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03-25(화)
 

주말마다 일정으로 가득 찼던 11. 16일 토요일에는 노피클프로젝트 참가자들과 중산리 두류생태탐방로에 다녀왔다. 노피클? 피클을 안 먹는 사람들? 그게 아니라, ‘No Peak Club’ 의 줄임말이란다. 정상(peak)에 가지 않는 등산모임. 등산이라고 하면 산을 오른다’ ‘정상에 올라간다는 고정관념이 있다. 정상을 찍고 와야 산에 다녀왔다고 말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분위기. 그런데 꼭대기에 올라가야 산에 갔다 온 걸까? 그냥 산 아래나 산 중턱에서 좋은 공기만 마셔도 만족스러운 사람들도 있다. 숨 막히는 인공공간에서 긴 시간을 보내다 보면, 솔직히 산 입구에 가서 숨만 쉬어도 좋은 것이다. 10월에는 산청에서 한 달 살기를 하는 미나름 (40)씨와 자주 만났는데, 2년 전 낙상을 겪은 후 재활치료를 하고 있어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가는 것은 무리이지만 좋은 공기를 마시기 위해 지리산 입구에 자주 갔다 온다고 했다. 자칭 산소수집가미나름 씨는 로컬에서 난 식재료로 비건 음식을 직접 요리해 먹으며, 인스타에 그림일기를 남긴다. 산을 경험하는데 있어 정상정복 문화, 종주 문화와는 사뭇 다른 방식이다.

노피클은 기후의제에 관심 있는 청년들이 산을 경험하는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는 프로젝트다. 모임명에서 정상에 가지 않겠다고 선언한 배경에는 지리산을 포함한 여러 지자체에서 추진하는 케이블카 사업이 있다. 노피클을 기획한 기후솔루션 연구원 양예빈 님은 지자체에서 모든 등산객들이 정상에 도달하기 원하며 장애인/노약자 등 교통 약자들이 이러한 니즈로부터 배제되어 있다고 공통적으로 주장하는데, 노피클은 사실과 전혀 다른 말이라 생각한다. 오히려 최근에 등산하는 등산문화는 정상을 정복하는데 국한하지 않고 다양한 방식으로 산을 향유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했다.

노피클이 1116~17일 지리산 산청을 방문하는 일정에 산을 지리산의 매력을 전달해 줄 사람, 케이블카 이야기를 들려줄 사람을 구한다고 연락이 왔다. 짧은 시간이지만 지리산에도 다녀오고, 산청에 이주해서 문화사업, 카페사업과 같이 자기만의 방식으로 지역살이를 해나가고 방문하는 사람들을 환대하는 이들도 만나고 싶다고. 전에 대책위에 있는 햇살이 집을 방문한 손님들과 산청 여행 코스를 짜서 매우 만족스럽게 이틀을 보냈다는 이야기를 얼핏 들은 적이 있어 연결해주었다. 햇살이 숙박제공과 차량 가이드 역할을 선선히 승낙했고, 단계의 북카페 소북과 원지의 남다른 이유를 방문지로 선정했다.

첫날 지리산 방문은 케이블카 예정지인 중산리를 방문해서 두류생태탐방로를 걸었다. 노피클 을 맞이하기 위해 원지 버스터미널에서 지리산케이블카반대피켓의 뒷면을 재활용한 그대여, 정상가지 말아요피켓을 들고 있자니, 한 노신사가 피켓의 뒷면을 보고 아무도 안보는 데 그거 들고 있어서 뭐해?” 라고 말했다. “나는 서울 사람인데, 서울에는 곳곳에 데크로 탐방로가 조성되어 있어서 노약자가 다니기가 매우 편하게 되어 있어. 지리산도 그렇게 되어야지. 요즘 지자체들이 산에 이렇게 다 시설을 만들어. 관광객 유치하기 위해서. 나이든 사람들이 많잖아? 나이든 사람 인구 비중이 높으니까, 나이든 사람한테 예산을 쓰는 거야. 요즘에 다 다니기 편하게 잘되어 있어. 어떨 땐 지역이 서울보다 더 개발되어 있는 거 같아. 새로 싹 다 해놓고.” 이미 충분하지 않은가요, 라고 말해도 계속되는 노신사의 가르침을 견디고 있는데, 산청 주민으로 보이는 50대 남성 한 분이 옆에서 대뜸 말했다. “아니, 그런데 지리산에 케이블카를 만든대요? 어디요?” “중산리에요. 2000억 들여서 만든대요. 아직 허가 떨어진 건 아니고, 군에서 추진하고 있어요. 지금 설계 용역 진행중이고요.” “뭐라고요? 전혀 몰랐는데. 지리산 다 망쳐놓게 생겼네.” 노피클 일행이 탄 버스가 도착해서 인사를 나누고 길 건너편으로 이동할 때까지 아저씨는 외쳤다. “그러면 안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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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산리 버스 정류소에서 (사진: 노피클)

 

노피클 일행은 8명으로, 햇살과 내 차에 나누어 타고 중산리에 갔다. 중산리가 한국내셔널트러스트에 이곳만은 지키자에 선정되어 주차장에 축하 현수막을 달았었는데, 시천면사무소에서 떼어내어 찾아볼 수 없었다. 관에서는 케이블카를 추진하고, 중산리 주민들은 케이블카가 관광 수입에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하니, ‘이곳만은 지키자선정이 탐탁치 않은가보다. 케이블카가 주변 업소들의 매출 증가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고, 몇 년 동안 공사의 소음과 교통불편 속에 살아야 하는 것을 왜 모를까? 케이블카가 하늘에서 떨어지나? 몇 달 전 산청군수는 시천면 주민과의 간담회에서 케이블카 예산이 2000억이라고 밝혔으며, 적자의 위험도 인정한 바 있는데, 케이블카에 반대하는 이장 1인은 그 자리에서 린치를 당하다시피 했다.

산청군은 매년 800억 가량 순세계잉여금이 생긴다. 지자체장이 당선되면 공약사업을 이행할 수 있도록 선물처럼 잉여금을 준비해 놓는 것은 선수들끼리의 비밀. 사회복지비나 교육예산으로 주민에게 돌아가야 하는 돈을 꿍쳐놨다가 난개발에 쓰는 셈이다. 요지에 회전교차로 설치도 되어있지 않은데 교통량이 많지도 않은 도로를 직선화하고 넓히는 곳은 왜 그리 많은지. 덤프트럭과 살수차 좀 안 봤으면 싶다. 앞으로 예산도 줄어든다고 하니, 정말 필요한 곳이 어디인지 잘 알아서 현명하게 쓰기 바랄 뿐.

읍 입구에서 케이블카 반대 피켓팅을 했던 어느 날, 한 주민이 케이블카에 돈이 얼마냐 드냐고 물어봐서 1,177(2023년 신청서 추정예산) 든다고 했더니, “그런 돈이 있어요? 그러면 빈집이나 좀 고쳐주지! 온데 다 허물어져 가는 구만!”이라고 일갈했다. 제발 난개발, 그만 좀 하자. 해발 1915m 까지 안 올라가고 600m 부근에서 숨만 쉬어도 좋으니. 자기 집 뒷산에도 데크탐방로 많은 도시 관광객이 탈 케이블카가 아니라, 앞으로 기후변화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청년들이 자족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환경과 시스템을 마련하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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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노피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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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류생태탐방로 중 야자매트가 깔린 구간(사진: 노피클)

 

사실 저는 이런 데크탐방로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노피클 윤호 님이 말했다. 동감이다. 사람이 흙을 밟아봐야 할 것 아닌가. 모든 것이 자본으로 가공되어 가는 이 문명에서 남아있는 야생의 공간에서 안식을 찾고 싶지만,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때론 선택의 여지가 없다. 가공된 공간 중 그나마 자연이 생존해 있는 곳에서 시간을 보낼 수밖에.

잠깐 내 이야기. 지리산 천왕봉이 맞은편에 보이는 송의산(539m) 꼭대기 오지에서 35년을 살면서, 다른 산에는 딱히 가보고 싶은 욕구도 없고, 천왕봉에 꼭 올라가 봐야겠다는 생각도 없었다. 집에 누워서도 산새소리와 풀벌레 소리, 사시사철 변화하는 숲, 별이 총총한 하늘, 기후변화에 따른 식생의 변화와 숲의 천이를 지켜볼 수 있었다. 다른 장소에는 또 다른 멋진 나무와 풀과 새들이 살고 있겠지만, 그건 그들의 영역 아니겠는가. 이 고요한 산속에 포크레인이 들어와서 산을 뭉개고, 거대한 시설이 들어와서 관광객이 우글거리는 건 전혀 바라는 일이 아니었다. 내가 싫은 일은 남한테도 하는 게 아니다. 그래서 먼 곳에 놀러 가더라도 조경이 된 시끄러운 관광지는 일부러 피했다. 일단 그런 관광지에서 별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천연의 커먼즈가 돈을 내야 소비할 수 있는 자본으로 전환된 공간에서는 왠지 마음이 편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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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등산로 입구까지만 갔다. (사진: 노피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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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장도로에서 카페 중산리로 내려가는 길 (사진: 노피클)

 

케이블카와에 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두류생태탐방로로 등산로 입구까지 올라갔다가 카페 중산리까지 짧은 구간 도로를 따라 내려왔다. 멀쩡한 탐방안내소와 중산주차장을 부수고 다시 짓는 중이라 어수선하고 교통이 혼잡했다. 이보다 더 한 걸 하겠다니.

지리산 탐방에 배정한 두 시간 반이 후딱 갔다. 저녁식사는 덕산 산나물 뷔페식당 열매랑 뿌리랑에서 먹고, 햇살네로 이동했다. 뒤풀이를 하며 좀 더 심도 깊은 자기소개를 했고, 지역 막걸리 4종 블라인드 테스트를 했다.

다음 날 아침엔 햇살네 생강수확을 도왔다. 틀밭에서 생각을 뽑아 흙을 털어내고 자루에 담는 작업. 정원에는 무화과가 있었는데, 날씨가 오래도록 더워 여태 달린 열매가 있었다. 감이나 무화과 따위 무르고 달콤한 과일을 좋아한다는 윤호 씨가 열매를 따먹고는 눈을 번쩍 뜨며 말했다. “여태까지 먹어본 무화과는 무화과가 아니었어!”

우리가 생강을 뽑는 동안, 햇살은 시래기국을 끓였다. 중산리에서 내려오는 길에 지리산콩마을에서 얻어온 감, 원지 목화빵집에서 산 빵, 햇살이 끓인 시래기국, 올리브유에 담근 말린 토마토와 밤잼으로 아침을 먹었다. 시래기국이 밥 말고 빵과도 참 잘 어울리는구나. 기름진 흙을 만지고 계절의 열매를 먹는 이런 소소하고 충만한 행복. 사람은 땅과 닿아 있을 때 부드러운 단단함을 느끼게 된다. 맨발걷기 어싱(earthing)'이 유행인데, 어싱을 말 그대로 옮기면 흙-하기, 지구-하기다. 비단 맨발걷기가 아니라, 대지와의 접촉을 통해 지구의 생명들과 내가 직접 연결된 감각을 일깨우고 내가 지구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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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노피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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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이 차려준 아침식사 (사진: 노피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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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북 주인장 내외와 함께 (사진: 노피클)

아침식사 후 방문한 카페 소북. 한옥을 개조한 카페인데 방 하나를 밀당책방이라는 작은 서점으로 꾸리고 있다. 대부분 주인장 내외인 어린와자와 모모의 서가를 그대로 옮겨온 것이지만, 신간이나 주인장이 관심 있는 새 책도 꽤 많다. 어린왕자와 모모는 서점의 책들에 짧은 독후감을 메모해서 붙여 놓았다. 나도 서점을 운영하지만 책 읽은 시간이 거의 없는데, 입고한 책들을 다 읽고 감상까지 남길 수 있다니, 부러울 따름.  

 최근에는 고양이를 주제로 한 그림책들을 여러 권 전시해 놓았는데, 주인장 내외가 고양이 애호가인 모양이다. 택을 개조한 이 카페에는 고양이 몇 마리가 살고 있어서, 집사가 마루 아래에 난방이 되는 고양이의 보금자리를 만들어 놓았다. 진정 한미한 삶이 무엇인지 아는, 맨발로 땅을 밟고 맨몸으로 풀밭에 뒹구는 어싱을 그대로 실천하는 존재들.

 천안에서 산청으로 이주한 주인장 내외는 운명처럼 이 고택을 만나 손수 리모델링했다. 처음엔 본격적인 서점을 하고 싶었지만 카페가 너무 잘되어서 서점보단 카페 손님 치르는 일로 바쁘다고. 안주인인 모모는 밀당에서 지역 사람들과 책모임을 가지고 있다. 처음에 카페로 개조한 본채의 안방에서 생활하다 지금은 창고가 있던 자리에 멋진 별채를 만들어 옮겨갔는데, 유리문을 옆으로 밀면 정원과 별채 바깥의 서가가 그대로 통하는 멋진 형태다. 구조설계를 주인장인 어린왕자가 직접 했다고. 참 재주가 좋은 부부다.

소북에 가면 구석구석에서 주인장 내외의 알콩달콩 귀여운 감성을 느낄 수 있다. 농사와는 관계없지만 생활공간과 일터가 하나로 된 효율적인 삶의 형태. 모모는 짧은 만남의 시간을 뒤로하고 <남다른 이유>로 출발하는 젊은이들에게 남은 케이크도 친절하게 포장해주고, 고양이 엽서도 한장씩 선물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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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수리 중인 '남다른 이유'에서 만난 우용씨(맨 우측) (사진: 노피클)

 

 <남다른 이유> 는 신안면소재지 원지에 있다. 타지에 가서 살다가 고향인 산청으로 온 남달과 리유 남매가 운영했던 카페로, 남매의 선한 인상과 따뜻한 분위기, 세련된 감성으로 사람들이 많이 모이게 되어 원지에서 커뮤니티 공간 노릇을 했었다. 9월에 주인장인 남달이 불시에 세상을 떠나는 일이 있었는데, 많은 이들이 이 공간이 사라지는 것을 아쉬워해 산청 청년 모임 있다를 중심으로 그늘과 언덕이라는 후원단체를 만들고 멤버십으로 운영을 이어가기로 했다.

<남다른 이유>에서 만난 사람은 산청군 지속가능협의회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김우용 씨와 자연출산 둘라인 조해미 씨 부부. 카페 내부가 개조 중이라 지속가능협의회 사무실로 이동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부부는 생태적인 삶을 살고자 2020년 아무런 연고가 없는 산청으로 귀촌을 했다. 처음엔 시골집을 구해서 살다가 불편한 주거, 아이 양육 문제 등 여러가지 이유로 지금은 원지의 아파트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해미 씨가 남다른 이유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인연으로, 카페의 영업을 주로 담당하기로 했다. 우용 씨는 '카페 운영은 처음에 꿈꾸었던 손수 집을 짓고 텃밭을 가꾸는 자급자족적인 생활과는 거리가 있지만, 마음이 통하는 친구들을 만나게 되어 함께 무언가를 계획하고 펼쳐나가는 지금도 만족스럽다'고 했다. 산청에 거주하는 30대, 40대 청년들의 느슨한 네트워크인 '있다'에서는 공동텃밭을 경작하고 있으며, 올해는 문체부 지원사업인 '예술로어울림'에 선정되어 1억 규모의 주민대상 예술체험 프로그램을 기획하여 운영하기도 했다. 현재는 산청 성심원에서 사용하지 않는 구 교육관을 내어주어 공방으로 꾸미려는 참이다. 누군가는 생활을 하는 레지던시가 될 가능성도 있다.  

 요즘엔 청년이 시골에 살려고 해도 아이를 키우면서 자족적인 생활을 할 만한 빈집을 구하기도 어렵고, 시골살이 전반에 필요한 기술에 접근하는 것도 공적 지원 없이는 어렵게 되었다. 처음부터 돈이 많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필요한 물질을 스스로 생산하여 끝없는 욕망과 소비를 가속하는 임금노동에 드는 시간을 절감하고, 왔다갔다 유통과 교환에 드는 거리를 단축하여 탄소중립을 실천하고, 무위자연 안빈낙도 하는 것은 생태주의자의 로망이지만, 모든 커먼즈가 소유의 대상인 자본으로 전환된 세상에서 현실은 주거를 해결하기 위해 일단 돈을 벌어야 하는 것이다. 시골이 초고령화 되고 있기에, 주거와 생활을 해결한다 한들 아이에게 친구를 만들어주고 육아의 짐을 나누어 갖는 단순한 문제 해결도 면단위 마을에서는 자동차를 타고 이동해야 한다. 이렇듯 생태주의자의 이상을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청년 세대가 지역을 떠나지 않고 작은 읍이나 면소재지에서 자신에게 맞는 역할을 찾아 지역의 생산물과 자원이 외부로 빠져나가지 않고 지역 안에서 선순환하며 진화하는 데 기여한다면, 가족이라는 작은 테두리에 한정되지 않고 보다 넓은 지역 공동체에서 자급자족을 이루는 셈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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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용 씨 인터뷰 후 홍화원 식당 앞에서 해산 (사진: 노피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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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정상 등산모임 '노피클(No Peak Club)' 과 함께한 1박 2일 산청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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