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기다리는 이유
작년 가을에 광고 문자 하나를 받았다.
작년 가을에 광고 문자 하나를 받았다.
내가 주로 꽃씨나 구근을 구입하는 인터넷 쇼핑몰이었다.
"지금 구매해서 심어야 봄에 예쁜 꽃을 볼 수 있다"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이런 문구에 약하다.
달리기를 하다 보니 운동화나 용품에도 관심이 있지만, 철저하게 계획적으로만 구매한다.
절대 유혹에 빠지지 않는다. 하지만 꽃이나 나무에는 속절없이 당한다.
결국 사이트에 들어가 튤립 구군 삼만 원어치를 구매했다.
튤립은 대부분 몇 년 지나면 열성화되어 꽃이 피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지 않는 꽃이다.
[튤립원종]
물론 그 화려하고 상큼한 매력을 가진 꽃을 사랑하지 않을 수는 없다.
단지 잠깐 만나 사랑만 남겨 두고 떠나는 연인처럼, 이삼 년 예쁜 모습을 보이다가
은근슬쩍 사라져 버리는 튤립이 야속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구입한 튤립은 개량종과 원종 두 종이다.
원종은 절대 열성화되지 않는다고 한다.
사실 원종이 있는지도 몰랐다. 내가 아는 튤립은 꽃이 크고 화려한 지금의 개량종들뿐이다.
하지만 그곳에서 작고 귀여운 원종 튤립을 보게 되었다.
튤립의 원산지는 파미르고원과 톈산산맥의 구릉에서 자라던 매우 강한 식물이라고 한다.
이 식물이 유목민을 따라 중앙아시아와 유럽으로 전해졌다.
16세기에 투르크 정원사들이 처음 튤립 육종을 시작했다는데, 그 시기에 이미 1,600여 개의 변종을 생산했다고 한다.
17세기 유럽으로 이어져 수천 종의 튤립 품종들이 만들어지게 되었고. 한 개의 가는 꽃대에 크고 화려한 한 개의 꽃만
피도록 육종하여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고 한다.
원종은 120종 정도가 있다고 하는데 내가 구매한 것은 그중에서 예쁜 몇 품종일 것이다.
물론 개량종도 함께 구매했다.
2월이 되고 햇살이 따뜻해지니 요즘 매일 정원에 나가 튤립 싹을 나왔는지 확인한다.
여기저기 심어 놓은 곳을 살펴보지만, 아직 하나도 올라온 것이 없었다.
처음 튤립을 심을 때 혹시 두더지가 다 먹어버릴까 봐 여기저기 보물 숨기듯 심어 두었는데
어디다 심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니면 두더지란 놈이 다 먹은 것은 아닌가?
기억나는 곳이라도 땅을 파볼까 하다가 멈춘다.
기다리면 나오겠지. 먹어 버렸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고….
그래도 먹기 좋은 커다란 개량종은 먹었을지 모르지만, 작은 원종은 남아 있을 것 같다.
원종은 증식도 잘 된다고 하니 올해 튤립 알뿌리 부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헛된 희망도 가져 본다.
봄이 오고 있고 튤립은 붉은색 노란색 물감처럼 진하고
진한 모습으로 화려하게 봄을 채색할 것이다.
세상이 혼탁하고 때로는 절망적일 때가 있다.
이럴 때 일 수록 변하지 않는 자연을 곁에 두고 심신을 달래는 것으로 중심을 잡고 살아야 한다.
매서운 꽃샘추위가 기다리고 있다고 하지만 땅속에서 올라오는 봄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자연은 서두르지 않지만, 모든 것을 이룬다."라는 노자의 말이 있다.
내가 기다리는 튤립도 내 마음과 다르게 서두르지 않고 예쁜 꽃을 피우기 위해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