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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웅박 씻나락] "AI(인공지능) 시대와 대안적 삶" 강수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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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인공지능) 시대와 대안적 삶
강수돌(고려대 명예교수, 하동군민)
사진: Unsplash의Matthew Henry
2025년 10월 말, 경주 APEC 회의장에서 ‘영웅’으로 떠오른 이가 있다. 세계 시가총액 1위를 달리는 엔비디아(NVIDIA)의 최고경영자(CEO) 젠슨 황이다. 대만 출신으로 10살 때 미국으로 건너가 세계 최고 기업의 대표가 되었으니 얼핏 ‘인생 성공’처럼 보인다.
그가 영웅처럼 된 것은 ‘26만 장 GPU’ 때문이다. 그는 APEC 회의장에서 이재명 대통령,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이해진 네이버 의장 등 한국 주요 기업 총수들 앞에서 최신 GPU 26만 장 공급이라는 “깜짝 선물”을 약속했다. GPU란 그래픽처리장치(Graphics Processing Unit), 즉 인공지능(AI) 시대의 전략 자산인데, AI 개발에 필수품이라 한다.
그런데 말이 선물이지 GPU 하나가 약 1억 원짜리 상품이다. 세계 각국이 ‘새로운 먹거리’랍시고 AI 경제에 사활을 거는데, 그 핵심이 바로 이 그래픽처리장치(GPU)를 얼마나 확보하는가의 문제기 때문! 한국이 26만 장의 GPU를 확보함에 따라 미국과 중국에 이어 ‘세계 3위 GPU 확보국’이 된다며, 모처럼 정부, 재벌, 국민이 웃으며 함께 손뼉을 친다.
이 26만 장의 GPU는 정부가 최대 5만 장, 삼성전자, 현대차그룹, SK그룹이 각기 5만 장씩, 네이버클라우드가 6만 장을 사용할 것이라 한다. 그렇게 해서 회사마다 AI를 활용한 공장이나 상품을 만들 모양새다.
그러나 과연 이것이 계획처럼 진행되면, ‘국민주권정부’ 아래 온 국민의 삶이 좋아지는 것인가? AI 경제가 발달하면 이재명 정부가 약속한 대로 ‘국민행복 사회’가 될 것인가?
내 대답은 불행히도 ‘아니올시다!’이다. 왜? 그 이유 중 딱 한 가지만 집중해 보자. 그것은 바로, 전력 문제다. 왜 그런가?
우선, AI 시스템은 자체 학습과 추론 수행 시 대규모 데이터 처리와 고성능 컴퓨팅 능력이 요구되어 ‘데이터센터’ 안에 탑재된다. 따라서 AI 확대는 결국 데이터센터의 소모 전력을 폭발적으로 증가시킨다. (물론, 가솔린 자동차에 대한 ‘친환경적’ 대안으로 부각된 전기자동차(EV), 각종 빌딩의 난방·냉방 장치, 산업의 전기화 등도 전력 소비 증가 요인인데, 여기서는 AI와 직접 연결된 데이터센터에 초점을 맞춘다.)
국제에너지기구(International Energy Agency, IEA)는 최근 발간한 ‘Global Energy Review 2025’에서 세계 데이터센터 전력 사용량이 2022년 기준 460TWh에서 2026년에는 1,050TWh로 2배 이상 증가할 것이라 보았다.
또, 글로벌 에너지 인텔리전스 기관인 Rystad Energy는 한 보고서에서 데이터센터, 전기자동차(EV), 난방·냉방 등 전력 수요 확대 요인으로 인해 향후 10년간 전 세계 전력 수요가 최대 30%까지 급증할 수 있다고 보았다. 미국의 경우, 2030년까지 데이터센터 전력소비가 현재보다 두 배 이상 늘어날 것이라 한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국내 데이터센터는 2022년 9월 기준 147개소에서 2029년엔 784개소로 늘어날 예정이다. 이에 따라 같은 기간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 역시 1.8GW에서 2029년 41.5GW까지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갈수록 데이터센터의 전력 수요가 커질 터인데, 핵발전소 하나가 1GW의 전력을 생산한다고 보면 향후 ‘초대형 데이터센터’ 하나만 해도 7개의 핵발전소가 필요(7GW)할 것이란 견해도 있다. 한편, AI 데이터센터 하나가 ‘도시 100만 가구’에 맞먹는 전력 소비를 한다고도 한다. 그 정도로 데이터센터는 ‘전기 먹는 하마’다.
산업통상자원부의 예측처럼 2029년까지 신규 데이터센터 6~700개나 추가 건설될 경우, 국내 데이터센터의 필요 전력량은 약 50GW까지 늘 전망이다. 이를 송전 과정의 전력 손실분(약 7%)까지 고려하면, 1GW급 핵발전소를 약 53기나 추가 건설해야 할 판이다. 최근엔 소형모듈원자로(SMR)가 대안처럼 부상되나 여러모로 대안이 아니다. 요컨대, AI 경제를 계획처럼 만들어가려면 50GW 이상의 전력이 추가로 요구된다. 그야말로 천문학적이다.
그렇다면 이 막대한 전력을 어떻게 추가 생산할 것인가? 우선, 현재 한국에서 쓰이는 에너지 구성은 거칠게 보아 화석연료(석탄, 가스) 전기가 약 60%, 원자력 전기가 약 25%, 신재생에너지 전기가 약 15% 차지한다.
화석연료 발전은 기후위기를 부르는 온실가스를 대량 방출하기에 더 이상 증가할 순 없다. 그러나 현실 경제는 ‘눈감고’ 화석에너지를 계속 쓰려고 한다. 그리고 원자력 발전은 ‘핵쓰레기’ 문제로 더 이상 불가하다. 지금도 한국은 고준위 방사능 폐기물(암 유발 물질)인 사용 후 핵연료봉이 약 2만 톤, 개수로 약 230만 개나 쌓이고 있어 아주 골칫덩어리다. 향후 더 많은 원전을 건설한다는 건 거의 ‘자살 테러’ 수준이 된다. (원래 사용 후 핵연료봉은 고준위 방사선이 반감기가 될 때까지 지하 500미터 이하에서 무려 10만~30만 년 동안 묻어 두어야 할 정도다. 이는 사용 후 핵연료의 독성이 천연 우라늄 수준으로 감소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그토록 길기 때문이다. 국내엔 그런 저장소가 없다. 저장소 하나 건설에도 무려 30년 이상 걸린다. 그나마 현실적 대안은 신재생에너지인데, 그 비중이 기껏 20% 정도인 게 현실이다. 결국 화석에너지와 온실가스, 기후위기 문제가 더 심각해진다는 결론이다.)
또 다른 큰 문제는 신규 데이터센터 중 약 85%가 수도권에 지어질 계획이란 점이다. 이게 문제가 되는 까닭은 전력 공급처인 발전원이 전국 각지, 특히 동·서·남부의 해안(풍력, 태양광 발전)에 퍼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전력의 생산지에서 소비지까지 수백 킬로미터에 이르는 거리에 ‘에너지 고속도로’를 만들기 위해 산과 들, 마을을 지나는 ‘전력계통’(송전선, 송전탑, 변전소, 전력망 등)을 깔아야 한다.
그래서 이미 부안, 임실, 곡성 등지에서 ‘대책위’ 중심의 투쟁이 조직되고 있다. 일례로, 11월 10일 오전 곡성군청 앞에서는 ‘초고압송전탑/변전소 전면백지화를 위한 곡성군대책위 출범식 및 투쟁선포식’이 열렸다. 농촌 공동체를 파괴하는 송전탑변전소 건설사업 결사 반대, 주민을 들러리 세우는 입지선정위원회 해산 등이 주요 구호다. 앞으로도 제2, 제3의 ‘밀양 송전탑 사태’가 반복될 것이다.
다행히 지리산권, 섬진강권, 남해안권은 AI 경제와 연동된 데이터센터나 용인에 추진 중인 반도체 클러스터와 직접 관련은 없지만, 향후 전력 소요량이 폭증하게 되면 하동화력발전소나 지리산양수발전소 외에 또 다른 부하가 추가될 가능성이 있다. 한국 사회 전반이 갈수록 더 강한 고에너지 시스템으로 변한다면 이들 지역 역시 그 회오리에 휘말리게 될 것이다.
따라서 참된 대안은 ‘조금 먹고 조금 싸는’ 사회경제 시스템을 만드는 것, 우리들 역시 그런 시스템과 함께 살아갈 새로운 감수성으로 일상을 재구성하는 것 속에 있을 것이다. 소농 공동체, 읍면 자치, 생태 마을, 협동조합 등이 구체적 사례다. 지리산과 섬진강, 다도해는 (인간이 오염, 훼손하지만 않는다면) 자연 그 자체만으로도 ‘영원히’ 먹을거리를 제공하고, 주거 공간과 휴양처를 선물한다. 자연 생태계가 수용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만 조심스레 감사하며 산다면,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이 공생할 가능성은 얼마든 있다. 요컨대, ‘탈(脫) 자본, 진(進) 생명’이 자기 파멸적인 AI 경제에 대한 대안이다. ‘젠슨 황의 GPU’ 없이도 행복한 삶은 얼마든 가능하다.
뒤웅박 씻나락 칼럼
'뒤웅박 씻나락'은 이듬해 종자로 쓸 귀한 볍씨를 가리키는데요,
이 칼럼의 글들이 뒤웅박 씻나락으로서 앞으로 생명·평화·나눔·돌봄·연대의 사회를 위한 씨앗이자 마중물이 되길 기대하며
만든 칼럼입니다. 지리산 자락 삶이 우리 사회의 대안적 삶의 모습이 되길 꿈꾸는 <지리산인>의 바람을 담아,
지리산 곳곳에 계신 씨앗 같은 이들의 삶과 생각을 싣고자 합니다.
지리산 자락에 사는 여러 살림꾼들이 돌아가며 글을 씁니다.
<지리산인>의 뒤웅박 씻나락 칼럼을 기쁘게 받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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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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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웅박 씻나락] "사람만이 희망이라면" 김석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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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웅박 씻나락]
사람만이 희망이라면
_김석봉
(ⓒ한국저작권위원회)
지난주 동네는 소란했다.
119 응급차가 드나들면서 네 명의 이웃이 동네를 떠났다.
배불뚝이 정 씨는 밭에 나가 끝물고추 살피다 전동차가 밭두렁을 굴러 피를 철철 흘리며 병원에 실려 갔고, 소주를 양푼에 따라 마시던 대밭머리 박 씨는 기어이 술병에 쓰러져버렸다.
대추나무집 상촌양반이야 골골 거린지 오래라 병원 문턱이 다 닳았다지만 골목 안 봉칠이 아저씨의 병원 길은 이웃들의 안타까움을 샀다.
팔십 줄에 앉은 봉칠이 아저씨는 논농사가 많았다. 동네서 가장 멀리 떨어지고 가장 높은 지대에 있는 다랑논 열 마지기에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모를 심었다.
봉칠이 아저씨의 병환은 거의 절망적이라는 말이 들렸다. 이제 살아서 돌아오기는 글렀다며 동네 이웃들은 저마다 혀를 찼다.
아침이면 늙은 아내를 싣고 그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는 봉칠이 아저씨의 경운기를 이제 영영 볼 수 없게 되었다. 가을이면 누렇게 여물어가던 논배미도 묵어 산짐승들 놀이터로 변해버리겠지.
봉칠이 아저씨만 그런가. 내가 이 산골에 들어오고 지금껏 세상을 떠난 이웃은 부지기수다. 뒷집도 옆집도 앞집도 모두 비었다.
이제 동네는 폐허의 길에 접어들었다.
스스로 텃밭조차 일굴 수 없을 노인네만 남았다.
묵어 풀숲이 되어버린 논밭은 개울 건너까지 바짝 다가왔다. 마당에서 건너다보면 고라니 뛰노는 모습이 심심찮게 보인다. 엊그제 밤에는 마당 앞 감나무까지 수리부엉이가 찾아와 울었다.
한때 귀농귀촌 열풍이 불던 시절이 있었다. 동네 뒤 언덕바지엔 포클레인이 온종일 뒤척였고 해마다 몇 채씩 집이 들어서는 기상천외한 일이 벌어지던 시절이 있었다.
이제 이 산골도 생기가 돌고 살 만 하려나. 모두들 기대에 차 있었다.
인구 늘리기에 혈안이 되어있던 군청도 앞장서서 귀농귀촌인 유입에 행정력을 쏟았다. 도로와 전기 수도시설을 지원하기까지 하면서 도시의 부동산개발업자들이 동네를 드나들었고, 곳곳에 새로운 주택지가 만들어졌다.
그 유행의 시절도 어느 시기부터 저물기 시작했다.
삶의 희망을 찾지 못한 귀농귀촌자들은 하나둘 떠났고 동네 뒤 언덕바지에 지은 집이 매물로 나왔다는 소문이 들렸다.
마을 주변 논밭들도 온통 천덕꾸러기가 되어 복덕방 매물 장부에 지번을 올렸다.
“김 사장. 여기 사인 좀 해줘요.”
곶감 깎을 요량으로 감대와 바구니를 챙기고 있는데 이장이 불쑥 찾아와 두어 장 서류철을 내밀었다.
“무슨 사인을?”
“다음 주에 군수가 방문한대요. 그래서 발전위원회에서 무슨 사업을 신청할 것인가 주민 의견을 묻는 거요.”
서류철을 받아 훑어보았다. 주민숙원사업 조사서였다. 몇 개의 사업명이 적혀있었고 선택해서 서명하는 형식의 문서였다. 발전위원회의 의중이 담겼는지 특정된 하나의 사업에 서명이 몰려있었다. ‘칠선교 야간조명설치’라는 사업이었다.
뚱딴지도 이런 뚱딴지같은 사업이 있나 싶었다. 밤에 자동차를 타고 그 길을 가면 한 대의 자동차도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를 턱이 있나. 한 사람도 지나가지 않을 칠선교에 밤새 현란한 불빛을 밝히는 일이 어찌 숙원사업이 될 수 있을까.
소위 지역유지라고 하는 자들이 지역 여론을 주도하며 행정에 빌붙어 벌여 온 엉터리 같은 일은 한둘이 아니다. 행정에서 넌지시 말을 흘리면 그 지역유지들이 나서서 공론화하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형식으로 지역숙원사업이 결정되는 것이다.
이장은 행정의 나팔수일 뿐 마을공동체를 가꾸고 살피는 일엔 관심조차 없다. 면사무소 이장회의 다녀오면 마을방송으로 전달사항 읽어주는 일이 유일하다.
그것만 하면 괜찮기라도 하지. 누구라도 이장에 선출되면 임기 내내 자기 잇속 챙기기에 여념이 없다. 자기 논밭으로 가는 농로 보수 작업이나 자기 집 주변 가로등이라도 하나 더 밝히려고 서둔다.
동네가 폐허로 변해가는 이유가 다 여기에 있다. 지역이 소멸해 가는 이유가 바로 이런 현상이 지역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 폐허의 그림자는 자기 발끝까지 다가오고 마침내 우리가 지키고 가꾸어야 할 공동체의 소중한 가치가 한 움큼씩 떨어져 나간다.
폐허로 변해가는 동네, 한밤중 인적 끊긴 적막 속에서 다리에 반짝반짝 불을 밝힌다고 무슨 도움이 될까.
차라리 모든 불을 꺼버리는 것은 어떨까. 그 짙은 어둠 속에서 반딧불이를 날게 하고, 별을 더욱 빛나게 하고,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 들리게 하는 것은 어떨까.
농사에 아름다움을 더하고 공동체의 공공성을 되살리는 일을 숙원사업으로 정할 수는 없을까. 그런 일을 해 나갈 사람들은 없을까.
겉으로 나서서는 ‘시골이 큰일입네, 이렇게 방치해서는 안 되네’ 하면서도 정작 무슨 행동도 하지 않았지. 하는 척하다가 금세 물러나 버리는 시늉쟁이였지. 하긴 나도 마을 일에 나섰다가 한순간 손 씻고 돌아앉아 버린 한심한 귀농자였지.
그 사이 지역은 더욱 한심한 모습으로 변해갔고, 동네는 더욱 어두워졌지.
연말이면 동네마다 대동회가 열린다. 대동회는 이장을 선출하는 자리다.
당신이 조금이라도 무너지는 공동체에 관심이 있다면 이장 선거에 나서 보자.
내년이면 지방선거가 기다리고 있다. 지방선거는 지역유지들의 잔치가 아니다.
당신이 지역소멸을 걱정하고 어처구니없는 지역숙원사업이 지역을 망친다고 생각한다면 지방선거에 나서 보자.
사람만이 세상을 바꾼다고 하지 않던가. 사람만이 희망이라면 대동회를 외면해서도 안 되고 지방선거를 남의 일로 여겨서도 안 된다.
저 부패하고 무능한 지역유지들의 자리를 빼앗는 혁명의 길에 나서야 한다.
그래야 지역이 살고 공동체가 살고 너와 내가 산다.
(ⓒ김인호)
글쓴이 김석봉
1957년 경남 하동 옥종 농가에서 태어났다. 민주화운동이 들불처럼 번지던 시기 교도관으로 유월항쟁을 맞이하였고, 1987년 진주교도소에서 문익환 목사를 만나 사회운동에 뛰어들었다. 진주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 공동의장을 거쳐 2009년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로 활동했다. 녹색당 창당발기인으로 참여했고, 2012년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을 맡았다. 2007년 경남 함양군 지리산 기슭으로 귀농하여 적지 않은 농사를 일구고 있다. 아내와 아들내외와 손녀까지 3대 다섯 식구가 모여 산다. 경남작가회의 회원으로 틈틈이 시를 쓴다.
<뽐낼 것 없는 삶 숨길 것 없는 삶>, <인문학과 생태학> 책을 썼다.
뒤웅박 씻나락 칼럼
'뒤웅박 씻나락'은 이듬해 종자로 쓸 귀한 볍씨를 가리키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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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든 칼럼입니다. 지리산 자락 삶이 우리 사회의 대안적 삶의 모습이 되길 꿈꾸는 <지리산인>의 바람을 담아,
지리산 곳곳에 계신 씨앗 같은 이들의 삶과 생각을 싣고자 합니다.
지리산 자락에 사는 여러 살림꾼들이 돌아가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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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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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웅박 씻나락] "산청에서, 재난을 돌아보며" 햇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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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웅박 씻나락 칼럼을 시작합니다
'뒤웅박 씻나락'은 이듬해 종자로 쓸 귀한 볍씨를 가리키는데요,
이 칼럼의 글들이 뒤웅박 씻나락으로서 앞으로 생명·평화·나눔·돌봄·연대의 사회를 위한 씨앗이자 마중물이 되길 기대하며
만든 칼럼입니다. 지리산 자락 삶이 우리 사회의 대안적 삶의 모습이 되길 꿈꾸는 <지리산인>의 바람을 담아,
지리산 곳곳에 계신 씨앗 같은 이들의 삶과 생각을 싣고자 합니다.
지리산 자락에 사는 여러 살림꾼들이 돌아가며 글을 씁니다.
첫 시작인 9월에는 산청의 '햇살'이 글을 보내 주었습니다.
김석봉, 강수돌, 홍영기, 푸른, 박남준, 성염, 이주헌 님의 글이 기다리고 있으며,
달이 갈수록 필진이 더해질 예정입니다.
<지리산인>의 뒤웅박 씻나락 칼럼을 기쁘게 받아 주세요.
산청에서, 재난을 돌아보며
산청 산사태 복구 현장 봉사에 함께한 '햇살'의 이야기
올해 여름은 뜨겁고 힘들고 강렬했다.
가뭄으로 애타던 강릉 비 소식이 반가운 아침이다.
전주는 밤새 170밀리, 군산은 시간당 152밀리 폭우가 내렸다고, 휴양지로 유명한 발리에서 폭우로 건물이 무너져내리는 영상들이 계속 들어온다. 뉴스를 보면서 두려움과 공포, 재난의 경험이 몸으로 느껴진다.
길도 사라지고 생강밭도 사라지고
기숙사 사감으로 근무하고 있는 학교 축제 전야제 날이었다. 호우주의보가 내렸고 밤새 폭우가 쏟아졌다. 아침에 학교로 올라오는 도로가 산사태로 막혔다는 소식을 들었고, 전기, 수도가 먼저 끊겼고, 통신까지 끊겼다. 맞은편 산 중턱 집에 실종자가 있다고, 소방차들이 오고 밤까지 수색 활동을 하고 있었다. 밖에 피해가 얼마나 큰지 알 수도 없고, 무덥고 어두운 기숙사에서 아이들과 함께 밤을 보냈다. 다음 날 다행히 비가 그쳤고, 산사태로 곳곳에 막혀버린 도로를 돌고 돌아 도착해 준 부모님들에게 아이들을 무사히 보낼 수 있었다.
전화가 연결되니 산 아래 생강밭 두 개가 산사태로 흔적 없이 묻혀버렸다는 소식이 제일 먼저 왔다. 올해 딸이 처음으로 자기 밭을 정해서, 싹틔우기부터 비 오기 전 관리기 빌려와 북주기까지 정성 들인 밭이었다. 흘러 내려온 토사로 마을 길이 막혀 집에는 올라갈 수도 없었다. 다리가 끊어지고, 산사태로 국도까지 통제된 모습들은 마치 전쟁터 같고 현실이 아닌 것만 같았다. 사망자와 실종자 소식들과 눈 앞에 펼쳐진 재난 앞에 뭘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고. 전기와 수도가 끊기고 일상이 멈춰버린 것 같은 며칠이었다.
한달음에 달려와 준 사람들
마을 청년들이 침수된 하우스와 작업장으로 달려가 젖은 물건들을 치우고 복구에 손을 보태기 시작했다. 하동에서 나마스떼 민박을 하는 수진 부부가 저녁밥을 해서 달려왔다. 반찬을 만들어준 분들도 있고 이웃과 함께 준비했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이 모이는 까페이고 공유공간인 ‘남다른이유’에서 얼굴보고 함께 밥을 먹으면서 안부를 확인하고 정신을 차리고 힘을 낼 수 있었다.
‘산청의료사협’에서 제안해 ‘그늘과 언덕’이 함께 ‘산청합천 수해복구봉사 연결방’이 만들어졌다. 일손이 필요한 농가와 일손을 보태겠다는 개인이나 소규모 봉사자들 신청을 받아 연결하고 함께 봉사를 했다. 오픈채팅방이 만들어진 7월 25일, 구례에서 윤주옥 선생님과 정환, 상글 청년들이 제일 먼저 달려와 주었다.
누군가에겐 살아갈 힘이 될 모두의 손길
물이 빠졌지만 아직도 질퍽거리는 딸기하우스 비닐들을 찢어내고, 물에 젖은 포장박스와 농자재들을 꺼내면서 온갖 쓸려 내려온 쓰레기들을 보면서 암담했다. 임시대피소로 제공된 모텔에서 생활하는 힘든 상황에서도, 더운데 그만하라고 너무 고맙다고, 그래도 힘이 난다고 웃어주던 첫 번째 하우스 농장 부부의 말에 우리가 힘이 났다. 폭염에 땀과 흙탕물로 온몸이 젖었지만 힘내서 본격적으로 봉사를 시작할 수 있었다. 첫 번째 농가는 올해 농사는 포기한다고 했었는데 여러 봉사자들 도움으로 하우스를 철거하고 새로 설치해 올해 농사를 하게 됐다는 소식들을 채팅방에 올려주고 있다.
그 뒤를 이어 역시 지리산 이웃들인 남원, 함양, 하동에서, 전국에서 정말 많은 분이 일손을 보태러 와 주었다. 서울, 인천, 수원, 용인, 공주, 대전, 세종, 부산, 창원, 마산, 김해, 진주, 고성 전국 각지에서 다녀가셨다. 하우스 작업은 낮에는 너무 뜨거워 오전은 새벽 6시부터 10시까지, 오후는 3시부터 6시까지 활동했다. 멀리서 새벽 운전해 달려와 참여하는 분들은 그 정성은 뭐라 말할 수 없이 감사했다.
질퍽거리는 바닥에 휘어지고 떨어진 하우스 배드 상토를 담아 옮기기, 하우스 바닥에 쌓인 상토를 쪼그리고 앉아 쓸어 포대에 담아내기, 창고에 쌓인 젖은 짐들을 옭기고 바닥 물청소기. 어느 한 곳도 일이 만만한 곳은 없었지만, 반가워하는 농장주님들과 함께 하는 힘으로 기쁘게 할 수 있었다. 재미나게 봉사해 보자고 “잼봉잼봉 화이팀”을 외치고 시작하기도 했다.
“새참 왔어요. 새참 먹으로 오세요~~”
‘그늘과 언덕’에서는 까치밥 선결제로 봉사자들을 위한 음료와 간식을 회원들이 배달해 주었다. 해뜨기 전부터 땀 흘려 일하다가 얼음 가득한 맛있는 음료는 에너지를 올려주는 소중한 존재였다.
마법 같은 ‘함께’의 힘
물기가 있을 때는 질퍽거려 힘들고, 바짝 말랐을 때는 먼지 때문에 마스크를 쓰면 금방 숨이 막혀 힘들었다. 하우스는 길고 끝이 보이지 않았는데 함께하다 보면 끝이 난다. 밭일할 때마다 ‘눈은 게을러도 손은 부지런타’ 하시던 아버님 말씀이 늘 생각났다. 부부 두 명이 한 동 바닥 토사 치우는 데 일주일이 걸렸다는데 여럿이 가서 하다 보면 한 동, 두 동 깨끗이 치워지는 건 정말 마법 같았다. 봉사 후에는 식당이나 의료사협에서 준비해 준 밥을 함께 먹으며 어디서 왔는지 인사도 나누고 소감도 나누었다. 서로를 보면서 감동을 받는 뜨거운 시간들이었다.
’김제동과 어깨동무‘ 회원들이 많이 참여했다. 뉴스를 보고 언제 갈 수 있을지 계속 채팅방에서 보면서 마음을 썼거나, 군청에 전화해 보고 개인 봉사 방법을 계속 찾았다는 분들도 많았다. 봉사 DNA는 따로 있는지 봉사를 해 본 경험이 있는 분들이 또 하게 되는 것 같았다. 휴가왔다가 봉사도 하고 가려고 온 강동구 구의원 부부, 돌아가서는 아들 중학교 아버지회에서 홍보해서 여러 가족이 아이들과 함께 또 오기도 했다. 부산에 사는 소방관, 특수교사 가족은 세 번이나 다녀가면서 정말 봉사에 진심인 분들이었다. 대구 계성중학교 봉사동아리, 간디고도 동아리 청소년들도 많이 참여해 주었다. 우리 지역 분들도 작업반장을 도맡아 주던 분, 몸이 안 좋은데도 아들들을 데리고 몇 번이나 참여한 분, 새벽에 봉사하고 출근하는 분, 각자 자기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함께했다. 우리 집을 숙소로 사용해 봉사 후 저녁에 차 한잔 하면서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시간들도 참 좋았다.
귀에 피 나도록 많은 전화와 문의를 받아낸 한나와 9월에 이어준 은영에게, 집을 숙소로 내놓기도 하고, 음료 배달 천사를 하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자원해서 해 준 모두가 대견하고 정말로 감사하다. 군에서 정한 ’산청 방문의 해‘였는데, 정말 많은 분이 관광이 아닌 봉사를 위해 방문해 산청을 진하게 체험하고 갔다. 현재 오픈채팅방에도 312명이 아직도 나가지 않고 산청을 걱정해주고 있다.
재난이 지나가고 남은 생각
다섯 마리를 새끼들을 다 데리고 며칠 만에 집으로 돌아온 고양이 가족, 농막 지붕 위에 대피했던 개들, 진주까지 떠내려갔다가 구조돼 돌아온 소들.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야생동물들, 비인간 동물들도 함께 겪은 재난을 목격하고 생명에 대해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산청사람들, 전국에서 달려온 사람들, 재난 속에서 뜨겁게 만나고 회복을 위해 살아있는 공동체를 경험한 것 같다. 이런 봉사를 받을 줄은 몰랐다고, 앞으로 봉사하고 살고 싶다는 농민들, 어쩌면 도와준 일손보다 달려와준 사람들의 관심과 애정으로 희망을 얻었다는 말이 더 소중한 것 같다.
재난 이후 앞으로 아직도 일상으로 돌아가는 데 시간이 많이 필요한 분들을 어떻게 도와야 할지, 일상이 될지도 모를 재난을 어떻게 대비하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지역을 만들 수 있을지 함께 방법을 찾아가야 하는 시간이다.
가을이 오고, 풀밭이 된 들깨 밭 풀을 매고, 무씨도 넣고 배추 모종도 심고 있다. 아침에 아이들과 달리기도 하고, 취미 강좌도 다시 참여하고 있다. 소소한 일상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실감하면서, 아직 일상을 회복하지 못한 분들과 손잡고 나누면서 살아갈 것이다.
산청 햇살
_낮에는 농사짓고 마을에서 사람들과 놀고 배우고, 저녁에는 별처럼 매일 반짝이며 자라는 아이들과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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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