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지리산 산청 소식을 전하는 포네입니다.
지난 6월 20일(목)에는 지리산사람들과 지리산이음, 다시지리산에서 주최하는 답사 프로그램 ‘궁금해, 지리산- 함양편’이 있었어요. <김종직의 유두류록 탐구(2020. 삼우반)> 저자인 류정자 선생님이 550년 전 김종직이 지리산을 탐방하며 걸었던 길의 일부를 안내해 주셨습니다.
김종직(金宗直, 1431년 6월 ~ 1492년 8월 19일)은 조선 초기의 문신으로 성리학자이며, 1470~1475년까지 함양군수를 역임했습니다. 함양군수 재임 시절 1472년 음력 8월 14~18일까지 5일간 지리산을 탐방하고 유두류록(遊頭流錄)이란 산행기를 남겼는데 류정자 선생님이 여러 차례의 탐방을 통해 코스를 확인했다고 합니다.
적조암 주차장에서 모여 인사를 나누고 출발합니다. 적조암까지 가는 길이 구불하고 좁았는데 암자가 너무 커서 놀랐어요. 김종직이 걸었을 당시에는 지리산 구석구석에 암자가 350여 개나 되었다고 해요. 김종직의 유람도 어느 스님이 안내를 했습니다. 유두류록을 읽어보면 고열암에서 하루 자게 되는데 오늘은 거기까지 가보자고 하십니다. 김종직인 언급한 절이 4개인데 이곳들을 찾아내는데 15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적조암 위 마지막 민가를 지나 산길로 들어서자 새소리가 들려왔어요. 김종직이 지리산을 유람했을 때는 국립공원이 시작되는 돌배나무가 있는 지점까지 조랑말을 타고 올라갔다고 합니다. 중간에 출입금지 팻말이 있는데, 류정자 선생님의 건의로 올해 초 탐방로로 허가를 받았다고 해요. 노장대(독바위)까지 2m 넓이의 야자매트를 깔 예정이라고 합니다.
산속에는 군데군데 돌로 쌓은 축대가 있어서 과거에 민가와 경작지가 있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중간에 금낭화 군락지가 있었는데, 옛날 운암마을 터로 경남인민유격대 대원들이 한참 머물렀던 곳이라고 합니다. 유격대는 법화사에서 결성되어 1947년에 이곳으로 1,200명이 옮겨와 머물렀다는 설명이었습니다. 빨치산이 숨어 살았던 곳.
조릿대 숲을 헤치고 산을 더 올라갑니다. 중간에 길이 갈라지는 지점에서 류정자 선생님이 빨치산 이야기를 한 번 더 해주셨어요. 이 근방에 빨치산 식량저장소였던 삼각바위와 굴이 있다고 합니다. 발견되었을 당시 박쥐가 날아다니고 곡식이 삭아서 먼지에 발이 빠질 지경이었대요.
조릿대를 헤치고 더 올라가니 500년 된 돌배나무가 나왔어요. 돌배나무가 이렇게 오래 사는 나무였군요. 돌배나무는 이 개체 말고도 오다가 두 그루를 더 보았어요. 수고가 워낙 높아서 열매가 날렸는지 어떤지는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돌배가 떨어질 무렵 배낭을 메고 주우러 오는 사람들도 있다고 합니다. 배꽃이 필 때 오면 환상적일 거 같은데 시기를 맞추기는 어렵겠지요. 김종직은 이 지점까지 조랑말을 타고 왔대요.
가다가 큰 바위 옆에서 잠깐 휴식. 여기서 왼쪽으로 가면 지장사 터가 있는데, 빨간 얼룩이 군데군데 묻은 바위가 있대요. 무엇인가 하면 빈대의 핏자국이라고 합니다. 조선시대에 암자가 많이 사라진 건 숭유억불 정책 때문이기도 하지만, 빈대가 너무 많아서 그랬다는 재미난 이야기. 절이 없어진 후 무시무시한 빈대도 없어졌겠지만, 우리는 지장사 터엔 들리지 않고 오른쪽으로 나아갔습니다.
조릿대숲을 벗어나자 산이 점점 가팔라졌습니다. 올라가는 길에는 작은 동굴도 있고, 올라가니 산내가 내려다 보이는 큰 바위(환희대?) 도 있었습니다.
이 다음에 나오는 절터에서 식사를 했습니다. 암자 이름은 잊어버렸네요. 큰 바위 아래 낮은 동굴에 샘이 있어서 그 옆에 암자를 짓고 수도를 했던 모양입니다. 동굴을 들여다보니 흙바닥에 물이 조금 고여 있긴 한데, 가물어서 그런지 마실 만한 양은 되지 않아 보였습니다. 옛날에는 1~2인 정도 마시고 살 만한 물이 나왔을까요?
돗자리를 깔고 점심을 먹으려 류정자 선생님에게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큰 바위 위에 흙이 있고 중이 채소밭을 가꾸고 살더라는 기록을 보고 이곳을 찾았다고 합니다. 기왓장과 자기 조각이 많이 발견되고, 이 높은 곳에 있는 암자들도 다 기와로 지붕을 이었대요. 절을 짓기 위해 산속에 기와를 굽는 가마터부터 만들었다는.
식사 후 류정자 선생님과 일행의 3분의 2는 하산했습니다. 수달아빠가 안내를 맡아 6명이서 독바위(노장대)를 목표로 산행을 이어갔습니다.
수달아빠가 발견한 수정란. 원래는 투명한데, 날이 가물어 흰색을 띄는 거랍니다. 수정처럼 투명하다고 수정란인데, 잎도 없고 뿌리도 없고 꽃만 있는 신기한 식물이에요. 엽록소로 광합성을 하지 않고, 뿌리곰팡이가 제공하는 영양분으로 꽃을 피우고 종자를 맺는답니다. 수정난을 기생식물이라고 하는데, 그건 적당하지 않은 분류인것 같아요. 광합성을 하는 평범한 식물도 그런 식으로 따지면 태양에 기생하는 거잖아요? '균종속영양식물'이라는 분류가 그나마 나은 것 같습니다. 종속이라는 단어 빼고 그냥 뿌리곰팡이영양식물이라고 했으면 더 나았을 텐데요. 수정란은 지하세계의 생명의 네트워크가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려주는 지표 같아요. 숲속의 요정 같은 식물. 팅커벨이 마법의 숲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지키고 있는 걸까요?
수정란을 뒤로 하고 가파른 길을 한참 올라가니 신열암이 있었어요. 신열암 입구에는 뽕나무가 가지를 드리우고 있어서 잠시 멈추고 향이 진하고 달콤한 오디를 따먹었어요. 산의 낮은 곳에서는 오디철이 지나 바위 위에 시든 열매가 떨어져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여기는 한창이네요. 오디는 담비나 오소리의 식량이 되는지, 바위 위나 굴에 싸 놓은 똥을 보면 오디씨앗이 많았어요.
이곳에 암자를 짓고 불도를 닦았다니 어마어마합니다. 바위벽에 몇 군데 홈이 파인 걸로 보아 나무를 박아 넣었던 거 같아요. 여기도 바위 밑에서 물이 나와 암자를 지었나 봅니다. 날씨가 가물어서 샘에는 물이 한 방울도 없었고, 깊숙한 곳에 축축한 흙이 있는 정도였어요. 조선시대에는 여기서 꾸준히 물이 나왔겠지요? 그렇지 않으면 암자가 지어지지 않았을 테니. 샘에서 물 떠서 나뭇가지로 불을 지펴 산나물·나무열매 따위로 밥해먹고, 해가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잠들었을 선승들의 생활을 상상해봅니다. 신열암 앞 함박꽃나무에는 꽃이 딱 한 송이 피어 있었어요.
독바위는 이 위에 있다고 해서 수달아빠를 따라 다시 산을 올라갔어요. 여기가 어딘고? 산등성이까지 올라가서 걷는데 암만 봐도 독바위는 없고, 너무 멀리 가는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이. 가다가다 보니 와불산 꼭대기. 이 산꼭대기 밑에 독바위가 있다고 하여 가파른 비탈을 내려갔는데, 참여자 1인의 지도 앱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 중. 아.. 여기가 아닌가. 다시 비탈을 올라 와불산 정상에 오른 다음, 능선을 따라 온 길을 되짚어서 돌아갔어요.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터덜터덜 한참을 돌아가서야 제대로 된 길을 찾아 내려갔습니다. 여기는 신열암 바로 위 같은데, 신열암이랑 매우 가까이 있는 독바위를 못 보고 그냥 지나쳐 온 거였네요. 흑흑.
독바위로 가는 통로라는 안락문. 와~ 다른 세상으로 가는 문 같아요. 편안하고 즐거운 세상으로 가는 문이라니, 이 문을 관통하면 이제까지의 고생은 끝? 치솟은 바위벽 사이에 틈이 있습니다. 어떤 지질학적 작용으로 바위가 둘로 쪼개져 이런 길이 생겨난 걸까요. 참 신기해요.
바위로 된 산도를 통과하여 다시 태어났습니다.
조금 더 내려가니 엄청나게 큰 바위산이 있었습니다. 저것이 독바위, 독녀암이로군요. 하늘을 찌르는 거대한 바위가 몇 갈래로 쪼개져 있습니다. 김종직의 유두류록에 이런 대목이 있어요.
<신열암(新涅菴)을 찾아가 보니 중은 없었고, 그 암자 역시 높은 절벽을 등지고 있었다. 암자의 동북쪽에는 독녀(獨女)라는 바위가 있어 다섯 가닥이 나란히 서 있는데, 높이가 모두 천여 척(尺)이나 되었다. 법종이 말하기를, “들으니, 한 부인(婦人)이 바위 사이에 돌을 쌓아 놓고 홀로 그 안에 거처하면서 도(道)를 연마하여 하늘로 날아올라 갔으므로 독녀라 호칭한다고 합니다.” 하였는데, 그 쌓아놓은 돌이 아직도 남아 있었다. 잣나무가 바위 중턱에 나 있는데, 그 바위를 오르려는 자는 나무를 건너질러 타고 가서 그 잣나무를 끌어 잡고 바위 틈을 돌면서 등과 배가 위아래로 마찰한 다음에야 그 꼭대기에 오를 수 있다.
그러나 생명을 내놓을 수 없는 사람은 올라갈 수가 없었다. 그런데 종리(從吏) 옥곤(玉崑)과 용산(聳山)은 능란히 올라가 발로 뛰면서 손을 휘저었다.
내가 일찍이 산음(山陰)을 왕래하면서 이 바위를 바라보니, 여러 봉우리들과 다투어 나와서 마치 하늘을 괴고 있는 듯했는데, 지금에 내 몸이 직접 이 땅을 밟아보니, 모골(毛骨)이 송연하여 정신이 멍해져서 내가 아닌가 의심하게 되었다.>
어느 여인이 홀로 기거하며 도를 닦아 승천했다는 독바위. 우리들은 잣나무가 아니라 어느 친절한 이가 매어놓은 나일론 밧줄을 잡고 바위 위로 올라갔어요. 부처머리에 두 번이나 올라가느라 힘이 빠져서 정상에 올라갈 수 있을지? 밧줄이 삭아서 좀 불안했지만 다들 낑낑거리며 중턱까지 올라가는데 성공했어요. 김종직 일행이 잣나무를 타고 올라간 바위는 이 지점 위에 있는 한층 더 높은 바위 같은데 거기까지는 도전하지 못했습니다. 여기까지만 올라와도 모골이 송연해지는 풍광. 저 아래 출발 지점이었던 적조암이 내려다보였어요.
와불산을 헤메고 부처머리에 두 번이나 올라갔다 내려온 시간이 다 용서되었습니다. 안락문과 독려암을 보았으니, 높은 산을 헤맨 보람이 있지요. 하늘을 나는 새가 된 기분. 여기서 속세의 때를 벗고 다른 차원으로 승천하면 좋겠지만, 아직 속세에서 할 일이 남은 관계로 하강해야.
이렇게 높은 곳에서 산아래를 내려다보며 구름이 아련한 먼 지평을 내다보기 위해 케이블카를 타는 거겠죠? 단돈 2만 2천 원을 내면 5분 만에 승천한 기분이 느껴지는 곳까지 갈수 있죠. 아무런 힘을 들이지 않고 케이블카로 이곳까지 왔다면 어땠을까요? 빨치산의 루트와 금낭화 군락지가 된 옛 마을터, 환희대, 신열암도 못보고, 수정난도 만나지 못하고, 부처머리로 가는 길에 있는 다래의 군락도 못보고, 오소리의 화장실도 마주치지 못하고, 이름 모를 풀과 나무들의 향기도 맡지 못하고, 깊은 산속의 새소리도 못 들었겠지요.
독녀가 했다는 승천은 무엇일까요? 위치상으로 높은 지형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는 건 아닐 거 같아요. 지리산의 깊은 산속에서 동식물과 바위의 영과 공생하면서 이들의 노래와 침묵을 해치지 않으며 고독한 시간을 보내다 보니, 세속의 소음 속에서는 느끼지 못하는 특별한 신체의 감각이 열리고, 시공을 초월하는 영안이 뜨이지 않았을까 합니다. 그게 승천 아닐까 하네요.
케이블카를 타고 산에 올라 피상적으로 시야를 넒히는 건 사진을 남기는 것 외에는 별 의미가 없답니다. 뭇생명과 그들의 모태인 지구의 영을 우리의 신체로 직접 만나고, 육체를 넘어선 미묘한 신체로 공생, 공감하는 정신적 지평이 넓혀져야 하는 것이지요.
산에서 내려오는 길은 중력을 주체하지 못해 침착하게 한발 한발 내딛으려 해도 마음대로 되지 않고 비틀거리며 떨어지듯 빠르게 내려왔어요. 승천은 느리지만 하강은 빠른 속도로 일어나는군요. 먼저 하산해서 적조암 주차장에서 독녀지망생을 기다리며 담배를 태우고 있을 가께목 선사가 심심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어요. 차 안에서 <20세기 소년>이라도 꺼내보게 키를 드리고 독바위에 올라갈 것을, 아차 싶었죠. 무면허 음주운전을 하실까봐 키를 안 드렸는데, 이렇게 오랜 시간 산을 헤맬 줄은.
산에서 내려오는 길에 돌배나무 근처에서 팔색조의 노랫소리를 들었어요. 수달아빠가 폰을 켜고 휘파람으로 새소리를 흉내 내기 시작했어요. 서투르나마 나도 흉내를 내 보았어요. 이렇게 5분정도 소리를 내고 있으며 새가 나타난다고 합니다. 아니나 다를까, 2분쯤 지나 푸른색 날개가 우리들 옆을 휙 하니 지나갔어요. 와~ 나뭇잎에 가려 보이지 않는 곳에 앉았길래, 조금 더 불러보았는데, 어쩐지 짜증이 섞인 듯한 울음소리로 대답하는 걸 들었어요. 결국 촬영은 하지 못한 수달아빠. 그래도 산에서 내려오면서 팔색조를 보아서 너무 기뻤어요. 이젠 산속에만 가면 5분 동안 휘파람 불면서 팔색조를 기다려 볼 것 같아요.
하루를 꼬박 투자하여 지리산의 숨은 비경과 역사, 생태를 만난 시간이었습니다. 김종직이 걸었던 오래된 길과 빨치산 루트, 암자터를 안내·해설 해주신 류정자 선생님, 지리산의 동식물들을 만나게 해준 수달아빠, 앞서거니뒷서거니 함께 걸으며 서로 낙오되지 않게끔 지켜준 여러 선생님들 고맙습니다. 지리산에서 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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