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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주옥 X 인간주옥] ③주옥이는 잠만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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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만보’로 말하자면, 잠만보는 포켓몬스터에 등장하는 포켓몬으로 하루 대부분을 자거나 먹는 데 쓰는 ‘잠꾸러기’이다. 먹는 건 모르겠고, 자는 건 나와 겨뤄볼 만하다.
나는 말을 하다가도 잠들고, 아이스크림을 먹다가 손에 아이스크림을 든 채로 잠이 든다. 버스, 기차, 트럭, 배, 비행기 등 운송수단을 가리지 않고, 좌석에 앉으면 5분 이내 잠들고, 내려야 할 곳에선 귀신처럼 깬다. 저녁에 잠드는 건 5초면 된다. 머리가 베개에 닿자마자 잠이 든다고 봐야 한다. 사람들은 국립공원 대피소의 극상 상황에서도 잘 자는 내가 부럽다고 한다. 나는 잠에 관해서는 현존하는 절대 지존 ‘잠만보’다.
내가 언제 어디서나, 특히 저녁에 잘 자는 이유에 대해 ‘피곤해서’, ‘간이 안 좋아서’, ‘활동량이 많아서’, ‘멀미해서’, ‘잠 시간이 부족해서’ 등의 추측이 난무한다. 모두 그럴듯하지만, 확실한 한 가지는 일찍 일어나기에 일찍 자는 것이다. 나는 새벽 4시에 일어난다. 중학생 이후 몸에 밴 습관이다. 부모님께서 새벽 3시면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셨기에 어쩌다 보니 나도 그렇게 됐다.
새벽 4시에 일어나 뭘 하냐고? 빨래도 하고, 청소도 하고, 책도 읽고, 글도 쓰고, 절도 하고, 명상도 하고, 기도도 하고, 그대가 저녁에 하는 일을 새벽에 할 뿐이다. 그렇게 시작되는 평범한 하루 속에서 새벽에 일어나 어두운 창이 밝아오는 걸 바라보는 건, 삶을 풍요롭게 한다.
잠에 관하여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내가 반달가슴곰(반달곰)이 겨울잠을 잔다는 걸 알게 된 후, 그의 겨울잠에 대해 궁금한 게 많아졌다. 가을에 맘껏 먹은 곰들은 굴에 들어가 잠을 자면서 한 해를 마무리하고, 봄이 오면 굴을 나와 한 해를 시작한다. 먹지 않고 긴 겨울을 어떻게 보낼 수 있을까? 그렇게 오랜 시간 잠을 자면 잠자기 전에 있었던 일을 기억할 수는 있을까? 혹시 동지에서 춘분까지는 어디 먼 곳에 다녀오는 건 아닐까? 그렇다면 진짜 멋진 일일 텐데 말이다.
이처럼 꼬리를 무는 궁금증 속에서 알게 된 사실은, 반달곰이라고 해서 모두 겨울잠을 자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한반도에 사는 반달곰은 겨울잠을 자지만 대만 반달곰은 겨울잠을 자지 않는다. 김만우 팀장(구례곰마루쉼터)은 반달곰이 겨울잠을 자는 이유에 대해 “가장 큰 이유는 먹이 부족입니다. 먹을 게 없으니까 그걸 극복하기 위해 진화적으로 동면을 하는 거죠. 대만의 경우는 먹을 게 있어서 그렇습니다. 동면은 극한 환경에서 나타나는 행동”(2026년 3월 31일 김만우 팀장 면담)이라고 설명한다.
↑지리산 반달곰들은 화엄사 홍매가 필 즈음에 겨울잠에서 깨어난다 (그림 결)
그럼 내가 잠을 잘 자는 이유도 어떤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행동일까? 그러고 보니 나는 고민이 있거나, 화가 나거나, 일이 안 풀릴 때 잠을 더 잘 잔다. 이런 나를 두고 동료는 ‘그럴 때 잠이 오냐? 소리를 질러야지! 아니면 술을 마시든가.’라고 말하지만, 놀랍게도 잠을 자고 나면 고민도, 화도, 일도 절반은 해결되어 있다. 내가 잠을 자는 동안 누군가가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분명하다. 반달곰도 겨울잠을 자고 나면 슬프고, 아픈 기억들이 반으로 줄어들면 좋겠다.
작년 ‘구례곰마루쉼터’(곰쉼터)의 성원이 된 반달곰들, 그중에서 나와 같은 이름을 갖고 있는 ‘곰주옥도 겨울잠을 잤겠지.’ 김만우 팀장에게 물어봤다.
윤주옥: 여기 곰들도 겨울잠을 잔 거죠, 곰주옥도?(호호)
김만우: 아니에요. 지난해 24개체가 들어왔는데, 그중 7개체만 동면(겨울잠)을 시켰어요.
윤주옥: 네! 왜요?
김만우: 그게요, 여기 있는 곰들 대부분은 사육되던 농장에서 겨울잠을 자지 않았다고 합니다. 겨울잠은 곰들의 생리적인 행동이지만, 사육되던 개체들은 동면 경험이 없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검증되지 않은 개체는 사고 위험 때문에 동면을 안 시킨 거고요. (2026년 3월 31일 김만우 팀장과의 대화)
사육되던 곰들은 겨울잠을 안 잤구나! 자연에서는 당연한 겨울잠도, 농장이나 동물원, 보금자리(구례곰마루쉼터, 화천곰보금자리)처럼 인간이 규정한 환경에서는 ‘재우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어떻게 재우는 걸까?
“먹이를 조절하는 건데요, 가을에 가장 많이 먹이고, 동면 직전에 점점 줄이다가 마지막에 끊습니다. 그다음에는 빛을 차단하고 보온재를 넣고, 사람 접근을 막아서 동면 환경을 만들어줍니다”(2026년 3월 31일 김만우 팀장 면담)
↑ 겨울잠에 드는 반달곰의 눈빛
이처럼 동면은 세심한 환경 조성과 준비 과정을 거쳐 이루어지는데, 여기서 한 가지 인상적인 이야기가 더해진다. 곰쉼터의 곰들에게 짚을 넣어주었더니 스스로 탱이(낙엽이나 짚을 모아 만든 잠자리)를 만들었다고 한다. 뜬장에서 살았던 곰주옥도 태어나 한 번도 해보지 않았을 탱이를 만들었다고 하니, 기특하면서도 짠하다.
곰쉼터의 곰들을 1주일에 한 번씩 만나는 나는 3월 중순, 따뜻하고 햇살도 좋은 날인데도 움직이지 않고 땅바닥에 누워 먼 하늘만 바라보던 곰주옥이 애처로웠다. 어디 아픈지 걱정도 되었다.
김만우: 아니에요. 원래 곰은 활동을 많이 하는 동물이 아닙니다. 개처럼 뛰어다니지 않아요. 상위 포식자들은 대부분 그렇습니다. 필요할 때만 움직이고, 평소에는 쉬는 시간이 많습니다.
윤주옥: 아, 그렇군요. 상위 포식자다운 위엄이 있네요. 동면이라고 해도 계속 잠만 자는 건 아니죠?
김만우: 네, 자다 일어났다가 반복합니다. 물도 먹고, 날씨 좋으면 나와서 햇빛도 쐬고요. 다만 자는 비율이 훨씬 높아서 동면이라고 하는 겁니다. (2026년 3월 31일 김만우 팀장과의 대화)
↑ 구례곰마루쉼터에서 바라본 구례의 봄. 곰쉼터의 곰들에게 올해 봄은 어떻게 기억될까.
곰에 대해, 특히 곰주옥에 대해 관심이 많다 보니 그의 눈빛, 움직임, 소리에 민감해진다. 나의 민감함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가만히 쉬고 있는 시간을 ‘이상하다’고 여기거나, 나의 기준으로 그의 상태를 짐작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럴 때 적당한 표현이 ‘과유불급(過猶不及)’이다. 알고자 하는 마음이 앞설수록, 한 걸음 물러서는 태도 또한 필요하다. 곰주옥이 그저 곰답게, 자기의 방식대로 살아가도록 지켜보는 일, 어쩌면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거리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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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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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주옥×인간주옥] ② 나는 내려왔고 곰주옥은 옮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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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년 전이다. 2008년 11월 20일 새벽 3시, 나는 트럭에 몸과 짐을 싣고 지리산으로 향했다. 얼마를 달렸을까? 트럭 창문에 머리를 부딪히며 실눈을 떴다. 눈발이 날리고 있었다. 서울에서의 삶이 그렇게 고달프지 않았고, 이곳 지리산에서의 삶도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을 터인데, 눈물이 나왔다.
이경재 선생님 강의를 들은 것이 계기가 되어 ‘생태보전시민모임’ 창립에 함께했고, 오구균 선생님과 ‘한국 국립공원 정책 포럼’을 기획하면서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을 만났다. 1996년 이후 환경생태활동가로서의 삶은 충분히 의미 있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희망보다는 부담이 커졌다. 그날 트럭 안에서 흘린 눈물은 감사와 기대, 긴장 등의 감정이 뒤섞인, 정체가 분명하지는 않으나 나의 한 시대를 마감하는 눈물이었을 것이다.
지리산으로 가겠다고 하니, 주변에서 한마디씩 했다. ‘아직 젊잖아’, ‘서울에서도 할 일이 많은데’, ‘그렇게 가버리면 사무실은 어쩌라고’, ‘무책임하네’, ‘여기를 버리고 결국 가는구나’라는 말들이었다.
시골로 내려가 농사를 짓겠다는 것도, 지리산에 할 일이 많다는 것도, 적당한 이유가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나에게 서울의 삶은 힘겨웠고 답답했다. 활동 방식에 대한 스스로의 불만도 커졌고, 능력의 한계도 느껴졌다. 그렇다고 지리산으로 내려가면 다른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여러 물음과 질책에 답하지 못하며 삶터와 활동 공간을 옮겼다. 그렇게 내려온 지리산은 서울보다 따뜻했고, 북한산만큼 아름다웠다. 지리산자락 활동가들은 여유로웠고, 행사를 할 때면 부를 수 있는 시인, 가수, 작가, 화가도 많았다. 지리산은 풍요로웠고, 지리산자락의 사람들은 소박했다. 그렇게 18년이 흘렀다.
내가 지리산 곳곳을 걷고, 지리산 사람들을 만날 때, 곰주옥은 연천의 한 농장에서 태어났다. 곰들이 사는 공간은 크게 두 가지 형태이다. 하나는 시멘트 바닥이고, 다른 하나는 ‘뜬장’이라 불리는 철창이다. 뜬장은 땅에서 떨어진 철제로 설치되어 배설물이 아래로 떨어진다. 청소하지 않아도 되니 많은 곰 농장에서는 뜬장을 사용했고, 연천농장의 곰들 역시 뜬장에서 살았다.
↑ 곰주옥의 집이었던 연천농장 모습 ⓒ곰보금자리프로젝트
연천농장에 대해 궁금해하는 나에게 최태규 대표(곰보금자리프로젝트)는 연천농장에는 한때 50에서 60개체의 곰이 있었으나 그 수는 점점 줄어들었다고 했다.
윤주옥:60개체에서 30개체에서 다시 10여 개체, 이렇게 줄어든 거네요. 줄어든 이유가 뭘까요?
최태규:도살이라고 봐야죠. (2026년 2월 25일 최태규 대표와의 대화)
연천농장의 곰들은 웅담 채취용 곰이었으니, ‘도살’이라는 답은 당연하다. 그럼에도 멸종위기 야생생물이며, 국제적으로도 거래가 안 되는 보호종인 곰을 쓸개 때문에 ‘도살’했다는 사실은, 참 낯설고 놀라운 일이다.
곰주옥의 부모는 히말라야 아종으로 한반도에서 태어나지 않았다. 그들은 인간에 의해 한국으로 옮겨졌고, 그 자손들은 철창 안에서 태어나 나이 들었다. 연천농장에서 태어난 곰주옥은 지리산으로 내려오기 전까지 그곳에서 자랐다. 1980년대 한국의 곰 사육 산업으로 수입된 곰들은 각 농장에서 번식을 통해 개체 수를 늘려왔다. 연천농장의 곰들 역시 그러한 증식 과정을 통해 태어난 2세대 또는 그 이후 세대이다. 2014년부터 2016년까지 사육곰 중성화가 이루어졌다는 점을 고려하면, 연천농장에 남아 있던 곰들은 적어도 10살 이상이다.
↑ 연천농장 뜬장 안의 곰 ⓒ곰보금자리프로젝트
최태규 대표에 의하면, 연천농장 농장주는 오랫동안 다양한 동물을 키워온 사람이라고 한다. 곰뿐 아니라 사슴, 새, 오소리 등 여러 동물을 키웠다. 동물을 좋아했기에 시작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좋아함’은 함께 살아가는 방식이 아니라, 가두어 키우는 방식이었다. 새끼가 태어나면 먹이를 주며 몸집이 커지는 것을 확인했고, 그것이 이윤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곳에서 곰들은 숲을 돌아다니며 먹이를 찾지 못했고, 뜬장에서 먹이를 받아먹으며 살았다. 그 삶은 지리산에 사는 반달가슴곰들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지리산에 사는 반달가슴곰들은 도토리를 좋아한다. 산을 열심히 돌아다니면 달달한 다래를 먹을 수도 있고, 그러다가 야생 벌집을 발견한다면 달콤한 꿀을 먹는 행운도 만날 수도 있다.
“ASF 돼지열병 때문에 지금은 거의 대부분의 농장에서 개사료를 주는데, 예전에는 식당이나 군대에서 음식물 찌꺼기를 가져와서 먹이는 경우들이 많았어요. 짬밥을 주면 농장이 굉장히 지저분해지고 철창 틈에 음식물 찌꺼기가 꽉 끼고 밑에도 더러워요. 연천농장도 그런 곳이었어요.” (2026년 2월 25일 최태규 대표 면담)
↑ 뜬장 안은 음식물과 똥이 뒤범벅되어 곰팡이가 피었다 ⓒ곰보금자리프로젝트
그렇다면 연천농장의 곰들은 어떤 이유로 우리나라 최초 공립 생추어리인 ‘구례 곰 마루쉼터’로 들어오게 되었을까? 사육곰 산업은 이미 끝을 향해 가고 있었고,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는 산업이었다. 법과 제도의 변화 속에서, 농장주들은 더 이상 곰을 통해 이전과 같은 이익을 얻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연천농장 농장주는 동물자유연대 등 동물단체들이 제시한 1개체 당 5백만 원을 선택했고, 그 선택 덕분에 곰주옥은 그곳을 떠날 수 있었다.
윤주옥:연천에 있던 곰들이 지리산까지는 어떻게 이사, 아니 이동했나요?
최태규:마취해서 철로 된 운송 케이지에 넣어 트럭으로 옮깁니다. 동물의 입장에서는 ‘이사’라기보다 ‘납치’에 가깝죠. 주사를 맞고 의식을 잃었다가 깨어나니 낯선 공간이었으니까요. 탈출하려고 시도하고, 극도의 공포를 느끼는 과정입니다. 그 과정에서 죽은 개체도 있고요.
윤주옥:여기(구례 곰 마루쉼터)가 더 좋은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이 과정에서 느끼는 감정은 공포였다는 거네요.
최태규:도착해서 한동안은 공포와 혼란을 느끼는 게 자연스럽습니다. 농장에서는 열악해도 익숙한 공간이기 때문에 도망가야겠다는 생각을 못 했을 수도 있지만, 새로운 공간에서는 모든 것이 낯설고 위험하게 느껴지니까요.
윤주옥:여기 온 곰들이 간이방사장으로 나가는 데 한 달 정도 걸렸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최태규:철창만 밟고 살다가 흙바닥을 처음 밟으면 위험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바뀐 곳의 환경이 안전하다고 인식하는 과정입니다. (2026년 2월 25일 최태규 대표와의 대화)
↑ 밖을 바라보는 연천농장 철창 안의 곰 ⓒ곰보금자리프로젝트
곰들에게 ‘이사’는 인간이 이해하는 의미의 이동과는 전혀 다른 경험이다. 그것은 스스로 선택한 이동이 아니라,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강제적인 이동이며, 깨어났을 때는 자신이 평생을 살아온 공간과 완전히 단절된 낯선 세계에 놓이게 된다. 비록 더 넓고 나은 환경으로 옮겨진다 하더라도, 곰의 몸과 감각은 그것을 즉시 위험으로 인식한다. 곰들에게 이사는 새로운 삶의 시작이라기보다, 몸이 기억해 온 세계로부터 갑작스럽게 분리되는 경험이며, 이후의 적응 과정은 오랜 시간 축적된 감각과 기억을 다시 배우는 시간인 것이다.
나는 스스로 결정하여 지리산으로 내려왔다. 반면 곰주옥은 옮겨졌다. 나는 여러 복잡한 감정을 품고 이곳으로 왔지만, 곰주옥은 마취된 몸으로 이곳에 도착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같은 산 아래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곰주옥에게 지리산은, 처음으로 흙을 밟은 곳이다. 활동가인 나에게 지리산은 지리산을 지키기 위해 피켓을 들고 시위를 하는 곳만이 아니라 농사를 짓고, 된장과 김치를 담고, 장작을 만들고, 아이들에게 밥을 나누는 곳이다. 이 모든 일들은 사람들과 함께 할 때에만 비로소 힘이 난다.
↑ ‘협동농장 땅없는사람들’로 모인 사람들은 구례에 있는 한겨레숲에서 농사를 지었다
↑ 지리산사람들 회원들은 된장계, 김장계, 오미자계 등으로 모여 일상을 함께 했다
↑ 구례 사람들은 초겨울이 되면 ‘햇살 가득 장작 나누기’를 통해 만든 장작을 혼자 사는 어르신에게 전달했다
↑ ‘공간협동조합 째깐한 다락방’은 아침밥을 못 먹고 학교에 가는 아이들에게 주먹밥을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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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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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주옥 X 인간주옥] ① 우리는 어쩌다 ‘주옥’이란 이름을 갖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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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주옥 X 인간주옥]
우리는 어쩌다 ‘주옥’이란 이름을 갖게 되었을까
내 이름은 ‘주옥’이다. 어린 시절 나는, 주옥이란 이름이 못마땅했다. ‘ㄱ’으로 끝나는 이름은 차갑고 무뚝뚝하게 느껴졌다. 초등학교 때는 ‘천당과 지옥’이라는 놀림을 받기도 했다. 다혜, 현아, 수정 등 입안에서 굴러다니는 이름을 지어주지 않은 부모님이 원망스러웠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개명을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친구 중에 ‘언년’이가 있었고, 언년이가 이름 때문에 심한 상처를 받고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주옥’ 정도면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되었다.
주옥이란 이름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게 된 건 고등학교 1학년 때다. 1학기 첫 시간에 국어 선생님은 출석을 부르다가, “‘주옥’, 누구냐?”라고 물었다. 손을 들었는데, 수업이 끝난 후 책상 앞에 오신 선생님이 손바닥을 내밀어보라더니, 펜으로 ‘주옥’이라 쓰시고는 ‘이렇게 예쁜 이름을 누가 지어주셨냐?’고 하셨다.
“네? 아버지요.” 그날 이후 나는 손바닥을 볼 때면, ‘주옥’이라고 써나가던 펜의 감각이 살아난다. 간질간질한 따뜻함이 온몸에 전해진다. 그럼에도 나는 숙, 용, 훈, 태, 명, 환, 열, 순 등을 돌림자인 ‘주(柱)’자 뒤에 붙이는 방식이었고, 세상의 모든 글자 중 하나인 ‘옥(玉)’자가 그냥 얻어걸렸다고 짐작했다.
곰들과 좀 더 가까이 지내보기로 한 2026년이 시작되었다. 2026년 1월 6일, 나는 동료들과 ‘구례 곰 마루쉼터’(곰쉼터)를 찾았다. 2025년 9월 말에 문을 연 곰쉼터는 ‘국내 1호 공립 곰 보금자리’이다. 이곳의 곰들은 열악한 사육 환경이나 농가 방치 상태에서 구조된 이후 비로소 기본적인 보살핌을 제공받고 있었다. 이곳에서 눈이 안 보이거나, 귀가 안 들리거나, 팔다리가 없는 곰들을 처음 만났던 날, 나는 이 곰들과 무엇이라도 함께 해야 한다고 다짐했다. 그 ‘무엇이라도’가 무엇인지를 찾기 위해 이곳을 자주 방문하고 있다.
우리에게 곰쉼터 곰들의 이름과 특징을 이야기하던 최신영 수의사가 “참, 이 곰의 이름은 ‘주옥’입니다.”라며 나를 바라봤다. ‘앗! 주옥이라고?’, 살면서 ’주옥‘이란 이름을 가진 사람을 만난 게 딱 한 번인데, ‘주옥’이란 이름을 가진 곰을 만나다니, 반갑고 신기하고 강한 연결감이 전해졌다. 순간 곰을 향해 손을 뻗을 뻔했다.
이 곰은 어쩌다 ‘주옥’이란 이름을 갖게 되었을까?
“이곳에 곰들이 처음 들어올 때는 전부 관리번호로 불렸어요. 1번, 2번, 3번 이런 식이었죠. 그런데 평생을 이곳에서 살 친구들을 번호로만 부르는 게 너무 정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직원들끼리 이름을 붙여주자고 했어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애니까 내 이름을 붙일래’, 이런 식으로요. 저도 제가 제일 좋아하는 곰이라 ‘옥주’라고 부르고 싶었는데 제 이름이랑 헷갈릴 것 같아서 앞뒤를 바꿔 ‘주옥’, 그래서 ‘곰주옥’으로 불리게 됐어요.” (2026년 2월 2일 임옥주 수의사 면담)
↑ 관리번호 BF-08의 이름은 ‘주옥’이다
곰주옥을 만나고 나니, 내가 ‘주옥’이 된 것에도 뭔가 분명한 이유가 있을 것 같았다. 대설에 시작된 추위가 계속되던 날에 아버지를 뵙고 인간주옥이 ‘주옥’이 된 이유를 물었다.
주옥:제 이름이요, 왜 ‘주옥’이라 지은 거예요?
아버지:작명법이 있는데, 너희는 ‘주(柱)’자가 돌림이거든. 기둥 주를 쓰고. 그다음에 획수를 따져서 알맞은 글자를 찾은 거야.
주옥:작명법이요, 그런 게 있군요?
아버지:책이 있지.
주옥:구슬 옥, 이걸 찾은 게 아버지세요?
아버지:내가 찾았지. 부르기 좋고, 첫째는 그거야. 그리고 획수가 맞아야 돼. 그 책에 보면 나와. 그래서 숫자에 맞는 글자를 찾다 보니까 ‘옥’이 된 거야. (2026년 1월 24일 인간주옥과 아버지와의 대화)
그동안 나는 ‘주옥’이란 이름이 부르기에 어색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아버지는 부르기가 좋다고 하셨다. 이런 걸 ‘간극’이라고 말해야 할까? 나와의 대화를 멈추신 아버지는 서재로 가시더니 족보를 가져오셨다.
아버지:족보에는 여자들 이름은 안 올라가고, 누구의 처, 이렇게 돼 있지. 여기도 그럴 거야.
주옥:아, 할머니 이름은 없고, 할머니의 아버지와 관련된 사항은 있고. 여기에 아버지가 제 이름을 써넣은 거예요?.
아버지:그렇지, 나중에 족보를 다시 하게 된다면, 다른 집은 모르지만, 내 집안에 대한 거는 이대로 하려고 해놓은 건데. (2026년 1월 24일 인간주옥과 아버지와의 대화)
↑ 여성 ‘주옥’의 이름을 써넣은 족보
요즘은 족보를 만드는 집이 없으니 내 이름이 인쇄된 족보를 볼 일도 없고, 또 그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아버지께서 세상에 없는 족보, ‘주옥’이라는 여성의 이름이 올라간 족보를 간직하고 계시다는 게 놀라웠다. 인간주옥은 이 사실이 가슴 벅차고 여기저기 자랑하고 싶어졌다.
또 다른 주옥인 곰주옥은 그동안 관리번호로만 불렸다. 그에게 이름을 붙인 임옥주 수의사는 ‘너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곰이야, 그러니 너에게 나를 그대로 반영할게’라고 말하며, ‘주옥’이라 이름 붙였다. 태어나서 처음 경험하는 따뜻함이었을 것이다. 생각만으로도 설레는 순간이다.
곰주옥과 같은 이름을 갖은 인간주옥은 곰주옥과의 만남을 계기로 곰쉼터에서 살아가는 곰들을 기록하기로 했다. 그들이 어디에서 왔고, 그곳의 삶은 어땠는지, 그들의 몸이 기억하는 것은 무엇인지, 곰쉼터에서의 하루는 어떤지, 곰이 곰답게 살아간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지 등을 면담과 관찰, 자료 조사를 통해 쓸 예정이다. [곰주옥 X 인간주옥]은 같은 이름으로 이어진 곰과 인간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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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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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기획연재 《기억 속 사찰》을 시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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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기획연재 《기억 속 사찰》를 시작하며
윤주옥
2023년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지리산사람들’과 화엄사성보박물관, 지리산국립공원 전남사무소는 ‘지리산 사찰 문화유산 기록사업단(기록사업단)’을 구성하고 문헌조사와 현지답사, 면담을 통한 채록 등을 진행하여 『기록과 기억 1 지리산 구례지역 사찰』을 발간하였습니다.
사찰과 사찰, 사찰과 암자, 암자와 암자를 이어주던 옛길은 수행자의 순례길이기도 하고, 궁박한 산골 주민들의 생활길이기도 하며, 한국전쟁 당시 산사람들의 생사 갈림길이기도 합니다. 이제 이 길들은 끊어져 산에 사는 동물 발자국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니 그 흔적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암자터와 함께 옛길에 대한 답사와 기록이 필요하고, 사찰과 암자에서 수행 중인 스님들, 사찰과 관계 맺고 살아온 지역민의 면담을 통해 잊힌 암자와 옛길, 현존하는 암자와 길들에 대한 기억을 채록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더불어 사찰과 암자, 옛길 주변의 식생(植生)을 조사하고, 지리산 숲과의 차이점을 확인하는 작업도 필요했습니다.
.『기록과 기억 1 지리산 구례지역 사찰』은 산길을 오르고, 기와와 자기 파편을 한 조각이라도 더 찾으려는 기록사업단 활동가들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스님과 주민을 만나기 위해 암자를 오르고 마을회관을 찾아가고, 사진과 영상 작업을 마다하지 않은 마음이 있었기에 나올 수 있었습니다.
기록사업단은 산동에서 천은사, 천은사에서 화엄사, 화엄사에서 문수암, 문수암에서 연곡사 등으로 가는 옛길을 답사하고 기록했으며, 화엄사, 천은사, 연곡사 영역 등 구례지역 암자터 26곳을 답사하고 기록했습니다. 또한 화엄사 등에서 수행하는 스님 7명, 사찰 거주인 1명, 구례 주민 3명 등 11명으로부터 지리산 구례지역 사찰 모습, 화엄사와 천은사 산내 암자, 암자터 등에 대해 들었습니다.
기획연재를 시작하는 《기억 속 사찰》은 『기록과 기억 1 지리산 구례지역 사찰』 중 일부입니다. 《기억 속 사찰》은 켜켜이 쌓아둔 기억들, 장엄한 역사문화유산, 크고 작은 절에서 보고 들은 바, 큰 절과 아랫마을 사람들 등으로 나눠 연재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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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