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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웅박 씻나락] "산청에서, 재난을 돌아보며" 햇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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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웅박 씻나락 칼럼을 시작합니다
'뒤웅박 씻나락'은 이듬해 종자로 쓸 귀한 볍씨를 가리키는데요,
이 칼럼의 글들이 뒤웅박 씻나락으로서 앞으로 생명·평화·나눔·돌봄·연대의 사회를 위한 씨앗이자 마중물이 되길 기대하며
만든 칼럼입니다. 지리산 자락 삶이 우리 사회의 대안적 삶의 모습이 되길 꿈꾸는 <지리산인>의 바람을 담아,
지리산 곳곳에 계신 씨앗 같은 이들의 삶과 생각을 싣고자 합니다.
지리산 자락에 사는 여러 살림꾼들이 돌아가며 글을 씁니다.
첫 시작인 9월에는 산청의 '햇살'이 글을 보내 주었습니다.
김석봉, 강수돌, 홍영기, 푸른, 박남준, 성염, 이주헌 님의 글이 기다리고 있으며,
달이 갈수록 필진이 더해질 예정입니다.
<지리산인>의 뒤웅박 씻나락 칼럼을 기쁘게 받아 주세요.
산청에서, 재난을 돌아보며
산청 산사태 복구 현장 봉사에 함께한 '햇살'의 이야기
올해 여름은 뜨겁고 힘들고 강렬했다.
가뭄으로 애타던 강릉 비 소식이 반가운 아침이다.
전주는 밤새 170밀리, 군산은 시간당 152밀리 폭우가 내렸다고, 휴양지로 유명한 발리에서 폭우로 건물이 무너져내리는 영상들이 계속 들어온다. 뉴스를 보면서 두려움과 공포, 재난의 경험이 몸으로 느껴진다.
길도 사라지고 생강밭도 사라지고
기숙사 사감으로 근무하고 있는 학교 축제 전야제 날이었다. 호우주의보가 내렸고 밤새 폭우가 쏟아졌다. 아침에 학교로 올라오는 도로가 산사태로 막혔다는 소식을 들었고, 전기, 수도가 먼저 끊겼고, 통신까지 끊겼다. 맞은편 산 중턱 집에 실종자가 있다고, 소방차들이 오고 밤까지 수색 활동을 하고 있었다. 밖에 피해가 얼마나 큰지 알 수도 없고, 무덥고 어두운 기숙사에서 아이들과 함께 밤을 보냈다. 다음 날 다행히 비가 그쳤고, 산사태로 곳곳에 막혀버린 도로를 돌고 돌아 도착해 준 부모님들에게 아이들을 무사히 보낼 수 있었다.
전화가 연결되니 산 아래 생강밭 두 개가 산사태로 흔적 없이 묻혀버렸다는 소식이 제일 먼저 왔다. 올해 딸이 처음으로 자기 밭을 정해서, 싹틔우기부터 비 오기 전 관리기 빌려와 북주기까지 정성 들인 밭이었다. 흘러 내려온 토사로 마을 길이 막혀 집에는 올라갈 수도 없었다. 다리가 끊어지고, 산사태로 국도까지 통제된 모습들은 마치 전쟁터 같고 현실이 아닌 것만 같았다. 사망자와 실종자 소식들과 눈 앞에 펼쳐진 재난 앞에 뭘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고. 전기와 수도가 끊기고 일상이 멈춰버린 것 같은 며칠이었다.
한달음에 달려와 준 사람들
마을 청년들이 침수된 하우스와 작업장으로 달려가 젖은 물건들을 치우고 복구에 손을 보태기 시작했다. 하동에서 나마스떼 민박을 하는 수진 부부가 저녁밥을 해서 달려왔다. 반찬을 만들어준 분들도 있고 이웃과 함께 준비했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이 모이는 까페이고 공유공간인 ‘남다른이유’에서 얼굴보고 함께 밥을 먹으면서 안부를 확인하고 정신을 차리고 힘을 낼 수 있었다.
‘산청의료사협’에서 제안해 ‘그늘과 언덕’이 함께 ‘산청합천 수해복구봉사 연결방’이 만들어졌다. 일손이 필요한 농가와 일손을 보태겠다는 개인이나 소규모 봉사자들 신청을 받아 연결하고 함께 봉사를 했다. 오픈채팅방이 만들어진 7월 25일, 구례에서 윤주옥 선생님과 정환, 상글 청년들이 제일 먼저 달려와 주었다.
누군가에겐 살아갈 힘이 될 모두의 손길
물이 빠졌지만 아직도 질퍽거리는 딸기하우스 비닐들을 찢어내고, 물에 젖은 포장박스와 농자재들을 꺼내면서 온갖 쓸려 내려온 쓰레기들을 보면서 암담했다. 임시대피소로 제공된 모텔에서 생활하는 힘든 상황에서도, 더운데 그만하라고 너무 고맙다고, 그래도 힘이 난다고 웃어주던 첫 번째 하우스 농장 부부의 말에 우리가 힘이 났다. 폭염에 땀과 흙탕물로 온몸이 젖었지만 힘내서 본격적으로 봉사를 시작할 수 있었다. 첫 번째 농가는 올해 농사는 포기한다고 했었는데 여러 봉사자들 도움으로 하우스를 철거하고 새로 설치해 올해 농사를 하게 됐다는 소식들을 채팅방에 올려주고 있다.
그 뒤를 이어 역시 지리산 이웃들인 남원, 함양, 하동에서, 전국에서 정말 많은 분이 일손을 보태러 와 주었다. 서울, 인천, 수원, 용인, 공주, 대전, 세종, 부산, 창원, 마산, 김해, 진주, 고성 전국 각지에서 다녀가셨다. 하우스 작업은 낮에는 너무 뜨거워 오전은 새벽 6시부터 10시까지, 오후는 3시부터 6시까지 활동했다. 멀리서 새벽 운전해 달려와 참여하는 분들은 그 정성은 뭐라 말할 수 없이 감사했다.
질퍽거리는 바닥에 휘어지고 떨어진 하우스 배드 상토를 담아 옮기기, 하우스 바닥에 쌓인 상토를 쪼그리고 앉아 쓸어 포대에 담아내기, 창고에 쌓인 젖은 짐들을 옭기고 바닥 물청소기. 어느 한 곳도 일이 만만한 곳은 없었지만, 반가워하는 농장주님들과 함께 하는 힘으로 기쁘게 할 수 있었다. 재미나게 봉사해 보자고 “잼봉잼봉 화이팀”을 외치고 시작하기도 했다.
“새참 왔어요. 새참 먹으로 오세요~~”
‘그늘과 언덕’에서는 까치밥 선결제로 봉사자들을 위한 음료와 간식을 회원들이 배달해 주었다. 해뜨기 전부터 땀 흘려 일하다가 얼음 가득한 맛있는 음료는 에너지를 올려주는 소중한 존재였다.
마법 같은 ‘함께’의 힘
물기가 있을 때는 질퍽거려 힘들고, 바짝 말랐을 때는 먼지 때문에 마스크를 쓰면 금방 숨이 막혀 힘들었다. 하우스는 길고 끝이 보이지 않았는데 함께하다 보면 끝이 난다. 밭일할 때마다 ‘눈은 게을러도 손은 부지런타’ 하시던 아버님 말씀이 늘 생각났다. 부부 두 명이 한 동 바닥 토사 치우는 데 일주일이 걸렸다는데 여럿이 가서 하다 보면 한 동, 두 동 깨끗이 치워지는 건 정말 마법 같았다. 봉사 후에는 식당이나 의료사협에서 준비해 준 밥을 함께 먹으며 어디서 왔는지 인사도 나누고 소감도 나누었다. 서로를 보면서 감동을 받는 뜨거운 시간들이었다.
’김제동과 어깨동무‘ 회원들이 많이 참여했다. 뉴스를 보고 언제 갈 수 있을지 계속 채팅방에서 보면서 마음을 썼거나, 군청에 전화해 보고 개인 봉사 방법을 계속 찾았다는 분들도 많았다. 봉사 DNA는 따로 있는지 봉사를 해 본 경험이 있는 분들이 또 하게 되는 것 같았다. 휴가왔다가 봉사도 하고 가려고 온 강동구 구의원 부부, 돌아가서는 아들 중학교 아버지회에서 홍보해서 여러 가족이 아이들과 함께 또 오기도 했다. 부산에 사는 소방관, 특수교사 가족은 세 번이나 다녀가면서 정말 봉사에 진심인 분들이었다. 대구 계성중학교 봉사동아리, 간디고도 동아리 청소년들도 많이 참여해 주었다. 우리 지역 분들도 작업반장을 도맡아 주던 분, 몸이 안 좋은데도 아들들을 데리고 몇 번이나 참여한 분, 새벽에 봉사하고 출근하는 분, 각자 자기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함께했다. 우리 집을 숙소로 사용해 봉사 후 저녁에 차 한잔 하면서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시간들도 참 좋았다.
귀에 피 나도록 많은 전화와 문의를 받아낸 한나와 9월에 이어준 은영에게, 집을 숙소로 내놓기도 하고, 음료 배달 천사를 하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자원해서 해 준 모두가 대견하고 정말로 감사하다. 군에서 정한 ’산청 방문의 해‘였는데, 정말 많은 분이 관광이 아닌 봉사를 위해 방문해 산청을 진하게 체험하고 갔다. 현재 오픈채팅방에도 312명이 아직도 나가지 않고 산청을 걱정해주고 있다.
재난이 지나가고 남은 생각
다섯 마리를 새끼들을 다 데리고 며칠 만에 집으로 돌아온 고양이 가족, 농막 지붕 위에 대피했던 개들, 진주까지 떠내려갔다가 구조돼 돌아온 소들.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야생동물들, 비인간 동물들도 함께 겪은 재난을 목격하고 생명에 대해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산청사람들, 전국에서 달려온 사람들, 재난 속에서 뜨겁게 만나고 회복을 위해 살아있는 공동체를 경험한 것 같다. 이런 봉사를 받을 줄은 몰랐다고, 앞으로 봉사하고 살고 싶다는 농민들, 어쩌면 도와준 일손보다 달려와준 사람들의 관심과 애정으로 희망을 얻었다는 말이 더 소중한 것 같다.
재난 이후 앞으로 아직도 일상으로 돌아가는 데 시간이 많이 필요한 분들을 어떻게 도와야 할지, 일상이 될지도 모를 재난을 어떻게 대비하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지역을 만들 수 있을지 함께 방법을 찾아가야 하는 시간이다.
가을이 오고, 풀밭이 된 들깨 밭 풀을 매고, 무씨도 넣고 배추 모종도 심고 있다. 아침에 아이들과 달리기도 하고, 취미 강좌도 다시 참여하고 있다. 소소한 일상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실감하면서, 아직 일상을 회복하지 못한 분들과 손잡고 나누면서 살아갈 것이다.
산청 햇살
_낮에는 농사짓고 마을에서 사람들과 놀고 배우고, 저녁에는 별처럼 매일 반짝이며 자라는 아이들과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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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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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만규화백의 섬진팔경 사계] 무동산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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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양무동산에서 여름 2008 . 106x220 순지에 수묵채색
무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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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서너 시 쯤 스케치하러 나선다. 그래야 해 뜨기 전에 정상에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무동산(275m)은 높지 않지만 마치 삼각뿔 모양새로서 약간 가파른 산길을 따라 20~30분 소요된다. 오르막길에 들어서면 조그만 암자가 자리하고 있다. 여러 번 지나쳤던 요사(寮舍)에 인연이 되어 며칠 동안 머문 적이 있다. 창문을 열면 저 멀리 강물에 담긴 지리산이 한 눈에 들어온다. 새벽녘 낮고 장엄하게 들려오는 종소리가 계곡마다 전하는 여음이 진하게 파고 든다. 쌍계사인 듯하다. 이 곳 무등암에도 어느 중생을 위한 염불인지 목탁소리와 함께 낙낙한 주지승의 음성이 되돌아온다. 계단을 덮은 대숲을 조용히 지나자 새벽바람에 댓잎 스치는 소리가 스산함을 더하고 어둠이 적막함으로 다가온다.
강 건너 어스름한 하동 읍내의 아련한 불빛은 하나, 둘 꺼져가고 지리산과 백운산을 끼고 내려오는 강줄기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이러한 분위기를 놓치지 않으려고 그간에 나는 새벽공기를 마시며 강변을 서성였나보다. 영감이 가장 몰입되는 순간이고 오롯이 혼자로써 사유하며 주변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산 정상 바위위에 가부좌 틀고 앉아 있으니 발아래 강물에서부터 맞은편 저 너머 어슴푸레하게 능선을 드러내는 지리산까지를 모두 섭렵하는 듯하다. 강가의 아침이란, 어느 강이든 그러하지만 특히 산을 휘감고 흐르는 섬진강은 잔뜩 설레이며 기대하게 한다. 시간과 기후에 따라 변화무쌍함을 연출하기에 기대치를 한껏 높이고 눈을 떼지 않고 바라본다. 드디어 여명이 떠오르면 이 산, 저 산 골짜기, 강줄기마다 환희의 운해가 펼쳐진다. 주위는 순식간에 강한 입체감을 주며 집체무용이라도 연상케 하는 대단한 파노라마를 만들어 낸다. 어느새 남해 금산에서 힘찬 해가 솟아오르면 운해는 슬그머니 어디론가 퇴장하고 새 세상이 펼쳐진다.
무동산, 낮고 작은 산이지만 가장 가까이에서도 넓고 긴 섬진강을 보여주는 옹골찬 곳이다. 하류에 자리하고 있어 넓어진 강폭의 규모가 남해바다를 향해서 구불거리며 흐르는 곡선의 끝에는 광양제철의 굴뚝이 우뚝 서있다.
괜한 망상을 떠올릴 때가 있다. 기상변화로 인해 사계절이 없어진다면?
2
섬진강 물길은 600리 이다. 우리나라에서 아홉 번 째로 긴 강이다. 참 먼데서부터 흘러와준 것이 장하다!
조그마한 옹달샘, 전북 진안의 데미샘에 모인 물방울들이 흩어지지 않고 하나 되어 작은 도랑, 하천을 이루며 주변과 함께 어우러진다. 메마른 논밭에, 강가 언덕의 억새를 적셔주고 밭 메는 어머니의 갈증을 달래준다. 날 저물어 집에 돌아가는 아버지의 삽을 씻어주고 흘러간다. 높은 곳에 고여 있지 않고 필요한 곳을 찾아 아래로, 이 땅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간다. 또 다른 지천들과 함께 더 많은 곳을 더트면서 땅을 적시고 강을 이룬다. 그렇게 목마른 곳을 적시며 협곡이나 들녘을 돌아 돌아 서두르지 않고 이르른 곳 여기, 광양 무동산 아래에서 폭넓은 강, 강다운 강을 만든다.
섬진(蟾津)이란 이름은 우리민족의 역사와 사회의식을 담아내고 있다. 왜구가 강 하구에 침입했을 때 광양 땅 섬거에 살던 수십만 마리 두꺼비가 떼 지어 몰려와 울부짖자 왜구들이 피해갔다는 전설에 따라 불리어졌다는 고마운 두꺼비의 공덕을 광양군 다압면에 ‘섬진강유래비’는 전한다. 이렇듯 이 물길은 평온할 수만은 없었다. 선비들이 위정척사(衛正斥邪)의 도포 깃을 휘날리고, 민중들이 시퍼런 죽창을 치켜세웠음에도 섬진강은 끊임없이 왜구들의 침탈로가 되었다. 동학농민전쟁 당시 농민군과 관군의 치열한 싸움이었던 방아치전투(1894) 이후에도 동족상잔으로 강물을 물들게 했던 아픔을 안고 흐른다.
여인들이 잡은 재첩을 실어 나르는 동력선이 물길을 가르며 분주하게 다닌다.
저 앞에 지리산 능선의 부드러운 선율과 그 틈새에 드러내지 않으려는 듯 조용히 숨어있는 강변마을이 주는 아련함이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혀준다. 여기 강가의 사람들이 흘린 서러움과 눈물, 절망까지 모두 받아 안고 바다가 보이는 광양만으로 간다.
이제 600리 섬진강은 버려라. 그리고 바다의 시원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자기를 버린 물방울은 강이 되어 바다의 시원으로 거듭나 강들의 유토피아, 대동세상일 바다에서 자유와 평화를 누릴 것이다.
경전선인 섬진철교에 화물열차가 지나갔다. 대 여섯 량을 단 여객열차도 평온하게 지나간다. 섬진교 위로 하동과 광양을 오가는 버스가 아무렇지도 않게 달린다. 두 다리를 품어주는 섬진강도 하나의 물줄기로 흘러간다. 목포에서 탔다는 아주머니가 집에서 삶아 온 달걀이라고, 경상도 아지매는 목을 축이라며 두유팩이 서로 오간다.
누가 강사이로 깊은 간극을 만들었나.
사람만이 나뉘어 가고 있다.
마음에 평화를 가져본다.
- 글 + 그림 | 송만규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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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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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만규화백의 섬진팔경사계] 붕어섬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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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어섬 (상)
글쎄, 듣고 보니 금붕어 모양새다. 꼬리를 살짝 틀어 재치고 힘 있게 돌진하는 기세가 있어 보인다. 이 붕어섬이 있는 본래의 지명은 외앗날이다.
그런데 유유히 흐르던 섬진강이 아픈 시련을 맞게 되었다. 1928년, 이 강이 갖고 있는 수자원을 유용하겠다는 것이다. 그 해 호남지역에 극심한 가뭄을 겪고 있었다. 그래서 정읍시 산내면 종성리와 임실군 강진면 옥정리를 마주하는 협곡에 높이 40m의 댐을 만들었다. 남류하던 섬진강물중 일부는 땅속에 파이프라인을 뚫어 숭어가 노는 서해안으로 흐른다. 그 물은 동진강을 따라 가보면 광활한 호남평야, 개화도의 메마른 논바닥을 적셔줄 농업용수로 사용되었다. 이후 수력발전 등 다목적댐으로 만들어졌다. 거기, 댐 아래로 처음 낙하하는 곳에 정읍 칠보 수력발전소가 있다.
그러면서 삶의 근거지인 논과 밭, 다니던 길과 집들이 고스란히 물에 잠기고 이곳은 졸지에 섬이 되어버렸다. ‘산 바깥 능선의 날등’이란 뜻으로 ‘외앗날’이라 부르는데 오가는 이들이 금붕어를 닮았다하여 붕어섬으로 불리어져 함께 쓰인다.
댐으로 만들어진 이 저수지 이름을 지을 때 이 지역에서는 ‘구름과 바위의 전설을 많이 지니고 있는 곳이니 운암호’라 불리워지기를 원했으나 중앙정부에서 옥정호로 결정했다고 전해진다.
한편 이 근처에 옥정리(玉井里)라는 마을은, 조선 중기에 이 마을을 지나던 스님이 ‘이 곳은 머지않아 맑은 호수, 즉 옥정(玉井)’이 될 것이라고 예언하여 마을이름을 옥정리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옥정호 때문에 임실군 운암, 강진, 신평, 신덕면과 정읍시 산내면 등 2군 5개면이 물에 잠겼고 2만 명 가량이 고향을 떠나야만 했다. 그중에 상당수는 부안군 계화도 간척지 등 낯선 땅으로 옮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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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어섬 (하)
붕어섬은 아리고 아린 아름다움이다.
그 아름다움은 실향민들의 양보와 배려의 결실물이다.
그러나 자연은 붕어섬을 외로이 물에 가둬 놓지만은 안했다. 관심 있는 수많은 이들의 끊임없는 발길이 함께한다.
구절양장(九折羊腸)의 도로를 즐기며 드라이브하기 좋은 곳, 옥정호이다.
또한 옥정호의 아름다운 풍광을 담아갈 수 있도록 13km 이르는 물안개길이 있다.
옥정호가 손에 닿을 듯 말 듯, 호수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보며 걸을 수 있는 오솔길이 만들어 낸 트래킹 코스다. 화려하거나 웅장하게 꾸며지지 않아서 그야말로 마음 편안히 맡길 수 있는 쉴만한 공간이다.
옥정호는 뒤편으로 오봉산이 병풍처럼 싸안고 있어서 더욱 포근함을 안겨준다. 그 산에 15분가량 올라가면 국사봉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호수 가운데 붕어섬이다. 그 곳에는 사람 냄새가 물씬 난다. 함께 지내던 이웃들은 떠났을지언정 이른 봄이면 새 희망의 기운이 솟는다. 갈아엎어 붉은 색조를 띠는 밭두렁에서는 뭔가를 이뤄낼 듯이, 새 생명을 암시하듯이 아침 햇살에 따뜻한 훈김을 뭉실뭉실 피어 올린다.
작은 섬이지만 시간의 변화를 읽게 해주는 공간이다. 그야말로 변화무쌍함을 만들어내는 설치작품 같은 곳이다. 여명이 동터오를 새벽녘에는 그야말로 승경이다.
가을 날 기온차가 생길 때면 전망대에는 발 디딜 틈이 없다. 사방에 둘러쌓인 산과 그 안에 안겨있는 호수가 어우러져 펼쳐지는 혼미한 기상 쇼를 보기 위해서이다. 동녘의 햇살은 섬진강 발원지인 저 멀리 진안 마이산의 두 귀에 그림자를 드리우며 호수에 비춰온다.
지자체에서 관광개발을 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외앗날에, 붕어섬의 지느러미 하나도 소실되지 않고 소중하게 간직해야 한다. 장자(莊子)의 조탁복박(彫琢復朴)이란 말이 호수위에 어른거리다.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꾸미거나 수식(修飾)하지 말고 본래의 내 모습을 소중히 여기며 참 나의 모습을 찾아야 한다는 말이 아니던가.
-글 + 그림┃송만규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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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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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농부 안철환의 땅 이야기 11] 거름 이야기와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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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름 이야기와 마무리
안철환(전통농업연구소 대표)
거름 만드는 일은 밥 먹는 일만큼 쉬운 일이란 걸 꼭 일러주고 싶었습니다. 생각해보세요. 유기물이란 그냥 놔두어도 다 썩게 되어 있어요. 냉장고에서도 썩어 나가는 경우가 종종 있잖아요. 발효제 없어도 큰 지장 없습니다. 있으면 더 잘되는 것은 사실이지만요. 김치, 장 담글 때 발효제 넣지 않잖아요.
다만 발효와 부패의 차이점은 알 필요가 있습니다. 둘 다 미생물에 의해 분해되는 것은 같아요. 최종 결과물이 인간에게 해로운 결과가 생기면 부패, 이로운 결과가 생기면 발효라고도 하거나, 좀더 넓게 말하면 내가 원하는 결과가 나오면 발효, 그렇지 않으면 부패라 할 수 있어서 둘의 차이는 종이 한장 정도라 할 수 있지요. 가령 술을 만들려고 했는데 잘못되어 식초가 생겼으면 부패로 간주하지만 관점을 달리하면 발효라 할 수도 있는 것과 같습니다.
지력을 높여주는 호기발효
거름을 만들기 위한 방법은 크게 호기발효와 혐기발효 두 가지가 있습니다. 호기(好氣)발효는 글자 그대로 공기를 좋아하는 발효로 산소발효라 할 수 있고요, 혐기(嫌氣)발효는 반대로 공기를 싫어하는 발효로 무산소 발효라 하지요. 대체로 김치나 장 같은 음식의 경우 혐기발효를 시키는 반면 퇴비는 호기발효 시키는 게 좋습니다.
저는 거름을 크게 두 종류로 나누기도 합니다. 하나는 흙이 좋아하는 거름, 하나는 작물이 좋아하는 거름으로 말이죠. 물론 이렇게 이분법으로 딱 잘라 나눌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흙이 좋아하면 작물도 좋아하죠. 다만 작물이 좋아하는 거름을 흙이 싫어할 수는 있어요. 그래서 중요한 것은 흙이 좋아하는 거름을 만드는 일입니다.
음식물찌꺼기가 됐든 똥(인분, 축분)이 됐든 이런 질소질 성분이 주재료인 것으로 거름을 만들 때 꼭 톱밥을 섞습니다. 질소질 성분은 대체로 단백질이 분해될 때 나옵니다. 그러니까 질소질 성분이란 고기 같은 단백질 성분이 많다는 의미일 겁니다. 그런데 저는 반대로 말합니다. 이런 질소질 재료를 발효시키기 위해 톱밥을 섞는 게 아니라 톱밥을 발효시키기 위해 질소질 재료를 섞는 것이라고 말이죠. 왜 그럴까요?
하나는 질소질 재료와 톱밥을 섞어 발효시키면 최종 결과물은 발효된 톱밥만 남기 때문입니다. 질소질 재료는 쓰이기만 하고 사라진 거에요.
두 번째는 흙의 지력, 곧 땅심을 좋게 해주는 것은 질소질보다는 톱밥에 많은 탄소질이기 때문입니다. 질소질 성분은 자신의 고향인 하늘로 되돌아가거나, 아니면 작물이 먹지요. 그리고 남은 건 땅 속으로 스며들거나 유실되어 수질 오염원이 되기도 합니다. 탄소질이 지력을 좋게 해주는 주인공인 것은 탄소질이 바로 유기물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유기물이란 탄소화합물의 또 다른 표현이고, 그래서 지력이 좋다는 것은 토양에 유기물이 충분하다는 말과 같거든요.
그래서 톱밥을 발효시키기 위해 음식물이나 똥을 섞어주는 겁니다. 비율도 톱밥의 탄소질 성분이 20~30이면 질소질 성분은 1 정도입니다. 대부분은 탄소질이란 거지요. 그래서 저는 탄소질 재료를 밥이라고 하면 질소질은 반찬이라고 합니다. 이를 탄소질 대 질소질 비율이라고 해서 탄질비라고도 하고, 영어도 탄소질carbon의 c, 질소질nitrogen의 n을 따 와서 cn율이라고도 하지요.
톱밥을 섞어주면 톱밥 틈의 공기층 때문에 호기발효가 절로 일어납니다. 그래서 톱밥이 밀가루처럼 고운 것보다는 입자가 커서 틈이 많은 거친 게 좋습니다. 톱밥엔 목질부 섬유질인 리그닌이 풍부합니다. 이를 토양 미생물, 그 중에 방선균이란 놈이 아주 좋아합니다. 이놈이 리그닌을 먹고 접착 성분을 만들어 토양의 홑알들을 떼알구조로 뭉쳐 줍니다. 이 떼알구조 흙을 입단(粒團)구조 흙이라 하는데 흙 알갱이(고상)가 반을 차지하고 나머지 반이 물(액상)과 공기 층(기상)으로 이루어지고 유기물은 입단화된 흙 틈 벽면에 코팅되어 약 5%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 정도의 유기물함량이면 꽤 옥토라 할 수 있어요.
탄질비는 이론적으로 20~30:1이 적당하지만 실제 거름을 만들 때는 부피 기준으로 톱밥 1.5~2에 음식물이나 똥은 1이면 적당합니다. 음식물이나 똥에도 탄소질 성분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수분도 중요합니다. 60%가 적당한데요 실제론 눈으로 볼 때 톱밥과 섞은 상태가 뽀송뽀송하면서 약간 촉촉한 느낌이면 됩니다. 물기가 눈에 보일 정도면 과습입니다.
톱밥과 잘 섞어놓고 발효가 진전되면 부피가 70% 정도로 줄어들 때가 옵니다. 공기가 모자라 호기상태가 좋지 않다는 신호입니다. 그럴 때 위 아래를 뒤집어 줍니다. 공기를 공급해주는 거지요. 그리고 나서 두 세달이면 발효가 완성되는데 일단 원재료 냄새는 사라지고 약간 습하면서 풋풋한 냄새가 나며 색깔은 거무튀튀해집니다.
기후위기 땅심으로 극복하자
스페인의 끝없이 펼쳐진 아름다운 밀밭, 그렇지만 이 밑밭이 사라지면 사막이 되고 말 위험한 경관이기도 하지요.
기후위기는 하늘이 화가 난 거에요. 그래서 기후재앙이라고도 하지요. 기후재앙의 완결판은 대가뭄입니다. 다른 말로 한재(旱災)라고 하는데 수재, 화재 등 기후재앙 중에서 제일 무서운 재앙입니다. 다른 재앙들은 피할 곳이 있는데 한재는 피할 데가 없어요. 모두에게 피해를 줄 뿐 아니라 그로 인한 사망자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입니다. 우리나라도 1670(경술년)~71년(신해년)에 대기근이 닥쳐 1천만명의 인구 중 1백만명이 굶어 죽었답니다. 경신대기근이라 하는데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이 시기에 전 세계적으로 소빙하기가 들이닥쳐 세계 곳곳에 추위와 함께 엄청난 가뭄으로 대기근이 곳곳에 벌어졌지요.
한재 같은 기후재앙이 지나가면 토양이 크게 망가집니다. 심하면 사막화가 일어나지요. 오늘날 세계 곳곳의 사막지역도 기후재앙의 결과가 많습니다. 이집트 나일강 주변 옥토 넘어 거대한 사막지역도 원래는 초원지대였답니다. 사막국가로 유명한 사우디아라비아도 원래 숲으로 우거진 지역이었다지요. 엄청난 기후위기, 곧 한재가 누차에 걸쳐 들이닥치고 결국 건조한 기후조건이 자리잡으면서 사막지역이 된 것이겠지요. 세계 4대강 문명 지역을 보면 황하를 빼고는 다 사막지역입니다. 사막지역에서 문명의 꽃이 피진 않았을 겁니다. 문명이란 비옥한 지역의 곡창지대가 받침되었기에 가능했을 테니요. 문명 앞엔 숲이 있고 문명 뒤에는 사막이 있다는 어느 유명한 학자의 말이 바로 그것을 두고 한 말일 겁니다.
저는 그런데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리라 봅니다. 기후재앙으로 사막이 생겼다는 건 분명 땅심이 고갈되었다는 것인데요, 반대로 땅심을 잘 지키면 기후재앙을 피할 수 있다는 것 아닐까 하는 겁니다. 문명 발달로 숲이 사막이 되었다는 건 분명 땅심을 지키지 못했거나 아니면 당장의 욕심에 눈이 멀어 땅심 살릴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이죠.
저는 그럴 위험이 있는 곳을 엄청난 단작지역이라 봅니다. 예를들면 끝없이 펼쳐진 올리브, 포도, 밀, 옥수수, 콩, 목화, 커피, 사탕수수 지역 등입니다. 숲을 파괴해 조성한 경작지이기에 한 종류 작물만 심으면 나중엔 작물마저 병해충 피해 등으로 사라져 결국 사막이 되고 말겁니다. 이미 강, 하천, 지하수는 오랜 단작으로 고갈되고 말았지요. 그외 겨우 남은 초원 지대마저 양들이 먹고 나면 되돌릴 수 없는 일이 될 겁니다. 제가 가본 유럽, 호주와 뉴질랜드의 단작 지역들에서 저는 그 위험을 직감했습니다. 얘기로만 들은 중국의 드넓은 단작지대, 미국과 남미 등에서 숲을 파괴하고 난개발 되고 있는 단작지대들도 큰 위기들을 축적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아랄해를 말려버린 소련의 목화 단작 농사가 이미 경고를 하고 있는데 말이죠.
그렇지만 저는 땅심에 희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땅심만 잘 지키면 사막화도 막을 수 있습니다. 땅심을 살려 하늘의 노여움을 달래면 기후위기도 극복할 수 있다는 거지요. 그 믿음을 다음의 짧막한 글로 대신하고자 하옵고, 그동안 어설픈 제 얘기 들어주셔서 감사한 말씀 드립니다.
하늘과 흙과, 그리고 사람
하늘색은 뭘까요? 파란색? 하늘색?
ㅎㅎ, 죄송하지만 하늘은 검은색이에요.
왜 그러죠?
하늘천따지 검을현누르황이라고 하잖아요. 하늘은 검고 땅은 누렇다는 말이요.
까만 흑이 아닌 검을 현은 좀 달라요. 그냥 새까만 게 아니고 뭔가 아련히 있는 거에요. 뭐가 있을까요?
맞아요, 별이 있지요.
하늘은 어디에 있을까요? 구름 넘어 저 멀리 있을까요?
하늘은 늘 우리 곁에 있다는 걸 어둠을 보고 알았어요.
토종 씨앗 찾아 강원도 깊은 산골 한 할머니 집에 들렀다 하루를 묵은 적이 있었어요.
저녁 얻어 먹고 TV도 없는 구석방에서 일찍 잠을 청하려고 침침한 백열전구 불을 껐더니 칠흑 같은 어둠이 밀려오대요.
얼마나 어두컴컴한지 눈을 떴는지 감았는지를 모르겠더라구요.
처음엔 그 어둠이 불안했어요. 조금 무섭기도 했고요.
근데 좀 지나니 편안해지기 시작하대요. 어둠이 이불처럼 느껴졌어요.
한참 지나 알았지요. 그게 나를 감싸준 하늘이란 걸요.
하느님은 흙으로 인간을 빚었다죠.
그리고 숨을 훅 불어넣어 생명을 깃들게 했다잖아요.
뿐입니까? 비도 내려주어 생명을 영위할 수 있게 해주지요.
비는 어두운 하늘의 은하수에서 내려온다 했어요. 바로 검은 하늘의 무수히 많은 별들이죠.
흙과 하늘 사이는 얼마나 떨어져 있을까요? 맞습니다. 흙과 하늘은 붙어있어요. 아니 붙어있다 못해 끊임없이 소통하고 있다고 하는 게 맞을거에요. 하늘은 흙에 숨을 불어 넣어주고 흙은 생명을 잉태해 하늘을 감동시키죠.
하늘이 노한 기후위기는 하늘이 흙과 멀어져 일어난 거라고 봐요. 흙을 다시 하늘과 소통하도록 제 자리를 잡아주면 기후위기는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어요.
흙에 생명을 잉태 해주어 하늘을 감동시킬 수 있으면 됩니다.
그게 사람이 할 일 아닐까요?
글을 쓴 안철환 선생은 온순환협동조합, 전통농업연구소 대표이고 경기도 안산에서 ‘산림생태텃밭 먹거리숲 농장’을 운영한다. 남은 음식물과 똥오줌, 커피 찌꺼기를 받아 직접 거름 만들기를 실천하고 있으며, 우리 토종 종자와 전통 농업 살리기에 열중하고 있다.
25년 전, 처음으로 심은 배추 씨가 3일 만에 싹 트는 걸 보고 ‘씨 안에 누가 있었구나!’ 깨닫고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우리가 먹는 배추는 단순히 물질적인 먹을거리가 아니라 나와 별 차이 없는 생명이며, 그래서 먹는다는 것은 생명을 먹고, 생명과 소통하고, 생명과 하나 되는 일이라고 믿는다.
쓴 책으로 《시골똥 서울똥》(2009), 《24절기와 농부의 달력》(2011), 《호미 한자루 농법》(2016), 《토종농법의 시작》(2020)이 있고, 옮긴 책으로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2004)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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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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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만규화백의 섬진팔경사계] 구담마을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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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만규화백의 섬진팔경사계]
구담마을 여름
- 구담여름, 2015, 180×180, 장지에 수묵채색
구담 (상)
구담은 임실 지역을 스미는 섬진강 중에서 가장 하류에 있는 마을이다. 산 중턱 비탈진 곳에 오목하게 올려놓았다. 그다지 넓지 않은 터를 깎고 다듬어서 집들을 세워 마을 자체가 경사졌다. 저 아래 강변에 이르기까지 정갈하게 축대를 쌓아 이룬 논다랑이와 밭들을 보면 이 마을 사람들의 삶에 대한 의지를 짐작케 한다. 한참을 내려가 징검다리를 건너가면 순창인데 11시 방향으로 하얀 바위를 내밀며 기세당당하게 우뚝 솟은 산이 버티고 있다. 이름으로만 보아도 범상치 않은 용골산이다. 그 산자락 싸리재에 대여섯 집이 강물을 바라보며 모여 있다.
구담(九潭)이란 마을의 본래 이름은 안담울이었다. 지금도 그렇게 부르는 이가 있다. 앞강에 자라가 많이 살고 있다고 해서 구담(龜潭)이라 하기도 했고, 또한 강줄기에 아홉 개의 소(沼)가 있다고 해서 구담(九潭)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1680년경 숙종 때 해주 오씨(吳氏)가 정착하여 마을을 가꾸어 왔다고 한다.
내가 이곳을 처음 찾은 때는 1992년으로 기억된다. 정월 보름 다음 날이었다. 어수선한 심경으로 무작정 섬진강변 길에 발을 내디뎠다. 아침 일찍부터 강물에 눈을 맞추며 얼마를 걸었는지 구담마을에 이르니 점심때가 지났다. 산과 산 사이 강변길에 불어닥치는 칼바람이 뼛속까지 파고드는 듯하고 시장하기조차 하니 더욱 오들오들했다. 어느 집인가 불쑥 들어갔다. 낯가림이 있는 나로서는 의외의 행동이었다. 그 집 사람들은 이미 끼니를 마친 상태였다. 그러나 노부부는 장작불을 지펴 데워진 구들장 아랫목에 앉기를 권하며 귀한 손님인 양 나를 극진히 대하였다. 그리고 따끈하게 데운 술을 몇 순배 나누면서 주인장은 조용조용한 음성으로 동네 소개를 자상하게 해 주었다. 좀 더 머물고 싶은 정겹고 훈훈한 자리였다.
그날, 강물이 검어질 때까지 걸었다.
그 후, 구담에 다시 갔을 때 동네 사람들은 그 집을 ‘수남이네’라고 부른다는 것을 알았다. 아들 이름이다. 섬진강을 가슴에 적시고 얼굴을 비추며 붓을 담그게 한 마을이다.
그러니까 나의 발길을 붙잡고 시선을 잡아준 그곳은 구담이다.
구담(하)
전주에서 구담까지 자주 왕래하기에는 조금 불편하다. 버스를 세 번이나 갈아타야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강진면에서 덜덜대는 비포장도로를 다니는 군내버스가 하루 서너 번이나 다니는지, 천담에서 내려 3km를 더 걸어가야 한다. 그래도 갈 곳이 있으니 망설임 없이 화구며 간식거리를 잡다하게 챙겨 간다. 정읍댁이 있어서다. 주변의 친구가 소개해 준 집이다. 정읍댁은 널찍한 안방을 내어주면서 작업실로 쓰라고 권했다. 무슨 인연인지 그의 이름이 내 아내와 같다. ‘양금’이!
정읍댁은 내가 밖에라도 나가 있을 때 끼니때가 되면 “화가 양반~” 하고 꼭 나를 부른다. 따끈한 밥상에 반주도 빼놓지 않으니 넉넉하지 않은가. 그 손맛 중에는 특히 다슬기 요리가 일품이다. 정읍댁은 작은 소쿠리를 옆에 끼고 강에 내려가 순식간에 다슬기를 잡아 온다. 잡아 온 다슬기는 확독에 닥닥 갈아서 껍질을 골라내고 애호박에 부추 잘게 썰어 넣고 끓인 진하고 푸른 국물은 그야말로 별미다. 그 맛은 다슬기의 영향도 있는 것 같다. 맑고 깨끗한 강물에서 건져 올린 다슬기는 둥글하고 노란색을 띤 모양으로 작지만 쫄깃하게 씹히는 맛을 느낄 수 있다.
마을 앞 끝자락에는 당산마루가 있다. 마을에 사람들이 북적대고 살 때는 마을공동체적 의례인 당산굿을 지냈다고 한다. 내가 이곳에 처음 오던 해에도 정월 보름날 달빛 아래 노부부가 당산나무에 금줄을 매놓고 정성을 들이고 있었다. 무엇을 위해서인지는 알 수가 없다.
이때쯤이면 마을은 주변의 닥나무를 베어 나르느라 분주하다. 베어 낸 닥나무는 강가에 돌을 쌓아 만든 커다란 솥에서 며칠 동안 찌고 강물에 다시 며칠간 담가 놓는다. 불어난 닥은 아낙들의 손으로 껍질이 벗겨지고 한지의 재료로서 공장으로 간다.
고요한 시간이 되면 주변에 아름드리 느티나무로 둘러싸여 원형을 이룬 마당에 멍석이라도 깔아 눕고 싶다. 하기야 가을이면 낙엽으로 포근한 멍석이 되어 버리는 당산! 자연이 인간에게 안겨주는 축복이다. 사방 어느 곳을 바라봐도 그냥 흘려보낼 곳 없어 어딘가에 담아둬야 할 것 같은 천혜의 창조물이다. 발아래 저쪽 9시 방향에서 다가오는 강물은 너럭바위에 쉬고 있던 재두루미의 목을 적셔주고, 늪에 어우러지다 앞산을 휘돌아 장구목 쪽으로 흘러간다.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곡선의 물줄기는 느리고 자유롭게 흐르고 있다. 두루두루 주변을 챙긴다. 그래서 섬진강이고, 또한 그것들은 내 그림의 밑천이 되어 왔다.
아침 산책을 나설 때면 설렘과 망설임이 다가온다. 가야 할 곳이 여러 갈래이니 그러기도 하다. 우측에 비탈진 밭고랑을 지나면 계단식 논들이 설치되어 있다. 이른 봄 시린 손을 불어가며 걷다 보면 논두렁 사이로 가녀리게 조용히 아주 맑게 흐르는 물소리가 들려온다. 산 능선에 쌓였던 눈과 얼음이 녹아 흐르는 물이다. 갓 돌 지난 사내아이의 오줌 누는 소리 같다. 새 생명, 희망의 소리다.
이런 풍경의 구담을 영화인들도 놓치지 않았다. 1998년 이곳을 배경으로 ‘아름다운 시절’의 영화 촬영 표지석이 강을 바라보기 가장 좋은 곳에 세워져 있다. 아프고 쓰린, 처참하고 고통스러운 시절을 영화는 주변의 아름다운 풍광으로 달래게 한다.
-그림, 글 _ 송만규(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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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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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농부 안철환의 땅 이야기 10] 거름, 순환의 필수 경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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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으로 돌아가는 삶은 죽어서가 아니라 살아서도 가능한 일임을 제가 존경하는 귀농 선배 한 분에게서 배웠습니다. 그 분은 귀농해서 아주 소박하고 예쁜 뒷간을 직접 만들어 놓고는 정작 자신은 볼 일을 뒷간에서 보지 않고 밭에 들어가 봤답니다. 한 손엔 호미, 다른 손엔 물 한 바가지 들고 적당한 자리 찾아 호미로 구멍 판 다음 일 보고 물 한 바가지로 비데 하면 끝. 그게 매일 흙으로 돌아가는 방법이라니 재밌죠. 똥은 나의 분신이기 때문이라는 거지요.
나의 분신이 매일 흙으로 돌아간다면 그 흙 또한 나의 분신이지 않을까요. 아니면 하느님이 그 흙으로 나를 빚었으니 내가 거꾸로 흙의 분신이기도 하겠죠. 다르게 말씀드리자면 하느님이 흙으로 빚은 다음 당신의 숨을 불어넣어 인간을 완성했으니 나는 하느님과 흙의 합작품일 겁니다. 동양에선 하느님을 양(陽)이라 하고 흙을 음(陰)이라 했으니 나는 당연히 하느님인 아버지와 흙인 어머니의 합작품이 되겠지요.
그렇다고 아무 흙이나 생명의 모태가 되는 건 아니고 하느님의 숨이 깃들 때 생명의 흙이 될 수 있다 했지요. 하느님의 숨이 뭐라 했는지 기억나시나요? 바로 따뜻한 바람이자 공기입니다. 생명의 흙에는 물이 있지요. 흙을 기반으로 공기와 물이 만났을 때 비로서 생명이 탄생하는 겁니다.
그런 생명의 흙에 나의 분신인 똥이 매일 들어가 흙의 양분이 되면 흙에는 하느님의 숨이 더 잘 깃들고 더 많은 생명이 잉태될 겁니다. 그렇게 흙에 살다 결국 죽어서도 흙으로 돌아간다면, 나뿐이 아니라 나의 조상이 그랬듯이 나의 후손들도 그렇게 흙으로 돌아간다면 흙은 거룩한 생명의 신전이 되는 거라 나는 역설하곤 합니다. 가끔 교회나 성당 가서 농사 얘기 드릴 기회가 있으면 하느님은 콘크리트로 지은 예배당보다는 저 생명의 흙을 더 좋아하실 거라 기염을 토하곤 하지요.
그래서 똥을 비롯해 내 몸과 생활에서 나오는 유기부산물을 거름으로 만들어 흙으로 돌려보내는 일은 단지 먹을거리 생산을 위한 것만이 아닌 흙을 살아있는 생명의 신전으로 만드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제 밭에 먹을거리 작물만 자라지 않고, 온갖 풀과 벌레와 지렁이와 미생물, 꿀벌과 무서운 말벌, 귀여운 새와 두더지와 개구리, 능사와 살모사 같은 뱀 등 갖은 생명들이 어울려 살 수 있는 이유입니다.
순환의 힘
한 때 무투입순환농법이 센세이션을 일으킨 적이 있었습니다. 아무 거름도 주지 않고 작물을 키워 수확을 할 수 있다니 놀라울만 하죠. 저는 반박했습니다. 내가 먹고 눈 똥을 흙에다 주지 않으면 똥은 어디다 버리나, 내 농장에서 나온 먹거리를 이웃과 나눠 먹으면 이웃의 똥은 또 어디다 버리나, 우주에다 버릴 수는 없는 일, 부득이 내 농장이 아닌 어딘가에다 버려야 할텐데 그러면 내 똥은 자연을 더럽히는 오염원이 되는 것 아닌가 했지요. 또 흙에서 나온 걸 흙에다 돌려주지 않고 빼 먹기만 하다 흙의 지력을 다 빼먹게 되면 나중엔 농사조차 되지 않는 사막이 되고 말 것이다 했죠.
그런데 제 비판은 나중에 보니 일면적인 이해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무투입순환농법은 무조건 아무것도 주지 않는 게 아니고 내 농장에 순환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게끔 하는 게 핵심이라는 걸 나중에 안 거죠. 요즘 말로 예를들면 탄소가 제 농장에서 잘 순환되도록 하면 탄소중립은 절로 이뤄진다는 겁니다. 탄소가 배출된만큼 탄소를 사냥하는 거지요. 탄소배출이란 수확물을 말합니다. 식물의 광합성 활동으로 공기 중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탄수화물과 단백질을 만드는 게 열매고 이삭이지요. 물론 수확물 외에 낙엽 등 농사부산물도 포함해야겠지요. 농사 부산물과 함께 수확물을 먹고 남은 부산물은 다시 땅으로 돌아가게 하는 일, 바로 이게 농장 순환 시스템인 겁니다.
탄소 순환만이 아닌 질소 순환도 매우 중요합니다. 질소는 단백질의 핵심 원소이고 단백질 부산물의 핵심이기도 하지요. 질소는 주로 암모니와 결합을 잘해 냄새가 납니다. 그게 똥 냄새이고 썩는 냄새입니다. 그런데 질소 순환은 탄소 순환과 비슷하면서 조금 복잡한 면이 있어요. 질소는 똥과 오줌에 많지만 빗물에도 있습니다. 대기 중 질소가 제일 많잖아요. 비가 그런 대기를 통과하면서 질소를 머금는 거에요. 번개 구름에서 내리는 비는 질소를 더 많이 머금게 됩니다. 번개의 엄청난 전기에너지가 질소를 더 많이 고정해 비와 함께 내리거든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 하늘의 비와 햇빛 에너지가 내 농장에 탄소와 질소 비료를 만들어 공급해주는 것이기에 순환시스템이 잘 작동하면 외부에서 비료를 투입해주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지요. 더불어 내 농장에서 흙과 양분이 빠져나가지 않게 하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한 여름 폭염과 폭우, 한 겨울 한파와 가뭄 등이 내 땅의 흙과 양분을 말리거든요. 이걸 예방하는 것도 순환시스템의 중요한 일입니다.
지금 농장에서 농사지은 지 25년 동안 경운하지 않고, 모든 걸 순환시켜 퇴비 만들어 주는 농사를 하다보니 지력이 쌓여 몇 년전부터는 밑거름을 주지 않고 오줌으로 웃거름만 주며 농사짓게 되었습니다. 밑거름은 옥수수와 호박 같이 다비성 작물에게만 주고 맙니다. 산림과학원 지정 산림생태텃밭(일명 먹거리숲) 조성하며 틀밭을 만든 이후 틀밭이 흙의 유실, 침식을 막아주고 지력을 지켜주어 더 거름을 주지 않게 되었어요. 그 바람에 저희 퇴비장독대에 만들어 둔 퇴비들이 그대로 쌓여있게 되었으니 그것도 골치거리가 되고 있네요.
암튼 그래도 무투입순환농법이란 표현은 오해가 있어 저는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자칫 게으른 농사를 조장할 수 있구요. 그냥 순환농법이면 충분할 것입니다.
거름의 뼈는 탄소, 살은 질소
똥이나 남은음식물로 거름 만들 때 꼭 톱밥을 섞어주어야 합니다. 똥과 남은음식물은 질소가 주 재료이고, 톱밥은 탄소가 주 재료입니다. 이 재료들을 분해하는 미생물에게 톱밥은 밥이고 질소는 밑반찬이라고 보면 됩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탄소질은 뼈이고 질소질은 살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미생물이 이 재료들을 분해할 때는 적당한 비율의 물과 공기가 필수입니다. 이 중에 공기가 더 중요한 발효를 호기(好氣)발효라 하고, 공기를 좋아하지 않는 발효를 혐기(嫌氣)발효라 합니다. 퇴비 만들기는 호기발효가 좋습니다. 혐기발효는 오줌 같은 액체비료 숙성시킬 때가 적당합니다.
호기 발효를 시킬 때 퇴비의 주 재료는 톱밥 같은 탄소질 재료입니다. 그렇다고 톱밥만 있으면 발효는 아주 지체됩니다. 여기에 질소질 재료가 첨가되어야 발효가 잘 일어나지요. 탄소질과 질소질의 비율은 보통 20~30:1로 이를 탄질비, 탄질율(C/N)이라 합니다. 비율로만 봐도 탄소질이 질소질보다 20~30배는 많아야 발효가 잘 된다는 것인데요, 그러면 탄소질 재료인 톱밥이 너무 많아 퇴비 만들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닙니다. 그러다보니 시중에 판매되는 공장식 축분 퇴비들에는 톱밥이 20% 정도밖에 들어가지 않아요. 그 정도 비율이면 발효가 잘 일어나지 않아 강제로 온도를 가해주고 공기도 넣어주며 더불어 미생물 발효제도 넣어주는 겁니다.
저희가 퇴비 교육할 때 강조하는 게 있습니다. 음식물찌꺼기를 질소질 재료로 하고 톱밥을 섞어주지요. 그런데 여기에서 주인공은 음식물이 아니라 톱밥이라는 걸 강조합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가 땅에 퇴비를 넣어주는 건 땅의 지력(땅심)을 높여주기 위함인데 땅심의 주인공이 바로 탄소질 재료, 곧 톱밥에 많기 때문이에요.
톱밥 같은 목질부에는 리그닌이라는 섬유질이 있는데 이게 바로 땅심을 높여주는 탄소질의 핵심입니다. 낙엽이나 왕겨 같은 초본류에는 셀룰로오즈라는 탄소질이 있는데 리그닌만 못하지요. 리그닌은 토양 속 호기성 미생물들이 아주 좋아해 먹고 난 후 접착 성분을 만들어 흙의 입단화, 곧 떼알구조의 흙을 만들어 줍니다. 여기엔 숨구멍, 물구멍이 많아 흙이 푹신푹신해지지요. 이 흙 틈새 벽면엔 미생물이 먹이를 먹고 만든 유기물을 코팅해 놓습니다. 그래서 식물들이 흙 틈새로 뿌리를 뻗고 틈새의 물을 흡수하고 벽면에 코팅된 유기물을 먹이삼아 먹고 사는 겁니다. 당연히 틈새에 사는 수많은 미생물도 식물 뿌리에 기대 식물이 뿌리로 뱉어내는 배출물을 먹고 뿌리에겐 요긴한 양분도 제공하며 공생하는 거지요.
아궁이 불을 많이 떼던 옛날엔 재가 아주 훌륭한 탄소질 재료였습니다. 거름 대용으로 쓰기 위해 산에서 훑어오던 참나무 갈잎의 잎줄기에도 탄소질 재료가 많았어요. 지금은 재도 별로 없고 참나무 갈잎은 훑어올 엄두도 못 내지요. 그래서 제가 주목하는 것은 가을이면 쏟아지는 낙엽입니다. 잎에는 셀룰로오즈가 많지만 잎줄기에는 리그닌이 풍부하거든요. 더구나 우거지는 산 숲을 정리하기 위한 간벌로 잔가지 우드칩이 처치 곤란일만큼 많아 이 또한 톱밥 대용으로 쓰면 아주 요긴할 것입니다.
탄소질 재료는 골치일만큼 많은데도 사회적 시스템이 정비되어 있지 않아 쓰질 못하니 저는 주로 목공소의 원목 톱밥을 얻어 씁니다. 폐기물을 재활용하는 의미는 있으나 원목 대부분이 수입산이 많아 아쉬움이 많아요. 기후위기 시대에 하루빨리 자원순환이 생활화되었으면 좋겠네요. 다음 글에선 퇴비만들기의 실재를 소개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글을 쓴 안철환 선생은 온순환협동조합, 전통농업연구소 대표이고 경기도 안산에서 ‘산림생태텃밭 먹거리숲 농장’을 운영한다. 남은 음식물과 똥오줌, 커피 찌꺼기를 받아 직접 거름 만들기를 실천하고 있으며, 우리 토종 종자와 전통 농업 살리기에 열중하고 있다.
25년 전, 처음으로 심은 배추 씨가 3일 만에 싹 트는 걸 보고 ‘씨 안에 누가 있었구나!’ 깨닫고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우리가 먹는 배추는 단순히 물질적인 먹을거리가 아니라 나와 별 차이 없는 생명이며, 그래서 먹는다는 것은 생명을 먹고, 생명과 소통하고, 생명과 하나 되는 일이라고 믿는다.
쓴 책으로 《시골똥 서울똥》(2009), 《24절기와 농부의 달력》(2011), 《호미 한자루 농법》(2016), 《토종농법의 시작》(2020)이 있고, 옮긴 책으로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2004)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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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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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만규화백의 섬진팔경사계] 구례 왕시루봉의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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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시루봉 여름 2017. 140x200 장지에 수묵채색
왕시루(상)
섬진강은 혼자가 아니다. 높고 낮은 산들과 더불어 흐르고 있다. 그 중 지리산이 품고 있는 남원, 구례, 하동을 싸안고 흐른다.
고준광대(高峻廣大)하면서 중후인자(重厚仁慈)하여 아버지 같기도 하고 어머니 같기도 한 웅대함을 지닌 영산(靈山), 지리산! 그런 만큼 1967년 국립공원 제 1호로 지정되었다.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 45킬로미터가 넘는 주능선에 반야봉, 토끼봉 등 고산 준봉이 20여개가 있으며 85개의 크고 작은 봉우리들이 ‘산속의 산’을 안고 있고 15개의 지능선과 계곡들이 있는 그야말로 산괴(山塊)이다. 어느 산악인의 고백처럼 지리산은 찾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너무나 많다.
노고단에서 구례군 토지면을 향하여 남쪽으로 뻗어 내린 능선에 왕시루봉이 있다. 정상부분이 펑퍼짐하고 두루뭉술하고 커다란 시루를 엎어 놓은 것 같다 하여 왕시루봉이란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이곳과의 인연은 토지면 파도리 부터 이다. 1990년대 초, 왕시루봉 별장의 산사람 함태식 선생을 찾아서 문학인들과 함께한 산행이 시작이다. 그날 낯선 경험을 했다. 화장실에서 용변 후에 재를 뿌린다. 그러면 냄새가 제거 된다고 하던데 그런가보다. 습기 찬 여름인데도 개운하다. 선생은 주변 환경으로 안내 한다.
그 이후 나는 밤낮 구분 없이 몇 번을 오르내렸던가! 두 세 시경 구례구역에 도착하는 열차를 탄다. 택시로 갈아타고 토지면 왕시루봉 입구까지 간다. 그야말로 칠흑 같은 밤, 쏟아지는 별빛과 헤드랜턴에 의존하고 더듬거리며 산길을 오른다. 이곳에는 반달곰, 멧돼지가 서식하기 때문에 주의를 해야 한다. 서로 피해의식이 있다. 배낭에 놋쇠로 만든 종을 매달아 소리를 내고 가끔 헛기침으로 경계하면서 오른다.
섬진강을 가장 높은 위치에서 멀고 길게 볼 수 있는 곳이기에 여러번 찾은 곳이다. 어둠이 걷히면서 청아한 새벽 공기에 은빛의 물길이 그려진다. 지리산이기에 보여줄 수 있는 깊숙함 속에 환희가 있다. 겹겹이 쌓여진 산과 하나 되어 유유자적한 강물까지도 의연함을 자아내는 신새벽을 맞이한다.
왕시루봉(하)
지리산은 아픈 역사만큼이나 식물들도 수난을 겪어야 했다. 조선시대 유산기(遊山記)에서 “나무들이 하늘을 덮었고, 밑에는 세죽이 빽빽하게 밀집하여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마땅히 수십 그루를 찍어 넘겨야 비로소 하늘을 볼 수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임진왜란에서 격랑의 현대사에 이르기까지 방화와 남벌, 화전 등으로 수없이 쓰러져 갔으나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진정의 기미를 보였다. 그렇게 모진 수난에서도 꾸역꾸역 이 땅을 지켜내고 있는 들꽃들이 눈에 뛴다. 지난한 역사, 어찌 잊으랴마는 신숙주의 노래처럼 ‘원추리로 인하여 모든 것을 잊었으니 시름이 없다’하니 하늘이 내려 보내기라도 했나? 군락지에 훤하게 피어있는 원추리 앞에서 어떻게 근심을 갖으랴! 노고단에서 만났던 이질풀이 이곳에도 있구나. 이름과는 전혀 다른 자태를 뽐내는 작은 꽃, 한방에서는 노관초(老官草)라고 부르며 지사제로 유익함까지도 주니 더욱 예쁘다. 바위에 걸터앉아 쉴 참이면 발아래 밝은 미소로 힘겨움을 덜어주는 노~랑제비꽃, 뭐니 뭐니 해도 지리산의 절경이라 할 수 있는 헬기장 주변에 보드랍고 유연하게 흔들거리는 억새사이로 들어오는 섬진강에 포근한 구름이 내려앉고 있다.
예부터 사람들은 산과 더불어 보금자리를 만들고, 기슭에서 의식주를 해결해나가며 삶을 꾸려왔다. 한편 지리산은 산자락을 그림자로 드리운 채 남해로 흐르는 섬진강의 맑은 물이 백사장과 함께 지리산의 비경을 만들어 낸다. 그래서 섬진청류(蟾津淸流)라 하며 지리산 10경으로 인정하고 있다.
섬진강은 지명유래에서 보더라도 왜구의 침탈로 몸살을 앓았던 곳이다. 이 때 섬진강, 지리산 자락의 선비들은 조국에 대한 의무와 책임을 자기 정체성이라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한 대표적인 선비들로는 피아골 입구에서 구례 방향으로 3킬로미터 지점의 섬진강가, 왕시루봉 능선이 마지막 자락을 흘러내린 곳에 의병들의 무덤이 말해준다. 이 곳 석주관에는 정유재란 때 왜구를 막기 위해 싸우다 순절한 왕득인, 왕의성, 이정익, 한호성, 양응록, 고정철, 오종과 구례 현감 이원춘의 위폐를 모신 칠의단이 있다.
17번 국도로 섬진강을 따라 간다. 우측으로 유유히 흐르는 강물에 몰입하다 좌로 고개를 돌리면 석주관이 있다. 오늘의 선비정신은 무엇일까?
왕시루봉은 섬진강을 젖줄삼아 말없이 자양분을 나르고 있다. 백두대간을 적시며 더 높은 곳의 영산 백두산으로 향하리라.
-글 ㅣ 송만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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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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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만규화백의 섬진팔경사계] 구례 사성암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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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 사성암에서 봄, 2016 140x200 장지에 수묵채색
사성암 (상)
구례 오산(530미터)에 있는 사성암 가는 길이 이제는 아스팔트 포장된 길로 셔틀버스를 이용하면 편하고 빠르게 오를 수 있다. 그러나 등산로는 가파라서 지그재그로 2킬로미터 남짓 되니 한 시간 가량 숨차게 올라야 한다. 왜 산에 오르는가에 따라 선택의 길은 다를 것이다.
사성암은 깎아지른 듯한 기암절벽에 세운 우리나라에선 보기 드문 고찰이다. 원효, 의상, 도선, 진각국사, 이렇게 4명의 고승이 수도하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기도 하다.
나는 조금이라도 더 길게 흐르는 강줄기와 넓은 들녘을 담아내려고 산을 오르곤 한다. 새처럼 날아올라 아래를 내려다보고 그리는 부감법을 구사하려는 마음이다.
바위에 딱 붙어 지어진 절집과 계단을 오르다보면 거무스름하며 무게감 있는 귀목나무를 만날 수 있다. 800년이 되었다고 하는데 잎이 한꺼번에 나오지 않는 해는 풍년이 든다는 말이 전해진다.
조망하기 좋은 곳을 찾아 바위를 따라 돌다보면 ‘위험하니 올라가지 마시오. 주지 백’ 이란 글씨가 써진 기왓장을 만난다. 하지마라면 더하고 싶어지는 법, 절벽에 올라선 바위라 오르는 것은 정말 위험해 보인다. 그래도 죄송하지만 올라보니 좋다. 이 일대 오산에 12비경의 전설이 전해온다는 것이 그럴 만 해 보인다.
진각국사가 참선했다는 좌선대 와 우선대, 석양과 노을을 바라보며 하루를 뒤돌아보았다는 낙조대등 지리산과 섬진강을 두루두루 조망할 수 있는 결정적인 곳이다. 이곳을 여러 해 동안 오르내렸다. 어둠이 채 가시기 전의 어느 가을에 다시 찾았을 때, 또 다른 기왓장엔 ‘제발 말 좀 들으시오’라고 씌어 있다. 나를 질책 하는구나 라고 생각하면서도 역시 오를 수밖에 없었다. 모두들 스스로 조심할 텐데 왜 위험하다고 이렇게 간곡하게 표현해 놓았을까?
이곳에 올라 서보면 안다. 바위 끝 바로 발아래에 하얀 목화솜덩어리가 포근하게 깔려 있는 듯 보인다. 조심히 바위 안쪽에 앉아서 구름의 자유자재로운 변화에 신비로움을 느껴본다. 살며시 옅어진 구름 사이로 섬진강 줄기와 구례 읍내가 보이기 시작한다.
11시 방향 곡성에서 내려오는 강물은 구례구역 앞을 지나 구례읍을 휘돌아 피아골에서 내려오는 계곡물을 맞이하러 간다. 1시 방향으로는 지리산 노고단에서 천왕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강을 품고 있다.
몸이 썬득해지며 시장기가 돋는다. 빤히 내려 보이는 읍내 동아식당에서 돼지족탕 국물에 끓인 따끈한 라면을 먹으려고 일어선다.
사성암(하)
섬진강의 맑은 품성과 지리산의 강직한 성정을 지니고 사는 사람들은 나라에 대한 주인의식, 주체의식을 바탕에 두고 살았다. 이 아름답고 너른 들판엔 서럽고 아픈 역사들이 우리들의 발길을 잡는다. 천은사 못 미쳐 광의면의 매천사당(梅泉祠堂)이 그 중 하나이다.
‘난리 속에 살다보니 백발이 성성하구나.
몇 번이고 죽으려 했지만 그 뜻을 못 이뤘도다.
오늘도 참으로 어찌할 수 없게 되었으니
가물거리는 촛불만이 창천을 비추는 도다.‘
구례땅 월곡리에 은거하던 선비 매천 황현은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목숨을 끊지 못하고 구차하게 살아옴을 서러워하다 1910년에 한일합방이 체결되자 통곡을 하며 4수(首)의 절명시를 남기고 자결했다. 살아남은 선비들은 그의 시를 베껴 외우며 욕된 삶을 달랬다 한다. 그는 조선말 위정자의 비리, 비행, 일본의 침략과정과 일제의 만행과 의병의 저항을 자신의 관점과 사실을 바탕으로 기록해 놓은 매천야록(梅泉野錄)을 남겼다.
또 한 곳은 열아홉살 백순례의 삶이 ‘산동애가’로 남아있는 산동면 상관마을이다. 1948년 이데올로기의 대립으로 무고한 양민들이 만여 명이나 학살된 여순사건의 주력부대가 지리산으로 퇴각해 빨치산이 되었다. 이들을 토벌을 하면서 구례에서도 양민들이 무참히 학살당하는 비극을 낳았다. 그 때의 상황이 노래가 되어 소녀의 넋을 기린다.
‘잘 있거라 산동아 너를 두고 나는 간다/ 열아홉 꽃봉오리 피워보지 못하고/ 까마귀 우는 곳을 병든 다리 절어절어/ 다리머리 들어오는 원한의 넋이 되어/ 노고단 골짝에서 이름 없이 스러졌네....
이 후 산동 처녀들이 산수유 열매를 딸 때 부르며 전해 내려왔으나 지금은 그러한 처녀들이 없어서인지 불리어지지 않는다.
또 발길을 돌려야 하는 곳은 하류인 화개 방향으로 토지면에 지리산과 섬진강을 배산임수하고 있는 금환낙지(金環落地)의 운조루라는 독특한 옛집이다. 토지면(土旨面)의 지명도 본래에는 금가락지를 토해냈다는 토지면(吐旨面)으로 풍수형국에서 비롯된 마을이다.
운조루는 명당자리답게 건축양식과 규모도 범상치 않다. 구조는 크게 안채, 사랑채, 행랑채, 제실로 나뉘고 지금은 73칸이 남아 있다. 대문 밖에는 말을 묶어 두는 하마석이 있고 지리산 문수골에서 흘러들어오는 물을 이용하여 만든 200평가량의 연못 터가 있다. 또한 운조루가 소장하고 있는 문화재의 양도 방대하며 사료적 가치도 대단하다. 나는 무엇보다도 운조루의 정신에 가치를 두고 싶다. 200여년 된 원통형 뒤주 아래 부분의 마개에는 “누구나 쌀뒤주를 열 수 있다”는 뜻인 ‘타인능해(他人能解)’라고 적혀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등 수많은 환란 속에서도 건재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집 주인이 지닌 인품과 주변에 쌓았던 덕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섬진강 길을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천천히 따라 가다보면 습지를 만난다. 남원 대강면과 구례 간전면으로 흐르는 곳인데 수달, 황어, 새들이 물버들과 풀섶에서 자유롭게 노니는 모습이 자연스럽고 소소해서 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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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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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농부 안철환의 땅 이야기 9] 경운, 땅은 왜 딱딱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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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의 구조와 경운
경운은 왜 할까요? 맞습니다. 땅이 딱딱해지기 때문이에요. 그럼 왜 땅은 딱딱해질까요? 땅 속 틈새가 메워졌기 때문이지요. 틈새엔 공기가 있고 수분이 있어요. 그 틈새 벽면에 유기물이 코팅되어 있답니다. 그 틈새로 식물이 뿌리를 내리고 틈새의 공기로 호흡을 하고 수분과 유기물을 먹으며 자라는 거거든요. 틈새가 메워지니 흙이 다져져 딱딱해지는건데 그렇게 시간이 오래되면 딱딱해진 것조차 풀어져 사막이 되는겁니다.
원래 부드러워 식물이 살 수 있는 살아있는 흙엔 흙알갱이가 반, 틈새가 반 조금 못되고 유기물층이 5프로 쯤 된답니다. 이 유기물층이 살아있는 흙의 핵심이에요. 여기엔 미생물들이 우주의 별들만큼 많은데 인간이 밝혀낸 게 겨우 5프로도 안된다네요. 살아있는 흙의 주인공이죠. 얘들이 흙을 지켜주고 부드럽게 해주어 식물이 살고 무수한 생명들 또한 그 덕에 사는거에요.
결국 이 유기물 층이 없어져 흙이 딱딱해지는 건데요, 그럼 유기물은 왜 사라질까요? 답은 간단해요. 바로 물이 말라버리면 그래요. 물이 마르면 틈새가 쪼그라들어 흙속 공기도 사라지는 거고 유기물도 타버리고 말죠. 미생물도 생명인지라 숨쉬고 물도 먹어야 하거든요.
그럼 물은 왜 마를까요? 당연히 비가 오지 않으면 그리 되겠지요. 그게 요즘 말하는 기후위기의 끝판이자 바로 대기근이에요. 땅속 물이 마르면 틈새에 빨아올리는 압력이 생겨 땅 깊은 속 암반 층의 염류가 따라올라와 땅 표면에 염류를 뿌려놉니다. 염류는 일종의 소금이에요. 마르는 물 따라 올라오는 걸 모세관현상이라 하구요. 염류는 암반, 바위 속 광물질의 미네랄 같은 것으로 무기물이라고도 하고 무기염류라고도 합니다. 바닷물이 짠 게 바로 이 염류 때문이에요.
그래서 거꾸로 땅에 소금을 뿌리면 흙이 딱딱해져요. 소금이 물을 흡수하기도 하고 소금 속 나트륨이 뭉글뭉글한 떼알의 흙을 홑알로 흩어버려 결국 틈새를 없애버리거든요.
흙을 말리는 현대농업
기후위기에 대비해 물을 흙 속에 잘 저장하는 농법을 실천했으면 합니다. 지금의 농사는 물 낭비도 심할뿐더러 흙 속의 수분마저 말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임원경제지를 쓴 서유구 선생은 밭도랑을 잘 정비해 밭마다 수분이 잘 유지되도록 하는 일이 치수의 근본이라 했어요. 밭의 흙과 물이 잘 섞이면 구름과 안개가 일어나 비를 내리게 하니 가뭄을 예방할 수 있다 했지요. 그래서 강물이 대동맥이라면 밭도랑은 모세혈관인 셈이죠.
근데 지금의 현대농업은 어떻게 흙 속 물을 말리는 걸까요? 그것은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과도한 경운이 첫째고 화학비료의 사용이 둘째고 단작이 세번째입니다. 마치 밀가루 흙처럼 만드는 기계경운이 흙을 말립니다. 과도한 경운이 많은 공기를 투입시켜 흙속 유기물을 날리고 물마저 말려버리는 거에요. 땅을 말리는 화학비료의 핵심은 요소비료인데 이게 소금처럼 물을 말리고 흙을 딱딱하게 만드는 부작용이 있습니다. 단작은 밭도랑을 바둑판처럼 만들어 배수 기능만 강화하기 때문에 밭에 수분을 저장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지요.
무경운과 멀칭
그래서 대안으로 무경운과 퇴비의 사용, 윤작 혼작의 실천을 제안한 것입니다. 그 중 사실 무경운이란 말은 좀 과도한 면이 있어요. 예컨대 풀을 메고 씨를 심기 위한 호미질도 일종의 경운이거든요. 그래서 저는 과도한 기계경운을 반대하고 전통식 경운을 복원하자고 합니다. 쟁기질과 괭이질, 호미질은 흙을 밀가루로 만들지 못하거든요. 그걸 감안해 기계도 적절히 사용하면 흙을 파괴하지 않을 수 있어요. 사실 옛날처럼 소 쟁기질로 돌아가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제게 농사 스승님이신 우리 동네 어르신은 일반 관행농업을 하셨는데 그렇지만 매우 지혜로운 분이셨어요. 기계로 땅을 갈 때는 저속으로 하면서 깊지않게 거칠게 갈아야 한다고 하셨죠. 밀가루처럼 곱게 갈면 땅이 다 망가진다 했어요.
무경운 농법은 생태농업 쪽에서만 주목 받는 게 아니라는 얘기가 있습니다. 비행기와 대형트렉터로 농사짓는 데에서 시도되고 있다는 건데요, 왜일까요? 땅이 너무 넓어 집채 만한 대형 트렉터로도 땅을 제대로 갈기 힘들다는 거죠. 퇴비 주기도 힘들어 화학비료나 주는데 지력 고갈 문제가 점점 커져 지력을 소모시키는 기계 경운이 이래저래 부담되기 때문이랍니다.
한번은 농업 강국 중 하나인 포루투갈 농촌엘 갔다가 트렉터로 땅 가는 장면을 봤는데 작물 심을 자리만 지그재그로 갈더라구요. 땅의 반만 가는 것 같았지요.
그리고 엄청 넓은 땅에 퇴비는 줄 수 없고 비행기로 뿌려주는 화학비료는 편하지만 지력 고갈은 피할 수 없어, 지력 보충 방안으로 지렁이 알을 비행기로 뿌려주는 방안을 연구하는 경우도 있다대요.
무경운 농법에서 중요한 것은 피복(멀칭mulching)입니다. 흙을 보호해 말리지도 말고 유실, 침식도 막자는 겁니다. 그럼 흙을 말리고 흙의 유실, 침식은 왜 일어날까요? 폭염과 폭우, 추위와 가뭄이 대표적인 이유입니다. 그걸 막기 위해 피복이 필요한건데요, 피복 중 비닐 멀칭도 폭우, 유실, 침식 피해는 막을 수 있지만 부작용으로 지열 상승과 흙속 통풍을 막는 부작용이 있어요. 쓰레기 발생도 큰 문제지요. 그래도 큰 면적에서 상업농사를 위해 단작을 할 경우는 비닐멀칭이 부득이 할 수 있습니다. 무대포로 생태농업 한다고 비닐멀칭을 거부하다간 낭패를 당할 수 있어요. 상업적인 단작에도 비닐멀칭을 대체할 방법에 대해선 꾸준히 모색해야 할 것입니다. 이는 개인이 해결하기는 힘들거구요. 사회적으로 함께 연대해 방법을 찾아야 겠습니다.
요즘엔 썩는 비닐이 나오기는 하지만 비용도 비싸기도 하거니와 그걸 생산하려면 또 에너지를 써야 하니 탄소중립 시대에 적절할 지는 좀 의문이 들어요.
제가 한동안 즐겨 쓰던 멀칭 재료에는 신문지가 있었습니다. 신문지를 세겹으로 해서 밀가루로 풀을 쑤어 두루마리로 이어붙이면 멀칭비닐 못지 않아요. 관리기에도 걸어봤는데 두둑을 만들면서 두둑을 피복하는 데 손색이 없지요. 풀 쑤어 두루마리 만드는 데도 의외로 시간이 안 걸립디다. 그렇게 피복한 후 비를 맞으면 더 바짝 말라 흙에 착 달라붙어 멀칭 효과가 대단합니다. 창호지 붙일 때 물 뿌리면 햇빛에 바짝 마르는 효과와 비슷해요. 장마 지나면 작물은 이제 다 자라 풀에 치이지 않을 때쯤 신문지는 거의 다 삭아 흙에 잘 섞여 들어가죠. 거둘 필요가 없어요. 누구는 인쇄잉크에 독이 있을텐데 걱정하지만 독이란 게 적으면 별 문제 없다지 않습니까.
아무튼 생태멀칭의 방법으로 저는 앞에서 풀멀칭 외 세 가지를 제시했었습니다. 흙으로 흙을 덮는 흙멀칭, 논에 물을 담아 흙을 보호하는 물멀칭, 작물을 심어 흙을 보호하는 작물 멀칭이 그것이죠.
흙을 사시사철 덮어둘 필요는 없습니다. 그렇게 하고 싶어도 풀멀칭의 경우 사시사철 흙을 덮어둘만큼 풀이 많이 나오기 힘들어요. 아무리 덮어주어도 한 여름 지나면 말라버리기 일쑤죠. 그러니까 흙이 마르고 침식, 유실될 때, 곧 한여름 폭우 폭염과 한겨울 춥고 건조할 때 위주로 해 주면 충분합니다. 풀이 모자랄 때이기도 한 봄과 가을엔 땅에 따뜻한 비와 바람과 햇빛이 잘 닿도록 덮어주지 않는 게 좋습니다. 흙 속엔 햇빛 좋아하는 광합성균 같은 미생물도 많고, 적당한 지온과 공기를 좋아하는 방선균 같은 미생물도 많거든요.
두번 째 퇴비의 사용에 대해선 다음 글에서 다룰 예정이고요, 윤작 혼작은 지난 글들에서 많이 다뤘으니 참고 바랍니다.
이번 글은 토양에 대한 이론적인 얘기를 하다보니 좀 지루했네요. 양해바랍니다.
글을 쓴 안철환 선생은 온순환협동조합, 전통농업연구소 대표이고 경기도 안산에서 ‘산림생태텃밭 먹거리숲 농장’을 운영한다. 남은 음식물과 똥오줌, 커피 찌꺼기를 받아 직접 거름 만들기를 실천하고 있으며, 우리 토종 종자와 전통 농업 살리기에 열중하고 있다.
25년 전, 처음으로 심은 배추 씨가 3일 만에 싹 트는 걸 보고 ‘씨 안에 누가 있었구나!’ 깨닫고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우리가 먹는 배추는 단순히 물질적인 먹을거리가 아니라 나와 별 차이 없는 생명이며, 그래서 먹는다는 것은 생명을 먹고, 생명과 소통하고, 생명과 하나 되는 일이라고 믿는다.
쓴 책으로 《시골똥 서울똥》(2009), 《24절기와 농부의 달력》(2011), 《호미 한자루 농법》(2016), 《토종농법의 시작》(2020)이 있고, 옮긴 책으로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2004)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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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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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대원사 계곡(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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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 대원사 계곡 부분도(1)
- 지리산 대원사 계곡 부분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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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6-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