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03-25(화)
 

 

풀숲에서 온 전화

 

유순예

 

 

아가, 나 여기 있다! 니들 아버지도 옆에 있다

 

부모님 산소가 있는 밭을 빙 둘러보는데

풀숲에서 어머니 목소리가 들린다

행방불명이던 핸드폰이 손을 흔들며 기어 나온다

 

아이고, 옴마!

핸드폰 없어졌다고 그 소란을 피운지가 몇 년여

여기다 떨어뜨려놓고

혼자 밭일 하느라 얼마나 힘들고 외로웠어!

 

뒤죽박죽된 핸드폰 틈새마다 끼어든 

해묵은 흙을 맨손으로 쫓아내고

해묵은 잡초 부스러기들 떼어내기를 반복하는데

초겨울 찬비가 쏟아진다

우둑! 우둑!

쏟아진다, 속절없이 쏟아지는 빗소리에

불통이던 휴대폰이 전화를 받는다

 

옴마, 아버지 옆에 누우니까 편안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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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신 어머니가 생전에 잃어버렸던 핸드폰을 딸이 밭에서 일하다 우연히 찾았다. 그 딸의 심정이 되어 나도 돌아가신 어머니를 떠올리게 하는 시다. 그 핸드폰으로 어머니의 목소리를 다시 듣고 안부를 물을 수 있다면 나는 무어라 말할까? 생각하니 갑자기 아득한 심정이 되어 아무런 말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저 늙었으나 해맑은 그 미소가, 늙은 아들을 안쓰러워하는 그 모습이 그려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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