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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검색결과

  • 잘 가셨는지요
    잘 가셨는지요 백무산 죽은 자가 따라다니는 시절이 되었는지 또 날아온 부고는 믿기지 않았다 얼마 전 저녁을 함께 했던 사람이다 전화기를 접지 않고 그의 온기를 느껴보려고 그가 보낸 메시지를 뒤져보니 아직 체온이 남아 있었다 "잘 가셨는지요. 아쉬웠습니다. 그리고 죄송했어요." 떠난 사람이 나였다는 듯이 그는 그곳에 있고 내가 멀리 가버렸다는 듯이 내 뒷모습에서 떠나는 자의 쓸쓸함을 읽었다는 듯이 살아 있다는 것이 되레 어디론가 떠나가고 있다는 듯이 수많은 죽음을 맞이하는 일과 수많은 자신의 죽음을 겪는 일로 눈물은 죽은 자가 흘린다 죽은 자의 혼은 언제나 산 사람을 붙들고 운다 두고 가는 발걸음 떨어지지 않아 산 사람이 가엾고 불쌍해서 펑펑 운다 죽은 자에게 애도를 받으러 가는 길이다 --------------------------------------------------- 부고를 받고 문상하러 가면서 쓰여진 시다. 시 속의 화자는 죽은 자와 산 자의 처지가 바뀌어 있음을 말한다. 죽은 자는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산 자가 가엾고 불쌍하다. 죽었다는 것은 이미 도착한 것이고, 살아 있다는 것은 어디론가 떠나가고 있다는 것이어서 그렇다. 산 자가 죽은 자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죽은 자가 이승을 두고 가는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산 자의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다. 죽음이 가엾고 불쌍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는 것이 그렇다는 이야기다.
    • 문화예술
    • 시를 찾아서
    2026-07-02
  • 단편소설 "군산"
    긴 겨울을 이겨내고 자란 푸른 보리밭에 봄바람이 불었고, 전주와 군산에 지리하게 심어진 벚꽃이 줄지어 피었다. 중국의 만리장성처럼 우주에서 보면 100리 벚꽃길이 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끔 하곤 했다. 이리에서 군산으로 이어진 기차를 타기 위해 나는 이리역에서 기차표를 구했다. 군산에서 장항으로 가기 위해서였다. 기차는 무거운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리에서 군산은 사실 지척이라 기차가 출발하면 금세 도착하는 거리였다. 임피와 대아를 지난 기차는 곧 군산역에 도착했다. 군산역을 걸어 나오면 곧 선착장이었다. 장항으로 가는 배는 수시로 있어 길게 기다릴 필요는 없었다. 바다 건너 눈앞의 장항제련소에서 하얀 연기가 길게 뿜어져 이리 쪽으로 흘러갔다. 멀리 금강하구둑의 모습이 보였다. 금강은 말 그대로 금빛이 흐르는 아름다운 강이다. 발원지는 진안의 뜸봉샘이다. 한 줄기는 섬진강으로 가고 한 줄기는 금강으로 이어진다. 섬진강은 진안, 임실, 남원을 지나 남해로 흘러가고 금강은 충청도를 크게 휘돌아 다시 호남의 군산으로 흘러온다. 멀리 돌고 돌았지만 결국 시작한 호남에서 끝난다. 맑았던 금강은 군산 갯벌의 뻘물이 밀물에 밀려 탁류가 된다. 채만식은 맑고 고운 물이 세속에 빠져 탁류가 된다고 했다. 가방을 들고 장항으로 가는 배에 올랐다. 짭조름한 짠내가 훅 하고 밀려왔다. 포구 선창가에 길게 늘어선 술집 여자들의 향수 같거나 일꾼들이 찾는 여관의 싸구려 스킨 같은 진하고 비릿한 바다 냄새가 코를 찔렀다. 배에 올라타자 아침 장사를 끝내고 장항으로 돌아가는 아주머니들의 장터 이야기로 배는 왁자지껄했다. 배낭을 메고 장항으로 넘어가 기차를 타려고 하는 여행객들이 보였다. 그중에 혼자서 작은 배낭을 메고 있는, 내 나이로 보이는 여자도 보였다. 어디로 가는 것일까? 내가 궁금해해야 할 이유가 없지만 배에서 딱히 생각할 것도 없어 곰곰이 생각해 보는 것이었다. 아직 그 연유를 다 생각하지도 못했는데 배는 곧 장항 선착장에 도착했다. 나는 잡생각은 집어치우고 곧장 장항역으로 향했다. 뒤를 힐끔 쳐다보니 그 여자도 나와 함께 장항역으로 걷고 있었다. 기차는 이리 기차가 도착하고 배를 타고 넘어오면 탈 수 있도록 일부러 맞추기라도 한 듯, 도착하자마자 곧 출발했다. 기차라고 해봐야 서너 량에 불과해서 그랬는지 그 여자는 건너편에 앉아 있었다. 앉자마자 그녀는 배낭에서 책을 꺼내 보고 있었다. 채만식의 《탁류》였다. 초봉이처럼 예쁜 여자였다. 한마디 해볼까 하고 나의 방정맞은 입술이 근질거렸다. 소설을 읽었다고 잘난 척이라도 하면서 말이라도 건네 볼까 했지만 여간 용기가 필요한 일이 아니라서 잠시 생각만 하고 창밖을 봤다. 기차는 서해안의 리아스식 해변을 따라가며 힐끔힐끔 서해 바다를 보여 주었다. 기차는 곧 보령역에 도착했다. 내가 보령에 온 이유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펜팔을 했던 여자아이 때문이었다. 보령여고를 다녔다는 그 여자아이가 한번 보자고 했고, 마침 할 일도 없어 가보겠다고 한 것이 겨울이 끝나는 2월쯤이었다. “벚꽃이 필 때쯤 가볼게.” 봄이 왔고 벚꽃이 피었고 나는 그 약속을 거절할 이유가 딱히 없었기 때문에 여기까지 왔다. 기차역에 내리자 그 여자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실 편지로는 꽤 길게 연락을 했지만 어디까지나 재미로 보낸 편지들이었고, 사실 이렇게 만나기까지 하리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우리는 편지 속에서 꽤 친한 친구처럼 글을 썼지만 막상 만나보니 그 어색함이라는 것은, 남자라고는 만나 본 적도 없이 맞선을 나온 시골 처자와 산골 남자처럼 서로의 얼굴에 역력했다. “와줘서 고마워.” “그래.. 오랜만..” “아니, 얼굴 본 것은 처음이구나..” “그러게.” 사실 오래전 고등학교 다닐 때 서로의 사진을 보낸 적이 있지만 그때뿐이었고, 지금은 이제 그 시절의 학생도 아니었다. 여자아이는 그 사진 속의 발랄함이 없어 보였다. 내가 그 아이와 펜팔을 시작한 것은 가요책 뒷페이지에 있던 '펜팔 구함'이라는 잡지 속의 주소를 보고 심심해서 보낸 편지에 그 아이가 답장을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오간 편지가 꽤 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무슨 대단한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아마 그 여자아이도 이렇게 만나기까지 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은데 왜 만나자고 했을까? 사실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 답장을 제대로 한 적도 없었다. 한 번 보면 좋겠다고 쓴 편지의 우울함이 나를 여기까지 오게 했다. “그래, 무슨 일이야?”라고 서둘러 묻고 싶었지만 이런 이야기를 금방 꺼내고 나면 미안해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보령은 어디가 좋아? 지난번에 대천에 MT 온 적이 있었는데 바다가 좋던데.” 사실 올 초에 학교에서 대천으로 MT를 온 적이 있었다. “전화하지 그랬어…” “아, 함께 온 사람들이 많아서…” 전화번호를 알고 있었나. 그러고 보니 오래전에 전화번호를 알려준 것 같다. “전화해”라고 했지만 나는 한 번도 전화를 한 적이 없었다. “대학 입학한 것 축하해.” “무슨 축해야, 기껏해야 지방대인걸… 너는 재수하는 거야? 공부도 잘했잖아. 억울하게 떨어졌네…” “뭐 어쩔 수 없지.. 다 내 팔자지.” 우리는 대천으로 가는 버스 뒷자리에 나란히 앉아 이런 이야기를 나눴다. 버스는 곧 대천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리자 넓게 펼쳐진 백사장이 보였다. 대천 해변은 한 사람의 굴곡진 인생 이야기라도 걷다 보면 다 할 수 있을 정도로 길었다. 우리는 버스에서 내려 해변으로 내려갔다. 바다에는 놀러 온 학생들이 많이 보였다. “걷자…” “그래.” “근데 무슨 일로…” 나는 어렵게 이야기를 꺼냈다. 사실 연인 사이도 아니고 굳이 만나야 할 이유는 없었다. “아니.. 그냥.. 한번 보고 싶었어. 서울 가기 전에 내 고향에서.” “서울에는 왜? 재수하러 가는 거야?” “아니야, 나 취직했어..” “취직.. 왜 대학에 안 가고. 그러게, 그냥 공부하기도 싫고 대학도 싫고, 집에서 재수하라고 하는데 다 귀찮아서…” 무슨 일이 있었을까, 그 사이에. 나보다 공부도 잘했는데…. 나는 달의 인력으로 끌려가는 바닷물을 보며 그 아이가 어떤 일로 다른 선택을 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보통 이런 경우의 수는 몇 가지가 안 된다. 첫째 집안의 몰락, 둘째 부담감과 주위의 시선 그리고 가족의 눈초리, 셋째 공부가 싫어서 하는 일시적인 방황. 이 아이의 입에서 어떤 소리가 나오면 나는 이런 이야기를 해줘야지, 라고 머릿속으로 이 상황에 대한 시나리오를 작성하고 있었다. “야, 너 뭔 생각을 그렇게 해!” 나는 그 아이의 말에 뭐라고 해야 할지 잠시 말을 하지 못했다. “너 내가 왜 재수를 하지 않고 서울에 가겠다고 했는지 그게 궁금해서 그렇지? 네가 생각하는 그런 것 아니야… 그냥 공부가 더 하기 싫어……” “뭐,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 맞네. 사실 공부가 싫다고 하면 뭐라고 이야기를 해줘야 하나 하고 고민하고 있었거든.” 그런데 내가 너보다 공부를 잘했으면 모를까 공부도 못한 주제에 조언을 하기는 그렇고, 그래도 그렇게 공부를 잘했는데 한번 실패했다고 그만두는 게 맞는 일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지쳤어? 전교 1등이 그러면 되나… 아니면 전교 1등이라서 그런 거야? 나는 그런 점수를 맞아 본 적도 없어 잘 모르겠다.”나는 그 아이에게 달리 해줄 말이 없었다. 대학에 가면 소개팅도 하고 동아리 활동도 하고 꽤 재밌게 보낼 수 있다는 시시한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 아이도 그 정도 이야기는 충분히 들었을 것 같다. “그래, 그러면 네 맘대로 해야지. 내가 뭐라고 너에게 조언을 하겠니.. 오늘은 바다나 실컷 보고 가야겠다.” 우리는 썰물이 끝나고 밀물이 올라오는 밤까지 바다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눴다. “나 이제 가봐야겠는데.. 너무 늦었어. 다시 집으로 돌아가려면…” 사실 생각보다 예쁜 그녀에게 고백이라도 해볼까 했지만, 서울까지 가는 그녀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돌아가기엔 이미 늦었다. 어디 싸구려 여인숙이라도 알아봐야 할 참이다. 그녀는 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바닷가 근처의 여인숙을 찾아봤다. 가장 저렴한 방을 찾으려고 여기저기 뒤지다가 7천 원짜리 방을 하나 구했다. 가방을 던져두고 세면장에 가서 늦은 세수를 했다. 하루 종일 바닷가를 돌아다녀서 그런지 운동화는 젖어 있었다. 신발에 달라붙은 모래가 세면장으로 흘러 다시 바다로 돌아갔다. 쓰고 버려둔 녹슨 면도기, 그리고 분홍색 알비누, 말라비틀어져 갈라진 빨래비누가 보였다. 세수를 하고 세면장을 걸어 나오는데 기차에서 봤던 여자가 보였다. 나는 애써 그 여자 얼굴을 외면하고 방으로 들어와 따뜻한 방에 몸을 던졌다. 피곤함이 밀려왔다. 주인 아주머니와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방문 사이 벌어진 틈으로 찬바람과 함께 들어왔다. 곧 옆방의 문이 열렸다. 배낭을 던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곧 문을 닫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곧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아침 바다는 저녁 바다보다 활기차 보였다. 어제 쏟아낸 우리들의 이야기들은 밤새 파도와 함께 멀리 흘러가 버렸다. 여인숙을 나와 담배에 불을 붙였다. 나른함과 상쾌함이 함께 들어왔다 나갔다. 바다로 나가는 계단에 기차 안에서 봤던 여자가 앉아 있었다. “불 좀 주시겠어요?” “아, 네.” 나는 주머니에서 서둘러 라이터를 꺼냈다. “여기요.” 나는 그녀의 화장기 없는 얼굴과 함께, 그녀의 입에서 파르르 떨리는 가느다란 장미 담배에 불을 붙였다. “저기, 어제 기차에서 봤죠?” “저요?” “네. 배에서도 보고…” 나는 내심 힐끗힐끗 몇 번 봤던 것이 들킨 것 같아 정수리가 뜨끈했다. “사실 이리에서부터였어요. 그쪽이랑 저랑 함께 온 것이…” “아…” “제 앞에서 기차표를 끊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같은 기차표를 샀어요. 군산역에 처음 가봤고 장항에 가길래 저도 따라왔어요.” “왜요?” “그럼 여인숙도요?” “아뇨… 그건 그냥 우연히…” “그런데 그 여자친구분은 어디 갔어요? 미인이던데요.” “아.. 여자친구는 아니고요. 그냥 펜팔 친구….” “펜팔이요? 생각보다 순진한 아저씨네요.” 그녀는 담배를 입안에서 말아 돌리더니 후하고 불었다. 담배 연기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뭐 하는 여자일까? 나는 다시 그 여자의 모습을 살폈다. 뭐 때문에 나를 따라온 것일까? 아니면 그냥 우연히 심심해서…. “왜요. 뭘 그렇게 빤히 쳐다봐요, 쑥스럽게. 제가 스토커라도 되는 줄 아시나 봐요.” “뭐, 제가 그 정도 인물은 아니라서… 하하.” 웃고 있었지만 수상하기는 했다. “아저씨, 아니 학생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아침이나 함께 먹으러 가요. 제가 살게요.” “뭐 그럽시다.” 우리는 해변가의 저렴해 보이는 전주식당에 갔다. “두 사람, 연인 사이인가 봐요? 좋을 시절이구만.. 부러워요.”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사장님이 농을 던졌다. “아뇨…” “맞아요.” 그 여자는 처음 본 나와 연인 사이라 말했는데, 거짓말이지만 그냥 잠자코 있었다. 항변한다고 해서 특별히 달라질 것도 없기 때문이다. 콩나물국밥을 먹고 우린 다시 해변에 나왔다. '맞아요'라고 말한 이후로 나는 잠시 엉뚱하게 그녀와 연인이기라도 한 상상을 해봤다. 나는 그녀와 다시 해변으로 나왔다. “저는 이제 돌아가야 하는데요. 뭐 함께 가시겠어요, 아니면 여기 있을 것인가요?” “왜요, 그 여자라도 만나시게요?” “아뇨. 이제 집에 가야죠. 학교도 가야 하고….. 할 일도 없는데 대천 바다에 이틀이나 있기도 싫고요.” 나는 여인숙에 가서 가방을 꺼내며 그녀에게 말했다. “그래요, 그럼 가세요. 저는 여기 좀 더 있을게요.” 그녀는 별말 없이 바닷가로 향했다. 나는 버스에 올라탔다. 그리고 버스, 기차, 배를 타고 다시 이리로 향하는 기차에 올랐다. 기차에 오르기 전에 그녀(펜팔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 이제 이리로 가고 있어…” “서울 잘 가고 연락해라…” 나는 다시 학교로 돌아갔다. 그녀는 곧 서울에 취직을 했다고 했다. 큰비가 오거나 눈이 오거나 벚꽃이 피면 가끔 편지를 보냈다. 나도 가끔 편지를 보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나는 점점 그녀를 잊었다. 그녀의 편지도 더 이상 오지 않았다. 대천 바다에서 이야기했던 그녀(기차 안의 여자)는 왜 나를 따라왔을까? 나는 가끔 그 여자에 대해 생각해 봤지만 알 수 없는 일이다. 두 명의 여자는 그렇게 나의 머릿속에 대천, 군산, 기차와 함께 박제되었다. 제대 후 취업한 나는 뉴스에서 2009년을 마지막으로 군산~장항 간의 배가 100년이 넘는 역사를 끝으로 멈춘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그 소식을 듣고 군산항을 찾았다. 마지막 배에 탄 사람들과 함께 바다를 건너 다시 장항으로 넘어가 기차를 탔다. 그리고 홀린 듯 보령을 지나 대천을 찾았다. 바닷가에 도착하자 “전화하지 그랬어”라는 말이 떠올랐다. 그 오래된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그녀의 어머니는 나에게 그녀의 새 전화번호를 알려주었다. 전화를 걸었다. 그녀가 전화를 받았다. “누구세요?” “나야..” “오랜만이야..” 그녀는 아직 내 목소리를 기억하고 있었다. “무슨 일로….” “대천에 와서..” 그녀는 여전히 서울에 살고 있었고 결혼을 했다고 했다. “잠깐만, 아이가 울고 있어서…” 나는 못할 전화를 한 듯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전화가 온 것은 대천에서 돌아오고 난 며칠 후였다. 그녀는 그때 우리를 따라다니는 여자가 있었는데 아는 여자친구가 아니냐고 물었다. 나는 모르는 여자며 그날 처음 본 여자라고 이야기했다. “그랬구나.. 모르는 여자였구나.. 나는 네 여자친구라고 생각했는데…” “그때 물어볼 걸… 그랬어…” 그녀의 전화 목소리가 떨렸다. 전화가 끊어지고 나는 한동안 그날을 생각했다. 머릿속이 금강의 물처럼 혼탁해졌다.
    • 문화예술
    • 연재소설
    2026-06-24
  • 마음의 눈을 뜨니
    마음의 눈을 뜨니 구 상 이제사 나는 눈을 뜬다. 마음의 눈을 뜬다. 달라진 것이라곤 하나도 없는 이제까지 그 모습, 그대로의 만물이 그 실용적 이름에서 벗어나 저마다 총총한 별처럼 빛나서 새롭고 신기하고 오묘하기 그지없다. 무심히 보아 오던 마당의 나무, 넘보듯 스치던 잔디의 풀, 아니 발길에 차이는 조약돌 하나까지 한량없는 감동과 감격을 자아낸다. 저들은 저마다 나를 마주 반기며 티없는 미소를 보내기도 하고 신령한 밀어를 속삭이기도 하고 손을 흔들어 함성을 지르기도 한다. 한편, 한길을 오가는 사람들이 새삼 소중하고 더없이 미쁜 것은 그 은혜로움을 일일이 쳐들 바 없지만 저들의 일손과 땀과 그 정성으로 나의 목숨부터가 부지되고 있다는 사실을 이제는 너무나도 실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물의 그 始源(시원)의 빛에 눈을 뜬 나, 이제 세상 모든 것이 기적이요, 신비 아닌 것이 하나도 없으며 더구나 저 영원 속에서 나와 저들의 그 완성될 모습을 떠올리면 황홀해진다. -------------------------------------------------------- 마음의 눈을 뜬다는 것은 무엇일까? 시인은 사물의 그 모습이나 사람의 무엇이라는 그 이름이 있기 전의 ‘그 始源(시원)의 빛에 눈을 뜬’ 존재라고 말한다. 그 상태가 되면 나무나 풀이나 돌멩이 하나까지 모든 것들과 소통하게 되고 나의 목숨은 그들로부터 부지되고 있으며 그들과 하나라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그래서 존재 자체가 기적이요 신비이며 삶이 황홀해진다. 깨달음이다.
    • 문화예술
    • 시를 찾아서
    2026-06-19
  • 지리여명
    「섬진강 편지」 -지리 여명 아직도 이리 가슴 뛰게 하다니 그 많은 계단을 단숨에 오르게 하다니 한쪽 폐를 잘라낸 반쪽의 숨으로도 어쩌지 못할 저 붉은 빛
    • 문화예술
    • 섬진강 편지
    2026-06-12
  • 사포마을 다랭이논
    「섬진강 편지」 -사포마을 다랭이논 사포마을 다랭이논 모심기가 끝났습니다.먼저 심었던 논의 모들은 자리를 잡아 벌써 키를 키웁니다. 어린 모를 심고 가꾸어 벼를 수확하고 쌀을 얻기까지는 농부의 손길이 백 번은 필요하다고 합니다.그만큼 정성으로 돌봐야 풍성한 가을을 맞을 수 있다는 뜻이겠지요.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끝나고7월1일부터 민선9기 군수와 군의원들의 임기가 시작됩니다. 군민을 위해 열심히 일하겠다는 초심을 잃지 않고 논에 심어 놓은 어린 모들과 함께 풍성한 결실 맺기를 기대해 봅니다. 풍년을 위해 농부의 지극한 손길이 필요하듯 성공적인 군정을 위해서는 군민들의 관심과 응원 또한 필요하겠지요. 모내기를 마친 다랭이논의 노을을 바라보며 황금빛으로 물들 가을 사포다랭이논을 그려봅니다.
    • 문화예술
    • 섬진강 편지
    2026-06-12
  • 3毒
    3毒 탐진치貪嗔痴 3독毒 중 가장 맹독은 치(痴 어리석음)인가 보다. 조국과 김부겸이 낙선한 것은 그들의 부족함이라기보다는 대선의 탐욕을 앞세운 민주당과 그들을 낙선시킨 평택을과 대구 대중들의 어리석음(치痴) 때문이라는 생각이다. 4년 전 윤석열이 당선된 것과는 또 다르다. 그것은 내란이 일어나기 전과 내란이 일어난 후라는 차이다. 답을 모르고 틀린 것과 답을 알고도 틀린 것의 차이는 참으로 지독한 어리석음(치痴)이 아니고 무엇이랴. 어쩌면 만물의 역사나 인간사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혼융 속에서 엮어지는 것이기도 해서, 삶은 예측할 수 없고 스스로 제 안에 채운 평형수의 균형감으로 더듬거리며 사는 것이 인생사이기도 할 것이다. 그 인생에는 정답도 없고 목적도 없는 과정만이 있을 뿐이다. 태어나면서 주어진 삶의 조건과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 운명이라면 이후 살아가는 것은 자신이 더듬거리며 만들어 가는 삶이다. 그것이 과정이고 이 과정이 삶의 전부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삶의 3독 중 맹독은 치(痴 어리석음)라는 생각이다. 수행자들은 이 어리석음을 벗어나기 위해서 수행한다. 자신의 삶에 주어진 상황과 조건을 아름다운 과정으로 일구기 위해서는 삶의 어리석음을 벗어나야만 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결국 ‘나’로부터 자유로워야 하는 것이기도 해서 수행이라는 것도 죽기 전까지 가야하는 거라고 생각하면, 현실의 고苦는 늘 3毒으로부터 온다. 세상사 지독한 어리석음을 다시금 민주당과 평택을과 대구가 가르친다.
    • 문화예술
    • 지리산 편지
    2026-06-07
  • 경배합니다
    경배합니다 배 재 경 기역 자로 하루를 사는 노파 집 밖 동리 마실 나간다 지팡이 쥔 손이 상수리 껍질처럼 우울하다 저물고 저물어야 가질 수 있는 기역 자 젊은이들에게는 바늘귀의 틈도 주지 않는 기역 자 그렇게 값비싼 아무나 가질 수 없는 기역 자를 싸들고 마실 나간다 노파의 등판 위로 아로새겨진 무수한 샛길들이 어서 자신의 길로 오라고 아우성이다 채마밭길의 푸르름들이며 눈보라 차디찬 들판에 늘브러진 늑대들이며 메마르고 갈라진 논두렁길도 보인다 저만치 아이들이 재잘거리는 밥짓는 연기 피어나는 집으로 가는 길이며 지아비를 떠나보낸 전쟁의 피란길도 아슴아슴하다 이 마실길을 얼마나 더 걸어갈지 기역 자 가득 햇살들이 열심히 부채질이다 =========================================== 허리가 ㄱ 자로 구부러진 노인들을 어쩌다 보게 되면 먼저 그분의 신산스런 삶을 떠올린다. 어떤 삶을 사셨을까? 그러면서 내 어머니를 떠올린다. 어머니의 살아온 길을 되집어 본다. '지팡이 쥔 손이 상수리 껍질처럼 우울'한 내 어머니를 그려보는 것이다. 모든 어머니가 고귀한 것은 자식에 대한 사랑 때문이다. '아무나 가질 수 없는 기역 자, 저물고 저물어야 가질 수 있는 기역 자' 이기 때문이다.
    • 문화예술
    • 시를 찾아서
    2026-06-07
  • 나무를 하고 물을 긷는다
    나무를 하고 물을 긷는다 ‘사유의 방’에 들어가니 전체적으로 어두운 조명 속에 미륵반가사유상 두 점이 놓여있었고 빛과 어둠의 조화 속에 스며드는 고요를 잘 연출해 내고 있었다. 고요는 사유의 시작이니 그렇다. 그런데 반가사유상은 왜 두 점을 놓았을까? ‘사유의 방’의 ‘사유’는 불가의 ‘깨달음’으로 이어지니 오히려 한 점을 놓고 지금처럼 빛과 어둠의 비율을 잘 조절하면 깨달음을 위한 ‘집중’을 더 깊고 강하게 연출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하지만 두 점이기 때문에 오는 느낌도 있었는데 그것은 따뜻한 어울림이었다. 우선 홀로가 아니라 둘이니 그렇다. 그리고 두 분의 보살은 나란히 앞을 바라보며 전시되어 있는데도 룸메이트라도 되는 듯 편안하게 어울렸다. 그것은 아마도 앉은 자세와 얼굴의 방향, 그리고 표정이 연출해 내는 자연스러운 어울림의 효과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로 인해 ‘사유의 방’의 고요한 분위기는 ‘집중’과 함께 부드럽고 따뜻한 어울림을 함께 품고 있었다. 반가사유상 자체의 미소가 절정의 포용력과 따뜻함을 충분히 느끼게 하지만 두 보살의 어울림으로 사람과 사람의 관계적 친연성이 주는 상징적 효과가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서울 나들이는 오롯이 ‘사유의 방’을 만나기 위한 것이어서 이 방에 좀 오래 머물렀다. 탑돌이를 하듯 반가사유상을 천천히 돌며 걸으니 이런저런 떠오르는 생각들을 즐길 수 있었다. 사실 ‘깨달음’이라는 것도 ‘지금여기’라는 현실을 떠나면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언젠가 봤던 어느 선사의 시를 떠올리니 그런 생각이 강하게 왔다. 깨달음을 얻기 전에는/ 나무를 하고 물을 길었다.// 깨달음을 얻은 후에도/ 나무를 하고 물을 긷는다. 이 시를 보면 깨달음을 얻기 전이나 얻은 후에나 아무것도 변한 게 없다. 깨달음을 얻었다면 무언가 달라져야 할 텐데 물을 긷고 나무를 하는 일상의 현실에는(당시는 물을 길어 독에 채우고 나무를 해서 밥을 해 먹는 것이 먹고 사는 일의 가장 중요한 일상이었을 것이다) 아무런 변화도 없는 것이다. 현실에 아무런 변화가 없다면 그것은 뭘까? 선사의 깨달음은 ‘지금여기’의 일상을 새롭게 보고 또 새롭게 사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이 고통스럽고 덧없는 현실을 늘 ‘새로움’의 변화로 읽어낼 수 있다면 그 변화의 경이로움으로 세상은 신기롭고 즐거우며 의욕적일 것이다. 그렇게 늘 새롭게 현재의 일상을 살아낸다면 그런 행복이 어디 있으며 그것이 깨달음의 경지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한해가 바뀌는 첫날의 일출을 보기 위해 야단법석을 떨며 정동진의 바다를 찾는 데는 새로운 한 해를 맞고 새롭게 시작하고 싶은 사람들의 마음이 있다. 후회와 회한이 없는 새로운 시작을 위해서다. 그러니 매일 매 순간 새롭게 오는 시간을 새롭게 살아낸다면 깨달은 자의 그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오늘도 내일도 ‘나무를 하고 물을 긷는’ 똑같은 일상이지만 완전히 다른 일상인 것이다. 사실 우리의 몸 또한 늘 새롭게 변하는 물질이기도 하다. 명상 의학자인 디펙초프라는 우리 몸속의 원자는 매 순간 새롭게 창조되며 피부는 한 달에 한 번씩 새롭게 교체되고 위벽은 5일마다, 간은 6주마다 새롭게 바뀐다고 한다. 언제나 같아 보이지만 실은 항상 변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변한다는 것은 새로움에 다름 아니다. 변화를 새로움으로 받아낼 수 없다면 우리는 덧없는 세월의 허무를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삶의 무상함이 아니라 무엇인가 영구하기를 바라는 그 마음에 있다. ‘덧없음’을 ‘새로움’으로 읽어내고 실천할 수 있다면 ‘물을 긷고 나무를 하는’ 반복되는 일상도 경이로움으로 오는 ‘깨달음’이 되는 것이다. ‘사유의 방’에서 한참을 머물다 나오는데 문득 오래전에 ‘미륵반가사유상’이라는 제목의 시를 썼던 것이 생각났다. 내용이 가물가물했는데 그 궁금증이 가시지 않아 노트북을 꺼내 찾아보니 2001년에 낸 시집에 실려 있었다. 물론 그때도 미륵반가사유상을 실견(實見)하지 못했었는데 당시 어떤 심정을 풀어냈는지가 궁금했다. 흐르고 있구나./ 무량의 속된 세월을 만나/ 그대는 줄곧 흐르고 있었구나./ 푸르고 푸른 그대 사유의 강에/ 발목을 적신다 해서/ 정토의 땅을 밟을 수 있을까만/ 나는 그대 앞에 넋을 놓고/ 때에 절은 그리움 하나를 벗는다./ 내 어둠을 밝혀 온/ 단 하나의 오랜 불빛을 여읜다./ 25년 전, 막 21세기에 들어서면서 막연하게나마 동경해 왔던 현실사회주의가 몰락하고 평등, 인권, 통일, 민주, 정의 등의 가치지향이 자본에 무너지던 그 무렵에 나온 시집이었다. 급변하는 현실을 맞아 치열하게 건너온 시대와 동지들에게 등을 돌리는 ‘훼절’이 있던 시절, 혼란스럽고 출구가 잘 안 보이던 그때 미륵반가사유상을 떠올려 시를 쓴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이기도 했다. ‘때에 절은 그리움을 벗’고, ‘내 어둠을 밝혀 온 단 하나의 오랜 불빛을 여의’어 다시 새롭게 흘러야 했을 것이니 그렇다. ‘새로움’이라는 출구가 절실했을 것이다. 여기의 미륵반가사유상이 누군가에게는 ‘삶의 새로움’을 발견하는 출구가 되기를 바라며 사유의 방을 나왔다.
    • 문화예술
    • 지리산 편지
    2026-05-26
  • 밥 냄새
    밥 냄새 김영춘 물밑에 안쳐놓은 밥이 끓어오른다 물이 밥을 끌어안은 것을 밥을 안친 것이라고 할 수 있나 생각하는 동안 밥이 익어서 깊숙이 온 집안에 밥 냄새 가득해서 이 세상 모든 향기가 소용없어라 저 홀로 피어나던 마음처럼 조용조용 살아 오르는 밥 냄새 누구를 기다리는가 고스란히 퍼져나가는 오래된 저녁때로다 부질없는 생각은 모두 저버린 몸이 되어 밥을 곁에 두고 앉아본다 --------------------------------------- 밥 냄새 하나로 세상의 모든 향기가 소용없다고 말할 수 있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도 전기밥솥에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밥 냄새를 맡으면 왠지 포근하고 편안한 느낌이다. 밥 한 그릇에 간장 한 종지의 단순하고 정갈한 식량이 그리운 시절이다. 이제는 차고 넘치는 자본의 밥상과 비만해진 사회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겠지만 그래도 그 시절 그 마음을 읽게 하는 시 한 편이 있어 고맙다.
    • 문화예술
    • 시를 찾아서
    2026-05-25
  • 응원 받고 싶은 지친 영혼들에게 위로를
    영화를 많이 보면서도 사실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별로 없다. 감독이라면 만들어진 시나리오를 검토해서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지, 시나리오를 직접 쓰는 사람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드라마 《모자무싸》(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에 출연하는 감독들을 보면서, 감독 이전에 그들이 모두 작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박해영 작가의 드라마 《나의 아저씨》, 《나의 해방일지》, 그리고 《모자무싸》까지. 《나의 아저씨》는 세 번 정도 봤고, 《나의 해방일지》도 두 번 정도 봤다. 아마도 《모자무싸》도 한 번은 더 볼 것 같다. 영화를 많이 보면서도 감독에 대해서는 항상 무관심했다. 앞선 두 드라마를 보면서도 작가 이름을 눈여겨보지 않았다. '아, 비슷하네' 뭐 이런 생각만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작가 박해영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작가를 알고 나서 그가 쓴 드라마들을 다시 생각해 보니, 다 비슷한 사랑,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데 조금씩 다르면서도 참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 드라마 모두 젊은 여자와 나이 든 남자가 주인공이다. 대부분 여자는 태생적인 슬픔을 가지고 있고, 남자는 현실적인 문제와 더불어 상대적으로 태생적인 고민까지 안고 고통스러워한다. 그리고 젊은 여자가 대부분 먼저 다가간다. 나이 든 남자는 대부분 조금은 방어적이다. 아마 나이 든 남자가 젊은 여자에게 다가갔다면 뻔한 막장 스토리가 되었을 텐데, 다행히 모두 그 반대다. 《나의 아저씨》에서는 이걸 연애라고 하기는 어렵고 응원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나의 해방일지》에서도 추앙하라고 했지만, 관계가 더 노골적으로 진행되지는 않는다. 딱 그 정도다. [모자무싸 황동만과 변의아 드리마 속 사진] 《모자무싸》의 황동만은 찌질하지만 아직은 세상에 타협하지 못하는 돈키호테 같은 인물이고, 변은하는 능력이 있지만 태생적인 고통을 안고 살아가며 그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그래서 그녀 또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다. 그런 둘이 만나서 서로를 응원하고 위로하는 드라마. 사는 것이 힘든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고, 사랑이 시작되었다가 식어가는 이별 또한 별이 지고 다시 뜨는 것처럼 늘 오고 가는 것이다. 하지만 사랑하기 시작하면 모두가 원하는 한 가지는 상대가 나를 늘 변함없이 응원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잠시 응원하고, 남은 시간 동안 서로의 잘잘못을 따지느라 인생을 허비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참 궁금한 것이 있었는데, '어른들이나 친구들이나 다들 왜 이렇게 칭찬을 못 할까'였다. 돈 드는 것도 아닌데 말로 하는 응원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면 참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니체는 인간의 마음 밑바닥에 깔린 시기심과 질투, 즉 '르상티망'을 이야기했다. 어쩌면 사람들은 남을 인정하고 칭찬하는 순간 자신이 그보다 아래로 내려앉는 듯한 묘한 나약함을 느끼는 걸지도 모른다. 타인을 응원하려면 내면이 먼저 단단하고 풍요로워야 하는데, 스스로가 결핍되어 있으니 칭찬이라는 가장 값싼 호의조차 베풀지 못하는 것이다. 한때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라는 책이 유행이었다. 나는 그 책이 그렇게 유행하는 것을 보며, 이제는 비난과 비판, 잔소리가 줄어들고 격려와 응원, 칭찬이 늘어날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고래가 춤을 추면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그런 걸까, 끝내 그런 세상은 오지 않았다. 인간은 사는 것이 두렵다. 유한한 삶을 사는 인간은 늘 태생적으로 불안할 수밖에 없다. 그 불안 때문에 삶은 더 힘겨워진다. 하지만 인간은 결국 또 인간에게 위로받는다. 박해영 작가의 남편은 10여 년 전 사고로 사망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그녀 또한 드라마를 통해 위로받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현실에서는 찾기 힘들지만 서로의 부족함을 응원하는 따뜻한 사람들이 나오는 드라마는 일상에서 흔치 않기에, 많은 사람은 화면 속에서 위로를 받는다. 그리고 어쩌면 작가 자신도 글을 쓰는 행위를 통해 스스로를 위로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도와달라고
    • 문화예술
    2026-05-19

사람이야기 검색결과

  • 별빛과 사진과 시, 그리고 지리산이 주는 것 - 이원규 시인 인터뷰 3부
    3부에서는 무리한 순례로 얻은 병을 계기로 카메라를 들고 산으로 들어간 이원규 시인의 사진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독학으로 익힌 사진으로 15년 넘게 지리산의 야생화, 별과 은하수, 반딧불이를 기록해온 과정과 지리산학교가 만들어진 배경, 지속가능한 환경운동을 위한 '자연 분양' 아이디어, 기후위기 시대에 문학과 예술이 할 수 있는 일까지 담았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지리산을 찾는 많은 이들에게 지리산의 시인이 전하는 마지막 당부로 마무리합니다. 00:00 인트로 00:46 오체투지, 임진각까지 그리고 무너진 건강 04:36 카메라를 들고 산으로 - 김인호 작가와의 인연 06:17 지리산학교의 탄생 배경 07:44 독학으로 배운 사진, 야생화를 찍다 10:17 별과 은하수, 반딧불이를 기록하다 13:15 지속가능한 환경운동을 위한 제안 - 자연을 분양하다 17:06 지리산 국립공원, 주인의식으로 지키기 21:02 기후위기 시대, 문학과 예술은 어디로? 24:37 은하수와 별, 도시화로 잃어버린 것들 27:24 지리산문화예술학교 소개 31:35 지리산을 찾는 이들에게 전하는 당부 #이원규시인 #지리산사람들TV #지리산별빛 #지리산반딧불이 #지리산문화예술학교
    • 사람이야기
    2026-08-14
  • [반달곰1%가게유람기] 모두의 가게, 모두의 공간
    [반달곰1%가게유람기] 모두의 가게, 모두의 공간 봄에서 여름으로 계절이 바뀔 때 옷장을 정리했다. 아직 입을 수 있지만 손이 잘 가지 않아 따로 모아뒀던 옷들을 담아 악양에 있는 ‘모두의 가게’로 향했다. 내게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물건이 그 곳에서는 새 주인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모두의 가게’는 하동 악양에 자리한 자원순환 공간으로 품질에 이상이 없으나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다양한 물건을 기부받아 합리적인 가격으로 재판매하는 한편, 생활에 필요한 친환경 제품을 비닐포장 없이 판매하고 텃밭 농산물을 나누거나 크고 작은 소모임을 여는 곳이다. ‘모두의 가게’을 지키는 8명의 활동가 중 ‘진이’씨를 만나 가볍게 안부를 나누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모두의 가게’를 손님으로 오가며 궁금했던 것들이 많았다. 소비하지 않아도 되는 공간 수진 : ‘모두의 가게’가 생기고 운영되는 것을 보며 함께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했어요. 어떤 인연으로 모두의 가게를 함께 시작하게 됐어요? 진이 : 언제부터였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네요. ‘모두의 가게’를 시작한 지 3년이 됐는데 시작하기 몇 년 전부터 제로 웨이스트 모임을 같이 했어요. 생활에 필요한 것(세제, 밀랍랩 등)을 함께 만들기도 하고 책을 같이 읽기도 하면서 ‘아지트 같은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라고 얘기를 하곤 했었는데 이렇게 실제로 하게 될 줄은 몰랐죠. 목공방을 운영하던 자리에서 ‘모두의 가게’를 처음 시작하게 되었는데 악양면사무소 앞이라 이웃들이 오며가며 들르기 좋을 것 같기도 했고 뭔가 해보면 재밌겠다는 얘기를 나누다가 시작하게 되었어요. 이 공간을 어떻게 쓸지 고민하다가 제로웨이스트 모임을 계속 해왔으니 ‘자원을 순환할 수 있는 공간과 사람들이 자유롭게 모일 수 있는 공간을 만들면 좋겠다.’고 의견이 모였어요. 공부도 하고 놀기도 하는 공간으로요. 요즘은 어느 카페를 가든 소비를 해야 하는 구조잖아요. 소비하지 않고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수진 : 인테리어도 다 같이 한 거죠? 진이 : 맞아요. 8명이 함께 시작했어요. 그 중 시간이 되는 5명이 공간 지기를 하고 있어요. 함께 페인트칠도 하고 공방을 하던 친구가 남기고 간 가구를 활용하거나 각자 집에서 사용하지 않는 가구를 가져다놓았죠. 새로 산 것은 하나도 없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필요한 게 있으면 ‘모두의 가게’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에 올리면 누군가 가지고 있는 걸 나눠주기도 했어요. 수진 : 저도 채팅방에 들어갈 수 있어요? 진이 : 그럼요. ‘모두의 가게 악양’이라고 검색하면 나올 거예요. 100명을 채우는 게 목표였는데 벌써 110명이 넘었어요. 가게 소식도 전하지만 개인들이 ‘우리 집에 이런 게 있는데 나누고 싶다.’는 것도 많이 올리셔요. 농산물을 나누거나 판매하고요. “선풍기 필요해요.”라고 올리면 누군가 “저희 집에 있어요.” 해서 나눠주시기도 해요. 오픈 채팅방을 통해서 공유 경제라고 할까요? 그런 게 생각보다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는 것 같아요. (24년 3월에 개설 된 ‘모두의 가게’ 오픈 채팅방에 함께하는 참여자는 26년 8월 기준 114명이다.) 수진 : 제로웨이스트 동아리로 시작했다 하더라도 실제 공간을 운영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수익을 만들어야 공간 운영이 되니까요. 진이 : 그래서 고민이 되기도 해요. ‘소비하는 삶을 지양하고 있는 걸 나눠쓰자’는 취지에서 시작했는데 이 곳 물건이 저렴하니까 필요 없어 보이는데도 마구 사가는 분들이 간혹 계셔요. 그러면 ‘우리가 괜히 소비를 조장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고민이 들기도 해요. 필요한 게 아닌데 생각보다 싸고 괜찮은 물건이 있으면 갖고 싶어지잖아요. 그래서 공간 지기들은 물건을 사라고 부추기지 않아요. “필요 없으면 사지 마셔요.”라고 안내하고 있어요. 그런데 그건 뭐, 저희가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죠. 수진 : 고민이 될 것 같아요. 공간이 더 활성화 되면 좋겠지만 소비를 조장하고 싶지는 않기도 하고요. 진이 : 그러게요. 소비를 조장하고 싶지는 않지만 월세는 또 벌어야 되고. 그렇다면 이걸 어떻게 슬기롭게 해야 할까요? 한편으로는 ‘물건을 무조건 싸게 파는 게 좋은 것인가?’에 대한 논의도 몇 번 했었는데 지기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나뉘어요. ‘싸게 팔아서 필요한 사람이 쓸 수 있게 하는 게 좋다.’라는 의견이 있고, ‘그래도 물건의 가치를 어느 정도는 반영해서 가격을 책정하는 게 좋다.’라고 하는 의견도 있고요. 어떻게 생각해요? 수진 : 음... 값을 어느 정도 받는 게 좋을 것 같기도 하고.... 돈과 상관없이 필요한 사람이 물건을 잘 사용하면 좋을 것 같기도 하고요. 쉽지 않은 문제네요. 그렇지만 현실적인 문제도 있잖아요. 운영을 해야 하니까요. 그렇다고 물건값을 ‘5만원’ 이렇게 받지는 않을 거잖아요. 비싸다고 하더라도 5천원-1만원 일 것 같은데. 진이 : 논의를 하다가 허탈해지는 게 그거예요. ‘천 원 받을지 3천 원 받을지 가지고 우리가 이렇게까지 진지하게 얘기를 해야 되나.’ 싶어 좀 웃겼죠. 결국 모든 물건에 천 원을 붙이는 것은 그만하자고 의견이 모였어요. 싸서 막 사는 것을 막기 위해서요. 돈으로 환산하지 않는 노동력과 시간을 담은 공간 수진 : 이 공간을 지키는 분들 인건비는 거의 안 나올 것 같아요. 진이 : 전혀 안 나오죠. 수진 : 아이고. 그럼에도 공간을 지키고 사람들이 왔을 때 맞이하는 건 어떤 마음으로 하고 계신지 궁금해요. ‘봉사한다.’도 아닐 것 같아요. 진이 : 글쎄요. 지기들마다 다를 텐데 저는 봉사한다는 생각은 전혀 안 들어요. 우리가 조금 더 여유가 생기면 알바비 정도를 책정해서 주고 싶은 마음은 있어요. 어쨌든 자기 시간을 여기에 쓰는 거니까요. 그렇지만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 나의 노동력과 시간에 대해서 억울한 마음은 없어요. 그런 마음이라면 이 일을 할 수 없겠죠. 처음부터 그런 기대로 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글쎄, 어떤 마음으로 하는 걸까요? 나도 잘 모르겠네. 살다 보니 돈이 되는 일이 늘 재미있는 것은 아니더라고요. 돈을 벌려고 하는 일은 재미있든 재미없든 해야 되는 일인 경우가 많은데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마음 안에서 ‘하고 싶다. 이거 너무 재밌겠다.’라고 우러나와서 하게 되죠. (진이는 일주일에 하루는 ‘모두의 가게’에서 공간 지기로 일하고, 하루는 하동 이웃 5명이 함께 만든 독립서점 ‘이런책방’에서 일하고 있다.) 그런데 그런 일은 이상하게 돈과 연관이 없는 일들인 거예요. 그런가 보다 생각해요. 돈은 딴 데서 벌고 이런 일로 나의 다른 부분 채운다고 생각해요. 가치관이 맞는 사람들과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 그게 꼭 돈이 따라오지 않는다 하더라도 기꺼이 기쁜 마음으로 하고 있어요. 아마 다른 지기들도 그럴 거예요. 지금은 집 한 편을 수리해 작은 농어촌 민박(‘이런민박’)을 하고 있고 작년부터는 동네 농장에서 애호박 포장하는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아침에 3-4시간 정도 일하는데 너무 좋은 거예요. 시골에 내려올 때 ‘농사일에 품을 팔아서 먹고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애호박 농장에서 일하는 동안 머리를 비우고 몰입해서 일하게 되는데 끝나면 개운하고 좋아요. 수진 : 정말 여러 가지 일을 하시네요. 시골이라 가능한 걸까요? 진이 : 맞아요. 시골이라서 가능한 것 같기도 하고 시골에서는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것 같기도 해요. 하루 종일 일하는 직장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면 조그마한 일 하나로는 생계 유지가 안 되니까요. 그런 이유도 있지만 ‘어차피 아침에 일어나야하는데 더 누워있어서 뭐 해. 가서 일하지.’ 이런 마음이 들기도 했어요. 모두를 위한 공간 수진 : 앞으로 ‘모두의 가게’가 좀 더 해보고 싶은 일이 있나요? 진이 : 몇 가지 있는데 일단 공간을 잘 공유하면 좋을 것 같아요. ‘모두의 가게’를 이용하는 분들 중심으로 여러 모임이 활성화되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이 장소를 얼마든지 이용하실 수 있으니까요. 지금까지 ‘바느질 모임’도 해 보았고 ‘책 읽기’, ‘희극 읽기’ 같은 작은 모임들이 생겼다 사라지곤 했어요. 먹거리와 관련된 모임도 해보고 싶어요. ‘반찬 만들기’ 모임 같은 것을 하며 주기적으로 같이 ‘식사 모임’도 해보고 싶어요. 가게 한편에 공유 재봉틀이 있으니 사용하시라고 안내하는데 모임이나 공간 활용이 활발하게 잘 되지는 않은 것 같아요. 수진 : 공간을 잘 쓰이게 하는 것도 쉽지 않은 것 같아요. 계속 알리고 사람을 모으는 노력이 필요하기도 하고요. 지역사람들은 이 공간을 어떻게 보시나요? 어르신들은 좀 낯설어하셨을 것 같아요. 진이 : 처음에는 많이 낯설어하셨어요. “여기 도대체 뭐 하는 데야?” 하시거나 “왜 이렇게 싸게 팔아? 누가 입던 옷 아니야?” 이런 이야기도 하셨죠. 그런데 저희가 잘 설명 드리면 “너무 좋네. 나도 집에서 좀 찾아볼게.” 하고 가시는 분들이 대부분이에요. 면사무소가 가깝다보니 어르신들이 많이 왔다 갔다 하셔요. 들어오셔서 물 한잔 하고 쉬었다 가시기도 하고 핸드폰에 문제가 있으면 “나 이것 좀 해줘라.”하시기도 해요. 그럴 때 뭐랄까, 뿌듯하다고 해야 할까요? 작은 도움이 되는 것 같아 기분이 좋기도 하고 이웃들이 편하게 생각하고 와주시는 게 고마워요. 처음에는 들어와도 되는 데인지 안 되는 데인지 몰라 기웃거리던 분들도 이제는 편하게 들어오셔요. 뭘 사지 않더라도 들어와서 잠시 쉬었다 가시기도 하고요. 요즘도 여기 앞에 써 놨어요. “에어컨 바람 공유합시다.”라고. 서로의 믿을 구석이 되어주는 사람들 수진 : 여러 사람이 함께 일하는 것은 늘 매끄럽지만은 않을 것 같아요. 어떠세요? 함께 운영하는 분들끼리 우여곡절이 있었을 것 같아요. 진이 : 이것도 운영자들마다 생각이 다를 텐데, 생각처럼 큰 갈등이 있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의견이 안 맞을 때는 꽤나 많아요. 그래도 대부분 대화로 잘 해결이 되었어요.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쪽을 따라간다거나, 더 많은 사람들이 원하지만 한 사람이 “난 이것만큼은 절대 포기 못해.” 하면 또 그 사람 뜻을 따르기도 하면서 해 왔던 것 같아요. 최악의 상황, 그러니까 “나 더 이상 같이 못하겠어!” 이렇게 관계가 틀어질 때까지 가면 안 되죠. 수진 : 이야기를 듣다보니 ‘모두의 가게’를 함께 하는 사람들이 단순히 이웃이나 일을 같이하는 사이 이상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진이 : 그 이상이긴 하죠. 저한테는 그래요. 우리가 오래된 친구처럼 일상을 다 공유하지는 않지만 기쁜 일이나 슬픈 일이 있으면 모두들 발 벗고 나서 줄 사람들이라는 믿음 같은 것도 있고 기댈 구석이 되는 것 같아 고맙기도 해요. 여태까지 경험해 온 인간관계랑 조금 다르다고 느껴요. 그렇다고 막 엄청 끈끈하진 않아요. 어느 정도의 거리는 있는데 또 어떨 땐 되게 가깝게 느껴지기도 하고요. 사실 ‘이 사람들 없으면 여기 뭐 하러 사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생각해 보면 복 받았죠. 이렇게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서로 잘 조율하면서 재밌게, 때로는 싸우기도 하지만 함께 지낼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너무 기쁘죠. 수진 : 그런 단단한 관계가 이 공간을 자연스럽게 운영되게 만드는 것 같아 보여요. ‘반달곰 친구들’과 연대하는 마음, 지구와 함께하는 발걸음 수진 : 이번 인터뷰는 하동에 있는 ‘반달곰을 사랑하는 1% 가게’들을 찾아다니며 하고 있는데요, 어떻게 함께하게 됐는지 궁금해요. 진이 : ‘반달곰친구들’ 단체를 알고 있기도 했고, 그 활동을 지지하고 응원하고 있었어요. 그 곳에 수익금의 1%를 후원하는 가게들이 구례에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거든요. ‘반달곰친구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모두의 가게’의 관점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 조금이라도 힘이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수익이 많이 나서 후원도 많이 하면 좋을 텐데... 뒤이어 도시의 현대인보다도 바쁜 시골사람들의 일상을 넋두리하며 자연스럽게 인터뷰가 끝이 났다. 문 닫을 시간이 훌쩍 지나 새로워진 ‘모두의 가게’ 공간을 휘리릭 둘러보았다. 더 넓고 환해진 공간에 이웃들이 둘러 앉아 크고 작은 모임을 열어가는 모습을 상상했다. 지나던 이웃이 “여기로 옮겼어?”하며 문을 열고 빼꼼히 들여다보며 안부를 묻고 돌아갔다. 더 이상 입지 않는 깨끗한 옷을 ‘모두의 가게’에 두고 꼭 필요해 사려고 온라인 장바구니에 담아두었던 큰 유리병을 한 편에서 발견해 반가운 마음으로 사 왔다. ‘이런 곳이 하동에 꼭 있었으면 좋겠어.’라고 생각했던 그 모습 그대로의 공간을 기꺼이 꾸려가는 모두의 가게 공간 지기들이 참 고마웠다. 올해로 3년이 된 ‘모두의 가게’는 지난 7월 ‘악양면 악양동로 373’로 자리를 옮겨 새롭게 문을 열었다. 매주 월-금 11:00-15:00 열려있으며 매일 다른 지기들이 이웃을 맞이한다. 지리산 자락이 병풍처럼 이 공간을 둘러싸고 있다. [반달곰1%는 지리산권 가게들이 자발적으로 진행하는 공존프로그램이다. 반달곰1% 가게에 가면 반달가슴곰을 자연스럽게 만나고, 특별히 계획하지 않아도 반달가슴곰 보호활동에 참여하게 된다. 2021년 5개 가게로 시작한 반달곰1%는 2026년 현재 구례 11곳, 하동 11곳으로 늘어났다. 반달곰1%는 ‘유랑인증서’를 발행하고 있는데, 손님들이 반달곰1% 가게에 들러 물품을 먹거나 마시거나 구입하면, 반달곰1% 가게들은 수익금의 1%를 사단법인 반달곰친구들에 기부하고, 그 기부금이 모아지면 사단법인 반달곰친구들과 논의하여 올무수거 활동, 무인센서카메라 구입 등 반달곰 보전활동을 위해 쓰기로 약속하였다.] 글쓴이_ 정수진 하동으로 이주한 지 4년이 되었습니다. 겨울이 오면 남편과 함께 인도와 네팔에서 NGO 활동가로 살아가고, 꽃피는 봄이 오면 하동으로 돌아와 민박집을 엽니다. 텃밭을 가꾸고 이웃 농부들의 농산물이 잘 쓰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열심히 요리하고 나누어 먹습니다.
    • 사람이야기
    2026-08-13
  •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그리고 순례의 길 - 이원규 시인 인터뷰 2부
    이원규 시인 인터뷰 2부에서는 지리산 댐 반대운동을 계기로 수경스님, 도법스님과 인연을 맺고 실상사에 들어가게 된 이야기부터, 낙동강 천삼백리와 지리산 850리를 걸었던 도보순례, 지리산 둘레길의 원조가 된 기획, 대운하 반대 삼천리 순례까지 활동가로서 걸어온 길을 들어봅니다. 대표시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이 탄생한 배경과 안치환의 노래 이야기, 그리고 무리한 순례 끝에 찾아온 병까지 담았습니다. 00:00 인트로 00:43 지리산댐 반대운동 - 수경스님과의 만남 04:05 실상사 합류와 낙동강 도보순례 05:44 지리산 850리 도보순례와 위령제 07:51 지리산 둘레길의 원조 기획과 한계 10:34 생명평화 탁발순례와 오체투지 14:58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창작 배경 17:01 안치환의 노래 18:11 지리산에 오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19:20 '지리산사람들' 단체 결성과 박두규 시인 21:16 이런 때 불러주시면 달려갑니다 22:46 내가 사랑한 장면 - 정령치와 만항재의 밤 24:22 섬진강 조망 1번지, 오산 사성암과 풍수 이야기
    • 사람이야기
    2026-08-07
  • 고1 때 가출 겸 출가하고 간첩으로 몰린 소년 '지리산 시인'이 되다 - 이원규 시인 인터뷰 1부
    지리산 시인 이원규 선생님을 모시고 그의 삶을 들어봤습니다. 1부에서는 문경의 가난한 산골 마을에서 태어나 우연히 만난 국어선생님(시인)을 통해 시와 인연을 맺고, 절에서 간첩으로 몰려 고초를 겪었던 젊은 시절, 그리고 서울에서의 노동운동과 기자 생활을 뒤로하고 오토바이 한 대로 지리산에 내려오기까지의 여정을 담았습니다. 00:00 인트로 00:39 시인 이원규를 만나다 02:45 가난한 산골마을 시인 국어선생님 04:35 중2때 출가하고 간첩으로 몰린 사연 06:46 절에서 만난 단 한권의 책 07:39 검정고시와 대학 진학, 시인 데뷔 09:44 시인이 된 후의 환멸과 노동운동 12:01 서울살이와 위장취업 기자 생활 13:40 오토바이 타고 지리산으로 17:11 이현상의 유품을 찾아헤멘 빗점골 20:15 지리산 정착 — 이장과의 만남, 98년 수해 23:30 오토바이로 지리산 곳곳을 홀로 탐색하다 #이원규시인 #지리산사람들TV #지리산 #시인인터뷰 #윤주옥 #지리산 #지리산시인 #행여지리산에오시려거든
    • 사람이야기
    2026-08-01
  • 구름도 누워 쉬는 지리산 깊은 산골 '와운마을' 이야기 - 양순자, 박금모 선생님 인터뷰
    지리산 깊은 골짜기, 뱀사골 끝자락에 자리한 와운마을을 찾았습니다. 이번 영상에서는 와운마을 토박이 양순자 선생님과 명품마을 초대 운영위원장을 지낸 박금모 선생님 부부를 만나, 구름도 누워 쉬어간다는 '와운(臥雲)'마을의 어제와 오늘을 들어봤습니다. 화전민 시절 조릿대 열매로 죽을 쒀 먹던 보릿고개 이야기부터, 한 반에 형제자매가 뒤섞여 공부하던 와운분교의 추억, 밤새 인월장을 오가며 생선을 짊어지고 오시던 아버지의 이야기까지 — 지금은 사라진 산골 마을의 생생한 삶이 담겨 있습니다. 또한 마을을 지켜온 수호신 천년송(할아버지·할머니 나무) 당산제 이야기, 호랑이와 반달가슴곰이 출몰했던 산골살이의 기억, 그리고 지리산 국립공원 유일의 명품마을로 지정되기까지의 과정도 함께 들어봅니다. ???? 지리산 뱀사골 와운마을, 그 깊은 이야기 속으로 함께 떠나보세요. 양순자선생님 인터뷰 00:00 인트로 00:38 지리산 와운마을 어린 시절의 풍경 01:07 언니, 동생이 같은 반에서 공부한 와운분교 05:27 인월까지 장보러 가던 옛길과 추억의 샘물 09:51 민박과 식당을 시작한 유래 11:15 호랑이, 곰, 마을을 지켜준 천년송 14:50 와운마을이 이렇게 되기를 박금모선생님 인터뷰 16:39 세번을 옮겨 터를 잡은 와운마을 19:13 구름이 누워있는 마을 - 와운마을 21:37 자연환경이 가장 좋은 마을 23:12 아내의 고향으로 들어와서 살게 된 이야기 25:34 지리산 귀농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27:54 반달가슴곰과의 공존 29:42 와운마을에 오시려면 32:16 차없는 마을을 희망합니다 33:45 최고의 선물이 된 '명품마을' 36:06 국립공원공단과 마을은 한 가족이 되어야 37:19 자연이 살아있는 마을, 다시 오고싶은 마을로 만들자
    • 사람이야기
    2026-07-16
  • "내 마음대로 안 돼서 괴로우신가요?" 지리산 쌍계사에서 만난, 법제스님이 건네는 따뜻한 차 한 잔과 위로의 차담
    안녕하세요, 지리산사람들TV 윤주옥입니다. 오늘 저희가 만난 분은 지리산 단천마을 출신이자, 현재 쌍계사 템플스테이에서 따뜻한 차담(茶談)을 통해 수많은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고 계시는 '법제스님'입니다. 평범한 대학생이자 직장인이었던 20대 후반, 과감하게 출가를 결심하게 만든 불교의 '탐진치' 가르침부터 다시 천혜의 고향 지리산 단천마을로 돌아오게 된 유쾌한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아침에 눈떠서 잠들 때까지의 모든 순간이 수행이라는 스님의 말씀처럼, 상처받고 지친 현대인들에게 '걸림돌을 디딤돌로 인식하는 법', 그리고 마음의 설정을 내려놓는 지혜를 전합니다. ???? 쌍계사 템플스테이 참여 방법 인터넷 검색창에 '쌍계사 템플스테이'를 검색하시면 체험형(티소믈리에, 선다회 다도 체험) 및 휴식형 프로그램을 간편하게 예약하실 수 있습니다. 언제나 소박하게 열려 있는 법당으로 마음 쉬어가세요. https://www.templestay.com/fe/MI000000000000000062/temple/introView.do?templeIdTmp=Ssanggyesa_hd -- 타임라인 -- 00:00 인트로 00:43 쌍계사에서 법제스님과 함께 01:31 해발 500m 아름다운 단천마을 04:13 어리석음에서 지혜로, 고뇌 끝에 선택한 출가 06:55 수행은 마주하는 나를 살피는 시간 09:53 고향으로 돌아온 쌍계사 템플스테이 지도법사 12:45 차(茶) 문화를 이어가고 있는 쌍계사 17:30 지친 현대인들을 위한 쌍계사만의 특별한 차담 20:52 100% 즐기는 쌍계사 템플스테이 22:24 지리산과 반달가슴곰 이야기 23:57 유기동물 30마리와 함께 살아가기 26:04 언제나 소박하게 열려 있는 단천마을 법당 27:07 행복해야 한다는 설정을 버리면 마음에는 평화가
    • 사람이야기
    2026-06-23
  • 한국인 90% 수영을 하지 못하는 이유, 그리고 일본인 90%수영이 가능한 이유
    수영을 못하는 사람이 한국엔 꽤 많은 편이다. 우리 집 4명 중엔 50%가 못하지만 한국인 90%는 수영을 못 할 것 같다. 공식적인 통계자료는 없지만 아마도 10~20% 정도 아닐까? 일본은 수영이 정식 과목에 있고 여름마다 수영을 가르치기 때문에, 정규 교육을 받은 사람 중에 노인들 빼고는 아마 모두 수영이 가능하다고 한다. 나는 아주 어려서 수영을 배웠다. 초등학교 1학년쯤에 동네 수로에서 놀다가 죽을 뻔한 경험을 하고, "수영을 못하면 죽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하루 종일 연습해서 수영을 배운 기억이 있다. 그 후에 물에 들어가는 것이 어렵지 않았고 재밌었다. 그렇다고 해서 수영을 아주 잘하는 것은 아니고, 정식으로 배운 것도 아니라서 초보적인 수영법에 불과했다.이른바 개수영이라고 하는 수영과 배영, 그리고 조금 변형된 자유형 정도가 가능했는데 구례에 수영장이 생겨 가보니 내가 배운 영법으로는 수영이 힘들었다. 아니, 좀 창피했다.다행히 주변에 아는 지인이 있어 그 지인에게 10분 정도 배우고 나서는 자유형을 하는 것에는 문제가 없었고, 지금도 수영장에 가면 수영을 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 세월호 사고 이후 한국에도 생존 수영을 배워야 한다는 여론이 있었고 지금도 수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수영까지 알려주지는 않는 것 같다.구례 같은 경우 수영장이 있고 요금이 매우 저렴하고 수영 강사도 있어 무료로 수영을 배울 수 있다. 시간과 관심만 있다면...물에 빠지는 경우가 사실 살면서 많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 나의 경우 중학교 1학년 무렵에 논에 갔다가 좁은 길에서 자전거가 미끄러져 물에 빠진 적이 있었다. 만약 내가 그때 수영을 하지 못했다면 어찌 되었을까? 끔찍한 결과가 나왔을지 모른다. 물에 가까이 가지 않으면 되지만 생존을 위해 수영은 기본이라는 생각을 갖는 것이 좋다. [일본인이 좋아하는 운동] 일본은 1950년대 시운마루호 침몰 사건이 있었다. 1955년 5월 11일 새벽, 일본 세토내해 우고시마 주변 해역(가가와현 다카마쓰시 앞바다)의 짙은 안개 속에서 일본 국유철도가 운영하던 여객선 '시운마루호'와 대형 화물선 '우코마루호'가 정면충돌했다. 충돌 후 시운마루호는 불과 수 분 만에 침몰했다.이 사고로 총 168명이 목숨을 잃었다. 특히 가장 큰 비극은 당시 수학여행을 가기 위해 배에 타고 있던 초등학생과 중학생들의 피해가 압도적으로 컸다는 점입니다. 수학여행 단체 학생들은 가가와현, 고치현, 에히메현, 히로시마현 등에서 온 4개 학교의 학생과 인솔 교사들이 타고 있었고, 사망자 중 학생 수는 전체 사망자 168명 중 어린 학생이 100명에 달했다. (초등학생 77명, 중학생 23명) 이들이 미처 배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거나, 바다에 빠진 후 헤엄을 치지 못해 수많은 목숨을 잃으면서 일본 전역은 엄청난 충격과 슬픔에 빠졌다.이 사건 이후 일본은 모든 학교에 수영장 건설이 기본이 되었다. 이후 초등학교에 수영장을 기본으로 만들어 초등학교를 지나면 대부분 수영을 할 줄 안다고 한다. 도쿄대학에 들어간 학생들 대부분이 수영을 기본으로 한다고 하고 공부에도 도움이 된다고 답했다고 하니, 공부 좋아하는 학부모들도 이번 여름에 학원보다는 수영장에 보내 아이들에게 수영을 배우게 하는 것은 어떨까? 어른은 배우는 데 한 달이 걸릴 줄 모르지만 아이들은 대부분 2~3주면 배운다.
    • 사람이야기
    2026-06-16
  • [반달곰1%가게유람기] "이 빵을 즐겁게 먹을 사람들을 상상해요" 파란돌 천연발효빵
    [반달곰1%가게유람기] 이 빵을 즐겁게 먹을 사람들을 상상해요. 파란돌 천연발효빵 하동 악양에 자리한 일주일에 하루만 문을 여는 빵집, ‘파란돌 천연발효빵’을 찾았다. 가게 앞에 ‘빵’이라고 큼직하게 써 둔 간판을 보며 ‘이 곳은 어떤 빵을 만드는 곳일까?’ 궁금한 마음을 안고 가게에 들어섰는데 이야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이런 마음이 들었다. ‘이 사람이 만드는 빵이라면 안심하고 먹을 수 있다.’ 가게 안에는 오븐에서 갓 나온 빵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마지막 빵을 꺼내는 건해님과 인사를 나누며 가까이 가니 빵에서 ‘타닥타닥’ 맑고도 경쾌한 소리가 났다. 빵의 뜨거운 표면이 차가운 공기와 만나 균열이 일어나는 소리일까? “빵이 나오고 2분 동안만 들을 수 있는 소리예요.”라고 건해님이 덧붙였다. 2019년에 남편, 세 아이와 함께 하동으로 이사를 왔다는 건해님은 파란돌 천연발효빵집의 두 번째 주인이다. “손님으로 이 빵집을 처음 알게 되었어요. 친구가 동네에 특이한 빵집이 생겼다고 해서 왔는데 빵이 참 맛있었어요. 아이들이 먹을 빵을 직접 만들고 싶어 사장님께 부탁해 빵을 배웠는데 그때 배운 빵이 ‘길쭉이’였어요. (바게트 모양의 길쭉한 빵.) 원래 사장님도 빵을 전문으로 하는 분이 아니었다고 해요. 수행을 하시던 분이라 들었는데 그래서인지 저는 그분이 만드신 빵이 ‘수행자의 빵’ 같았어요. 맑은 사람만이 만들 수 있는 빵이라고 할까요? 빵이 참 고요했어요. 빵을 만들며 알게 된 건데 보통 빵을 만들기 위해서는 반죽을 계속 괴롭히거나 세게 내려쳐서 만들어요. 그런데 이 빵은 살살 다뤄야 해요. 자연이 하는 일을 약간만 손보고 기다리는 게 제 일이에요. 재료도 밀가루와 물 밖에 들어가지 않는데 그럼에도 부풀리고 발효해야 하니까 보이지 않는 것들이 역할을 하죠.” 밀가루에 벌레가 생기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나요? “처음에는 호주산과 미국산 유기농 밀가루를 사용했는데 문제가 생겨 다른 밀가루를 찾다가 프랑스산이 좋다는 말을 듣고 사용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프랑스산 밀을 반쯤 쓰다 보니 벌레가 나오는 거예요. 저는 그게 이상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여태까지 사용했던 다른 밀가루에서 벌레가 나오지 않았다는 게 더 이상하게 느껴졌죠. 이곳에 살다보니 대부분의 식재료가 보관을 잘 해도 시간이 지나면 상하고 벌레가 생긴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수입 밀가루는 배를 타고 한국까지 최소 한 달 이상 습한 바다를 지나 왔을 텐데 벌레가 생기지 않는다는 게 충격이었어요. 벌레가 생기지 않게 어떤 처리를 했다는 게 아닐까요? 그 때부터 우리밀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구례에서 제분한 우리밀을 쓰다가 하동에서도 재배가 가능한지 궁금해졌죠. 어느 날 동네 할머니께 여쭤보니 “예전에는 밀농사를 다 지었지. 요즘에는 밀 수매를 안 하니 팔 곳이 없어서 안 지어.”라고 하셨어요. 이듬해 이웃 어른께 밀농사 지어주실 농부님을 소개받아 같이 농사를 지었어요. 밀은 겨울을 지나며 크는 작물이라 병충해가 없어 농사는 쉽지만 6월 수확 이후에 바로 장마가 오니 건조를 잘 하지 않으면 벌레가 생기고 보관이 까다로워요. 첫 해에 농사지은 밀은 농부님도 우리도 경험이 없어 건조를 잘못해 반도 못 쓰고 산패가 되어 그대로 밭에 모두 뿌렸어요. 다음 해는 조금 더 나았어요. 시행착오를 겪으며 건조를 얼마나 해야 할지, 어떻게 보관해야 하는지 배웠어요. 그렇지만 두 해 농사를 경험해보면서 밀농사는 전문 농가에 맡기고 나는 우리밀을 최대한 많이 사용하는 것에 집중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빵을 만들며 농사까지 짓는 것은 역부족이더라고요.” 빵을 만드는데 걸리는 시간. 3일 이곳은 일주일에 하루만 문을 연다. 매장에 와도 살 수 있는 빵이 없을지도 모른다. 오랜 시간 걸려 자연과 건해님이 함께 만드는 빵은 대부분 택배로 판매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건해님의 빵 택배 판매는 ‘무료 나눔’이라는 길고도 정성스러운 시간을 딛고 만들어졌다. “처음에는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영업을 했어요. 빵을 만들기 위해서는 3일이 필요한데 첫째 날 발효하고 둘째 날 반죽하고 셋째 날 빵을 구워요. 화요일에 문을 열기 위해서는 일요일도 나와서 발효작업을 해야 했는데 그 시기에 첫째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어 주말만큼은 가족들과 마음 편히 시간을 보내고 싶었어요. 게다가 둘째와 셋째는 아직 미취학 아동이었기 때문에 빵집을 하며 아이까지 돌보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해 영업일을 줄였어요. 그래도 일을 완전히 포기하고 싶지는 않아 조정을 하다 보니 빵이 나오는 날이 일주일에 하루가 되었죠. 빵은 대부분 택배로 판매해요. 처음 빵을 택배로 보내기 시작한 건 ‘무료 나눔’ 형태였어요. 영업을 시작한 초기에 손님이 얼마나 오실지 예측이 어려워 남은 빵을 필요한 분께 나누면 좋겠다 싶기도 했지만 빵에 대한 솔직한 평가가 듣고 싶었어요. 빵집을 한다는 것을 알리지 않고 매일 연습 삼아 빵을 구워 온라인에 ‘무료 나눔’ 소식을 올렸어요. ‘악담이라도 좋으니 진실 된 평가를 듣고 싶다.’는 문자도 빵과 함께 보냈죠. 몇몇 분들이 진심 어린 의견을 나누어주셨는데 정말 고마웠어요. 그 분들이 지금의 씨앗이 되었어요. 1년에 걸쳐서 100번의 무료나눔을 하고 난 뒤 빵집을 한다는 사실을 밝혔어요. 자신이 없었거든요. 처음 빵을 팔고 손님께 돈을 받던 순간이 아직도 기억나요. 손이 덜덜 떨렸어요. ‘이 빵은 내가 봐도 미숙한데 돈을 받아도 될까?’ 미안한 마음이 들었어요. 지금은 괜찮아요. 요즘 물가도 많이 올랐지만 빵 가격을 올리지 않았어요. 이 가격이라면 내가 당당하게 받을 수 있겠다는 마음이 있어요.” 만드는 사람을 닮은 빵 일주일에 하루 영업을 하는 것으로 수익이 충분히 나는지 궁금해 조심스레 물으니 지금으로써는 수익이 나지 않는다는 덤덤한 답변에 돌아왔다. 그럼 더 많은 사람들에게 빵을 팔게 되면 좋겠느냐고 덧붙여 물었다. “아니요. 지금 딱 좋아요. 빵에는 만드는 사람의 상태가 그대로 드러나요. 만드는 사람 기분이 좋지 않으면 빵도 나빠져요. 제가 정신없으면 빵도 정신없이 나와요. 빵은 아주 노동 집약적인 생산물인데 많이 만들면 힘이 더 들고, 그럼 그 힘듦이 빵에 드러날 수밖에 없어요. 더 많이 만들어서 더 팔고 싶지는 않아요. 수익을 더 내려면 빵을 더 많이 팔거나 재료값을 아껴야 하는데 안 좋은 재료를 단 한 번도 쓴 적이 없어요. 빵을 만들면 우리 아이들이 이 빵을 가장 많이 먹거든요. 그리고 이 빵을 식사로 매일 드시는 분들께 안 좋은 재료로 만든 빵을 드리고 싶지는 않아요. 그래야 제 마음이 편해요. 이 빵을 즐겁게 먹을 사람들을 상상해요. 수익이 거의 나지 않아도 이 일을 계속 하는 것은 빵을 통해 맺게 된 인연들이 좋아서인 것 같아요. 사실 빵은 누구나 만들 수 있잖아요. 대한민국에 빵집이 얼마나 많아요. 돈만 내면 사먹을 수 있죠. 저희 빵은 요즘 사람들의 입맛을 충족시켜주지는 못해요. 달지도 예쁘지도 않고 화려하지도 않죠. 그냥 집 밥 같은 빵이란 말이죠. 손님들 입장에서는 ‘이렇게까지 기다려서 먹어야하는 빵인가?’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먹고 있어요.’라고 말씀해주시는 손님들이 계셔서 참 고맙죠.” 소중한 것들을 지키고 싶은 마음 “‘반달곰 친구들’이라는 단체는 산악열차 반대 활동을 하면서 알게 되었어요. 그냥 ‘반달곰 지키는 사람들인가 보다.’라고 생각하다가 이 활동을 제안 받았는데 어떤 일인지 설명을 듣기도 전에 함께하겠다고 했어요. 이 일을 하고 있는 활동가들이 어떤 마음으로 하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죠. 지리산에는 다양한 생명과 존재들이 살아가고 있잖아요. 반달곰을 지키는 일이 꼭 ‘반달곰’만을 지키는 활동이 아니리라 생각해요. 지리산과 하동에 있는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들이 사라지는 것을 보며 마음이 아플 때가 많아요. 그런 것들이 오래오래 존재하도록 하는 일에 작게나마 함께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반달곰1%는 지리산권 가게들이 자발적으로 진행하는 공존프로그램이다. 반달곰1% 가게에 가면 반달가슴곰을 자연스럽게 만나고, 특별히 계획하지 않아도 반달가슴곰 보호활동에 참여하게 된다. 2021년 5개 가게로 시작한 반달곰1%는 2026년 현재 구례 11곳, 하동 11곳으로 늘어났다. 반달곰1%는 ‘유랑인증서’를 발행하고 있는데, 손님들이 반달곰1% 가게에 들러 물품을 먹거나 마시거나 구입하면, 반달곰1% 가게들은 수익금의 1%를 사단법인 반달곰친구들에 기부하고, 그 기부금이 모아지면 사단법인 반달곰친구들과 논의하여 올무수거 활동, 무인센서카메라 구입 등 반달곰 보전활동을 위해 쓰기로 약속하였다.] 글쓴이_ 정수진 하동으로 이주한 지 4년이 되었습니다. 겨울이 오면 남편과 함께 인도와 네팔에서 NGO 활동가로 살아가고, 꽃피는 봄이 오면 하동으로 돌아와 민박집을 엽니다. 텃밭을 가꾸고 이웃 농부들의 농산물이 잘 쓰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열심히 요리하고 나누어 먹습니다.
    • 사람이야기
    2026-06-15
  • 일본 집이 20년이 지나면 0원이 되는 이유!
    집 가격은 얼마가 적당한가? 얼마 전 일본에 사는 한국 여성분이 운영하는 유튜브를 봤다. 일본인과 결혼하여 시어머니 그리고 한국어를 유창하게 하는 딸과 함께 살고 있었다. 그중 한 에피소드에 일본 부동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일본 부동산은 20년이 지나면 집값이 0원이 된다는 것이다. 지대만 남고 집 가격은 사라진다. 그러면서 한국인 여성분은 한국은 집 가격이 오른다며 남편과 이야기를 하는데, 일본인 남편은 낡은 집이 가격이 오르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부동산을 구입하는 목적은 오르려는 지역이 아니라 삶이 편리한 곳을 구매해서 사는 것이라고 말한다. 아이들 학교가 가깝거나 직장 근처를 구입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일본이라고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그분들이 사는 곳도 도쿄였다. 한국의 부동산은 집도 오르고 지대도 오르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시골 부동산은 사실 지대는 오르지만 집 가격은 0원이 된 곳도 꽤 되지만, 대부분은 아직도 집 가격이 오른 곳이 많다. 우리 집도 이제 곧 20년이 되어간다. 2008년에 건축했다. 사실 나는 우리 집이 0원이라고 해도 별 상관이 없다. 이유는 팔 생각이 없어서다. 즉 매도 가격이 0원이지 가치가 0원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이 집을 팔아야 한다면 0원이어도 괜찮을 것 같다. 오른다면 그것이 더 이상하다. 중고차가 새 차보다 비쌀 수 없다. 중고차가 새 차보다 비싼 경우는 희소성 때문인데, 부동산에서 희소성은 입지일 것이다. 입지가 좋은 곳이라면 오를 수도 있을지도 모르겠다. 부동산이 오르면 가능성이 점점 줄어든다. 높은 부동산 가격은 새로운 시도를 막는 진입장벽이 된다. 일본은 90년 버블 붕괴 후 부동산은 오른다는 오래된 신화가 철저히 붕괴되었다. 우린 아직도 이 신화가 굳건하다. 부동산이 오르는 것은 산업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생산 활동을 하는 것도 아니며 부가가치를 생산하지도 않는다. 일본 대기업은 버블 시기에 압도적인 자금으로 해외의 부동산을 매입했다. 그리고 지금 일본 대기업은 점점 경쟁력을 상실하고 있다. 기업이 과감한 산업 혁신에 투자하지 않고 부동산에 투자한 결과다. 흔히 기존 성공에 안주해 더 이상의 기술 혁신 없이 손쉬운 자산 보유나 딴눈을 팔다 주저앉는 현상을 '중진국의 함정'이라 부른다. 그런데 일본은 이미 세계 정상에 섰던 선진국 기업들이 스스로 이런 안이한 선택을 해 함정에 빠져버렸다. 만약 모든 부동산이 저렴해진다면 지금 당장은 힘들어도 이후의 사람들에게는 기회가 될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집은 37살에 건축했는데 만약 당시 여기 지대가 지금처럼 높았다면 나는 여기에 살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 여기 지대가 과거처럼 저렴하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살 수도 있을 것이다. 글쓴이 : 조태용
    • 사람이야기
    2026-06-09
  • 지리산의 옹달샘, 설산습지에서 만난 하동생태해설사회 정명희 대표
    지리산의 푸른 품 속에 숨겨진 보석, '설산 습지'를 아시나요? ???? 우리나라 국토의 단 0.01%밖에 되지 않는 귀한 산지 습지이자, 목마른 야생동물들이 찾아와 목을 축이고 수많은 생명이 산란하는 지리산의 소중한 옹달샘, 설산 습지 현장을 다녀왔습니다. 학교 교실을 벗어나 자연이라는 거대한 공간에서 아이들과 온몸으로 호흡하며 생태 놀이를 이끌어가는 '하동생태해설사회' 정명희 대표님과의 깊이 있는 인터뷰! 삵과 담비가 뛰놀고 섬휘파람새 소리가 지저귀는 설산 습지의 특별한 이야기부터, 지리산의 자연을 진정으로 느끼고 보호하기 위한 올바른 탐방 에티켓, 그리고 지역 어린이들을 '어린이 해설사'로 키워내는 감동적인 활동 이야기까지 지금 영상으로 만나보세요. 00:00 인트로 00:30 설산습지를 만나는 방법 01:52 대한민국 0.01%의 귀한 보물, 산지 습지 02:46 물이 많은 산 지리산, 10곳의 규모 있는 습지들 03:25 야생동물들의 옹달샘, 생명을 품은 습지 05:25 삵부터 문수조릿대까지, 설산 습지의 생명들 07:55 "조용히 쉬어가는 공간으로" 설산 습지 탐방 에티켓 09:32 어린이 해설사와 함께 '동정호 생물다양성의 날' 12:11 하동의 자연을 사랑하는 하동생태해설사회 자연을 사랑하고 지키는 가장 아름다운 발걸음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지리산사람들TV #많은_관심_부탁드립니다 #설산습지 #지리산국립공원 #산지습지 #하동생태해설사회 #정명희대표 #생태해설 #지리산습지 #생물다양성 #동정호 #어린이해설사 #생태교육 #환경보호 #지리산여행 #하동여행 #자연다큐키는 가장 아름다운 발걸음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 사람이야기
    2026-06-01

자연생태 검색결과

  • 보전해야 할 숲의 조건?
    보전해야 할 숲의 조건? 대상지에 가장 넓게 분포한고 있는 식생보전등급 Ⅲ등급의 소나무군락. 없어져도 되는 숲인가? 몇 해 전, 지리산 곁에서 함께 살아가는 마을인 산청군에 골프장 건설이 추진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골프장 건설은 산림 파괴와 농약 살포로 인한 오염 등 여러 문제를 유발하기 마련이다. 이에 지역 환경단체인 지리산사람들을 중심으로 필자를 비롯한 지역의 생태 전문가가 모여서 사업 대상지에 대한 생태 조사를 했고, 그 결과를 얼마 전 공식적인 보고서로 작성하였다. 자연을 보전하는데 도움이 되고자 조사를 하고 보고서를 작성하였지만, 자연을 평가하는 과정에서 느껴진 불편함과 답답한 보전 정책의 한계점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대상지의 생태 조사 결과 포유류와 조류 조사 결과에서 멸종위기종에 해당하는 삵, 하늘다람쥐, 수달, 담비, 참매, 붉은배새매, 팔색조가 확인되어 보전의 당위성을 주장하는데 힘을 실어 주었다. 하지만 식생, 식물상 분야는 그렇지 못했다. 한마디로 대상지의 숲은 ‘그저 그랬다’. 전국적으로 흔하디 흔한 소나무군락이 대부분이고, 간혹 가슴높이 직경(흉고직경)이 큰 나무가 분포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가슴높이 직경이 20cm를 조금 넘는 어린 숲이었다. 그것도 모자라 넓은 지역이 ‘숲가꾸기’란 멋진 이름으로 포장된 사업이 시행되어 교목층(가장 큰 키의 나무들)을 제외한 하층 식생이 제거된, 인위적으로 관리된 숲이었다. 이러한 숲은 잘려진 하층에서 식물이 급격히 자라면서 서로 뒤엉킨 듯한 모습으로 복잡하게(안정적인 숲이 아닌 천이 초기의 모습) 자라난다. 국가에서는 식생의 상태에 따라 식생을 평가하고 등급을 부여한다. 이를 식생보전등급이라고 하며, 식생이 가장 좋은 Ⅰ등급에서 가장 좋지 않은 Ⅴ등급까지 다섯 단계로 구분하여 평가한다. 식생보전등급이 Ⅰ,Ⅱ등급으로 평가된 지역은 보전과 복원을 우선으로 하지만, 그 외 Ⅲ~Ⅴ등급은 큰 문제 없이 개발이 허가되고 숲은 사라진다. 이러한 평가 방식을 적용한 결과 대상지는 모두 식생보전등급 Ⅲ~Ⅴ등급에 분포하기에, 기존의 정책대로라면 숲을 보전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동물분야도 마찬가지다. 법적보호종인 멸종위기종의 서식이 확인되지 않는 숲은 개발의 논리에서 지켜내기가 어렵다. 따라서 이렇게 숲을 보전하기 위해 조사를 하면, 멸종위기종을 찾고, 식생보전등급이 높은 숲을 찾아내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대상지 일대의 생태‧자연도. 대상지 내 보전 및 복원을 우선하는 1등급 지역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저 그런’ 식생보전등급 Ⅲ~Ⅴ등급의 소나무군락이 대부분인 이 숲에 대한 보고서를 조사 결과 그대로 담담히 작성하다보니, 불편함과 답답한 한계가 느껴진 것이다. 좋은 숲은 보전해야하고, 상대적으로 식생 발달 상태가 좋지 않은 숲은 보전할 필요가 없는 것인가? 식생은 시간이 흐르면서 변해간다. 그런 변화의 과정을 천이(succession)라 부르고 Clements의 고전적 천이 이론에 따르면 식생은 극상림으로 변해가고, 그러한 극상림(Climax forest)은 구조적 기능적으로 안정된 시스템을 갖춘다. 따라서 현재는 식생이 ‘그저 그렇게’ 보이더라도, 이러한 숲이 10년, 20년, 또는 50년, 100년간 보전된다면 국립공원 수준의 울창한 숲으로 우리를 맞아줄 것이다. 또한, 현재의 시점에서만 좋은 숲을 보전하고, 상대적으로 좋지 않은 숲은 계속 없어진다면 울창한 숲이 지금보다 넓게 확대되는 것은 기대할 수 없다. 현재의 상태가 다소 좋지 않다고 그 숲을 보전하지 않는 것은 미래에 아름드리 나무로 자랄 어린 나무를 제거하는 것과 같다. 우리가 아름답다고 말하는 울창한 숲 역시 과거에는 모두 식생보전등급이 낮은 ‘그저 그런 숲’ 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자연을 평가하고 등급화하여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있다고 자부하지만, ‘보전해야할 숲의 조건이 따로 있는 것일까?’라는 의문이 든다. 희귀한 식물이 살고 있어야 보전될 자격이 갖추어지는 것은 아니다. 또한 천이 초기에 나오는 ‘그저 그런’ 숲이 우리 곁에 없다면 결국 극상림의 울창한 숲도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아무데도 개발하면 안 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 작은 땅에 이미 많은 것을 개발해 왔고 많은 숲을 파괴해온 것이 사실이다. 그 결과 인간을 위협하는 기후위기의 상황을 맞닥뜨렸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숲에 식생보전등급을 매겨 ‘Ⅰ,Ⅱ등급이면 보전, Ⅲ~Ⅴ등급이면 개발 가능’이라는 이분법적 논리에 따라 보전할 숲과 개발할 숲을 판가름하는 일이 아니라, 지금 있는 숲을 미래 세대에게 안전하게 전해 주는 일이다. 지금 우리가 마주하는 기후위기는, ‘불안’이라는 이름으로 다가오고 있다. 어느 것도 명확하게 좋다, 괜찮다, 가능하다고 말할 수 없다. '보전되어야 할 숲의 조건'을 따져야 할 때는 지났다. 글쓴이 : 정태준 모두를위한생태연구소 소장(자연과 사람이 모두 조화로운 세상을 꿈꾸며)
    • 자연생태
    2026-07-23
  • 늙은 나무 생명의 숲
    ▲ 갈참나무 수공에 둥지를 만든 올빼미 함양 상림이나, 하동 취간림, 광릉 수목원 등 오래된 나무가 있는 공원을 가보면 원앙, 까막딱다구리, 올빼미, 솔부엉이가 나무속에 둥지를 만들어 살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까막딱다구리가 만든 둥지를 원앙이 이용하기도 하고, 올빼미 종류가 이용하기도 합니다. 예전에 황새도 논 주변 도로가에 있는 고목 위에 둥지를 만들었지만, 지금은 그런 나무를 찾기가 어려워 인공 탑을 만들어 둥지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오래된, 늙은 나무는 생태계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고목, 늙은 나무가 있는 숲은 많은 생명을 품습니다. 나무가 나이가 들며, 가지가 부러지거나, 작은 틈새가 생겨서 거기로 물이 들어가 썩게 되고, 이때에 구멍이 만들어지는데 이를 ‘수공’이라 부릅니다. 이런 수공들은 올빼미, 부엉이, 원앙, 비오리, 호반새와 찌르레기 등 다양한 새들과 하늘다람쥐와 같은 작은 생명들의 집이 되어줍니다. 나무는 씨앗이었을 때는 새들과 많은 동물들의 도움을 받아 자라났지만, 다 자라서는 다시 생명들에게 다시 먹이를 제공해 주고, 보금자리가 되어주는 것입니다. 서로 돌보는 숲의 공동체입니다. 딱다구리는 나무속에 있는 딱정벌레 애벌레를 잡아먹어 나무가 너무 많은 애벌레로 인한 피해를 조절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나무는 자신의 몸에 구멍을 내고 살아가는 딱다구리와의 공생을 선택한 것입니다. 딱다구리는 먹이와 집을 얻고, 나무는 자신의 몸에 있는 애벌레의 숫자를 조절하여 자신을 건강하게 만듭니다. 나무와 식물들은 씨앗을 멀리 퍼트리기 위해 씨앗에 달콤한 과육을 덮어 다른 생명들이 배를 채울 수 있게 하였고, 소화되지 않고 남은 씨앗은 거름이 풍부한 똥 속에서 다시 자라날 수 있게 하였습니다. 이렇게 생명들과 숲은 서로 돕고, 보듬으며 살아갑니다. 그렇기에 늙은 숲은 진정으로 아름답고 생명다양성이 풍부한 숲입니다. 자본의 가치, 돈의 가치로 판단할 수 없는 그런 숲... 하지만 실제 우리 주변에서 늙은 나무가 있는 숲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40년 된 숲도 귀한 우리의 숲을 보고 숲이 늙었다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100년을 사는 우리는 40이면 늙었다 말하지 않습니다. 나무는 사람과 달리 1000년까지 살기도 합니다. 기본적으로 당산나무가 400년 이상은 되었다는 것을 보면, 40년은 청년기에나 들어갈 수 있을까요? ▲ 나무 수공속에 둥지를 만든 솔부엉이 우리 숲의 미래를 생각해 봅니다. 많은 생명들이 늙은 나무의 돌봄 속에서 살아가고, 또 돌봄을 받던 생명들이 다른 나무들을 돌보면서 살아가는 생명의 숲, 생명을 키워내는 숲, 우리의 숲이 그렇게 자라나길, 그런 숲으로 나아가길 희망해 봅니다. 이 기사는 <봉성신문>에도 함께 싣습니다.
    • 자연생태
    2026-07-16
  • 감자 씨앗이 있다고?
    하지가 지났다. 바야흐로 감자 시즌이다. 고구마와 감자는 구황작물의 양대 산맥이다. 하지만 두 가지 작물의 가장 큰 차이는 씨앗에 있다. 무슨 소리인가? 감자나 고구마에 씨앗이 있는가? 굳이 따지자면 감자는 감자가 씨앗이고 고구마는 고구마가 씨앗의 바탕이 된다. 감자는 감자를 심어야 하고, 고구마는 이른 봄에 하우스에서 키운 고구마의 새싹을 잘라 심으면 된다. 만약 고구마 100평을 심으려고 한다면 고구마 20개 정도만 심어 새싹을 키워도 충분하다. 하지만 감자는 감자를 심어야 하니 50키로 정도의 씨감자가 필요하다. 100평을 심는다면 씨감자 50키로가 필요하니 상당량을 비축해야 한다. 하지만 감자는 평당 10키로가 나오니 100평이면 감자 1000키로를 얻을 수 있다. 씨감자를 구입한다고 해도 20배에서 25배 정도의 감자가 수확되는 편이라 경제적으로 충분하다. 그렇다고 해도 씨감자를 수출하거나 옮기는 데는 막대한 물류 비용이 발생한다. 한국에서도 강원도의 씨감자를 내가 사는 전남 구례까지 옮기려면 씨감자 수확, 포장, 배송의 과정이 필요하다. [솔린타의 감자씨앗] 그렇다면 씨감자를 심지 않고 씨앗을 심으면 어떤가? 최근 네덜란드의 솔린타와 HZPC에서 진성 감자 씨앗을 생산하고 있다. 자국 내에서 이미 생산을 하고 있고 수출도 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감자 씨앗으로 심었다는 소식을 아직 듣지 못했지만 곧 심는 시기가 올 것이다. 100평을 심기 위해 씨감자 50키로를 구입해 옮기고 심는 과정이 필요 없이, 몇 그람 정도의 씨앗을 상토에 심어 옥수수처럼 키울 수 있다. 씨감자 연작으로 발생하는 바이러스 병충해에서도 해방될 수도 있다고 하니 감자 수확량은 앞으로도 더 늘어날 것이다. 솔린타의 공식 사이트 소개글이다. [솔린타는 네덜란드 종자 회사로, 잡종 감자 종자 전문 기업입니다. 솔린타의 사명은 감자 재배 농가에 더욱 경제적이고, 튼튼하며, 내성이 강한 감자 품종을 재배할 수 있는 자원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이는 전 세계 식량 유통을 개선하고 영양 안보를 강화하는 데 기여합니다. 솔린타의 비유전자변형(Non-GMO) 잡종 감자 종자는 10년 이상에 걸친 잡종 육종 연구 개발의 결과물입니다.] 하이브리드 잡종 감자 종자에 대하여 [감자를 종자 괴경에만 의존하지 않고 종자만으로 재배할 수 있다는 것은 감자 재배 농가에 상당한 이점을 제공합니다. 종자 괴경은 운송 중 질병에 감염되거나 부패할 가능성이 높고, 운송 및 보관 비용도 더 많이 듭니다. 솔린타의 잡종 감자 종자는 질병이 없고, 보관 수명이 길며, 크기가 작아 운송 및 보관이 훨씬 경제적입니다. 또한, 잡종 감자 종자는 연중 내내 공급 가능합니다. 농부들은 현재 시스템에서 부패하기 쉬운 종자 괴경 2,500kg을 사용하는 것과 달리, 솔린타의 깨끗하고 질병 없는 종자 25g만 있으면 헥타르당 감자를 재배할 수 있습니다. 비유전자변형(Non-GMO) 잡종 육종을 통해 개발된 잡종 감자는 역병 저항성과 같은 유익한 자연적 특성을 보유하도록 개량될 수 있어 살충제 사용 필요성을 줄여줍니다.] 그렇다고 씨감자가 주류를 이루기는 아직 어려워 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적어도 매년 새로 구입해야 하는 씨감자 가격이 현재 감자를 직접 파종해서 얻는 것보다 저렴해야 하기 때문이고, 많은 곳에서 여전히 씨앗보다는 씨감자를 심는 것이 보편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종자를 직접 키워서 심는 곳도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감자 씨앗의 새로운 혁명이 시작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네덜란드는 씨감자 수출의 60%를 점유하고 있다. 네덜란드는 매년 약 150만 톤의 씨감자를 생산하는데, 이 중 70~75%에 달하는 약 80만 톤을 전 세계 80여 개국으로 수출한다.이러한 상황이다 보니 막대한 물류 비용 때문에 씨앗 개발에 많은 연구비를 투자했고 드디어 감자 씨앗을 만들었다. 다양한 감자 품종도 개발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감자 품종은 4000개~5000개에 이른다. 한국에서 심어져 유통되는 품종은 10개 미만이라고 보면 된다. 우리가 다 아는 품종인 수미감자는 미국 위스콘신 대학교에서 1961년에 개발되어 1975년에 한국에 도입되었다. 한때 90%를 점유하고 있었지만 현재는 50% 정도로 점유율이 낮아졌다. 역병에 취약하고 이상 기후로 점점 수확량 감소와 병충해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한국도 농촌진흥청에서 한국 기후에 맞는 두백, 서홍, 풍원, 조풍 등 다양한 품종을 개발하고 있고 두백의 경우 파종량이 늘고 있다.
    • 자연생태
    2026-07-02
  • 낭비둘기가 잘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 화엄사의 낭비둘기, 지금은 화엄사에서 살아가기 어려워 졌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다양한 생명들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흔하게 참새부터, 까치, 멧비둘기 등 장소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흔하게 만날 수 있고 흔적으로라도 확인할 수 있는 존재들이 우리 주변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관심이 없다면 매일 들리는 새소리도, 집 앞을 날아다니는 새들의 모습도, 산보, 산책을 할 때 길 위에 보이는 야생동물들의 흔적도 모르고 지나치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런 생명들을 만나기 위해 멀리 나가곤 합니다. 우리 주변에서는 관심이 없어 지나치다 다른 장소에 나가 소리와 모습을 보면 ‘우리 주변에도 저런 아이들이 있었단 말이야?’ 하며 놀라기도 합니다. 그리고 한번 배우고 오게 되면 다시 그 이전의 눈과 귀로 돌아갈 수 없게 됩니다. 집 주변에서도, 산책하는 와중에도 너무 많은 흔적과 모습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까요. ▲ 우포늪 따오기 복원개체, 농사철이 아니지만 물을 담아두어 따오기가 먹이를 먹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쉽게 만나기 어려운 멸종위기종, 멸종위기까지는 아니지만 개체수가 계속해서 줄어들어 만나기 어려운 관심 단계에 있는 종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멸종위기에서 절멸되거나, 절멸 위기까지 다다른 생명들은 ‘복원’을 진행하게 됩니다. 흔하게 복원‘사업’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복원을 대표하는 종은 반달가슴곰입니다. 그리고 요즘은 황새, 따오기, 여우, 낭비둘기, 민물어류(임실납자루, 미호종개, 얼룩새코미꾸리 등)이 있습니다. 모두 복원이라는 ‘사업’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사업이다 보니 결과만 중요하게 보는 것 같습니다. ‘복원’은 하지만 서식지에 대한 ‘보전’은 뒷전인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황새를 복원하겠다고 많은 돈을 들이고 있지만 황새가 서식할 만한 서식지에 대한 보전을 하려고 적극적인 행정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미 가치가 높은 서식지도 개발로 인한 위협에 놓인 경우도 많습니다. 연어를 놓고 보아도 연어가 고향으로 돌아가 산란할 장소가 없는 이 현실에서 치어만 양식해서 풀어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임실납자루를 열심히 키워서 섬진강에 풀어주었지만 이듬해 하도정비로 그 지역을 밀어버립니다. 얼룩새코미꾸리의 복원지도 하도정비로 밀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복원 ‘사업’의 ‘본사’인 환경부(지금은 환경이 사라지고 있는 기후부)는 서식지 보전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 스스로 ‘기후에너지환경부는 규제 기관이 아니다’라고 하였으니, 그들이 가지고 있는 기본 정책 방향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복원’을 하는 기관이라면 당연하게도 ‘규제’를 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아니라고 합니다. 그럼 그들은 뭐 하는 집단이란 걸까요? 반달가슴곰은 서식지 확장에 대한 대책이 필요합니다. 여우는 생태축 단절로 인한 로드킬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습니다. 낭비둘기는 구례에 복원 개체 32마리를 풀어주었지만 구례 지역의 서식지 안전은 보장되지 않았습니다. 안전에 대한 책임은 낭비둘기의 책임이 아닌 환경부와, 지자체에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당당하게 잘 하고 있다 말할 수 있는가. 황새는 논습지, 갯벌, 자연습지가 필요하지만 영농형태양광, 갯벌 매립, 개발로 인해 서식지는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지자체장이 사진을 찍기 위해서 황새를 죽이기까지 하고 있습니다. 기본적인 생태 감수성도 사라진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지금, 과연 복원이라는 이 중대한 책임을 그저 하나의 돈벌이 ‘사업’으로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 구곡산에서 바라본 지리산 청왕봉의 모습 ‘Natural Capital’인 ‘자연자본’을 ‘Nature Positive’라는 목표로 2030년까지 자연 ‘자본’ 훼손을 멈추고 다시 역전시켜 2050년까지 원래의 상태로 되돌리겠다는(다시 사용하기 위한?) 목표....생명의 근본마저 자본으로 취급하는 이 추악한 자본주의 세상에서 생명을 이야기 한다는 것이 너무 어렵고 힘든 이야기인 걸까요? 글쓴이 : 정정환 _지리산사람들 사무국장, <새들은 우릴 기다려 주지 않아서> 지은이
    • 자연생태
    2026-06-17
  • (사)반달곰친구들과 함께 하는 올무수거 생초보의 하루반달곰친구들과 함께 하는 올무수거
    올무수거 생초보의 하루 마지막 월요일 오후 (사)반달곰친구들과 함께 올무수거를 위해 함양 서하마을로 향한다. 짐이 될지 모르는 나는 올무수거에 관한 한 초보자다. 산에서 동물길을 더듬고 숲을 익힌다. 반달곰친구들과 함께 서하마을 산 왼쪽으로 잡목숲을 훑어간다. 잡목숲은 야생동물의 은밀한 숨구멍이자 복잡한 생태계의 결이라고 한다. 그 길은 가보지 않은 숲이다.바스락대는 숲의 호흡 따라 바스락거리며 약초 길에 들어 숨을 돌린다. 오른쪽에서 “찾았어요!” 외치는 소리. 따끔거리는 등을 타고 옷 소매에서 부러진 가지 하나가 나온다. 동물길에 불법 침입하다 들킨 기분이랄까? 순간 고요로 가슴이 철렁하다. 홀로 떨어진 적막을 지우려는 듯 새소리가 청량하다. 나뭇가지에 걸려있다는 올무. 올무를 놓은 주민과 올무를 찾는 우리 사이 파헤친 흙이 옴팍한 터를 보니 동물들이 목욕하고 지나갔구나. 기후변화로 인해 무너져가는 생태계, 먹이를 찾아 야생동물이 마을로 내려오고 주민은 피해를 막기 위해 올무를 설치해야 하는 악순환을 지속하고 있다. 올무 설치는 불법 포획이다. 올무 등 불법 도구의 피해와 죽음 없이 자연과 하나 되는 야생동물, 반달곰을 그려본다. 문득 사육되던 농장에서, 문수사에 살던 곰이, 구례 곰마루 쉼터에서 야생의 감각을 찾아 산으로 돌아가는 상상을 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인가? 올무 4개를 찾았으니 육십령을 넘어 서하마을로 달려간 수확은 있다. 올무 하나는 멧돼지 다리에 걸렸다 끊어진 것이라고 한다, 멧돼지 비명이 산을 타고 서하마을에 울려 퍼졌으리라. 울었으리라. 올무를 설치한 인간의 마음 한쪽에도 울렸으리라. 숲에서 찾은 올무와 함께 돌아가는 길, 나 역시 올무나 덫 한두 개 걸려 살고 있지 않나, 굽이굽이 육십령을 돌아 돌아가면서 길 잃은 동물들, 반달곰이 생각나는 하루, 이제 숲을 헤치고 반복해서 숲을 헤쳐나가면 되리라고,
    • 자연생태
    2026-05-27
  • 죽어가는 구상나무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죽어가는 구상나무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천왕봉 구상나무 고사 현황 구상나무가 죽는다. 이미 많은 구상나무가 죽었고 지금도 일부가 죽어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지리산 천왕봉을 오르면 눈으로 봐도 절반에 가까운 구상나무가 고사하고 있는 모습을 누구나 볼 수 있다. 사람들은 걱정한다. 구상나무는 덕유산, 지리산, 가야산, 한라산의 1,000m 이상 아고산대에 자생하는 한국 고유종(한반도에서만 자생하는 종)이기에 더욱 그렇다. 다시 말해서 구상나무가 계속 죽어가서 국내에서 멸종한다면, 결국 지구상에서 멸종한다는 의미다. 상황이 이러하니 환경단체 및 국가 기관에서도 ‘구상나무를 보호종으로 지정해야 한다.’, ‘복원해야 한다.’… 등의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특히나 식목일 즈음이 되면 구상나무 고사 현상에 대한 기사가 크게 보도되고 관계 기관인 국립공원공단은 대응에 바빠지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국립공원공단은 아고산대 상록침엽수 자연적응실험 사업을 추진했고, 5월 13일에 구상나무 묘목을 식재하는 사업도 실행했다. 본 사업은 구상나무 고사 지역에 대한 상반된 견해(자연천이에 맡겨 인위적 개입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과 적극적으로 복원해야 한다는 의견)에 대하여 어떤 방식이 합리적인지를 판단해 보는 시범 사업이다. 지리산국립공원 반야봉과 중봉 사이에, 세석에서 키워낸 구상나무 묘목 160주(수고 40cm 내외)를 심고, 이렇게 식재한 구상나무를 모니터링하는 것이다. 이 사업을 추진함에 있어 국립공원공단은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지리산사람들과 논의 과정을 거쳤다. 이때 가장 중요하게 논의된 부분이 ‘이 사업은 복원 사업으로 흘러가서는 안 된다’는 점이었다. 나는 이 글에서 많은 시민과 기관이 구상나무를 복원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데, 왜 복원 사업으로 가서는 안 된다고 논의했는지를 이야기하고 싶다. 생태복원이란 '저하되었거나, 훼손되었거나, 파괴된 생태계의 회복을 돕는 과정'으로 정의된다. 그렇다면 구상나무 고사 지역은, 저하되었나? 훼손되었나? 파괴되었나? 교목층(산림식생에서 가장 높은 공간을 피복하는 층위)의 우점 수종이 죽고 있기에 생태적 기능에 있어 일시적 저하가 있다고 볼 수는 있지만, 훼손되거나 파괴되었다고 말하긴 어렵다. 구상나무에 관한 다양한 연구가 진행 중인데, 현재까지의 연구 결과로 밝혀진 구상나무 고사 원인으로 기후변화에 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기후가 변한 것도 사실이다. 구상나무는 빙하기에 한반도 전체를 뒤덮으며 확장되었다. 하지만 빙하기 이후 기온이 오르면서 저지대에서 자취를 감추고 온도가 낮은 아고산대로 도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빙하기가 끝난 것은 자연적인 기후변화였고, 지금은 인간에 의해서 기후가 변했다. 어쩌면 구상나무가 살 수 없는 환경으로 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식물은 스스로 이동할 수 없고 뿌리를 내린 그 자리에서 어떻게든 성장하고, 번식하기 위해 애쓰면서 살아간다. 그렇지만 급격한 기후변화를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자, 그럼 이제 생각해 보자. 기후가 변해서 그 자리에 살던 식물이 죽었다…. 생태복원이 필요한 ‘훼손지’ 인가? 한반도의 식생은 다양하다. 난대림, 온대림, 아고산대 식생은 물론이고 염생식물군락, 습지식생, 울릉도 너도밤나무군락과 같이 고립되어 진화해 온 식생, 터주식물군락과 같이 사람이 사는 곳 가까이 살며 적응해 온 식생도 있다. 이처럼 어떤 지역의 환경에 따라 그곳에 살 수 있는 식물이 들어와서 살게 된다. 또한, 울창했던 산림도 벌채되거나, 교목층의 식물이 고사해서 틈이 생기면, 강한 광이 들어오면서 호광성 식물(양지를 좋아하는 또는 직사광선을 인내할 수 있는 특성을 지닌 식물)이 자리 잡게 된다. 환경이 변하면 사는 식물이 달라지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기후는 급격히 변했고, 식물의 서식지는 서서히 북상하고 있으며, 구상나무는 죽고 있다. 구상나무가 죽고 있는 지역에 다시 구상나무를 심을 것인가? 구상나무가 죽은 자리에는 분명 변화한 기후에 적합한 다른 식물이 들어올 것이고, 그것이 자연스러운 숲의 변화다. 그렇다면 이 글의 제목과 같이 죽어가는 구상나무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구상나무의 멸종을 막고 싶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를 생각해 본다. 대답은 간단하지만, 실행은 어렵다. 기후변화를 늦추는 것뿐. 이번 자연적응실험을 위해 공단 직원 50여 명이 전국 각지에서 모였고, 헬리콥터가 두 번 묘목을 옮겼다. 수많은 플라스틱 생수병이 버려졌고, 많은 차량이 노고단 대피소까지 이동했으며, 많은 쓰레기를 치우기 위해 헬리콥터가 또 한번 움직일 것이다. 많은 투자를 했고, 많은 노력을 했으며, 많은 비용을 치렀고, 또한 많은 탄소를 발생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이러한 사업이 꼭 필요한 보전 활동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제는 우리 노력의 방향에 대하여 질문할 때다. 우리는 정말 구상나무에게 필요한 일을 하고 있는가? 나무를 심고 과거의 모습으로 복원하려 노력하기보다, 기후변화를 늦추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 힘겨운 삶을 이어가는 구상나무를 살 수 있게 하는 근본적이면서도 유일한 방법이다. 국립공원야생생물보전원 식물보전센터에서 발아시켜 세석에서 현지 적응된 구상나무 묘목 160주 식재된 구상나무 묘목 반야봉-중봉 구간에 식재된 구상나무(빨간 표식은 추후 모니터링을 위한 식별 장치) 글쓴이 : 정태준 모두를위한생태연구소 소장(자연과 사람이 모두 조화로운 세상을 꿈꾸며)
    • 자연생태
    2026-05-20
  • 숲의 새소리, 지리산의 노래는 공존, 평화였다.
    법계사 아래, 천왕봉이 조망되는 곳에서 요즘 숲에 들어가면 산새들의 노랫소리로 숲이 가득 찬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아침이면 숲을 울리는 되지빠귀와 흰배지빠귀의 노랫소리와 박새와 쇠박새 등 박새류의 재잘거림, 작지만 우렁찬 굴뚝새의 외침과 청아하며 숲을 느리게 만드는 큰유리새의 노랫소리와 밤이면 들리는 소쩍새와 뻐꾸기의 노랫소리는 이제 여름이 오고 있음을 느끼게 해줍니다. 지리산 아래쪽부터 초록으로 물 들어가는 숲은 산의 높이를 느낄 수 있게 하며 봄철 첫 잎은 다양한 수종들이 섞여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줍니다. 살랑살랑 부는 바람은 봄의 끝자락에서 다시 봄임을 느끼게 해주고, 논물로 인해 탁해진 강물은 봄의 모내기가 시작되고 있음을 느끼게 해줍니다. 이렇게 자연은 우리에게 다양한 느낌과 깨달음, 편안함을 줍니다. 구태여 높은 산에 올라가지 않아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경험들입니다. 이런 다양성의 숲은 우리가 인위적으로 개입하지 않았을 때 더 많은 생명을 품고, 다양한 생명들이 섞여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나무들이 첫 잎을 내보일 때 다하게 섞여서 살아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것에서 알 수 있습니다. 큰산개구리의 산란시기 변화(국립공원연구원의 Rana uenoi Matsui, 2014 논문 참고) 적산온도와 산란시기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이렇게 함께 섞여서 살아가는 지구에서 기후의 변화로 사라져갈 위기에 놓인 친구들이 있습니다. 오늘 이야기하고 싶은 두 친구는 큰산개구리와 구상나무입니다. 큰산개구리는 과거 북방산개구리로 불리던 종을 최근 개별적 종으로 분리하여 큰산개구리로 이름 지었습니다. 이 큰산개구리는 기후변화로 인한 산란 시기 변화로 산란 시기가 빨라지고 있어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산란시기가 빨라져도 기온이 올라가서 그런 것이니 적응하지 않겠는가 생각할 수 있겠지만 기후변화라는 것이 따뜻한 것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갑작스러운 온도 저하도 함께 벌어지기에 산란 이후 알들이 동사하는 일도 있을 수 있어서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큰산개구리를 지키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까요? 무엇을 할 수는 있을까요? 기후변화를 이야기하며 반도체 산단, AI센터를 이야기하며 더 많은 전기, 더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우리들을 보면 기후위기 극복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은 하는 걸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미 끝이 정해진 소설을 읽는 것 같은 기분도 들고요... 큰산개구리 다음으로 이야기할 것은 구상나무입니다. 구상나무는 아고산지대에 서식하는 상록침엽수로 지리산과 한라산, 덕유산과 같이 일부 지역에서만 서식하며 오직 한국에만 자생하는 나무입니다. 이 구상나무가 지금 기후변화로 인해 많은 수의 개체가 고사하고 있습니다. 특히 지리산 반야봉, 천왕봉 일대에서 많은 개체의 고사가 발생하고 있는데 원인으로는 기후변화로 인한 적설량의 부족으로 수분공급이 원활하지 않게 되는 것을 원인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 2023년 치밭목에서 천왕봉 가는 길에, 산 구상나무와 죽은 구상나무가 함께 서있다.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곳, 그 아래서는 다시 생명이 싹트고 있다. 이렇게 기후변화로 인한 한 종의 개체수 감소를 막아내기 위해 ‘복원’이라는 작업을 국가에서는 진행합니다. 사라져가는 생명을 지키기 위한 작업이라고 생각하면 좋은 일이겠지만...이전에 연어 기사에서 이야기했듯, 서식지에 대한 변화, 보전이 없이 특정 종의 복원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구상나무의 쇠퇴는 기후변화가 주원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은 ‘복원’이 아닌 기후변화를 막아내거나 늦추는 일 이어야 합니다. 기후변화를 막는 과정에서 최대한 살리기 위해 ‘복원’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복원’이라는 작업은 다른 종을 배제하며 진행된다는 것입니다. 특정 종을 살리기 위해 흔하다고 판단되는 종을 배제한다면 이는 올바른 길이 아닙니다. 구상나무가 고사하고 있는 지역은 빠르게 신갈나무나 사스레나무와 같이 낙엽활엽수로 대체되고 있다 합니다. 숲은 환경에 맞춰 변화하지만, 그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과거의 모습을 지향하는 종은 오직 인간입니다. 숲과 강, 산은 귀한 종만의 서식지가 아닙니다. 모든 종들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공간입니다. 어머니의 산 지리산이라면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 부모의 마음으로, 구상나무를 복원하기 위해 특정 종의 배제가 발생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기에 지리산에서 구상나무 복원은 신중해야 합니다. 아니 하지 말아야 합니다. 끝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국립공원이라는 공간은 모든 종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평화, 공존, 모두 함께 살아가는 공간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를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글쓴이 : 정정환 _<새들은 우릴 기다려 주지 않아서> 지은이, 지리산사람들 사무국장
    • 자연생태
    2026-05-04
  • 구례 곰 마루쉼터에 사는 곰을 찾아서
    구례 곰 마루쉼터에 사는 곰을 찾아서 커피박을 통한 곰의 감각 풍부화를 위하여 월요일이면 커피박을 싣고 구례 곰 마루 쉼터(이하 곰 쉼터)로 간다. 야생을 모르는 사육되던 곰의 풍부화를 위한 커피박, 커피박은 말 그대로 추출되고 남은 커피의 껍질이자 찌꺼기다. 후각이 발달한 곰에게 커피박 제공은 곰의 감각 풍부화로 후각과 촉각을 자극한다. 풍부화란 보호시설이나 동물원에 있는 곰이 자연에 가까운 행동을 하여 삶의 질을 높이고 스트레스를 줄이도록 돕는 활동이다. 쉽게 말해 본능을 자극하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철창에 갇힌 생명의 감각을 깨우고 무기력한 곰에게 활력을 주는 활동이다. 무기력한 곰을 바라보는 일은 무기력한 일이자 고통이다. 한 달 전 지리산 문수사에서 본 반달곰이 울부짖는 분노어린 발작과 철창을 부여잡은 곰의 발바닥이, 아기곰의 눈망울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커피박을 수거하는 일은 카페 주인의 마음과 그 만의 향기가 담겨있다. 커피가 제 일을 다 하고 껍질이 건조되는 과정은 곰으로 가는 기도다. 커피박에 희끗희끗한 점이 커피 일부이기를 바라며 커피박을 수거한다. 커피박을 건조하는 카페 주인의 손길은 숭고함이 전해진다. 곰에게 가는 돌봄 하나하나가 모여 커피박이 되기까지의 시간은 숨구멍을 통해 건강한 커피박이 탄생한다. 커피가 곰의 후각을 살려 숲의 냄새 따라 먼 선조의 기억을 찾아가는 것이리라. 야생에서 태어나 자라야 할 곰이, 우리나라 사육곰으로 태어나 곰 쉼터에 있는 주옥이라는 곰을 CCTV를 통해 처음 만났다. 얼굴은 보지 못했다. 아니, 그녀의 등을, 뒷모습을, 어슬렁거리며 반복되는 걸음이 또한 그녀이기에, 얼굴을 모른다고 하지 않겠다. 그렇게 그녀를 만나고 임옥주 수의사에게 그녀에 관한 얘기를 들었다. 내내 곰은 느리게 느리게 목적 없는 배회를 하고 또 하고 나는 보고 또 볼 수밖에 없었다. 곰의 풍부화를 위해 커피박을 나르며 실은 내 삶이 풍부해지고 있음을 고백한다. 곰을 알아가고 생명을 존중하는 일, 곰에게 커피박을 나르는 일은 커피가 남긴 향기처럼, 건조된 커피의 빛과 색의 순간에 감사하며, 곰도 그 순간의 감각을 체험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사진 : 곰마루쉼터 제공) 커피박을 제공한 후 커피 향을 제일 좋아하는 곰이 청심이라는 것을 영상을 통해 알게 되었다. 얼굴에 커피박이 담긴 봉지를 비비고 만지고 냄새 맡는 청심이란 곰이 사랑스러웠다. 새로운 향과 촉감에 흠뻑 취한 그녀의 기분이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청심의 감각 풍부화 과정을 한번 상상을 해보시라. 한 곰이 새로운 것을 접하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인간과 전혀 다를 바 없는 한 생명의 감정과 행동을. 이제 커피의 눈물이 남긴 껍질과 향을 곰들과 공유하는 일. 곰의 야생성을 찾아 풍부화가 이루어지는 과정을 함께 지켜보자. 지리산 아래 살면서 지리산 아래 곰 쉼터로 찾아온 곰들을 환영하며 그들에게 커피박을 나른다. 일어나 곰아! 오늘도 멀리서 날아온 흙냄새, 꽃 향, 쓴맛과 초콜릿 향을 맡으며 곰에게 간다. 차 안 가득 향기로운 바람이 분다. 곰이 산길을 숲을 헤매고 산과 함께 할 날을 상상한다. 낙엽 바스락거리는 숲을 거닐 듯 네 발로 커피박과 노는 영상을 본다. 전생에 엄마 곰이 아기곰에게 알려준 생존의 기억을 찾아 커피야, 곰과 놀다 갈래? 도도 새침한 곰을 네 향으로 유혹해봐. 자연 속 자연의 일부로 곰이 곱답게 살아가도록 우리 함께 힘을 기울이자. 곰이 커피 향에 취한 순간은 곰의 배회를 잠재운다. 곰 쉼터로 오르는 경사로처럼 남아있는 사육 농장의 곰과 문수사 곰이 곰마루 쉼터로 옮겨지는 일 또한 숙제로 남아있다. 구례 읍내의 카페 및 음식점, 지리산오여사, 둥둥, 느긋한 쌀빵, 봉서리책방, 지인카페, 호이요, 오차커피공방, 구례가, 구례자연드림시네마 카페 순으로 커피박을 수거하여 구례 곰마루 쉼터로 달린다. 달리는 길에 벚꽃이 흩날리며 꽃비를 내린다. 이처럼 행복한 일이 또 없다. 이 기분이 커피박을 제공하는 카페와 음식점에 전해지기를 바라며 또한 그들에게 고마운 마음 가득 담아 보낸다. 글쓴이 : 이촉 시인, 지리산人 편집위원
    • 자연생태
    2026-04-01
  • 연어와 자원, 그들은 자원일까 자연(自然)일까?
    어족자원이라는 이름으로 착취되는 생명들, 과연 생명들은 자원인가 자연(自然)일까 연어에게 자유를, 강이 자유롭게 바다로 갈 수 있기를 희망하며
    • 자연생태
    2026-04-01

고을이야기 검색결과

  • 주지 못한 베개
    주지 못한 베개 자려고 하면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다. 내 삶에 병상의 환자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종양 병동 근무 당시의 일이다. 1111호에 입원한 김가람 님은 폐암 환자로 몇 번의 항암치료를 끝내고 퇴원하는 날이었다. 평소 말이 없던 그가 웃으며 말을 걸어왔다. 몽고풍의 모자를 쓰고 있던 그는 평소에는 잘 내색하지 않아 표정으로 통증의 강도를 읽던 분이었다. “수간호사님,이 베개 집에 가져가면 안 돼요?” “그 베개가 편하세요? “네,이 베개가 잠이 잘 와요.” 나는 왜“드릴게요”라는 말을 입안에 담고 있었는지, 아이처럼 베개를 안고 애써 용기 내서 말하고 웃던 모습이 어제 일처럼 떠오른다. 나는 왜 베개를 주지 못했을까? 베개를 챙겨주려 했는데 퇴원할 때 미처 주지 못했을 거야. 핑계를 댄다. 언뜻언뜻 생각나는 1111호 문 옆 침대에서 투병하던 김가람 님. 힘든 항암치료를 견디고 밥이 약인, 밥 한 술 한 술 넘기던 모습이 액자처럼 벽에 걸려있다. 주지 못한 베개 하나 빈 침상에 덩그러니 남아 있다. 그를 만날 수 있다면 새 베갯잇 씌운 베개를 그 품에 안겨주고 싶다. 그때 항암치료 부작용을 잘 극복하고 퇴원했으니 지금 건강한 삶을 영위하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도 나처럼 그때를 회상하며 미소 짓고 있을 것이다. 좋아하는 몽고풍 모자를 쓰고, * 김가람 님은 가몀임
    • 고을이야기
    • 구례
    2026-08-07
  • 주성윤 시비(朱成允 詩碑)를 찾아주성윤 시비(朱成允 詩碑)를 찾아
    주성윤 시인의 시비를 찾아 『지리산人』 편집회의에서 문수제 지나 오미 송정간 둘레길에 주성윤 시인의 시비가 있다고 해 찾아가기로 했다. 마침 문수리 들어가는 마을 앞 오미 슈퍼에 사람들이 모여 있다, 혹시 주성윤이라는 사람이 마을에 살았는지 묻자 흔쾌히 시비가 있는 곳을 안내한다. 차로 내죽 마을 위 단산 윗길로 들어서니 깔끄막에 朱成允 詩碑가 있다. 수풀 사이 자리한 시비에 풀이라는 시가 새겨져 있었다. 신기루처럼 어느 백일에 별안간 드높이 치솟아오른 세월의 망루 그 위서 날카로운 고양이 수염 하나 번뜩한 순간 어둠은 들쥐가 되어 달아나 버렸다 주성윤 시인은 구례와 지리산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 시비로 안내한 단산마을 정동기 님은 시비가 관리되지 않고 있음을 안타까워했다. 시비가 있는 땅은 어느 교장 선생님의 선산이라고 했다. 그분의 집이 운조루 옆이라고 해 찾아갔으나 문은 잠겨있고 초인종은 눌러도 대답이 없어 집 앞에 있는 500년 된 서어나무만 바라보다 왔다. 주성윤 시인(1939년~1992)은 오사카에서 태어났으니 본적은 경남 창원으로 1962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 시집으로 『텅 빈 공백』, 『독설』, 『먼 산에 진달래』, 『산꼭대기의 말』 『조선의 빛』 많은 시집과 번역서가 있지만 절판된 상태였다. 유고시집 『무궁화밭』을 펴낸 도서출판 두꺼비는 사라지고 대행업체인 새길 아카데미에 연락되어 시집을 구할 수 있었다. 시집을 읽다 보니 평론을 쓴 임헌영 평론가와 유고시집을 펴낸 김승균 발행인, 추모글을 쓴 황선락 소설가와 시인은 가까운 관계임을 알 수 있었다. 시인은 서울대 문리대 철학과 시절 ‘최류탄문학 동인회’ 활동으로 유명하다. 『무궁화밭』, 임헌영 평론가의 발문/주성윤론에 의하면, 1966년 『청맥』에 실린 장시 <조국의 상>은 투사 주성윤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준다고 썼다. 『청맥』에 글을 싣거나 참여했다는 이유로 문인들이 고통을 받던 당시 주성윤 시인도 그 희생자로서 깊은 후유증에 시달린 것으로 보인다. 시비 옆면에 1994년 7월 9일 한맥 문학사 주관으로 박혜범 스님의 부지 제공, 시공사인 문산 석재의 대표 최용길 님과 통화 후 한맥 문학사에 제작한 시비를 납품한 정보를 입수했다. 하지만 주성윤 시인에 대해서는 더 알 수 없었다. 한 시인을 찾아가는 문턱은 시집 박물관이나 국립중앙도서관이었다. 구례에 머물며 한 시인에 대해 쓴다는 게 무리라는 것을 알기에 묻어두고 네이버로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시 몇 편 열람할 수 있어 1977년 현대문학에 발표한 짧은 시 <스냅 1>을 소개한다. 수풀에는 조랑조랑 새 울음떼 열리다. 사원의 한밤에 아무런 뜻도 없이 멍청히 떠올라선 한동안 넌센스로 조용히 머문 세상사 시끄러움 같다. 모든 뜨거운 것은 서산 허리에 걸리고, 초설이 흰 이를 드러낸 여정 같이 쌕뚝쌕둑 그 면전에 스쳐내린다. 스냅처럼 지리산 자락 깔끄막에 조랑조랑 열린 시어들. 아니 풀이라는 시와 풀이 어우러져 시인이 풀로 와서 둘레길을 걷는 사람에게 온통 시로 풀어지는 듯하다. 시인이여, 어찌하여 지리산 자락에 오게 되었는지 왜 하필 그 자리에서 새소리 듣고 있는지 아니 새가 되었는지 유고시집 『무궁화밭』에서 임헌영 평론가가 쓴 주성윤 시인, 시대를 아파하고 시대에 대해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던 시인이 교류했던 그 당시를 빈약한 내 언어보다는 시를 직접 음미하는 편이 낫겠다. 난꽃이 피던 무렵 (임헌영 형의 일을 명상하며) 오늘은 웬 일인지 난이 핀 곁에서 난꽃이 핀 걸 보며 해 지는 줄 모른다. 길가에서 어제 만난 갓 출소한 그 친구. 친구의 얼굴이 자꾸 머리에 떠오르는 속에서. 감방에서 수년 살며 어쩌면 제 죄도 아닐지도 모를 죄를 다 씻어내고 이전보다 한결 더 스마아트해진 모습으로 갓 출소한 그 친구 인상을 나도 모르게 나는 난꽃에서 건져올리며 정처 없는 생각에 하염없이 잠긴다. 생각자면 나도 내 죄도 아닌 죄가 너무 많은 청춘……, 중략 이따끔씩 세상을 가르치러 온 것이 라이어트가 되지 않도록 목숨으로 값치른 스승들의 이름도 밝음으로써 어두운 난향 속을 떠돎을 봤다. 국립중앙국립도서관에서 찾은 또 한 편의 시는 <청산음>이다. 어슴푸레한 박명에 청산음이 실려 오듯 한 시인의 삶이 걸어온다. 어쩌면 한 생이 피다 말고 저버린 쉽게 닫혀버린 책이 되고 있어 더 바래지기 전에 펼쳐봐야 하지 않을까? 지리산 자락에 울리는 청산음을 듣고 있는가? 시에 걸린 그 죄명 하나 거울 속에서 울리는데, 하늘을 쳐다보고 풀밭에 누웠으면 나도 미풍에 나부끼는 한 포기 풀. 마음은 맑아져서 그 끝에 걸린 거울이다. 이따금씩 바람결에 기억의 박명이 실려와서 그 속에 얼굴들을 비치고 지나면서 풀잎 끝에 죄명을 하나씩 달아놓고 간다. 흡사 몰래 선생님 등 뒤에 망신스런 쪽지를 써붙여놓고 잠적해버리는 개구쟁이 생도들. 그러면 하늘이 파아래서, 그들을 저지못한 부끄럼으로 얼굴이 화끈 붉어져버린 풀은 꽃이라 갈채하는 사람들. 살고파라. 바람도 청산에 죄를 물어오지 않는 청산에. 그래서 이윽고는 기억도 백흑그림들처럼 깡그리 지워져 없어질 흑판같은 청산에. 주성윤 시인을 다시 좇는다. 김선기 평론가의 <시인 박진환론>을 보면 주성윤 시인은 1963년 9월 박진환, 김종해 시인 등과 함께 시동인지 『新年代』의 창간 멤버였음을 알게 된다. 또한, 1969년 구중서, 임헌영 등과 함께 『상황』 의 동인지 창간 멤버이기도 하다. 그만큼 시인은 활발한 활동을 했었다. 그런데 왜 그는 사라져갔는가? 1975년 3월 11일 자 중앙일보에 실린 박재능 시인에 따르면, 주성윤의 『일광속에서』 는 현대시에서 정서 배제를 위한 지적 처리가 원만하게 시도된 느낌이 드는데 비법에서 소화가 덜된 생소한 단어들이 돌출되어 눈을 거슬리게 하지만 전달의 방편이란 입장에서만 본다면 시대적 호흡에 적응하려는 노고가 많은 것으로 보인다고 썼다. 시인을 찾는 과정의 수확은, 『청맥』에 연재하던 장시에 관한 연구이다. 1923년 한국해양대학교 김지녀, <1960년대 『청맥』誌의 ‘長詩’기획과 ‘참여시’의 의미에 관한 연구>에 실린 글을 옮겨적는다 잡지 『청맥』은 오경남, 주성윤, 김소영 등 신인들을 주축으로 장시가 실렸다. ‘장시’가 다양한 미학적 스펙트럼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장시의 개념과 본질에 대한 이론적 연구들을 검토해 작품 유형화의 기틀을 마련했다. 신인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감각과 언어로 폭압적이고 혼란스러웠던 1960년대, 『청맥』에 장시를 연달아 3편 발표한 주성윤 시인은 사상적이거나 미학적 측면에서 서로 밀접히 연관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1960년대 한국사회의 현실을 직시하며 문학이 나아갈 방향을 신인들에게 묻고 또 그들이 장시의 형식으로 응답한 『청맥』이 지향한 문학 이념과 참여시의 속성을 이해하는 유의미한 지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2022년 1월 22일자 ifs Post News insight에서 이건청 시인의 문학산책<9> 에서 <문학적 사제 관계는 무엇이고, 어떻게 이뤄지는가-박목월 선생과 그 문하생들>을 인용한다. 주성윤 시인은 자취생활을 하면서 시 쓰는 일에 모두를 걸고 있었다. 그가 박목월 선생 댁을 찾으면 사모님 유익순 여사는 옷가지며 반찬을 주어 보냈다. “주성윤이 시인으로 등단하면 사는 일이 나마 좀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박목월 선생의 생각을 전했다고 한다. 주성윤은 관념시로 자기 세계를 이뤄낸 시인이고. 주성윤의 타계 소식은 시간이 흐른 뒤 입을 통해 알려지고 시인의 은둔은 그렇게 깊고 적막한 것이었나 보다고 적고 있다. 드디어 주성윤 시비 옆면에 적힌 부지 제공한 박혜범 스님을 만날 수 있었다. 『지리산人』 편집회의에서 정환 님으로부터 그분이 구례에 상주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1994년 문수리 두지 바위 길옆에 시비를 건립했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시비가 사라지고 없어 궁금하던 차에 필자의 연락을 받았다고 한다. 다시 시비를 찾았을 때 풀이 무성한 사이로 시인은 시비를 건립한 사람과 30여 년 만에 재회한 것이다. 풀로 덮인 그의 약력은 잊힌 만큼 풀로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박혜범 시인이 기억하는 주성윤 시인은 천재이고 이름 없는 별이었다고, 시인 천상병 같은 시인이었으나 다른 향기의 시인이고, 길을 잃고 스스로 갇혀버린 그의 죽음 앞에서 우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주성윤 시인을 시작으로 문수리에 이름 없는 천재들의 시비 동산을 만들고 싶었다는 박혜범 시인. 이름은 있되 이름 없다는 말을 곱씹는다. 찾아야지 찾아가야지 돌에 새긴 시인 찾아가야지 하는 나는 해무처럼 적셔지는 근원적인 비애감에 갇힌다. 갇혀서 걷는 길 길은 항시 저만치 앞질러 달아나며 따라오라, 따라오라고 손짓을 했다. 길에게 너 아디 가느냐고 물어도 대답은 없고 갇혀 있기보다는 걷고 움직이는 것이 자유로우리라고 길을 보면 나는 항시 부랴부랴 짐을 챙겨 따라나섰다. 가도 가도 이다지도 가슴 답답함은 갇혀서 걷는 길인 탓도 아니라는데 나를 자유 속으로 해방시켜 줄 동행은 왜 또 아무도 없는 것일까? 절레절레 발을 절며 오늘도 나는 길을 따라 나서고 길은 저만치 앞질러 달아나며 따라오라, 따라오라고 손짓을 한다. 다시 시비가 있는 선산 주인 이야기를 듣고 싶어 500년 된 서어나무 앞집에 갔다. 여전히 문이 잠겨있다. 할 수 없이 마을 한 바퀴 돌아본다. 솔까끔 마을 오솔길을 지나는 사람을 기다리며 풀이 풀을 노래한다. 그 시절 가난하고 고독하게 살다간 주류가 되지 못한 시인은 그렇게 살아가는 풀 같은 존재를 노래하고 있다. 필자는 참여시를 쓰고 관념시를 쓰고 순수시를 쓴 주성윤 시인의 시가 세상으로 나와 사람들에게 많이 읽혔으면 한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 시인이 지리산 아래 구례에 살다간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오미 슈퍼 앞으로 흐르는 물이 맑다 벽화 속 빨래하는 아낙들 소리가 도랑으로 흐른다 방망이질 소리가 도랑으로 빠진다 오미 슈퍼 할머니가 나와 기웃거린다 슈퍼가 이뻐서 사진 찍어요 하니 씨익 웃는다 시인이 싱겁게 웃는 것만 같다 시인의 육필 원고 <무궁화밭>이 수록된 시집 『무궁화밭』에 실린 <뚝섬 시초>를 소개하며 글을 맺는다. 암만 해도 낯 익었네. 저 선회 풀밭 위를 지나다가 문득 꽃진 풀밭 위에 하얀 나비 두어 마리 배회하는 광경 전생 혹은 이생의 어딘가에서 꼭 한 번 만났던 것만 같이 생각 든다. 기억해 내려해도 푸른 잎사귀로 가려 덮으며 영 잃어버렸거나 죽었거나 없다고만 하고 손 젓고 섰는 이승의 풀밭. 해 저물녘엔 질퍽이는 관능의 바다 기일게 전개시켜 놓고, 그래도 물들지 않고 호올로 이승을 가는 외로운 사람처럼, 또는 영혼처럼 흰 돛단배 가네. 하루 해 싣고.
    • 고을이야기
    • 구례
    2026-08-01
  • 우리는 반달가슴곰의 짝궁, "곰짝, 곰짝"
    우리는 반달가슴곰의 짝궁, "곰짝, 곰짝" 아이들의 마음에 비친 반달가슴곰은 어떤 모습일까? 구례 토지초 아이들이 그린 반달가슴곰을 만나러 국립공원야생생물보전원 남부복원센터의 지리산 반달가슴곰 공존센터에 다녀왔다. 이번 반달가슴곰 작품 전시회는 지난 3월 27일 전남 구례군 토지면에서 열린 ‘우리동네 곰짝! 곰짝! 공존문화행사’(이하 곰짝곰짝 행사)의 결과 가운데 하나다. 곰짝곰짝 행사는 반달가슴곰 개체 수가 늘면서 안전 우려와 공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덩달아 늘어남에 따라 곰과의 공존 문화를 지역사회 안에 퍼뜨리기 위해 열린 행사로, 지리산 자락 주민들이 함께 고민하고 참여해 만든 행사다. 곰짝곰짝 행사에서는 지역 주민의 다양한 공연과 곰을 이해하는 문화 프로그램들이 진행되었는데, 특히 구례 토지초등학교 아이들의 참여가 눈길을 끌었다고 한다. 전교생이 ‘곰과의 공존’을 주제로 글·포스터 공모전에 참여했고, 4~6학년 학생들은 ‘곰짝곰짝 반달곰’ 노래와 율동을 선보여 공존의 의미를 보여줬다. 야생생물보전원 남부복원센터의 지리산 반달가슴곰 공존센터에 가면 지난 행사 때 아이들이 만든 글·포스터 작품을 볼 수 있고, 곰짝곰짝 반달곰 노래도 들을 수 있다. 그림들을 하나하나 바라보고 있노라면, 아이들의 창의성에 놀라고,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는 지적 흡수력과 감수성에 다시 한번 더 놀라게 된다. 너무도 친근하게 표현된 반달가슴곰을 보고 있노라면 빙그레 웃음이 절로 나온다. 늘 무심했던 어른이었음이 부끄러워진다. 반달가슴곰과 인간의 공존을 바라는 지역 주민들의 뜻이 아이들의 노력을 보태 이루어졌다니 참으로 희망이 가득한 사례다. 그런데 왜 우리는 이렇게 반달가슴곰을 복원하고 보전하는 일에 함께해야 할까? 곰은 ‘생태계의 핵심종이자 우산종’이다. 말이 너무 어렵다. 쉽게 말하자면, ‘곰의 존재가 생태계 내 다른 종 다양성 유지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뜻이다. 반달가슴곰은 다래, 머루, 도토리 같은 열매와 씨앗을 주로 먹는데, 곰이 싼 똥에서 식물이 발아하는 확률이 자연 발아에 비해 2배나 높다. 생태계 유지와 확산에 큰 역할을 한다. 반달가슴곰과 곰의 서식지를 보호하면 다른 종들의 서식지도 보호할 수 있는데, 마치 우산을 펼친 듯 하위 종들을 보호할 수 있어서 반달가슴곰과 같은 종을 우산종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왜 하필 지리산에? 곰은 단군신화에도 등장할 만큼 고대부터 한반도에서 살아왔다. 어쩌면 인간보다 더 먼저 살고 있던 한반도의 토박이인지도 모른다. 지리산은 유전인자 보전을 위한 기존 야생곰이 남아 있고 안전하고 넓은 서식공간과 풍부한 먹이자원 등 충분하고 우수한 서식지 조건을 갖추고 있어 반달가슴곰이 살아가기에 좋다. 지리산을 중심으로 ‘멸종위기야생동물 1급인 반달가슴곰’을 보전하는 일을 해 온 남부보전센터는 곰짝곰짝 행사가 주민 주도로 이뤄질 수 있게 지원했다. 남부보전센터가 있는 지리산 반달가슴곰 공존센터에는 곰들이 산다. 이 곰들은 동물원처럼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닌 야생성을 잃어버린 곰이나, 치료가 필요한 곰 등 보호·보존을 위해 마련된 곰들의 집이다. 남부보전센터틑 멸종위기종 복원과 탐사, 연구 사업 외에도 반달가슴곰과 함께 공존하기 위한 사업으로 탐방프로그램과 홍보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다. 반달곰 보전 사업에 대한 우려와 반감을 없애고, 인간이 생태계 파괴자에서 벗어나 자연과 함께 공존하도록 협의체를 구성하고 간담회를 연다. 왜 반달가슴곰을 보전해야 하는지에 대한 까닭, 반달가슴곰의 생태, 반달가슴곰과 마주치지 않는 방법, 혹시 마주쳤을 때 피하는 방법 등 교육하기도 한다. 곰짝곰짝 행사도 이러한 활동의 연장선에 있다. 우리가 찾아간 날 야생생물보전원 남부보전센터 소민석 센터장님을 만나 곰짝곰짝 행사에 대한 이야기와 보전센터의 역할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소민석 센터장님은, 곰이 사람을 공격하거나 농작물에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걱정에 곰이 지리산에 사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사실 사람이 곰의 영역에 침범한 것이지, 곰이 사람의 영역으로 침범한 것은 아니라고 말하며 곰과의 공존을 위한 인간의 노력을 강조했다. “모든 동물은 본능적으로 사람을 무서워한다. 반달곰도 마찬가지여서 사람 소리나, 방울, 종소리 등을 듣게 되면 먼저 피한다. 그러나 혹시라도 마주치게 되면 시선을 피하지 말고 뒷걸음으로 곰으로부터 멀어져야 한다. 절대 혼자서 산행하면 안 된다.” 우리의 사고는 인간 위주여서, 인간이 모든 동물의 우위에 있고, 자연을 지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너무도 당연시한다. 학교에서 배운 ‘먹이 피라미드’가 떠오른다. 피라미드의 가장 우위에 있는 인간은, 먹이사슬이 무너지고 자연의 질서가 파괴되면 살아남을 수 있을까? 모두가 그 대답을 안다. 하지만 일상생활 속에서 어려움과 불편을 감수하면서 ‘생태계를 살리는 일’에는 선뜻 행동으로 동참하기 쉽지 않다. 토지초 아이들과 토지면 주민들이 곰짝곰짝 행사를 멋지게 해낸 일은 그런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이번 곰짝곰짝 행사를 마친 소감을 물었다. “아이들과 함께 프로그램을 진행한 후, 프로그램이 좋았다고 소문이 나서 그 후로도 다른 초등학교뿐 아니라 중고등학생들까지 다녀갔지요. 보전 활동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들이 많고 비협조적이어서 외롭고 힘든 일이었는데, 이 활동과 변화를 통해 직원들이 ‘아, 무언가 할 수 있구나’ 하는 활력과 힘을 얻게 되었지요.” 이어서 그는, ‘생태 보전 활동에 지리산 권역에 있는 기관들과 주민들이 더욱 관심을 갖고 함께 해 나가면 좋겠다’는 바람도 잊지 않았다. 지리산에 살고 있는 곰들은 보호 관리를 위해 추적기를 달고 있다. 야생생물보전원에서는 탐방객의 안전을 위해 반달가슴곰 목격 제보를 받고 있는데, 추적을 나갔던 한 분이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신 적이 있다. 아주 오래전에, 양봉하는 곳에서 반달곰이 벌집을 통째로 훔쳐 달아났는데 바위 뒤로 몸을 숨긴 곰이 꿀을 먹지 않고 바위 사이로 주인이 쫓아오는지를 엿보고 있더란다. 아무도 쫓아오지 않는다고 생각한 곰이 그제야 맛있게 꿀을 먹었다. 정신없이 먹고 있는 사이에 출동한 사람들이 마취총을 쏘자, 오른쪽으로 날아오면 왼쪽으로 휙, 왼쪽으로 날아오면 오른쪽으로 휙, 고개를 돌리며 피하는 모습이 하도 우스워서 모두 같이 웃고 말았다고 한다. 곰의 식별 번호를 부르며, 거기 가만히 있어, 하니 또 가만히 서서 기다리더라는 이야기도 함께. 반달가슴곰들이 살고 있는 보전원 인공 서식지에서, 바위를 뒤뚱거리며 뒤로 내려오는 곰의 귀여운 모습을 보고, 이 ‘꿀을 훔친 곰’ 이야기 속 곰의 모습과 겹쳐 떠올라 혼자 웃었다. 오늘도 해가 쨍쨍하다가 갑자기 비가 쏟아지기를 반복한다. 지구 한편에 홍수가 나고, 다른 한 편은 가뭄으로 땅이 말라간다. 기후위기로 지구가 몸살을 앓고, 많은 동식물이 사라져 간다. 인간이 더 이상 환경 파괴자가 아니라 자연과 공존하는 삶을 살아가야 함이 무엇보다 절실한 때이다. 반달가슴곰과 공존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까닭이다.
    • 고을이야기
    • 구례
    2026-07-13
  • 내 마음을 다녀간 사람들할매와 함께 걷는 계단
    박순남 할매와 함께 걷는 계단 보클보클한 구름이 짖는다. 노인복지센터 차가 박순남 할매 사는 이층집에 도착했다는 거다. 할매는 여든여덟이다. 뇌졸중 후유증으로 다리에 힘이 없어 부축을 받아야만 걸을 수 있다. 계단을 오르기 위해 계단까지 가야 한다, 그 전에 차에서 내리는 순서가 있다, 오른발을 먼저 차 난간에 내려주고 엉덩이를 받쳐 내린 다음 오른발을 내려서 몸을 붙잡고 한 발 한 발 걷기 시작하면 꽃님이가 꼬리치고 반긴다. 계단 앞까지 왔으니 계단에 한발 한발 옮기면 된다. 왼발을 손으로 계단에 올려준다. 그다음은 할매 스스로 오른발을 옮기면 된다. 그러다 보면 내 시선은 자연스레 아래로 간다. 그 순간 스치는 경이로움, 화강석 계단 틈 사이 자란 풀이 꽃을 피웠다. 할매, 저 풀꽃 봐요! 할매는 두 손으로 계단 난간을 잡고 오르다 아래를 본다. “잘 안 보여” “꽃이 예뻐요” 저 풀도 이름이 있을 텐데, 그러게, 우리는 한 몸이 되어 계단을 오르고 구름이 짖는 소리가 하늘로 퍼져 구름이 된다. 보클보클한 구름이는 할매집에 사는 반려견 이름이다. 드디어 문 앞, 으싸! 마음이 바빠진 할매 발걸음이 빨라지며 앞으로 넘어질 듯 걷는다. 문고리에 걸린 열쇠를 빼고 문을 연다. 문을 여는 일은 할매가 오늘 하루 잘 지냈다는 일. 오늘도 애쓰셨어요. 꽃장식 보라색 모자도 벗어두고, 내일 아침에 다시 올게요! 밖에서 문고리를 채운다. 문을 잠그지 않으면 할매가 기어서 계단에 내려와 낙상한 적이 있다. 노인들이 눈 깜빡할 사이 낙상하면 골다공증이 심해 골절될 확률이 높다. 할매와 헤어져 계단을 뛰어내린다. 살아가는 것은 계단이야. 할매가 휠체어 도움 없이 포기하지 않고 계단을 오르내리기 때문에 지금처럼 걸을 수 있다. 비 오듯 땀에 젖고 마르는 일 또한 계단이다. 나를 향해 구름이 짖고 난리다. 안녕, 구름아! 손을 흔들고 차에 오르자 우리를 차창으로 보고 있던 할매들 고생했다는 말 한마디에 금세 땀이 마르고 몸이 가벼워진다. 내 손이 박순남 할매의 발이 되는 계단. 가요! 파초길 지나 지리산을 보고 달려요. 잘 웃는 박순남 할매 목소리는 비음이 매력적이다. 키 크고 잘생긴 아들과 예쁜 며느리가 처음 만나 연애하던 이야기를 하면서 기분이 좋아진다. 체조 시간에 몸이 따라주지 않아 율동하지 못해도 콧노래 부르고 손뼉을 치며 웃는 할매 보고 나도 웃는다. 어느 날 잘생긴 아들이 밭에서 따온 호박을 건네준다. 다음날은 복지센터에서 호박전 부쳐 먹는 날이다. 달착지근한 호박전 생각에 벌써 행복해진다.
    • 고을이야기
    • 구례
    2026-07-09
  • 파초가 사는 집, 어머이
    파초가 사는 집, 어머이 파초를 처음 본 것은 무덥던 어느 여름날 불일암 마루에서다. 법정 스님이 타준 차를 마시며 파초를 바라보던 때가 있었다, 그곳에서 가져온 파초가 내게로 와 동면에 들지 못하고 얼어버렸다. 흙 위로 솟은 푸른 잎을 풀인 줄 알고 뽑아버린 뒤 늦게 찾아온 손가락만 한 파초잎에 물을 주다 불쑥 찾아온 파초가 있다. 파초가 있는 마당, 거동이 불편한 어머이를 부축하는 간호사를 두고 어서 가라고 성화다. 미안해하는 어머이를 현관 안까지 부축하여 거실로 모신다. 노인복지센터에 다녀온 어머이 보고 좋아 야단법석인 강아지. 지팡이와 신발을 가지런히 두고 스타렉스에 오른다. 갖은 풀이 녹색을 뿜어내는 사잇길을 후진하는 사회복지사의 운전실력이 오랜 경력을 말해준다. 사무실에서 말이 없는 그녀는 스타렉스에 타면 말문이 트여 비로소 동료애를 느낀다. 며느리는 집 근방에서 밭일로 바쁘네요. 전라도 말로 “어머이” 어머니 말이에요.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부르는 어머이, 호칭에 며느리 애정이 배어납니다. 어머이 그 발음과 억양을 글로 쓸 재주가 없군요. 불러야만 어머이 호칭이 완성됩니다. 불러도 부르고 싶은 어머이, 먼 기억 속을 걸어옵니다. 파초 잎처럼 너른 품, 어머이는 이제 며느리가 돌봐주어야 할 딸 같은 어머이가 된 것입니다. 어머이를 모시는 며느리는 어머이의 딸입니다. “어머이가 약을 드셔도 요실금이 좋아지지 않아 기저귀 차고 복지센터에 안 가시려고 해요. 허리가 아픈데 복지센터에 누워있으면 욕할까 봐 안 가시겠대요” 며느리 목소리와 눈빛에 걱정이 서립니다. 그 어머이의 애잔한 등, 조절되지 않은 방광, 마당에 선 커다란 파초 잎이 시어머니와 며느리를 감쌉니다. 괜찮아요, 어머이! 숱한 길 걸어 비록 노쇠해도 그 사랑 뿌리 깊이 뻗어가는 파초와 닮았습니다. 날마다 보는 들판은 어머이가 걸어온 시간입니다. 희끄무레한 구름이 물러납니다. 괜찮아, 괜찮아요, 어머이! 어머이가 참기름에 무쳐주던 쑥부쟁이나물, 그 쑥부쟁이가 바람에 살랑대는 것 봐요. 오늘도 노인복지센터를 나온 차는 파초가 사는 집에 옵니다. 희멀건 어머이 웃음. 품이 너른 파초 잎 열고 어머이! 그 어머이가 지금 가슴 속에서 옵니다. 밭일을 마친 며느리가 어머이! 하고 부릅니다. 글쓴이 : 이촉 _시인. 시집 <검은 해바라기>를 펴냈다.
    • 고을이야기
    • 구례
    2026-06-24
  • 2026 생명평화 하지제 이야기 "벽소령을 흔들지 마라"
    2026 생명평화 하지제 이야기 "벽소령을 흔들지 마라!" 올해도 지리산 생명이 무사하길 바라며 하지제를 함께했습니다. 지리산사람들은 난개발로 힘들어하는 지역에 찾아가 연대의 마음으로 하지제를 열곤 했는데, 올해는 벽소령에서 하지제가 열렸습니다. 산청, 하동, 함양에서 벽소령을 깎아 도로를 놓겠다는 공약들이 흘러나왔기에 벽소령을 함부로 하지 말라는 경고가 담긴 하지제였습니다. 벽소령으로 오르는 길이 두 군데가 있더군요, 함양에서 오르거나, 하동에서 오르거나. 함양에 가까이 사는 분들은 함양에서 올라왔고, 저를 포함해 하동에 가까이 사는 분들은 하동에서 올라왔지요. 함양에서 오른 분들 이야기를 들어 보니, 함양에서 벽소령 올라오는 구간은 꽤 편했다고요,,,,, 산에 좀처럼 오르지 않는 저에게 하동에서 벽소령 올라오는 구간은 정말 정말 어려웠습니다. 올라올 때는 심장이 요동쳤고요, 내려올 대는 무릎이 욱신거렸지요. 그러나 힘듦보다는 숲의 신비로움과 아름다움이 더욱 오래 남았습니다. 정말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숲의 매력에 빠졌습니다. 다만, 제 체력으로는 당분간 다시 오를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면서 아름다운 장면이 너무 많았는데, 정신이 아득하여 사진을 제대로 못 찍었습니다. 게다가 새 소리와 계곡 물 소리, 함박꽃 향기, 단당풍 향기, 나무 질감 같은 시각 아닌 감각을 자극하는 무수한 숲의 선물은 사진에도 담기 어려웠으니, 다녀오시는 분만이 알겠습니다. 발로 땅을 짚는 것조차 미안한 마음이 들더라고요..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 도로를 놓겠다는 공약은 제발 사라지면 좋겠습니다. 아니, 아름다우니까 지키자는 말보다는, 엄청나게 많은 이들이 살고 있는 곳이니 제발 지켜지면 좋겠다고 말해야겠습니다.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이미 오래 전부터 숲을 살리며 살고 계신 분들이 있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아실 테지요. 하지제를 열었습니다. 숲에 계신 분들이 놀라지 않게 조용히, 따끈하게- 저마다 하나씩 가져온 감자를 모아 쪘습니다. 아, 맛이 기가막히네요. 온 세상 모두에게 이 감자 한 알씩 맛보게 하고 싶습니다. 조금씩 갖고 온 음식도 모아 모아, 햇차도 올리고, 다례상을 차렸습니다. 벽소령을 지켜 달라는 마음을 담아 목소리도 외치고, 글도 함께 읽었습니다. 해성과 영권 샘은 노래도 불러 주셨지요- 최고! 우리의 아기자기한 하지제가 부디 벽소령을 무사히 살게 하는 큰 힘에 보태져 세월이 흘러도 이 숲과 생명이 순환하며 이어지기를 기도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함께 읽은 편지를 아래 붙이겠습니다. 벽소령이, 지리산이, 그리고 모든 생명이 무사하길 바라는 분들, 함께 읽어 주세요. 고맙습니다. 하짓날 지리산 벽소령에서 올리는 편지 하지, 여름이 이르렀다는 계절에 너무 무더운 하짓날을 맞이했습니다. 이 무더운 하짓날 우리는 지리산 벽소령에 다 함께 모였습니다. 올해 만든 첫 햇차를 올리고, 함께 모여서 감자를 삶아 먹으며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시와 노래를 나누기 위해 모였습니다. 지리산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우리의 한 해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또 모인 이유는 지리산에서 벌어지고 있는 각종 난개발 공약 때문이기도 합니다. ‘지리산을 관통하는 도로를 만들겠다. 지리산에 케이블카를 만들겠다. 지리산에 댐을 만들겠다.’ 실현 불가능한, 실현되어서는 안 되는 공약과 개발 계획들이 비 온 뒤 죽순이 나오듯 사방에서 올라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리산이 어떤 곳입니까? 국립공원 1호이고, 무수한 생명의 보금자리입니다. 이곳만은 보전하자고, 훼손하지 말자고 함께 약속한 땅입니다. 다음 세대들 또한 지리산에 올라서 지리산의 너른 품에 안기고, 지리산 속에서 위안과, 생명의 사랑과 평화를 느낄 수 있는 권리가 있기에 우리는 끊임없이 노력하여 지켜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만든 기후위기로 인해 여름은 우리가 알던 여름이 아니고, 계절의 경계가 사라지고, 절기의 기준이 모호해지고 있습니다. 너무 빠른 변화에 적응할 수 없는 종들이 계속 사라지고 있습니다. 기후 재난은 어느덧 해마다 우리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이런 심각한 기후위기 시대에, 행정가나 정책 입안자들은 난개발 공약들만 즐비하게 내놓고 있습니다. 숲을 지키고, 물이 자유롭게 흐르도록 더 노력하고, 만들어 나가야 할 기후위기 시대에 나무를 베어내고, 강을 막아 댐을 만들고, 생명의 땅인 산을 깎아 없애려 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더 많은 발전과 개발이 아닌 탈성장, 멈춤입니다. 미래 아이들에게 이런 심각한 기후 재난의 세상을 물려주지 않으려면 멈추고, 숲과 강, 산을 지켜나가는 보전의 방향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한계를 모르고 발전과 개발만을 좇는다면 미래 아이들에겐 기후위기와, 기후 재난, 재앙만을 물려주게 될 것입니다. 이래서야 되겠습니까? 우리는 이제 선택해야 합니다. 멸망으로 갈 것인지 아니면 다시 함께 살아가는 길로 나아갈 것인지, 우리 미래 아이들에게 어떤 유산을 물려줄 것인지 다시 생각하고 방향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지리산 마고신께 빕니다. 지리산 생명의 안녕을 바라며 힘겹게 마을을 지키는 이들에게 힘을 주십시오. 지하수로 싸우고 있는 삼장면 주민들을 보살펴 주십시오. 골프장으로 싸우고 있는 차황면 철수마을 주민들을 보살펴 주십시오. 온갖 난개발 공약이 실현되면 위기에 처할 벽소령을 부디 난개발로부터 지켜주십시오. 기후위기로 재난과 같은 일이 없도록 보살펴 주십시오. 우리도 올 한 해 지리산의 난개발 공약을 막아내기 위해 함께 연대하여 싸워 나가겠습니다. 2026년 6월 21일 하짓날 지리산 벽소령에서 지리산지키기연석회의,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지리산사람들, 산청난개발대책위, 함양난개발대책위
    • 고을이야기
    2026-06-22
  • 보이지 않는다고 함부로 말하지 말라 (지리산 지하수 이야기 5)
    ‘300미터 지하 암반수’라고요? 사실은 29미터 지하 암반수입니다. ㈜지리산산청샘물의 관정(특히 5호정)과 주민관정, 국가지하수보조측정망 007이 같은 레벨에 있으며, 고갈 현상의 직접적 원인이라는 결정적인 증거가 있습니다. 바로 케이싱의 길이와 해발고도입니다.케이싱은 우물에 흙이 들어오거나 우물벽이 허물어지지 않도록 하는 플라스틱관 또는 강관을 말합니다. 케이싱이 없는 지점에서부터 암반수는 우물 속으로 스며듭니다.지리산 생수는 ‘300미터 지하 암반수’라고 홍보되지만, 그것은 우물의 최대 깊이이고, 1호정은 지하 101m, 4호정은 지하 79.6m, 5호정은 지하 29m에서부터 우물 안으로 스며드는 물을 뽑아 올릴 수 있습니다. 생수공장의 물은 사실 그리 깊은 물이 아닙니다. 특히 5호정은 지면과 굉장히 가까운 지점(지하 29m)에서부터 스며든 물을 뽑아 올리고 있습니다. 산청샘물 인근 삼장다목적캠핑장 위치한 보조측정망 007은 해발고도가 5호정 보다 약 30미터 아래에 위치하고 있으며, 5호정 케이싱 깊이와 레벨이 같습니다. 이 두 우물은 서로 영향을 받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 고을이야기
    • 산청
    2026-06-11
  • ‘곁의 곁’ 두레공동체 마을에서 열린 생명평화연대 모임에 다녀와서
    ‘곁의 곁’ - 두레공동체 마을에서 열린 생명평화연대 모임에 다녀와서 ‘고통에 곁이 필요한 만큼 고통의 곁에도 곁이 필요하다’라는 엄기호 시인의 시 『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 중 한 구절이다. 이 문장을 ‘어두운 날의 우정과 영성’이라는 주제로 성공회대 교수 정경일 교수가 강연(5월 30일, 지리산종교연대 초청강연) 중에 인용했다. 곁은 이웃, 친구가 될 수도 있고, ‘곁의 곁’은 더 큰 차원의 종교, 교회, 공동체가 될 수도 있다. 이렇게 곁의 곁이 되고자 모인 사람들이 종교를 초월하여 지리산을 중심으로 뭉친 ‘지리산종교연대’ 사람들이다. 나는 특별한 종교를 갖지 않는다. 절에 가면 불상 앞에 엎드리는 겸손과 비움을 배우고, 교회에 가면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는 예수님의 고통과 부르심에 응답하지 못해 괴로워하며, 성당에서는 아름다운 성가에 마음을 빼앗기기도 한다. 토속신앙을 접하거나 굿판에 참여해서는 만물에 깃든 영혼들의 아우성에 마음이 쓰리다. 이런 까닭으로 종교연대 사람들이 각자의 믿음과 신앙을 초월하여 하나로 힘을 합치고 타인의 종교를 인정하는 모습을 너무도 좋아한다. 종교연대 사람들은 개신교, 가톨릭, 불교 등 각기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모이는 연대모임이다. 오늘은 그 연대의 사람들이 함양으로 모였다. 함양의 두레공동체 마을은 힘없는 사람들을 위해 개신교 목사님이 세우시고, 지금도 서로의 곁이 필요한 사람들이 모여 살아간다. 오늘 오전 모임은 두레공동체 마을의 ‘예수행전순례길’을 산책(순례)하는 프로그램으로 시작했다. ‘십자가의 길’은 두레공동체마을 뒷산에 산책로를 만들고, 그 길을 따라 14개의 기도처를 마련했다. 조각가 김익수 장로님이 직접 제작하신 예수의 행보를 나타낸 동판이 각 처마다 십자가와 함께 세워져 있다. ‘만남, 용서, 치유, 가르치심, 긍휼, 섬김, 성찬, 기도, 재판, 십자가 지심, 수난의 걸음, 쓰러지심, 도움받으심, 십자가에 달림(용서, 원망), 예수의 죽음, 부활·승천(못자국, 창자국을 보아라, 제자들을 기다림, 예수님의 승천)’ 이렇게 19개의 묵상 주제를 가지고 있다. 십자가의 길을 따라 걸으며, 하나하나의 기도처에서 묵상 주제를 겸허히 생각해 본다. 얼마나 용서하고, 얼마나 섬겼으며, 또 다른 이들을 나의 기준으로 판단하고, 비난했는가를. 마음이 무거워지려는 찰나. “오, 나뭇잎 사이로 쏟아지는 햇빛을 좀 봐요!” 하며 옆 순례자 한 분이 감탄을 한다. 눈을 들어 위를 올려다보니 나뭇잎들 사이로 파란 하늘이 빛난다. 나무들은 아래 작은 식물들이 햇빛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늘 전체를 덮지 않고 공간을 만들어 준다고 한다. 정말 그랬다. 울창하게 자란 나뭇잎들이 만들어낸 공간들 사이로 맑은 햇살들이 작은 들꽃들 위로 떨어지고 있었다. 자연의 지혜다. 숲속의 자그마한 연못이 나타났다. 연못에는 올챙이들이 까맣게 모여 살고 있었다. 그곳에 새끼 도롱뇽, 소금쟁이 등의 작은 생물들을 발견하고는 신비로운 기쁨에 탄성을 질렀다. “예수의 부활처럼 많은 생명을 품고, 잉태시키는 연못이라.” 한 불자님이 말씀하신다. 그러고 보니 그렇다. 막 깨어난 잠자리들이 은빛 투명한 날개를 퍼덕이며 파란 막대처럼 날아다닌다. 처음 보는 풍경이다. 파란 자그마한 막대들이 여기저기 날아다니는 광경이 신기하여 한참을 관찰했다. 저 작고 여린 생명이 잠자리 성충으로 자라 날아다니게 된다니 그 또한 신비롭다. 연못은 수중 생물뿐 아니라 그곳에서 자라 물 밖으로 나오는 많은 생물도 엄마 품처럼 안고 있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생명들에게도 곁이 되어준다. 이 또한 늘 당연하게 여겼던 자연의 지혜다. 허물어진 언덕에 조그마한 굴이 파였다. 물총새의 둥지라고 한다. 앞에 늘어진 나뭇가지(혹은 드러난 나무뿌리) 위에 앉아 주둥이로 흙 비탈에 굴을 파고 그곳에 알을 낳아 새끼를 기른다고 한다. 물총새는 집 밖으로 엉덩이를 내밀고 똥을 누는데, 집 밖 절벽으로 똥을 떨어뜨림으로써 둥지 안이 더러워지는 것을 방지한다고 하니, 재미있고, 지혜로운 새의 습성이다. 십자가의 길에서 다시 교회로 되돌아오는 길. 산딸기와 오디가 주렁주렁 열렸다. 난 산딸기를 따 먹느라 정신이 없는데, 나이 많으신 한 순례자분이 까맣게 익은 오디를 보고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신다. “며느리가 친정 나들이를 했다가 빈손으로 돌아오자, 이를 얄밉게 여긴 시어머니가 ‘넌 친정 다녀오면서 빈손으로 오냐?’ 하고 묻자, 며느리가 말했지, ‘갈 때 없던 오디가 올 때 있다요?’라고.” 참 현명한 며느리다. 시어머니의 얄궂은 심성에도 전혀 기죽지 않는 당당함이 느껴져서 웃었다. 공자는 세 사람만 모여도 스승이 있다고 했는데, 잠깐의 산책으로도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운다. 더군다나 늘 남의 곁이 되어주는 사람들이 모이니 모두가 나의 스승이다. 점심시간, 바람이 시원하게 부는 나무 그늘에 각자 가지고 온 도시락들을 펼쳤다. 여러 사람이 모이는 식사 자리에는 늘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난다. 난 내 먹을 것만 조금 싸 왔는데, 다들 다른 사람을 생각하여 풍성한 음식들을 준비해 왔다. 김치와 나물, 떡과 빵. 김밥과 찰밥, 채소와 과일. 이것저것 다 먹어보느라 배가 부른 데도 자꾸 손이 간다. 풍성한 점심을 먹고, 드디어 오늘의 정식 프로그램인 강연이 시작되었다. 모두 교회에 둘러앉아 ‘어두운 날의 우정과 영성’을 주제로 한 교수님의 강연을 듣는다. 한 문장이라도 놓칠세라 진지한 모습들이다. 우린 책을 읽을 때도 그렇고, 강연을 들을 때도 자신에게 필요한 말, 혹은 자신의 마음에 와닿은 말들을 주로 듣고 기억한다. 나도 그렇다. 그러기에 마음에 와닿은 강연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어둠의 성인 마더 테레사, 파국에 의한 관상가 파커 파머, 어둠의 날들을 이야기한 틱낫한. 어둠의 날들을 경험한 자가 어둠에서 나오는 길을 안내할 수 있고, 어둠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지혜를 얻을 수 있다. 알베르 카뮈는 소설 『페스트』에서 ‘(재난 속에서) 더 이상 그 무엇도 사랑하지 않는다면 투쟁은 뭐 하려 하는 겁니까?’라고 리유의 입을 통해 묻는다. 어둠 속에서 서로에게 위안이 되어주고, 신뢰를 가질 때 더 이상 어둠은 어둠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사랑을 잃어버린다면 어둠은 그 끝을 모르게 된다. 이렇게 어두움 속에서 우린 서로의 곁이 되어줄 수 있다. 비단, 인간과 인간만이 공동체를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인간과 비인간과의 우정과 협력으로 우정의 써클을 넓힘이 필요하다.” 외국 학자가 주장한 언어를 우리식으로 번역한 언어임에도 ‘비인간’이라는 말에 거부반응이 다소 일었다. 그때 옆 사람이 이렇게 말한다. “비인간이나 나무 사람이라는 말보다는 자연의 현자들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요?” 우린 만물에 이름을 붙이고, 개념 지워서 인간의 입장으로 판단하고 평하려 한다. 언어는 우리가 구별 짓는 기준이 되기도 하는데, 그러므로 늘 인간의 위치에서 생각하게 된다. 자연을 현자의 위치로 규정하고 바라보는 태도, 그 또한 겸허함이다.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지혜, ‘생명, 평화, 공존’의 사상은 늘 ‘현자’의 지혜임이 틀림없다. 십자가의 길은 무겁다. 우린 각자의 십자가를 지고 삶을 홀로 살아가야 하고, 비틀거리고 쓰러질 때 도움이 필요해진다. 꼭 십자가라고 하지 않아도 그렇다. 우린 살아가다 보면 삶이 어깨 위에 걸터앉아 무겁게 짓누를 때가 있다. 그래서 늘 곁이 필요하고, 함께함이 필요해진다. 또한 내가 좀 힘이 있을 때는 누군가의 곁이 되어주고 싶어 한다. ‘그동안 난 누구의 곁이 되어준 적이 있을까?’ ‘나는 어두움이 주는 지혜를 얼마나 깨닫고 살아왔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교회를 나와 마을 길을 내려온다. 다음 모임은 암자에서 있을 예정이라고 한다. 스님이 주관하시는 모임에서는 또 어떤 지혜를 얻을 수 있을까? 또 어떤 따뜻하고,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나게 될까? 글쓴이 : 비아(非我) _지리산을 바라보면 늘 행복해지는 마음으로 그렇게 자락 한쪽 끝에 깃들어 살아갑니다. ‘더불어 삶’이라는 말을 가장 소중히 여기면서.
    • 고을이야기
    • 함양
    2026-06-07
  • 백서른아홉 번째 304 낭독회
    < 백서른아홉 번째 304 낭독회>를 다녀와서 <오늘은 여전히 4월 16일입니다> 세월호 침몰 4,428째 4월 16일이 지난 5월 30일 구례 책방 로파이에서 139회 304 낭독회가 있었다. 로파이 마루에 앉은 사람들 곁에 김태선 평론가가 내어준 자리에 앉아 낭독회를 기다렸다. 노란 천 위의 검은 세월호 리본이 앵두나무 아래 오월 바람에 무심코 펄럭였다. 오후 4시 16분, 김태선 평론가 사회로 낭독회가 시작되었다. “304 낭독회는 우리가 함께 모여 만드는 시간으로 이 시간이 떠난 이와 떠난 이를 잇고, 떠난 이와 남은 이를 잇고 남은 이와 남은 이를 잇는 자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앞으로도 사회적 참사와 안전을, 그리고 사람을 생각하는 서로의 목소리가 공명하여 더 크고 넓게 울려 퍼질 수 있도록, 지금 서 있는 시간으로부터 더 먼 시간까지 함께 읽고, 쓰고 행동하겠습니다.” 이어서 유현아 시인 시, 「그늘 옮기기」, 세월호 유품 시를 쓰고 있다는 송기역 시인의 시 「제비가 돌아왔다」, 김정규 님이 읊는 시 김현 시인의 「뷰티플 스트레인저」, 박진수 사회학자의 편지 「이름을 알지 못하는 누나에게」 , 이소연 시인 시 「개미의 몸을 빌려 占치다」 낭송이 끝나고 책방 로파이에서 꼭 한번 304 낭독회를 하고 싶었다는 시인보다 더 시인인 방성원 님이 김창완 작시 작곡 「노란 리본」을 노래하며 사회자와 다 같이 읽는 글을 끝으로 낭독회 막을 내렸다. 난 되도록 슬픈 곳에 가기를 꺼린다. 다시 직면하는 고통을 피하기 위해서다. 직업상 병에 관련 영화는 잘 보지 않는다. 5·18광주를 바로 눈앞에서 겪은 나로서는,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그 5·18 광주, 영화 <꽃잎>은 몇십 년이 지난 어느 밤 TV에서 보았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지던 날, 야간근무였다. TV로 사건을 접한 늦은 밤 헌혈을 위해 사람들이 병원 응급실로 줄을 이었다. 난생처음 헌혈한 피를 모으는 작업을 했다. 그 밤은 무너진 건물과 그 속에 갇힌 사람들과 구조된 사람들과 구조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무너져 내리는 마음이 함께 힘을 모았다. 그리고 세월호가 침몰하던 그 바다는, 우리가 제주도로 향하던 뱃길, 세월호에 탄 아이들과 선생님들처럼 직장에서 단합대회 가던 길이라 세월호 참사는 특별하게 더 기억에 남아있다. 낭독회 중 어디서 날아왔을까? 하얀 나비 한 마리가 우리 곁을 맴돌았다. 마루로 너울너울 벽에 붙은 글에 붙어 너울대다 담쪽으로 사라져갔다. 세월호를 타고 바다로 간 아이들 영혼이 찾아온 듯 우리는 하얀 나비에게 시선을 빼앗겼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가 기울면서 바다로 침몰하던 시각에 외치던 아이의 목소리가 찾아와 곁에 한참을 머물다 간다. “반쯤 잠겼는데, 바다밖에 안 보여, 나 살고 싶어요. 리얼리! 배가 기울었어요. 물이 다 찼어요. 코드블루 레드! 나 무서워 살고 싶어, 나는 꿈이 있는데, 하고 싶은 게 많은데, 하고 싶은 게 많은데, 왓캔아이두! 내가 지금 탄 세월호, 이런 길 속에 묻혀, 우리가 출발 예정 시간은 6시 30분, 우리가 출발한 시간은 8시, 지금 배는 85도, 머릿속 온도는 100도” 이 아이가 남긴 말에 아직 대답하지 못하고 있다. 세월호 침몰 이후 계속되는 대참사 앞에서 할 말을 잃는다. 솔직히 더 많은 글을 쓸 자신이 없다. 할 수 있다면 304 낭독회를 기억하면서 구례에서 다음 304 낭독회가 열리기를 희망하며, 이 글을 읽는 사람이 로파이에서 함께 한 139회 304 낭독회 <<함께 읽는 글>> 과 함께 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글을 맺는다. <<함께 읽는 글>> 사회자 오늘은 4월 16일입니다. 다 같이 4428번째 4월 16일입니다. 사회자 이렇게 모여, 우리는 사람으로 돌아가는 꿈을 꿉니다. 다 같이 목숨이 삶으로, 무덤이 세상으로, 침묵이 진실로 돌아가는 꿈을 꿉니다. 사회자 이렇게 모여, 우리는 사람의 말을 이어갑니다. 다 같이 떠오르도록, 떠오를 수 있도록, 사람이 사람에게, 사람의 말을 이어갑니다. 사회자 이유를 알고, 책임을 묻고, 참사가 반복되는 걸 막아야 합니다. 다 같이 세월호 미수습자 모두의 귀환을 염원합니다. 철저한 진상규명을 요구합니다. 모두의 이름으로 명령합니다. 사회자 함께 대답을 들어야 합니다. 다 같이 그때까지 멈추지 않겠습니다. 사회자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닙니다 다 같이 끝날 때까지 끝내지 않겠습니다
    • 고을이야기
    2026-06-02
  • 구례를 걷는다구례를 걷는다
    봉북 샛길 가축병원 자리 골무 사태 들어 대장간 지나 왼쪽으로 꺾으면 봉남리로 나가는 샛길, 벽화 따라 걷는 봉동리 더듬어 주욱 이층집 지나 큰길 건너 읍사무소 자리 역사의 거리 지나 성당을 돌아 봉산 쪽으로 간다. 길을 접어 작은 길을 가니 소식다료. 들어서니 아는 사람이 앉아 있다. 호지차 한잔 주문하여 홀짝이는데 창밖으로 보이는 연둣빛 봉산이 금세 내 안으로 쏟아질 듯 하다. 구수하고 따듯한 호지차처럼 구례에서 만난 사람들 또한 그러하다. 찻집에서 우연히 만나는 사람은 샛길 같다. 길 안에서 길을 마시는 차의 여백, 찻잎처럼 떠다니는 여백을 떠다니는 생각에 싸여, 걷는다. 봉북샛길 접어드니 샛길이 나를 기웃대며 녹슨 파란 대문이 꿈속으로 부는 바람처럼 나를 건든다. 고양이 두 마리 쓰레기 더미를 뒤지다 후딱 피한다. 가지 마! 나도 몰래 새 나가는 말이 전봇대 아래 멈추고 야옹, 고양이 눈이 맑다. 개울 따라 접어든 구례 샛길이 살갑다. 지나는 사람은 그림이 되고 십자가 뒤로 장미슈퍼가 미소 짓는 저물녘. 장미슈퍼 와상에 메주와 우유를 내놓았다. 먼 날이 불러오는 풍경 한파가 이어지던 영하 10℃ 냉장고를 나온 두부가 손님을 기다리던 시간 위로 떠 오르는 얼굴 함께 구례를 다시 걷는다.
    • 고을이야기
    • 구례
    2026-05-16

기후위기 검색결과

  • 환경을 위해 채식하겠다던 네가 오늘 치킨을 먹는다고 해도
    벽소령 관통도로 공약 철회를 요구하며 열린 2026 생명평화 하지제에서, 내게 온 꽃등에. 때로는 이런 작은 맞닿음이 수백 마디 말보다 힘이 셀 때가 있지요. 얼마 전까지 저는 350일 채식인이었습니다. 이젠 달걀을 조금씩 먹기 시작해서 이렇게 부를 수가 없지만, 전에는 한 해 365일 가운데 350일 정도 채식하고, 보름 정도는 잡식인으로 살았습니다. 채식하는 날이 349일이 될 수도 있고, 351일이 될 수도 있지만, 날 수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은 한다는 게 중요하니까요. 벌써 채식한 지 열다섯 해가 넘었으니, 이제는 채식하는 일이 저에게 너무 힘들고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그런데도 무서운 건, 어릴 때 고기 맛을 알아 버린 ‘입맛’이란 놈이 한두 달에 한 번 정도 찾아와 고기를 그리워하게 만든다는 거예요. 또, 저를 완전한 비건이 될 수 없게 만든 입맛이 하나 더 있는데, 그건 우유를 못 끊는 입맛이에요. 당신이 키가 작아 두 딸만큼은 꼭 키를 키우겠다고 한을 품은 우리 엄마는 어릴 때부터 두 딸에게 하루에 500리터씩 우유를 먹게 했습니다. 그 맛에 길들었는지, 우유를 끊는 일이 고기를 끊는 것보다 어려웠거든요. 입맛이라는 게 참 무서워요. 치킨을 찾는 입맛, 라테를 원하는 입맛이 제게 찾아오면, 아무리 머릿속으로 좁은 케이지에 갇힌 닭이나 강제로 임신해 우유를 착취당하는 젖소를 생각해도 그놈의 (우라질) 입맛을 떨쳐내기가 힘드니. 그렇더라도, 날마다 고기를 찾던 제가 350일 채식인이라도 된 걸 보면 입맛을 완전히 못 바꾸는 건 아닌 듯합니다. 시간과 노력, 그리고 무엇보다 함께 채식하고 채식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다면 입맛도 조금씩 바꿀 수 있더라고요. 그렇게 저는 천천히 조금씩 너무 괴롭지 않게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자, 생각해 350일 채식인으로 살 수 있었습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한 일이여도 몸에 밴 습관을 이기기가 이렇게 어려운데, 하물며 채식에 의지가 없는 사람이 채식하는 일은 얼마나 더 어렵겠어요? 그러니 채식하지 않는 사람에게까지 채식을 강요할 수는 없다는 걸 저도 잘 압니다. 남의 행동을 고치려 드는 지적질은 정말 못 만든 광고 같아서 아무리 해도 효과가 없었어요. 그걸 알면서도 저는 가끔 못 만든 광고를 또 내보내기도 하니, 이 또한 습관의 폐단인가 싶습니다. 그래도 다행히, 누군가가 어떤 판단을 내리기까지 고려해야 할 일들은 내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하다는 걸 깨닫게 해 준 경험이 많았고, 덕분에 못된 지적질 습관을 꽤 줄이게 됐는데요, 그 가운데 하나가 황정은의 소설 『계속해보겠습니다』에 나오는 ‘순자’를 만난 일입니다. 순자는 자기 핏줄인 나기뿐 아니라 옆방에 사는 아이인 소라와 나나를 위해 날마다 도시락 세 개를 여섯 해나 싸는 인물입니다. “반찬으로 머리 달린 부세 구이가 통째로 담겼다거나 고춧가루에 버무린 오이지만을 수북하게 담았다거나 이따금 달걀말이지만 대개는 달걀프라이 혹은 다른 반찬 없이 달걀프라이 한 가지를 밥에 얹고 양념간장을 뿌린 것 하는 방식으로 투박하기 이를 데 없는 도시락이었다.” _『계속해보겠습니다』 황정은 순자가 싼 도시락은 육식에 가깝습니다. 만약 순자가 환경을 위해 채식해야 한다는 강박을 느꼈거나, 누군가로부터 그런 강요를 당했다면, 아마도 옆방 아이들의 도시락까지 챙기지는 못했을 것 같아요. 순자는 늦은 밤까지 과일을 팔고 돌아와야 했고, 뇌경색으로 죽은 남편이 남긴 빚도 해결해야 했는데, 그런 순자에게 달걀프라이는 손이 많이 가는 나물 반찬보다 쉽게 세 아이의 도시락을 싸도록 도와주었을 거예요. 게다가 싸구려 달걀 한 판이면 싼 값으로 여러 날 아이들을 먹일 수 있었겠죠. 들여야 하는 노력을 보나, 돈을 보나, 육식 도시락이 옆방 아이들을 위한 순자의 선물을 가능케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물론 달걀이 어떻게 이렇게 싸게 대량으로 날마다 인간의 밥상에 오를 수 있는지를 두고 문제를 제기할 수는 있지만, 순자를 그저 동물복지나 기후위기도 생각 안 하는 악당이라고 비판할 수는 없겠지요. 순자가 어떤 사람인가요, 여섯 해째 날마다 새벽같이 일어나 옆방 아이들 도시락까지 싸는 인물이면, 그 인품은 말 다했지요. 그가 동물의 마음을 헤아린다면, 350일 채식하는 저보다 몇 배는 더 헤아렸을 겁니다. 다만 먹여 살려야 할 자식과 배고파하는 이웃 아이를 먼저 생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순자는 자기가 생각하기에 최선이라고, 가장 바람직하다고 본 방향으로 움직였을 뿐입니다. 모두에겐 저마다 사연이 있고 그 사연은 제삼자가 상상할 수 없는 고달픔과 슬픔, 우울함 같은 감정을 안고 있을 수 있다는 걸 생각해 봅니다. 오늘 내가 옳다고 생각한 것이 내일 오답이 될 수도 있다는 것도 함께 생각해 봅니다. 내가 어떤 까닭으로 공장식 대량 축산물을 덜 선택하려고 하는지를 말할 수는 있겠지만, 누군가가 육식을 한다고 해서 그를 비난하거나 미워할 필요는 없다는 걸 순자가 제게 가르쳐줬습니다. 비건을 선택한 뒤로 섭식장애가 생겼다는 친구에게 나는 말하고 싶습니다. “벗아, 환경을 위해 채식하겠다던 네가 오늘 치킨을 먹는다고 해도 나는 널 비난하지 않을 거야. 당연히 너를 미워하지도 않지. 네 마음을 이해해. 너를 존중해. 오늘은 네 몸에 들어간 닭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내일 더 나은 선택을 할 수도 있잖아. 네가 그간 더 나은 선택을 하느라 얼마나 애썼는지 잘 알아. 너와 같은 지구인 동료가 있어서 나에게도 큰 힘이 돼. 네가 무얼 먹고, 무얼 사고, 무얼 입든, 네가 충분히 고민하고 결정한 선택이라고, 너만의 까닭이 있으리라고 생각해. 그리고 나는 지금 네 모습 그대로 네가 좋아. 우리가 친구여서 좋아.” ‘그냥 될 대로 살다 죽자’ ‘혼자서 그런다고 뭐 달라지냐’ 하는 절망이 찾아오더라도 ‘계속해 보겠습니다’ 하고 마음을 다잡는 비폭력 사랑꾼들을 나는 응원합니다. 내 옆의 소라, 나나, 나기, 순자가 그 감수성을 놓지 않을 수 있게, 계속할 의지를 꺾지 않을 수 있게, 나는 그들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음으로써 그들을 응원합니다. 우리 서로가 무지개 색깔로 더 나은 선택을 해 나가도록 빌어 주기를 바라며, 완벽하지 않지만 그래서 더 열심히 고민하는 지구 생명체들을 나는 늘 응원하겠습니다. 글쓴이 : 문홍현경 _니은기역 출판사 이끄미 (이 글은 <봉성신문>에 실린 글입니다.)
    • 기후위기
    2026-07-30
  • 기후변화가 포도 농사에 미치는 영향
    새로운 품종을 심었다는 연락이 왔다. 오래 알고 지내던 농민이다. 섬진강을 건너 구례구, 곡성 그리고 남원으로 간다. 다시 강을 건너 남원 금지면에 도착했다. "어디 계세요?" "아.. 벌써 왔는가?" "네" "어디 하우스로 가면 되나요?" "여기.. " "복숭아 심었던 곳으로 가면 되나요?" "그래, 거기 맞아." 오래전에 그 하우스에는 복숭아가 심어져 있었다. 하지만 잘되지 않았고, 이제는 포도가 자라고 있다. 농장에 들어가 보니 사람은 안 보이고 멀리 닭 몇 마리가 흙을 쪼고 있다. 하우스 끝에서 황 농부님이 걸어오신다. "아이구, 더운데 어찌 지내?" "뭐, 저야 잘 있어요." 이런저런 근황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이건 무슨 품종입니까?" "캠벨 615라고 하는 신품종이야. 캠벨하고 비슷한데 수확이 빠른 품종이지. 씨도 없고 당도도 캠벨보다 높고, 병충해에도 강하다고 하더라고." 농사는 멀리서 보면 항상 그대로 있는 것처럼 보인다. 포도가 나오고 배가 나오고 사과가 나오고, 철이 되면 복숭아가 나오고 매번 그 시기에 때맞춘 과일들이나 농산물이 수확된다. 하지만 같은 복숭아도 작년의 복숭아가 아니고, 포도도 과거의 포도가 아닐 수 있다. 농민에게는 말이다. 국내에는 매년 새로운 과일 품종과 채소, 과채 품종이 쏟아져 들어온다. 그중에 몇 개는 실험적인 농민들이 시도를 해보고 검증을 거치고 나면 전국의 농민들에게 퍼진다. 최근 몇 년간 가장 인기가 높았던 품종은 샤인머스캣이다. 처음 심었던 농민들도 이런 품종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시도를 했고 그것이 성공했다. 그리고 오랫동안 캠벨 같은 전통적인 포도를 재배하던 농가가 품종을 바꾼다. 홍수 출하가 이어지고 가격은 떨어지기 시작한다. 급기야는 기존의 캠벨 가격은 오르고 샤인머스캣은 가격이 떨어지게 된다. 식품은 보수적인 시장이다. 우리가 먹고 있는 대부분의 식재료는 쉽게 변하지 않는다. 외국에 나가면 김치가 생각나듯, 달달한 샤인이 최고처럼 여겨지던 시기가 있었지만, 과거의 캠벨 맛을 잊지 못한다. 잠시 한눈을 팔다가도 돌아간다. 식품은 그런 시장이다. 하지만 농민에게는 숙제가 있다. 같은 품종을 오래 심다 보면 그 품종에 맞게 진화한 벌레들과 균, 선충들이 농장을 지배하게 된다. 오래된 품종은 그 공격에 대응하기 어렵다. 그걸 방지하기 위해 더 많은 농약을 쳐야 한다. 그러다 보니 병충해에 강하고 기존 벌레들과 익숙하지 않은 품종으로 대체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더구나 사람도 그렇듯이 나무들도 젊은 나무들이 생산량이 많고 병충해에도 강하다. 새로운 품종을 심는 이유가 된다. 캠벨 615도 그렇게 이 밭에 정식되었고 첫 수확을 시작했다. 생산 농가의 말에 따르면 아직까지는 병충해에도 강하고 맛도 좋고 색도 잘 나온다고 한다. 캠벨은 익으면서 검은색으로 변해야 하는데, 붉은색에서 끝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기후변화 때문이다. 새로운 포도를 먹어보니 정말 기존의 캠벨에 비하여 당도가 높다. 씨도 없어 먹기 편하다. 보통 포도씨를 없애기 위해 처리가 필요한데, 이 포도는 씨 자체가 없다. 블랙 사파이어(가지포도)와 비슷하다. 블랙 사파이어 포도도 신품종으로 많이 심었지만, 현재는 많이 남아있지 않은 씨 없는 포도다. 씨가 없어 먹기 편하고 당도가 높으며 송이가 잘 떨어지지 않는다. 캠벨은 송이가 잘 떨어져 유통할 때 힘들다. 여러 가지로 장점이 많지만 시장에서 과연 성공할 것인지는 별개다. 현재 남원에서는 두 농가가 시험적으로 재배를 하고 있다고 한다. 만약 올해 재배에 성공한다면, 내년에 더 많은 농가가 이 품종으로 변경할 수도 있을 것이다.
    • 기후위기
    2026-07-07
  • 단정하지 않아도 괜찮은 세상
    단정하지 않아도 괜찮은 세상 복잡함을 문제 삼는 인간의 속도에 맞추려 하면, 강도 땅도 산도 한 가지 모양으로 반듯해진다. 어떤 꼴의 재앙이 될지 알 수 없다. 친구들과 생강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올해는 새로운 밭에서 시작하게 되었는데요, 그리하여 올해 생강 농사의 첫 일은, 갇힌 땅 구출하기였습니다. 거창해 보이지만, 그냥 제가 붙인 이름으로, 고랑을 꽉 덮고 있는 부직포를 걷어 내는 일입니다. 이미 있는 부직포를 굳이 걷을 필요가 있는지 처음엔 의아했습니다. 몇 해나 묵은 부직포 위아래로는 또 다른 생태계가 끈끈하게 만들어졌고, 또 무엇보다, 걷어 낸 부직포는 또 다른 쓰레기가 되어 매립되거나 소각될 테니 그럴 바에야 땅에 그대로 두어 오랜 세월 뒤 땅으로 돌아가게 두는 게 낫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거든요. 그렇지만 함께 농사짓는 친구들 생각은 달랐어요. 플라스틱이나 다름없는 부직포가 밭에 있으면 땅이 숨쉬기에도 어렵고, 미세플라스틱이 계속 땅으로 들어갈 것이고, 자연농 숲밭의 순환 기능에 해가 될 것이라고 했지요. 저는 그 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궁금했습니다. 부직포가 다 벗겨진 우리 숲밭의 변화가. 그래서 친구들 의견에 따르기로 했어요. 내가 땅을 구출한 걸까, 땅이 나를 지켜본 걸까 갇힌 땅 구출하기가 시작됐습니다. 땅에 깔린 부직포와 현수막 겹겹을 벗기려고 힘을 주었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덮개를 뚫고 자란 풀들이 덮개와 땅을 이어 주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풀과 흙과 낙엽의 무게까지 더해져 잘 들어 올려지지 않았지요. 있는 근육, 없는 근육을 다 끌어모아 덮개를 들어 올리니, 그 밑에 정말 셀 수 없을 만큼 얽히고설킨 잔뿌리들이 붙어 있었습니다. 도망가느라 정신없는 무수한 곤충 그리고 지렁이들…. 아, 지렁이가 정말 많았습니다. 마침내, 고랑 흙이 다 드러났습니다. 비를 맞은 뒤로 더 다채로운 음영을 보이던 숲은 자기가 품은 밭에서 플라스틱 덮개가 사라지자 훨씬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제 눈에는요. 숲도, 숲속 생명들도, 오늘 우리가 한 일을 좋아할까? 하고 생각해 봤습니다. 그건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 제겐 늘 의아한 마음이 일어납니다. 이게 맞는가? 내가 하는 짓이 정말 옳은가? 내가 또 무언가에 치우쳐 있는 게 아닌가? 하고요. 지난날, 내가 옳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갇혀서 내 고집만 부리며 산 것이 어리석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지금도 그러고 사는 게 아닌지 흠칫 놀라곤 합니다. 그래서 자꾸 질문해 보는 거예요. 숲밭에서도 그랬어요. 시간의 속도가 인간과는 다른 생명들에게 인간의 속도에 맞추라고 강요한 게 아닌지, 뜨끔해서요. 인간의 속도로 만드는 ‘보기에 좋은’ 함정 얼마 전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지리산 국립공원 구상나무 보전 세미나 및 자연적응실험>이 있었습니다. 국립공원공단은 지리산과 한라산 아고산대에서 자라는 구상나무가 일부 지역에서 말라 죽은 일을 두고 걱정해 왔습니다. 고심 끝에, 그들은 미리 세석에서 기른 구상나무 묘목 160분을 헬기로 날라, 반야봉에 심었습니다. 이 사업을 위해 많은 이가 반야봉 땅을 밟았고, 할 수 없이 일회용품과 에너지가 쓰였고, 다른 곳에서 자란 묘목이 반야봉에 심어졌습니다. 그들이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을, 숲은, 구상나무는, 그 숲에 사는 생명들은, 좋아해 줄까요? 인간이 자연에 대해 아는 건 고작 빙산의 쪼가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왜 인간은 기다리지 못할까요? 아직 구상나무 죽음을 둘러싼 자료가 충분히 쌓이지도 않았고, 다른 장소에서는 어린나무가 활발하게 자라는 등 지역마다 상태가 다를뿐더러, 자연의 천이 과정을 고려하려면 수십 년을 지켜봐야 할 일인데도, 왜 더 지켜보지 못할까요. 우리 사회가 복잡한 것을 견디는 능력을 잃어가고 있는 걸까요? 불확실하고 복잡한 것을 못 견뎌서 측정할 수 있는 성과와 명확한 인과관계를 자꾸 요구하고, 이런 압력이 거세질수록 세계의 구불구불한 복잡성을 쫙쫙 펼쳐서 통제하려는 게 아닌지. 마치, 한 밭에 한 작물만 쫙 심고, 한 숲에 한 나무만 쫙 심고, 학교에선 아이들을 쫙 줄 세우고, 다양한 개성 같은 건 별종 취급하며 교정해야 할 문제로 바라보는 것처럼요. 다양한 요인, 가지각색 요소, 저마다 가진 색깔, 무수한 변이를 느긋하게 바라볼 여유가 사라져 가는 것 같아요. 인간의 속도 안에서만 생각할 수 있는 것들, 딱 거기에 맞춰서 해결책을 내려고 하다 보니 다양성도 사라지고 기다릴 여유도 사라져 가는 것 같아요. 구불구불, 꿀렁꿀렁, 가지각색, 제멋대로, 울퉁불퉁 복잡하고 얽히고설킨 것들을 좀 내버려둘 여유를 가져 보면 어떨까요. 그런 세상이라면, 인간들이 반야봉의 구상나무를 좀 더 지켜볼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그런 세상이라면, 땅이 맘껏 숨을 쉬고, 아이들도 맘껏 숨을 쉬고, 내가 세상과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를 탐구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여러 생물이 함께 살 수 있는, 단정하지 않아도 괜찮은 사회일 것 같은데 말이죠, 그런 세상 어떤가요? 글쓴이 : 문홍현경 _독립출판사 니은기역 이끄미 (이 글은 <봉성신문>에 함께 싣습니다.)
    • 기후위기
    2026-06-15
  • 종말이 오면 좋겠다고 그랬어요
    종말이 오면 좋겠다고 그랬어요 우울하고 불안한 당신에게, 길가의 마거리트(마거렛) 꽃이 주는 햇살 같은 인사를 전합니다. 당신은 문제가 아닙니다, 당신만의 문제도 아닙니다. 피어나는 꽃들을 빌려 계속 안부를 묻겠습니다. 지난 4월 22일 구례에서는 지구의 날이 조용히 지나갔습니다. 2021년부터 해마다 열린 ‘구례 지구의 날 어린이·청소년 기후행동’으로 거리가 시끌벅적했던 지난 해들과 달리, 올해부터는 다른 방식으로 기후운동을 이어가기로 한 까닭입니다. 지구의 날, 다른 지역에선 무슨 일이 있었나 하고 소식을 찾아보다가 제목 하나가 눈에 띄었습니다. <지구 걱정은 시험 끝나고. 지구의 날 10분 소등도 어려운 캠퍼스>. “대학생들에게는 10분의 소등조차 허락되지 않는 ‘중간고사 기간’의 압박이 더 크게 작용하고 있었다.”라며 한 대학생 기자가 지구의 날조차 지구를 생각할 수 없는 캠퍼스 현실을 드러낸 기사였습니다. 이 기사를 읽고 대학생들이 사회 문제보다 개인 성적 따기에만 몰두한다고 쉽게 혀를 찰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듯합니다. 그들의 무관심은 지난 2022년 대선 토론회에 나와서 “알이백(RE100)이 뭐죠?”하고 묻던 후보 시절 윤석열 씨의 무책임한 무관심과는 결이 달라 보입니다. 고용 불안, 주거비 부담, 경쟁 압박, 우울, 고립과 은둔 등으로 종말보다 못한 현실을 걱정하는 청년들에게는, 어떤 권력도 믿을 구석도 없으니 말입니다. 기후위기라는 재난만큼 청년들의 희망 없는 일상은 우리 사회가 조금씩 쌓아 온 ‘느린 재난’이 된 것 같습니다. 종말을 바라거나, 이미 종말을 살고 있거나 고민실 작가의 단편소설 「쓰나미 오는 날」(『홈가드닝 블루』)에 나오는 인물 유경은 쓰나미가 올 거라는 소문에도 도시를 떠나지 않고 출근합니다. 왜 직장을 그만두지 않는지 묻는 말에 유경은 “다시 취업할 수 없을 것 같아서요.”라고 말합니다. 이 사회에서, 쓰나미보다 실업이 두려운 자들은 유경만이 아닐 것입니다. 기후재난보다 시험이 두려운 아이들처럼요. “기후위기로 학교 문 닫으면 시험 안 봐도 되겠지?” 우연히 들은 고등학생 청소년들의 대화였습니다. 이들의 어깨에는 지구보다도 무거운 짐이 들려 있는 것만 같습니다. 그런데 한편에선 기후위기를 시험 문제로 내는 ‘기후수학능력시험’이 치러졌습니다. 2025년 8월에 열린 제2회 기후수능의 점수와 1등 학생에 대한 기사들이 있었습니다. 중고등학교에서 환경 과목이 거의 외면받고, 환경을 담당하는 교사 또한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어서, 환경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최 측 의도에는 공감하지만, 들고 나온 대안이 또 다른 시험이고 줄 세우기라니…. 기후수능으로 환경에 대한 관심이 늘면, 아이들 입에서 “기후위기로 다 한꺼번에 죽으면 시험은 안 봐도 되잖아요.” 같은 말이 안 나올 수 있을까요? 쓰나미보다 실업이 두렵다는 유경이들은 환경수능에서 높은 점수를 받으면 좀 덜 불안해할 수 있을까요? 100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할 정도로 기록적인 폭우가 내린 2025년 여름 한반도에서 폭우로 사망한 이가 37명이었으며, 같은 해 폭염으로 사망한 이는 19명이었습니다. 한편, 2021년부터 2025년 6월까지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이 집계한 ‘자살 시도나 자해를 한 학생 수(자살한 학생 포함)’는 하루 평균 19.37명이었습니다. 수치만으로 어떤 죽음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려는 게 아닙니다. 기후위기를 만드는 방식으로 또 다른 재난이 가려지고 있음을 똑바로 바라봐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가 보지 못하는, 혹은 눈감는, 그러나 분명히 존재하는 ‘폐허’가 이미 재난이나 종말이라는 단어보다도 더 끔찍하게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음을 드러내야 하지 않을까요? 기후위기를 부추기는 방식이 아니라, 기후위기를 막을 생태적 전환의 목소리로 말입니다. 종말보다 못한 현실, 각자 풀어야 할 과제로 남기지 말아야 지구의 날에 열린 한 토론회에선 청년들의 ‘기후 우울’을 주목했습니다. 기후위기로 우울감이나 무기력함, 생태적 상실감에 시달리는 청년이 늘어난 현실을 사회 구조에도 영향을 미치는 심리적 위기라고 진단했습니다. 누군가에게 기후 위기는 먼 미래가 아닌 현재의 위협으로 받아들여집니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불안을 만드는 방식을 가져와 불안을 잠재우겠다고 합니다. 더 열심히 공부해라, 좋은 직장에 가라, 돈 많이 벌어라, 같은 말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꼬드깁니다. 시궁창 같은 현실을 송두리째 무너뜨릴 방법은 오직 재난뿐이라는 생각에 재난이 오기를 갈망하는 청소년·청년들, 현실이 재난보다 더 무서워서 재난에는 무감해진 무수한 유경이들 그리고 기후위기 불안에 시달려 우울한 청년들이 ‘지금 우리 옆에’ 있습니다. 이것 또한 재난입니다. 각자가 풀어야 할 문제가 아닙니다. 게다가, 이미 재난을 겪고 있는 무리에 인간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너무 뜨거워진 물속의 물살이나, 옴짝달싹할 수 없는 나무 같은 생명도 있습니다. 우리 눈에 보이거나, 보이지 않거나, 나의 역사와 ‘동시에’ 존재하는 모든 폐허를 우리는 어떻게 계속 외면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2020년 『살자편지』 『벗자편지』 책들을 기획할 때, 독자에게 이런 물음을 던지고 싶었습니다. “백번 양보해서, 똑똑한 소비자와 과학자가 정말로 기후위기를 막을 수 있다고 치자, 그럼 그 뒤엔? 빈곤과 양극화, 각종 차별과 혐오, 지나친 경쟁과 열등의식, 한계를 모르는 성장 사회의 삶은 기후위기만큼 무서운 일상 아닌가?” 우리 사회가 느린 재난을 만들어 온 방식들을 의심해 보면 어떨까요. 왜 누군가의 일상이 종말보다 끔찍해졌는지 돌아보면 어떨까요. 저는 자꾸 까먹어요. 그래서 동료 지구인들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우리 옆의 폐허와 저 너머의 폐허를, 그리고 인간 언어를 말할 수 없는 자들의 폐허를 못 본 척하지 않게 도와주세요. 글쓴이 : 문홍현경 독립출판사 니은기역 이끄미, <자기 씨앗대로 산다> 지은이 (이 글은 <봉성신문>에도 함께 싣습니다.)
    • 기후위기
    2026-05-15
  • 홍천 양수발전소 예정지를 다녀와서- "1년에 14.82분 가동. 오타가 아닙니다."
    “야, 이 빌어먹을 개새끼들아~~~!” 저절로 쌍욕이 튀어나옵니다. 돈으로 자기 배 불리자고 수십년 동안 사람들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베풀어준 잣나무 수십만 그루를 베어내고, 산을 파헤치고, 골짜기를 수몰시키는 배은망덕한 개자식들, 인간의 탈을 쓴 짐승들, 지구 간강범, C발놈들. 이곳은 강원도 홍천 풍천리입니다. 핵발전소에서 생산되는 초과 전기의 쓰레기장으로 예정된 곳이죠. 핵전기쓰레기장을 고운말로는 ‘양수발전소’라고 합니다. 쓰레기처리장이라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만든 위선적인 이름입니다. 양수발전소는 얼마나 발전을 할까? (주)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이 공개하고 있는 자료에 따르면, 2025년 한해 전국의 양수발전소는 평균적으로 39일 가동, 수력발전소는 94일 가동되었습니다. 10% 조금 넘는 가동률입니다. (자료출처: https://www.khnp.co.kr/main/selectWebDisoffView.do?key=152&siteId=&seq=19602, 합계 발전량 ÷ 합계 발전용량 ÷ 24시간으로 계산) ‘가동’이라는 단어는 발전소가 발전목적으로 쓰이는 시간을 뜻합니다. 나머지 시간 동안, 양수발전소는 핵전력을 소모하기 위해 하부저수지에서 상부저수지로 물을 끊임없이 퍼올리고 있으며, 상부저수지에서는 끊임없이 물을 흘려보내고 있습니다. 발전기를 돌리지 않고 그냥 흘려보냅니다. 이것도 어떤 측면에서는 가동이라고 할 수 있고, 환경단체들의 ‘너무 낮은 가동률’ 주장도 오해를 일으킬 만한 지점이 있기 때문에, 좀 더 자세히 설명하겠습니다. 태양광이 24시간 발전할 수 없듯이, 양수발전소도 24시간 가동할 수는 없습니다. 물을 퍼올리는 동시에 발전하는 건 말이 안 되니까요. 남는 전기를 소모(저장)하기 위해 물을 퍼올리는 시간이 당연히 감안되어야 합니다. 한수원에 따르면, 양수발전소를 풀로 가동한다면 하루에 6시간(25%)이 한계라고 합니다. 전국의 양수발전소는 하루 평균 2시간 30분 정도 가동하고 있습니다. 가동 가능 시간의 절반이 채 안되니, 태생적 한계를 감안하여도 여전히 낮은 가동률입니다. 저기요, 오타 아닐까요? 홍천 풍천리에 건설예정인 양수발전소의 ‘가동률’은 얼마나 될까요? 기절초풍할 정도로 낮습니다. 한수원의 홍천 양수발전소 승인 신청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연간 148.2MWh의 전력을 생산할 수 있으며”(양수건설 타당성조사 용역(홍천지점), 2022, 한국수력원자력). 이 수치는 2025년 청평양수발전소 발전량의 0.059%, 예천양수발전소의 0.014%에 불과하고, 600MW용량임을 감안해 계산하면 연간 14.82분 발전에 불과합니다. 강원생명평화기도회 박성률 목사가 이설도로건설로 엉망이 된 숲속을 안내하며 말했습니다. “보통사람이 메가와트가 얼마나 되는 건지 감이 안 오잖아요. 그래서 AI에게 신청서 분석을 부탁했지요. 그런데 AI가 뭐라고 했는지 아세요? 전력 생산량이 오타가 아니냐고 묻더라고요. GWh를 MWh로 잘못 쓴 거 아니냐고. 그래서 한수원에 전화를 걸었고, 담당자가 오타가 아니라고 확인해 주었어요.” 연간 14.82분. 오타가 아닙니다. 홍천 양수발전소 건설에 드는 비용은 1조 7천억. 이 돈을 들여서 양수발전소를 짓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가동률’이라는 단어를 치워버리고 기능의 비율로 보면 모든 것이 명쾌해집니다. 국내 양수발전소는 전기 쓰레기장 기능이 9할, 발전 기능이 1할이며, 홍천 양수발전소는 쓰레기장 기능이 백프로에 가깝습니다. 양수발전소를 더 짓는 이유는 전기가 더 필요해서가 아닙니다. 밤에도 낮에도 항상 초과되는 전기를 내다버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계속해서 초과될 전기를 기존의 양수발전소로는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더 많은 쓰레기장이 필요해진다는 겁니다. 전기 쓰레기장 만든다고 풍천리 할머니들이 50년 전에 심어 가꾼 잣나무 11만 2천 그루를 베어내고 잣수확으로 살아가는 동네 사람들 생계를 박살냅니다. 쫄쫄쫄 흐르는 시냇물을 3년 동안 받아쓴다고 합니다. 그러면 풍천리에는 개천에 물도 없겠네요? 100대 명품숲 유아숲체험장도 물에 잠깁니다. 욕이 나옵니다. "썩을 놈의 개새끼들. 나쁜 새끼들. 한수원 니가 뭔데? 어? 이래도 돼는 거야? 이러고도 니들이 멀쩡할 줄 알아? 천벌 받을 놈들." 나무들은 착해서 욕을 할 줄 모릅니다. 그래서 사람인 내가 대신 욕을 해줍니다. 사람이 말을 할줄 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어요? 말없는 나무들 대신 욕이라도 시원하게 한바가지 해달라고 목소리가 있는 것 아닌지. 풍천 주민들은 젊은 시절 손수 심어 가꾼 잣나무숲을 지키기 위해 7년 동안이나 싸웠습니다. 수몰되는 지역에 들어와 펜션 사업을 하던 이들에게는 보상절차가 진행되었고, 이설도로를 만드는 작업으로 나무들이 베어지고, 산이 파헤쳐졌습니다. 재선충에 감염된 소나무들을 실어와 불법적으로 방치하는 쓰레기장이 됐습니다. 댐 예정지 바깥에 살면서 평생을 잣숲에 기대어 살아온 주민들은 어떠한 보상도 받지 않고 투쟁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분들이 이만큼 싸워온 덕분에 이만큼 숲이 지켜졌지만,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요? 자본의 폭력은 무자비합니다. 사치품과 쓰레기 사이에서 쓰레기장에 버려야 할 정도로 많은 전기는 왜 생산하는 걸까요? 조절이 어려운 ‘안정적’ 전력공급원인 원전에 모든 탓을 돌릴 수도 있지만, 태양력도 통제 불가능한 초과 전기의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원전을 줄이지 않은 채 태양력만 늘어나고 있으니까요. 태양광과 풍력이 각광을 받자, 태초에 핵전기 쓰레기장으로 지어진 양수발전소는 신재생에너지의 배터리 역할로 홍보되었습니다. 그래도 태양광이 늘어나면 원전을 폐쇄하려나 했더니 웬걸, 신규 원전을 늘이겠다고 합니다. 양수발전소는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자연 방전되는 서랍 속 비상 배터리입니다. 부피가 어마어마한 이 배터리로 인해, 상당한 면적의 동식물 서식지와 인간 거주지가 사라지게 됩니다. 피크타임에도 항상 전기가 남아도는 판국에, 더 많은 비상 배터리가 정말로 필요한지 의문입니다. 집집마다 서랍에 비상 배터리 두세 개 갖추고 있는데, “예비 배터리는 생활에 필수”라며 나라에서 또 배터리를 선물해주겠다고 합니다. 기쁠까요? 집집마다 찬장에 안 쓰는 텀블러 여러 개 있습니다. 페트병 내다 버리는 건 일입니다. 넘치는 물건은 기능이 무엇이건, 새것이건 낡았건 관계없이 쓰레기입니다. 결국 쓰레기가 되는 물건을 자꾸 만들고 강매하는 이유는 뻔합니다. 누군가가 돈을 버는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발전소와 전력망과 배터리는 국가 예산을 끌어다 쓸 그럴싸한 명분이 됩니다. “전기는 국민 생활에 필수”라고 하지요. 지나친 전기 사용으로 공급이 끊길 수 있는 전력수요 피크 어쩌고 하며 겁을 줍니다. 나라에 필수적으로 가동되어야 하는 시설들은 존재합니다. 그런데 이 시설들은 필수이기 때문에 전기가 우선적으로 공급되며, 비상용 발전시설을 갖추고 있습니다. 소위 전력수요 피크를 세계종말만큼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옛날에 사람은 전기 없이도 살았고, 전기는 인간에게 사치품이지, 필수품이 아닙니다. 필수라고 홍보되는 많은 것들이, 사실 수요를 창출하기 위한 거짓말에 불과합니다. 전기 덕분에 감사하게도 사용할 수 있게 된 여러 사치품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치품들로 세상을 채우기 위해 모든 생명의 생존에 필수품인 숲을 없애도 될까요? 과유불급이라 하였습니다. 어쩌다 정전이 되어도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집집마다, 마을마다 대비하고, 어쩌다 모자랄 수도 있는 적당한 양의 전기를 생산하는 것이 365일 초과 전기를 생산하고 국토를 실리콘과 중금속의 쓰레기장으로 만드는 것보다 안전하고 현명한 길이 아닐까 합니다. 마지막 경고 한 세기 동안 화석연료는 탄소 배출로, 우라늄은 중성자 방출로 지구 온도를 높였습니다. 자동차와 냉장고와 에어컨이 생존필수품이 되고, 연소기관과 전자제품이 지구 온도를 더더욱 높이는 악순환이 영구적으로 정착되었죠. 전기가 충분하고 남는다는 결론이 나자마자, AI를 ‘미래먹거리’로 부각시키며 데이터센터의 전력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더 많은 원전과 송전선을 지어야 한다고 떠들어댑니다. 국가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고요. 중동에 전쟁이 일어나면, 핵으로라도 에너지를 확보해야 한다고 떠듭니다. 이 반이성의 미친 짓거리를 보면 저절로 외계인 음모론이 떠오릅니다. 아름답고 푸른 지구를 질투하는 외계인이 지구를 온통 실리콘과 중금속과 아스팔트와 방사능 쓰레기로 뒤덮고, 동식물과 인간을 멸망시키거나 노예로 만들기 위해 몇몇 인간의 뇌에 침투하여 영감과 정보와 미끼를 제공하고 있는 건 아닌지. AI는 경험의 멸종을 불러오고, 인간 개체들은 생각하는 능력과 기억력, 밝은 눈을 빠르게 상실하고 있습니다. 메가와트인지 기가와트인지 오타 확인도 AI가 담당할 판이죠. ‘모든 것의 외주화’가 이 시대의 좌우명입니다. 돈에 미친 이들의 거짓말에 속지 말고, 이성을 되찾아야 합니다. 숲은 태양의 에너지를 축적하고 저장하는 천연 배터리입니다. 인체 역시 전자기장을 발생시키는 발전소이며, 배터리이고, 모터입니다. 위대한 구루들은 인체를 둘러싼 전자기장을 활성화시키고 운용하는 법을 깨달으면, 음식을 먹지 않고도 살 수 있으며, 시간과 별들 사이를 오갈 수 있으며, 육체의 모습을 영원히 유지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모든 외주화된 것들, 모든 인공적인 것들은 본래 인간과 지구가 가지고 있는 능력이라고 타이가의 잣나무숲에 사는 아나스타시아는 말합니다. 모든 것의 외주화와 금권을 신봉하는 현대인들은 이런 종류의 지식을 미신이나 사이비로 치부하고 믿지 않으며, 신비주의는 히말라야 설표만큼이나 멸종위기입니다. 그러나 전기가 빛과 열을 발생시키고, 식물이 빛과 열을 흡수하여 저장하는 것은 현대의 ‘과학적’ 상식입니다. 온난화 현상으로 인류 생존이 위협받는 시대에, 우리가 먼저 지켜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일 년에 14.82분 가동되는 양수발전소일까요? 1800ha 잣나무숲일까요? 글쓴이 : 이해성 산청 책방 "지금부터 판타지" 이끄미, 지리산사람들 운영위원, 산청난개발대책위원
    • 기후위기
    2026-05-07
  • 벚꽃은 우릴 서럽게 한다
    벚꽃은 우릴 서럽게 한다 벚꽃은 올해도 아름답습니다. 한참 바라보았어요. 걸음을 멈추고 사진도 찍었어요. 개나리, 목련, 수선화, 산수유 다 한꺼번에 피었어요. 벌들은 혼란스럽겠지만, 풍경은 알록달록 별천지입니다. 저기 중동 땅에서는 전쟁 소식이 계속 밀려옵니다.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데도 나는 아무렇지 않게 아름다운 꽃들을 보고 있으니, 좀 민망합니다. 눈을 내리깔아요.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이에요. 아이 교복 빨고, 먼지 쓸고, 설거지하고, 냉장고 정리하고, 겨울 난 시금치 다듬고, 밥하고, 친정엄마랑 통화하고, 때 되면 돈도 벌고, 뭐 이러다 보면, 전쟁이니 기후위기니 머릿속에서 사라져요. 그러다 그렇게 일상을 아무렇지 않게 보내다가, 문득, 아주 잠깐, 생각이 납니다. 폭탄, 펑, 와르르. 그러면 또 잠시 멍해집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잠깐이에요. 나는 또 아무렇지 않게 일을 해요. 낮에 찍어 놓은 아름다운 꽃 사진을 천천히 넘겨 봐요. 세상은 아수라장인데 말이에요. 백석 시인의 시 수라가 떠오릅니다. 거미 새끼 하나 방바닥에 나린 것을 나는 아모 생각 없이 문밖으로 쓸어 버린다 / 차디찬 밤이다 어니젠가 새끼 거미 쓸려 나간 곳에 큰 거미가 왔다 / 나는 가슴이 짜릿한다 / 나는 또 큰 거미를 쓸어 문밖으로 버리며 / 찬 밖이라도 새끼 있는 데로 가라고 하며 서러워한다 이렇게 해서 아린 가슴이 싹기도 전이다 / 어데서 좁쌀 만한 알에서 가제 깨인 듯한 발이 채 서지도 못한 무척 적은 새끼 거미가 이번엔 큰 거미 없어진 곳으로 와서 아물거린다 / 나는 가슴이 메이는 듯하다 / 내 손에 오르기라도 하라고 나는 손을 내어 미나 분명히 울고불고할 이 작은 것은 나를 무서우이 달아나 버리며 나를 서럽게 한다 / 나는 이 작은 것을 고이 보드라운 종이에 받어 또 문밖으로 버리며 / 이것의 엄마와 누나나 형이 가까이 이것의 걱정을 하며 있다가 쉬이 만나기나 했으면 좋으련만 하고 슬퍼한다 -백석, 「수라(修羅)」 당장 전쟁을 막을 수 없을지라도 시 속의 화자는 추운 밤에 거미를 세 마리나 문밖으로 내보내요. 처음엔 아무 생각 없이 한 마리를 내보냈는데, 그다음으로 어미처럼 보이는 큰 거미가 나타났지 뭐예요. 자기가 아까 쓸어 내버린 거미의 어미인가 싶어 문밖으로 또 내보내요. 아까 그 새끼와 만나길 바라면서 말이죠. 죄책감을 느낀 것 같아요. 그런데 아뿔싸, 이번엔 아주 여린 새끼 거미가 나타났어요. 화자는 가슴이 메요. 밖이 춥지만, 그래도 가족 있는 곳이 좋겠다고 생각해 문밖으로 내보내려는데, 이 녀석이 자꾸 달아나요. 화자는 서러워해요. 결국 그 작고 여린 녀석을 종이에 받아 문밖으로 내버려요. 화자는 적극적으로 거미 가족을 따뜻한 방에서 살게 하지는 않았지만, 자기가 차디찬 밖으로 내버린 거미들을 생각하며 슬퍼해요. 우리가 적극적으로 전쟁을 멈추게 할 수는 없을지라도, 화자와 같은 심정으로 ‘가슴이 짜릿하고, 서럽고, 가슴이 메고, 슬퍼’하는 마음으로 전쟁이 멈추기를 바랄 수는 있을 것 같아요. 벚꽃을 보다가도, 돈을 벌다가도, 공부하다가도, 집안일을 하다가도, 잠시라도 멈춰서 ‘제발 전쟁이 멈추게 해 주세요.’ 하고 바랄 수 있어요. 그런 마음은 ‘제발, 지구 생명들이 더 사라지지 않게 해 주세요.’ 하고 비는 마음과 같을 거예요. 기후위기를 걱정하는 마음은 전쟁이 멈추길 바라는 마음과 연결될 테니까요.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는 살육과 착취가 사라지길 바라는 마음이겠지요. 우리는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보내고 있지만, 그럼에도, 잊지는 않으면 좋겠습니다. 전쟁이 멈추어야 한다는 마음,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마음, 죄 없는 생명이 죽어 나가는 이 지구 가열이 멈추길 바라는 마음, 이런 마음들을 꼭 붙들고 살면 좋겠습니다. 이 마음들이 모여 결국 전쟁을 막고, 독재자를 막고, 위법한 비상계엄을 막고, 일상의 폭력을 막을 수 있지 않겠어요? 적어도, 폭력배 무리와 한편이 되지 않겠다는, 그런 짓거리에 동조하지 않겠다는, 자기 선언은 할 수 있겠지요. 나는 나를 속이고, 그저 안도하는 걸까 그러나 때로는 이런 순간순간의 알아차림이, 고작 그것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고 헛웃음이 날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면 어느 소설 속 인물들, 예를 들면, 『몫』에 나오는 희영 같은 인물이 나와 내게 쏘아붙일 것만 같습니다. 나는 그런 사람이 되기 싫었어. 읽고 쓰는 것만으로 나는 어느 정도 내 몫을 했다, 하고 부채감 털어 버리고 사는 사람들 있잖아. 부정의를 비판하는 것만으로 자신이 정의롭다는 느낌을 얻고 영영 자신이 옳다는 생각만으로 사는 사람들. -최은영, 『몫』 나도 그런 사람인지 생각해 봅니다. 그저 읽고 쓰는 것만으로, 그저 순간순간 전쟁이 멈추길 바라는 기도를 올리는 것만으로, 그저 부정의를 비판하는 이들의 글에 좋아요를 누르는 것만으로, 마치 내가 내 몫을 다한 것처럼 안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렇게 휘청거리다가, 또 마음 한자리에서는 이런 생각이 올라옵니다. 시인 윤동주가 적극적으로 항일 투쟁에 앞장서지 않았더라도, 일제강점기 민족의 비극과 한을 제 몸에 담아 고뇌하고, 제 역할을 의심해 부끄러워하고 우리말 시를 써 온 그의 마음을 소극적이라고, 자기만족일 뿐이라고 깎아내릴 수 있겠는가 하는 물음말입니다. 날마다 하는 반성과 깨어 있음이야말로 나를, 그리고 서로를 붙들 힘이 되지 않는가, 또, 스스로 변질되지 않는 길이자, ‘자신이 옳다는 생각만으로 사는 사람’이 되지 않게 나를 닦을 수 있지 않겠는가…. 뭐, 이렇게 생각하면서 다시 종말을 늦출 이야기들에 귀를 기울이곤 합니다. 서러움과 부끄러움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다시 벚꽃을 봅니다. 여린 것에 몹쓸 짓을 한 것만 같아 느끼는 죄책감이나 고통받는 이들을 외면하여 드는 미안함과 부끄러움은 우리가 지금 이 아수라장 같은 세상에서 끝끝내 버리지 말아야 할 마음 조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런 마음을 잊지 않게 하는 것은 시 한 구절이기도 하고, 떨어지는 벚꽃잎 하나이기도 하고, 나를 사랑해 주는 한 사람이기도 하고, 학교에서 만나는 따뜻한 선생님의 손길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백석의 시 수라가 일제강점기 가족 공동체의 해체를 표현했다느니 어쩐다느니 하는 시 교육을 하고, 시험 문제로 내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국어 선생님들의 마음은 또 얼마나 서러울까요. 벚꽃이 나리는 계절에도 아름다움을 느낄 새 없이 시험 공부를 해야 하는 아이들의 마음은 어떨까요. 전쟁으로 사람이 죽는 일보다, 당장 내 주식이 떨어지는 것에 분노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어떻게 달랠 수 있을까요. 전쟁의 끔찍함과 아픔은 대체 언제 어떻게 전할 수 있을까요.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미국에도 깨어 있는 시민이 있어서, 트럼프의 전쟁을 비판하며 “노 킹”을 외치고, 전쟁에 참전하지 않겠다며 양심적 병역 거부를 신청하는 이들이 늘었다고 합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 권리 옹호를 위한 미국 시민단체인 ‘양심과 전쟁 센터’의 소장 마이크 프라이스너는 한 일간지 인터뷰에서 최근 양심적 병역 거부 문의가 무척 늘었는데, 전쟁에서 자신이 죽을까 봐 두렵다고 말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고, 모두 정당성이 없는 전쟁에서 ‘누군가를 죽이게 될까 봐’ 두려워했다고 말했습니다. 내가 누군가를 죽이게 될까 봐 드는 두려움, 그 두려운 마음이 모여 점점 커지면 좋겠습니다. 전쟁을 막는 마음은 큰 결단과 엄청난 선동에 의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날마다 느끼는 아주 작은 서러움과 서글픔과 부끄러움, 아픔, 슬픔, 두려움 같은 마음들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런 ‘서러운’ 마음을 잊지 않도록, 나 혼자만 잘 먹고 잘살면 된다는 생각에 빠지지 않도록, 나만 아니면 된다는 마음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그렇게 서로서로 붙잡을 수 있도록, 시 한 구절, 벚꽃 한 이파리, 사랑하는 이의 얼굴, 따뜻한 손길을 일상 사이사이에서 잊지 않아야겠습니다. 그리고, 생각해 봅니다. 선거철에 더러운 돈을 주고받는 사람들이 스스로 반성하지 못하는 세상에서는 전쟁이 멈추기 어렵다는 것을요. 전쟁은 마치 트럼프 같은 사람만 일으키는 것처럼 생각하지 않아야겠습니다. 내가 나날이 하는 선택들이 전쟁이 될 수 있음을, 부끄러움을 모르고 양심을 파는 일이 곧 전쟁의 씨앗임을 잊지 않아야겠습니다. 나치 군인들은 매일 1,000구가 넘는 유대인 시체를 불태우고, 집에 오면 착한 남편이자 아빠로서 가족에게 사랑이 담긴 편지를 썼다고 하지요. 아름다운 봄 사이사이 느끼는 서러움과 부끄러움이 우릴 구원하길 빌어 봅니다. 글쓴이 : 문홍현경 <자기 씨앗대로 산다> 지은이
    • 기후위기
    2026-04-09
  • 이미지로 소비되는 전쟁
    이미지로 소비되는 전쟁 "강자는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약자는 당해야 하는 것을 당한다" 투키디데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 2차 세계대전이 1차 세계대전과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지점은 바로 민간인 사망자다. 1차 세계대전은 전쟁 자체보다 스페인 독감으로 죽어간 사람이 더 많았다는 이야기가 돌 정도였다. 특히 1차 대전의 상징인 참호전은 비위생적이고 밀집된 환경 탓에 독감이 번지기에 최적의 조건이었고, 이는 군인과 민간인 모두에게 치명적이었다. 하지만 2차 대전은 양상이 달랐다. 군인보다 민간인이 더 많이 죽어갔다. 소련과 중국의 민간인 희생자만 합쳐도 3,000만 명에 이를 정도로 참혹했다. 유대인은 홀로코스트로 600만 명이 학살당했고, 그중 절반인 300만이 폴란드계 유대인이었다. 사실 600만이라는 숫자도 거대하지만, 일본군이 난징 대학살 등을 통해 죽인 중국인의 숫자는 이를 압도한다. 중국이 일본에 대해 강한 반감을 품는 데는 다 그만한 역사적 이유가 있는 셈이다. 2차 대전 중 한국인 사망자는 약 40만 명으로 추정된다. 한국은 전쟁 당사국으로 참가하지 않았지만, 일제강점기 아래 강제징용과 위안부로 끌려가 타지에서 수많은 사람이 희생당했다.결국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나라는 소련과 중국이다. 두 나라는 압도적인 인명 피해를 입었으며, 특히 민간인 희생자 비율이 매우 높았다. 이 데이터를 보면 몇 가지 특이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일본인 피해자가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점이다. 군인과 민간인을 합쳐도 300만 명 내외다. 이는 일본이 전쟁 초기 인명 소모가 큰 지상전보다는 비행기와 함선을 이용한 기술전을 펼쳤고, 섬나라라는 지리적 이점 덕에 본토가 전장이 되는 것을 피했기 때문이다. 일본 민간인 희생 대부분은 전쟁 막바지 미군의 대대적인 공습과 원폭 투하에 집중되어 있다. 그전까지 일본인들에게 전쟁은 라디오 속 이야기였을 뿐이다. 미국 역시 비슷하다. 미국의 민간인 사망자는 약 2,000명에 불과하다. 본토에서 죽은 사람은 진주만 공습 당시 60여 명과 일본이 편서풍에 실어 보낸 풍선폭탄으로 희생된 6명 정도가 전부다. 나머지는 대부분 상선 공격에 의한 사망자였다. 미국인들에게도 전쟁은 라디오와 TV로 시청하는 스펙터클이었다. 베트남 전쟁 이후 미국이 징병제에서 모병제로 전환하면서 전쟁은 더욱 멀어졌다. 입대하는 청년들이 대개 가난한 계층이다 보니, 중산층 이상의 대중에게 전쟁은 방송으로 관람하는 오락 게임처럼 변해버렸다. 수잔 손택이 지적했듯, 현대의 전쟁은 스크린 너머의 무감각한 이미지가 되었다. 권력이 설계한 무감각과 군수산업복합체 이러한 양상은 고대 아테네에서도 발견된다. 민회에서 말을 잘하는 소피스트들은 전쟁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시민들을 선동해 자신의 입지를 키웠다. 젊고 잘생긴 알키비아데스는 시칠리아의 풍요로움을 화려하게 묘사하며 정복의 영광을 약속했고, 그 웅변에 취한 아테네는 무모한 침공을 감행했다가 군 대부분이 궤멸하는 참사를 맞았다. 대학 시절 자주 접했던 '군수산업복합체'라는 개념은 단순히 경제적 비중을 넘어선다. 이는 전쟁을 일으켜 무기를 소비하고, 성능을 전시하며 새로운 무기를 판매하는 고도의 전략을 의미한다. 『미국 민중사』를 쓴 하워드 진은 미국인들이 전쟁 영상에 무감각해진 것은 우연이 아니라 권력이 의도한 결과라고 보았다. 본토가 안전하다는 지리적 행운과 지배층의 역사 조작이 결합하여, 시민들이 타국의 학살에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번 전쟁에서도 미국은 엄청난 양의 무기를 소비했고, 군수 업체들은 다시 무기를 생산할 막대한 기회를 얻었다. 전쟁이 일상화되면 전쟁 당사국이 아닌 나라들조차 '공포' 때문에 무기를 구입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오래전부터 무기 경쟁을 제로섬 게임이라 부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누군가 핵무기를 가지면 나도 가져야 하고, 상대가 50만 대군을 유지하면 나도 그에 맞춰 준비해야 한다. 서로 무기가 없다면 쓰지 않아도 될 자원이 끝없이 소비된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전쟁 억지력이 절실한 시대다. 인류 역사상 전쟁이 없던 날은 단 하루도 없었을지도 모른다. 호모 사피엔스는 사랑으로 평화를 추구하는 보노보보다는, 폭력으로 무리를 지배하는 침팬지에 더 가까운 존재인 것 같다.
    • 기후위기
    2026-04-09

기획 검색결과

  • [곰주옥 X 인간주옥] ⑥ 문수사를 나온 곰들, 무니와 수리 그리고 부기
    지금은 구례곰마루쉼터(이하 곰쉼터)에 있는 무니, 수리, 부기는 올해 4월 30일까지 문수사에서 살았다. 내가 이들을 처음 만난 건 2012년이었는데, 그 후로 문수사를 생각하면 곰들이 갇힌 철장이 먼저 떠올랐다. “2013년에 문수사 갔다가 갇혀 있는 곰을 보고 다시는 가지 않았습니다.” “사찰에서 철창에 갇힌 곰에게 줄 먹이를 팔다니요.”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계속 움직이는 거대한 곰의 모습에 눈물이 납니다.” “저희 아이도 오래전에 거기 곰들을 보고 너무 충격받아서 문수사 간판만 봐도 싫어합니다.” 문수사와 그곳에 사는 곰들에 대한 사람들의 댓글이다. 나 역시 문수사를 떠올리면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들었다. 그럼에도 1년에 한 번씩은 문수사에 올라가 곰들이 여전히 그렇게 살고 있는지 확인했다. 확인한다고 해도 내가 할 수 있는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우리의 질문에 매번 “그 곰들은 개인(문수사 주지)의 사유재산이라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올해는 지난 2월, 문수사 주변으로 올무 수거 활동에 갔다가 곰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여 문수사에 올라갔다. 여전히 철장 안에서, 여전히 왔다 갔다 하고, 여전히 돈을 내고 곰들에게 먹이를 주라는 안내판이 있었다. 여기에 더해 우리를 본 곰 한 마리가 철장에 머리를 부딪히며 소리를 지르는 충격적인 장면이 펼쳐졌다. 그 곰이 철장에 머리를 부딪힐 때마다 내 머리도 철장에 ‘쿵’ 부딪히는 통증이 전해졌다. 더는 그곳에 서 있을 수가 없어 일행들에게 내려가자고 이야기했다. 문수사에서 내려오면서, 가까이에 곰쉼터가 있는데 이 곰들은 왜 여전히 이곳에서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야 하는지 납득되지 않았다. ↑ 무니와 수리, 부기가 살던 문수사 철장(뜬장) 3월 초, ‘문수사 철장에 갇힌 곰들을 곰쉼터로 보내자’는 서명과 항의 전화를 요청하는 캠페인을 시작했다. 나 같은 생각을 하는 분들이 많았다. 서명은 100명에서 1천 명으로, 다시 2천 명, 3천 명으로 삽시간에 늘어났고, 항의 전화를 했다는 분들이 상황을 전해왔다. 결과적으로 문수사의 곰들은 곰쉼터로 옮겨졌다. 3월 초부터 활동을 시작했고, 곰들이 이주한 게 4월 30일이니 두 달 만에 묵은 숙제를 한 셈이다. 사람들이 함께 움직이고 실천하면 부조리한 일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한 일이었다. 무니, 수리, 부기는 4개월째 곰쉼터에서 살고 있다. 잘 살고 있겠지만, 어떻게 살고 있는지, 무더운 여름애 뭘 하며 지내는지 궁금하여 곰쉼터를 찾았다. 최신영 수의사는 무니, 수리, 부기라는 이름이 어떻게 붙여졌는지 말해줬다. “무니, 수리는 문수사에서 온 친구들이라 자연스럽게, 마지막 한 친구에게 ‘사니’라고 붙이려 하니 ‘사니?’ 이런 물음으로 들려 좀 이상해서요. 그런데 그 친구가 잘 걷지를 못하는 거예요. 걷는 모습이 거북이 같아서 ‘부기’라고 했습니다.”(2026년 8월 13일 최신영 수의사 면담) ↑ 곰쉼터로 옮겨진 후 건강을 회복한 부기 (사진제공 : 구례곰마루쉼터) 곰쉼터에 왔을 때 거북이처럼 걷던 부기는 많이 좋아졌다. 척추에 손상을 입었을 것으로 예상되어 압박이나 염증을 줄여주는 약물치료를 했고, 곰쉼터 바닥이 타일이라 미끄러우면 걷는 게 힘들 수 있으니까 청소 후에는 최대한 물기가 없도록 했다. 이제는 걷는 모습이 눈에 띄게 괜찮아졌다. 100% 완벽한 건 아니지만 다리를 질질 끌고 다니는 모습은 없다. 나는 문수사의 곰들이 ‘이사’, ‘이주’했다는 표현보다는 ‘옮겨졌다’는 말을 더 많이 쓴다. 문수사 곰들뿐 아니라 곰이 이곳에서 저곳으로 사람에 의해 이동하는 과정에는 마취를 하거나 포획틀을 사용하는 등 사람의 개입이 필요하다. 윤주옥: 문수사에서 여기는 무척 가깝잖아요. 그럼에도 여기까지 올 때, 마취를 할 수밖에 없는 거죠? 최신영: 네, 그렇습니다. 문수사 철장 안에서만 살았기 때문에 갑작스러운 이동이나 환경 변화에 예민할 수밖에 없어서요. 흥분한 상황에서 마취를 하지 않고 케이지로 이송한다면, 그 친구들에게는 공포스러울 수밖에 없거든요. 윤주옥: 더 좋은 환경으로 이동하는 거잖아요? 최신영: 친구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작은 공간에 갇혔다가 (넓어지고 깨끗해졌지만) 익숙한 환경이 아니기 때문에 흥분할 수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곰이 다칠 수 있고 또 사람도 다칠 수 있기 때문에 마취가 좀 더 안전한 거죠. (2026년 8월 13일 최신영 수의사와의 대화) 무니와 수리, 부기는 얼떨결에 옮겨졌지만, 다행히 잘 지내고 있다. 최신영 수의사는 문수사에서 매일 같이 많은 사람들을 만났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취에서 깨어났을 때 공격적이지 않았’고, ‘다른 친구들보다 빠른 시간 내에 적응을 잘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무지하게 더웠던 올여름은 어떻게 지냈을까? 지리산 자연에 사는 곰들은 계곡에서 지낼 수 있으니 어떻게든 여름을 보냈을 텐데, 털 많은 곰들에게 이 더위는 얼마나 힘든 시간이었을까? “각 방에 물 양동이를 하나씩 넣었어요. 물놀이를 좋아하는 친구들이 있거든요. 밖에 나가는 걸 좋아하던 친구들도 있었는데 햇빛이 강하니까 안 나가더라고요. 그래서 중간방사장 위쪽에 검은색 천막을 쳐줬고요. 또 방마다 선풍기를 설치하고, 과일을 얼려서 주기도 합니다. 여기 바닥이 타일이거든요. 타일이 시원하니까 최대한 몸을 펼치고 누워 있더라고요. 입추 지나면서 조금 시원해져서 다행이에요.” (2026년 8월 13일 최신영 수의사 면담) ↑ 물통에 몸을 담그고 더위를 식히는 무니 (사진제공 : 구례곰마루쉼터) ↑ 타일 바닥에 몸을 최대한 펼쳐 누워 쉬고 있는 수리 (사진제공 :구례곰마루쉼터) 최신영 수의사와의 대화 후에 무니와 수리, 부기를 만났다. 부기는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나를 봤고, 무니는 바닥에 누운 채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으며, 수리는 옆 방의 친구들이 궁금한 듯 눈과 귀가 옆 방을 향해 있었다. 최신영 수의사는 곰들을 ‘친구들’이라고 칭했고, 개별 곰에 대해 말할 때는 이름을 불렀다. ‘부기야, 뭐 하니?’, ‘무니, 많이 덥구나’ 이런 식이다. 곰들을 대하는 그의 말과 태도에서 곰을 향한 애정이 느껴졌다. 무니와 수리, 부기는 사람들의 관심과 참여 덕분에 좀 더 좋은 환경에서 살게 되었다. 최신영 수의사는 ‘계속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다’고 했다. 아직 사육농장에 남아 있는 곰들이 있고, 곰쉼터에서 살아가는 곰들도 사람들의 관심이 끊기면 지원이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곰들이 왜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 이곳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알고 기억하는 것. 그리고 계속 관심을 갖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시작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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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곰주옥X인간주옥
    2026-08-18
  • [안철환의 절기 이야기] 귀뚜라미 소리로 오는 입추
    12지지 중 음력 7월은 신申월로 가을의 시작입니다. 봄은 인(寅, 1월), 여름은 사(巳, 4월), 겨울은 해(亥, 10월)와 함께 해당 계절의 첫달이자 시작이지요. 여름의 끝달인 미未월 밑에서 열매와 이삭의 기운인 가을이 꼬물락 거리다 신월이 되어 이삭이 패고 열매가 영글어갑니다. 열매와 이삭 자체는 음 기운이지만 이삭이 패고 열매가 익어가는 형국은 양의 기운입니다. 그래서 신은 양금陽金으로 대표 동물을 원숭이로 배치했는데 이삭과 열매가 익어가는 양의 기운을 상징한 것 같습니다. 이 나무 저 나무 점프해 다니며 열매 따먹는 원숭이의 기운 보면 그럴 법도 하지요.보통은 음력 7월에 입추와 처서가 드는데 올해는 음력이 늦어 아직도 입추는 6월에 머물고 있습니다. 25일이 입추로 일진으로는 계축癸丑입니다. 전날의 일진은 임자壬子일로 물기운을 많이 담고 있어 조만간 폭염은 가실 것 같습니다. 다만 입추날이 여름의 끝인 6월 하순에 들어 가을이 금방 올 것 같지는 않네요. 적어도 말복인 다음 주까진 한 낮 폭염은 계속되다 음력 7월 15일 백중까지도 여전할 것 같습니다. 그러다 태풍이라도 들이닥치지 않을까 노파심이 드네요.어젠 입추답게 가을이 오는 걸 알리는 귀뚜라미가 울기 시작해 반가웠지만 소리에 힘은 별로더니 입추인 오늘 밤엔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네요. 작년엔 입추가 윤6월에 들어 올벼도 아닌 벼가 입추에 이삭을 패서 긴장을 했었습니다. 보름은 빠른 거였어요. 근데 대개는 이삭 패기 시작하면 정신없이 마구 패는데 몇 놈만 패곤 처서 즈음해서야 본격적으로 패는 걸 보고 윤달은 윤달이네 했었죠. 과도기라 뭔가 정상적이지 않은 일들이 생기거든요.올해는 서리 내리는 때를 알려주는 무궁화 꽃도 늦게 피고 음력 9월말 쯤 돼야 서리 내리는 상강도 9월 보름 전에 들어 이래저래 추위가 늦을 것 같네요. 벼도 처서 지나 좀 늦게 패지 않을까 싶구요.아무튼 입추는 입춘 입하 입동과 함께 해당 절기가 시작하는 입절기로 전 계절의 마지막 기운이 극성을 부릴 때 옵니다. 그러니까 그 절기가 시작되는 걸 체감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 중 특히 입추가 제일 극적입니다. 가을이 시작되는 입추가 지났는데 마지막 더위 말복이 들이닥치니 더 그렇지요. 액이 빠져나갈 때 꼬리로 뒤통수 치고 나간다는 말이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 같습니다. 춘분 지나 들이닥치는 꽃샘 추위와 비슷하죠.입추가 되어도 폭염이 여전해 요즘은 오후 5시 넘어서야 밭에 갑니다. 아내나 저나 새벽 1시쯤에나 잠이 드는 야행성 게으름뱅이라 새벽엔 못 가죠. 오후 느즈막이 가서 해질녁 시원해진 바람 쐬며 들어오는 게 참 좋거든요.대서 지나 물 뺀 논에 들어가 하는 피사리는 미안하게도 아내 몫입니다. 물 빼기 전에 해야 피사리가 덜 힘든데 요번엔 녹조가 생겨 부득이 물 빼고 하려니 힘이 더 듭니다. 온몸이 땀에 절은 모습 보고 걱정하는 내게 벼 그늘에 허리숙여 하니 덜 힘들다고 기염을 하니 안쓰럽기까지 합디다.들깨밭 제초와 북주기는 폭염 전에 마무리하고 봄 가뭄에 반밖에 올라오지 못한 생강밭 제초와 당근 심을 풀밭 다스려 파종도 끝냈으나 직파한 가지 고추밭 제초는 결국 폭염 속에서 끝냈습니다. 오후 5시여도 땀 뻘뻘 흘리며 하느라 넓지도 않은 밭 하는데 3일이나 걸렸네요.그래도 아내는 밭에 들어가면 수확을 먼저 합니다. 지주 세워주지 않은 토마토에서 숨은 보물 찾듯 열매를 수확하는 재미가 쏠쏠한 모양입니다. 작년에 쌓아둔 풀 더미 속 부엽토만 갖고 키운 토마토가 아주 싱그럽습니다. 병은커녕 열매가 아주 탱글탱글합니다. 폭염에 가물고 뜨거우면 칼슘 결핍이 일어나 열매가 갈라지거나 배꼽썩음병 같은 게 생기는데 이놈은 전혀 그럴 기세가 없네요. 넝쿨 속에 가려져 가뭄도 덜 타고 새도 열매를 쪼아놓질 못 하는 것 같습니다. 지주 세워 키우는 것보단 수량이 적겠으나 가성비 관점에서 이것저것 따지면 훨 나은 느낌입니다. 요즘 거의 매일 토마토를 먹고 있어 어째 수량도 더 많아보이더만요.토종오이와 수박 수확하는 재미도 참 쏠쏠합니다. 오이 모종을 수수 사이에 심어 수숫대 올라타는 놈보다 직파로 오이만 심어 바닥 기는 놈이 더 수확을 많이 하는 것도 재밌대요. 수수밭 오이는 깊이 뿌리내리는 수수와 경쟁할 일도 없고 햇빛 가릴만큼 수수를 밀식한 것도 아닌데 해석이 잘 안됩니다. 수숫대 타느라 넝쿨손 키우는 데 힘 써서 그런가 싶기도 한데 어쨌든 오줌을 더 주어도 별반 차이가 없네요. 수숫대가 통풍을 방해해 매개충이 적은가 싶은 의구심만 갖고 더 지켜볼 요량입니다.토종수박은 그야말로 자급농사만 주는 기쁨이 진짜 쏠쏠합니다. 잘 해야 애 머리정도밖에 크질 않고 익은 거 고르기가 쉽지 않아 냉장고에 이삼일 숙성시키고 먹는데요, 단맛은 덜하나 수박향이 끝내줍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감동은 수박속껍질 나물입니다. 오이노각 나물처럼 해먹는데 수박향 때문에 맛이 더 끝내주죠. 옛날 농서에도 덜익은 수박은 나물 해먹으면 좋다고 했는데요,이게 바로 자급농사만이 즐길 수 있는 혜택입니다. 토종수박을 비롯해 토종과일들은 저장성이 떨어져 오래 못갑니다. 그래서 사라진 것들도 많아요. 대표적인 게 해남물고구마와 소사(부천)물복숭아입니다. 먹으면 꿀물 같은 게 입안 가득할 정도로 과즙이 끝내주는데 그 때문에 저장성이 떨어져 시장에서 외면받은 거죠.그런데 저장성이 좋아 두고두고 먹는 게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그 자리에서 뚝 따먹는 게 최고죠. 토종수박도 바로 따 그 자리에서 속도 먹고 껍질은 나물 해먹어야 하니 시장에 낼 수도 없어 소비자는 먹어볼 기회가 없습니다. 자급 농부만이 즐길 수 있는 먹거리인겁니다.한번은 토종씨앗 수집하러 갔다가 텃밭에서 참외 수확하는 할아버지를 만나 얻어 먹어 본 참외맛에 모두들 놀라고 만 적이 있었어요. 생긴 건 개량참외와 똑 같은데 시장에 내다 팔진 못하고 당신과 식구들 먹을 요량으로만 한답니다."팔면 인기 있을 것 같은데요?"했더니"냉장고에 넣어도 하루 지나면 삭아버리는 걸 어떻게 팔아요?" 하시네요.생각해보면 과일이란 게 사람 먹으라고 맺혀진 게 아니잖아요. 빨리 삭아 번식하기 위한 게 목적이니 그럴 것 같습니다. 유통하기 좋으라고 저장성이 좋은 건 자연스런 건 아닐겁니다.늦게 심은 토종참외도 이제 열매맺기 시작하니 참외 얘긴 다음에 해야겠습니다.입추는 입추인가 봅니다. 기온은 별 차이가 없는데 대문 기둥이 덜 달구어져 있고요, 그늘의 시원한 보도블럭만 찾던 삽살개가 입추 하루 지났는데 흙바닥 찾아 드러누워있네요. 입추 전날부터 울던 귀뚜라미가 다시 뜨거워진 입추 다음날엔 찍 소리 하나 내지 않다 입추 이틀 지나자 뭔가 선선한 기운이 감도는 것 같더니 오늘 밤부터는 새로 울기 시작하더만요. 힘없이 울던 입추 전날보단 확실히 소리에 힘 들어가 있어 가을이 오는 건 시간문제만 남은 듯 하더이다. 글을 쓴 안철환 선생은 온순환협동조합, 전통농업연구소 대표이고 경기도 안산에서 ‘산림생태텃밭 먹거리숲 농장’을 운영한다. 남은 음식물과 똥오줌, 커피 찌꺼기를 받아 직접 거름 만들기를 실천하고 있으며, 우리 토종 종자와 전통 농업 살리기에 열중하고 있다. 25년 전, 처음으로 심은 배추 씨가 3일 만에 싹 트는 걸 보고 ‘씨 안에 누가 있었구나!’ 깨닫고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우리가 먹는 배추는 단순히 물질적인 먹을거리가 아니라 나와 별 차이 없는 생명이며, 그래서 먹는다는 것은 생명을 먹고, 생명과 소통하고, 생명과 하나 되는 일이라고 믿는다. 쓴 책으로 《시골똥 서울똥》(2009), 《24절기와 농부의 달력》(2011), 《호미 한자루 농법》(2016), 《토종농법의 시작》(2020)이 있고, 옮긴 책으로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2004)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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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절기이야기
    2026-08-09
  • [안철환의 절기 이야기] 무더위의 한복판, 대서
    하지 전후로 달궈진 복사열의 정점이자 복더위의 정점은 대서와 중복입니다.장마 끝무렵이자 무 더위 한복판이기도 하죠. 가끔 마른장마가 오기도 하지만 덥고 습한 무더위는 피할 수가 없어요. 동남아시아 몬순기후 지대의 특성입니다. 건기 우기로 나누는 적도 근방 열대지역도 여름인 우기에 습하고 무더운 건 비슷하죠. 반면 지중해와 유럽, 중동의 사막지대 들은 건조하고 뜨거운 여름이 옵니다. 그 밖의 아열대 고원지대와 초원지대도 비슷하죠. 덥고 습한 우리의 장마철은 만물이 극성장하고 풀도 우거져 농부에겐 아주 바쁜 농번기입니다. 우리는 춥고 건조한 겨울에 만물이 겨울잠에 들어가니 비로소 농부도 쉬어가는 농한기에 들어갑니다. 봄이 새 학기인 이유고, 유럽에선 가물고 뜨거워 작물이 자랄 수 없는 여름이 농한기라 가을이 새 학기가 되는 이유입니다. 날씨에 따라 농사도 다르고 문화도 다른 이치예요. 무더운 장마철은 물과 불이 치열하게 싸우는 현장입니다. 물이 이기면 홍수가 나고 불이 이기면 폭염과 가뭄이 듭니다. 그렇지만 이런 경우는 극단적인 거구요, 대개는 물과 불이 만나는 곳에 생명이 깃듭니다. 장마철은 물과 불의 격렬한 싸움만큼 만물의 성장에너지도 격렬하지요. 암튼 어찌 되었든 물과 불이 만나는 곳에 생명이 깃드는 것은 왜 그럴까요? 물과 불이 만나기만 하면 다 그럴까요? 아닙니다. 경우에 따라 좀 다릅니다. 가장 좋은 만남은 올라가려는 물과 내려오려는 불이 만날 때입니다. 그래야 순환이 작동해 생명이 깃들 수 있거든요. 그걸 표현한 게 태극마크입니다. 불은 양(붉은색)이라 위에 있고 물은 음(파란색)이라 아래에 있지만 불의 머리는 아래를 향하고 물의 머리는 위를 향하고 있죠. 그렇게 해서 물과 불은 지속해서 순환하며 생명을 창조하는 겁니다. 원래 물은 내려가려 하고 불은 올라가려 하지만 그러면 잘 만나지지도 않거니와 만나면 큰 싸움이 일어납니다. 그게 장마철이고 태풍이지요. 아니면 폭염과 가뭄이고요. 그러나 이게 다 나쁜 건 아닙니다. 망가진 순환 시스템을 고치고자 애쓰는 홍역일 수 있어요. 요즘의 기후변화도 그런 것일 수 있다고 봅니다. 물론 홍역 이후 더 나빠질 수도 있고 좋아질 수도 있어요. 인간의 노력에 따라 달라지겠지만요. 물과 불이 만나는 곳 중 재밌는 곳이 부엌과 밭입니다. 먼저 부엌 얘길 해볼까요. 옛날엔 집에도 신이 있다고 했어요. 그중 부엌신이 원래는 최고였지요. 나중에 성주신이 들어와 최고 자리를 차지했지만요. 신이 진짜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지금 집에 25년 살고 있는데 어쩌다 해외여행 나갔다가 집에 뭔가를 두고 온 느낌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무슨 물건 같은 건 아니고요, 굳이 말하면 나를 받쳐주는 무언가였어요. 여독에 감기 걸려 호텔에 누워 있을 때 강하게 느꼈죠. 그때는 그냥 집에 두고 온 또 다른 내 흔적이거나 타지에서 힘들 때 생기는 향수병 정도로 생각하고 말았어요. 그런데 만일 붙박이 생활이 강했던 옛날처럼 몇백 년을 조상 대대로 한 집에 살아 조상들의 흔적이 겹겹이 쌓였다면 그걸 신이라 표현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조상뿐이겠습니까? 함께 살면서 쌓인 생명들의 흔적까지 생각하면 그럴 법도 할 것 같습니다. 그중 부엌신, 부뚜막신, 조왕신은 물과 불의 조화로 생명의 먹을거리를 만들어 주었으니 최고의 신이자 어머니 신이었어요. 어머니는 새벽에 일어나 깨끗한 정화수 한 사발을 떠와 아궁이 위에 정갈하게 걸어둔 선반 위에 얹어놓고 조왕신께 빌고 나서 아궁이에 불을 붙여 밥을 짓습니다. 물과 불의 위치가 바뀐 것 같지만 올라가는 불의 기운을 내려가는 정화수의 기운으로 눌러주어 밥을 태우지 않고 잘 익게 해달라 했을 겁니다. 이런 정성으로 온 식구의 먹을거리를 지었으니 그 밥은 사랑과 정성, 나아가 신이 깃든 생명의 음식이었던 겁니다. 제가 급식과 매식을 비판하고 도시락과 집밥을 살려야 된다고 주장하는 근거입니다. 사랑과 정성과 신이 깃들지 않은 음식을 먹고 자란 아이들을 생각하면 참으로 안쓰럽지 않을 수 없어요. 소아당뇨, 비만, 알러지, 각종 소아 대사질환, 그리고 옛날엔 보기 힘들었던 우울증, 신경발달장애 들까지 생각하면 원인이야 복합적이겠으나 신이 결핍된 먹을거리 문화의 영향이 적지 않을 거라 봅니다. 그럼 밭에선 어떻게 물과 불을 만나게 해야 할까요? 먼저 말하고 싶은 건, 논에선 물을 잘 가둬두는 게 중요한 반면 밭에선 물을 잘 흘러가게끔 하는 게 중요하다는 겁니다. 논은 보수, 밭은 배수가 중요한 거죠. 배수를 강조하니 물이 필요없다고 오해하진 마세요. 물이 머물지 않고 흐르는 겁니다. 강물처럼 마냥 흐르는 게 아니라 저수지처럼 마를 때는 가둬두고 습할 때는 배출하는 거죠. 토양의 삼상구조라 해서 흙의 기본은 흙알갱이인 고상이 반이고 나머지 반을 액상과 기상이 반반씩 차지하면서 가물 때와 습할 때에 따라 들쑥날쑥 저수지 기능을 합니다. 그리고 흙알갱이 벽면에 유기물이 5% 정도 코팅되어 있는데 비중은 적지만 흙의 삼상구조를 만들고 떠받치는 주역입니다. 땅심이라고도 하고 지력이라고도 하는 게 이 유기물을 표현하는 거고 이게 잘 있어야 흙의 저수지 기능이 작동해서 물이 흐르는 거지요. 그런데 이런 땅심의 모습은 내면적인 거구요, 배수가 잘되는 외형적인 밭의 모습은 어떨까요? 가장 중요한 관건은 도랑입니다. 물을 잘 빠지게 하는 배수로이죠. 배수로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요, 가장 큰 거는 밭 둘레의 도랑입니다. 밭의 경사와 방향에 따라 다르지만 어쨌든 가장 근본이 되는 도랑이죠. 대동맥쯤 될 겁니다. 경사가 높은 쪽에서 장마 때 물이 쏟아진다면 도랑을 두 개는 파야 합니다. 이 도랑은 이웃과 경계가 되기도 해서 소홀하기 쉬워 방치하면 병해충의 숙주공간이 되고 잡초의 온상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니 바람과 물이 잘 통하도록 관리해 주어야겠지요. 다음으론 본 밭에는 도랑보다 작은 고랑들을 만드는데요, 농부가 드나드는 길이기도 합니다. 때론 밭둑이 될 수도 있어요. 이 공간이 아까워 작게 했다간 낭패 보기 십상입니다. 저도 초보 때 아까운 마음에 엉덩이도 돌리기 힘들 만큼 좁게 했다가 들락거리기 힘드니 역효과만 본 적이 있어요. 이 길은 통풍 배수에도 좋지만 작물에게도 여유 공간이 되어 줍니다. 밭 둘레보다 깊어선 안 되는 건 당연하겠죠. 그렇게 했다간 물이 빠지지 않고 고일 테니까요. 그다음 중요한 고랑은 두둑과 두둑 사이입니다. 물론 길도 되지요. 다만 융통성이 있어 해마다 바뀔 수가 있습니다. 작물을 돌려 심고(윤작), 섞어 심기(혼작)를 바꿀 때마다 달라질 수 있는 거거든요. 한 줄로 심은 작물 수확 후 두 줄로 심을 작물을 심는다면 달라지는 게 그려지죠? 이 고랑은 당연히 앞의 길로 쓰는 고랑보다 깊으면 안 됩니다. 마지막 고랑은 씨나 모종을 심는 곳입니다. 호미든 괭이든 줄뿌림할 때 골을 내고 심고는 골을 살려둡니다. 그러면 작물과 작물 사이는 두둑이 되겠죠. 그러다 작물이 자라고 두둑에도 풀이 올라오면 두둑을 뒤집어 작물에 북주기를 합니다. 그걸 한 번 내지는 두 번에 걸쳐서 하고 나면 작물은 두둑 위로 올라가고 작물 사이의 두둑은 고랑으로 바뀌게 되는 거예요. 이를 견종법이라 합니다. 고랑(견畎)에 심는다는 뜻이고 밭의 모양이 바뀐다 해서 대전(代田)법이라고도 하고 우리말로는 헛골농법이라 합니다. 골이 곧 없어지니 그렇게 이르는 것 같습니다. 저는 사인곡선이 코사인곡선으로 단면이 바뀐다 해서 사인코사인 농법이라 붙여 봤는데 다들 웃고 말대요. 암튼 이 방법은 두둑을 덮는 비닐멀칭으로 사라지고 말았지만, 제초와 북주기를 동시에 하는 첨단 농법이었어요. 게다가 작물이 어릴 때는 마르면 안 되니 골에 심고, 어느 정도 자라선 통풍이 중요하니 두둑 위로 올라가게 하는 거란 말이에요. 그것도 한방에 해결하니 얼마나 지혜로운 방법이에요? 밭이 크면 소 쟁기를 이용하는데 두둑 없애며 북주기를 할 때는 쟁기날이 쇠가 아닌 나무로 되어 있고요, 두둑을 뒤집지 않고 좌우로 훑어주기만 해서 훌치기라고도 합니다. 소 주둥이에는 작물을 못 먹게 입마개를 씌우지만, 잘 훈련된 소는 필요 없었답니다. 재밌죠? 어쨌든 이 헛골도 두둑과 두둑 사이의 골보다 깊으면 안 됩니다. 이렇게 우리 조상들은 밭에도 물길과 바람길(온화한 불의 길?)을 잘 만들었습니다. 임원경제지를 쓰신 서유구 선생은 이렇게 밭을 만들면 밭이 저수지 같은 노릇을 해, 가물 때는 습기를 내어주고(또는 물을 가둬두고), 습할 때는 물을 빼주어 농부는 또다른 수자원 관리인이라 했으니 큰 물길 잡아주는 것 못지않은 치수정책이었던 겁니다. 황하의 본류를 잡으려다 실패한 우왕의 아버지와 다르게, 황하의 지류를 잡아 치수에 성공해 왕이 된 우왕과 다르게, 본류 지류가 아닌 물의 모세혈관을 다스리는 일이니 더 근본 방책 아니었겠어요? 기후변화로 언제 들이닥칠지 모를 대가뭄을 생각하면 귀 기울여볼 만한 지혜이겠습니다. 방금 말한 도랑과 두둑 및 밭 전체 배수로와 견종법은 다음 그림을 참조해보세요. 통풍 배수가 잘 돼 작물이 건강하고 제초를 따로 하지 않고 한번에 하니 일석이조가 됩니다. 고랑 별 깊이를 잘 조절하고, 작물은 헛골에 심었다가 나중에 북주기 하면 작물은 두둑 위로 올라가고 작물 사이는 골이 되어 통풍과 배수가 잘 되니 건강하게 자랍니다. ** 대문사진 : 대서 되니 벼가 확실하게 그늘을 드리워 풀이 들어올 엄두를 못낼 때 물을 뺍니다. 처서 지나 이삭 패면 다시 물을 넣어주는데 적셔주는 정도로만 줍니다. 글을 쓴 안철환 선생은 온순환협동조합, 전통농업연구소 대표이고 경기도 안산에서 ‘산림생태텃밭 먹거리숲 농장’을 운영한다. 남은 음식물과 똥오줌, 커피 찌꺼기를 받아 직접 거름 만들기를 실천하고 있으며, 우리 토종 종자와 전통 농업 살리기에 열중하고 있다. 25년 전, 처음으로 심은 배추 씨가 3일 만에 싹 트는 걸 보고 ‘씨 안에 누가 있었구나!’ 깨닫고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우리가 먹는 배추는 단순히 물질적인 먹을거리가 아니라 나와 별 차이 없는 생명이며, 그래서 먹는다는 것은 생명을 먹고, 생명과 소통하고, 생명과 하나 되는 일이라고 믿는다. 쓴 책으로 《시골똥 서울똥》(2009), 《24절기와 농부의 달력》(2011), 《호미 한자루 농법》(2016), 《토종농법의 시작》(2020)이 있고, 옮긴 책으로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2004)이 있다.
    • 기획
    • 절기이야기
    2026-07-27
  • 항쟁의 심장
    항쟁의 심장(10.1대구항쟁) /160X130cm/콘테/2024 나는 나름 작품으로 철학적 구축을 다져나가는 중이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할아버지의 흔적을 2017년 인터넷에서 순천경찰서기록으로 발견한다. 서울경기에서 작품 활동을 하며 약 15년간 할아버지 흔적을 찾아다녔는데 못 찾고 여수로 귀향한 지 2년 만에 기록을 찾은 것이다. 그 기록은 매우 건조했다. - 활동유형: 좌익활동(우익,좌익,좌익활동) - 장소: 광천 다리 밑 - 사망유형: 총살 순천경찰서의 이 기록은 그동안 우리 가족의 괴롭고 어둡던 모든 것이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분노와 슬픔으로 그동안 그려왔던 모든 것을 버리고 여순항쟁 작품에 몸을 던진 계기가 되었다. 기록을 발견하고 일주일간 잠도 잘 못 자고 먹지도 못하며 생각했던 것은, 첫째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에게 역사적 진실을 알리자, 둘째 작품에서 지형이나 복장 무기 등은 철저히 고증하자, 셋째 피나 잔인한 장면을 서정적인 슬픔으로 승화하자(많은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 이렇게 시작한 작품들이 방대한 여순항쟁 역사에 미미하지만 조금씩 다가가고 있다. 나는 지금도 여순에 살고 있다. 여순항쟁은 대구항쟁과 제주4.3항쟁과 그 결을 같이 한다. 그래서 여순의 기원을 그려 보기로 했다. 해방이 지난 1년 후 1946년 10월1일 미군정은 친일 관리를 등용하고 토지개혁을 지연하며 식량 공출 정책을 강압적으로 시행한다. 쌀값은 폭등해서 식량난으로 굶어 죽는 사람들이 생겼다. 또한 콜레라가 창궐했는데 어린이들은 의약품이 없어 죽어가고 있는 심각한 상황이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대구시민들은 "쌀을 달라! 생필품을 달라! 어린이를 치료할 의약품을 달라! 친일경찰 물러나라!" 외치며 차라리 길에서 죽겠다는 각오로 거리로 나온다. 10월1일 대구부청 앞에서 기아 대책을 세우라는 시위 도중 민간인 황말용, 김종태 2명의 노동자가 경찰의 발포로 사망하게 된다. 다음 날 민간인 2명이 사망했다는 소식으로 대구의 굶주린 일반시민들, 노동자, 학생들까지도 시위에 합세하게 된다. 만여 명의 시민들은 대구경찰서를 포위했고 결국 경찰들은 무장해제를 한다. 대구 시민들은 질서를 지키며 경찰권을 인수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동안 참아왔던 분노로 민중들은 거리 한쪽에서 경찰과 투석전을 벌였다. 위 작품은 분노한 대구민중들이 돌을 들기 직전을 작품화한 것이다. 이후 몰리고 있던 경찰들은 발포를 해서 24명의 시민들이 사망한다. 이를 기점으로 대구항쟁은 영남일대로 번지고 나중 제주4.3항쟁, 여순항쟁까지 항쟁의 불꽃은 전국적으로 이어졌다. 대구시는 '10월 항쟁'이란 명칭을 공식적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지난 2016년 대구시가 '대구 10월 항쟁 등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위령사업 지원 등에 관한 조례'를 마련한 것이다. 이전에는 주로 '대구 10월 사건', '대구 10·1 사건' 등으로 불렸다. 일각에서는 폭동, 소요사태 등 부정적인 단어가 쓰이기도 했다. 지금도 극렬 유튜버들은 이런 용어들을 사용하며 대구항쟁의 정신을 훼손시키고 있다. <지리산人>에서 박금만 작가의 '여순그림이야기' 연재를 시작합니다. 여순항쟁을 담아 사실적인 역사화를 그려 오고 있는 박금만 작가의 이번 칼럼을 통해, 여순항쟁(여순10.19항쟁)의 역사와 아픔 나아가 항쟁에 함께한 민중들의 삶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지리산人> 드림 박금만 작가는, 여수에서 나고 자라 세종대학교 미술학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서울과 고흥, 부산과 여수 등의 개인전 및 초대전에 참여했고, 아트페어를 비롯한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작품 소장처로는 전남도립미술관, 광주시립미술관 등이 있다.
    • 기획
    • 여순그림이야기
    2026-07-24
  • [뒤웅박 씻나락] "우리가 의료사협을 시작하게 된 이야기" 김명철
    우리가 의료사협을 시작하게 된 이야기 김명철 (경남산청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사진: Unsplash의 Shane Rounce 무엇보다 내가 행복하게 살고 싶었습니다. 그러려면 제 주변 사람들도 같이 행복해야 한다고 생각했고요. 그래서 젊은 시절부터 이야기해 오던 공동체를 느슨하게라도 실현하고 싶었습니다. 만드는 게 힘이 들긴 하지만 어느 정도 형성이 되고 나면 (마치 합창처럼) 거기서 느껴지는 ‘같이하는’ 것에 대한 행복감을 맛보고 싶었던 거죠, 시작은 안솔기마을이라는 생태마을에서 했습니다. 같이 음악회도 하고 소풍도 가고 운동회도 하고.... 그러다 마을이 너무 작아 같이 하는 것에 불편해하는 분들을 봤고 그러면서 안 하고 싶은 자유가 굉장히 중요하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주변의 마을들과 합창제도 해 보고 같이 운동회도 하고 했는데 이것도 역시 쉽지는 않더군요. 그러면서 규모가 좀 커야 개인의 자유도 보장하고 좀 더 다양한 일을 할 수 있겠다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러다 12년 전 산청에 한방 엑스포가 열린다길래 군민들을 대상으로 건강 강좌를 매달 마지막 수요일에 (마수걸이)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하니 자발적으로 도와주는 분들이 있어서 운영위를 만들었고 그 운영위 중 한 분이 구례 콩장을 다녀와서는 우리도 플리 & 프리마켓을 하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저도 그게 너무 좋겠다 싶어 동의했고, 그 길로 바로 주변 사람들에게 연락해서 모임을 열고 그 해에 목화장터라는 마켓을 시작했습니다. 제 생각엔 이 마켓이 생기면 촌에서 흩어져 살고 있는 사람들이 한 번씩 모여 안부도 묻고 정보도 나누고, 재미난 공연으로 문화적 갈증을 해소하고 음악적 재능이 있는 분들에겐 그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장소 제공도 되고, 또 혼자 먹기에는 많고 시장에 내다 팔기에는 어중간한 분들의 판매처도 되고, 직접 만든 공예품이나 옷 같은 것을 팔 수도 있고, 버리기에는 아까운 물건들을 팔거나 나눔도 할 수 있을 것 같아 적극적으로 찬성을 했죠. 그리고 무엇보다 제가 기대를 했던 건 맥주나 막걸리를 같이 마시면서 소통을 하다가 집으로 갈 때는 장 본 것을 들고 가는 독일의 어느 장터를 우리도 했으면 하는 것이었죠. 그렇게 장터를 주변 사람들과 같이 열고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일들이 일어났고 재미도 있었습니다. 우리 온라인 커뮤니티(밴드) 회원이 많아지다 보니(현재 5,075명) 모임을 만드는 것이 쉬워져 합창단, 지속가능발전협의회 등 원하는 많은 일들을 할 수 있게 되었죠. 그리고 이 장터의 힘으로 만들어진 지속넷(지속가능발전네트웍)에서 주최한 100인 원탁회의에서 의료사협(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을 만들자는 제안을 했었고 많은 분의 도움으로 이 일도 진행이 되었죠. 사실 의료사협을 만들자고 했을 때 제 개인적으로는 사회적 약자를 돕고 느슨한 공동체를 형성하고 싶어서였는데 만들고 보니 정말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할 수 있는 일들이 많더군요. 시작할 때의 슬로건은 ‘함께 만드는 건강, 더불어 행복한 삶, 지속 가능한 공동체’였는데 한의원이 그런대로 안정적으로 운영되니 지역에서 일어나는 필요한 곳에 도움을 줄 수도 있게 되었고 성심원 내에 장애와 비장애, 남녀노소를 아우르는 공동체를 만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고(실제로 시작을 한 상태이긴 합니다) 제대로 된 요양원이나 호스피스 병동을 포함한 힐링센터를 만들 수도 있겠단 꿈을 꾸기도 하고요. 그리고 즐거운 일들은 같이 나누고 힘든 일은 같이 돕는 이런 일들을 어느 정도 실현 하고 있는 것 같아서 좋습니다. 실제로 목화장터에 도움을 주기도 하고 지속넷과도 같이 협력하며 도와 주기도 하고 지역의 ‘그늘과 언덕’이라는 곳과도 같이 힘을 모아 작년의 수해복구와 피해자들의 몸과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일도 했고요. 이런 일들을 의료사협이라는 곳의 조직력과 (미미하지만) 재정적인 여유로 같이 행복한 공동체를 만드는 데 역할을 하는 것 같아 좋습니다. 지금은 재택의료센터도 만들어 열심히 방문 진료를 하는 중이고 가정의학과도 열어서 한방적으로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좋은 의사 선생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국가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아서 통합돌봄을 실천 중이기도 하고요. 이렇게 어쩌면 정신없을 정도로 짧은 시간에 많은 일들을 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주변 사람들이 좋은 강좌나 지역 소모임을 통해 아프기 전에 건강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또 혹시 아프면 믿을 수 있는 의료진과 주변의 도움으로 나을 수 있도록 하며, 설령 잘 낫지 않아 사망하게 되더라도 주변의 배웅과 도움을 받으며 존엄하고 평안하게 갈 수 있는 곳을 만들고 싶습니다. 물론 이런 일들이 다 실행이 안 될 수도 있겠지만 ‘가다가 중지하면 간만큼 이익이다.’란 생각으로 ‘오늘도 어떻게 하면 같이 행복해질 수 있을까?’란 생각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글쓴이 : 김명철 _경남산청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경남산청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홈페이지 https://gscmedc.org 사무국 055-973-0407 경남 산청군 산청읍 산청대로 1381번길 17 *산청 주민이 아니어도 조합원으로 가입하실 수 있습니다. 사무국으로 문의해주세요. [뒤웅박 씻나락 칼럼] 지리산 자락 삶이 우리 사회의 대안적 삶의 모습이 되길 꿈꾸는 <지리산人>의 바람을 담아, 지리산 곳곳에 계신 씨앗 같은 이들의 삶과 생각을 싣고자 합니다. 칼럼 글쓴이의 일부 주장이 <지리산人>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기획
    • 뒤웅박 씻나락
    2026-07-20
  • [안철환의 절기 이야기] 초복과 가까운 소서
    12지지로 6월은 미(未, 양)월로 양의 달입니다. 미월은 3월의 진(辰, 용)월과 9월의 술(戌, 개)월, 12월의 축(丑, 소)월과 함께 오행 중 토(土)에 해당하는 것으로 다음 계절로 넘어가는 과도기인데요. 이럴 때는 꼭 비나 눈이 옵니다. 그런 점에서 6월이 장마철인 건 가을을 준비하는 과도기인 셈이죠. 해가 가장 높은 하지에 달궈진 복사열로 미월이 가장 무덥지만 속으론 가을을 준비하는 겁니다. 그래서 미월은 음양 중에 음에 해당합니다. 여기서 가을은 이삭과 열매를 뜻하고 준비한다는 건 이삭과 열매의 근원인 암꽃 수꽃, 곧 성별의 근원이 잉태되는 것입니다. 사춘기 같은 것이죠. 그래서 음입니다. 음 중에도 동물의 양처럼 온순하면서 부드럽되 다산의 기운을 가지고 있어요. 벼를 비롯한 곡식들이 대부분 단일성, 곧 해가 짧아지고 일조량이 적어지면 꽃을 피우는 것도 음의 기운이 작용한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일거에 많은 이삭과 열매 맺는 걸 보고 다산의 상징인 양의 기운을 닮았다 했겠지요. 보통 음력 6월엔 소서 대서라는 절기가 들지만, 소서는 5월에 들 때도 있는데 올해가 그렇습니다. 장마의 기운인 소서가 일찍 오니 장마도 일찍 오겠으나 복사열이 충분히 달궈지지 않았으니, 장마가 심하지는 않을 것 같았습니다. 보통 하지 지나 일주일 안에 장마가 시작되지만 이번엔 하지 전 이틀동안 장마비처럼 비 내린 후로 다시 가물다가 곳에 따라 소나기 오더니, 어제 소서부터 장마가 본격 시작되는 낌새네요. 소서 다음날인 오늘도 새벽부터 빗소리 요란하다가 종일 비소식입니다. 핑계로 밭 일 다 접고 이 글 쓰고는 막걸리나 한잔 할까 합니다. 그래도 다음 주에나 음력 6월이 시작해 장마 다운 장마는 그 다음 주 대서쯤 가서 본격화할지도 모르겠어요.복날은 음력도 양력도 아닌 이른바 갑자력입니다. 하지 지나 세 번째로 오는 경(庚)일이 초복으로 올해는 양력 7월 15일 경인(庚寅)일입니다. 중복은 네 번째로 오는 7월 25일 경자일인데 이는 대서 때 소개하도록 하지요.소서는 그래서 이삭과 열매의 근본이 잉태되는 첫 꼭지점 절기입니다. 하지에 심은 벼가 무더위에 무럭무럭 자라 초복에 땅 속에서 이삭을 잉태하는 거죠. 근데 왜 복날을 개고기나 닭고기 먹는 날로 이해할까요?복(伏)자를 보면 사람 인(亻) 변에 개 견(犬) 자가 있어 개고기를 뜻하는 것 같지만 그게 아니고 머리를 조아리며 주인 옆에 숨는 뜻의 복 자입니다. 그럼 대체 누가 뭐가 무서워 숨는 걸까요? 바로 하지 지나 시작된 하늘의 가을 기운이 땅에 달궈진 여름 기운이 무서워 숨는 겁니다. 갑자력의 경일은 오행 중 금(金)으로 계절로는 가을을 뜻하지만 땅에 남아 있는 여름 기운이 무서워 숨을 만큼 더위가 극성을 부릴 때지요. 문제는 이 기운에 힘입어 벼만 자라는 게 아니라 벼 옆에서 벼의 사촌인 피도 자라 올라온다는 겁니다. 벼와 비슷하게 생겨, 뙤약볕에 두 눈 부릅뜨고 살펴가며 손으로 뽑아주어야 하니 피살이가 힘들었던 거지요. 해 본 사람 아니면 벼와 피는 구별하기가 쉽지 않거든요.종일 그러고 나서 진 빠진 몸의 원기 채워줄 고기가 필요한데 개고기 닭고기가 그 철엔 가장 좋았답니다. 소고기는 한여름엔 생풀만 먹였기 때문에 노랑내 나서 먹지 않았는데 그게 질산가리라는 독이거든요. 한여름에 먹는 돼지고기는 잘해야 본전이라고 지금도 말하는 것처럼 되도록 여름엔 잘 먹지 않았답니다. 반면 개, 닭고기는 탈은커녕 기운을 북돋았으니 국민보양식이었던 겁니다. 요즘이야 반려동물 문화로 개고기는 먹지 않지만, 닭고기는 치맥문화 때문인지 참 많이 먹지요. 오랜 세월 지난 후 고고학자들이 지금 시대에 닭 뼈가 많이 발굴되어 닭이 지배했던 시대로 오인할 거라는 어처구니없는 농담이 회자될 정도라니 웃기죠. 저는 그럽니다. 365일 고기 먹으면서 복날 또 고기 찾는다고요. 복날 고기는 피살이 한 사람이나 먹을 자격 있다고 하면 좀 과할까요? 저도 개를 키우지만 반려 동물 문화에 대해서는 살짝 우려가 있습니다. 솔직히 이런 현상은 수입 사료 때문에 가능했고 또 다르게는 공동체 문화가 사라진 배경 때문에 가능했던 거거든요. 누구보다 육식을 많이 하는 사람들이 개고기 먹는다고 흉을 볼 때는 뭐 묻은 게 뭐 묻은 걸 흉보는 꼴로 보였어요. 사실 우리는 원래 개보다는 소가 더 소중한 반려동물이었습니다. ‘워낭소리’라는 영화가 잘 표현했듯이 소는 일도 잘 하고 사람 말귀도 잘 알아들을 뿐만 아니라 초식이라 잡초도 해결해주고 거름도 제공해주니 개에 비해 그 가치와 정이 몇 배나 되잖아요. 반면 개는 짓기나 해 자칫 이웃과 쌈이나 일으키고 먹는 건 사람 먹는 것과 같아 가난한 사람은 개 키우길 엄두 내기 쉽지 않았어요. 차라리 쥐 잡아 먹는 고양이가 더 고마운 동물이었지요. 그래서 백성은 단백질 보충용으로 똥개를 주로 키웠는데 정 들까 이름도 짓지 않았답니다.사실 닭도 억울한 면이 없지 않을겁니다. 닭을 반려동물로 키우는 사람에게 들었습니다. 좀 기억력 없는 사람 흉볼 때 ‘닭○가리’같다고 하지만 닭이 얼마나 똑똑한데 그런 소릴 하냐고 열을 내면서 자기가 키우는 여덟마리 닭에게 각각 지어준 이름을 부르면 다 기억한다는 거에요. 따로 양계도 하지만 여덟마리는 특별히 가족처럼 키운다 하면서요. 재밌죠?저는 채식주의는 아니지만 요즘 세태를 보면 고기를 먹어도 너무 많이 먹어요. 인간이 맹수는 아닌데 말이죠. 잡식인 돼지도 풀이나 곡식을 더 좋아한답니다. 고기가 맛있고 기운도 북돋아주는 건 맞지요. 하다못해 소도 한 여름 더위 먹어 기운 없을 때 낙지를 먹이면 잘도 먹고 원기도 금방 돌아온답니다. 그렇다고 소에게 매일 낙지를 먹일 수는 없는 일 아니겠어요? 암튼 소서의 장마철은 진짜로 풀과 전쟁을 치르는 철입니다. 입하부터 풀 매기 시작한 부지런한 농부일지라도 이 시기 풀과 전쟁을 피할 수는 없지요. 그렇지만 풀은 전쟁을 치루고서라도 말살해야 할 농부의 적이 아닙니다. 풀이 없어지면 어찌 될까요? 맞습니다. 사막이 되는 겁니다. 그럼에도 풀을 없애려고 많은 노력을 합니다. 무서운 제초제를 풀약이라는 예쁜 이름을 붙여 소화제 먹듯 거침없이 뿌립니다. 썩지 않는 검은 비닐은 또 얼마나 우리 농경지를 뒤덮고 있습니까? 그래도 비닐은 수거해 재처리할 수 있지만 제초제는 정말 문제입니다. 아무 상관 없는 길가 풀에도 뿌려요. 살충제 농약은 잘못 먹더라도 빨리 위를 세척하면 살 수 있지만 풀약은 입안에 대었다가 뱉어내기만 해도 몸에 빨려 들어가 살 수 없는 무서운 약입니다.저는 풀이 전쟁의 대상이 된 건 단작 농사의 산물이라고 봅니다. 월동농사와 그루농사 같은 윤작, 혼작 농사에선 풀을 통제할 수 있어 풀과 공생할 수 있었지요. 게다가 경축(耕畜)농사, 이른바 가축을 같이 키우는 농사를 하면 풀은 사료가 되니 얼마나 요긴했겠어요. 제가 처음 친환경농사 배울 때 경축농사는 필수였습니다. 거름도 확보하고 풀 문제도 해결하는 순환농사의 핵심이었거든요.안쓰러운 건 도시에서 잘해야 3~5평 정도 되는 텃밭에 비닐멀칭하는 일입니다. 농촌에서 전업농업인이 경제활동하느라 단작으로 큰 농사짓는 데는 비닐멀칭이 불가피할 수 있지요. 아무리 직장생활로 주말에나 텃밭에 간다 해도 그 정도 규모면 농사는 풀과 전쟁하는 게 아니라 풀 매는 맛으로 하는 겁니다. 텃밭 농사 교육 때 저는 이런 말을 해 드리곤 합니다. 농사를 망쳐 시장에서 사다 먹으려 해도 살 수 없는 게 있으니 바로 풀냄새, 흙냄새라고 말이죠. 풀냄새는 이른바 피톤치드요, 흙냄새는 흙에 별보다 많은 미생물이 뱉어내는 냄새지요.그렇다고 풀을 놔두라는 말로 오해하지 말 길 바랍니다. 풀 매는 맛이라고 했듯 풀 매는 일은 말하자면 농사의 알파이자 오메가이거든요. 저는 솔직히 수확하는 재미보다 풀 매는 일이 훨씬 재밌더만요. 풀 매고 나서 말끔해진 밭과 시원해 할 작물들 감상하는 재미가 참 쏠쏠하지요.다음 대서 꼭지 때 제가 전통농업에서 배운 풀이나 물 관리를 위한 전체 밭 관리법을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사실 전통농업에서는 개별 문제에 대한 개별 대처법보다는 전체 시스템이 중요합니다. 풀이나 물 관리만이 아니라 병해충, 작물생육 관리가 하나의 시스템으로 관통하게 하는 거지요. * 대문사진 : 작년 논. 개구리밥이 벼가 먹을 질소질을 빼앗을까 걱정했지만 큰 영향은 없어 놔두었더니 이렇게 번져 피사리를 한 번만 했네요. 혹시 해서 오줌 웃거름 한번 더 주었습니다. 글을 쓴 안철환 선생은 온순환협동조합, 전통농업연구소 대표이고 경기도 안산에서 ‘산림생태텃밭 먹거리숲 농장’을 운영한다. 남은 음식물과 똥오줌, 커피 찌꺼기를 받아 직접 거름 만들기를 실천하고 있으며, 우리 토종 종자와 전통 농업 살리기에 열중하고 있다. 25년 전, 처음으로 심은 배추 씨가 3일 만에 싹 트는 걸 보고 ‘씨 안에 누가 있었구나!’ 깨닫고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우리가 먹는 배추는 단순히 물질적인 먹을거리가 아니라 나와 별 차이 없는 생명이며, 그래서 먹는다는 것은 생명을 먹고, 생명과 소통하고, 생명과 하나 되는 일이라고 믿는다. 쓴 책으로 《시골똥 서울똥》(2009), 《24절기와 농부의 달력》(2011), 《호미 한자루 농법》(2016), 《토종농법의 시작》(2020)이 있고, 옮긴 책으로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2004)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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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7-11
  • [푸른목소리] 오늘날 민주주의 안겨 준 헤아릴 수 없는 희생 기억해야
    [푸른 목소리] 오늘날 민주주의 안겨 준 헤아릴 수 없는 희생 기억해야 안녕하세요? 산청 간디고 ‘역사사랑’입니다. 여러분은 6월 10일이 어떤 날인지 알고 계시는가요? 오늘은 많은 시민들이 민주주의를 위해 거리로 나섰던 6월 민주항쟁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먼저, 6월 민주항쟁이 일어나게 된 배경을 살펴보겠습니다. 1980년 5·18 민주화운동 이후에도 국민의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당시 전두환 정권 아래에서 국민은 대통령을 국민이 직접 선출하는 대통령 직선제를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1987년 4월 13일, 전두환 대통령은 개헌 논의를 중단하고 기존 헌법을 유지하겠다는 '4·13 호헌 조치'를 발표했습니다. 이에 국민의 불만은 더욱 커졌고 민주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전국으로 확산하였습니다. 그렇다면 6월 민주항쟁은 어떻게 전개되었을까요? 같은 해 1월, 서울대학교 학생 박종철이 경찰의 고문으로 사망한 사건이 알려졌습니다. 정부는 사건을 은폐하려 했지만, 진실이 밝혀지면서 국민의 분노는 더욱 커졌습니다. 이후 종교인, 노동자, 학생, 농민 등 다양한 계층이 민주화를 요구하며 시위와 집회를 이어 갔습니다. 그리고 6월 9일, 연세대학교 학생 이한열이 시위 도중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의식을 잃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 소식은 전국에 알려졌고 국민의 분노는 더욱 거세졌습니다. 결국 6월 10일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가 주도한 국민대회가 열리면서 6월 민주항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학생들뿐만 아니라 직장인, 종교인, 노동자, 시민 등 수많은 사람이 거리로 나왔고, 직장인들은 점심시간이나 퇴근 시간을 이용해 시위에 참여했습니다. 약 20일 동안 전국 곳곳에서 수많은 집회와 시위가 이어졌으며 국민은 민주주의를 위해 한목소리를 냈습니다. 이러한 국민의 노력은 결국 큰 변화를 만들어 냈습니다. 1987년 6월 29일 정부는 '6·29 민주화 선언'을 발표하였고, 대통령 직선제가 수용되었습니다. 이로써 국민은 직접 대통령을 선출할 수 있게 되었으며, 기본권 확대와 지방자치, 언론과 표현의 자유 보장 등 민주주의 발전의 중요한 계기가 마련되었습니다. 비록 이한열 열사는 7월 5일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희생과 수많은 시민의 노력은 대한민국 민주주의 발전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6월 민주항쟁은 민주주의가 당연하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의 참여, 용기를 통해 만들어지고 지켜진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습니다. 수많은 시민이 부당한 현실에 맞서 목소리를 냈기에 지금의 민주주의에 이르렀습니다. 최근 우리 사회는 12·3 비상계엄 사태를 겪으며 민주주의와 헌법의 가치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6월 항쟁에 투쟁하고 용기를 낸 시민들이 있었기에, 민주주의가 있었기에 세상은 바뀌고 있습니다. 12.3 불법 비상계엄과 내란을 막고 민주주의를 짓밟은 윤석열을 탄핵한 건 우리 민주주의의 성숙함을 보여 주었습니다. 우리는 이로써 부당한 일에 침묵하지 않는 용기, 서로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자세를 배웠습니다.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함께 행동하고, 여러 사회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연대합시다, 투쟁합시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민주주의를 당연하게 여기기보다, 그것이 많은 사람의 노력과 희생으로 이루어졌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상으로 6월 민주항쟁에 대한 간마디를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글쓴이 : 김규빈 _경남 산청 간디고등학교 2학년 안녕하세요. 저는 산청 간디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김규빈입니다. 저는 동아리 ‘역사사랑’의 부원으로서, 학교 식구들이 모두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식구총회에서 ‘간디인 한마디’, 줄여서 ‘간마디’라는 시간을 통해 6월 민주항쟁에 대해 제 생각을 더해 소개했습니다. 제가 속한 역사사랑 동아리는 5·18 민주화운동, 6월 민주항쟁 등 우리가 기억해야 할 역사적 사건들을 간마디를 통해 식구들에게 알리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4·19 혁명의 정신을 담은 4·19 마라톤을 기획하고 진행하며, 역사 기행을 통해 지역의 역사 현장을 직접 찾아가 배우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산청의 도천서원, 단성향교, 사직단 등을 방문했고, 학기 말에는 동아리 회지를 만들기도 합니다. 저는 올해 역사사랑에 신입 부원으로 들어왔습니다. 1학년 때 보경 쌤의 한국사 수업을 들으며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역사사랑 활동을 통해 그동안 잘 알지 못했던 역사적 사건들을 배우며 사회 문제를 더 깊이 이해하고 싶었습니다. 6월 민주항쟁은 많은 시민들이 민주주의를 위해 용기 있게 목소리를 낸 중요한 역사적 사건입니다. 우리는 그 과정에서 희생하고 헌신한 사람들을 기억해야 하며, 그들의 노력 덕분에 오늘날의 민주주의가 발전할 수 있었음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그래서 그 의미를 식구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 간마디에서 6월 민주항쟁을 소개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간마디가 식구들에게 6월 민주항쟁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고, 우리 사회와 역사에 더 많은 관심을 갖는 출발점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지리산人의 기획 칼럼 [푸른목소리]에는 지리산 둘레에 사는 청소년-어린이의 생태감수성이 담긴 글을 싣습니다. '이렇게 살아야 해'라고 말하는 사회에 '이런 삶도 괜찮잖아?'라든가 '난 이렇게 살고 싶어' 같은 생각거리를 주는 글, 자연의 생명들을 대신하여 그들의 목소리를 내는 글, 우리 마을의 아름다운 자연과 이를 지키는 사람들에 대한 글을 환영합니다. >> 지리산人 푸른목소리 기고 문의 : mhgh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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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7-06
  • [뒤웅박 씻나락] "히가시카와에서 상상하는 n개의 산내" 누리
    히가시카와에서 상상하는 n개의 산내 누리 (지리산이음, 산내청년네트워크틈새 활동가) 반듯한 도로와 평야가 펼쳐진 히가시카와의 풍경. 네모반듯한 ‘칼각’으로 푸르고 광활하게 펼쳐진 논밭 사이를 국도가 가로지른다. 자연스럽게 시선이 이어지는 평원 너머에는 하얀 물감을 군데군데 칠해 놓은 듯이 머리가 희끗한 설산이 자리 잡고 있다. 지붕이 비스듬한, 서로 닮은 디자인의 집들이 길가에 점점이 서 있어서, 시력 검사 기계 속 언덕 위의 빨간 집이 떠오른다. 6월의 홋카이도, 일본 1호라는 다이세쓰 국립공원은 아직 눈에 덮여 있었다. 6월 첫 주를 일본 최북단 북해도의 시골마을 히가시카와정에서 보냈다. 일본의 기초잔치단체인 시, 정, 촌 중 정은 한국으로 치면 ‘읍’ 정도에 해당한다. 요즘은, 평소와 다른 풍경 속에서 쉬엄쉬엄 일하라고, 여행 대신 ‘워케이션’을 오라며 현대 도시인들에게 말을 거는 지자체들이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각지에 많다. 우리는 바다 건너 히가시카와에서 워케이션을 보냈다. 이번 여정에는 제주, 태백, 거창 등 전국 곳곳, 각자의 지역에서 작은 변화를 만들어 가고 있는 사람들 13명이 함께했다. 사람들의 말소리보다 새들의 지저귐이 훨씬 크게 들려오는, 한적한 히가시카와에서 13인의 한국인들은 서로 약속하지 않았는데도 마주쳤다. 미슐랭의 인정을 받았다는 작은 소바집에서, 행정에서 운영하는 공공도서관이자 복합 교류 공간인 ‘센토퓨어’의 서가에서, 동네에서 가장 큰 마트의 조리식품 코너 앞에서. 일행 중 누군가가 자전거를 타고 몇 번이나 다녀왔다는, 걸어가기에는 제법 먼 거리의 주먹밥집에 옹기종기 찾아가 아침 찬을 쓸어오기도 했다. 여정이 시작되기 전에 이미 먼저 다녀간 사람들의 평을 듣고 즐겨찾기 해 둔 구글 지도가 있었는데, 낯선 동네에서 동행들의 추천 멘트는 하나같이 강력했다. 한 사람이 대화 중에 ‘여기 다녀왔는데 좋더라’ 하면 사람들은 귀를 열고 열심히 들었다. 그게 재밌어서 '도장 깨기'하는 것처럼 여기저기 쏘다녔다. 내가 사는 남원시 산내면은 히가시카와에 비하면 (적어도 구글 지도에서는) 불모지에 가깝다. 일본에서 유일하게 25년 연속으로 인구가 늘어났다는 농촌 마을, 히가시카와의 성공 비결이 궁금한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구해 읽는다는 『히가시카와 스타일』 처럼 특별하고 고유한 ‘산내 스타일’ 따위를 정의한 책도 없다. “왜 여기 살고 계세요?”라는 말을 지금도 가끔 듣는다. 다른 곳으로 나가고 싶지는 않냐는 일말의 걱정 섞인 질문도 동네 어른들에게, 바깥에서 온 사람들에게 골고루 종종 듣는다. 나름대로 고민은 해 봤지만, 딱히 상대를 이해시킬 만한 뾰족한 대답도 없어서 얼버무리고 만다. 다만 몇 해 전 동네 한의원이 문을 닫고, 어린이집이 휴업을 하게 되면서 새로이 갖게 된 물음표는 이런 것이다. 여기가 없어지더라도 계속 산내에 살고 싶을까? 예를 들면, 이사 온 지 얼마 안 된 사람들이 여유 시간을 보내고 마음 맞는 커뮤니티를 찾아가는, 내 10대 시절이 담긴 품안작은도서관이 없어진 산내는 어떨까? 산내초등학교에는 4월이면 함께 추모식을 하고 노란 꽃을 심어 가꾸는 세월호 기억 꽃밭이 있는데, 꽃밭을 돌볼 어린이들이 없어진 산내는 어떨까? 지금 당장 나에게 필요 없는 옷과 물건들이 순환될 수 있도록 내어놓는 '득템'의 성지, 자원순환가게 나눔꽃이 없어진 산내는 또 어떨까? 눈인사를 건너뛰고 안부를 묻는, 서로의 맥락을 아는 이웃들이 떠난 산내라면? 그렇게 생각하면 내가 계속 산내에 살고 있는 이유, 없어지면 몹시 아쉬울 산내 고유의 아름다움이라는 건 있는 셈이다. 산내청년네트워크 틈새에서는 올해 그러한 연유로 다른 지역에 사는 또래 청년들에게 산내에 잠깐 살아보자는 초대장을 보내고 있다. 방식은 여러 가지다. '지금 도시에서 살고 있는 방식이 마음에 들어? 고민된다면 여기 와서 조금 다른 속도로 사는 마을을 경험해 보는 건 어때?'하고 말을 걸기도 하고, 산내에 사는 사람들의 삶 이야기를 거쳐서 마을을 소개하기도, 산내에서 더 예민하게 감각할 수 있는 사계절의 세계로 안내하기도 한다. 다가오는 7월의 프로그램을 위해 시도해 본 방식은 바로 함께 지도를 채워 나가는 작업이다. 산내를 가로질러 흐르는 람천과 임천의 물줄기를 따라, 지리산의 푸르른 산줄기를 따라 평면 지도 위를 짚어 나가다 보면 잊고 있던 장소 속 이야기들이 되살아난다. 산내 구석구석에 얽힌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 조각도 받았다. 내가 일하고 가꾸는 지리산문화공간 토닥은 누군가에게 카페 대신 소중한 '무대'로 의미화되었고, 물 흐르는 소리의 크기로 지금 계절이 비가 많은지, 가문지 가늠할 수 있는 해탈교는 누군가가 밤하늘 가득 총총한 별을 올려다보며 산내에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은 곳이었다. 이럴 때는 같은 산내에 살고 있는 것 같아도, 100명이 경험하는 100개의 산내가 다 각기 다를 것이라는 깨달음이 찾아와 아득해지기도 한다. 수학이든 무엇이든 정말 내가 잘 이해하고 있는지 판단하려면 다른 사람을 가르쳐 보라고 하는데, 우리는 스스로 무지를 깨닫고 열심히 공부하는 중이다. 불특정 다수의 손님에게 말을 걸어보기로 한 덕분에, 오히려 내가 산내를 많이 알게 되었다. 센토퓨어의 '너의 의자' 프로젝트 전시 코너. 주민과 여행자,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히가시카와의 복합 교류공간 '센토퓨어'의 정문으로 들어가면 이 지역이 자랑하는 '너의 의자' 프로젝트 컬렉션이 명당 자리를 차지하고 서 있다. 2006년부터 2026년까지, 히가시카와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본인의 이름과 생년월일이 새겨진 세상에 하나뿐인 수제 의자를 선물 받는다. 매년 그해만의 맞춤 디자인이 선정되고, 제작 또한 히가시카와에 위치한 목공방 중 하나에서 맡는다. 이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라는 아이들은 의자를 통해 소속감을 느낄 것이고, 학업이나 취업 등으로 다른 지역에 가게 되어도 마을에는 여전히 내 자리가 있다는 안정감을 느끼리라 어렵지 않게 짐작해 볼 수 있다. "태어나 줘서 고마워, 너의 자리는 여기에 있단다." 적어도 그런 의미를 담아 기획했다는 모양이다. '우리'라는 말에는 울타리 안의 요소들을 마법처럼 하나로 묶어 주는 힘이 있고, 동시에 그 바깥의 것들을 밀어내는 배타성도 숨어 있다. 그런 '너의 의자'의 의미가 확장된 순간이 있었다. 일본인들에게 큰 상흔으로 남은 3.11 동일본 대지진이다. 2만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죽거나 실종된 참사의 날에도 피해 지역인 도호쿠 지역에는 104명의 아이들이 태어났다. 800km 떨어진 북해도에서 보내온 '희망의 너의 의자' 104개에는 "다부지게 미래로."라고 적혀 있었다고 한다. 히가시카와 공민관 앞에 나란히 선 어린이용 자전거들. 히가시카와에서 보낸 시간 동안 먼 길을 떠나온 몸과 다르게 마음은 자꾸 고향으로 돌아가, 산내가 어떤 마을이기를 바라는지 상상하게 되었다. 숙소와 카페에 이 마을에서 만드는 가구와 잔, 소품들이 자연스레 비치되어 있었던 점, 거리낌없이 문턱을 넘고 자리 잡을 수 있는 장소가 있다는 점은 정말이지 마음에 들었고, 어딜 가든 외국에서 온 사람에게 편하고 친근하게 말 걸어 주는 점도 괜찮았다. 반면 마을버스를 타려면 전날 예약해야 하는 시스템은 잠시 다녀가는 입장에서는 높은 장벽으로 느껴졌고, 외식 메뉴를 고를 때에 채식 등 다양한 선택지가 없는 부분은 다소 아쉬웠다. 히가시카와에 함께 간 사람들은 바다를 건너가서도 참 자기다웠는데, 농사를 짓는 사람은 줄기가 아직 여린 새싹 작물을 어떻게 보호하며 키우는지 유심히 들여다보았고, 산을 타는 사람은 새벽같이 뒷산을 오르며 울창한 나무들과 새를 만나고 왔고, 일본 각지를 누비며 탐방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사람은 그곳에서도 미니 탐방 루트를 만들어서 동행들을 능숙하게 가이드했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고. 13명이 만난 13개의 히가시카와가 거기 있었다. 산내 마을 구석구석에도 방문자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시선이 더해지고, 경험이 쌓여 나갈 것이 기대된다. n명의 사람들이 만나는 n개의 산내. 지금 '우리'를 넘어 누구에게 손을 내밀고, 어떤 의자를 내어줄 수 있을까? 거창하지 않더라도 함께 궁리하고, 무턱대고 실천하고 싶다. 틈새에서 진행한 2주살이 캠프 참여자들의 그날 하루를 돌아보는 엽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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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뒤웅박 씻나락
    2026-06-30
  • [곰주옥 X 인간주옥] ⑤ 곰과 커피 사이, 내가 몰랐던 세계
    구례곰마루쉼터(이하 곰쉼터)에 사육 농장에서 살던 곰들이 이주한 건 2025년 9월 말이다. 나는 곰들이 지리산에 살기 위한 목적이 아닌 이유로 구례에 오게 되었다는 점이 특별하게 느껴졌다. 이 곰들은 태어나서 지금까지 뜬장에 살았다고 하고, 영양 상태가 좋지 않고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눈이 보이지 않거나 귀가 들리지 않는 곰들도 있다고 했다. 나에게 곰은 원래도 관심이 가는 존재이지만, 이러한 상황을 들으니 더 마음이 쓰였다. ↑ 이가 없어서 모든 음식을 잘라서, 익혀서, 분쇄해야 먹을 수 있다는 ‘BM-22’ 방 앞 안내판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곰곰학교’(곰처럼 곰곰이 생각하는 학교, 2025년 10월 구례에서 운영)를 열었고, ‘반달곰을 사랑하는 1%’(이하 반달곰1%)를 구례뿐 아니라 하동까지 확대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다. 이 곰들의 일상을 궁금해하는 건 나만이 아니었다. 지난 1월, 구례 반달곰1% 가게 주인들과 곰쉼터를 방문했다. 곰들의 상황을 설명하던 최신영 수의사가 이런 말을 했다. “반달곰 1%에 카페들도 참여하나요? 그럼 커피박을 모아주실 수 있을까요? 여기 곰들에게 커피박은 좋은 풍부화 재료, 그러니까 사육농장에 있으면서 퇴화된 곰의 감각과 근육을 발달시키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거든요.” 곰들을 위해 할 일이 있다는 사실이 기분 좋았다. 반달곰 1% 가게 주인들도 ‘그거라면 할 수 있다’고 동참 의사를 밝혔다. 하기로 마음을 굳히자, 이왕이면 반달곰1% 가게뿐 아니라 관심 있는 카페에도 알리는 캠페인을 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캠페인 문구를 정하고, 그림과 디자인을 요청했다. 웹자보를 SNS에 올리고, 자주 가는 카페 주인들을 만나 취지를 설명하며 참여를 부탁했다. ↑ 캠페인 ‘곰에게 가는 커피향’ 웹자보 “일주일에 한 번씩 수거할게요. 커피박을 말려서 보관만 해주시면 됩니다.” 흔쾌히 해보겠다는 분도 있었지만, 커피박을 말리는 게 쉽지 않다고 주저하는 분도 있었다. 웹자보를 보고 연락한 분도 있었고, 카페를 운영하지 않지만 커피를 마신 후 나오는 커피박을 일반쓰레기로 버릴 때마다 마음이 안 좋았다며 함께 하겠다는 분도 있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모인 카페 10곳과 개인 1명이 ‘곰에게 가는 커피향’ 활동을 시작하였다. ↑ 곰쉼터에 전달된 마른 커피박 ‘곰에게 가는 커피향’ 활동은 100% 자원활동이다. 특히 매주 월요일마다 커피박을 수거해 곰쉼터에 전달하는 일에 나서준 이영숙 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한번 해볼게요’로 시작한 이영숙 님은 매우 성실하게 활동했고, 마치 곰이 된 것처럼 커피박의 상태를 점검했다. 이영숙 님은 커피박에 곰팡이가 생기는 것을 가장 경계했다. 커피박은 충분히 말린다고 해도 플라스틱 통이나 비닐에 담아두면 바닥에서 곰팡이가 피었다. 이런저런 고민 끝에 천으로 커피박 수거 가방을 만들기로 했다. ↑ 커피박 수거 가방 만들기 회의에서, 참여자 유현숙 님이 직접 만든 가방을 들어 보이며 설명하고 있다. 커피박 수거 가방을 만들기 위해 바느질할 분을 찾고, 가방 재료를 고민하고, 실크스크린 작업을 도와줄 분들을 섭외했다. 여러 사람의 정성과 수고 덕분에 재활용 천과 커피 자루로 ‘커피박 수거 가방’이 완성되었다. 6월 8일, 커피박 수거 가방을 들고 곰쉼터에 갔다. 그날 함께한 분들은 곰을 직접 본 것이 처음이라고 했다. 곰들이 얼마나 커피박 향기를 좋아하는지 커피박이 든 자루를 껴안고 뒹굴었으며, 방사장으로 나가지 않던 곰도 커피박 향기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미소를 지었다. 임옥주 수의사는 커피박 자루를 넣어주면 곰들이 냄새를 맡고 탐색하거나 껴안고 굴리는 행동이 늘어나는데, 이런 자극이 곰들의 감각과 근육을 깨우는 ‘풍부화 효과’라고 설명했다. ↑ 커피박 수거 가방 만들기 참여자들이 곰쉼터 답사를 마친 뒤 기념 촬영을 했다. 왼쪽부터 실크스크린 작업을 맡은 임산하 님, 커피 자루를 기부해 준 한지인 님, 유현숙 님과 함께 가방을 만든 이정훈 님, 필자, 곰쉼터에서 근무하는 임옥주 수의사. 곰쉼터 방문 후 커피 이야기가 나왔다. 25년째 커피와 인연을 맺고 있다는 한지인 님이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나폴레옹이 머물렀던 세인트헬레나 섬이 커피로 유명하다는 이야기, 윤리적 논쟁이 있지만 코끼리 배설 커피가 있다는 이야기까지 이어졌다. 흥미로운 이야기였지만, 나에게 더 크게 다가온 것은 따로 있었다. 커피가 콩과 식물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네? 커피가 콩과가 아니라고요? 그럼 왜 커피콩이라고 해요. 커피나무 열매가 체리와 같다고요? 브릭스가 12나 되니 단 것을 좋아하는 곰들도 좋아할 거라고요?” 내 생애에서 지금처럼 커피에 관심을 가진 적은 없었다. 나는 커피를 마시면 설사를 한다. 어떤 때는 커피 향만 맡아도 배가 아플 때가 있다. 평생 마셔본 커피는 세 모금 정도다. 그런 내가 커피박을 수거하고, 커피 향을 맡고, 커피 이야기를 흥미롭게 듣고 있다니 묘한 일이다. 나는 이제 커피를 마시지 않아도, 커피와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곰을 통해 커피를 다시 배우고 있다. 관심은 연결에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때는 아무 의미 없이 버려지던 커피박이 이제는 곰들의 감각을 깨우고 삶을 넓히는 도구가 된다. 내가 몰랐던 커피의 진실은 맛이나 향이 아니라, 이렇게 다른 생명과 이어지는 가능성이었는지도 모른다. 온통 오해뿐이던 커피에 대한 내 생각을 바로잡아준 곰주옥과 그 친구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이 작은 연결이 더 많은 생명과 사람에게 이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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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6-23
  • [안철환의 절기 이야기] 가뭄에서 장마로 이어지는 하지
    해가 제일 높은 하지가 지나면 해 입장에선 가을로 접어 든 것임에도 하지 지나야 무더위가 찾아오니 왜 그럴까요? 다름아닌 복사열 때문인데요, 하지 때까지 달궈진 복사열이 하지 지나 소서 대서의 복 더위로 드러나는 겁니다. 게다가 몬순 기후의 영향으로 북태평양의 높은기온과 습한기운이 찾아와 무더운 장마가 시작되지요. 반면 하지 전엔 가뭄이 찾아옵니다. 이 가뭄이 참 이해가 가질 않았습니다. 이 시기의 속담으로 가뭄에 비 그칠 날 없다는 말이 궁금증을 더 했지요. 실제로 일주일이 멀다하고 비가 와도 흙을 뒤집어보면 먼지만 일어요. 왜 그럴까요? 비가 찔끔 와 오히려 흙속 수분마저 빼앗아 가기 때문입니다. 일종의 모세관현상인데요, 옛날에 문창호지를 바르고 입으로 물을 분사해주면 창호지가 마르면서 빳빳해지는 현상과 같아요. 비 온 뒤 땅이 굳는다는 말과도 같지요. 그런데도 숲 속 나뭇잎들의 녹색은 더 짙어가니 무슨 조화일까요? 다들 아시겠지만 나무들은 일종의 물탱크입니다. 물 저장고죠. 사람도 몸의 70%가 물인 것처럼 나무도 50%~70%가 물이에요. 그 중 뿌리와 줄기, 가지의 비중이 크죠. 잎사귀도 적지 않으나 잎은 물 저장보다 증산작용으로 물을 퍼 올리는 ㅅ펌프 기능이 큽니다. 이 시기 녹색이 짙어진다는 것은 그만큼 많아진 잎들이 물을 엄청 빨아대면서 자기 몸 키우는 데 쓰느라 내뿜지는 않고 저장만 하니 땅속에 물이 마르게 되는 겁니다. 물론 비도 적게 오지만 그보다 더 많이 퍼올리니 가물 수밖에요. 반면 하지 지나 장마기에 들면 비도 많이 오지만 나무도 적당히 자라 저장용량이 다 차서 물을 대기로 뿜게 되니 이래저래 물 많고 습한 철로 접어들게 됩니다. 하지전삼, 하지후삼이라 했습니다. 하지 삼일 전이 벼 모내기 마지막 적기고 삼일 후는 더 이상 넘겨서는 안되는 마지노선이란 뜻입니다. 물 사정이 좋은 곳은 일찍 하지만 아무리 물 사정이 좋지 않다해도 하지를 넘겨선 안된다는 뜻이겠죠. 벼는 단일식물이라 해서 해가 짧아지면 이삭(꽃)이 맺히는데, 하지 지나서까지 늦게 심으면 제대로 몸을 키우지 못한채 이삭을 올리니 수량이 확 떨어집니다. 미숙 상태에서 짝짓기하면 2세가 부실한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또 다른 의미로는 하지 이후엔 장마가 시작되니 모낸 후 벼가 활착하기 딱 좋은 때라는 겁니다. 이게 천수답인데요, 왠지 천수답이라고 하면 미개한 농법 같지만 그게 아니라 장마비를 활용한 지혜로운 농법인 것입니다. 그래서 기우제를 단오나 하지에 지냈으니 그 때 되면 비가 온다는 걸 알았기 때문일 겁니다. 그 다음 하지에 모내는 결정적인 이유는 그 때 되면 밀, 보리와 이모작이 가능하다는 사실입니다. 밀, 보리 수확하고 이어 벼를 심을 수 있는 적기이거든요. 이런 조건 때문에 밀, 보리가 우리에겐 쌀 못지않은 소중한 식량이었습니다. 먹을 게 없어 먹는 구황식량이 아니라 여름에 먹는 필수 주식이었던 겁니다. 그래서 저는 쌀만으로 주식을 삼으면 위험하다고 생각하지요. 베트남이나 필리핀 같이 벼만 갖고 이모작 삼모작 하는 나라에서나 쌀만으로 주식이 가능한겁니다. 옆에선 벼 수확을 하는데 옆에선 모내기하는 나라이니 진정한 쌀 나라인거죠. 쌀만으로 보리고개를 넘겠다는 야심찬 의지로 만든 게 통일벼인데요, 그래서 저는 이게 큰 오산이었다고 평가합니다. 통일벼는 수량 많은 알랑미와 아끼바리 같은 찰진 쌀과 교배한 잡종쌀인데요, 문제는 얘는 밀, 보리 수확 전에 심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통일벼 수량이 재래벼에 두배 가까이 되서 다들 놀랐지만 밀, 보리를 심지 못하면 그 수량이 많다는 게 얼마나 의미 있겠습니까? 그 다음으로 결정적인 문제는 통일벼는 자가채종이 안된다는 점이에요. 매년 분양 받아 심어야 됐습니다. 이게 농부로선 받아들이기 힘든 거였어요. 씨앗 농사가 근본이었거든요. 남의 씨 받아 자식농사를 지을 수는 없잖아요? 환경적으로도 문제였습니다. 밀, 보리와 이모작을 할 수 없으니 벼를 수확하고 나면 논이 일년 중 반은 사막인 거에요. 땅이 반은 놀고 있으니 토지의 경제적 효율성이 떨어지는 것도 문제겠죠. 그런데 왜 통일벼의 신화는 여전할까요? 사실 통일벼 자체는 보급된지 10년도 안되어 망했어요. 도열병이라는 게 번져 실패한겁니다. 일찍 심다보니 냉해에도 약했구요. 무엇보다 통일벼만 심게 한 단작방식이 위험을 더 키웠습니다. 원래 농가에선 한가지만을 심지 않았어요. 적어도 4~5가지 심어 먹었는데요, 그래야 흉년을 피할 수 있었답니다. 날씨에 따라 못 되는 놈 있으면 잘 되는 놈 있어 늘 평작은 거둘 수 있다는 얘기죠. 이는 기후위기로 인한 식량위기를 대비할 수 있었던 조상님들의 대표적인 지혜였습니다. 단작 방식은 기후위기에 한방에 무너질 수 있는 위험한 농사였던 겁니다. 대표적인 사건이 아일랜드의 감자역병으로 주식이 사라져 100만명 넘는 사람이 아사한 일입니다. 감자 원산지인 안데스 고산 지대에선 아직도 집집마다 여러종류의 감자를 심어 먹고 있는데 이유는 마찬가지라는 거죠. 그런 점에서 지역마다 대표적인 한가지 종류의 벼만 심는 지금의 농사 방식이 걱정이 아닐 수 없는 거에요. 그런데 아무튼 역설적이게도 통일벼 이후 육종기술이 늘어 신품종 개발에 성공해 알랑미 계통이 아닌 찰진 쌀 계통의 벼들이 자리잡게 됩니다. 그래서 통일벼 신화가 이어진 거지요. 여전히 종자는 사야되고 밀, 보리와 이모작이 안되는데도요. 더 아쉬운 사실은 통일벼 이후 개발한 종자들이 다 일본쌀 계통이라는 사실입니다. 일반미라 불렸던 아끼바리에서부터 최고의 밥맛(?)이라 불리는 고시히까리, 이누히까리 같은 쌀들입니다. 다행인 것은 아끼바리는 추청벼라 해서 들어온지 오래돼 저작권이 없어졌으나 다른 쌀들은 저작권이 있어 적지않은 종자 사용료를 일본에 주고 있다는 점입니다. 몇 해전 바람 분 반일 정서가 농촌에까지 번져 이미 우리쌀이 된 추청벼도 불매운동의 영향을 받은 웃지 못할 일도 있었지요. 그런데 왜 일본쌀 계통의 찰진쌀이 우리밥상을 차지했을까요? 이건 순전히 일제시대 잔재라고 저는 봅니다. 백미주의를 일제가 퍼뜨린거에요. 알랑미나 보리밥은 가난한 사람들이나 먹는 천한밥으로 낙인을 찍은 거죠. 한번은 베트남 가서 알랑미밥을 먹는데 20년 넘게 현미쌀을 먹어서 그런지 저는 거친 알랑미밥이 참 맛있는 거에요. 그 모습을 본 가이드가 반가워서 하는 말이, "알랑미 먹고 끼는 방구를 뭐라 하죠? " 하네요. 다들 깔깔 웃고 나니 이 사람 알랑미 예찬이 거침없이 이어집디다. 더운 지방 사람들은 알랑미를 먹어주어야 한다, 세계 대부분의 쌀은 알랑미다 등등 하면서 말이죠. 어쨌든 일제는 물러갔지만 백미주의는 강하게 남아 우리밥상과 우리입맛과 우리의식을 사로 잡았습니다. 구수하고 깊은 맛을 내는 우리 토종쌀과 밀, 보리는 외면되고 말았지요. 구수하고 깊은 정이 있는 우리의 인심도 전설이 되면서 말이죠. 하지에 또 빠뜨릴 수 없는 얘기가 그루농사입니다. 요즘은 이도 보기 힘든 일이 돼버렸는데요, 뭐든 빨리 심고 비닐하우스 같은 철을 잊은 농사가 퍼져 그렇습니다. 그루농사 또는 그루갈이라고도 하는데요, 지난 가을이나 이른 봄에 심은 작물 수확하고 남은 작물의 그루(밑둥)를 갈아 엎고 심는 농사를 말합니다. 밀, 보리 수확하고 심는 벼도 그렇구요, 마늘, 양파, 시금치처럼 월동한 작물과 이른 봄에 심은 감자 배추 상추 수확 후 심는 콩, 팥, 들깨, 고구마, 조 같은 작물입니다. 이런 작물은 일찍 심으면 자칫 웃자라거나 봄 가뭄 피해를 볼 수 있어 하지 지나 심는 게 좋습니다. 이런 월동농사와 그루농사는 우리 윤작농사의 꽃이라 할 수 있으며 얼마든지 지금도 되살릴 필요가 있고 되살릴 수 있는 전통농업의 지혜라고 저는 봅니다. 그외 하지는 참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절기입니다. 그래도 길면 지루하니 여기서 그만 하지 하고 마치렵니다. 감사합니다. 글을 쓴 안철환 선생은 온순환협동조합, 전통농업연구소 대표이고 경기도 안산에서 ‘산림생태텃밭 먹거리숲 농장’을 운영한다. 남은 음식물과 똥오줌, 커피 찌꺼기를 받아 직접 거름 만들기를 실천하고 있으며, 우리 토종 종자와 전통 농업 살리기에 열중하고 있다. 25년 전, 처음으로 심은 배추 씨가 3일 만에 싹 트는 걸 보고 ‘씨 안에 누가 있었구나!’ 깨닫고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우리가 먹는 배추는 단순히 물질적인 먹을거리가 아니라 나와 별 차이 없는 생명이며, 그래서 먹는다는 것은 생명을 먹고, 생명과 소통하고, 생명과 하나 되는 일이라고 믿는다. 쓴 책으로 《시골똥 서울똥》(2009), 《24절기와 농부의 달력》(2011), 《호미 한자루 농법》(2016), 《토종농법의 시작》(2020)이 있고, 옮긴 책으로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2004)이 있다. * 대문사진 : 모든 게 푸르른 하지에 누렇게 익어가는 보리는 철의 변화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우리의 풍경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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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6-23

소식 검색결과

  • [소식] "메가 프로젝트 무엇이 문제인가" 9.19 기후정의행진 토론회
    919 기후정의행진에 앞서 메가 프로젝트를 두고 토론회가 열려 <지리산人> 독자들께 공유합니다. 관심 있는 분들, 궁금하신 분들, 관심 없었지만 이제 생긴 분들 모두 함께해요. 우리 문제니까요. [9.19 기후정의행진 토론회] "메가 프로젝트 무엇이 문제인가 - 지구를 불태우는 폭주를 멈춰라" 지구를 불태우는 폭주를 멈추기 위한 919기후정의행진 토론회가 개최됩니다.유튜브, 온라인 생중계 진행????919 기후정의행진은 이재명 정부가 재벌들과 함께 발표한 ‘3대 메가 프로젝트’를 멈추고 기후정의를 향한 우리의 대안을 알리는 행진을 조직하고 있습니다.919 기후정의행진이 메가 프로젝트에 반대하는 이유를 기후생태위기 심화, 불평등과 양극화 악화의 문제, 지역을 수탈하며 노동자와 농민의 권리를 파괴하는 문제 등 다양한 측면에서 짚어보는 토론회를 기획했습니다.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토론회 개요>일시: 2026년 8월 26일(수) 오후 2시-4시 30분장소: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 211호온라인 중계: 919 기후정의행진 유튜브 계정참가신청: https://forms.gle/RRQFbspmX7fvVJ2F9<프로그램>사회: 가원 (919 기후정의행진 공동집행위원장)발제: “기후정의행진은 왜 메가 프로젝트에 반대하나” - 권우현 (919 기후정의행진 공동집행위원장)토론- AI 산업의 문제 - 김민(디지털정의네트워크)- 메가 프로젝트와 자산, 소득 불평등의 악화 - 이원호(빈곤사회연대)- 메가 프로젝트와 농업, 농민 - 엄청나(전국농민회총연맹)- 피지컬 AI 문제와 노동권 파괴 - 최민(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충북 지역 사례 “반도체 공장은 지역에 어떤 영향을 끼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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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8-17
  • [소식] 제25회 지리산쌀롱 "재난에서 (함께) 살아남기 : 100개의 비상배낭"
    지리산이음에서 준비한 자리입니다. <지리산人> 독자 여러분 함께해요. 2026년 9월 2일 (수) 저녁 7시~9시 30분 ※ 신청 인원에 따라 장소가 변경될 수 있으며, 신청자에게 사전 안내드립니다. 4. 참가 신청 - 온라인 페이지 신청 https://forms.gle/DGC4uKLj2LHknHkP6 6. 문의 010.5154.0048 지리산이음 (누리) ???? 이 프로그램은 의 지원으로 진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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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8-12
  • [소식] 지역정의 기획 강좌 "AI와 농촌"
    곡성군농민회와 항꾸네 틈모임이 준비한, 지역정의 기획 강좌 ‘AI와 농촌’에 초대합니다. AI산업의 구조와 정책의 문제를 살펴보고, 지역 정의와 3농(농민·농업·농촌)의 지속가능성을 생각해보는 강좌를 마련했습니다. 농촌을 위한 지혜의 자리에 함께 해주세요.???? ①3대 메가프로젝트와 지역 8/27(목) 18:30 ②AI와 3農(농민농업농촌) 9/2(수) 18:30 -장소 곡성레저문화센터 대황홀 -공동주최 곡성군농민회, 틈모임 -참가신청 여기를 눌러서 신청하세요. *유튜브 생중계 동시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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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8-12
  • [축하] 제8회 조태일문학상에 '지리산人' 편집위원 박두규 시인 선정
    제8회 조태일문학상에 박두규 시인이 선정되었어요~!! 박두규 시인은 <지리산人> 편집위원이자 지리산사람들 운영위원으로 지리산이 지리산답게 살도록, 지리산의 사람들이 지리산을 닮아 살도록, 운동하고 시를 써 온 아름다운 사람이랍니다. 우리 지리산人 모두는 박두규 시인의 수상을 축하하며, 앞으로도 박두규 시인의 시를 계속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위 사진은 <두텁나루숲 뒷간에 앉아> 시집 나눔 잔치 때 모습으로, <지리산人> 이지민 님의 영상 기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관련 기사 참고) 박두규 시인은 1985년 '남민시' 창립 동인으로 등단했으며, 1992년 '창작과 비평' 가을호에 시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사과꽃 편지', '당몰샘', '숲에 들다', '두텁나루숲, 그대', '가여운 나를 위로하다', '은목서 피고 지는 조울의 시간 속에서', '두텁나루숲 뒷간에 앉아' 등의 시집과 '지리산, 고라니에게 길을 묻다', '生을 버티는 문장들' 등의 산문집을 펴냈다. 전교조 창립과 함께 20여 년간 활동했으며 순천작가회의, 여순사건순천시민연대, 순천교육공동체시민회의 등을 창립해 지역 문예운동과 여순사건 진상규명, 고교평준화 운동 등에 참여했다. 생명평화결사 운영위원장, 한국작가회의 이사와 부이사장을 지냈으며, 지리산과 섬진강이 있는 두텁나루숲으로 거처를 옮긴 뒤에는 ‘지리산사람들’ 대표와 문화신문 '지리산 人' 편집인,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공동대표 등으로 활동했다. 아래, 수상과 관련한 <더팩트>의 기사 일부를 공유합니다. [더팩트 l 곡성=김영신 기자] 제8회 조태일문학상 수상자로 시집 '두텁나루숲 뒷간에 앉아'의 박두규 시인이 선정됐다 전남광주시 곡성군과 죽형조태일시인기념사업회는 조태일 시인의 문학정신을 기리고 이를 이어갈 작품을 선정하는 제8회 조태일문학상 수상자로 박두규 시인을 선정했다고 10일 밝혔다. 박두규 시인의 '두텁나루숲 뒷간에 앉아'는 자연 속에 자신을 놓고 삶과 죽음, 인간과 자연, 공동체의 의미를 되짚는 시집이다. 시인에게 '두텁나루숲'은 단순한 거처가 아니라 바깥세상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공간이다. 시집의 제목이 된 '뒷간'은 이러한 사유가 집약된 공간으로 등장한다. 시인은 뒷간에 앉아 안개가 걷히고 강이 모습을 드러내는 풍경을 바라보며 자연 속에 존재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일상의 소박한 풍경에서 출발한 시적 시선은 생명의 존엄과 존재의 본질에 대한 성찰로 확장된다. 시집에서 두드러지는 또 하나의 특징은 '사랑'과 '영성'에 대한 탐구다. 특히 4부 '사랑의 완성'에서는 인도의 영적 스승 슈리슈리 아난다무르띠의 가르침에서 받은 영향을 바탕으로 영적 수행을 뜻하는 '사다나(Sadhana)'의 의미를 시적으로 풀어낸다. 개별적 존재로서의 '나'를 넘어 타자와 자연, 나아가 우주와 하나 되는 의식으로 나아가는 과정이 시집 전체를 관통한다. 숲에서 시작된 시인의 사유가 사랑이라는 보편적 가치로 확장되면서 개인의 내면과 사회, 자연을 연결하는 시적 세계를 만들어낸다는 평가다. 심사위원회는 박두규 시인의 작품에서 '언어의 태도'를 높이 평가했다. 심사위원들은 "이 시집은 현실을 과장하거나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다"며 "사물 하나, 풍경 하나를 오래 바라보는 인내 속에서 시대의 상처와 인간의 존엄을 드러낸다"고 평가했다. 이어 "절제된 언어는 오히려 더 큰 울림을 만들어내며, 생명의 미세한 결을 놓치지 않는 감각은 독자로 하여금 자신의 삶을 다시 성찰하게 한다"고 밝혔다. 특히 심사위원회는 박두규 시인의 시가 조태일 시인의 문학정신을 단순히 반복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했다. 심사위원들은 "조태일 시인의 시가 민중의 삶을 통해 국토의 생명성을 발견했다면, 박두규 시인의 시는 생태와 공동체의 감각을 통해 인간다운 삶의 가능성을 복원한다"며 "조태일 시인의 시 정신을 계승하는 데 머물지 않고 오늘의 시대적 과제에 맞게 창조적으로 확장한 성과"라고 평가했다. 또 "오늘의 시가 더욱 화려한 언어와 복잡한 형식을 경쟁하는 시대에 '두텁나루숲 뒷간에 앉아'는 가장 낮은 자리에서 가장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는 시집"이라며 "생명의 존엄과 공동체의 가치, 인간과 자연이 함께 살아가는 길을 묵직한 언어로 증언한 작품"이라고 밝혔다. 이번 심사는 도종환·김수열·서효인·신철규 시인과 고봉준 문학평론가가 맡았다. 박두규 시인은 수상소감에서 "몸도 균형감을 잃으면 바로 설 수 없지만 마음 또한 균형감을 잃으면 평안하지 못하고 매사에 흔들리게 된다"며 "문학이라는 것도 자기완성을 위한 수행과 사회적 복무를 위한 실천이 같이 진행돼야 한다는 생각으로 시를 써왔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시집은 이런저런 이유로 바깥 상황보다는 안으로 더 들어간 것이 아닌가 싶다"며 "조태일 선생님을 보다 가까이에서 모실 수 있게 해준 심사위원님들과 문학상을 추진해 오신 관계자들에게 정말 고맙다"고 소감을 전했다. 원문 출처 : https://v.daum.net/v/20260810110053464
    • 소식
    2026-08-10
  • [소식] 남원학 아카데미: 지방자치와 주민자치회 연속 강좌
    [남원학 아카데미] 지방자치와 주민자치회 연속 강좌 온라인 페이지 참가 신청 : https://forms.gle/VGZ2qGfDyHoMY1bB문의 : 시민공감 이사 임현택 010-5544-1553
    • 소식
    2026-07-23
  • [모집] 2026 지리산人 생태전환강좌 "농생태학 틀세우기"
    잃어버린 공생의 지혜를 되찾는, 2026 지리산人 생태전환강좌 첫 번째, <자연을 닮은 농사, 농생태학> 1강 / 자연의 얼개를 닮은 농사 2강 / 에너지 흐름으로 살피는 자연의 살림,농(農)의 살림 7월 11일 토요일, 오후 1:00-5:00, 구례문화원1층대회의실 강사 : 쪼 (농생태학연구소 숨 상임연구원) /농생태학 틀 세우기 /건강한 농생태계를 위한 농사는? /자연의 살림살이를 이해해 농사 짓는 방법? 참가비 : 1만 원 (지리산사람들·구례문화원 회원은 무료) 참가 신청 (아래 링크 접속) https://forms.gle/fJET7T5ipVkZqhpn9
    • 소식
    2026-07-03
  • [소식] 지리산 여순10.19 생명평화기행 (강의 참여 가능)
    한겨레통일문화재단이 주최하는 ‘지리산 여순 1019 생명평화기행’이 7월 3일~4일(1박2일), 구례에서 진행됩니다. 1박2일 참여할 분은 마감되었다고 하는데요. 7월 3일 저녁 7시 주철희 박사 특강 (장소_ 지리산생태탐방원) 7월 4일 낮 1시 30분 박금만 화백 특강 (장소_ 구례문화예술회관) 이렇게 두 강좌는 참여가 가능하다고 합니다. 참가비도 없고요. 관심 있는 분들은 함께 하셔도 좋겠습니다.
    • 소식
    2026-06-23
  • 2026 생명평화 하지제 "벽소령을 흔들지 마라"
    2026년 생명평화 하지제 몇 해 전부터 해마다 하지가 오면, 지리산사람들과 친구들은 지리산 난개발로 몸살 앓는 마을에 찾아가 하지제를 열었습니다. 올해는, 난개발 공약에 빠지지 않고 등장한 '벽소령'에 찾아갑니다. 6월 21일 일요일 11시 벽소령 함께 모여서 감자를 삶아먹고, 지리산이 무사하길 바라며 차를 올립니다. (저마다 감자 딱 한 알씩 들고 와요- 벽소령 지키려는 마음 담아^^) (자기 찻잔도 하나씩 가져와요, 우리 마음 모아 쭉- 찻잔 줄지어 놓고 하지다례 올려요^^) 벽소령을 포함하여 지리산권을 파헤치려는 공약을 꾸짖는 목소리도 냅니다. 시와 노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도 있습니다.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려요! 많관부 :) 준비물 : 점심, 마실물, 지리산 사랑 담은 손피켓, 감자 한 알, 찻잔 하나씩 시간과 장소 : 2026년 6월 21일 11시 벽소령 대피소 앞 지역별 문의 구례 : 010-2972-3398 하동 : 010-9049-1218 남원 : 010-4029-5910 산청 : 010-9117-4285 함양 : 010-4740-1915 ※ 11시 벽소령에 도착 하도록 오시면 됩니다. 지역별 담당자에게 연락하여 함께 오셔도 되며, 지역별 편한 코스로 직접 오셔도 됩니다. 사전 신청 링크 > https://m.site.naver.com/2alfr
    • 소식
    2026-06-18
  • [소식] 지리산사람들 운영위원 해성의 이야기가 경남도민일보에 나왔어요
    <지리산인>을 함께 만드는 해성이 신문에 나왔어요~! 지리산사람들 운영위원이고, 산청난개발대책위원회 사무국장, '지금부터 판타지' 서점지기인 이해성 활동가의 이야기가 <경남도민일보>에 나왔어요 <경남도민일보> 김태섭 기자님의 글로 만나 보시죠~ 아래 링크 공유할게요. https://www.ido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2007744
    • 소식
    2026-06-16
  • [소식] 지리산쌀롱2026 : 그 가족의 바깥에서 시민적 유대와 돌봄의 관계를 발명하기
    지리산이음에서 여는 멋진 강연이 있어 소식 전합니다. 1. 일시 2026년 6월 19일 (금) 저녁 7시~9시 2. 장소지리산문화공간 토닥 (남원시 산내면 대정길 127) 3. 초대손님김순남 (<가족을 구성할 권리> 저자 / 성공회대 젠더연구소 학술연구 교수, 가족구성권연구소 기획운영위원) 4. 참가 신청- 온라인 페이지 신청 https://forms.gle/Q63XiFX1J2bUSuWQ6참가비는 없습니다. 대신 잊지 마시고 당일에 꼭 토닥에서 만나요! 5. 문의010.5154.0048 지리산이음 (누리) "가족주의 이데올로기는 일상에서 누가 안전하고, 익숙한 존재이며, 누구는 낯설고 위험한 존재인지 쉽게 판단하는 근거로 작동하면서, ‘난잡한’ 친밀성과 돌봄의 가능성을 중요하지 않은 가치로 만들어왔습니다.사회적협동조합 지리산이음과의 만남을 통해서, 사회가 강제하는 ‘정상적인 삶’, ‘정상적인 관계’,’ 정상적인 돌봄’ 너머, 함께 의존하고, 관계맺고 연결될 수 있는 가능성의 세계를 모색하는 가족을 구성할 권리에 대해서 같이 이야기 나누고자 합니다."
    • 소식
    2026-06-11

동영상뉴스 검색결과

  • 별빛과 사진과 시, 그리고 지리산이 주는 것 - 이원규 시인 인터뷰 3부
    3부에서는 무리한 순례로 얻은 병을 계기로 카메라를 들고 산으로 들어간 이원규 시인의 사진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독학으로 익힌 사진으로 15년 넘게 지리산의 야생화, 별과 은하수, 반딧불이를 기록해온 과정과 지리산학교가 만들어진 배경, 지속가능한 환경운동을 위한 '자연 분양' 아이디어, 기후위기 시대에 문학과 예술이 할 수 있는 일까지 담았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지리산을 찾는 많은 이들에게 지리산의 시인이 전하는 마지막 당부로 마무리합니다. 00:00 인트로 00:46 오체투지, 임진각까지 그리고 무너진 건강 04:36 카메라를 들고 산으로 - 김인호 작가와의 인연 06:17 지리산학교의 탄생 배경 07:44 독학으로 배운 사진, 야생화를 찍다 10:17 별과 은하수, 반딧불이를 기록하다 13:15 지속가능한 환경운동을 위한 제안 - 자연을 분양하다 17:06 지리산 국립공원, 주인의식으로 지키기 21:02 기후위기 시대, 문학과 예술은 어디로? 24:37 은하수와 별, 도시화로 잃어버린 것들 27:24 지리산문화예술학교 소개 31:35 지리산을 찾는 이들에게 전하는 당부 #이원규시인 #지리산사람들TV #지리산별빛 #지리산반딧불이 #지리산문화예술학교
    • 사람이야기
    2026-08-14
  •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그리고 순례의 길 - 이원규 시인 인터뷰 2부
    이원규 시인 인터뷰 2부에서는 지리산 댐 반대운동을 계기로 수경스님, 도법스님과 인연을 맺고 실상사에 들어가게 된 이야기부터, 낙동강 천삼백리와 지리산 850리를 걸었던 도보순례, 지리산 둘레길의 원조가 된 기획, 대운하 반대 삼천리 순례까지 활동가로서 걸어온 길을 들어봅니다. 대표시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이 탄생한 배경과 안치환의 노래 이야기, 그리고 무리한 순례 끝에 찾아온 병까지 담았습니다. 00:00 인트로 00:43 지리산댐 반대운동 - 수경스님과의 만남 04:05 실상사 합류와 낙동강 도보순례 05:44 지리산 850리 도보순례와 위령제 07:51 지리산 둘레길의 원조 기획과 한계 10:34 생명평화 탁발순례와 오체투지 14:58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창작 배경 17:01 안치환의 노래 18:11 지리산에 오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19:20 '지리산사람들' 단체 결성과 박두규 시인 21:16 이런 때 불러주시면 달려갑니다 22:46 내가 사랑한 장면 - 정령치와 만항재의 밤 24:22 섬진강 조망 1번지, 오산 사성암과 풍수 이야기
    • 사람이야기
    2026-08-07
  • 고1 때 가출 겸 출가하고 간첩으로 몰린 소년 '지리산 시인'이 되다 - 이원규 시인 인터뷰 1부
    지리산 시인 이원규 선생님을 모시고 그의 삶을 들어봤습니다. 1부에서는 문경의 가난한 산골 마을에서 태어나 우연히 만난 국어선생님(시인)을 통해 시와 인연을 맺고, 절에서 간첩으로 몰려 고초를 겪었던 젊은 시절, 그리고 서울에서의 노동운동과 기자 생활을 뒤로하고 오토바이 한 대로 지리산에 내려오기까지의 여정을 담았습니다. 00:00 인트로 00:39 시인 이원규를 만나다 02:45 가난한 산골마을 시인 국어선생님 04:35 중2때 출가하고 간첩으로 몰린 사연 06:46 절에서 만난 단 한권의 책 07:39 검정고시와 대학 진학, 시인 데뷔 09:44 시인이 된 후의 환멸과 노동운동 12:01 서울살이와 위장취업 기자 생활 13:40 오토바이 타고 지리산으로 17:11 이현상의 유품을 찾아헤멘 빗점골 20:15 지리산 정착 — 이장과의 만남, 98년 수해 23:30 오토바이로 지리산 곳곳을 홀로 탐색하다 #이원규시인 #지리산사람들TV #지리산 #시인인터뷰 #윤주옥 #지리산 #지리산시인 #행여지리산에오시려거든
    • 사람이야기
    2026-08-01
  • 구름도 누워 쉬는 지리산 깊은 산골 '와운마을' 이야기 - 양순자, 박금모 선생님 인터뷰
    지리산 깊은 골짜기, 뱀사골 끝자락에 자리한 와운마을을 찾았습니다. 이번 영상에서는 와운마을 토박이 양순자 선생님과 명품마을 초대 운영위원장을 지낸 박금모 선생님 부부를 만나, 구름도 누워 쉬어간다는 '와운(臥雲)'마을의 어제와 오늘을 들어봤습니다. 화전민 시절 조릿대 열매로 죽을 쒀 먹던 보릿고개 이야기부터, 한 반에 형제자매가 뒤섞여 공부하던 와운분교의 추억, 밤새 인월장을 오가며 생선을 짊어지고 오시던 아버지의 이야기까지 — 지금은 사라진 산골 마을의 생생한 삶이 담겨 있습니다. 또한 마을을 지켜온 수호신 천년송(할아버지·할머니 나무) 당산제 이야기, 호랑이와 반달가슴곰이 출몰했던 산골살이의 기억, 그리고 지리산 국립공원 유일의 명품마을로 지정되기까지의 과정도 함께 들어봅니다. ???? 지리산 뱀사골 와운마을, 그 깊은 이야기 속으로 함께 떠나보세요. 양순자선생님 인터뷰 00:00 인트로 00:38 지리산 와운마을 어린 시절의 풍경 01:07 언니, 동생이 같은 반에서 공부한 와운분교 05:27 인월까지 장보러 가던 옛길과 추억의 샘물 09:51 민박과 식당을 시작한 유래 11:15 호랑이, 곰, 마을을 지켜준 천년송 14:50 와운마을이 이렇게 되기를 박금모선생님 인터뷰 16:39 세번을 옮겨 터를 잡은 와운마을 19:13 구름이 누워있는 마을 - 와운마을 21:37 자연환경이 가장 좋은 마을 23:12 아내의 고향으로 들어와서 살게 된 이야기 25:34 지리산 귀농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27:54 반달가슴곰과의 공존 29:42 와운마을에 오시려면 32:16 차없는 마을을 희망합니다 33:45 최고의 선물이 된 '명품마을' 36:06 국립공원공단과 마을은 한 가족이 되어야 37:19 자연이 살아있는 마을, 다시 오고싶은 마을로 만들자
    • 사람이야기
    2026-07-16
  • "내 마음대로 안 돼서 괴로우신가요?" 지리산 쌍계사에서 만난, 법제스님이 건네는 따뜻한 차 한 잔과 위로의 차담
    안녕하세요, 지리산사람들TV 윤주옥입니다. 오늘 저희가 만난 분은 지리산 단천마을 출신이자, 현재 쌍계사 템플스테이에서 따뜻한 차담(茶談)을 통해 수많은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고 계시는 '법제스님'입니다. 평범한 대학생이자 직장인이었던 20대 후반, 과감하게 출가를 결심하게 만든 불교의 '탐진치' 가르침부터 다시 천혜의 고향 지리산 단천마을로 돌아오게 된 유쾌한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아침에 눈떠서 잠들 때까지의 모든 순간이 수행이라는 스님의 말씀처럼, 상처받고 지친 현대인들에게 '걸림돌을 디딤돌로 인식하는 법', 그리고 마음의 설정을 내려놓는 지혜를 전합니다. ???? 쌍계사 템플스테이 참여 방법 인터넷 검색창에 '쌍계사 템플스테이'를 검색하시면 체험형(티소믈리에, 선다회 다도 체험) 및 휴식형 프로그램을 간편하게 예약하실 수 있습니다. 언제나 소박하게 열려 있는 법당으로 마음 쉬어가세요. https://www.templestay.com/fe/MI000000000000000062/temple/introView.do?templeIdTmp=Ssanggyesa_hd -- 타임라인 -- 00:00 인트로 00:43 쌍계사에서 법제스님과 함께 01:31 해발 500m 아름다운 단천마을 04:13 어리석음에서 지혜로, 고뇌 끝에 선택한 출가 06:55 수행은 마주하는 나를 살피는 시간 09:53 고향으로 돌아온 쌍계사 템플스테이 지도법사 12:45 차(茶) 문화를 이어가고 있는 쌍계사 17:30 지친 현대인들을 위한 쌍계사만의 특별한 차담 20:52 100% 즐기는 쌍계사 템플스테이 22:24 지리산과 반달가슴곰 이야기 23:57 유기동물 30마리와 함께 살아가기 26:04 언제나 소박하게 열려 있는 단천마을 법당 27:07 행복해야 한다는 설정을 버리면 마음에는 평화가
    • 사람이야기
    2026-06-23
  • 지리산의 옹달샘, 설산습지에서 만난 하동생태해설사회 정명희 대표
    지리산의 푸른 품 속에 숨겨진 보석, '설산 습지'를 아시나요? ???? 우리나라 국토의 단 0.01%밖에 되지 않는 귀한 산지 습지이자, 목마른 야생동물들이 찾아와 목을 축이고 수많은 생명이 산란하는 지리산의 소중한 옹달샘, 설산 습지 현장을 다녀왔습니다. 학교 교실을 벗어나 자연이라는 거대한 공간에서 아이들과 온몸으로 호흡하며 생태 놀이를 이끌어가는 '하동생태해설사회' 정명희 대표님과의 깊이 있는 인터뷰! 삵과 담비가 뛰놀고 섬휘파람새 소리가 지저귀는 설산 습지의 특별한 이야기부터, 지리산의 자연을 진정으로 느끼고 보호하기 위한 올바른 탐방 에티켓, 그리고 지역 어린이들을 '어린이 해설사'로 키워내는 감동적인 활동 이야기까지 지금 영상으로 만나보세요. 00:00 인트로 00:30 설산습지를 만나는 방법 01:52 대한민국 0.01%의 귀한 보물, 산지 습지 02:46 물이 많은 산 지리산, 10곳의 규모 있는 습지들 03:25 야생동물들의 옹달샘, 생명을 품은 습지 05:25 삵부터 문수조릿대까지, 설산 습지의 생명들 07:55 "조용히 쉬어가는 공간으로" 설산 습지 탐방 에티켓 09:32 어린이 해설사와 함께 '동정호 생물다양성의 날' 12:11 하동의 자연을 사랑하는 하동생태해설사회 자연을 사랑하고 지키는 가장 아름다운 발걸음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지리산사람들TV #많은_관심_부탁드립니다 #설산습지 #지리산국립공원 #산지습지 #하동생태해설사회 #정명희대표 #생태해설 #지리산습지 #생물다양성 #동정호 #어린이해설사 #생태교육 #환경보호 #지리산여행 #하동여행 #자연다큐키는 가장 아름다운 발걸음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 사람이야기
    2026-06-01
  • 사진으로 만나는 지리산 옛모습 - 우두성 선생님의 지리산 이야기 6
    “1955년, 등산복도 등산화도 없던 시절의 지리산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지리산 국립공원 지정의 역사를 다룬 우두성 회장 인터뷰, 그 마지막 3부에서는 숭고한 정신을 증명하는 귀한 사진과 기록물들을 대중 앞에 펼쳐 보입니다. 연하반 초기 멤버들이 구례읍 서시천 징검다리를 건너던 1955년의 그날부터, 등산 장비가 없어 남대문시장에서 군용 텐트와 판초를 구해 쓰던 애환, 그리고 폐자전거 흙받이로 이정표를 만들어 지리산 세석평전과 천왕봉에 붙이던 감동적인 순간까지. 시간이 흘러 빛바랜 사진 속에는 지리산을 그 누구보다 사랑했고, 아무런 욕심 없이 산을 지켰던 원로들의 순수한 '자연 애호 정신'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향후 구례의 소중한 역사 자산이 될 기록물들을 바라보며, 우두성 회장님이 오늘날 지리산을 찾는 이들에게 전하는 마지막 당부에 귀를 기울여보세요. 00:00 인트로 00:33 서시천에서 노고단으로 올라가는 첫 걸음 01:37 등산용품이라는 개념이 없었던 시절 02:33 노고단 정상에서 첫 촬영 03:08 자전거 흙받이로 만든 이정표 04:08 지리산에서 취사 04:14 최초의 지리산 안내지도 05:00 노고단 원추리 05:22 노고단 대피소가 생기기 전에 있던 집 06:28 연하굴 06:46 김원규 박사 07:27 사람들 08:38 노고단 선교사 별장 터 08:51 장터목 0858 천왕봉 성도성모상 09:20 자전거 흙밭이 안내판 10:14 쌍계사 벅수 10:58 선비샘 목공 장터 11:16 천왕봉 천주 12:24 60년대 회원들 사진 12:58 1980년 종주등반 13:34 철쭉제, 산나리축제 14:08 기록물을 어떻게 전시하는게 좋을까? 15:31 사람들 16:11 비목 17:04 지리산에 오르는 사람들에게 고함 #지리산 #국립공원 #지리산국립공원 #국립공원1호 #구례 #구례군 #지리산사람들TV #우두성 #우종수 #함태주 #연하반 #지리산역사 #아카이브 #역사사진 #희귀사진 #한국산악사 #기록물 #서시천 #노고단 #천왕봉 #천주 #세석평전 #구술사 #생애사 #역사의기록 #자연보호 #자연애호 #등산역사 #지리산박물관 #지리산사람들
    • 사람이야기
    2026-05-26
  • 구례 군민 10,000가구가 10원씩 모아 만든 기적 : 지리산 국립공원의 탄생 / 장터목 고사목의 비밀 - 우두성 선생님의 지리산 이야기 5
    “가장 가난했던 시절, 구례 군민들은 왜 주머니 속 10원을 꺼냈을까요?” 대한민국 제1호 국립공원, 지리산. 정부의 주도로 당연하게 지정된 줄 알았던 지리산의 푸른 숲 뒤에는, 무분별한 도벌과 권력층의 파괴로부터 산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구례 군민 만 명의 피와 땀이 있었습니다. 이번 인터뷰 2부에서는 극빈층을 제외한 구례의 만 가구가 가구당 10원, 20원씩 마음을 모아 서울의 정부 부처를 움직였던 위대한 풀뿌리 운동의 전말을 공개합니다. 아울러 오늘날 국립공원이 마주한 보존과 지역 주민 생존권 사이의 갈등, 그리고 지리산과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지속 가능한 상생'에 대한 우두성 회장의 깊이 있는 통찰을 만나보세요. 00:00 인트로 01:03 만복대에서 씨감자 재배를? 지리산 개발 보고서 06:32 장터목 고사목의 비밀 - 장터목 제재소와 고의 방화 09:14 지리산 곳곳에서 벌어졌던 벌목 11:28 구례군민들이 10원, 20원씩 모아서 만든 기적 14:53 콘크리트 개발보다는 자연보호가 지역 소득에 도움된다 16:40 국립공원에 바란다 - 노고단 인원제한, 시간제한 18:36 국립공원에 바란다 - 지역민의 임산물 채취 21:40 국립공원에 바란다 - 여름철 계곡 통제 완화 25:27 우리에게 지리산이란 무엇일까? 30:17 기록사진을 남겨주신 함태주 선생의 자연 애호 34:36 지리산을 지키는게 주민에게 이익이 되어야 38:00 지리산과 구례 연하반 - 지리산을 알기위한 필독서 #지리산 #국립공원 #지리산국립공원 #국립공원1호 #구례 #구례군 #지리산사람들TV #우두성 #윤주옥 #10원의기적 #만명의개척자 #풀뿌리운동 #기부운동 #지리산역사 #한국환경운동사 #아카이브 #구술사 #생애사 #장터목제재소 #구상나무 #고사목군락지 #만복대 #씨감자 #고랭지재배 #탐방예약제 #임산물채취 #계곡물놀이 #지리산상생 #지역경제 #환경보전
    • 사람이야기
    2026-05-24
  • "길없는 지리산에 이정표를 세우다" 지리산 '연하반'의 자연 보전사 - 우두성 선생님의 지리산 이야기 4
    “지리산이 국립공원 1호가 되기 전, 그 산에는 누가 있었을까요?” 전쟁의 상처가 채 가시지 않았던 1950년대, 지리산은 단순히 헐벗은 산이 아니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치유의 공간이었고, 누군가에게는 반드시 지켜야 할 민족의 영산이었습니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지리산 보전의 뿌리인 ‘연하반(煙霞伴)’의 태동기를 다룹니다. 우두성 회장의 생생한 증언을 통해, 길도 없던 지리산 주능선에 이정표를 세우고 지도를 그리며 산을 지켰던 선구자들의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타임코드 아래에 연하반 반지문 본문이 있으니 확인해 주세요. 00:00 인트로 01:00 소개 02:40 초등학교 때 소풍으로 걸어 올라간 노고단. 08:06 연하반 - 지리산의 길을 열다 11:53 우리나라 최초의 자연 보호 선언, '연하반 반지문' 14:48 사라지는 숲을 지키기 위한 기록의 시작 19:46 지리산의 길을 만들다 - 자전거 흙받이로 만든 이정표 23:12 1962년 최초의 지리산 등반지도 제작 26:24 날라리봉? 삼도봉? 봉우리의 이름을 정리하다 29:50 군인들의 불법 벌목을 적발하다 烟 霞 伴 伴 旨 太古쩍 먼 옛날에 白頭山으로부터 뻗어나린 太白山脈의 큰 줄기가 南쪽 바다 푸른 물결이 그리워 南으로 南으로 向해 줄다름 치다가 굽이쳐 흐르는 蟾津江 푸른 가람에 가로막혀 그 精氣가 우뚝 솟아 멈추어 섯다는 由緖깊고 傳說어린 智異靈山아래 風光明媚하고 山紫水明 烟霞鄕 求禮!! 여기 烟霞人들의 모임이 있으니 烟霞伴이라 부른다. 烟霞는 元來 山水 卽 自然을 뜻하는 말이니 自古로 世俗的 富貴와 功名을 浮雲처럼 여기고 俗塵을 떠나서 閑雲野鶴을 벗삼아 樂山樂水 雅游瀁氣하는 賢人達士를 烟霞人이라 부른다 이에 烟霞人의 雅趣를 憧憬하고 또한 아름다운 自然과 더부러 짝한다는 뜻에서 烟霞伴이라 名稱하게 된것이니 따라서 烟霞伴은 情熱的으로 山水를 愛好 憧憬하는 이고장 山岳人들의 모임이다 그러므로 우리 烟霞伴은 끝없는 大地위에 펼쳐진 아름다운 山水를 향해 젊음의 浪漫과 情熱을 한껏 쏟아 삶의 보람을 느껴보자는 것이며 淸淨無垢한 大自然의 純潔한 廣場에서 無言의 感化속에 天地浩然의 英氣와 高邁한 人間情緖를 길러 心身의 修養을 쌓아보자는 것이며 또한 날로 荒廢해가는 우리 나라의 自然을 愛好하고 더욱 아름답게 가꾸어 보자는 것이다 大地를 맑게 누비며 흐르는 물줄기와 山野를 덮은 原始林의 푸른숲은 人類發生의 源泉이요, 原始文化의 發祥地이며 또한 人類의 唯一한 마음의 故鄕이 였음에 想到할때 오늘의 우리民族은 祖國江山의 荒廢로 因하여 마음 둘곳없는 精神的 失鄕民이 되어가고 있음을 自覺하고 痛歎하는바 이에 우리 烟霞伴은 잃어가는 綠地帶 마음의 푸른 故鄕을 다시 찾으려는 自然愛好運動의 先驅되어 民族的 情緖運動의 줄기찬 噴水가 되고저 自負하고 이땅에 自然愛好의 烟霞運動을 저마다 고장마다 일으켜 이름 그대로 地上의 樂園 錦繡江山을 이룩하는데 寄與하고저 함이니 이 江土위에 아름다운 自然이 蘇生되여 우리 겨례가 마음의 故鄕을 다시 찾게 되는날 槿域의 삶위에 보다 瑞光 빛나리 一九五五年 五月 五日 求禮烟霞伴 #지리산 #국립공원 #지리산국립공원 #국립공원1호 #연하반 #구례 #지리산사람들TV #우두성 #우종수 #지리산역사 #한국산악사 #기록 #아카이브 #자연보호 #자연애호 #노고단 #화엄사 #지리산지도 #구술사 #생애사 #지리산종주 #역사기록 #1955년 #개척사 #환경운동 #생태보전 #지리산탐사 #지리산사람들 질문하기
    • 사람이야기
    2026-05-13
  • "우리는 그냥 쓰임을 받겠습니다" 생명과 평화의 길을 걷는지리산종교연대 노재화 목사 인터뷰
    지리산 만인보 시절부터 지금까지, 2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지리산의 아픔과 기쁨을 함께해온 노재화 목사님. 함양 백전면 녹색대학과의 인연으로 시작된 그의 지리산 살이는 건물 없는 교회 ‘산들교회’를 거쳐, 이제는 모든 이웃의 영적 여정을 돕는 안내자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갈등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종교 간의 화합’과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침묵의 영성’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00:00 인트로 01:06 녹색대학과 함양으로의 초대 05:15 건물 없는 교회와 마을 사역의 시작: 산들교회와 공부방 08:49 귀농인의 정착을 돕는 경제 공동체: 커뮤니티 공간 ‘산들내’ 11:11 댐 백지화의 기적: 기도로 시작된 종교인들의 응답 14:53 아픔을 보듬는 소명: 지리산종교연대 20:51 다종교 혼성 중창단 ‘길동무’ - 노래로 종교의 벽을 넘어 24:51 지리산의 어른들을 기억하며 27:38 영성이란 무엇인가: 성장보다 본질, 소리보다 침묵 37:19 서울과 지리산을 잇는 영적 여정: 한국샬렘 영성훈련원 43:05 내려놓음의 미학: 무거운 의무에서 평온한 자유로 48:17 기꺼이 쓰임 받는 ‘영적 동반자’의 길
    • 사람이야기
    2026-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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