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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파지眞理把持(사티아그라하)
- 진리파지眞理把持(사티아그라하) ► 一神降衷일신강충, 性通光明성통광명, 在世理化재세이화, 弘益人間홍익인간 (본래 신성이라고 할 수 있는 진성이 사람의 중심에 내려와 있으며 이 본성을 통하면 모든 것이 환하게 광명해진다. 이러한 근본 이치(진리)를 펼치는 세상을 이루어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해야 한다) 위 구절은 『三一神誥삼일신고』의 내용과 목적을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는 말인데 괄호 속 구절의 해석은 이해를 돕기 위해 필자가 말을 조금 덧붙였다. 『三一神誥삼일신고』는 우리 상고사 속의 경전으로 진리의 모체가 되는 원리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천부경’과 함께 단군 이전의 시절부터 백성들을 일깨우기 위해 쓰였던 경전인데 삼성기전과 단군세기, 태백일사 같은 책에서도 ‘백성들을 교화할 때 천경(천부경)과 신고(삼일신고)를 가르치고 환단의 옛 역사를 강론했다’고 나온다. 이 경전들은 처음에는 구전되다가 환웅시절에 녹도문자로 기록되었으며 단군시절에 와서 가림토 문자로 기록되었고 이후 한자로 전해져 지금에 이른다고 전한다. 이런 상고사 속의 경전들은 학계에서는 환국 7세, 신시의 환웅 18세, 그리고 단군 47세의 상고사 자체를 고증하기 어려워 인정하고 있지 않지만, 나는 중국의 고서나 우리의 고문헌 속에 단편적으로 나오는 구체적 사실 언급들을 보면 존재했던 과거사임은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어쨌거나 삼일신고의 三一思想삼일사상은 우리 민족 고유의 사상이며 천지인(天地人) 우주만물이 하나라는 사상을 기초로 하고 있다. 이는 좀 넓게 보면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동학의 인내천 사상과도 상통하며 모든 생명은 서로 뗄 수 없는 하나의 존재라는 생명평화결사의 ‘어울림 삶 무늬’의 의미와도 그 괘를 같이 한다. 위의 ‘一神降衷일신강충’은 하나의 신이 몸 가운데 내려와 있다는 것인데 이는 삼일신고의 2장 一神에 나오는 구절인 ‘자성구자自性求子강재이뇌降在爾腦’의 구절에서 비롯된다. 자성自性은 자신의 본성이니 자성구자自性求子는 그 본성에서 하나님의 씨를 구하라는 것이고, 강재이뇌降在爾腦’는 너의 머릿골 속에 내려와 있다는 뜻이니 이는 곧 스스로의 본성(본래면목)은 신성의 그것이며 이미 가지고 태어났으니 스스로의 안에서 찾고 구하라는 말이다. 그리고 性通光明성통광명은 그 본성을 통하면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실상을 바로 볼 수 있는 빛과 같은 밝은 지혜가 생긴다는 것이며 在世理化재세이화, 弘益人間홍익인간은 이러한 이치와 진리를 통해 세상을 다스려서 인간세상을 널리 이롭게 해야 한다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일신강충과 성통광명’은 性通성통을 말한 것이고 ‘재세이화 홍익인간’은 功完공완을 말한 것인데, 요즘에 맞춰 말하면 性通성통은 인간의 참성품을 깨달아 자기완성에 이르는 것이며 功完공완은 그것을 바탕으로 사회적 실천을 완성한다는 사회적 삶에 관한 것이다. 한마디로 자신을 닦아서 진리를 깨달아 세상에서 실천을 완성하라는 것인데 이것이 바로 삼일신고에서 말하는 性通功完성통공완의 진리다. 나는 『三一神誥삼일신고』를 보며 상고(上古)의 그 오랜 옛날 정신세계는 오늘날의 그것과 비교할 때 훨씬 높았으며 세상을 살아내는 구체적인 삶 또한 더 바르고 깊었을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오늘날의 과학기술문명이 삶의 풍요로움과 편리함을 가져오기는 했으나 그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자본주의에 이르면서 인간의 끝없는 욕망을 부추겼고 인류 역사의 모든 사건 사고가 이것으로부터 비롯되었음을 본다. 그리고 상고의 시대건 요즘과 같은 문명의 시대건 사람의 본질은 같은 것일 테니 삶의 근본 원리 또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사실 ‘나(우리)는 왜 사는가?’라는 근본 질문보다는 먹고 즐기는 것에 우선을 두고 사는 현대의 우리에게 절실한 것이다. 또한 진리가 삶의 바탕에서 운용되는 세상이야말로 진정한 유토피아이고 사랑과 평화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진리가 책 속에만 있고 일상 삶 속으로 내려오지 않는 한 태어나면서부터 존재한다는 머릿골 속의 높고 귀한 신성의 자성은 자신의 것이 아닐 것이다. 다시 말하면 끝내 먹고사는 일의 일차적 욕구만으로 세상을 살다 간다면 요샛말로 정작 메인요리는 먹어 보지 못하고 에피타이저만 먹고 끝나는 것이니 그 또한 얼마나 억울하고 손해 보는 일인가. (박두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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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텁나루숲, 그대
- 두텁나루숲, 그대 박 두 규 1. 비가 그치기 전에 숲에 갈 수 있을까 비가 소리 없이 내린다. 오늘 같은 날은 숲에 가고 싶다. 숲 어귀 파초 잎사귀 아래 비를 긋고 있는 휘파람 소리 하나 있을 것이다. 그 소리의 반경 안에 그대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반백이 되어 숲에 들어도 그대를 통속通俗하지 못하니 언제나 그대를 안을 수 있을 것인가. 비가 그치기 전에 숲에 갈 수는 있는 것인가. 2. 숲에 들다 그대 눈부신 속살에 들면 편백나무 서늘한 그늘 어디쯤에 정처 없는 것들의 거처가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다만 그 생각이 무사하기를 빌며 그대 앞에 이르렀을 뿐이다. 그대 안에 드는 일이 두렵기도 하나 단지, 때가 되어 어미의 자궁 밖을 나왔던 것처럼 마침 한 줄기 바람이 불어온 것뿐이라고 생각해본다. 그렇게 또 날이 저물었다. 그대의 어디쯤에 달빛에 빛나는 지붕 하나가 있기를 바란다. 그곳에 들어 내 눈부신 맨몸을 볼 수 있다면 사랑한 사람들이 이승을 떠난 것도 잠 못 이루는 짐승들의 매일 밤 울음소리도 그대에 이르기 위한 육탈肉脫의 시간이었다고 생각하리. 강줄기를 타고 오는 한 줄기 바람에도 이승의 한 십년을 뚝, 떼어낼 수 있기를 바란다. 숲에 쌓인 무수한 잎들의 신음소리가 나의 일상으로 진입해 오고 해가 지는 세상의 두려움 위로 설레는 가슴은 늘 두근거리기를 바란다. 그렇게 허물을 벗고 단 한 번의 해가 오로지 나에게로 올 것을 믿는다. 나는 달이 뜨는 그 숲으로 걸어 들어갔다. 3. 헛꽃 -산수국꽃은 너무 작아 꽃 위에 또 헛꽃을 피워 놓고 제 존재를 수정해 줄 나비 하나를 기다린다. 숲에 들어 비로소 나의 적막을 본다. 저 가벼운 나비의 영혼은 숲의 적막을 날고 하얀 산수국, 그 고운 헛꽃이 내 적막 위에 핀다. 기약한 세월도, 기다림이 다하는 날도 오기는 오는 걸까. 이름도 없이 서 있던 층층나무, 때죽나무도 한꺼번에 슬퍼지던 날 그리운 얼굴 하나로 세상이 아득해지던 날 내 적막 위에 헛꽃 하나 피었다. 4. 축시丑時의 숲 숲의 어둠 속, 소리 없이 흐르는 고요를 본다. 이 고요, 결코 붙잡지 말고 반딧불이의 느린 유영처럼 따라 흘러야 한다. 축시에 이르러 숲길의 풀들은 온통 이슬로 촉촉하니 수천수만의 내가 잠에서 깨어 홀가분하다. 파편처럼 박혀있던 외로움도 회한도 황홀했던 시간도 모두 투명한 침묵이 되어 풀잎에 매달려 있다.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들이 이토록 나의 몽상夢想을 깨운다. 축시의 숲, 이 찰나의 어디쯤에서 그대가 나를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5. 숲에서 길을 잃고 숲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이제야 그대 있음을 눈치챘어요. 때죽나무 하얀 꽃들이 떨어진 길을 걸으며 풀섶에 숨은 듯 피어있는 동자꽃을 보며 무심히 날아오르는 새들의 소리를 들으며 이 모든 것이 그대라고 생각했지요. 하지만 종일토록 걷고 또 걸어도 태양을 도는 행성처럼 반경은 좁혀지지 않네요. 그대의 광휘는 보이나 이를 수 없네요. 아, 그 빛은 밖에서 오시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 빛나는 것인가요. 이 숲의 어디에나 있는 한 그루 나무처럼 나무의 무수한 이파리처럼 보이지 않지만 몸을 감싸는 향기처럼 그 빛이 이미 내 안에 있다 해도 나는 나로 꽁꽁 묶여 그대에게 갈 수 없습니다. 눈 코 입 귀 내 모든 감각을 잃고 마음까지 잃어 그대를 그리워할 수도 없을 때 그래야 그대와 하나 될 수 있다는 말은 너무 가혹합니다. 스스로의 모든 것을 잃어야 하나 된다는 것은 너무 가혹합니다. 오늘도 이토록 가여운 나를 위로하며 강물을 거슬러 오르건만 나는 아직도 숲에서 길을 잃고 헤맵니다. 그대의 반경만을 빙빙 돕니다 6. 반짝이는 비늘의 물고기처럼 지금껏 그대 그림자 좇아 왔으니 그대 또한 반드시 내 숲의 어느 지경에 들어와 있을 것을 믿는다. 별을 바라보거나 혹은 저무는 강가에서 만난 그대의 환영幻影 또한 나를 향한 그대의 연모라고 생각한다. 그래, 이미 내 안의 어디에 들어와 나의 술래잡기가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그대를 좇아 온 한 세월은 언제나 매듭을 지을 수 있을 것인가. 아직도 마음은 오만 가지의 생각이 맴돌건만 이 저자거리의 모퉁이를 다 도는 어느 날, 그대 불현듯 나에게 오실 것을 믿는다. 비늘의 반짝임과 함께 순간적으로 방향을 전환하는 물고기처럼. 7. 푸르샤여, 나의 푸르샤여 히어리꽃 눈부신 봄 숲길을 걸으며 사랑하는 그대를 생각합니다. 어디쯤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나는 그대의 길을 걷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발길 머무는 곳마다 눈길 가는 곳마다 그대 있으니 아무런 걱정 없이 모두가 나의 길이지요. 하지만 그대 생각만 벗어나면 오랜 슬픔은 다시 나를 찾아오고 나는 그대를 잃고 숲속의 미아가 됩니다. 아무 곳도 갈 수 없고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종일토록 울면서 보냅니다. 푸르샤여, 나의 푸르샤여 어디에 있나이까. 나를 온통 채우고 있던 그대여. 두려움과 죽음이 내려앉은 적막의 숲에서 한 줄기 강한 빛의 광휘를 기다립니다. 다시금 그대의 나를 떠올립니다. 푸르샤여, 그대를 기다립니다. 어둠 속 고요에 떠오른 나의 주검이 긴 호흡에 실려 흘러가는 것을 조용히 바라봅니다. 고요의 바다에 소리 없이 파문이 일고 빛의 몸, 가득한 사랑입니다. *푸르샤는 파라마 푸르샤를 말하며.. 지고의 의식으로 내 안의 신성에 닿아.. 그 합일을 기원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8. 그렇게 그대가 오면 숲길에서 꽃 한 송이에 걸음이 멈추면 나는 그 꽃입니다. 밤하늘 바라보다 별 하나 눈 마주치면 나는 그 별입니다. 세상의 어떤 슬픔 하나 마주쳐도 나는 그 슬픔입니다. 어느 순간, 그대가 오면 나는 그대일 뿐입니다. 9. 나마스카 그대의 영혼에 안부를, 나마스카 강 노을과 함께 산마루에 해가 저물고 이승의 하루가 스러지는 시간이 되어서야 겨우 그대를 떠올리게 됩니다 세상 속 홀로 저무는 하루를 보며 아직도 남아 있는 내 안의 외로움과 두려움으로 하루의 끝에서 그대를 생각합니다 나마스카, 아름다운 내 영혼 그대여 종일토록 그대를 찾아 헤맨 고단한 육신도 말없이 곁을 지켜준 모든 것들에도 어둠 속 야윈 달빛에 기대어 안부를 전합니다 나마스카, 깊은 밤 고요를 흐르는 은하여 아직도 세상의 화려한 불빛을 좇아 흐르는 저에게 별빛에 젖은 촉촉한 눈망울과 숲속의 부드러운 바람결을 기억하게 하소서 그것이 모두 그대가 보내는 안부임을 알게 하소서 나마스카, 사랑인 줄 알게 하소서 ---------------------------------------------------- ■ 이 시는 섬진강 국제실험예술제에서 쓰인 행사를 위해 재구성한 연작시이다. 나는 실험예술같은 앞서가는 문학을 하는 사람은 아닌데 섬진강가에 사는 시인들이 불려나오면서 같이 하게 되었다. 시인이 시를 낭송을 하는 동안 화가가 그 시에서 받은 느낌을 옆에서 그림으로 그리며 퍼포먼스를 하는 거였는데 나의 시를 표현할 아티스트는 임택준이라는 분이었다. 10여분 동안 주어진 시간이었고 나는 '두텁나루숲, 그대' 라는 제목의 연작시를 낭송했다. 이 시는 지금까지 발표한 두텁나루숲 관련 시들 중에서 9편을 선별하여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 재구성한 것인데 그것은 그대(파라마푸르샤)를 찾아 숲에 들어가는 과정과 들어가서, 그리고 현재까지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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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텁나루숲, 그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