 힘들어진 것은 분명해 보여 참 안쓰럽기 그지없더이다. 웬지 내 탓 같아 미안하기도 하구요. ㅋㅋㅋ * 대문 사진 : 왼쪽부터_내년에 쓸 볍씨, 무 시래기, 옥수수 씨, 김장 때 쓸 마늘. 볏짚으로 엮은 무 시래기가 영 아마추어 티가 납니다. 멀리서 보니 그럴 듯은 하지요? 글을 쓴 안철환 선생은 온순환협동조합, 전통농업연구소 대표이고 경기도 안산에서 ‘산림생태텃밭 먹거리숲 농장’을 운영한다. 남은 음식물과 똥오줌, 커피 찌꺼기를 받아 직접 거름 만들기를 실천하고 있으며, 우리 토종 종자와 전통 농업 살리기에 열중하고 있다. 25년 전, 처음으로 심은 배추 씨가 3일 만에 싹 트는 걸 보고 ‘씨 안에 누가 있었구나!’ 깨닫고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우리가 먹는 배추는 단순히 물질적인 먹을거리가 아니라 나와 별 차이 없는 생명이며, 그래서 먹는다는 것은 생명을 먹고, 생명과 소통하고, 생명과 하나 되는 일이라고 믿는다. 쓴 책으로 《시골똥 서울똥》(2009), 《24절기와 농부의 달력》(2011), 《호미 한자루 농법》(2016), 《토종농법의 시작》(2020)이 있고, 옮긴 책으로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2004)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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