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12-05(목)
 

지리산을 걷고 배우고 이야기하는 궁금해? 지리산’. 1024, 구례의 지리산을 다녀왔습니다. 단풍이 들고 있는 피아골입니다.

 

피아골행 버스를 타고 섬진강이 내려다보이는 도로를 지나 구불구불한 피아골 계곡 길을 한참을 달려 버스의 종점인 직전마을 정류장에 모였습니다. 구례 주민인 박두규 시인님을 모시고 산행을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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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10월 말이면 피아골에서 단풍축제가 열립니다. 이번 주말(1026)에도 단풍축제가 예정돼있어 토지면 주민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피아골의 단풍은 예년보다 늦습니다. 긴 여름의 여파가 남아 달라진 기후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합니다.

 

아직 완연하게 단풍이 든 숲은 아니지만 초록색에 울긋불긋한 색이 더해지고 있습니다(10월 24일 기준). 숲에 색이 많아져 초록 빛깔도 더 선명해 보입니다. 시원한 바람이 기분 좋은 가을숲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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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골은 곡물 중의 하나인 피가 많이 재배되었다고 해서 피밭골이라는 이름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만난 직전마을도 피 직(), 밭 전()을 쓰는 피밭마을이라는 뜻입니다. 피는 기운 없는 사람을 피죽도 못 끓여먹었냐고 할 때의 그 피입니다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 피를 심어 주린 배를 채웠다고 하네요.

 

피밭마을이라는 뜻이지만 피아골이라는 이름에서 사람들은 피()를 연상합니다. 임진왜란, 정유재란, 한말 격동기, 여수·순천 항쟁, 6·25 전쟁 등 피아골 깊은 계곡에서 목숨을 잃은 이들을 떠올립니다. 토지면 석주관, 칠의사 묘역 추념비에는 혈류성천(血流成川) 위벽위적(爲碧爲赤), 피가 흘러 강이 되니 푸른 물이 붉게 물들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피로 물든 역사가 있는 이곳, 피아골은 단풍 뿐 아니라 이곳의 역사를 돌아보고 역사 속의 사람들을 생각하며 산행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산은 언제나 그곳에 있다

오랜 마음 속 벗처럼

부르지 않아도 항상

푸른 대답을 보내오고

그리움이 깊을 대로 깊어

산빛 너울이 아프다.

미친 눈보라, 갈 곳 없는 어둠

사십 년 징역을 곱게도 사는구나

물빛 하늘 얼굴들

살아서는 부둥킬 수 없었던

그리움 곁으로 가고

홀로 남아

상처 깊은 짐승처럼

우우우 웅크린

.

 

그대

눈부신 억새꽃 바람결로 스미고

깊은 숲그늘 돌틈

철쭉으로 피어나

우리들 일상의

또 다른 이름이 되었다

다하도록

스스로가 다하도록 내려올 수 없어

산이 되었던 그대.

우리 곁을 떠나간 벗들은

저 산 되었지

헐벗어 눈 덮인 저 산.

그래, 바라던 조국 만나

풀씨는 맺었나

슬픔은 없더나.

  

저 산처럼 서야지

산이 거느리는 핏빛 그리움으로

살아남아야지

밤마다 이빨 빠지는 꿈을 꾸며

가버린 벗 생각는 일은

그만 두어야지

깊은 숲 그늘 바람, 숨 죽여 울면

아직도 너의 목소리가 들린다.

 

박두규 시인의 지리산1, 서시입니다보물찾기와 둘레길 인증샷 플랭카드가 있는 산길이지만 깊은 숲으로 들어가면 지금도 들리는 듯한 목소리가 있습니다. 통일을 꿈꾼 이들이 총을 피해 숨어든 곳, 아이와 아녀자까지 무수한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던 마을. 피아골의 기억을 떠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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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산이 붉게 타서 '산홍'이고, 단풍이 맑은 담소에 비쳐서 '수홍'이며, 그 품에 안긴 사람도 붉게 물들어 보이니 '인홍'이라고. 예부터 '삼홍'의 명승지라 했던, 삼홍소입니다. 삼홍소 다리를 지나 출렁다리가 있습니다. 오랜 세월 걸쳐있던 출렁다리는 철거작업 중입니다. 계곡으로 건너가는 길이 생길거라고 하네요. 마지막 출렁다리를 사진에 남기고 다시 아래로 내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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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쾌한 물소리. 반야봉과 노고단에서 발원한 물이 섬진강까지 뻗어나가는 계곡입니다. 머리까지 맑아지는 듯한 계곡물을 바라보며 그 시원한 흐름을 따라 우리도 다시 직전마을로 내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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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전마을 아래 평도마을에 있는 카페에 들렀습니다. 조용조용 가만가만 이야기하는 시인의 이야기를 잘 듣기 위해서입니다.

 

지리산 3

-피아골 피밭마을

 

전사들의 유해가

한 트럭분이나 나왔다는

골짜기를 내려 오면

그 깊은 틈새에

마을이 있다.

비가 오면

흙 묻은 신발이 무거워

항상 지각을 하고 마는

그 애들의 마을.

 

오늘은

토담벽 봄볕이 더 따뜻했다.

남향받이 퇴에 앉자

그래도 선생님이 왔다고

귀한 고로쇠물을 내왔다.

봄살이 막 오른 나무 등걸에

상처를 내고 밤새껏 받아야

소주병으로 하나가 되는

빨치산 마을 고된 눈물같은 수액.

 

가정방문이 있는 이맘때면

선생은 항상

고로쇠물의 첫 임자가 되었다.

애들의 학비가 되는

이 물을 들이키면

산수유 노란 꽃망울이 터지는

토담가 우물 곁으로

무수히 총소리가 쏟아졌다.

 

행펜은 어렵지만

고등핵교 까지는 꼭 가르칠텡께

잘 좀 부탁허요!

아직도 지파출소의 요시찰 인물

김만득씨의 딸 영신이의 꿈은

부산의 산업체 학교에 진학해

산을 떠나는 것이라고 했다.

 

박두규 시인이 구례 동중학교 국어교사로 있던 시절직전마을 학생의 집을 가정방문하던 경험이 녹아있는 시입니다비 오는 흙길을 한참을 걸어 무거워진 아이들의 신발눈물처럼 떨어져 오랜 시간 받아야 하지만 선생에게 제일 먼저 내어주는 고로쇠물 한 잔시인의 시선이 마을 사람들의 고된 삶에 머뭅니다그리고 무수한 사람들의 목숨을 잃게 했던 총소리를 떠올립니다.

 

박두규 시인은 전교조생명평화결사지리산사람들 등 사회적 실천에 적극적이었습니다사람에 대한 애정어린 시선이 그의 사회적 실천을 이끌어오지 않았을까 짐작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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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목소리로 지리산 연작시 낭송을 듣고 그가 구례로 내려온 이야기, 국어교사 시절 이야기, 숲에 들어 지내던 시기의 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시인의 성찰하는 삶에는 지리산이 있었습니다시인은 가슴에 물음을 안고, 언제나 그곳에 있으면서 말없이 푸른 대답을 들려오는 지리산에 올랐습니다.

 

시인의 이야기를 듣고 단풍으로 온 산이 붉게 물들 무렵 다시 피아골을 찾아오고 싶어졌습니다. 나는 어떤 물음을 안고 지리산을 오를지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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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여름 끝에 만나는 가을 숲, ‘궁금해? 지리산, 구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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