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03-25(화)
 

안녕하세요~

지리산 산청 소식을 전하는 포네입니다. 2025년이 된지도 어느새 한 달이 넘었네요.

연초에는 특기할만한 가시적인 작업이 없었어요. 겨울잠을 자는 곰, 아니 곧잘 낮잠을 자면서 에너지를 비축하는 고양이처럼 쉬었습니다. 책도 좀 읽었고요. 올해는 지리산인에 무얼 써볼까, 구상도 했습니다. 사는 이야기, 살아온 이야기가 가장 쓰기도 쉽고 읽기도 편하다는 결론을 내렸어요. 올 한해는 산청에서 살면서 만나는 존재와 사건에 관한 이야기를 쓰려고요. 존재는 인간일수도, 비인간일 수도 있어요. 사건은 공식적인 행사와 사사로운 경험이 모두 포함됩니다. 중간중간 책 읽은 이야기도 하려고요.

 

오늘의 소소한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간단히 자기소개를 하려고요. 1년 동안 산들강 후기 연재하고 나서 자기소개를 하다니, 늦은 감이 있네요.

 

포네(前生名: 李海成) 

병인년 생. 퍼머컬처 디자인에 관한 책 <가이아의 정원> 역자로 알려져 있다. 숲생활과 자급자족을 추구한 부모님 덕에 1990년 경남 산청에 정착하였으며, 이후로 쭉 산청에서 살고 있다. 지리산 천왕봉이 마주보이는 송의산의 외딴집에서 30년 넘게 살았다. 숲길을 1시간 걸어가야 했던 초등학교 졸업 후, 정규교육을 받지 않고 집에서 주경야독, 반농반X의 삶을 살았다. 스무살 무렵부터 번역작업을 해서 4권의 역서가 있다. 25세에 혼인해서 아들딸을 낳고 3대가 함께 농사짓고 집짓는 생활을 했다. 2020년에 함께 살던 남동생이 암으로 세상을 떠난 후, 사후/영성세계 탐사와 비과학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산청읍에 타로카페 겸 서점 지금부터 판타지를 오픈하게 되었다. 23년에는 이혼하고 한부모가 되는 삶의 굴곡을 겪었으며, 현재는 농사일에서 손을 떼고 읍내에서 살아가고 있다. 멸종위기 생태인간으로서의 전생과 죽음을 기억하는 환생 3년차로, 현재는 녹색의 기억과 의지를 가지고 소멸위기의 소읍에서 정보와 자본을 모으는 중. 숲의 기억을 씨앗으로 남기는 작업, 씨앗을 심는 작업을 하려고 한다.

 

지금부터 판타지는 타로카페로 처음 시작해 죽음 너머의 세계를 탐사하는 <데스카페>1년 반 동안 진행했고, 이후 서서히 서점으로 전환했습니다. 동네책방이 경영이 어렵다고 하죠. 2년 넘게 생존하기도 어렵다고 하고요. 판타지 서점은 대체 어떻게 생존하고 있는 걸까요? 간혹 들어오는 손님에게 책을 팔기도 하지만 이런 경우는 드물고, 주로 교육지원바우처나 문화누리카드 이용자가 책을 주문하면 구입하고, 도서관에 책을 납품해서 월세를 내고 있습니다. 가끔 타로를 보고 가시는 손님도 있고요. 1인 사업이고, 서점을 생활공간과 작업실, 회의와 모임 장소로 겸하고 있어서 큰 수입이 없어도 버티고 있습니다. 작년 수입의 반은 타로강사일과 활동비, 각종 알바로 벌었습니다. 헨리 데이빗 소로우가 웃고 갈 읍생활의 경제학.

 

동네책방 활성화의 필수 프로그램이라는 책모임은? 글쓰기 모임인 <필로>, 지역 동호회인 필봉문학회 월례회를 판타지에서 가진 적도 있었지만, 예전에 그만둔 상태에서 산청도서관 독서모임에만 나가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올해 들어 영어원서 강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의료사협 소모임 이로운 식탁과 대안교육·육아모임 민들레를 함께하는 에이스영어학원 현하언니가 전부터 함께 영어 원서를 읽어보자고 했는데, 올 초에 민들레 모임톡방에서 <이처럼 사소한 것들> 영화 이야기가 나와서 클레어 키건의 'Smallthings Like These' 를 텍스트로 삼았습니다. 산청고에서 영어교사를 했던 한나언니도 같이 읽게 되었습니다. 한나언니는 교사를 그만두고 음향업체 후투티사운드를 운영하면서, 빈둥밴드에서 보컬로, 산청청년모임 있다에서 기획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한나언니는 책을 미리 다 읽고 오셨어요. 역시 영어선생님생소한 단어들을 미리 찾아오셔서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첫모임에서는 chaper 2 중간까지 읽었어요. 한문단씩 돌아가며 소리내어 읽고 잘 모르겠는 문장과 단어 알아보고 내용에 대해 이야기. 오늘은 'Small Things Like These' 가 책의 어느 대목에서 나온 말인지 발견했어요. 펄롱 부부가 일과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기 전 나누는 소소한 이야기더라고요. 번역본을 읽을 땐 왜 몰랐을까요?

<이처럼 사소한 것들>1990년대까지 아일랜드에 존재했던 막달레나 세탁소에서 벌어진 미혼모 학대와 노동착취를 조명한 작품입니다. 주인공 빌 펄롱은 미혼모의 아들로, 운 좋게 유복한 환경에서 성장하여 가정을 일구고 각종 난방연료를 공급하는 상사를 운영하는 성실한 남편이자 딸 넷 아빠입니다. 생각 없는 이들이 그의 출생에 대해 함부로 추측하고 비웃는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체제와 관습과 분위기에 그럭저럭 적응한 정상인으로 살다가 석탄을 배달하러 간 수녀원에서 우연히 자신의 근본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존재를 목격하고 고민에 빠지는데... 그는 결국 사생아인 자신과 일찍 죽어버린 엄마, 누군지 모르는 아빠, 자신을 거두어준 미세스 윌슨을 긍정하기 위해 어떤 선택을 하게 되죠.

작년에 킬리언 머피 주연으로 영화화 되었어요. 아일랜드 독립운동을 배경으로 한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에서 봤던 킬리언 머피. 뽀샤시한 킬리언 머피가 총 들고 맨땅에 엎드리고 그랬다는 기억만 납니다. 대체 뭘 본 걸까요? 영화 <이처럼 사소한 것들>도 묘한 이지적 매력의 머피가 검댕을 묻히고 스산한 아일랜드의 가을에 석탄트럭을 몰고 3D 노가다를 하더라는.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모든 것이 눈빛으로 전달되는 연기였습니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구례의 봉서리 책방에 가면 주인장이 원픽으로 추천합니다. 역서에서도 그런대로 느낄 수 있지만, 원서를 소리 내어 읽어보니 정말 시적인 산문이더라고요. 간결한 문장, 고급진 단어. 압축적이고 뼈 때리는 표현. 역시 상 받은 이유가 있더군요.

 

살면서 영어 원서를 강독한 적은 여러 번 있었는데, 한 문장씩 읽고 우리말로 옮기는 방식이었어요. 이런 방식이 공부는 되지만, 영어 문장을 이해하는 것과 우리말로 옮기는 건 다른 문제라서, 느낌으로 이해한 영어 문장을 역순인 우리말로 옮기며 더듬거리는 기분이 좋지는 않습니다. 저로서는 영어공부를 빡세게 하기보다, 문단을 길게 소리 내어 읽으면서 혀와 입술과 성대에서 그 언어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주파수를 느껴보고 싶었죠. 다른 사람의 발음도 들어보고요. 해석을 중심으로 하지 않고 소리 내어 읽는데 중점을 두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이 모임에서 그렇게 할 수 있었어요. 소리 내어 한 문단을 읽고, 잘 모르겠는 부분만 체크하고, 해석이 아닌 내용과 감상 위주로 이야기하고요. 한 가지 소원이 해결된 날이었네요.

 

*사토리: 사사로운 이야기(Story). 산스크리트어로는 깨달음. 방언을 뜻하는 사투리(사사로운 말투)’의 본래 발음이기도 하다. 일본어로 사토리()는 기후현의 산속에 살며, 사람의 마음을 간파하는 텔레파시를 가진 것으로 알려진 요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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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네의 사사로운 사토리 1 : 이처럼 사소한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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