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5-16(토)

통합검색

검색형태 :
기간 :
직접입력 :
~

문화예술 검색결과

  • 여우난골族
    여우난골族 백석 명절날 나는 엄매 아배 따라, 우리 집 개는 나를 따라, 진할머니 진할아버지가 있는 큰집으로 가면 얼굴에 별자국 솜솜 난 말수와 같이 눈도 껌벅거리는 하루에 베 한 필을 짠다는 벌 하나 건넛집엔 복숭아나무가 많은 신리(新里) 고무, 고무의 딸 이녀(李女), 작은 이녀, 열여섯에 사십이 넘은 홀아비의 후처가 된 포족족하니 성이 잘 나는 살빛이 매감탕 같은 입술과 젖꼭지는 더 까만 예수쟁이 마을 가까이 사는 토산(土山) 고무, 고무의 딸 승녀(承女), 아들 승동이, 육십 리라고 해서 파랗게 보이는 산을 넘어 있다는 해변에서 과부가 된 코끝이 빨간 언제나 흰옷이 정하던 말끝에 섧게 눈물을 짤 때가 많은 큰골 고무, 고무의 딸 홍녀(洪女), 아들 홍동이, 작은 홍동이, 배나무 접을 잘하는 주정을 하면 토방돌을 뽑는 오리치를 잘 놓는 먼 섬에 반디젓 담그러 가기를 좋아하는 삼촌, 삼촌 엄매, 사춘 누이, 사춘 동생들. 이 그득히들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는 안간에들 모여서 방안에서는 새옷의 내음새가 나고 또 인절미 송구떡 콩가루차떡의 내음새도 나고 끼때의 두부와 콩나물과 볶은 잔디와 고사리와 도야지 비계는 모두 선득선득하니 찬 것들이다 저녁술을 놓은 아이들은 외양간 섶 밭마당에 달린 배나무 동산에서 쥐잡이를 하고 숨굴막질을 하고 꼬리잡이를 하고 가마 타고 시집가는 놀음 말 타고 장가가는 놀음을 하고 이렇게 밤이 어둡도록 북적하니 논다. 밤이 깊어 가는 집 안엔 엄매는 엄매들끼리 아르간에서들 웃고 이야기하고,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웃간 한 방을 잡고 조아질하고, 쌈방이 굴리고, 바리깨돌림하고, 호박떼기하고, 제비손이구손이하고 이렇게 화디의 사기방등에 심지를 몇 번이나 돋구고, 홍게닭이 몇 번이나 울어서 졸음이 오면 아랫목싸움 자리 싸움을 하며 히드득거리다 잠이 든다. 그래서는 문창에 텅납새의 그림자가 치는 아침 시누이 동서들이 욱적하니 흥성거리는 부엌으로 샛문 틈으로 장지문 틈으로 무이징게국을 끓이는 맛있는 내음새가 올라오도록 잔다. ---------------------------------------------------------------------------------------------------------------------------------- 족(族)은 가족 친지들을 말하고 ‘여우난골’은 여우가 나온다는 곳이니 얼마나 궁벽한 곳인지 알만하다. 이 시는 명절날 여우난골 부근에 사는 일가친척들이 큰집에 모여 하루를 보내는 모습을 어린 아이의 눈을 통해 담아내고 있다. 아버지의 고향처럼 훈훈한 정취와 일가친척의 넉넉한 인정, 풍요로운 가족 공동체의 모습을 담고 있어서 나는 아버지 따라 지리산자락을 넘었던 일을 떠올리면 이 시가 생각난다. 아버지 고향집은 지금 생각하면 지리산 서북능선에 있는 만복대에서 산동으로 내려오는 지능선의 끝자락에 있는 골짝 마을이었던 것 같다. 1964년 당시엔 너무도 깊은 지리산 산골마을이었다. 하루 종일 걸려서 가야하는 험한 노정인데도 어린 아들을 지리산 고향집에 꼭 데리고 가고 싶었던 아비의 마음을 이제는 알 것도 같다. 그 뒤로 나는 대학생이 되어 지리산을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졸업 후 월급이라는 것을 받게 되면서 그렇게 갖고 싶었던 등산화와 버너, 코펠을 장만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후 2인용 텐트까지 구입해 야영하며 제대로 된 등산이라는 걸 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나는 지리산에 깊숙이 빠지기 시작했다. 지리산에 관련된 책도 찾아 읽었는데 대부분 ‘빨치산’에 관한 소설이나 실록 등이었다. 참으로 아픈 역사를 홀로 배우며 혼자서 지리산의 등산로를 섭렵했을 무렵 산행 파트너가 생겨 이후로는 주로 비등산로를 함께 다녔다. 그 친구나 나나 갓 문단에 등단한 시인이었고 무엇보다 지리산에 목말라 있던 우리는 매주 지리산에 올랐다. 당시만 해도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생기기 전후여서 비등산로에 대한 통제가 거의 없을 때였다. 그래서 우리는 오만분의 일 지도인 군사작전용 지도와 나침판을(GPS가 없을 때여서) 가지고 다니며 지리산 어느 곳이나 오를 수 있었다. 그렇게 산을 다니며 오늘에 이른 나에게 지리산은 고향이면서 아버지이고 스승이며 고락을 함께하는 벗이고 사랑스러운 연인이다.
    • 문화예술
    • 시를 찾아서
    2026-05-12
비밀번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