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교육 키즈의 생애 3편 “공사판”
저녁에 버스를 타면 수현의 몸에서는 쉰내가 났고 땀을 절은 바지는 단단하게 굳었다.
인기척도 없는 새벽, 수현은 밀려드는 잠을 밀쳐내고 새벽을 열어야 했다.
자취방에 나와 아무도 없는 텅 빈 거리를 걸었다. 아침 대신 담배 한 대를 피웠다.
하얀 연기가 수현을 몸을 돌고 돌아 다시 입으로 나왔다.
수현을 기다리는 봉고차가 멀리 보였다.
“야, 뛰어”
“네”
수현은 피우던 담배를 손에 쥐고 봉고차에 올랐다.
수현은 여름 내내 공사판에서 일했다. 조적 공 조수를 했다.
벽돌을 쌓으려면 시멘트가 필요하다.
수현은 여름 내내 시멘트와 모래를 비벼 조적 공에게 날랐다.
새벽 5시에 일어나 버스를 타고 집합 장소에 나가면 봉고차가 수현을 실었다.
현장에 나가면 6시 그때부터 오후 6시까지 9시간 일했다.
9시와 12시와 3시 새참과 점심을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 온종일 시멘트나 벽돌을 날랐다.
조공은 수현이 옮긴 벽돌로 벽을 만들고 담을 만들고 집을 지었다.
수현은 오차 없이 올라가는 벽돌이 신기했다.
벽돌과 시멘트처럼 “ 시간이 가면 더 단단해지는 것처럼 자기도 시간이 지나면 더 친밀해지는
누군가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름 현장은 오후가 되면 30도가 넘었다. 공사장 안으로 뜨거운 사우나 한증막처럼 변했다.
하지만 물러설 곳이 없었다. 이런 날씨라도 집회를 하고 있다면 신이 날 수현이었지만
오전 내내 땀이 폭포처럼 흘러내려 더 이상 수분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마른 송장 같은 몰골을 한 수현은 점심을 먹고 나면 현장 아무 곳에서나 쓰러져 잠을 잤다.
이렇게 낮잠이라도 자지 않으면 버틸 수 없었다. 수현은 손은 시멘트 독이 올라 매일 밤 가려웠다.
40장씩 벽돌 지게를 지어 옮기거나 그것도 아니면 지게로 모래를 퍼 날랐다.
이런 날은 일당이 조금 더 받았다. 매일 매일 허리와 다리가 부서지는 것 같았다.
그렇게 일하면 하루 일당이 4만 원에서 6만이었다. 적은 돈이 아니었다.
등록금과 생활비를 마련하려면 하루도 쉴 수 없었다. 매일 매일 땀이 비 오듯 흘렀다.
저녁에 버스를 타면 수현의 몸에서는 쉰내가 났고 땀을 절은 바지는 단단하게 굳었다.
창피했지만 수현은 어쩔 수 없었다.
현장에서 함께 일하는 분들 대부분 50~60대였다.
저분들이 평생 하는 일인데 한두 달 하는 것이 힘들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수현은 생각했다.
“하다 보면 익숙해져. 나도 처음엔 정말 힘들더라.
하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고…. "
처자식과 아이들 학교도 보내야 하고…. 뭐 그러다 보니 30년이네!…. 함께 일하던
김 씨 아저씨는 수현에게 항상 이런 말을 했다. 그래도 학생은 끝나면 대학생이고
졸업하면 이런 일은 안 할 것 아니여…
수현은 여름 내내 땀과 시멘트 냄새로 시큼했다.
하지만 부모에게 손을 내밀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수현은 버텼다.
두 달간의 노동일이 끝나고 수현은 학교에 돌아갔을 때 노동에서 해방된 기쁨을 느꼈다.
노동해방이 노동에서 해방되는 것이 아니라 정당한 임금과 안전하고 노동법이 지켜지는 노동 현장이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수현은 노동 자체에서 해방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도 일하지 않고 살 수는 없을까? 이런 부질없는 생각을 수현은 하고 있었다.
이렇게 힘든 것이 노동인데 일도 하지 않고 자본을 가졌다는 이유로 더 많은 돈을 버는 것은 분명 부당한 일이다.
돈을 가졌다는 이유로 불로소득을 얻어 편하게 사는 사람들과 돈이 없다는 이유로 평생 노예처럼 힘든 일에
허우적거리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고 수현은 생각했다.
“이런 잘못된 세상은 바꿔야 해….”
같은 노동 시간이라면 같은 소득을 버는 것은 정당하다고 수현은 생각했다. 노동의 가치라는 것은 차별할 수 없다.
의사와 노동자가 8시간을 일했다면 같은 수입을 얻어야 한다. 이것이 수현의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