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3-03-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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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칩코

 

 

<사랑을 탐구하는 산달에게>


산달! 답신을 고대했노라고 점잖게 전할 작정이었어요. 편지를 보자마자 홀라당 읽어내려갔다가, 눈을 감아도 문장이 아나운서의 프롬프터처럼 동동 떠다니도록 수차례 다시 보았답니다. 어찌나 기뻤는지 앞니가 다 건조해졌느니, 꼭지점댄스를 출 뻔했느니 덧붙이다가, 적다보니 글이 주접스러워 그만 체통을 지키기로 했습니다. 제 예상과는 달리 썩 고상하게 답신을 읽은 모양새는 아니었으나 무척 기뻤다는 말이어요.


산달이 ‘Sandal wood’였다니! 신년에 친구에게 인센스를 선물 받았어요. ‘포트메리온’ 접시를 ‘포토샵’이라고 부르는 엄마와 닮은 저라면, 한번 듣고 곧장 잊어버릴 어려운 이름의 향들이었답니다. 그중 제가 딱 기억하는 것이 바로 산달우드였어요. 향을 잘 아는 친구에게 이건 어떤 향인지 설명을 구할 정도로 기억에 남았지요. 그때 왜 산달을 눈치채지 못했을까요? 산달의 편지를 받고 얼마나 신기했는지 몰라요. 향 이름만큼이나 향 냄새도 좀체 구분하지 못하는 제가 산달우드만은 꼭 기억하게 되길 바라요.


산달의 편지는 꼭 어린시절 읽던 잡지 귀퉁이에 적힌 낱말 퀴즈 해답지 같았어요. 특히 ‘기후운동은 어쩌면 기다리는 일인지도 모르겠어요’라는 문장에서는 엉덩이를 걷어차인 것처럼 눈이 번쩍 뜨였어요. 마치 “인생은 왜 이리 고통스럽습니까!”하는 제자들에게 “인생은 원래 고해다!”라고 설파하는 싯다르타의 법문처럼 들렸답니다. “환경운동은 왜 이리 수신자가 없이 고독합니까!”하는 저에게 “기후운동은 원래 기다림이다!”라는 말이었으니까요. 


지구가 저를 기다려준다는 생각을 자주 해요. 지금은 부족하지만 더 지구답게 살아가도록 인내해주신다고요. 자식을 천 번 만 번 가르치는 어머니처럼요. 어미늑대는 어린 자식에게 처음엔 음식을 토해서 준다고 해요. 당신이 반쯤은 소화시켜서 주는 거죠. 식사를 물어다주는 일이 천 번 반복되고 나면 이젠 사냥법을 천 번... 이토록 친절한 커리큘럼이 있을까요? 지구가 제게도 똑같이 그러고 계시겠죠? 산달의 말마따나, 제가 그 특훈을 경청하고, 수집하고, 마침내 번역할 수 있도록요.


지난 편지에서 ‘못말리는 돈벌레’를 이야기했었죠. 전 어릴 적부터 늘 벌레를 혐오했어요. 이사를 해마다 다녀서 거친 집이 많거든요. 어찌나 싫은 기억이 강렬했는지 저는 ‘불개미가 모퉁이마다 있던 집’, ‘주먹만한 바퀴벌레가 날아다니던 집’ 등으로 집의 역사를 기억해요. 돌이켜보면 벌레는 언제나 반려자였으면서도 언제나 박멸의 대상이었어요. 그런데 언제부터였을까요? 길가의 비둘기에게 더는 욕을 하지 않게 되었을 때? 어깨에 올라온 거미를 세게 밀쳐내지 못하게 되었을 때?언제부턴가 지구가 상냥함을 제게 가르쳐준 거예요.


벌레는 반려고양이랑 다를 게 없다고요. 벌레를 죽이지 말고, 지긋이 관찰해보라고요. 그들은 한밤중 별안간 불빛에 침범 당했을 때조차 고요함을 지킬 줄 알아요. 제 발걸음 소리가 멀어질 때까지 숨죽이는 솜씨 좋은 은닉자에요. 살충제 따위로 누를 수 없는 한겨울 배추같은 생명력도 있고요. 지리산에 오니 반려벌레가 다양해졌어요. 지네, 곱등이, 콩벌레, 노래기 등등… 지은 업이 많아서인지, 지금의 제게 벌레라는 종족은 유난히 애틋해요.


물론 아직 벌레와 악수할 만큼 친하지는 않지만, 제법 그들이 귀엽게 보여요. 단 지네만큼은 아직 매력을 발견하지 못했어요. 발바닥만한 지네가 성큼 집에 들어왔을 때 꼭 지네가 제게 장풍이라도 쏜 것처럼 놀라 나자빠졌답니다. 시골에 오래 산 사람치고 지네에 안물려봤다는 사람을 못만났어요. 너무 공포스럽죠? 다행히 전 아직 지네에 안물려봤는데, 지네에 물린다면 아마 ‘성인식’처럼 ‘촌인식’을 무사히 마쳤다고도 볼 수 있겠어요. 그땐 꼭 축하해주세요(?). 저는 지네의 깜찍함마저 발견하는 법을 연습하고 있을게요. 


아아, 산달! 혹시 이게 사랑일까요? 저는 ‘사랑은 어떤 걸까요?’하는 산달의 물음에 한동안 어름거렸어요. 매일 아침 고구마를 우물거리면서, 창밖의 쌓인 눈을 구경하면서, 고양이와 난로 앞을 지키면서, 재차 떠올렸지만 뾰족한 답을 몰랐거든요. 지금 편지를 쓰자, 목욕탕에서 벌떡 일어나는 아르키메데스처럼 돌연 답이 튀어나온 것 같아요. 천 번의 기다림 속에는, 다정함과 희망과 강인함과 상상력이 있잖아요! 저를 향한 지구의 기다림이 느껴질 적마다 명치에 성냥불 하나만한 따뜻함이 생기거든요. 제가 벌레에게 굴어온 무례를 꾹 참고 끈질기게 천 번 만 번 알려주었잖아요. 지구가 그토록 아끼시는 벌레를 우리집에 또 다시 보내주었잖아요. 그걸 사랑이라고 해도 좋지 않을까요?


지구처럼 기다리는 법을 배워야겠어요. 다음 편지가 올 쯤이면 열흘은 흐른 후일 거예요. 그때의 산달은 “사랑의 새로운 길을 찾았어요!”하고 말을 걸까요? 아니면 새로운 화두에 몰두하고 있으려나요? 산달의 반려생물 이야기를 들려줄까요? 다음 편지까지 꼼짝없이 저는 소한의 편지에 머물러요. ‘음…’, ‘뭔가…’라며 말을 고르는 습관을 가진 사람을, 충분히 이야기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입을 꾹 붙이고 선 사람을, 그런 사람이 거듭 다듬어낸 문장의 무게를 돌아봐요. 오래 손 안에 쥐어 미지근해진 조약돌 같은 온도를 떠올려요. 


대한의 편지를 보채고 싶지만, 저도 산달처럼 차분하게 바로보면서 산달의 세계를 만나볼게요. 가을에 담근 밤조림을 세 달 꾹 참고 겨울에 맛보는 마음으로, 기다림 속에서 비로소 숙성되는 산달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게요. 자신의 편지를 기다리느냐고 물었죠? 몹시 기다려요. 그러니 다음 편지까지 명랑한 나날들 보내세요!


목욕탕에서 벌떡 일어난 덕복희 올림

 


p.s. 새파란 잠자리는 벼가 호박빛으로 물드는 초가을 논둑길에 마지막 남는 푸른빛이에요. 여름색 옷으로 경의를 표하며, 여름이 무사히 떠나도록 마차를 준비하는 기사랍니다. 지리산에선 참새만큼 흔한데, 서울에선 ‘밀잠자리’를 만나기 어려울 지도 모르겠어요. 올 여름 산달이 지리산에 온다면 만날 수 있을까요?

 

 

 

<지구처럼 기다려주는 덕복희에게>

왜 이렇게 웃기죠. 나 참, 웃기다는 말로 편지를 시작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복희의 말들은 마치 단내를 잔뜩 머금은 한라봉의 알갱이처럼 톡톡 튀어요! 향긋한 나머지 저도 모르게 복희의 말들을 잔뜩 따버릴 뻔 했어요. 우리는 좋아하는 대상을 한 번 닮아보고자 서로의 색을 문지르려는 존재들이잖아요. 저만 그런 걸까요? 복희가 아직 세상에 내보이지 않은 문장들을 조르고 싶은 마음이 새록새록 올라와요. 그러나 매 겨울이 제각기 다르게 매섭고 매 봄이 저마다 유달리 포근하듯이, 복희가 찬찬히 재잘거릴 수 있도록 기다려야겠어요.

아, 연필이나 펜으로 편지를 쓴다면, 산달우드 향을 종이에 발라서 보낼텐데요. 그럴 수 있다면 제 서성거리는 말 대신 산달우드 향이 그새를 참지 못하고 발랄하게 인사를 할 거에요. 답답할 수도 있는 제 말들의 빈틈 사이사이에 스며들어 복희가 혹여나 지루해하지 않게요. 엇, 혹시 제가 지금 걱정하고 있나요? 염려라는 것을 하고 있나 봐요. 제 말이 복희에게 어떻게 들릴지, 어떻게 받아들여질지에 대해 말이에요. 복희는 분명 제 이야기를 목욕탕에서 벌떡 일어나면서까지 기쁘게 읽어주었는데 저는 왜 복희의 마음을 앞서서 걱정할까요? 이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인걸까요?

 

복희, 복희가 먼저 제게 말을 걸어 주었잖아요.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하루를 살아가고 있을지 알 겨를이 없는 낯선 사람에게 첫 편지를 적는 마음이 어떤 마음이었을지 상상해봤어요. 저를 어떻게 불러야 할지, 산달씨와 산달님과 산달쌤 사이를 널뛰며 어색해하던 그 마음을요. 늘 수신자가 없이 독백을 일삼던 제게도 침묵은 아직 낯설고 무섭더라고요. 활동가는 늘 낯선 만남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할텐데 말이에요. 매번 하는 회의에서도, 내 생각을 말하는 것은 늘 갸우뚱한 표정과 미지근한 미소를 견딜 용기를 마련해야 하는 일이에요.

 

그런데 복희가 제게 뻗어준 말들은 ‘당신의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었어요.’ 라고 온몸으로 반기는 윙크같았어요. 복희의 격한 손짓을 따라 글씨를 적어내리다 보니 저의 단어들도 생생하게 빛나는게 느껴지는 거 있죠. 춤을 추는 복희의 모습이 어떨지 그려보기라도 했는지 제 문장들도 못 참고 리듬을 타더라고요. 그때 저는 조금이나마 알아차렸어요. 지루함이나 따분함이나 시시콜콜하거나 그런 마음들은 모두 제가 그이들의 말들을 받아들이고 제 삶을 나눌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걸요. 저는 어쩌면 그렇게 늘 누군가의 입을 막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어요.

벌레들도 늘 그들만의 방식으로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겠죠? 복희는 이미 그들의 조잘거림을 귀엽게 주워담고 있나 봐요! 나중에는 제게도 그 방법을 가르쳐주세요. 아마 시간이 걸리는 일일거에요. 곧 지네와도 반갑게 악수할 수 있길 바래요. 복희가 그랬잖아요. ‘천 번의 기다림 속에는, 다정함과 희망과 강인함과 상상력이 있다’고요. 복희가 지네를 기다려준다면 (지네가 복희를 기다려준다면) 지네의 오밀조밀한 다리 사이사이에서도 그 모든 새싹들이 자라날 거에요. 그리고 제게도 그 마음은 전염될거에요. 꼭 촌인식 때 불러주세요. 함께 자라나는 그 마음들을 환영하고 축하하기로 해요. 슬금슬금 다가오는 존재들과 눈을 맞대고 호흡을 맞추고 함께 천 번 만 번 춤을 춰요. 그리고 우리 그걸 사랑이라고 부르도록 해요.

복희, 저는 안타깝게도 벌레들을 많이 만날 수 있는 곳에 살고 있지 않아요. 벌레도 새들도, 나무들도 온종일 옴싹달싹 못하고 끙끙 앓는 것처럼 느껴져요. 늘 내가 사는 곳에서 그들을 만날 수 있기를 바라고 기도해요. 그렇다보니 우리 종족조차도 만나는 일이 쉽지 않답니다. ‘그럴리가요!’라고 되묻는 복희의 얼굴을 상상하며 대답을 하자면 삶을 함께 꾸려갈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기가 어렵달까요. 작은 방에서 혼자 일어나 사람들을 만나고 다시 혼자 지하철을 타고 침대로 돌아올 때면, 어떤 사람에게든 늘 기다려주고 사랑해주는 공동체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돼요. 우리는 그렇게 태어난 존재라는 것을요.

그러다가 겨울이 되어 집에 돌아왔어요.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엄마와 아빠, 동생, 그리고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만났어요. 그렇게 감격스러운 일은 아니에요. 저는 집이 마냥 편하지는 못하거든요. 늘 저 자신을 감당해내기에만도 벅찼던 날들을 보냈으니까요. 어떻게 함께 사는 서로를 이해할 시간을 충분히 가질 수 있었겠어요? 엄마와 아빠는 이제 눈을 마주치지 않고 동생도 많이 차가워졌어요. 하지만 꿋꿋이 기다리려구요. 왜냐하면 스무 해가 넘는 시간 동안 그들은 저를 기다려주었거든요. 제가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 속에서 제 이야기들을 쌓아가는 동안 그들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무심했거든요.

얼마 전에는 설 명절이였죠! 할머니와 할아버지에게 세배를 드리고 세뱃돈을 받았는데, 세뱃돈 봉투에 ‘할아버지는 너를 믿는다.’라고 적혀있는 거에요. 그 사랑 가득한 말을 보자마자 저는 눈물을 터뜨릴 수 밖에 없었답니다. 그들이 기꺼이 견뎌온 기다림의 무게를 모를 수가 없으니까요. 멀리 떨어져 있던 서울에서 가족과의 전화가 가끔 귀찮다고 느껴질 때에도 그들은 제게 전화를 걸어 저를 사랑한다고 늘 고백해주었으니까요.

 

제게는 이들이 어떤 다른 존재 이전부터 저와 함께해온 반려생물들이에요. 이제는 많이 늙었고, 아프고, 상처받은 사람들이지만, 이젠 제가 그들을 기다려보려고요. 전에 사랑에 대해 질문했잖아요. 누구에게나 이런 사랑과 기다림이 허락되었으면 좋겠어요. 내쳐지기를 염려하지 않고, 서로의 입을 막지 않으면서도, 언제나 돌아보면 토닥토닥 꼭 안아줄 수 있는 존재들이 모두의 곁을 이루었으면 좋겠어요. 복희의 곁에도요.

복희, 지구처럼 기다리는 법을 배워야겠다고 했죠. 꼭 배워서 제게도 알려줘야해요. 서로에게 그 사랑을 탐구하는 존재가 되어주기로 해요. 아, 어쩌면 우리가 지금 그 공부를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네요. 더 들여다보고 내보이고 싶어요. 복희의 안에서 자라나는 온갖 무화과와 석류와 한라봉들이 궁금하지만, 저도 차분히, 제 마음들을 모아가며 기다릴게요. 복희의 세계가 그럼에도 평온하길 바래요. 새파란 잠자리를 만나게 해달라고 지구에게 기도하며, 복희의 열매들을 상상할게요. 과일을 좋아하는 산달 올림

P.S. 달복이라는 친구가 있어요. 그 친구가 만든 그 노래 중 일부를 나누어요. 그리고 제가 찍은 사진도 한 장 나누어요.

“시작과 끝에서 나는 기도했지 저들의 시간을 붙잡아 달라고 흐르지 못하게 끝이 오지 않게 저들의 마음을 붙들어 매라고 뿌리를 내려주고 숨을 내뱉어주는 것을 잊지 말라고 가지를 뻗어주고 열매를 내어주는 것을 잊지 말라고 흙으로 태어나서 흙으로 돌아가는 것을 잊지 말라고 베푸는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절대 놓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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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 편지 : 덕복희와 산달] 혹시 이게 사랑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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