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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골프장무산 환영 인터뷰] “우리가, 지리산이, 꼭 이길 거라고 생각했다”
- “우리가, 지리산이, 꼭 이길 거라고 생각했다” 지리산골프장 사업 무산 뒤, 사포마을 경숙을 만나다 2023년, 지리산 자락 숲의 아름드리 수만 그루가 잘려 나갔다. 시뻘건 흙이 다 드러났다. 마구잡이로 베어진 나무들이 물길을 막아 계곡물은 뿌옇게 변했다. 100평 넘게 있던 야생화 앵초 군락지도 쓸려나갔다. 27홀 규모 지리산골프장 개발 욕심으로, 축구장 30여 개 넓이 숲이 나무 무덤이 된 터였다. 바로 그 숲에서 50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사포마을이 있다. 예부터 아름다운 다랑논으로 이름나 전국 사진작가들이 찾는 구례군 산동면 사포마을. 그 마을에 경숙이 살고 있다. (가을 사포마을과 다랑논 Ⓒ김인호) 마을에 뭔가 큰일이 나겠구나 경숙은 평소 마을 뒤 숲을 자주 올라다니지 않았다. 마을 일에도 나서고 싶지 않았다. 나이를 먹은 뒤 귀촌한 이 마을에서는 그저 조용히 평화롭게 살고 싶었다. 그러나, 그런 그에게 느닷없이 들이닥친 일들은 그를 움직이지 않을 수 없게 했다. 경숙은 마을 숲에서 주검처럼 널브러진 수만 그루 나무 시신들을 보자, 뭔가 큰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갑자기 동네 분이 저기 위에 숲에 나무가 다 베어졌다고 그러시길래, 저는 가볍게 생각했어요. 누가 좀 와서 몇 그루 베어 갔는가 보다고만 생각했는데, 그분 표정이 너무 심각한 거예요. 그래서 제가 올라갔어요. 나무가 너무너무 베어져 있는 거예요. 순간 아, 뭔가를 하는구나, 하고 느꼈죠. 그러면서 흐릿하게 있던 기억이 떠올랐어요. 아, 골프장을 하려는 거구나.” 8만 6천 평 숲이 벗겨졌다. 그러고 150만 제곱미터, 45만 평 숲에 골프장을 짓겠다니. 구례군은 골프장 예정지 바로 옆이 지리산국립공원이라는 점도 예정지에 생태·자연도 1등급 지역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도, 멸종위기야생생물 수달과 담비와 삵의 흔적이 발견되었다는 점도, 골프장의 농약과 제초제가 다랑논과 섬진강으로 흘러들 거라는 점도, 하나도 신경 쓰이지 않는지 지리산골프장을 밀어붙였다. (사포마을 뒤 지리산 자락 숲에 마구잡이로 베어진 나무와 벗겨진 땅) 혼자 싸울 수 있을까, 버틸 수 있을까 경숙은 그날 이후로 하루도 잠을 편히 이루지 못했다. “아, 이거 어떡하지, 어떡하지, 내가 과연 이거를 싸워낼 수 있을까? 우리는 힘이 없는데 어떻게 저 골프장을 막지, 하고 별생각을 다 했어요. 처음엔 나밖에 싸울 사람이 없을 거로 생각했어요. 동네 분들이 함께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요. 내가 평소에 동네 분들이랑 어울리지도 않았고, 또, 예전에 사회운동을 해 보면서도 느낀 건데, 항상 아픈 사람들만 아프지, 방관자들은 끝까지 모르는 척하고 착취하는 사람은 끝까지 착취하는 세상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치만, 내가 이 싸움을 나만을 위해서, 내 뒷마당엔 안 돼 같은 이기적인 마음으로는 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어요.” 사포마을은 오래전 이곳을 일군 주민들의 땀이 빚은 마을이다. 농사지을 땅이 모자라 돌과 흙을 이고 지어, 한 사람 한 사람 몸뚱이로 일군 다랑논 마을이다. 경숙은 이런 피눈물 나는 삶의 터전 위에 골프장을 짓겠다는 상황을 도저히 가만둘 수 없었다. 세수를 들먹거리며 제 욕심이나 차리려는 인간들을 용서할 수 없었다.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경숙은 얼마나 걸릴지 모를 싸움을 시작하려고 마음먹었다. 늘그막을 보내려고 마련한 집을 다 팔아 그 돈으로 변호사라도 불러야 하는 게 아닌지, 이 적은 돈으로 싸움을 계속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렇게 경숙이 불타오르자, 그의 신랑 일용이 한마디 했다. “그이가 저보고, 그렇게 극단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일단 마을 사람들과 얘기해 보자고 했어요. 함께 동네 분들을 만나러 갔죠. 그런데 동네 분들이, 그 어르신들이, 제 말에 무척이나 공감해 주시는 거예요. 얼마나 위로를 받았는지 몰라요. 이 마을에 골프장이 웬 말이냐고 그러면서 예전에 골프장 반대하며 싸웠던 이야기도 해 주셨어요. 참 힘을 많이 받았지요.” 곁에, 사람들이 있었다 사포마을이 골프장 싸움에 휘말린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2004년에도 사포마을 어르신들은 앞장서서 지리산골프장에 반대했다. 당시 어르신 여섯 분이 사업주 측으로부터 폭행을 당해 병원에 입원하기까지 했다. 그렇게 주민들이 소리 높여 골프장을 막아낸 곳이 바로 이 사포마을이다. 그런데 또 ‘이놈의 지긋지긋한 골프장’이 들이닥친 것이었다. “지금 군수와는 말이 전혀 안 통하니까, 다른 정치인들한테 연락했어요. A는 자기가 힘이 없다고 하고, B는 자기가 돈이 없다고 하고. 그때 참 실망했죠. 우리 구례 정치인 중에서 군수랑 싸울 수 있는 사람이 없더라고요. 그러다가 제가 <봉성신문>에 연락하게 된 거예요. 그때 발행인이었던 안상술 선생님이 참 제 말을 다 들어 주시고, 힘이 돼 주겠다고 하셔서, 그때 제가 정말 집에 와서 울었어요. 그러고 나서 지리산사람들과 윤주옥 대표도 알게 되고, 대표님이 정말 큰 힘이 되었어요. 돈도 안 되고 아무도 돌보지 않으려는 산을 발 벗고 나서서 지키려는 사람이라 정말 믿음이 갔어요. 아, 이제 뭔가 실마리가 있겠구나, 우리 지역에 이런 분들도 있구나.” 경숙은 뜻이 맞는 마을 분들과 시민사회단체 사람들의 손을 잡을 수 있었다. 2023년 4월 11일 ‘지리산골프장 개발을 반대하는 구례사람들’ 모임이 시작됐다. 뒤이어 마을 주민들이 모여 ‘사포마을 골프장 건설 저지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도 만들었다. 이들은 기자회견을 열었고, 여기저기 언론사 취재가 이어졌다. 또 6월엔 마을에서 하지축제를 열어 지리산 숲과 다랑논을 지키자는 목소리를 더 높였다. 그 뒤로도 여러 사람이 파괴된 숲에 와 슬픔을 나누고 저항 의지를 다잡을 수 있도록 숲과 사람들을 연결했다. 각지 시민들이 지리산골프장을 반대하는 뜻으로 후원금을 보냈다. 감사원에 구례군 감사를 청구하고, 경찰에 불법 행위를 고발하는 일도 있었다. 2023년 10월에는 한국내셔널트러스트 ‘이곳만은 지키자’에 사포마을 다랑논이 환경부장관상을 받기도 했다. 혼자가 아니라, 모두가 함께여서 가능한 일들이었다. “솔직히 저는 이 싸움이 질 거라고 한 번도 생각 안 했어요. 왜냐하면, 이거는 나의 뒷마당도 아니고, 내가 땅 투기용으로 사놓은 땅도 아니고, 그냥 지리산이잖아요. 지리산을 파헤치는 일은 있을 수가 없죠. 지리산이 우릴 지켜 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온 정성을 다하자, 최선을 다하자, 그렇게 생각하니까 우리 주민들도 있고, 지리산사람들도 있고, 나와 똑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하더라고요. 내가 혼자서만 싸우려고 한 게 교만이었구나.” 경숙은 혼자가 아니었다. 산을 그대로, 강을 그대로, 들을 그대로 두자는 이들이 세상에 이렇게 함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덕분에 인생에 위로를 받았다고 했다. (이야기하는 경숙) 지리산골프장 사업 무산 소식, 그리고 2025년 10월 19일, MBC는 구례군이 지리산골프장 사업을 사실상 무산되었다고 본다는 취재 영상을 내보냈다. 지리산골프장 사업이 엎어졌다! 주민과 시민의 승리다. 사업자 사이에 토지 다툼이 있어 2026년 초까지 마쳐야 할 인허가 과정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고 한다. 시민사회는 산주가 이사로 있는 사업 시행자가 사업 실행력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사업 초기부터 여러 근거로 제시했지만, 구례군은 시행자와 MOU를 맺으며 지리산골프장 사업을 대대적으로 홍보해 왔다. 그래 놓고 이제 ‘사실상 무산’이라며 산주에게 원상복구 명령을 내리겠다고 한다. 소중한 행정력이 낭비되고, 숲은 파괴되고, 지역 공동체는 찬성과 반대로 갈라져 싸우게 된 일은 누가 책임질 셈인가. “피눈물 나는 삶의 터전 위에 골프장을 짓겠다면서 세수 운운하던 군수! 자기 잇속 챙기려고 지리산권을 엉망으로 만들고 군민들 갈라치기 했으면 사죄해야죠. 돈 되면 산을 파헤쳐도 괜찮다고 여기저기 지리산골프장 환영 현수막 걸던 토호 세력들도 반성해야죠.” 사업 무산 소식이 들렸지만, 경숙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지리산골프장을 밀어붙이려던 세력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마을은 찬성과 반대로 갈라져 있었다. 마음 졸이며 보낸 지난 시간도 되돌릴 수 없었다. 지리산은 그냥 있어 주지 않더라 골프장에 찬성했던 어떤 이는 지리산골프장을 시민들이 막아 낸 게 아니라 그저 ‘상황’이 어쩔 수 없게 되어 무산된 것뿐이라며, 지리산골프장을 막은 시민들의 승리를 애써 깎아내렸다. 그러나 그 어쩔 수 없는 ‘상황’도 우리 시민들이 만들어 낸 결과다. 사포마을 주민들을 포함하여 지리산골프장에 반대한 시민들이 한마음으로 골프장 반대 운동에 나선 덕분에 사업이 무산되는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지, 거저 만들어진 게 아니다. 지리산골프장을 만들려던 세력이 편하게 골프장을 만들 수 없도록 그들이 가는 길에 자꾸 돌을 던지고, 돌다리를 하나씩 뺏어서 편히 건너지 못하게 만든 것이 바로 시민들의 힘이다. 사포마을 주민들이 더 갈라지지 않고 포기하지 않게 한 것도 시민들의 힘이며, 지리산 자락에서는 어떤 난개발도 쉽게 벌일 수 없다는 중요한 가르침을 준 것도 시민들의 힘이다. 사포마을을, 그리고 지리산 숲을 모두가 함께 지킨, 우리의 승리다. “지리산은 그냥 있어 주는 게 아니었어요. 내가 움직이지 않아도 그냥 계속 아름답게 있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언제든 지리산을 돈벌이 수단으로 쓰려는 세력은 또 나타날 수 있어요. 그러니 싸움이 여기서 끝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계속해야죠. 모진 노동으로 손가락이 휘고 허리가 굽은 우리 어르신들이 더는 시위에 참여할 일이 없게, 마을이 힘을 키워야죠.”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묻는 말에, 싸움을 계속할 거라는 경숙의 눈빛이 빛났다. 다만, 이제 이 싸움은 지난 싸움과는 다른 방식일 것이다. 경숙은 마을을 소중하게 가꿔서 아무도 훼손할 생각조차 못 하게끔 할 거라고 했다. 마을 사람들과 뭉쳐서 마을의 힘을 키우고 싶다고 했다. 마을에서 공동체 모임을 열어 여러 사람이 숲과 연결되도록 재미난 일들을 꾸려 보고 싶다는 바람도 내비쳤다. “나는, 정말 꼬부랑 할머니가 돼도 여기서 호미질하다 죽을 거예요. 선거철마다 돈봉투 돌리고 또 그걸 받고 하면서 비리를 눈감고, 개발업자들만 배불리는 난개발 사업에도 환영 현수막 걸고, 무슨 빵 부스러기라도 받아먹으려는 사람들 볼 때마다 절망했었거든요. 그래도 여기까지 온 건, 우리 사포마을 주민들이 끝까지 지리산을 지키려고 싸웠기 때문이고, 또 지리산사람들과 지리산을 지키려는 시민들 덕분에 희망을 봐서예요. 이렇게 막아냈잖아요. 우리 다음 세대에도 이런 사람들이 이어지게 우리 마을에서 뭔가를 해 보면 좋겠어요.” (2023년 지리산생명 하지축제 때 숲을 함께 지키자며 모인 사람들 Ⓒ지리산인) 돈의 편이 아니라, 생명의 편에 서자 경숙은 노자산 골프장을 반대하는 시민들이나 산청 차황면 골프장을 막으려는 시민들과도 계속 연대하고 싶다고 했다. 혼자라고 생각했던 경숙에게 손을 내밀어 준 사람들이 있었기에 여기까지 버틸 수 있었듯, 자신 역시 다른 이들의 손을 잡고 힘을 주고 싶어 했다. 또, 지리산골프장 사업을 두고 갈라졌던 마을 주민들이 하나로 뭉칠 수 있게 다리를 놓고 싶다는 바람도 내비쳤다. “지리산골프장 사업을 찬성한 분들도 속으로는 지리산이 그렇게 망가질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을 거예요. 상가 사람들도 어쩔 수 없이 그러셨을 거고요. 골프장에 찬성했던 마을 분들과도 이야기하면서 이제 마을이 하나로 다시 뭉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지리산인> 독자들에게 경숙이 하고 싶은 말을 남겼다. 스스로 싸움에 나설 수 없다면, 그 뜻을 펼치는 사람들에게, 싸움에 나선 사람들에게 ‘우리도 숲을 좋아해요, 강을 좋아해요, 우리도 함께할게요.’ 하고 말해 달라고. 회원이 되어 주고, 그저 옆에 있어 주기만이라도 해 달라고. 그것도 정말 큰 힘이 된다고 말이다. 정말로, 더 많은 이가 생명의 편에 서 주기를 바라며, 자빠진 지리산골프장 사업 결과에 마음 깊은 ‘꼬소함’을 보낸다, 다신 보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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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골프장무산 환영 인터뷰] “우리가, 지리산이, 꼭 이길 거라고 생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