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4-22(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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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검색결과

  • 가사가 너무 슬프네
    ■ 2026 지리산에서 보내는 편지 5 오늘은 병원에 가는 날 오늘은 병원에 가는 날, 아내가 아픈지 벌써 3년째다. 다행히 열흘에 한 번 통원 치료하며 병을 어느 정도 관리, 유지하고 있는 편이다. 날씨가 좀 풀리니 아내는 걷기운동도 하고 봄나물도 캐면서 봄기운을 받아낸다. 나도 밭에 퇴비를 넣고 뒤집어 고르며 텃밭일을 시작했다. 감자와 생강을 심고 상추, 케일, 청경채, 아옥, 쑥갓.. 등 모종들을 시장에서 사와 심었다. 고장 난 외등도 고치고 마사토를 1톤 트럭 분 들여와 패인 잔디밭에 고루 뿌렸다. 집안일은 하다 보면 끝이 없다더니 과연 그랬다. 아내는 아내대로 나는 나대로 많이 달라진 일상 현실에 잘 맞춰 살고는 있으나 언뜻언뜻 어떤 결핍감에 시달리곤 한다. 누구나 그렇듯 갇힌 듯 사는 시간과 공간 아니냐고 달래보지만 크게 위안이 되지는 않는다. 오늘, 의사는 마냥 수혈에만 의지할 수는 없게 되니 골수 이식에 대비해서 대상자를 찾는 등 준비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준다. 그래, 지금까지만 해도 고마운 일이다 싶다. 20대 청춘에 만나 함께 살아온 날이 얼만데 이제야 부부의 깊은 정이라는 게 무언지 느끼게 해주는 날들이다. 같이 외출할 읍내의 오일장을 기다리는 하찮은 일상마저 사소한 기쁨으로 오는 하루하루가 소중한 날이니 그렇다. 전에는 아내를 시에 올리는 일을 꺼렸었는데 요즘은 아내를 대상으로 쓴 시가 많아졌다. 예전 같은 마음에 걸림이 없어진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이다. 내 삶의 중심으로 깊게 들어와 버렸기 때문이다. 아내와 관련된 시 2편을 첨부한다. ======================================= 가사가 너무 슬프네 아내를 태우고 화순 암센터 다녀오는 길 가로수 화려한 나무들은 바람에 꽃잎을 날리고 옆자리에서 아내의 노랫소리가 흘러나왔다. 끊어질 듯 가녀린 노래가 가까스로 이어지는데 .. 알뜰한 그 맹서에 봄날은 간다 겨우 한 소절 중얼거리더니 가사가 너무 슬프네, 하며 몸을 차창 쪽으로 뒤척이더니 말이 없다. 아마 아내는 눈시울이 조금 붉어졌을 것이다. 모처럼 밖으로 드러낸 아내의 마음에 나는 피할 수 없는 과녁이 되어 깊고 선명하게 박히는 화살 하나를 받아냈다. 누군가의 안으로부터 농축된 오랜 슬픔이 새어나 올 때 사람이 지극히 사랑스러워진다는 것을 알았다. 목까지 차오른 심정心情으로 차를 세우고 안아주고 싶었는데 차창을 스치는 가로수처럼 일상은 늘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간다. 사는 일의 무상無常함이야 일러 무엇하랴 어느새 두텁나루숲이 가까웠나 차창에 지리산 자락들이 가득 차 있고 저무는 빛들이 능선에 걸려 있다. --------------------------------- 아슬아슬한 세월 그렇게 사랑을 얻고 또 여읜다. 화려한 세상에 눈멀어 한세상 꿈속을 살며 사랑도 하며 꿈의 실상實相을 짐작해 보건만 서투른 사랑은 늘 구름처럼, 구름의 그림자처럼 시시각각 변하며 흩어지고 그렇게 형해形骸도 없이 사라지는 사랑이다. 사람들은 그래도 그 사랑에 대한 기억 하나로 아슬아슬한 세월을 건너고 그렇게 사랑을 얻고 또 여읜다.
    • 문화예술
    • 지리산 편지
    2026-04-22
  • 미안한 일
    미안한 일 이상국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시인으로 살며 언제부턴가 세상은 자꾸 넓어지고 나는 작아져서 술을 마셔도 취하지 않던 시절이 있었지 어느 해 겨울 밤 아들의 주머니 속 손을 뜨겁게 잡고 마을 길을 걸으며 아버지는 가진 게 시밖에 없으니 너는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했지 지금 생각하면 아들에게도 미안하고 시에게도 미안한 일이었다 ======================================================== 시인으로 사는 일이 그렇다. 스스로 간절히 원해서 하는 일이지만 일용할 양식을 제대로 물어오지 못해 가족에게 미안하다. 그리고 가난은 나의 문제지 시의 문제가 아니어서 시에게도 미안하다. 시인이라는 존재로 사는 일만이겠는가. 세상에 태어나 무엇으로 산들 그게 가난의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무엇으로 산다는 것, 무엇이 된다는 것을 늘 돈의 문제로 경제의 문제로만 규정짓는다. 그러나 그것은 ‘어떻게 사느냐’라는 삶의 문제일 뿐이다. 돈의 문제는 알다시피 삶의 문제 중 한 부분일 뿐이다. 삶의 근원을 생각하면 그렇다는 것이다. 내가 선택한 삶은 내 인생을 창조하고 발명하는 일이지만 돈에 끌려다니는 삶은 나를 잃는 삶일 뿐이다.
    • 문화예술
    • 시를 찾아서
    2026-04-22
  • [벗자편지]함께읽기9 김정희: 바라는 삶을 살고 싶은 해바라기 벗들에게
    지리산인>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벗자편지>>를 펴낸 니은기역 출판사입니다. 자급을 어렵게 하는 허울을 벗어던지고 나와 둘레를 돌보며 고귀한 하루를 살려는 농부들의 편지, <<벗자편지>>를 여기 <지리산인>에 한 달에 한 번, 한 꼭지씩 들려드려, 어느덧 마지막 편에 왔습니다. 마지막까지 함께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나의 시간을, 나의 생산수단을, 나의 재주를 좀 더 아름답게 쓰고자 하는 이들에게 이 책이 용기를 주면 좋겠습니다. 바라는 삶을 살고 싶은 해바라기 벗들에게, “담대한 결론에 도달하는 일은 이미 우리 안에서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 김정희 식물을 키우면서 세상에 대해서 새삼 다시 생각해 본다. 채소와 과일은 맛이 다 다르고 특성도 다르다. 사람도 그럴 것이다. 사람마다 자기가 타고난 특성이 다 다르고, 잘할 수 있는 재능이 다 다를 텐데. 그러나 세상이 정한 잣대는 하나뿐. 능력으로만 줄을 세웠다. 사람에게 등급을 매기고 어릴 적부터 성적으로 평가하고, 어른이 되어서도 치열한 경쟁 속에 내몰려 하루하루 버텨 갔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사람들 대부분의 공통적인 삶이자 고민이다. 조금은 여유 있게, 사람다운 삶을 살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지만 좀처럼 벗어나기란 어려웠다. 모두가 경쟁 사회에 내몰려 남보다, 아니 내 옆에 가장 가까운 친구보다 한 발짝이라도 뒤떨어지면 패배자로 취급받는 게 오늘날 현대인의 삶이 아닌가. 아파트 평수에서부터 성적 순위, 직급 순위, 모든 게 경쟁으로 내몬다. 어떻게 하면 이런 사회 분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사람은 저마다 타고난 능력과 재능이 있고, 자신이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분야가 제각각인데. 이걸 인정해 주는 사회가 아니었다. 누가 인정해 주지 않아도 아랑곳하지 않고 스스로가 제 능력을 기를 마음의 여유도 없다. ‘언젠가는 이걸 하고 싶어. 언젠가는 내가 예전에 좋아했던 일, 내가 잘했던 것을 하고 싶어. 그런데 지금은 아냐. 지금은 여유가 없어. 나중에, 나중에…….’ 나도 하고 싶은 게 있었다. 그러면서 현실이라는, 나 스스로 만든 울타리에 갇혀 정작 내가 가고 싶은 길을 막았다. 물론 어릴 적부터 작가가 되고 싶은 게 꿈이어서 그 길로 쭉 걸어왔지만, 꿈이 일상이 되니까 또 다른 삶을 살고 싶은 욕망이 꿈틀거렸다. 사회가 들이미는 잣대에서 벗어나 좀 더 여유 있는 삶, 좀 더 다양한 세상에 도전해 보고 싶었다. 그렇게 50대 중반에 정해진 경로를 벗어났다. ‘실험 삼아 딱 1년만 어때?’ 도시에 살면서 언젠가는 시골로 내려가서 살고 싶다는 희망을 막연히 꿈꿨다. 꿈과 희망이지만 당장 눈앞에 놓인 현실은 만만찮았다. 나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도 늘 비슷한 넋두리를 했다. “시골에 내려가서 살고 싶지만, 당장 뭐 해서 먹고살아.” 문제는 먹고사는 문제였다. 누구나 평생 고민하는 문제. 그 문제에 매달려 꿈도 희망도 스스로 접어 가면서 현실에 매달려 하루하루 버티며 살아가는 게 대부분 사람의 삶이 아닌가. 나 역시 막연히 꿈만 꾸었다. 시골로 내려간다고 내가 여태껏 해 온 책 쓰는 일을 접어야 하는 게 아닌데도, 오랫동안 도시 생활에 익숙해서 몸이 멀리 떠나는 게 왠지 망설여졌다. 용기가 없었다. 그렇지만 도시라는 욕망과 경쟁과 치열함으로 가득한 공간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언젠가는 시골에 내려가서 텃밭을 일구며 자연과 더불어 살고 말겠다며, 아주 낭만적인 세상을 꿈꾸면서 가끔 인터넷 검색을 했다. 산과 들판과 바다가 어우러진 터전. 밤이면 하늘에 별이 반짝반짝 빛나고 푸른 들판이 펼쳐진 곳. 그저 온라인 검색으로 마음을 달랬다. 그러다 때마침 서울과 그리 멀지 않은 화성에 내 상상과 비슷한 터전, 그리고 전원주택이 셋집으로 나왔다. 화성은 반으로 갈라서 반은 동탄이라는 아파트 숲이 있고, 나머지 반인 서해 바닷가 쪽으로는 강원도권이라고 일컬을 만큼 시골 분위기가 나는 지역이라고 했다. 농촌 풍경과 바닷가가 어우러진 마을이라니, 얼른 구경이라도 해 보고 싶은 마음이 부풀었다. 옆지기에게 말하려니 좀 조심스러웠다. 그도 언젠가는 시골에 들어가서 살고 싶다며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었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미루고 미루어 왔다. 돈을 더 벌어서 가자는 뜻이었다. 대체 그 ‘때’가 언제인지, 자꾸 미루다 보면 결국은 포기하고 말 것 같았다. 신경전이 벌어졌다. 나라고 당장 모든 걸 접고 가자는 건 아닌데. 주위 사람들 조언에 따라, 어디든 정착하기 전에 일단 셋집을 구해서 살아 보고 그다음에 정착을 하든지 말든지 결정하자는 거였다. 그래야 나중에 후회가 덜하다고 하니. 당연히 처음부터 도시나 아파트 생활을 다 접고 산골짜기나 궁벽한 촌으로 가자고 하면 덜컥 겁나는 게 현실이다. 갑자기 환경이 완전히 바뀌고, 그것도 살 곳이 어떤 곳인지도 잘 모르는데 당장 내려가자 하면 거부감이 드는 게 당연하다. 왜 시골로 내려가 살고 싶다면서 안 가느냐고 따지거나 대거리를 하면 서로 싸움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게 그냥 부담 없이 가볍게 나들이 가는 마음으로 가 보자고 나름 꾀를 낸 것이다. 그럼 마음에 부담이 덜할 것 같아서. 내 제안에 옆지기는 마지못해 길을 나섰다. 찾아간 집은 인터넷 검색으로 찾아 적어 두었던 모양보다 훨씬 큰 전원주택이었다. 집을 직접 지은 옆지기가 세상을 먼저 떠난 후에 비워 둔 집이라고 했다. 나무도 많고, 전면이 유리로 된 거실과 이층 창이 갑갑한 마음을 탁 트이게 했다. 널찍하고 비교적 깨끗한 전원주택을 보면서 마음이 흡족했다.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마음에 들었지만 옆지기 반응이 어떨지 몰라서 내 의견을 먼저 꺼내지 않았다. 내 마음을 눈치챘는지 그도 극구 반대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망설였다. 여전히 우리에겐 시골에 들어와 살 용기가 부족했다. “실험 삼아 딱 1년만 살아 보자.” 시골 생활에 적응할 수 있을지 없을지 일단 한번 살아 보자고 고민 끝에 뜻을 모았다. 그러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마음을 정한 김에 계약하고 바로 이사를 준비했다. 마음만 품고 도전하지 않으면 늘 제자리에서 끙끙 앓기만 할 테니까. 때는 11월 말이어서 김장이며 이것저것 겨울 준비도 해야 하고, 너무 추워지기 전에 이사하는 게 마음이나 생활에 안정이 될 것 같아 망설임 없이 저질렀다. 그렇게 설렘 반 두려움 반으로 시골살이를 시작했다. 50대 중반에 말이다. 시골 생활은 하루가 길었다 길어도 너무 길었다. 하루 24시간이 아니라 36시간, 어쩌면 멈춰 버린 시간처럼 느껴졌다. 그래도 밤과 낮은 어김없이 바뀌었다. 그런데도 시간이 길게 느껴지는 건 아마도 마음부터 먼저 느슨해진 탓일 거라고 여겼다. 화성시는 시골이 아니라고 하지만 내가 들어간 면 소재지 마을은 바다에서 차로 10여 분 거리이고, 누가 봐도 농촌 마을 풍경이었다. 하루에 노란색 마을버스가 몇 번 오갈 정도니 승용차가 없으면 마음대로 나다닐 수도 없는 그런 마을이었다. 도시와 아파트, 빡빡하게 돌아가는 일상생활, 늘 시간에 쫓기듯 계획을 하고 일정을 마쳐야 하고, 시간이 아니라 분까지 쪼개 홀로 계획했던 생활에서 한결 벗어난 기분이 들었다. 시간뿐 아니라 공간도 넉넉했다. 드넓은 하늘과 탁 트인 시야, 넓고 끝없는 들판, 하늘을 그리며 날아다니는 새들이 비록 겨울이지만 정겹기 그지없었다. 마치 꿈꾸던 세상에 성큼 들어온 것 같아 흐뭇한 마음마저 들어 일부러 겨울 들판과 뒷산을 오르내렸다. 하루가 얼마나 긴지, 왜 이런 세상을 그동안 몰랐을까. 내가 살아온 세상에서 훨씬 벗어나 어느 곳엔가 존재하고 있었을 텐데. 시간이란 게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진 것이라 여겼는데, 얼마나 주관적인지 깨달았다. 시간 개념이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고즈넉하고 한가한 분위기에 젖어 있다가도 때로는 심심했다. 빡빡하게 돌아가는 생활에서, 싫든 좋든 서로 부딪히며 살아야 하는 공동생활에서 벗어나니까 마치 두꺼운 껍데기를 벗어 버린 것 같아 가벼웠는데, 아직은 이런 생활을 어떻게 메워야 할지 몰라 심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이런 심심함마저 즐겨야 한다는 걸 어렴풋이 깨닫게 되었다. 일명 ‘자본주의 병’이라는 병에 걸려서 살았던 걸까. 한가하게 보내는 시간을 즐기면서도 왠지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남들은 다 열심히 바쁘게 사는데 나만 한가하게 보내니까 세상에 뒤떨어지지 않을지, 지인들과 멀어지지 않을지, 책을 내는 출판사와 너무 멀리 떨어져서 뒤처지지 않을지, 온갖 잡념이 밀려들었다. 한때는 도시에 살면서 성냥갑 같은 아파트에서 평생을 보내며 살기는 싫다고 생각했는데. 자연에 가까운 삶, 조금은 여유를 부리면서 밤하늘을 쳐다보며 별을 감상하는 삶을 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낮에는 밭을 갈고 밤에는 책을 읽는 ‘주경야독’의 삶을 살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는데, 막상 그렇게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심심하고 불안하기도 했다. 사람 마음이 이래서 변덕스럽다고 했던가. 마음에서 일어나는 이 불안을 처음에는 그대로 방치하다가 다른 일을 찾아냈다. 심심할 때는 심심한 대로 그대로 멍하니 산과 들을 하염없이 바라보거나 아니면 그동안 읽지 않았던 책을 집어 읽었다. 원고 쓰는 데 매여서 책 읽기를 조금은 미루어 두곤 했는데, 심심한 시간을 메우려고 책을 읽기 시작하자 예전으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원래 책 읽는 걸 좋아했다. 내가 사는 세상을 벗어나 또 다른 세상에 들어가 볼 수 있고, 내가 알지 못했던 세계도 책을 통해서 느낄 수 있으니까. 그런데 원고를 쓰기 시작하면서 해마다 책을 내야 한다는 생각에 원고 쓰기에도 하루하루가 바빴다. 나도 모르게 책 읽는 일에 소홀했다는 걸 책을 손에 잡으면서 깨달았다. 불안한 마음이 들 때는 ‘이건 자본주의 병이야. 이제 느리게 느긋하게 사는 삶을 살아야 해.’ 하면서 마음을 다독거렸다. 이론으로만 생각하던 걸 현실에서 살려니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여태껏 습관처럼 하루에 원고 몇 매라도 써야지 마음이 놓였는데,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없었다. 하루 이틀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해결이 되었다. 농사일이 점점 커져 일이 많아지고 머리가 아닌 몸을 쓰는 삶을 사니까 피곤해서라도 깊은 잠을 잘 수 있었다. 짧은 시간 안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따뜻한 팥죽 한 냄비 겨울이어서 그런지 밖에 나다니는 사람도 좀처럼 보이지 않고, 마을에 모여 사는 집이 여덟 집뿐이었다. 다닥다닥 붙어 살아도 별로 교류도 없고 데면데면한 도시와 달리, 시골은 오랜 세월 함께 살아온 사람들끼리 정이 끈끈했고 그만큼 외지인을 낯설고 부담스러워하는 듯했다. 그런 마음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어떤 사람들이 내 마을에 들어와 사는지, 어떤 사람들이 마을에 무슨 해를 끼치지나 않을지 걱정되는 건 당연했다. 그래서 선뜻 낯선 집에 문을 두드리기가 망설여졌다. 아마도 도시에서 살아오면서 타인과 적당히 거리를 두는 게 습관이 되어 이런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마을 사람들은 대부분 나이가 많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70대가 한 분, 대부분 80대였다. 몇십 미터 뚝뚝 떨어진 아랫집이나 윗집 둘레를 산책하다가 어쩌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만나면 어색하게 인사를 하는 정도였다. 왠지 무뚝뚝하고 마뜩잖은 듯 겨우 인사만 받아 주고는 집으로 쑥 들어가 버렸다. 그러다가 어느 날 아침, 일어나니까 문 앞에 낯선 양은냄비가 놓여 있었다. 이게 뭐지, 하고 뚜껑을 열어 보다가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새어 나왔다. 팥죽이었다. 오늘이 동짓날이었다. 순간, 가슴이 울컥했다. 아직 인사 정도만 하는 사이인데 누가 팥죽을 갖다 놓은 것이다. 그것도 말도 없이 조용히 갖다 놓고 갔다. 불현듯 팥죽에 얽힌 추억이 떠올랐다. 이미 오래전에 돌아가신 엄마는 동짓날이 되면 그 전날 밤에 팥죽을 쑤었다. 경상도 풍습이었다. 그때는 오랜 관습으로 팥죽을 쑤면 사람이 먹기 전에 대문 밖으로 나가 담벼락을 돌며 팥죽을 던졌다. ‘고수레 고수레’ 하고 팥죽을 던지면서 나쁜 기운과 악귀가 물러나서 새해에는 집안을 평안하게 해 달라고 빌었다. 엄마가 살아 계실 때는 동지가 되면 어김없이 팥죽을 쑤었지만, 엄마가 돌아가신 뒤에는 한 번도 팥죽을 쑤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우리 집으로 들어온 팥죽이 까마득히 잊힌 추억을 되살린 것이다. 내가 영천에서 초등학교 다닐 때였다. 한겨울이라도 눈이 많이 오지 않는 지역인데 갑자기 눈이 펑펑 쏟아졌다. 일부러 눈을 맞으며 얼마나 좋아했던지. 엄마가 팥죽을 끓이는 동안, 우리 골목 이웃 골목 아이들까지 죄다 나와서 강가에서 눈싸움을 벌였다. 그 장면이 마치 아련한 추억처럼 떠올라 마음마저 촉촉하게 젖어 들었다. 참 아련한 시절. 오래전에 돌아가신 엄마가 떠올라 가슴 한구석이 아릿해져 왔다. 냄비에 손을 갖다 대자 따듯한 기운이 전해져 왔다. 알지 못하는 사람의 따듯한 마음이 전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일단 맛있게 먹고 나서 낡은 양은냄비의 주인을 찾기로 했다. 그분이 누구인지 모르지만 맛있게 먹는 게 팥죽을 쑤면서 고생하신 데 조금이라도 보답하는 길이라고 여겼다. 옆지기를 깨워 낡은 양은냄비를 내밀면서 팥죽이 문 앞에 놓여 있었다고 하니까, 부스스한 몰골로 감탄을 쏟아 냈다. “이게 시골 인심이야. 아직 시골은 이런 인심이 남아 있었네.” 웃음을 지으면서 흐뭇해했다. 팥죽을 맛나게 나눠 먹었다. 양은냄비 주인은 멀리서 찾을 것도 없이 윗집 할머니였다. “아무래도 도시에서 온 사람들이라 팥죽을 좋아할지 어떨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오늘 동지니까 나눠 먹고 싶어서 살짝 갖다 놨어. 맛있게 먹었다고 하니까 고마워.” 할머니가 오히려 고맙다고 했다. 이 일을 계기로 80대 부부를 모시고 외식도 하고, 서로 날마다 들여다보는 관계로 발전했다. 서로 음식도 만들어 갖다주고, 세상 사는 얘기도 나누곤 했다. 할머니가 좋게 소개해 주신 덕택이었을까. 마을에서는 한결 나한테 호의적으로 대해 주었다. 길을 가다 마주치면 먼저 웃으면서 인사를 하고, 서로 덕담을 나눌 정도였다. 마을 사람들에게 한층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한번은 가뭄이 이어지는 어느 날 허리가 반쯤 고꾸라진 할머니가 휠체어에 20ℓ나 되는 물통을 얹어서 힘겹게 오시다가 길에서 쉬고 있었다. 내가 인사를 하자 활짝 웃는 얼굴로 반겨 주면서 한마디 덧붙였다. “얘기 많이 들었어. 마을에 좋은 사람이 들어와야 하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무슨 뜻인지 알지 못했다. 내가 할머니한테 왜 집에서 힘들게 물을 가지고 오냐고, 우리 집에 지하수가 펑펑 나오니 그걸 쓰면 되잖냐고 했다. 그랬더니 우리가 이사 오기 전까지 이 집에는 마을 사람들이 발을 들이지 않아서 아예 생각도 안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지하수를 호수로 빼서 꼬부랑 할머니네 밭에 내다 주었다. 고추와 들깨 밭이 시원한 물로 흠뻑 젖어서 금세 생기를 되찾았다. 할머니는 무척 고마워했다. 그러면서 아주 조심스럽게, 넓은 밭에 듣는 사람도 없는데 작은 목소리로 일러 주었다. “그 집에는 마을 사람들이 안 가! 얼마나 인색한지 밭에 물 한 번 쓰게 해 달라고 부탁하면 자기들 한 달 사용하는 전기세를 몽땅 물으라고 했어. 그게 몇만 원이야. 사람이 그렇게 살면 안 돼! 그래서 앞집에 지하수가 잘 나오는 걸 알면서도 부탁하지 않았어. 밖에서 들어온 사람들이 어떻게 말할지도 모르고. 그런데 먼저 물을 주겠다고 해서 얼마나 고마운지. 우리 밭에 열무 나면 뽑아 가서 열무김치 담가 먹어. 들깨도 한 가지에 한 개나 두 개씩 따서 먹어. 한 가지에서 너무 많이 따면 열매가 잘 안 열리거든.” 할머니도 내가 물을 내준 데 대해서 기꺼이 마음을 내주었다. 그제야 안 일이지만 마을 사람들이 내가 세 들어 사는 집에 발을 들이기 어려웠던 것이다. 나는 원래 그런 줄 알고 지냈는데 다 까닭이 있었다. 시골 생활은 내가 막연히 상상하던 낭만이나 꿈같은 생활만을 통해서가 아니라 이웃과 소통하면서 아름다워진다는 걸 갈수록 깨달았다. 윗집 할머니가 콩과 여러 가지 씨앗을 갖다주었다. 그러면서 씨앗을 심을 시기와 어떻게 심어야 하는지, 언제쯤에 비료를 넣어 줘야 하는지 꼼꼼하게 설명해 주었다. 원주민들의 넉넉함이 농사를 짓는 데뿐 아니라 생활에도 도움이 많이 되었다. 마음을 먼저 내어 준 그 보답으로 가끔 모시고 나들이를 하면 노부부는 무척 좋아하고, 먹고살려고 일만 하느라 놀러 한번 제대로 다니지 못했다고 넋두리도 하셨다. 그렇게 다녀오고 나면 할머니는 또 밭에서 수확한 팥이며 콩이며 지인이 주었다는 액즙까지 골고루 갖다주었다. 부침개라도 부치거나 빵이라도 사 오면 약소하나마 나눠 먹으면서 서로 안부를 묻고, 제대로 잘 자라지 않는 작물에 관해 물어 조언을 받기도 했다. 모르는 걸 물으면 귀찮아할 줄 알고 조심스러웠는데, 오히려 즐거워하면서 대견해했다. 자신이 여태껏 살아온 삶을 누군가에게 가르쳐 주는 것만으로도 즐거우셨나 보다. 세대를 넘어 마음을 나눌 마을 동료가 생겼다는 데서 나 역시 평화를 느꼈다. 마트에서 고르던 채소를 내 손으로 키우면서 만난 세계 텃밭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마트에서 사 먹던 작물을 내 손으로 키워 낼 수 있었다. 그러니까 장을 보고 치르는 돈이 훨씬 적어지고 생활비 부담도 줄었다. 내 노등으로 키워서 먹는다는 사실도 신기하고 흐뭇하지만, 무엇보다도 밭에서 시간을 보내며 작물이 자라는 모습을 보는 게 무척 보람을 느끼게 했다. 작은 씨앗에서 수많은 열매가 매달리고, 푸성귀가 무럭무럭 자라나는 걸 보면 작은 씨앗 하나가 온 우주를 품고 있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이 작은 씨앗에서 어떻게 식물이 무럭무럭 자라나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작물의 성장 세계는 내가 알지 못한 무한한 세계였다. 씨앗에서 싹이 트고, 작물이 자라면 내가 반찬으로 뜯어 먹고, 밭에 남은 작물은 저 혼자 자라서 꽃을 피웠다. 그 사이에도 온갖 벌레들이 작물에 들러붙기도 하고, 나비나 벌들이 꿀을 빠느라 부지런히 날아다녔다. 식물에게는 괴로움이면서 즐거움일까. 이 시간을 보낸 덕에 열매를 맺고, 또 작은 씨앗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내 먹거리를 길러 먹는 삶을 통해 자연 순환 원리가 얼마나 위대한지,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한 세계를 경험하게 되었고 그 덕에 창작 의욕이 새롭게 일어났다. 내 마음에 창작 씨앗이 들어오고, 그 씨앗은 내 마음속에서 무럭무럭 자라 꽃을 피웠다. 물론 포기하고 싶은 순간순간이 오기도 했지만 잘 참으며 열심히 작업했다. 그러고 나니까 결국은 열매를 맺었다. 식물이 자라는 과정과 작은 생각 씨앗이 책으로 나오는 과정이 비슷하다는 걸 새삼스럽게 깨닫게 되어서일까. 글 쓰는 일이 보람되고 견딜 만했다. 흙을 맨손으로 만지면서 나도 모르게 무아의 지경에 빠지게 되었다. 흙이 손에 묻으면서 지저분해지는 게 아니라 계속 만지다 보니까 오히려 내 마음을 정화해 주었다. 살아오면서 겪은 수많은 일들, 그 가운데서도 행복했던 기억보다 속상하고 슬픈 일이 느닷없이 불쑥불쑥 떠올랐다. 나를 슬프게 속상하게 했던 사람들, 왜 그때 바로바로 문제를 제기하고 부당함을 말하지 못했는지 뒤늦게 후회가 되었다. 후회가 내 마음에 상처로 자리 잡고 있었나 보다. 그럴 때 흙을 만지면 상처도 나쁜 기억도 속상했던 일도 시나브로 치유되어 갔다. 일부러 흙을 만지고 싶어 장갑을 끼지 않곤 했는데 엉뚱한 부작용도 생겼다. 면사무소에서 무인발급기로 서류를 떼려고 했는데 기계가 내 엄지손가락 지문을 인식하지 못했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손이 거칠어서 지문이 찍히지 않는다는 말을 공무원에게서 듣고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래 비용을 두 배나 치르고 서류를 떼곤 했다. 장갑을 껴야지 했지만 흙만 보면 맨손으로 만졌다. 내 오랜 도시의 때를 벗기고 싶은 마음이 더 컸나 보다. 맨손으로 흙을 만지면 마음이 깨끗해지는 듯했다. 나중에는 손가락이 닳아서 어쩔 수 없이 장갑을 끼기 시작했다. 쓰레기, 쓰레기, 쓰레기 마을 쓰레기 버리는 요일을 정해서 같이 버리자고 제안했다. 그러면 분리배출도 할 수 있고, 쓰레기도 불에 태우는 번거로움을 피할 수 있다고 구구절절 설명했다. 그래도 시큰둥하기에 날씨와 미세먼지 이야기를 꺼냈다. “해마다 장마 아니면 가뭄이어서 농사짓기 힘들잖아요. 날씨가 언제 어떻게 될지 몰라서 늘 걱정하면서요. 미세먼지가 너무 많아서 겨울에는 밖에 나가기도 힘들고요.” “아이그, 그것 좀 태우고 버린다고 날씨가 이럴까 봐.” 어른들은 날씨와 공기와 쓰레기 분리배출 사이 관계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괜히 어른들한테 잘난 척한 건 아닐까 염려가 되기도 했다. 주거지를 완전히 농사짓는 시골로 옮기고 나서는 기후 문제와 공기 오염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공부를 했다. 언젠가는 환경문제에 대해 글을 쓰겠다고 마음먹고는 차일피일 미루었는데, 막상 시골로 오니까 피부로 눈으로 바로 느낄 수 있었다. 그 심각성도 더 절실하게 깨닫게 되고. 도시에서는 하늘이 좀 흐린 것쯤으로, 비가 좀 많이 내린다는 것쯤으로, 뉴스에서나 책으로 환경문제의 심각성을 알았다. 그런데 농사를 지어 보고 자연 속으로 들어와 보니까 환경이 얼마나 절실하게 나빠져 가는지 보여 불안하기까지 했다. 마을 할머니들은 밭에 뿌릴 종자 씨는 적어도 3년 정도는 잘 보관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해마다 장마와 가뭄이 번갈아 바뀌면서 자칫 종자도 건지지 못하는 세상이 올지도 몰랐다. 살다 보니까 여러 가지 문제와 부딪혔다. 그 가운데 하나가 쓰레기 문제다. 음식물은 텃밭에 흙을 파고 묻어서 거름으로 만들 수 있지만 다른 쓰레기는 언제 처리해야 하는지 몰랐다. 사람들에게 물어도 쓰레기 수거 차가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면사무소에 전화를 거니까 청소과가 따로 있다면서 전화번호를 가르쳐 주었다. 두 번이나 전화를 바꿔 가면서 언제 쓰레기를 거둬 가느냐고 물었는데, 뜻밖의 얘기를 들었다. 내가 사는 마을에는 쓰레기 수거차가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무도 쓰레기를 따로 버리지 않아서 차가 들어오지 않는다고. 쓰레기를 분리해서 버리는 게 여태껏 당연한 거라고 여겼는데 여기서는 번거롭게 전화를 걸어야 하고, 요일과 대충 시간을 잡아야 버릴 수 있었다. 어찌나 불편하던지 마을 할머니들한테 쓰레기는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다. 빈 병은 모아 놓으면 고물상에서 가져가고, 음식물은 밭에서 썩혀 거름으로 이용하고, 다른 비닐이나 생활 쓰레기는 통에 넣고 한꺼번에 불 질러 태운다는 것이다. 시골에서 농사지으며 사는 사람들은 과학이 아니라 몸으로 깨달으면서 자연의 변화를 더 빨리 깨닫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날씨와 쓰레기 분리배출 문제는 따로라고 여기는 데는 변함이 없었다. 환경문제를 처음 접한 게 90년대 초반이었다. 최열 선생님이 ‘공해추방위원회’를 만들어 환경문제 시민 교실을 열었다. 지금 ‘환경연합’이 생기기 전에 생긴 시민단체였다. 아직 문학 수업을 하고 있을 때였는데, 그런 시민 교실 강의가 있으니 함께 공부하러 가 보자고 여럿이 의견을 모았지만 결국은 나와 후배 둘이서만 등록을 했다. 원자력, 핵폭발, 공해 문제를 다룬 강연은 내게 큰 충격을 주었지만, 아직 우리 사회에서는 환경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마치 남의 나라에서만 일어나는 문제로 여겼다. 물론 그즈음에 대구 낙동강 페놀 사건이 한바탕 언론을 달구었지만 한 지역에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으로만 보아 넘겼다. 환경문제 공부를 하러 다닌다니까 오히려 주위에서는 쓸데없는 공부를 다닌다면서 차라리 그 돈으로 술이나 먹자고 했다. 그때는 그런 분위기였다. 그래도 환경 공부를 했다고 실천에 옮기겠다면서 샴푸와 린스를 사용하지 않고 세숫비누로 머리를 감았다. 될 수 있으면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고 물건도 전기도 물도 아껴야 한다는 걸 실천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얼마 가지 못해 세숫비누로 감은 머리는 기름기가 많아서 찝찝해 다시 샴푸를 사용하고, 일회용품도 문명의 혜택이라며 편리한 대로 썼다. 물과 전기를 아껴야 한다는 건 어릴 적부터 몸에 익은 습관이었지만, 다른 것은 대충 넘겼다. 환경문제를 강연이나 책을 통해 머리로만 느꼈지, 피부에 와 닿게 내 문제로 여기지 못한 까닭이 아니었을까. 시골로 들어오니 내가 만든 쓰레기를 온전히 다 볼 수 있었다. 더군다나 서해와 가까운 곳이라 겨울철만 되면 미세먼지가 점점 더 하늘을 잿빛으로 뒤덮는 게 눈에 띄었다. 눈에 보이니 그제야 심각성을 좀 느끼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해도 한꺼번에 모든 걸 바꾸는 건 정말 어려웠다. 아무리 텃밭에서 먹거리를 생산한다지만 여전히 마트에서도 장을 봐야 하는데, 대파 한 단, 호박 하나를 사도 비닐봉지에 포장되어 있지 않나. 고기를 사도 생선을 사도 두부를 사도 비닐이나 스티로폼 상자에 담겨 있는데 마트에서 장을 보면 어찌 쓰레기를 안 만드나. 예전에는 포장되어 나온 식품을 당연하게 생각했는데 막상 신경을 쓰니까 포장지가 많아도 너무 많았다. 그래서 줄일 수 있는 만큼 줄이려고 애썼다. 비닐봉지도 처음에는 10분의 1로 줄여 보자고 했는데, 비닐 홍수 시대에 살다 보니 금세 첫 목표는 이루었다. 그다음은 20분의 1로 줄였지만, 그래도 몽땅 줄일 수는 없었다. 대신 비닐봉지는 재활용할 수 있게 양념이나 다른 이물질이 묻었으면 깨끗이 씻어서 분리해 버렸다. 그런데 포장재를 깨끗이 씻느라 흘러간 물 역시 또 다른 쓰레기가 된다고, 하수 처리에도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쓰인다고, 게다가 분리배출한 생활폐기물이 실제 재활용되는 비율이 60%도 채 안 된다32고 하니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혼란스러웠다. 분리배출을 잘하는 일보다 덜 사고 쓰레기를 덜 만드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하게 된다. 자연스레 배달 음식을 일체 사 먹지 않게 되었다. 물론 손쉽게 사 먹을 수도 없는 조건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치킨은 두 마리 시켜야 읍내에서 배달해 준다는 것이다. 굳이 그렇게까지 아득바득 먹어야 하는지 나 자신에게 의문이 들었다. 피자, 족발, 치킨 등등 먹고 싶으면 언제든지 전화 한 통으로 배달해서 손쉽게 먹던 습관에서 이 기회에 완전히 끊어 버리자는 생각이 들었다. 여태껏 맛있게 먹던 음식을 한꺼번에 끊자니 자꾸 눈앞에서 어른거렸다. 배달을 시켜 먹던 음식에서 가끔 먹고 싶은 욕구가 솟으면 직접 찾아가서 사 왔다. 먹기가 불편해지니까 사 먹는 음식을 많이 줄일 수 있었고, 내 손으로 직접 마련해 먹기 시작했다. 밖에서 사 먹는 음식보다는 솔직히 맛이 덜했다. 온갖 양념과 사람들 입맛에 착 달라붙게 연구해서 만든 음식을 어떻게 따라가겠나 생각하고, 건강과 환경을 챙긴 대신 중독성 있는 양념을 좀 포기하자고 마음먹었다. 배달 음식을 끊고 나자 이번에는 미용실에 꼭 가서 머리카락을 잘라야 하는지 또 의문이 들었다. 머리는 미용실에 가서 해야 한다는 공식이 깨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집에서 스스로 가위로 자르고 들쭉날쭉한 뒤쪽 머리카락은 옆지기에게 부탁해서 잘랐다. 내가 미용실에 드나들지 않자 옆지기도 내게 머리카락을 정리해 달라고 부탁했다. 인터넷에서 머리 자르는 기계를 사서 앞머리 쪽은 남편이 자르고, 뒤에 보이지 않는 쪽은 내가 정리해 주었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솜씨도 늘었다. 시골에서 이렇게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늘어나니 생활비를 줄일 수 있었다. 서로 머리카락을 잘라 주면서 장난도 치고, 얼마나 예쁜지 거울을 들여다보며 킥킥거렸다. 내 존재는 내가 결정한다 2년쯤 지나자 조금씩 시골 생활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다시는 도시로 나가서 아파트에서 살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도시 집을 정리하고, 세 얻은 집에서 나와 완전히 시골집으로 이사를 했다. 이때쯤에 농사를 더 늘리면서 식량을 자급자족 형태로 바꾸었다. 세상살이는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예전에는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게 지금은 꼭 맞춰 살아야 할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사람들을 만날 때는 될 수 있으면 화장을 해야 하고, 옷과 신발을 갖춰 입어야 하고, 남에게 흠 잡히지 않겠다면서 외출을 할 때 거울이라도 한 번 더 들여다보는 도시 생활. 그게 당연한 건 줄 알았다. 그러나 내 몸에 피부처럼 배인 습관을 하나둘씩 벗어 내면서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쓸데없이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내 모습 그대로 편하게 대할 수 있어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물론 도시에 살면서 누가 억지로 그렇게 꾸미고 남에게 잘 보여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사회 분위기와 스스로 만든 굴레에 벗어나지 못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내가 생긴 대로 나를 드러내기, 외모와 옷으로 평가하는 문화에서 스스로 벗어나기, 겉을 꾸미는 일보다 내 색깔을 찾는 일에 집중하기, 그리고 화학물질로 내 몸을 망가뜨리지 않기. 내 시골살이에서 찾은 지혜들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그동안 미루어 오던 환경문제에 관한 책을 쓰기 시작했다. 나만이 알고 나만이 실천할 게 아니라, 널리 알리면서 함께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하나씩 실천해 나가면 지구 평균기온이 오르는 걸 조금이라도 더 늦출 수 있지 않을까. 도시 삶을 끊으려고 맘먹기까지 많은 핑곗거리와 제약 조건이 퐁퐁 튀어나올 거라는 걸 알고 있다. 그럴 때 나에게 진지하게 물어보자. 내 커리어가 내 옆에서 나와 함께 늙어 가는 사람들보다 중요한가? 내 식욕이 나를 지탱하는 이 지구보다 중요한가? 내 외모가 내 건강보다 중요한가? 좀 더 편리한 삶이 내 생존보다 중요한가? 우리 생존을 위협하는 기후위기 상황에서 무엇이 더 중요한지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답하기를 두려워하는 것뿐. 담대한 결론에 도달하는 일은 이미 우리 안에서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 이젠 마음으로 품고 있던 생각에서 실천을 향해 발걸음을 떼면 된다. 그러면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먼저 내 마음과 몸의 자유로움을 얻을 수 있고, 다른 생명을 덜 해칠 수 있고, 또 지구 환경 위기를 해결해 나가는 데 기꺼이 동참할 수 있다. 지금 힘들고 어렵고 세상이 막막하더라도 내 존재의 권리와 행복을 위해서 기꺼이 희망을 품어야 한다. 누가 이렇게 말한 게 내게는 큰 힘이 되었다. ‘오늘의 나는 내일의 나보다도 더 젊어서 무슨 일인가에 원하는 게 있으면 충분히 도전해 볼 수 있다’고. 도전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지금 내 현실이 막막하고 벗어날 수 없는 감옥이라고 여겨지면, 그 감옥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는 것도 용기이다. 결국은 환경도 나이도 경제적 형편도 내 모든 도전을 지배할 수는 없다. 환경이 힘들고 어렵고 막막하면 그 환경을 바꾸어 사는 삶에 도전해야 한다. 가만히 그대로 환경이 바뀌기를 바라기만 하면, 그런 행운은 좀처럼 오지 않는다.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먼저 찬찬히 살펴보아야 한다. 내가 원하는 삶이 한꺼번에 이루어지기를 바라지만 말고, 그 방향을 향해 한 발자국 먼저 내딛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나는 내 인생의 주인공이고, 내 존재는 내가 결정한다는 걸 늘 명심해야 한다. 오늘날을 사는 모든 사람에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 김정희 ◌ 귀촌해 농사를 지으며 글을 쓰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도시라는 욕망과 경쟁에서 벗어나고파 시골을 택했는데, 그동안 머리와 마음으로만 살던 삶에서 몸으로 사는 노동을 병행하는 삶을 이루었습니다. 실천하지 않고 머리로만 사는 삶은 건강할 수 없다고 늘 생각해 왔거든요. 그동안 역사에 관심이 많아 <<국화>>, <<야시골 미륵이>>, <<노근리 그 해 여름>>, <<대추리 아이들>>, <<곡계굴의 전설>> 등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다룬 작품들을 꾸준히 써 왔습니다. 농사를 짓고 살면서 환경 문제에 절실함을 느껴 <<후쿠시마의 눈물>>, <<시화호의 기적>>, <<비닐봉지가 코끼리를 잡아먹었어요>>, <<별이네 옥수수밭 손님들>>, <<아마존의 수호자 라오니 추장>> 등 여러 책을 썼습니다. ** 여러 각주가 있으나 <지리산인> 지면엔 표기하지 않았습니다. 책에서 확인해 주세요. <<벗자편지>> _자급하는 삶을 어렵게 하는 허울을 벗어던지자 • 지은이 : 김혜련, 칩코, 똥폼, 문홍현경, 풀, 상이, 아랑, 김정희 • 펴낸 곳 : 니은기역 • 펴낸 날 : 2022년 11월 22일 • 판형 120*188 / 쪽수 256쪽 • ISBN 979-11-968328-4-1 (03330) 글이 마음에 드신 분은, 동네 도서관에 신청해서 여러 사람이 볼 수 있게 해 주세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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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마을
    2026-04-20
  • 생명의 젖줄, 530리 섬진강길 걷기(2일차)
    섬진강길걷기 여정기록
    • 문화예술
    • 섬진강 편지
    2026-04-15
  • 생명의 젖줄, 530리 섬진강길 걷기(1일차)
    섬진강길 걷기 1일차 ■ 걷기 개요 일시 : 2026년 3월 16일 (월) 총 거리 : 13km 소요 시간 : 약 3시간 ■ 걷기 인원 : 총 16명 ■ 출발지 도착까지 일정 (총 3시간) - 08:00 구례 냉천삼거리 출발 - 데미샘자연휴양림 주차장 도착 (1시간) * 데미샘 휴양림 ↔ 백운면사무소 차량 이동 (1시간) - 10 : 00 휴양림 → 데미샘 이동 (30분) * 데미샘에서 고천제 행사 (30분) ■ 걷기 세부 일정 11:00 데미샘 출발 - 데미샘 -> 백장로 -> 반송마을 (8km / 2시간) 13:20 반송마을 도착 - 반송마을 회관에서 점심 14:20 반송마을 출발 - 무등마을, 덕현교, 백운면사무소 (5km/1시간 20분) 15:40 백운면사무소 도착 - 15:40~16:20 차량 회수 (왕복) 출발 17:20 구례 도착 □ 출발지 주차장 주소 (데미샘자연휴양림 안내소) 전북특별자치도 진안군 백운면 데미샘1길 172 □ 도착지 주차장 주소 (백운면사무소) 전북특별자치도 진안군 백운면 임진로 1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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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섬진강 편지
    2026-04-10
  • 솔거와 화엄매
    「섬진강 편지」 -솔거와 화엄매 꽃샘바람에 화엄 홍매 꽃잎 진다 한 달여 동안 중생들에게 환한 화엄세상 빛 나눠주고 사르르 꽃잎 지는 날 원통전 처마 밑에 놓인 화엄매 그림 한 폭, 그림 속 화엄매는 아직 꽃잎 생생하여 박새 한 마리 그림 속 가지에 날아가 앉는다 아, 솔거 화공이 화엄사를 다녀가셨구나 그의 숨결이 느껴진다. 참 오랜만에 불러보는 그 이름, 솔거 *솔거 : 통일신라시대 화가로 황룡사 벽에 그린 〈노송도 老松圖〉에는 새들이 앉으려다가 부딪혀 떨어졌는데 세월이 흘러 단청을 했더니 새가 날아들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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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섬진강 편지
    2026-04-06
  • 얼레지 햇꽃
    「섬진강 편지」 -얼레지 햇꽃 숲에 들어 햇꽃을 본다 해마다 보는 꽃이지만 볼 때마다 새로운 맘으로 기꺼이 꽃 앞에 무릎을 꿇는다 당신에게 당신에게도 그랬어야 했다 -섬진강 / 김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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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섬진강 편지
    2026-04-01
  • 죽음과 좀더 친해져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 2026 지리산에서 보내는 편지 4 죽음과 좀 더 친해져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얼마 전 구례 공설 자연장지에 다녀왔다. 「지리산사람들」의 멤버였던 지인을 흙으로 보내기 위해서였다. 그녀는 49세의 나이에 폐암으로 세상을 버렸다. 자식을 먼저 보낸 어머니의 통곡에 모두가 눈물을 흘리며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나는 돌아오는 차 속에서 슬픔의 감정이 진정되는 즈음에 우리는 죽음을 두렵고 피해야만 한다는 소극적인 삶에서 벗어나 죽음과 좀 더 친해져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삶의 적극성을 생각해 보았다. 생명을 오로지 물질적인 몸으로만 보기 때문에 죽음이란 곧 끝을 의미하는 것이지만 우리는 늘 정신, 마음, 영혼 등을 말하며 생명을 물질로만 인식하지는 않는다. 어쩌면 죽음은 유한의 시간을 무한의 시간으로 바꾸며 죽음은 공간의 경계를 무한으로 확장 시키는 통로이기도 하다. 죽음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물질적인 우주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비물질적인 영역이 같이 존재한다는 생각이다. 그렇듯 삶이 끝나고 죽음이 시작되는 게 아니라 삶과 함께 의식 속에는 항상 죽음이 같이 흐르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영원한 것, 무한한 것, 변하지 않는 것의 실재는 결코 개인적인 것일 수 없지만 업보나 윤회 같은 종교적 세계관을 통해 죽음은 내가 무엇(이승의 나와는 전혀 관계없는 어떤 무엇)이 되느냐에 대한 문제로 늘 가까이에 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도 있지만 삶의 모든 것을 버려야 하는 죽음은 결코 피할 수 없는 것이다. 반드시 받아들여야 하는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사랑과 진리는 신성의 영역이지만 현실에 존재하듯이 죽음 또한 그래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우리는 죽음을 현재로 초대하고 어쩌면 그것을 사랑이라는 것처럼 동등한 가치의 고귀한 개념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다. 어떻게든 의식적으로라도 죽음과 좀 더 친해져야 삶의 균형을 잘 이루게 될 거라는 생각이다. 사진 unsplash의 Diago Nu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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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리산 편지
    2026-03-27
  • 새벽 세시시를찾아서 - 새벽 세 시
    새벽 세 시 김 해 화 새벽 세 시는 새벽이 아니그만 밥을 챙겨 묵자니 너무 이른 시간 그냥 나서자니 목숨 걸고 가야 할 길 이백 리 폭염 아래 하루 노동 천근만근 그새부터 짓눌러 오네 이러케 살아서 쓰는 거시냐고 차라리 하루 포기해버리자고 주저앉다가 다시 일어서네 하루가 쌓여 이틀이 되고 한 달이 되고 한 해가 되지 십 년 이십 년 삼십 년을 쌓아도 쌓아 올려도 밑바닥 그런다고 무너지는 삶이 일어서는 삶을 뒤덮지는 못해 악착같이 견디는 하루가 내 삶의 높이 물 한 그릇 마시고 다시 물 한 그릇 마시고 새벽 세 시 캄캄한 세상으로 나선다 새벽이 따로 있나 새벽일 가는 사람들이 나서는 때가 새벽 더듬더듬 걷다 보면 하늘이 밝아오겠지 내가 동녘을 향하지 않아도 살몃걸음으로 찾아온 아침은 등 뒤에서 세상을 밝힐 거야 ----------------------------------------------- 김해화는 젊어서부터 철근 노동을 하며 시를 써 왔다. 한때는 노동자 시인으로 문단에서 주목받기도 했으나 그는 나이 고희에 이르렀어도 먹고 살기 위해 일을 다닌다. ‘무너지는 삶이 일어서는 삶을 뒤덮지는 못’ 한다는 생활 철학이 그를 뒷받침하듯이 그는 완강하게 철근을 휘는 의지로 무너지지 않고 세상을 살아왔다. 자연스럽게 마음을 우주의 중심에 놓고 평정심을 잃지 않은 삶을 일궈낸 것이다. 새벽 세 시에 물 한 모금 마시고 이백리 일터로 나가는 칠십 노구에도 희망을 놓지 않고 노래한다. ‘새벽이 따로 있나/ 새벽일 가는 사람들이 나서는 때가 새벽/ 더듬더듬 걷다 보면 하늘이 밝아오겠지’
    • 문화예술
    • 시를 찾아서
    2026-03-27
  • 운조루 흰목련
    「섬진강 편지」 -운조루 흰목련 해마다 기다리는 꽃, 250년 고택 운조루 목련이 폈다 운조루 목련꽃이 특별한 꽃은 아니지만 고택 검은 기와와 어울려 흰 목련의 운치가 있다. 그렇지만 그 운치가 다는 아니다. 목련꽃 그늘 아래 반짝이는 장독대, 이웃 하사마을에서 시집을 와 73년째 운조루를 지키는 종부의 손길이 반짝이는 장독대와 어우러져 운조루 목련꽃빛은 종갓집 묵은 장맛이 스민 빛을 만들어낸다. 저 상사 사는 아무개입니다. 전동휠체어를 타고 대문간에 나와 앉은 종부께 인사를 드리는데 올해도 몰라보신다. 상사 토백이는 아닌디! 총기는 여전히 총총하시다. -김인호
    • 문화예술
    • 섬진강 편지
    2026-03-25

사람이야기 검색결과

  • [반달곰1%가게유람기] 일상을 아름답게 하는 작은 미술관, 도엔효
    [반달곰1%가게유람기] 일상을 아름답게 하는 작은 미술관, 도엔효 벚꽃이 피기 시작한 3월의 어느 봄 날, 하동 화개에 자리한 작은미술관 ‘도엔효’를 찾았다. 화개초등학교와 화개중학교 사이에 자리한 이 곳은 예전 구멍가게 자리였다. 아이들의 참새 방앗간이었을 그 곳에 이제는 하동을 찾은 여행객, 지역의 예술가, 주인장과의 찻자리가 그리운 이웃들이 한가로이 드나든다. 마을 이웃과 함께 둘러앉은 도엔효의 주인장 효원님은 향긋하게 우려낸 차의 첫 잔을 만물에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한 켠에 올리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제 고향은 함양이에요. 30년 전 서울에 살 때 학교 선배가 차를 우려서 내주었는데 맛이 아주 부드럽고 향기가 순했어요. 선배에게 ‘이 차 어디서 났느냐.’ 물었더니 하동이라고 해서 그 길로 바로 하동으로 내려와 ‘도재명차’에 갔죠. 거기서 다음날 해가 뜰 때 까지 밤새 차를 마셨는데 그 이후로 어디에 살든 5월이 되면 바람결에 차 향기가 나는 것만 같았어요. 지리산과 섬진강, 그리고 차에 매료당했던 것 같아요. 봄에 이 곳에 오지 않으면 마치 상사병에 걸린 것처럼 몸이 아프곤 했기 때문에 아무리 바빠도 봄이 가기 전에 여기 와서 차 향기를 맡고 갔어요. 그러다 29살 때 짐을 싸서 하동으로 내려왔죠.” 자연스러운 재료로 만들어진 일상을 아름답게 하는 물건들 문을 연지 12년이 된 작은 미술관 도엔효는 리넨으로 만든 옷과 소품, 흙으로 빚은 도자기와 지리산 자락에 사는 작가들의 다양한 작품을 전시, 판매하고 있다. ‘수돗가나 강가에 버려도 탈이 없는 재료로 만든다.’고 소개하는 정성어린 물건들이 참 따스하고 곱다. 도엔효에 있는 리넨 옷과 소품은 주인장인 효원님이 자연스러운 소재의 원단으로 만든 것들이다. “어릴 때부터 ‘산에 살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어요. ‘산에서 뭘 해서 먹고 살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을 때 잉여적인 일을 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전쟁이 나도 옷을 짓는 일은 필요하겠더라고요. 한 글자로 되어있는 단어들이 인간의 삶에 근원적으로 닿아있다고 생각해요. 밥, 옷, 집, 몸 같은 것들이요. 이 중에서 저는 손쓰는 것을 좋아하니 옷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처음에는 천연염색 원단으로 이불을 만들다가 소품을 하게 되었고 옷도 만들게 되었어요. 옷은 인간의 ‘예’를 갖추는 수단이기도 해서 제가 살아가고자 하는 방향과 더 맞다 생각했어요. 옷을 만들 때 되도록 합성섬유가 들어가지 않는 천연 섬유를 사용해서 만들고 있어요. 이것이 버려졌을 때 어떨지 생각해요. 옷으로 인한 환경 악영향이 아주 크니까요. 겨울옷에 들어가는 털은 가끔 폴리에스테르를 쓰기도 해요. 그렇다고 동물 털을 사용하고 싶지는 않거든요.” 효원님이 직접 만든 옷과 소품들은 도엔효 공간 안에서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과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때로는 편안한 ‘배경’이 되고, 때로는 일상을 아름답게 하는 ‘주인공’이 되기도 하면서. “아무리 좋은 물건을 가지고 있어도 그것이 제 자리에 있을 때 충만하다고 느껴요. 패브릭은 ‘배경’이예요. 배경만 가지고 공간을 꾸미고 싶지 않았어요. 작품이나 조명이 주인공이 되기도 하지요. 좋아하는 것들로 조화롭게 가꾸어나가고 있어요. 컵받침은 컵 아래에 놓였을 때 조화로운 거니까요.” ‘삶’을 닦는 일터 ‘삶’과 ‘일’의 방향성이 같기를 바란다는 효원님은 일상에서 끝없이 스스로를 살피고 매 순간 올곧게 존재하는 사람처럼 평화로워 보였다. 물건을 파는 직업을 가졌지만 사용하지 않을 물건은 판매하고 싶지 않다는 말이 인상적이다. “이곳에 살아가며 자연에 온전히 녹아든다고 느껴요. 덕분에 흔들리지 않는 중심이 유지되고 있다 생각하지만 작은 어려움들은 늘 있어요. 이런 일을 하면 집에 짐이 참 많은데 그럴 때 고민이 되기도 해요. ‘이렇게 많은 짐을 짊어지고 사는 게 맞을까?’ 물건을 파는 일을 하는 것에 대해서도 늘 생각해보게 되죠. ‘손님들이 이 옷을 사가서 잘 입으실까?’ 안 입으실 거면 사지 말라고 하기도 해요. 기분 나빠하는 손님도 계시지만 저는 물건을 사서 안 입고 안 쓴다고 하면 마음이 무거워져요. 물건을 만들 때 일상에서 잘 쓰일지 늘 고민해요. 물건도 잘 써야 생기가 생기니 만물이 잘 쓰여 지면 좋겠어요. 물건에 전혀 관심이 없는 손님이 오시거나 그냥 차 한 잔만 하고 가셔도 괜찮아요. 나답게 번 적은 돈으로 나답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렇게 잘 되지 않을 때도 있겠지만 스스로 알아차리려고 매 순간 노력하고 있어요.” 반달곰을 사랑하는 1% 가게 도엔효에 들어서는 입구에는 ‘반달곰을 사랑하는 1%가게’임을 알리는 포스터가 이 공간을 찾는 사람들을 반긴다. 지리산과 섬진강을 사랑하고 누구에게든 평안을 바라며 차를 내어주는 도엔효가 ‘반달곰을 사랑하는 1%가게’가 된 것은 어쩌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지 않을까? 버려도 탈이 없는 재료로 만든 아름다운 것들로 채워진 공간에 지리산과 반달곰을 사랑하는, 그러니까 ‘자연스러운 삶’을 사랑하는 여행객들이 종종 찾아온다. “조용하게 사는 편이지만 목소리 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는 참여하기도 해요. 반달곰 가게는 구례에 사시는 윤주옥님과의 인연으로 시작하게 되었는데 고민할 것도 없이 함께 하겠다고 했죠. 이런 연대는 언제든 환영입니다. ‘깨어있다’라는 것이 어느 한 부분에만 국한될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해요. 만물에 깨어있다면 삶의 방향이 ‘생명’으로 확장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인 것 같아요. 불교의 ‘연기’라는 건 세상 만물이 연결되어 있는 거잖아요. 나 혼자만 방 안에서 깨어있을 수 없죠. 내가 마시는 물, 공기, 물건이 모두 연결되어 있으니까요. 동물권에 대해서도 자연스럽게 이르게 되는 것 같아요.” 반달곰을 사랑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단순히 ‘반달곰’을 좋아한다거나 ‘동물’의 개체를 지키고 서식 환경을 개선해야한다는 뜻만은 아닐 테다. 반달곰을 사랑한다는 것은 “필요하지 않은 물건은 사지 않아도 괜찮습니다.”라고 말하며 향긋한 차 한 잔 내어주는 평화로운 마음과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혹은 세상의 소중한 것들을 위해 크고 작은 마음을 담아 연대하고 기꺼이 자신의 공간과 이익을 나누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반달곰1%는 지리산권 가게들이 자발적으로 진행하는 공존프로그램이다. 반달곰1% 가게에 가면 반달가슴곰을 자연스럽게 만나고, 특별히 계획하지 않아도 반달가슴곰 보호활동에 참여하게 된다. 2021년 5개 가게로 시작한 반달곰1%는 2026년 현재 구례 11곳, 하동 11곳으로 늘어났다. 반달곰1%는 ‘유랑인증서’를 발행하고 있는데, 손님들이 반달곰1% 가게에 들러 물품을 먹거나 마시거나 구입하면, 반달곰1% 가게들은 수익금의 1%를 사단법인 반달곰친구들에 기부하고, 그 기부금이 모아지면 사단법인 반달곰친구들과 논의하여 올무수거 활동, 무인센서카메라 구입 등 반달곰 보전활동을 위해 쓰기로 약속하였다.] 글쓴이_ 정수진 하동으로 이주한 지 4년이 되었습니다. 겨울이 오면 남편과 함께 인도와 네팔에서 NGO 활동가로 살아가고, 꽃피는 봄이 오면 하동으로 돌아와 민박집을 엽니다. 텃밭을 가꾸고 이웃 농부들의 농산물이 잘 쓰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열심히 요리하고 나누어 먹습니다.
    • 사람이야기
    2026-04-20
  • [빛나는 연대 순례하는 청명9] 냉장고와 탈핵
    빛나는 연대 순례하는 청명9 냉장고와 탈핵 냉장고 이야기를 해볼까요? 저는 지리산 집에 있는 전기냉장고를 여름이 시작되면 전원을 켜고, 추석이 지나면 끄곤 합니다. 1년에 3개월 정도 켜는 셈이지요. 지난해에는 집 뒷곁에 약 1.5미터 깊이로 구덩이를 팠습니다. 땅굴 냉장고라 부르는데, 김치를 비롯한 여러 음식들을 보관하였습니다. 바깥 온도와는 다르게 일정히 선선함을 유지합니다. 짱입니다. 이렇게 전기냉장고를 덜 사용하고자 하는 이유는 단순히 전기를 절약하기 위해서만은 아닙니다. 전기냉장고는 너무 많은 것을 감춥니다. 문을 닫는 순간 내부는 하나의 보이지 않는 세계가 됩니다.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알지 못한 채, 계속해서 새로운 것을 채우게 됩니다. 보이지 않으면 잊게 되고, 아직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 뒤편에서 조용히 상해 갑니다. 그리고 어느 날 그것들을 발견하고는 버리게 됩니다. 땅굴 저장은 조금 달랐습니다. 그곳은 드러나는 공간이었습니다. 내용물을 확인하고, 무엇을 먼저 먹어야 하는지 자연스레 알게 되고, 버려지는 일이 줄어들며, 음식은 더 분명한 의미를 갖게 됩니다. 자연에 대한 고마움 말이죠. 종종 어린 시절을 떠올려 봅니다. 그때는 전기냉장고가 없었지만 계절에 따라 먹었고, 적으면 덜 먹거나 남으면 나누어 먹었습니다. 지금은 더 많아야 한다는 압박과, 더 편리해야 한다는 기대가 쌓이며 우리의 감각을 바꾸어 놓았다고 생각합니다. 사회가 만들어낸 기준에 따라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런 대표성을 가지는 물건이 전기냉장고이지 않을까요. 그래서 스스로에게 묻곤 합니다. ‘있으니까 쓴다.’가 아니라 ‘정말 필요한가?’ 사실 제가 냉장고 얘기를 하는 것은 탈핵운동에 대해 말하고 싶어서입니다. 저는 탈핵이 비움길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비움은 개인과 사회를 포괄하여 단순히 물질적인 것만이 아닌, 정신적 비자율성을 비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폐해에서 벗어나자는 것입니다. 현재 이슈가 되고 있는 핵문제 또한 에너지와 관련된 하나의 사회적 비움의 대상입니다. 저에겐 탈핵은 수많은 비움에서의 하나입니다. 핵은 과도한 생산과 소비를 지탱하는 에너지원으로 현재와 미래의 생명을 망가뜨리는 폐해가 따릅니다. 그래서 탈핵을 비롯한 모든 비움을 이름하여 ‘탈핵비움실천’을 해보자고 다닙니다. 비워야 할 게 많은 물질주의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3월 말 마감을 앞두고 지방 의회 의결을 거쳐 울주군과 영덕군은 대형핵발전소를, 기장군과 경주시는 소형 모듈 원자로(SMR) 유치 신청을 완료하였습니다. 합리적이지 못한 수많은 사례들로 점철된 핵발전. 이를 용인하는 우리 사회의 난제를 어디에서 풀어가야 할까요? 그래서 탈핵의 수만 가지를 연상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과거 풍으로 치자면 ‘민중의 힘’이 살아날 방법이 없을까?를 궁리하게 됩니다. 신규핵발전을 가시적인 거리 행동으로 막는 만남과 순례, 피켓 시위, 기자회견, 작고 큰 집회 등의 탈핵운동도 있습니다. 더하여 우리 사회에 만연한 ‘돈과 편리’로부터의 탈출, ‘적정한 소비’로의 전환이라는 비움실천도 탈핵과 연동되는 한 가지 방법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제가 냉장고 얘기를 들추었네요. 험난한 탈핵정세를 시민사회의 비움의 지혜로 극복하자는 작지만 절실한 마음으로요. 요즘에도 매주 수요일이면 길을 나섭니다. 서울 광화문에서의 거리 행동에 나서기 위함입니다. 활동을 준비하기 위해 하루 먼저 이동하는데, 숙소는 대부분 비정규 노동자 쉼터 ‘꿀잠’ 공간을 이용합니다. 제가 소속된 ‘신규핵발전소저지전국비상행동’ 탈핵직접행동팀의 활동은 전에 말씀드린대로, 기존의 ‘광화문탈핵목요행동’에서 ‘광화문청와대탈핵행동’으로 변화했습니다. 활동의 범위가 넓어진 것입니다. 시간도 목요일에서 금요일까지 이틀 동안 이어지고 있습니다. 10:30-11:00 청와대 분수대 앞 피켓 시위 11:30-12:30 광화문 이순신 동상 앞 피켓 시위 15:00-16:00 광화문-청와대 왕복순례, 해태상 앞 출발 광화문 광장은 젊은 세대와 직장인, 관광객이 많이 오고가는 공간입니다. 그래서 사람들과 연결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음악’입니다. 익숙한 노래를 바탕으로 가사를 바꾸어 탈핵의 메시지를 담으려 하고 있습니다. 딸에게 추천 받은 여러 멜로디가 아직은 쉽지 않지만, 계속 연습하며 현장에서 자연스럽게 풀어내려 합니다. 00은 내 맘을 모르죠 I can't stop no nuke nuke 아파도 계속 탈핵하죠 I can't stop no nuke nuke 있나요 탈핵해 본 적 00을 뽑아줬는데 왜 투표권 다 줬는데 왜 모든 걸 다 줬었는데 왜 (‘에픽하이의 Love Love Love’ 가사를 일부 차용) 외국인에게 짧은 인사도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서툰 영어, 베트남어, 중국어, 일본어 몇 마디도 익혀 탈핵 의지를 전하려 애쓰고는 있습니다.^^;; 순례는 기도문을 시작으로, 깃발을 들거나 모형 고준위핵폐기물 통을 두드리며 걷습니다. 무선 마이크와 나팔 마이크를 통해 시민들에게 말을 건네고, 짧지만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은 각자의 속도로 순례단을 스쳐 지나가지만, 어떤 이들은 잠시 멈춰 서서 구호를 듣거나, 현수막과 몸자보를 읽고 응원을 전하기도 합니다. 청와대에 도착하면 40초 발언문을 읽습니다. 누구나 발언자가 될 수 있습니다. “신규핵발전소 저지 전국비상행동에서 전합니다. 핵발전소 주변지역은 방사능 피폭지역입니다. 신규핵발전소는 피폭지역을 확대하게 됩니다. 주민의 건강과 생명이 위협을 받습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35조는 모든 국민이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와 국민은 환경보존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규핵발전소는 발전소 주변지역 주민의 헌법적 권리를 침해하고 있습니다. 핵발전소는 사고의 위험을 가지고 있으며, 그 숫자가 늘어날수록 그 위험 또한 높아집니다. 신규핵발전소는 대한민국을 핵사고의 위험국가로 만들고 있습니다. 대통령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국정 최고의 가치로 두고 있다고 말해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요구하고 있습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할 수 있는 핵사고를 막기 위해 신규핵발전소를 철회해야 합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라?? 놀랍게도 얼마전 뉴스타파가 입수한 기후에너지환경부의 내부 문건에서는 핵발전 출력을 기존의 50%에서 80%까지 줄일 수 있어야 한다는 내용을 확인했습니다. 감발운전이라는 이러한 위험한 상태에서 체르노빌 핵사고가 났음에도, 정부는 여전히 무감증에 빠져 있습니다. 한국 사회의 핵사고는 이미 초읽기에 들어섰습니다. 하여 공포는 시민사회의 몫으로만 남게 되었습니다. 생명존중은 아예 뒷전에 둔 ‘비국민정부’의 행태를 마냥 보고만 있어야 하나요? 하~~ 그렇지만 주변에는 탈핵 연대의 꽃이 하나 둘씩 피고 있음을 봅니다. 엄마의 탈핵운동을 위해 젊은 세대가 좋아하는 음악을 선곡하고 위트 있는 개사로 힘을 보태는 딸, 탈핵행동을 위해 원형 피켓을 만들고 바느질로 손을 보태준 원도심레츠 사람들, 순례단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녹색연합은 나팔 앰프를, 양기석 신부님은 무선 마이크를 지원해 주셨습니다. 서울을 오가며 활동하는 과정에서 잠자리와 식사를 제공해주시는 비정규직 꿀잠공간과 쫑쨍이 런닝클럽의 해당화와 재희, 그리고 다양한 도움을 주시는 지리산 실상사의 수지행, 날이 좋다며 한컷의 사진을 담아주신 느티나무 현경, Burn fat not oil( 자동차 대신 걷거나 자전거를)몸자보를 두른 실상사작은학교의 한형민 선생님, 따뜻한 차를 순례단에게 제공해주신 나눔문화 사람들. 이처럼 탈핵은 한 사람의 의지가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의 손길과 연대 속에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적정한 소비’로 탈핵을 앞당기는 시민사회의 연대도 간절히게 희망하면서... 앗싸 탈핵!! 외쳐봅니다. 글쓴이 : 청명 연대! 나의 순례는 탈핵과 비움의 길, 그리고 연대의 길입니다. 내가 생각하는 연대는 ‘각자 할 수 있는 역량과 방법으로 참여하고, 서로의 경계를 허무는 것이다. 더하여 경계를 허문다는 것은 단절, 좁은 시야, 울타리, 권력, 불투명한 벽을 허물고 서로 공감하고 함께 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드는 여정이다.’ 한마디로 연대는 좋은 친구를 만들자는 것이라고 봅니다. 순례자 청명으로부터
    • 사람이야기
    2026-04-01
  • 지리산의 눈물, 지하수가 마르고 있다. - 산청 난개발에 맞선 민영권 위원장의 고군분투기
    지리산 자락, 지하수 고갈로 주민들이 고통받고 있는데 산청의 지하수가 기업의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췌장암 투병 중 고향으로 돌아와 지리산의 생태계를 지키는 파수꾼이 된 산청난개발대책위 민영권 위원장을 만났습니다. 전국 생수 취수량의 1/3이 넘게 집중된 지리산, 그곳에서 벌어지는 9cm의 지반 침하와 흙탕물 식수의 실태를 폭로합니다. 피해는 주민이 입고 돈은 기업이 번다? 이건 안돼죠. 주민들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30년 된 '먹는물관리법'의 허점과 행정의 무책임함에 맞서 감사원 감사청구까지 이르게 된 생생한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보세요 00:00 인트로 00:48 췌장암 병 치유를 위해 내려온 고향에서 투사가 되다 04:20 노동운동에서 생태운동으로 10:40 난개발에 대처하는 주민들 - 케이블카/지하수/골프장 15:38 지리산의 위기 - 기업의 돈벌이 수단이 되는가 18:01 생수공장의 무분별한 지하수 이용으로 고갈 피해가 심각 22:30 지하수 고갈로 인한 피해사례들 27:23 30년 된 먹는물관리법의 헛점을 이용한 난개발 30:41 부실한 환경영향평가와 불법행위 32:49 불법적 허가와 행위에 감사원 감사청구를 하다 40:07 체계적인 지하수 총량 관리가 절실하다 42:39 다음 세대를 위한 약속 - 지하수는 모두의 것 #지리산 #산청 #민영권 #지하수고갈 #생수공장 #난개발 #지반침하 #환경운동 #먹는물관리법 #지리산사람들TV #산청난개발대책위원회 #지리산지하수지키기공동행동 #췌장암 #환경영향평가 #지하수
    • 사람이야기
    2026-03-27

자연생태 검색결과

  • 구례 곰 마루쉼터에 사는 곰을 찾아서
    구례 곰 마루쉼터에 사는 곰을 찾아서 커피박을 통한 곰의 감각 풍부화를 위하여 월요일이면 커피박을 싣고 구례 곰 마루 쉼터(이하 곰 쉼터)로 간다. 야생을 모르는 사육되던 곰의 풍부화를 위한 커피박, 커피박은 말 그대로 추출되고 남은 커피의 껍질이자 찌꺼기다. 후각이 발달한 곰에게 커피박 제공은 곰의 감각 풍부화로 후각과 촉각을 자극한다. 풍부화란 보호시설이나 동물원에 있는 곰이 자연에 가까운 행동을 하여 삶의 질을 높이고 스트레스를 줄이도록 돕는 활동이다. 쉽게 말해 본능을 자극하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철창에 갇힌 생명의 감각을 깨우고 무기력한 곰에게 활력을 주는 활동이다. 무기력한 곰을 바라보는 일은 무기력한 일이자 고통이다. 한 달 전 지리산 문수사에서 본 반달곰이 울부짖는 분노어린 발작과 철창을 부여잡은 곰의 발바닥이, 아기곰의 눈망울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커피박을 수거하는 일은 카페 주인의 마음과 그 만의 향기가 담겨있다. 커피가 제 일을 다 하고 껍질이 건조되는 과정은 곰으로 가는 기도다. 커피박에 희끗희끗한 점이 커피 일부이기를 바라며 커피박을 수거한다. 커피박을 건조하는 카페 주인의 손길은 숭고함이 전해진다. 곰에게 가는 돌봄 하나하나가 모여 커피박이 되기까지의 시간은 숨구멍을 통해 건강한 커피박이 탄생한다. 커피가 곰의 후각을 살려 숲의 냄새 따라 먼 선조의 기억을 찾아가는 것이리라. 야생에서 태어나 자라야 할 곰이, 우리나라 사육곰으로 태어나 곰 쉼터에 있는 주옥이라는 곰을 CCTV를 통해 처음 만났다. 얼굴은 보지 못했다. 아니, 그녀의 등을, 뒷모습을, 어슬렁거리며 반복되는 걸음이 또한 그녀이기에, 얼굴을 모른다고 하지 않겠다. 그렇게 그녀를 만나고 임옥주 수의사에게 그녀에 관한 얘기를 들었다. 내내 곰은 느리게 느리게 목적 없는 배회를 하고 또 하고 나는 보고 또 볼 수밖에 없었다. 곰의 풍부화를 위해 커피박을 나르며 실은 내 삶이 풍부해지고 있음을 고백한다. 곰을 알아가고 생명을 존중하는 일, 곰에게 커피박을 나르는 일은 커피가 남긴 향기처럼, 건조된 커피의 빛과 색의 순간에 감사하며, 곰도 그 순간의 감각을 체험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사진 : 곰마루쉼터 제공) 커피박을 제공한 후 커피 향을 제일 좋아하는 곰이 청심이라는 것을 영상을 통해 알게 되었다. 얼굴에 커피박이 담긴 봉지를 비비고 만지고 냄새 맡는 청심이란 곰이 사랑스러웠다. 새로운 향과 촉감에 흠뻑 취한 그녀의 기분이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청심의 감각 풍부화 과정을 한번 상상을 해보시라. 한 곰이 새로운 것을 접하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인간과 전혀 다를 바 없는 한 생명의 감정과 행동을. 이제 커피의 눈물이 남긴 껍질과 향을 곰들과 공유하는 일. 곰의 야생성을 찾아 풍부화가 이루어지는 과정을 함께 지켜보자. 지리산 아래 살면서 지리산 아래 곰 쉼터로 찾아온 곰들을 환영하며 그들에게 커피박을 나른다. 일어나 곰아! 오늘도 멀리서 날아온 흙냄새, 꽃 향, 쓴맛과 초콜릿 향을 맡으며 곰에게 간다. 차 안 가득 향기로운 바람이 분다. 곰이 산길을 숲을 헤매고 산과 함께 할 날을 상상한다. 낙엽 바스락거리는 숲을 거닐 듯 네 발로 커피박과 노는 영상을 본다. 전생에 엄마 곰이 아기곰에게 알려준 생존의 기억을 찾아 커피야, 곰과 놀다 갈래? 도도 새침한 곰을 네 향으로 유혹해봐. 자연 속 자연의 일부로 곰이 곱답게 살아가도록 우리 함께 힘을 기울이자. 곰이 커피 향에 취한 순간은 곰의 배회를 잠재운다. 곰 쉼터로 오르는 경사로처럼 남아있는 사육 농장의 곰과 문수사 곰이 곰마루 쉼터로 옮겨지는 일 또한 숙제로 남아있다. 구례 읍내의 카페 및 음식점, 지리산오여사, 둥둥, 느긋한 쌀빵, 봉서리책방, 지인카페, 호이요, 오차커피공방, 구례가, 구례자연드림시네마 카페 순으로 커피박을 수거하여 구례 곰마루 쉼터로 달린다. 달리는 길에 벚꽃이 흩날리며 꽃비를 내린다. 이처럼 행복한 일이 또 없다. 이 기분이 커피박을 제공하는 카페와 음식점에 전해지기를 바라며 또한 그들에게 고마운 마음 가득 담아 보낸다. 글쓴이 : 이촉 시인, 지리산人 편집위원
    • 자연생태
    2026-04-01
  • 연어와 자원, 그들은 자원일까 자연(自然)일까?
    어족자원이라는 이름으로 착취되는 생명들, 과연 생명들은 자원인가 자연(自然)일까 연어에게 자유를, 강이 자유롭게 바다로 갈 수 있기를 희망하며
    • 자연생태
    2026-04-01

고을이야기 검색결과

  • 내 몸에 흐르는 지리산
    내 몸에 흐르는 지리산 『지리산人』 편집위원들과 함께 피아골로 들어요, 어릴 적 밟던 산 흙을 밟는 걸음이 무거운 것은 두렵기 때문이죠. 앞서는 걸음이 불확실해 품기만 하던 피아골 품에 들어갑니다. 숨은 항시 따라붙는 것이라 숨결처럼 달라붙는 산에서 나는 작아집니다. 쓰러져 있는 신갈나무가 병들어 자연으로 돌아가는 중이에요. 우리는 매장에 관해 말합니다. 수목장이 좋을 것 같아요. 조장이 괜찮겠어요. 얼른 떠오르지 않은 단어를 품고 기다립니다. 화장, 화장은 한 생애를 태우는 고통이지요. 지리산이 듣고 있어요. 앞서가는 선재님이 진달래 꽃잎을 따 먹습니다. 꽃 맛은… 진달래가 떨고 있어요. 뒤따르던 지리산도 진달래 몇 잎 따서 먹었답니다. 상추처럼 시원하고 신선한 첫맛? 바람은 듣지 못하여서 흔들거려요. 쓰러진 나무 아래 겹겹이 쌓인 낙엽 위로 이끼긴 바위 아래 돌계단이 휘청합니다. 산에서 산을 꼭 잡고 서요. 입 마른 산수국 꽃잎이 툭툭 말을 겁니다. 시는 산수국 꽃잎처럼 오가며 말을 겁니다. 지리산에 묻어둔 기억은 표고막터 거쳐 그리던 삼홍소에 빠진 산 그림자 한번 보려는데 봄이라고 부슬, 봄이라고 부슬, 비가 내려 쌉니다. 삵의 똥은 까맣게 삵의 흔적을 말합니다. 가던 길 멈추고 힘들다는데, 말하지 않아도 오르막은 힘든 법이랍니다. 진달래 숨결은 보드라운데, 산바람 할퀴고 피는 진달래라고 씁니다. 지리산이 듣고 있어요. 사방이 지리산이라 나는 피아골 대피소로 피해 숨을 돌립니다. 피아골을 들이마십니다. 비로소 산에 있어요. 멀리서 그리던 산에 왔어요. 하여 넘어져도 가고 넘어져도 산인 지리산에서 오던 길 다시 돌아 산을 또 내려갑니다. 그렇게 『지리산人』 되어갑니다.
    • 고을이야기
    • 구례
    2026-04-11
  • 지하수는 지역에 이용의 우선권이 있는 공공재다. 물 이용의 생태적 원칙 (지리산 지하수 이야기 3)
    물 이용의 권리와 생태적 원칙 생명 유지에 꼭 필요한 물. 물은 누구의 것일까요? 빗물과 강물, 바닷물, 지하수의 형태로 우리 몸 밖에 존재하는 물은 대표적인 공공재로, 소유권을 주장할 수는 없지만 물사용의 우선권은 예로부터 존재해 왔습니다.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깨끗한 샘 주변으로 마을이 형성되었고, 샘은 공동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계곡수나 저수지의 물은 수원과 가장 가깝고 위치가 높은 경작지에서 먼저 사용할 권리를 가지지만, 초과된 물을 바로 아래로 흘려보내어 밑에 사는 사람이 차례대로 이용하고, 오염시키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습니다. 이때 우선이란, 시간적 우선을 이야기하는 것이지 양적인 뜻이 아닙니다. 그 물은 어차피 아래로 흘러갈 것이었므로, 양적인 우선을 주장해보았자 별 의미가 없었습니다. 마실 물을 떠가는 경우에는 사람이나 동물이 지고 갈 수 있는 양, 토기 항아리에 신선하게 보관할 수 있는 양을 떠갔기 때문에 이것도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일단 사람의 수 자체가 적었지요. 인공수로가 발명되고, 금속관이 발명되고, 플라스틱관이 발명되면서, 사람들은 멀리서 물을 끌어오고, 더욱 밀집된 도시를 만들었습니다. 식수와 생활용수를 공급하는 수도관 뿐 아니라, 마침내는 여기저기 지하수 관정을 뚫고, 플라스틱 호스로 옆 골짜기의 물을 대량 끌어다가 농업용수, 산업용수로 쓰고, 급기야는 병에 물을 담아 팔기 시작하면서, 지표수와 용천수 이용의 생태적 원칙은 완전히 붕괴되었습니다. 관정과 수로를 내가 만들었으니, 이 물은 내것이야 내가 오래 살던 산동네에서는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우리 논에는 작은 샘이 있어서 도랑에 물이 흐르지 않는 가뭄에도 그 물을 모아 농사를 지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위쪽에 있는 논에서 관정을 뚫어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가뭄에 모내기를 하기 위해 조금씩 받아놓은 우리 논물이 몇 시간만에 쫄딱 사라져버리는 것이었습니다. 관정을 통해 지하의 물이 빨려 들어가 지표면의 물도 사라진 것이죠. 위에서 관정을 돌리니, 우리 논의 자연샘은 싱크대의 배수구처럼 작용했습니다. 윗논 주인은 그 물을 사용해 논을 갈고 모내기를 한 다음, 여분의 물을 바로 아래인 우리 논에 내려 보내주지 않고, 플라스틱 호스를 이용해 한참 저 아래에 있는 자기 논으로 내려보냈습니다.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다시 물을 모으기 위해 관정을 꺼버리자, 윗논 주인이 와서 쌍욕을 했습니다. “씨발새끼야, 나도 먹고 살아야지! 내가 우선이야!” 하면서요. 바로 옆의 골짜기에도 우리 논이 있었는데, 여기서는 우리가 가장 꼭대기에서 농사를 짓고 있었습니다. 그 옆 골짜기의 논에서는 우리 논이 있는 골짜기의 위쪽에 호스를 박고 봇도랑을 만들어 물을 끌고 갔습니다. 계곡물이 다 옆 골짜기로 흘러가서 우리 논에는 흘러들어오는 물이 없었습니다. 봇도랑을 막고 우리 논에 물을 대면, 새벽같이 와서 물을 끊어 놓아 농사를 지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봇도랑이 우리 논보다 위에 있으니, 자신이 우선이라는 논리를 펼쳤습니다. 쌍욕을 주고 받고, 홧병에 걸릴 것 같은 나날이 며칠 지속되었습니다. 문제는 우연한 죽음으로 해결되었습니다. 그렇게 우리를 괴롭히던 그 사람이 이른 아침에 트랙터를 몰고 마을에서 논으로 향하는 가파른 내리막길을 내려오다가 커브에서 절벽으로 떨어져 즉사하고 말았습니다. 무섭고 끔찍한 운명의 타격이었죠. 다들 속으로 그가 천벌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부서져서 못쓰게 된 트랙터는 한참 동안 그의 논 옆 길가에 방치된 채 놓여 있었고, 그렇게 우리를 괴롭혀서 물을 모아놓은 그의 논은 농사지을 사람을 잃은 채 한동안 방치되었습니다. 결국 마을에 사는 다른 사람이 그가 관리하던 논에 늦은 모내기를 했습니다. 그는 왜 이렇게 악착같이 물을 빼앗으려 했을까요? 잘 알려지지 않은 물부족의 이유 한 가지 시골마을에 물싸움은 예사라곤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한반도의 벼농사는 기원전 10세기에 시작되었으며, 높은 산골짜기라 할지라도 논이 만들어진지는 수백년이 됩니다. 논과 둠벙은 지역에서 나는 물의 양에 걸맞게 만들어진 거라서, 이례적인 가뭄이 들지 않는 한 조금씩 배려하고 아끼면 충분히 골고루 쓸 수 있었습니다. 인력으로 나무를 캐고 돌을 쌓아서 논을 만드는 것은 엄청난 중노동이므로, 애초에 물이 부족한 곳은 시도할 가치가 없습니다. 즉, 논이 있는 곳에는 원래 충분한 물이 있었던 것입니다. 산골마을에서 물 부족 현상은 이상기후 이전에 다랑논을 경지정리해 큰 논을 만들고, 트랙터로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부터 나타났습니다. 큰 논에서 트랙터로 논을 갈 때는 작은 다랑논에서 소로 논을 갈 때에 비해 한 번에 훨씬 많은 양의 물이 필요합니다. 경지정리를 해서 논이 들판처럼 너르게 된 후, 골짜기의 소농들은 다른 골짜기의 물을 끌어오고, 여기저기 관정을 뚫지 않으면 농사가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이 관정들이 다 신고되거나 허가받은 것도 아닙니다. 농업 생산의 기계화, 규모화는 다랑논을 무가치하게 만들어 버렸기 때문에, 경지정리를 안 할 수도 없었죠. 물부족은 강우량과 기후만이 원인이 아니라, 삶의 양식과 문화, 문명의 방향성, 인간사회의 규칙과 큰 관계가 있습니다. 현대적 생태공학과 기업이 공생할 때 그런데 이런 소농들 간의 물싸움은 생수공장과 주민의 싸움에 비하면 별일이 아닙니다. 고작 논 몇 마지기에 물을 대기 위해서 옆 골짜기 계곡물을 끌어와 쓰거나, 100m 이내의 농업용이나 가정용 관정을 무단으로 파서 쓰는 것 때문에 가까운 이웃이 피해를 볼 수는 있어도, 이 때문에 지역의 지하수가 전체적으로 고갈되지는 않습니다. 충전되는데 시간이 별로 걸리지 않는 표층수이고, 뽑아 써도 어차피 그 지역의 땅을 적시는 용도이니까요. 주민들의 미신고·무허가 관정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생수공장에 있습니다. 생수공장은 수천년간 충전된 암반수를 사유화하고, 어마어마하게 뽑아올려 전국으로, 외국으로, 다른 대륙까지 보내 버립니다. 삼장면에 있는 또 다른 생수공장 LK샘물 대표 로라 킴 희자 제이는 재미교포 사업가로, 지리산 물을 미국의 월마트에 납품하고 있습니다. 로라 킴은 부경대에서 생태공학 박사학위를 받은 만학도로, 사단법인 한국생태공학회의 편집이사이기도 합니다. 로라 킴과 관련된 다음 기사는 생수산업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기업의 썩은 현실을 보여줍니다. 로라킴의 미국 탈세에 관한 기사1: https://sundayjournalusa.com/2021/08/26/%ec%83%9d%ed%83%9c%ea%b3%b5%ed%95%99-%eb%b0%95%ec%82%ac%ec%b6%9c%ec%8b%a0-77%ec%84%b8-la%ec%97%ac%ec%84%b1%ec%82%ac%ec%97%85%ea%b0%80-%eb%a1%9c%eb%9d%bc-%ea%b9%80/#google_vignette 로라킴의 생태공학 박사 학위 취득 기사 2: https://www.pknu.ac.kr/main/51?action=view&no=331800 기업과 한몸인 생태공학이 과연 생태일지 의심스럽습니다. 학문은 때로 공유재를 사유화하는 합리화의 도구가 되고, 학위는 그 라이센스로 작용합니다. 무엇이든 돈으로 바꾸어내고, 투자한만큼 버는 자본주의 세상이니 당연합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방심하는 사이, 기업은 공유재를 사유화하기 위한 법과 전문가들을 만들어 두었고, 스스로 생태 전문가가 되었습니다. 최후의 전환 일본에서 한국산 생수가 많이 소비된다고 합니다. 후쿠시마 방사능 유출 사건으로 일본의 지하수가 의심스러우니, 건강을 지키기 위해 한국에서 온 물을 마시는 사람도 있을 거 같습니다. 프랑스 에비앙을 한국에서 사마셔도 내돈내산이니, 지리산물이 명품으로 인정받고 해외에서 소비되는 것도 K-문화의 진출로 홍보됩니다. 수원지의 주민들은 전혀 보호받지 못하는 현실을 평범한 소비자는 알리가 없습니다. 샘과 우물, 계곡물을 사이좋게 이용하기 위해 예로부터 전해지는 지혜와 규칙이 있지만, 현행법에는 명문화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미 발명된 수로와 관, 펌프를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고, 도시에 밀집한 인구를 고르게 분포시킬 방법도 묘연합니다. 도시에 사람이 모일수록, 도시의 목소리만 커지고, 그나마 자연이 남아 있는 시골은 오염산업의 귀착지가 되어 황폐해지는 악순환이 계속됩니다. 잃어버린 공유재를 어떻게 되찾을 수 있을까요? 슬로베니아에는 물을 판매하는 행위 자체가 헌법에 불법으로 규정되어 있습니다. 이 나라에는 생수산업이 발을 붙일 수가 없지요. 공유재를 기반으로 사적 이윤을 얻는 행위를 금지하거나, 영향권 안에 있는 모든 주민의 직접적 동의를 얻었을 때에만 가능하다는 조건을 붙이지 않으면, 자연과 함께 살아가고자 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생태계는 보호받지 못할 것입니다. 수원과 가까이 사는 주민에게 물이용의 우선권이 있다는 단순한 고대의 지혜로 돌아가서, 이 규칙을 법으로 체계화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지리산 지하수 이야기 4. 보이지 않는 땅속에서 일어나는 일에서 계속됩니다.
    • 고을이야기
    • 산청
    2026-04-10
  • 생수와 죽음의 문화 (지리산 지하수 이야기 2 )
    생수와 죽음의 문화 마트에 진열되어 있는 페트병에 담긴 물을 우리는 ‘생수’라고 부릅니다. ‘살아있는 물’ 이라는 뜻일 텐데요. 요즘은 가열과 증류 과정을 통하지 않고 제품화된 지하수를 보통 생수라고 합니다. 계곡이나 자연샘, 옛날 방식의 우물에서 바가지로 뜬 물이 아니라, 소독약을 뿌린 플라스틱이나 테트라팩에 담긴지 삼일 이상 지난 물을 생수라고 부르는 게 좀 이상하지만, 편의상 생수라고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생수에는 용기 안쪽에 뿌려진 소독약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또한 얇은 페트병에서 우러나오는 미세플라스틱이 소량 들어있을 수 있습니다. 당장 인체에 해로운 정도는 아니니지만, 페트병은 일회용으로 설계되어 있기 때문에, 재사용하면 미세플라스틱 등 화학물질이 우러나올 가능성이 큽니다.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 곧장 재활용 수거함으로 보내는 것이 좋습니다. 페트병이 정말로 얼마나 재활용이 되는지, 그 과정에서 또 얼마나 오염물질과 탄소를 배출하는지는 짐작만 할 뿐입니다. 우리가 마시는 생수병의 물은 한라산이나 지리산, 백두산, 또 알지 못하는 어느 수계에서 왔습니다. 물을 마시고 나면, 자연스레 인체는 여분의 물을 배출합니다. 생수를 마시는 사람은 아주 먼 곳에서 취수한 지하수를 전혀 엉뚱한 수계로 배출하게 됩니다. 국내산 암반수는 대한민국의 곳곳 뿐 아니라, 미국, 일본, 유럽 등지에 수출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생수를 사 마시면서, 수세식 화장실에서 대소변을 보고 강물을 더럽히고 있습니다. 또 고기를 얻는 축산공장에서는 물청소를 하고는 그 물을 강으로 내보내죠. 지자체에는 물감시 전담 인력이 없기에, 감시체계는 작동하지 않습니다. 과중한 문서처리 업무로 다들 바쁘고, 비오는 날에 아침에 축사를 불시 방문할 공무원은 없습니다. 콘크리트 보로 막혀 자정능력을 상실한 낙동강은 녹조라떼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런 상황이니, 부산시민의 식수를 공급하기 위해 지리산을 거대한 호수로 만들고 덕산을 수장시키자는 이야기까지 나옵니다. 세상이 이러하니, 깨끗한 식수를 누구나 마트에서 구할 수 있게 제품화 하는 사업이 공익적 가치가 있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먹는샘물개발업자는 공익적 서비스를 제공하고 이윤을 얻는 것으로 자신의 사업을 합리화합니다. 국내 생수 산업은 연간 3조원 규모의 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미국, 일본에 이어 유럽 등지로 수출할 길도 열렸다며 규모의 경제를 이야기하고 있지요. 이 시점에서, 수원지 근처 주민의 목소리가 터져나오기 시작합니다. “생수공장이 들어서고 30년이 지났는데,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때부터 쭉 잘 나오던 용천수와 계곡물이 말라 버렸어요. 우리는 마실 물과 씻을 물, 농사지을 물을 얻기 위해 이제 관정을 점점 더 깊게 파서 전기로 물을 퍼올려야 해요. 예전엔 공짜로 물을 마셨는데, 지금은 전기세가 장난 아닙니다. 그런데 생수공장에서 물을 더 퍼가겠대요. 도로로 지나가는 생수 트럭 때문에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매일 집이 흔들리고, 벽에 금이 갔어요. 제발 우리 좀 살려주세요.” 국내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게 먹는물을 공급하고, 더 나아가 하와이, 사이판, 괌, 일본, 중국, 유럽 등지로 진출하자고, 지리산 삼장면 같은 수원지에 사는 주민들에게서 물을 뺏고, 집을 부수고, 농토를 서서히 말려버려도 되는 걸까요? 지하수는 공유재인데, 법의 허점을 이용하여 허가를 받아 공유재를 사유화한 다음, 몇 푼 안되는 수질개선부담금만 납부하고, 주민들은 말라버린 계곡과 강물, 부서진 가정용 관정 모터, 흙탕물로 손상된 세탁기, 물이 나오지 않는 수세식 화장실 가운데서 시름만 깊어갑니다. 시끄러운 민원을 잠재우기 위해, 기업에서 마을발전기금을 주겠다거나, 체육시설을 지을 돈을 주겠다거나 하는 식으로 주민을 회유하기도 합니다. 몇 달전 삼장면 이장협의회장 백 모씨는 ㈜지리산산청샘물에서 마을발전기금 명목으로 준 돈 600만원을 개인통장으로 받고 착복한 혐의로 300만원의 벌금형을 받았습니다. 공유재인 지하수를 지역의 이장 및 사회단체장들이 일반 주민들에게 알리지 않고 사실상 개인적으로 기업과 거래하고, 공증까지 받은 엄청난 부정부패 사건이 이번 삼장 지하수 증량 허가 과정에서 밝혀졌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실과는 관계없이 272톤 증량은 진행되었습니다. 지하수 총량 관리와 주민 피해 보호는 뒷전이고, 프랑스 에비앙 같은 프리미엄 브랜드 전략으로 K-생수의 해외 진출을 확장하겠다는 야심찬 포부가 박수받는 세상. 과연 정상적인 세상일까요? *지리산 지하수 이야기 3-지하수는 지역에 이용의 우선권이 있는 공공재다. 물이용의 생태적 원칙에서 계속됩니다. <참고자료> ‘25.7.15일 기준 -지리산권 4개 시군 7개 업체 총 허가량: 7,244톤/1일 -한라산권(제주도) 총 허가량: 4,700톤/1일 (제주특별자치도 개발공사(제주삼다수) 4,600톤/1일+ 한국공항(주) 100톤/1일) * 제주도내 지하수 고갈 문제가 불거진 상황에서 한국공항(주)가 2025년 4월 30일 50톤/1일 추가 증량을 신청하여 논란 중 지리산권 샘물공장 허가량 및 제품명('25. 7.15 환경부 공표 먹는샘물 제조업체 현황에서 인용) ㈜산청샘물(산청 삼장면 600톤/일): 화이트, ECO화이트, 맑은샘지리산, 지리산을 그대로 담은 뽀로로샘물, 숲속의 맑은샘물, 지리산 청정수, 깊을수록 ECO, 가야 g water, 가야 g water ECO, 가야 water LK샘물(산청 삼장면 400톤/일): 지리산수워터, ECO JIRISAN SOO WATER, I’m 3H 지리산水, ECO I’m 3H 지리산水, 지리산 산수, 화이트, ECO화이트, 일화 광천수, 맑은나라 지리산水 산청음료(주)(산청 시천면 1,885톤/일): HEYROO미네랄워터, youus(유어스)맑은샘물, 미네랄워터 ECO, Homeplus Signature 맑은샘물, 맑은샘물, 하루이리터, 아이시스, ICIS, 아이시스 8.0, 내몸애 70%, PADAISE 화인바이오(산청 시천면 2,379톤/일): 지리산물하나, 지리산물하나eco, 미네랄워터(MINERAL WATER), YOUUS지리산맑은샘물, 지리산수(JIRISANSOO), NATURAL MINERAL WATER, 우리샘물수, 추신水, 지리산암반수, ㈜정상북한리조트 네추럴미네랄워터, 정식품 지리산 심천수, 유진샘물 ㈜ 회천(구례 산동면 530톤/일): 지리산 천년수, 셀밸런水, 지리산 산수려, New서울생수 ㈜더조은워터(전북 남원시 주천면 1,190톤/일): 깊을수록 ECO 무라벨, 깊을수록, 가야 g water, 가야 g water ECO ㈜호진지리산보천(하동군 화개면, 260톤/일): 오(eau), 쉐프큐QNC샘물, 지리산산수
    • 고을이야기
    • 산청
    2026-04-01
  • 꽃, 하면 생각나는 사람
    이촉 시인의 '내 마음을 다녀간 사람들' 꽃, 하면 생각나는 사람 지천에 꽃들로 어지러운 봄, 꽃 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노란 후리지아는 폐쇄 병동에서 근무할 때, 생각에 빠져 있던 한 여인의 얼굴, 후리지아는 그녀의 앙다문 입술, 콧방울 따라 고통이 배어나던 눈빛. 그 눈빛은 툭 하면 터질 듯한 아우성, 아니 텅 비어버린 마음, 그녀와 함께 햇빛 내린 창가에 앉아 있었다. 그녀만 아는 동굴에서 그녀가 한숨을 쉬면 후리지아가 노랗게 피어나는 듯했다. 그녀는 뒷짐을 지고 목적 없는 배회를 했다. 누가 목적 없는 배회라 했나? 후리지아가 해마다 목적 없이 피어난다고 생각해? 아니, 그 아픔을 가슴 깊이 묻어버린 탓이라고. 땅속 깊이 묻어버린 탓이라고. 아무렇지 않은 듯 살아가려고. 문득 생각나는 그녀와 후리지아, 장날 꽃집에서 후리지아를 보았다. 자꾸 뒤돌아보았다. 그 향이 자꾸 따라왔다. 담장을 넘어 핀 꽃을 보는 일은 특별하다. 구월이면 담 밑에 떨어진 주홍빛 능소화를 그냥 지나치기가 힘들다. 능소화는 가정간호사 근무 당시 기관절개를 하고 비위관을 통해 밥을 먹던 소녀 같다. 나는 1달에 한 번 능소화 피어있는 집을 방문한다. 안녕, 능소화, 그녀의 목에 걸친 기관 절개관을 교체한 후 가래를 뽑고 비위관을 교체한다. 그리고 능소화에 말을 걸지, 능소화는 누워서 눈으로 답하고 때론 물가래로 말을 걸지. 어쩌면 좋아 퉁퉁 부어버린 물관이 보이는 것 같다. 능소화는 부은 물관의 시간을 견디고 있다. 그 곁을 견디는 어머니가 있고 함께 견디는 아버지가 있다. 그 그늘에서 저절로 뿜는 물가래를 닦는 손길이 노련해서 마음이 아팠다. 소녀는 외출이 필요할 때 그 시간은 병원으로 옮긴다. 수술실로 옮긴다. 퉁퉁 부어오른 능소화 꽃잎. 나는 오므리고 피어나기를 기다리는 능소화의 시간에 잠겨 있다. 글쓴이 : 이촉 전남 구례에서 태어났다. 시집 『검은 해바라기』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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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례
    2026-04-01
  • 삼장 지하수 문제의 법적 쟁점: 경남도는 '지하수법'을 따르지 않아도 된다? (지리산 지하수 이야기 1)
    안녕하세요. 포네입니다. 오랜만에 산청 소식을 전합니다. 올해 초부터 삼장면 생수공장 일로 바빠서 <포네의 사사로운 사토리> 연재를 쉬었는데, 오늘부터 6회로 나누어 지리산 지하수 이야기를 전달해드리려 합니다. 지리산인에도 그동안 삼장의 지하수 문제를 다룬 기사들이 꽤 실렸습니다. 산청에서 30여년 동안 600톤/1일의 지하수를 취수해온 ㈜지리산산청샘물이 지난 2024년 600톤/1일(3개공)을 추가로 증량 신청하면서, 인근 주민들은 하루도 쉴 날이 없이 증량허가를 막기 위해 분투해 왔습니다. 임시허가를 받고 판 관정 3개 중 1곳에서는 물이 나오지 않아, 산청샘물은 450톤/1일(2개공)을 본 신청 했고, 경남도에서는 올해 1월에 272톤/1일을 증량허가했습니다. 그 사이, 기존의 600톤/1일에 대한 연장허가 신청이 있었고, 그대로 허가되었습니다. 1. 삼장 지하수 문제의 법적 쟁점: 경남도는 ‘지하수법’을 따르지 않아도 된다? 덕천강 수위 하락, 계곡수 고갈, 주민 관정 고갈 민원 등 지하수 고갈을 시사하는 자연 현상들은 접어두고, 삼장면은 기존 데이터만으로도 심각한 문제를 보여줍니다. 삼장면은 「산청군 지하수관리 기본계획」에 의해 지하수 고갈 위험 1등급 지역으로 규정되어 있습니다. 같은 집수구역 안에 있는 LK샘물의 허가량과 ㈜지리산산청샘물의 허가량, 「지하수법」을 통해 허가된 두 공장의 생활용수 사용량, 주민들이 생활과 농축산에 이용하는 지하수의 총량은 ‘지하수개발가능량’을 한참 초과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신규관정이 허가가 가능할까요? 상식적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데, 영혼 없는 기계적 행정을 통하면 허가가 가능해집니다. 「먹는물관리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환경영향조사의 항목」에는 ‘지하수개발가능량’이 아니라 ‘지하수 함양량’을 산정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먹는물관리법」은 수질 관리를 우선으로 하는 법이지, 지하수의 보전 관리를 위한 법이 아니기 때문에, 주민 의견 수렴이나 피해조사가 의무적으로 명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지하수 보전을 위한 법은 「지하수법」인데, 왜 지하수법에 의한 ‘제4차 지하수관리기본계획’에 규정된 ‘지하수개발가능량’을 먹는샘물 개발의 심의에 적용하지 않는 것일까요? 「지하수법」에 의한 지하수 보전·관리의 의무는 군수에게 있고, 「먹는물관리법」에 의한 먹는샘물제조업체의 허가권은 시·도지사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지하수법에는 다음의 조항이 있습니다. 제7조(지하수개발ㆍ이용의 허가) ① 지하수를 개발ㆍ이용하려는 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미리 시장(특별자치시장을 포함한다. 이하 같다)ㆍ군수ㆍ구청장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다만,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개정 2011. 5. 30., 2013. 5. 22.> 1. 자연히 흘러나오는 지하수 또는 다른 법률에 따른 허가ㆍ인가 등을 받거나 신고를 하고 시행하는 사업 등으로 인하여 부수적으로 발생하는 지하수를 이용하는 경우 이 조항은 어처구니없게도 경남도와 낙동강청이 ‘지하수법에 따른 지하수 관리는 산청군의 소관’이라고 발뺌하는 핑계가 되었습니다. 지하수법은 산청군의 소관이기 때문에, 경남도가 지하수법을 적용하지 않아도 불법이 아니라는 것이죠. 경남도는 합법적인 절차를 밟고 있음을 민원 답변에서 끊임없이 주장해 왔습니다. 이것은 행정의 종합적 적법성 원칙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것이지만, 행정의 종합적 적법성 원칙 또한 행정법에 명문화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지리산산청샘물로부터 환경영향조사를 의뢰받은 한국관정컨설턴트는 피해 가능성을 축소하고 함양량을 늘이기 위해 집수구역 2배 무단 확대, 광역 함양률 적용 등 부적절한 데이터를 이용한 환경영향조사서를 만들어 냈습니다. 주민들과 지역의 환경단체는 낙동강청에 조사서의 거짓·부실한 지점과 주민피해, 지역의 지하수 고갈 현상을 수차례 지적했으나, 낙동강청은 ‘저희는 경남도에서 전달한 조사서에 대한 기술적 심사만을 하고 있습니다. 주민 피해 관련해서는 도에 문의하시기 바랍니다’라고 응답하고, 허위 조사서를 반려하지 않고 심사를 진행했습니다. 한편, 경남도에서는 주민피해 민원에 대해 ‘낙동강청의 전문가 심사 결과 기술적으로 문제가 없고, 우리는 모든 절차를 합법적으로 밟았습니다’라며, 허가를 내어 주었죠. 경남도는 주민에 대한 공감능력을 상실한 채 책임을 회피할 합법적인 경로만을 찾아가고, 낙동강청의 일부 전문가들은 지역에 오랫동안 거주해온 주민의 증언은 조사 근거 자료에서 제외하고, 기업측에서 실시한 불완전한 양수검사 결과만을 과학적 근거 자료로 삼고 있습니다. 이 모든 불성실함은 편향적인 법 해석과 세부규칙 미리 만들어 놓기를 통해 정당화 됩니다. 결국 기업은 법의 허점을 이용하여 공유재인 지하수를 합법적으로 사유화하여 이윤을 얻습니다. 주민의 환경권을 보호할 법적 근거를 적극적으로 찾아야 할 행정이 면피의 법적 근거만을 찾다니, 차라리 AI가 더 공감능력이 뛰어날 것 같습니다. 모든 영역에서 발빠르게 앞서가는 전문가들이시니, “내가 책임지기 싫은데, 핑계대기 좋은 법적 근거와 법의 허점을 찾아줘~”라고 챗gpt에게 부탁이라도 한 걸까요? 지리산사람들에서는 이와 관련하여 경남도와 낙동강청을 대상으로 공익감사청구를 한 상태입니다. *지하수 이야기- 2. 생수와 죽음의 문화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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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3-26

기후위기 검색결과

  • [기후+마을] 벚꽃은 우릴 서럽게 한다
    벚꽃은 우릴 서럽게 한다 벚꽃은 올해도 아름답습니다. 한참 바라보았어요. 걸음을 멈추고 사진도 찍었어요. 개나리, 목련, 수선화, 산수유 다 한꺼번에 피었어요. 벌들은 혼란스럽겠지만, 풍경은 알록달록 별천지입니다. 저기 중동 땅에서는 전쟁 소식이 계속 밀려옵니다.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데도 나는 아무렇지 않게 아름다운 꽃들을 보고 있으니, 좀 민망합니다. 눈을 내리깔아요.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이에요. 아이 교복 빨고, 먼지 쓸고, 설거지하고, 냉장고 정리하고, 겨울 난 시금치 다듬고, 밥하고, 친정엄마랑 통화하고, 때 되면 돈도 벌고, 뭐 이러다 보면, 전쟁이니 기후위기니 머릿속에서 사라져요. 그러다 그렇게 일상을 아무렇지 않게 보내다가, 문득, 아주 잠깐, 생각이 납니다. 폭탄, 펑, 와르르. 그러면 또 잠시 멍해집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잠깐이에요. 나는 또 아무렇지 않게 일을 해요. 낮에 찍어 놓은 아름다운 꽃 사진을 천천히 넘겨 봐요. 세상은 아수라장인데 말이에요. 백석 시인의 시 수라가 떠오릅니다. 거미 새끼 하나 방바닥에 나린 것을 나는 아모 생각 없이 문밖으로 쓸어 버린다 / 차디찬 밤이다 어니젠가 새끼 거미 쓸려 나간 곳에 큰 거미가 왔다 / 나는 가슴이 짜릿한다 / 나는 또 큰 거미를 쓸어 문밖으로 버리며 / 찬 밖이라도 새끼 있는 데로 가라고 하며 서러워한다 이렇게 해서 아린 가슴이 싹기도 전이다 / 어데서 좁쌀 만한 알에서 가제 깨인 듯한 발이 채 서지도 못한 무척 적은 새끼 거미가 이번엔 큰 거미 없어진 곳으로 와서 아물거린다 / 나는 가슴이 메이는 듯하다 / 내 손에 오르기라도 하라고 나는 손을 내어 미나 분명히 울고불고할 이 작은 것은 나를 무서우이 달아나 버리며 나를 서럽게 한다 / 나는 이 작은 것을 고이 보드라운 종이에 받어 또 문밖으로 버리며 / 이것의 엄마와 누나나 형이 가까이 이것의 걱정을 하며 있다가 쉬이 만나기나 했으면 좋으련만 하고 슬퍼한다 -백석, 「수라(修羅)」 당장 전쟁을 막을 수 없을지라도 시 속의 화자는 추운 밤에 거미를 세 마리나 문밖으로 내보내요. 처음엔 아무 생각 없이 한 마리를 내보냈는데, 그다음으로 어미처럼 보이는 큰 거미가 나타났지 뭐예요. 자기가 아까 쓸어 내버린 거미의 어미인가 싶어 문밖으로 또 내보내요. 아까 그 새끼와 만나길 바라면서 말이죠. 죄책감을 느낀 것 같아요. 그런데 아뿔싸, 이번엔 아주 여린 새끼 거미가 나타났어요. 화자는 가슴이 메요. 밖이 춥지만, 그래도 가족 있는 곳이 좋겠다고 생각해 문밖으로 내보내려는데, 이 녀석이 자꾸 달아나요. 화자는 서러워해요. 결국 그 작고 여린 녀석을 종이에 받아 문밖으로 내버려요. 화자는 적극적으로 거미 가족을 따뜻한 방에서 살게 하지는 않았지만, 자기가 차디찬 밖으로 내버린 거미들을 생각하며 슬퍼해요. 우리가 적극적으로 전쟁을 멈추게 할 수는 없을지라도, 화자와 같은 심정으로 ‘가슴이 짜릿하고, 서럽고, 가슴이 메고, 슬퍼’하는 마음으로 전쟁이 멈추기를 바랄 수는 있을 것 같아요. 벚꽃을 보다가도, 돈을 벌다가도, 공부하다가도, 집안일을 하다가도, 잠시라도 멈춰서 ‘제발 전쟁이 멈추게 해 주세요.’ 하고 바랄 수 있어요. 그런 마음은 ‘제발, 지구 생명들이 더 사라지지 않게 해 주세요.’ 하고 비는 마음과 같을 거예요. 기후위기를 걱정하는 마음은 전쟁이 멈추길 바라는 마음과 연결될 테니까요.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는 살육과 착취가 사라지길 바라는 마음이겠지요. 우리는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보내고 있지만, 그럼에도, 잊지는 않으면 좋겠습니다. 전쟁이 멈추어야 한다는 마음,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마음, 죄 없는 생명이 죽어 나가는 이 지구 가열이 멈추길 바라는 마음, 이런 마음들을 꼭 붙들고 살면 좋겠습니다. 이 마음들이 모여 결국 전쟁을 막고, 독재자를 막고, 위법한 비상계엄을 막고, 일상의 폭력을 막을 수 있지 않겠어요? 적어도, 폭력배 무리와 한편이 되지 않겠다는, 그런 짓거리에 동조하지 않겠다는, 자기 선언은 할 수 있겠지요. 나는 나를 속이고, 그저 안도하는 걸까 그러나 때로는 이런 순간순간의 알아차림이, 고작 그것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고 헛웃음이 날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면 어느 소설 속 인물들, 예를 들면, 『몫』에 나오는 희영 같은 인물이 나와 내게 쏘아붙일 것만 같습니다. 나는 그런 사람이 되기 싫었어. 읽고 쓰는 것만으로 나는 어느 정도 내 몫을 했다, 하고 부채감 털어 버리고 사는 사람들 있잖아. 부정의를 비판하는 것만으로 자신이 정의롭다는 느낌을 얻고 영영 자신이 옳다는 생각만으로 사는 사람들. -최은영, 『몫』 나도 그런 사람인지 생각해 봅니다. 그저 읽고 쓰는 것만으로, 그저 순간순간 전쟁이 멈추길 바라는 기도를 올리는 것만으로, 그저 부정의를 비판하는 이들의 글에 좋아요를 누르는 것만으로, 마치 내가 내 몫을 다한 것처럼 안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렇게 휘청거리다가, 또 마음 한자리에서는 이런 생각이 올라옵니다. 시인 윤동주가 적극적으로 항일 투쟁에 앞장서지 않았더라도, 일제강점기 민족의 비극과 한을 제 몸에 담아 고뇌하고, 제 역할을 의심해 부끄러워하고 우리말 시를 써 온 그의 마음을 소극적이라고, 자기만족일 뿐이라고 깎아내릴 수 있겠는가 하는 물음말입니다. 날마다 하는 반성과 깨어 있음이야말로 나를, 그리고 서로를 붙들 힘이 되지 않는가, 또, 스스로 변질되지 않는 길이자, ‘자신이 옳다는 생각만으로 사는 사람’이 되지 않게 나를 닦을 수 있지 않겠는가…. 뭐, 이렇게 생각하면서 다시 종말을 늦출 이야기들에 귀를 기울이곤 합니다. 서러움과 부끄러움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다시 벚꽃을 봅니다. 여린 것에 몹쓸 짓을 한 것만 같아 느끼는 죄책감이나 고통받는 이들을 외면하여 드는 미안함과 부끄러움은 우리가 지금 이 아수라장 같은 세상에서 끝끝내 버리지 말아야 할 마음 조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런 마음을 잊지 않게 하는 것은 시 한 구절이기도 하고, 떨어지는 벚꽃잎 하나이기도 하고, 나를 사랑해 주는 한 사람이기도 하고, 학교에서 만나는 따뜻한 선생님의 손길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백석의 시 수라가 일제강점기 가족 공동체의 해체를 표현했다느니 어쩐다느니 하는 시 교육을 하고, 시험 문제로 내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국어 선생님들의 마음은 또 얼마나 서러울까요. 벚꽃이 나리는 계절에도 아름다움을 느낄 새 없이 시험 공부를 해야 하는 아이들의 마음은 어떨까요. 전쟁으로 사람이 죽는 일보다, 당장 내 주식이 떨어지는 것에 분노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어떻게 달랠 수 있을까요. 전쟁의 끔찍함과 아픔은 대체 언제 어떻게 전할 수 있을까요.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미국에도 깨어 있는 시민이 있어서, 트럼프의 전쟁을 비판하며 “노 킹”을 외치고, 전쟁에 참전하지 않겠다며 양심적 병역 거부를 신청하는 이들이 늘었다고 합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 권리 옹호를 위한 미국 시민단체인 ‘양심과 전쟁 센터’의 소장 마이크 프라이스너는 한 일간지 인터뷰에서 최근 양심적 병역 거부 문의가 무척 늘었는데, 전쟁에서 자신이 죽을까 봐 두렵다고 말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고, 모두 정당성이 없는 전쟁에서 ‘누군가를 죽이게 될까 봐’ 두려워했다고 말했습니다. 내가 누군가를 죽이게 될까 봐 드는 두려움, 그 두려운 마음이 모여 점점 커지면 좋겠습니다. 전쟁을 막는 마음은 큰 결단과 엄청난 선동에 의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날마다 느끼는 아주 작은 서러움과 서글픔과 부끄러움, 아픔, 슬픔, 두려움 같은 마음들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런 ‘서러운’ 마음을 잊지 않도록, 나 혼자만 잘 먹고 잘살면 된다는 생각에 빠지지 않도록, 나만 아니면 된다는 마음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그렇게 서로서로 붙잡을 수 있도록, 시 한 구절, 벚꽃 한 이파리, 사랑하는 이의 얼굴, 따뜻한 손길을 일상 사이사이에서 잊지 않아야겠습니다. 그리고, 생각해 봅니다. 선거철에 더러운 돈을 주고받는 사람들이 스스로 반성하지 못하는 세상에서는 전쟁이 멈추기 어렵다는 것을요. 전쟁은 마치 트럼프 같은 사람만 일으키는 것처럼 생각하지 않아야겠습니다. 내가 나날이 하는 선택들이 전쟁이 될 수 있음을, 부끄러움을 모르고 양심을 파는 일이 곧 전쟁의 씨앗임을 잊지 않아야겠습니다. 나치 군인들은 매일 1,000구가 넘는 유대인 시체를 불태우고, 집에 오면 착한 남편이자 아빠로서 가족에게 사랑이 담긴 편지를 썼다고 하지요. 아름다운 봄 사이사이 느끼는 서러움과 부끄러움이 우릴 구원하길 빌어 봅니다. 글쓴이 : 문홍현경 <자기 씨앗대로 산다> 지은이
    • 기후위기
    2026-04-09
  • 이미지로 소비되는 전쟁
    이미지로 소비되는 전쟁 "강자는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약자는 당해야 하는 것을 당한다" 투키디데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 2차 세계대전이 1차 세계대전과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지점은 바로 민간인 사망자다. 1차 세계대전은 전쟁 자체보다 스페인 독감으로 죽어간 사람이 더 많았다는 이야기가 돌 정도였다. 특히 1차 대전의 상징인 참호전은 비위생적이고 밀집된 환경 탓에 독감이 번지기에 최적의 조건이었고, 이는 군인과 민간인 모두에게 치명적이었다. 하지만 2차 대전은 양상이 달랐다. 군인보다 민간인이 더 많이 죽어갔다. 소련과 중국의 민간인 희생자만 합쳐도 3,000만 명에 이를 정도로 참혹했다. 유대인은 홀로코스트로 600만 명이 학살당했고, 그중 절반인 300만이 폴란드계 유대인이었다. 사실 600만이라는 숫자도 거대하지만, 일본군이 난징 대학살 등을 통해 죽인 중국인의 숫자는 이를 압도한다. 중국이 일본에 대해 강한 반감을 품는 데는 다 그만한 역사적 이유가 있는 셈이다. 2차 대전 중 한국인 사망자는 약 40만 명으로 추정된다. 한국은 전쟁 당사국으로 참가하지 않았지만, 일제강점기 아래 강제징용과 위안부로 끌려가 타지에서 수많은 사람이 희생당했다.결국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나라는 소련과 중국이다. 두 나라는 압도적인 인명 피해를 입었으며, 특히 민간인 희생자 비율이 매우 높았다. 이 데이터를 보면 몇 가지 특이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일본인 피해자가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점이다. 군인과 민간인을 합쳐도 300만 명 내외다. 이는 일본이 전쟁 초기 인명 소모가 큰 지상전보다는 비행기와 함선을 이용한 기술전을 펼쳤고, 섬나라라는 지리적 이점 덕에 본토가 전장이 되는 것을 피했기 때문이다. 일본 민간인 희생 대부분은 전쟁 막바지 미군의 대대적인 공습과 원폭 투하에 집중되어 있다. 그전까지 일본인들에게 전쟁은 라디오 속 이야기였을 뿐이다. 미국 역시 비슷하다. 미국의 민간인 사망자는 약 2,000명에 불과하다. 본토에서 죽은 사람은 진주만 공습 당시 60여 명과 일본이 편서풍에 실어 보낸 풍선폭탄으로 희생된 6명 정도가 전부다. 나머지는 대부분 상선 공격에 의한 사망자였다. 미국인들에게도 전쟁은 라디오와 TV로 시청하는 스펙터클이었다. 베트남 전쟁 이후 미국이 징병제에서 모병제로 전환하면서 전쟁은 더욱 멀어졌다. 입대하는 청년들이 대개 가난한 계층이다 보니, 중산층 이상의 대중에게 전쟁은 방송으로 관람하는 오락 게임처럼 변해버렸다. 수잔 손택이 지적했듯, 현대의 전쟁은 스크린 너머의 무감각한 이미지가 되었다. 권력이 설계한 무감각과 군수산업복합체 이러한 양상은 고대 아테네에서도 발견된다. 민회에서 말을 잘하는 소피스트들은 전쟁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시민들을 선동해 자신의 입지를 키웠다. 젊고 잘생긴 알키비아데스는 시칠리아의 풍요로움을 화려하게 묘사하며 정복의 영광을 약속했고, 그 웅변에 취한 아테네는 무모한 침공을 감행했다가 군 대부분이 궤멸하는 참사를 맞았다. 대학 시절 자주 접했던 '군수산업복합체'라는 개념은 단순히 경제적 비중을 넘어선다. 이는 전쟁을 일으켜 무기를 소비하고, 성능을 전시하며 새로운 무기를 판매하는 고도의 전략을 의미한다. 『미국 민중사』를 쓴 하워드 진은 미국인들이 전쟁 영상에 무감각해진 것은 우연이 아니라 권력이 의도한 결과라고 보았다. 본토가 안전하다는 지리적 행운과 지배층의 역사 조작이 결합하여, 시민들이 타국의 학살에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번 전쟁에서도 미국은 엄청난 양의 무기를 소비했고, 군수 업체들은 다시 무기를 생산할 막대한 기회를 얻었다. 전쟁이 일상화되면 전쟁 당사국이 아닌 나라들조차 '공포' 때문에 무기를 구입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오래전부터 무기 경쟁을 제로섬 게임이라 부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누군가 핵무기를 가지면 나도 가져야 하고, 상대가 50만 대군을 유지하면 나도 그에 맞춰 준비해야 한다. 서로 무기가 없다면 쓰지 않아도 될 자원이 끝없이 소비된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전쟁 억지력이 절실한 시대다. 인류 역사상 전쟁이 없던 날은 단 하루도 없었을지도 모른다. 호모 사피엔스는 사랑으로 평화를 추구하는 보노보보다는, 폭력으로 무리를 지배하는 침팬지에 더 가까운 존재인 것 같다.
    • 기후위기
    2026-04-09

기획 검색결과

  • [뒤웅박 씻나락] "침묵이 깨지고 다른 말이 자라는 동네책방 살롱드마고" _달리
    침묵이 깨지고 다른 말이 자라는 동네책방 살롱드마고 우리 책방 ‘살롱드마고’에는 세 가지가 없다. 입시용 참고서나 문제집, 대형서점의 베스트셀러 자리를 차지하는 자기계발서, 평생 권위를 누린 남성 문학가들의 작품집. 대신 다른 세 가지가 있다.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며 생각을 전환해 주는 인문서, 다양성과 페미니즘을 주제로 하여 소수자의 목소리가 담긴 장르별 도서들, 그리고 자기만의 언어로 세상을 한발 더 나아가게 하는 용감한 여자들의 이야기. 살롱드마고 곳곳에는 성소수자를 비롯해 누구나 있는 그대로의 존재로 환대하고 성폭력에 반대한다는 메시지가 책과 이미지로 전시되어 있다. 이곳에 방문하는 사람들이 “들어오는 순간 왠지 안전하게 느껴진다”고 말하는 이유는 아마 살롱드마고만의 북큐레이션과 지향이 공간에 그러한 색을 입히고, 힘을 더하기 때문일 것이다. 살롱드마고는 2015년 남원시 산내면에서 여성주의 문화단체 ‘문화기획달’의 활동공간이자, 마을 여성들을 위한 창작·교육 공간으로 출발했다. 이후 조직을 재구성하며 ‘협동조합마고’를 창립하고 2020년 활동지를 남원시청 옆으로 옮기면서, 살롱드마고를 지역서점이자 페미니즘 문화공간으로 다시 열게 되었다. 현재는 카페를 같이 운영하면서 책방지기들이 추천한 초대작가들의 작품과 뉴스레터를 볼 수 있는 ‘아티스트 테이블’, 기록을 테마로 하여 필사와 다꾸(다이어리 꾸미기)를 할 수 있는 ‘플레이 라운지’, CD로 청음을 하며 음악가들의 도서 큐레이션을 볼 수 있는 ‘뮤직 바’ 등 다채로운 구성으로 책방의 경험과 가능성을 확장했다. 독서와 기록, 퀴어에 관한 귀엽고 개성 있는 굿즈들도 판매해 보는 재미를 더한다. ‘살롱’은 과거 유럽에서 문학가와 예술가, 철학자들이 모여 토론하고 사교활동을 하는 장이었는데, 주로 귀족 여성이 공간의 주인이거나 모임을 주도했다고 한다. ‘마고’는 지리산 여신의 이름으로, 신성한 창조주로서의 힘을 상징한다. 우리는 살롱드마고가 그 이름들의 유래처럼 지역 여성들이 만나고, 공부하고, 각자의 재능과 창조성을 발휘하면서 함께 힘을 나누고 성장하는 곳이 되기를 바란다. 우리는 책방이 단순히 책 파는 곳을 넘어, 책을 매개로 사람들과 소통하고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가는 곳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남원 같은 농촌 마을 위주의 소도시 지역에서는 문화적 갈증과 욕구를 충분히 해소하기 어려운데, 살롱드마고에서 여는 글쓰기모임이나 독서모임, 타로 워크숍, 문화예술 프로그램은 시민들에게 일종의 해방구이자 실험무대가 된다. 특히 가부장적인 지역사회에서 성역할을 강요받는 여성들은 책방에서 같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대화하면서 잃었던 자신의 꿈과 목소리를 되찾는다. 몇 년 전 글쓰기모임 참여소감 중 “이제 주변을 배려하느라 나를 함부로 대하지 않겠다”는 말은 우리에게 큰 감동과 울림을 주었다. 공동체의 좁은 관계망 속에 ‘나’를 드러내기 힘들었던 사람들이 책방에 와 위로와 지지를 경험하고, 자신의 삶에서 다가오는 도전과 두려움에 맞설 힘을 키워가는 것이다. 미국의 장애인권여성운동가 해릴린 루소는 책 『나를 대단하다고 하지 마라』에서 “우리를 속박하는 것은 우리의 다름이 아니라 침묵”이라 했다. ‘다른’ 존재와 말을 품어주는 울타리가 넓어질수록 우리는 더 자유롭고 충만해지며 삶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살롱드마고의 고요한 서가에서, 경청을 약속하는 모임 테이블에서, 매일 침묵이 깨진다. 그곳에 ‘다른’ 말이 자란다. *한겨레신문에 기고했던 글 “지리산 여신 마고의 책방, ‘살롱드마고’에 없는 것”(2023.03.03.)을 <지리산人> 뒤웅박씻나락 칼럼에 맞게 수정한 글입니다. 글쓴이_달리 살롱드마고 책방지기 [뒤웅박 씻나락 칼럼] 지리산 자락 삶이 우리 사회의 대안적 삶의 모습이 되길 꿈꾸는 <지리산人>의 바람을 담아, 지리산 곳곳에 계신 씨앗 같은 이들의 삶과 생각을 싣고자 합니다. 칼럼 글쓴이의 일부 주장이 <지리산人>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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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뒤웅박 씻나락
    2026-04-20
  • [안철환의 절기 이야기] 제비가 돌아오는 3월3짓날과 청명
    청명 즈음해 드는 명절이 한식입니다. 명절은 대부분 음력으로 따지는데 한식만 예외로 양력으로 따집니다. 동지 105일 후를 한식으로 하거든요. 근데 하필 왜 105일일까요? 맞습니다. 이게 15일 정도 간격으로 오는 절기에 맞추다보니 그리 된 거지요. 동지 이후 청명까지 7개 절기가 드니 15일 곱하기 7개하면 105일이 되거든요. 중국 춘추시대 진晉나라 때 산에 숨어살며 나오지 않는 개자추라는 충신을 끌어내기 위해 불질렀다가 그 불에 타죽어 왕이 그날만은 불을 지르지 않고 찬밥寒食을 먹었다는 고사에서 비롯된 게 한식날입니다. 근데 그 고사는 중국 얘기이니 잘 모르겠고요, 제가 볼 때는 봄에 농사 준비로 불 테우는 일을 한식과 청명 전에는 끝내고 조상 산소에 찾아가 잘 올라온 잔디를 밟아주거나 뗏장을 가져다 입혀주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산소까지 테워서도 안되지만 또 그 때되면 봄비도 오기 시작해 불 태울 일도 없을테니요. 청명과 관계된 음력 명절로는 3월3짓날이 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이날을 명절로 삼아 동네 잔치를 벌였답니다. 우리는 1월1일 설날, 3월3일 삼짓날, 5월5일 단오날, 7월7일 칠석날, 9월9일 중구절 등을 길한 날이라 해서 명절로 삼았어요. 이 날들이 전부 양(+)을 뜻하는 홀 수가 겹치는 날이라 길하게 본 겁니다. 양이 겹쳤다는 의미의 중양절이라고도 하죠. 그래 3월3짓날은 1월에 시작한 봄기운이 완연해지는 날로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온다 했습니다. 삼짓날이 그만큼 날씨가 봄답게 온화하다는 뜻도 있지만 그래서 씨앗 파종하기 딱 좋은 때라는 게 중요하죠. 말하자면 씨앗 심고 싶은 철인데요, 사람들에겐 사랑을 나누기 딱 좋은 철이기도 합니다. 아마 바람둥이 제비족이란 말도 이와 관련있을 법한데요, 그렇지만 마구 씨를 뿌려대면 쭉정이만 나올 수 있으니 제비족 같은 바람둥이는 경계하란 뜻이 담겨 있을 거라 상상해봅니다. 마찬가지로 봄과 관계된 것으로 바람이 있지요. 생각할수록 바람이란 말은 참 재밌습니다. 옛날엔 바람을 하늘님의 숨이라 했어요. 그래 하늘님이 노하시면 태풍 같은 무서운 바람이 불고 하늘님이 기분 좋으면 살랑살랑 사랑의 봄바람이 불지만 인간이 오버해 미혹한 바람을 일으키면 사단이 났던 거지요. 성경에서 하느님이 흙으로 인간을 빚은 다음 코에다 사랑의 숨을 불어넣었다 하는 것도 비슷한 얘깁니다. 청명이 되니 모든 봄꽃이 만개를 하네요. 옛날엔 순서대로 꽃이 폈는데 요즘은 경쟁하듯 한꺼번에 핍니다. 거의 제일 먼저 피는 개나리가 보통보다 일주일 늦게 피더니 곡우 즈음해서 피는 조팝꽃이 벌써 폈어요. 벗꽃은 자기 순서 기다린 듯 개나리 피기 무섭게 피네요. 올해는 음력이 늦어 개나리가 늦게 핀 듯 한데, 벗꽃 조팝꽃은 일찍 피니 늦은 음력 탓하기가 힘듭니다. 음력이 늦어 감자나 봄 채소들은 늦게 심으려는데 벗꽃 조팝꽃 일찍 핀 걸 보면 벼와 곡식들은 늦게 심는 게 능사는 아니겠어요. 문제는 서리에 약한 고추 같은 과채류들입니다. 음력이 늦은 올해 같은 경우 늦서리가 올 가능성이 농후하기에 되도록 늦게 심는 게 좋을 것 같거든요. 여전히 저희 밥상엔 나물이 끊이지 않습니다. 마늘 대용인 달래는 기본이구요, 돌나물, 씀바귀, 부지갱이도 늘 올라오는 밑반찬이지요, 잠깐잠깐 요 때만 먹을 수 있는 눈개승마 나물도 입맛을 돋구는 데 모자람이 없더만요. 제가 울릉도 미나리라 이름 붙인 전호나물도 생채로 초고추장에만 찍어 먹는데 그 맛이 그만입니다. 요즘엔 원추리 나물과, 머위나물이 핫 이슈입니다. 머위나물은 살짝 비린내 같은 게 있지만 들깨가루에 무치니 그 맛은 사라지고 머위 고유의 향과 맛이 살아나대요. 원추리 나물은 독이 있어 망설이다 작년부터 먹기 시작했는데 진짜 감동이더이다. 독을 제거하기 위해 조금 더 세게 대쳐야죠. 식감과 우러나는 단맛이 끝내주고 입맛을 돋구는 데 다른 반찬이 필요없어요. 청명이 다가오니 이젠 나무 순들이 얼굴을 내밀기 시작합니다. 제일 먼저 올라온 두릅에서부터 다음 주부터는 나무 순들을 먹을 수 있을 것 같아 또 군침이 도네요. 구 기자 순, 엄나무 순, 화살나무 순, 다래 순, 오가피 순, 가죽나무 순이 순서를 기다릴 겁니다. 나무 순 중에서 최고라는 옻나무 순만 먹어보질 못했어요. 나물을 이렇게 많이 먹는 나라도 드물지만 옻순처럼 독이 있는 나물을 즐기는 사람들은 더 없을 겁니다. 한 번은 옻닭 백숙 먹으러 갔더니 식당에서 옻독 오르지 않게 약을 주대요. 약이라면 손사래치는 체질이라 걸리면 걸리라지 하며 약 먹지 않고 먹었는데 멀쩡했어요. 아마 이것저것 나물 많이 먹으며 내성이 생긴 것 아닌가 싶었죠. 청명엔 아무거나 심어도 싹이 잘 나지만 그래도 파종하는 날은 음력 삼짓날과 양력 절기인 청명과의 관계를 잘 살펴 잡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청명과 음력 삼짓날 사이에 파종날을 잡는 게 좋다고 보시면 됩니다. 청명은 절節이고 곡우는 중中이어서 청명은 2월에 들 때도 있고 3월에 들 때도 있어요. 곡우는 중이어서 꼭 3월에 들지만요. 그래 청명이 어느 달에 드느냐에 따라 파종 시기가 달라집니다. 방금 청명과 삼짓날 사이에 심는다 했죠. 그러니까 청명이 2월에 들면 삼짓날 전에 심어야 하니 음력으론 일찍 심고, 청명이 3월에 들면 삼짓날 지나 심어야 하니 음력으론 늦게 심습니다. 그렇지만 양력으로 보면 반대에요. 음력으로 빠르면 양력으론 늦게 심고 음력으로 늦으면 양력으론 빨리 심는다는 거죠. 말로 하니 헷갈리지만 손으로 달력 메모장에 써가면서 하면 금방 파악이 되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청명 농사일정 글을 쓴 안철환 선생은 온순환협동조합, 전통농업연구소 대표이고 경기도 안산에서 ‘산림생태텃밭 먹거리숲 농장’을 운영한다. 남은 음식물과 똥오줌, 커피 찌꺼기를 받아 직접 거름 만들기를 실천하고 있으며, 우리 토종 종자와 전통 농업 살리기에 열중하고 있다. 25년 전, 처음으로 심은 배추 씨가 3일 만에 싹 트는 걸 보고 ‘씨 안에 누가 있었구나!’ 깨닫고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우리가 먹는 배추는 단순히 물질적인 먹을거리가 아니라 나와 별 차이 없는 생명이며, 그래서 먹는다는 것은 생명을 먹고, 생명과 소통하고, 생명과 하나 되는 일이라고 믿는다. 쓴 책으로 《시골똥 서울똥》(2009), 《24절기와 농부의 달력》(2011), 《호미 한자루 농법》(2016), 《토종농법의 시작》(2020)이 있고, 옮긴 책으로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2004)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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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4-10
  • [곰주옥 X 인간주옥] ③주옥이는 잠만보
    ‘잠만보’로 말하자면, 잠만보는 포켓몬스터에 등장하는 포켓몬으로 하루 대부분을 자거나 먹는 데 쓰는 ‘잠꾸러기’이다. 먹는 건 모르겠고, 자는 건 나와 겨뤄볼 만하다. 나는 말을 하다가도 잠들고, 아이스크림을 먹다가 손에 아이스크림을 든 채로 잠이 든다. 버스, 기차, 트럭, 배, 비행기 등 운송수단을 가리지 않고, 좌석에 앉으면 5분 이내 잠들고, 내려야 할 곳에선 귀신처럼 깬다. 저녁에 잠드는 건 5초면 된다. 머리가 베개에 닿자마자 잠이 든다고 봐야 한다. 사람들은 국립공원 대피소의 극상 상황에서도 잘 자는 내가 부럽다고 한다. 나는 잠에 관해서는 현존하는 절대 지존 ‘잠만보’다. 내가 언제 어디서나, 특히 저녁에 잘 자는 이유에 대해 ‘피곤해서’, ‘간이 안 좋아서’, ‘활동량이 많아서’, ‘멀미해서’, ‘잠 시간이 부족해서’ 등의 추측이 난무한다. 모두 그럴듯하지만, 확실한 한 가지는 일찍 일어나기에 일찍 자는 것이다. 나는 새벽 4시에 일어난다. 중학생 이후 몸에 밴 습관이다. 부모님께서 새벽 3시면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셨기에 어쩌다 보니 나도 그렇게 됐다. 새벽 4시에 일어나 뭘 하냐고? 빨래도 하고, 청소도 하고, 책도 읽고, 글도 쓰고, 절도 하고, 명상도 하고, 기도도 하고, 그대가 저녁에 하는 일을 새벽에 할 뿐이다. 그렇게 시작되는 평범한 하루 속에서 새벽에 일어나 어두운 창이 밝아오는 걸 바라보는 건, 삶을 풍요롭게 한다. 잠에 관하여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내가 반달가슴곰(반달곰)이 겨울잠을 잔다는 걸 알게 된 후, 그의 겨울잠에 대해 궁금한 게 많아졌다. 가을에 맘껏 먹은 곰들은 굴에 들어가 잠을 자면서 한 해를 마무리하고, 봄이 오면 굴을 나와 한 해를 시작한다. 먹지 않고 긴 겨울을 어떻게 보낼 수 있을까? 그렇게 오랜 시간 잠을 자면 잠자기 전에 있었던 일을 기억할 수는 있을까? 혹시 동지에서 춘분까지는 어디 먼 곳에 다녀오는 건 아닐까? 그렇다면 진짜 멋진 일일 텐데 말이다. 이처럼 꼬리를 무는 궁금증 속에서 알게 된 사실은, 반달곰이라고 해서 모두 겨울잠을 자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한반도에 사는 반달곰은 겨울잠을 자지만 대만 반달곰은 겨울잠을 자지 않는다. 김만우 팀장(구례곰마루쉼터)은 반달곰이 겨울잠을 자는 이유에 대해 “가장 큰 이유는 먹이 부족입니다. 먹을 게 없으니까 그걸 극복하기 위해 진화적으로 동면을 하는 거죠. 대만의 경우는 먹을 게 있어서 그렇습니다. 동면은 극한 환경에서 나타나는 행동”(2026년 3월 31일 김만우 팀장 면담)이라고 설명한다. ↑지리산 반달곰들은 화엄사 홍매가 필 즈음에 겨울잠에서 깨어난다 (그림 결) 그럼 내가 잠을 잘 자는 이유도 어떤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행동일까? 그러고 보니 나는 고민이 있거나, 화가 나거나, 일이 안 풀릴 때 잠을 더 잘 잔다. 이런 나를 두고 동료는 ‘그럴 때 잠이 오냐? 소리를 질러야지! 아니면 술을 마시든가.’라고 말하지만, 놀랍게도 잠을 자고 나면 고민도, 화도, 일도 절반은 해결되어 있다. 내가 잠을 자는 동안 누군가가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분명하다. 반달곰도 겨울잠을 자고 나면 슬프고, 아픈 기억들이 반으로 줄어들면 좋겠다. 작년 ‘구례곰마루쉼터’(곰쉼터)의 성원이 된 반달곰들, 그중에서 나와 같은 이름을 갖고 있는 ‘곰주옥도 겨울잠을 잤겠지.’ 김만우 팀장에게 물어봤다. 윤주옥: 여기 곰들도 겨울잠을 잔 거죠, 곰주옥도?(호호) 김만우: 아니에요. 지난해 24개체가 들어왔는데, 그중 7개체만 동면(겨울잠)을 시켰어요. 윤주옥: 네! 왜요? 김만우: 그게요, 여기 있는 곰들 대부분은 사육되던 농장에서 겨울잠을 자지 않았다고 합니다. 겨울잠은 곰들의 생리적인 행동이지만, 사육되던 개체들은 동면 경험이 없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검증되지 않은 개체는 사고 위험 때문에 동면을 안 시킨 거고요. (2026년 3월 31일 김만우 팀장과의 대화) 사육되던 곰들은 겨울잠을 안 잤구나! 자연에서는 당연한 겨울잠도, 농장이나 동물원, 보금자리(구례곰마루쉼터, 화천곰보금자리)처럼 인간이 규정한 환경에서는 ‘재우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어떻게 재우는 걸까? “먹이를 조절하는 건데요, 가을에 가장 많이 먹이고, 동면 직전에 점점 줄이다가 마지막에 끊습니다. 그다음에는 빛을 차단하고 보온재를 넣고, 사람 접근을 막아서 동면 환경을 만들어줍니다”(2026년 3월 31일 김만우 팀장 면담) ↑ 겨울잠에 드는 반달곰의 눈빛 이처럼 동면은 세심한 환경 조성과 준비 과정을 거쳐 이루어지는데, 여기서 한 가지 인상적인 이야기가 더해진다. 곰쉼터의 곰들에게 짚을 넣어주었더니 스스로 탱이(낙엽이나 짚을 모아 만든 잠자리)를 만들었다고 한다. 뜬장에서 살았던 곰주옥도 태어나 한 번도 해보지 않았을 탱이를 만들었다고 하니, 기특하면서도 짠하다. 곰쉼터의 곰들을 1주일에 한 번씩 만나는 나는 3월 중순, 따뜻하고 햇살도 좋은 날인데도 움직이지 않고 땅바닥에 누워 먼 하늘만 바라보던 곰주옥이 애처로웠다. 어디 아픈지 걱정도 되었다. 김만우: 아니에요. 원래 곰은 활동을 많이 하는 동물이 아닙니다. 개처럼 뛰어다니지 않아요. 상위 포식자들은 대부분 그렇습니다. 필요할 때만 움직이고, 평소에는 쉬는 시간이 많습니다. 윤주옥: 아, 그렇군요. 상위 포식자다운 위엄이 있네요. 동면이라고 해도 계속 잠만 자는 건 아니죠? 김만우: 네, 자다 일어났다가 반복합니다. 물도 먹고, 날씨 좋으면 나와서 햇빛도 쐬고요. 다만 자는 비율이 훨씬 높아서 동면이라고 하는 겁니다. (2026년 3월 31일 김만우 팀장과의 대화) ↑ 구례곰마루쉼터에서 바라본 구례의 봄. 곰쉼터의 곰들에게 올해 봄은 어떻게 기억될까. 곰에 대해, 특히 곰주옥에 대해 관심이 많다 보니 그의 눈빛, 움직임, 소리에 민감해진다. 나의 민감함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가만히 쉬고 있는 시간을 ‘이상하다’고 여기거나, 나의 기준으로 그의 상태를 짐작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럴 때 적당한 표현이 ‘과유불급(過猶不及)’이다. 알고자 하는 마음이 앞설수록, 한 걸음 물러서는 태도 또한 필요하다. 곰주옥이 그저 곰답게, 자기의 방식대로 살아가도록 지켜보는 일, 어쩌면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거리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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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곰주옥X인간주옥
    2026-04-01
  • [뒤웅박 씻나락] "크리스천들의 손에 쥐어진 날 선 십자가" 성염
    크리스천들의 손에 쥐어진 ‘날 선 십자가(cruz espada)’ 20여 년 전 필자가 한국 외교관으로 바티칸 시국에 주재할 때(2003~2007)였다. 해마다 1월이면 교황이 바티칸 주재 대사들 부부를 초빙하여 신년하례식을 가졌다. 2,000여 년 승계된 제정일치(祭政一致) 국가답게 교황이 당해 연도 국제정세를 일별하면서 정의와 평화, 인권과 환경 문제를 두고 종교적 시각에서 법적 한계를 초월하는 인도적 호소를 전세계와 수교국 국민들에게 보내는 자리였다. 대사 부부와 공관원 전부가 초빙받는 ‘신년하례회’는 바티칸 ‘왕홀(Sala Regia)’에서 열렸는데 500여 명이 들어가는 그 큰 홀의 한쪽 벽은 천정까지 거창하게 그려진 프레스코 벽화였다. 1571년 그리스도교 신성동맹의 해군이 이슬람 해군을 격파하여 오스만 제국의 서방 진출을 저지한 승리를 기리는 초대형 작품이었다(G.Vasari의 1572년작). 내 곁에 앉은 이집트 대사나 리비아 대사더러 “저 벽화에서 ‘죽는 건 조조군사’로 그려져 군대는 당신네 먼 조상들인 걸 알아요?”라며 놀려주기도 했다. 인류는 지난 20세기 중반에 ‘600만 유대인 대학살’이라는, 인류사상 가장 잔인하고 대대적인 집단 학살을 목격했고, 그 범죄가 ‘그리스도교 세계(Christentum)’를 통솔해 온 로마 교황청에 의해서 역사적으로 촉발되고 자행되고 독려되어 왔음을 다 알고 있다. 그리스도교는 로마 박해 300년을 이겨내고 ‘제국의 국교’로까지 격상되자, “사람은 하느님의 모습으로 만들어졌으니 남의 피를 흘리는 사람은 제 피도 흘리게 되리라.”(창세기 9,6)는 성서 구절이 없지 않음에도, 그리스도교 지성을 대표하는 교부(敎父)라는 위인들부터 앞장서서, ‘나자렛 사람 예수’를 처형했다는 탓으로 유대인들에게 ‘사람 백정’(요한 크리소스토무스[†407])이니, 하느님을 죽인 ‘신살자神殺者’(아우구스티누스[†430])니, 심지어 종교개혁을 부르짖던 루터(†1546)마저 ‘사악하고 독살스러운 뱀’이니 ‘악마’라는 딱지를 붙여 신도들의 증오심을 촉발했다. 가톨릭교회가 이탈리아 중부를 직접 통치하던 중세에 교황 파울루스4세가 1555년에 로마에 ‘게토(ghetto)’라는 봉쇄구역을 지정하여 유대인들을 강제 수용하자 전 유럽의 도시들이 즉각 그 제도를 채택하였다. 그곳에 수용된 유대인들은 별도 호적에 등록되어 있었으므로 훗날 히틀러 정권이 전 유럽에서 유대인들을 색출 검색하여 멸절시킬 만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었다. 히틀러의 ‘유대인 최종해결책(Endlösung der Judenfrage)’에 추축국은 물론 나치 점령하 모든 정권과 해당 지역의 신구교 교회들이 그 ‘해결책’에 동조하고 적극 협력한 사실은, 그리스도교가 1,500년간 유대인이라는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로 부마(付魔)되어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리스도교가 ‘유럽의 종교’로까지 세를 확장하자마자, 자기들이 ‘주님’이라고 숭상하는 그리스도가 못 박혀 죽은 십자가(十字架)를 장검(長劍)으로 버려내어 휘두르기 시작했다. ‘성지 탈환’이라는 명분으로 유럽 국가들을 부추겨 장장 200년에 걸친 ‘십자군 전쟁’(1095-1291)을 일으켜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를 불구대천의 원수로 만든 것도 클레르몽 공의회를 거쳐 교황 우르바누스 2세가 내린 칙령(1095)이었다. 제1차 십자군은 예루살렘을 함락하였고, 성을 방어하던 이슬람 장정들이 다 전사하자 성 안에 남은 아녀자와 노인들 7만 명을 몰살하였다. 그 학살부대 크리스천들은 전투복 가운과 방패에 붉은 십자가를 그려 넣었고, 전장에서 죽으면 연옥벌(煉獄罰)을 면제받고 천당으로 직행한다는 보장까지 받고 있었다. 위에 언급한 바티칸 ‘왕홀’의 벽화의 최상단을 보면 천계에서 예수가 이슬람 해군을 향해 제우스처럼 시뻘건 번개를 날려 보내고 예수를 옹립한 사도들은 모조리 장검을 뽑아 휘두르고 있다. 크리스천들은 예나 지금이나 그 ‘날 세운 십자가(cruz espada)’를 휘둘러 약소국을 침략하고 노예사냥을 하고 원주민들을 학살할 때 ‘하느님께 영광을 올린다’는 희열을 누려온 듯하다. 지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유럽 열강은 이슬람들이 2,000년간 살아온 팔레스티나 영토를 빼앗아 서기 70년에 추방당한 유대인 후손들에게 나라를 세워주고서, 금년 2월 28일 트럼프의 이란 침략과 이스라엘군의 무차별 폭격에 이르기까지 팔레스타인, 요르단, 아프가니스탄, 시리아, 이집트, 이라크, 리비아, 이란을 차례로 침략하여 히로시마 원폭 같은 폐허를 만들고 이슬람 시민들을 대량 학살해 왔다. 그 가증할 반인륜 범죄를 유럽인들은 ‘문화충돌’이라는 단어로 은폐해 버린다. 이란 현지 매체 <테헤란타임스>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이 아이들의 눈망울을 보라"며 1면에 실은 이란 남부 미나브 학교 폭격으로 어린이들의 얼굴 사진과, 그 어린이들을 폭사시킨 트럼프를 개신교 목사들이 에워싸고 무훈과 전승을 빌며 안수기도를 바치는 사진에 독자들은 구토했을 것이다. 21세기 신구 그리스도교가 양식 있는 인간들에게 주는 구토감이다. 작년 12.3 내란 이후 태극기에 성조기에 이스라엘기까지 흔들어대며 광화문에 모여 ‘윤어게인!’을 외쳐대는 크리스천들을 보라! 그 무리를 영도하는 목사의 입에서 “하나님도 나한테 까불면 죽어!”라는 모독이 튀어나올 만큼 추락한 종교인들의 광기라니! 필자가 우리 지리산人들의 양심을 깊이 상처 내는 작금의 국제정세를 그리스도교 역사에 비추어 상기시키는 데는 까닭이 있다. 필자가 크리스천, 더구나 구교 신자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교회다’라는 표어에 따라 필자가 몸담은 로마 가톨릭교회의 역사적 죄상을 유대인들에게, 이슬람 형제들에게, 지금은 유대인들 손에 몰살당하는 가자의 팔레스타인인들에게,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독자들께 사죄하고 싶기 때문이다, 일개 신도로서나마! 지리산 자락을 흘러내리는 휴천강 턱에 집을 짓고 30년 넘게 살아온 필자에게는 이 산 주변에서 ‘지리산 종교연대’라는 모임을 결성하고 한국불교 사회운동의 메카로 불리는 실상사를 중심으로 불교, 원불교, 개신교, 가톨릭 성직자들과 신도들이 해마다 6월 25일이면 지리산 어느 골짝엔가 모여서, 마고 할매의 치맛자락에 유골을 묻은 이들과 생사를 초월한 친교를 나누는 지성이 눈물겹게 아름다워서다. 뜻이 깊어서든 억울하게든 민초들과 의인들을 희생시킨 그 죽음들이 부디 이 겨레를 싸매주고 번영시키는 분신공양(焚身供養)으로 하늘에 거두어지기를 빌고 싶기 때문이다. 좀 멀리는 왜란 때마다, 지난 세기에는 동학혁명을 일으켰다 패해서, ‘10.19 여순 사건’에 쫓겨서, 6.25 전쟁 중 조선인민유격대를 이루어, 또는 그들을 토벌하는 군경으로서 저 험준한 능선과 깊은 계곡을 축축이 적셨던 피들이 지리산과 한반도 깊숙이 스며들어 역사의 화차를 끌어가 주기 염원하는 까닭이다. 위에 지적한로마 가톨릭의 역사적 죄상을 절감하여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을 딴 로마 교황이 아마도 교회의 죄과를 씻는 첫 순례지로 한국을 방문하고 떠나면서(2014.8.18.) “얼결에 제3차 세계대전이 이미 발발했네요.”라던 서글픈 장탄식이 필자의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는 연고다. 참조: http://donbosco.pe.kr/xe1/?document_srl=103594 글쓴이 : 성염 전 주교황청 대사·서강대 명예교수 본문 그림(나오는 순서대로) 출처 Wikimedia Commons contributors, "File:Giorgio vasari e aiuti, la battaglia di lepanto, 1572-73, 01.jpg," Wikimedia Commons,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title=File:Giorgio_vasari_e_aiuti,_la_battaglia_di_lepanto,_1572-73,_01.jpg&oldid=1163435605 (accessed March 21, 2026). https://www.huffingtonpost.kr/article/250181 (원본 테헤란타임즈) https://www.whitehouse.gov/gallery/president-donald-trump-joins-faith-leaders-in-prayer/ 뒤웅박 씻나락 칼럼 지리산 자락 삶이 우리 사회의 대안적 삶의 모습이 되길 꿈꾸는 <지리산人>의 바람을 담아, 지리산 곳곳에 계신 씨앗 같은 이들의 삶과 생각을 싣고자 합니다. 칼럼 글쓴이의 일부 주장이 <지리산人>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기획
    • 뒤웅박 씻나락
    2026-03-27

소식 검색결과

  • [소식] 도법스님이 제안하는 삶의 전환 · 문명 전환의 여정 "시민붓다학림1기"
    도법스님이 제안하는 삶의 전환 · 문명 전환의 여정 모시는 글 깨달음이 삶이 되는 길을 찾아온 여정 도법스님은 개인의 깨달음에 머무는 불교를 넘어, 일상의 삶과 사회 속에서 깨달음의 길이 실제로 가능한지를 묻고 실험해 온 수행자입니다. 제도권 종교의 울타리에 머물지 않고, 사람들의 삶과 갈등의 현장으로 들어가 지혜와 자비가 관계와 삶의 방식으로 살아날 수 있는 길을 찾아왔습니다. 도법스님은 불교와 사회를 연결하는 발걸음으로 30 여 년 전, 불교귀농학교와 실상사 귀농학교를 우리 사회에 제안했습니다. 사람들은 단지 귀농 공부만을 한 것이 아니라, 삶을 전환하는 길을 만나고, 마을공동체의 삶을 만들어갔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삶의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시민붓다학림은 이러한 귀농학교의 여정을 잇는, 도법스님이 우리 사회에 제안하는 두 번째 발걸음입니다. 지혜와 자비가 교리 속에 머물지 않고, 관계와 삶의 방식으로 살아나는 길, 이웃과 더불어 인간답게 살아가는 길 — 그것이 시민붓다학림이 걸어가고자 하는 방향입니다. 지금 이 시대, 왜 시민붓다학림인가 지금 많은 사람들은 삶의 방향을 다시 묻고 있습니다. 관계의 변화, AI와 급격한 사회 변화 , 은퇴 이후의 삶, 사회 진출이 막막한 청년의 삶 앞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질문은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닙니다. 함께 길을 찾는 공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이 질문을 함께 묻고, 함께 답을 찾고, 함께 실천하는, 배움과 우정의 공동체로 시민붓다학림을 제안합니다. 자세한 일정 및 정보 안내 링크 https://siminbudda-gakrim-f97cioj.gamma.site/ 대안문화웹진 <지리산인>
    • 소식
    2026-03-26
  • [소식] 제22회 지리산쌀롱 "자본의 바깥 북토크 : 마을공동체와 커먼즈 금융"
    1. 일시 2026년 4월 10일 (금) 저녁 7시~9시 2. 장소 지리산문화공간 토닥 (남원시 산내면 대정길 127) 3. 초대손님 김지음 (<자본의 바깥> 저자, 빈고 활동가) : 2008년 해방촌 주거공동체 빈집의 시작을 함께했고 이후 협동조합 빈가게, 카페 해방촌, 해방촌연구소, 자전거메신저 등을 하며 빈마을을 이루어 함께 살았다. 2010년 빈고를 함께 만들고 현재까지 주로 재정담당자로 일하고 있다. 2019년 공유주거협동조합과 빈땅조합을 함께 만들고, 충남 홍성에 공유주택 키키를 함께 짓고 살고 있다. 면 단위의 공유지를 만드는 공유지협동조합을 준비하며 마을활력소에서 일하고 있다. 《오래된 습관 복잡한반성 2》, 《자전거, 도무지 헤어나올 수 없는 아홉 가지 매력》의 공저자로 참여했다. 4. 참가 신청 - 온라인 페이지 신청 https://forms.gle/bCD8qCcEJTG1UeW67 참가비는 없습니다. 대신 잊지 마시고 당일에 꼭 토닥에서 만나요! 5. 문의 010.5154.0048 지리산이음 (누리) 자본의 바깥 : 커먼즈은행 빈고의 탈자본 금융생활 탐구 김지음(글) | 힐데와소피 | 2025-12-01 “은행은 건드릴 수 없는 철옹성인가?은행이 계약의 집적이라면 계약 자체를 변경하면 어떨까?우리는 새로운 은행을 만들고, 새로운 계약을 만들어 간다.다시 말해, 은행을 조금씩 옮겨오는 것이다.” 자본의 세상에 균열을 내는 커먼즈은행 빈고의금융 실험과 이를 뒷받침하는 이론인 사양(辭讓)의 경제학!우리는 이렇게 모여서 새로운 세상을 만든다 ◆ 고병권, 하승우, 한디디 추천! “가설이 아니라 실증이다. (…) 읽는 것에 머물 수가 없다. 당장 이야기를 나누고 실천하고 싶어진다.”/고병권“‘평범하지만 위대한 공유자’가 되려는 치열한 실천 (…)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도구가 되려는 책” /하승우“(빈고는) 세계는 우리가 짓는 것이라고 말하며, 더 많은 사람들을 이 세계-짓기에 초대한다.” /한디디 (출판사 제공 책 소개로부터) 대안문화웹진 <지리산인>
    • 소식
    2026-03-26

동영상뉴스 검색결과

  • 지리산의 눈물, 지하수가 마르고 있다. - 산청 난개발에 맞선 민영권 위원장의 고군분투기
    지리산 자락, 지하수 고갈로 주민들이 고통받고 있는데 산청의 지하수가 기업의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췌장암 투병 중 고향으로 돌아와 지리산의 생태계를 지키는 파수꾼이 된 산청난개발대책위 민영권 위원장을 만났습니다. 전국 생수 취수량의 1/3이 넘게 집중된 지리산, 그곳에서 벌어지는 9cm의 지반 침하와 흙탕물 식수의 실태를 폭로합니다. 피해는 주민이 입고 돈은 기업이 번다? 이건 안돼죠. 주민들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30년 된 '먹는물관리법'의 허점과 행정의 무책임함에 맞서 감사원 감사청구까지 이르게 된 생생한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보세요 00:00 인트로 00:48 췌장암 병 치유를 위해 내려온 고향에서 투사가 되다 04:20 노동운동에서 생태운동으로 10:40 난개발에 대처하는 주민들 - 케이블카/지하수/골프장 15:38 지리산의 위기 - 기업의 돈벌이 수단이 되는가 18:01 생수공장의 무분별한 지하수 이용으로 고갈 피해가 심각 22:30 지하수 고갈로 인한 피해사례들 27:23 30년 된 먹는물관리법의 헛점을 이용한 난개발 30:41 부실한 환경영향평가와 불법행위 32:49 불법적 허가와 행위에 감사원 감사청구를 하다 40:07 체계적인 지하수 총량 관리가 절실하다 42:39 다음 세대를 위한 약속 - 지하수는 모두의 것 #지리산 #산청 #민영권 #지하수고갈 #생수공장 #난개발 #지반침하 #환경운동 #먹는물관리법 #지리산사람들TV #산청난개발대책위원회 #지리산지하수지키기공동행동 #췌장암 #환경영향평가 #지하수
    • 사람이야기
    2026-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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