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6-15(토)
 

절기와 농사, 선인들의 통찰

 

이선재

 

사마천 사기첫 대목인 <오제본기>에 요임금이 절기를 정한 내용이 나온다. 간추리면 이렇다.

 

요는 희씨와 화씨에게 명하여 백성들에게 농사짓는 시기를 가르쳐주게 했다. 희중을 욱이에 머물게 하고 해의 움직임을 관찰하여 봄 농사를 알려주도록 했으며,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날 조성(鳥星)이 정남쪽 하늘에 위치한 시각을 파악하여 춘분을 정하게 했다. 희숙을 남교에 살게 하여 낮이 가장 긴 날 화성(火星)이 정남쪽 하늘에 걸친 시각을 판단하여 하지를 정하게 했다. 화중을 매곡이라는 서토에 머물게 하여 허성(虛星)이 정남쪽 하늘에 나타나는 시각으로 추분을 정하게 했다. 화숙을 유도라는 북방에 살게 하고 묘성(昴星)이 정남쪽 하늘에 자리한 시각을 관찰하여 동지를 정하게 했다.

 

이로써 24절기의 네 기둥인 이분이지(二分二至/춘분, 추분, 동지, 하지)가 확립되었다. 이것이 요임금을 성군으로 칭송한 핵심적인 업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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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임금이 치세하던 시대는 기원전 2300년경으로 아직 고고학적으로는 검증이 되지 않았다. 다만 사마천의 많은 기록이 현대의 학술적 연구로 그 사실성이 입증되어 가고 있기 때문에 그 신뢰성이 대단히 높다. 또한 이 기록을 통해서 그 시대 절기에 대한 이해가 통치자들과 민중 모두에게 절실하고 현실적인 관심사였음을 알 수 있다. 농사는 태양과 땅, 바람과 물이 짓는 까닭이다. 농사꾼은 자연의 곁에서 돕는 자일 뿐이다.

 

이분이지가 확립된 이후 다시 사립(四立/입춘, 입추, 입하, 입동)을 정한다. 사립은 태양의 움직임에 대해서 땅이 반응한 결과로 조성된 자연의 상황을 정리한 것이다. 하지는 태양을 기준으로 보면 가장 더운 날이지만 실제로 극심한 무더위는 이때로부터 한 달 정도 후에 온다. 태양의 기운을 땅이 받아 데워지고 이 지열이 우리를 더위에 가둔다. 태양이 가장 짧은 동지가 지난 후에야 역시 심한 추위가 시작되고 한 달 보름 정도 이후인 입춘이 되어야 봄이 움을 튼다.

 

절기는 이와 같이 태양의 움직임이 갖는 규칙성을 중심으로 땅의 반응을 함께 정리한 태양력이다.

역법에 대한 흔한 오해 가운데 하나는 우리 조상들이 음력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물론 민중들은 음력을 일상적으로 사용했다. 달의 움직임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쉽기 때문이다. 어부들은 음력이 어로 활동의 중요한 기준이 되었지만 농사의 경우에는 음력의 쓸모가 많지 않다. 그리하여 음력을 기반으로 하되 태양의 움직임을 관찰하여 이를 보완한 태음태양력이 우리 조상들이 쓴 달력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정확한 태양력을 세우는 일은 국가적인 사업이었다. 태양과 달, 별을 정확하게 관측하는 일은 민중들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달력을 민중들에게 배포하고 때에 맞춰 농사를 짓게 하는 일이 통치자들의 연례적인 임무였다. 농가월령()을 배포하고 민중들이 이를 숙지하도록 했던 것도 마찬가지다.

 

절기를 잘 아는 것은 농사꾼의 기본적인 자질이다. 철을 모르면 농사를 제대로 지을 수 없다.

그렇다고 24절기만이 철을 아는 방법인 것은 아니다. 나의 어머니는 벌레 소리로 계절을 판별했다. 어떤 이들은 산과 들에 피어나는 나무와 풀의 잎사귀와 꽃의 변화를 보면서 농사철을 알아낸다. ‘조팝꽃이 피면 모내기를 시작한다와 같이 자연의 변화에서 때를 알 수 있는 징조들은 많다. 자연을 가깝게 느낄수록, 그리하여 시시각각 그 변화가 피부에 와 닿으면 농사일은 훨씬 수월해진다.

 

오늘날에는 철모르는 농사가 대세다. 땅이 꽁꽁 언 한겨울 비닐 하우스에 난방을 넣고 여름에나 먹을 수 있는 오이나 딸기를 재배한다. 딸기같은 경우는 오히려 제철에는 먹을 수가 없다. 우리는 사실 석유를 먹고 사는 셈이다. 그 결과 땅은 황폐해지고 기후위기가 심화된다. 지속가능성이 없다. 대안적 농법, 자연을 파괴하지 않으면서 해마다 풍년을 이룰 수 있는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다시 자연으로부터 지혜를 짜와야 한다. 다시 또 하늘과 땅의 변화를 깊이 관찰하고 선인들의 통찰로부터 가르침을 얻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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