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4(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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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칩코

 

<갈토에게>

 

갈토 안녕하세요~

아슬아슬하게 편지를 보내네요. 요새 마음도 뒤숭숭하고 공부도 손에 안 잡히는데 그 와중에 일도 이동도 많은 주간이었어요. 내일은 꼭 편지를 보내야지 하고 잤는데, 오늘은 아침에 비도 많이 오고 잠도 푹 자서 상쾌한 아침이네요. 제가 비를 좋아하다 보니 아침에 비가 오면 산타 선물을 받은 것처럼 신나거든요. 그간의 복잡함이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져서 가벼운 마음으로 편지를 쓰고 있어요. 갈토 말마따나 지리산의 축복스러운 기운을 받고 모꼬지에 올 수 있게 된 여파가 제게도 왔나봐요. 저는 갈토가 올 수 있으리라 굳게 믿고 있었답니다 호호 참 기뻐요.

 

갈토의 편지를 읽으며 느껴온 부분도 있지만 역시나 갈토는 강강약약이 맞았군요. 그런데 적잖이 놀랐어요. 저도 비슷한 면이 있거든요. 상사와의 대면 구도도 그렇고, 와다다 쏟아내고 퇴사의 길을 걷는 것 도요. 우스갯소리로 말하자면 살아온 동안 출근일자보다 퇴사일 수가 더 많지 않나 싶습니다. 상사의 명령을 조건 없이 수용해야 살아 남는 조직문화가 제겐 어려워서 그런 수직적 구조의 단체를 잘 못(안) 버텨요.

 

이번 주제가 ‘지금까지 내어본 가장 큰 목소리’죠. 편지를 쓰려고 어제 개와 산책하며 생각했어요. 가장 큰 목소리가 언제였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초등학생때 동네 친구들과 놀다가 싸움 나면서 내어본 데시벨을 이긴 적은 없었어요. 평소 그렇게 큰 목소리를 내는 타입도 아니고. 그러던 중이었어요. 개와 신호 대기로 멈춰 있는데 어떤 자전거가 무모하게 개 옆에 바싹 앞바퀴를 들이 밀더라고요. 몇 초 후에 개가 소스라쳤어요. 안 그래도 예민한 쫄보인데 바로 앞에 차가 지나다니기도 했고 자전거 바퀴에 꼬리나 발이 깔릴 뻔했어요. 강아지에게 매너 좀 해 달라며 순간 버럭 해버렸답니다.

 

개와 산책하다 보면 자전거들이 그렇게 개에 대해 매너가 없더라구요. 개가 안 비켰으면 다쳤을 것 같은 아찔함도 많았고 바로 옆을 지나가면서 속도를 늦추지 않아서 개 물론 저도 놀라는 경우가 자주 있어요. 강아지가 안 보인다는 듯이 앞을 지나갈 때도 많고. 그러면 안 다쳐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사람이었다면 적어도 벨로 알림을 줬을텐데 하구요.

 

이런 일이 쌓이니 못 참고는 결국 어제의 사달이 났네요. 페미니즘을 배우고 ‘탈코르셋 운동’으로 온몸을 무장했을 때도 언제나 경계태세였어요. 어디서 염산이 날라올지 몰라서요. 당시도 많이 소리지르고(?) 다녔는데 그때는 용기보단 두려움의 소리였다고 생각해요. 아무래도 가장 큰 목소리는 용기에서 비롯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렇게 내 인생의 가장 큰 목소리는 바로 어제였다... 라는 이야기였지만, 사실 정말 큰 목소리는 행동으로 표현했던 적이 많은 것 같아요. 동물 해방을 외치고자 비건을 결심한 순간, ‘아름다움’은 머리카락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하며 밀어버린 순간, 우리의 몸은 음란물이 아니야 라는 목소리를 내기 위해 계곡에서 홀딱 벗어버린 순간들이 어쩌면 살아오면서 진정한 목소리였다는 생각이 드네요.

 

갈토는 어떤가요? 아니 근데 윗집에서 세탁기를 새벽에 돌린다니요... 저도 그 고통을 압니다. 새 집에서 잘 자고 잘 먹고 잘 싸야 적응이 빨리 되는데... 앞으로는 그런 일 없이 잘 잠들 수 있기를 바라요. 그리고 지난 주 힘들었던 이슈 중 하나가 관계에서 오는 허탈함이었거든요. 갈토의 지난 편지 마지막 문단은 ‘내가 들어야 하는 말이구나’ 싶었어요. 전전긍긍하던 마음이, 한순간에 그러지 않는 사람이 되겠다는 다짐으로 바꼈어요. 갈토처럼요. 싫어하는 사람에게 신경을 쓰지 않는 갈토의 모습이 부러웠는데 그래도 한발짝 갈토와 닮아진 느낌이에요. 좋은 말 나눠주어서 고맙습니다.

 

갈토를 닮아가서 기분좋은 유우야드림

 

 

<유우야에게>

 

유우야~~~

우리 이제 곧 만나네요. 그제, 어제 버스와 기차 티켓을 끊고 나니 실감이 나요. 얼마나 설레던지 빨리 가고 싶고 편지도 빨리 받고 싶고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 유우야 편지 왜 안 보내나 기다렸어요. 유우야가 늦은 게 아니라 내 마음이 빨리 만나고 싶어서 급해진 거. 

 

어제 편지를 읽으면서 유우야는 나와 너무 비슷한 활동을 해온 사람인 걸 알게 되었어요. 그럼 내가 아는 사람인가? 매우 헷갈리기 시작했습니다. 2주 후면 알게 되겠죠. 저는 5월이 무지 바빠서 어린이날에도 일을 해야 했습니다. 일이 다 몰려서 더 바빠졌어요. 어제 일 끝나고, 에너지가 모두 소진되어 암것도 하기 싫은 상태에서 유우야의 편지를 받으니 아주 기뻤습니다. 타이밍이 진짜 쵝오! 첫 편지부터. ㅋㅋㅋ

 

“싫어하는 사람에게 신경을 쓰지 않는 갈토”라는 문장이 좀 어색했어요. ㅋㅋㅋㅋ 최근에 누군가에게 미움 받지 않으려고 꽤 노력했거든요. 업무상으로, 일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서 나를 싫어하지 않게 애쓰고 있거든요. 사적으로 아는 사람은 마음은 씁쓸하겠지만 인연이 아닌가보다 하면 되는데. 일은 참 복잡한 관계가 얽히고 설켜있고. 행복한 노동자는 참 어렵습니다.

 

‘지금까지 내어본 가장 큰 목소리’가 무엇일까 생각해봤습니다. 딱, 떠오른 간절한 순간이 몇 개 있네요. 제가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를 혼자 등반한 적이 있어요. 그 당시 제가 똘기 충만하여 위험해도 혼자해보겠다, 죽기밖에 더 하겠냐 생각했어요. 제가 고산병이 뭔지도 모르고 올라갔다가 2600미터부터 고산병에 시달렸어요. 목표는 4100미터까지 가야 하는데, 당시 내려갈까 올라갈까를 정말 고민 많이 했어요. 3000미터가 넘어서 부터는 걷는데 속도가 너무너무 느려서 정말 힘들었어요. 산장에서 자다가 물을 찾아서 기어 나온 적도 있고, 숨이 콱 막혀서 깨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목표에 도착했고 되도록 빠르게 내려오고 싶었어요. 아프니까 산이 예쁘고 자시고도 없어요. 빨리 3000미터 아래인 산장에 가서 숨을 편하게 쉬고 싶었거든요. 

 

하산 길에 며칠 전, 자다가 기어나왔던 저를 도와줬던 산장 주인 분이 저를 보더니, 산이 날씨가 안 좋다고 좀 있다가 가라고 하셨어요. 저는 빨리 내려가서 쉬고 싶다고, 고산병 때문에 머리가 너무 아프다고 말하고 바로 내려가는 걸 선택했습니다.산에서는 산사람의 얘기를 들어야 해요. 산은 참 위험한 곳이더라고요. 분명 안개가 살짝 있었는데 갑자기 안개에 뒤덮혀서 앞에 길이 안보이더라고요. 저는 길을 잃었고, 급한 마음에 걷다가 계곡에 빠졌어요. 겨울 영하날씨에 말이죠. 너무 무섭고 당황해서 마구 소리를 질렀어요. “살려주세요”라고. 그것도 네팔에서 한국어로. 사람이 너무 위급하면 그런게 판단이 안되더라고요. 근데 계곡 옆이라서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제 소리가 밖으로 퍼지질 않는 거에요. 패닉 상태에 빠져 이리 저리 걷다가 젖은 채로 언덕에서 구르고. 안 다친게 용할 정도로 딱 그 정도로 물에 빠지고 굴렀어요. 죽을 뻔했을 때, 내가 간절하게 살고 싶어서 냈던 그 목소리가 가장 큰 목소리이지 않았을까 싶어요. 

 

아무도 듣지 못했지만, 신은 들어줬던 것 같아요. 사실, 그 때 제가 정말 힘들어서 산을 혼자 올라간 거 였어요. 진짜 죽어도 상관없다는 생각으로. 근데 나는 살고 싶었던 거에요. 아주 간절히. 그렇게 살고 싶어서 소리 지른거 보면 말이죠. 죽음과 삶이 아주 멀리 있는 것 같지만, 참 가깝기도 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여튼 저는 구사일생이라는 걸 경험했고 제 인생의 가치관이 좀 바뀌었어요. 이 이야기는 또 다른 이야기를 해야 해서 우선은 여기서 마무리를 하고요. ^^

 

세상을 향해 내가 가장 분노한 목소리를 냈던 건 아마도 집회에서 였던 것 같은데, 2014년 세월호 참사 후 안산에서 집회할 때, 정말 많이 울었던 것 같아요. 사람들의 울음 소리가 목소리보다 더 크게 그 공간을 메웠던 것 기억이 납니다. 

 

또 다른 집회는 000 무죄 선고 났을 때 였는데, 그 기사 보고 친구들과 너무 화가 나서 이거 집회라도 해야되는 거 아니냐면서 단톡방에서 씩씩 거리고 있었는데, 그 날 저녁에 바로 긴급 집회가 열려서 참여했어요. 무죄 선고 나고 오후내내 분노에 차 있다가 집회에서 사람들과 한 목소리로 사법부를 규탄했고 2심에서는 유죄가 나왔죠. 그 날 참 더웠어요. 갑작스럽게 잡힌 집회라 물도 준비 못해가고.

 

그 날에 대한 기억은 더위와 물 그럼에도 분노하는 함성이에요. 그 날 그 목소리를 내지 못했으면 홧병 났을 것 같아요. 너무 열받아서. 이렇게 하나씩 세상을 조금씩 변화시켜야 한다는 사실이 절망스럽기도 하지만, 분명 변화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믿음으로 버팁니다.

 

지금 세상이 하도 수상한 시절이고, 기후재난이 끊임없는데도 무감각한 사람들이 너무 많지만 환경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으니까. 절망과 비관만으로는 기후위기를 맞설 수 없으니 단단하게 마음을 먹어야지라고 마음을 다독입니다.

 

간만에 구사일생했던 날, 집회에서 분노의 목소리를 냈던 날을 떠오르니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오늘 아침에 너무 피곤해서 유투브하고 당근마켓보면서 뒹굴했는데, 유우야에게 답장하기 위해 생산적으로 보내 좋은 오후가 되었습니다. 디지털에 빼앗겨 나의 소중한 나날들에 대해 반추하는 걸 놓치지 않아 다행입니다. 나를 게으르지 않게, 과거의 나를 다시 볼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유우야와 프로젝트 여러분들~~ 곧 만나요. 저는 바쁘게 지내다가 건강하게 구례에서 뵙기를...

 

갈토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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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하 편지 : 유우야와 갈토] 살고 싶었던 거에요 간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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