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7-2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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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뒤웅박 씻나락] "우리가 의료사협을 시작하게 된 이야기" 김명철
    우리가 의료사협을 시작하게 된 이야기 김명철 (경남산청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사진: Unsplash의 Shane Rounce 무엇보다 내가 행복하게 살고 싶었습니다. 그러려면 제 주변 사람들도 같이 행복해야 한다고 생각했고요. 그래서 젊은 시절부터 이야기해 오던 공동체를 느슨하게라도 실현하고 싶었습니다. 만드는 게 힘이 들긴 하지만 어느 정도 형성이 되고 나면 (마치 합창처럼) 거기서 느껴지는 ‘같이하는’ 것에 대한 행복감을 맛보고 싶었던 거죠, 시작은 안솔기마을이라는 생태마을에서 했습니다. 같이 음악회도 하고 소풍도 가고 운동회도 하고.... 그러다 마을이 너무 작아 같이 하는 것에 불편해하는 분들을 봤고 그러면서 안 하고 싶은 자유가 굉장히 중요하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주변의 마을들과 합창제도 해 보고 같이 운동회도 하고 했는데 이것도 역시 쉽지는 않더군요. 그러면서 규모가 좀 커야 개인의 자유도 보장하고 좀 더 다양한 일을 할 수 있겠다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러다 12년 전 산청에 한방 엑스포가 열린다길래 군민들을 대상으로 건강 강좌를 매달 마지막 수요일에 (마수걸이)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하니 자발적으로 도와주는 분들이 있어서 운영위를 만들었고 그 운영위 중 한 분이 구례 콩장을 다녀와서는 우리도 플리 & 프리마켓을 하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저도 그게 너무 좋겠다 싶어 동의했고, 그 길로 바로 주변 사람들에게 연락해서 모임을 열고 그 해에 목화장터라는 마켓을 시작했습니다. 제 생각엔 이 마켓이 생기면 촌에서 흩어져 살고 있는 사람들이 한 번씩 모여 안부도 묻고 정보도 나누고, 재미난 공연으로 문화적 갈증을 해소하고 음악적 재능이 있는 분들에겐 그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장소 제공도 되고, 또 혼자 먹기에는 많고 시장에 내다 팔기에는 어중간한 분들의 판매처도 되고, 직접 만든 공예품이나 옷 같은 것을 팔 수도 있고, 버리기에는 아까운 물건들을 팔거나 나눔도 할 수 있을 것 같아 적극적으로 찬성을 했죠. 그리고 무엇보다 제가 기대를 했던 건 맥주나 막걸리를 같이 마시면서 소통을 하다가 집으로 갈 때는 장 본 것을 들고 가는 독일의 어느 장터를 우리도 했으면 하는 것이었죠. 그렇게 장터를 주변 사람들과 같이 열고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일들이 일어났고 재미도 있었습니다. 우리 온라인 커뮤니티(밴드) 회원이 많아지다 보니(현재 5,075명) 모임을 만드는 것이 쉬워져 합창단, 지속가능발전협의회 등 원하는 많은 일들을 할 수 있게 되었죠. 그리고 이 장터의 힘으로 만들어진 지속넷(지속가능발전네트웍)에서 주최한 100인 원탁회의에서 의료사협(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을 만들자는 제안을 했었고 많은 분의 도움으로 이 일도 진행이 되었죠. 사실 의료사협을 만들자고 했을 때 제 개인적으로는 사회적 약자를 돕고 느슨한 공동체를 형성하고 싶어서였는데 만들고 보니 정말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할 수 있는 일들이 많더군요. 시작할 때의 슬로건은 ‘함께 만드는 건강, 더불어 행복한 삶, 지속 가능한 공동체’였는데 한의원이 그런대로 안정적으로 운영되니 지역에서 일어나는 필요한 곳에 도움을 줄 수도 있게 되었고 성심원 내에 장애와 비장애, 남녀노소를 아우르는 공동체를 만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고(실제로 시작을 한 상태이긴 합니다) 제대로 된 요양원이나 호스피스 병동을 포함한 힐링센터를 만들 수도 있겠단 꿈을 꾸기도 하고요. 그리고 즐거운 일들은 같이 나누고 힘든 일은 같이 돕는 이런 일들을 어느 정도 실현 하고 있는 것 같아서 좋습니다. 실제로 목화장터에 도움을 주기도 하고 지속넷과도 같이 협력하며 도와 주기도 하고 지역의 ‘그늘과 언덕’이라는 곳과도 같이 힘을 모아 작년의 수해복구와 피해자들의 몸과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일도 했고요. 이런 일들을 의료사협이라는 곳의 조직력과 (미미하지만) 재정적인 여유로 같이 행복한 공동체를 만드는 데 역할을 하는 것 같아 좋습니다. 지금은 재택의료센터도 만들어 열심히 방문 진료를 하는 중이고 가정의학과도 열어서 한방적으로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좋은 의사 선생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국가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아서 통합돌봄을 실천 중이기도 하고요. 이렇게 어쩌면 정신없을 정도로 짧은 시간에 많은 일들을 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주변 사람들이 좋은 강좌나 지역 소모임을 통해 아프기 전에 건강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또 혹시 아프면 믿을 수 있는 의료진과 주변의 도움으로 나을 수 있도록 하며, 설령 잘 낫지 않아 사망하게 되더라도 주변의 배웅과 도움을 받으며 존엄하고 평안하게 갈 수 있는 곳을 만들고 싶습니다. 물론 이런 일들이 다 실행이 안 될 수도 있겠지만 ‘가다가 중지하면 간만큼 이익이다.’란 생각으로 ‘오늘도 어떻게 하면 같이 행복해질 수 있을까?’란 생각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글쓴이 : 김명철 _경남산청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경남산청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홈페이지 https://gscmedc.org 사무국 055-973-0407 경남 산청군 산청읍 산청대로 1381번길 17 *산청 주민이 아니어도 조합원으로 가입하실 수 있습니다. 사무국으로 문의해주세요. [뒤웅박 씻나락 칼럼] 지리산 자락 삶이 우리 사회의 대안적 삶의 모습이 되길 꿈꾸는 <지리산人>의 바람을 담아, 지리산 곳곳에 계신 씨앗 같은 이들의 삶과 생각을 싣고자 합니다. 칼럼 글쓴이의 일부 주장이 <지리산人>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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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뒤웅박 씻나락
    2026-07-20
  • 자연을 닮은 농사, 농생태학 4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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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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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인
    • 기획
    2026-07-12
  • [안철환의 절기 이야기] 초복과 가까운 소서
    12지지로 6월은 미(未, 양)월로 양의 달입니다. 미월은 3월의 진(辰, 용)월과 9월의 술(戌, 개)월, 12월의 축(丑, 소)월과 함께 오행 중 토(土)에 해당하는 것으로 다음 계절로 넘어가는 과도기인데요. 이럴 때는 꼭 비나 눈이 옵니다. 그런 점에서 6월이 장마철인 건 가을을 준비하는 과도기인 셈이죠. 해가 가장 높은 하지에 달궈진 복사열로 미월이 가장 무덥지만 속으론 가을을 준비하는 겁니다. 그래서 미월은 음양 중에 음에 해당합니다. 여기서 가을은 이삭과 열매를 뜻하고 준비한다는 건 이삭과 열매의 근원인 암꽃 수꽃, 곧 성별의 근원이 잉태되는 것입니다. 사춘기 같은 것이죠. 그래서 음입니다. 음 중에도 동물의 양처럼 온순하면서 부드럽되 다산의 기운을 가지고 있어요. 벼를 비롯한 곡식들이 대부분 단일성, 곧 해가 짧아지고 일조량이 적어지면 꽃을 피우는 것도 음의 기운이 작용한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일거에 많은 이삭과 열매 맺는 걸 보고 다산의 상징인 양의 기운을 닮았다 했겠지요. 보통 음력 6월엔 소서 대서라는 절기가 들지만, 소서는 5월에 들 때도 있는데 올해가 그렇습니다. 장마의 기운인 소서가 일찍 오니 장마도 일찍 오겠으나 복사열이 충분히 달궈지지 않았으니, 장마가 심하지는 않을 것 같았습니다. 보통 하지 지나 일주일 안에 장마가 시작되지만 이번엔 하지 전 이틀동안 장마비처럼 비 내린 후로 다시 가물다가 곳에 따라 소나기 오더니, 어제 소서부터 장마가 본격 시작되는 낌새네요. 소서 다음날인 오늘도 새벽부터 빗소리 요란하다가 종일 비소식입니다. 핑계로 밭 일 다 접고 이 글 쓰고는 막걸리나 한잔 할까 합니다. 그래도 다음 주에나 음력 6월이 시작해 장마 다운 장마는 그 다음 주 대서쯤 가서 본격화할지도 모르겠어요.복날은 음력도 양력도 아닌 이른바 갑자력입니다. 하지 지나 세 번째로 오는 경(庚)일이 초복으로 올해는 양력 7월 15일 경인(庚寅)일입니다. 중복은 네 번째로 오는 7월 25일 경자일인데 이는 대서 때 소개하도록 하지요.소서는 그래서 이삭과 열매의 근본이 잉태되는 첫 꼭지점 절기입니다. 하지에 심은 벼가 무더위에 무럭무럭 자라 초복에 땅 속에서 이삭을 잉태하는 거죠. 근데 왜 복날을 개고기나 닭고기 먹는 날로 이해할까요?복(伏)자를 보면 사람 인(亻) 변에 개 견(犬) 자가 있어 개고기를 뜻하는 것 같지만 그게 아니고 머리를 조아리며 주인 옆에 숨는 뜻의 복 자입니다. 그럼 대체 누가 뭐가 무서워 숨는 걸까요? 바로 하지 지나 시작된 하늘의 가을 기운이 땅에 달궈진 여름 기운이 무서워 숨는 겁니다. 갑자력의 경일은 오행 중 금(金)으로 계절로는 가을을 뜻하지만 땅에 남아 있는 여름 기운이 무서워 숨을 만큼 더위가 극성을 부릴 때지요. 문제는 이 기운에 힘입어 벼만 자라는 게 아니라 벼 옆에서 벼의 사촌인 피도 자라 올라온다는 겁니다. 벼와 비슷하게 생겨, 뙤약볕에 두 눈 부릅뜨고 살펴가며 손으로 뽑아주어야 하니 피살이가 힘들었던 거지요. 해 본 사람 아니면 벼와 피는 구별하기가 쉽지 않거든요.종일 그러고 나서 진 빠진 몸의 원기 채워줄 고기가 필요한데 개고기 닭고기가 그 철엔 가장 좋았답니다. 소고기는 한여름엔 생풀만 먹였기 때문에 노랑내 나서 먹지 않았는데 그게 질산가리라는 독이거든요. 한여름에 먹는 돼지고기는 잘해야 본전이라고 지금도 말하는 것처럼 되도록 여름엔 잘 먹지 않았답니다. 반면 개, 닭고기는 탈은커녕 기운을 북돋았으니 국민보양식이었던 겁니다. 요즘이야 반려동물 문화로 개고기는 먹지 않지만, 닭고기는 치맥문화 때문인지 참 많이 먹지요. 오랜 세월 지난 후 고고학자들이 지금 시대에 닭 뼈가 많이 발굴되어 닭이 지배했던 시대로 오인할 거라는 어처구니없는 농담이 회자될 정도라니 웃기죠. 저는 그럽니다. 365일 고기 먹으면서 복날 또 고기 찾는다고요. 복날 고기는 피살이 한 사람이나 먹을 자격 있다고 하면 좀 과할까요? 저도 개를 키우지만 반려 동물 문화에 대해서는 살짝 우려가 있습니다. 솔직히 이런 현상은 수입 사료 때문에 가능했고 또 다르게는 공동체 문화가 사라진 배경 때문에 가능했던 거거든요. 누구보다 육식을 많이 하는 사람들이 개고기 먹는다고 흉을 볼 때는 뭐 묻은 게 뭐 묻은 걸 흉보는 꼴로 보였어요. 사실 우리는 원래 개보다는 소가 더 소중한 반려동물이었습니다. ‘워낭소리’라는 영화가 잘 표현했듯이 소는 일도 잘 하고 사람 말귀도 잘 알아들을 뿐만 아니라 초식이라 잡초도 해결해주고 거름도 제공해주니 개에 비해 그 가치와 정이 몇 배나 되잖아요. 반면 개는 짓기나 해 자칫 이웃과 쌈이나 일으키고 먹는 건 사람 먹는 것과 같아 가난한 사람은 개 키우길 엄두 내기 쉽지 않았어요. 차라리 쥐 잡아 먹는 고양이가 더 고마운 동물이었지요. 그래서 백성은 단백질 보충용으로 똥개를 주로 키웠는데 정 들까 이름도 짓지 않았답니다.사실 닭도 억울한 면이 없지 않을겁니다. 닭을 반려동물로 키우는 사람에게 들었습니다. 좀 기억력 없는 사람 흉볼 때 ‘닭○가리’같다고 하지만 닭이 얼마나 똑똑한데 그런 소릴 하냐고 열을 내면서 자기가 키우는 여덟마리 닭에게 각각 지어준 이름을 부르면 다 기억한다는 거에요. 따로 양계도 하지만 여덟마리는 특별히 가족처럼 키운다 하면서요. 재밌죠?저는 채식주의는 아니지만 요즘 세태를 보면 고기를 먹어도 너무 많이 먹어요. 인간이 맹수는 아닌데 말이죠. 잡식인 돼지도 풀이나 곡식을 더 좋아한답니다. 고기가 맛있고 기운도 북돋아주는 건 맞지요. 하다못해 소도 한 여름 더위 먹어 기운 없을 때 낙지를 먹이면 잘도 먹고 원기도 금방 돌아온답니다. 그렇다고 소에게 매일 낙지를 먹일 수는 없는 일 아니겠어요? 암튼 소서의 장마철은 진짜로 풀과 전쟁을 치르는 철입니다. 입하부터 풀 매기 시작한 부지런한 농부일지라도 이 시기 풀과 전쟁을 피할 수는 없지요. 그렇지만 풀은 전쟁을 치루고서라도 말살해야 할 농부의 적이 아닙니다. 풀이 없어지면 어찌 될까요? 맞습니다. 사막이 되는 겁니다. 그럼에도 풀을 없애려고 많은 노력을 합니다. 무서운 제초제를 풀약이라는 예쁜 이름을 붙여 소화제 먹듯 거침없이 뿌립니다. 썩지 않는 검은 비닐은 또 얼마나 우리 농경지를 뒤덮고 있습니까? 그래도 비닐은 수거해 재처리할 수 있지만 제초제는 정말 문제입니다. 아무 상관 없는 길가 풀에도 뿌려요. 살충제 농약은 잘못 먹더라도 빨리 위를 세척하면 살 수 있지만 풀약은 입안에 대었다가 뱉어내기만 해도 몸에 빨려 들어가 살 수 없는 무서운 약입니다.저는 풀이 전쟁의 대상이 된 건 단작 농사의 산물이라고 봅니다. 월동농사와 그루농사 같은 윤작, 혼작 농사에선 풀을 통제할 수 있어 풀과 공생할 수 있었지요. 게다가 경축(耕畜)농사, 이른바 가축을 같이 키우는 농사를 하면 풀은 사료가 되니 얼마나 요긴했겠어요. 제가 처음 친환경농사 배울 때 경축농사는 필수였습니다. 거름도 확보하고 풀 문제도 해결하는 순환농사의 핵심이었거든요.안쓰러운 건 도시에서 잘해야 3~5평 정도 되는 텃밭에 비닐멀칭하는 일입니다. 농촌에서 전업농업인이 경제활동하느라 단작으로 큰 농사짓는 데는 비닐멀칭이 불가피할 수 있지요. 아무리 직장생활로 주말에나 텃밭에 간다 해도 그 정도 규모면 농사는 풀과 전쟁하는 게 아니라 풀 매는 맛으로 하는 겁니다. 텃밭 농사 교육 때 저는 이런 말을 해 드리곤 합니다. 농사를 망쳐 시장에서 사다 먹으려 해도 살 수 없는 게 있으니 바로 풀냄새, 흙냄새라고 말이죠. 풀냄새는 이른바 피톤치드요, 흙냄새는 흙에 별보다 많은 미생물이 뱉어내는 냄새지요.그렇다고 풀을 놔두라는 말로 오해하지 말 길 바랍니다. 풀 매는 맛이라고 했듯 풀 매는 일은 말하자면 농사의 알파이자 오메가이거든요. 저는 솔직히 수확하는 재미보다 풀 매는 일이 훨씬 재밌더만요. 풀 매고 나서 말끔해진 밭과 시원해 할 작물들 감상하는 재미가 참 쏠쏠하지요.다음 대서 꼭지 때 제가 전통농업에서 배운 풀이나 물 관리를 위한 전체 밭 관리법을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사실 전통농업에서는 개별 문제에 대한 개별 대처법보다는 전체 시스템이 중요합니다. 풀이나 물 관리만이 아니라 병해충, 작물생육 관리가 하나의 시스템으로 관통하게 하는 거지요. * 대문사진 : 작년 논. 개구리밥이 벼가 먹을 질소질을 빼앗을까 걱정했지만 큰 영향은 없어 놔두었더니 이렇게 번져 피사리를 한 번만 했네요. 혹시 해서 오줌 웃거름 한번 더 주었습니다. 글을 쓴 안철환 선생은 온순환협동조합, 전통농업연구소 대표이고 경기도 안산에서 ‘산림생태텃밭 먹거리숲 농장’을 운영한다. 남은 음식물과 똥오줌, 커피 찌꺼기를 받아 직접 거름 만들기를 실천하고 있으며, 우리 토종 종자와 전통 농업 살리기에 열중하고 있다. 25년 전, 처음으로 심은 배추 씨가 3일 만에 싹 트는 걸 보고 ‘씨 안에 누가 있었구나!’ 깨닫고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우리가 먹는 배추는 단순히 물질적인 먹을거리가 아니라 나와 별 차이 없는 생명이며, 그래서 먹는다는 것은 생명을 먹고, 생명과 소통하고, 생명과 하나 되는 일이라고 믿는다. 쓴 책으로 《시골똥 서울똥》(2009), 《24절기와 농부의 달력》(2011), 《호미 한자루 농법》(2016), 《토종농법의 시작》(2020)이 있고, 옮긴 책으로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2004)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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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7-11
  • [뒤웅박 씻나락] "히가시카와에서 상상하는 n개의 산내" 누리
    히가시카와에서 상상하는 n개의 산내 누리 (지리산이음, 산내청년네트워크틈새 활동가) 반듯한 도로와 평야가 펼쳐진 히가시카와의 풍경. 네모반듯한 ‘칼각’으로 푸르고 광활하게 펼쳐진 논밭 사이를 국도가 가로지른다. 자연스럽게 시선이 이어지는 평원 너머에는 하얀 물감을 군데군데 칠해 놓은 듯이 머리가 희끗한 설산이 자리 잡고 있다. 지붕이 비스듬한, 서로 닮은 디자인의 집들이 길가에 점점이 서 있어서, 시력 검사 기계 속 언덕 위의 빨간 집이 떠오른다. 6월의 홋카이도, 일본 1호라는 다이세쓰 국립공원은 아직 눈에 덮여 있었다. 6월 첫 주를 일본 최북단 북해도의 시골마을 히가시카와정에서 보냈다. 일본의 기초잔치단체인 시, 정, 촌 중 정은 한국으로 치면 ‘읍’ 정도에 해당한다. 요즘은, 평소와 다른 풍경 속에서 쉬엄쉬엄 일하라고, 여행 대신 ‘워케이션’을 오라며 현대 도시인들에게 말을 거는 지자체들이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각지에 많다. 우리는 바다 건너 히가시카와에서 워케이션을 보냈다. 이번 여정에는 제주, 태백, 거창 등 전국 곳곳, 각자의 지역에서 작은 변화를 만들어 가고 있는 사람들 13명이 함께했다. 사람들의 말소리보다 새들의 지저귐이 훨씬 크게 들려오는, 한적한 히가시카와에서 13인의 한국인들은 서로 약속하지 않았는데도 마주쳤다. 미슐랭의 인정을 받았다는 작은 소바집에서, 행정에서 운영하는 공공도서관이자 복합 교류 공간인 ‘센토퓨어’의 서가에서, 동네에서 가장 큰 마트의 조리식품 코너 앞에서. 일행 중 누군가가 자전거를 타고 몇 번이나 다녀왔다는, 걸어가기에는 제법 먼 거리의 주먹밥집에 옹기종기 찾아가 아침 찬을 쓸어오기도 했다. 여정이 시작되기 전에 이미 먼저 다녀간 사람들의 평을 듣고 즐겨찾기 해 둔 구글 지도가 있었는데, 낯선 동네에서 동행들의 추천 멘트는 하나같이 강력했다. 한 사람이 대화 중에 ‘여기 다녀왔는데 좋더라’ 하면 사람들은 귀를 열고 열심히 들었다. 그게 재밌어서 '도장 깨기'하는 것처럼 여기저기 쏘다녔다. 내가 사는 남원시 산내면은 히가시카와에 비하면 (적어도 구글 지도에서는) 불모지에 가깝다. 일본에서 유일하게 25년 연속으로 인구가 늘어났다는 농촌 마을, 히가시카와의 성공 비결이 궁금한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구해 읽는다는 『히가시카와 스타일』 처럼 특별하고 고유한 ‘산내 스타일’ 따위를 정의한 책도 없다. “왜 여기 살고 계세요?”라는 말을 지금도 가끔 듣는다. 다른 곳으로 나가고 싶지는 않냐는 일말의 걱정 섞인 질문도 동네 어른들에게, 바깥에서 온 사람들에게 골고루 종종 듣는다. 나름대로 고민은 해 봤지만, 딱히 상대를 이해시킬 만한 뾰족한 대답도 없어서 얼버무리고 만다. 다만 몇 해 전 동네 한의원이 문을 닫고, 어린이집이 휴업을 하게 되면서 새로이 갖게 된 물음표는 이런 것이다. 여기가 없어지더라도 계속 산내에 살고 싶을까? 예를 들면, 이사 온 지 얼마 안 된 사람들이 여유 시간을 보내고 마음 맞는 커뮤니티를 찾아가는, 내 10대 시절이 담긴 품안작은도서관이 없어진 산내는 어떨까? 산내초등학교에는 4월이면 함께 추모식을 하고 노란 꽃을 심어 가꾸는 세월호 기억 꽃밭이 있는데, 꽃밭을 돌볼 어린이들이 없어진 산내는 어떨까? 지금 당장 나에게 필요 없는 옷과 물건들이 순환될 수 있도록 내어놓는 '득템'의 성지, 자원순환가게 나눔꽃이 없어진 산내는 또 어떨까? 눈인사를 건너뛰고 안부를 묻는, 서로의 맥락을 아는 이웃들이 떠난 산내라면? 그렇게 생각하면 내가 계속 산내에 살고 있는 이유, 없어지면 몹시 아쉬울 산내 고유의 아름다움이라는 건 있는 셈이다. 산내청년네트워크 틈새에서는 올해 그러한 연유로 다른 지역에 사는 또래 청년들에게 산내에 잠깐 살아보자는 초대장을 보내고 있다. 방식은 여러 가지다. '지금 도시에서 살고 있는 방식이 마음에 들어? 고민된다면 여기 와서 조금 다른 속도로 사는 마을을 경험해 보는 건 어때?'하고 말을 걸기도 하고, 산내에 사는 사람들의 삶 이야기를 거쳐서 마을을 소개하기도, 산내에서 더 예민하게 감각할 수 있는 사계절의 세계로 안내하기도 한다. 다가오는 7월의 프로그램을 위해 시도해 본 방식은 바로 함께 지도를 채워 나가는 작업이다. 산내를 가로질러 흐르는 람천과 임천의 물줄기를 따라, 지리산의 푸르른 산줄기를 따라 평면 지도 위를 짚어 나가다 보면 잊고 있던 장소 속 이야기들이 되살아난다. 산내 구석구석에 얽힌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 조각도 받았다. 내가 일하고 가꾸는 지리산문화공간 토닥은 누군가에게 카페 대신 소중한 '무대'로 의미화되었고, 물 흐르는 소리의 크기로 지금 계절이 비가 많은지, 가문지 가늠할 수 있는 해탈교는 누군가가 밤하늘 가득 총총한 별을 올려다보며 산내에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은 곳이었다. 이럴 때는 같은 산내에 살고 있는 것 같아도, 100명이 경험하는 100개의 산내가 다 각기 다를 것이라는 깨달음이 찾아와 아득해지기도 한다. 수학이든 무엇이든 정말 내가 잘 이해하고 있는지 판단하려면 다른 사람을 가르쳐 보라고 하는데, 우리는 스스로 무지를 깨닫고 열심히 공부하는 중이다. 불특정 다수의 손님에게 말을 걸어보기로 한 덕분에, 오히려 내가 산내를 많이 알게 되었다. 센토퓨어의 '너의 의자' 프로젝트 전시 코너. 주민과 여행자,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히가시카와의 복합 교류공간 '센토퓨어'의 정문으로 들어가면 이 지역이 자랑하는 '너의 의자' 프로젝트 컬렉션이 명당 자리를 차지하고 서 있다. 2006년부터 2026년까지, 히가시카와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본인의 이름과 생년월일이 새겨진 세상에 하나뿐인 수제 의자를 선물 받는다. 매년 그해만의 맞춤 디자인이 선정되고, 제작 또한 히가시카와에 위치한 목공방 중 하나에서 맡는다. 이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라는 아이들은 의자를 통해 소속감을 느낄 것이고, 학업이나 취업 등으로 다른 지역에 가게 되어도 마을에는 여전히 내 자리가 있다는 안정감을 느끼리라 어렵지 않게 짐작해 볼 수 있다. "태어나 줘서 고마워, 너의 자리는 여기에 있단다." 적어도 그런 의미를 담아 기획했다는 모양이다. '우리'라는 말에는 울타리 안의 요소들을 마법처럼 하나로 묶어 주는 힘이 있고, 동시에 그 바깥의 것들을 밀어내는 배타성도 숨어 있다. 그런 '너의 의자'의 의미가 확장된 순간이 있었다. 일본인들에게 큰 상흔으로 남은 3.11 동일본 대지진이다. 2만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죽거나 실종된 참사의 날에도 피해 지역인 도호쿠 지역에는 104명의 아이들이 태어났다. 800km 떨어진 북해도에서 보내온 '희망의 너의 의자' 104개에는 "다부지게 미래로."라고 적혀 있었다고 한다. 히가시카와 공민관 앞에 나란히 선 어린이용 자전거들. 히가시카와에서 보낸 시간 동안 먼 길을 떠나온 몸과 다르게 마음은 자꾸 고향으로 돌아가, 산내가 어떤 마을이기를 바라는지 상상하게 되었다. 숙소와 카페에 이 마을에서 만드는 가구와 잔, 소품들이 자연스레 비치되어 있었던 점, 거리낌없이 문턱을 넘고 자리 잡을 수 있는 장소가 있다는 점은 정말이지 마음에 들었고, 어딜 가든 외국에서 온 사람에게 편하고 친근하게 말 걸어 주는 점도 괜찮았다. 반면 마을버스를 타려면 전날 예약해야 하는 시스템은 잠시 다녀가는 입장에서는 높은 장벽으로 느껴졌고, 외식 메뉴를 고를 때에 채식 등 다양한 선택지가 없는 부분은 다소 아쉬웠다. 히가시카와에 함께 간 사람들은 바다를 건너가서도 참 자기다웠는데, 농사를 짓는 사람은 줄기가 아직 여린 새싹 작물을 어떻게 보호하며 키우는지 유심히 들여다보았고, 산을 타는 사람은 새벽같이 뒷산을 오르며 울창한 나무들과 새를 만나고 왔고, 일본 각지를 누비며 탐방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사람은 그곳에서도 미니 탐방 루트를 만들어서 동행들을 능숙하게 가이드했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고. 13명이 만난 13개의 히가시카와가 거기 있었다. 산내 마을 구석구석에도 방문자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시선이 더해지고, 경험이 쌓여 나갈 것이 기대된다. n명의 사람들이 만나는 n개의 산내. 지금 '우리'를 넘어 누구에게 손을 내밀고, 어떤 의자를 내어줄 수 있을까? 거창하지 않더라도 함께 궁리하고, 무턱대고 실천하고 싶다. 틈새에서 진행한 2주살이 캠프 참여자들의 그날 하루를 돌아보는 엽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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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7-06
  • [푸른목소리] 오늘날 민주주의 안겨 준 헤아릴 수 없는 희생 기억해야
    [푸른 목소리] 오늘날 민주주의 안겨 준 헤아릴 수 없는 희생 기억해야 안녕하세요? 산청 간디고 ‘역사사랑’입니다. 여러분은 6월 10일이 어떤 날인지 알고 계시는가요? 오늘은 많은 시민들이 민주주의를 위해 거리로 나섰던 6월 민주항쟁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먼저, 6월 민주항쟁이 일어나게 된 배경을 살펴보겠습니다. 1980년 5·18 민주화운동 이후에도 국민의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당시 전두환 정권 아래에서 국민은 대통령을 국민이 직접 선출하는 대통령 직선제를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1987년 4월 13일, 전두환 대통령은 개헌 논의를 중단하고 기존 헌법을 유지하겠다는 '4·13 호헌 조치'를 발표했습니다. 이에 국민의 불만은 더욱 커졌고 민주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전국으로 확산하였습니다. 그렇다면 6월 민주항쟁은 어떻게 전개되었을까요? 같은 해 1월, 서울대학교 학생 박종철이 경찰의 고문으로 사망한 사건이 알려졌습니다. 정부는 사건을 은폐하려 했지만, 진실이 밝혀지면서 국민의 분노는 더욱 커졌습니다. 이후 종교인, 노동자, 학생, 농민 등 다양한 계층이 민주화를 요구하며 시위와 집회를 이어 갔습니다. 그리고 6월 9일, 연세대학교 학생 이한열이 시위 도중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의식을 잃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 소식은 전국에 알려졌고 국민의 분노는 더욱 거세졌습니다. 결국 6월 10일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가 주도한 국민대회가 열리면서 6월 민주항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학생들뿐만 아니라 직장인, 종교인, 노동자, 시민 등 수많은 사람이 거리로 나왔고, 직장인들은 점심시간이나 퇴근 시간을 이용해 시위에 참여했습니다. 약 20일 동안 전국 곳곳에서 수많은 집회와 시위가 이어졌으며 국민은 민주주의를 위해 한목소리를 냈습니다. 이러한 국민의 노력은 결국 큰 변화를 만들어 냈습니다. 1987년 6월 29일 정부는 '6·29 민주화 선언'을 발표하였고, 대통령 직선제가 수용되었습니다. 이로써 국민은 직접 대통령을 선출할 수 있게 되었으며, 기본권 확대와 지방자치, 언론과 표현의 자유 보장 등 민주주의 발전의 중요한 계기가 마련되었습니다. 비록 이한열 열사는 7월 5일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희생과 수많은 시민의 노력은 대한민국 민주주의 발전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6월 민주항쟁은 민주주의가 당연하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의 참여, 용기를 통해 만들어지고 지켜진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습니다. 수많은 시민이 부당한 현실에 맞서 목소리를 냈기에 지금의 민주주의에 이르렀습니다. 최근 우리 사회는 12·3 비상계엄 사태를 겪으며 민주주의와 헌법의 가치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6월 항쟁에 투쟁하고 용기를 낸 시민들이 있었기에, 민주주의가 있었기에 세상은 바뀌고 있습니다. 12.3 불법 비상계엄과 내란을 막고 민주주의를 짓밟은 윤석열을 탄핵한 건 우리 민주주의의 성숙함을 보여 주었습니다. 우리는 이로써 부당한 일에 침묵하지 않는 용기, 서로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자세를 배웠습니다.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함께 행동하고, 여러 사회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연대합시다, 투쟁합시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민주주의를 당연하게 여기기보다, 그것이 많은 사람의 노력과 희생으로 이루어졌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상으로 6월 민주항쟁에 대한 간마디를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글쓴이 : 김규빈 _경남 산청 간디고등학교 2학년 안녕하세요. 저는 산청 간디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김규빈입니다. 저는 동아리 ‘역사사랑’의 부원으로서, 학교 식구들이 모두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식구총회에서 ‘간디인 한마디’, 줄여서 ‘간마디’라는 시간을 통해 6월 민주항쟁에 대해 제 생각을 더해 소개했습니다. 제가 속한 역사사랑 동아리는 5·18 민주화운동, 6월 민주항쟁 등 우리가 기억해야 할 역사적 사건들을 간마디를 통해 식구들에게 알리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4·19 혁명의 정신을 담은 4·19 마라톤을 기획하고 진행하며, 역사 기행을 통해 지역의 역사 현장을 직접 찾아가 배우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산청의 도천서원, 단성향교, 사직단 등을 방문했고, 학기 말에는 동아리 회지를 만들기도 합니다. 저는 올해 역사사랑에 신입 부원으로 들어왔습니다. 1학년 때 보경 쌤의 한국사 수업을 들으며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역사사랑 활동을 통해 그동안 잘 알지 못했던 역사적 사건들을 배우며 사회 문제를 더 깊이 이해하고 싶었습니다. 6월 민주항쟁은 많은 시민들이 민주주의를 위해 용기 있게 목소리를 낸 중요한 역사적 사건입니다. 우리는 그 과정에서 희생하고 헌신한 사람들을 기억해야 하며, 그들의 노력 덕분에 오늘날의 민주주의가 발전할 수 있었음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그래서 그 의미를 식구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 간마디에서 6월 민주항쟁을 소개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간마디가 식구들에게 6월 민주항쟁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고, 우리 사회와 역사에 더 많은 관심을 갖는 출발점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지리산人의 기획 칼럼 [푸른목소리]에는 지리산 둘레에 사는 청소년-어린이의 생태감수성이 담긴 글을 싣습니다. '이렇게 살아야 해'라고 말하는 사회에 '이런 삶도 괜찮잖아?'라든가 '난 이렇게 살고 싶어' 같은 생각거리를 주는 글, 자연의 생명들을 대신하여 그들의 목소리를 내는 글, 우리 마을의 아름다운 자연과 이를 지키는 사람들에 대한 글을 환영합니다. >> 지리산人 푸른목소리 기고 문의 : mhgh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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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7-06
  • [곰주옥 X 인간주옥] ⑤ 곰과 커피 사이, 내가 몰랐던 세계
    구례곰마루쉼터(이하 곰쉼터)에 사육 농장에서 살던 곰들이 이주한 건 2025년 9월 말이다. 나는 곰들이 지리산에 살기 위한 목적이 아닌 이유로 구례에 오게 되었다는 점이 특별하게 느껴졌다. 이 곰들은 태어나서 지금까지 뜬장에 살았다고 하고, 영양 상태가 좋지 않고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눈이 보이지 않거나 귀가 들리지 않는 곰들도 있다고 했다. 나에게 곰은 원래도 관심이 가는 존재이지만, 이러한 상황을 들으니 더 마음이 쓰였다. ↑ 이가 없어서 모든 음식을 잘라서, 익혀서, 분쇄해야 먹을 수 있다는 ‘BM-22’ 방 앞 안내판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곰곰학교’(곰처럼 곰곰이 생각하는 학교, 2025년 10월 구례에서 운영)를 열었고, ‘반달곰을 사랑하는 1%’(이하 반달곰1%)를 구례뿐 아니라 하동까지 확대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다. 이 곰들의 일상을 궁금해하는 건 나만이 아니었다. 지난 1월, 구례 반달곰1% 가게 주인들과 곰쉼터를 방문했다. 곰들의 상황을 설명하던 최신영 수의사가 이런 말을 했다. “반달곰 1%에 카페들도 참여하나요? 그럼 커피박을 모아주실 수 있을까요? 여기 곰들에게 커피박은 좋은 풍부화 재료, 그러니까 사육농장에 있으면서 퇴화된 곰의 감각과 근육을 발달시키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거든요.” 곰들을 위해 할 일이 있다는 사실이 기분 좋았다. 반달곰 1% 가게 주인들도 ‘그거라면 할 수 있다’고 동참 의사를 밝혔다. 하기로 마음을 굳히자, 이왕이면 반달곰1% 가게뿐 아니라 관심 있는 카페에도 알리는 캠페인을 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캠페인 문구를 정하고, 그림과 디자인을 요청했다. 웹자보를 SNS에 올리고, 자주 가는 카페 주인들을 만나 취지를 설명하며 참여를 부탁했다. ↑ 캠페인 ‘곰에게 가는 커피향’ 웹자보 “일주일에 한 번씩 수거할게요. 커피박을 말려서 보관만 해주시면 됩니다.” 흔쾌히 해보겠다는 분도 있었지만, 커피박을 말리는 게 쉽지 않다고 주저하는 분도 있었다. 웹자보를 보고 연락한 분도 있었고, 카페를 운영하지 않지만 커피를 마신 후 나오는 커피박을 일반쓰레기로 버릴 때마다 마음이 안 좋았다며 함께 하겠다는 분도 있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모인 카페 10곳과 개인 1명이 ‘곰에게 가는 커피향’ 활동을 시작하였다. ↑ 곰쉼터에 전달된 마른 커피박 ‘곰에게 가는 커피향’ 활동은 100% 자원활동이다. 특히 매주 월요일마다 커피박을 수거해 곰쉼터에 전달하는 일에 나서준 이영숙 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한번 해볼게요’로 시작한 이영숙 님은 매우 성실하게 활동했고, 마치 곰이 된 것처럼 커피박의 상태를 점검했다. 이영숙 님은 커피박에 곰팡이가 생기는 것을 가장 경계했다. 커피박은 충분히 말린다고 해도 플라스틱 통이나 비닐에 담아두면 바닥에서 곰팡이가 피었다. 이런저런 고민 끝에 천으로 커피박 수거 가방을 만들기로 했다. ↑ 커피박 수거 가방 만들기 회의에서, 참여자 유현숙 님이 직접 만든 가방을 들어 보이며 설명하고 있다. 커피박 수거 가방을 만들기 위해 바느질할 분을 찾고, 가방 재료를 고민하고, 실크스크린 작업을 도와줄 분들을 섭외했다. 여러 사람의 정성과 수고 덕분에 재활용 천과 커피 자루로 ‘커피박 수거 가방’이 완성되었다. 6월 8일, 커피박 수거 가방을 들고 곰쉼터에 갔다. 그날 함께한 분들은 곰을 직접 본 것이 처음이라고 했다. 곰들이 얼마나 커피박 향기를 좋아하는지 커피박이 든 자루를 껴안고 뒹굴었으며, 방사장으로 나가지 않던 곰도 커피박 향기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미소를 지었다. 임옥주 수의사는 커피박 자루를 넣어주면 곰들이 냄새를 맡고 탐색하거나 껴안고 굴리는 행동이 늘어나는데, 이런 자극이 곰들의 감각과 근육을 깨우는 ‘풍부화 효과’라고 설명했다. ↑ 커피박 수거 가방 만들기 참여자들이 곰쉼터 답사를 마친 뒤 기념 촬영을 했다. 왼쪽부터 실크스크린 작업을 맡은 임산하 님, 커피 자루를 기부해 준 한지인 님, 유현숙 님과 함께 가방을 만든 이정훈 님, 필자, 곰쉼터에서 근무하는 임옥주 수의사. 곰쉼터 방문 후 커피 이야기가 나왔다. 25년째 커피와 인연을 맺고 있다는 한지인 님이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나폴레옹이 머물렀던 세인트헬레나 섬이 커피로 유명하다는 이야기, 윤리적 논쟁이 있지만 코끼리 배설 커피가 있다는 이야기까지 이어졌다. 흥미로운 이야기였지만, 나에게 더 크게 다가온 것은 따로 있었다. 커피가 콩과 식물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네? 커피가 콩과가 아니라고요? 그럼 왜 커피콩이라고 해요. 커피나무 열매가 체리와 같다고요? 브릭스가 12나 되니 단 것을 좋아하는 곰들도 좋아할 거라고요?” 내 생애에서 지금처럼 커피에 관심을 가진 적은 없었다. 나는 커피를 마시면 설사를 한다. 어떤 때는 커피 향만 맡아도 배가 아플 때가 있다. 평생 마셔본 커피는 세 모금 정도다. 그런 내가 커피박을 수거하고, 커피 향을 맡고, 커피 이야기를 흥미롭게 듣고 있다니 묘한 일이다. 나는 이제 커피를 마시지 않아도, 커피와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곰을 통해 커피를 다시 배우고 있다. 관심은 연결에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때는 아무 의미 없이 버려지던 커피박이 이제는 곰들의 감각을 깨우고 삶을 넓히는 도구가 된다. 내가 몰랐던 커피의 진실은 맛이나 향이 아니라, 이렇게 다른 생명과 이어지는 가능성이었는지도 모른다. 온통 오해뿐이던 커피에 대한 내 생각을 바로잡아준 곰주옥과 그 친구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이 작은 연결이 더 많은 생명과 사람에게 이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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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곰주옥X인간주옥
    2026-06-23
  • [안철환의 절기 이야기] 가뭄에서 장마로 이어지는 하지
    해가 제일 높은 하지가 지나면 해 입장에선 가을로 접어 든 것임에도 하지 지나야 무더위가 찾아오니 왜 그럴까요? 다름아닌 복사열 때문인데요, 하지 때까지 달궈진 복사열이 하지 지나 소서 대서의 복 더위로 드러나는 겁니다. 게다가 몬순 기후의 영향으로 북태평양의 높은기온과 습한기운이 찾아와 무더운 장마가 시작되지요. 반면 하지 전엔 가뭄이 찾아옵니다. 이 가뭄이 참 이해가 가질 않았습니다. 이 시기의 속담으로 가뭄에 비 그칠 날 없다는 말이 궁금증을 더 했지요. 실제로 일주일이 멀다하고 비가 와도 흙을 뒤집어보면 먼지만 일어요. 왜 그럴까요? 비가 찔끔 와 오히려 흙속 수분마저 빼앗아 가기 때문입니다. 일종의 모세관현상인데요, 옛날에 문창호지를 바르고 입으로 물을 분사해주면 창호지가 마르면서 빳빳해지는 현상과 같아요. 비 온 뒤 땅이 굳는다는 말과도 같지요. 그런데도 숲 속 나뭇잎들의 녹색은 더 짙어가니 무슨 조화일까요? 다들 아시겠지만 나무들은 일종의 물탱크입니다. 물 저장고죠. 사람도 몸의 70%가 물인 것처럼 나무도 50%~70%가 물이에요. 그 중 뿌리와 줄기, 가지의 비중이 크죠. 잎사귀도 적지 않으나 잎은 물 저장보다 증산작용으로 물을 퍼 올리는 ㅅ펌프 기능이 큽니다. 이 시기 녹색이 짙어진다는 것은 그만큼 많아진 잎들이 물을 엄청 빨아대면서 자기 몸 키우는 데 쓰느라 내뿜지는 않고 저장만 하니 땅속에 물이 마르게 되는 겁니다. 물론 비도 적게 오지만 그보다 더 많이 퍼올리니 가물 수밖에요. 반면 하지 지나 장마기에 들면 비도 많이 오지만 나무도 적당히 자라 저장용량이 다 차서 물을 대기로 뿜게 되니 이래저래 물 많고 습한 철로 접어들게 됩니다. 하지전삼, 하지후삼이라 했습니다. 하지 삼일 전이 벼 모내기 마지막 적기고 삼일 후는 더 이상 넘겨서는 안되는 마지노선이란 뜻입니다. 물 사정이 좋은 곳은 일찍 하지만 아무리 물 사정이 좋지 않다해도 하지를 넘겨선 안된다는 뜻이겠죠. 벼는 단일식물이라 해서 해가 짧아지면 이삭(꽃)이 맺히는데, 하지 지나서까지 늦게 심으면 제대로 몸을 키우지 못한채 이삭을 올리니 수량이 확 떨어집니다. 미숙 상태에서 짝짓기하면 2세가 부실한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또 다른 의미로는 하지 이후엔 장마가 시작되니 모낸 후 벼가 활착하기 딱 좋은 때라는 겁니다. 이게 천수답인데요, 왠지 천수답이라고 하면 미개한 농법 같지만 그게 아니라 장마비를 활용한 지혜로운 농법인 것입니다. 그래서 기우제를 단오나 하지에 지냈으니 그 때 되면 비가 온다는 걸 알았기 때문일 겁니다. 그 다음 하지에 모내는 결정적인 이유는 그 때 되면 밀, 보리와 이모작이 가능하다는 사실입니다. 밀, 보리 수확하고 이어 벼를 심을 수 있는 적기이거든요. 이런 조건 때문에 밀, 보리가 우리에겐 쌀 못지않은 소중한 식량이었습니다. 먹을 게 없어 먹는 구황식량이 아니라 여름에 먹는 필수 주식이었던 겁니다. 그래서 저는 쌀만으로 주식을 삼으면 위험하다고 생각하지요. 베트남이나 필리핀 같이 벼만 갖고 이모작 삼모작 하는 나라에서나 쌀만으로 주식이 가능한겁니다. 옆에선 벼 수확을 하는데 옆에선 모내기하는 나라이니 진정한 쌀 나라인거죠. 쌀만으로 보리고개를 넘겠다는 야심찬 의지로 만든 게 통일벼인데요, 그래서 저는 이게 큰 오산이었다고 평가합니다. 통일벼는 수량 많은 알랑미와 아끼바리 같은 찰진 쌀과 교배한 잡종쌀인데요, 문제는 얘는 밀, 보리 수확 전에 심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통일벼 수량이 재래벼에 두배 가까이 되서 다들 놀랐지만 밀, 보리를 심지 못하면 그 수량이 많다는 게 얼마나 의미 있겠습니까? 그 다음으로 결정적인 문제는 통일벼는 자가채종이 안된다는 점이에요. 매년 분양 받아 심어야 됐습니다. 이게 농부로선 받아들이기 힘든 거였어요. 씨앗 농사가 근본이었거든요. 남의 씨 받아 자식농사를 지을 수는 없잖아요? 환경적으로도 문제였습니다. 밀, 보리와 이모작을 할 수 없으니 벼를 수확하고 나면 논이 일년 중 반은 사막인 거에요. 땅이 반은 놀고 있으니 토지의 경제적 효율성이 떨어지는 것도 문제겠죠. 그런데 왜 통일벼의 신화는 여전할까요? 사실 통일벼 자체는 보급된지 10년도 안되어 망했어요. 도열병이라는 게 번져 실패한겁니다. 일찍 심다보니 냉해에도 약했구요. 무엇보다 통일벼만 심게 한 단작방식이 위험을 더 키웠습니다. 원래 농가에선 한가지만을 심지 않았어요. 적어도 4~5가지 심어 먹었는데요, 그래야 흉년을 피할 수 있었답니다. 날씨에 따라 못 되는 놈 있으면 잘 되는 놈 있어 늘 평작은 거둘 수 있다는 얘기죠. 이는 기후위기로 인한 식량위기를 대비할 수 있었던 조상님들의 대표적인 지혜였습니다. 단작 방식은 기후위기에 한방에 무너질 수 있는 위험한 농사였던 겁니다. 대표적인 사건이 아일랜드의 감자역병으로 주식이 사라져 100만명 넘는 사람이 아사한 일입니다. 감자 원산지인 안데스 고산 지대에선 아직도 집집마다 여러종류의 감자를 심어 먹고 있는데 이유는 마찬가지라는 거죠. 그런 점에서 지역마다 대표적인 한가지 종류의 벼만 심는 지금의 농사 방식이 걱정이 아닐 수 없는 거에요. 그런데 아무튼 역설적이게도 통일벼 이후 육종기술이 늘어 신품종 개발에 성공해 알랑미 계통이 아닌 찰진 쌀 계통의 벼들이 자리잡게 됩니다. 그래서 통일벼 신화가 이어진 거지요. 여전히 종자는 사야되고 밀, 보리와 이모작이 안되는데도요. 더 아쉬운 사실은 통일벼 이후 개발한 종자들이 다 일본쌀 계통이라는 사실입니다. 일반미라 불렸던 아끼바리에서부터 최고의 밥맛(?)이라 불리는 고시히까리, 이누히까리 같은 쌀들입니다. 다행인 것은 아끼바리는 추청벼라 해서 들어온지 오래돼 저작권이 없어졌으나 다른 쌀들은 저작권이 있어 적지않은 종자 사용료를 일본에 주고 있다는 점입니다. 몇 해전 바람 분 반일 정서가 농촌에까지 번져 이미 우리쌀이 된 추청벼도 불매운동의 영향을 받은 웃지 못할 일도 있었지요. 그런데 왜 일본쌀 계통의 찰진쌀이 우리밥상을 차지했을까요? 이건 순전히 일제시대 잔재라고 저는 봅니다. 백미주의를 일제가 퍼뜨린거에요. 알랑미나 보리밥은 가난한 사람들이나 먹는 천한밥으로 낙인을 찍은 거죠. 한번은 베트남 가서 알랑미밥을 먹는데 20년 넘게 현미쌀을 먹어서 그런지 저는 거친 알랑미밥이 참 맛있는 거에요. 그 모습을 본 가이드가 반가워서 하는 말이, "알랑미 먹고 끼는 방구를 뭐라 하죠? " 하네요. 다들 깔깔 웃고 나니 이 사람 알랑미 예찬이 거침없이 이어집디다. 더운 지방 사람들은 알랑미를 먹어주어야 한다, 세계 대부분의 쌀은 알랑미다 등등 하면서 말이죠. 어쨌든 일제는 물러갔지만 백미주의는 강하게 남아 우리밥상과 우리입맛과 우리의식을 사로 잡았습니다. 구수하고 깊은 맛을 내는 우리 토종쌀과 밀, 보리는 외면되고 말았지요. 구수하고 깊은 정이 있는 우리의 인심도 전설이 되면서 말이죠. 하지에 또 빠뜨릴 수 없는 얘기가 그루농사입니다. 요즘은 이도 보기 힘든 일이 돼버렸는데요, 뭐든 빨리 심고 비닐하우스 같은 철을 잊은 농사가 퍼져 그렇습니다. 그루농사 또는 그루갈이라고도 하는데요, 지난 가을이나 이른 봄에 심은 작물 수확하고 남은 작물의 그루(밑둥)를 갈아 엎고 심는 농사를 말합니다. 밀, 보리 수확하고 심는 벼도 그렇구요, 마늘, 양파, 시금치처럼 월동한 작물과 이른 봄에 심은 감자 배추 상추 수확 후 심는 콩, 팥, 들깨, 고구마, 조 같은 작물입니다. 이런 작물은 일찍 심으면 자칫 웃자라거나 봄 가뭄 피해를 볼 수 있어 하지 지나 심는 게 좋습니다. 이런 월동농사와 그루농사는 우리 윤작농사의 꽃이라 할 수 있으며 얼마든지 지금도 되살릴 필요가 있고 되살릴 수 있는 전통농업의 지혜라고 저는 봅니다. 그외 하지는 참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절기입니다. 그래도 길면 지루하니 여기서 그만 하지 하고 마치렵니다. 감사합니다. 글을 쓴 안철환 선생은 온순환협동조합, 전통농업연구소 대표이고 경기도 안산에서 ‘산림생태텃밭 먹거리숲 농장’을 운영한다. 남은 음식물과 똥오줌, 커피 찌꺼기를 받아 직접 거름 만들기를 실천하고 있으며, 우리 토종 종자와 전통 농업 살리기에 열중하고 있다. 25년 전, 처음으로 심은 배추 씨가 3일 만에 싹 트는 걸 보고 ‘씨 안에 누가 있었구나!’ 깨닫고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우리가 먹는 배추는 단순히 물질적인 먹을거리가 아니라 나와 별 차이 없는 생명이며, 그래서 먹는다는 것은 생명을 먹고, 생명과 소통하고, 생명과 하나 되는 일이라고 믿는다. 쓴 책으로 《시골똥 서울똥》(2009), 《24절기와 농부의 달력》(2011), 《호미 한자루 농법》(2016), 《토종농법의 시작》(2020)이 있고, 옮긴 책으로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2004)이 있다. * 대문사진 : 모든 게 푸르른 하지에 누렇게 익어가는 보리는 철의 변화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우리의 풍경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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