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지리산 산청 소식을 전하는 포네입니다.
지난 주 토요일(7월 27일)에는 궁금해, 산청 산들강 4가 있었어요. 지리산케이블카 예정지인 중산리 계곡을 답사했습니다.
이날은 일정이 빠듯했습니다. 산청 신안면 중심지인 원지에서 오전에 어린이 아크릴 수업이 있어 아이들을 데려다주고, 그림도 같이 그렸어요. 수업이 끝나서는 인근 LH 아파트에 사는 친구에게 문학회 동인지 한 박스를 전달해준 후, 김밥과 샌드위치를 사서 차 안에서 먹으며 중산리로 향했습니다. 비 소식이 있어 우비를 준비해 오라고 했지만, 그래도 날씨가 맑았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나 봅니다. 자꾸만 날씨를 살피게 되더군요. 원지에서 햇빛이 쨍하니 나서 비가 안 오려나, 했는데, 중산리에 도착하자 하늘이 꾸물꾸물.
중산리에는 ‘빨치산토벌전시관’이 있어요.
“얘들아, 좀 시간이 남았는데 전시관 구경 갈까?” “아 싫어~. 저기 가면 이*만 따까리 되는 거야.” 단호한 박달군(초6). “어떻게 해놨는지 보면 의미가 있지 않을까?” “안 볼래.”
갑자기 장대 같은 빗줄기가 쏟아졌어요. 우산을 쓰고 버스 정류소로 걸어가니 숲샘과 참가자 몇 분이 벌써 와 계셨어요. “비가 와도 일정대로 출발합니다.”
삼삼오오 모이기 시작. 굵은 빗줄기에도 집합시간에 맞게 도착한 참가자들. 간단한 자기소개와 일정설명 후 출발. 오늘의 기수 강병해 님이 지리산 깃발을 들고 당당히 걸어갑니다.
계곡에서의 물놀이로 꼬드겨서 데리고 왔는데 비가 쏟아져서 아이들이 불평불만을 쏟아내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단야(초3)는 우산을 썼다 벗었다 비를 맞으며 신나게 걸어갔어요. 나중에는 젖은 운동화를 벗고 맨발로 걸었답니다. 박달 소년은 ‘샤워하며 노래 부르기’가 여름방학 숙제라는데, 비를 맞으며 속으로 노래를 불렀기 때문에 방학숙제를 했대요. 방학 숙제가 참 훌륭하죠? 가족과 같이 활동하기, 직접 요리하기 같은 숙제도 있어요. 30여 년 전 초등학교에서 야영수련원 가서 비 내리는 날 목청 터져라 ‘호연지기’를 외치며 지리산을 오르던 ‘지옥훈련’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느껴집니다.
오늘의 코스는 중산리 버스정류소에서 시작되는 두류생태탐방로를 쭉 걸어 올라갔다가, 등산로가 시작되는 곳에서 아스팔트 도로로 탐방안내소 쪽으로 내려와 카페 중산리에 들렀다가 다시 두류생태탐방로로 내려가는 거예요.
두류생태탐방로는 중산리 계곡을 따라 조성된 데크 길인데, 군데군데 야자매트가 깔린 부분도 있어요. 비가 와서 불어난 중산리 계곡의 야성적인 모습을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비가 많이 오면 집 옆의 조그만 냇물도 불어나 계곡이 되고 폭포가 되어 흐르는데, 중산리 아낙네들의 대중목욕탕이었다는 구시소 폭포는 호우주의보에는 들어가면 뼈도 못 추릴 나이야-가라 폭포가 됩니다. 무시무시.
잠시 과거로의 여행. 글쓴이가 단야와 같은 나이인 10살 때 부모님과 함께 제천 덕동에서 열린 ‘자연학교’ 모임에 갔었어요. 덕동계곡 상류 상학동에 흙집이 두어 채 있고 주민은 한 명 뿐인 곳에 수십 명이 텐트를 치고 4박 5일을 했는데, 3분만 걸어가면 운치 있는 계곡과 소가 있어서 어른들이 남탕, 여탕 나눠놓고 신선 놀이를 했었죠. 숲속에서 선녀와 나무꾼의 야외 결혼식도 있었고, 그 결혼식에 꽃동자 역할을 했었답니다. 모임 막바지에 태풍으로 폭우가 쏟아지고, 계곡이 넘쳐 내려가는 길 위에도 물이 15센티 정도 깊이로 흘렀답니다. 밤중에 번개가 번쩍이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조그만 흙집은 이럴 때면 무너지지 않을까, 떠내려가지 않을까 조마조마하지요. 다행히 목숨을 부지했기에 신나는 추억으로 남아있네요. 당시 덕동은 그리 유명한 관광지가 아니었어요. 인근 주민들만 알고 있는 원시 계곡이었는데, 그로부터 몇 년 후 입장료를 받는 관광지가 되었죠. 그때 4박 5일 캠핑을 했던 심심산골 상학동이 지금은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넓은 주차장과 도로, 두류생태탐방로가 없던 시절의 중산리 모습도 궁금해요. 꿈처럼 안개처럼, 어느 순간 산골에서도 희미해져버린 은하수처럼 아름다웠겠지요. 오늘날의 중산리의 모습은 사진으로 대신합니다.
여전히 아름답지요? 케이블카가 생겨도 지리산은 아마 여전히 아름다울 거예요. 그러나 예전의 모습을 아는 사람은 ‘예전이 더 아름다웠어’ 라고 하겠죠. 성형미인이 자연미인이었던 시절을 안다면 누구나 그런 안타까움을 느낄 거예요.
시간 관계상 케이블카 하부 정류장 예정지는 올라가지 않고 바로 아래의 거북이산장에서 상황 설명 후 카페 중산리로 갔어요. 하부 정류장 예정지는 교통 혼잡을 유발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곳입니다. 그러나 산청군에서 현재 케이블카 노선 변경 용역을 진행 중이기 때문에 정류장 위치는 바뀔 가능성이 높아요.
카페에서 쉬면서 음료를 마셨는데 아이들이 청포도 에이드와 레몬차가 너무 달대요. 물을 두 배로 타도 달아서 마시기가 힘들었어요. 우리 가족처럼 원시적인 입맛을 가지고는 생존하기 어려운 세상인가 봅니다. 참가자 중 한 분이 ‘중산리에서 이러고 있지 말고 유럽으로 투쟁의 선진지 견학을 가자, 아이들을 우물 안 개구리로 둬서 되겠냐’는 농담을 하셨어요. 박달 소년은 3살부터 전 세계에 궁금한 장소를 구글맵으로 다 찾아보았으며, 구글맵에서는 에베레스트 꼭대기 풍경도 360도 파노라마로 펼쳐진다고 대답해 드렸어요. 요즘에는 우물 안 개구리도 우물에 앉아 하늘에서 찍힌 세상을 봐요. 세상 어디든 빠른 속도로 지나치는 피상적인 풍경을 보는 것은 매우 쉽게 할 수 있습니다. 오감 중 시각과 청각에 있어서 인간은 이미 유비쿼터스죠. 시각과 청각 신호가 제한된 프레임과 필터를 통해 들어온다는 게 아쉽지만, 호모 사피엔스는 좀 이상한 동물이라, 프레임을 통해 산출된 결과물을 실재보다 더 아름답고 재미있고 가치 있다고 느끼기도 해요.
얼마나 많은 시간 동안 우리는 스마트폰, 컴퓨터 스크린, TV, 창문, 안경, 자동차 유리를 통해 세상을 보는 걸까요? 케이블카를 타는 몇 분 동안은 또 케이블카의 창문을 통해 하늘을 보고 나무를 보고, 계곡을 보겠죠. 우리 눈에 비치는 세상은 이제 거의 항상 렌즈와 프레임을 통해 필터링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렌즈와 프레임을 벗고, 있는 그대로의 하늘과 나무와 햇살과 빗물과 계곡과 흙을 만나는 게 우리가 진짜 원하는 경험 아닐까요? 경제적 강박에서 벗어나 자연과 하나 되는 평화로운 시간, 소중한 이웃들과 웃고 식사하는 즐거운 시간을 늘려가는 게 우리가 원하는 방향이고요. 글쓴이는 지금 이 순간 노트북을 내동댕이치고 에어컨을 끄고 계곡물에 몸을 담그고 싶습니다.
남아나는 예산을 어디에 써야 할지 모르겠다면, 있는 그대로 아름다운 자연을 성형수술 하는데 쓰지 말고, 주민에게 직접 지역화폐로 전달하면 어떨까요? 월요일 아침에 ‘케이블카 반대’ 피켓을 들고 읍의 거리에 서 있었더니, 지나가는 어느 주민이 그러셨어요. “케이블카가 될 거 같아요?” “군에서 추진하고 있고, 환경부에서 안 된다는 말을 확실하게 안하니까 될 수도 있죠. 지금 환경영향평가와 설계 용역에 5억 4천 쓰고 있고요.” “케이블카 만들 만큼 군에 돈이 많아요?” “매년 돈이 남고요. 작년에는 800억 이상 남았어요.” “아니, 그러면 헌 집이나 좀 고쳐주지. 돈 없다고 하던데?” “그러게 말입니다. 매년 돈 남는데 예산 짤 때는 돈 없다고 그래요. 군내버스 한 대 증차하는 것도 2억 든다고, 돈 없어서 안 된다고 하고요.”
매년 난개발에 쓰는 예산을 유효기간이 있는 지역화폐로 주민에게 나누면 관광 케이블카보다 더 절실한 곳에 저절로 돈이 돌아가지 않을까요? 세수 증대와 주민 복지, 자립도 향상에 도움이 되겠죠. 우물 안 개구리와 중산리 계곡의 맹꽁이 들은 목청 높여 노래합니다. 케이블카 말고 기본소득을. 개굴개굴. 난개발 말고 탈성장을. 꽥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