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지리산 산청 소식을 전하는 포네입니다.
10월 26일에는 일곱번째 궁금해, 산청 산들강 행사가 있었어요. 궁금해, 산청 산들강은 산청의 자연을 발로 걸으며 뭇생명을 만나는 프로그램입니다. 이번 산들강에서는 황매산을 다녀왔어요. 황매산은 행정구역상 산청과 합천에 걸쳐 있어서, 억새밭으로 이루어진 산능선에서 한쪽은 산청, 한쪽은 합천에 속합니다.
이번 산들강은 참여자가 많았어요. 신청이 부진하여 소소한 행사가 되려나 했는데, 비가 왔다 갔다 하는 날씨 때문이었는지 행사 당일에 가깝게 신청한 분들이 반수가 넘었어요. 당일 아침에 신청하신 분, 신청 문자를 받지 못했는데 신청을 하셨다는 분, 주차장에 도착해서 신청한 분들이 계셔서 마지막까지 인원이 다 파악되지 않았네요. 35명이나 되는 많은 사람들 속에서 마이크 없이 목소리 볼륨 높여주시고 멋진 사진들을 찍어주신 길안내자 숲샘, 감사합니다.
돌아가며 자기소개 후 황매산 오르기 시작. 저는 늦게 도착한 참여자가 있어 꼬리가 되었어요. 30분 후 출발. 앞서간 일행을 열심히 따라가려고 했는데, “걷는 속도와 권력은 반비례한다”,“느리게 걸을수록 부자가 된다”며 알쏭달쏭한 손팻말을 들고 느릿느릿 걷는 분도 계시고,
늦게 도착한 어린이 참여자 태인이가 중간 중간 탐방로에 주저앉기도 하고, 네잎클로버를 찾기도 하고, 풍경사진을 찍기도 해서 숲샘의 해설은 전혀 듣지 못하고 황매산을 올라갔어요. 저도 아이들을 데리고 왔는데, 엄마 없이 어른들과 가파른 계단을 잘 올라간 건지. 여유만만한 꼬리 동지들과 여유만만 황매산을 즐기고 싶었으나, 맘이 편치만은 않았어요. 시간에 맞춰 정상에 도착하리란 목표의식은 사람 마음을 급하게 합니다. 어린이 참여자는 정상에 올라가는지 몰랐다면서 툴툴.
정상을 향한 계단이 까마득합니다. 천국의 계단? 무릎이 불편한지 뒷걸음으로 정상 쪽에서 내려오는 분도 계셨어요. 올라갈 땐 앞으로 올라가셨을 테지만, 뒤로 걸어서 내려올 정도로 무릎이 불편한데 올라갈 마음을 냈다는 게 대단합니다.
우리가 좀 느리다는 생각을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열 살 짜리 둘째에게서 전화가 왔어요.
"엄마~ 난 정상왔어~ 언제 와? 왜 안 와 ~"
"잘 올라갔니? 안 힘들었어?"
"힘들었어~~"
암벽을 기어 올라가 도착한 정상. 숲샘이 준비한 한강의 노래 <나무는>을 들었습니다. ‘지리산난개발분쇄청주시민무장대’ 대원들의 충격적이고 파격적인 퍼포먼스도 감상했고요. 자작 손피켓 문구 ‘어따대구 케이블카, 가마타고 정상꺼정‘ 이란 구호를 외쳤는데, 실수로 '어따대고 가마타고'가 되어버린 거 있죠. 아하하. 사실 케이블카가 가마죠. 전동가마.
며칠 지난 어제, 한 방송사 카메라맨에게서 “케이블카 좀 만들게 놔두지. 그래야 편하게 타고 올라가지.” 라는 말을 들었어요. 그분도 환경운동을 하던 분이라 반쯤은 농담인줄 알고 있었지만, 괜히 진지하게 답을 했어요. “저는 예산의 1/n을 주장합니다. 2000억 케이블카 예산을 산청군의 모든 가구에게 나누면 한 가구당 2000만원이 돌아갑니다. 2만원 내고 케이블카 한번 탈까요, 아니면 2000만원 받을까요?”
전동가마는 참 비쌉니다. 산청주민 모두가 지리산케이블카는 군민 1명이 666만원을 내는 것과 같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어떨까요? 마치 복지의 혜택을 주는 듯 굴면서 모든 생명체와 공공의 것이었던 커먼즈를 사유화하고, 이윤생산의 도구로 쓰는 것이 자본의 논리입니다. 지리산케이블카 같은 경우에는 지자체가 추진하는 거니 커먼즈의 사유화가 아닌 것 같지만, 용역업체·건설업체가 예산을 가져가고, 인간이 무료로 누리던 고요와 있는 그대로의 자연은 사라지고, 산을 초고속으로 소비하기 위해 케이블카 탑승료를 지불해야 된다는 점에서 같습니다. 군민에게 돌아가야 할 예산으로 텅 빈 유료 케이블카가 돌아가고, 하늘에는 드론택시가 날아다니는 시대가 도래하겠지요. 기후비상사태로 인류문명이 내년에 망하면 그 모습을 보기도 어렵겠지만요. 그 점을 생각하면, 이런저런 환경운동에 힘쓰는 것보다 노을이나 바라보는 게 행복한 선택이지요. 지금 이 모습의 지구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살아있는 동안 눈에 담아두어야겠어요. 어쩌면 이것이 케이블카를 타고 산꼭대기에 오르고픈 이들, 틈만 나면 비행기를 타고 전 세계를 날아다니는 이들의 심정이겠죠. 그러나 조금 느리게 걷고 조금 느린 운송수단을 타면, 그 길어진 시간의 틈 속에 더 많은 이야기들이 담기고, 가까이 있었지만 보지 못했던 것들, 듣지 못했던 것들을 느끼게 된답니다.
조금 느려도 괜찮아. 황매산을 오르던 12살 태인이는 이 문구가 너무 마음에 든다고 멈추어서 사진을 찍었어요. 조금 느려도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일부러 느리게 가야 합니다. 일부러 느리게 가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빨리빨리 가게 되더라고요. 가속은 일종의 노예근성이죠. 빠른 게 좋은 게 아닙니다. 왜 그런지 궁금하면, 미하일 엔데의 <모모>를 읽어보세요. 독일의 소설가 미하일 엔데는 진짜 마법사라서, 자본가와 은행을 시간도둑에 비유한 이 소설은 세월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시간은 돈이라는 오래된 금언이 있습니다. 이 금언은 깊이 생각해볼 가치가 있어요. 빨리빨리 움직여 시간을 ‘절약’하면 부자가 될 것이라는 생각은 타인의 시간(돈)을 훔치고 착취하려는 회색신사(자본가·은행)의 가스라이팅입니다. 반대로, 시간을 느리게 향유할수록 사람은 내적 풍요를 누리게 됩니다.
정상에서 내려와 억새들판에 갔어요. 산청쪽에서 황매산을 올라가며 베어 눕혀놓은 억새를 보면서 혀를 찼는데, 합천 쪽 황매산에는 억새가 그대로 서 있었습니다. 산청군에서는 왜 이렇게 빨리 억새를 베었는지, 그야말로 회색신사에 쫒기는 거 같네요. 산청 쪽 황매산에는 철쭉군락이 있어 철쭉이 잘 자라게 만들기 위해 억새를 벤다고 합니다. 산청군에서는 탐방로를 새로 만든다고 언덕을 무너뜨려 놓았더군요. 끊임없이 인공구조물을 만들면 경치가 더 좋아지는 걸까요?
황매산의 합천 쪽 사면에 있는 BTS가 뮤직비디오를 찍었다는 외로운 떡갈나무. 뒤를 돌아보니 와~! 햇살 비치는 억새밭이 마치 별빛이 내린 것만 같아요. 왜 황매산, 황매산 하는지 알겠더라고요.
황매산이 민둥산이 된 사연이 있습니다. 전두환의 동생이 황매산 일대에서 목장을 경영하기 위해 나무를 다 베었다고 해요. 이후에 소가 독이 있는 철쭉은 먹지 않았기 때문에 철쭉 군락이 생겼다고 합니다. 억새와 철쭉은 초원이 숲이 되는 천이 과정의 초기 식물이지요. 숲이 파괴된 원인이 썩 마음에 들지 않지만, 목축을 위해 나무를 베는 게 관광지 조성을 위해 나무를 베는 것 보다는 생산적인 게 아니었나 하네요. 천연자원을 이용한 후 자연회복 과정에서 형성된 풍광을 관광지로 활용하는 것과, 처음부터 관광지를 만들기 위해 자연을 훼손하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넋을 잃고 억새밭을 방랑하다 그네 옆에서 노을을 기다립니다. 숲샘이 오세영의 시 <억새꽃>을 낭송해주셨어요. 멀리 천왕봉이 보입니다. 정상을 향해 오를 때는 땀이 흐를 정도로 덥더니, 어둑해지자 파카를 꺼내 입어야 하네요. 하루에 여름과 겨울을 오갑니다.
해가 지는 모습을 바라볼 때마다 듣는 생각, 지구가 정말 빨리 돌고 있구나. 동틀 무렵과 해질 무렵의 하늘은 땅과 닿은 지점에서부터 빨주노초파남보의 색깔을 띱니다. 무지개의 색깔이기도 하고, 사람한테 있는 에너지 센터인 차크라의 색깔이기도 합니다. 무지개의 스펙트럼은 새벽이나 저녁이 아니라도 하늘이 땅과 닿은 어느 곳에서든 발견할 수 있어요. 땅은 붉고, 꽃과 풀 씨앗은 노랗고, 나무의 잎사귀는 초록색이고, 하늘은 파랗습니다. 우주는 검은색이고요. 식물의 몸속에서 하늘의 햇살과 땅속의 미네랄이 만나 광합성이 일어나는 잎사귀는 초록입니다. 영성가의 눈에 사람의 몸에서 하늘 기운과 땅 기운이 만나는 가슴 차크라는 초록색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초록은 조건 없는 사랑의 빛깔, 자애의 빛깔이랍니다. 얼척없는 이유로 누가 날 미워해도, 나무는 언제나 내 곁에 있지요. 풀과 나무와 숲, 산은 모든 생명들에게 아낌없이 양분을 주기 위해 태어난 지구의 가슴, 사랑의 존재이죠. 고마워요, 황매산, 지리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