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01-21(화)
 

 

“저는 단 한번도 이 곳에 케이블카가 지어질거란 생각을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이 산은 그럴 수 없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이 산은 그러면 안되는 땅이기 때문입니다.”


케이블카 착공식장 안으로 고급 자동차들이 하나 둘 들어가는 모습을 볼 때 나는 이미 슬퍼지고 있었다. 눈앞의 아름드리 소나무와 멀리 하얗게 빛나는 바위와 아마 그 곳에서 부지런히 겨울나기를 준비할 야생동물들을 슬픈 마음으로 떠나보내고 있었다. 하마터면 그럴 뻔했다.


바위가 많은 설악산 사람은 산을 닮아 꿋꿋하고 우직한가. 이미 오랜시간 싸워왔다는 주민의 말씀이 무너지던 나의 마음을 단단히 받쳐주었다. ‘맞네. 설악산에 케이블카? 절대 못 오지. 여기가 어디라고 와?’ 어느새 기세가 등등해졌다.


정부가 바뀌자마자 법과 연구결과를 전부 부정하고, 말을 싹 바꿔버리는 저 사람들은 사실 내보일게 없어서 저렇게 비싼 옷과 차와 경호원으로 제 자신을 두르고 착공식장에 들어가는구나. 어떻게 말도 안되는 사기를 당하냐고 남 비웃을 처지가 아니다. 시공사도 안 정해진 2시간짜리 착공식에 3억원을 편성하고, 전체 사업비 1172억원(이게 도대체 얼마여..)을 마련하려고 양양군은 위급상황에 쓰여야할 ‘지방안정화기금’까지 끌어다 쓰겠다고 한다. 도무지 신뢰할 수가 없다..


나는 지리산에서 기쁨과 행복이 어디서 오는 건지 배웠다. 산에 피는 꽃이 달라지며 계절의 변화를 느낄 때, 아침에 새소리를 듣고, 낮에 햇볕을 쬐고, 노을 물든 지리산을 바라보며 자전거를 탈 때, 둘레길 계곡물을 만두(강아지)가 찹찹거리며 마시면 나도 옆에 앉아 얼굴 씻을 때, 우연히 푸른 논밭을 바람처럼 가로지르는 고라니를 만날 때, 또 우연히 만난 이웃이 자기네 감을 그냥 쥐어줄 때, 그 감을 깎아 만든 곶감이 처마 밑에서 말라가는 걸 보며 나는 누구에게 선물할까 생각할 때, 반려인이 불피운 구들방 아랫목에 나란히 몸 뉘여 잠들 때.


기쁨과 행복은 오직 감사와 사랑에서 온다. 그리고 감사하고, 사랑하면 욕심 부릴 수 없다. 산에 바위가 이끼가 도토리나무가 반달곰과 산양이, 수리부엉이와 꿀벌이 오랜시간 지구에서 제 모습대로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왔기에 바로 그 케이블카를 타면서 보고 싶은 맑은 풍경이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하면 유리창으로 둘러막힌 케이블카를 타고 정상까지 20분만에 올랐다가 내려오는 것은 그리 기쁘거나 행복한 일이 아니다. 나도 해봤기 때문에 안다. 산에 사는 생명들의 평화를 빼앗으며 만든 기계 속에서 아무리 즐거워해보려 해도 잠깐의 자극, 그 이상을 느낄 수는 없다. 그 이상의 것들은 이미 너무 빠르게 사라져가고 있을테다.


반짝 관광지였던 곳은 지리산이나 설악산이나 쓸쓸한 콘크리트 건물들만 무성한 채 유령도시가 되어있다. 아직 살아있는 나무들과 꽃과 새들만이 그나마 사람들의 걸음을 잠시 멈추게 한다.


단언컨대 케이블카를 짓고, 운영하고, 타는 이들은 케이블카를 막겠다고 눈물 흘린 이들보다 행복할 수 없을 것이다. 사람의 변덕은 죽 끓듯 해도 산은 언제나 거기 있고, 사랑하고, 감사하는 이들만이 설악산을 제 모습 그대로 끝까지 지켜낼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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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수달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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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착공식장 앞에서_꼬리의 방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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