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02-19(수)
 

다시 봄이 되었다. 캠퍼스 안 호수에 심어진 버드나무에 새순이 나왔다. 

한없이 늘어진 버드나무 가지가 봄바람에 머릿결처럼 흔들렸다. 

호수에 비친 윤슬과 연두색 버드나무 가지가 눈이 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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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현은 2학년이 되었다. 신입생들이 들어왔다. 수현이 다니는 경제학과는 여학생이 많은 과는 아니었다. 

한 학년에 50명인데 그중 10명 정도가 여학생이었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 만난 후배 중에 운동권이 될 만한 신입생들을 골라봤다.


수현이 나름 몇 명을 골라 이야기를 해봤지만,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세상이 바뀌었다. 

관심이 없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만, 수현은 혼란스러웠다. 

대학생이 되면 당연히 사회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 아닌가? 라고 수현은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 학생이 수현처럼 사회문제에 관심을 두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후배들과 이야기하면서 수현은 깨달았다.


 “나는 왜 모든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했을까?”


대학생이 되었으니,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져 보면 어떨까?

네. 사회문제요. 선배 제 문제도 해결 못 하는데 무슨 사회문제를 고민해요?


“지금 제 앞길이 구만리에요"



취직도 해야 하고 학점 관리도 해야 하고요. 다른 일에 관심 가질 시간이 없어요.

 수현이 바라보는 세상과 타인이 생각하는 세상은 다르다는 것을 

신입생들과 이야기하면서 처절하게 깨달았다. 같은 것을 봐도 같은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수현은 이상하게 생각되었던 것이다.


강진도 서클에 신입회원들을 모집하고 있었다. 

강진은 선배들에게 절대 후배들에게 학생운동을 한다는 이야기는 하지 말라고 했다. 

그냥 편안한 선배 친절한 선배로 보여야 한다고 들었다.


그래서 후배들에게 밥과 차를 사주면서 호감을 쌓았다. 

그리고 후배들과 친해지면 서클에 데려갔고 함께 저녁을 먹거나 술을 마셨다. 그렇게 지내던 후배들은 자연스럽게 강진이 있는 문학서클에 가입했다.

수현은 신입회원들에게 왜 학생운동을 해야 하는지 설득하려고 했지만, 귀담아듣는 후배들은 거의 없었다. 


변혁, 혁명, 부조리, 노동 탄압, 독재, 농민들의 현실 이런 단어들은 낯설어했다. 

유일하게 수현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후배는 지숙이었다.


지숙은 여수에서 올라온 후배였다


“선배 어디 가요?”

길을 걷는데 갑자기 지숙이 수현을 붙잡더니 물었다. 점심시간인데. 어디를 가겠냐? 

식당에 가야지. 우리 오늘 특별한 음식을 먹어봐요? 우리 오늘 특별한…


너랑 나랑 그런 이야기를 할 만한 사이는 아닌 것 같은데….

올해 신입생은 지숙은 평소에 수현과 친분이 있는 후배는 아니었다. 

학기 초에 엠티에서 잠깐 이야기를 나눈 것이 전부였지만 다들 관심 없어 하던 

수현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던  유일한 신입생이었다.


학생회관 가는 향하는 길에  두 줄로 심어진 벚꽃이 활짝 피었다.


수현과 지숙은 그 꽃길을 걸어 내려갔다.


“ 그래 어디 가고 싶은데….“그냥 선배는 따라만 오세요. 그래, 특별하게 갈 곳도 없으니 함께 가보자.”


지숙은 학생 식당을 지나 더 멀리 가고 있었다. 수현이는 앞에 걸어가는 지숙이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우리 서클에 들어오려나…”


“ 그냥 학생식당이나 가자. 멀리 가봐야 별것도 없는데…. “수현이 말했다.

“선배 제가 뭐라고 그랬어요. 오늘 저랑 특별한 것을 먹어 보자고 했잖아요.”

 지숙이 다시 딱 부러지게 말했다.


“그래 알았다.” 수현은 할 수 없이 대답했다.

학생회관을 지나 조금 더 멀리 가니 멀리 교수 식당이 보였다.

“너 저기 가자고 하는 거야?”

“네…”

“저기 뭐 특별한 것이라도 파니?”

솔직히 수현은 교수 식당엔 가본 적이 없다. 항상 돈이 모자란 수현에게 

교수 식당이라는 말만 들어도 비쌀 것 같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말이 교수 식당이지 학생 식당보다 조금 더 비싼 가격에 좀 더 좋은 음식을 파는 

학교 식당이라 학생이 가도 되는 식당이었다.

“ 거기 가면 뭘 파는데… 가보면 알아요. 그래 알았다. 알았어…”

 교수 식당 앞엔 분홍빛 꽃잔디가 가득 피어 있었다. 

4월의 따스한 봄 햇살에 이제 갓 20살이 된 지숙의 볼이 분홍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지숙이가 저렇게 예쁜 아이였나 수현은 지숙을 얼굴은 멀뚱하게 쳐다봤다.


“선배…. 어…. 어….

“제 얼굴에 뭐라도 묻었어요!”

“뭐 그렇게 민망하게 보고 있어요?”

“아. 미안…. 잠깐. 딴생각을 좀 하느라고.” ”메뉴는 제가 이미 골랐어요.“

 “어 그래…”

“뭔 데…”

“청어요!”

“ 청어…”

“물고기 청어 말이야?”

“네. 저는 청어구이를 좋아하거든요.”


지숙이 이야기했다. 여기 식당에서 매주 이날만 청어를 구워 주더라고요.

“ 아. 그래서 근데 왜 나랑…”

“오늘 여기를 특별하게 온 거야…”

“ 선배 기억 안 나요?”

“무슨 기억…”

“그때 엠티 때 제가 선배에게 이야기했잖아요.”

지숙은 대천 바다로 엠티를 갔을 때 수현과 함께 걷던 시간이 떠올랐다. 

수현 선배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몰랐지만, 함께 걷는 것이 지숙은 좋았다. 

수현이 민중가요라고 불러주던 노래도 좋았다.


“언제라도 힘들고 지쳤을 때

내게 전화하라고

물끄러미 바라보다 나는 눈시울이 붉어지고

고맙다는 말 그 말 한마디 다 못하고 돌아섰네

나는 그저 나의 아픔만을 생각하며 살았는데

그런 입으로 나는 늘 동지라 말했는데

오늘 난 편지를 써야겠어 전화 카드도 사야겠어

그리고 네게 전화를 해야지 줄 것이 있노라고”  -전화카드한장-


지숙은 수현이 불러준 노래를 잊지 않고 있었다. 

그날 밤 불어오던 저녁 바람과 바다냄새 그리고 파도 소리 모든 것이  지숙은 잊고 싶지 않았다.

“무슨 이야기? 제가 청어구이를 좋아한다고요.”

“그랬었나....” 수현은 기억나지 않았지만 억지로 기억해 보니 그랬던 것 같기도 했다. 

엠티로 갔던 대천 바닷가에서 잠시 걸었던 기억이 났다. 

그때 지숙이 자기는 푸른 바다를 닮은 청어를 좋아한다고 했었다.


“ 그래…. 기억난다.”

“ 너. 청어를 좋아한다고 했었지?”

“맞아…”


“근데 바다를 좋아하는 거야? “


“아니면 청어를 좋아하는 거야?”


“선배 그만 묻고 청어를 드시는 것이 어때요?”

지숙은 어느새 청어를 먹기 좋게 살만 발라 놓았다.

야….너 이렇게까지 안 해도 된다. 네가 꼭 내 색시라도 되는 것 같잖아. 

수현은 이렇게 이야기하고 깜짝 놀랐다.

”색시가 뭐예요. 여자 친구도 아니고….“” 아…. 미안“

수현은 말을 얼버무렸다.

 ”그냥 제가 해주고 싶어서 그래요.

그래 알았다.“

수현과 지숙은 이제 막 벚꽃이 피기 시작한 캠퍼스를 바라보며 청어를 먹었다. 

사실 수현은 청어를 처음 먹어봤다. 먹어본 등 푸른 생선은 고등어가 다였다. 

수현의 엄마는 장에 가면 항상 고등어를 사 왔다. 


고등어를 김치에 넣어 끓여주거나 무와 조려주면 그렇게 맛이 좋을 수가 없었다. 

수현의 아버지 석태도 고등어를 좋아했다. 청어를 보자 엄마와 아빠가 떠올랐다.


청어 구이의 맛은 나쁘지 않았다. 아니 맛은 중요하지 않았다. 

지숙이랑 앉아 청어를 먹는 시간이 좋다고 수현은 생각했다.

“선배..”“왜..”“저 다음에 선배랑 다시 청어 먹으러 와도 되나요?”

“어.. 그래 청어 맛이 좋은데… “


지숙과 수현은 청어를 먹고,

다시 봄이 가득한 교정을 걸었다.

교정은 새로운 신입생들로 활기가 넘쳤다. 벚꽃잎이 바람에 흔들려 속절없이 떨어지고 있었다. 

꽃잎은 지숙의 머리와 어깨에도 떨어졌다. 수현은 지숙의 머리에 떨어진 벚꽃 잎을 손으로 떼어내며 수현에게 건넸다.

“ 꽃이 널 좋아하나 보다?”

“네.!”“ 선배 그런 달콤한 말을 자꾸 하시면 제가 좋아하는 수가 있어요.” 

지숙이 하얀 잇몸을 드러내며 환하게 웃었다. 지숙과 수현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학생회실로 걸어갔다.


나경은 수현과 지숙이 함께 걸어오는 것을 봤다.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밀려왔다.

왜 그러지, 나경은 수현과 지숙의 모습을 보는 순간부터 기분이 이상했다.

떨어지는 벚꽃들을 보며 나경은 생각했다.


둘이 서로 좋아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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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교육 키즈의 생애 5편 "둘이 서로 좋아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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