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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시농부 안철환의 땅 이야기 11] 거름 이야기와 마무리
    거름 이야기와 마무리 안철환(전통농업연구소 대표) 거름 만드는 일은 밥 먹는 일만큼 쉬운 일이란 걸 꼭 일러주고 싶었습니다. 생각해보세요. 유기물이란 그냥 놔두어도 다 썩게 되어 있어요. 냉장고에서도 썩어 나가는 경우가 종종 있잖아요. 발효제 없어도 큰 지장 없습니다. 있으면 더 잘되는 것은 사실이지만요. 김치, 장 담글 때 발효제 넣지 않잖아요. 다만 발효와 부패의 차이점은 알 필요가 있습니다. 둘 다 미생물에 의해 분해되는 것은 같아요. 최종 결과물이 인간에게 해로운 결과가 생기면 부패, 이로운 결과가 생기면 발효라고도 하거나, 좀더 넓게 말하면 내가 원하는 결과가 나오면 발효, 그렇지 않으면 부패라 할 수 있어서 둘의 차이는 종이 한장 정도라 할 수 있지요. 가령 술을 만들려고 했는데 잘못되어 식초가 생겼으면 부패로 간주하지만 관점을 달리하면 발효라 할 수도 있는 것과 같습니다. 지력을 높여주는 호기발효 거름을 만들기 위한 방법은 크게 호기발효와 혐기발효 두 가지가 있습니다. 호기(好氣)발효는 글자 그대로 공기를 좋아하는 발효로 산소발효라 할 수 있고요, 혐기(嫌氣)발효는 반대로 공기를 싫어하는 발효로 무산소 발효라 하지요. 대체로 김치나 장 같은 음식의 경우 혐기발효를 시키는 반면 퇴비는 호기발효 시키는 게 좋습니다. 저는 거름을 크게 두 종류로 나누기도 합니다. 하나는 흙이 좋아하는 거름, 하나는 작물이 좋아하는 거름으로 말이죠. 물론 이렇게 이분법으로 딱 잘라 나눌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흙이 좋아하면 작물도 좋아하죠. 다만 작물이 좋아하는 거름을 흙이 싫어할 수는 있어요. 그래서 중요한 것은 흙이 좋아하는 거름을 만드는 일입니다. 음식물찌꺼기가 됐든 똥(인분, 축분)이 됐든 이런 질소질 성분이 주재료인 것으로 거름을 만들 때 꼭 톱밥을 섞습니다. 질소질 성분은 대체로 단백질이 분해될 때 나옵니다. 그러니까 질소질 성분이란 고기 같은 단백질 성분이 많다는 의미일 겁니다. 그런데 저는 반대로 말합니다. 이런 질소질 재료를 발효시키기 위해 톱밥을 섞는 게 아니라 톱밥을 발효시키기 위해 질소질 재료를 섞는 것이라고 말이죠. 왜 그럴까요? 하나는 질소질 재료와 톱밥을 섞어 발효시키면 최종 결과물은 발효된 톱밥만 남기 때문입니다. 질소질 재료는 쓰이기만 하고 사라진 거에요. 두 번째는 흙의 지력, 곧 땅심을 좋게 해주는 것은 질소질보다는 톱밥에 많은 탄소질이기 때문입니다. 질소질 성분은 자신의 고향인 하늘로 되돌아가거나, 아니면 작물이 먹지요. 그리고 남은 건 땅 속으로 스며들거나 유실되어 수질 오염원이 되기도 합니다. 탄소질이 지력을 좋게 해주는 주인공인 것은 탄소질이 바로 유기물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유기물이란 탄소화합물의 또 다른 표현이고, 그래서 지력이 좋다는 것은 토양에 유기물이 충분하다는 말과 같거든요. 그래서 톱밥을 발효시키기 위해 음식물이나 똥을 섞어주는 겁니다. 비율도 톱밥의 탄소질 성분이 20~30이면 질소질 성분은 1 정도입니다. 대부분은 탄소질이란 거지요. 그래서 저는 탄소질 재료를 밥이라고 하면 질소질은 반찬이라고 합니다. 이를 탄소질 대 질소질 비율이라고 해서 탄질비라고도 하고, 영어도 탄소질carbon의 c, 질소질nitrogen의 n을 따 와서 cn율이라고도 하지요. 톱밥을 섞어주면 톱밥 틈의 공기층 때문에 호기발효가 절로 일어납니다. 그래서 톱밥이 밀가루처럼 고운 것보다는 입자가 커서 틈이 많은 거친 게 좋습니다. 톱밥엔 목질부 섬유질인 리그닌이 풍부합니다. 이를 토양 미생물, 그 중에 방선균이란 놈이 아주 좋아합니다. 이놈이 리그닌을 먹고 접착 성분을 만들어 토양의 홑알들을 떼알구조로 뭉쳐 줍니다. 이 떼알구조 흙을 입단(粒團)구조 흙이라 하는데 흙 알갱이(고상)가 반을 차지하고 나머지 반이 물(액상)과 공기 층(기상)으로 이루어지고 유기물은 입단화된 흙 틈 벽면에 코팅되어 약 5%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 정도의 유기물함량이면 꽤 옥토라 할 수 있어요. 탄질비는 이론적으로 20~30:1이 적당하지만 실제 거름을 만들 때는 부피 기준으로 톱밥 1.5~2에 음식물이나 똥은 1이면 적당합니다. 음식물이나 똥에도 탄소질 성분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수분도 중요합니다. 60%가 적당한데요 실제론 눈으로 볼 때 톱밥과 섞은 상태가 뽀송뽀송하면서 약간 촉촉한 느낌이면 됩니다. 물기가 눈에 보일 정도면 과습입니다. 톱밥과 잘 섞어놓고 발효가 진전되면 부피가 70% 정도로 줄어들 때가 옵니다. 공기가 모자라 호기상태가 좋지 않다는 신호입니다. 그럴 때 위 아래를 뒤집어 줍니다. 공기를 공급해주는 거지요. 그리고 나서 두 세달이면 발효가 완성되는데 일단 원재료 냄새는 사라지고 약간 습하면서 풋풋한 냄새가 나며 색깔은 거무튀튀해집니다. 기후위기 땅심으로 극복하자 스페인의 끝없이 펼쳐진 아름다운 밀밭, 그렇지만 이 밑밭이 사라지면 사막이 되고 말 위험한 경관이기도 하지요. 기후위기는 하늘이 화가 난 거에요. 그래서 기후재앙이라고도 하지요. 기후재앙의 완결판은 대가뭄입니다. 다른 말로 한재(旱災)라고 하는데 수재, 화재 등 기후재앙 중에서 제일 무서운 재앙입니다. 다른 재앙들은 피할 곳이 있는데 한재는 피할 데가 없어요. 모두에게 피해를 줄 뿐 아니라 그로 인한 사망자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입니다. 우리나라도 1670(경술년)~71년(신해년)에 대기근이 닥쳐 1천만명의 인구 중 1백만명이 굶어 죽었답니다. 경신대기근이라 하는데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이 시기에 전 세계적으로 소빙하기가 들이닥쳐 세계 곳곳에 추위와 함께 엄청난 가뭄으로 대기근이 곳곳에 벌어졌지요. 한재 같은 기후재앙이 지나가면 토양이 크게 망가집니다. 심하면 사막화가 일어나지요. 오늘날 세계 곳곳의 사막지역도 기후재앙의 결과가 많습니다. 이집트 나일강 주변 옥토 넘어 거대한 사막지역도 원래는 초원지대였답니다. 사막국가로 유명한 사우디아라비아도 원래 숲으로 우거진 지역이었다지요. 엄청난 기후위기, 곧 한재가 누차에 걸쳐 들이닥치고 결국 건조한 기후조건이 자리잡으면서 사막지역이 된 것이겠지요. 세계 4대강 문명 지역을 보면 황하를 빼고는 다 사막지역입니다. 사막지역에서 문명의 꽃이 피진 않았을 겁니다. 문명이란 비옥한 지역의 곡창지대가 받침되었기에 가능했을 테니요. 문명 앞엔 숲이 있고 문명 뒤에는 사막이 있다는 어느 유명한 학자의 말이 바로 그것을 두고 한 말일 겁니다. 저는 그런데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리라 봅니다. 기후재앙으로 사막이 생겼다는 건 분명 땅심이 고갈되었다는 것인데요, 반대로 땅심을 잘 지키면 기후재앙을 피할 수 있다는 것 아닐까 하는 겁니다. 문명 발달로 숲이 사막이 되었다는 건 분명 땅심을 지키지 못했거나 아니면 당장의 욕심에 눈이 멀어 땅심 살릴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이죠. 저는 그럴 위험이 있는 곳을 엄청난 단작지역이라 봅니다. 예를들면 끝없이 펼쳐진 올리브, 포도, 밀, 옥수수, 콩, 목화, 커피, 사탕수수 지역 등입니다. 숲을 파괴해 조성한 경작지이기에 한 종류 작물만 심으면 나중엔 작물마저 병해충 피해 등으로 사라져 결국 사막이 되고 말겁니다. 이미 강, 하천, 지하수는 오랜 단작으로 고갈되고 말았지요. 그외 겨우 남은 초원 지대마저 양들이 먹고 나면 되돌릴 수 없는 일이 될 겁니다. 제가 가본 유럽, 호주와 뉴질랜드의 단작 지역들에서 저는 그 위험을 직감했습니다. 얘기로만 들은 중국의 드넓은 단작지대, 미국과 남미 등에서 숲을 파괴하고 난개발 되고 있는 단작지대들도 큰 위기들을 축적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아랄해를 말려버린 소련의 목화 단작 농사가 이미 경고를 하고 있는데 말이죠. 그렇지만 저는 땅심에 희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땅심만 잘 지키면 사막화도 막을 수 있습니다. 땅심을 살려 하늘의 노여움을 달래면 기후위기도 극복할 수 있다는 거지요. 그 믿음을 다음의 짧막한 글로 대신하고자 하옵고, 그동안 어설픈 제 얘기 들어주셔서 감사한 말씀 드립니다. 하늘과 흙과, 그리고 사람 하늘색은 뭘까요? 파란색? 하늘색? ㅎㅎ, 죄송하지만 하늘은 검은색이에요. 왜 그러죠? 하늘천따지 검을현누르황이라고 하잖아요. 하늘은 검고 땅은 누렇다는 말이요. 까만 흑이 아닌 검을 현은 좀 달라요. 그냥 새까만 게 아니고 뭔가 아련히 있는 거에요. 뭐가 있을까요? 맞아요, 별이 있지요. 하늘은 어디에 있을까요? 구름 넘어 저 멀리 있을까요? 하늘은 늘 우리 곁에 있다는 걸 어둠을 보고 알았어요. 토종 씨앗 찾아 강원도 깊은 산골 한 할머니 집에 들렀다 하루를 묵은 적이 있었어요. 저녁 얻어 먹고 TV도 없는 구석방에서 일찍 잠을 청하려고 침침한 백열전구 불을 껐더니 칠흑 같은 어둠이 밀려오대요. 얼마나 어두컴컴한지 눈을 떴는지 감았는지를 모르겠더라구요. 처음엔 그 어둠이 불안했어요. 조금 무섭기도 했고요. 근데 좀 지나니 편안해지기 시작하대요. 어둠이 이불처럼 느껴졌어요. 한참 지나 알았지요. 그게 나를 감싸준 하늘이란 걸요. 하느님은 흙으로 인간을 빚었다죠. 그리고 숨을 훅 불어넣어 생명을 깃들게 했다잖아요. 뿐입니까? 비도 내려주어 생명을 영위할 수 있게 해주지요. 비는 어두운 하늘의 은하수에서 내려온다 했어요. 바로 검은 하늘의 무수히 많은 별들이죠. 흙과 하늘 사이는 얼마나 떨어져 있을까요? 맞습니다. 흙과 하늘은 붙어있어요. 아니 붙어있다 못해 끊임없이 소통하고 있다고 하는 게 맞을거에요. 하늘은 흙에 숨을 불어 넣어주고 흙은 생명을 잉태해 하늘을 감동시키죠. 하늘이 노한 기후위기는 하늘이 흙과 멀어져 일어난 거라고 봐요. 흙을 다시 하늘과 소통하도록 제 자리를 잡아주면 기후위기는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어요. 흙에 생명을 잉태 해주어 하늘을 감동시킬 수 있으면 됩니다. 그게 사람이 할 일 아닐까요? 글을 쓴 안철환 선생은 온순환협동조합, 전통농업연구소 대표이고 경기도 안산에서 ‘산림생태텃밭 먹거리숲 농장’을 운영한다. 남은 음식물과 똥오줌, 커피 찌꺼기를 받아 직접 거름 만들기를 실천하고 있으며, 우리 토종 종자와 전통 농업 살리기에 열중하고 있다. 25년 전, 처음으로 심은 배추 씨가 3일 만에 싹 트는 걸 보고 ‘씨 안에 누가 있었구나!’ 깨닫고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우리가 먹는 배추는 단순히 물질적인 먹을거리가 아니라 나와 별 차이 없는 생명이며, 그래서 먹는다는 것은 생명을 먹고, 생명과 소통하고, 생명과 하나 되는 일이라고 믿는다. 쓴 책으로 《시골똥 서울똥》(2009), 《24절기와 농부의 달력》(2011), 《호미 한자루 농법》(2016), 《토종농법의 시작》(2020)이 있고, 옮긴 책으로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2004)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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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8-18
  • [송만규화백의 섬진팔경사계] 구담마을 여름
    [송만규화백의 섬진팔경사계] 구담마을 여름 - 구담여름, 2015, 180×180, 장지에 수묵채색 구담 (상) 구담은 임실 지역을 스미는 섬진강 중에서 가장 하류에 있는 마을이다. 산 중턱 비탈진 곳에 오목하게 올려놓았다. 그다지 넓지 않은 터를 깎고 다듬어서 집들을 세워 마을 자체가 경사졌다. 저 아래 강변에 이르기까지 정갈하게 축대를 쌓아 이룬 논다랑이와 밭들을 보면 이 마을 사람들의 삶에 대한 의지를 짐작케 한다. 한참을 내려가 징검다리를 건너가면 순창인데 11시 방향으로 하얀 바위를 내밀며 기세당당하게 우뚝 솟은 산이 버티고 있다. 이름으로만 보아도 범상치 않은 용골산이다. 그 산자락 싸리재에 대여섯 집이 강물을 바라보며 모여 있다. 구담(九潭)이란 마을의 본래 이름은 안담울이었다. 지금도 그렇게 부르는 이가 있다. 앞강에 자라가 많이 살고 있다고 해서 구담(龜潭)이라 하기도 했고, 또한 강줄기에 아홉 개의 소(沼)가 있다고 해서 구담(九潭)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1680년경 숙종 때 해주 오씨(吳氏)가 정착하여 마을을 가꾸어 왔다고 한다. 내가 이곳을 처음 찾은 때는 1992년으로 기억된다. 정월 보름 다음 날이었다. 어수선한 심경으로 무작정 섬진강변 길에 발을 내디뎠다. 아침 일찍부터 강물에 눈을 맞추며 얼마를 걸었는지 구담마을에 이르니 점심때가 지났다. 산과 산 사이 강변길에 불어닥치는 칼바람이 뼛속까지 파고드는 듯하고 시장하기조차 하니 더욱 오들오들했다. 어느 집인가 불쑥 들어갔다. 낯가림이 있는 나로서는 의외의 행동이었다. 그 집 사람들은 이미 끼니를 마친 상태였다. 그러나 노부부는 장작불을 지펴 데워진 구들장 아랫목에 앉기를 권하며 귀한 손님인 양 나를 극진히 대하였다. 그리고 따끈하게 데운 술을 몇 순배 나누면서 주인장은 조용조용한 음성으로 동네 소개를 자상하게 해 주었다. 좀 더 머물고 싶은 정겹고 훈훈한 자리였다. 그날, 강물이 검어질 때까지 걸었다. 그 후, 구담에 다시 갔을 때 동네 사람들은 그 집을 ‘수남이네’라고 부른다는 것을 알았다. 아들 이름이다. 섬진강을 가슴에 적시고 얼굴을 비추며 붓을 담그게 한 마을이다. 그러니까 나의 발길을 붙잡고 시선을 잡아준 그곳은 구담이다. 구담(하) 전주에서 구담까지 자주 왕래하기에는 조금 불편하다. 버스를 세 번이나 갈아타야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강진면에서 덜덜대는 비포장도로를 다니는 군내버스가 하루 서너 번이나 다니는지, 천담에서 내려 3km를 더 걸어가야 한다. 그래도 갈 곳이 있으니 망설임 없이 화구며 간식거리를 잡다하게 챙겨 간다. 정읍댁이 있어서다. 주변의 친구가 소개해 준 집이다. 정읍댁은 널찍한 안방을 내어주면서 작업실로 쓰라고 권했다. 무슨 인연인지 그의 이름이 내 아내와 같다. ‘양금’이! 정읍댁은 내가 밖에라도 나가 있을 때 끼니때가 되면 “화가 양반~” 하고 꼭 나를 부른다. 따끈한 밥상에 반주도 빼놓지 않으니 넉넉하지 않은가. 그 손맛 중에는 특히 다슬기 요리가 일품이다. 정읍댁은 작은 소쿠리를 옆에 끼고 강에 내려가 순식간에 다슬기를 잡아 온다. 잡아 온 다슬기는 확독에 닥닥 갈아서 껍질을 골라내고 애호박에 부추 잘게 썰어 넣고 끓인 진하고 푸른 국물은 그야말로 별미다. 그 맛은 다슬기의 영향도 있는 것 같다. 맑고 깨끗한 강물에서 건져 올린 다슬기는 둥글하고 노란색을 띤 모양으로 작지만 쫄깃하게 씹히는 맛을 느낄 수 있다. 마을 앞 끝자락에는 당산마루가 있다. 마을에 사람들이 북적대고 살 때는 마을공동체적 의례인 당산굿을 지냈다고 한다. 내가 이곳에 처음 오던 해에도 정월 보름날 달빛 아래 노부부가 당산나무에 금줄을 매놓고 정성을 들이고 있었다. 무엇을 위해서인지는 알 수가 없다. 이때쯤이면 마을은 주변의 닥나무를 베어 나르느라 분주하다. 베어 낸 닥나무는 강가에 돌을 쌓아 만든 커다란 솥에서 며칠 동안 찌고 강물에 다시 며칠간 담가 놓는다. 불어난 닥은 아낙들의 손으로 껍질이 벗겨지고 한지의 재료로서 공장으로 간다. 고요한 시간이 되면 주변에 아름드리 느티나무로 둘러싸여 원형을 이룬 마당에 멍석이라도 깔아 눕고 싶다. 하기야 가을이면 낙엽으로 포근한 멍석이 되어 버리는 당산! 자연이 인간에게 안겨주는 축복이다. 사방 어느 곳을 바라봐도 그냥 흘려보낼 곳 없어 어딘가에 담아둬야 할 것 같은 천혜의 창조물이다. 발아래 저쪽 9시 방향에서 다가오는 강물은 너럭바위에 쉬고 있던 재두루미의 목을 적셔주고, 늪에 어우러지다 앞산을 휘돌아 장구목 쪽으로 흘러간다.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곡선의 물줄기는 느리고 자유롭게 흐르고 있다. 두루두루 주변을 챙긴다. 그래서 섬진강이고, 또한 그것들은 내 그림의 밑천이 되어 왔다. 아침 산책을 나설 때면 설렘과 망설임이 다가온다. 가야 할 곳이 여러 갈래이니 그러기도 하다. 우측에 비탈진 밭고랑을 지나면 계단식 논들이 설치되어 있다. 이른 봄 시린 손을 불어가며 걷다 보면 논두렁 사이로 가녀리게 조용히 아주 맑게 흐르는 물소리가 들려온다. 산 능선에 쌓였던 눈과 얼음이 녹아 흐르는 물이다. 갓 돌 지난 사내아이의 오줌 누는 소리 같다. 새 생명, 희망의 소리다. 이런 풍경의 구담을 영화인들도 놓치지 않았다. 1998년 이곳을 배경으로 ‘아름다운 시절’의 영화 촬영 표지석이 강을 바라보기 가장 좋은 곳에 세워져 있다. 아프고 쓰린, 처참하고 고통스러운 시절을 영화는 주변의 아름다운 풍광으로 달래게 한다. -그림, 글 _ 송만규(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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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섬진팔경사계
    2025-08-12
  • [도시농부 안철환의 땅 이야기 10] 거름, 순환의 필수 경로
    흙으로 돌아가는 삶은 죽어서가 아니라 살아서도 가능한 일임을 제가 존경하는 귀농 선배 한 분에게서 배웠습니다. 그 분은 귀농해서 아주 소박하고 예쁜 뒷간을 직접 만들어 놓고는 정작 자신은 볼 일을 뒷간에서 보지 않고 밭에 들어가 봤답니다. 한 손엔 호미, 다른 손엔 물 한 바가지 들고 적당한 자리 찾아 호미로 구멍 판 다음 일 보고 물 한 바가지로 비데 하면 끝. 그게 매일 흙으로 돌아가는 방법이라니 재밌죠. 똥은 나의 분신이기 때문이라는 거지요. 나의 분신이 매일 흙으로 돌아간다면 그 흙 또한 나의 분신이지 않을까요. 아니면 하느님이 그 흙으로 나를 빚었으니 내가 거꾸로 흙의 분신이기도 하겠죠. 다르게 말씀드리자면 하느님이 흙으로 빚은 다음 당신의 숨을 불어넣어 인간을 완성했으니 나는 하느님과 흙의 합작품일 겁니다. 동양에선 하느님을 양(陽)이라 하고 흙을 음(陰)이라 했으니 나는 당연히 하느님인 아버지와 흙인 어머니의 합작품이 되겠지요. 그렇다고 아무 흙이나 생명의 모태가 되는 건 아니고 하느님의 숨이 깃들 때 생명의 흙이 될 수 있다 했지요. 하느님의 숨이 뭐라 했는지 기억나시나요? 바로 따뜻한 바람이자 공기입니다. 생명의 흙에는 물이 있지요. 흙을 기반으로 공기와 물이 만났을 때 비로서 생명이 탄생하는 겁니다. 그런 생명의 흙에 나의 분신인 똥이 매일 들어가 흙의 양분이 되면 흙에는 하느님의 숨이 더 잘 깃들고 더 많은 생명이 잉태될 겁니다. 그렇게 흙에 살다 결국 죽어서도 흙으로 돌아간다면, 나뿐이 아니라 나의 조상이 그랬듯이 나의 후손들도 그렇게 흙으로 돌아간다면 흙은 거룩한 생명의 신전이 되는 거라 나는 역설하곤 합니다. 가끔 교회나 성당 가서 농사 얘기 드릴 기회가 있으면 하느님은 콘크리트로 지은 예배당보다는 저 생명의 흙을 더 좋아하실 거라 기염을 토하곤 하지요. 그래서 똥을 비롯해 내 몸과 생활에서 나오는 유기부산물을 거름으로 만들어 흙으로 돌려보내는 일은 단지 먹을거리 생산을 위한 것만이 아닌 흙을 살아있는 생명의 신전으로 만드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제 밭에 먹을거리 작물만 자라지 않고, 온갖 풀과 벌레와 지렁이와 미생물, 꿀벌과 무서운 말벌, 귀여운 새와 두더지와 개구리, 능사와 살모사 같은 뱀 등 갖은 생명들이 어울려 살 수 있는 이유입니다. 순환의 힘 한 때 무투입순환농법이 센세이션을 일으킨 적이 있었습니다. 아무 거름도 주지 않고 작물을 키워 수확을 할 수 있다니 놀라울만 하죠. 저는 반박했습니다. 내가 먹고 눈 똥을 흙에다 주지 않으면 똥은 어디다 버리나, 내 농장에서 나온 먹거리를 이웃과 나눠 먹으면 이웃의 똥은 또 어디다 버리나, 우주에다 버릴 수는 없는 일, 부득이 내 농장이 아닌 어딘가에다 버려야 할텐데 그러면 내 똥은 자연을 더럽히는 오염원이 되는 것 아닌가 했지요. 또 흙에서 나온 걸 흙에다 돌려주지 않고 빼 먹기만 하다 흙의 지력을 다 빼먹게 되면 나중엔 농사조차 되지 않는 사막이 되고 말 것이다 했죠. 그런데 제 비판은 나중에 보니 일면적인 이해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무투입순환농법은 무조건 아무것도 주지 않는 게 아니고 내 농장에 순환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게끔 하는 게 핵심이라는 걸 나중에 안 거죠. 요즘 말로 예를들면 탄소가 제 농장에서 잘 순환되도록 하면 탄소중립은 절로 이뤄진다는 겁니다. 탄소가 배출된만큼 탄소를 사냥하는 거지요. 탄소배출이란 수확물을 말합니다. 식물의 광합성 활동으로 공기 중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탄수화물과 단백질을 만드는 게 열매고 이삭이지요. 물론 수확물 외에 낙엽 등 농사부산물도 포함해야겠지요. 농사 부산물과 함께 수확물을 먹고 남은 부산물은 다시 땅으로 돌아가게 하는 일, 바로 이게 농장 순환 시스템인 겁니다. 탄소 순환만이 아닌 질소 순환도 매우 중요합니다. 질소는 단백질의 핵심 원소이고 단백질 부산물의 핵심이기도 하지요. 질소는 주로 암모니와 결합을 잘해 냄새가 납니다. 그게 똥 냄새이고 썩는 냄새입니다. 그런데 질소 순환은 탄소 순환과 비슷하면서 조금 복잡한 면이 있어요. 질소는 똥과 오줌에 많지만 빗물에도 있습니다. 대기 중 질소가 제일 많잖아요. 비가 그런 대기를 통과하면서 질소를 머금는 거에요. 번개 구름에서 내리는 비는 질소를 더 많이 머금게 됩니다. 번개의 엄청난 전기에너지가 질소를 더 많이 고정해 비와 함께 내리거든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 하늘의 비와 햇빛 에너지가 내 농장에 탄소와 질소 비료를 만들어 공급해주는 것이기에 순환시스템이 잘 작동하면 외부에서 비료를 투입해주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지요. 더불어 내 농장에서 흙과 양분이 빠져나가지 않게 하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한 여름 폭염과 폭우, 한 겨울 한파와 가뭄 등이 내 땅의 흙과 양분을 말리거든요. 이걸 예방하는 것도 순환시스템의 중요한 일입니다. 지금 농장에서 농사지은 지 25년 동안 경운하지 않고, 모든 걸 순환시켜 퇴비 만들어 주는 농사를 하다보니 지력이 쌓여 몇 년전부터는 밑거름을 주지 않고 오줌으로 웃거름만 주며 농사짓게 되었습니다. 밑거름은 옥수수와 호박 같이 다비성 작물에게만 주고 맙니다. 산림과학원 지정 산림생태텃밭(일명 먹거리숲) 조성하며 틀밭을 만든 이후 틀밭이 흙의 유실, 침식을 막아주고 지력을 지켜주어 더 거름을 주지 않게 되었어요. 그 바람에 저희 퇴비장독대에 만들어 둔 퇴비들이 그대로 쌓여있게 되었으니 그것도 골치거리가 되고 있네요. 암튼 그래도 무투입순환농법이란 표현은 오해가 있어 저는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자칫 게으른 농사를 조장할 수 있구요. 그냥 순환농법이면 충분할 것입니다. 거름의 뼈는 탄소, 살은 질소 똥이나 남은음식물로 거름 만들 때 꼭 톱밥을 섞어주어야 합니다. 똥과 남은음식물은 질소가 주 재료이고, 톱밥은 탄소가 주 재료입니다. 이 재료들을 분해하는 미생물에게 톱밥은 밥이고 질소는 밑반찬이라고 보면 됩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탄소질은 뼈이고 질소질은 살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미생물이 이 재료들을 분해할 때는 적당한 비율의 물과 공기가 필수입니다. 이 중에 공기가 더 중요한 발효를 호기(好氣)발효라 하고, 공기를 좋아하지 않는 발효를 혐기(嫌氣)발효라 합니다. 퇴비 만들기는 호기발효가 좋습니다. 혐기발효는 오줌 같은 액체비료 숙성시킬 때가 적당합니다. 호기 발효를 시킬 때 퇴비의 주 재료는 톱밥 같은 탄소질 재료입니다. 그렇다고 톱밥만 있으면 발효는 아주 지체됩니다. 여기에 질소질 재료가 첨가되어야 발효가 잘 일어나지요. 탄소질과 질소질의 비율은 보통 20~30:1로 이를 탄질비, 탄질율(C/N)이라 합니다. 비율로만 봐도 탄소질이 질소질보다 20~30배는 많아야 발효가 잘 된다는 것인데요, 그러면 탄소질 재료인 톱밥이 너무 많아 퇴비 만들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닙니다. 그러다보니 시중에 판매되는 공장식 축분 퇴비들에는 톱밥이 20% 정도밖에 들어가지 않아요. 그 정도 비율이면 발효가 잘 일어나지 않아 강제로 온도를 가해주고 공기도 넣어주며 더불어 미생물 발효제도 넣어주는 겁니다. 저희가 퇴비 교육할 때 강조하는 게 있습니다. 음식물찌꺼기를 질소질 재료로 하고 톱밥을 섞어주지요. 그런데 여기에서 주인공은 음식물이 아니라 톱밥이라는 걸 강조합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가 땅에 퇴비를 넣어주는 건 땅의 지력(땅심)을 높여주기 위함인데 땅심의 주인공이 바로 탄소질 재료, 곧 톱밥에 많기 때문이에요. 톱밥 같은 목질부에는 리그닌이라는 섬유질이 있는데 이게 바로 땅심을 높여주는 탄소질의 핵심입니다. 낙엽이나 왕겨 같은 초본류에는 셀룰로오즈라는 탄소질이 있는데 리그닌만 못하지요. 리그닌은 토양 속 호기성 미생물들이 아주 좋아해 먹고 난 후 접착 성분을 만들어 흙의 입단화, 곧 떼알구조의 흙을 만들어 줍니다. 여기엔 숨구멍, 물구멍이 많아 흙이 푹신푹신해지지요. 이 흙 틈새 벽면엔 미생물이 먹이를 먹고 만든 유기물을 코팅해 놓습니다. 그래서 식물들이 흙 틈새로 뿌리를 뻗고 틈새의 물을 흡수하고 벽면에 코팅된 유기물을 먹이삼아 먹고 사는 겁니다. 당연히 틈새에 사는 수많은 미생물도 식물 뿌리에 기대 식물이 뿌리로 뱉어내는 배출물을 먹고 뿌리에겐 요긴한 양분도 제공하며 공생하는 거지요. 아궁이 불을 많이 떼던 옛날엔 재가 아주 훌륭한 탄소질 재료였습니다. 거름 대용으로 쓰기 위해 산에서 훑어오던 참나무 갈잎의 잎줄기에도 탄소질 재료가 많았어요. 지금은 재도 별로 없고 참나무 갈잎은 훑어올 엄두도 못 내지요. 그래서 제가 주목하는 것은 가을이면 쏟아지는 낙엽입니다. 잎에는 셀룰로오즈가 많지만 잎줄기에는 리그닌이 풍부하거든요. 더구나 우거지는 산 숲을 정리하기 위한 간벌로 잔가지 우드칩이 처치 곤란일만큼 많아 이 또한 톱밥 대용으로 쓰면 아주 요긴할 것입니다. 탄소질 재료는 골치일만큼 많은데도 사회적 시스템이 정비되어 있지 않아 쓰질 못하니 저는 주로 목공소의 원목 톱밥을 얻어 씁니다. 폐기물을 재활용하는 의미는 있으나 원목 대부분이 수입산이 많아 아쉬움이 많아요. 기후위기 시대에 하루빨리 자원순환이 생활화되었으면 좋겠네요. 다음 글에선 퇴비만들기의 실재를 소개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글을 쓴 안철환 선생은 온순환협동조합, 전통농업연구소 대표이고 경기도 안산에서 ‘산림생태텃밭 먹거리숲 농장’을 운영한다. 남은 음식물과 똥오줌, 커피 찌꺼기를 받아 직접 거름 만들기를 실천하고 있으며, 우리 토종 종자와 전통 농업 살리기에 열중하고 있다. 25년 전, 처음으로 심은 배추 씨가 3일 만에 싹 트는 걸 보고 ‘씨 안에 누가 있었구나!’ 깨닫고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우리가 먹는 배추는 단순히 물질적인 먹을거리가 아니라 나와 별 차이 없는 생명이며, 그래서 먹는다는 것은 생명을 먹고, 생명과 소통하고, 생명과 하나 되는 일이라고 믿는다. 쓴 책으로 《시골똥 서울똥》(2009), 《24절기와 농부의 달력》(2011), 《호미 한자루 농법》(2016), 《토종농법의 시작》(2020)이 있고, 옮긴 책으로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2004)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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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8-03
  • [송만규화백의 섬진팔경사계] 구례 왕시루봉의 여름
    -왕시루봉 여름 2017. 140x200 장지에 수묵채색 왕시루(상) 섬진강은 혼자가 아니다. 높고 낮은 산들과 더불어 흐르고 있다. 그 중 지리산이 품고 있는 남원, 구례, 하동을 싸안고 흐른다. 고준광대(高峻廣大)하면서 중후인자(重厚仁慈)하여 아버지 같기도 하고 어머니 같기도 한 웅대함을 지닌 영산(靈山), 지리산! 그런 만큼 1967년 국립공원 제 1호로 지정되었다.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 45킬로미터가 넘는 주능선에 반야봉, 토끼봉 등 고산 준봉이 20여개가 있으며 85개의 크고 작은 봉우리들이 ‘산속의 산’을 안고 있고 15개의 지능선과 계곡들이 있는 그야말로 산괴(山塊)이다. 어느 산악인의 고백처럼 지리산은 찾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너무나 많다. 노고단에서 구례군 토지면을 향하여 남쪽으로 뻗어 내린 능선에 왕시루봉이 있다. 정상부분이 펑퍼짐하고 두루뭉술하고 커다란 시루를 엎어 놓은 것 같다 하여 왕시루봉이란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이곳과의 인연은 토지면 파도리 부터 이다. 1990년대 초, 왕시루봉 별장의 산사람 함태식 선생을 찾아서 문학인들과 함께한 산행이 시작이다. 그날 낯선 경험을 했다. 화장실에서 용변 후에 재를 뿌린다. 그러면 냄새가 제거 된다고 하던데 그런가보다. 습기 찬 여름인데도 개운하다. 선생은 주변 환경으로 안내 한다. 그 이후 나는 밤낮 구분 없이 몇 번을 오르내렸던가! 두 세 시경 구례구역에 도착하는 열차를 탄다. 택시로 갈아타고 토지면 왕시루봉 입구까지 간다. 그야말로 칠흑 같은 밤, 쏟아지는 별빛과 헤드랜턴에 의존하고 더듬거리며 산길을 오른다. 이곳에는 반달곰, 멧돼지가 서식하기 때문에 주의를 해야 한다. 서로 피해의식이 있다. 배낭에 놋쇠로 만든 종을 매달아 소리를 내고 가끔 헛기침으로 경계하면서 오른다. 섬진강을 가장 높은 위치에서 멀고 길게 볼 수 있는 곳이기에 여러번 찾은 곳이다. 어둠이 걷히면서 청아한 새벽 공기에 은빛의 물길이 그려진다. 지리산이기에 보여줄 수 있는 깊숙함 속에 환희가 있다. 겹겹이 쌓여진 산과 하나 되어 유유자적한 강물까지도 의연함을 자아내는 신새벽을 맞이한다. 왕시루봉(하) 지리산은 아픈 역사만큼이나 식물들도 수난을 겪어야 했다. 조선시대 유산기(遊山記)에서 “나무들이 하늘을 덮었고, 밑에는 세죽이 빽빽하게 밀집하여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마땅히 수십 그루를 찍어 넘겨야 비로소 하늘을 볼 수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임진왜란에서 격랑의 현대사에 이르기까지 방화와 남벌, 화전 등으로 수없이 쓰러져 갔으나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진정의 기미를 보였다. 그렇게 모진 수난에서도 꾸역꾸역 이 땅을 지켜내고 있는 들꽃들이 눈에 뛴다. 지난한 역사, 어찌 잊으랴마는 신숙주의 노래처럼 ‘원추리로 인하여 모든 것을 잊었으니 시름이 없다’하니 하늘이 내려 보내기라도 했나? 군락지에 훤하게 피어있는 원추리 앞에서 어떻게 근심을 갖으랴! 노고단에서 만났던 이질풀이 이곳에도 있구나. 이름과는 전혀 다른 자태를 뽐내는 작은 꽃, 한방에서는 노관초(老官草)라고 부르며 지사제로 유익함까지도 주니 더욱 예쁘다. 바위에 걸터앉아 쉴 참이면 발아래 밝은 미소로 힘겨움을 덜어주는 노~랑제비꽃, 뭐니 뭐니 해도 지리산의 절경이라 할 수 있는 헬기장 주변에 보드랍고 유연하게 흔들거리는 억새사이로 들어오는 섬진강에 포근한 구름이 내려앉고 있다. 예부터 사람들은 산과 더불어 보금자리를 만들고, 기슭에서 의식주를 해결해나가며 삶을 꾸려왔다. 한편 지리산은 산자락을 그림자로 드리운 채 남해로 흐르는 섬진강의 맑은 물이 백사장과 함께 지리산의 비경을 만들어 낸다. 그래서 섬진청류(蟾津淸流)라 하며 지리산 10경으로 인정하고 있다. 섬진강은 지명유래에서 보더라도 왜구의 침탈로 몸살을 앓았던 곳이다. 이 때 섬진강, 지리산 자락의 선비들은 조국에 대한 의무와 책임을 자기 정체성이라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한 대표적인 선비들로는 피아골 입구에서 구례 방향으로 3킬로미터 지점의 섬진강가, 왕시루봉 능선이 마지막 자락을 흘러내린 곳에 의병들의 무덤이 말해준다. 이 곳 석주관에는 정유재란 때 왜구를 막기 위해 싸우다 순절한 왕득인, 왕의성, 이정익, 한호성, 양응록, 고정철, 오종과 구례 현감 이원춘의 위폐를 모신 칠의단이 있다. 17번 국도로 섬진강을 따라 간다. 우측으로 유유히 흐르는 강물에 몰입하다 좌로 고개를 돌리면 석주관이 있다. 오늘의 선비정신은 무엇일까? 왕시루봉은 섬진강을 젖줄삼아 말없이 자양분을 나르고 있다. 백두대간을 적시며 더 높은 곳의 영산 백두산으로 향하리라. -글 ㅣ 송만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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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섬진팔경사계
    2025-07-22
  • [송만규화백의 섬진팔경사계] 구례 사성암의 봄
    -구례 사성암에서 봄, 2016 140x200 장지에 수묵채색 사성암 (상) 구례 오산(530미터)에 있는 사성암 가는 길이 이제는 아스팔트 포장된 길로 셔틀버스를 이용하면 편하고 빠르게 오를 수 있다. 그러나 등산로는 가파라서 지그재그로 2킬로미터 남짓 되니 한 시간 가량 숨차게 올라야 한다. 왜 산에 오르는가에 따라 선택의 길은 다를 것이다. 사성암은 깎아지른 듯한 기암절벽에 세운 우리나라에선 보기 드문 고찰이다. 원효, 의상, 도선, 진각국사, 이렇게 4명의 고승이 수도하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기도 하다. 나는 조금이라도 더 길게 흐르는 강줄기와 넓은 들녘을 담아내려고 산을 오르곤 한다. 새처럼 날아올라 아래를 내려다보고 그리는 부감법을 구사하려는 마음이다. 바위에 딱 붙어 지어진 절집과 계단을 오르다보면 거무스름하며 무게감 있는 귀목나무를 만날 수 있다. 800년이 되었다고 하는데 잎이 한꺼번에 나오지 않는 해는 풍년이 든다는 말이 전해진다. 조망하기 좋은 곳을 찾아 바위를 따라 돌다보면 ‘위험하니 올라가지 마시오. 주지 백’ 이란 글씨가 써진 기왓장을 만난다. 하지마라면 더하고 싶어지는 법, 절벽에 올라선 바위라 오르는 것은 정말 위험해 보인다. 그래도 죄송하지만 올라보니 좋다. 이 일대 오산에 12비경의 전설이 전해온다는 것이 그럴 만 해 보인다. 진각국사가 참선했다는 좌선대 와 우선대, 석양과 노을을 바라보며 하루를 뒤돌아보았다는 낙조대등 지리산과 섬진강을 두루두루 조망할 수 있는 결정적인 곳이다. 이곳을 여러 해 동안 오르내렸다. 어둠이 채 가시기 전의 어느 가을에 다시 찾았을 때, 또 다른 기왓장엔 ‘제발 말 좀 들으시오’라고 씌어 있다. 나를 질책 하는구나 라고 생각하면서도 역시 오를 수밖에 없었다. 모두들 스스로 조심할 텐데 왜 위험하다고 이렇게 간곡하게 표현해 놓았을까? 이곳에 올라 서보면 안다. 바위 끝 바로 발아래에 하얀 목화솜덩어리가 포근하게 깔려 있는 듯 보인다. 조심히 바위 안쪽에 앉아서 구름의 자유자재로운 변화에 신비로움을 느껴본다. 살며시 옅어진 구름 사이로 섬진강 줄기와 구례 읍내가 보이기 시작한다. 11시 방향 곡성에서 내려오는 강물은 구례구역 앞을 지나 구례읍을 휘돌아 피아골에서 내려오는 계곡물을 맞이하러 간다. 1시 방향으로는 지리산 노고단에서 천왕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강을 품고 있다. 몸이 썬득해지며 시장기가 돋는다. 빤히 내려 보이는 읍내 동아식당에서 돼지족탕 국물에 끓인 따끈한 라면을 먹으려고 일어선다. 사성암(하) 섬진강의 맑은 품성과 지리산의 강직한 성정을 지니고 사는 사람들은 나라에 대한 주인의식, 주체의식을 바탕에 두고 살았다. 이 아름답고 너른 들판엔 서럽고 아픈 역사들이 우리들의 발길을 잡는다. 천은사 못 미쳐 광의면의 매천사당(梅泉祠堂)이 그 중 하나이다. ‘난리 속에 살다보니 백발이 성성하구나. 몇 번이고 죽으려 했지만 그 뜻을 못 이뤘도다. 오늘도 참으로 어찌할 수 없게 되었으니 가물거리는 촛불만이 창천을 비추는 도다.‘ 구례땅 월곡리에 은거하던 선비 매천 황현은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목숨을 끊지 못하고 구차하게 살아옴을 서러워하다 1910년에 한일합방이 체결되자 통곡을 하며 4수(首)의 절명시를 남기고 자결했다. 살아남은 선비들은 그의 시를 베껴 외우며 욕된 삶을 달랬다 한다. 그는 조선말 위정자의 비리, 비행, 일본의 침략과정과 일제의 만행과 의병의 저항을 자신의 관점과 사실을 바탕으로 기록해 놓은 매천야록(梅泉野錄)을 남겼다. 또 한 곳은 열아홉살 백순례의 삶이 ‘산동애가’로 남아있는 산동면 상관마을이다. 1948년 이데올로기의 대립으로 무고한 양민들이 만여 명이나 학살된 여순사건의 주력부대가 지리산으로 퇴각해 빨치산이 되었다. 이들을 토벌을 하면서 구례에서도 양민들이 무참히 학살당하는 비극을 낳았다. 그 때의 상황이 노래가 되어 소녀의 넋을 기린다. ‘잘 있거라 산동아 너를 두고 나는 간다/ 열아홉 꽃봉오리 피워보지 못하고/ 까마귀 우는 곳을 병든 다리 절어절어/ 다리머리 들어오는 원한의 넋이 되어/ 노고단 골짝에서 이름 없이 스러졌네.... 이 후 산동 처녀들이 산수유 열매를 딸 때 부르며 전해 내려왔으나 지금은 그러한 처녀들이 없어서인지 불리어지지 않는다. 또 발길을 돌려야 하는 곳은 하류인 화개 방향으로 토지면에 지리산과 섬진강을 배산임수하고 있는 금환낙지(金環落地)의 운조루라는 독특한 옛집이다. 토지면(土旨面)의 지명도 본래에는 금가락지를 토해냈다는 토지면(吐旨面)으로 풍수형국에서 비롯된 마을이다. 운조루는 명당자리답게 건축양식과 규모도 범상치 않다. 구조는 크게 안채, 사랑채, 행랑채, 제실로 나뉘고 지금은 73칸이 남아 있다. 대문 밖에는 말을 묶어 두는 하마석이 있고 지리산 문수골에서 흘러들어오는 물을 이용하여 만든 200평가량의 연못 터가 있다. 또한 운조루가 소장하고 있는 문화재의 양도 방대하며 사료적 가치도 대단하다. 나는 무엇보다도 운조루의 정신에 가치를 두고 싶다. 200여년 된 원통형 뒤주 아래 부분의 마개에는 “누구나 쌀뒤주를 열 수 있다”는 뜻인 ‘타인능해(他人能解)’라고 적혀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등 수많은 환란 속에서도 건재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집 주인이 지닌 인품과 주변에 쌓았던 덕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섬진강 길을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천천히 따라 가다보면 습지를 만난다. 남원 대강면과 구례 간전면으로 흐르는 곳인데 수달, 황어, 새들이 물버들과 풀섶에서 자유롭게 노니는 모습이 자연스럽고 소소해서 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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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섬진팔경사계
    2025-07-14
  • [도시농부 안철환의 땅 이야기 9] 경운, 땅은 왜 딱딱해질까
    흙의 구조와 경운 경운은 왜 할까요? 맞습니다. 땅이 딱딱해지기 때문이에요. 그럼 왜 땅은 딱딱해질까요? 땅 속 틈새가 메워졌기 때문이지요. 틈새엔 공기가 있고 수분이 있어요. 그 틈새 벽면에 유기물이 코팅되어 있답니다. 그 틈새로 식물이 뿌리를 내리고 틈새의 공기로 호흡을 하고 수분과 유기물을 먹으며 자라는 거거든요. 틈새가 메워지니 흙이 다져져 딱딱해지는건데 그렇게 시간이 오래되면 딱딱해진 것조차 풀어져 사막이 되는겁니다. 원래 부드러워 식물이 살 수 있는 살아있는 흙엔 흙알갱이가 반, 틈새가 반 조금 못되고 유기물층이 5프로 쯤 된답니다. 이 유기물층이 살아있는 흙의 핵심이에요. 여기엔 미생물들이 우주의 별들만큼 많은데 인간이 밝혀낸 게 겨우 5프로도 안된다네요. 살아있는 흙의 주인공이죠. 얘들이 흙을 지켜주고 부드럽게 해주어 식물이 살고 무수한 생명들 또한 그 덕에 사는거에요. 결국 이 유기물 층이 없어져 흙이 딱딱해지는 건데요, 그럼 유기물은 왜 사라질까요? 답은 간단해요. 바로 물이 말라버리면 그래요. 물이 마르면 틈새가 쪼그라들어 흙속 공기도 사라지는 거고 유기물도 타버리고 말죠. 미생물도 생명인지라 숨쉬고 물도 먹어야 하거든요. 그럼 물은 왜 마를까요? 당연히 비가 오지 않으면 그리 되겠지요. 그게 요즘 말하는 기후위기의 끝판이자 바로 대기근이에요. 땅속 물이 마르면 틈새에 빨아올리는 압력이 생겨 땅 깊은 속 암반 층의 염류가 따라올라와 땅 표면에 염류를 뿌려놉니다. 염류는 일종의 소금이에요. 마르는 물 따라 올라오는 걸 모세관현상이라 하구요. 염류는 암반, 바위 속 광물질의 미네랄 같은 것으로 무기물이라고도 하고 무기염류라고도 합니다. 바닷물이 짠 게 바로 이 염류 때문이에요. 그래서 거꾸로 땅에 소금을 뿌리면 흙이 딱딱해져요. 소금이 물을 흡수하기도 하고 소금 속 나트륨이 뭉글뭉글한 떼알의 흙을 홑알로 흩어버려 결국 틈새를 없애버리거든요. 흙을 말리는 현대농업 기후위기에 대비해 물을 흙 속에 잘 저장하는 농법을 실천했으면 합니다. 지금의 농사는 물 낭비도 심할뿐더러 흙 속의 수분마저 말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임원경제지를 쓴 서유구 선생은 밭도랑을 잘 정비해 밭마다 수분이 잘 유지되도록 하는 일이 치수의 근본이라 했어요. 밭의 흙과 물이 잘 섞이면 구름과 안개가 일어나 비를 내리게 하니 가뭄을 예방할 수 있다 했지요. 그래서 강물이 대동맥이라면 밭도랑은 모세혈관인 셈이죠. 근데 지금의 현대농업은 어떻게 흙 속 물을 말리는 걸까요? 그것은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과도한 경운이 첫째고 화학비료의 사용이 둘째고 단작이 세번째입니다. 마치 밀가루 흙처럼 만드는 기계경운이 흙을 말립니다. 과도한 경운이 많은 공기를 투입시켜 흙속 유기물을 날리고 물마저 말려버리는 거에요. 땅을 말리는 화학비료의 핵심은 요소비료인데 이게 소금처럼 물을 말리고 흙을 딱딱하게 만드는 부작용이 있습니다. 단작은 밭도랑을 바둑판처럼 만들어 배수 기능만 강화하기 때문에 밭에 수분을 저장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지요. 무경운과 멀칭 그래서 대안으로 무경운과 퇴비의 사용, 윤작 혼작의 실천을 제안한 것입니다. 그 중 사실 무경운이란 말은 좀 과도한 면이 있어요. 예컨대 풀을 메고 씨를 심기 위한 호미질도 일종의 경운이거든요. 그래서 저는 과도한 기계경운을 반대하고 전통식 경운을 복원하자고 합니다. 쟁기질과 괭이질, 호미질은 흙을 밀가루로 만들지 못하거든요. 그걸 감안해 기계도 적절히 사용하면 흙을 파괴하지 않을 수 있어요. 사실 옛날처럼 소 쟁기질로 돌아가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제게 농사 스승님이신 우리 동네 어르신은 일반 관행농업을 하셨는데 그렇지만 매우 지혜로운 분이셨어요. 기계로 땅을 갈 때는 저속으로 하면서 깊지않게 거칠게 갈아야 한다고 하셨죠. 밀가루처럼 곱게 갈면 땅이 다 망가진다 했어요. 무경운 농법은 생태농업 쪽에서만 주목 받는 게 아니라는 얘기가 있습니다. 비행기와 대형트렉터로 농사짓는 데에서 시도되고 있다는 건데요, 왜일까요? 땅이 너무 넓어 집채 만한 대형 트렉터로도 땅을 제대로 갈기 힘들다는 거죠. 퇴비 주기도 힘들어 화학비료나 주는데 지력 고갈 문제가 점점 커져 지력을 소모시키는 기계 경운이 이래저래 부담되기 때문이랍니다. 한번은 농업 강국 중 하나인 포루투갈 농촌엘 갔다가 트렉터로 땅 가는 장면을 봤는데 작물 심을 자리만 지그재그로 갈더라구요. 땅의 반만 가는 것 같았지요. 그리고 엄청 넓은 땅에 퇴비는 줄 수 없고 비행기로 뿌려주는 화학비료는 편하지만 지력 고갈은 피할 수 없어, 지력 보충 방안으로 지렁이 알을 비행기로 뿌려주는 방안을 연구하는 경우도 있다대요. 무경운 농법에서 중요한 것은 피복(멀칭mulching)입니다. 흙을 보호해 말리지도 말고 유실, 침식도 막자는 겁니다. 그럼 흙을 말리고 흙의 유실, 침식은 왜 일어날까요? 폭염과 폭우, 추위와 가뭄이 대표적인 이유입니다. 그걸 막기 위해 피복이 필요한건데요, 피복 중 비닐 멀칭도 폭우, 유실, 침식 피해는 막을 수 있지만 부작용으로 지열 상승과 흙속 통풍을 막는 부작용이 있어요. 쓰레기 발생도 큰 문제지요. 그래도 큰 면적에서 상업농사를 위해 단작을 할 경우는 비닐멀칭이 부득이 할 수 있습니다. 무대포로 생태농업 한다고 비닐멀칭을 거부하다간 낭패를 당할 수 있어요. 상업적인 단작에도 비닐멀칭을 대체할 방법에 대해선 꾸준히 모색해야 할 것입니다. 이는 개인이 해결하기는 힘들거구요. 사회적으로 함께 연대해 방법을 찾아야 겠습니다. 요즘엔 썩는 비닐이 나오기는 하지만 비용도 비싸기도 하거니와 그걸 생산하려면 또 에너지를 써야 하니 탄소중립 시대에 적절할 지는 좀 의문이 들어요. 제가 한동안 즐겨 쓰던 멀칭 재료에는 신문지가 있었습니다. 신문지를 세겹으로 해서 밀가루로 풀을 쑤어 두루마리로 이어붙이면 멀칭비닐 못지 않아요. 관리기에도 걸어봤는데 두둑을 만들면서 두둑을 피복하는 데 손색이 없지요. 풀 쑤어 두루마리 만드는 데도 의외로 시간이 안 걸립디다. 그렇게 피복한 후 비를 맞으면 더 바짝 말라 흙에 착 달라붙어 멀칭 효과가 대단합니다. 창호지 붙일 때 물 뿌리면 햇빛에 바짝 마르는 효과와 비슷해요. 장마 지나면 작물은 이제 다 자라 풀에 치이지 않을 때쯤 신문지는 거의 다 삭아 흙에 잘 섞여 들어가죠. 거둘 필요가 없어요. 누구는 인쇄잉크에 독이 있을텐데 걱정하지만 독이란 게 적으면 별 문제 없다지 않습니까. 아무튼 생태멀칭의 방법으로 저는 앞에서 풀멀칭 외 세 가지를 제시했었습니다. 흙으로 흙을 덮는 흙멀칭, 논에 물을 담아 흙을 보호하는 물멀칭, 작물을 심어 흙을 보호하는 작물 멀칭이 그것이죠. 흙을 사시사철 덮어둘 필요는 없습니다. 그렇게 하고 싶어도 풀멀칭의 경우 사시사철 흙을 덮어둘만큼 풀이 많이 나오기 힘들어요. 아무리 덮어주어도 한 여름 지나면 말라버리기 일쑤죠. 그러니까 흙이 마르고 침식, 유실될 때, 곧 한여름 폭우 폭염과 한겨울 춥고 건조할 때 위주로 해 주면 충분합니다. 풀이 모자랄 때이기도 한 봄과 가을엔 땅에 따뜻한 비와 바람과 햇빛이 잘 닿도록 덮어주지 않는 게 좋습니다. 흙 속엔 햇빛 좋아하는 광합성균 같은 미생물도 많고, 적당한 지온과 공기를 좋아하는 방선균 같은 미생물도 많거든요. 두번 째 퇴비의 사용에 대해선 다음 글에서 다룰 예정이고요, 윤작 혼작은 지난 글들에서 많이 다뤘으니 참고 바랍니다. 이번 글은 토양에 대한 이론적인 얘기를 하다보니 좀 지루했네요. 양해바랍니다. 글을 쓴 안철환 선생은 온순환협동조합, 전통농업연구소 대표이고 경기도 안산에서 ‘산림생태텃밭 먹거리숲 농장’을 운영한다. 남은 음식물과 똥오줌, 커피 찌꺼기를 받아 직접 거름 만들기를 실천하고 있으며, 우리 토종 종자와 전통 농업 살리기에 열중하고 있다. 25년 전, 처음으로 심은 배추 씨가 3일 만에 싹 트는 걸 보고 ‘씨 안에 누가 있었구나!’ 깨닫고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우리가 먹는 배추는 단순히 물질적인 먹을거리가 아니라 나와 별 차이 없는 생명이며, 그래서 먹는다는 것은 생명을 먹고, 생명과 소통하고, 생명과 하나 되는 일이라고 믿는다. 쓴 책으로 《시골똥 서울똥》(2009), 《24절기와 농부의 달력》(2011), 《호미 한자루 농법》(2016), 《토종농법의 시작》(2020)이 있고, 옮긴 책으로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2004)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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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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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지리산 대원사 계곡 부분도(1) - 지리산 대원사 계곡 부분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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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6-10
  • [도시농부 안철환의 땅 이야기 8] 흙을 지키는 나무
    흙을 지키는 나무, 나무와 혼작하기 안철환(전통농업연구소 대표) 사실 나무에 대해선 저는 아직 초보입니다. 막연히 나무가 좋아 나무를 심기 시작한 지는 20년이 넘긴 했어요. 저희 농장에 심은 나무만 쥐똥나무 같은 관목 포함해 느티나무 잣나무 노나무 무궁화나무 등까지 하면 대략 개수로는 200그루, 종수로는 50종은 심었을 겁니다. 그런데 재배 관점에서 먹거리 나무 곧 유실수와 새순 먹는 특용수를 심은 건 2019년부터이니 잘해야 5~6년 되었지요. 나무는 대표적인 다년생인데다 방치해도 죽지 않으니 게으름을 피우기 딱 좋아 그렇게 세월이 지났어도 공부를 하진 않아 여전히 초보나 다름없는 거지요. 나무 이야기를 쓰기가 영 자신이 없었던 이유입니다. 쓸까말까를 몇 번 망설인 끝에 쓰기로 마음 먹은 것은 어차피 제 글은 전문적인 글이기보다는 체험담에 가까운 얘기라 좀 어설프더라도 독자님들이 이해해주시리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덧붙여 제 글쓰기 버릇 중에 하나는 공부한 걸 쓰는 게 아니라 쓰면서 공부하는 스타일이어서 이번 참에 공부를 좀 더 하자는 욕심도 작용했지요. 또 이번 글은 흙 이야기라는 틀 속에서 하는 거라 본격적인 나무 얘기는 아니니 부담도 덜 하긴 했습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 그 전에 심었던 나무들은 거의가 조경수라 사실 손 볼 것도 없었던 반면에 새로 심은 유실수와 특용수는 수확을 목적으로 하기에 손 볼 게 적지 않았습니다. 거름 주기는 일반 작물과 별 차이가 없어 어려울 게 없지만 전지(가지치기)는 5~6년이 지난 지금도 헷갈리기만 합니다. 다만 이 전지 작업을 하다 보니 일반 작물 재배와는 또 다른 재미가 있습디다. 바로 전지 작업은 하늘을 보고 일한다는 점입니다. 일반 작물은 쭈그려 앉든, 허리 굽혀 하든, 땅을 보고 하는 일들이죠. 그 때는 몰랐어요. 근데 전지는 하늘을 보고 일을 하더란 말입니다. 일단 좋은 점은 허리가 자연스레 펴진다는 겁니다. 보통 촌로 농부님들은 대부분 허리가 꼬부랑이잖아요. 그런데 한참을 하늘을 배경으로 전지 작업을 하다보니 느낌이 참 좋더라구요. 비로소 내가 하늘과 소통하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랄까요. 초보자의 소감은 그 정도로 하고요, 어차피 이번 글에선 흙 입장에서 본 나무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나무를 심으면 흙에 좋을까요, 나쁠까요? 저희 밭 가엔 한 50살은 되어 보이는 참나무 한 그루가 있습니다. 북쪽 끝에 있어 남향을 하고 있으니 저희 밭엔 나무 바로 아래나 해질녁에 그늘을 드리우지만 나무 넘어 이웃 밭에는 남쪽에 큰 나무가 자리 차지하고 있으니 그늘을 드리우죠. 저희 밭을 구입하곤 경계 측량 후 경계 따라 도랑을 내기 위해 포크레인을 불러 작업하는데 그 나무 너머 밭을 빌려 농사짓는 동네 할배가 다짜고짜 포크레인으로 참나무를 죽이라는 거지 뭐에요. 어르신 밭에 그림자 드리우긴 하지만 그리 심해 보이진 않고, 저런 큰 나무는 함부로 죽이면 안된다, 지금까지 가만 계시다 왜 이제 와서 나무를 죽이라 하시나, 어쨌든 내 밭에 있는 나무이니 내가 알아서 하겠다 하고 정중히 거절했습니다. 그리고 몇 년 지나 어르신은 힘들다며 당신 밭을 내게 권리금 받고 경작권을 팔아 제가 직접 그 땅에서 농사지어봤더니 별 문제 없더라구요. 그 다음에 10년쯤 지나니 이번엔 제 밭을 둘러싸고 있는 땅들을 시에서 몽땅 임차해 산림욕장 시설 공사를 하며 또 이 참나무를 죽이려 하지 뭡니까? 경계측량을 해보니 그 나무가 내 땅 안에 있는 게 아니라면서요. 얼르기도 하고 윽박지르기도 하며 또 참나무를 지켰습니다. 별로 폼새도 나지 않는 나무를 그림자나 드리우는데 왜 저걸 보호하려 하냐며 되레 나를 가르치려 하대요. 큰 나무가 그림자 드리워 피해 주는 건 일부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25년째 이 나무 밑에서 농사지어보니 별 피해도 없어요. 오히려 나는 큰 나무가 땅 밑으로 크게 뿌리를 뻗어 우리 밭 토양을 지켜준다고 생각하지요. 토양의 물리성도 좋게 해줄 뿐만 아니라 뿌리에 많은 미생물들이 살며 더불어 우리 토양 속 생물다양성을 풍부히 해줄 것입니다. 지상에선 선풍기 역할도 해 줍니다. 큰 나무의 왕성한 증발산 작용으로 주변 기후를 건강하게 청소해주는 것이죠. 옛날엔 논 가에 버드나무와 미류나무가 있었습니다. 시골의 정겨운 경관이었지만 논을 바둑판처럼 개간하며 다 없애버렸죠. 분명 그림자 탓을 했을 겁니다. 그리고 우리 농촌 경관은 황량해졌어요. 그 정도의 그림자가 작물 재배에 큰 영향을 주기는 만무한 일이죠. 사실 오랜 세월 나무 밑에서 재배해 온 토종 벼들은 적응해왔는데 통일벼 이후 다수확 종자로 육종된 개량 벼들은 조금의 그림자에도 영향을 받았다곤 합니다. 흙을 지키는 나무 무엇을 심을 때는 꼭 유념할 게 있습니다. 심기 전 그게 내 땅과 맞는지를 반드시 파악해야 하는 겁니다. 나무가 특히 그렇습니다. 나무는 한번 심으면 최소 몇 십년 살기 때문에 한번 심으면 빼도박도 못하기 때문이거든요. 나무는 진짜 욕심낼 게 못 됩니다. 2019년 저희 밭이 산림과학원 지정 민간형 먹거리숲(산림생태텃밭)으로 선정되어 유실수와 산채나물을 많이 식재했는데요, 심고 나서 한 3년 되고 나서야 우리 밭엔 유실수가 잘 맞지 않는다는 걸 뒤늦게 알았지 뭡니까? 열매가 작은 나무들은 어느 정도 버티는 편인데 사과나 복숭아 같이 좀 큰 나무들은 고생만 하고 있습니다. 벌레는 엄청나고요, 전체적으로 생육 상태가 좋지 않아요. 왜 그럴까 곰곰 생각해보니 저희 밭이 원래는 논이었던데다 객토도 하지 않았던 겁니다. 이웃들 밭 주변은 다 객토를 했으니 우리 밭만 푹 꺼진 꼴이 되고 만거죠. 물론 배수로는 정성껏 팠기 때문에 습하진 않은데, 그래도 심토는 논흙이라 습했던 모양입니다. 나무가 어릴 때는 잘 자라다가 3년 쯤 되어 뿌리를 깊게 내릴 때쯤 문제가 되기 시작한 거죠. 반면 서울의 가락시장 옥상에 텃밭 만들어주고 상자텃밭에 사과나무 3그루를 심어주었는데 생육상태가 얼마나 좋은지 저희 밭 사과나무와 비교가 안될 정도에요. 통풍도 좋고 일조량도 아주 풍부한데다, 콘크리트 바닥의 복사열까지 가세해 광합성 에너지를 확실하게 공급해 준 때문인지 열매도 실하고 벌레도 거의 없었죠. 맛도 기가 막혔어요. 사과뿐만이 아니에요. 저희 밭 온실에서 과채류 작물 모종을 키워 심어주면 저희 밭보다 훨씬 잘 자라대요. 토마토 가지 고추들이 얼마나 맛이 좋은지 놀랐어요. 옥상텃밭은 여름에 복사열로 작물들이 마르는 걸 조심만 하면 진짜 끝내줍니다. 유실수든 과채류든 열매 맺는 식물들은 습기는 좋아하지 않으면서 통풍, 일조량, 높은 기온을 절대적으로 좋아해서 그럴 겁니다. 아무튼 그래서 나무는 심을 곳의 토양 상태와 기후 조건을 잘 살펴 심어야 합니다. 1년생 작물이야 실패해도 1년만 고생하면 되지만 나무는 다년생이라 ‘실패하면 다시 심지...’가 쉽지 않습니다. 아무리 다년생이라 해도 풀하고는 달라요. 풀이야 수틀리면 옮겨 심어도 되지만 나무는 옮겨 심는 게 만만치 않잖아요? 그래서 나무 심을 때는 나무 공부도 필요하지만 그에 맞는 흙 공부를 강력히 권합니다. 아무튼 먹거리 나무를 심은 지 5년이 넘었어요. 적응할 놈 적응하고 아직도 고생하는 놈도 있고 개 중 잘되는 놈도 있어요. 밤나무는 그 중 참 잘됩니다. 머루나무도 잘 되고요, 다래, 포도, 매실, 두릅, 개두릅(엄나무), 화살나무(홑잎), 구기자 나무도 그럭저럭 되는 편이지요. 나무를 심어놓으니 몇 가지 재밌는 변화가 생겼습니다. 우선 한여름 폭염이 덜하죠. 제가 볼 때는 쉬원할만큼 그늘이 많이 드리운 건 아니에요. 그렇다면 나무 그늘로 피해보는 작물들이 많을텐데 거의 피해보는 일은 없어요. 그보다는 나무들의 증발산 작용으로 밭 전체적으로 기온이 떨어진다고 보는 게 맞을 겁니다. 적당히 솔솔 바람도 불고요. 제가 위탁받아 관리해 주는 밭과 비교해 보면 차이가 확 드러나죠. 우리 밭만큼 나무가 심어져 있지 않아 진짜 뙤약볕이 보통이 아닙니다. 폭염이 흙에 미치는 영향은 실로 장난이 아닙니다. 이 삼일 전 비가 적당히 왔는데도 일주일은 넘게 비가 오지 않은 것 같죠. 뜨거운 뙤약볕이 흙에 내리쬐며 흙을 바싹 말려버린 겁니다. 흙이 마르면 흙 속 물만 사라지는 게 아니라 공기도 사라집니다. 표토의 물이 마르면 모세관현상에 따라 심토의 염류가 표토로 빨아올려집니다. 공기도 사라지니 토양 내 호기성 미생물이 사라지고 흙이 딱딱해집니다. 그러면 작물이 제대로 자라지 못하죠. 병에도 잘 걸립니다. 그런데 나무가 적당히 심어져 있으면 폭염으로 인한 고온도 완화해주지만 뿌리로 땅 속도 보호해주는 거지요. 게다가 나무를 적당히 심으면 폭염도 폭염이지만 여름철 폭우로부터 흙을 보호해 줄 수 있습니다. 폭우로 인한 타격을 완충해 줄 수도 있겠지만 땅 속에서 뿌리로 흙을 보호하는 효과가 더 의미있을 거라 봅니다. 나무가 아니라도 폭염으로 인한 토양 피해를 예방하는 방법으로 멀칭(mulching, 덮개)이 있습니다. 이에 대해선 다음의 무경운 글에서 다루도록 하지요. 글을 쓴 안철환 선생은 온순환협동조합, 전통농업연구소 대표이고 경기도 안산에서 ‘산림생태텃밭 먹거리숲 농장’을 운영한다. 남은 음식물과 똥오줌, 커피 찌꺼기를 받아 직접 거름 만들기를 실천하고 있으며, 우리 토종 종자와 전통 농업 살리기에 열중하고 있다. 25년 전, 처음으로 심은 배추 씨가 3일 만에 싹 트는 걸 보고 ‘씨 안에 누가 있었구나!’ 깨닫고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우리가 먹는 배추는 단순히 물질적인 먹을거리가 아니라 나와 별 차이 없는 생명이며, 그래서 먹는다는 것은 생명을 먹고, 생명과 소통하고, 생명과 하나 되는 일이라고 믿는다. 쓴 책으로 《시골똥 서울똥》(2009), 《24절기와 농부의 달력》(2011), 《호미 한자루 농법》(2016), 《토종농법의 시작》(2020)이 있고, 옮긴 책으로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2004)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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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5-30
  • 농부 안철환의 '곡우 편지'
    지난 4월20일 곡우가 지나갔습니다. 이 난의 필자인 안철환 선생이 곡우에 대한 글을 보내왔습니다. 절기에 대한 흥미로운 내용을 담고 있어 뒤늦지만 여기에 올립니다. 곡우 편지 안철환(전통농업연구소 소장) 예수님이 우리나라 사람이었으면 춘분이 아닌 곡우에 부활하셨을 거라 우기곤 합니다. 춘분보다 훨씬 드라마틱하고 감동적이거든요. 올해는 곡우비가 일주일 일찍 내렸어요. 음력으로 보름이었지요. 보름엔 비 잘 안오는데 그날은 아침부터 찌뿌리다 오후가 되자 본격적으로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농장에 오기로 한 손님들 맞이하느라 정신없이 비를 흠뻑 맞았지만 그게 곡우비라는 걸 밤이 되어서야 알았네요. 봄비 잘못 맞으면 감기 걸리기 십상인데 그 비는 그러지 않았거든요. 온화한 기운을 담고 있는 비였지요. 아니나 다를까 다음 날 아침에 산을 보니 일제히 나무들에 새순이 돋은 겁니다. 그 기운이 얼마나 신선하고 상큼한지 꽃이 아무리 예쁜들 새순만 할까 했습니다. 화려한 꽃이라 해도 이내 지고 말 운명이지만 새순은 앞날이 창창한 희망을 품고 있으니 그 기운에 어찌 마음이 설레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곡우비의 그 기운은 춘분의 기운보다 훨씬 더 극적이고 역동적이라 한 겁니다. 낮과 밤이 같고 낮이 밤을 이기기 시작하는 춘분의 기운이야말로 부활의 힘이란 건 분명하나 춘분 뒤 반갑지 않은 불청객 꽃샘추위가 들이닥치는 게 춘분의 뒤통수라 할까요. 우리 조상들은 이런 걸 보고 액이 빠져나갈 때 꼬리로 뒤통수를 후려 갈기며 나간다 했어요. 액이 나간다고 방심하지 말라는 뜻일겝니다. 곡우비가 가져다 주는 생명의 기운은 매번 감동적이지만 처음 곡우비의 신비를 보았을 때의 감동은 20여년 지난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저희 밭은 군포에서 안산 넘어 오는 영동고속도로 밑 토끼굴 지나 산 밑에 있는데 곡우비 그친 다음날 어두운 그 굴을 지나자마자 내 눈앞에 펼쳐진 온 산 나무들의 새순은 생명들의 팡파레이자 세레모니였어요. 입과 눈을 닫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그걸 예수님 못지않은 생명들의 부활이라 느꼈지요. 우리나라의 봄의 부활이 감동적인 것은 모든 게 죽는 추운 겨울 때문일 겁니다. 겨울이 별로 춥지 않아 변함없는 녹색을 자랑하는 호주의 겨울을 보았을 때 부럽기까지 했어요.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런 나라의 봄은 별로 부활의 감동이 없을 거라는 걸 알았지요. 너무 추워 모든 게 죽는 우리의 겨울이 역설적으로 축복이라는 걸 느낀 것도 한 참 나이 들고 나서였죠. 춘분에서부터 부활하기 시작한 기운이 곡우에 와서야 완성되는 셈입니다. 춘분을 기점으로 부활하는 생명들은 아직 뒤통수를 노리고 있는 꽃샘추위를 조심해야 합니다. 때문에 여전히 움추리고 있는 생명들이 적지 않아요. 그러나 곡우 때 따스한 봄비로 이젠 모든 추위가 물러가니 만물이 마지막 기지개를 켜 약동의 계절을 준비하는 겁니다. 그렇지만 올해 곡우는 만만하지가 않네요. 윤6월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윤달이 든 해는 날이 고르지 않습니다. 양력과 음력의 편차를 억지로 맞추다보니 과도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윤달이 들었다는 것은 음력으로 일년이 13달이라는 건데 그러다보니 계절이 3달보다 긴 3달 열흘 정도 되는 셈입니다. 그럼 봄은 음력 4월초까지로 양력으론 5월 초순까지 봄이 되는 겁니다. 초순이면 여름이 시작하는 입하이지만 음력으론 아직 봄이라 냉해를 조심해야 합니다. 보통은 곡우 지나면 냉해가 가시는데 올해는 그렇지 않아요. 한 낮에도 날이 쌀쌀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고 할 수 있어요. 예년에는 춘분 지나면 한낮엔 여름처럼 더웠던 것과 많이 다르죠. 올 여름은 음력 윤6월 중순까지로 절기로 입추 근방이에요 윤6월이지만 가을의 시작이 여름 끝 무렵에 드는 거지요. 그래서 가을이 빨리 오지만 아직 여름에서 빠저 나오지 못해 입추가 가을답지 못할 겁니다. 곡우는 12지지 중 진(辰)에 해당하니 음력으로 3월에 듭니다. 인(寅) 묘(卯)와 함께 진은 봄에 드는 지지로 여름으로 넘어가는 봄 끝에 들지요. 여름에 드는 사(巳) 오(午) 미(未) 중 여름 끝인 미, 가을에 드는 신(申) 유(酉) 술(戌) 중 가을 끝인 술, 겨울에 드는 해(亥) 자(子) 축(丑) 중 겨울에 드는 축과 함께 환절기 성격이 강한 절기거든요. 그러니까 절기로 미는 대서, 술은 상강, 축은 대한으로 환절기답게 비와 눈이 자주 내려 다음 절기를 준비합니다. 올해 2025년 곡우는 음력으로 3월 23일이었고 일진은 기미(己未) 였습니다. 음력으로 불 때 곡우가 늦게 왔습니다. 그러면 곡우 이후엔 날이 따뜻하고 온화해야 할텐데 그렇지가 않지요. 입춘이 설 지나 와서 이래저래 봄도 늦은데다 윤6월 들어 늦봄이 천천히 가는 것 같습니다. 곡우(穀雨) 지나면 여름 나는 작물들은 대부분 파종할 수 있습니다. 곡식 심기에 좋은 비가 내린다는 말 그대로이죠. 벼를 비롯해, 옥수수, 수수, 콩 등 곡식에서부터 고추, 오이, 수박, 호박, 참외, 토마토 등 과채류까지 심을 수 있으나 들깨, 조, 고구마, 메주콩, 팥 등은 장마 근방에 심는 게 좋습니다. 일찍 심으면 웃자라 오히려 피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인데 그래서 늦게 심는 이런 작물들은 감자나 마늘, 양파, 밀, 보리 등을 6월 중에 수확해 그 자리에 이어심는거지요. 이를 그루작물이라 하는데 앞 작물 수확 후 남는 그루(밑둥)들을 갈아엎어 심는다 해서 그렇게 부릅니다. 앞 그루 갈아엎는 거는 그루갈이라 하지요. 고추나 가지 토마토 등 과채류 모종들은 보통 곡우 지나 심지만 올해는 입하 지나 심는 게 안전합니다. 최저 기온이 10도 이하로 내려가면 냉해를 조심해야 합니다. 곡우 근방에 논을 잘 갈아둡니다, 밭은 경칩부터 갈지만 그렇게는 못해도 곡우부터는 갈아둡니다. 보리나 밀과 이모작 하는 논은 갈 수 없겠지요. 곡우 즈음 보리가 이삭 패고 곡우 조금 지나 보리보다 일주일 늦게 이삭 패는 밀을 위해 이삭거름을 주어야 합니다. 이젠 풀들도 억세집니다. 냉이는 벌써 꽃 피고 져서 씨를 맺고 있어요. 날은 아직 춥지만 풀들은 추위를 무릅쓰고 제 날에 올라와 기세를 부리니, 이래저래 풀을 인간이 이기기는 힘들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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