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참 먹는 시간, 그녀가 만드는 한 끼
농사를 지어서 자립적으로 먹을 것을 해결하는 것이 지속가능한 삶과 닿아 있었죠.
구례읍 골목 안에 위치한 ‘지리산 소풍, 새참 먹는 시간’ 앞에 서면 벌써 마음이 정겹다. 대단한 인테리어가 있는 것도 아닌데, 그냥 하얀 도화지에 문을 내어 들어오라고 하는 느낌인데, 적당히 덜어내고 채워진 공간에서 느껴지는 편안함인가?
들어서면 바로 음식을 차려내는 낮은 주방과 함께 이아나 님(41세)이 보인다. 주방 앞 높은 테이블에 앉으면 밥 짓는 엄마 옆에서 종알거리는 아이처럼 그녀와 대화할 수 있다.
지속가능한 삶을 찾아서
동그랗고 커다란 눈에 선함을 실어서 선선한 웃음과 함께 사람을 대하는 그녀는 벌써 귀농 8년차다. 필자는 엄두도 내지 못하는 농사를 선택했고 직접 밭을 일구고 가꾼다. 그리고 그 수확물들로 건강한 한 끼 식사를 차려낸다.
“젊은 시절에는 시민단체에서 일했고, 개발과 지속가능성라는 주제를 탐구하기 위해 태국에 갔는데, 그곳에서 주로 본 것이 농촌사회였어요. 농사를 지어서 자립적으로 먹을 것을 해결하는 것이 지속가능한 삶과 닿아 있었죠.”
국내로 돌아온 다음에는 농사를 배우고 농사지을 땅을 찾았다. 그런 과정에 선택한 곳이 지리산이 있는 구례다. 당시는 농림부 관할로 권역별 귀농귀촌정책이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전라남도에서는 구례가 유일했다고. 아나 님은 구례군 체류형농업창업지원센터의 1회 교육생이다. 그래도 센터에서 50여 가지의 작물을 1년의 주기로 농사 지었던 경험이 지금 농사를 짓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
그녀가 농사짓는 방식은 경운하지 않고, 제초제와 화학비료, 농약을 쓰지 않는 것. 유기농 인증을 받지 않은 유기농(?)이라고 할까. 새참 먹는 시간에서 판매되는, 고추 농사와 콩 농사를 주로 한다. 그리고 밥상에 올라오는 제철 채소들을 키운다.
“저는 한 끼를 농사지어서 먹는 것에 대한 만족도가 굉장히 높아요. 가끔은 내가 한 일도 없이 너무 거저 먹는다는 생각도 드니까. 하하. 또 단순 노동이 주는 행복도 있어요. 가게에서 지치고 힘들었을 때 밭에 가서 오히려 해소가 되거든요. 가게는 몰라도 농사는 평생 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현실적인 시골살이, 새참 먹는 시간
하지만 농사를 짓는 것만으로 생활을 해나가기는 쉽지 않았다. 농사를 지어서 나온 생산물을 가공, 판매할 공간도 필요했다. 그래서 마련했던 것이 지금 지리산 소풍, 새참 먹는 시간이다. 당시 식초 등 발효음식을 연구하는 지인과의 협업으로 탄생한 결과물이 샐러드 중심의 메뉴.
가게의 이름도 두 사람의 공동작업 공간이라는 것이 드러날 수 있도록, 병기해서 썼다. ‘새참 먹는 시간’은 목, 금, 토, 오전 10시 30분에서 오후 3시 사이 시간에 열리는 곳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수확물이 많을 때는 메뉴에 쓰이는 채소 100퍼센트를 충당하기도 하지만, 부족할 때는 부득이 주변 농부님들의 채소를 구입하기도 한다. 이처럼 가게의 재료 공급이 제철 농산물 중심이다 보니 농산물이 없는 겨울철에는 가게 문을 열 수가 없다. 새참 먹는 시간이 겨울마다 조금 긴 방학을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겨울방학 기간은 농사 절기에 맞춰서 동지부터 경칩까지이다. 새참은 제철샐러드를 먹는 곳이라는 인식 때문인지 마침 겨울철에는 손님의 발길이 뜸하다고 한다.
“겨울 방학 기간이 동지부터 경칩까지로 정해지게 된 건 사실 다른 이유가 있어요. 반달곰 1% 가게를 하면서 공부해서 알게 된 사실인데, 반달곰도 동지 한 주 전부터 겨울잠에 들기 시작해서 3월 중순까지 잔다고 해요. 반달곰의 겨울잠과 시기가 같은 거죠. 점점 반달곰처럼 살고 싶어진달까.”
반달곰을 사랑하는 1%
반달가슴곰에 동기화되는 반달곰 1% 가게라니.
새참은 반달곰 1% 가게가 네 군데로 시작했을 때부터 함께했다. 지금은 열 군데로 늘어나서 선택적으로 들르지 못했던 손님도 있겠지만, 초기에는 들러야 하는데 영업하는 요일이 아니어서(새참은 주 3일만 영업하므로) 만나기 힘든 가게 중 하나였다.
하지만 가게를 둘러보면 이곳이 왜 반달곰 1% 가게인지 너무도 이해가 간다. 브리타 정수기 필터를 모으는 작은 박스와 우유팩 수거함, 1회용기보다 다회용기 이용을 권장하는 문구 등 이 모든 것에서 자연에 해 끼치지 않으려는 주인장의 마음이 느껴진다.
“반달곰1% 유랑인증서를 소개할 때 자주 하는 멘트가, 지금 여기 구례에서 가까운 지리산에 반달곰들이 살고 있다는 거예요. 지리산에 살지만, 누군가에게 지리산을 지켜야 한다거나 기후위기에 대응해야 한다거나 하는 식의 의무감을 주는 말을 할 자신은 없어요. 하지만 지리산에 사니까, 더 많이 느껴 보라고는 하고 싶어요. 더 자주, 더 깊이, 산과 강과 숲과 동물들, 흙과 바람과, 바뀌는 날씨와 변하는 절기들을 느껴봤으면 하는.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내가 이 안에서 누리는 일상이 고마울 거고 사랑하게 되겠죠.”
반달가슴곰도 마찬가지인 거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에 다른 동식물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느끼고 사랑하면 함부로 대할 수 없을 것이다. 그녀의 말을 들으면서 가게에 들어섰을 때 느꼈던 감정의 실체를 확인한다. 억지스럽지 않은 편안함. 자연의 흐름에 맞추어 살면서 누군가를 등 떠밀지 않아도 함께 느끼고 함께 이야기하면 더 많은 공감과 실천이 이루어진다는 진리를 다시 한 번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