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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만규화백의 섬진팔경사계] 붕어섬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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蟾津 1景 - 붕어섬의 봄
붕어섬 (상)
글쎄, 듣고 보니 금붕어 모양새다. 꼬리를 살짝 틀어 재치고 힘 있게 돌진하는 기세가 있어 보인다. 이 붕어섬이 있는 본래의 지명은 외앗날이다.
그런데 유유히 흐르던 섬진강이 아픈 시련을 맞게 되었다. 1928년, 이 강이 갖고 있는 수자원을 유용하겠다는 것이다. 그 해 호남지역에 극심한 가뭄을 겪고 있었다. 그래서 정읍시 산내면 종성리와 임실군 강진면 옥정리를 마주하는 협곡에 높이 40m의 댐을 만들었다. 남류하던 섬진강물중 일부는 땅속에 파이프라인을 뚫어 숭어가 노는 서해안으로 흐른다. 그 물은 동진강을 따라 가보면 광활한 호남평야, 개화도의 메마른 논바닥을 적셔줄 농업용수로 사용되었다. 이후 수력발전 등 다목적댐으로 만들어졌다. 거기, 댐 아래로 처음 낙하하는 곳에 정읍 칠보 수력발전소가 있다.
그러면서 삶의 근거지인 논과 밭, 다니던 길과 집들이 고스란히 물에 잠기고 이곳은 졸지에 섬이 되어버렸다. ‘산 바깥 능선의 날등’이란 뜻으로 ‘외앗날’이라 부르는데 오가는 이들이 금붕어를 닮았다하여 붕어섬으로 불리어져 함께 쓰인다.
댐으로 만들어진 이 저수지 이름을 지을 때 이 지역에서는 ‘구름과 바위의 전설을 많이 지니고 있는 곳이니 운암호’라 불리워지기를 원했으나 중앙정부에서 옥정호로 결정했다고 전해진다.
한편 이 근처에 옥정리(玉井里)라는 마을은, 조선 중기에 이 마을을 지나던 스님이 ‘이 곳은 머지않아 맑은 호수, 즉 옥정(玉井)’이 될 것이라고 예언하여 마을이름을 옥정리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옥정호 때문에 임실군 운암, 강진, 신평, 신덕면과 정읍시 산내면 등 2군 5개면이 물에 잠겼고 2만 명 가량이 고향을 떠나야만 했다. 그중에 상당수는 부안군 계화도 간척지 등 낯선 땅으로 옮겨졌다.
붕어섬 (하)
붕어섬은 아리고 아린 아름다움이다.
그 아름다움은 실향민들의 양보와 배려의 결실물이다.
그러나 자연은 붕어섬을 외로이 물에 가둬 놓지만은 안했다. 관심 있는 수많은 이들의 끊임없는 발길이 함께한다.
구절양장(九折羊腸)의 도로를 즐기며 드라이브하기 좋은 곳, 옥정호이다.
또한 옥정호의 아름다운 풍광을 담아갈 수 있도록 13km 이르는 물안개길이 있다.
옥정호가 손에 닿을 듯 말 듯, 호수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보며 걸을 수 있는 오솔길이 만들어 낸 트래킹 코스다. 화려하거나 웅장하게 꾸며지지 않아서 그야말로 마음 편안히 맡길 수 있는 쉴만한 공간이다.
옥정호는 뒤편으로 오봉산이 병풍처럼 싸안고 있어서 더욱 포근함을 안겨준다. 그 산에 15분가량 올라가면 국사봉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호수 가운데 붕어섬이다. 그 곳에는 사람 냄새가 물씬 난다. 함께 지내던 이웃들은 떠났을지언정 이른 봄이면 새 희망의 기운이 솟는다. 갈아엎어 붉은 색조를 띠는 밭두렁에서는 뭔가를 이뤄낼 듯이, 새 생명을 암시하듯이 아침 햇살에 따뜻한 훈김을 뭉실뭉실 피어 올린다.
작은 섬이지만 시간의 변화를 읽게 해주는 공간이다. 그야말로 변화무쌍함을 만들어내는 설치작품 같은 곳이다. 여명이 동터오를 새벽녘에는 그야말로 승경이다.
가을 날 기온차가 생길 때면 전망대에는 발 디딜 틈이 없다. 사방에 둘러쌓인 산과 그 안에 안겨있는 호수가 어우러져 펼쳐지는 혼미한 기상 쇼를 보기 위해서이다. 동녘의 햇살은 섬진강 발원지인 저 멀리 진안 마이산의 두 귀에 그림자를 드리우며 호수에 비춰온다.
지자체에서 관광개발을 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외앗날에, 붕어섬의 지느러미 하나도 소실되지 않고 소중하게 간직해야 한다. 장자(莊子)의 조탁복박(彫琢復朴)이란 말이 호수위에 어른거리다.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꾸미거나 수식(修飾)하지 말고 본래의 내 모습을 소중히 여기며 참 나의 모습을 찾아야 한다는 말이 아니던가.
-송만규 화백의 '강의 사상'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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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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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만규화백의 섬진팔경사계] 구담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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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담(상)
구담은 임실 지역을 스미는 섬진강 중에서 가장 하류에 있는 마을이다. 산 중턱 비탈진 곳에 오목하게 올려놓았다. 그다지 넓지 않은 터를 깎고 다듬어서 집들을 세워 마을 자체가 경사졌다. 저 아래 강변에 이르기까지 정갈하게 축대를 쌓아 이룬 논다랑이와 밭들을 보면 이 마을 사람들의 삶에 대한 의지를 짐작케 한다. 한참을 내려가 징검다리를 건너가면 순창인데 11시 방향으로 하얀 바위를 내밀며 기세당당하게 우뚝 솟은 산이 버티고 있다. 이름으로만 보아도 범상치 않은 용골산이다. 그 산자락 싸리재에 대여섯 집이 강물을 바라보며 모여 있다.
구담(九潭)이란 마을의 본래 이름은 안담울이었다. 지금도 그렇게 부르는 이가 있다. 앞강에 자라가 많이 살고 있다고 해서 구담(龜潭)이라 하기도 했고, 또한 강줄기에 아홉 개의 소(沼)가 있다고 해서 구담(九潭)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1680년경 숙종 때 해주 오씨(吳氏)가 정착하여 마을을 가꾸어 왔다고 한다.
내가 이곳을 처음 찾은 때는 1992년으로 기억된다. 정월 보름 다음 날이었다. 어수선한 심경으로 무작정 섬진강변 길에 발을 내디뎠다. 아침 일찍부터 강물에 눈을 맞추며 얼마를 걸었는지 구담마을에 이르니 점심때가 지났다. 산과 산 사이 강변길에 불어닥치는 칼바람이 뼛속까지 파고드는 듯하고 시장하기조차 하니 더욱 오들오들했다. 어느 집인가 불쑥 들어갔다. 낯가림이 있는 나로서는 의외의 행동이었다. 그 집 사람들은 이미 끼니를 마친 상태였다. 그러나 노부부는 장작불을 지펴 데워진 구들장 아랫목에 앉기를 권하며 귀한 손님인 양 나를 극진히 대하였다. 그리고 따끈하게 데운 술을 몇 순배 나누면서 주인장은 조용조용한 음성으로 동네 소개를 자상하게 해 주었다. 좀 더 머물고 싶은 정겹고 훈훈한 자리였다.
그날, 강물이 검어질 때까지 걸었다.
그 후, 구담에 다시 갔을 때 동네 사람들은 그 집을 ‘수남이네’라고 부른다는 것을 알았다. 아들 이름이다. 섬진강을 가슴에 적시고 얼굴을 비추며 붓을 담그게 한 마을이다.
그러니까 나의 발길을 붙잡고 시선을 잡아준 그곳은 구담이다.
- 송만규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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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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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만규화백의 섬진팔경사계] 연재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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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만규 화백의 '섬진팔경 사계절' 연재를 시작합니다.
기대해주세요................................................................................................................................................
송만규
한들 송만규(宋滿圭)ㆍ 1955년 전북에서 태어나 원광대학교에서 한국화를 전공했다.ㆍ 사람에 대한 호기심과 삶의 가치에 대한 관심은 대학을 졸업한 후에 시민사회단체 활동으로 이어졌다.ㆍ 1993년에 〈이 바닥에 입술을 대고〉라는 주제로 첫 번째 개인전을 가졌고, 서민들의 일상적인 삶을 세밀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냈다. 이를 계기로 붓을 잡고 창작에 집중하게 되었다.ㆍ 2002년에는 섬진강이 내려다보이는 구미마을에 작업실을 마련하고 장장 21m, 24m 등에 이르는 긴 그림 〈새벽강〉, 〈언 강〉 등을 발표하였으며 섬진강 물길을 수없이 걸으며 자연의 아름다움과 물이 건네는 메시지를 한지와 수묵으로 담아냈다.ㆍ 20여 차례의 국내외 개인전과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ㆍ 물과 강, 인간과의 호흡이라는 화두로 여러 강물을 따라 사색하며 또 다른 강물에 붓을 적시고 있다.ㆍ 저서로는 <섬진강, 들꽃에게 말을 걸다>. <강의 사상>, <들꽃과 놀다>를 간행하였다.
섬진강 8장면을 사계절 총 32개의 대형 화폭으로 그려내다역사의 강, 호남의 젖줄인 섬진강 전체를 그려낸 최초의 대서사화라 할 만하다섬진강 600리 길을 “언젠가, 온몸이 아리도록 매서운 꽃샘추위를 안고 섬진강 강변을 종일토록 헤맸습니다. 나의 삶, 나의 존재라는 새삼스러운 화두를 잡고 물길 따라 걸어 다녔습니다.”작가에게는 추운 날 더운 날, 궂은 날도 없었습니다. 새벽의 강 풍경을 보려고 작은 불빛에 의지하여 산을 오르내리기를 수없이 했습니다. “강 언저리에 잠시 머무르려고 했던 것이 어느덧 25년 동안 강물에 붓을 적시게 되었습니다.”그렇게 오르내리며 깨닫습니다. “작고 가느다란 도랑의 물은 구담, 장구목을 지나며 이 도랑, 저 계곡에서 모여드는 물줄기들과 함께 어우러져 더 힘차게 흐릅니다. 강물은 이곳저곳, 이 일 저 일에 구시렁거리지 않고 묵묵히 기웃거립니다. 메마른 곳, 목마른 사람은 적셔 주고, 있어야 할 곳이라면 잠시 머물다가 기꺼이 섬세하게 배려하며 낮은 곳으로 만 흐른다는 당연한 사실을 깨닫습니다.”섬진강을 부감하기 위해 오르내려야 했던 지리산, 작가는 또 다른 역사의식과 감흥을 불러내며 섬진강과 하나가 되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저 아래로 굽이굽이 길게 늘어진 강줄기를 보러 오릅니다. 구름이나 안개가 산 아래를 가리지 않은 시간에 도착하려고 서두릅니다. 해가 뜨기 시작하면 고요하던 대기가 요동친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지리산 남부 능선을 오르면 평사리 들녘이 광활하게 펼쳐집니다. 광양 무동산에도 수없이 올라봅니다.”“계절마다 산기슭에서 산꼭대기로 오르내리며 가슴에 던져주는 메시지가 유난히 남아 있는 여덟 곳에 집중하였습니다. 섬진팔경의 사계절이 그림이 된 것입니다. 이렇게 한 매듭을 짓고 싶었습니다.”
-송만규 화백의 <강의 사상>출간 서평 중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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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