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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뒤웅박 씻나락] "AI(인공지능) 시대와 대안적 삶" 강수돌
    AI(인공지능) 시대와 대안적 삶 강수돌(고려대 명예교수, 하동군민) 사진: Unsplash의Matthew Henry 2025년 10월 말, 경주 APEC 회의장에서 ‘영웅’으로 떠오른 이가 있다. 세계 시가총액 1위를 달리는 엔비디아(NVIDIA)의 최고경영자(CEO) 젠슨 황이다. 대만 출신으로 10살 때 미국으로 건너가 세계 최고 기업의 대표가 되었으니 얼핏 ‘인생 성공’처럼 보인다. 그가 영웅처럼 된 것은 ‘26만 장 GPU’ 때문이다. 그는 APEC 회의장에서 이재명 대통령,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이해진 네이버 의장 등 한국 주요 기업 총수들 앞에서 최신 GPU 26만 장 공급이라는 “깜짝 선물”을 약속했다. GPU란 그래픽처리장치(Graphics Processing Unit), 즉 인공지능(AI) 시대의 전략 자산인데, AI 개발에 필수품이라 한다. 그런데 말이 선물이지 GPU 하나가 약 1억 원짜리 상품이다. 세계 각국이 ‘새로운 먹거리’랍시고 AI 경제에 사활을 거는데, 그 핵심이 바로 이 그래픽처리장치(GPU)를 얼마나 확보하는가의 문제기 때문! 한국이 26만 장의 GPU를 확보함에 따라 미국과 중국에 이어 ‘세계 3위 GPU 확보국’이 된다며, 모처럼 정부, 재벌, 국민이 웃으며 함께 손뼉을 친다. 이 26만 장의 GPU는 정부가 최대 5만 장, 삼성전자, 현대차그룹, SK그룹이 각기 5만 장씩, 네이버클라우드가 6만 장을 사용할 것이라 한다. 그렇게 해서 회사마다 AI를 활용한 공장이나 상품을 만들 모양새다. 그러나 과연 이것이 계획처럼 진행되면, ‘국민주권정부’ 아래 온 국민의 삶이 좋아지는 것인가? AI 경제가 발달하면 이재명 정부가 약속한 대로 ‘국민행복 사회’가 될 것인가? 내 대답은 불행히도 ‘아니올시다!’이다. 왜? 그 이유 중 딱 한 가지만 집중해 보자. 그것은 바로, 전력 문제다. 왜 그런가? 우선, AI 시스템은 자체 학습과 추론 수행 시 대규모 데이터 처리와 고성능 컴퓨팅 능력이 요구되어 ‘데이터센터’ 안에 탑재된다. 따라서 AI 확대는 결국 데이터센터의 소모 전력을 폭발적으로 증가시킨다. (물론, 가솔린 자동차에 대한 ‘친환경적’ 대안으로 부각된 전기자동차(EV), 각종 빌딩의 난방·냉방 장치, 산업의 전기화 등도 전력 소비 증가 요인인데, 여기서는 AI와 직접 연결된 데이터센터에 초점을 맞춘다.) 국제에너지기구(International Energy Agency, IEA)는 최근 발간한 ‘Global Energy Review 2025’에서 세계 데이터센터 전력 사용량이 2022년 기준 460TWh에서 2026년에는 1,050TWh로 2배 이상 증가할 것이라 보았다. 또, 글로벌 에너지 인텔리전스 기관인 Rystad Energy는 한 보고서에서 데이터센터, 전기자동차(EV), 난방·냉방 등 전력 수요 확대 요인으로 인해 향후 10년간 전 세계 전력 수요가 최대 30%까지 급증할 수 있다고 보았다. 미국의 경우, 2030년까지 데이터센터 전력소비가 현재보다 두 배 이상 늘어날 것이라 한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국내 데이터센터는 2022년 9월 기준 147개소에서 2029년엔 784개소로 늘어날 예정이다. 이에 따라 같은 기간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 역시 1.8GW에서 2029년 41.5GW까지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갈수록 데이터센터의 전력 수요가 커질 터인데, 핵발전소 하나가 1GW의 전력을 생산한다고 보면 향후 ‘초대형 데이터센터’ 하나만 해도 7개의 핵발전소가 필요(7GW)할 것이란 견해도 있다. 한편, AI 데이터센터 하나가 ‘도시 100만 가구’에 맞먹는 전력 소비를 한다고도 한다. 그 정도로 데이터센터는 ‘전기 먹는 하마’다. 산업통상자원부의 예측처럼 2029년까지 신규 데이터센터 6~700개나 추가 건설될 경우, 국내 데이터센터의 필요 전력량은 약 50GW까지 늘 전망이다. 이를 송전 과정의 전력 손실분(약 7%)까지 고려하면, 1GW급 핵발전소를 약 53기나 추가 건설해야 할 판이다. 최근엔 소형모듈원자로(SMR)가 대안처럼 부상되나 여러모로 대안이 아니다. 요컨대, AI 경제를 계획처럼 만들어가려면 50GW 이상의 전력이 추가로 요구된다. 그야말로 천문학적이다. 그렇다면 이 막대한 전력을 어떻게 추가 생산할 것인가? 우선, 현재 한국에서 쓰이는 에너지 구성은 거칠게 보아 화석연료(석탄, 가스) 전기가 약 60%, 원자력 전기가 약 25%, 신재생에너지 전기가 약 15% 차지한다. 화석연료 발전은 기후위기를 부르는 온실가스를 대량 방출하기에 더 이상 증가할 순 없다. 그러나 현실 경제는 ‘눈감고’ 화석에너지를 계속 쓰려고 한다. 그리고 원자력 발전은 ‘핵쓰레기’ 문제로 더 이상 불가하다. 지금도 한국은 고준위 방사능 폐기물(암 유발 물질)인 사용 후 핵연료봉이 약 2만 톤, 개수로 약 230만 개나 쌓이고 있어 아주 골칫덩어리다. 향후 더 많은 원전을 건설한다는 건 거의 ‘자살 테러’ 수준이 된다. (원래 사용 후 핵연료봉은 고준위 방사선이 반감기가 될 때까지 지하 500미터 이하에서 무려 10만~30만 년 동안 묻어 두어야 할 정도다. 이는 사용 후 핵연료의 독성이 천연 우라늄 수준으로 감소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그토록 길기 때문이다. 국내엔 그런 저장소가 없다. 저장소 하나 건설에도 무려 30년 이상 걸린다. 그나마 현실적 대안은 신재생에너지인데, 그 비중이 기껏 20% 정도인 게 현실이다. 결국 화석에너지와 온실가스, 기후위기 문제가 더 심각해진다는 결론이다.) 또 다른 큰 문제는 신규 데이터센터 중 약 85%가 수도권에 지어질 계획이란 점이다. 이게 문제가 되는 까닭은 전력 공급처인 발전원이 전국 각지, 특히 동·서·남부의 해안(풍력, 태양광 발전)에 퍼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전력의 생산지에서 소비지까지 수백 킬로미터에 이르는 거리에 ‘에너지 고속도로’를 만들기 위해 산과 들, 마을을 지나는 ‘전력계통’(송전선, 송전탑, 변전소, 전력망 등)을 깔아야 한다. 그래서 이미 부안, 임실, 곡성 등지에서 ‘대책위’ 중심의 투쟁이 조직되고 있다. 일례로, 11월 10일 오전 곡성군청 앞에서는 ‘초고압송전탑/변전소 전면백지화를 위한 곡성군대책위 출범식 및 투쟁선포식’이 열렸다. 농촌 공동체를 파괴하는 송전탑변전소 건설사업 결사 반대, 주민을 들러리 세우는 입지선정위원회 해산 등이 주요 구호다. 앞으로도 제2, 제3의 ‘밀양 송전탑 사태’가 반복될 것이다. 다행히 지리산권, 섬진강권, 남해안권은 AI 경제와 연동된 데이터센터나 용인에 추진 중인 반도체 클러스터와 직접 관련은 없지만, 향후 전력 소요량이 폭증하게 되면 하동화력발전소나 지리산양수발전소 외에 또 다른 부하가 추가될 가능성이 있다. 한국 사회 전반이 갈수록 더 강한 고에너지 시스템으로 변한다면 이들 지역 역시 그 회오리에 휘말리게 될 것이다. 따라서 참된 대안은 ‘조금 먹고 조금 싸는’ 사회경제 시스템을 만드는 것, 우리들 역시 그런 시스템과 함께 살아갈 새로운 감수성으로 일상을 재구성하는 것 속에 있을 것이다. 소농 공동체, 읍면 자치, 생태 마을, 협동조합 등이 구체적 사례다. 지리산과 섬진강, 다도해는 (인간이 오염, 훼손하지만 않는다면) 자연 그 자체만으로도 ‘영원히’ 먹을거리를 제공하고, 주거 공간과 휴양처를 선물한다. 자연 생태계가 수용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만 조심스레 감사하며 산다면,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이 공생할 가능성은 얼마든 있다. 요컨대, ‘탈(脫) 자본, 진(進) 생명’이 자기 파멸적인 AI 경제에 대한 대안이다. ‘젠슨 황의 GPU’ 없이도 행복한 삶은 얼마든 가능하다. 뒤웅박 씻나락 칼럼 '뒤웅박 씻나락'은 이듬해 종자로 쓸 귀한 볍씨를 가리키는데요, 이 칼럼의 글들이 뒤웅박 씻나락으로서 앞으로 생명·평화·나눔·돌봄·연대의 사회를 위한 씨앗이자 마중물이 되길 기대하며 만든 칼럼입니다. 지리산 자락 삶이 우리 사회의 대안적 삶의 모습이 되길 꿈꾸는 <지리산인>의 바람을 담아, 지리산 곳곳에 계신 씨앗 같은 이들의 삶과 생각을 싣고자 합니다. 지리산 자락에 사는 여러 살림꾼들이 돌아가며 글을 씁니다. <지리산인>의 뒤웅박 씻나락 칼럼을 기쁘게 받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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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1-14
  • [안철환의 절기 이야기] 입동 소식
    [안철환의 절기 이야기] 입동 소식 안철환(전통농업연구소 대표) 보통은 입동이 되면 단풍이 절정이든가 절정을 막 지날 때입니다. 무 배추는 서리 맞아 맛이 깊어지는데 무는 별안간 영하로 떨어지면 얼어버려 못 먹기에 신경을 바짝 쓰고 있어야 합니다. 추위 전날 캐서 무청은 엮어 시레기 널고 무는 땅속에 묻습니다. 저는 그냥 신문지로 싸서 종이상자에 넣어둡니다. 곧 김장 담그니 헐하게 싸도 되지만 김장 담고 남은 무들은 낱개씩 꼼꼼하게 싸서 종이박스에 넣고는 영하로 내려가지 않을 방구석에 보관합니다. 고구마는 따뜻한 곳에 두지만 무는 그렇다고 따뜻하면 안돼요. 냉장고는 습기 찰 우려 있어 조심하는 게 좋구요. 배추는 끈이나 볏짚으로 묶어주는데 이는 결구 잘 되라고 하는 게 아닌 보온 때문이에요. 그래서 날 따뜻한데 묶어주었다간 벌레만 꼬일 수 있어요. 한로와 9.9절 사이에 심은 밀, 보리, 호밀 등은 입동 전에 새싹이 나는 게 좋습니다. 옛말에 입동에 보리 뿌리가 세 갈래로 갈라지면 풍년들 조짐이라고 했지요. 겉으로 볼 때 잎은 두 갈래로 갈라져 최소 세 치 정도면 좋습니다. 적당히 잘 자란 겁니다. 덜 자라도 웃 자라도 동해 입기 쉽거든요. 입동 지나 배추 김장 담그기 전에 총각 김치를 담급니다. 김장에 채 썰어 속을 만들 무로는 동치미 담지만 그것으로도 남는 무로는 내년 봄에 먹을 무짠지를 담습니다. 소금 물로만 담는 무 짠지를 어른들은 뭐가 맛있다고 좋아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는데 나이 드니 그 깊은 맛이 신기하기만 합니다. 소금에 쩔은 무를 나박나박 썰어 맹물에 담가 채 썰듯 파 띄우면 그 국물 맛과 무 맛이 기똥 찹니다. 입동은 보통 음력 10월 전후로 드는데 올 입동은 윤6월에 영향 받아 음력 9월 18일에 들었습니다. 매우 빠른 거죠. 말하자면 겨울이 빨리 오는 건데 그러다보니 그 겨울이 따뜻한 겁니다. 아마 올 겨울도 온난화니, 이상 기온이니 하며 호들갑이 난리일 것 같습니다. 저는 따뜻한 것보다 가물까봐 더 걱정입니다. 입동 일진이 경진庚辰인데 하필 이 경자가 가문 기운이거든요. 입동은 겨울의 첫단추이고요. 앞의 상강에서 말했듯이 나뭇잎이 단풍 들 새도 없이 겨울을 맞으면 떨켜 만들지 못해 낙엽을 떨어뜨리지 못한 채 겨울을 맞아 산불의 원인이 될 수 있는 겁니다. 지금 산들의 숲은 무원칙하게 너무 우거져 대형 산불이 잦잖아요. 입동은 말 그대로 겨울의 시작이니 겨울 준비를 잘 해야 합니다. 다음에 오는 소설 전에는 끝내는 게 좋습니다. 소설에 꼭 추위가 오기에 미리미리 해 두어야죠. 겨울 준비의 핵심은 먹을 것과 땔감입니다. 옛날엔 김장 담그고 연탄 들여놓으면 어머니가 그렇게 든든해 하셨어요. 그런데 농부는 더 있어요. 겨울에 대비한 토양 관리가 그것입니다. 우리나라는 겨울과 여름에 토양이 제일 피해를 봅니다. 여름의 폭염과 장마로 망가지고 그 다음으로 겨울의 추위와 가뭄과 바람으로 망가집니다. 지금은 겨울이 덜 춥지만 가뭄과 바람은 여전합니다. 땅을 말리는 가뭄의 피해는 알 수 있지만 바람이 땅을 망가뜨린다는 것은 잘 모르죠. 그러나 제주도 가면 금방 알 수 있어요. 스산한 겨울 바람이 몸 속을 파고드는 걸 보고 결코 제주도가 따뜻한 곳이 아니라는 걸 실감했지요. 그 바람이 흙을 날려 버립니다. 토양 유실이 만만치 않아요. 그래서 제주도에 많은 돌들이 고마운 겁니다. 흙을 바람으로부터 잡아주니요. 입동 전후로 농부는 참으로 바쁩니다. 여름 작물 수확해야지, 월동작물 파종해야지, 씨도 받아야지, 김장 해야지 등 진짜 정신이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땅 돌보는 데 소홀한 경우가 많아졌어요. 시골 가보면 겨울에 그냥 방치되다 시피 한 경작지를 쉽게 볼 수 있거든요. 아마도 고령화 때문이기도 할 거구요, 기계와 자재가 발달해 덜 신경쓰는 것도 한 몫 할 겁니다. 그런데 겨울을 잘 대비하면 봄이 참으로 축복입니다. 그 부활의 기운이 감동이거든요. 그럼 소설에 뵙지요. 입동 전후 농사 일정:제 개인 일정임을 감안해주기 바랍니다. 볏가리 사진 설명 옛날엔 벼를 바로 탈곡하지 않고 볏가리 쌓아 그때그때 먹을만큼만 탈곡 도정해 먹었습니다. 알곡 달린 이삭을 안쪽으로 해서 원기둥으로 쌓고 위로는 지붕처럼 이엉을 엮어 얹으면 비도 스며들지 않고 쥐도 들어가지 못했다니 조상들의 지혜가 대단하죠? 미리 도정하지 않아 늘 신선한 걸 먹었으니 건강에도 좋았을겁니다. 글을 쓴 안철환 선생은 온순환협동조합, 전통농업연구소 대표이고 경기도 안산에서 ‘산림생태텃밭 먹거리숲 농장’을 운영한다. 남은 음식물과 똥오줌, 커피 찌꺼기를 받아 직접 거름 만들기를 실천하고 있으며, 우리 토종 종자와 전통 농업 살리기에 열중하고 있다. 25년 전, 처음으로 심은 배추 씨가 3일 만에 싹 트는 걸 보고 ‘씨 안에 누가 있었구나!’ 깨닫고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우리가 먹는 배추는 단순히 물질적인 먹을거리가 아니라 나와 별 차이 없는 생명이며, 그래서 먹는다는 것은 생명을 먹고, 생명과 소통하고, 생명과 하나 되는 일이라고 믿는다. 쓴 책으로 《시골똥 서울똥》(2009), 《24절기와 농부의 달력》(2011), 《호미 한자루 농법》(2016), 《토종농법의 시작》(2020)이 있고, 옮긴 책으로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2004)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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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1-08
  • [뒤웅박 씻나락] "사람만이 희망이라면" 김석봉
    [뒤웅박 씻나락] 사람만이 희망이라면 _김석봉 (ⓒ한국저작권위원회) 지난주 동네는 소란했다. 119 응급차가 드나들면서 네 명의 이웃이 동네를 떠났다. 배불뚝이 정 씨는 밭에 나가 끝물고추 살피다 전동차가 밭두렁을 굴러 피를 철철 흘리며 병원에 실려 갔고, 소주를 양푼에 따라 마시던 대밭머리 박 씨는 기어이 술병에 쓰러져버렸다. 대추나무집 상촌양반이야 골골 거린지 오래라 병원 문턱이 다 닳았다지만 골목 안 봉칠이 아저씨의 병원 길은 이웃들의 안타까움을 샀다. 팔십 줄에 앉은 봉칠이 아저씨는 논농사가 많았다. 동네서 가장 멀리 떨어지고 가장 높은 지대에 있는 다랑논 열 마지기에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모를 심었다. 봉칠이 아저씨의 병환은 거의 절망적이라는 말이 들렸다. 이제 살아서 돌아오기는 글렀다며 동네 이웃들은 저마다 혀를 찼다. 아침이면 늙은 아내를 싣고 그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는 봉칠이 아저씨의 경운기를 이제 영영 볼 수 없게 되었다. 가을이면 누렇게 여물어가던 논배미도 묵어 산짐승들 놀이터로 변해버리겠지. 봉칠이 아저씨만 그런가. 내가 이 산골에 들어오고 지금껏 세상을 떠난 이웃은 부지기수다. 뒷집도 옆집도 앞집도 모두 비었다. 이제 동네는 폐허의 길에 접어들었다. 스스로 텃밭조차 일굴 수 없을 노인네만 남았다. 묵어 풀숲이 되어버린 논밭은 개울 건너까지 바짝 다가왔다. 마당에서 건너다보면 고라니 뛰노는 모습이 심심찮게 보인다. 엊그제 밤에는 마당 앞 감나무까지 수리부엉이가 찾아와 울었다. 한때 귀농귀촌 열풍이 불던 시절이 있었다. 동네 뒤 언덕바지엔 포클레인이 온종일 뒤척였고 해마다 몇 채씩 집이 들어서는 기상천외한 일이 벌어지던 시절이 있었다. 이제 이 산골도 생기가 돌고 살 만 하려나. 모두들 기대에 차 있었다. 인구 늘리기에 혈안이 되어있던 군청도 앞장서서 귀농귀촌인 유입에 행정력을 쏟았다. 도로와 전기 수도시설을 지원하기까지 하면서 도시의 부동산개발업자들이 동네를 드나들었고, 곳곳에 새로운 주택지가 만들어졌다. 그 유행의 시절도 어느 시기부터 저물기 시작했다. 삶의 희망을 찾지 못한 귀농귀촌자들은 하나둘 떠났고 동네 뒤 언덕바지에 지은 집이 매물로 나왔다는 소문이 들렸다. 마을 주변 논밭들도 온통 천덕꾸러기가 되어 복덕방 매물 장부에 지번을 올렸다. “김 사장. 여기 사인 좀 해줘요.” 곶감 깎을 요량으로 감대와 바구니를 챙기고 있는데 이장이 불쑥 찾아와 두어 장 서류철을 내밀었다. “무슨 사인을?” “다음 주에 군수가 방문한대요. 그래서 발전위원회에서 무슨 사업을 신청할 것인가 주민 의견을 묻는 거요.” 서류철을 받아 훑어보았다. 주민숙원사업 조사서였다. 몇 개의 사업명이 적혀있었고 선택해서 서명하는 형식의 문서였다. 발전위원회의 의중이 담겼는지 특정된 하나의 사업에 서명이 몰려있었다. ‘칠선교 야간조명설치’라는 사업이었다. 뚱딴지도 이런 뚱딴지같은 사업이 있나 싶었다. 밤에 자동차를 타고 그 길을 가면 한 대의 자동차도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를 턱이 있나. 한 사람도 지나가지 않을 칠선교에 밤새 현란한 불빛을 밝히는 일이 어찌 숙원사업이 될 수 있을까. 소위 지역유지라고 하는 자들이 지역 여론을 주도하며 행정에 빌붙어 벌여 온 엉터리 같은 일은 한둘이 아니다. 행정에서 넌지시 말을 흘리면 그 지역유지들이 나서서 공론화하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형식으로 지역숙원사업이 결정되는 것이다. 이장은 행정의 나팔수일 뿐 마을공동체를 가꾸고 살피는 일엔 관심조차 없다. 면사무소 이장회의 다녀오면 마을방송으로 전달사항 읽어주는 일이 유일하다. 그것만 하면 괜찮기라도 하지. 누구라도 이장에 선출되면 임기 내내 자기 잇속 챙기기에 여념이 없다. 자기 논밭으로 가는 농로 보수 작업이나 자기 집 주변 가로등이라도 하나 더 밝히려고 서둔다. 동네가 폐허로 변해가는 이유가 다 여기에 있다. 지역이 소멸해 가는 이유가 바로 이런 현상이 지역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 폐허의 그림자는 자기 발끝까지 다가오고 마침내 우리가 지키고 가꾸어야 할 공동체의 소중한 가치가 한 움큼씩 떨어져 나간다. 폐허로 변해가는 동네, 한밤중 인적 끊긴 적막 속에서 다리에 반짝반짝 불을 밝힌다고 무슨 도움이 될까. 차라리 모든 불을 꺼버리는 것은 어떨까. 그 짙은 어둠 속에서 반딧불이를 날게 하고, 별을 더욱 빛나게 하고,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 들리게 하는 것은 어떨까. 농사에 아름다움을 더하고 공동체의 공공성을 되살리는 일을 숙원사업으로 정할 수는 없을까. 그런 일을 해 나갈 사람들은 없을까. 겉으로 나서서는 ‘시골이 큰일입네, 이렇게 방치해서는 안 되네’ 하면서도 정작 무슨 행동도 하지 않았지. 하는 척하다가 금세 물러나 버리는 시늉쟁이였지. 하긴 나도 마을 일에 나섰다가 한순간 손 씻고 돌아앉아 버린 한심한 귀농자였지. 그 사이 지역은 더욱 한심한 모습으로 변해갔고, 동네는 더욱 어두워졌지. 연말이면 동네마다 대동회가 열린다. 대동회는 이장을 선출하는 자리다. 당신이 조금이라도 무너지는 공동체에 관심이 있다면 이장 선거에 나서 보자. 내년이면 지방선거가 기다리고 있다. 지방선거는 지역유지들의 잔치가 아니다. 당신이 지역소멸을 걱정하고 어처구니없는 지역숙원사업이 지역을 망친다고 생각한다면 지방선거에 나서 보자. 사람만이 세상을 바꾼다고 하지 않던가. 사람만이 희망이라면 대동회를 외면해서도 안 되고 지방선거를 남의 일로 여겨서도 안 된다. 저 부패하고 무능한 지역유지들의 자리를 빼앗는 혁명의 길에 나서야 한다. 그래야 지역이 살고 공동체가 살고 너와 내가 산다. (ⓒ김인호) 글쓴이 김석봉 1957년 경남 하동 옥종 농가에서 태어났다. 민주화운동이 들불처럼 번지던 시기 교도관으로 유월항쟁을 맞이하였고, 1987년 진주교도소에서 문익환 목사를 만나 사회운동에 뛰어들었다. 진주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 공동의장을 거쳐 2009년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로 활동했다. 녹색당 창당발기인으로 참여했고, 2012년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을 맡았다. 2007년 경남 함양군 지리산 기슭으로 귀농하여 적지 않은 농사를 일구고 있다. 아내와 아들내외와 손녀까지 3대 다섯 식구가 모여 산다. 경남작가회의 회원으로 틈틈이 시를 쓴다. <뽐낼 것 없는 삶 숨길 것 없는 삶>, <인문학과 생태학> 책을 썼다. 뒤웅박 씻나락 칼럼 '뒤웅박 씻나락'은 이듬해 종자로 쓸 귀한 볍씨를 가리키는데요, 이 칼럼의 글들이 뒤웅박 씻나락으로서 앞으로 생명·평화·나눔·돌봄·연대의 사회를 위한 씨앗이자 마중물이 되길 기대하며 만든 칼럼입니다. 지리산 자락 삶이 우리 사회의 대안적 삶의 모습이 되길 꿈꾸는 <지리산인>의 바람을 담아, 지리산 곳곳에 계신 씨앗 같은 이들의 삶과 생각을 싣고자 합니다. 지리산 자락에 사는 여러 살림꾼들이 돌아가며 글을 씁니다. <지리산인>의 뒤웅박 씻나락 칼럼을 기쁘게 받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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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0-30
  • [안철환의 절기 이야기] 상강
    [안철환의 절기 이야기] 상강 안철환(전통농업연구소 대표) 가을을 제대로 느끼기도 전에 상강 추위가 닥치니 곧 겨울이 오는 것만 같습니다. 상강 이틀 전, 일기 예보도 그렇고 일진을 살펴보니 서리가 내릴 것이라는 예감이 강해 서둘러 서리에 약한 애들을 수확하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토란, 고구마, 호박, 오이 같이 서리 맞으면 뜨거운 물에 데친 듯 축 늘어져 죽는 놈들에서부터 먹는 데에는 큰 문제 없으나 씨앗으로 쓰려면 서리 맞지 않는 게 좋은 생강, 벼, 조, 수수를 서둘러 거뒀습니다. 너무 정신이 없어 고구마 일부는 그냥 낫으로 줄거리만 거둬버렸지요. 줄거리만 제거해주어도 땅 속 고구마 열매에게는 별 문제 없거든요. 제가 심는 벼는 앉은뱅이라는 토종 벼로 키가 작아 그리 이름 붙여졌는데 이게 조생종에 가까워 밀과 이모작하기 딱 좋습니다. 정신은 없죠. 벼 수확하자마자 바로 밀 심어야 되고 봄엔 밀 수확하자마자 바로 물을 대서 써레질 하고 벼 모내기를 해야 하거든요. 올해는 서리나 추위가 일찍 올 것이라 봤습니다. 절기로 소서 즈음 개화하는 무궁화 꽃이 피면 100일 뒤 서리가 내린다 했는데 올해는 무궁화 꽃이 열흘은 일찍 개화했기 때문이었어요. 게다가 중복과 말복 사이가 보통은 스므날인데 올해는 열흘밖에 안되어 서리나 추위가 일찍 오겠구나 했지요. 더군다나 윤6월로 음력으로는 여름이 넉달인데다 동지는 음력 11월초에 드는 애동지라 여름은 길고 겨울은 빨리 와 가을이 짧을 수밖에요. 그런 같잖은 가을조차 비가 장마처럼 끊이지 않았으니 겨울은 오히려 가물까 걱정입니다. 사실 저는 기후위기나 기후변화라는 말을 잘 쓰지 않습니다. 그걸 믿지 않는 게 아니라 괜히 사람의 잘못을 하늘 탓하는 것 같아서 그래요. 기후변화는 분명히 진행 중이며 이번 기후변화는 특히 더 클 것이라 봅니다. 지구 차원에서 주기적으로 오는 기후변화이지만 이번엔 인간의 잘못이 더해지고 있기 때문이지요. 기후위기, 곧 탄소와 온실가스를 제일 많이 배출하는 주범은 산업현장일 겁니다. 특히 에너지와 자재에서 문제가 많이 발생하지요. 그런데 근본을 더 따져 들어가면 과소비 문화가 있어요, 소비를 부추겨야 산업과 경제가 발전할테니요. 그러니까 필요한 소비보다는 요즘 말로 가스 라이팅 된 소비, 즉 부추겨진 소비가 훨씬 클 거라는 거지요. 그렇게 해서 너무 일상이 되고 만 일회용 용기들, 과도한 청결주의가 빚은 물낭비 문화, 여름은 겨울처럼 겨울은 여름처럼 지내는 에너지 낭비문화, 얼마든지 재활용해 쓸 수 있는 것들을 쓰레기로 버리는 비순환 문화 등에서부터 기후위기를 근본에서부터 방어해야 하는 농사에서도 기후위기 재촉하는 문화가 일상화된지 이미 오래입니다. 이런 과소비 문화를 개선하지 않고서 재생에너지를 확대한다 한들 문제가 해결될까요? 탄소중립도 불가능한 얘기이지요. 그러니까 다른 한쪽에선 탄소제로이자 청정에너지인 원자력 발전을 늘리자 하지만 자칫 한방에 모두가 끝날 수 있어요. 그러면서도 AI니 스마트팜 등을 얘기하는 걸 보면 안타깝기 그지없네요. 물론 불가피한 면은 있다고 봅니다. 그렇지만 부작용은 애써 외면해요. 근본 문제도 살펴봐야 하는데 그럴 시간이 없다고 또 회피해요. 선진국이 되면 뭐합니까? 세계 최고 자살율, 밑바닥 맴도는 행복지수, OECD 국가 중 탄소 제일 많이 배출하는 기후악당 국가라는 데 말이죠. 주제넘은 얘기를 했나요? 서리 피해 볼까 봐 정신없이 서둘렀지만 막상 서리는 오지 않았어요. 걱정했던 상강 이틀 전에도, 상강인 오늘도 그냥 지나갔지요. 그렇지만 아침 날씨는 무척 쌀쌀했답니다. 서리는 내리지 않았지만 서리 내리기에 딱 맞는 추위였어요. 뉴스를 보니 중부 내륙지방에는 서리가 내렸다는군요. 서리가 오지 않을 수도 있는데 괜히 호들갑 떠는 거 아니냐고들 합니다. 그런데 이런 철에는 호들갑 떨지 않았다간 큰 코 다치기 십상입니다. 언제 서리가 내릴지, 언제 첫 얼음이 얼지 잘 살펴보고 행동은 아주 민첩해야 합니다. 오죽하면 이 철에는 “도둑질하듯 농사짓는다”했겠어요. 거두고 동시에 심고 하는 게 정신이 없어요. 논에서 벼 수확하자마자 밀 심었지요, 모종 키우던 양파도 추위 오기 전에 뿌리 내리라고 서둘러 심었지요, 어제 그제는 보리, 호밀도 심었어요. 사실 보리, 호밀은 먹으려고 심은 게 아니라 종자 보존 차원에서 심었습니다. 꼭 씨앗 찾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서리 오기 전에 오이 노각 거둔 것과 냉장고에 넣어둔 수박 꺼내 속은 먹고 속껍질로 깍두기 김치도 담갔습니다. 고구마 거두고 난 마지막 줄거리는 장모님이 가져가셔서 김치 담가 주신다니 또 군침이 넘어갑니다. 오늘은 주아마늘 심을 밭을 갈았습니다. 들깨 거두고 남은 들깨 밑그루들 빼내고 풀 제거하며 두둑과 골을 내었지요. 들깨 둥지를 제거하는데 시간이 좀 걸려 아내 손도 빌렸어요. 마늘주아는 일종의 종자입니다. 사실 우리나라 마늘은 꽃을 피우지 않아요. 오랜 세월 주아만 갖고 재배하다보니 꽃이 퇴화되었답니다. 그래서 육종하려면 마늘 원산지인 이집트나 중앙아시아엘 가서 해야 한다네요. 거기는 꽃을 피우니까요. 주아마늘 심고 나면 먹을 마늘을 위해 씨마늘 밭도 정신없이 만들어야 합니다. 이제 날은 점점 추워질테니 정말 도둑질이 따로 없습니다. 단풍 익을 틈도 없이 추워지면 단풍이 예쁘지 않은 건 둘째치고 낙엽수 이파리들이 털켜를 만들지 못하고 겨울을 맞이할 수 있어요. 그러면 이파리들을 그대로 매단 채 겨울을 나다 산불의 원인이 될 수 있지요. 몇 해전 그런 적이 있었는데 다행이 겨울에 비가 많이 와 산불은 나지 않았습니다. 그와 달리 제 걱정대로 올 겨울이 가물다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질 수 있을 겁니다. 산불에 대비해 신중하게 숲을 가꾸고 관리한 조상들의 지혜가 다시 생각납니다. 돈이 되든, 경관에 좋든 그저 몇 가지 종류의 나무만 심어버리는 조경 문화가 안타깝지요, 상강이야말로 제대로 된 수확철입니다. 그래서인지 앞의 한로에서 얘기했듯이 상강에 가까운 음력 9월 9일을 명절로 해서 축제를 즐겼습니다. 중구절이 지금까지 이어지지 않은 걸 보면 곧 닥칠 겨울을 대비해야 할 일이 많아 여유있게 축제를 벌일 틈이 없어서인것 같습니다. 우리를 늘 음주가무를 즐긴 민족이라 한 말을 볼 때마다 우리는 축제가 필요없는 사람들이었겠다 상상하곤 했습니다. 아는 건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건 즐기는 것만 못하다는 말처럼 일을 즐길 수 있다면 일은 또 다른 축제나 마찬가지 아닐까요? 지난 토요일 친구들이 달려 와 벼 탈곡을 도와주었는데 막걸리 먹으며 일하고 일 끝내곤 저녁에 쐬주 한잔과 삼겹살을 즐기니 축제가 따로 없더이다. 글을 쓴 안철환 선생은 온순환협동조합, 전통농업연구소 대표이고 경기도 안산에서 ‘산림생태텃밭 먹거리숲 농장’을 운영한다. 남은 음식물과 똥오줌, 커피 찌꺼기를 받아 직접 거름 만들기를 실천하고 있으며, 우리 토종 종자와 전통 농업 살리기에 열중하고 있다. 25년 전, 처음으로 심은 배추 씨가 3일 만에 싹 트는 걸 보고 ‘씨 안에 누가 있었구나!’ 깨닫고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우리가 먹는 배추는 단순히 물질적인 먹을거리가 아니라 나와 별 차이 없는 생명이며, 그래서 먹는다는 것은 생명을 먹고, 생명과 소통하고, 생명과 하나 되는 일이라고 믿는다. 쓴 책으로 《시골똥 서울똥》(2009), 《24절기와 농부의 달력》(2011), 《호미 한자루 농법》(2016), 《토종농법의 시작》(2020)이 있고, 옮긴 책으로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2004)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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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0-27
  • [이호신화백의 지리산그림순례] 산청 꽃봉산전망대에서
    -산청 꽃봉산 전망대에서. 70*274cm. 2025 -산청 꽃봉산 전망대에서(부분1). 2025 -산청 꽃봉산 전망대에서(부분2). 2025 -산청 꽃봉산 전망대에서. 2009 - 꽃봉산 전망대에서. 한지에 수묵채색. 70*138cm. 2011 -산청꽃봉산 전망대에서 스케치.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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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0-16
  • [안철환의 절기 이야기] 한로 소식
    한로 소식 안철환(전통농업연구소 대표) 찬 이슬 맺는 한로답게 아침이 제법 차갑습니다. 열대야로 힘들었던 때가 바로 어제 같았는데 오늘은 이불 속에서 나오기가 싫네요. 이 글도 지금 이불 덮고 폰 화면에 긁적이고 있답니다. ㅎ, 이제 세상은 찬 기운이 지배적이고 더위는 한 낮 잠깐 지나치는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래도 일교차가 꽤 매서운지 어르신들 부고 소식이 많네요. 최근 보름 정도에 세번 문상 갖다왔으니요. 마지막 더위마저 쫓아내겠다는 심보인지 추적추적 가을비는 끊이질 않습니다. 보통 추석엔 비가 오지 않는데 이번엔 아니었어요. 해석이 잘 안되니 이상하긴 이상합니다. 제주에는 아직 열대야라니까요. 아마 윤달로 길어진 여름의 마지막 기운이 질기게 남아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 같습니다. 액이 빠져 나갈 때 꼬리로 뒤통수를 치고 간다는 말이 떠오릅디다. 그 여운이 길게는 음력 9월9일, 양력으론 10월 29일까지는 남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날은 양이 겹치는 중양절重陽節 중에 마지막인 중구절重九節로 겨울 나는 맥류들 파종 때입니다. 강남 제비와 함께 완연한 봄이 돌아오는 삼짓날과 중구절이 옛날엔 명절이었답니다. 찬 기운의 세상이 도래하니 마을의 노인들 응원 잔치를 벌였다는군요. 맥류는 음력으로 중구절 근방, 양력으론 한로 근방에 심는데요 중구절과 한로의 격차가 큰 해에는 고민도 큽니다. 올해는 양력으로 한로가 10월 8일인 반면 중구절은 10월 29일이니 21일이나 격차가 나는 겁니다. 그럼 도대체 언제 심어야 할까요? 일찍 심어 웃자라도, 늦게 심어 못 자라도 겨울에 동해 입기 십상이거든요. 저는 그냥 한로와 중구절 사이에 심습니다. 그러다보니 매해 심는 날이 다를 수밖에 없는데요, 심하면 보름 차이 날 때도 있지요. 암튼 파종일은 음력과 양력을 다 보아야 합니다. 한번은 정신없이 그냥 한로만 보고 밀을 심은 적이 있어요. 바깥 일이 있어 외출할 생각에 숙제하듯 파종하고 뛰어나갔죠. 일주일 쯤 지나 싹이 트는데 발아 기운이 꽤 좋아보이대요. 그냥 기분 좋다 생각하고 지나치길 며칠 되어 다시 보니 너무 잘 자라는 거지 뭡니까? 이상하다 싶어 심은 날이 음력 며칠인가 보니 8월 하순인 거에요. 위 기준으로 보아 일주일 이상 일찍 심어 웃자란 겁니다. 야~이러다 겨울 추위에 영락없이 얼어 죽게 생겼네, 어쩌나, 낫으로 벨까, 아님 추위 오기 전에 뭐라도 덮어줄까 궁리만 하는 중에 희한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우리 밭 위 산 속에서 동네 분이 키우던 염소 중 한마리가 탈출해 우리 밀을 죄다 끊어 먹은 겁니다. 그 현장을 본 순간 어이 없기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데 소식 듣고 온 염소 주인장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담배만 뻐꿈뻐꿈 피고 있네요. 연짱 미안타를 반복하는 그 이웃을 오히려 제가 위로할 수 있었던 건 나름 딴 생각이 퍼뜩 떠올라서 였습니다. 밀이 웃자라 낫으로 벨까 했던 내 생각을 염소가 알아채서 도와 준 꼴이네 했던거지요. 사실 염소나 양, 소 같은 되새김질 하는 초식 동물은 아랫니만 있어 풀을 끊어먹는 것보다 뿌리채 뽑아 먹는 게 많습니다. 그런데 염소는 양과 좀 달라 제 밀을 먹은 놈처럼 먹을 게 많으면 끊어먹기도 한다네요. 윗니는 없지만 대신 잇몸이 튼튼해 거기에 바쳐 끊어 먹을 수 있답니다. 반면 양은 어린 풀, 큰 풀 가리지 않고 닥치는대로 뿌리채 마구 뜯어 먹는 놈이라 초원을 황폐화시키는 주범입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목동은 약간의 염소들을 양 무리 속에 집어 넣어 함께 기른다는군요. 양은 남 따라하는 습성이 있어 큰 풀만 뜯어먹는 염소와 같이 있으면 어린 풀을 먹지 않아 초지관리에 도움이 된다는 거지요. 그러면 뭐합니까? 염소는 절벽도 지 안마당처럼 돌아다니며 나무 껍질도 벗겨 먹어치우는 놈이라 길게 보면 양이나 마찬가지로 사막화 주범이라 할 수 있단 말입니다. 밀 같은 외떡잎 벼과 식물은 생장점이 땅 속에 있어 끊어먹혀도 다시 잘 올라옵니다. 농약이 없던 옛날엔 모판의 벼 이파리가 해충에 큰 피해를 입게 되면 아얘 벼에다 불을 질렀답니다. 벌레나 세균도 죽일뿐만 아니라 벼는 순 질러 준 꼴이 되어 땅속에서 새순이 잘 올라온다는 거지요. 저도 오래 전 밭벼를 잔뜩 심었다가 중국에서 멸강나방이란 놈이 날아와 애벌레를 벼에 낳더니 까만 애벌레놈들이 벼 잎을 다 갉아 먹은 일이 있었습니다. 꼭 검은 옷 입은 저승사자처럼 보였지요. 농약은 칠 수도 없고 무기력하게 쳐다만 볼 수밖에요. 다 먹고는 그놈들은 고치가 되려고 어디론가 떠나버리고 벼는 처참히 목들이 다 베어지고 말았어요. 아, 근데 웬걸요, 새로 순이 올라오는데 감동이 이루 말로 못할 정도였습니다. 더 싱싱해보이더라구요. 저희는 한로 열흘 전에 벼를 2/3는 수확했습니다. 체험하러 오기로 한 아이들용만 남겨두었지요. 추석 밑에는 처서에 심은 무 솎아 물김치 담갔구요. 오늘은 담배상추 따다 마늘 파 다진 된장만 넣고 밥 싸먹으니 가을 상추의 진가를 맛 보았네요. 밤 주워다 디저트까지 먹어 세상 부러울 게 없더이다. 나물로 미역취, 참취, 파드득, 부지깽이도 먹어달라 갖은 폼을 잡고 있어 내일은 아내 얼굴 보며 나물 입맛을 다셔보렵니다. 한로에 익어가는 가을 맛이 깊기만 합니다. 그래도 감기 조심들 하세요. 한로 소식 여기까집니다. 글을 쓴 안철환 선생은 온순환협동조합, 전통농업연구소 대표이고 경기도 안산에서 ‘산림생태텃밭 먹거리숲 농장’을 운영한다. 남은 음식물과 똥오줌, 커피 찌꺼기를 받아 직접 거름 만들기를 실천하고 있으며, 우리 토종 종자와 전통 농업 살리기에 열중하고 있다. 25년 전, 처음으로 심은 배추 씨가 3일 만에 싹 트는 걸 보고 ‘씨 안에 누가 있었구나!’ 깨닫고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우리가 먹는 배추는 단순히 물질적인 먹을거리가 아니라 나와 별 차이 없는 생명이며, 그래서 먹는다는 것은 생명을 먹고, 생명과 소통하고, 생명과 하나 되는 일이라고 믿는다. 쓴 책으로 《시골똥 서울똥》(2009), 《24절기와 농부의 달력》(2011), 《호미 한자루 농법》(2016), 《토종농법의 시작》(2020)이 있고, 옮긴 책으로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2004)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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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0-11
  • [안철환의 절기 이야기] 추석이 드는 추분 이야기
    추석이 드는 추분 이야기 안철환(전통농업연구소 대표) 추분이 되면 낮이 밤보다 짧아져 이제 성장을 돕는 양의 기운은 저물고 이삭과 과일의 성숙을 돕는 음의 기운이 지배를 합니다. 벼도 성장을 주도했던 잎사귀는 시들어가고 이삭줄기가 커져 이삭은 누렇게 익고 무거워 고개를 숙이게 되지요. 그런데 올 해는 벼가 빨리 익는데다 가을비가 장마처럼 쏟아져 벼가 일부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다 죽어가는 목련 나무 살려보려고 수분 공급 원활한 논둑에 심었던 게 화근이 되었지 뭡니까. 의연하게 살아나 몇년째 우아하게 피운 흰꽃 보길 즐기다 그늘진 그 밑의 벼들이 웃자라 작년부터 쓰러지기 시작한 걸 이제야 깨달은 거에요. 참~, 나무는 함부로 심는 게 아닌데 말이죠. 또 목련을 옮길 생각하니 그 놈의 순탄치 않은 팔자에 미안한 마음만 드네요. 이번에 옮기면 세번째 이사가 될테니 말이죠. 아무튼 추분 지나면 가물어야 돼요. 비는 성장에 필요하지 이삭과 열매 익는 데는 별 도움이 안되거든요. 근데 추분이 든 오늘은 맑았지만 내일은 비가 온다네요. 좋은 소식이 아닙니다. 그러지 않아도 며칠 전 비로 쓰러진 벼 세우느라 애쓴 아내에게 절로 고개 숙여졌는데 또 쓰러질까 조마조마 합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추분 전후로 추석이 듭니다. 근데 참 궁금했던 건 추석 때 먹는 올벼 쌀이었어요. 토종 씨앗 수집한다고 어느 시골 한 할머니 농부님을 만나 물어봤습니다. "할머니, 소출도 적은 올벼는 왜 심었나요?" 요즘은 사라진 풍경이지만 옛날엔 어느 마을이나 농가에선 다 올벼를 심었거든요. "추석 차례상에 조상님께 올리려 한 거지~." 조상님이 드시긴 뭘 드시겠어요. 그건 다 핑계일거고, 사람들이 먹으려 한 것이겠죠. 그럼 왜 추석엔 올벼를 먹어야 했을까요? 답을 못 찾아 의문은 거기에서 멈추고 말았습니다. 그러다 한참 지나 우연히 이런 얘길 들었어요. 추석이 되도록 보리밥 먹으면 탈 난다는 말을요. 아~ 그래 알았지요. 찬 기운 돌기 시작하는 추석부턴 따뜻한 쌀밥을 먹어주어야 한다는 걸 말이죠. 그 때 먹을 수 있는 건 일찍 익는 올벼 쌀밖에 없잖아요. 맞았어요. 추석은 올벼 쌀 먹는 명절이었던 거에요. 사실 추수 감사 축제를 하기에 추석은 너무 일러요. 수확할 게 별로 없거든요. 미국이나 기독교에서 하는 11월 중순 경의 추수감사절이 제대로 된 수확철일겁니다. 특히 추석이 추분보다 빨라 양력 9월 하순 경에 들 때는 사과조차 귀하죠. 그런 추석이 늘 의문이었던 거에요. 추석이 올벼 먹는 명절이라면 그 다음으로 알게 된 것은 추석 전까지 먹던 보리밥은 먹을 게 없어 먹는 구황곡식이 아니라 여름 철 필수로 먹는 주식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보리는 찬 음식인데다 섬유질과 비타민, 미네랄이 풍부해 소화도 잘 되고 건강에도 좋은 밥이죠. 여름엔 찰지고 기름진 음식 많이 먹으면 더위를 견디기 힘들어요. 찹쌀떡 장수가 긴긴 겨울 밤에 팔러 다닌 것도 다 이유가 있었던 겁니다. 암튼 추석이 우리에겐 제일 큰 명절이지만 먹을거리는 차라리 백중 때보다 못한 면이 있어요. 그런데도 우리의 유일한 토종 명절이자 가장 소중한 명절인 것은 아마도 계절의 가장 큰 전환점이기 때문일 것 같습니다. 추분과 함께 양의 시대가 음의 시대로 접어드는 극적인 길목이거든요. 명절은 다르게 보면 축제인 셈인데 추석은 설날과 함께 시끌벅적하게 먹고 노는 여느 축제와는 사뭇 다르죠. 우리에게 축제 다운 명절은 아마 단오와 백중이었을 거에요. 마을 축제였거든요. 추분과 추석 즈음에 농부의 손을 더 바쁘게 만드는 것으론 씨앗 받는 일일겁니다. 여름 끝무렵에서 백중 즈음 농부의 배를 불리운 각종 여름 열매들의 씨앗들이 영글고 있지요. 오이가 익은 노각오이 씨앗에서부터, 고추, 가지, 수박, 참외, 토마토 등 뿐 아니라 조선호박, 수세미, 여주, 목화 등도 씨앗이 잘 익도록 챙겨야 합니다. 폭염을 겨우 버텨낸 농부에게 가을 농사와 더불어 씨 받는 일까지 기다리고 있으니 한시도 쉴틈이 없어보이지만 내년 농사의 희망을 생각하면 시름 거두기에 모자람이 없을 겁니다. 올해는 윤6월로 인해 6월이 두 번 들어 추분이 8월 2일에 들었어요. 빠른 추분답게 가을도 빨리 온 건데요, 초가을은 여름 폭염에 가려 온 지도 모른 사이에 가을의 피크인 추분이 슬며시 들이닥친 꼴이에요. 며칠 전부터 귀뚜라미 소리는 확 줄어들었고요, 밭을 둘러싼 숲의 나무들 잎에는 녹색의 기운이 약해지고 있더만요. 그렇지만 추분 지나고도 보름 가까이 지나야 추석이 오니 아직 더운 기운은 남아 있을 겁니다. 물론 한 낮에만 그렇구요, 그 시간만 지나면 그냥 가을이에요. 벌써 초저녁 6시만 되면 어둑어둑해지고 있어요. 사람도 추분 지나면 이젠 음의 시대를 대비하는 게 좋겠어요. 왕성하게 성장하고 활동하는 양의 시대는 지나갔으니, 이젠 2세를 준비하고 겨울 날 대비를 하며 희망을 품는 음의 시대에 맞게 사는 거죠. 절기를 알면 철이 들고, 철이 들면 몸이 반듯해지고, 몸이 반듯해지면 마음의 모가 둥글둥글해진답니다. 마음은 둥글둥글한 하늘을 닮고 싶어하거든요.ㅎ 글을 쓴 안철환 선생은 온순환협동조합, 전통농업연구소 대표이고 경기도 안산에서 ‘산림생태텃밭 먹거리숲 농장’을 운영한다. 남은 음식물과 똥오줌, 커피 찌꺼기를 받아 직접 거름 만들기를 실천하고 있으며, 우리 토종 종자와 전통 농업 살리기에 열중하고 있다. 25년 전, 처음으로 심은 배추 씨가 3일 만에 싹 트는 걸 보고 ‘씨 안에 누가 있었구나!’ 깨닫고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우리가 먹는 배추는 단순히 물질적인 먹을거리가 아니라 나와 별 차이 없는 생명이며, 그래서 먹는다는 것은 생명을 먹고, 생명과 소통하고, 생명과 하나 되는 일이라고 믿는다. 쓴 책으로 《시골똥 서울똥》(2009), 《24절기와 농부의 달력》(2011), 《호미 한자루 농법》(2016), 《토종농법의 시작》(2020)이 있고, 옮긴 책으로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2004)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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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0-02
  • [뒤웅박 씻나락] "산청에서, 재난을 돌아보며" 햇살
    뒤웅박 씻나락 칼럼을 시작합니다 '뒤웅박 씻나락'은 이듬해 종자로 쓸 귀한 볍씨를 가리키는데요, 이 칼럼의 글들이 뒤웅박 씻나락으로서 앞으로 생명·평화·나눔·돌봄·연대의 사회를 위한 씨앗이자 마중물이 되길 기대하며 만든 칼럼입니다. 지리산 자락 삶이 우리 사회의 대안적 삶의 모습이 되길 꿈꾸는 <지리산인>의 바람을 담아, 지리산 곳곳에 계신 씨앗 같은 이들의 삶과 생각을 싣고자 합니다. 지리산 자락에 사는 여러 살림꾼들이 돌아가며 글을 씁니다. 첫 시작인 9월에는 산청의 '햇살'이 글을 보내 주었습니다. 김석봉, 강수돌, 홍영기, 푸른, 박남준, 성염, 이주헌 님의 글이 기다리고 있으며, 달이 갈수록 필진이 더해질 예정입니다. <지리산인>의 뒤웅박 씻나락 칼럼을 기쁘게 받아 주세요. 산청에서, 재난을 돌아보며 산청 산사태 복구 현장 봉사에 함께한 '햇살'의 이야기 올해 여름은 뜨겁고 힘들고 강렬했다. 가뭄으로 애타던 강릉 비 소식이 반가운 아침이다. 전주는 밤새 170밀리, 군산은 시간당 152밀리 폭우가 내렸다고, 휴양지로 유명한 발리에서 폭우로 건물이 무너져내리는 영상들이 계속 들어온다. 뉴스를 보면서 두려움과 공포, 재난의 경험이 몸으로 느껴진다. 길도 사라지고 생강밭도 사라지고 기숙사 사감으로 근무하고 있는 학교 축제 전야제 날이었다. 호우주의보가 내렸고 밤새 폭우가 쏟아졌다. 아침에 학교로 올라오는 도로가 산사태로 막혔다는 소식을 들었고, 전기, 수도가 먼저 끊겼고, 통신까지 끊겼다. 맞은편 산 중턱 집에 실종자가 있다고, 소방차들이 오고 밤까지 수색 활동을 하고 있었다. 밖에 피해가 얼마나 큰지 알 수도 없고, 무덥고 어두운 기숙사에서 아이들과 함께 밤을 보냈다. 다음 날 다행히 비가 그쳤고, 산사태로 곳곳에 막혀버린 도로를 돌고 돌아 도착해 준 부모님들에게 아이들을 무사히 보낼 수 있었다. 전화가 연결되니 산 아래 생강밭 두 개가 산사태로 흔적 없이 묻혀버렸다는 소식이 제일 먼저 왔다. 올해 딸이 처음으로 자기 밭을 정해서, 싹틔우기부터 비 오기 전 관리기 빌려와 북주기까지 정성 들인 밭이었다. 흘러 내려온 토사로 마을 길이 막혀 집에는 올라갈 수도 없었다. 다리가 끊어지고, 산사태로 국도까지 통제된 모습들은 마치 전쟁터 같고 현실이 아닌 것만 같았다. 사망자와 실종자 소식들과 눈 앞에 펼쳐진 재난 앞에 뭘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고. 전기와 수도가 끊기고 일상이 멈춰버린 것 같은 며칠이었다. 한달음에 달려와 준 사람들 마을 청년들이 침수된 하우스와 작업장으로 달려가 젖은 물건들을 치우고 복구에 손을 보태기 시작했다. 하동에서 나마스떼 민박을 하는 수진 부부가 저녁밥을 해서 달려왔다. 반찬을 만들어준 분들도 있고 이웃과 함께 준비했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이 모이는 까페이고 공유공간인 ‘남다른이유’에서 얼굴보고 함께 밥을 먹으면서 안부를 확인하고 정신을 차리고 힘을 낼 수 있었다. ‘산청의료사협’에서 제안해 ‘그늘과 언덕’이 함께 ‘산청합천 수해복구봉사 연결방’이 만들어졌다. 일손이 필요한 농가와 일손을 보태겠다는 개인이나 소규모 봉사자들 신청을 받아 연결하고 함께 봉사를 했다. 오픈채팅방이 만들어진 7월 25일, 구례에서 윤주옥 선생님과 정환, 상글 청년들이 제일 먼저 달려와 주었다. 누군가에겐 살아갈 힘이 될 모두의 손길 물이 빠졌지만 아직도 질퍽거리는 딸기하우스 비닐들을 찢어내고, 물에 젖은 포장박스와 농자재들을 꺼내면서 온갖 쓸려 내려온 쓰레기들을 보면서 암담했다. 임시대피소로 제공된 모텔에서 생활하는 힘든 상황에서도, 더운데 그만하라고 너무 고맙다고, 그래도 힘이 난다고 웃어주던 첫 번째 하우스 농장 부부의 말에 우리가 힘이 났다. 폭염에 땀과 흙탕물로 온몸이 젖었지만 힘내서 본격적으로 봉사를 시작할 수 있었다. 첫 번째 농가는 올해 농사는 포기한다고 했었는데 여러 봉사자들 도움으로 하우스를 철거하고 새로 설치해 올해 농사를 하게 됐다는 소식들을 채팅방에 올려주고 있다. 그 뒤를 이어 역시 지리산 이웃들인 남원, 함양, 하동에서, 전국에서 정말 많은 분이 일손을 보태러 와 주었다. 서울, 인천, 수원, 용인, 공주, 대전, 세종, 부산, 창원, 마산, 김해, 진주, 고성 전국 각지에서 다녀가셨다. 하우스 작업은 낮에는 너무 뜨거워 오전은 새벽 6시부터 10시까지, 오후는 3시부터 6시까지 활동했다. 멀리서 새벽 운전해 달려와 참여하는 분들은 그 정성은 뭐라 말할 수 없이 감사했다. 질퍽거리는 바닥에 휘어지고 떨어진 하우스 배드 상토를 담아 옮기기, 하우스 바닥에 쌓인 상토를 쪼그리고 앉아 쓸어 포대에 담아내기, 창고에 쌓인 젖은 짐들을 옭기고 바닥 물청소기. 어느 한 곳도 일이 만만한 곳은 없었지만, 반가워하는 농장주님들과 함께 하는 힘으로 기쁘게 할 수 있었다. 재미나게 봉사해 보자고 “잼봉잼봉 화이팀”을 외치고 시작하기도 했다. “새참 왔어요. 새참 먹으로 오세요~~” ‘그늘과 언덕’에서는 까치밥 선결제로 봉사자들을 위한 음료와 간식을 회원들이 배달해 주었다. 해뜨기 전부터 땀 흘려 일하다가 얼음 가득한 맛있는 음료는 에너지를 올려주는 소중한 존재였다. 마법 같은 ‘함께’의 힘 물기가 있을 때는 질퍽거려 힘들고, 바짝 말랐을 때는 먼지 때문에 마스크를 쓰면 금방 숨이 막혀 힘들었다. 하우스는 길고 끝이 보이지 않았는데 함께하다 보면 끝이 난다. 밭일할 때마다 ‘눈은 게을러도 손은 부지런타’ 하시던 아버님 말씀이 늘 생각났다. 부부 두 명이 한 동 바닥 토사 치우는 데 일주일이 걸렸다는데 여럿이 가서 하다 보면 한 동, 두 동 깨끗이 치워지는 건 정말 마법 같았다. 봉사 후에는 식당이나 의료사협에서 준비해 준 밥을 함께 먹으며 어디서 왔는지 인사도 나누고 소감도 나누었다. 서로를 보면서 감동을 받는 뜨거운 시간들이었다. ’김제동과 어깨동무‘ 회원들이 많이 참여했다. 뉴스를 보고 언제 갈 수 있을지 계속 채팅방에서 보면서 마음을 썼거나, 군청에 전화해 보고 개인 봉사 방법을 계속 찾았다는 분들도 많았다. 봉사 DNA는 따로 있는지 봉사를 해 본 경험이 있는 분들이 또 하게 되는 것 같았다. 휴가왔다가 봉사도 하고 가려고 온 강동구 구의원 부부, 돌아가서는 아들 중학교 아버지회에서 홍보해서 여러 가족이 아이들과 함께 또 오기도 했다. 부산에 사는 소방관, 특수교사 가족은 세 번이나 다녀가면서 정말 봉사에 진심인 분들이었다. 대구 계성중학교 봉사동아리, 간디고도 동아리 청소년들도 많이 참여해 주었다. 우리 지역 분들도 작업반장을 도맡아 주던 분, 몸이 안 좋은데도 아들들을 데리고 몇 번이나 참여한 분, 새벽에 봉사하고 출근하는 분, 각자 자기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함께했다. 우리 집을 숙소로 사용해 봉사 후 저녁에 차 한잔 하면서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시간들도 참 좋았다. 귀에 피 나도록 많은 전화와 문의를 받아낸 한나와 9월에 이어준 은영에게, 집을 숙소로 내놓기도 하고, 음료 배달 천사를 하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자원해서 해 준 모두가 대견하고 정말로 감사하다. 군에서 정한 ’산청 방문의 해‘였는데, 정말 많은 분이 관광이 아닌 봉사를 위해 방문해 산청을 진하게 체험하고 갔다. 현재 오픈채팅방에도 312명이 아직도 나가지 않고 산청을 걱정해주고 있다. 재난이 지나가고 남은 생각 다섯 마리를 새끼들을 다 데리고 며칠 만에 집으로 돌아온 고양이 가족, 농막 지붕 위에 대피했던 개들, 진주까지 떠내려갔다가 구조돼 돌아온 소들.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야생동물들, 비인간 동물들도 함께 겪은 재난을 목격하고 생명에 대해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산청사람들, 전국에서 달려온 사람들, 재난 속에서 뜨겁게 만나고 회복을 위해 살아있는 공동체를 경험한 것 같다. 이런 봉사를 받을 줄은 몰랐다고, 앞으로 봉사하고 살고 싶다는 농민들, 어쩌면 도와준 일손보다 달려와준 사람들의 관심과 애정으로 희망을 얻었다는 말이 더 소중한 것 같다. 재난 이후 앞으로 아직도 일상으로 돌아가는 데 시간이 많이 필요한 분들을 어떻게 도와야 할지, 일상이 될지도 모를 재난을 어떻게 대비하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지역을 만들 수 있을지 함께 방법을 찾아가야 하는 시간이다. 가을이 오고, 풀밭이 된 들깨 밭 풀을 매고, 무씨도 넣고 배추 모종도 심고 있다. 아침에 아이들과 달리기도 하고, 취미 강좌도 다시 참여하고 있다. 소소한 일상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실감하면서, 아직 일상을 회복하지 못한 분들과 손잡고 나누면서 살아갈 것이다. 산청 햇살 _낮에는 농사짓고 마을에서 사람들과 놀고 배우고, 저녁에는 별처럼 매일 반짝이며 자라는 아이들과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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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뒤웅박 씻나락
    2025-09-17
  • [송만규화백의 섬진팔경 사계] 무동산 -여름
    -광양무동산에서 여름 2008 . 106x220 순지에 수묵채색 무동산 1 새벽 서너 시 쯤 스케치하러 나선다. 그래야 해 뜨기 전에 정상에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무동산(275m)은 높지 않지만 마치 삼각뿔 모양새로서 약간 가파른 산길을 따라 20~30분 소요된다. 오르막길에 들어서면 조그만 암자가 자리하고 있다. 여러 번 지나쳤던 요사(寮舍)에 인연이 되어 며칠 동안 머문 적이 있다. 창문을 열면 저 멀리 강물에 담긴 지리산이 한 눈에 들어온다. 새벽녘 낮고 장엄하게 들려오는 종소리가 계곡마다 전하는 여음이 진하게 파고 든다. 쌍계사인 듯하다. 이 곳 무등암에도 어느 중생을 위한 염불인지 목탁소리와 함께 낙낙한 주지승의 음성이 되돌아온다. 계단을 덮은 대숲을 조용히 지나자 새벽바람에 댓잎 스치는 소리가 스산함을 더하고 어둠이 적막함으로 다가온다. 강 건너 어스름한 하동 읍내의 아련한 불빛은 하나, 둘 꺼져가고 지리산과 백운산을 끼고 내려오는 강줄기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이러한 분위기를 놓치지 않으려고 그간에 나는 새벽공기를 마시며 강변을 서성였나보다. 영감이 가장 몰입되는 순간이고 오롯이 혼자로써 사유하며 주변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산 정상 바위위에 가부좌 틀고 앉아 있으니 발아래 강물에서부터 맞은편 저 너머 어슴푸레하게 능선을 드러내는 지리산까지를 모두 섭렵하는 듯하다. 강가의 아침이란, 어느 강이든 그러하지만 특히 산을 휘감고 흐르는 섬진강은 잔뜩 설레이며 기대하게 한다. 시간과 기후에 따라 변화무쌍함을 연출하기에 기대치를 한껏 높이고 눈을 떼지 않고 바라본다. 드디어 여명이 떠오르면 이 산, 저 산 골짜기, 강줄기마다 환희의 운해가 펼쳐진다. 주위는 순식간에 강한 입체감을 주며 집체무용이라도 연상케 하는 대단한 파노라마를 만들어 낸다. 어느새 남해 금산에서 힘찬 해가 솟아오르면 운해는 슬그머니 어디론가 퇴장하고 새 세상이 펼쳐진다. 무동산, 낮고 작은 산이지만 가장 가까이에서도 넓고 긴 섬진강을 보여주는 옹골찬 곳이다. 하류에 자리하고 있어 넓어진 강폭의 규모가 남해바다를 향해서 구불거리며 흐르는 곡선의 끝에는 광양제철의 굴뚝이 우뚝 서있다. 괜한 망상을 떠올릴 때가 있다. 기상변화로 인해 사계절이 없어진다면? 2 섬진강 물길은 600리 이다. 우리나라에서 아홉 번 째로 긴 강이다. 참 먼데서부터 흘러와준 것이 장하다! 조그마한 옹달샘, 전북 진안의 데미샘에 모인 물방울들이 흩어지지 않고 하나 되어 작은 도랑, 하천을 이루며 주변과 함께 어우러진다. 메마른 논밭에, 강가 언덕의 억새를 적셔주고 밭 메는 어머니의 갈증을 달래준다. 날 저물어 집에 돌아가는 아버지의 삽을 씻어주고 흘러간다. 높은 곳에 고여 있지 않고 필요한 곳을 찾아 아래로, 이 땅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간다. 또 다른 지천들과 함께 더 많은 곳을 더트면서 땅을 적시고 강을 이룬다. 그렇게 목마른 곳을 적시며 협곡이나 들녘을 돌아 돌아 서두르지 않고 이르른 곳 여기, 광양 무동산 아래에서 폭넓은 강, 강다운 강을 만든다. 섬진(蟾津)이란 이름은 우리민족의 역사와 사회의식을 담아내고 있다. 왜구가 강 하구에 침입했을 때 광양 땅 섬거에 살던 수십만 마리 두꺼비가 떼 지어 몰려와 울부짖자 왜구들이 피해갔다는 전설에 따라 불리어졌다는 고마운 두꺼비의 공덕을 광양군 다압면에 ‘섬진강유래비’는 전한다. 이렇듯 이 물길은 평온할 수만은 없었다. 선비들이 위정척사(衛正斥邪)의 도포 깃을 휘날리고, 민중들이 시퍼런 죽창을 치켜세웠음에도 섬진강은 끊임없이 왜구들의 침탈로가 되었다. 동학농민전쟁 당시 농민군과 관군의 치열한 싸움이었던 방아치전투(1894) 이후에도 동족상잔으로 강물을 물들게 했던 아픔을 안고 흐른다. 여인들이 잡은 재첩을 실어 나르는 동력선이 물길을 가르며 분주하게 다닌다. 저 앞에 지리산 능선의 부드러운 선율과 그 틈새에 드러내지 않으려는 듯 조용히 숨어있는 강변마을이 주는 아련함이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혀준다. 여기 강가의 사람들이 흘린 서러움과 눈물, 절망까지 모두 받아 안고 바다가 보이는 광양만으로 간다. 이제 600리 섬진강은 버려라. 그리고 바다의 시원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자기를 버린 물방울은 강이 되어 바다의 시원으로 거듭나 강들의 유토피아, 대동세상일 바다에서 자유와 평화를 누릴 것이다. 경전선인 섬진철교에 화물열차가 지나갔다. 대 여섯 량을 단 여객열차도 평온하게 지나간다. 섬진교 위로 하동과 광양을 오가는 버스가 아무렇지도 않게 달린다. 두 다리를 품어주는 섬진강도 하나의 물줄기로 흘러간다. 목포에서 탔다는 아주머니가 집에서 삶아 온 달걀이라고, 경상도 아지매는 목을 축이라며 두유팩이 서로 오간다. 누가 강사이로 깊은 간극을 만들었나. 사람만이 나뉘어 가고 있다. 마음에 평화를 가져본다. - 글 + 그림 | 송만규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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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섬진팔경사계
    2025-08-27
  • [송만규화백의 섬진팔경사계] 붕어섬 -여름
    붕어섬 (상) 글쎄, 듣고 보니 금붕어 모양새다. 꼬리를 살짝 틀어 재치고 힘 있게 돌진하는 기세가 있어 보인다. 이 붕어섬이 있는 본래의 지명은 외앗날이다. 그런데 유유히 흐르던 섬진강이 아픈 시련을 맞게 되었다. 1928년, 이 강이 갖고 있는 수자원을 유용하겠다는 것이다. 그 해 호남지역에 극심한 가뭄을 겪고 있었다. 그래서 정읍시 산내면 종성리와 임실군 강진면 옥정리를 마주하는 협곡에 높이 40m의 댐을 만들었다. 남류하던 섬진강물중 일부는 땅속에 파이프라인을 뚫어 숭어가 노는 서해안으로 흐른다. 그 물은 동진강을 따라 가보면 광활한 호남평야, 개화도의 메마른 논바닥을 적셔줄 농업용수로 사용되었다. 이후 수력발전 등 다목적댐으로 만들어졌다. 거기, 댐 아래로 처음 낙하하는 곳에 정읍 칠보 수력발전소가 있다. 그러면서 삶의 근거지인 논과 밭, 다니던 길과 집들이 고스란히 물에 잠기고 이곳은 졸지에 섬이 되어버렸다. ‘산 바깥 능선의 날등’이란 뜻으로 ‘외앗날’이라 부르는데 오가는 이들이 금붕어를 닮았다하여 붕어섬으로 불리어져 함께 쓰인다. 댐으로 만들어진 이 저수지 이름을 지을 때 이 지역에서는 ‘구름과 바위의 전설을 많이 지니고 있는 곳이니 운암호’라 불리워지기를 원했으나 중앙정부에서 옥정호로 결정했다고 전해진다. 한편 이 근처에 옥정리(玉井里)라는 마을은, 조선 중기에 이 마을을 지나던 스님이 ‘이 곳은 머지않아 맑은 호수, 즉 옥정(玉井)’이 될 것이라고 예언하여 마을이름을 옥정리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옥정호 때문에 임실군 운암, 강진, 신평, 신덕면과 정읍시 산내면 등 2군 5개면이 물에 잠겼고 2만 명 가량이 고향을 떠나야만 했다. 그중에 상당수는 부안군 계화도 간척지 등 낯선 땅으로 옮겨졌다. *************** 붕어섬 (하) 붕어섬은 아리고 아린 아름다움이다. 그 아름다움은 실향민들의 양보와 배려의 결실물이다. 그러나 자연은 붕어섬을 외로이 물에 가둬 놓지만은 안했다. 관심 있는 수많은 이들의 끊임없는 발길이 함께한다. 구절양장(九折羊腸)의 도로를 즐기며 드라이브하기 좋은 곳, 옥정호이다. 또한 옥정호의 아름다운 풍광을 담아갈 수 있도록 13km 이르는 물안개길이 있다. 옥정호가 손에 닿을 듯 말 듯, 호수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보며 걸을 수 있는 오솔길이 만들어 낸 트래킹 코스다. 화려하거나 웅장하게 꾸며지지 않아서 그야말로 마음 편안히 맡길 수 있는 쉴만한 공간이다. 옥정호는 뒤편으로 오봉산이 병풍처럼 싸안고 있어서 더욱 포근함을 안겨준다. 그 산에 15분가량 올라가면 국사봉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호수 가운데 붕어섬이다. 그 곳에는 사람 냄새가 물씬 난다. 함께 지내던 이웃들은 떠났을지언정 이른 봄이면 새 희망의 기운이 솟는다. 갈아엎어 붉은 색조를 띠는 밭두렁에서는 뭔가를 이뤄낼 듯이, 새 생명을 암시하듯이 아침 햇살에 따뜻한 훈김을 뭉실뭉실 피어 올린다. 작은 섬이지만 시간의 변화를 읽게 해주는 공간이다. 그야말로 변화무쌍함을 만들어내는 설치작품 같은 곳이다. 여명이 동터오를 새벽녘에는 그야말로 승경이다. 가을 날 기온차가 생길 때면 전망대에는 발 디딜 틈이 없다. 사방에 둘러쌓인 산과 그 안에 안겨있는 호수가 어우러져 펼쳐지는 혼미한 기상 쇼를 보기 위해서이다. 동녘의 햇살은 섬진강 발원지인 저 멀리 진안 마이산의 두 귀에 그림자를 드리우며 호수에 비춰온다. 지자체에서 관광개발을 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외앗날에, 붕어섬의 지느러미 하나도 소실되지 않고 소중하게 간직해야 한다. 장자(莊子)의 조탁복박(彫琢復朴)이란 말이 호수위에 어른거리다.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꾸미거나 수식(修飾)하지 말고 본래의 내 모습을 소중히 여기며 참 나의 모습을 찾아야 한다는 말이 아니던가. -글 + 그림┃송만규화백
    • 기획
    • 섬진팔경사계
    2025-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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