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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검색결과

  • 문 앞을 지나면서도 들여다보지 않은 죄
    ■ 2026 지리산에서 보내는 편지 6 문 앞을 지나면서도 들여다보지 않은 죄 딸과 아들과 며느리 손주가 함께 하니 절간 같던 집이 떠들썩하다. 분주함은 분주함 대로 나는 현재에 집중하는 것이 익숙해져 있어서 이런저런 사소한 즐거움이 좋다. 두텁나루숲은 오랫동안 혼자 관리해 와서 내 손이 가지 않으면 어려움이 많아지고 그러다 보니 누가 오면 내가 제일 바쁘기는 하지만 즐거운 비명이다. 아픈 아내는 손주를 봐주며 놀고 아이들은 서로 오랜만에 만나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그런데 이 바쁜 와중에 반가운 문자가 왔다. 마음으로 존경하는 선배가 휴가 동안 구례를 거쳐 가는 일정인 듯했다. 바로 나가서 반갑게 맞이하고 술 한 잔이라도 나눠야 맞는데 나는 왠지 망설이다가 문자로 답만 하고 나가서 만나지 못했다. 그러고 나니 마음이 개운치 않았는데 그냥 바쁘게 하루가 지나갔다. 그리고 잠시 틈이 나서 페북을 읽는데 박00 선생(페북에서 만난 분)의 글이 나를 질타하고 있었다. 과문불입지죄過門不入之罪‘문 앞을 지나면서도 들여다보지 않은 죄’ 라는 글이었는데 꼭 나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대문을 스쳐 지나며 벗을 찾지 않는 마음의 게으름을 옛사람들은 하나의 죄로 이름을 붙인 것이다. 인간의 도리를 하지 않았다는 거다. 그것도 마음속으로 존경한다는 선배에게. 선배는 문을 두드렸는데 나는 문을 두드리지 못한 것이다. 살면서 사람과 사람이 서로 스치는 경우는 얼마나 많은가. 하지만 서로 손을 내밀어야 벗도 되고 연인도 되는 것 아니겠는가. 내가 적막하다면 그것은 나의 탓일 뿐 누구 때문도 아니고 어느 무엇 때문도 아닐 것이다. 우연히 큰 배움과 깨달음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게 해준 선배와 페친이 정말 스승처럼 고맙다.
    • 문화예술
    • 지리산 편지
    2026-05-12
  • 여우난골族
    여우난골族 백석 명절날 나는 엄매 아배 따라, 우리 집 개는 나를 따라, 진할머니 진할아버지가 있는 큰집으로 가면 얼굴에 별자국 솜솜 난 말수와 같이 눈도 껌벅거리는 하루에 베 한 필을 짠다는 벌 하나 건넛집엔 복숭아나무가 많은 신리(新里) 고무, 고무의 딸 이녀(李女), 작은 이녀, 열여섯에 사십이 넘은 홀아비의 후처가 된 포족족하니 성이 잘 나는 살빛이 매감탕 같은 입술과 젖꼭지는 더 까만 예수쟁이 마을 가까이 사는 토산(土山) 고무, 고무의 딸 승녀(承女), 아들 승동이, 육십 리라고 해서 파랗게 보이는 산을 넘어 있다는 해변에서 과부가 된 코끝이 빨간 언제나 흰옷이 정하던 말끝에 섧게 눈물을 짤 때가 많은 큰골 고무, 고무의 딸 홍녀(洪女), 아들 홍동이, 작은 홍동이, 배나무 접을 잘하는 주정을 하면 토방돌을 뽑는 오리치를 잘 놓는 먼 섬에 반디젓 담그러 가기를 좋아하는 삼촌, 삼촌 엄매, 사춘 누이, 사춘 동생들. 이 그득히들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는 안간에들 모여서 방안에서는 새옷의 내음새가 나고 또 인절미 송구떡 콩가루차떡의 내음새도 나고 끼때의 두부와 콩나물과 볶은 잔디와 고사리와 도야지 비계는 모두 선득선득하니 찬 것들이다 저녁술을 놓은 아이들은 외양간 섶 밭마당에 달린 배나무 동산에서 쥐잡이를 하고 숨굴막질을 하고 꼬리잡이를 하고 가마 타고 시집가는 놀음 말 타고 장가가는 놀음을 하고 이렇게 밤이 어둡도록 북적하니 논다. 밤이 깊어 가는 집 안엔 엄매는 엄매들끼리 아르간에서들 웃고 이야기하고,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웃간 한 방을 잡고 조아질하고, 쌈방이 굴리고, 바리깨돌림하고, 호박떼기하고, 제비손이구손이하고 이렇게 화디의 사기방등에 심지를 몇 번이나 돋구고, 홍게닭이 몇 번이나 울어서 졸음이 오면 아랫목싸움 자리 싸움을 하며 히드득거리다 잠이 든다. 그래서는 문창에 텅납새의 그림자가 치는 아침 시누이 동서들이 욱적하니 흥성거리는 부엌으로 샛문 틈으로 장지문 틈으로 무이징게국을 끓이는 맛있는 내음새가 올라오도록 잔다. ---------------------------------------------------------------------------------------------------------------------------------- 족(族)은 가족 친지들을 말하고 ‘여우난골’은 여우가 나온다는 곳이니 얼마나 궁벽한 곳인지 알만하다. 이 시는 명절날 여우난골 부근에 사는 일가친척들이 큰집에 모여 하루를 보내는 모습을 어린 아이의 눈을 통해 담아내고 있다. 아버지의 고향처럼 훈훈한 정취와 일가친척의 넉넉한 인정, 풍요로운 가족 공동체의 모습을 담고 있어서 나는 아버지 따라 지리산자락을 넘었던 일을 떠올리면 이 시가 생각난다. 아버지 고향집은 지금 생각하면 지리산 서북능선에 있는 만복대에서 산동으로 내려오는 지능선의 끝자락에 있는 골짝 마을이었던 것 같다. 1964년 당시엔 너무도 깊은 지리산 산골마을이었다. 하루 종일 걸려서 가야하는 험한 노정인데도 어린 아들을 지리산 고향집에 꼭 데리고 가고 싶었던 아비의 마음을 이제는 알 것도 같다. 그 뒤로 나는 대학생이 되어 지리산을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졸업 후 월급이라는 것을 받게 되면서 그렇게 갖고 싶었던 등산화와 버너, 코펠을 장만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후 2인용 텐트까지 구입해 야영하며 제대로 된 등산이라는 걸 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나는 지리산에 깊숙이 빠지기 시작했다. 지리산에 관련된 책도 찾아 읽었는데 대부분 ‘빨치산’에 관한 소설이나 실록 등이었다. 참으로 아픈 역사를 홀로 배우며 혼자서 지리산의 등산로를 섭렵했을 무렵 산행 파트너가 생겨 이후로는 주로 비등산로를 함께 다녔다. 그 친구나 나나 갓 문단에 등단한 시인이었고 무엇보다 지리산에 목말라 있던 우리는 매주 지리산에 올랐다. 당시만 해도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생기기 전후여서 비등산로에 대한 통제가 거의 없을 때였다. 그래서 우리는 오만분의 일 지도인 군사작전용 지도와 나침판을(GPS가 없을 때여서) 가지고 다니며 지리산 어느 곳이나 오를 수 있었다. 그렇게 산을 다니며 오늘에 이른 나에게 지리산은 고향이면서 아버지이고 스승이며 고락을 함께하는 벗이고 사랑스러운 연인이다.
    • 문화예술
    • 시를 찾아서
    2026-05-12
  • 가사가 너무 슬프네
    ■ 2026 지리산에서 보내는 편지 5 오늘은 병원에 가는 날 오늘은 병원에 가는 날, 아내가 아픈지 벌써 3년째다. 다행히 열흘에 한 번 통원 치료하며 병을 어느 정도 관리, 유지하고 있는 편이다. 날씨가 좀 풀리니 아내는 걷기운동도 하고 봄나물도 캐면서 봄기운을 받아낸다. 나도 밭에 퇴비를 넣고 뒤집어 고르며 텃밭일을 시작했다. 감자와 생강을 심고 상추, 케일, 청경채, 아옥, 쑥갓.. 등 모종들을 시장에서 사와 심었다. 고장 난 외등도 고치고 마사토를 1톤 트럭 분 들여와 패인 잔디밭에 고루 뿌렸다. 집안일은 하다 보면 끝이 없다더니 과연 그랬다. 아내는 아내대로 나는 나대로 많이 달라진 일상 현실에 잘 맞춰 살고는 있으나 언뜻언뜻 어떤 결핍감에 시달리곤 한다. 누구나 그렇듯 갇힌 듯 사는 시간과 공간 아니냐고 달래보지만 크게 위안이 되지는 않는다. 오늘, 의사는 마냥 수혈에만 의지할 수는 없게 되니 골수 이식에 대비해서 대상자를 찾는 등 준비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준다. 그래, 지금까지만 해도 고마운 일이다 싶다. 20대 청춘에 만나 함께 살아온 날이 얼만데 이제야 부부의 깊은 정이라는 게 무언지 느끼게 해주는 날들이다. 같이 외출할 읍내의 오일장을 기다리는 하찮은 일상마저 사소한 기쁨으로 오는 하루하루가 소중한 날이니 그렇다. 전에는 아내를 시에 올리는 일을 꺼렸었는데 요즘은 아내를 대상으로 쓴 시가 많아졌다. 예전 같은 마음에 걸림이 없어진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이다. 내 삶의 중심으로 깊게 들어와 버렸기 때문이다. 아내와 관련된 시 2편을 첨부한다. ======================================= 가사가 너무 슬프네 아내를 태우고 화순 암센터 다녀오는 길 가로수 화려한 나무들은 바람에 꽃잎을 날리고 옆자리에서 아내의 노랫소리가 흘러나왔다. 끊어질 듯 가녀린 노래가 가까스로 이어지는데 .. 알뜰한 그 맹서에 봄날은 간다 겨우 한 소절 중얼거리더니 가사가 너무 슬프네, 하며 몸을 차창 쪽으로 뒤척이더니 말이 없다. 아마 아내는 눈시울이 조금 붉어졌을 것이다. 모처럼 밖으로 드러낸 아내의 마음에 나는 피할 수 없는 과녁이 되어 깊고 선명하게 박히는 화살 하나를 받아냈다. 누군가의 안으로부터 농축된 오랜 슬픔이 새어나 올 때 사람이 지극히 사랑스러워진다는 것을 알았다. 목까지 차오른 심정心情으로 차를 세우고 안아주고 싶었는데 차창을 스치는 가로수처럼 일상은 늘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간다. 사는 일의 무상無常함이야 일러 무엇하랴 어느새 두텁나루숲이 가까웠나 차창에 지리산 자락들이 가득 차 있고 저무는 빛들이 능선에 걸려 있다. --------------------------------- 아슬아슬한 세월 그렇게 사랑을 얻고 또 여읜다. 화려한 세상에 눈멀어 한세상 꿈속을 살며 사랑도 하며 꿈의 실상實相을 짐작해 보건만 서투른 사랑은 늘 구름처럼, 구름의 그림자처럼 시시각각 변하며 흩어지고 그렇게 형해形骸도 없이 사라지는 사랑이다. 사람들은 그래도 그 사랑에 대한 기억 하나로 아슬아슬한 세월을 건너고 그렇게 사랑을 얻고 또 여읜다.
    • 문화예술
    • 지리산 편지
    2026-04-22
  • 미안한 일
    미안한 일 이상국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시인으로 살며 언제부턴가 세상은 자꾸 넓어지고 나는 작아져서 술을 마셔도 취하지 않던 시절이 있었지 어느 해 겨울 밤 아들의 주머니 속 손을 뜨겁게 잡고 마을 길을 걸으며 아버지는 가진 게 시밖에 없으니 너는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했지 지금 생각하면 아들에게도 미안하고 시에게도 미안한 일이었다 ======================================================== 시인으로 사는 일이 그렇다. 스스로 간절히 원해서 하는 일이지만 일용할 양식을 제대로 물어오지 못해 가족에게 미안하다. 그리고 가난은 나의 문제지 시의 문제가 아니어서 시에게도 미안하다. 시인이라는 존재로 사는 일만이겠는가. 세상에 태어나 무엇으로 산들 그게 가난의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무엇으로 산다는 것, 무엇이 된다는 것을 늘 돈의 문제로 경제의 문제로만 규정짓는다. 그러나 그것은 ‘어떻게 사느냐’라는 삶의 문제일 뿐이다. 돈의 문제는 알다시피 삶의 문제 중 한 부분일 뿐이다. 삶의 근원을 생각하면 그렇다는 것이다. 내가 선택한 삶은 내 인생을 창조하고 발명하는 일이지만 돈에 끌려다니는 삶은 나를 잃는 삶일 뿐이다.
    • 문화예술
    • 시를 찾아서
    2026-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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