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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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칩코

 

 

<갈토에게>

 

갈토~ 대한을 맞이하며 두번째 편지를 보내요!

먼저, 늦었지만 갈토의 속상했던 마음을 사르르 녹여주고 싶을 만큼 생일 축하해요. 제가 생일 전날 편지를 보낸 건 1월 중 가장 잘 한 일이 되었어요. 뿌듯합니다...


그간 잘 지내셨나요? 저는 갈토가 던져 준 '느긋하게 산다는 게 어떤건지' 라는 질문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보냈어요. 그러던 오늘, 문득 창 밖에 내리는 눈들을 보다가 반짝 떠올랐어요. 생명력이 있는 자연과 현재 이 순간 함께 있음을 느낄 때가 바로 느긋함 아닐까! 하고요. 그 순간이 선처럼 이어진다면 느긋하게 일상을 보낸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될까요? 지리산을 떠나 본가인 인천에서 지내는 요즘엔, 주로 하늘에 뜬 것들로 자연을 만나요. 그래서 그런지 눈과 함께 현재를 느끼는 소중한 경험도 해보네요.


인천이라니, 갈토와 꽤나 가까이 살아서 놀랐지요? 설명을 드리자면, 저도 지리산에서 살고 싶은데 인연이 닿는 집이 좀체 나오질 않아요. 산내라는 마을을 통해 지리산을 만났고, '지리산방랑단'을 하면서 그 외에 다른 지역을 알게 되었어요. 그러던 중 구례에서 느꼈지요.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여기다... 구례는 읍내가 있는데 적당히 상점이 늘어진 거리와 뒤에 펼쳐진 산들이 한적하고 맘에 들었어요.

 

저는 어느정도 번화된 곳을 좋아해요. 도시와 시골의 중간 느낌이랄까요. 시골집에서 흔히 만나는 벌레는 친구들 사이에서도 제가 유독 무서워 해요. 게다가 마을 곳곳에는 풀려 있는 개가 정말 많은데요. 개의 레이더에 걸렸다, 심지어 나를 향해 달려온다... 이러면 뭐ㅎㅎ 평소 위아래로 뛰던 심장이 앞뒤로, 몸 밖으로 뛰쳐나왔다 들어갔다 해요. 지난 날 개가 공격하지 않고 겁만 주고 간 것에 감사합니다...


인간동물들은 '말'하면서 서로 의사를 확인 할 수 있잖아요. 근데 저와 소통 방식이 다른 생물과는 제가 그들을 해칠 의사가 없다는 걸 표현할 방법이 없어서 두려운 것 같아요. 제가 두려워하기엔 그 작은 생물들보다 덩치가 훨씬 큰 게 아이러니지만 벌레와 닿는 촉감이 낯설어서 소스라치게 돼요. 외딴 시골일수록 자주 마주치더라구요. 그래서 어느정도 자연과 단절된(...) 읍내에서 살고 싶은가봐요.


갈토의 말처럼 '서울 중심으로 자원과 권력이 집중되는 것'에 깊이 공감했어요. 서울은 또 자연과 단절된 부분이 많지요. 제 안에는 도시에서 나고 자라면서 경험한 권력의 익숙함 또는 자연과의 단절감이 있고, 그 도시에서 답답함을 느끼고 꿈틀대는 대자연을 향한 본능, 간절함이 있어요. 이 두 감각 속에서 딜레마를 겪고 있지요. 아무튼 읍내에 있는 집 중에서도 아파트는 돼야 벌레나 풀린 개와의 만남을 회피할 수 있겠죠. 결국 아파트 살 돈이 없는 저는 방랑 이후 안성맞춤 보금자리를 못 구한 채 본가로 돌아왔답니다..ㅎㅎ


아쉬운 대로 지리산에는 자주 내려가는 방법으로 작년을 보냈어요. 약 한 달에 한 번씩 내려가서 친구들도 만나고 여러 활동에 참여하는 식으로요. 큰 맘 먹고 여름 한동안은 구례 작은 마을의 친구 집에서 지냈는데요, 그 집엔 많은 곱등이 가족들과 애집개미 군단이 있었어요.


부러운 점이 있었어요. 그 집에는 저처럼 여름 한 철 놀러 온 개가 있었거든요. 그는 애집개미들이 우르르 있는 벽면에 철썩 기대어 잠을 자거나, 바삐 움직이는 거미 뒤에 코를 바싹 대고 따라 다녔어요. 강아지 시절부터 봐와서 저와 퍽 가까운 사인데 그땐 거리감이 살짝 들었어요. 결코 따라할 순 없었지만 벌레와 다정할 수도 있는 모습에 뭔지 모를 안도도 했어요.


풀린 개들과 벌레는 아마 오래오래 제 반려생물이 되어 줄 것 같아요. 제가 그들과 언어로 소통하지 않고도 사랑할 수 있을 때까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겠지요. 나름대로 해마다 두려움의 크기가 작아지고 있기에 앞으로도 기꺼이 기회로 받아 보려고요! 갈토도 궁금해요. 어떤 반려 생물이 계실지요!


편지를 마무리 할 때가 되었네요. 갈토의 편지를 읽고 한 문장 한 문장 모두 답변하고 싶은 충동과 앉은 자리에서 바로 편지를 쓰고 싶은 들뜬 마음이 있었어요. 갈토가 감사 일기 쓰는 멋진 습관이 부러웠구요. 저도 그 이후 열심히 써 보는 중이랍니다! 오늘은 일기를 적극 추천해준 갈토에게 고마운 마음을 담아 이곳에 적어 볼게요.


1. 갈토가 제 편지를 읽어주어서 고맙습니다.

2. 오늘 눈이 내려 고맙습니다.

3. 비건 꼬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서 고맙습니다. (어디서 파나요..?)


그럼 갈토, 다음 편지에서 만나요!

조금 느긋해진 유우야 드림

 

 

<유우야에게 보내는 두 번째 편지>


오늘은 일찍 깼어요. 꿈 속에서 엄청 헤매다가 ‘이건 꿈이야’라는 생각을 하면서 현실로 돌아오는 순간, 잠에서 깨버렸어요. 전날 꽤 피곤해서 잘 자야했는데, 다시 잠에 들지 못했습니다. 뒹굴뒹굴하다가 문득 이렇게 어둠속 에서 잡생각을 할 바에는 유우야에게 답장을 하자,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제부터 편지를 쓰고 싶었는데 시간이 안 났거든요. 유우야에게 편지를 쓰고 싶어서 깬건가 싶기도 하네요. 하하하.


“생명력이 있는 자연과 현재 이 순간 함께 있음을 느낄 때가 바로 느긋함 아닐까!”라는 문장이 좋아서 곱씹어 읽었습니다. 제가 작년에 이사를 했는데 그 전에는 지층에서 오년간 살았어요. 지층에 살면, 날씨가 좋고 쉬는 날이 참 귀해요. 햇볕이 좋을 때 빨래 해서 밖에 널어야 하고 현관문을 열고 그 앞에 앉아 따뜻한 태양의 기운을 느끼곤 했거든요. 그 문장을 읽으며 그 때 느꼈던 느긋함이 기억났어요. 온전히 나의 몸이 밝은 빛과 따스함으로 연결되는 순간의 느긋함. 그 집이 그립지는 않지만, 그 순간은 그립네요. 얼른 날씨가 따뜻해져서 좀더 가벼운 옷차림으로 햇볕을 만나고 싶어집니다.


저의 반려생물은 수경식물들과 은행목이에요. 내가 어떻게 이들과 살게 되었나를 생각해보니, 대단한 인연이구나 싶어요. 제가 예전에 다니던 회사에 대표 취임 축하 화분들이 여러 개 있었어요. 작은 화분들 말고 대형 화분들이었는데, 대표가 변경이 되면서 이전 대표가 받은 축하 화분들을 치워야 하는 상황이 되었어요. 멀쩡하게 자라고 있는 식물들을 버리는게 너무 아까워서 혹시 내가 좀 가져가도 되는지 물었더니 가져가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렇게 행운목과 홍콩야자를 만나게 되었어요. 모두 흙에 심어져 있었는데, 제가 차도 없고 큰 화분을 둘 수가 없어서 가지를 잘라서 가져와 행운목은 수경으로 키우기 시작했어요. 홍콩야자는 흙에 키우려고 흙까지 가져와서 심었는데 잘 적응을 못하길래 수경으로 바꿨더니 잘 자라더라고요. 그래서 이 집이 흙보다는 수경식물이 잘 자란다는 것도 발견했습니다.


은행목도 사연이 있는데요. 제 자리 뒷 편에 입사하신 분께 지인으로부터 입사 선물로 은행목이 배달되었어요. 저는 처음 보는 식물이고 너무 예뻐서 사랑에 빠질 것만 같았어요. 소비욕이 별로 없는 제가 하나 구입할까 인터넷을 검색할 정도로 참 예쁘더라고요. 선물 받으신 분은 선물을 보고 당황해 하셨는데 자신이 똥손이라 키우는 식물마다 결과가 좋지 않았고, 예쁜데 잘 키울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겨울이 되고, 은행목은 점차 잎이 하나 둘 떨어져 갔고, 나중에는 나무 가지조차 말라버렸어요. 그 분이 퇴사하시게 되었는데, 그 예쁘던 은행목 입사귀가 모두 떨어졌고 죽은 나무처럼 보였어요. 그 분이 은행목을 보시면서, 몇 달간 너무 소진된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며 화분을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하셨어요. 자신은 잘 키울 자신이 없다고 하셔서 제가 한 번 키워보겠다고 해서 은행목과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저는 몇 달간 은행목을 정말 정성스럽게 보살폈어요. 인터넷에서 은행목 키우는 법을 찾아보고 아침에 출근하면 햇빛을 많이 볼 수 있도록 밖에 놔두고 오후에 햇볕 자리를 보고 위치를 바꿔 줬습니다. 정말 신기하게 초록빛깔이 돌아오기 시작했고 잎이 나기 시작했어요. 물론 처음 은행목을 만났을 때 만큼 풍성하지는 못했지만, 조금씩 살아났어요. 생명체는 신비롭고 아름다워요. 잎이 사라지고 죽은 건가 쉬는 건가 도통 알 길이 없었는데, 이렇게 짜잔하고 다시 생명의 힘을 보여주잖아요. 3개의 잎이 자라고 열 개가 되는 과정을 보며 마음이 흡족해졌어요. 화분에 영양분을 줘서 더 빨리 자라게 하고 싶기도 한데, 겨우 다시 살아난 은행목이 쉬엄 쉬엄 회복하도록 천천히 시간을 주려고요. 저와 함께 첫 겨울을 맞이하였는데 아직도 푸른 잎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 만으로도 만족스러워요.


은행목이 초록 빛을 내기까지 저의 특별한 집중 관심을 받았지만 저는 게을러서 관리를 많이 해줘야 하는 반려 식물은 잘 못 키워요. 가끔 물을 주면 되는 다육이라던가 수경식물이 잘 맞는 거 같아요. 저의 적절한 무관심이 이 식물들과 잘 맞아요. 하루에 한번 볼까 말까 하다가 좀 시들해보이면 물이 없어서 말라 있으면 새 물을 채워줍니다. 물을 갈아 줄 때 홍콩야자의 새끼잎사귀가 자라는 거 보면 신기하고 너무 귀여워요. 저는 적당한 거리를 두고 이들과 지냅니다. 집에 초록이 들이 많아서 좋고 특히 수경식물이 가습 효과가 좋고 여름에 집 온도 낮추는데도 좋다고 전기도 덜 쓰게 됩니다. 반려 생물 자랑이 너무 길었네요. 하하하


반려 생물과 지내면서 생명체와 살기 위한 책임감에 대해서 종종 생각해요. 제가 너무 게을러서 물을 못 주면, 식물들은 색깔로 신호를 보내요. 나의 게으름을 반성하게 되고 미안한 마음을 담아 물을 줍니다. 저에겐 딱 이 정도의 생명체가 맞는 것 같아요. 밥을 챙겨주고, 소통도 해야하고, 놀아주기도 해야하는 동물 생명체를 키우기에는 저는 너무 게으른 사람이고. 그 책임감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편지를 쓰며 저와 반려생물들이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 생각해보게 되어 좋았습니다. 예전에 어떤 분께서 식물구입과 동물구입이 비슷한 맥락이기 때문에 식물구입보다는 식물입양을 해야한다고 말씀하신 걸 들은 적이 있어요. 공장에서 예쁜 화분들이 만들어지고, 식물들이 시장에서 비싼 값에 팔리고 사람들은 이들을 키우죠. 근데 제가 만난 식물들은 그렇게 선물받은 식물들이 더 이상 갈 곳이 없어질 때 저와 만나게 되었잖아요. 최근 반려 식물이 유행이 되면서 관련 전자제품, 비싼 식물들로 재테크를 하고 시장이 과열되는 게 좀 우려스럽더라고요. 물론 반려 식물은 죽으면 흙으로 돌아가니, 다른 취미보다는 쓰레기가 덜 나오겠지만 생명체를 만나는 것에 대한 고민을 좀더 하면 좋겠어요.


저에게 반려 생물들은 혼자 사는 저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존재들이네요. 나의 게으름을 참아주고 나와 함께 살아가주는 이 존재들이 참 귀하고 감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 오늘 편지는 여기까지 입니다. 세 번째 편지 기다릴게요~


추가: 편지 주제는 함께 정하시는 건가요? 진짜 주제 선정 너무 좋다. 박수X 1,000

저는 대체육 별로 안 좋아하는 넥스트밀에서 나온 불구이 꼬치는 진짜 맛있게 먹었어요~


2023년 1월 19일

갈토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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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 편지 : 유우야와 갈토] 처음 보는 식물이 너무 예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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